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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사 주최 진도 「영등살 놀이」 성황

    ◎「신푸리」등 연주… 5만관객 어깨춤/「연신풍장」 관람 외국관광객 탄성 연발/청사초롱 1만여개… 축제분위기 고조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금성이 공동으로 주최한 제17회 진도 영등축제 「영등살 놀이」행사가 26일 낮 12시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마을앞 바닷가에서 18만여명의 내·외국인 관광객과 진도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려하게 펼쳐졌다. 「뽕할머니가 바다가 갈라진뒤 가족들을 만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진도의 전설을 형상화한 영등축제는 이날 하오 4시52분쯤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사이에 폭 40m,길이 2·8㎞에 신비의 바닷길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절정을 이뤘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더 유명한 이번 행사에는 장덕상서울신문감사,김정주진도군수,박병훈문화원장,곽순재진도군의회의장을 비롯한 각급기관장들과 이주영문화재관리국민속실장등 문화예술관계자 5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하오 4시쯤부터 회동마을과 모도사이의 모래언덕이 바닷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관광객들의 탄성이 간간이터져 나오기 시작.바닷길이 완전히 열려 장관을 이룬 하오 5시30분쯤에는 수만여명의 인파가 신발을 벗어들고 바닷길에 들어서 회동마을 앞바다는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바닷길에 나선 관광객들은 저마다 소라등 각종 조개류와 낙지 해삼등을 주우며 신기함을 체험했으며 행렬은 성경속의 모세의 기적이 재현된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일대 장관을 이뤘다. ○…이번 영등제는 25일 밤 진도읍 거리에 걸린 1만여개의 청사초롱이 일제히 불을 밝힌 가운데 진도국교 교정에서 서울신문사와 금성이 주최한 남도민요 창극 뱃노래 신장기춤등 다채로운 전야제 행사가 펼쳐져 축제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전야제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25명의 서울예술단이 선보인 「연신풍장」.26일 회동마을에서도 공연된 이 무용극은 전설속의 뽕할머니의 혼을 모셔 인도하고 바다의 수호신을 맞이하는 무속의식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굿을 구성진 가락과 춤으로 표현,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멋들어진 우리가락에 경쾌한 현대리듬를 가미해 젊은층을 상대로 국악의대중화를 이끌어온 국악실내악단 「슬기둥」의 공연실황은 한편의 진한 드라마였다.신뱃노래,신푸리,들춤,꽃분네야로 이어진 국악들이 연주될 때마다 진도 회동야외공연장을 꽉 메운 5만여 관람객들은 어깨춤을 추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우리가락의 흥취에 젖었다. 특히 진도지역에 전해오는 전통무악과 현대음악이 환상적인 앙상블을 이뤘다는 평가. ○…이어 벌어진 명창 이임례씨의 판소리 무대엔 특히 외국인 관람객들이 몰려 우리가락에대한 그들의 관심을 가늠케 하기도.이명창이 「춘향가」「심청가」를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한 맺힌 소리로 열창하자 외국인들은 연신 박수갈채.일본인 관광객 도미무라 노보루(부촌승)씨(40·동경도립고교교사)는 『말로만 듣던 바닷길을 몸소 체험하고 한국의 판소리를 들을 수있는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면서 『내년에는 학생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바닷길을 사이에 두고 회동마을과 인근 가계·모도마을 어민들은 60여척의 어선에 형형색색의 만기를 달고 해상퍼레이드를 벌여 이날 축제분위기를 한껏고조시켰다.특히 어린이들은 오색연막탄이 퍼져 나갈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4월하늘을 밝게했다. ○…한편 이번 영등제에는 일본 NHK등 외국 언론사들이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특히 NHK방송은 전야제행사에서부터 민속공연마당이 열릴때마다 이 지방의 무속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 ’94 전통문화축제 7일 화려한 팡파르/내고장 향토문화제 꽃피운다

