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숙소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시온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시약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BMW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296
  • 中 칭다오에 초대형 쇼핑몰 짓는다

    中 칭다오에 초대형 쇼핑몰 짓는다

    재미교포 박인웅(57) 사장이 운영하는 한·미 합작 시행사 팬암부동산투자㈜가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노산구에 건평 11만 5000평 규모의 초대형 쇼핑몰을 단독으로 짓는다. 총 사업비만 1조 2000억원에 달하며 산둥성에서 추진한 공사 중 최대 규모이다. 박 사장은 17일 “칭다오를 정보기술(IT) 주력산업단지로 만들겠다는 중국 정부 의지에 따라 4000개 이상의 오픈상가, 호텔, 대형 영화관, 예식홀, 대형 주차장 등이 건설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라면서 “2006년 상반기 착공에 나서 연중무휴 휴양도시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총 건축 기간은 3년. 그는 “시공사는 아직 선정하지 않았지만 국내 기업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현재 국내 3∼4개 업체의 제안을 받아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국에 있는 국내 중소기업은 총 9000개 업체에 달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인 4800여개 업체가 칭다오에 있고 주 30편 이상 운행되는 칭다오선 이용객의 60% 이상이 한국인”이라면서 “호텔을 한국인을 겨냥한 숙소로 만드는 등 쇼핑몰 전체를 중국내 코리아타운으로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병대 출신인 박 사장은 밀양중을 중퇴한 뒤 검정고시를 거쳐 한양대 공대 기계공학과(67학번)를 졸업했다. 금성사(현 LG전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1978년 미국에 건너가 무역·철강회사 등을 다니다 지난 2003년 팬암투자개발유한회사 한국 지사장으로 부임, 이듬해 한국에 팬암투자개발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프로야구 2005] 삼성 “굳히기” 두산 “대반격”

    ‘우승 굳히기냐, 안방 대반격이냐.’ 대구 홈구장에서 짜릿한 대역전극을 연출하며 2연승을 거둔 삼성과 2연패의 궁지에 몰린 두산이 18일 잠실에서 가질 3차전에서 총력전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의 향방을 가릴 최대 승부처가 바로 3차전이기 때문. 역대 22차례의 한국시리즈에서 3연패를 당한 팀이 정상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3차전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대목. 삼성은 올시즌 10승(8패)을 거둔 바르가스(28)를 선발로 내세운다. 그는 두산전에서 8경기에 등판해 2승2패, 방어율 3.43을 기록했다. 다만 삼성은 믿었던 타선이 살아나지 않고 있는 점이 부담스럽다.2경기에서 팀타율은 .292, 안타 21개. 그나마 산발적으로 터진 데다 홈런은 1개에 불과했다.그럼에도 잠실 3연전에 대비해 대구의 숙소도 아예 예약하지 않는 배수진을 펴며 잠실에서 끝장내겠다는 기세. 반면 홈에서 2연패 후유증을 치유하면서 대반전의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두산은 박명환(28)을 선발로 예고했다. 삼성전 3경기에서 1승을 거두며 방어율 2.45인 그에게 ‘토종 에이스’의 자존심 회복과 벼랑 탈출의 중책을 맡긴 것.박명환이 무너질 경우 이혜천, 이재우, 정재훈 등 모든 투수력을 총집중해 반드시 3차전을 잡는다는 것이 김경문 감독의 복안이다. 두산이 기대하는 것은 ‘홈 최강 전통’. 두산은 현재 지난달 10일(기아전)부터 한화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까지 잠실에서만 파죽의 12연승을 기록 중이다. 홈구장 승률만 .651이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효성그룹 (2)-2세경영

