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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가의 기개/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조차 초개같이 버리는 이들을 존경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예수가 그런 사람이었고 정몽주나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이 그런이들이었다.이런 분들인들 어찌 목숨이 아깝지 않았겠는가.다만 정의를 수호해야만 세도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투철한 이념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미련없이 포기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인류사회는 사회를 지켜나갈 기준을 다시 세우게 되고 그분들은 그 질서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며 살아남게 되었다.예술이 투철한 이념의 포상이라면 예술가인들 어찌 이런 현인의 범주에서 소외되겠는가.초당삼대가의 하나인 저수양이 선왕의 후궁이던 칙천무후의 왕후책봉을 한사코 반대하다 애주지사로 좌천되어 죽은 것이나 성당서예의 대표자인 안진경이 이희렬의 반란을 회유하러 갔다가 그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피살되는 것 들은 중국에 있었던 그런 실례 중의 한둘이다. 조선왕조에서는 시서화금기 오절로 꼬히던 풍류왕자 안평대군 이용이 세조의 왕취찬탈을 저지하려다 피살되고 낙성으로 추앙되던 난계 박연(1378∼1458)도 80고령으로 오히려 사육신들과 함께 단종복위를 꾀하는 일에 동조하였다가 아들들을 모두 잃고 고향으로 쫓겨나 죽는 것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화가로 불의에 목숨을 내걸고 대항하여 절의를 지킨 이를 꼽는다면 벽은 진재해(1671∼1769)를 들 수 있다.그는 숙종 39년(1713)에 약관 23세로 숙종 어진을 도사한 화원화가였다.32세 때인 경종2년(1722)에 노론사대사을 비롯한 노론대가들이 역모를 도모하였다고 무고하여 신임사화를 일으킨 목호용이란 자가 그 공으로 공신이 되어 6월30일 녹훈하는 자리에서 충훈부공신화상첩에 그려 넣을 화상을 그려달라고 하자 화원의 신분으로 당연히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함에도 결연히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이 손은 이미 선대 왕의 어용을 그렸었는데 어찌 차마 다시 호룡을 그리겠는가』이는 죽음을 각오한 항변이었다.그랬었기에 차마 죽이지 못하였고 영조의 즉위로 정국이 일변되어 목호룡이 역적으로 능지처참되자,영조원년(1721) 4월21일에는 우의정 민진원이 경연에서 국왕께 그 입절하던 사실을 아뢰어 품계를 올리도록 하였다 하니 그 씩씩한 기개를 누군들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여론 의식… “맞을때 빨리 맞자”/정주영대표 자진출두의 배경

    ◎“계속 불응땐 당와해된다” 위기의식/「악수파문」 수습,수세탈피 자구책/정치쟁점서 사법처리 단계로… 방미성사 주목 정주영 국민당대표가 검찰소환에 전격 응함으로써 그의 소환문제를 둘러싸고 조성되었던 정치권의 긴장이 다소 해소됐다. 정대표문제는 이제 정치쟁점에서 떠나 사법적 처리단계로 들어섰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관계당국이 정대표에 대한 사법처리를 혐의가 있는 쪽으로 결정한다면 야당측은 다시 형평성문제및 정치보복주장을 하고 나설 것이 틀임없어 파문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또 정대표에 대한 사법처리가 확정될 경우 국민당은 존폐위기에까지 몰릴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정면돌파 건의 수용 ○…정대표는 15일 상오 6남인 정몽준의원과 함께 광화문 당사에 출근,유수호·박철언최고위원·변정일대변인등 율사출신 당직자들과 구수회의를 가진 자리에서 당장 검찰에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대표의 이같은 결심은 출국소동등 일련의 악재에서 벗어나 당을 새롭게 출발시켜 보자는 자구책으로 보인다. 정대표는 지난 13일 하오 일본행기도가 좌절된뒤 여론이 악화되자 오는 25일께 검찰에 출두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었다. 이에대해 검찰측은 16일의 2차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면 바로 강제구인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여론에서도 『소환에 응하려면 빨리 하지 시간을 끄는 이유가 무엇이냐.그때가서 다른 소리 하려는 것 아니냐』는 쪽으로 흘렀다. 특히 14일 저녁 김해석·송광호·정장현의원등 초선 의원들이 정대표를 만나 『이대로 나가면 당이 깨진다』는 의견을 개진하며 「정면돌파」를 건의한 것도 정대표가 이같이 즉각 출두를 결심한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정대표의 성격도 조기출두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대표는 성격이 급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당장 해버리는 습성이 있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이왕 출두하기로 했으면 맞을 매는 빨리 맞아야지 25일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게 정대표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정대표가 이날 일부 최고위원들이 출두를 말리자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하지 않는가.과거는 모두 잊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말한 것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법적 검토도 마무리 정대표가 출두한 데는 사법당국이 위법혐의로 잡고 있는 부분에 대한 법적 검토도 어느 정도 끝났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민당측은 검찰수사의 핵심인 「현대비자금」문제에 대해 『정대표는 주식을 팔아 달라고 했으며 건네진 돈이 주식매각대금인줄로만 알고 썼으며 비자금인지는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비자금이라 하더라도 정대표가 조성을 지시한 일이 없으므로 정치자금법 위반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박이다. ○…정대표가 검찰소환과는 무관하게 당을 계속 이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하기는 했으나 정대표는 물론 국민당의 장래가 극히 불투명하다는게 대체적 시각이다. 정대표의 이날 출두는 대선후 계속된 정부·민자당의 「압박」에 대한 사실상 최초의 「굴복」인 셈이 됐다.민자당측은 정대표가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자체를 「잘못」으로 보고 있어 정대표가 정치를 그만둘때까지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정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검찰출두로 무릎을 꿇은 정대표가 어디까지 밀려갈지 알 수 없다.그의 돌출행동이나 실언이 시정되지 않으면 민자당의 「몰아붙이기」에 대항할 명분을 쌓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대표에 대한 사법처리가 결정될 경우 정대표의 심경이 어떻게 변화하느냐 하는것도 문제가 될수 있다.심리적 불안상태에서 정치포기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당측은 검찰이 정대표를 구속까지는 하지않을 것으로 보고있다.그러나 구속은 않더라도 불구속 기소는 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의 예상이다. 정대표 심경과 관계없이 일부 당직자및 의원들의 동요도 심상치않은 상황이다. 정대표 소환문제가 관심권에서 벗어나면 2천억원 당발전기금백지화가 당내최대 이슈로 부상될 것으로 보인다.정대표의 2선퇴진론도 세를 얻어갈 것이며 이같은 불안한 상황을 명분으로 탈당등 이탈자가 속출하는 상황도 상정해볼수 있다. ○…정대표가 자진출두형식으로 이날 소환조사에 응하기는 했으나 조사가 끝나는대로 클린턴 미대통령취임식에 참석하겠다고 밝힌 것도 논란거리이다. 지난 13일 돌연한 일본행기도는 복잡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정치계속여부를 심사숙고해보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이번의 미국방문의 목적도 비슷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민당 당직자들은 정대표의 미국체류가 「단기」로 그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구체적 일정은 내놓지않고 있어 그의 방미가 장기체류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는 관측이다.정대표의 외유가 길어진다면 국민당의 위기와 방황도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대표가 굳이 해외여행에 나설 뜻을 밝힘에따라 출국금지조치도 계속 쟁점이 되고 있다. ○정치포기 가능성도 국민당측은 『이정우법무장관이 정부체면등을 감안,조사를 받으면 출국을 할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모종의 타협이 이뤄졌음을 시시했다. 정대표는 미국방문에 이어 귀로에 일본에 들러 휴식을 취하며 정국구상을 한뒤 2월5일쯤 귀국할 예정이어서 그의 「미·일구상」 내용에 따라 국민당 진로가 결론지어질 것이다.
  • 코너에 몰린 정 대표 “탈출”몸부림/출국기도 등「악수」희석에 분주