    ◎진해군항제 시작으로 11월까지 전국 7곳서/정인원 3천명 참가… 전토예술 세계화 역점/의상·소도구등 2만점 동원… 예산 총4억원 투입/서울신문사·금성 공동주최 「94 향토문화축제 지원사업」의 첫번째 결실인 「충무공 승전행차행렬」이 오는 7일 군항제가 열리는 경남 진해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올해로 5회를 맞는 「향토문화축제 지원사업」은 서울신문사와 금성사가 우리의 전통축제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지역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 90년부터 시작한 것.KBS의 후원아래 회를 거듭할수록 지역민의 폭넓은 호응을 얻고있는 이 축제는 이제는 전국 각 지역 향토문화제의 대표적 행사로 뿌리를 내렸다.올해는 특히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지역축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방침으로,행사진행도 단순행차행렬 일변도에서 벗어나 가·무·낙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무대를 꾸미는데 역점을 둘 예정이어서 한층 관심을 모은다. ○「축제예술」이 진행 올해는 전국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제 기간중 각 지역의 특색과 전통이 담긴 일곱차례의 축제행사를 펼친다.이벤트전문기획사인 「축제예술」(대표 허규)이 연출·진행을 맡은 이번 행사에는 4억여원이 투입됐으며 출연할 총인원은 3천여명,의상·소도구·장비등 예상 소요물품도 2만점에 이르는 등 완벽을 기해 어느해보다 알찬 축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주최측은 전통축제행렬을 해당지역의 역사적·문화적 특성을 살린 축제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현지의 민속놀이및 민요와의 연관성을 고려,내용을 재구성했다.또 각 지역의 문화예술인·향토사가등 지역문화 담당자들과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축제의 완성도를 높인 것도 올해의 특징.이밖에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향토문화제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지역유지등 현지주민과 관계저명인사등을 중심인물로 출연케 할 예정이다. 전국을 신명난 축제의 마당으로 만들게 될 이번 행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다. ▷진해 군항제◁ 충무공의 기개가 어린 충절의 고장 진해에서 벚꽃 만발한 가운데 펼쳐질 군항제가 7일 우렁찬 팡파르를 울린다. 올해로 32회를 맞는 군항제는 이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가 주최하는 종합향토예술제.「충무공승전행차」는 경축식이 열리는 진해 공설운동장에서 필승로∼충무공시비∼진해역을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2·5㎞구간에서 펼쳐진다. 경축식은 충무공의 안골포해전 승리를 알리는 파발마가 폭죽과 연막탄이 터지는 가운데 식장으로 달려 들어오며 시작된다.이어 충무공이 취타대의 주악속에 입장하면 최초의 승리를 알리는 장계가 낭송되고 승전무와 검무·사물놀이등 축하공연이 펼쳐진다.경축식이 끝나면 사물놀이패와 충무공의 영정을 앞세운 승전행차행렬이 출발한다.행렬에는 거북선과 판옥선이 등장해 충무공의 기개를 드높인다.또 시내중심가에서는 축포속에 판굿을 벌이는등 풍성한 볼거리를 마련,주민과 관광객들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축제분위기의 절정을 이뤄낸다는 계획이다. ▷진도 영등제◁ 전남 진도군 회동마을 신비의 바닷길 현장에서 「영등살놀이」가 다채롭게 펼쳐진다.25·26일 이틀간 진행될 이번 공연은 전남 진도지방에 전해내려오는 「영등살」에 얽힌 설화와 이 지방의 민속예술을 축제극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25일 영등제의 시작을 알리는 고유제에 이어 흥겨운 신뱃노래 연주속에 서울가무악예술단의 신장기춤이 펼쳐진다.