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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건축 이야기] (13) ‘법이 머무는 곳’ 법주사 팔상전(捌相殿)

    [종교건축 이야기] (13) ‘법이 머무는 곳’ 법주사 팔상전(捌相殿)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주지 도공 스님). 신라 진흥왕조인 553년 의신 스님이 창건했고 혜공왕조인 776년 진표 율사가 중창한 ‘호서제일가람’이다. 정유재란때 불타 없어졌지만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1624년에 복원된 사찰.‘법이 머문다.’란 뜻의 법주(法住)는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에 유학했던 창건주 의신 스님이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와서 후학을 양성할 절터를 찾기위해 머물렀다는 연기설화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시대에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법상종 종찰의 면모를 유지해 왔으며 지금은 국내 대표적인 미륵도량이자 화엄사찰이기도 하다. 산내암자 11개, 말사 80개를 거느린 주요 본사답게 이런저런 사연이 많지만 아무래도 법주사의 핵심은 국내 유일의 목조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이다. 흔히 사찰의 탑이라면 화강석으로 만든 석탑을 떠올릴 만큼 나무로 세운 목탑은 생소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원시불교 이래 탑전은 목조의 전통을 유지해 왔으며 ‘삼국유사’ 등에도 탑의 시원이 목조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전한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도 목탑이 세워진 사실이 만복사지 탑지에서 밝혀졌고 조선시대까지 전해져왔음이 각종 유적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법주사 팔상전으로, 이 팔상전은 현재 목조 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1984년까지만 해도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이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목조탑의 쌍벽을 이뤘으나 아쉽게도 소실됐다. 법주사 경내의 중심에 선 팔상전은 사방에 계단이 설치된 석조 기단위에 5층으로 올린 5층 목탑이지만 내부는 가운데 벽을 중심으로 한 통간 건물로 되어 있다. 정사각형 모양의 사찰 전각 기단은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다. 특히 동서남북에 배치된 계단은 구도자에게만 허락된 수행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통한다. 기단에 올라서 안으로 들어가면 사방 네 벽에 두 폭씩의 팔상도가 모셔져 있음을 보게 된다. 그 벽면 앞에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했고 불상 앞에 납석원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전체 5층 가운데 1·2층은 5칸,3·4층은 3칸,5층은 1칸으로 구성한 것도 특이하다. 팔상전이란 석가여래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인 팔상도를 모신 전각. 쌍계사. 통도사. 운흥사. 선암사. 범어사 등의 팔상전에서도 이같은 팔상도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찰의 팔상전에 모셔진 팔상도가 불단을 향해 평면적으로 나열되어 한꺼번에 전체를 볼 수 있지만 법주사 팔상전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한가운데 조성된 네 벽을 돌아가면서 각 벽면에 두 폭씩을 배치했기 때문에 한 곳에서 전체를 다 볼 수가 없다. 팔상도의 8폭을 전부 보기 위해선 팔상전 안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팔상도를 따라 돌다보면 결국 가운데 벽 심초석(心礎石)에 봉안된 불사리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탑돌이를 하게 되는 셈이다.(지난 1968년 팔상전을 해체수리할 때 심주(心柱) 밑에서 사리장치(舍利裝置)가 발견되어 이곳이 불사리를 봉안한 장소임이 확인되었다. 목탑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것은 법주사 팔상전이 처음이다.) 팔상도를 따라 탑돌이를 한 뒤 문을 나서서 지붕을 올려다보면 2층 처마 아래 모서리에 새겨진 난쟁이 모습의 인물과 용 형상이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연꽃 봉오리 위에 쪼그려 앉아 두 팔과 머리로 추녀를 받친 모습의 난쟁이상이 흥미롭다. 왕방울 눈에 나선형 눈썹과 짙은 수염을 갖고 있는데 부처님을 공양하고 불전을 수호하는 불교 외호신 중 하나라고 한다. 법주사 팔상전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불사리를 봉안한 탑에 더해 예배 공간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탑의 내부를 예배공간으로 썼던 기록은 삼국유사 권5 ‘월명사도솔가(月明師兜率歌)’조의 “동입내원탑중이은(童入內院塔中而隱)”이라는 구절에 처음 나타나는데 “동자가 탑 속으로 숨어들었다.”는 내용이다. 학계에서는 사람이 탑 안으로 숨어든다는 것은 탑 내부에 큰 공간이 있었음을 의미하며 법주사 팔상전이 바로 동자가 숨어들었다는 그 탑 형식의 목탑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팔상전은 지난 1968년 해체 보수공사 이후 내부 통풍이 안되고 벽면에 습기가 심하게 차오르는 등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법주사 주지 도공 스님은 “미륵신앙과 화엄사상을 함께 담은 법주사의 중심건물인 팔상전은 불사리 봉안처로서의 탑 성격과 예배장소의 기능을 동시에 갖춘 유일한 탑전인데 예산과 보존 처리의 어려움 때문에 훼손되어 가는 문화재를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kimus@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법주사의 명물들 법주사 경내 곳곳에는 크고 작은 명물들이 들어서 있다. 팔상전을 비롯해 석련지, 쌍사자석등이 국보로 지정됐고 보물도 12점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국보·보물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과 사천왕상, 석련지, 대웅보전, 금동미륵대불은 신도와 관람객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 문화재들이다. 우선 일주문을 지나 팔상전과 대웅보전을 가기 위해 통과하는 천왕문의 사천왕상은 국내 사찰중 가장 큰 규모. 천왕문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조선 후기 맞배지붕 건물인데 중앙 통로 양쪽 2칸에 높이 5.7m, 둘레 1.8m 크기의 사천왕상을 2구씩 배치해 천왕문을 통과하는 이들의 시선을 제압한다. 사리각 옆 암벽에 조각된 전체 높이 6.18m 크기의 마애여래의상도 독특한 불상. 둥근 얼굴과 감은 듯 뜬 눈에 잘록한 허리 등 비사실적인 추상이 인상적이다. 연꽃 잎이 불상 주위를 둘러싼 연봉이 불상을 둘러싸고 발 아래엔 반쯤만 조각된 연화문상석이 놓여 있다. 석련지는 원래 법주사의 본당이었던 용화보전의 장엄품을 설치했던 것. 신라 성덕왕조때 화강석으로 조성됐는데 8각 지대석 위에 3단의 굄을 만들고 다시 굄돌을 올려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무량수의 감로천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신라 진흥왕때 창건된 대웅보전 안의 불상 3구는 국내 사찰 법당에 봉안된 소조불 좌상중 가장 큰 것. 중앙에 비로자나불, 좌측에 노사나불(아미타불), 우측에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각각 마음, 덕, 육신을 뜻한다고 한다. 최근 개금불사를 마치고 점안식을 가졌다. 팔상전 왼편, 미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하는 금동미륵대불은 국내 최대의 규모.8m 높이의 기단 위에 25m높이로 조성됐는데 소요된 청동만도 160t이나 된다고 한다.
  • 4野 ‘인준안 처리협의’ 진통

