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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담댐덕에 104년 만의 가뭄도 문제없어”

    104년 만의 가뭄에도 불구하고 전북지역은 진안 용담댐 덕분에 수돗물 공급에 차질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전주기상대에 따르면 올해 강수량은 201.1㎜로 1973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적은 것으로 기록됐다. 이 같은 강수량은 평년 405.2㎜의 49.6%에 지나지 않고 가뭄이 극심했던 1992년 262.2㎜보다도 61.1㎜가 적은 것이다. 그러나 전북도 내 주요 도시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용담댐(만수위 8억 1500만t)은 저수율이 34.2%로 평년 31.9%보다 오히려 2.3% 포인트나 높다. 지난 21일 현재 용담댐의 저수량은 2억 7640만t으로 저수량 1000만t 크기의 대형 댐 28개가량의 물을 담고 있다. 전북도는 현재 용담댐의 저수량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전주, 군산, 익산, 완주 등 도내 주요 도시에 740일 정도 생활용수를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천 유지수, 농·공업용수 등 다른 용도로 공급되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1년간 더 가뭄이 지속돼도 수돗물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같이 용담댐이 가뭄에도 끄떡없는 것은 그동안 가둬뒀던 물을 계속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초대형 담수호이기 때문이다. 상류인 무주, 진안, 장수의 수원이 좋은 것도 용담댐 물이 맑고 풍부한 주요인이다. 1990년 착공해 2001년 10월 완공된 용담댐은 소양강댐, 충주댐, 대청댐, 안동댐에 이어 전국에서 5번째로 크다. 전북과 충남 등 2개 도, 6개 시·군에 연간 4억 9200만t의 생활용수와 농업·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다목적 댐이다. 높이 70m, 길이가 498m에 이르는 콘크리트 차수벽형 석괴댐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드로그바, 中 상하이와 2년6개월 계약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수호신’ 디디에 드로그바(34)가 중국으로 간다. 드로그바는 2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중국 슈퍼리그 소속팀인 상하이 선화와 2년 6개월간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드로그바는 새달 초 한국을 방문한 뒤 곧바로 팀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계약 조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 언론은 상하이가 4000만 달러(약 460억원)의 이적료에 1500만 달러(약 173억원)의 연봉을 제시한 것으로 보도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미국에 있던 우리나라 미술품 친정나들이

    미국에 있던 우리나라 미술품 친정나들이

    중국 것으로 알려졌다가 고려 불화로 밝혀진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의 ‘아미타불과 지장보살도’를 비롯해 ‘청자 꽃 새 무늬 매병’, ‘청자 앵무 무늬 정병’, ‘달항아리’ 등 미국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전통 미술품들이 친정 나들이를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열고 있는 ‘미국, 한국미술을 만나다’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9개 기관의 86점 전통미술품을 소개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미술품을 본격적으로 수집한 것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면서부터다. 미국인들은 고려청자에 관심이 많았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미군정과 주한 미군 관계자들이 한국 미술품을 폭넓게 수집했다. 특히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수집이 쉬웠다고 한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선 이름 있는 수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1892년 보스턴미술관이 일본 미술품 수집가인 에드워드 모스(1838~1925)로부터 구입한 청자 꽃 새 무늬 매병, 선교사 언더우드 가문이 브루클린박물관에 기증한 청자 연꽃무늬 주자(조선왕실이 언더우드 가문에 기증한 것으로 추정), 세브란스 병원 설립을 후원했던 루이스 세브란스(1838~1913)의 아들인 존 세브란스(1863~1936)가 기증한 클리블랜드미술관의 청자 앵무 무늬 정병 등이 전시된다.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 백자 복숭아 모양 연적과 하버드미술관 핸더슨 컬렉션의 바퀴 달린 잔은 6·25전쟁을 전후로 한국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소장품이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자 달항아리는 한국 미술 수집의 활성화를 가져온 에이버리 브런디지(1887~1975)의 기증품이다. 2부는 미국 주요 박물관의 한국 미술품을 한국실 설치연도에 따라 박물관별로 전시했다. 미국의 박물관들은 19세기 후반부터 한국 미술품을 소장했으나, 한국 미술품이 독립된 공간에 전시되기 시작한 것은 1927년 호놀룰루미술관이 처음이다. 대표 유물로는 청자 연꽃 넝쿨무늬 주전자, 목조동자상, 석가설법도가 있다. 브루클린박물관의 유물로는 스튜어트 큘린이 1913년 수집한 인궤(印?)를 비롯해 1980년대 소장된 ‘한익모 초상’과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등이 있다. 이 밖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이 2000년과 2005년에 각각 구입한 계산목우도(溪山牧牛圖),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소장품 가운데는 통일신라 절정기 양식의 금동불 입상과 청자 주전자가 전시된다. 19세기 말부터 한국 미술품을 수집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전시품으로는 청자 구름 학 무늬 매병과 소상팔경도의 연사모종(煙寺暮鍾), 동정추월(洞庭秋月)로 알려진 ‘산수도’ 등이 있다. 8월 5일까지.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공무원 업무중 사고 땐 ‘보훈대상자’ 인정

    군인이나 경찰, 소방관 등 공무원이 일상적인 업무 또는 출퇴근 중 사고로 숨지거나 부상했을 때 보훈보상대상자로 분류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19일 “국가유공자와 구별되는 보훈보상대상자 신설 등을 골자로 한 새 보훈제도가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존에 국가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도 신청하면 심의를 거쳐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훈처의 기준에 따르면 국가유공자는 국가의 수호나 국민의 생명 보호와 관련 있는 경계, 수색정찰, 범인 체포, 교통 단속, 화재 진압, 구조 활동 등을 벌이다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한 때에 해당한다. 보훈보상대상자는 일상적 직무수행이나 출퇴근 중 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한 경우 또는 의무복무자로서 군 복무 중 발생한 질병으로 전역 후 2년 이내 사망한 때에 해당한다. 보훈보상대상자의 보상금은 국가유공자의 70% 수준을 지급한다. 개정된 제도는 다음 달 1일부터 신규로 등록하는 사람에게 적용된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보훈대상자 포함… 유공자 인정 당장은 어려워”