    ◎잇단 돌출행동에 여론악화 인식/“자진출두” 표명 등 움츠러든 자세/「클린턴 취임식 참석」 들고나와 명분찾기 국민당의 정주영대표가 14일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던 지금까지의 강경자세를 바꾸었다. 정대표는 오는 20일 이후에는 이에 응할 의사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신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강제구인 되는 한이 있더라도 소환에 응하지 않겠다는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사뭇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정대표는 그러나 「편파수사중지」 「클린턴 미대통령취임식 참석후 출두」등의 사족을 달고 있어 그의 심중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정대표는 14일 상오 열린 국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소환에 끝까지 불응할 생각은 없었다』며 자진출두의사를 처음으로 표명했다. 정대표는 『당초 미국클린턴 대통령취임식에 다녀온뒤 20일이후 소환에 응할 생각이었으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변정일대변인도 『14일 상오까지 출두하라는 검찰의 1차 소환요구에 불응한다는 것이지 끝까지 출두않겠다는얘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변대변인은 『정대표가 검찰소환에 불응한 것은 수사가 공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어떤 경우에도 조사를 받지 못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입장변경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효영사무총장도 이날 상오 서울지검 김수민검사와 전화통화를 통해 『클린턴 미대통령취임식에 참석할수 있도록 출국금지조치를 해제해준다면 20일 이후 정대표가 출두하겠다』고 통보했다. 검찰측은 출국금지조치를 해제할수 없으며 20일 이전 소환에 응해주도록 요청했다.이에 김총장은 『22일부터 사흘간이 설날 연휴인 점을 감안할때 25일쯤 자진출두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대표사건의 조속한 종결을 위해 16일 2차소환장,18일 3차 소환장을 발부한뒤 22·23일께 정대표를 강제구인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져 국민당과 검찰간 정대표의 출두시기및 형식을 놓고 막후절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대표가 이날 검찰소환에 응할 뜻을 밝힌 것은 자신의 계속된 악수로 여론이 악화된 점을 감안한 때문으로 분석된다.지난 13일 일본으로 전격 출국하려다 저지된 것에 대해 「수사를 피하기 위한 도피」였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도 강경자세를 고수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대표는 이날 국민당 의총에서 『경주에서 2·3일 쉬려했으나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일본의 벳푸온천지에서 며칠 휴식을 취하고 올 생각이었다』며 『국법질서준수차원에서 검찰소환을 끝까지 피할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대표의 이러한 언급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않은 구석이 많다. 1차 소환장발부 당시 『출두자체에 응할 뜻이 없다』고 밝혔던 것이라든지 출국기도 과정등을 살펴보면 정대표가 「도피성」 해외여행을 가려했다는 정황증거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유수호최고위원도 『정대표의 일본행시도가 저지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출국했다면 도피라고 오해받아 지금보다 여론이 더 악화됐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국민당내 기류조차도 이렇다는 것을 정대표 자신이 감지못했을리가 없다.일본행기도등 돌출행동으로 소환문제에 대해 민주당의 협조를 얻기 어려워졌다는 사실도 정대표를 움츠리게 만든 요인이다.이와함께 정대표가 소환시기를 자꾸 늦추려는 것은 「정치적 해결」을 위한 시간벌기라는 시각도 있다. 정대표는 그러나 검찰소환에 응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당초 예정에도 없었던 클린턴 미대통령취임식에 참석하겠다고 나서 또 자충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대표의 「클린턴취임식참석」카드는 출국금지조치에 대한 항의표시인 동시에 자진출두의 명분찾기로 풀이되고 있으나 공당의 대표가 국내문제를 외교사안과 연결시키는 것은 떳떳지 못하다는 비판론이 대두하고 있다. ○…정대표의 일본행기도는 민자당의 강공에 맞서 내부 결속을 다져가던 국민당측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이날 의총에서 정대표는 『현 시점에서 2선후퇴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일선에서 당을 끌어가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의총 참석의원들도 대부분 『의원및 당직자들이 단합해 정대표를 잘 보필하자』는 의견을 개진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대표의 출국소동등잇단 돌출행동이 일부 의원들에게 탈당의 명분을 주고 그의 2선후퇴론을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한 최고위원은 『김동길의원이 최고위원직을 박차고 나간 행동이 옳았던 것 같다』며 『검찰 소환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나름대로 소신있는 움직임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초선의 K의원은 『뒤늦게 입당한 사람들이 정대표를 잘못 보좌해 당을 망치고 있다』며 정대표의 실언·실수가 연발되고 있는 이유가 입당파들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K의원을 중심으로한 초선의원 7명은 이 문제와 관련,곧 자신들의 공식 입장을 천명한뒤 수용되지 않을 경우 민자·민주·무소속으로 당적을 옮기겠다는 「위협」도 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 정 대표 25일께 검찰출두/국민당/출국금지조치 항의… 철회요구

    국민당은 현대중공업 비자금조성등과 관련해 검찰의 1차 소환요구에 불응한 정주영대표를 오는 25일쯤 검찰에 자진출두토록 하겠다고 14일 밝혔다. 국민당 김효영사무총장은 오는 20일로 예정된 클린턴 미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에 정대표가 참석할 수 있도록 정대표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를 해제해주면 귀국 즉시 검찰소환에 응하겠다고 검찰에 통보했으나 검찰측은 출국금지해제에 난색을 표시했다. 김총장은 이에 설날연휴가 끝나는 오는 25일쯤 검찰소환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앞서 국민당은 이날 상오 최고위원회의와 의총을 잇따라 열고 정대표 소환및 출국금지조치에 대한 대책을 논의,이의 부당성을 따지기위한 임시국회소집을 재차 요구했다. 국민당은 이와 함께 이날 하오 유수호·박철언·정장현의원등 3명을 이정우법무장관에게 보내 정대표에 대한 출국금지조치의 부당성을 항의하고 이의 철회를 요청했다. 궉민당은 이날 의총에서 ▲선거사범처리와 관련한 편파수사를 즉각 중지하고 법집행에 형평을 기할 것 ▲민자당의선거자금출처와 조달내역을 공개하고 철저한 수사를 기할 것 ▲정부와 민자당의 탄압이 계속될 경우 모든 것을 걸고 강력히 대응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에 대해 이법무장관은 『정대표가 잠깐이라도 피의 사실에 대한 경위를 설명하고 출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선조사후출국」입장을 밝혀 출국금지조치의 철회를 사실상 거부했다. 윤성태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은 종합평가 보고에서 『6공화국정부는 민주화측면에서 권위주의 청산,인권신장과 지방자치제부활등 개혁적 노력을 계속해 민주발전의 새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윤실장은 『대외적으로도 적극적인 북방외교와 통일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을 높이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보고했다.
  • 간첩단사건 첫 사형구형/심금섭피고/태국내 북 공작거점과 연락 맡아

    ◎서울지검,“체제수호 차원서 격리 마땅” 서울지검 공안1부 김영한검사는 11일 김락중간첩단 사건과 관련,간첩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심금섭피고인(63·청해실업대표)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김락중간첩단및 「남한조선노동당사건」과 관련된 피고인에게 사형이 구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논고문을 통해 『피고인은 북한의 대남적화노선에 따라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연락망을 갖춘 김락중에게 포섭돼 간첩과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공작금과 공작 장비를 남파간첩들을 통해 전달받는등 국가존립을 위태롭게 했다』면서 『남북화해무드를 틈탄 북한의 대남혼란획책에 영합,국가질서를 문란케한 피고인을 체제수호차원에서 영원히 이땅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피고인은 91년 4월전 민중당 공동대표 김락중(57·구속중)에게 포섭돼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미화 50만달러와 무전기·권총을 전달받고 태국내 북한 공작거점과의 연락,북한 공작원들의 국내활동안내등 업무를 담당해온 혐의로 지난해 9월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구속기소됐었다.
  • 무용(93문화계/과제와 전망:3)