    효성가(家)의 2세 경영이 닻을 올린 지 30여년. 선친인 만우 조홍제 회장의 ‘유훈 경영’ 방침대로 효성은 내실과 외양을 조화시키며 튼튼한 중견 그룹으로 커왔다. 대신 2세들의 분가와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축소된 사세(社勢)는 아직 옛 영광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3세들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효성도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안정 지향의 경영 색깔에서 도전과 진취가 ‘경영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 효성은 올해를 ‘뉴스타트의 해’로 삼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 선두주자에 효성의 3세 경영인들이 포진해 있으며, 이들의 성공적인 착근이 ‘신(新) 효성’의 성공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2세 분가 효성가(家)의 2세 분가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만우 회장이 3형제(조석래-양래-욱래)에게 일찍이 효성의 주력 기업을 하나씩 떠맡기면서 독립 경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만우 회장은 “3형제가 장성했고, 기업의 경영책임자로서 제몫을 다하는 만큼 앞으로 지켜볼 따름”이라며 1978년 사실상 기업경영에서 손을 뗐다. 장남인 조석래(70) 회장은 70년대부터 주력 기업인 효성물산과 동양나이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4개사 모두 ㈜효성으로 통합) 등을 맡았다. 차남인 조양래(68) 회장은 자동차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한국타이어를 물려받았다. 성격이 활달한 3남 조욱래(56)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대전피혁 사장에 올랐다.3형제는 이후 분리 경영을 해오다가 1980년부터 주거래 은행까지 달리할 정도로 철저한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83년 그룹을 대대적으로 손질해 ‘제2의 창업’을 선언, 화섬과 중전기, 화학, 건설, 정보통신 등으로 효성을 키워오고 있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은 한국타이어와 한국전지, 한타M&B 등을 통해 타이어사업의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 반면 3남 조욱래 동성개발 회장은 외환위기 시절 효성기계 부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권토중래를 모색 중이다. ●만우 회장과 4자성어 2세 경영의 특징은 선친의 ‘유훈 경영’과 밀접하다. 만우 회장이 197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다. 그는 세 아들에게 ‘항상 가까이 두고 뜻을 새기라.’는 차원에서 각각 휘호를 하나씩 줬다. 장남인 효성 조 회장에겐 ‘덕을 숭상하면 사업이 번창한다’라는 뜻에서 ‘숭덕광업(崇德廣業)’이란 글귀를 남겼다. 차남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쉬지 말고 힘을 길러라’라는 뜻에서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글귀를 받았다. 막내인 동성개발 조 회장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4자성어를 받았다. 자식들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우 회장의 일종의 ‘자식 사랑’인 셈이었다. 2세들도 선친의 뜻에 따라 지금껏 경영을 해오고 있다. 효성 조 회장은 화학과 정보통신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갔고, 특히 타이어코드와 스판덱스 등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타이어 조 회장은 문어발식 기업 확장 대신에 타이어 ‘한우물 경영’에 충실했다. ●학자풍의 조석래 회장 조 회장은 학구적이며 논리적이다. 유행에 편승하거나 의욕만을 앞세운 경영보다 윤리적이고, 원칙적인 경영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가끔은 융통성이 없다거나 보수적이라는 평도 나온다. 조 회장은 조씨가(家)의 학자풍 스타일 면에서 선친을 가장 많이 닮았다. 만우 회장과 조 회장 모두 젊은 시절엔 기업인보다 대학 교수에 관심이 더 많았다. 조 회장의 이런 학자적 소양은 경영에 발을 내디딘 초기부터 많은 빛을 봤다.74년 초 오일쇼크의 여파로 나일론 원자재가 품귀 현상을 빚었을 때 슬기롭게 넘긴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 회장은 나일론의 원자재인 ‘카프로락탐’ 구입난에 직면하자,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완성품인 카프로락탐의 직접 구입보다 매입이 더 쉬운 기초 원자재를 구입해 카프로락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조 회장의 광범위한 정보 획득과 주도 면밀한 연구가 없었다면 기대할 수 없었던 착상이었다. 조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56세의 늦은 나이에 창업해 홀로 고군분투를 하던 선친의 부름을 받고,1966년 효성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후 나일론 원사사업을 세계 4위까지 육성시켰으며,1975년엔 폴리에스터 공장을 준공해 효성을 명실상부한 화섬업계의 리더로 이끌었다. 또 한·미 재계회의와 한·일 경제인 회의, 태평양 경제협의회(PBEC) 등의 리더로서 국제 협력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한길경영’과 ‘권토중래’ 조양래(67) 한국타이어 회장은 나서기를 꺼려하고, 검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조 회장은 5년 전에 산 국산 브랜드의 구두를 여태껏 신고 다닌다. 아직 쓸 만하다는 것이다. 조 회장이 하루는 직원들과 식당에 밥먹으러 갔는데 너무 구두가 낡아서, 직원들이 회장 구두를 찾지 못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언론에 얼굴 내밀기를 싫어하는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 사장 시절에 딱 한 번 인터뷰에 응했다. 당시 사진 기자가 인터뷰용 사진을 여러 장 찍는 것을 본 조 회장은 “무슨 전문가가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는가. 전문가이면 사진을 한 번만 찍으면 되는 것을. 필름만 그저 아깝게….”했다고 한다. 조 회장은 해외 출장에 수행원을 두지 않고 다닌다. 또 숙소도 일반 출장자들이 주로 머무르는 2급호텔에 투숙한다. 그의 이런 검소함과 치밀함은 한국타이어 경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친에게 물려받은 이후 조 회장은 줄곧 타이어사업 하나만 매진해 세계 9대 타이어 메이커로 성장시켰다. 조 회장은 1988년 “경영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조 회장은 현재 한국타이어 복지재단 회장직을 맡아 ‘미신고 복지시설’ 지원 등에 앞장서고 있다. 3남인 조욱래 회장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대전피혁 사장에 취임,10년만에 대성과 효성알미늄, 효성금속, 효성기계, 동성, 동성개발 등 총 8개 계열사로 늘리는 경영 수완을 보였다. 특히 일본 스즈키사와 제휴해 오토바이 생산업체인 효성기계를 설립, 한때 대림산업과 함께 국내 오토바이시장을 양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 회장의 책임·내실 경영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한파는 효성기계를 어렵게 했다. ●효성가 3세 효성가 3세(조현준-현문-현상)들은 경영수업의 첫발을 모두 외국 회사에서 내디뎠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모건스탠리를 거쳐 97년 부친인 조 회장의 부름을 받고,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효성에 입사했다. 차남 조 전무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99년 효성 경영전략 2팀장으로 합류했다. 막내 조 상무는 세계적 경영컨설팅사인 베인&컴퍼니와 일본의 세계적인 통신사인 NTT도코모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효성에 입사했다. 장남인 조 부사장은 미국의 명문고인 세인트 폴 고교를 나와 예일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영어와 일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도 자유롭게 구사한다. 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효성맨’이 된 조 부사장은 효성의 독특한 사업구조인 퍼포먼스유닛(PU) 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섬유·산업자재·무역·정보통신 등 주요 사업군을 ㈜효성의 우산 아래로 모으면서 효성T&C(옛 동양나이론)·효성물산·효성생활산업·효성중공업을 합병시키는 등 굵직한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차남인 조 전무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했다. 고교 시절 조 전무의 별명은 ‘바야바’. 큰 키에 모범생인 그를 친구들은 이렇게 불렀다. 그는 98년 하버드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99년 효성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미국 뉴욕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조 전무는 국제 변호사로서 큰 역할을 해냈다. 효성 도메인(www.hyosung.com)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되찾아온 것.99년 닷컴 도메인을 선점한 사이버 ‘스쿼터(도메인 매점매석 행위자)’가 수억원을 요구해 왔지만, 미국 도메인등록협회와 미 법원에 제소,‘효성닷컴’을 찾아왔다. 미국 브라운대 출신인 3남인 조현상 상무는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오랜 직장 경험을 쌓았다. 그는 사내에서 손꼽히는 일본통으로 알려져 있다. 조 상무는 현재 그룹의 핵심 현안인 성장엔진 발굴을 위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으며, 그룹 장기전략 수립과 기업이미지 개선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3세들의 역할이 날로 확대되고 있지만 3세들의 경영 승계 시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조 회장이 아직 정정한 데다 3세들이 배울 것이 많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국타이어의 3세 경영도 관심이 쏠린다. 조양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업무 권한을 팀장들에게 대폭 위임,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덕장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차남인 조현범 상무는 치밀한 분석력과 폭넓은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스타일.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이다. ●3세 혼맥 조씨가(家)의 3세 혼맥도 국내 명망가와 혈연으로 잘 엮여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두환 전 대통령가(家)와 ‘사돈의 사돈’이라는 것과 이명박 서울시장과 사돈이라는 점이다. 또 권노갑 전 의원과도 ‘사돈의 사돈’이다.2세 혼맥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家)와 통혼으로 이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조씨가는 국내 내로라하는 정치 가문과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특히 만우 회장이 일부러 정치권을 기피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이는 매우 뜻밖의 사실이다. 조석래 회장과 송광자(61) 여사는 슬하에 3남을 뒀다. 장남인 조현준(37) 효성 부사장은 2001년 11월 한국제분 이희상 회장의 3녀인 미경(29)씨와 결혼했다. 양가가 서로 안면이 있는 데다 미경씨의 형부가 적극 나서면서 서로 인연을 맺게 됐다. 두 사람은 연애 시절 테니스와 연주회 등을 관람하면서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결혼식은 조 부사장의 모교인 세인트 폴 고교에서 했다. 현재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조 부사장의 처가인 이희상가(家)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사돈간이다. 한국제분 이 회장(60)은 부인 정영화(59)씨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인 윤혜(34)씨가 전 전 대통령의 3남인 재만씨와 혼례를 치렀다. 조 부사장과 재만씨는 동서간이다. 차남 조현문(36) 효성 전무는 이부식 전 해운항만청장의 장녀 여진(31)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진씨는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거쳐 뉴욕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재원. 노무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을 맡다가 지금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조 회장과 송 여사가 이어줬다. 시부모와 며느리간 첫 만남은 2001년 6월 한·미 재계회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진씨는 당시 미국 로펌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로, 한·미 재계회의엔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다. 연례회의에서 조 회장 부부와 여진씨는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 안면을 트는 사이가 됐다. 인연은 다음해에 또 이어졌다.