본행사날인 26일에는 길놀이와 씻김굿을 통해 「영등살」설화의 주인공인 「뽕할머니」를 모셔오고 진도의 풍속에 따라 재액을 쫓고 바다의 수호신을 맞아들이는 무속의식도 선보인다.한편 영등살은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마을 사이 2.8㎞에 이르는 바다가 매년 음력 3월초 간만의 차로 바닷길을 이루는 현상으로 외국에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잘 알려져있다. ▷남원 춘향제◁ ○국악의 문화상품화 판소리의 고향인 남원고을에서 열리는 춘향제는 정절의 상징인 춘향의 얼을 부각시키고 한국여인의 아름다움을 드날리기 위해 춘향문화선양회가 마련한 향토축제.64회의 연륜을 자랑하는 행사답게 실속있는 내용으로 꾸며진다.5월18일 광한루 특설무대에서 펼쳐질 「춘향전」(이몽룡 타령)은 올해가 국악의 해인 만큼 「국악의 문화상품화」에 무게중심을 둔 것이 특징.이에 따라 단순한 행렬위주의행사 대신 인간문화재 박동진·오정숙·은희진·박후성씨등 국내 정상급 명창들이 대거 참여,지금은 사라진 협율사창극을 재현해내는 이색무대로 꾸민다.이번에 선보일 춘향전은 구한말 전문창극단체인 협률사에서 공연되었던 창극을 오늘에 다시 본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부여 백제문화제◁ 올해로 40회를 맞는 백제문화제가 오는 10월2일 백제의 고도인 부여 구드레공원에서 열린다.「백제의 영광」을 내세운 이번 행사에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58호인 줄타기와 경서도 소리를 위주로 꾸민다.축제의 압권은 환상적인 울림이 돋보이는 가무악 「다스림」공연.특히 이 춤무대는 백제선현의 원혼을 달래고 인간의 화합과 전진을 다짐하는 내용의 검무가 물결처럼 이어지는 장관을 연출해낼 예정이어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경주 신라문화제◁ 오는 10월9일로 예정된 신라문화제는 신라문화선양회가 찬란했던 신라의 문화를 보전·계승하기 위해 주관하는 향토축제.국악대제전·미술대전·궁도대회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이번 문화제에서도 「태종무열왕 행차행렬」을 재현한다.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태종무열왕을 중심으로 김유신장군과 화랑의 행렬을 편성,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사명감을 고취시킨다는 방침.태종무열왕을 앞세운 행렬은 취타대·농악대등을 포함,4백여명으로 편성할 예정이다. ▷충주 우륵문화제◁ ○충효사상 재조명 신라의 악사 우륵을 기리는 우륵문화제는 올해 24회로 오는 10월12일 충주 공설운동장과 시내일원에서 열릴예정이다.이번에 마련된 「임경업장군 출진행렬」은 금나라와 싸우기 위해 전장에 나서는 임경업 장군의 장렬한 모습을 행렬로 재현한 것.안으로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밖으로는 왜적을 물리치려던 장군의 기개와 국난극복 의지·충효사상을 재조명한다는 것이 기획의도다.장군을 모시는 청신과정을 통해 장군의 혼을 받드는 제의식이 서두를 장식한다.이어 태껸시연등으로 흥을 돋우며 취타·화관무등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는 위안잔치가 벌어진다.행렬은 공설운동장에서 시작,시청∼제1·2로터리를 거쳐 중앙공원에 이르는 3㎞구간에서 펼쳐진다. ▷진주 개천예술제◁개천예술제는 경상남도가 해마다 거도적으로 벌이는 종합예술제이다.오는 11월4일 선보일 「김시민 목사행렬」은 진주성을 죽음으로 지킨 선현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고 진주의 역사적 이미지를 고양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김시민 목사를 중심으로 민·관·군이 한덩어리가 되어 왜적을 물리친 사실을 행렬화한다.특히 이번 행렬은 진주 검무 및 진주 오광대·쾌지나칭칭나네 민요와 민속연희등 특징적인 군무의장형식을 도입해 「고수사전지계」의 투철한 정신을 살린 것이 특징. 전도와 취타대·대고·목사 및 군사·의병·민속연희단의 순으로 진행되며 모두 4백여명이 호흡을 맞춘다.