    ◎잇단 외국공연… 한국춤 알리기 활발/창무회·중앙디딤무용단,일·「러」 등 나들이/현대무용 도입 30년… 대규모 기념행사/여름야외이벤트·상설무대 통해 대중화작업 계속 계유년 무용계는 새해 벽두부터 각 무용단체들의 잇단 외국무대진출로 활기찬 출발을 하고있다.또 93년은 현대무용이 이땅에 뿌리를 내린지 30주년이 되는 해.그 성과를 기념하기 위한 각종 공연과 행사들이 마련돼 있어 지난해의 「춤의 해」 열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11일부터 20일까지 창무회가 일본인지학협회초청으로 「무용의 신비학」을 주제로 ’93한일교류회의에 참석,공연과 워크숍을 갖는 것을 위시해 상반기에만도 크고 작은 외국공연들이 마련돼 있다.27∼31일까지 도쿄에 있는 아고라극장(1백50석)에서 열리는 「제1회 한일댄스페스티벌」에 컨템포러리무용단원 황미숙씨를 포함한 5명의 30대무용인들이 참가한다.그리고 2월에는 중견한국무용가 국수호씨가 이끄는 중앙디딤무용단이 구소련 키로프극장(8일)과 볼쇼이극장(10일)에서 대표작 「불새」를 공연하게된다.컨템포러리무용단도 2월중으로 중국 문학예술계연합회초청으로 북경과 상해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이는 「춤의 해」를 통해 내적으로 고조된 무용계가 그 역량을 밖에서부터 평가받기 위한 시도들.특히 한일 양국의 젊은 무용가들이 주최적으로 마련한 「한일댄스페스티벌」의 경우 국내의 주목받는 30대신진인 황미숙씨와 「현대무용단 푸름」대표 박은화,가림다현대무용단원 손관중,창무회단원 이명진,「리을무용단」단원 김수현씨가 참여하게 된다.이 춤판은 양국 젊은 무용가들의 역량비교와 춤양식의 비교라는 점에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또 올해는 미국 현대무용의 선구자 마사 그레이엄으로부터 사사받은 육완순씨(전 이화여대교수)가 귀국,국내에 현대무용을 가르치기 시작한지 꼭 30년이 되는 해이다.육씨의 제자들로 구성된 한국현대무용진흥회는 이를 기념하는 국내외 공연과 춤판등 행사를 다채롭게 벌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추진중인 행사에는 중국과 미국에서의 공연이외에 미국의 유명한 현대무용단 필로보러스단원들을 초청,워크숍과 공연을 갖는다.또 연말에는 육씨의 안무작을 시기별로 총정리,대규모 회고공연도 가지게 되며 기념책자도 발간키로 했다. 한편 일과성 행사들로 주를 이루었던 「춤의 해」행사 가운데 그나마 가장 대중의 호응을 얻었던 「여름야외이벤트」와 「상설야외무대」가 올해에도 「춤 대중화운동」의 일환으로 기획되고 있다.이밖에 지난해말 예술감독겸 단장을 교체한 국립무용단과 발레단의 경우 준단원과 연수단원제를 구별하고 훈련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등 체제개편을 단행,관행화된 안일한 운영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여 주목을 끈다.또 지난해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30대 신진무용가들의 계속적인 활약이 기대되며 「춤 대중화운동」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무용계의 가장 큰 과제로 꼽히고 있다.
  • 이라크 미사일 재배치땐/미,“사전경고 없이 응징”

    ◎방공망철수 확인… 이동경로 추적중 【워싱턴 AFP 연합】 미백악관은 이라크가 남부 「비행금지구역」에 미사일을 재배치해 다국적군에 대한 위협을 또다시 가해올 경우 사전 경고없이 즉각 군사작전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9일 경고했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사담 후세인 정부가 다국적군의 지난 6일 최후통첩을 또다시 위반할 경우 이제는 사전에 경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방부 관리도 이라크가 미사일 부대를 「비행금지구역」내에 재배치할 경우 경고없이 군사작전에 돌입한다는 것이 미정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이라크가 최후통첩을 받아들여 5개의 미사일 포대와 레이더 장치를 철수했다고 확인한뒤 그같이 경고했다. 【워싱턴 로이터 AP 연합】 이라크는 9일 유엔 무기사찰단이 이용하는 항공기의 입국을 거부할 방침이라고 선언,비행금지 구역내 미사일 배치문제로 야기된 걸프 사태가 새로운 긴장국면으로 비화되고 있다. 중동해역으로 급파됐던 미항공모함 키티호크는 이날 이라크의 미사일철수로 사태가 일단 진정된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이라크 미사일 부대의 이동경로를 추적중이라고 미군 관계자들이 밝혔다. 【바그다드 AFP 연합 특약】 이라크는 10일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협이 사라질 경우 「평화」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 공식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이 대변인은 바그다드방송을 통해 『이라크는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 후세인은 평화에의 도전 계속할 것인가(사설)

    새해벽두의 세계를 긴장시킨 걸프전 재발의 위기가 일단 최악의 고비는 넘긴것으로 보인다.문제의 발단인 이라크의남부 비행금지구역배치 미사일망이 해체되어 이동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우선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없다. 이번위기는 이라크대통령 후세인의 도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작년 1월 걸프전이후 유엔결의에따라 설치된 이라크남부 비행금지구역에대한 후세인의 의도적도전이 발단이었다.구랍27일 후세인은 이라크전투기들을 이 지역에 침투시켜 그중 한대가 격추당한것을 이유로 이 지역에 대공미사일망을 설치했으며 그것을 그냥둘수없는 미국등 서방세계가 철거를 요구하는 48시간 시한부 최후통첩을 보내고 후세인이 이에 저항함으로써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배경은 권력이양직전의 미국을 시험하고 자신의 국내정치목적을 달성하려했던 후세인의 저의에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후세인은 계속되는 유엔제재로 경제난과 국제고립의 어려움을 겪고있다.국민적 불만도 고조되어왔다.미국에 대한 도전은 잘만하면 국민의 자신에 대한 불만을 미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분출시키고 그사기를 고취하는한편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과시할수있는 다목적의 효과를 거둘수있는 것이었다.미국의 대통령교대가 임박한 지금이야말로 그 절호의 기회라 할수있다.후세인은 그것을 놓치지않고 이용한 것이다. 유엔과 미국등의 대응이 단호해야 했던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후세인의 후퇴가 없었다면 당연히 강력한 응징이 가해졌을 것이다.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후세인은 마지막 순간의 후퇴로 공격의 화살을 피한것으로 보인다.대외적으로는 각의와 의회를통해 최후통첩을 거부하고 주권수호의 결의를 재천명하는등 응전의 자세를 보이면서도 실질적으론 후퇴하는 양면전을 구사한 것이다. 이번사태를 통해 유엔과 미국등이 한걸음도 물러서지않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한편으로 후세인도 얼마간의 국내정치적 목적을 달성한면이 없지않은 것은 유감이 아닐수없다. 후세인의 이번도전은 미국에 대한 것인 동시에 유엔과 세계에대한 것이기도 한것이었다.걸프전은 전적으로 후세인의 쿠웨이트침공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후세인의 이라크는 그결과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져야할 의무가 있는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1년만에 그 책임을 거부하는 중대한 도전에 나섰으며 이렇다할 응징도 당하지않은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하고 있는것이다. 재미를느낀 후세인이 또 언제 어떤 도전에 나설 유혹을 느끼게 될지 그것이 우려된다.세계는 예측불허의 호전적인 후세인의 위험한 도전에 언제까지 위협과 농락만 당해야 하는가.
  • 이라크,최후통첩 거부… 미의 대응전망