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재계회의에 세 사람은 같은 일정을 보내게 됐다. 당시 장남인 조 부사장이 막 결혼을 한 시기여서 주변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던 송 여사는 이렇게 화답했다고 한다.“아직 두명을 더 보내야 한다.”고. 이후 조 회장은 조 전무에게 여진씨를 소개해줬고, 두 사람은 3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조 회장과 여진씨의 부친인 이 전 청장과는 서로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으며, 조 전무의 동생인 조현상 상무와 여진씨의 오빠는 미국 브라운대의 선후배 사이일 정도로 양가는 사돈으로 맺어지기 전부터 가까웠다.3남 조 상무(34)는 아직 미혼이다. 효성가의 방계 3세들의 혼맥도 화려함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과 홍문자(64) 여사는 2남2녀를 뒀다. 미국 뉴욕의 FDU대 수학과 교수인 맏딸 희경(39)씨는 연세대 법대 교수인 노정호(43)씨와 혼례를 치렀다. 차녀 희원(38)씨는 재미교포와 결혼했다. 장남 조현식(35)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차동완 카이스트 교수의 딸인 진영(28)씨와 인연을 맺었다. 진영씨의 모친은 고 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의 차녀인 설영자씨다. 차남 조현범(33) 상무는 2001년 9월 이명박 서울시장의 3녀인 수연(30)씨와 결혼했다. 최근에 보기 드문 정치인과 재벌의 혼사였다. 조욱래(56) 동성개발 회장의 자제는 모두 2남 1녀. 장남인 현강(30)씨는 삼정KPMG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으며, 차남 현우(22)씨는 미국 TUFTS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장녀인 윤경(27)씨는 홍준기 삼공개발 회장의 아들인 석융씨와 혼인했다. 홍 회장의 딸인 지연씨가 권노갑 전 의원의 아들인 정민(35)씨와 결혼해 조씨가는 권 전 의원 가문과 한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효성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이상운(53) ㈜효성 사장은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전문경영인. 경기고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76년 효성물산에 입사했다. 중동 등에서 ‘섬유수출의 귀재’라는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효성물산 기획실과 시장개척실, 사업개발실 등을 거치며 업무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외환위기 때에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효성그룹의 주력 4개사를 통합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송형진(62) ㈜효성 건설PG장은 건설 경력 35년이 넘는 전문 경영인이다. 건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가장 강조한다. 특히 사람을 관리하는 팀워크를 중요시해 건설PU장 시절, 사업이 진행중인 현장을 한 번 이상은 방문해 현장 직원들과 어울리곤 했다. 경기고와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나왔다. 김재학(57) ㈜효성 중공업 PG장 겸 전력PU장 사장은 기계공학 전공자답게 정확함과 세밀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경영은 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구성원의 조직력 결속을 중시한다. 경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최병인(44) ㈜효성 정보통신PG장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효성의 전문경영인(CEO)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리다. 매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며,2000년 효성에 합류했다.2002년 그룹 정보통신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업체인 효성데이타시스템과 효성컴퓨터를 합병해 노틸러스효성㈜을 출범시켰다. 우신고와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를 나왔다. 유효식(58) ㈜효성 지원본부장 부사장은 1974년 동양나이론에 입사한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외환위기 때에는 ‘책임 경영’ 체제 구축을 위해 경영 시스템을 ‘PU체제’로 전환시켰다. 인천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정윤택(50) ㈜효성 재무본부장 전무는 종합조정실과 재무본부 등에서 근무한 베테랑급 재무 전문가다. 추진력이 탁월하고, 금융 및 산업계의 인적 네트워크가 뛰어나다. 서울 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류필구(60)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겸 노틸러스효성㈜ 사장은 95년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의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10년째 경영하는 국내 IT업계 최장수 CEO다. 사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고객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안동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조충환(63) 한국타이어 사장은 샐러리맨 출신으로 말단 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전형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조 사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64년 삼성물산에 입사, 도쿄 지사장 등을 거친 ‘상사 수출맨’이다.83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이후 기획과 재무 등을 거친 뒤 97년 12월 한국타이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golders@seoul.co.kr ■ 바깥활동 활발한 며느리들 효성가(家) 며느리들은 세련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커리어 우먼’쪽에 가깝다. 경영수업을 쌓고 있지는 않지만 바깥 활동엔 꽤 적극적이다. 흔히 며느리들은 안으로 돌리고, 딸들은 출가외인으로 치부하는 국내 재벌가(家) 문화와 거리가 있다. 딸이 귀한 가문이어서 시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의 여성 후원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조석래 회장의 부인으로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송광자(61) 여사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들의 사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여성도 일을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야 후회가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심지어 며느리들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보약을 다려줄 정도다. 아들만 있는 송 여사는 며느리가 모두 딸 같다고 한다. 장남인 조현준 부사장의 얘기다.“지난달 제수씨가 북핵 6자회담 때문에 중국 베이징에 출장을 가게 됐는데 어머니께서 열심히 하고, 꼭 좋은 결과를 갖고 오라고 북돋워주더라고요.” 송 여사가 그렇다고 며느리 뒷바라지나 집안 살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와 종교 활동을 통해 이웃돕기에 나서고 있다. 주한 외국대사 부인들의 모임인 서울 가든클럽에서 봉사 활동도 한다. 또 미대 출신으로 국내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미술관 지원사업이나 일반인에 대한 현대미술 교육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 3세 며느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시어머니께서 무척 배려를 해주신다.”면서 “일이나 공부 때문에 늦게 귀가하면 어깨도 주물러주고, 저녁도 대신해 때로는 당황스럽고, 몸둘 바를 모를 때가 적지 않다.”고 했다. 송 여사의 이런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인 고 만우 조홍제 회장의 영향이 크다. 당시 재계에서 엘리트였던 만우 회장은 며느리들에게 평생 교육을 강조했다. 예컨대 며느리들에게 앞으로 자가용 시대가 온다며 면허증을 따도록 했으며, 연료로 연탄을 주로 쓰던 시절 차세대 연료인 LPG(액화석유가스)에 관한 공부를 주문하기도 했다. 또 미술을 전공한 맏며느리인 송 여사에겐 신혼 초에 살림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전시회를 열어 줄 정도로 미술 공부를 독려하곤 했다. 며느리 건강을 위해 보약을 챙겨주기도 했으며, 훗날 맏며느리가 그림 공부를 그만두자 만우 회장이 이를 가장 애석해했다. 조석래(70) 회장의 맏며느리인 이미경(29·조현준 부사장 부인)씨는 서울대 음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식품영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대학에서 음악(피아노)을 전공했지만 다른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 같다.”면서 “이번엔 한국 전통음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고 했다. 둘째 며느리 이여진(31·조현문 전무 부인)씨는 1997년 외무고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을 거쳐 현재 국가안전보장회(NSC) 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조 전무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서 “자기 절제가 뛰어난 것이 와이프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golders@seoul.co.kr ■ 재주꾼인 3세들 효성가(家)의 3세들은 재주가 다양하다. 취미와 스포츠, 외국어 모두 수준급이다. 공부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딴따라’ 기질도 있어 보인다. 장남 조현준(37) 부사장의 설명은 이렇다.“부친과 조부는 뭐든 하려면 제대로, 일정 수준 이상까지 요구했었습니다. 덕분에 운동도 종목을 바꿔가며 취미 이상으로 실력을 키웠고, 다른 분야도 비슷했었습니다. 특히 외국어는 영어, 일본어는 기본이었고, 제3외국어도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조 부사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미국의 세인트 폴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야구부 주장을 맡았다. 미식 축구 대표선수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경영수업 틈틈이 사내 야구팀과 직장인 리그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스키와 스쿼시, 테니스는 선수급 기량이다. 그는 한때 건축학과 교수가 꿈이어서 건축과 미술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탈리아의 바티칸박물관 복구 작업에 참가한 특이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지금은 한옥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화재 보호단체인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운영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공부할 때에는 소믈리에(와인감별사) 자격증을 따로 취득할 정도로 와인 전문가이다. 차남 조현문(36) 전무는 음악적 재능이 대단하다. 대학 시절엔 가수 신해철 등을 비롯한 중·고교 동창들과 어울려 보컬그룹 ‘무한궤도’를 결성,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피아노 뿐 아니라 작곡과 가창력도 수준급이다. 그의 곡들은 ‘무한궤도’ 1집에 수록돼 있다. 조 전무는 또 축구 마니아다. 미국 유학 시절에 축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스키와 테니스 실력은 형인 조 부사장에 못지 않다. 3남 조현상(34) 상무도 스포츠와 음악에 관심이 많다. 그는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축구팀 선수로 활동했으며, 브라운대 아카펠라 그룹에 가입해 밴드 리더로 활동했다. 아카펠라 해외 공연을 추진하기도 했다. 조 상무도 형들과 마찬가지로 ‘공 운동’은 모두 좋아한다. 축구와 스키, 스케이트 등은 한때 교내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연내 방북 김정일과 면담”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6자회담 당사국 공식방문 일정 가운데 하나로 이르면 연내에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촉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의장은 일본 방문 이틀째인 이날 숙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약속했던 만큼, 김 위원장에게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얘기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편 마치무라 노부타카 일본 외상은 문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들이 국정감사 활동 과정에서 독도를 방문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1)일본 차의 유래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1)일본 차의 유래