    군 당국은 대법원 판결 결과를 수긍하면서도 향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 당장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군 관계자는 18일 “군 내 자해 사망자를 제한된 기준에서 순직으로 인정하는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 개정안은 최근 자살 예방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에 부응하는 것”이라며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는데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를 구분해 이미 국가유공자의 개념을 좁혀 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가유공자의 예우는 말 그대로 국가 수호나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일과 관련 있는 사망일 경우에 해당되고 일반적 공무수행 중에 사망한 경우는 따로 분류한다.”며 “국가보훈처 등에서는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나와도 자해 사망자의 경우 순직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판결의 취지가 국가유공자 인정을 거부한 처분이 위법이라는 내용”이라며 “앞으로 군에서 자살한 경우 순직으로 구분하더라도 최소 보훈보상 대상자로 사망보상금 등의 혜택은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대법원에서 자살과 직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한 만큼 이 사안은 최대한 존중하고 인정할 것”이라면서도 “향후 자해자가 국가유공자 배제요건에서 삭제되더라도 일반 국민의 정서 등을 고려하면 유공자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와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군인 자살은 해마다 80~100명에 달했다. 2009년 전체 군인사망자 113명 가운데 71.6%인 81명, 2010년은 129명 중 63.5%인 82명, 지난해는 143명 가운데 67.8%인 97명이 자살로 집계됐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6) 연산군과 김일손