    4野 ‘인준안 처리협의’ 진통

    전효숙 헌법재판관 및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관련, 여야는 19일 본회의 상정 여부를 놓고 논란을 거듭했다. 한나라당·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 등 야4당은 18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원내대표 회담을 갖고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 여부를 논의했지만 한나라당의 강경 입장 때문에 합의에 실패했다. 야4당은 19일 다시 회동, 합의를 도출할 예정이나 전망은 유동적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19일 처리’ 방침을 분명히 했다.18일 밤부터 전체 당직자·국회의원·의원보좌진·사무처직원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린 상태다. 국회의장 직권상정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지난번 사학법 처리 때처럼 하루 전날부터 본회의장 주변을 ‘인의 장막’으로 둘러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이라도 ‘우군’으로 삼아 강행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19일 본회의 상정 가능한가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1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느냐, 마느냐는 소야(小野) 3당의 합의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 같다. 야3당은 본회의 전 재회동 때까지는 앞서 합의한 대로 보조를 맞추겠지만 그 자리에서도 합의에 실패할 경우, 각자 입장대로 갈 것 같다. 특히 전 후보자에 대한 새로운 ‘위헌’ 주장이 제기되면서 야3당의 입장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헌재재판관의 경우, 임기를 다 채워야 연임이 가능한데 전 후보자는 중도 사퇴한 만큼 연임이 아니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민노당 권영길 의원단대표는 이날 회담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19일까지도 국회가 파행운영되면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새로운 위헌 주장이 제기됐는데도 이 문제를 안고 가야 하는지 고민”이라며 “그럴 수는 없지 않으냐.”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이대로 19일 처리만 합의해주면 지난번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안 처리 때처럼 ‘열린우리당 이중대’라는 불명예를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난감해했다. ●직권상정시 여야 물리적 충돌 불가피 열린우리당이 18일 밤부터 비상대기령을 내린 것은 일단 한나라당의 본회의장 점거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의장 직권상정을 위한 사전 포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이나 민노당 가운데 하나라도 동의하면 직권상정을 통한 처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수석부대표단은 이날 밤늦게까지 민노당 의원들을 상대로 집중적인 설득 작업을 펼쳤다. 노웅래 원내수석부대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19일 표결처리할 것”이라면서 “민노당만 협조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근태 의장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역대 어느 야당이 한나라당 같은 ‘막가파’식 행태를 보였느냐.”면서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할테면 해보라.’며 짐짓 태연한 모습이다. 일부 야당과 합세해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더라도 ‘헌법 위반·원천 무효’ 주장을 지속함으로써 청와대와 여당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이에 동의한 다른 야당도 ‘위헌 세력’으로 몰아가겠다는 것이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야4당 원내대표 회담에 앞서 기자와 만나 “열린우리당은 헌법과 법률 위반에 동참해달라며 생떼를 쓰고 있지만 헌법 수호세력임을 자처하는 한나라당이 공범으로 전락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전광삼 구혜영기자 hisam@seoul.co.kr
  • [Local]울산 음식축제 14일 문수체육공원

    한국음식업중앙회 울산시지회는 제40회 처용문화제 행사기간에 맞춰 14∼17일 울산 남구 문수체육공원에서 제7회 울산음식축제 행사를 개최한다. 축제기간 향토·전통 음식 판매(11곳)와 무료시식회(17곳)가 열리고 떡치기 시연을 비롯한 이벤트 행사와 좋은식단 홍보 전시회 등도 마련된다. 처용문화제는 14일 오후 문수호반광장에서 개막식을 갖고 시작돼 울산시 곳곳에서 17일까지 열린다.
  • “한우산업 지켜 식량안보 기초를”

    한우 축산농가들의 축제인 ‘제6회 전국 한우인의 날’ 행사가 14일 경기도 이천시 설봉공원 일원에서 축산인과 가족 등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전국한우협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한우산업 안정화, 농촌의 미래보장’을 주제로 15일까지 진행된다. 개막식은 ‘한우인 화합의 날’ 창립기념식을 시작으로 한우산업 유공자 포상,‘한우인 생존권 수호’를 위한 결의문 낭독,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또 한우영상기획전, 한우사진 및 조각품전, 쇠고기 생산이력전 등 각종 전시회도 마련됐다. 남호경 전국한우협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등으로 축산농가의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우리가 노력한다면 지키기에 급급한 한우산업이 아닌 대한민국의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중요한 기간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5일에는 ‘한우와 소비자의 만남’을 주제로 한우브랜드 전시 및 소비자 시식회, 안성 남사당패 공연 등이 열린다. 시식회에는 경기지역 대표 한우 브랜드인 이천 맛드림, 안성맞춤, 양평 개군한우와 경기남부 광역 브랜드인 한우람 등이 참가한다. 행사기간 이천 시립박물관과 청강 만화역사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도자기제작, 세계도자센터, 설봉호텔, 미란다스파 등의 시설도 할인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또 축산기자재 전시회, 도예교실 등이 운영되며 이천지역 특산물인 쌀·복숭아·도자기 등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이천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박물관에 가면 볼거리·이벤트 ‘풍성’

    박물관들이 가을을 맞아 풍성한 볼거리와 체험 이벤트로 관객들에게 다가서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은 30일부터 매주 화·목·토요일 중앙박물관 메인오디토리움에서 고구려를 소재로 한 국수호의 춤극 ‘The Han(韓):에피소드1-무천(舞天)’을 선보인다.주몽·소서노 등 주인공들을 화려한 춤극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추석 연휴인 다음달 3일과 6∼7일에는 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공연된다. 재단은 또 다음달 8일까지 진행되는 특별전 ‘천년을 이어온 빛-나전칠기전’에 맞춰 나전칠기를 응용한 수첩·보석함 등 문화상품 82종을 전시, 판매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3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전북 오지의 진안 오천초등학교 어린이 32명을 초청, 박물관 문화체험과 청계천 등 답사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지난 5월 ‘찾아가는 박물관’을 통해 알게된 학생들을 서울로 초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전 옛터민속박물관은 23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11차례에 걸쳐 선조들의 천연 염색 문화를 체험하는 ‘천연 염색 체험교실’을 개최한다.과천 선바위미술관은 이달 30일까지 15차례에 걸쳐 초등학생 1∼6학년을 대상으로 ‘새롭게 만나는 전통문화 다섯친구’프로그램을 진행한다.풍속화와 전통판화, 전통놀이, 전통음식, 전통부채 등으로 나눠 직접 체험해보는 자리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24일 안산 선감어촌체험마을 등에서 가을학기 체험교실 ‘갯벌속 생물탐사’를 진행한다. 갯벌생물에 대해 배우고 바지락을 직접 캐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된다. 국립춘천박물관이 16일 여는 ‘책으로 만나는 문화재교실-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는 어린이들이 책을 통해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7) 신앙·사고상징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7) 신앙·사고상징