    우리나라 가을이 마치 새빨간 화로에서 불꽃이 일 듯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이라면, 일본의 4월은 폭죽처럼 화려하게 터져버리는 벚꽃의 계절이다. 매년 4월이 되면 필자는 일지암 초의차문화연구원들과 함께 일본의 사스마야키를 방문해 차회를 연다. 사스마야키에는 14대 심수관가가 있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 매년 초대되어 매화꽃이 휘날리는 아름다운 남중국해를 보며 차회를 연다. 일본과의 차회는 단순한 차회가 아니다.7년 왜란 속에서 치욕의 한을 안고 일본에 건너온 조선인 도공들의 혼과 넋을 달래는 것이다. 벚꽃이 휘날리는 화려한 생의 찬미와 그 이면에 깃든 우리 조선 도공들의 400년 아픈 넋을 눈물로 받아 차 한잔을 올리고 아득한 회한을 풀어내는 것이다. 겨우내 눈밭 속에 속눈을 감추고 누워 있던 초록 보리싹이 파릇파릇하게 피어날 때 떠나도 떠나도 머문 그 자리! 머물러 머물러 주저앉아도 시방을 떠도는 그 자리에 향긋한 차향에 실려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전해오는 도공의 혼들에 대한 귀향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일본은 참으로 가깝고 먼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차의 나라로 불린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핑퐁외교’를 했듯,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차외교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방문한 미국의 지도자들을 상대로 한 일본 지도자들의 차외교는 세계적으로 일본의 정신문화가 매우 높은 경지에 있음을 선전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일본차와 한국차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먼저 일본에 차를 전래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동대사요록에 따르면 백제의 행기 스님이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당시 일본의 문화는 매우 후진적이었다. 일본과 가까웠던 백제의 스님들이 그 문화를 전파한 흔적들이 기록들로 남아 있는 것은 그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 차와 그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차의 원류는 ‘초암차’다. 초암차에 일본다도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일본다인들은 ‘와비’로 부른다.‘와비’는 우리말로 자득(自得), 한적한 정취, 소박하고 차분한 멋, 혹은 한거(閑居)로 설명할 수 있다.‘와비’는 부유한 귀족층이 많은 돈을 들여 호사를 자랑하며 물질적인 향락을 추구했던 것과는 반대로 가난함, 진지함, 청순함 속에서 화려함을 멀리한 정신세계를 추구했다. 당시 차인들은 한적한 곳에 소박하고 검소한 다실을 세우고 검박하고 자연스러운 조화를 추구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다도의 핵심인 ‘와비’의 정신이다. 일본차의 또다른 이야기는 바로 ‘말차’다. 일본 말차의 뿌리는 중국 송나라 때 황룡파에서 선을 배운 에이사이 선사다. 중국에서 선을 배운 에이사이는 당시 중국선가의 일반적인 차수행법이었던 말차법을 배웠다. 일본으로 귀국한 에이사이는 규수평호도 고춘원에 차의 모종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말차법도 함께 보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에이사이는 그가 모시던 가마쿠라 막부의 3대장군 미나모토 사네토모가 병에 걸리자 ‘끽다양생기’에서 말차를 “양생의 선약”이라고 하고 그 약용효과와 각성작용을 설명했다. 사네토모는 에이사이의 말차로 인해 그 병이 치료되자 일본의 ‘육우’로 받들여졌다. 에이사이 말차는 그후 그가 주석하던 가마쿠라 수복사, 교토 건인사 등 일본 선종사찰의 다례로 정착됐다. 말차의 보급은 에이사이에서뿐만 아니다. 당시 일본의 많은 승려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차를 접한 그들은 일본으로 돌아와 차 문화를 조금씩 뿌린 것이다. 일본 최초의 차밭인 ‘히요시다원’의 기록은 805년 일본 승려 사이초에 의해 전해진다. 당나라에 유학을 간 사이초는 중국 천태산에서 차의 묘목을 가져와 일본의 히에이산에 재배했다고 한다. 헤이안시대 에이추 선사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에이추는 사가천왕에게 전차를 바쳤고 천왕은 그에게 긴끼지역에 황실전용 다원을 만들도록 했다. 가마쿠라시대에는 송대에서 유행했던 투다, 즉, 차 겨루기가 있었다.1332년 서로 대립되는 사원측의 사람과 귀중한 소유물을 걸고 하는 차겨루기가 일상화됐다. 찻물을 마셔보고 결과를 적던 채점표가 있을 정도였다.‘태평기’에는 “대숙소에 일곱 군데를 꾸미고, 일곱 가지의 차를 갖추어, 칠백 가지의 내기를 거는 물건을 쌓고 일흔 모금의 본비차를 마신다.”는 기록이 있다. 투다가 얼마나 일상화되어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큰 차담기’(大茶盛) 풍습도 당시에 전해진다. 율종의 노장이었던 에이손 선사는 1239년 정월 보살도 정진을 마치고 차를 올린 뒤 그 차를 여러 스님들에게 마시게 했다. 이같은 다법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서대사의 큰 차담기 시초가 됐다. 큰 차담기는 지름 30㎝가 넘는 큰 찻잔에 차를 담아 참가자들에게 마시도록 하는 차 잔치의 풍습 중 하나다. 차문화가 왕성하게 일본사회 전반에 스며들면서 무가정치는 새로운 전기의 일대 변혁을 맞이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하는 모모야마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때 일본의 차 산업은 꽃을 피운다. 우치를 중심으로 시즈오카 시미즈 일대에 차 산업이 본격화 됐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다방인 살롱문화가 정착되었다. 그것은 오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차 산업에 대한 관심과 보호 때문에 가능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직접 우치에 가서 다기와 차 만드는 것을 봤을 뿐만 아니라 차의 명가였던 모리집안에서 융숭한 차 대접을 받기도 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모리가에게 봉토를 부여하고 우치향에서 어차를 봉공하는 역할을 맡겼다. 당시 우치가에는 차를 섞는 가마가 48개, 그리고 차를 만드는 일꾼이 5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모모야마 시대는 차문화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대였다고 보여진다. 일본의 대표적인 차인은 바로 센리큐 선사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스승이었던 센리큐 선사는 불안정한 서민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거칠대로 거칠어진 무사들의 정서를 부드럽게해 안정적인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차를 보급했다. 센리큐는 다도를 권력 속에서 일상의 중생들에게 회향해냈다. 그래서 세상의 고통으로 마음이 황폐해진 중생들에게 마음의 평정·적정 경지를 안겨주는 아름다운 세상이 차의 예(禮)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노력했다.“끝없는 마음의 헤아림 다도와 함께 족하구나.”라고 노래했던 센리큐는 다도에 있어서 형식이나 규범보다는 ‘정성어린 깊은 마음’ 속에서 탄생하는 고요한 가라앉힘의 세계를 더욱 사랑했던 것이다. 센리큐는 차가 직접 사람들의 감각에 다다를 수 있는 창조적인 길을 꽃피워내고, 나아가 사람의 마음에 깊은 환희와 감동을 줄 수 있는 다구를 창안했다. 그리고 그곳에 꽃을 꽂아 차실의 우주를 새로 꾸리고 그것으로 점다(點茶)하는 이상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센리큐는 저 우아하고 섬세한 아름다운 보석의 눈물 같은 고려다완, 가을날 청정한 호수 속에 어리는 안개 같은 청자를 즐겨 썼을 뿐만 아니라 다다미 두 장의 넓이에 소우주 같은 차실을 만들었던 것이다. 에도시대에 피어난 다도는 센리큐의 할복자살로 쇠퇴기를 맞이한다. 정치이념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다도관이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어지는 가운데 많은 유파들이 생긴다. 에도 말기부터 다인들은 직제화되었다. 다인들의 직제화는 일본다도의 계보화를 촉진시켰다. 오늘날 우라센케, 오모데센케이 등 일본 내 대표적인 유파들이 이때 탄생한 것이다. 메이지초기 일본의 다도는 사회변혁기를 맞아 단절상태에 빠진다. 개화와 개방이라는 사회적 혼란기를 맞아 차에 종사하던 관리들의 일터인 다이묘나 장군 등 후원자가 없어짐에 따라 실업자가 생겨 다도계가 불황의 늪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다도는 메이지 중기 대두된 내셔널리즘에 따르는 전통문화에 대한 자각과 다례의 재발견 때문에 살아났다. 다도의 후원자였던 대명 대신에 메이지유신으로 성장한 재계의 거물들이 다도에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일본 다도 중흥의 기초는 1898년 다나카 센쇼유다. 일본다도학회를 창설, 스승에서 제자에게만 전수되던 밀밀의 다도를 대중화시키는 헌다행사를 창안, 성공시킨 인물이다. 일본의 다도는 아직도 ‘중생들의 정성어린 깊은 마음’을 사랑하는 센리큐 그 차체다. 그는 “다도를 행함에 있어 마음이 맑고 깨끗하도록 수행의 덕목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 고목이 눈에 의해 쓰러진 것처럼 서투른 솜씨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불완전한 미의 극치를 찬양했다. 센리큐는 차 한잔 속에 담겨진 정성과 인정의 향기, 그 속에 어린 손님과 주인의 마음이 화합으로 만나 이루어진 오묘한 소우주의 평정심이 진정한 차의 미학임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일깨우고 있다. 일지암 암주 ■ 일본차의 근원 초암차는 ‘김시습 茶’ 일본다도의 근원은 초암차(草庵茶)다. 차를 연구하는 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일본 다도를 대표하는 초암차의 연원을 매월당 김시습에서 찾고 있다. 김시습은 조선을 대표하는 차인 중 한 사람이다.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 머물며 ‘금오신화’를 집필하며 자신이 살던 초막 인근에 차나무를 직접 재배해 차를 우려 마셨다. 일본은 당시 경남지역, 특히 웅천 등지에 많은 일본인들이 무역을 하며 한국문화를 접하고 있을 때였다. 일본은 당시 조선과 외교할 수 있는 외교가로 일본승려들을 이용했다. 그들은 당시 중앙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지방의 토호, 문인 그리고 유명한 스님들을 찾아 직접 교류하기도 했다. 그같은 일본승려 외교관 중 한 사람인 준초라는 스님이 1460년대 중후반경 경주 용장사에서 은거하고 있는 김시습을 방문했던 것이다. 당시 김시습은 하늘이 훤히 내다보이는 작은 암자에서 살고 있었다. 폭악무도한 세상에 대해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었던 김시습은 스스로 머리를 깎고 설잠이란 법명을 가진 승려가 되었다. 승려가 된 김시습은 이곳 저곳을 떠돌며 작은 초당을 짓고 차와 참선 그리고 집필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그런 김시습이 머물고 있는 암자는 그야말로 한평 남짓한, 그러나 온 우주를 담고 있는 담백함이 깃든 곳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암자를 감싸고 있는 또 다른 우주는 바로 화경청적한 자연이었다. 풀벌레 소리 들리고 나비가 훨훨 날아다니며 춤을 추는 그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마시는 차는 바로 자연의 완벽한 고요함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바닥보다 낮게 설치한 땅화로, 찻사발 등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일본차에 물들어 있던 준초라는 스님에게는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사료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승려는 그후 한 두차례 더 매월당 김시습을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시습은 그같은 사실을 ‘유금오록’이란 시집에 담고 있다.‘일동승 준 장로와 이야기하며’라는 시에서 김시습은 “고향을 멀리 떠나니 뜻이 쓸쓸도 하여/옛 부처 산 꽃속에서 고적함을 보내누나/최 차관에 차를 달여 손님앞에 내놓고/질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르네/봄 깊으니 해월이 쑥대 문에 비치고/비 멎은 산 사슴이 약초 싹을 밟는구나/선의 경지나 나그네정 모두 아담하나니/밤새 오순도순 이야기할 만하여라.” 그같은 김시습의 차법을 준초등 일본승려들은 ‘선차’(禪茶)라 불렀다. 김시습의 선차는 작고 소박한 차실, 차마시는 법의 고요함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차선일미의 정신과 내용이 일치하는 일본 초암차의 근원이 되었다. 초암차는 간소하고 서민풍의 차법을 선보인 무라다 주코에서 시작돼 다케노 조 그리고 센노리큐에 의해 완성된다.
  • [이사람] ‘론리 플래닛’ 서울판 개정본 제작 마틴 로빈슨