    [선택! 역사를 갈랐다] (16) 연산군과 김일손

    세조의 치세가 열리는 길목은 가파르고 무서웠다. 많은 죽음이 널렸고, 한때의 임금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목숨을 빼앗기고 제사도 받지 못하였다. 또한 문종의 현덕왕후까지 ‘왕이 아닌 자의 어미’라는 이유로 폐출되었다. 문종에 앞서 소릉에 묻혔기 때문에 ‘소릉폐치사건’이라고 한다. 공포와 쇠락의 시대, 김종직의 ‘조의제문’은 일탈과 분노의 서사였다. 세조의 공신들은 정변과 찬탈의 전리품을 즐겼다. 유학의 수기치인과 의리명분을 벗어난 화려한 외도였다. 역사의 상흔을 감추고 기억을 억압하였다. ‘사관의 이름을 적으면 바른 사초가 어렵다.’라고 말하는 관료들도 죽였다. 또한 남이의 옥사와 성종 즉위를 빌미로 공훈을 보탰다. 이들에게 세조는 ‘불세출의 중흥주’였다. 1478년(성종 9) 4월 이심원이 세조 공신의 퇴진을 상소하고, 이레 후 남효온은 소릉복위를 주장하였다. 철벽같은 권력에 대한 도전이며, 누구도 말하지 못한 금기를 들춘 것이다. 이심원은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종친이며, 남효온은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개국공신 남재의 후예였다. 이 둘은 평소 친분이 깊었고, 논지는 서로 연속하였다. 새 정치 질서를 모색하자면 진실을 밝히고 상흔을 치유하자는 바람을 담았다. 기억운동, 역사운동의 시작이었다. ●왕실의 분란,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하다 남효온이 세조의 최대 흠결을 적시하며 국가의 도덕성 회복을 주장할 즈음 왕실은 원자를 낳은 중전 윤씨 문제로 분란에 휩싸였다. 중전 윤씨는 결국 폐서인되어 사저로 쫓겨났다가 3년 후 환란의 싹을 자른다는 포고문과 함께 사약을 받았다. 원자가 7살이던 1482년 8월 세자 책봉이 있기 반년 전이었다. 폐비의 묘는 버려지고 제사도 없었다. 1489년 5월 수호와 제사에 관한 방침이 처음으로 정해졌다. 수령이 주관하였으며, 기일제(忌日祭)가 아닌 명절의 속절제(俗節祭)였다. 물론 묘호나 사당도 없었다. 다만 제례의 물품만은 ‘죽은 왕비’의 예로 하였다. 세자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미래의 국왕을 배려한 고육책이었다. 폐비 윤씨를 제사지냈던 그해 겨울 남효온이 경상도 의령에서 ‘육신전’을 탈고하였다. ‘사육신충신론’이었다. 이듬해(1490) 3월 김일손은 경연에서 “노산군은 유약하여 책무를 이기지 못하였을 뿐이지 종사에 죄를 짓지 않았음”을 이유로 입후치제(立後致祭)를 건의하였다. 이때 무오사화로 밝혀진 사초를 작성하였다. “노산군의 시체를 숲 속에 버려서 한 달이 지나도 거두는 자가 없자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 쪼았는데, 한 동자가 밤에 짊어지고 달아나서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 없다.” ‘세조실록’의 ‘예로서 장사 지냈다.’는 사론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김종직이 과거 들기 전에 꿈속에서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충분(忠憤)을 부쳤다.’는 평가와 더불어 ‘조의제문’ 전문을 옮겨 놓았다. 또한 현덕왕후의 복위를 상소하고는 사초에 “소릉의 관을 바닷가에 버렸다.”고 적었다. 몰래 살폈던 길 위의 노래, 억압된 기억과 기록을 사초에 담았던 것이다. 왕조실록에 실리면 노래는 불멸의 증언이 되고 야사는 국가의 정사가 된다. ●치유와 화해로 미래를 열어야 김일손은 일찍부터 문명이 높았다. 1486년 식년문과에 제출한 ‘중흥대책’(中興對策)은 인구에 비장하였다. 여기에 역대 왕조의 일치일란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면서 당대를 ‘중쇠’(中衰)로 규정하였다. 중쇠에서 중흥의 기회로 삼는 길은 간명하였다. “천지의 억울함을 풀고 일월의 어둠을 걷어내야 비로소 기강과 법도가 찬연하게 수복되고 예악문물이 가지런히 거행되고 마침내 중흥할 수 있다.” 즉 과거의 상흔을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 것이다. 재야의 역사운동이 조정에 점화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한편 역사운동은 과거로 돌아가기가 아니라 과거에서 교훈 찾기였다. 김일손은 심온 일가를 멸문시키고도 중궁 심씨는 끝까지 보전한 태종의 도량을 새삼 되살렸다. 또한 두 왕자를 부왕에게 희생된 방번ㆍ방석의 후사로 삼아 제사 지내게 하였던 세종의 인정과 고려 왕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숭의전을 세운 문종의 관용을 추앙하였다. 그만큼 좋은 정치, 어진 임금을 향한 바람이 컸던 것이다. 남효온도 사육신을 희생시킨 세조를 광명의 군주로 리메이크하고 싶은 염원이 강렬하였다. “육신으로 하여금 금석 같은 단심을 지키며 강호에 물러나 살게 하였다면, 상왕의 수명도 연장할 수 있었고 세조의 치세는 더욱 빛났을 것이다.” 이렇듯 역사운동은 증오와 분열을 마감하고 화해와 미래를 향한 소망을 담았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다. 세자는 처음부터 국왕 수업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공부를 싫어하고 환관들과 희롱하기 일쑤였다. 장성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부왕의 훈계가 두려워 시강원에 나가더라도 건성이었고, 관료가 공부라도 독려할라치면 얼굴을 찌푸리며 배척하였다. 기본경전 ‘사서’를 멀리했다. 읽지 않는 것보다 낫겠지만 방대한 ‘명신언행록’을 뒤적일 따름이었다. 날이 지날수록 유희는 심해졌다. 성종도 걱정이 많았다. 인정전 연회에서 우찬성 손순효가 반쯤 술에 취하여 용상 아래 엎드려 무언가를 아뢰고 임금도 몸을 굽혀 화답한 적이 있었다. ‘성종실록’ 21년 8월 22일 기사인데, 너무 소리가 작아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폭군의 맨얼굴 신왕은 경연에 소홀하고 국정에도 별반 관심이 없었다. 대신 생모의 추복에 적극적이었다. 먼저 영사전(永思殿)에서 기일제를 지내고 분묘를 천장하고 ‘회묘’(懷墓)라 하고 ‘효사묘’(孝思廟)를 지었다. 신왕 즉위 6개월, 김일손은 시무개혁안 26조를 올렸다. 이때 국왕의 마음 공부를 기본으로 ‘내수사 혁파’ ‘공물 감액과 공안 개정’ ‘사관제도 확대’ ‘제조제의 혁파’ ‘천거제의 확대’ ‘어진 종친의 발탁’ 등을 제안하였다. ‘경국대전’을 보완하는 구상으로 차세대 기묘사림도 개혁과제로 삼았다. 물론 소릉 복위도 포함하였다. 신왕의 반응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김일손은 멈추지 않았다. 왕실 전래의 불교의식인 수륙재 반대에 앞장섰다. 이단을 반대한다는 것보다는 백성을 위한 일이 아니면 복을 빌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외척을 우대하는 인사방침이나 폐비 제사도 반대하였다. 신왕은 싸늘했다. “총명을 조작하며 옛 법을 어지럽히지 말라.” 또한 “김일손은 나를 용렬하다고 여겨서 섬기려 하지 않을뿐더러 임금을 아끼는 마음도 없다.”고 비난했다. 결국 김일손은 소릉복위소를 마지막으로 조정을 떠났다. 1498년 봄 모친상을 끝낸 김일손은 고향 청도를 떠나 함양 남계로 옮겼다. 정여창이 살던 마을에서 멀지 않게 정사를 마련하고 서로 강론하고자 함이었다. 김일손은 여기에서 한성으로 압송되었다. 국왕은 모질었다. 처음에는 사초에 나오는 궁중 비사의 출처와 이유를 캤다. 그러다가 추국 3일 만에 유자광이 ‘조의제문’을 풀이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김일손 등은 능지처사되고 김종직은 부관참시였다. 또한 수기철학을 실천하던 도학자까지 난언과 붕당죄로 걸렸다. 무오사화는 왕실과 훈구세력의 비판 언론과 실천 도학에 대한 국가폭력이었다. 정국은 일순 얼어붙었고 국왕은 정국주도권을 틀어쥐었다. 그래도 뜻대로 폐비 복위는 쉽지 않았다. 많은 신료가 성종의 유지를 내세워 반대한 것이다. 겁박으로 제헌(齊憲)란 시호를 얻어내고 회묘는 회릉(懷陵)으로 높였다. 그리고 폐비사건에 직간접으로 연관된 신료에게 보복하였다. 그동안 무오사화를 처결하고 폐비 추숭을 진행한 윤필상 등 훈구원로나 이미 세상 떠난 세조의 으뜸 공신 한명회까지 참화를 입었다. 또한 국왕의 뜻을 거슬렀던 삼사언론을 ‘능상’(上)으로 처벌하였다. 국왕은 스스로 공도(公道)의 주인임을 포기하였다. 과거로 인재 뽑듯 ‘흥청망청’ 각처 기생을 끌어오는 ‘도가니’ 세상을 연출한 것이다. 민심이반은 심각하고, 군신관계는 결딴났다. 신하들은 묵언패를 걸고 전전긍긍, 생존게임이 벌어졌다. ●자신을 세우지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없다 국왕 재위 12년 여름 전라도에서 유배객 김준손·이과·유빈 그리고 옥과현감 김개 등이 반정의병을 준비하였다. 9월 15일 남원 광한루에 출정하기로 하였다. 도성의 성희안·유순정에게도 알렸다. 반정과 반란의 길목에서 혼선을 막고 경중 호응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9월 1일 김개가 격문을 가지고 도성으로 향하였다. 여의치 않으면 진성대군을 호위하여 내전에 대비할 요량이었다. 바로 이날 밤, 도성의 반정세력이 궁궐을 장악하였다. 인심을 잃으면 임금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일대 사변, 중종반정이었다. 국왕은 연산군으로 강등되어 쫓겨났다. 그런데 전라도의 거사에 앞장선 김준손은 김일손의 백형이었다. 연산군과 김일손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과 방향이 정반대였다. 선택과 방식도 천양지차였다. 김일손이 진실을 통하여 상흔을 치유하고 미래가치를 지향하였다면, 연산군은 개인적 분노와 욕심으로 엄청난 폭력을 동원하며 보복하였다. 한편은 관용의 진보이며 다른 한편은 파괴의 퇴행이었다. 이렇게 갈리는 근본은 무엇이며, 교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극기복례, 수기처신(修己處身)의 마음 공부가 아닐까? 이종범(조선대 사학과 교수)
  • 외국에선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관련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해외 사례에도 관심이 쏠린다. 중국은 1949년부터 ‘의용군진행곡’을 국가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2004년 헌법 수정 때 136조 2항을 통해 국가로 공식화했다. 미국도 1931년 ‘성조기’(The Star-Spangled Banner)를 국가로 정한 결의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킨 뒤 허버트 후버 당시 대통령이 서명했다. 프랑스는 시민혁명 직후인 1795년 혁명 당시 거리에서 불렸던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국민공회가 국가로 규정했다. 이후 나폴레옹 1세 등이 국가 지위를 박탈하기도 했으나 1879년 국가로 재인정 받아 지금껏 불리고 있다. 반면, 영국은 법으로 정한 공식 국가가 없다. 이 때문에 여러 곡이 국가의 역할을 해왔는데 특히 ‘신이시여, 여왕을 수호하소서’(God Save The Queen)가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행사 등에서 영국 국가로 연주된다. 국가 제창 등을 둘러싼 논란은 해외에서도 종종 터졌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국가로 쓰이지 않던 기미가요를 1999년 제정된 ‘국기국가법’을 통해 공식국가로 규정했다. 이에 일부 교직원 등이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이유로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하기도 했다. 쿠웨이트에서는 최근 모하메드 하예프 알무타이리 하원 의원이 공식행사에서 국가 제창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 논란이 됐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北해군 “남조선 해군 겁쟁이” 교육받더니…