    대다수의 민족문화재나 문화상징은 종교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종교는 엘리트의 고매한 종교사상이나 우리네 소박한 삶의 논리에서나 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렇다고 종교라는 것이 늘 추상적인 인식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교인의 삶을 대하면서 그것이 현실의 자리에서 늘 삶의 긴박한 문제를 풀어내는 기제임을 쉽사리 확인하게 된다. 갖가지 신앙을 통해 혹은 적극적인 의례나 소극적인 금기와 꺼림을 통해 현실의 질곡과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의 종교문화는 인식을 넘어선 풀이의 몸짓이었다. 그러면서도 종교는 일상을 지탱할 삶의 핵심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의미망의 토대였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을 살면서도 아노미에 젖어들지 않는 것은 종교를 자양삼아 삶의 가치와 기틀을 굳건히 유지하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신앙 및 사고와 관련된 9개의 민족문화 상징들은 삶의 궁극적인 물음과 해답을 향한 몰입과 발산이었으며, 실제로 삶의 응어리를 풀어내려는 바람이자 몸짓이었으며, 세계를 품는 안목과 가치의 본산이자 근원이었다. 분명, 우리 민족은 뜨겁고 화끈한 민족이다. 그러나 우리는 열을 내는 문화와 더불어 능동적으로 그 열을 식히고 가라앉히는, 다시말해 삶의 열기를 조율하는 냉정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선(禪)의 문화가 그것이다. 선은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가는 샤먼의 엑스터시와는 달리 정신의 몰입(엔스타시스)을 통해 마음의 번뇌를 끊고 내면의 평정을 얻으려는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수행이다. 치열한 일상의 어지러운 삶에 고요와 집중을 끌어들여 삶의 활력을 일으키는 선은 이제 산간의 선방의 문지방을 넘어 도시의 시민문화와 스포츠문화에까지 이르고 있다. 평상의 삶에서 문득 자기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불성(佛性)을 발견하는 각성과 몰입이야말로 현대의 정신 웰빙과도 통한다. ● 禪 - 내면의 평정을 ‘닦는 의례’ 선이 한국인의 내면을 ‘닦는 의례’라면 굿은 한국인의 ‘비는 의례’이다. 굿은 치병, 점복, 의례의 종교전문가인 무당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 속에서 얽히고설킨 문제의 근원을 궁극적으로 살피고 종국에는 그것을 풀어내는 발산의 몸짓이다. 염원을 몸으로 발산하기 때문에 굿이 벌어지는 판에는 늘 열기가 가득하다. 춤과 무악은 그 열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북과 춤으로 신명에 도달한다(‘周易’鼓之舞之以盡神)는 의미에서 고대 부여의 영고(迎鼓)나 동예의 무천(舞天)과 같은 제천의례에서 춤과 음악의 굿 문화를 발견하게 된다. 때론 그런 굿문화가 음사(淫祀)의 굴레로 위축되기도 했으나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신적인 몰입뿐만 아니라 가무로 삶의 에너지와 열기를 역동적으로 발산하려는 풀이의 몸짓은 한국인을 뜨겁게 만드는 문화였다. 유교문화가 지성인에게 늘 마음 닦을 것(修心)을 강조하고 있을 때, 굿은 삶의 질곡에 지친 민중의 상한 마음을 달래주고(安心) 있었다. 민중의 구복적 욕망을 의례로 분출시키는 무속과는 달리, 신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인간의 성실한 의무 이행을 목표로 하는 유교문화는 외면적으로는 제물을 다하고, 내면적으로는 성의를 다하는 것이 제사에 임하는 태도임을 늘 강조하였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우리 유교문화의 자랑인 종묘와 종묘대제는 이러한 유교의 경건주의적인 태도를 현재까지도 지속하고 있다. 기일에 맞추어 진행된 능제사와는 별도로 납일과 춘하추동 사시를 포함해, 모두 5회에 걸쳐 종묘대제가 정기적으로 거행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단순히 왕실의 조상숭배의 차원을 넘어서 자연의 질서와 주기를 인간의 삶에 아로새기는 우주론적인 차원의 의미를 지닌 의례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무속의 굿문화로 삶의 뜨거움을 발산하기도 했고 선의 문화로 냉정과 고요를 되찾으며 삶의 궁극성에 몰입하기도 했으며, 유교의 경건하고도 정제된 몸짓을 통해 도덕질서와 우주의 질서를 일원화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은 세계를 바꿀 마지막 희망으로 미륵(彌勒)을 대망하기도 하였다. ● 미륵 - 염원하는 미래-희망의 상징 미륵(산크리트어 Maitreya)은 본래 미래불로서 세상에 하생하기 전까지 성불을 미룬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보살이지만 그 어떠한 명상과 기원으로도 희망을 찾지 못할 때 강력하게 요청된 한국인의 메시아였다고 할 수 있다. 미륵의 화신으로 일컬어진 화랑, 정치적인 격변기에 미륵이기를 서슴지 않았던 궁예와 고려말의 이금, 그리고 석가불을 능가하는 미륵불을 강조하며 자칭 미륵불임을 내세웠던 조선후기의 여환 등은 혼란을 일소할 힘과 권위의 상징으로 미륵에 주목했던 것이다. 한말 이후에는 미륵신앙이 영적인 천재들에게 의해 신종교의 형태(미륵불교, 용화교)로 조직되기도 하였다. 한국인은 삼국시대의 미륵반가사유상을 보면 느껴지듯이, 미래의 세계를 예지하는 미륵의 사유를 늘 떠올리면서도 한편으론 경건하고도 엄중한 석가를 능가하는 힘 있는 상징으로 미륵을 떠올렸다. 미륵은 한국의 보통사람들이 염원하는 미래와 희망의 상징이었고, 현실의 질곡과 역사의 공포를 이겨내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었다. ● 도깨비 - 특유의 해학과 재치 상징 거창하게 세상의 운세를 바꿀 미륵을 대망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이 늘 심각했던 것은 아니다. 위력이 넘치고 재주가 많은 초월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한국인의 상상력은 세상을 약간 비켜 볼 수 있는 재치와 여유를 늘 간직하고 있다. 한국인의 신앙적 정서에는 떨리는 두려움과 더불어 친근한 매혹도 함께 있는 것이다. 도깨비가 꼭 그렇다. 변신과 둔갑의 귀재이지만 허깨비로 여겨질 정도의 막힘과 허술함이 남녀노소 누군가에게나 해학 거리로 통한다. 도깨비는 벽사신앙의 상징이면서도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마저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한국인의 상상력의 소박한 유산이다.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에 마냥 조아리지 않고 특유의 해학으로 공포마저 되먹임하는 한국인의 내적인 힘에 감동하게 된다. ● 서낭당 - 성스런 공간의 형상화 한국인의 상상의 힘은 공간으로도 형상화된다. 성스러운 공간 속에서 새로운 삶의 기력을 얻고자 했던 서낭당 신앙과 새로운 신성 공간의 구획인 금줄문화는 공간에 투영된 한국인의 상징이다.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을 모시는 어엿한 공간이나 단출한 신수(神樹)와 소박한 돌무더기의 차림새에서 우리네 조촐한 일상에서 삶의 공간을 정화하고 신성화하려는 종교적 상상력을 자연스레 확인할 수 있다. 금줄도 그렇다. 꺼림과 경계 세움을 통해 공간을 구획하고 갱신시키는 것이 금줄이다. 한낱 새끼줄이 획기적으로 공간의 질을 변형시키는 엄청난 힘을 지니는 것이다. 금줄을 보면서 우리는 성역과 속역을 가름하는, 새끼줄에 얹어진 한국인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유교문화는 그저 동물적인 차원의 보은을 넘어서는 규범으로 효의 가치를 갈고 닦아왔고 그것을 바탕으로 유교의 이상사회를 진전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유교는 이상적인 가치를 실현한 삶의 전형으로 선비에 주목하였다. 이른바 공부하는 사람의 이상적인 삶의 표상으로 선비가 숭앙되었던 것은 선비가 자신의 삶을 맑게 하고 또 타인의 삶마저도 정화해낼 만한 가치의 체계를 굳건하게 확립한 주체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의 중심세력이었던 사림들은 독서와 인격수양을 통해 유교의 이념과 가치를 몸에 익히고 강상과 절의에 찬 의리론을 사회적으로 실현하려 하였다.‘맹자’가 전하는 대로, 선비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연마하면서도(獨善其身) 자신의 연마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교화하고자 하는(兼善天下) 삶의 목표를 통해 유교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를 실현하는 전형이다. 이러한 선비정신이야말로 실리적이고도 현실적인 목표에 사로잡힌 조급한 현대교육의 병을 치유하는 동시에, 양심과 도덕의 완성을 추구하는 건전한 지식사회의 모델로 주목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역사에서 무속-불교-유교-서학(가톨릭)-동학(신종교)-기독교(개신교) 등이 종교문화의 형성에 결정적인 충격과 파장을 일으켜 왔건만 우리의 삶의 넓이에 포진하고 삶의 깊이에 도달한 상징으로 주목받은 것은 아직 무속(굿, 서낭당, 도깨비, 금줄), 불교(선, 미륵), 유교(효, 선비, 종묘와 종묘대제) 등의 문화로 국한되고 있다. 후발의 종교문화도 한국인의 상상과 사고의 기반에서 구체적인 현실성을 얻어간다면 우리는 보다 풍부한 민족문화의 상징을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최종성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 [사설] ‘전효숙 해법’ 사과와 인준절차 병행해야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헌재의 소장이 취임 전부터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제 전효숙 후보 임명 과정의 잘못을 치유해야 한다. 갈등이 장기화해서는 안된다. 한나라당은 전효숙 후보가 재판관으로 재임명되는 절차를 밟아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위법이므로 인선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기왕에 진행된 헌재소장 후보 인사청문회를 재판관에 대한 청문회로 갈음하기로 협의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현 국회법이 재판관과 소장에 대한 청문회를 각각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앞으로 한 차례만 하도록 개정해야 하는 데다 현 상황에서 전 후보에 대한 청문회를 또다시 여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절차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청와대나 여당의 사과·유감 표명이 선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이 헌법재판관 중에서 재판소장을 임명토록 한 것은 임기 6년의 소장을 막자는 취지가 아니다. 현재 재판관이 아니더라도 경륜 있는 법조인이라면 재판관 임명과 동시에 재판소장으로 임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효숙 후보의 사례는 법 절차상으로만 문제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야당도 절차상 잘못을 치유한 뒤 마땅히 임명동의안 처리에 응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끝까지 응하지 않으면 법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먼저 국회 법사위에서 전효숙 재판관 후보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 재판관 임명 과정을 마치고, 시차를 둬 헌재소장 후보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연 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표결에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하고 시간낭비다. 가부간에 이를 먼저 처리한 뒤 여야는 민생안정 등 정치현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마땅하다.
  • “애국가는 ‘동해물과 장백산이’ 되나”

