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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리될 뻔한 거위, 대학에서 제2의 삶 시작하다

    요리될 뻔한 거위, 대학에서 제2의 삶 시작하다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 생을 마감할 뻔했던 거위가 한 대학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14일(이하 현지시간) 중국 온라인 매체 더페이퍼는 수거위 ‘구구’가 지난주 상하이해사대학에 새 둥지를 틀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주인 우씨는 1년 반 전에 낚시를 하다 구구와 처음 만났다. 당시만 해도 온몸이 노란색이었던 어린 구구를 데려와 정성스레 길렀고, 둘은 애완동물과 주인을 넘어선 특별한 사이가 됐다. 그러나 우씨가 살던 지역을 떠나면서 구구를 키울 수 없는 형편이 되자 구구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씨는 구구를 맡아줄 새 주인을 애타게 찾아 나섰고, 우연히 상하이해사대학이 거위들을 보호하고 키워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저는 거위 구구의 주인입니다. 이 잘생긴 녀석을 두고 새로운 곳으로 가야하는데 저 대신 키워주실 수 있으신가요? 차마 구구를 요리하진 못 하겠어요”라며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로 해당 대학에 연락을 취했다. 이에 대학 측은 “우리 거위 대가족에 구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구구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면 기쁠 것 같다”며 “구구가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길 바란다”고 답했다. 대학교 학생들도 “구구 학생, 우리 생태학부에 들어온 걸 축하해”라며 재치 있는 환영인사를 전했다. 우씨는 “구구를 대신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착한 마음씨를 가졌어요. 구구가 거기서 짝을 만날지도 모르겠네요”라면서 “오랜 내 친구가 새 보금자리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상하이해사대학은 대학의 인공호수 적수호(滴水湖) 근처, 조류와 다른 야생 동물들에게도 자연 서식지 역할을 하는 현지 보호 구역에 구구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사진=더페이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16년 만에 진보단체장… 서해 5도 ‘평화 1번지’ 열망 실현”

    “16년 만에 진보단체장… 서해 5도 ‘평화 1번지’ 열망 실현”

    장정민 인천 옹진군수는 지방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당선됐다. 옹진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새천년민주당 조건호 군수가 당선된 이후 16년 만이다. 옹진군은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폭침당하고 연평도가 피격되는 등 북한의 상습적인 도발에 시달려 보수 성향이 강한 곳이다. 주민들은 남북 화해 분위기가 전국을 물들인 노무현 정부 때도 보수 후보를 당선시켰다. 심지어 민선 5기 때는 민주당이 옹진군을 ‘당선 불가’ 지역으로 분류해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아 조윤길 군수가 무투표 당선되기도 했다. 6기 때도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아 무소속 후보 1명만이 조 군수와 대결을 펼쳤지만 참패했다.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는 예외라는 평가도 있지만, 주민들이 시대 변화를 받아들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으로 형성된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철옹성 같았던 주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옹진군은 4·27 때 합의한 북방한계선(NLL) ‘평화수역’ 조성과 관계있어 진보 단체장을 탄생시킨 것이라는 풀이도 가능하다. 장 군수의 친화력과 세 차례에 걸쳐 군의원을 지내 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점도 당선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다음은 14일 만난 장 군수와의 일문일답.→장 군수 당선이 남북 관계 개선의 상징적인 결과라는 분석이 있는데. ―옹진군은 남북 문제가 가장 민감하게 작용되는 곳이다. 남북이 긴장 관계에 빠지면 어업 활동에 제한을 받고 관광객이 줄어들어 주민들은 생계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지난 보수 정권들이 남북 위기관리에 실패해 그 피해가 주민들에게 전가되면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정서가 형성된 것 같다. 늘 안보 불안에 시달려 온 주민들이 보수 정당을 불신하고 진보 정당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둬들였다는 점에서 상전벽해다.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깃든 서해 평화수역 조성 계획이 한반도 해빙 분위기에 힘입어 완성되면 주민들이 안보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표심에 반영된 것 같다. →장 군수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도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저의 의정 활동에 대한 군민들의 믿음과 새로운 옹진을 바라는 열망이 이번 당선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진보·보수의 이념보다 군민들이 옹진군의 진짜 일꾼을 뽑는 선거였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당선됐다는 평가에 대해선 겸허히 받아들인다. 16년 만에 진보 성향의 군수가 승리한 것은 지금까지의 낡은 행정, 규정, 개념, 독단에 대한 변화를 원하는 군민들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낮은 자세로 소통하며 군정을 이끌어 나갈 것을 군민들께 약속드린다. 옹진군 7개 면에서 1박을 하는 현장 방문도 정례화할 생각이다. →군의원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지. ―지난 12년간 군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하면서 조례 제정, 예산 심의, 결산 승인, 도시계획 결정, 행정사무감사 등을 통해 옹진군의 살림 및 변화상을 누구보다 세세하게 들여다봤다. 생활과 직결된 지역 현안과 군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관내 7개 면을 찾아 현장 중심의 의정 활동을 펼쳤다. 군민, 군수, 의회, 시민사회단체가 협치해야만 옹진군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득했다. 특히 우리 군민의 삶의 질 향상과 보다 더 큰 옹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인천시와 국회, 중앙정부 등을 찾아다니며 청원하는 등 현안 해결을 위해 2만 옹진군민의 대표로 군민 중심의 의정 활동에 전력해 온 만큼 앞으로 군정 운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의정 활동 경험은 군정을 이끌어 가는 데 자양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옹진군의 주요 현안 및 해결 방안은. ―우리 군은 전체가 섬으로 이뤄진 지역이라 안정적인 물 공급과 도시가스 등 에너지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주민의 기본 생활권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물의 경우 지하수 고갈 및 기존 관정과 관로 시설 노후화로 누수 문제 등이 심각하므로 생활용수는 관정 개발과 상수관로를 개량하고, 중장기적으로 해수담수화 시설 및 식수댐과 상수도망을 구축하겠다. 농업 용수는 관정 개발과 농배수로를 정비한 뒤 중장기적으로 저수지, 소류지 등을 조성하겠다. 또 섬별로 안전한 도시가스 공급망을 구축해 군민들의 물과 도시가스 걱정을 해결해 나가겠다. 선갑도 바닷모래 채취 및 영흥화력발전소 지역자원시설세와 주변 지역 지원 기금을 둘러싸고 군민 간에 갈등을 빚는데 기금을 투명하게 운영해 갈등을 끊어내겠다. 영종도∼신도 간 연륙교 건설은 주민들의 숙원일 뿐 아니라 영종∼신도∼강화도∼개성∼해주를 잇는 서해남북평화도로의 시발점이므로 박남춘 인천시장과 함께 정부에 건의해 해결해 내도록 힘쓰겠다.→서해 5도 중에서도 백령도와 연평도가 이슈의 중심이 되곤 하는데. ―백령도는 지역 어민이 우선되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조업 환경 조성과 백령공항 조기 건설, 중국∼백령 항로 추진에 온 힘을 쏟겠다. 연평도 북쪽 NLL 해상에는 ‘파시’(波市·바다 위에서 열리는 시장)를 만들어 남북한 수산물 교역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다. 어민들은 해상 파시를 통해 NLL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한 수산업도 활성화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평화 분위기가 장밋빛 청사진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어업 구역 및 조업 시간 통제 완화 등 어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추진돼야 하며, 이에 대해 인천시와 중앙정부에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 특히 서해 5도가 평화 1번지가 되기 위해선 옹진군민을 중심으로 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아울러 연평어장 좌측과 소청도 남방 어장을 직선으로 연결해 조업 구역을 확대하는 이른바 ‘한바다 어장’을 만들어 평화수역으로 조성해야 한다. →교육 및 노인일자리 등 복지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인지. ―옹진군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21.3%로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20% 이상)에 진입했다. 그럼에도 현재 어르신 일자리 정책은 쓰레기를 줍는 공공근로 정도에 그친다. 게다가 병원이 25개 섬 가운데 백령도 1곳밖에 없어 건강관리에도 취약하다. 어르신들이 100세까지 편안한 노후 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지역 거점의료체계 강화 등 스마트의료서비스 체계를 구축해 건강관리에 힘쓰겠다. 또 영유아 공공보육시설 및 인력을 보강하고 섬 교육시설 근무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수당을 지원하겠다. 교육 낙후지역 지원도 확대해 학생들의 쾌적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학력 향상을 위한 자기주도학습 지원 등의 정책도 내실 있게 추진하겠다. →서해 5도 해상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데 대처 방안은. ―우리 어민들은 NLL 및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하는 중국 어선으로 인해 수산 자원 고갈 등 피해가 막심하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 어선들이 자주 출현하는 NLL에 인공어초를 설치했다. 그 결과 중국 어선의 저인망 그물이 인공어초에 걸려 찢어져 조업할 수 없게 되는 등 불법 조업을 감소시키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올해 인공어초 설치 예산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인공어초 지원 확보를 위해 인천시와 중앙정부에 지속적으로 당위성을 설명해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한 해양경찰과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 불법 조업 중국 어선에 대한 합동 단속을 벌이는 등 강력한 대응으로 어민들의 생존권 수호에 힘쓰겠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文 “기무사령관과 독대한 적 없다”