    北해군 “남조선 해군 겁쟁이” 교육받더니…

    지난 2002년 6월 29일은 한·일 월드컵 3·4위전인 한국과 터키의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남북 해군간의 전투가 벌어져 쌍방 모두 큰 피해를 본 날이기도 하다. 3년 전 제1연평해전에서 대패를 한 북한해군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1999년 6월 15일 벌어졌던 제1연평해전 당시 북한해군은 어뢰정 1척이 침몰하고 420t급 경비정이 대파되었으며, 소형경비정 4척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고 20여명의 사망자와 30여명의 부상자가 생겼을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에 우리 측의 피해는 7명 부상에 불과할 정도로 양측의 승패는 극명하게 갈렸던 것이다. 당시의 패배를 화력과 정확도의 열세였던 것으로 파악하고 북한군은 고속정에다가 85mm 전차포를 떼어 붙인 경비정(PCF-684)를 투입하여 NLL을 넘었다. 당시의 교전규칙에 의해 차단기동을 실시하던 우리해군의 참수리-357 고속정에게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기관실쪽에 명중탄을 날렸다. 이때부터 참수리-357은 모든 장병들이 용감하게 싸우며 우리 측 초계함의 지원과 함께 선제공격했던 북한의 경비정(PCF-684)를 대파시키고 퇴각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전투에서 참수리-357은 6명의 전사자와 19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큰 피해를 보았고 북한도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양측 모두 심각한 피해를 보았다. 기관실 쪽에 20cm의 구멍이 뚫린 참수리-357은 결국 전투 후 1시간 만에 침몰하였고, 이를 53일 만에 인양하여 현재 평택의 해군 2함대에 보관 중이다. 이 전투에서 참수리-357 승조원들이 보여준 용감한 모습은 “남조선 해군은 장비만 좋지 겁쟁이들이다.”라고 교육받아 왔던 북한군들에게는 충격이었다고 탈북민들을 비롯한 여러 정보루트를 통해 후일담이 들려올 정도였다. 해군은 이 제2연평해전에서 참수리-357이 침몰하는 전투상황에서 교훈삼아 좀 더 크고 정확도와 위력이 강한 무장을 한 고속함을 건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고속함들의 1번~6번함에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이름을 붙여서 영원히 우리바다의 수호신으로 삼고자했다. 현재 1·3·5번 함은 서해의 해군2함대에, 2·4·6번함은 동해의 해군1함대에 배치되어 있다. 생전에 이들은 서해를 지키는 용사들이었지만, 이제 최첨단 유도미사일고속함(PKG)으로 부활하여 서해 뿐만 아니라 동해까지 수호하는 우리 NLL의 수호신으로 거듭난 것이다. 구분1번함2번함3번함4번함5번함6번함함명윤영하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박동혁함번PKG-711PKG-712PKG-713PKG-715PKG-716PKG-717전력화09.5.3011.11.1611.12.512.1.1311.11.2811.11.28배치2함대1함대2함대1함대2함대1함대▲전사자 함명 PKG 현황 최강무기가 40mm 단장포에 불과했던 참수리고속정의 화력부족을 교훈으로 PKG(Patrol Killer Guided missile)는 유효사거리 13km의 76mm 함포와 유효사거리 6.5km의 40mm 쌍열포를 장착하여 포격전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또 포격전 이전에 아예 함대함미사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국산함대함미사일인 ‘해성’을 4발 장착하는 등 공격력과 정확도 등 종합전투력에서 두배 정도 크기인 초계함들에 필적할 정도의 성능을 갖췄다. ▼유도탄고속함 제원 구 분제 원크 기전장x전폭x높이x흘수(m) : 63.0x9.1x18.4x2.5(m)속 력최대 45노트 / 경제 15노트무 게경하 440톤 / 만재 570톤승조원정원 40여명 ▼유도탄고속함 무장 구 분문 수최대사거리 / 유효사거리발사속도함대함미사일4150km76mm 함포1대함전 17.6km/13km 대공전6,500야드분당 85발40mm 함포1대함전 13km/6.5km 대공전4,400야드분당 300발 또 서해에 많이 있는 그물 등에도 스크류가 걸리는 일이 없도록 워터젯 방식의 추진을 하여 최고속도 45노트에 이르는 속력을 내도록 하였다. 하지만 국산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였는데 대표적으로 고속주행시 진동문제와 갈지자 주행문제 등이다. 그러나 해군은 이 문제들을 대부분 해결하여 현재는 43~45노트 정도의 고속주행도 무리 없이 잘 수행한다고 한다. 현재 9척의 PKG가 생산되어 동·서해에서 NLL 사수 임무에 투입되고 있는데, 애초 해군은 24척의 PKG를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예산상의 이유로 계속 변동이 생기고 있는데, 이 PKG는 통일 후 중국이나 일본을 견제함에 있어서도 작은 덩치에 레이더 피탐면적이 적으며 4발의 함대함미사일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유용한 전력으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계획대로 생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군은 제2연평해전 10주기를 맞아 서해에서 ‘불굴의 6용사 귀환’이라는 이름의 훈련을 실시하였는데, 동·서해에 분산 배치되어 있던 이 6용사 PKG들이 처음이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6척만의 합동훈련이었다. 이 훈련은 6용사의 유족들도 참관하셨는데, 훈련 전 해상헌화를 하며 6용사에 대한 추모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후 아들이 환생한 PKG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사열을 하고 위력적인 모습의 기동사격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제 이 ‘불굴의 6용사’는 연안전투함으로서는 최강급의 전투력을 가진 군함으로 환생하여 우리 바다를 최전방에서 지켜 주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글·사진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www.kdnnews.co.kr) 대표
  • 5공 ‘학림사건’ 피해자들 31년만에 무죄 확정