    “애국가는 ‘동해물과 장백산이’ 되나”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은 8일 이규형 외교통상부 제2차관에게 “중국이 단독으로 백두산의 세계 자연유산 등재를 검토하고 있는데 대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차관은 “아직 없다. 앞으로 강구하겠다.”고만 했다. 이날 국회 ‘독도 수호 및 역사왜곡 대책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놓고 이처럼 ‘대책 없는’ 우리 정부의 대응자세가 도마에 올랐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한목소리로 정부측을 매섭게 질타했다. 유 의원은 “앞으로 애국가 가사는 ‘동해물과 장백산’이 되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이어 “조선족 학생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발해가 말갈족이 세운 나라로 되어 있고,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술로 우리가 자랑하는 다라니경이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돼 있는데 교육부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느냐.”고 캐물었다. 같은 당 정성호 의원도 “외교부가 준비해 온 보고 자료가 대한민국 정부의 자료인지, 중국을 대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관련 부처 간에 ‘대응 온도차’가 존재하는 데 대한 질타도 쏟아졌다.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은 “국무조정실이 외교부에 제출한 문서에는 동북공정 주관 기관으로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중심과 동북 3성의 사회과학원, 대학의 연구소들’이라고 명시돼 있다.”면서 “국무조정실이 변강사지 연구중심을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주관 기관으로 보고 있음에도 외교부는 정부 입장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판단”이라고 질타했다. 같은 당 이해봉 의원도 외교부가 지난해 10월 국회에 보고한 ‘동북아역사재단 설립 관련 설명자료’를 근거로 “정부가 지난해 동북공정을 사실상 중국의 전략으로 규정했으면서도 최근 논란이 일자 단순한 연구기관의 주장으로 일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이날 회담을 갖고 동북공정 등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시하고 초당적으로 대처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해 지난 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가 채택한 ‘동북공정 등 중국의 역사왜곡 중단 및 시정촉구 결의안’을 적극 지지하는 한편 6월 임시국회에서 구성된 ‘독도수호 및 역사왜곡 대책 특위’를 적극 가동하기로 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중학교 국사 독립교과 추진

    중학교 사회교과에 포함된 국사과목이 독립교과로 바뀔 전망이다. 중국의 역사왜곡 문제에 대한 정부의 늑장대처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교육인적자원부 대책이다. 이종서 교육부 차관은 8일 국사 교육 강화 방안과 관련,“중학교 과정에서 사회교과 내에 포함된 국사 과목을 독립교과로 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이 차관은 이날 국회 독도수호 및 역사왜곡 대책 특위 회의에 출석, 중국 역사 왜곡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국사교육 강화 방안을 묻는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의 질의에 대해 “국사 과목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차관은 또 “대학입시에서도 대학이 국사 과목을 수능과목으로 선택하도록 적극 권장해나갈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지난해에도 교육부장관에게 건의됐던 것이어서 그동안 교육부가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판도 있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책꽂이]