    文 “기무사령관과 독대한 적 없다”

    문재인(얼굴) 대통령은 14일 “지금까지 국군기무사령부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적이 없고 취임 이후 기무사령관과 단 한 번도 독대하지 않았다”며 “앞으로 어떤 이유로든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국민께 약속드린다”고 밝혔다.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오늘 국군기무사령부를 해체하는 대통령령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새로 창설하는 대통령령 제정 안건이 상정된다”고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제정령안은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 군인과 군무원에 대한 ‘갑질’, 국민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 등 초법적인 권한 행사를 엄격히 금지했다. 문 대통령은 “기무사를 해체하고 군사안보지원사를 창설하는 근본 취지는 새 사령부가 과거 역사와 단절하고 정치개입과 민간인 사찰 등 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 제정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대통령령에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인권에 대한 침해 금지를 특별히 명문화했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세계 각국이 경탄하면서 주목했던 우리 국민의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촛불시위에 대해 기무사가 계엄령 실행 계획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줬다”면서 “범죄 성립 여부를 떠나 기무사가 결코 해서는 안 될 국민 배신행위였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는 부대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라며 “국방부 등 관계기관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제도의 취지대로 국가와 국민만을 바라보고 일하는 군대로 거듭나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朝鮮’ 지도의 나라

    ‘朝鮮’ 지도의 나라

    대동여지도 원본 전체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서 10월까지조선시대는 ‘지도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많은 지도와 지리서가 제작·편찬됐다. 중앙집권 체제였던 조선왕조에서 지도는 효율적인 통치와 전쟁 등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한 필수 자료였다. 실용적인 목적 외에 감상을 위한 용도로 제작되기도 했다. 지도에는 각 고을의 위치와 경계, 산천의 형세, 도로의 연결관계 등 기본 정보 외에도 조선시대 사람들의 국토관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 500년 조선왕조의 공간과 시간, 인간의 흔적을 기록한 지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4일 개막하는 특별전 ‘지도예찬’은 조선시대 지도를 새롭게 조망하기 위해 마련된 대규모 전시다. ‘동국대지도’(보물 제1582호), ‘대동여지도’ 목판(보물 제1581호) 등 중앙박물관 소장품 외에도 국내 20여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지도와 지리지 260여점이 관객들을 맞는다. 전시 1부에서는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했던 조선의 ‘공간’을 담은 지도가 소개된다. 조선의 국토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 주는 ‘조선방역지도’(국보 제248호), 국제 정세를 파악하려 했던 조선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보물 제1537-1호), ‘일본여도’(보물 제481-4호) 등의 자료를 볼 수 있다. 과거로부터 축적된 ‘시간’의 흔적이 담겨 있는 지도는 2부에서 만날 수 있다. 세계지도 ‘천하고금대총편람도’나 전국지도 ‘조선팔도고금총람도’에는 역대 왕조의 변천과 역사적 사건들이 함께 수록돼 있다. ‘경주읍내전도’에는 조선 사람들이 바라본 신라의 고도 경주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3부에서는 통치를 잘 하려는 바람, 국토 수호에 대한 의지, 태평성대를 추구하는 마음 등 인간의 다양한 소망이 투영된 지도를 선보인다. ‘청구관해방총도’(보물 제1582호)와 같은 국방 지도나 ‘평양성도’, ‘전라도 무장현도’ 등의 회화식 지도가 대표적이다. 지도가 널리 사용되면서 등장한 작은 크기의 ‘수진본 지도’나 ‘명당도’ 등의 풍수 지도는 일상에서 사용된 지도의 실례를 잘 보여 준다. 아울러 조선 지도의 기틀을 마련한 조선 전기 문신 정척과 양성지, 18세기 ‘동국대지도’를 만들어 대형 전국지도를 크게 개선한 조선 후기 지리학자 정상기, ‘청구도’(보물 제1594호)와 ‘대동여지도’(보물 제850호) 등 조선지도학을 집대성한 조선 후기 실학자 겸 지리학자 김정호가 만든 명품 지도들을 접할 수 있다. ‘해좌전도’, ‘천하대총일람지도’, ‘팔도도 중 경상도 지도’, ‘관동방여 중 울릉도·우산도(독도) 지도’ 등 공개된 적이 없는 중요 지도와 지리지도 대거 소개된다. 특히 아파트 3층 높이로 펼쳐진 ‘대동여지도’ 원본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도 마련돼 있다. 오는 10월 28일까지. 4000~6000원. 1699-0361.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강동 ‘강일동 안녕 기원’ 산치성제 개최

    서울 강동구가 13일 오후 6시 강일동 벌말근린공원 갈산 중턱 제단에서 400년 전통을 뽐내는 산치성제를 연다고 12일 밝혔다. 산치성제는 매년 음력 7월 1~3일 중 길일을 택해, 마을을 수호하는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던 전통 민간 제례다. 2013년부터 서울시 자치구 지역 특성 문화 사업에 선정, 보조금 250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임진왜란 때 충남 예산 현감이었던 심희원 선생이 호랑이 등에 업혀 강일동 벌말지역으로 무사히 피란을 오게 되면서 호랑이를 산신으로 모시는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구 관계자는 “2000년대 강일동 일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위기가 찾아왔지만, 주민들이 산치성제를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부활시켜 2010년부터 성심껏 제를 지내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독도 명예주민 4만명 돌파

    우리 땅 독도 수호에 첨병 역할을 하는 독도명예주민이 4만명을 돌파했다. 경북 울릉군은 지난 7일 오후 독도 방문객 박모(59·경기 용인시)씨에게 4만번째 독도 명예주민증을 발급했다고 8일 밝혔다. 울릉군이 2010년 11월 ‘울릉군 독도명예주민증 발급 규칙’을 제정, 독도 땅을 밟았거나 배로 독도를 선회한 국내외 방문객을 대상으로 명예주민증 발급에 나선 지 7년여 만이다. 연도별로는 첫해 2010년 44명, 2011년 1825명, 2012년 4614명, 2013년 7196명, 2014년 3453명, 2015년 5515명, 2016년 6223명, 2017년 7623명, 올 들어 3504명이다. 주민증 발급 인원은 지난 7일까지 독도 전체 방문객 212만 1432명의 1.9%에 해당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직후인 2016년 7월 25일 독도를 방문했지만 아직까지 주민증 발급 신청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울릉 주민과 독도 방문객들은 “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최초 독도 명예주민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증 발급은 독도 방문객이 시기를 막론하고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울릉도~독도 선표 및 방문 기념사진)와 함께 독도명예주민증 발급 신청을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 홈페이지 또는 독도관리사무소를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발급수수료 및 우편 발송비용은 전액 무상이다. 가로 8.5㎝, 세로 5.4㎝ 크기인 독도주민증엔 울릉군수 직인이 찍혀 있다. 태극기와 독도 사진도 들었다. 울릉군 관계자는 “계속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 야욕에 맞서 독도를 지키려는 우리 국민들의 관심에 힘입어 해마다 명예 주민증 발급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반겼다. 울릉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유세미의 인생수업] 여름밤 위에 눕다