    5공 시절 대표적 공안 사건인 ‘학림사건’ 피해자들이 31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반국가단체를 조직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실형이 선고됐던 이태복(62)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24명에 대한 재심사건 상고심에서 무죄와 면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해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에서 계속해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했다.”면서 “이러한 피고인들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을 부정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또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광주민주화운동 전후 신군부가 행한 일련의 행위는 내란죄로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면서 “이를 저지·반대한 것은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 등은 1981년 전국민주학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해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신군부의 대표적 조작사건으로 규정하고 재심 등의 조치를 권고했고, 법원은 이씨 등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앞으로도 ‘모든 이의 모든 것’ 되려 노력”

    “앞으로도 ‘모든 이의 모든 것’ 되려 노력”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81)이 14년간의 명동성당 생활을 마치고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으로 거처를 옮겼다. 정 추기경은 15일 오후 2시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인 명동성당에서 대구대교구 이문희 대주교를 비롯한 각 교구 주교들과 사제단, 수도자, 신자들과 함께 서울대교구장 이임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정 추기경은 미사에서 강론을 통해 “사목을 하면서 상본성구로 선택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살았지만 되돌아보면 부족함이 너무 많아 송구하다.”면서 “명동을 떠나 혜화동에서도 지금처럼 교회와 교구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봉사하며 생활하겠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교구청과 신학교를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활동 중인 사제와 원로사제, 평신도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신자들을 향해 “모든 사제들이 사제서품 때의 마음으로 한평생을 살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사랑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홍준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은 송별사를 통해 “정 추기경님이 전임 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를 ‘장엄한 낙조’로 언급한 대목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며 “정 추기경님이야말로 장엄한 낙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1961년 명동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정 추기경은 1970년 한국 교회 최연소 주교로 임명돼 청주교구장으로 재직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된 뒤 교회일치와 친교, 생명 존엄성 수호와 가정 사목에 주력했으며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2006년 한국교회의 두 번째 추기경이 됐다. 한편, 정 추기경은 후임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대주교의 착좌식이 열리는 25일까지 교구장직을 이어간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오늘의 中 만든 근현대 알리고 싶다”

    “오늘의 中 만든 근현대 알리고 싶다”

    “중국인을 만나면 왜 한국인들은 마오쩌둥만 아느냐고 묻습니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죠. 중국의 오늘을 만든 근현대의 뿌리를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12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김명호(62) 교수는 신간 ‘중국인 이야기’(한길사 펴냄)의 의미를 이렇게 소개했다. ‘중국인 이야기’는 6년째 한 주간신문에 연재한 칼럼에 살을 붙이고, 사용하지 못한 사진자료 등을 풍부하게 넣은 단행본이다. 이번에 나온 것은 첫 번째 책으로, 앞으로 10권까지 낼 계획이다. 책의 내용은 김 교수가 홍콩이나 타이완 타이페이에서 수집한 일기, 서한, 회고록 등 1차 자료가 기본이 됐다. 1980년대 초 지방 국립대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주말마다 다니기 시작한 것이 벌써 30여 년째다. 김 교수는 당시 홍콩에서 현지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접한 중국 관련 뉴스는 80% 이상이 공갈(거짓말)이었구나 느꼈다.”고 했다. 왜 근현대에 집중했을까. “19~20세기는 중국에 있어서 가장 열정적인 시기였다.”면서 “중일전쟁부터 문화혁명까지 역사를 따지면 삼국지와 수호지가 오히려 식상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주간신문에 쓰지 못한 얘기를 책에 많이 담았다고 소개했다.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물어 재미있고 궁금한 내용을 싣기도 하고, 쓰기 민망한 이야기도 녹일 생각을 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중국인들과 밤새 얘기할 수 있는 거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방사청장 “일본 등도 같은 방식”… ‘F35 모의검증’ 옹호 발언 논란

    노대래 방위사업청장이 차세대 전투기 선정을 앞두고 미 록히드마틴사의 F35 전투기를 시뮬레이터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요지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노 청장은 지난 8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F35에 대해 시험비행 대신 시뮬레이터로 검증한다고 하니까 평가 방식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다.”면서 “일본, 이스라엘도 이렇게(시뮬레이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래의 전투기까지 경쟁에 포함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면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하는 것이 공정”이라고 주장했다. 노 청장은 “문제는 F35를 구매 대상에 포함시켜 각 기종 간 경쟁을 강화시킬 것이냐, 아니면 제외해 경쟁이 덜 되도록 할 것이냐.”라면서 “둘 중 어느 방식이 국익에 보탬이 되느냐의 문제다. 방위사업청은 국익 수호 차원에서 시뮬레이션 검증을 통해서라도 경쟁을 강화토록 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10조원대의 무기를 공정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구매해야 할 방사청장이 논란이 되는 시뮬레이터 평가 방식을 옹호하고 나선 것은 자칫 특정 업체를 봐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청장님이 이렇게 나서는 것 자체가 외부에서 봤을 때 록히드마틴에 특혜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 가만히 있어야지 그게 아래 직원들을 도와주는 것”라는 댓글을 올렸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회적 책임과 민주주의 한국 대기업은 가졌는가

    대기업은 아주 ‘기이한’ 존재다. 뭔 소린가 하겠지만, 이는 원래 체제수호를 목숨처럼 여기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의 목소리다. 자유시장의 조건은 다수의 공급자다.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경쟁해야지, 대기업 몇 개가 시장을 나눠 가져선 안 된다. 따라서 고전적 자유주의를 추종하고 싶다면 대기업 해체를 주장해야 한다. 실제로도 19세기 주식회사 제도 도입으로 거대 자본을 갖춘 대기업들이 출현하자, 가장 반발한 이들은 자본가들이었다. 이들은 대기업이 기업가정신을 말살해 결국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라 주장했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1909~2005)가 왜 ‘기업의 개념’(정은지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을 써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에서야 거대한 대량생산 공장이 우리의 사회적 현실이며, 우리의 대표적 제도이고, 우리의 꿈을 실현할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GM의 초거대 사업부들은 계획경제 부문과 대단히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닐 것이다. 기준가격 책정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주의적 경쟁’을 하는 러시아의 트러스트와 눈에 띄게 비슷하다.”고 말하는 뜻도 짐작할 수 있다. 대기업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 그리고 대기업의 운영원리 그 자체에 이미 사회주의적 요소가 듬뿍 배어 있다는 말이다. 드러커의 특이점은 그럼에도 사회주의로 달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드러커는 자유시장원리에 반하는 대기업이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보다 더 나은 점을 선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책임은 필수이거니와 소련식 관료주의 적폐에 물들지 않은 기업 내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냥 기업은 이윤 내고 고용하고 세금 내면 그뿐이지만, ‘대’기업이라면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 대기업은 어떨까, 자연스레 비교된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北전투기 하루 50여 차례 출격… 전술조치선 인근 남하비행 급증