    ◎“후세인 무력화”… 내일이 고비/미사일발사대 공습 전격감행 가능성/“중동 골칫거리 제거”… 초강경책 예상/“끝내는 미 등에 순응”… 해프닝으로 끝날수도 미국등 4대강국이 이라크에 대해 48시간내 전진배치된 미사일의 철수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냄으로써 걸프지역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있다. 미국은 이라크가 남부 「비행금지구역」접경에 미사일을 전진 배치,미군항공기의 초계비행을 위협하고있는데 대해 강경하게 대응,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협의를 거쳐 6일저녁(한국시간 7일 상오) 강력한 최후통첩을 유엔주재 이라크대사에게 전달했다. 이에 대해 이라크는 7일 서방측의 최후통첩을 즉각 거부했다.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국가의 존엄성 수호의지를 다짐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능력과 태세를 완비하고 있다고 밝혀 왔던 점에 비추어 그동안의 반발이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이번 사태의 발전은 구랍 27일 이라크 남부의 비행금지구역을 초계비행하던 미국의 F­16기가 금지구역을 침범한 이라크의 미그­25기 1대를 격추하면서부터 야기된 것으로 볼수있다. 이라크측은 이 사건뒤 비행금지구역의 경계선인 북위 32도선 북쪽을 따라 3곳에 러시아제 SA­2 지대공미사일 발사대를 배치하는 한편 초계비행에 나서는 미군항공기를 레이더로 추적을 하면서 보복을 다짐해왔다. 그러나 사태의 근본적인 배경은 미국등 걸프전 참전동맹국들이 후세인체제를 약화 또는 제거시켜 중동의 평화구조를 확고히 하려는데 반해 후세인은 미국의 정권교체기를 틈타 아랍민족주의를 부추겨 자신의 체제를 강화하려는데서 비롯되고있다고 볼수 있다. 걸프전이 이라크의 항복으로 끝나면서 유엔의 결의안은 후세인의 반정부세력인 북부 쿠르드족과 남부 시아파 회교도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도록 요구했다.이에따라 걸프전 참전국들은 91년 3월 쿠르드족의 보호를 위해 이라크군용기의 북위 36도선 이북의 비행을 금지시켰다.이어 지난해 8월에는 남부에 있는 시아파 주민의 보호를 위해 북위 32도선 이남지역의 비행을 금지하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했다.후세인이 유엔의 결의안을 외면하고 공군기와 헬리콥터를 동원,남부시아파에 대한 소탕작전을 펴왔기 때문이다. 미국등은 핵개발을 서두르는 「중동의 골칫거리」 후세인을 걸프전을 통해 무력으로 응징한데 이어 사실상 이라크의 영공권을 인정하지않고 반군을 보호함으로써 후세인체제를 제거하는 전략을 갖고있는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일부에서는 미국이 「군사대국」이라크를 3개의 국가로 분할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후세인은 이라크민족주의로 반미감정을 확산,이를 자신의 군사독재체제유지와 국민결속의 촉진제로 활용하고있다. 지난해 8월 유엔의 이라크에 대한 무기사찰을 거부함으로써 미국등의 반응정도를 시험했던 후세인이 이번에는 비행금지구역의 침범을 통해 역시 정권이양기의 미국 반응을 시험해본 것이라고 할수있다. 이번 최후통첩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있지만 48시간의 이행시한은 통첩전달시각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전해지고있어 최종시한은 8일 하오5시30분(한국시간 9일 상오 7시30분)이 된다. 부시대통령의 임기만료가 불과 2주도 채못남았지만 이라크문제에 대한 인식은 빌 클린턴 차기대통령도 부시대통령과 거의 같기때문에 미국이 정권교체기라는 이유로 이라크에 대한 강경대응자세를 쉽게 누그러뜨리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라크가 최후통첩을 거부,미사일발사대를 계속 존치시킬 뜻을 밝힘에 따라 오는 20일 부시대통령이 퇴임하기 전에 다국적군의 제한적인 「미사일발사대 무력화」공습작전이 감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이경우 미국등은 거의 자체피해없이 목적을 달성,이라크에 대한 응징효과를 충분히 거둘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적 수단으로는 비행금지구역을 수시로 침범하고 있는 이라크공군기들의 파괴,비행장폭격,지대공미사일을 유도하는 방공레이더시설 공습이 예상된다.이밖에 걸프해 항공모함이나 잠수함등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발사,이라크의 전략요충을 파괴하는 방안등도 거론되고 있다.
  • 국민당 내부갈등 심화/김동길의원/최고의원직 사퇴… “탈당도 불사”

    ◎“정 대표 2선퇴진” 거듭 요구 국민당이 대선패배이후 당의 진로및 체제정비를 놓고 갈등을 겪고있는 가운데 김동길최고위원이 정주영대표의 2선후퇴를 요구하며 최고위원직 사퇴를선언,귀추가 주목된다. 국민당은 6일 상오 정대표 주재로 최고위원·당직자 연석회의를 열어 조직강화특별위원회와 당헌개정특별위원회를 각각 구성,당체제정비에 착수키로 했으나 김동길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 사퇴의사를 밝혀 공당화및 지도체제를 둘러싼 당내갈등이 증폭될 조짐이다. 김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정대표가 당초 약속한 2천억원의 정치발전기금을 내놓고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최고위원직 사퇴는 물론 국민당 탈당과 의원직까지도 사퇴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당 지도부는 김최고위원의 사퇴를 철회토록 설득하고 있으나 향후 지도체제개편을 둘러싼 최고위원및 주요 당직자들간의 이견이 심한데다 이를 계기로 당권을 둘러싼 싸움이 표면화할 것으로 보여 당내 진통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정대표는 이날 김최고위원이 사퇴하지 않도록 만류하는 한편 정치발전기금 문제와 관련,『기금조성의 목적은 국민당이 집권당이 되도록 하는데 있다』고 전제한뒤 『기금조성과 운영문제를 당의 공식기구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빠른 시일내에 강구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당은 이날 회의에서 당헌개정특위 위원으로 박한상고문·유수호·박철언의원·목요상인권위원장·변정일대변인을,조직강화특위위원에 김동길·박영록·한영수·이자헌·양순직·김복동·박철언최고위원과 김효영·윤영탁·김정남·변정일·차수명·정장현의원 등을 임명했다.
  • 「정주영 국민당」중대기로 봉착/합당무산·「퇴진론」 제기이후의 진로

    ◎「통합 파기=공당화 포기」 의구심 표출/개인체제 확립·일부이탈 등 월내결말 대선이후 정주영대표의 정치계속 의사표명으로 안정을 되찾아가던 국민당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정대표가 5일 새한국당과의 합당약속을 일방파기,정치신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데 이어 정대표의 가장 핵심 측근인 김동길최고위원이 정대표의 2선퇴진주장을 들고 나와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국민당내 분위기는 정대표가 정치를 포기할 경우 당존립자체가 위협받는다는 우려를 근저에 깔고 있었다.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정대표의 퇴진을 거론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김최고위원이 이러한 「금기」를 깨뜨려 버린것이다. 정대표가 새한국당과의 통합합의를 깬 것은 단순히 신의를 저버린 차원을 넘어 「공당화」약속파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낳고 있다.김최고위원의 「폭탄성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김최고위원은 이에따라 정대표의 2선후퇴와 함께 정치발전기금 2천억원조성 약속이행도 촉구했다. 물론 김최고위원의 생각은 아직당내에서 소수 의견에 머물고 있다.기존의 국민당 당직자들은 물론 이자헌·박철언·한영수최고위원등 새한국당 선입당인사들도 정대표가 구심점으로 남아있어야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대세는 아직 정대표의 절대 지도력을 요구하는 쪽이며 김최고위원의 발언이 「일과성」으로 그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정대표가 2천억원기금조성에조차 소극적인데 대해 대부분 당내인사들이 내심 우려하고 있고 김최고위원이 그같은 우려의 일단을 표출한 셈이다. 김최고위원의 발언이 세를 얻어갈 경우,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정대표가 정치에서 거리를 둔다면 국민당의 앞날은 상당한 파란에 휩싸일수도 있다.이에따라 이번 1월이 ▲공당화 ▲정대표 개인체제확립 ▲일부 세력이탈후 존속중에서 국민당진로가 결정나는 기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최고위원 발언과 별개로 국민당과 새한국당이 대선투표일을 나흘 앞둔 지난해 12월14일 전격통합을 선언한지 불과 22일만에 사실상 결별의 길을 걷게된 것은 이미 예견할 수 있었던 수순이었다. 당시 국민당의 정주영대표와 새한국당의 이종찬대표는 「양김구도 청산」과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이대표가 대선후보를 사퇴하는 대신 ▲당대당 통합 ▲공동대표 보장 ▲주요당직의 동등배분을 조건으로 합당선언을 했으나 복잡한 국민당 내부사정과 당운영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갈라서게 된 것이다. 정대표는 5일 상오 정례기자간담회에서 『이종찬의원의 합류로 득표에 수백만표의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당내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합당을 결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통합선언 당시 이대표와의 합의사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정대표의 약속파기에는 이대표에 앞서 새한국당에서 입당한 한영수 박철언 이자헌 김용환 유수호최고위원등이 이의원의 공동대표 보임에 강하게 반발한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새한국당 창당에서 국민당과 합당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행보를 같이하면서 대선후보에 대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인데다 잠재적 경쟁자인 이의원에게 공동대표라는 고지를 선점시켜줄 경우 자칫하면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당대당 통합에 거부감을 표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따라 정대표는 지난 4일 이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개별입당 또는 독자노선 추구라는 양자택일을 최후통첩했다는 것이다. 새한국당측은 『대통령후보로까지 나선 정당의 대표가 직접 서명하고 당무회의에서 낭독한 합의각서를 백지화한다는 것은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정대표가 시간적 여유를 두고 해결해도 될 새한국당과의 통합문제를 서둘러 결렬시킨데 대해 당일각에서는 정대표의 정계은퇴를 위한 수순밟기가 아니냐는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서는 정대표의 이러한 일련의 조치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재계출신으로 이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여론의 비난은 감수하겠다는 기업가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즉 필요하면 쓰고 쓸모가 없으면 버린다는 냉혹한 경제논리에 입각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 「전환기의 남북한관계」 세미나 주제발표 내용(오늘의 북한)