    [이사람] ‘론리 플래닛’ 서울판 개정본 제작 마틴 로빈슨

    그는 분명 ‘외로운 별’이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사거리에 등장한 그를 특징짓는 트레이드 마크는 크게 세 가지였다. 사파리 모자, 지천명(知天命)에 어울리지 않는 샌들, 옆구리에 끼고 있는 큼지막한 대학노트였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얼굴엔 천진난만함과 호기심 많은 소년의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Lonley Planet)’ 서울판 개정·증보를 위해 지난 7월 내한,2개월 동안 서울과 수도권을 종횡무진 누빈 마틴 로빈슨(54).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지만 지금은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고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50개국을 구석구석 다닌 그를 만나 ‘유목민’의 심경을 들여다 보았다. ●두달동안 하루 12시간씩 강행군 몸에 살이 붙어 있을 리 만무했다. 오전 10시에 숙소를 빠져 나와 밤 9시나 10시까지 서울의 골목골목을 샅샅이 훑었다. 무려 두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주말과 휴일 없이 그렇게 서울을 누볐다. 택시도 이용하지 않고 오직 “훌륭한 지하철 망”을 이용해 두 발로 걸어다녔다. 하루에 움직인 거리를 물었더니 그는 “지난 2003년 서울판 5판을 위해 내한했을 때 두 달 동안 1000㎞를 넘게 걸었던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론리 플래닛 작가마다 자기만의 비법이 있기 마련”이라며 “내 경우엔 논스톱이다. 한국 영화 ‘말아톤’(물론, 그는 ‘마라톤’으로 영화 제목을 알고 있었다)의 주인공 형진이처럼 ‘여기서 멈추면 더 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뉴질랜드 집에 돌아가면 완전히 드러눕는다고 했다. 마치 월요병 환자처럼. 어디 뿌리박지 못한 채 표류하는 그런 삶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나는 너무 여행이 좋아요. 매일매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며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이번 서울 방문엔 말레이시아계 부인이 동행했지만 이들 부부에겐 자녀가 없다. 실례인줄 뻔히 알면서도 왜 자녀를 갖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답은 극히 짧았다.“바쁘다.” 그는 대학을 무척 어렵게 나왔다. 주차장, 은행과 제약공장, 바 등에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프리카 트럭 사파리를 3개월 갔다가 여행이 주는 마력에 빠져 길 위에서 평생을 살겠다고 정해 버렸다. 주일 영국대사관에서 일할 때도 틈만 나면 아시아 곳곳을 탐험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엔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했으며, 사모아섬에선 1년을 보내며 폴리네시아 문화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론리 플래닛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부터 2년간 전주의 한 여자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근처 산을 영문으로 소개한 책을 낸 것이 계기가 됐다. 그가 현재 편집을 맡고 있는 지역은 서울과 한국 외에도 호주 아웃백, 뉴질랜드, 인도, 사모아섬 등이다. 내년엔 한국판 7판 개정을 위해 또 우리나라를 찾을 계획이다. ●서울시민보다 더 서울을 잘 알아 그는 아무데나 불쑥불쑥 잘 들어갔다. 강남역 뒤 새로 들어서고 있는 ‘코옵 레지던스’에 들어가 신분을 밝혔으나 여직원은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가 한참 뒤 화들짝 놀라 반겼다. 침대 시트의 청결 상태까지 꼼꼼히 살폈다.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선 외국인 손님들이 어떤 메뉴를 좋아하는지 대학노트에 적었다. 그의 노트는 그야말로 서울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축약도였다. 이런 식으로 서울의 80개 호텔과 80곳의 레스토랑,50곳 안팎의 클럽을 직접 찾아 점검해 책을 낸다. 책을 넘기다 보면 보통 정성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우리 문화에 대해서도 놀랄 만큼 자세하게 알고 있다. 남아 선호를 꼬집은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지?’, 추석 때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고 온 학부모들에 둘러싸인 경험을 담은 ‘선물 풍년’,‘백화점 공짜 음식’ 등은 외국인들에게 좋은 우리 문화 소개가 될 듯하다.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탤런트 홍석천씨를 만나 인터뷰하고 한국 동성애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글, 그들이 만남을 갖곤 하는 장소에 대한 안내까지 접하고 보면 막상 서울 사람보다 더 서울을 잘 안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혜화동의 필리핀 이민자 커뮤니티 얘기도 그에게 처음 들었다. 로빈슨은 “세계인에게 서울을 소개할 때는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유명한 레스토랑도 생겼다가 나중에 찾아가면 금방 없어지고, 재건축도 자주 돼 변화무쌍한 것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서울의 역동성이 좋단다. 이번 서울판은 뚝섬 서울숲과 수원 화성, 용산으로 터를 옮긴 국립박물관, 남산 서울타워 등이 새로 실릴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더 많은 사진을 싣고 인사동 상세 지도 등이 담길 것이라고 했다. 그와 만나기 전 서울판의 지도 등에서 잘못된 한글 표기의 예를 정리해 건네줬더니 반드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인들이 근래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는 독도가 내년에 개정되는 한국판에 실릴 예정이지만 그는 외국인들이 찾을 만한 매력은 없다며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년에 북한 관광 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한국관광공사를 통해 북한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삶의 양식 선택권 넓힌 세계화” 얘기를 돌려 세계화 진전에 따라 민족이나 국가가 고유의 매력을 잃고 있다고 보지 않느냐고 묻자 “그렇게 말하는 이도 있지만 세계화가 오히려 세계 곳곳을 다양하게 만들고, 선택의 폭을 넓혔다고 본다.”고 답했다. 말문이 터진 그는 “카페는 서양 문화지만 일본, 한국, 인도는 고유 문화를 접목해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인도와 한국의 카페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 널리 쓰이는 옥돌침대도 한 예가 될 것이다. 한국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침대다. 온돌이란 전통은 침대라는 서양 문화 때문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침대라는 또 다른 선택권을 얻은 것이다.” “또 아프리카 동물들은 관광객이 없었다면 모두 사라졌을지 모른다. 관광객이 찾아오고, 돈이 되기에 가난한 정부가 앞장서 전통 문화와 자연 환경을 지키게 된다. 주민만이 그 문화를 향유했다면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예술은 명맥을 잇지 못했을 것이다.” 끝으로 국제적인 관광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서울이 고쳐야 할 점을 물었다. 시내버스 번호와 행선지를 영어로 병기했으면 한다는 것과 거리를 무질서 상태로 몰아가는 오토바이들을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론리 플래닛’ 이란 전세계 배낭여행객들의 바이블인 ‘론리 플래닛’은 전화나 인터넷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히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광고도 없으며 좋은 평가를 대가로 사례금도 일절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대 초 토니와 모린 휠러 남매가 아시아와 호주를 돌아본 뒤 ‘값싸게 아시아 훑기’란 책을 낸 것을 계기로 ‘돈보다 시간이 더 많은’ 배낭 여행객들이 직접 쓰는 여행서의 네트워크가 시작됐다. 현재 600여종의 도시와 국가편이 나와 있고 2년마다 한번씩 개정을 위해 20개국 150명의 필자가 현장을 누비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 호주 등 세 곳에 나뉘어 있는 사무실 직원 400명이 책으로 엮어낸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한국, 일본어판이 발행되고 있다
  • 육군, 또 진급관련 괴문서

    육·해·공군의 진급심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육군의 진급심사와 관련된 괴문서가 유포됐다. 29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전 육군본부에 있는 인사검증위 사무실과 육군 중앙수사단 사무실 앞에서 A4 용지 한 장짜리 ‘괴문서’ 수십장이 발견됐다. 괴문서에는 국방부에 근무하는 3사 출신의 A중령이 인사청탁 등과 관련해 장뇌삼 등을 받았다며 A중령은 절대 진급이 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 육군의 진급 공석이 육사 출신에 지나치게 편중됐다며 시정도 촉구했다. 또 지난해 육군 장성진급 비리의혹과 관련해 구속, 집행유예를 받은 B중령을 언급하며 “지난해 육군 장성 진급심사가 정당했다면 이 사건에 연루됐던 B중령을 반드시 승진시켜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지난해 10월 말에는 국방부 앞 장교숙소인 레스텔에서 육군 장성진급 비리를 제기하는 괴문서가 발견된 바 있다. 육군 중앙수사단은 특정인 또는 특정세력이 진급심사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의도로 주말을 이용해 괴문서를 유포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괴문서에 언급된 A중령의 장뇌삼 관련부분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육군은 괴문서가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있는 데다 특정인은 절대 진급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미뤄 음해성이 짙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닻 올린 아드보카트호 ‘토털사커’ 시동