    북한 공군 전투기들의 비행 횟수가 지난달 중순 이후 크게 늘어났다. 군 관계자는 6일 “5월 중순 이후 북한 전투기들의 출격 횟수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황해도 태탄 비행장 등에서 많게는 하루 50여회 출격하고 이 중 두세 차례는 우리 군이 설정한 전술조치선(TAL) 인근까지 남하 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 군부가 최근 유류난 등으로 하루 두세 차례밖에 출격시키지 못한 데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지난 5일에도 오후 5시쯤 북한 수호이 전투기(Su25) 1대가 전술조치선을 넘어 개성 상공까지 남하하며 위협비행한 뒤 돌아갔다. 이에 따라 우리 공군 KF16 전투기 2대와 F5 전투기 2대가 대응 출동했다. 우리 군 당국의 전술조치선은 북한 전투기가 이륙 후 불과 3~5분 이내 수도권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20~50㎞ 북쪽 상공에 가상으로 설정한 선이다. 북한 전투기가 이 선에 근접해 비행하면 우리 군은 대응 출격하도록 되어 있다. 이 관계자는 “전술조치선은 어디까지나 우리 공군의 반응시간을 빨리 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선으로 이는 북한 영공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서 “지금은 북한 공군의 하계 전투검열 기간이어서 비행 횟수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학술·종교플러스] 그리스도연구소 7일부터 강좌

    그리스도연구소 7일부터 강좌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는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강좌를 7일부터 8주 동안 매주 목요일 7시30분 서울 충정로2가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진행한다. 이번 강좌는 교회가 왜곡하거나 편협하게 가르치고 있는 주제들을 선정해 대안적 해석을 모색하는 자리. 여성·이단·결혼 등 교회가 관행적으로 가르쳤지만 그 폐해가 심각한 문제들을 주제로 삼았다. 지난 4월 출간된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공동 저자인 김진호·전철·박영식·정용택씨가 강사로 참여한다. (02)363-9190. 서울대교구, 생명수호 봉사자 모집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생명의 문화’운동에 참여할 청년 생명수호 봉사자를 모집한다. 봉사자로 양성된 청년들은 생명위와 관련한 온·오프라인 홍보, 찬양·율동·마임 활동, 각종 연수와 학술세미나 등에 참여하게 된다. 청년 봉사자 정기모임은 매월 첫째 수요일 오후 7시30분 서울 명동 교구청 별관에서 진행된다. 청년 생명수호 활동에 관심 있는 20대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모집기간은 8월 말까지. 한편 생명위는 각 본당과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명수호 담당자를 위한 정기연수를 7월 1일까지 진행한다. (02)727-2351. 원불교, 정산 송규 종사 기념전 원불교는 제2대 종법사 정산 송규 종사의 열반 5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특별 기념전을 30일까지 전북 익산 원불교역사박물관에서 열고 있다. 정산 종사는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수제자. 초기 9인 제자와 함께 교단 창립에 큰 역할을 했고 1943년 소태산 교조가 열반한 뒤 종통을 이은 후계 종법사다. 이번 특별기념전은 정산 종사의 삶을 교단사·신성·건국론·세계화 등 4부분으로 나눠 조망한 자리. 디지털 전시기법을 활용해 원불교 법모(法母·법을 제정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강조한 게 특징이다. ‘근대 국경과 백두산정계비’ 학술회 동북아역사재단은 7일 오전 9시부터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백두산정계비 건립 300주년을 맞이하여 ‘동아시아 근대 국경과 백두산정계비’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1712년 백두산 기슭에 세워진 백두산정계비는 비문에 새겨진 ‘토문’ 명칭을 둘러싸고 최근까지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한·중 관계의 문제로 다루어져 왔던 백두산정계비 문제를 동아시아로 시야를 확장해 근대 국경의 기원이란 의미로 밝히려고 한다.
  • ‘중곡동 건강 수호천사’ 방문간호사 떴다

    ‘중곡동 건강 수호천사’ 방문간호사 떴다

    의료취약계층을 내 몸같이 돌보는 방문 간호사들이 광진구 중곡동 일대에 나타났다. 5일 구에 따르면 지난 3월 문을 연 중곡종합건강센터 방문간호사 4명은 1인당 600가구를 돌봐야 하는 힘든 여건 속에서도 중곡 1~4동을 각각 맡아 1인당 하루 8~10가구씩 매월 1~2회 방문해 건강을 점검하고 건강관리를 돕고 있다. 보건소와 거리가 먼 데다 의료취약계층이 많은 주민들 입장에선 이들이 날개없는 천사나 다름없다. 방문간호사들은 새마을부녀회나 보건소 전염병관리팀과 협력해 집안청소는 물론 소독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 해당 동주민센터에도 도움을 요청해 장판 교체나 도배, 재활용 수납장 등 살림도 챙겨 주기로 약속받았다. 세 아이 엄마인 김미정(가명)씨는 “3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생계를 위해 온갖 궂은일을 다 하다가 우울증을 겪었지만 방문간호사를 만나 병원에 갔다 오고 청소며 빨래, 방역 등 도움을 받고 나서는 집안 분위기도 환해졌다.”고 말했다. 김기동 구청장은 “방문간호사는 간호뿐 아니라 독거노인 말벗으로 딸, 며느리 노릇까지 하고 청소·빨래 등 집안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면서 “여기에 병원이나 복지시설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봐 연계해 주는 역할까지 한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호국의 날… 새누리 보란 듯 ‘안보 행보’

    호국의 날… 새누리 보란 듯 ‘안보 행보’