    지난해말로 중단된 남북고위급회담은 빠르면 오는 5∼6월쯤 재개될 전망이며 남북문제의 핵심 현안인 상호핵사찰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어야만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질 것이란 주장이 거듭 제기됐다.다음은 민족통일연구원(원장 이병용)이 구랍 28일 타워호텔에서 「전환기의 남북한관계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주제 발표의 요지이다. ◎남북관계 현황과 전망/박영호 민족통일연 연구위원/「핵매듭」 풀리면 경협 등 급속 진전/북,신정부 의중 떠보려 정상회담 시도 가능성 지난해 남북한은 「기본합의서」을 비롯한 10개의 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을 발효시키고 고위급회담,분과위원회 회의등 90회 이상의 다양한 접촉을 가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실질적인 관계진전을 이룩하기 보다는 외형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성과만을 얻었을 뿐이다.더욱이 8차 고위급회담 이후 북한측이 팀스피리트훈련 재개결정등을 이유로 분야별 공동위원회의 가동 및 9차 고위급회담 개최를 일방적으로 동결함으로써 남북대화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그러나 올해의 남북관계 전망은 그 어느때 보다 희망적으로 점쳐지고 있다.남북관계가 공식적이며 제도적인 차원으로 진입되면서 정치·군사·경제·사회등 모든 분야에 걸쳐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고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보다 명확한 인식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남북은 지금까지 많은 합의서의 발효와 사상 최대 빈도의 회담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관계개선을 이루지 못했으며 쌍방의 견해가 일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서들이 발효된데다 북한이 여전히 남북대화를 전술적 차원에서 이용하려는 속셈을 버리지 않고 있어 그 전도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남북한간에는 여전히 북한의 핵문제,이산가족문제,경협문제,부속합의서 내용등의 현안이 상존하고 있다.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핵심으로 남북상호핵사찰에 대한 북의 태도에 변화가 있어야만 대북경협이 실현되는 등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올해의 남북관계는 북한의 핵문제 미해결,북한의 대화지연의도,팀스피리트훈련,한국의 정권교체등으로 인해 상반기까지는 소강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하지만 9차 고위급회담이 5∼6월에 재개될 전망이어서 하반기부터는 각 공동위원회가 가동돼 부속합의서의 구체적 실천을 위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그렇지만 남북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부속합의서의 미해결사항과 이산가족문제 그리고 합의사항 실천의 우선순위등이 여전히 관계개선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의 지위격상 및 업적선전과 남한 신정부의 의중탐색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에 적극성을 보일 가능성이 점쳐진다.북한이 자진해서 남북정상회담에 적극성을 보인다면 이는 한국의 실체를 인정하려 들기 보다는 자신들의 목표인 「고려연방제」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때문으로 해석된다. ◎대남전략 분석과 전망/허문영 민족통일연 책임연구원/대화 응하며 체제수호 노력강화/경협엔 적극적… 인적교류 회피할듯 북한은 지난 64년 이래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위해 「3대혁명역량」노선을 추진해 왔으나 90년대 「냉전후기시대」의 도래와 경제난 악화로 혁명역량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따라서 북한은 국가목표의 비중과 정책방향을 공산화 통일보다는 김일성·김정일체제 유지에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도 북한은 경제난등 제반 문제들에 시달릴 전망이어서 현실적 적응을 통한 체제강화를 모색할 것으로 관측된다.또 북한은 이를 위한 방편으로서 통일전선전술의 다양한 실용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즉 북한은 남북대화에 응하되 대남비방을 계속하며 지하당 구축사업을 더욱 은밀히 추진하는 현실적응적 공존정책을 구사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대남 통일정책에 있어서는 국제적 압력과 한국 신정부의 적극적 남북관계 개선노력에 따라 남북고위급회담에 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나 북한의 본질적 변화가 기대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 진전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남 경제정책에서 북한은 각종 경제법규를 새로 제정하고 대외경제협력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나 그 전망 역시 밝지만은 않다.따라서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협력 및 교류를 지난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군사정책에서는 남북대화의 진전을 위해 대남도발전략은 자제할 것이나 대남군사우위정책만은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마지막으로 사회문화정책에 있어서는 체제수호를 위해 가급적 인적교류를 회피하려 들 것으로 전망된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