    닻 올린 아드보카트호 ‘토털사커’ 시동

    두 차례의 감독 교체로 홍역을 치른 한국축구대표팀이 본격적으로 독일행 재출항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부진의 늪에 빠진 한국대표팀을 지휘할 딕 아드보카트(58) 신임 감독이 29일 핌 베어벡(48·이상 네덜란드) 수석코치와 동반 입국, 한국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도착 일성으로 “한국팀의 사령탑에 앉은 이유는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축구가 지난 한·일월드컵 때보다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독일월드컵 상위 성적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청바지와 재킷 등 가벼운 옷차림으로 인천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온 아드보카트 감독은 강신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이회택 기술위원장으로부터 환영 꽃다발을 받은 뒤 자신이 지명한 홍명보 신임 코치 등 관계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100여명의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짧막한 인터뷰를 마친 그는 임시 숙소인 서울 하얏트호텔에 여장을 푼 뒤 이날 오후 신라호텔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 등 국내 축구계 인사들과 첫 대면을 가진 아드보카트 감독은 “기자회견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하는 30일 오후 이란과의 평가전(10월12일)을 위한 23명의 대표팀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전에 대비한 대표팀 명단은 당초 다음달 2일쯤 확정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이 예상보다 빠른 입국 다음날 전격 발표, 그가 이미 한국땅을 밟기 전 ‘1기 멤버’들에 대한 구상을 끝냈음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대표팀 소집도 알려진 다음달 6일보다 훨씬 앞당겨질 전망이다. 한편 3년 만에 돌아온 ‘히딩크 도우미’ 베어벡 수석코치는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힌 뒤 “경기 영상 자료를 보니 한국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면서 “내 임무는 바로 이를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감독 보좌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對테러 수방사 여군중대를 가다

    對테러 수방사 여군중대를 가다

    올해로 여군이 창설된 지 꼭 55년주년(9월6일)이 된다. 국군의 날을 앞두고 여군들로만 구성된 수도방위사령부의 특수임무중대를 찾았다. 대테러 지원이 주임무인 특임중대의 오늘 임무는 서울과 과천의 경계가 되는 우면산 일대에 대한 하향식 수색정찰. 나뭇가지로 위장된 철모와 위장크림을 바른 얼굴 사이로 두 눈만 반짝거리는 대원들이 부중대장 김원희(25) 중사의 수신호에 따라 일제히 산아래로 내려간다. 얼떨결에 작전에 투입(?)된 기자는 수북이 쌓여 있는 나뭇잎에 미끄러지고 나뭇가지에 얼굴을 긁히기가 일쑤지만 대원들은 거친 숨소리하나 내뱉지 않는다. 산중턱쯤에서 커다란 동굴 하나가 나타나자 김 중사가 대원 두 명에게 정찰을 지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준다.“손전등을 켜면 너희들은 죽는다.” 동굴속을 수색하던 대원들이 작전관계 부서에서 미리 숨겨 놓은 적 유기물들을 찾아내는 성과를 올리면서 오전 일과는 끝이 났다. 대원들 모두 수통을 꺼내 물 한모금 시원하게 마시면서 시작된 점심시간. 이때만큼은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다. 주먹밥과 계란 등으로 점심을 마친 대원들은 휴대전화로 남자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부족한 잠을 자기도 한다. 일과가 끝나는 오후 6시 이후엔 자유시간. 당직자를 제외한 대원들은 야간대학을 가기도 하고 남자친구과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야간훈련 준비를 위해 여군숙소로 돌아온 김 중사에게 군문을 들어서려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군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버리십시오. 어디 가든 그 자리에서 꼭 인정받겠다는 생각만 하고 오십시오.” 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하나뿐인 지구(EBS 오후 11시5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분석에 따르면 소아 및 청소년의 정신장애 관련 진료건수가 최근 4년간 1.6배로 늘어났다. 특히 이 가운데 진료건수가 두 배 이상, 원외처방 약품비가 9배 이상 급증한 질환이 바로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이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서동요(SBS 오후 9시55분) 장은 선화공주를 만나기 위해서 청인사로 가던 중 숙소를 찾아 들어간다. 선화공주를 데리고 가던 보량법사 일행도 같은 곳에서 묵는다. 장과 선화공주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한편 신라에 숨어사는 목라수는 백제 아좌태자로부터 부러지지 않고 강한 검을 만들어 달라는 특수임무를 맡는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25분) 학교 밖 신나는 체험과학 활동네트워크인 청소년 과학탐구반. 실질적이고 체험적인 과학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과학기술 산업의 주역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다양한 로봇 연구를 하고 있는 용호고등학교와 클레이애니메이션 과학 동영상 제작활동을 하고 있는 경기도 안산의 동산고등학교를 찾아가 본다.   ●비밀남녀(MBC 오후 9시55분) 영지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는 서점에 다시 가보지만 찾지 못하고, 준우는 영지 휴대전화가 꺼져 있자 표정이 굳는다. 아미는 영지에게 첫 월급을 주며 이문에게서 휴대전화를 하나 얻어주겠다고 한다. 준우는 준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기에 영지와 연락이 안 되냐며 다시는 영지 건들지 말라고 충고한다.   ●별난여자 별난남자(KBS1 오후 8시25분) 자살하려는 시민을 구하느라 면접시간에 늦어 입사에 실패한 기웅은 해인에게 핀잔을 듣는다. 서말자네 큰며느리 민숙은 작은 동서 나라에게 친구의 사업 부탁을 하다 거절당해 자존심이 상한다. 한편 친구집에서도 쫓겨나 갈 곳이 없어진 종남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와인바에서 몰래 숙식을 해결하려 한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55분) 금녀의 영역이었던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지도자 박찬숙씨가 선임됐다.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 간담회에서 만장일치로 뽑힌 박찬숙 감독. 오래 전부터 꿈꿔온 자리인 만큼 편견을 깨고 가족 같은 편안한 분위기로 조화롭게 팀을 이끌겠다는 박찬숙 감독을 만나보자.
  • [국감플러스] 국감 파행 외교장관회담까지 연기

    2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파행으로 외교장관 회담까지 연기되는 사태가 초래됐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6시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유수프 오만 외교장관과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쌀 협상 비준안 상정을 둘러싼 국회 대치로 이날 국정감사는 오후 6시가 넘도록 열리지 않았던 것. 오만측에 회담 연기를 정중히 요청한 반 장관은 미안한 마음에 유수프 장관 출국 전인 24일 오전 11시 직접 숙소인 신라호텔을 찾아 회담을 갖기로 했다.
  • [스포츠 라운지] 여자농구 신한은행 우승 일군 이영주 감독