    ●일본의 대미 무역협상(다니구치 마사키 지음, 차재훈 옮김, 한울아카데미 펴냄) 미국과의 통상마찰에 관한 경험이 많기로는 일본을 빼놓을 수 없다.1950년대 섬유마찰에서 시작해 철강, 컬러 텔레비전, 자동차, 반도체, 공작기계, 유통산업 등 일본은 그동안 미국과 온갖 부문에서 크고 작은 통상마찰을 겪었다. 이 책은 1970년대 이래 미국과 일본의 통상마찰 문제를 이론과 사례분석을 통해 꼼꼼히 다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책.2만 5000원.●한국유학통사(최영성 지음, 심산 펴냄) 유교 또는 유학은 공자를 중심으로 한 교학사상이다. 이 두 용어는 혼용되고 있지만 굳이 구분한다면 유교는 하ㆍ은ㆍ주 삼대의 선왕으로부터 공자에 전승돼 정립된 유가의 ‘가르침’을, 유학은 유교의 ‘학’으로 유교사상의 체계가 학문적으로 정립된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가 1990년대 펴낸 ‘한국유학사상사’의 개정판. 순수학술적인 면에 치중해온 기존의 유학사 서술방식에서 탈피, 사회사상사로서의 유학의 기능과 역할을 살핀 점이 눈에 띈다.전3권 각권 4만원.●나는 소세키로소이다(고모리 요이치 지음, 한일문학연구회 옮김, 이매진 펴냄) 근대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 그는 어릴 때 친부모와 양부모에게 버림받은 기억, 런던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동안 고향에서 죽어가는 친구 시키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죄책감, 평생에 걸친 다섯 번의 전쟁 때문에 외상을 안고 살았다. 이런 ‘신경쇠약 직전’의 남자가 내뱉는 냉소는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부터 마지막 장편 ‘한눈팔기’, 필생의 역작 ‘문학론’, 자기본위란 말로 유명한 강연 ‘나의 개인주의’에 까지 이어진다. 소세키의 사고와 소설의 세부까지 아우른 완성도 높은 평론.1만원.●불꽃(최승희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친일예술가, 월북예술가라는 꼬리표로 인해 그동안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던 신무용 창시자 최승희(1911∼1969) 자서전. 직접 쓴 9편의 수필과 친오빠이자 자신을 무용으로 이끈 정신적 지주 최승일과 주고받은 편지 3통이 실렸다. 최승희는 “군함은 나라를 위해 싸웁니다. 그러나 나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서양으로 싸우러 건너갑니다…어떤 경우에라도 민족은 망하지 아니하고 그 민족의 예술도 결단코 망하지 않는다고요.”라고 적고 있다.1만 1000원.●히포크라테스 선서(반덕진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히포크라테스가 속한 가문의 시조인 아스클레피오스는 기원전 13세기의 인물. 그의 후손들은 그를 의술의 수호신으로 삼아 대대로 의술을 전승해왔다. 아스클레피오스의 19대(혹은 18대) 후손으로 전해지는 히포크라테스 역시 가문의 전통에 따라 의사가 됐다. 히포크라테스의 시대에 와서 의사가 부족해지자 가문 내에서만 전수되던 의학교육이 외부 학생들에게도 개방됐고 이 과정에서 가문 외부의 학생들에게 요구된 것이 바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국내 첫 완역본.1만 5000원.
  • [사설] 편법이 부른 ‘전효숙 청문회’ 파행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의 파행은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만들어낸 ‘재앙’이다.‘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 헌법 111조 4항을 읽어 보면, 누구라도 재판관 중에서 재판소장을 뽑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제출했다. 이는 조순형 민주당 의원의 주장대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헌법재판관 및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냈어야 그나마 간신히 요건을 갖췄다고 주장할 수 있다. 여당 의원들은 헌재 소장 임명 속에는 재판관 임명까지 포함돼 있다거나, 전임 헌재 소장도 소장 임명 동의만 요청했다며 정치공세라고 맞서고 있으나 그렇게 치부할 성격의 일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권한을 행사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기관으로 날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헌법을 해석하는 기관의 장이 임명 과정에서부터 위헌·위법 논란에 빠져서는 안 된다. 편법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다. 국가 기관의 기강해이도 눈에 띈다. 조순형 의원은 전효숙 후보가 헌재 재판관을 사퇴했을 때부터 헌재와 중앙인사위에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그때 헌재나 중앙인사위가 청와대나 여당과 협의해 ‘헌법재판소장 임명안’을 ‘헌법재판관 및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으로 바꾸기만 했어도 이렇게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헌재 소장 임명 동의 절차에 관한 법도 정비해야 한다. 특히 재판관과 소장후보로 각각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돼 있는 현행 국회법은 한 차례의 청문회로 끝내도록 개정해야 한다.
  • 美 애리조나주에 돌하르방 건립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시(市)에 제주도를 대표하는 ‘돌하르방’이 건립된다.‘세도나 한국민속문화촌건립위원회’는 6일 현재 200에이커(24만여평) 부지에 건설중인 한국민속문화촌 입구에 제주도 평화의 수호신인 제주 하르방 2기를 세우기로 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돌하르방이 미국인들에게 한류(韓流)의 상징물이 될 것이로 기대하고 있다. 돌하르방은 제주도가 기증한 것이며, 제막식은 오는 19일 열린다.워싱턴 연합뉴스
  •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솟대-장승

    [한민족 문화유전자를 찾아서] 솟대-장승

    우리나라 대부분의 마을 뒷산에는 수호신을 모신 산신당이 있고, 마을 입구에는 장승과 솟대가 있다. 장승과 솟대는 마을 공동체 신앙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촌락의 역사와 민중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오랜 비바람의 풍파에도 아랑곳없이 오직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나그네에게는 이정표를, 사찰에서는 경계표를 자임한 장승. 민초들의 소박한 정서가 담긴 장승은 무섭기도 하지만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감을 주며 해학적이다. 마치 선량한 서민의 자화상을 보는 듯해 더욱 정겹다. 툭 튀어 나온 퉁방울 눈, 무뚝뚝한 코, 약간 삐뚤어진 듯한 얼굴, 거기에 살짝 벙거지를 올려 쓴 제주도의 돌하르방. 영락없이 불끈 솟은 남근이다. 살짝 비껴 보노라면 탄성이 절로 난다. 어느 조각가가 이만큼 깎을 수 있을까. 그것은 비록 이름 없는 석수장이의 솜씨지만 하나의 예술품이다. 거기에 빌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속신이 보태지면 그것은 단순한 석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체로 다가온다. 솟대는 장승과 함께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신앙의 대상물이었다. 짐대, 기러기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 솟대는 그 자체가 우주목(Worl Tree)으로 성역의 표시였다. 또 과거급제자의 표시와 가문의 행운을 비는 기념물로, 솟대 위에 앉혀진 물새로 화마를 막는 상징물이었다. 그야말로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지닌 솟대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 종교, 민속 등이 종합적으로 녹아있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나 대개 정월 대보름이 되면 전국곳곳에서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제나 장승제를 지내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우리네 풍속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인 영산줄다리기는 원래 정월 대보름에 행했으나 현재는 3·1 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하고 있다. 