  • 오늘부터 「은산별신제」 공연/전승자 차진용씨 참가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가 보유자 차진용·석동석씨 등 전승자와 주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24일부터 29일까지 6일동안 전승지인 충남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일원에서 펼쳐진다. 은산별신제는 집단신앙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전 주민이 함께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수호신제다. 이와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인 「제주칠머리당굿」이 보존회장 김윤수씨 등 전승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25·26일 이틀동안 전승지인 제주시 건입동 칠머리당에서 펼쳐진다. 이 굿은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굿으로 어부와 해녀의 해상 안전과 풍요를 비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 1300년전 정신세계(백제를 다시본다:5)

    ◎상징동물은 바로 백제인의 소우주/향로엔 짐승 39마리·수중생물 26마리/사슴은 영생·재생·원숭이는 장수의미/처음 나타난 기마무인상… 천리를 달리는 진취적기상 돋보여 백제의 동물에 대해서는 별로 전해진 것이 없다.선사시대 암각화나 고구려 고분벽화,신라 토우에는 많이 나타났지만 백제쪽으로 오면 동물이 상대적으로 희귀하였다.그런데 웬 일인가….부여 능산리 출토 금동향로에서 백제의 동물들이 한꺼번에 달려나왔다.1300여년전 백제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보게 하는 이들 동물은 고고민속학적 해석을 바닥낼 정도가 되었다. 향로에는 봉황을 비롯하여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현실세계에 실재하는 호랑이·사슴·코끼리·원숭이 등 39마리의 동물상이 표현되고 있다.또 연꽃사이에는 두 신선과 수중생물인 듯한 26마리의 동물이 보인다.특히 이 향로의 기마인물상들은 백제미술품에서는 처음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곰은 모신적존재 전체적인 구성원리는 음양의 체계를 이루어 아래로 수중동물의 대표격인 용을 등장시키고,그 위로 연꽃과 수중의 생물,지상계에는 산악과 짐승 및 신선,천상계의 정상부는 원앙과 봉황을 배치하였는데,봉황은 양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동물이다. 백제금동향로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 가운데 특히 백제와 관련이 많은 곰,남방계 동물인 원숭이와 코끼리,백제미술품에서 처음 나타나는 기마상,신령스런 영매로서 영생과 재생의 상징인 사슴등이 민속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곰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한민주의 모신적 존재로서 한국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곰은 단군신화와 민간설화에서 여성으로 등장한다.환웅과 혼인한 융녀의 몸에서 단군이 태어난 건국신화,삼국유사에 신라 김대성이 토함산에 올라가 곰을 잡고 곰의 징벌이 두려워 그 자리에 곰을 위해 장수사를 지었고,고구려의 해모수는 유화를 웅신산 기슭 압록으로 유인했다는 역사문헌기록,여인으로 변한 곰이 나무꾼을 유혹해 동거한 금강(곰강)의 전설 등 곰은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곰 웅자」 붙은 지명이 웅천,웅촌,웅진,웅강,웅산 등으로 많다.특히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금강이 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명으로 흥미를 끈다.이 곰이 백제향로 정면에서 왼쪽에 꼬리를 치켜세우고 걸어가다 도인을 향에 되돌아 보고 있다. 선계의 산에 나타난 원숭이·코끼리·연꽃 등은 불교 문화를 수용한 세계관의 한 표현이다.입에 앞발을 대고 있는 원숭이가 뭐라고 귓속말을 전하는 듯하다.예로부터 「동국무원」이라 하여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던 것으로 원숭이와 얽힌 내용은 그리 흔치 않다.원숭이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신라 토우의 원숭이는 부적으로 휴대하거나,부장품 혹은 각종 용기의 장식으로 사용되었고,십이지신상의 원숭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당당한 시간신이며 방위신으로 나타난다.청자,백자로 만든 원숭이는 도장,작은 항아리,연적,걸상에서 자연에서의 모습과 모자뉴대의 형상을 띠고 있다.옛 그림 속에서는 원숭이가 십장생과 함께 장수의 상징으로,자손 번창의 상징으로 스님을 보좌하는 역할로 묘사되고 있다. 