    [유세미의 인생수업] 여름밤 위에 눕다

    아직도 뜨거웠던 한낮의 열기가 남아 있는 흙바닥이다. 동네잔치라도 하면 쓰임새가 클 듯한 멍석을 깔았다. 아이들이 벌레가 나올 것 같다고 질색하며 마루 위로 달아나는 걸 보면서 웃다 멍석 위에 벌렁 누워 눈을 감는다. 얼마 만인지. 이 평화를 이해하는가, 땀에 젖은 등허리도 여름 땅위에 착 붙어 편안하다고 한다.수호씨는 지난달 2년 동안 고군분투하던 베이커리 숍을 결국 닫았다. 평생 직장 생활한 퇴직금을 전부 쏟아붓고 마련한 빵집이었다. 장사 수완도 없고 세상물정에도 어두운 자신을 잘 알기에 큰 욕심 내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 결혼시킬 때까지는 아버지란 사람이 떳떳하게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돌다리 두드리듯 골라 개업한 가게였다. 그러나 자신이 30평도 안 되는 가게 하나에 그렇게까지 휘둘릴 줄 몰랐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뼈에 아로새길 만큼 당했다. 처음부터 그 가게가 돈을 벌어 줄 리 만무하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대체 평생 직장 생활하는 동안 뭘 경험하고 배운 건지 수호씨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할 뿐이었다. 논리상으로는 이해 불가하나 그나마 싸게 타협해 횡재한 거라는 권리금은 살 떨리는 거금이었다. 임대료는 또 얼마나 높은지 어떤 달은 매출의 절반이 임대료로 나가기도 했다. 직원들은 걸핏하면 말없이 그만둬서 그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고 친구들을 불러 빵을 빼돌리던 아르바이트생을 나무라자 인격 모욕당했다고 그를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비슷한 시기에 퇴직한 전 회사 동료들은 속도 모르고 그를 부럽다고 했다.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일하는 그를 사장님이라 부르며 한 턱 내라고, 2호점은 언제 오픈할 거냐고 덕담 아닌 덕담에 수호씨는 쓴웃음을 감추며 삼겹살에 소주를 사기도 했다. 그렇게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가게가 적자를 거듭하다 가게 보증금까지 다 날린 뒤 드디어 폐점하는 날, 수호씨는 막막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며 처음으로 울었다. 그리고 폭염에 열대야가 계속되는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여름휴가를 가자고 했다. 속으로야 이 판국에 여름휴가가 무슨 얘기? 저 여자가 홧김에 이판사판 해외여행이라도 지르는가 싶어 뜨악했다. 도대체 휴가 갈 정신은 어디 있고 휴가비 아니라 생활비도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아내는 다진 소고기를 넣어 고추장을 볶고, 꽈리고추 곁들인 멸치볶음을 만들어 병에 담았다. 그리고 떠나온 곳은 경북 봉화. 인근에 마을도 없는 시골집이다. 그녀의 지인이 태백산 줄기 아래쪽에 낡디낡은 집 한 채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나. 들은 그대로 족히 몇백 년은 돼 보였다. 주방도 가스가 연결돼 있는 것이 신기할 만큼 옛 모습을 갖추고 뒷마당에는 그냥 뚝뚝 뜯어 물에 헹구면 쌈 거리로 훌륭한 야생초들이 흔전만전이다. 멍석을 깔고 서둘러 모깃불을 피웠다. 뒷마당 호박 넝쿨을 들추니 그렇지, 음전한 호박이 감춰져 있다. 고추도 바짝 약이 오른 채 조롱조롱 매달렸다. 아내는 시골 풍경이 낯설지도 않은지 천연덕스럽다. 집에서 준비해 온 멸치로 국물을 내고 호박, 감자, 고추를 뚝뚝 썰어 넣어 수제비를 끓인다. 휴가 첫 끼니다. 어스름해지는 여름 저녁 모깃불 향을 맡으며 먹는 아내의 수제비에 눈물이 날 것 같다. 폭신한 감자, 달큰한 호박 맛을 곁들여 한입 가득 수제비를 입안으로 퍼 넣으며 ‘괜찮다, 괜찮다’ 되뇐다. 시골집 주인이 손님맞이 선물로 준비해 둔 묵은지를 꺼내 온 아내가 손으로 쭉쭉 찢어 수호씨의 숟가락에 얹어 준다. ‘다시 시작하면 돼. 괜찮아. 잘될 거야.’ 아내의 고춧가루 묻은 손이,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월급 320만원’ 유가족 위해 내놓은 공군 병장

    ‘월급 320만원’ 유가족 위해 내놓은 공군 병장

    “칠곡 전투기 사고 조종사와 생전 인연… 제 작은 정성, 가족들에게 위로되기를”“제 작은 정성이 조국을 수호하려 노력한 조종사의 희생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군은 7일 손유승 병장(22)이 군 복무 중 모은 월급 320만원을 ‘하늘사랑 장학재단’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손 병장은 기부를 결심한 계기에 대해 지난 4월 경북 칠곡에서 추락한 F15K 전투기 사고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사고에서 순직한 조종사는 평소 제게 인간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던 따뜻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오는 21일 전역하는 손 병장은 공군 제11전투비행단 102 전투비행대대의 작전지원병이다. 하늘사랑 장학재단은 1982년 사고로 순직한 조종사의 부모가 28년간 모은 1억원의 유족연금, 조종사 2700여명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2억여원의 성금을 기반으로 2010년 9월에 창립됐다. 2012년부터 매해 비행임무 중 순직한 공군 조종사의 유자녀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손 병장은 이곳에 기부한 첫 번째 사병이며 공군은 손 병장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외교관 추방에 항공편 폐쇄까지…캐나다·사우디 ‘인권 갈등’ 확전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영항공사의 토론토 직항편을 폐쇄했다. 캐나다 정부의 사우디 인권 탄압 규탄에 반발해 24시간 내 사우디 주재 대사의 출국 및 외교관계 중단, 신규 무역·투자 거래 중단 등을 선언한 데 이은 조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운동가 체포 등을 놓고 불거진 두 나라의 갈등이 확전 양상을 띠고 있다. 국영 사우디아 항공은 6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캐나다와의 무역 및 투자를 동결하기로 한 왕실 결정에 따라 수도 리야드와 캐나다 토론토 간의 직항편 운영을 오는 13일부터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사우디의 공세는 캐나다를 겨냥한 압박 수위를 전방위적으로 높이고 있다. 사우디 교육부는 자국민이 캐나다에서 참여하는 직업훈련, 장학금, 교환 학자 등의 프로그램을 모두 중단시켰다. 또 캐나다 내 자국 학생 1만 5000여명을 다른 국가로 이주시키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국영방송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이에 대해 캐나다도 ‘인권 수호’를 내세운 기존 입장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교장관은 이날 “캐나다는 늘 인권을 옹호할 것이고, 여기에는 전 세계 여성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포함된다”고 강조했다고 로이터 등이 전했다. 사우디의 외교·경제 보복 조치 이후 캐나다의 첫 공식 반응이다. 미국은 캐나다 편을 들면서 우회 지원에 나섰다. 미 국무부는 성명을 내고 “사우디에 구금된 운동가들에 대한 추가 정보를 요구했다”며 “사우디 정부가 적법 절차를 준수하고 법률 사건의 진행 상황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갈등은 사우디 당국이 지난주 여성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 과정에서 캐나다 시민권자인 여성 운동가 사마르 바다위 등을 체포한 게 발단이 됐다. 바다위는 사우디 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2012년 ‘용기 있는 세계 여성상’을 수상한 바 있다. 캐나다 외무부는 지난 3일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모든 평화적 인권운동가들을 석방할 것을 촉구한다”고 언급했고, 이에 사우디가 “내정 간섭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양국 간 갈등이 본격화됐다. 인권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갈등은 후계 구도를 굳힌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불거져 귀추가 주목된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인형에 생명을 주고 싶었어요.제가 조물주도 아닌데 말이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인형에 생명을 주고 싶었어요.제가 조물주도 아닌데 말이죠.”