길이가 100m가 넘고 지름이 1m가 넘어 줄을 타고 앉아도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거대한 줄은 10여일에 걸쳐 만든다. 평소 농사일에 묻혀 흩어져 살던 농민들이 요란한 풍물소리와 함께 풍물패를 앞세우고 결집하는 모습,1만명이 넘는 남녀노소가 일제히 우렁찬 목소리로 ‘으∼샤, 으∼샤’하며 흙먼지를 부옇게 일으키며 당기는 모습. 놀이와 제의, 화합과 축제가 어우러진 줄다리기.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 줄다리기는 놀이 자체로서도 재미있지만 미리 풍흉을 점치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즉 다산을 위한 성교를 상징하듯 암줄과 숫줄을 결합하여 풍년에 대한 염원과 화합을 기원한다.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편을 가를 때도 남자, 여자로 가른다. 때문에 남자편이 일부러 져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깊고 가장 규모가 큰 민속축제는 단연 강릉단오제이다. 단오는 음력 5월5일로 일명 수릿날, 중오절이라고도 불리는데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단오의 ‘단(端)’자는 처음 곧 첫 번째를 뜻하고,‘오(午’)자는 오(五), 곧 다섯의 뜻인 초닷새를 이른다. 음력 4월15일 대관령 산신제로 시작된 강릉단오제는 대관령 성황신을 모셔와 강릉시내의 여성황사에 봉안하고 5월5일까지 계속된다. 본격적인 행사는 5월1일부터 대관령에서 흘러내린 물이 지나가는 남대천변 단오장에서 닷새간 열린다. 아침, 저녁으로 제를 올리고 굿을 하며 한마음으로 풍년과 풍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 행사기간동안에는 그네타기, 씨름, 농악, 무언극인 관노가면극 등 각종행사가 벌어져 수많은 예능인과 군중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긴 행렬의 난장이 이어진다. 강릉단오제는 무속과 신화, 유불선이 습합된 우리 고유의 향토축제다. 주민의 화합과 단결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제 관광 상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한마디로 현대축제가 갖추어야 할 전형을 보여준다. 강릉단오제는 이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축제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촌에서는 항시 서로 돕고 돕는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두레는 상부상조하는 미풍양속 중에서도 으뜸이다. 동제가 동심결취적 성격을 지닌 신앙적 결합이라면, 두레는 노동을 제공하거나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촌락사회의 결속을 다져온 협동체이다. 두레는 농작물의 생장기인 농번기에 구체화되어 모내기에서 김매기를 마칠 때까지 시행된다. 두레는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협동과 신명으로 풀어내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체계였다. 일명 ‘농악’이라 하는 것도 바로 두레에서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두레는 일과 놀이를 겸비한 상부상조 문화의 상징이요, 풀뿌리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현장이다. 우리 고향 모습은 어떤 것일까. 야트막한 동산아래 앞으로는 내가 흐르고 마을 동구를 가로질러 서 있는 정자나무, 그것이 고향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자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대변해준다. 여름철에는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써,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장으로 함께 해왔다. 정자나무 밑에는 들돌이 놓여져 있어,7월 백중엔 마을 청년들이 시원한 나무 밑에 모여 들돌을 들어 힘을 겨루고 장사를 뽑았다. 이를 ‘들돌들기’라 하였다. 양반 자제들의 성년식이 관례라면,‘들돌들기’는 서민들의 성년식으로 들돌을 들어 체력을 인정받아 당당히 어른의 품삯을 받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이렇듯 마을의 정자나무는 휴식과 신앙과 회합이 이루어지는 공동의 문화공간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산이 높으면 건물은 낮게, 반면 산이 낮으면 건물은 높게 지어 음양의 조화를 꾀하였다.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를 이룬 것이 우리네 건축 정서이다. 양지바른 산자락에 마치 암탉 둥지처럼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선을 자아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초가와 기와집들은 현대적 건물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옥은 구조에서부터 만드는 재료에 이르기까지 자연적이다. 마루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방이 있고, 부엌과 화장실은 마루를 통과하여 갈 수 있거나 별채를 따로 두었다. 방이 개인을 위한 닫힌 공간이라면, 서양엔 없는 대청은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이고, 마당은 큰일을 치르는 공간이다. 서양 가옥이 바람을 막는 닫힌 집이라면 한옥은 지나는 바람을 막지 않는 열린 공간이다. 때문에 우리네 집은 자연과 하나 되어 바람소리, 물소리, 흙냄새, 나무냄새를 느낄 수 있다. 흔히 한국의 미는 선(線)에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용마루나 처마 끝선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동양 삼국의 기와집을 보면 금세 구별이 된다. 중국은 처마와 추녀 끝이 너무 올라가 왠지 방정맞고, 일본은 처마가 직선으로 마치 무를 잘라낸 듯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이와 달리 한국의 처마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다. 마치 여인네의 살짝 올라간 버선코처럼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다. 부챗살 모양으로 배치한 서까래의 처마 곡선은 장중한 모양의 지붕을 사뿐히 나는 듯 보이게 하며 우아한 자태를 느끼게 한다. 우리네 대문은 밖에서 안으로 밀도록 되어 있는데 반해 서양의 문은 안에서 밖으로 열도록 되어 있다. 밖에서 안으로 밀어 열도록 한 것은 바깥으로부터 복이 들어오도록 한 것이다. 반면 방문을 대문과는 달리 안에서 밖으로 열도록 한 것은 들어온 복을 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어찌 서양의 기능적 면만 강조한 문과 비교되겠는가. 집의 얼굴이 문이라면, 창문은 집의 눈이요 표정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창은 유리로 막아 안과 밖의 공기 유통을 막을 뿐만 아니라 소리도 차단시킨다. 어디 그뿐인가 속내를 훤히 드러내어 은근한 멋이 없다. 하지만 우리네의 창은 창살에 한지를 발라 숨을 쉬도록 하였다. 우리의 창은 마음을 담아낸다. 밤늦도록 다듬이질을 하는 아낙의 정겨운 방망이 소리와 창가에 비친 모습, 이제나 저제나 오실까 숨죽여 애타게 님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여인의 설렘도 창가에 서린다. 한옥 마을이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소박한 곡선과 우아한 돌담이 사이사이 이어주기 때문이다. 담은 한옥의 완결체이다. 제주도는 한마디로 돌담의 세계이다. 산과 들에는 산담, 집에는 집담, 바다에는 바당빌레, 고기를 잡는 원담, 심지어 무덤에도 담을 쌓았다. 제주사람들의 문화와 정서, 애환이 녹아있는 돌담은 무한한 관광자원 가치와 함께 미학적 아름다움으로 ‘재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100대 상징 작업은 우리 것에 대한 재발견이요 혼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정종수 국립춘천박물관장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7)천년의 삶을 이어온 고도, 모로코의 페스