기마인물상은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백제무인이 두발을 곧추세운 사나운 기세의 말을 타고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수평적으로 내닫고 있는 정적인 신라의 마각문토기·마형토기·기마인물토기·천마도등과 고구려 고분벽화의 말을 타고가는 기사도,말을 타고 활을 쏘는 수엽도,죽은 사람의 영혼이 타고 가는 개마도등과는 다르다.45도 각도로 위로 치고 나가는 금동향로의 백제 기마무인상에서는 천리를 달리는 진취적 기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말에 대한 표현방식은 시대에 따라서 문헌·유물·설화·신앙·놀이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말에 대해서 느끼는 관념은 변함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 같다.말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은 「신성한 동물」「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으로 수렴되었다.그래서 하늘의 사자,중요한 인물의 탄생을 알리고 얘기할 줄 아는 동물,예언자적 구실,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승용동물,장수·신랑·선구자 등이 타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다. 사슴과 새 그리고 맹호가 평화롭게 뚜껑의 맨 아랫부분에 부조되어 있다.사슴이 유유자적하며 선계의 산으로 오른다.사슴아래 나뭇가지에는 새가 앉아 노래하고 나무아래로 맹호가 포효하고 있다.백제인의 여유와 취미와 예술,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오늘날의 민속이나 무속에서는 사슴이 중요한 신앙소로 등장하지는 않는다.그러나 상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정이 다르다.우리 민족은 사슴을 상상의 동물인 기린에 준하는 거룩한 동물로 숭상하였다. ○영원의 세계표현 사슴뿔은 남권의 상징이자 가부장및 공동체 수장의 상징일 수 있다.사슴뿔은 나뭇가지 모양을 하고 있고 봄에 돋아나 자라면서 딱딱한 각질로 되었다가 이듬해 봄에 떨어진다.그리고 다시 뿔이 난다.이러한 순환기능과 나무를 머리에 돋게 하고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동물은 사슴뿐이다.따라서 사슴은 대지의 원이를 갖춘 동물로 여겼다고 할 수 있다. 사슴의 출현은 좋은 일이 생길 징조로 보았다.청학이 신선의 벗이자 짝이듯이 사슴도 신선의 벗이자 시종이었다.사슴은 호랑이와 더불어 신선의 탈것으로 생각되었다.사슴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과 닮아 작은 기린으로 여겼으며 신선으로 도인의 품성을 갖춘 것으로 인식했다. 금동향로의 1백개 부조상은 영원불멸의 하늘 세계의 상징으로서 봉황과 북방 설원에서 설매 끄는 사슴,상상의 동물인 공작,하늘을 나는 천마의 신성함,사람과 가장 가까운 영물로서 원숭이 등등 고대 백제인의 이상과 꿈,영원의 세계를 표현한 소우주라 할수있다. ◎백제인의 신앙생활/한국인 심성속에 자리잡은 동물/거북·학·기린 등 신령으로 모셔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삶을 지키기 위한 원초적 본능으로 신앙미술을 창조했다.선사암 각화등이 그 초보적인 신앙미술이다.신앙미술은 곧 여러가지 의미가 부여된 동물상징으로 발전함으로써 생활문화와 사상,관념,종교등을 표현하기에 이른다.그리고 동물은 원시시대이래 인간에게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가하면 먹거리이기도 했다.그 힘은 노동력으로도 이용되어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한반도에서도 바위그림이나 동물벽화를 비롯해 토우,토기,고분벽화 등에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한다.이 동물들에도 제각기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제각기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상징이 숨겨져있는 것은 물론이다.청동기시대의 반구대암각화에는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과 사냥장면,개,사슴,호랑이,곰,물고기,거북,고래등이 묘사되어 있다.이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생산활동인 고기잡이와 사냥,그리고 그 대상이된 동물들을 표현했다. 동물그림이 선사시대 바위그림에 못지않게 자주 나타난다.대상이 된 새는 학 꿩 공작 갈매기 부엉이 봉황 주작 닭등으로 현실의 새도 있고 상상속의 새도 등장한다.동물로는 범과 사슴 멧돼지 토끼 여우 곰등 산짐승과 소 말 개등 집짐승들이 그려져 있다. 신라의 동물상징은 주로 토우라 불리는 흙인형에서 나타난다.얼핏 살펴보아도 개 말 소 물소 돼지 양 사슴 원숭이 토끼 호랑이 거북 용 닭 물고기 게 뱀 개구리등이 눈에 뛴다.그런가하면 십장생 가운데 거북 학 사슴과 상상의 동물인 용봉황 기린등은 현재도 신령스런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고대인이 지녔던 정신세계의 일단이기도 한 동물의 세계가 이번에는 금동향로에 한꺼번에 나타나 백제인의 내면적 사상과 의식을 새롭게 조명할수 있게 되었다.