    인형작가 류오동이 말하는 헝겊인형의 세계란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인형을 좋아한다. 작고 귀엽고 예쁜 것을 보면 심리적으로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까닭이다. 아주 먼 옛날 주술적인 측면에서 인간을 보호하는 수호신을 형상화했다거나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한 인간 속죄물 대용으로서 인형이 생겼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미적 감각이 담긴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거나 애착 대상의 장난감으로 장르가 다양화됐다. 애착 대상의 인형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독거 노인들까지도 좋아하며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정겨운 느낌을 주는 헝겊인형을 만들고 이들이 사는 가상의 세계를 창작해낸 인형작가 류오동(48)씨를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갤러리인사아트에서 만났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벽에는 인형이 서 있고, 옆에서는 못질 소리가 한창 났다. 전시 작업 준비에 한창이던 류오동씨는 “제가 만든 인형이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끊임 없이 말을 걸어와요. 그 말을 따르다보니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졌죠.”라고 말한다. 바닥을 정리하고, 조명의 각도를 손질하는 이들은 남편과 아들, 두 언니와 사촌 여동생이란다. 손발이 척척,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인형, 인형 의상, 인형 가구, 인형 수공예품 손수 만들어 류오동씨는 이곳에서 8~13일 자신의 인형소설 ‘마담 리우의 인형이야기 1: 두루비 갤러리엄’ 등을 출판한 기념으로 ‘류오동 인형 조형전’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그는 단순히 헝겊 인형을 만드는 차원을 넘었다. 인형 텍스타일, 인형 가구와 더불어 인형들이 사는 가상의 세계까지 구축했다. 인형을 이용한 베개, 텍스타일을 활용한 쿠션과 가방 등 수공예품도 개발했다. “두루비를 상표로 등록도 해뒀죠.” - 인형 만들기는 언제부터 했나요.☞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코바늘로 인형을 떴던 기억이 나요. 그땐 그냥 재미로 해 본 것이었구요. 제가 인형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때는 2011년 8월쯤이었어요. 그때부터 저 만의 인형을 만들고자 연구를 시작했고, 다른 작가들의 인형을 수집하고 인형 관련 자료들도 모으기도 했지요. 인형이 산업으로서는 발달해 있는데 대학교에 전공학과도 없고, 관련 인문학적 책도 상당히 부족하더라구요. 주로 퇴근해서 잠자기 전까지 집에서 3시간 정도 집중해서 만들지요. ●“인형을 완성했을 땐 아이를 낳았을 때의 기쁨이 오죠”- 인형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여러 수공예 활동을 해보았지만, 인형을 완성한 후의 기쁨과 성취감은 말할 수 없이 좋았어요. 첫 인형인 ‘비비아나’가 완성됐을 때의 그 느낌은 저에게 딸이 생긴 그런 감동이었죠.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그 설레고 벅찬 환희가 밀려왔죠. 그래서 인형을 계속 만들게 된 것 같아요. - 누구에게서 배웠나요.☞ 어려서부터 손으로 만들고 꾸미는 걸 좋아했어요. 코바늘뜨기나 대바늘뜨기는 언니들이 하는 걸 보고 어깨너머로 배웠고, 친정어머니께서 손바느질하시는 걸 보고 혼자 따라해 보기도 했어요. 인형 만드는 것을 특별히 배우지는 않았지만, 재봉틀, 퀼트, 프랑스 자수, 십자수, 비즈 공예 등 다양하게 경험해 봤지요. 이런 수공예 활동이 많이 도움됐어요. ●“헝겊인형, 동심 자극···인간 본연의 순수에 가까워져” - 특히 헝겊인형 작가로 알려졌는데.☞ 인형 재료는 아주 다양합니다. 헝겊·나무·도자기·우레탄·흙·옥수수 잎 등···. 작가에 따라 때로는 재료를 혼합해 쓰기도 하지요. 제가 헝겊인형을 선택한 이유는 천이라는 소재가 부드럽고, 편안하며, 따뜻해 정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헝겊인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꿉놀이 동심을 자극한다고 할까요, 아니면 인간 본연의 순수에 가까워진다고 느껴요. 저는 헝겊 인형에 생동감을 넣어주기 위해 관절을 만들어줬지요. - 인형을 만들 때 주로 어떤 생각을 하나요.☞ 특정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인형을 만들지 않습니다. 소수를 위한 인형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인형을 만들고 싶거든요. 제가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성별·연령·국적·장애에 관계 없이 누구나 사용 가능한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제 인형은 특별히 아름답거나 독특한 인형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죠. 그래서인지 저의 전시회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제 작품을 보고 행복해 합니다. 그게 최고의 만족이죠.- 헝겊인형에 ‘마담 리우’라는 이름이 있던데.☞ 마담 리우는 제가 만든 관절헝겊인형 이름이고, 제가 쓴 인형 소설 속의 주인공이랍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바로 저 자신이 투영됐다고 할 수 있어요. ‘리우’라는 이름은 저의 성인 ‘류’를 본떠서 지은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바로 저 자신이 되는군요. 또 ‘두루비’는 ‘두루두루 비추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제가 창작한 관절헝겊인형들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입니다. 두루비의 특징은 얼굴이 입체적이고 어깨·팔꿈·손목·고관절·무릎·발목이 연결돼 있어서 자세를 바꿀 수 있지요. 굳이 관절헝겊인형을 만든 것은 좀 더 사람과 비슷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인형을 만들고 싶어서죠. 반면에 ‘두루비아’는 두루비 즉, 관절헝겊인형이 아닌 모든 인형을 말합니다. 두루비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만듭니다. 재료는 빈 병·깨진 컵·키친 타올 홀더·하프 돌 등으로 다양합니다. ●“인형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며 어울려 사는 커뮤니티를 만들었죠” - ‘두루비 갤러리엄’은 뭐죠?☞ 두루비 갤러리엄은 마담 리우가 운영하는 지상 3층, 지하 1층짜리 인형가게예요. 백조 모양을 한 건물 지하에는 그녀(마담 리우)가 만들었거나 소장한 인형들이 전시된 화랑이 있죠. 1층에는 인형을 만드는 다양한 재료들을 판매하는 가게가, 2층에는 사무실과 강의실이, 3층에는 리우네 가족이 사는 주택이 있어요. 사실, 이 건물은 실제로 제가 짓고 싶은 인형박물관의 모델이랍니다. 인형을 만들에 한참 들여다보면 인형이 제게 속삭여요. 말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두루롬어’ ‘두루한어’를 만들어줬죠. 이들 인형이 읽는 신문도 있어요. 새로운 옷이 필요하다고 하면 제가 디자인을 하죠. 가구도 만들어주고, 집도 만들어주고···. 이렇게 해서 하나의 세계가 인형 세계가, 두루비 커뮤니티가 만들어진거죠.- 삽화도 직접 그렸네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만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림을 직접 그리는 이유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장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서죠. 전문가들의 시각에선 형편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인형 공예활동의 연장으로 시도해 본 것입니다. 종이인형도 어릴 적 직접 그려서 놀던 추억이 생각나서 두루비 캐릭터들을 그려봤지요. - 텍스타일 디자인도 직접 하나요?☞ 텍스타일은 원단에 프린팅하기 위한 패턴인데, 몸집이 작은 인형 의상에 적합한 패턴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디자인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제가 디자인한 텍스타일로 인형 뿐만 아니라 양산, 가방, 쿠션도 만들었지요. ●“인형 커뮤니티에선 각자의 입장과 갈등을 풀어나가죠” - 그런 인형을 소재로 이야기를 쓴 이유는.☞ 제가 만든 인형들이 많은 사람과 공유할 방법을 찾다가 스토리텔링을 생각해 냈죠. 인형을 소재로 한 이야기나 영화들을 찾아봤죠. 대개 공포영화에서 인형들이 등장하는 사례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제가 인형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어른이 무슨 인형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는냐’, ‘무섭지 않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래서 인형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이야기를 통해서 인형의 따스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야기는 제가 만든 인형을 사람들과 공유하기에도 아주 좋은 방법이고요. 처음에 책을 쓸땐 어린애나 소녀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50~60대 남성들에게서도 ‘신기하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의외였죠. 책은 영어로 번역도 할 거예요.- 인형 이야기의 특징은?☞ 저는 애니메이션이나 동화 같은 판타지를 좋아합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트와일라잇’ 등을 읽고 작가의 상상력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제 작품이 감히 그 대작들과 견줄 정도로 스케일이 크거나 흥미진진하지는 않습니다만 제 인형들이 등장하는 상상의 세계를 구축해 보고 싶었어요. 물론 제 이야기에는 선과 악의 구도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아요. 절대적인 악의 무리에 맞서서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도 없지요. 오히려 수공예의 따스함과 느림의 미학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각자의 삶에서 등장 인물들이 생각과 입장의 차이에서 생기는 갈등을 함께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전개가 됩니다. 또 규중칠우쟁론기와 조침문을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끌어와서 현대판 규방문학을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말하는 투가 전업 작가들과는 다르게 느껴져 직업을 물었더니 중학교 교사란다. ‘미술 선생’이냐고 확인하니 뜻밖에도 “영어를 가르칩니다”고 답한다. 교사의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인형작가라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단다. 그래서 그가 인형작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도 많다. “본업 대신 인형을 한다는 것이 마치 ‘외도’하는 것같아서···. 학교 일에 소홀하다는 말을 듣고싶지 않아서 더 일찍 출근하고, 더 열심히 가르쳐요.” 영어 교사인 점이 해외 인형 작가의 동향이나 인형 정보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단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2000억弗 vs 600억弗… 물고 물리는 관세폭탄

    2000억弗 vs 600억弗… 물고 물리는 관세폭탄

    ‘벼랑 끝’ 미·중 무역전쟁 한 달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한 달째로 접어들면서 ‘화해’보다는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6일 미국이 340억 달러(약 38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 폭탄을 부과하면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두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은 2000억 달러 규모 ‘관세 폭탄’ 카드를 흔들면서 중국을 강하게 위협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는 오는 11월 전에 중국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기세등등하게 중간선거에 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중국은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예고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미국의 일방적 보호무역주의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면서 외국인의 투자 문턱을 낮추는 등 시장개방 정책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관세로 오바마 정권 부채 갚아 나갈 것 ” 미·중이 서로에게 강력한 무역 보복을 이어 가고 있지만 물밑으로는 협상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누구의 예상보다도 훨씬 잘 작동하고 있다”면서 “중국 증시는 지난 4개월간 27% 빠졌고 그들은 우리와 대화하고 있다”며 ‘협상 중’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1일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율을 10%에서 25%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확인했다. 미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의 콘퍼런스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무역대표부(USTR)에 관세율 인상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백악관에서 가진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기존의 10% 관세 부과 안이 너무 약하다며 반대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2일 폭스뉴스에서 “대중국 제품의 관세 적용(10%→25%)은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라 신중히 생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수장인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3일 관세뿐 아니라 환율 등 총공세를 예고했다. 커들로 위원장은 폭스뉴스에서 중국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이유는 ‘4.1’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년 만에 최고 수준인 4.1%를 기록한 것이다. 호조를 보이고 있는 미 경제 상황이 무역전쟁의 피해를 완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트위터에 “관세 덕분에 감세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버락 오바마 전 정권 8년 동안 약 21조까지 불어난 부채를 갚아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는 다양한 대(對)중국 공격 카드가 있다. 가장 손쉽게는 아직도 2500억 달러 이상의 관세 폭탄 카드가 남아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의 대중국 수입 규모는 5056억 달러다. 500억 달러와 2000억 달러 관세 폭탄 카드를 쓰고도 아직 2500억 달러 이상의 ‘총알’이 남아 있다. 반면 미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1304억 달러였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제품에 2000억 달러 관세 폭탄을 던지면 중국으로서는 최대치인 1304억 달러 규모로 맞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같은 규모로 보복에 나섰지만 이제부터는 맞대응할 수 없는 셈이다. 여기에 ‘환율 조작국’ 지정이라는 ‘비장의 카드’도 있다. 중국도 지난 3일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 관세 폭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5일 상반기 무역통계를 발표하고 수출입 총계가 14조 1200억 위안(약 2310조원)으로 전년보다 7.8% 포인트 늘었으며 특히 미국과의 무역 규모도 5.2% 포인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쟁 끝나려면 美 경기 후퇴·中 양보뿐” 중국은 제2의 개혁개방을 무역전쟁 돌파구로 마련했다. 통화정책도 충분한 유동성 확보로 돌아섰다. 인구대국 중국은 세계 최대 내수시장을 갖고 있고 경제의 대외의존 비율도 30% 수준이다. 중국 내 중산층의 성장으로 내수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오는 11월 상하이에서 열리는 제1회 국제수입박람회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까지 홍보에 나선 국가 행사다. 이 박람회 현장에서 중국은 세계만방에 개방 의지를 재천명하고 미국의 보호무역과 대비되는 ‘자유무역의 수호자’라는 이미지 선전에 나설 예정이다. 워싱턴의 한 통상전문가는 “미국의 경기가 호조를 이어 간다면 미국은 중국에 절대 양보하지 않고 ‘맹공’을 퍼부을 것”이라면서 “무역전쟁이 끝나려면 중국의 전격적 양보나 미국의 경기 후퇴, 두 가지 변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무기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공격에 나선 미국, 코너에 몰린 듯 보이지만 강한 결집력과 집중력으로 어마어마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중국의 힘겨루기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트럼프 나흘 만에 제임스에 반격 “멍청한 레몬에게도 당했는데”