    ◎여명기의 민족지/“항일구국” 염원안고 대한매일신보 탄생/국운 기울어 암울했던 1904년 창간/주권수호 앞장서며 숱한 고난/해방직후 서울신문으로 속간/초대사장에 오세창 취임… 권동진·홍명희 고문에 영입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그 시대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1904년 국운이 기울어가는 암담한 나라 운명속에서 한가닥 빛으로 창강된 대한매일신보.그 항일구국지가 1945년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나기까지는 파란만장한 우리 근·현대사를 함께 살았다.당시 민족의 생존이 그렇듯 일제의 모질고 간교한 탄압에 쓰러진 대한매일신보의 맥락은 서울신문이 잇고있다.일제 강점기 사이에 변화도 없지 않았으나 서울신문의 뿌리는 분명히 대한매일신보에 두었다.그 위대한 항일구국지 창간 1세기를 불과 1년 앞둔 오늘,그 역사를 조명하여 서울신문의 연륜을 다시 헤아리고자 한다.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제국 말기 6년동안 항일언론의 최선봉에서 민족주권 수호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가히 전설적인 신문이었다.근대 언론사에서 「다시 없는민족의 대변기관」으로 평가 받는 이 신문은 나라 안팎이 매우 복잡한 시기에 발행됐다. 국제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일본이 한국의 지배권을 열강으로부터 승인받아 한국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던 때이기도 했다.그리고 국내정세는 일본의 한국지배를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불길처럼 치솟던 시기였다. 특히 나라안에서는 일본의 한국 황무지 개간권을 막으려는 민중운동과 함께 의병 무장투쟁,국채보상운동,애국계몽운동등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한매일신보는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창간되어 항일구국의 가시밭길을 걸었다.창간한 사람은 영국인 배설(Ernest Thomas Bethell·1702∼1909년)이다. 러·일전쟁때 취재차 한국에 왔던 런던의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통신원인 그가 한글전용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날짜는 89년전인 1904년7월18일로 돼있다.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도 동시에 창간했다. 창간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모를 보아도 쟁쟁하다.당대의 언론을 주도했던 논객이자 우국지사였던 양기탁을 비롯,박은식·신채호·옥관빈등이 그 주역들. 나중에는 안창호·이갑등 구국운동조직인 서북학회의 인사들도 뛰어들었다. 창간호(타블로이드판)는 한호의 지면이 6면으로 4면은 영문,2면은 한글전용의 2개국어 신문체제였다.그러나 이듬해 8월에는 국한문 혼용판과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를 분리,2종을 발행했다.1907년5월에는 한글전용 「대한매일신보」를 새로 창간,3종의 신문을 한꺼번에 펴 냈다.국한문·영문·한글등 3종의 신문이 발행되기는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다. 황실(고종)의 은밀한 재정적 뒷받침과 민족진영의 도움을 받았다.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대한매일신보의 논조는 처음부터 반일구국일수밖에 없었다.그 첫 지탄공격은 황무지 개간권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시작됐다.이를 시발로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전재,샌프란시스코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 저격사건보도,영국의 트리뷴지에 실린 고종밀서사진 전재등 기사와 논설로 항일언론의 횃불을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 신문의 강력한 반일논조야말로침략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장 큰 저해요인이었다. 일본은 이에 대응,「경성일보」(일어)「Seoul Press」(영어)등 통감부의 기관지를 직접 발행하여 언론대응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또 한편으로는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외교적 압력과 사법적인 탄압을 가했다.외교적 압력은 영국측에 대해 배설의 추방요구로,사법적 탄압은 통감부의 신문압수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항일언론 자세는 좀체 꺾이지 않아 국한문판 24차례,한글판 21차례의 압수를 당하면서도 여전히 지속됐다.민족진영의 언론보루로서 이처럼 항일언론을 펼칠수 있었던 것은 이 신문이 영국인 소유여서 치외법권을 누릴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신문에 몸담고 있던 항일언론투사들의 민족사상과 구국정신이 그같은 논조를 주도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한매일신보」가 남긴 족적중 또한 특기할만한 것은 이 신문이 주동이 되어 벌인 국채보상운동이었다.이는 을사보호조약이후 일본으로부터 얻은 나라의 빚 1천3백만원을 국민의 성금으로 갚아 일본의예속에서 벗어나려는 일대 구국운동이라 할 수 있다. ○우국지사 대거 참여 대한매일신보는 이 운동의 중심기관이 되던 시기에 사세를 크게 신장,발행부수가 1만부를 넘어섰다(1907년 9월3일 기준 국한문 8천,한글3천부).이같은 발행부수는 그때까지 한국언론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강경한 논조를 터뜨리던 이 신문은 일본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끝에 배설의 상해옥살이와 양기탁의 구속으로 물이 꺾이기 시작했다.그후 배설이 숨지면서 이 신문은 더욱 기울어졌으며 영국인 만성(Alfred Marnham)이 사장직을 인수받았다.그러나 영·일간의 외교문제를 꺼리던 주한 영국총영사 보나르(Bonar)와 통감부의 회유및 압력을 받아 1910년 5월21일 결국 통감부에 팔리고 만다.국권수호의 상징적 존재였던 「대한매일신보」가 마침내 비극적인 종언을 고한것이다.그때의 지령은 제1461호(국한문판)였다. 그리하여 「대한매일신보」는 한일합병 이튿날인 1910년 8월30일부터 제호가운데 국가를 상징했던 두글자 「대한」을 빼앗겨 버린다.「대한」이 없어진 「매일신보」는 결국 통감부의 기관지로 전락하는 것이다.그러면서도 「매일신보」는 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국한문판 종간호인 제1461호(1910년 8월28일)의 지령을 계승,제1462호부터 국한문판을 발간했다.(한글판은 제939호부터) 이 날짜의 사설제목은 「동화의 주의」로 나온다.제국주의 36년간의 일본 전위역할을 이렇게 상징하고 일제 선전기관으로 얼굴을 바꾼 매일신보는 이틀만인 9월1일 대한제국의 기관지 성격이던 한양신문(전대한신문)까지 합병한다.국한문판과 한글판의 두가지 신문을 발행하는 유일한 한국어 신문이었지만 한국인이 만드는 한국의 소리는 담기지 않았다.이는 「일선융화와 세도인심의 감화유도」를 내건 일제의 어용언론활동의 전주곡이었다. 경영의 측면에서 경성일보사에 흡수통합,경일편집국의 한부서로서 철저하게 총독부기관지 역할을 수행한 매신은 그후 3·1운동의 결과로 일제의 무단정치가 표면상 문화정치로 바뀌면서 1920년 독립된 편집국으로 확대 승격됐다.그리고 1929년에는 한국인 편집국장이 임명된데 이어 1930년 한국인 부사장이 처음 기용되어 다소 편집제작의 재량권이 이루어지는듯 했다. 그러나 매신은 철저하게 일제의 입장에서 만들어져 편집방향은 「내선일체」를 고수했다.이러한 목적을 위해 총독정치의 선전과 홍보를 위주로 했으나 민족민간지들의 논조를 반박하거나 민족진영을 비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일제의 비호속에 이같은 논조로 일관하던 매신은 기구를 확대,경성일보사에서 분리하게 됐다.1938년 4월16일 독립된 언론기관으로서 제호를 매일 「신」보로 고쳐 새로 출발한 것이다. 매신이 경일과 맞붙은 지금의 프레스센터 자리에 4층 콘크리트 사옥을 짓고 들어선 것은 바로 이때였다.하지만 경일은 매신의 주식 45%를 소유한 대주주로 남았고 여기에 총독부 소유의 주를 포함한다면 매신의 경일예속은 이전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셈이었다.매신의 일제옹호논조 또한 해방직전까지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는 패망했다.1945년 8월15일 마침내 조국광복을 맞았다.매신은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으로서의「서울신문」으로 거듭나기위해 대대적인 개편수술을 받게됐다.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정청이 그해 10월2일 매신을 접수,매신 한인주주총회를 열어 새중역진을 구성토록 종용했다.이에따라 10월25일 주총이 열려 「서울신문」이라는 새로운 제호와 오세창을 사장으로하는 간부진용이 결정됐다.이 무렵은 사장 이성근이 지난날의 과오를 전사원에게 사과하고 자퇴한뒤 사원자치위원회에 의해 신문이 발행되던 때였다. 경영간부가 없는 상태에서 신문을 만들어오던 6백명의 자치위는 그러나 주총의 간부진용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주총결정은 자치위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는게 그 표면적 이유였으나 실상은 간부진용에 우익인사가 너무 많은데 불만을 품은 때문이었다. 그동안 비교적 관망상태에 있던 미군정당국은 11월10일 재산조사를 이유로 매신에 정간명령을 내렸다.매신이 정간되던날 자치위는 「3천만 민중의 정당한 공기」로서 신문이 새롭게 출현해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 한뒤 일단 한발 물러섰고 이를 계기로 개편실무진과 자취위 사이에 얽혔던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때 총독부 기관지로 미군정당국으로부터 매신개편의 대업을 새로 위임받은 이관구와 하경덕은 재원확보문제와 함께 내외에서 모두 수긍할수 있는 권위있는 인사들로 경영·편집진을 구성하는 작업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초대사장에 위창 오세창이 추대됐다.근대 신문계의 선구자이자 지조높은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닌 사회적·정치적 덕망은 새롭게 등장하는 서울신문의 이미지에 걸맞는 것이었다.위창과 함께 역시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인 권동진과 당시 문단의 원로격인 홍명희가 고문에 영입됐다. 서울신문 탄생의 산파역을 맡은 저명교육자 하경덕이 부사장에,그리고 사려 깊은 논조를 감당할 주필에는 항일언론의 선봉에 섰던 이관구가 선임됐다. 이러한 일사천리의 준비작업은 21일 5층 옥상에서 가진 오세창사장의 취임식으로 그 결실을 보게됐다.해방의 감격과 함께 독립한 이 민족의 진실된 언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서울신문이 마침내 그 첫 지면을 이 땅에 선보인 것이다. 이날이 1945년11월22일이었는데 신문은 11월23일자로 발행됐다. 이때의 서울신문 지령은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매일신보를 그대로 계승,제13738호를 기록하기에 이른다.그 고난의 역사를 마감하고 또 다른 시련의 역사를 향해 서울신문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었다. □연보 ◇대한매일신보(1904·7·18∼1910·8·28) ▲1904년 7월18일 창간 ▲편집겸 발행인 배설,총무 양기탁취임 ▲1910년 5월21일 통감부가 매수 ▲1910년 8월28일 국한문판 1461호,한글판 938호로 종간 ◇매일신보(1910·8·30∼1938·4·28) ▲경성일보에 흡수 통합,1910년 8월30일 매일신보로 개제발행(지령은 대한매신을 계승) ▲경성일보사장 길야태좌위문 취임(매일신보사장 겸임) ▲1912년 3월1일 국한문판과 한글판을 한글전용으로 합간 ▲1938년 4월28일 매신의 제호로 최종발행(지령11 012호) ◇매일신보(1938·4·29∼1945·11·10) ▲경일에서 분리독립,제호를 매일신보로 개제발행(지령은 매신을 계승) ▲사장 최린,부사장 이상협취임 ▲1945년 11월10일미군정에 의해 정간 ◇서울신문(1945·11·23∼현재) ▲1945년 11월23일 매신을 서울신문으로 개제발행(지령은 매신을 계승) ▲초대사장 오세창,고문 권동진 홍명희,부사장 하경덕,전무 김동준,주필 이관구취임
  • 세밑 최전방 경계근무 “이상무”/본지 기자 육군 뇌종부대를 가다