    새누리당 지도부가 4일 일제히 서해 백령도로 발길을 옮기며 종북 논쟁에 안보 이슈를 점화한 가운데 여야는 북한인권법안 제출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여당의 백령도 방문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천안함 폭침 현장을 참배하는 한편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백령도 주민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서였다. 황우여 당 대표를 비롯해 이혜훈·정우택·유기준 최고위원과 서병수 사무총장, 진영 정책위의장, 박상은·한기호 의원 등이 동행했다. 야권이 통합진보당 주사파 출신 의원들의 국회 입성과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비례대표)의 탈북자 폭언으로 유례없이 종북 논란에 휩싸인 정국 상황을 맞아 새누리당은 안보 요충지인 백령도로 정치 무대를 옮겨 간 것이다. 야당과 이념 측면에서 차별화된 행보를 각인시키면서 집권 여당으로서 국토 수호 최전선에 있는 장병들을 위로하고 접경 주민 지원 정책을 강조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새누리당은 5·15 전당대회 이후 초대 지도부의 첫 공식 방문지로 백령도 방문 일정을 지난 주초 일찌감치 잡아놨다. 그러나 3일 임 의원의 폭언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며 모처럼 안보 메시지를 유리하게 활용할 기회가 맞아떨어졌다. 당 지도부는 오전 10시 수색 육군 헬기장을 출발, 1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백령도 해병 제6여단에 도착했다. 이어 천안함 위령탑에 참배한 뒤 화동 주민대피호를 시찰하고 주민 간담회를 했다. 황 대표는 제6여단 상황실을 방문해 최창용 여단장으로부터 부대 상황 보고를 받은 뒤 “백령도는 인천보다도 평양이 가까운 군사 요충지”라면서 “장병 한분 한분의 피땀이 후방의 평화를 보장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황 대표는 제6여단 흑룡부대 장병들과 식사를 함께 한 자리에서 정책 지원 사항을 꺼내 들었다. 그는 “장병 수당을 2015년까지 2배 인상하는 예산을 마련 중이고 군 복무 기간 취업 준비,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 복무자에 대한 의료·주거·교육 지원도 제시했다. 백령도 주민자치회 대표단과의 간담회에선 해상 쾌속선 취항과 관광 소득 증대, 중국 어선 불법 조업 관련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황 대표는 임 의원의 폭언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탈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일 뿐 아니라 자유와 평화의 사도들”이라면서 “통일 후 남북 일치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할 분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들을)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은 이런 분들에 대해 특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17·18대 국회에서 두 차례 폐기됐던 북한인권법은 19대에서도 쟁점 법안으로 떠올랐다. 지난 1일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재발의한 북한인권법을 놓고 이해찬 민주당 당 대표 경선 후보는 4일 PBC 인터뷰에서 “우리가 그렇게 논란을 할 필요는 없다.”면서 “정치적으로 말하면 다른 나라의 국내 정치 문제에 깊이 주장하거나 개입하는 건 외교적인 결례”라고 주장했다. 북한 인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앰네스티 등 인권단체의 문제 제기는 내정 간섭이라는 논리다. 안동환·이재연·허백윤기자 oscal@seoul.co.kr
  • 탈북자 위장 女공작원 검거

    북한 체제 수호의 첨병 역할을 하는 정보기관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여성 공작원이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했다가 공안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국가정보원 등 공안 당국은 지난해 12월 태국에서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 이경애(46·여)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중순 구속했다고 1일 밝혔다. 이씨는 국내 입국 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받은 조사에서 “탈북 이후 중국에서 한국인 남성과 동거를 했는데 그가 한국으로 들어오게 돼 나도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왔다.”고 입국 이유를 진술했다. 그러나 이씨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고 현재의 북한 실상과 다른 내용이 많아 수상히 여긴 합동신문센터 측이 그를 추궁해 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합동신문센터는 탈북자들이 국내 입국 이후 위장 탈북 여부를 가리기 위해 거쳐야 하는 첫 관문이다. 국정원은 5월 중순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씨를 구속해 구체적인 임무 등을 조사하고 있다. 국정원은 이씨가 2000년대 초 보위부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고 중국으로 파견돼 위조지폐를 중국 위안화로 교환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그동안 이씨가 위안화로 교환한 위조지폐는 100만 달러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같이 직파 간첩을 검거한 사례는 흔하지 않다.”며 “검찰에 송치할 때 정식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北, 美와 비핵화 아닌 ‘핵군축 담판’ 속셈