    트럼프 나흘 만에 제임스에 반격 “멍청한 레몬에게도 당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를 공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이하 현지시간) 밤 “금방 르브론 제임스가 텔레비전에서 가장 멍청한 남자인 돈 레몬과 인터뷰하는 걸 봤다. 그는 르브론을 영리하게 보이게 만들었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난 마이크에 한 표!”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곧바로 알아채기 어려울 것이다. 시계를 지난달 30일로 되돌려야 한다. 르브론은 자신의 가족 이름을 내건 재단과 고향인 오하이오주 애크런의 공립학교들이 함께 벌이는 위기의 초등학생 돕기 프로젝트를 출범시킨 뒤 CNN 앵커인 레몬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스포츠가 불러오는 효과가 대단하며 사람들을 함께 묶어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데 스포츠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스포츠는 결코 사람들을 갈라놓는 어떤 것일 수 없다. 늘 누군가를 한 데 묶어주는 뭔가였다”고 덧붙였다.트럼프의 트위터 답글은 인터뷰 방영 나흘 만에 나온 것이다. “마이크에 한 표”라고 표현한 것은 르브론과 세계 최고의 선수를 다투는 논쟁에서 마이클 조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ESPN은 설명했다. 르브론이 공공연히 트럼프 대통령을 공박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지난해 9월 미국프로농구(NBA) 파이널을 제패한 골든스테이트 선수단을 백악관에 초대했다가 취소한 일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을 “미치광이”라며 “백악관에 가는 것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만 대단한 영예가 될 것”이란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같은 달 트럼프가 국가가 연주될 때 무릎을 꿇거나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지 않는 미국프로풋볼(NFL) 선수들은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도 르브론은 대통령이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할 소리냐고 쏘아붙였다. 당시 그는 “(트럼프가) 이 아름다운 나라를 이끌 지도자로서 갖고 있는 권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인종과 관계 없이 미국 대통령이 수호자의 능력, 리더십, 격려의 말 같은 것을 기대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 날 아프게 만드는 것이,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 때문이란 것을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개탄했다. 르브론은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었던 지난 6월에도 클리블랜드나 골든스테이트나 시즌 우승을 차지해도 백악관 초대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트럼프 역시 두 팀 모두 초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되받았다. 그는 같은 날 ESPN의 레이철 니콜스과 가진 별도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을 공격하는 일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르브론은 “누군가 스포츠란 플랫폼을 이용해 우리를 분열시키려고 하지 않느냐”고 되물은 뒤 “스포츠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선사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방치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원조 사대문’ 풍납토성 내려보며…한성백제의 밤에 빠지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원조 사대문’ 풍납토성 내려보며…한성백제의 밤에 빠지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2회 강남야행(청담동에서 압구정동까지) 편이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압구정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무더위를 피해 야간에 진행하는 첫날이었다. 낮에 한 차례 비가 쏟아지고 갠 뒤라 안심했으나 출발 시각인 오후 6시쯤 비가 다시 뿌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비’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일단 첫 목적지인 청담동배수지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이동하는 10여분 동안 신발과 옷이 다 젖었지만 공원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강의 여름 저녁 풍경을 맞았다. 강남의 야경을 구경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참가자들은 이날 지하철 7호선 청담역 1번 출구에서 만나 청담배수지공원~한강공원~청담동 명품거리~K스타거리~압구정로데오거리~한일관 순으로 한강변과 밤거리를 누볐다. 무더위가 가신 쾌적한 거리를 걸으면서 오디오가이드시스템을 통해 강남의 어제와 오늘 이야기를 들었다. 해설을 맡은 청담동 토박이 이기훈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정감 있는 목소리로 강남의 속살을 조곤조곤 들려줬다.우리는 흔히 ‘조선’이라는 시대적 프레임에 갇히곤 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조선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백제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원조 서울’은 강북 사대문 안이 아니라 강남이었다. 강남 중에서도 한성백제의 왕궁과 왕릉이 있던 송파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이 강남 사대문이었다. 서울 2000년 역사 중 1400년을 훌쩍 건너뛴 뒤 조선 건국 이후 600년 역사만 기억하면서 역사의 땅 강남지역을 조선시대 강북 사대문 주민용 초식(草食)재배지로 전락시킨 셈이다. 기원전 18년 고구려의 왕자 온조가 한강을 건너 오늘의 강남땅에 십제(백제)를 세운 이유는 한강을 방어선 삼아 북방의 강국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고자 했다. 475년 웅진(공주)으로 퇴각한 뒤 다시 깨어나기 전까지 ‘망각의 왕국’으로 버려졌다.답사단이 찾은 삼성동 청담배수지공원과 경기고 터는 한성백제의 옛 땅이었다. 고고학계에서 ‘삼성동 토성’이라고 불리는 이 공원은 한성백제시대 쌓은 토성의 흔적이 1980년대 초반까지 남아 있었다. 성 안에 흰 바윗돌이 우뚝 솟아 있었는지 조선 후기 문인 삼연 김창흡이 ‘백석성’(白石城)이라고 노래한 곳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가 옛 토성 터를 둘러싸고 더 높이 솟아 ‘아파트 산성’을 형성하고 있다. 봉은초등학교에서 청담배수지공원의 서북 경사면을 올려다보면 옛 산성의 윤곽이 흐릿하게나마 드러나는 듯하다.청담배수지공원 정자에 오르면 한성백제의 옛 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 청담대교를 중심으로 동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잠실주경기장 너머 123층 롯데월드타워에 이르는 넓은 벌이 펼쳐진다. 바로 백제의 왕성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왕릉인 석촌리 고분 영역이다. 강 건너 강북 아차산을 마주 보고 고구려 군사와 대치하는 형국이다. 한강 서쪽 남산에서부터 동쪽 광나루까지 탁 트인 조망은 삼성동토성이 포기할 수 없는 백제의 군사요충지였음을 실감케 한다. 삼성동토성은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함께 한성백제의 3대 토성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삼성리 산성은 광주군 언주면 삼성리 봉은사 동북쪽에 있다. 총길이는 170간, 높이 1간의 토루(土壘)가 산허리를 에워싸고 한강에 접하고 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서 1간은 180㎝이니 성 둘레는 500m쯤 된다. 청담역 2번 출구에서 삼성역 방향으로 가다가 경기고 동쪽 영동대로 언덕길에 ‘삼성동토성’ 표지석이 서 있다. 표지석에는 ‘건국 초 한산에 도읍을 정하였던 백제는 고구려 및 신라에 대항하여 한강유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곳 옛 삼성리 일대에서 뚝섬 맞은편까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을 따라 토성을 쌓았다. 토성의 유적이 최근까지 남아있었으나, 강남 개발로 인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삼성동토성은 탄천이 한강으로 합류하는 서쪽 구릉인 현재의 경기고에서 청담배수지공원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경기고에서 청담동배수지공원을 잇는 산성구간은 영동대로를 놓으면서 도로 아래에 묻혔다.향토사학자들은 지대가 가장 높은 경기고 화동관이 옛 삼성동토성 본성 터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문화유적총람에 따르면 이 성의 길이는 약 350m에서 500m에 이르는 테뫼식 산성(산 정상을 파내 축성하는 형식)이다. 1871년 작 광주부읍지에 보면 대모산 뒤쪽이 대왕면, 탄천 오른쪽이 중대면, 양재천 아래쪽이 언주면이라고 적혀 있다. 오늘날 강남 중심부를 이루는 옛 광주의 3개 면이다. 또 언주면 관내에 선릉과 정릉 그리고 양재역과 무동도 등 4개의 지명이 등장한다. 유감스럽게도 삼성리토성은 등장하지 않는다.삼성리라는 지명은 1914년 언주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봉은사, 저자도, 무동도의 ‘세(三) 땅을 합쳤다(成)’고 하여 만들어진 합성지명이다. 한강에 접한 언주면은 뚝섬으로 건너가는 청숫골 나루가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 왕의 행차나 충청·경상·전라 삼남지방과의 연결은 주로 송파나루나 광나루를 통했지만 양재역이 번성했던 점으로 미뤄 선·정릉과 봉은사를 오가는 행렬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삼성동을 이룬 세 곳 중 저자도와 무동도는 압구정동 공유수면 매립공사 때 해체돼 지금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단지 아래로 사라졌다. 압구정동이라는 지명을 남긴 한명회의 압구정 정자는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 언덕에 있다. 봉은사는 조선시대 강남지역의 압도적인 랜드마크였다. 왕릉을 넘어서는 존재감을 보였다. 본래 성종을 모신 선릉 자리가 절집이었다. 1495년 선릉이 조성될 때 이곳에 견성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기에, 왕릉 안에서 능을 수호하는 능침사(陵寢寺)의 역할을 맡기면서 견성사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왕릉 안에 절집이 있는 것을 반대하는 유생들의 상소가 이어지자 선릉의 동쪽으로 이전했다. 1562년 중종을 모신 정릉이 견성사 자리로 옮겨오면서 자리를 비워주고 지금의 수도산 아래로 옮겼다. 이때 80결(1결은 볏단 1000개)의 토지와 200명의 노비를 보유한 대찰로 발돋움했다. 1970년대 강남개발과정에서 봉은사 소유 10만평의 금싸라기 땅이 한 평당 5300원씩 총 5억 3000만원에 정부 수중으로 넘어갔다. 오늘의 삼성동 코엑스와 한전 부지이다. 1974년 서울에 고교평준화가 시행돼 경기고가 강남으로 이전, 학교를 짓는 와중에 한성백제시대 삼성동토성도 덩달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역사는 그렇게 햇볕과 달빛을 번갈아 쬐는 법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극장순례(영화의 고향) ●일시 : 8월 4일(토) 오후 6~8시 ●집결 장소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 앞 ●무료 신청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futureheritage.seoul.go.kr)
  • “외국인 주축이던 첫 세관… 공식 문서는 영문이었죠”