    [스포츠 라운지] 여자농구 신한은행 우승 일군 이영주 감독

    뽀얀 피부에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조곤조곤한 말투 등 아무리 뜯어 봐도 ‘승부사’의 기질을 찾아볼 수 없다. 식사때 선수들에게 눈웃음 치며 농담을 던지고 더 먹이려고 챙기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고 선생님. 이런 이 남자가 코트에만 서면 전혀 딴 사람으로 돌변한다. 겨울리그 꼴찌 신한은행을 창단 1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29년 농구인생을 활짝 꽃피운 이영주(39) 감독이다. ●지긋지긋한 불운 군산중 2학년때 그의 키는 158㎝. 또래 선수들은 170㎝ 이상이었다. 키도 작은 데다 비쩍 마른 ‘땅꼬마 가드’는 강한 패스를 받으면 공과 함께 밀리기 일쑤였다. 선배들은 왜 그리 때리는지,1주일에 5일은 몽둥이찜질을 피해 도망다녔다.‘차라리 절에 들어가는 편이 낫겠다.’ 싶었던 그는 지리산으로 가출했다. 이틀을 버틴 뒤 돌아갔지만, 학교에선 퇴학이 얘기됐다. 학교로 쫓아와 눈물로 사정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이영주는 그때부터 죽기살기로 농구에 덤벼들었다. 고교 1학년때 결핵으로 한 해를 꼬박 쉰 뒤 키가 쑥쑥 자랐지만 몸은 여전히 약했다. 대학에 가서야 힘이 붙으면서 농구의 묘미도 알았다.89년 최강 현대에 입단해 박수교(현 전자랜드 단장)의 공백을 메우며 실력을 인정받은 이영주는 이후 93년까지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프로 출범을 앞두고 원치 않는 은퇴로 또다시 인생이 소용돌이쳤다. 선배의 사업 제안에 솔깃해 신선우(현 LG 감독) 감독에게 무릎부상을 핑계로 은퇴의사를 밝힌 것. 뒤늦게 정신 차린 뒤 신 감독에게 ‘이실직고’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다. 구단에서 사실상 은퇴를 종용했고, 눈물을 뿌리며 코트를 떠났다. ●끔찍한 IMF 유랑생활 97년 은퇴와 함께 단대부고 코치로 간 이영주는 그 해 종별대회 준우승 등 성공적인 지도자 데뷔를 했다.10개월 뒤 용인대 감독 제의를 받고 덜컥 수락했다. 현대에서의 황당한 은퇴 뒤 두 번째 실수였다. 한달 만에 팀은 해체됐고, 외환위기의 찬바람이 몰아치던 때 ‘백수’가 됐다. 수입이 끊겨 서울 상일동 아파트를 팔고, 남양주로 이사도 갔다.2000년 박수교 기아 감독의 권유로 뒤늦게 프로에 뛰어들었지만, 평균 6분에 1.5득점하는 후보였던 그는 박 감독한테 짐이 되는 것 같아 두 번째 은퇴를 했다. 2001년 현대 여자농구단 코치로 두 번째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며 운명의 전환점을 맞았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불운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했다.2002여름리그에서 박종천 감독을 보필해 우승했지만 모기업이 경영난에 시달렸다. 곧 박 감독은 떠났고, 연봉 5000만원짜리 감독대행은 지갑을 털어가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설상가상으로 KCC-현대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자 KCC측은 2003년 말까지 숙소와 체육관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당시 남자팀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선수들을 버리고 혼자만 떠날 수는 없었다. 지난해 봄 현대는 짐을 택배회사의 컨테이너에 넣고 ‘유랑 서커스단’ 신세가 됐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행히 지난해 9월 신한은행이 팀을 인수하며 떠돌이 생활을 청산했다. 첫 출전한 겨울리그에서 꼴찌를 했지만, 어린 선수들이 가능성을 보여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편애는 감독의 죄악이며 기회를 골고루 준다. 단 때가 왔을 때 제몫을 못 찾아 먹는 선수는 쓰지 않는다.”는 이영주식 용병술이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마침내 올 여름리그에서 우승을 일궜다. ‘남탕(남자프로농구)으로 가고 싶진 않냐.’고 묻자 “아직 밑천이 없어요. 내 분수를 알아야죠.”라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신한은행을 최고 명문으로 세운 다음이라면 모르죠.”라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한신대 특수체육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대학 강단에 서는 꿈을 키우고 있는 이 감독에게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배포와 자신감이 한껏 묻어났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이영주 감독은 ▲출생 1966년 5월19일 군산 ▲가족관계 부인 고선경(34)씨와 2남 ▲신체조건 183㎝ 75㎏ ▲종교 기독교 ▲연봉 1억원 ▲주량 기분 좋으면 소주 2병 ▲스트레스 해소법 묻지마 드라이브 ▲출신학교 군산 중앙초-군산중·고-홍익대-한신대 대학원(3학기 재학중) ▲경력 실업 현대(선수·89∼97년)-단대부고 코치(97년)-용인대 감독(98년)-프로 기아(선수·99∼01년)-현대여자팀 코치 및 감독대행(01년)-신한은행 감독(04년∼) ▲수상 대통령 체육포장(92년) 여자프로농구 최우수지도자상(05년)
  • ‘하루 7시간 뜀박질’ 괴력의 3세

    인도에서 태어난 지 3년 6개월밖에 안된 남아가 하루 7시간씩 계속 달음박질을 하고, 간혹 한 달음에 48㎞를 주파하는 등 놀라운 마라토너 소질을 선보이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3일(현지시간) BBC 보도에 따르면 인도 동부 오리사주 주도 부바네스와르에서 태어난 부디아 싱은 아버지가 1년 전 사망하자 네 자녀를 모두 건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어머니에 의해 단돈 800루피(2만 400원)에 낯선 남자에게 팔려간 불행한 아이였다. 어느날 장난을 치던 부디아는 지역 유도협회 임원 겸 코치인 비란치 다스의 눈에 걸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뛰라는 엄벌을 받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5시간 뒤 돌아온 다스는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부디아가 계속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특별한 재능을 확인한 다스는 부디아를 산 남자에게 800루피를 주고 자기 집으로 데려와 엄격한 식사 조절과 함께 본격적인 달리기 훈련을 실시했다. 생모 밑에서 쌀 몇톨로 끼니를 해결하던 부디아는 이제 계란과 우유, 콩, 고기를 먹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쉬지 않고 정오까지 달린 후 점심 뒤 낮잠을 즐기고 다시 오후 4시부터 뛰는 일과를 반복하고 있다. BBC 기자는 그가 “달릴 수 있고 마음먹은 만큼 먹을 수 있어” 유도 합숙소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스는 “부디아가 한 달음에 90㎞를 달리는 것도 조만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국빈 샤라포바’ 16일 입국… 5명 그림자 경호

    ‘올해도 국빈급 방문’ 오는 19일 서울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특설코트에서 비너스 윌리엄스(미국)와 ‘슈퍼매치’를 벌일 ‘테니스요정’ 마리아 샤라포바(세계1위·러시아)의 대우가 올해도 국빈급이다. 숙소는 지난해 한솔코리아오픈 참가때와 마찬가지로 신라호텔의 최고급 스위트룸. 하루 숙박료만 700만원(부가세 제외)이다. 제공되는 차량은 대회 공식 차량업체인 기아자동차의 중형차 오피러스. 배기량 3800㏄에 최고급 사양을 갖췄다. 가격은 4895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관련 업체들이 앞다퉈 ‘무료 제공’ 경쟁을 벌인 경호는 여성을 포함,5명의 전담 요원이 ‘그림자 경호’를 펼치고 주요 행사 때는 10명까지 인원이 늘어난다. 주최측이 일절 함구하고 있는 초청료는 지난해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30만달러 내외로 보인다. 샤라포바는 1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국제사회 기여 적어 좀 꿀린다”

    “국제사회 기여 적어 좀 꿀린다”

    |뉴욕 박정현특파원|노무현 대통령은 14일(한국 시간) 유엔 총회 ‘정상회의’(고위급 본회의) 참석을 위해 뉴욕에 도착하자 마자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동포간담회를 갖고 한·미 동맹 등의 현안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2003년에 여기 왔을 때보다는 마음이 많이 가볍다.”면서 “그 때는 (북핵 문제로)마음이 매우 무거웠다.”고 털어놨다. 이어 “2003년에 했던 걱정은 고비를 넘겼다.”면서 “북핵 문제는 베이징에서 다루고 있고, 적어도 결말이 눈에 딱 날지 안날지 모르지만 한발짝씩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밝혔다. 한·미 동맹에 대해서는 “처음 참여정부가 들어섰을 때 특히 미국에 계신 분들이 ‘노 대통령 성깔 있는 사람인데 사고 내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고, 어떤 분은 제가 좀 미워서 ‘저 사람 사고 낼 것’이라고 했다.”고 회고한 뒤 “한·미 관계는 지금 좋다.”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아직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많은 기여를 하지 않고 있어 마음이 좀 꿀린다.”면서 귀국 후 우리나라의 유엔 기여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임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멕시코·코스타리카에 이어 이날 동포 간담회에서도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노 대통령은 동포 간담회가 끝난뒤 호텔 내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주최한 리셉션에 참석했으나 부시 대통령과 조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의에 참석한 172명의 정상 가운데 26명이 노 대통령과 같은 호텔에 묵고 있어 관심을 모았다. jhpark@seoul.co.kr
  • 盧대통령 “맥아더동상 철거 안돼”

    |뉴욕 박정현특파원|제60차 유엔 총회 정상회의(고위급 본회의)에 참석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새벽(한국 시간) 본회의 기조 연설을 통해 21세기 국제 질서, 유엔 개혁 등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밝힌다. 노 대통령은 172개국 정상 가운데 27번째로 기조 연설에 나서 21세기 새로운 국제 질서와 관련해 강대국과 약소국, 중견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공존하고 함께 이익을 누리는 공동번영의 질서 구축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모델로 유럽연합(EU)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유엔 개혁 방안에 대해서는 민주성·책임성·효율성의 바탕 위에서 도덕적 권위를 증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상임이사국 증설 방안에 완곡한 반대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노 대통령은 전날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동포간담회를 갖고 국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해 “동상을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한·미관계를 관리해서는 안된다.”며 철거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노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미군)의 인천상륙작전, 맥아더 동상은 우리의 역사”라면서 “동상을 그대로 두고 역사로서 존중하고, 나쁜 건 나쁜 대로 기억하고 좋은 것은 좋은 대로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jhpark@seoul.co.kr
  • 6자 침묵속 입국… 긴장의 베이징