    [이슬람 문명과 도시] (17)천년의 삶을 이어온 고도, 모로코의 페스

    페스(Fes)는 1200여년 동안의 세월을 거슬러,809년에 도시가 건설될 당시 옛 삶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페스는 흔히 ‘시간이 멈춰버린 중세의 도시’라고 불리는데, 그만큼 중세시대 도시의 원형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던 90년대나 귀국 뒤 연구차 몇 번이나 다시 방문했을 때나, 페스는 언제나 변함없이 천년 고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었다. 동시에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치열하고 뜨거운 삶을 살아온 페스 사람들의 숨소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시 찾은 8월에도 페스는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겨 주었다. 오늘날 페스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뉜다. 신시가지는 프랑스 식민지배 아래 프랑스인이 건설한 현대식 구역인 반면,‘페스 알 발리’라 불리는 구시가는 중세에 건설된 오래된 구역이다. 페스의 구시가는 거미줄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이 무려 300㎞ 이상 펼쳐져 미로를 이루고, 이 안에는 모스크, 쿠란 학교, 아랍전통시장 수크,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연 염색장 등이 몰려 있다. 이곳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지어졌고 그 뒤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먼저 구시가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페스 성벽의 언덕에 올라 구시가의 두 구역, 안달루스와 카라윈 구역을 내려다 봤다. 스페인 안달루스에 살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주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페스에 안달루스 구역을 만들었고, 이곳에 자신들이 가진 모든 예술적 재능을 쏟아 부어 페스의 건축물들을 그리도 아름답게 장식했다. 또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위한 아랍인들의 열정은 튀니지 카이로완을 떠나 이곳 페스로 향하게 했고, 그들은 이곳에 카라윈 구역을 만들었다. 카라윈 구역에다 많은 모스크와 쿠란 학교를 지어 이슬람을 전파했다. 특히 카라윈 모스크와 카라윈 이슬람 신학교는 페스를 북아프리카 이슬람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구시가에 들어서자 시간은 갑자기 멈추어 버린 듯 중세로 되돌아 갔다. 안내자 없이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처럼 얽힌 길, 그 길은 폭이 두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다. 이 골목은 온갖 것들로 가득차 있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당나귀들, 끊임없이 소리치는 상인들의 목소리, 가죽제품 상점들마다 풍겨나는 양가죽 냄새들, 골목마다 들려오는 아이들의 쿠란 읽는 우렁찬 목소리, 예배시간을 알리는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아잔 소리들, 찻집에서 풍기는 아랍 커피와 박하 차의 향기, 대장간과 그릇가게에서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 이 풍경은 바로 중세 이슬람 최고의 문명도시였던 페스의 옛 모습 그대로이리라. 이러한 살아 있는 중세 모습은 유네스코의 관심을 끌었고,1981년 일찌감치 페스의 구시가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를 계기로 페스는 단지 모로코뿐만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유산임을 인정받았다. 지금 모로코와 유네스코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페스를 중세의 도시원형 그대로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페스 알 발리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앙에 위치한 이드리스 2세의 사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드리스 2세는 모로코 최초의 이슬람 왕국 이드리스왕조(789∼926)를 건설한 이드리스 1세의 후계자이다. 페스를 왕국의 수도로 정한 뒤 도시의 원형을 완성한 사람이다. 그래서 모로코 사람들은 그를 페스의 ‘수호성인’으로 기리며 ‘자위야’라는 사당과 모스크를 지어 바쳤다. 그 다음 발길이 닿은 곳은 온통 푸른 기와로 뒤덮여 있는 카라윈 모스크. 북아프리카 이슬람의 중심지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슬람‘대학’으로써 더 의미 깊고 유명한 곳이다. 튀니지의 자이툰 대학, 이집트의 알아즈하르 대학과 함께 10세기에 건설된 세계 최초의 대학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14세기 카라윈대학의 도서관은 3만권의 장서와 1만 필의 필사본 두루마리를 소장하고 있었을 정도라 하니 가히 최고(最古)에 걸맞은 규모이자, 학문의 중심지다운 규모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역사가 ‘이븐 칼둔’이 이곳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철학자 ‘이븐 루쉬드’도 여기서 사색에 잠겼다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을 따라 온갖 상점과 건물을 구경하며 중세에 빠져들 무렵, 갑자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 생각났다. 어릴 적 읽었던 그 책에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왜 도적 두목이 알리바바 집 대문에 표시해서 알리바바가 눈치 채게 했냐는 것이다. 머릿속에 기억해 뒀다가 밤에 몰래 습격하면 그만인데. 그런데 이 페스의 골목을 한번이라도 둘러본다면 이 의문은 금세 우스운 것이 되고 만다. 좁디 좁은데다 얽히고 설킨 골목은 모두가 비슷한 형태고, 골목을 끼고 있는 그 수많은 집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한 크기와 모양인데다, 대문마저도 생김새가 거의 똑같다. 아무리 눈썰미 좋은 도적 두목이라 해도 밤에 몰래 찾으려면 대문에다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직접 보고 겪고 느끼지 않는 한 다른 세계와 문화에 대한 이해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페스의 좁은 골목길에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골목마다 퍼져 나오는 가죽 냄새를 따라 가니 과연 온갖 가죽제품을 진열해둔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한 가게로 들어가니 한쪽에는 가죽제품이 진열되어 있고 다른 쪽에서는 가죽 손질이 한창이었다. 좁은 통로를 따라 테라스에 오르니 수백 개의 통에 여러 색으로 천연 염색하는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염색과정은 중세에 해왔던 방식 그대로, 모두 일일이 사람의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다. 양이나 염소 가죽들이 숙련공들의 능숙한 손길을 따라 형형색색의 가죽들로 바뀌고 염색된 가죽들은 건물의 벽과 지붕과 바닥에 빼곡히 널려 건조되고 있었다. 이 일련의 과정으로 풍기는 냄새는 페스의 구시가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래서 ‘페스의 냄새’라 불린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 냄새를 피하려 건너편 테라스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박하 잎을 코에다 대고 있다. 그러면서도 염색하는 광경에 대한 호기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목을 길게 빼고는 이쪽을 건너다 본다. 눈은 경이로움을 좇고 코는 냄새를 피하려는 이런 모습은 어쩌면 이렇게 우리 인간의 이중성과 닮았던가. 안내하던 모로코 대학생은 이런 말을 건넸다.“페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한 부류는 너무 아름다운 페스의 모습과 중세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페스 사람들의 진지한 삶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페스를 가득 채운 가죽염색의 역겨운 냄새와 양고기 굽는 자욱한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이들은 페스가 너무 지저분한 도시라고 비난하면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얘기하죠.” 우리는 과연 어느 쪽인가. 세계는 한 가족이라는 세계화 시대, 우리는 과연 이들을 얼마나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남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일까. 페스를 방문하고 떠나던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 [CEO칼럼] 자연자원의 새로운 가치개발 필요하다/곽결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CEO칼럼] 자연자원의 새로운 가치개발 필요하다/곽결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인류의 역사는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자연자원을 개발하고 이용해 온 과정의 연속이다. 사용가치가 낮거나 가치를 몰라서 활용치 못하는 경우 말고는 지구상의 자연자원은 고갈 국면을 맞았다. 석탄과 석유, 각종 광물자원, 삼림(森林)자원이 그러하다. 이와 달리 무한정 고갈되지 않는 자연자원도 있다. 바닷물, 태양광, 바람 등인데 이들 자원을 이용하는 시대가 21세기이다.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형, 바닷물도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고부가 가치를 갖는 자연자원이 될 수 있다. 수자원공사가 3년 후인 2009년 말 완공목표로 건설중인 시화조력발전소(시설용량 254MW)가 그 예다. 현재까지 세계 최대규모의 조력발전소인 프랑스의 랑스발전소(시설용량 240MW)를 제치고 세계 최대규모의 조력발전소를 우리나라가 갖게 되는 것이다. 시화호 주변지역 개발의 주체로서 수자원공사는 환경오염과 파괴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받아 왔다. 수도권에 부족한 산업단지, 도시용지를 공급하고 간척농지에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축조한 12.7㎞의 방조제가 시화호를 거대한 오폐수 저장탱크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담수호를 포기하고 배수갑문을 통해 상시 해수유통을 실시함으로써 수질개선과 함께 떠나갔던 철새와 물고기들이 다시 찾아오는 희망이 싹트고 있다. 우리나라 경기만은 지형적 조건상 세계적으로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곳으로 조력발전소 건설의 적지(適地)로 꼽힌다. 조수간만의 수위차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조력발전소는 발전 낙차를 크게 하기 위해 장대한 방조제를 필요로 하는데 투자비가 엄청나 경제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시화호 방조제는 어차피 주변의 산업단지와 도시지역이 밀물 때에도 침수되지 않도록 해면수위 조절용으로 건설됐다. 때문에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더라도 별도의 방조제를 쌓지 않아도 돼 경제성이 확보되는 조건을 미리 갖추고 있는 것이다. 원유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것도 조력발전소의 경제성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온실가스 배출이 전혀 없는 청정에너지를 생산함으로써 지구환경 보전에도 기여하게 된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으로부터 청정개발체제(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는 선진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온실가스배출권을 사들여 그 의무 할당량을 차감 받는 제도)로 승인받았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는 선진국에 배출권 판매를 통해 해마다 100억원 정도의 국가적 수익도 얻을 수 있게 된다. 기초공사가 한창인 시화호 조력발전소 현장에는 지금 국내외 전문가와 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세계 최대의 조력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하면 세계의 관광객이 찾고, 국가적인 자랑거리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뭐니 뭐니 해도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는 꿈을 실현하는 자의 몫이다. 지구와 달, 태양 간의 만유인력에 의해 망연히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바닷물에서 청정 에너지원의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꿈을 현실로 바꾸는 대역사(大役事)로서 친환경적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국가적 과업이다. 곽결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 北, 을지훈련 비난

    북한은 22일 한·미 을지포커스렌즈(UFL) 훈련을 전쟁행위라고 비난하며 정전협정에 구속받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이날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의 이번 전쟁연습을 정전협정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인민군측은 앞으로 나라의 안전과 자주권을 수호하는 데 필요한 군사적 조치들을 주동적으로 취하는 데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언명한다.”고 밝혔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쿠르조 부부 “영아 부모 아니다”

    |투르(프랑스) 함혜리특파원|서울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에 연루된 프랑스인 장 루이 쿠르조 부부가 22일 자신들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한국에 가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쿠르조 부부는 이날 투르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들은 유기된 영아들의 부모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 부부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직접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앞서 마르크 모랭 변호사를 통해 혐의를 부인했으며 한국행 여부를 고민해 왔다. 쿠르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자신의 집 냉동고에서 유기된 영아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이후의 과정을 설명한 뒤 “아내 베로니크가 그 아이들을 낳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한국에서 나온 DNA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쿠르조는 아내 베로니크가 2003년 12월 자궁 적출수술을 받은 뒤 결코 임신한 적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프랑스 사법당국의 모든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들 부부는 한국행을 거부한 이유와 관련,“한국에서는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데다 사법 제도를 알 수 없고 이미 언론의 과열 보도로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면서 “이런 모든 이유로 인해 프랑스에서 우리의 권리를 수호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의 박창호 외사협력관은 “형사 사법공조조약에 따라 외교채널을 통해 관련 서류를 프랑스 사법당국에 넘길 계획”이라며 향후 양국의 수사 공조는 법무부가 주관이 돼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lotus@seoul.co.kr
  • 儒林(672)-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18)