    “외국인 주축이던 첫 세관… 공식 문서는 영문이었죠”

    박물관 전시된 문서 계기로 세관史 관심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장소 밝히기도 열정으로 시작… “어렵지만 공부라 생각”“1883년 우리나라 첫 공식 세관인 인천해관은 조선인이 아닌 10여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주축을 이뤘습니다. 이 때문에 공식 문서는 (한자나 한글이 아닌) 영문으로 생산될 수밖에 없었죠.” 독학으로 세관 뿌리 찾기에 나서고 있는 김성수(54) 인천본부세관 화물정보분석과장이 29일 들려준 개항 당시 조선 세관의 모습은 일반적인 예상과 많이 달랐다. 청나라 해관을 모델로 해외 경력자들이 조선으로 들어왔고 조선인은 이듬해부터 영어시험을 거쳐 채용됐다. 공식 문서에 남아 있음에도 그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초기 세관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다. 김 과장은 “인천해관에서는 기상관측과 검역, 항만·등대 관리, 도로 측량, 우편사업 등 정부 업무를 대거 수행했다”면서 “근대화에 기여한 세관의 역할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세무대(4기)를 졸업하고 1986년 관세 공무원으로 입직해 32년째 근무 중인 그가 세관의 역사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2006년 서울세관 근무 당시 박물관에 전시된 한 권의 낡은 문서 ‘Dispatch from chemulpo(제물포)’가 단초가 됐다. 1883~1885년 인천해관에서 지금의 관세청장에 해당하는 조정 총세무사에게 올린 영문 보고서다. 김 과장은 우리나라 세관 기록의 시초라 할 수 있는 250쪽짜리 문서를 사진으로 찍은 뒤 이를 타이핑해 책자로 만들고 번역했다. 조선 왕실이 인천해관을 통해 ‘마제은’을 상하이의 한 은행에 예치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제은은 중국에서 제작된 말발굽 모양의 은화로 조선왕실에서 가치저장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는 “(왕실이) 왜 상하이 소재 은행에 마제은을 입금했는지 이유를 밝혀낼 자료를 수집 중”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장소를 두고 인천 화도진과 중구 파라다이스호텔 주차장 터, 제3의 장소 등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하지만 김 과장이 개항 당시 제물포 지역 지도를 발굴한 덕분에 조약 체결 장소가 옛 라파치아 웨딩홀 터였다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그는 해관사료 연구와 관련해 국내에 남아 있는 자료가 부족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피력했다. 우연히 중국에서 초기 문서 97권의 존재를 확인하고 방문 계획을 세웠지만 ‘사드 문제’로 무산됐다. 1905년 외국인 세관원들이 해관을 떠나면서 가져간 문서들로 추정된다. 그의 세관 뿌리 찾기 노력은 조직의 지원이나 보상 기대 없이 오로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열정만으로 진행 중이다. 김 과장은 “조선 세관 연구는 매우 번거롭고 어렵지만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기에 큰 부담은 없다”면서 “우리나라 세관의 다양한 사건·사고에 대한 기록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알쏭달쏭한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거취표명