    ◎거센 눈보라… 체감온도 영하30도/장병눈빛엔 “민족수호 첨병” 긍지/북한군 얼음깨 고기잡아 “부식충당” 모습 한눈에 세밑 진중(진중)바람이 매섭다.체감기온은 영하30도쯤 되는것 같다. 그러나 전선은 고요하다.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동북방 최전선은 차라리 그림이다. 그러나 여기는 곳곳에 지뢰가 매설되고,보이지않게 서로 총구를 겨냥하고 있는 전야.남북화해 무드와 탈냉전의 세계조류 속에서,언제 어미품을 뛰쳐나와 새로이 분쟁을 형성할지도 모를 포자(포자)와 같은 곳이다. ○무장공비 2백회 침투 더욱이 이곳은 부대창설(53년)이후,육상과 해상을 통해 북측이 1백19회 2백여명을 침투시킨 곳이다.북측은 이곳을 주요공격의 축선으로 삼고 있음이 분명하다. 육군 제5861부대는 자신들을 뇌종(뇌종)부대라 부른다.태백준령들이 용틀임하는 곳에 위치,민족수호의 첨병으로서 통일의 종을 타종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 쪽」과 「저 쪽」 사이 초소거리 5백80m.큰 목소리는 서로 잘 들린다.그러나 어느 쪽도 고함치지 않으니 괴괴할 뿐이다.해금강 낙타봉을 비롯,남으로부터 북으로 외초도·작도·복선암·사공바위·부처바위·만물상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북한의 고급휴양지 말무리반도는 망원경에만 들어온다. 『저 아래 감호가 있죠.북한병사들이 얼음을 깨고 고기 잡는게 보입니까?』안내장교는 그들의 부식보급이 제대로 안되는 모양이라고 설명했다.그렇지 않고서야 이 겨울에 한가롭게 천렵(천엽)을 즐길 리 없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김강은 불현듯 전장(전장)으로 변했다.애써 보지않으려던 선전간판들이 줌렌즈에 잡히듯 선명하게 드러났다.「미군 철거」「세금없는 나라」「반미」「무료교육」등등.개중엔 「월북 환영」이라는 간판도 있는데,그림이 그려져 있다.분홍빛 한복저고리를 입은 「북녀」가 꽃다발을 든채 웃고 있다. ○철책 사이두고 신경전 『우리는 내 한몸 조국에 바친다는 각오로 24시간 철통경계에 임하고 있습니다.안심하셔도 됩니다』스키파카를 입은 제○소초장 박진형중사(24)의 힘찬 목소리는 일순간 칼바람을 잠재운다.우렁찬 소리에 긴장한듯,저쪽 초소 인민군들이 날렵한 몸짓을 보이며 이쪽을 관측하기 바쁘다.그러자 군견시합에서 공격상을 받았다는 맹견 「베스타」가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상병 김대식,최전선 경계임무 이상무!』김상병의 표정은 건강색으로 매우 맑았다.사단장의 성격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언제나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부대,그러나 살맛나는 병영(병영)생활」그러다보니 상하간에 스스럼이 없고,공사가 뚜렷하다. 축구에서 장군의 무릎이 까지는 부대,스트레칭을 하는 부대,민사심리(민사심이)최우수부대의 장병들이 지키는 세밑 최전선은 이상(이상)이 없다.
  • 맹수석조물 송곳니 “수난시대”/전국곳곳서 파손 잇따라

    지역사회보호 또는 불을 막는 상징으로 전국 곳곳에 세워진 호랑이·사자 등의 석조조형물 송곳니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미신 때문에 잘라져 없어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이들 석조상은 풍수지리설 또는 전래의 민속신앙에서 유래된 지역사회 보호의 상징으로 세워졌으나 최근 맹수의 송곳니가 불치병치료 또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미신 때문에 무참히 뽑혀지고 있다. 이때문에 많은 맹수석조상들은 원래의 송곳니 대신 틀니를 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을 잇는 한남대교의 양쪽 끝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4마리의 호랑이및 사자상이 금방이라도 달려들듯이 입을 벌리고 앉아있다. 지난 69년 당시 「제3한강교」의 이름으로 다리를 준공할 때 서울시가 석상조각가인 홍익대 전뢰진교수(64·조소과)에게 특별히 부탁해 한강과 대교의 수호상으로 만든 것이다. 강남쪽에는 암수사자 2마리가,강북쪽에는 호랑이 2마리가 각각 한강을 등진 상태에서 서로 마주보며 포효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두 길이 2m,높이 1m 정도의 실제크기로 1·5m 높이의 기단위에 받쳐져 있다. 이가운데 북쪽의 오른쪽 호랑이는 아랫송곳니 2개,왼쪽 호랑이는 윗송곳니 1개를 틀니로 갈아끼웠다. 또 남쪽의 오른쪽 암사자도 아랫송곳니 1개를 새것으로 바꿨다. 모두가 10㎝쯤 되는 송곳니의 절반이상이 부서져 수호상으로서의 위용에 상처를 입었다. 자식없는 부부나 대입수험생을 둔 학부모,몹쓸병에 걸린 환자들이 근거없는 민간신앙에 빠져 한밤에 몰래 사다리까지 동원해 망치등으로 이빨을 부순뒤 부적으로 지니고 다니거나 갈아서 물에 타 마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석불의 코를 갈아 마시면 부처의 힘을 빌려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주술신앙」이나 명망있는 문인의 비문을 갖고 과거를 보면 장원급제한다는 민간의 「기복신앙」에 기인한다. 즉 힘이나 기적을 상징하는 물건을 몸안에 지니면 똑같은 효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유감주술의 영향이란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험을 느꼈다거나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같은 신앙때문에 이빠진 제왕들이 「틀니」일망정 뒤늦게 제모습을갖춘것은 지난 9월말. 차를 타고 우연히 한남대교를 지나던 이종구 전국방부장관이 이를 보고 이상배서울시장에게 시민의 입장에서 『사소한 것일수록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며 보치를 귀뜸해준 것. 이시장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장안의 유명한 석수장이 김세중씨(38)에게 틀니 제작을 의뢰했다. 김씨는 훼손된 부분이 오랫동안 방치돼 있어 강력접착제를 쓰기위해 쌓인 때를 염산으로 3일동안이나 씻었다고 했다. 또 며칠만에 가까스로 찾은 똑같은 석재에 강력접착제를 바른뒤 부서진 이빨주위에 시멘트로 보강했다. 처음 석상을 만든 홍익대 전교수는 『비록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지만 이빨이 부서져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다』면서 『말못하는 석상이라 해도 허황된 믿음때문에 시민의 재산인 수호상을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계도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러한 사이비 믿음때문에 전국의 오래되고 유명한 석불이나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코가 거의 남아나지 않았으며 치악산 용머리상의 뿔과 소요산 사자상의 이빨도모두 뽑혀져 있다.
  • 겨울하늘 철새군무 장관/청둥오리·고니 등 1백10종 “비상”