    儒林(672)-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18)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18) 이러한 태극사상이 우리나라 국기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흰색바탕에 중앙의 음과 양의 양의(兩儀)가 포함된 일원상(一圓相)의 태극이 있고, 건(乾), 곤(坤), 감(坎), 리(離)의 4괘가 네귀에 배치된 철학적 의미를 담은 국기가 사용된 나라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한 것이다. 비록 중앙의 태극무늬가 고대로부터 한민족이 사용하어 온 고유의 도형으로 628년, 신라 진평왕 50년에 걸립된 감은사(感恩寺)의 석각(石刻)에도 나타나고 있다지만 1882년 4월 6일 조·미수호통상이 체결될 때 조선의 전권부관 김홍집(金弘集)에 의해서 처음 제안되고, 박영효(朴泳孝)에 의해서 결정된 이 태극기는 그 경위가 어떻든 한민족의 정신 속에 깊이 뿌리내린 유교적 우주관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음인 것이다. 퇴계는 10월 15일자 편지, 그러므로 죽기 두달 전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듯 자신의 오류를 깨닫고 고봉에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저는 이전부터 책을 읽을 때 대충 읽어 잘못 이해하는 어리석음을 더욱 스스로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조금이라도 고치려고 했습니다만 죽기 전에 이런 뜻을 이룰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죽기 두달 전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경계하여 조금이라도 바로 잡으려 했던 유학의 완성자 퇴계. 숨이 끊어지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학문에 정진하고 평생 연구하였던 학문에 조금이라도 의심쩍거나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서슴없이 이를 인정하고 그 누구의 질책이라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였던 우리나라가 낳은 대사상가 퇴계. 그러한 퇴계에게 집요하게 편달(鞭撻)하였던 사람이 바로 고봉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의 ‘문답식 산파술’처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고봉이었으며, 퇴계는 이러한 고봉의 준엄한 질문과 문제제기를 통해 자신의 학문을 바로 잡아나갈 수 있었으니 고봉의 질문은 퇴계를 일깨우는 통렬한 죽비(竹扉)였던 것이다. 그뿐인가. 고봉은 퇴계에게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라는 명제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였을 뿐 아니라 물격(物格)에 대한 퇴계의 해석에도 집요한 질문을 던진 듯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퇴계가 고봉에게 보낸 10월 15일자 편지에 쓴 ‘지난날 서울에 있을 때 그대로부터 사물의 이치에 이른다(物格)는 지적으로 깨우침을 받고서 되풀이하여 세심하게 생각해 보았으나 오히려 의혹을 풀지 못했습니다.’는 구절을 통해 퇴계가 서울에서 8개월 동안 머물러 있을 때 고봉이 직접 찾아와 단도직입적으로 퇴계에게 한 방망이 후려갈긴 듯 보여진다. 그러한 고봉의 봉(棒)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병약하고 노쇠한 스승 퇴계가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안동으로 귀향하자 이번에는 차마 스승에게 직격탄을 날리지 못하고 대신 김이정에게 스승의 오류에 대해서 거침없이 할(喝)을 계속 퍼부었던 것이다.
  • [사설] 全 헌재소장 지명자 면밀한 검증을

    노무현 대통령이 전효숙 헌재 재판관을 임기 6년의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한 데 대해 여러가지 말이 많다. 여성으론 첫 헌재소장 지명자인데다 노무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이고 사법시험 기수를 파괴하는 코드 인사라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코드 인사라고 반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전 지명자는 재판관이 되기 전에 이미 26년간 판사로 재직하며 법원 내에서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것은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헌재는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이제 국회는 인사 청문회를 통해 전 재판관이 헌재 소장으로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 면밀하게 검증해야 한다. 재산 형성 과정과 자녀의 병역 문제 등 도덕성에 문제가 없는지도 두루 살펴야 할 것이다. 헌재는 시대의 이념과 흐름을 읽고 이를 결정에 반영해야 하는 정치적 사법기관이다. 게다가 헌재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질 것 같다. 대통령 탄핵심판이나 수도이전 위헌, 호주제 폐지 결정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헌재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하면서도 논란이 많은 현안에 대해 분수령을 이루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보·혁 논쟁을 비롯해 사회·경제적인 의제들이 얽혀 다양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헌재 소장은 이같은 현안들에 대해 법적인 안정성을 중시하면서도 시대정신을 꿰뚫어보는 균형 감각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헌재 소장은 조직의 최고 관리자로서 능력도 검증받아야 한다. 전 지명자는 한 사람의 재판관으로 소수자 인권보호 등 개혁적인 의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헌재 소장으로 정치적 외풍을 막고 헌법과 기본권의 보루로서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의견을 모아갈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 [고이즈미 8·15 도발] 盧대통령-고이즈미 총리 ‘애증의 세월’

    [고이즈미 8·15 도발] 盧대통령-고이즈미 총리 ‘애증의 세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관계는 ‘애증’으로 점철돼 왔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2월25일 취임식부터 다음달 퇴임하는 고이즈미 총리와 3년 7개월간 끊임없이 ‘화해와 갈등의 곡예’를 벌였다. 그동안 가진 정상회담은 8차례나 된다. 하지만 교과서 왜곡과 독도를 둘러싼 해양조사, 북한 미사일 사태와 유엔 대북 결의문 채택 등 휘발성 높은 사안이 겹쳤고, 결국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으로 마지막까지 냉기류를 걷어내지 못했다. 지난해 10월17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로 한일간 정상외교가 사실상 중단으로 이어졌으며, 고이즈미 총리 시대의 마지막 시점까지 양국관계의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우의의 상징인 셔틀 외교는 2004년 12월 이후 1년 9개월 동안 중단 상태다. 겨우 한달 남은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를 감안하면 두 정상은 ‘냉랭’한 상태로 공식 관계를 마감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두 정상 간의 관계가 처음부터 나빴던 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엔 ‘미래로 향하는 한·일 관계’에 주안점을 두었고, 고이즈미 총리 역시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외교적 화두로 삼았다. 미·일 동맹에 기대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최악의 외교 관계를 스스로 초래했다는 진단이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는 국민적 지지가 떨어지는 시점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카드’를 활용했고 노 대통령 역시 초강경으로 대응, 갈등이 최고조로 향했다. 두 정상의 ‘입씨름’도 시간이 갈수록 거칠어졌다. 노 대통령은 지난 4월25일 한·일 관계 특별담화를 통해 ‘독도는 우리땅’임을 다시 한번 전세계에 공개 선포했다. 이 땅의 바다의 주권 수호를 위해 어떤 희생과 비용도 감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노 대통령이 담화발표 직후 “일·한 우호관계를 대전제로 냉정히 대처하고 싶다.”면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나는 (정상회담에 응하겠다고) 언제나 말하고 있다.”고 신경전을 벌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부산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고이즈미 총리와 30분간 ‘냉랭한’ 양국 정상회담을 가졌다.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덕담도 생략한 채 처음부터 가시돋친 언사가 오갔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나 역사교육, 독도문제 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고이즈미 총리의 응수도 간단치 않았다. 그는 지난해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한국을 겨냥,“후회할 때가 올 것”이라고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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