    알쏭달쏭한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거취표명

    “종헌종법 질서는 반드시 존종되어야 합니다.” “종도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지난 27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조계종 총무원장 집무실 앞 로비. 느닷없이 날아든 기자회견 고지에 모여든 기자들의 긴장감은 이내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이날 오전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총무원장을 예방해 종단 사태 수습과 관련한 간곡한 입장을 전달하고 전국선원수좌회 소속 스님들이 조계사 대웅전에서 종단 문제 해결을 위한 참회의 108배를 올렸던 터라 설정 스님의 표현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퇴진이란 말씀인가, 종헌종법을 수호해 현 상황을 고수하겠다는 발언인가. 질의응답 없이 입장문만 읽어 낸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표현대로라면 일단 거취 표현을 하긴 한 셈이다. 설조 스님이 조계사 일주문 옆에서 조계종 적폐청산과 은처자 의혹 등과 관련한 총무원장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을 시작한 지 38일 만의 첫 입장표현이다. 설정 스님의 입장문을 보자면 최근 종단 사태에 대한 사과와 종단 구성원 뜻 수용의 의지가 묻어난다. 특히 “조속한 시일 내에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위한 길을 진중히 모색하여 진퇴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혀 어떤 식으로든 조만간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듣기엔 따라선 사퇴 쪽에 무게를 둘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속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것 같다. “종단 주요 구성원 분들께서 현재의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한 뜻을 모아주신다면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설정 스님이 회견에서 밝힌대로 종단 구성원의 의견 수렴이 조계종 안팎에서 분출하는 요구를 얼마만큼 수용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실제로 종단 안에선 설정 스님의 퇴진을 만류하거나 반대하는 스님들이 적지않다. 여기에 설정 스님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오래전 일로 종단이 이렇게까지 혼란을 겪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며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거듭 부인했다. 특히 사태 해결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설정 스님이 강조한대로 종헌종법에 따른 종도들의 위견 수렴과 퇴진 후 총무원장 선거와 새 집행부 구성의 과정이 험로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설정 스님이 밝힌대로 “종단 구성원 뜻의 수렴” 과정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총무원장의 회견이 끝난 뒤 중앙종회 종책모임 간담회가 열려 어느 정도 의견들을 수렴한 것으로 보인다. 30일에는 교구본사주지협의회에서 전·현직 회장단·임원진 모임이 열려 모아진 뜻을 설정 총무원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여기에 원로회의 스님들과 비구니 스님들과의 만남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을 보면 종정 진제 스님이 밝힌 대로 8월말까지는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도 같다. 종단 차원에서 마련중인 종단 개혁과 혁신을 위한 개선안도 폭발적인 수준의 조치를 담을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역시 문제 해결은 종단내 구성원, 특히 복잡하게 얽혀있는 파벌·세력간 이해 절충과 타협이 관건일 것 같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선원수좌회와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등에서 예고한 승려대회 개최 등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설정 스님의 입장문 말미는 이렇게 장식돼있다. “붓다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는 새로운 희망의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도반으로 함께 할 수 있길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김성호 기자 kimus@seoul.co.kr
  • [전문] 문희상·이정미·심상정·김호규 노회찬 의원 영결식 조사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서는 국회장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영결사를 맡았으며,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심상정 의원, 김호규 금속노동자가 조사를 낭독했다. 다음은 영결사와 조사 전문. 문희상 의장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노회찬 의원님!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처연한 매미 울음만 가득합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태양빛 가득한 계절이건만 우리 모두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듯 참담한 심정으로 모여 있습니다.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에서 본청입구에서 노회찬 의원님의 모습이 보일 듯합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여유 가득한 표정의 우리 동료, 노 의원님을 만날 것만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에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질 않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아파했고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못가진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고 생각했던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서슬 퍼렇던 유신에 항거했습니다. 보장된 주류의 편안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했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와 넥타이가 말해주는 대중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정치와 생활정치의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돼주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마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중시하고 신중했던 삶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22일 저녁 병상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동생의 집을 들렀지만,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누구도 꿈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차마 이 길을 선택한 노회찬 의원님의 고뇌와 번민, 회한과 고통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멈췄지만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님! 지난 닷새 동안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서 꽃을 건넸습니다. 흐드러지게 꽃피었어야 할 거인과의 갑작스런 작별을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동료들과 함께 국회장을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유가족 여러분께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과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회찬 의원님, 이제 평생을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이 한국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은 우리 국회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이정미 대표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표님! 수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대표님을 추모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막 일을 마치고 땀자국이 선연한 티셔츠를 입고 온 일용직 노동자부터 검은 정장을 정중히 입은 기업 대표까지.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원내대표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 분들이 저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모두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꼭 필요한 사람’. 이보다 노회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단체가 추모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해고 노동자이고, 산재로 자식을 잃은 어미이자 아비였으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였습니다. 노회찬이 우리 정치에 없었다면 ?간절한 외침을 전할 길이 없었던 약자들이 노회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정치 이력은 바로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삶을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 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 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습니다. 진보정당 탄생 후에는 그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 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노회찬,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한 날, 억장이 무너진 당직자들에게 당신이 처음 했던 말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분노의 눈물을 삼킨 동료들에게 오히려 웃음과 유머를 보였습니다. 당신은 하늘이 주신 이 재능으로 시민들에게 정치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안겼습니다. 그 유쾌함은, 위기와 역경을 낙관으로 이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노회찬은 불같은 분노와 강직함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2013년 의원직 상실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삼성 X파일을 공개 하겠다”고 말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였습니다. 마지막 유품인 10년이 넘은 양복 두벌과 낡디 낡은 구두 한 켤레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지만 너무도 소박했던 노회찬을 봅니다. 우리 정치를 이상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노회찬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런 노회찬을 보며 저기 국회에도 자기 편이 한명 쯤은 있다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같은 노회찬을 보며, 많은 정치인들은 정당과 정견은 다르더라도 그를 존중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노회찬이, 무겁고 무거운 양심의 무게에 힘겨워 할 때 저는 그 짐을 함께 나눠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오직 진보정치의 승리만을 염원하며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 때도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당원들과 국민들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의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와 정의당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며, 노회찬의 간절한 꿈이었던 진보집권의 꿈은 이제 정의당의 꿈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문희상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정의당 창당대회 연설을 기억합니다. 노 대표는 투명인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진보정당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고, 그는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노회찬의 이 다짐이 정의당만의 다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정치가 너나 ?없이 투명 인간으로 취급해 온 일하는 사람들, 소수자들, 약자들을 향해 이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치개혁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정치 변화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벗, 존경하는 나의 선배 노회찬 이시여. 부디 영면하십시오. 먼 훗날 다시 만나면, 수많은 노회찬의 부활로 진보정치의 큰 꿈을 이루고 이 나라가 평등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이 됐다고 기쁘게 이야기 나눌 것입니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노회찬 대표님! 나의 동지, 사랑하는 동지, 영원한 동지여! 지금 제가 왜? 왜?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뒤로 숨고만 싶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책감에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쉬운 길 놔두고 풍찬노숙의 길을 자임한 우리들이었기에, 수많은 고뇌와 상처들을 기꺼이 감당해왔던 믿음직한 당신이었기에, 우리 사이의 침묵은 이심전심이고 믿음이며 위로였기에, 지금껏 그래왔듯 그저 침묵으로 기도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저의 아둔함에 가슴을 칩니다. 칠흑 같은 고독 속에 수 없는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인천에서, 저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가로 알게 되어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회찬, 심상정은 늘 진보정치의 험준한 능선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패배로 점철되었던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그 간난신고의 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열어주셨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당신과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와 국민의 부름 앞에서 주저 없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뜻을 국민들께서도 널리 공감해주시기 시작한 이 때, 이렇게 황망하게 홀로 떠나시니 원통합니다. 당신 없이 그 많은 숙제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제 슬픔을 접으려 합니다.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위해 당신이 감당했던 천근만근 책임감을 온몸으로 받아 안을 것입니다. 저와 정의당이 그 유지를 가슴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습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정당으로 발돋움 하여 국민의 더 큰 사랑 받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노회찬 없는 진보정당,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노회찬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당신이 끝끝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정의당 당원들이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김호규 금속노동자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노회찬 선배께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밤새 가르방으로 긁어 유인물로 만들고 새벽찬 어둠을 뚫고 잰걸음으로 인천, 부천지역 공단 주변 집집마다 돌리고 먼 길을 돌아 출근했던 노동자 생활이 떠오릅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가명으로 활동한 1986년 늦가을이 생각납니다. 벅찬 가슴안고 뚜벅뚜벅 걸었던 노동자의 길을 기억 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노회찬 선배. 30년이 지난 오늘 영원한 안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제가 부족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름이 바뀌어도, 함께했던 선배였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양날개론을 증명해보고자 실천한 선배였기에, 온갖 시련과 갈등이 혼재된 진보정당운동에서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였기에, 그저 믿었습니다. 저희가 안일했습니다. 예전 조직활동을 했던 때처럼 분명하게 비판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했다면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했던 얄팍함을 반성합니다. 그래도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위해 희망을 만들었던 선배를 존경합니다. 푸근한 호빵맨으로, 적절한 비유로 비판의 경지를 한 단계 높여 대중적인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낸 선배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낮은 울림이 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 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선배의 감성을 배우겠습니다. 1986년 부천에서 노동자의 길을 시작한 저에게 지난 30여 년 동안 선배와의 인연은 일선의 현장활동가로서 가까웠지만 사안에 따라 다소 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울산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선배의 지도는 늘 좋았고 명쾌했습니다. 갈등했던 기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울산 바닷가에서 의기투합했던 도원결의는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를 보내는 이 자리는 회한과 슬픔이 앞서지만 넋 놓지 않고 다시 한 번,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선배를 통해 체득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활동하는 동안 놓치지 않고, 노동자의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마다 나지막이 퍼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장례기간 동안 선배를 추모하는 긴 추모행렬을 보았고,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노동운동가에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이기에 영원한 안식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광화문 정동길 금속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선배를 기억하며 서성이는데 붉은 고추잠자리가 제 주위를 맴도네요. 추억과 동심의 잠자리 모습에서 씨익 웃는 선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번뜩 내려와 ‘귀로’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다가옵니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엄혹했던 노동운동가에서, 치열한 진보적 대중 정치인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첼로의 운율을 남긴 만큼 먼 길 돌아왔습니다. 처음처럼, 아가처럼 편히 쉬십시오.
  • ‘친애하는 판사님께’ 박병은, 이유영의 키다리 아저씨 “내가 해결해줄게”

    ‘친애하는 판사님께’ 박병은, 이유영의 키다리 아저씨 “내가 해결해줄게”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박병은이 변호사로 완벽 변신했다. 박병은이 25일 첫 방송된 SBS 새 수목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극본 천성일, 연출 부성철)에서 법무법인 오대양의 상속자이자 변호사인 ‘오상철’로 첫 등장했다. ‘오상철’은 돈과 명예, 모든 것을 손에 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심가 캐릭터. 어제 방송에서 오상철(박병은 분)은 첫 부검실 참관을 마친 송소은(이유영 분)을 위로해주기 위해 만났다. 소은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온 남자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 묻자 되레 화가 난 모습으로 “내가 해결해줄게. 해결해줄 수 있으니까”라고 말하며 진지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상철이지만 아직 갖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소은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상철이기에 ‘키다리 아저씨’처럼 뒤에서 묵묵히 해결해줄 자신이 있었던 것. 하지만 상철은 소은에게만 좋은 사람이었고 깊은 배려심 속에 남다른 카리스마가 감춰져 있었다. 한수호(윤시윤 분)를 접대하던 도중 핸드폰을 만졌다는 이유로 아버지 오대양(김명곤 분)에게 빰을 맞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동차 문을 발로 걷어찼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 상철을 말리지 않는 운전기사의 모습에서 그가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또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어 첫 방송부터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케 했다. 박병은은 지난해 tvN ‘이번생은 처음이라’ 이후 1년간 쉬지 않는 열일 행보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매 드라마마다 새로운 변신을 시도해 안방극장에 신선함을 선사한 것은 물론, 어떠한 캐릭터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놀라운 흡수력으로 연기 내공을 입증했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김광식 감독의 영화 ‘안시성’의 개봉도 앞두고 있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보여줄 박병은의 활약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한편 박병은이 변호사 ‘오상철’로 변신해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매주 수, 목요일 저녁 10시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시간’ 김정현, 태도 논란 날린 폭풍 열연 “과한 몰입 이해돼”

    ‘시간’ 김정현, 태도 논란 날린 폭풍 열연 “과한 몰입 이해돼”

    ‘시간’ 김정현이 새로운 모습으로 연기 변신을 선보이며 성공적인 첫걸음을 내딛었다. 25일 첫 방송된 MBC 새 수목드라마 ‘시간’(극본 최호철, 연출 장준호)에서 김정현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인 천수호 역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유일한 시간과 결정적인 매 순간, 각기 다른 선택을 한 네 남녀가 지나간 시간 속에서 엮이는 이야기. ‘비밀’, ‘가면’ 등 몰입도 높는 작품을 통해 내공을 발휘해온 최호철 작가의 신작으로 방영 전부터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김정현의 폭풍 열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휘몰아치듯 이어졌다. 극 초반부터 전날 마신 술로 필름이 끊긴 뒤 자신의 호텔룸에서 발견한 지현(서현 분)의 동생 지은(윤지원 분)의 죽음 앞에 사색이 된 수호의 모습은 안방극장을 단숨에 숨죽이게 만들었다. 시간을 거슬러 이어진 지현과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 수호는 오해에서 비롯된 갑질로 지현과의 인상적인 만남을 시작했고 두 사람의 꼬이고 꼬인 인연은 악연으로 이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수호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 모습까지 그려지면서 궁금증을 더했다. 단 1회 안에 담긴 김정현의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선은 순식간에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의문의 죽음 앞에 사색이 된 모습부터 갑질의 끝판왕이었던 지현과의 첫 만남, 뇌종양 선고를 받고 허탈함에 젖어 방황하는 행동까지 ‘천수호’라는 인물 그 자체로 빙의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앞서 김정현은 ‘시간’ 제작발표회 당시 웃음기 없는 시크한 태도로 논란이 됐다. 김정현 측은 “역할에 몰입해서 그랬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한편 ‘시간’은 매주 수,목요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친애하는 판사님께’ 첫방부터 시청률 1위...윤시윤 1인 2역 ‘명품 연기’