    北, 美와 비핵화 아닌 ‘핵군축 담판’ 속셈

    북한이 4월 13일 개정한 헌법에서 ‘핵 보유국’임을 공식 명기한 데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북한이 지난 30일 대외선전용 웹사이트 ‘내나라’에 공개한 사회주의헌법 4차 개정안은 ‘김일성-김정일 헌법’이라고 명시해 김정일의 위업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특히 헌법에 ‘핵 보유국’임을 명시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의 이러한 시도가 취약한 김정은 체제 내부를 결속시키기 위해 주민의 ‘자기 최면’ 효과를 노림과 동시에 핵을 포기하는 협상을 지속할 의사가 없음을 선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31일 “우리 정부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이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입장”이라며 “북한의 이러한 헌법 개정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9·19 공동성명에 반하는 것으로 비핵화 공동선언과 안보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일성 헌법에서 김일성·김정일 헌법으로 개정하고 핵 보유국으로서의 업적을 강조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체제 유지와 수호에 관련된 ‘자기 최면’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김정은 체제는 내부적으로 김정일이 이룩한 업적을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 공고한 기반을 강조해 체제 결속을 꾀하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폐기를 목표로 한 미국 중심의 6자회담이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최고의 공식 문서라 할 수 있는 헌법에 핵 보유국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은 북한이 앞으로 핵 관련 회담에 임할 때 비핵화를 위한 회담이 아니라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핵군축회담을 하겠다는 의도”라며 “이는 핵 보유국이 아닌 한국을 고립시키고 미국과만 대화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의 다른 관계자는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 보유국임을 주장해 왔으나 이번 헌법 개정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언이었다는 기존의 입장을 뒤집는 격”이라며 “이는 운신의 폭을 줄이는 행위로, 핵개발을 중단하는 협상보다는 핵군축을 위한 협상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라고 분석했다. 한편 북한이 주장해 온 핵 보유국 지위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국가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인정한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5개국이다. 김열수 국방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노리는 것은 ‘사실상의 핵 보유국’인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같이 암묵적으로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함이나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전망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0)부산 나루공원 팽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80)부산 나루공원 팽나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 떠나간 사람이 그리워질 때면 옛사람들이 꺼내 들던 오래된 말이다. 함께 지내던 때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편하게 지내지만,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의 빈자리가 아쉽다는 생각으로 하는 말이다. 사람만 그런 건 아니다. 떠난 뒤에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대상으로 나무만 한 것이 없다. 나무만큼 흔한 것도 없기에 평소에는 일쑤 나무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스쳐 지난다. 꽃 피울 때나 단풍 물이 짙게 올라 도드라지게 화려한 자태를 보여 줄 때에만 겨우 한 번씩 바라보는 게 전부다. 그러나 그가 사라진 뒤에 찾아오는 끝 모를 공허함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이른바 ‘뒤늦은 존재감’이다. ●2010년 작별인사… 이주비 2억 5000만원 “봄에 노란 꽃을 아롱아롱 피우고, 여름 지나면 검붉은 열매를 맺는 팽나무는 마을 살림의 중심이었죠. 놀거리도 먹거리도 많지 않던 어린 시절의 모든 생활은 바로 이 나무 곁에서 이뤄졌어요. 나무 주위를 뛰어다니고, 기어오르다 떨어진 일이 다반사였죠. 여름 지나면 나무 한 가득 맺히는 조그만 열매의 맛은 잊지 못합니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 율리 마을 지킴이 김성진(41) 통장은 마을의 수호목인 두 그루의 팽나무가 2년 전 대형 바지선에 실려 뱃길 50㎞의 먼 길을 따라 이사 가던 날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12가구만 남은 작은 마을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지만 나무에 대한 추억은 누구보다 많이 기억한다. 그러나 나무는 속절없이 그의 곁을 떠났다. 할배나무, 할매나무라는 이름을 얻고 500년 동안 수굿이 마을의 살림살이를 지켜 주던 나무가 율리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건 2010년 3월이다. 키 10m, 줄기둘레 7m의 큰 나무를 옮겨 심는 공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두 달 넘는 준비를 거쳐 이사를 완료한 공사에는 2억 5000만원이 소요됐다. 나무가 원치 않는 이사를 채비한 건 가덕도 일주도로 개설 계획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도로를 설계하고 보니 도로 곁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나무 곁으로는 35가구의 살림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살림집은 적당한 보상과 함께 이주할 수 있었다. 마을의 생명줄 가운데 하나였던 마르지 않는 샘을 갈아 엎는 것까지도 사람들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삶을 지켜 주던 늙은 한 쌍의 팽나무가 그냥 쓰러지는 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무만큼은 살리고 싶었어요. 마을을 처음 일으킨 선조가 심고 대대로 의지하며 살아온 우리 살림살이의 기둥이고 삶의 역사거든요. 나무가 쓰러지는 건 우리가 쓰러지는 거라고 말할 수 있죠. 하지만 확정한 도로 설계는 조금도 변경되지 않더군요.” ●율리 마을의 살림살이를 지켜 온 수호목 김성진 통장의 부친 김영수(76) 노인은 나무가 곧 자신의 살아온 역사 그 자체였다고 보탠다. 마을 사람들은 온몸으로 공사를 막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어촌 사람들의 힘으로 현대화의 급속한 물결을 막아 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공사를 주관하는 쪽에서는 효과적인 완공에만 적극적이었다. 하릴없이 나무에 얹혀진 500년 삶의 무게는 산산히 부서져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때 부산시에서 나무를 살리겠다는 마을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사 집행자 측의 계획을 절충하고자 했다. 오랜 토론 끝에 한 쌍의 팽나무를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전당’ 앞 수영강변 ‘APEC 나루공원’으로 옮겨가기로 결론지었다. “자리를 옮겨서라도 살 수 있게 됐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하지만 나무가 떠난 뒤로 마을 살림살이는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옛날에는 지천으로 널린 피조개·새조개를 잡아서 아주 풍요롭게 살았지만, 갯벌을 갈아엎은 뒤로는 먹고사는 일이 묘연해졌죠. 살림이 힘들어질 때마다 우리를 지켜 주던 나무가 그리워질 수밖에요.” 불과 이태 전의 살림살이를 되돌아보며 한숨짓는 김 통장의 속내는 능히 짐작할 만하다. 김 통장의 손에 이끌려 나무가 서 있던 옛 마을 터를 찾았지만, 나무가 살았던 흔적은 이미 가뭇없이 사라졌다. 오순도순 살던 살림집들의 자취도 마찬가지다. 그는 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여전히 마음속으로 나무가 그곳에 있을 것만 같은 환영에 빠진다. 그러나 마을 초입의 고개를 넘으면 나타나는 낯선 도로가 달콤했던 옛 추억을 깨뜨린다고 덧붙였다. 나무가 사라진 자리를 감도는 공허감은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온몸에 감겼던 붕대 풀고 싱그러운 잎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처음 생명의 싹을 틔운 자리에서 말없이 희망의 새싹을 틔우는 이 즈음, 율리 마을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떠난 할배·할매 나무를 만나기 위해 해운대 나루공원을 찾았다. 멀리 떠난 나무의 안부가 궁금해 도무지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는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오래 바라보면서 두 손을 모으고 말없이 나무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오로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운 마음이었다. 옛 마을에서는 낮은 지붕 위로 삽상한 그늘을 드리우던 나무였거늘 이제 그는 거꾸로 빌딩 숲 그늘에 덮였다. 바로 곁의 넓은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들의 소음도, 도시 사람들의 분주한 걸음걸이도 나무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그가 500년을 보낸 율리 마을의 안온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그래도 나무는 미라처럼 온몸에 칭칭 감겼던 붕대를 벗고, 싱그러운 잎을 틔워 올렸다. 율리 마을 사람들의 실낱같은 안도감이 나무를 감돌자 나무는 오랜 벗을 만난 기쁨에 상큼한 바람을 허공으로 던진다. 낯선 곳에서도 끝내 생명을 내려놓지 않은 건 그동안 그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성장과 개발, 그리고 사람과 나무의 더 평화로운 어울림이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풍경이다. 글 사진 부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부산 해운대구 우동 1494 APEC 나루공원. 부산 APEC 나루공원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주변 주차 사정도 좋으니 자가 운전을 이용하면 편리하고 빠르게 나무를 찾아갈 수 있다. 부산 시내 어디에서 출발하든 광안리 방향으로 길머리를 잡고, 광안대교 못미처에서 부산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전당이나 신세계백화점을 찾으면 된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신세계백화점 주차장에서 나무까지는 불과 100m 남짓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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