    |베이징 김상연특파원|09:40 “수고들 많으십니다.”(김계관 북한 수석대표) 12:00 “오늘 얘기할 게 많습니다.”(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13일 오전 북핵 6자회담 참석을 위해 차례로 베이징에 입성한 북한과 미국의 수석대표들이 공항에 몰려든 취재진에 던진 멘트의 전부다.1단계 4차 6자회담 때에 비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표정은 신중했다. 얼핏 싸늘한 기운마저 감돈다. 오후 첫번째 전체회의에 앞서 참가국간에 잇따라 양자접촉이 이어졌지만,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북·미간에는 양자접촉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불편한 기류를 방증한다. 회담에서 이근 북한 차석대표가 정태양 미국국 부국장으로 교체된 것도 눈길을 끈다. 이 차석대표의 교체는 부국장에서 국장으로 승진하면서 격을 맞추기 위해 이뤄졌다는 분석이 일반적이지만,1단계 회담 때도 국장 신분으로 참석했다는 점에서 다른 속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새어나온다. 이와 관련, 공격적인 스타일인 이 국장이 미국의 차석인 조지프 디트러니 대북협상 대사와 만나면 자주 신경전이 벌어졌고 심지어는 서로 불필요한 감정 대립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궁합’이 맞지 않았다는 점을 그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관측이 맞다면 북한의 협상의지가 전보다 강해졌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정태양 신임 차석대표의 이력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외무성 산하 군축평화연구소에 몸담으면서 2004년 4월 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서 열린 동북아협력대화(NEACD)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북한 입장을 대변한 점으로 미뤄 북핵 업무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정도만 확인됐다. 이번 회담에서 각국 대표단이 숙소 이동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종전처럼 베이징 주재 자국 대사관에 머물지만,1단계 때 국제구락부(세인트레지스호텔)를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미국과 일본은 이번에는 1단계 당시 한국 대표단 숙소였던 중국대반점으로, 한국은 북경반점으로 각각 숙소를 바꿨다. 이번에 한국 대표단이 숙소를 바꾼 것은 미국과 일본 대표단이 중국대반점으로 이동해 온 점을 감안한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carlos@seoul.co.kr
  • 鄭통일 “평양서 6자회담 측면지원”

    鄭통일 “평양서 6자회담 측면지원”

    13일 제16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베이징 북핵 6자회담과 동시에 개최됨으로써 베이징과 평양 사이 ‘실시간 메신저’가 ‘로그 온’ 상태로 들어갔다.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둘러싸고 냉랭함 속에 개막된 2단계 4차 6자회담 타결을 위해선 북측의 결단이 절실하고, 남측이 이를 촉구할 공간적 여건은 확보된 것이다. 남측 대표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평양출발에 앞서 “6자회담을 측면지원하겠다.”고 했다. 현대아산과 북한측 갈등 해소, 금강산 관광정상화 문제 등이 현안으로 부각된 가운데, 남측은 14일 오전 전체회의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의제로 제시하고 납북자·국군포로 등의 생사확인도 요청할 예정이다. ●“혁명열사릉 참배 않기로” 이날 저녁 인민문화궁전에서 박봉주 총리 주재로 열린 환영만찬에서 정 장관은 “지금이야말로 ‘우리 민족끼리’정신에 따라 냉전의 외로운 섬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 상황을 획기적으로 전환시켜, 항구적 평화를 제도화하고 민족의 평화공존과 공동발전을 통 크게 추진해갈 때”라고 강조했다. 앞서 북측은 우리측과 회담 일정을 협의하면서 지난 8월 북한측의 국립현충원 방문에 상응하는 어떠한 조치도 우리측에 제의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다고 우리 대표단 관계자가 전했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북한의 현충시설을 참배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태풍 ‘카눈’장대비 속 환영행사 우리 대표단이 도착한 평양 순안 공항에는 16호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장대비와 강풍이 불어 환영행사는 우산을 쓴 채로 어수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평양거리 특히 김일성 광장 등에는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수천명의 주민들이 비를 피해 건물 주변에 모여 있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했다. 만찬에 앞서 남북한 대표단은 우리측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덕담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 참사는 “좋은 결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남측에서 비료도 주시고, 농사작황도 좋다.”고 인사했다. 정 장관은 “곧 추석인데 민족 앞에 명절 선물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정 장관과 김 위원장 재면담 할까 만찬에서 박봉주 북측 내각총리는 지난 6·17 면담을 거론하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정 수석대표를 접견하신 것은 6·15시대를 빛내이는 또하나의 커다란 사변”이라고 평가했다. 나흘간의 일정에는 재면담이 잡혀져 있지 않다.12일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정 장관에게 전한 미측의 대북 메시지를 북측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도 관심사다. 평양 공동취재단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정태수 前회장 또…이번엔 대학공금 72억 횡령

    전 한보그룹 총회장 정태수(81)씨가 또다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지난 1991년 ‘수서특혜비리 사건’과 97년 ‘한보비자금 사건’ 이후 세 번째다. 정씨는 95년 수서사건과 관련해 특별사면을 받고 2년 뒤 한보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2002년 지병을 이유로 형집행이 정지됐고 같은 해 12월 사면됐다. 당시 검찰은 정씨가 허위진단서를 돈을 주고 샀다고 밝혔다. 정씨는 곧 재기를 노렸다. 한보철강을 되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어 해외유전사업과 강원도 영월에 위락단지 개발사업에도 손댔으나 허사였다. 다음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강릉영동대학 교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2003년 3월쯤 학장인 윤양소(52)씨를 시켜 자신이 소유한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 일부를 서울로 실습나온 간호과 학생들의 숙소로 빌리도록 하고 임대료를 받는 방식으로 대학 공금 72억원을 빼돌렸다. 반대하는 전 학장 강모(67)씨를 내쫓기도 했다. 정씨는 이렇게 착복한 재산이 추징되는 것을 피하려고 조카 하모(39)씨에게 관리토록 했다. 그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 저택을 며느리 이름으로 빌리거나 회사를 운영하는 데 수십억원을 썼다. 검찰은 그의 집안 금고 등에서 현금 27억원을 찾아냈다. 검찰은 정씨가 인천 땅 4만평을 담보로 30억원을 빌린 사실을 확인하고 국세청 등에 통보했다. 정씨와 그 일가는 현재 2440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대검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은 12일 정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또 하씨를 구속기소하고 전 ㈜한보 대표이사 이용남(65)씨와 윤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오늘의 눈] 애니깽과 한류열풍/박정현 정치부 차장

    멕시코를 국빈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10일 낮(한국시간 11일) 멕시코시티의 숙소인 인터콘티넨털호텔을 나서려다 한 ‘시위대’와 마주쳤다. “대통령님! 장동건, 안재욱 오빠를 멕시코로 오게 해주세요.”란 격문을 들고 한시간여 노 대통령을 기다리면서 시위 아닌 시위를 벌이던 멕시코 여성 30여명이었다. 멕시코의 ‘오빠부대’들은 장동건과 안재욱의 사진을 들고 아리랑을 불렀고,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응원 구호인 ‘오 필승 코리아’와 ‘대∼한민국’을 외치기도 했다. 일본과 중국·동남아에 이어 태평양 건너 멕시코에 상륙한 한류 열풍의 현장이다. 이곳의 열풍은 2002년 10월 안재욱 주연의 ‘별은 내가슴에’란 드라마가 방영된 뒤부터라고 한다. 멕시코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안재욱과 장동건의 팬클럽 회원은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3000여명이다. 장동건이 주연한 ‘태극기 휘날리며’가 올해 멕시코 TV에서 ‘전쟁터에서 형제애’란 제목으로 방영되면서 회원은 급증하고 있다. 멕시코의 공영방송인 ‘메히켄세’가 노 대통령의 방문 일정에 맞춰 ‘겨울연가’를 지난 8일 처음 방영했고, 주 1회씩 20회 방영하면 열풍은 더욱 거세질 것 같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장동건 팬클럽 회원은 “장동건이 올 수 있도록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달라는 게 시위의 요구 조건”이라고 말했다. 한류열풍은 올해 멕시코 이민 100년을 맞아 불고 있어 교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당시에는 듣지도 못한 ‘묵서가국’(멕시코의 한자음)을 향해 한국인 1033명이 제물포항을 출발하던 배에 몸을 실은 게 1905년 4월이었다. 낙원인 줄 알았던 이곳에 도착한 한인들은 선인장의 일종인 용설란 농장 애니깽에서 노예나 다름없이 생활했다. 멕시코 한인들을 부르는 ‘애니깽’이란 이름에는 고난과 슬픔이 배어 있다. 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모금운동을 해서 독립자금을 보내줬다고 한다. 한류 열풍을 멕시코와 중남미로 확산시켜서 한국 브랜드와 이미지를 높이는 게 우리의 의무와 역할이 아닐까. <멕시코시티에서>박정현 정치부 차장 jhpar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