    ◎팔당호·창원 주남저수지 등 명소 북녘에서 날아온 겨울철새들이 힘찬 날갯짓으로 반기는 동절기 탐조여행를 떠나보자. 대부분의 겨울산야가 생기를 잃고 황량하기만 한 반면 전국에 걸쳐 퍼져있는 겨울철새 도래지는 겨울답지 않은 생동감이 넘친다.날개를 퍼덕거리며 하늘로 치솟아오르는 철새들의 비상은 겨울이 선사하는 드문 볼거리이자 귀한 활력소이다.특히 겨울방학을 맞았으나 별다른 야외활동의 기회가 없는 어린이·청소년들에게는 자연학습을 겸한 탐조여행이 적극 권장되고있다. ○가족레저로 정착 10여년 동안 어린이 탐조여행을 지도해옴과 동시에 힘닿는대로 이를 홍보해온 서울 방산국민학교 임채수교사는 『탐조여행은 어린이들의 정서를 함양하고 자연에 대한 경이감을 느끼게 하는 데 가장 좋은 활동』이라고 추천한다.어린이 뿐아니라 성인들에게도 겨울 탐조여행은 소모적인 행락이 아닌 청량한 레포츠로서 관심을 끌고있다.탐조(버드워칭)는 본래 2백년전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뿌리를 내린 사계절 취미활동이었으나 겨울철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동절기 야외레저의 측면이 강하게 부각된다. 총 3백10여종의 국내조류 중 늦가을 북녘에서 남하,3월까지 우리 산야에서 월동하는 겨울철새는 1백10종에 달한다.그중 쇠기러기,청둥오리,재두루미,고니,갈가마귀,콩새,솔잣새 등이 대표적인 철새.겨울철새들은 인근 저수지나 강변,한적한 습지 등 평범한 곳에서도 찾을 수 있으나 수만마리가 무리지어 노닐고 하늘을 뒤덮으며 한꺼번에 비상하는 장관을 보려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철새도래지를 찾아야 한다. ○한강 전망대 인기 경남 창원군 동면과 대산면에 걸쳐있는 주남저수지는 몇해전까지 국내 최대 도래지였던 을숙도가 낙동강 하구공사로 그 역할을 못하게 된 후 새로운 철새도래지로 각광을 받고있다.1백80만평의 드넓은 수면과 주변 갈대밭이 아늑한 보금자리를 제공해 고니,오리,기러기류의 70여종 10여만마리 새들이 모여 겨울을 난다. 또한 강원도 철원군 민통선 지역은 지난 89년부터 민간인들에게 제한적으로 개방된 곳으로 갈대밭이 넓게 펼쳐져 시베리아 두루미와 재두루미 등이 떼를 지어 모여산다.민통선 지역은 보름 전에 국방부나 철원군청에 출입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므로 개인보다는 단체로 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대규모 간척공사 결과 들판과 담수호로 탈바꿈된 충남 태안,서산반도,대호방조제 등을 낀 서산간척지도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이곳에서는 청둥오리나 흰죽지오리,흰뺨검둥오리,흑고니 등을 관찰할 수 있다.이밖에 강화도의 동남쪽에 있는 화도면 간척사업지,충남부여와 전북익산의 금강하구 일대,경북 고령,전남 진도,강원도 동해안의 송지호·경포호·청초호,제주도 성산포 등에서도 겨울새들의 멋진 비상을 구경할 수 있다. 한편 서울 부근에서는 행주대교근처,밤섬,잠실수중보,미사리 당정도 주변,팔당호 등지에 가면 기러기,오리류 등 각종 철새를 발견할 수 있다.여의도 순복음교회 주차장부근의 한강시민공원에는 조류전망대가 마련되어있어 인근 밤섬의 철새등을 망원경으로 살필 수 있다. ○쌍안경 등 갖춰야 탐조에 필요한 장비는 쌍안경과 필기도구 등이며 복장은 등산복 차림이 알맞다.늪지대에 갈경우 운동화와 함께 장화도 준비한다.새떼에서 보통 3백∼4백m 떨어져 관찰해야 하므로 쌍안경의 경우 7∼8배 배율이 적당하다.좀 더 전문적인 관찰을 할 경우에는 자연도감,망원경을 고정시킨 필드스코프,망원렌즈가 부착된 카메라,녹음기 등을 준비하여 사진촬영하거나 새소리를 녹음하고 특징을 메모해둔다. 탐조할 때는 잡담을 하지 말고 또 옥수수나 밀·보리와 같은 새먹이도 준비해 관찰이 끝난 뒤 논둑이나 습지에 뿌려주고 오는 것도 잊지 않도록 한다. 한국조류보호협회(02­797­4765∼6)에서는 초보자들을 위해 탐조장소와 방법등에 관해 상세히 조언해주고 있어 떠나기 전 안내를 받으면 아주 편리하다.철새도래 지역과 인근의 관광지를 함께 둘러보는 가족및 그룹단위 여행도 계획해 볼 수 있다.
  • “국민 화해”새정부 출범앞서 단안/26명 전격 특사·가석방의 의미

    ◎갈등해소 차원… 6공이후 범법자들 대상/통일 강력추진위해 임양·문 신부도 포함 정부가 24일 이른바 5공비리사건관련자와 수서사건관련자,그리고 밀입북사건관련자등 모두 26명에 대해 특별가석방·사면·복권등의 조치를 내린 것은 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이끌 신정부출범을 앞두고 국민대화합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 용단으로 풀이된다. 특히 그동안 국내외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 왔으나 국기수호차원에서 미뤄왔던 임수경(24)문규현씨(43)에 대한 가석방조치는 현재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나 앞으로 신정부출범시 활발히 전개될 남북대화에서 포용력있는 주도권을 잡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여 환영할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가 이같은 큰 폭의 조치를 내린 것은 6공화국들어 발생했던 이들 사건들로 인해 국력이 흐트러지고 갈등이 삼화됐던 만큼 새정부가 불필요한 부담을 갖지 않고 출발할수 있도록 해준 조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더욱이 이들에 대한 조치가 결자해지차원에서 6공의 노태우대통령이 김영삼대통령당선자의 건의를 받아들여 용단을 내린 것도 차기정부에서는 이같은 사건으로 더이상 국력을 소모해서는 안된다는 강렬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할수 있다. 다시말해 그동안 「5공세력」 「6공세력」으로 지칭되며 미묘한 갈등관계를 보여왔던 부정적인 요소가 이 조치로 화해의 기틀이 마련됐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사면되거나 복권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집행유예나 가석방등으로 이미 풀려나 있는 상태여서 이번 조치는 그동안 여론의 눈치를 봐오다 마침내 해줄 것을 해주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번 조치는 김영삼대통령당선자의 최근 구여권인사들과의 접촉과 전혀 무관치 않으며 「재야」에서 온갖 고초를 겪은 그가 결국 대통령에 당선,국론을 모아야 한다는 심정이 최대한 반영됐다는 점에서 지금처럼 단죄보다 용서가 더 필요한 시점에서 내려진 바람직한 조치라 하겠다. 아울러 신정부출범뒤 국내외적으로 중점추진사안 가운데 0순위인 남북문제에 있어서 임씨와 문신부의 석방은 북측이 걸핏하면 걸고넘어지면서 각종 남북접촉을 회피하는 구실을 줘왔던 걸림돌을 일거에 제거,그만큼 우리측의 입지를 넓혀줬다. 또한 이들이 북한을 밀입북한 것이 결과적으로 북측의 선전전에 큰 이익을 줬던게 사실이지만 이들의 입장은 어린 나이에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정부가 포용함으로써 석방이라는 실정법과 현실사이의 절충점을 찾았다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번의 대사면·복권조치는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단행된 만큼 국민대화합을 위해 크게 환영받을 조치라고 하겠다.
  • 황새 10년만에 나타나 5마리 서산간척지에

    【서산】 천연기념물 199호인 황새 5마리가 10년만에 처음으로 국내에서 발견됐다. 24일 충남 서산군과 주민들에 따르면 조수보호구역인 서산 A·B지구 간척지내 담수호에 지난 11월부터 30여종의 철새 20여만∼30여만마리가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고있는 가운데 황새 5마리가 날아 다니는 것이 지난23일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는 것이다.
  • 독도 수호신 「해태암」찾았다/동도서 1백m거리 “뿔달린 사자”모습

    【대구=이동구기자】 전설속의 수호신 해태의 형상을 띤 바위가 한 경찰관에 의해 독도에서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경북 경찰청 항공대장 배영찬경감(42)은 경북 울릉군 남면 도동 산42와 산75사이(동경 1백31.52 북위37.14)에서 이 바위를 발견,지난달 울릉군과 국토지리원에 「해태암」으로 명명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바위는 독도를 이루고 있는 두개의 큰 바위섬 가운데 하나인 동도에서 1백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바위중앙에 폭2∼3m의 굴이 있어 그동안 울릉도 사람들에게 「동굴바위」로 불리어 왔으나 배경감이 헬기를 이용,북쪽에서 사진촬영한 결과 머리에 뿔이 한개있고 사자와 닮은 높이 10m,둘레 50여m의 해태상임이 드러났다는 것. 배경감은 『일본이 기회있을 때마다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독도에 전설속의 수호신 해태가 버티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동쪽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이러한 의미를 전국민에게 알리고 싶어 해태암으로 명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 「부산모임」 4명/검찰,오늘 소환/사법처리자 선별

    대통령선거법 위반사범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공안1부는 20일 「부산지역기관장모임」사건과 관련,녹음테이프검증및 녹취록 전문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넘겨받아 21일부터 시작될 관계자들 소환에 대비했다. 검찰은 녹취록과 테이프검증결과 내용이 국민당측이 발표한 관계자들의 발언내용보다 3배에 가까운 것으로 많은 부분에서 발언자가 명확히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히고 국과수가 4∼5일동안 정밀음성분석을 추가로 마친뒤에나 명확한 발언자와 내용이 파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국민당측이 문제의 녹음테이프와 사진등을 입수한 경위등을 가려내기위해 고발인인 국민당 유수호의원등을 조만간 다시 소환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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