    ‘친애하는 판사님께’ 첫방부터 시청률 1위...윤시윤 1인 2역 ‘명품 연기’

    SBS 새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가 지상파 방송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며 첫 방송부터 시청자 관심을 듬뿍 받았다. 26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측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SBS 새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전국 기준 1부 5.2%, 2부 6.3%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작인 드라마 ‘훈남정음’ 마지막 방송 시청률인 2.8%에 비해 두 배 이상 오른 수치다. 이날 첫 방송된 MBC 새 드라마 ‘시간’은 1부 3.5%, 2부 4.0% 시청률을 기록, ‘친애하는 판사님께’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냈다. 한편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실종된 형 한수호(윤시윤 분)를 대신해 전과 5범 한강호(윤시윤 분)가 판사가 되어 법정에 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실전 법률’을 바탕으로 법에 없는 통쾌한 판결을 시작하는 얼렁뚱땅 불량 판사 성장기를 다룬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배우 윤시윤은 1인 2역 연기를 펼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낼 전망으로, 시청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배우 이유영, 박병은, 헬로비너스 나라 등이 출연한다.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 SBS에서 방송된다. 사진=S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道 튼 도봉산, 김수영 시비 앞에선 더위도 ‘풀’처럼 눕는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道 튼 도봉산, 김수영 시비 앞에선 더위도 ‘풀’처럼 눕는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1회 도봉(창포원의 붓꽃) 편이 지난 14일 서울 도봉구 도봉동 도봉산 자락에서 진행됐다.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도심을 떠나 도봉산 속으로 본격 피서를 떠난 셈이다. 울울창창한 도봉산의 녹음과 계곡 길을 걸으며 ‘풀’처럼 눕는 김수영의 시와 28살의 나이 차를 뛰어넘은 조선 최대 ‘러브 어페어’ 유희경과 이매창의 ‘이화우’ 스토리에 흠뻑 빠졌다.참가자들은 이날 도봉산역 2번 출구에서 만나 서울 창포원~평화문화진지~도봉구 희망목재문화체험장~도봉유원지~산악박물관~도봉서원 터와 김수영 시비까지 쉬엄쉬엄 걸었다. 다락원 체육공원과 도봉숲속마을, 광륜사, 북한산 생태탐방원 코스는 그냥 지나쳤다. 창포원과 도봉산 계곡 나무 그늘에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창포원 붓꽃이 절정을 넘긴 게 아쉬웠다. 지난해 가을 문을 연 평화문화진지는 분단의 상징에서 문화와 창작의 공간으로 변신해 눈길을 끌었으나 때마침 내부 공사 중이어서 전망대에서 도봉산의 비경을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해설을 맡은 박정아 서울미래유산지도사는 센스 넘치는 해설과 즉석 시 낭송회로 참가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설문조사에서 참석자들은 “김수영 시비 앞에서 마련한 시 낭송 무대를 통해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삼각산(북한산)이 서울을 600년 수도로 영속하게 한 으뜸 산이라면 도봉산은 버금 산이다. 삼각산과 도봉산은 서울의 뒤를 병풍처럼 두르고, 떠받치고, 지키는 양대 수호산이다. 삼각산이 영기를 머금은 ‘세 개의 거대한 뿔’ 형상인 데 반해 도봉산은 ‘붓을 꽂은 듯, 홀(笏)을 떠받친 듯’ 우뚝 선 화강암이 산 전체를 ‘바위길’(道峰)로 보이게 한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서울지명 사전’ 등에 따르면 도봉이란 지명 속에는 조선왕조 개국의 길을 닦았다는 뜻과 유생들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의미가 이중으로 담겼다고 풀이하고 있다. 도봉이라는 지명은 고려 광종 때인 971년 도봉원(도봉사)을 고려의 ‘3대 부동’(不動)사원으로 선정한 데 이어, 1010년 거란의 침입 때 고려 현종이 도봉사로 몸을 피했다는 기록에 등장한다. 부동사원이란 국사 및 왕사가 머무는 선종사찰이다. 인왕산이라는 산 이름이 인왕사라는 절 이름에서 나온 것처럼 대개 사찰의 이름을 산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관례에 따라 도봉사가 있는 산을 도봉산이라고 불렀을 개연성이 높다.이후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도봉산 영국사’(寧國寺)라는 산과 사찰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 도봉산이라는 산 이름은 조선 중기 들어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사는 도봉사의 후신으로 동일 사찰로 추정되며, 사림의 영수 정암 조광조를 모신 사액서원 도봉서원이 들어서면서 전국적 지명도를 얻었다. 도봉이라는 산 이름의 유래를 조선 성리학의 도학(道學)사상과 연관 지을 수 있다. 도학은 고려의 불교식 풍습과 사고방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사대부의 학풍은 물론 가풍까지도 주자의 ‘가례’(家禮)를 따르게 하고, 젊은 과부의 재가도 허락하지 않은 완고한 유학이다. 중기 이후 조선의 풍습과 학풍을 바꿔놨다. 도학사상의 주창자이자 개혁가인 조광조가 유독 도봉산을 좋아했고 즐겨 찾았으며, 도봉사에서 도학사상을 정립했기에 도봉이라는 지명이 살아났다는 추정이다. 도봉산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얻은 것은 1573년 도봉서원이 폐사한 영국사 터에 세워지면서부터였다. 또 1694년 도봉서원에서 강학을 하고 바위글씨를 남긴 우암 송시열의 위패까지 함께 모시면서 조선 후기 도학의 산실이자 집권 노론세력의 상징적인 서원이 됐다. 도봉이라는 지명처럼 서울·경기지역 유생들이 독서하고, 강학하며, 수신하는 학문공간이 됐다. 정암의 도학사상 정립을 바탕으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같은 대학자가 탄생했다. 이에 보답하듯 이이는 정암을 김굉필·정여창·이언적과 함께 ‘동방사현’(東方四賢)으로 칭했다. 송시열의 ‘도봉동문’(道峰洞門)을 비롯 당대 명인 재사들이 새겨놓은 바위 글씨 14개가 증언하듯 조선후기 도봉서원은 성균관에 필적하는 위상을 자랑했다.도봉산은 유희경과 매창의 연애현장이 아니다. 천민 출신으로 의병장을 지낸 문인 유희경이 도봉산에 침류대라는 거처를 짓고 살면서 부안에서 만난 기생 매창과 시를 주고받았을 뿐이다. 도봉서원은 정선의 ‘도봉추색도’와 ‘도봉서원도’, 김석신의 ‘도봉첩’, 심사정의 ‘도봉서원’ 서화로 남았다. 또 이이는 ‘도봉서원기’에 도봉서원의 상황과 건물배치까지 세세하게 남겼고, 서거정과 이항복도 도봉산 영국사와 관련된 시를 남겼다. 그러나 홀연히 사라졌던 영국사는 실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누구도 의심치 않던 도봉서원 터에서 지난 2012년 영국사의 기단과 금강령(금동 요령)과 금강저(금동 곤봉) 등 희귀한 고려시대 불교 금속공예품 79점이 쏟아져 나왔다. 기록에만 존재하던 영국사의 존재가 1000여년 만에 확인된 것이다. 청동 걸이향로와 청동 향 그릇에서는 ‘도봉사’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고의적으로 파묻어 놓은 듯 이곳이 도봉사의 소유물이며, 도봉사와 영국사는 같은 사찰의 다른 이름임을 나타냈다. 영국사 터에 도봉서원이 들어선 것은 시대의 전환을 뜻한다. 최초의 서원 소수서원이 숙수사 터에, 경주 옥산서원이 정혜사 터에 자리잡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퇴락한 사찰 부지와 기단을 활용해 유교시설로 탈바꿈한 셈이다. 오늘이 내일의 역사가 되듯 고려 불교의 성지가 조선 성리학의 성지가 됐다. 영국사의 도봉서원 전환은 유교와 불교 양 종교의 상생이다. 60여개의 사찰이 깃든 도봉산에 서울 유일의 서원 하나쯤 남아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누원(다락원)을 통해 고려 개경과 조선 한양을 오가는 물류와 문화의 교류지점이던 도봉산은 이제 고려 불교문화와 조선 유교문화의 만남이라는 희귀한 향기를 내뿜는 공간이 됐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강남야행(청담동에서 압구정동까지) 일시: 7월 28일(토) 오후 6~8시 집결장소: 지하철 7호선 청담역 1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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