  • 설연휴 놀이공원/가족끼리 민속경연/윷놀이·탈춤 등 풍성

    ◎당산제 등 정초고사·레이저쇼도 볼만/북청사지놀음 등 무형문화재 공연도/서울랜드 야간개장… 불꽃놀이·가면디스코 “축제” 오는 10일은 우리나라 최대의 민속명절인 설날. 예부터 우리조상들은 설무렵이면 대대적인 놀이를 갖고 마을을 위한 고사를 지내며 한해의 풍요와 건강을 기원했다. 우리의 옛놀이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속에서 설을 맞아 명절의 멋과 맛을 흠뻑 즐길수 있도록 이런 놀이를 준비하는 곳이 있다. 서울인근 놀이공원과 한국민속촌등에서는 설날연휴기간(9∼11일) 개장시간을 늘려 관람객을 맞고 당산제 동신제등 고사및 전통연희를 펼치며 가면디스코무도회까지 펼쳐 연휴에 갈곳 없는 이들을 맞을 계획이다. ▷한국민속촌◁ 설날인 10일 낮12시 농악공연을 시작으로 설날연휴행사는 13일까지 계속된다. 11일에는 요즘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당산제·동신제등 정초고사를 지낸다.당산제는 마을 수호신인 당산신할아버지와 당산 할머니에게 풍요와 평안을 기원했던 지역공동체적 의례로 현대인들에게 잊혀져 가는 공동체 정신을일깨워준다.또 12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15호 북청사자놀음을 비롯,송파산대놀이 연희가 펼쳐지고 13일에는 강령탈춤이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서울랜드 하오9시까지 야간개장한다.이를 기념,1백50명의 공연단원이 총출동해 벌이는 오프닝 쇼와 레이저쇼·불꽃놀이축제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이어 관객들과 함께하는 가면디스코대회가 열기를 더하게 된다. 설날인 10일에는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제기차기·윷놀이·그네타기등의 「민속놀이 한마당」이 펼쳐지며 민속농악단「두레패」가 북청사자놀음과 농악놀이를 하오 두차례 공연한다. 퍼레이드행사인 「해피 5」는 퍼레이드카를 앞세우고 공연단과 두레패가 대거 참여,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통나무무대」에서는 젊은 연인과 가족단위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흥겨운 쇼와 장기자랑등을 벌이고 푸짐한 상품도 나눠 준다. ▷롯데월드◁ 연휴시작에 앞서 6일부터 하오 두차례씩 청사초롱을 든 소년소녀등 2백여명이 펼치는 「설날 퍼레이드」가 11일까지 이어져 설날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연휴기간 매일 하오2시에는 개그맨이 진행하는 사물놀이와 어린이 민속무용단의 꼭두각시춤·부채춤·장구춤·가수초청공연·외국인 장기자랑등이 열리고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연날리기·제기차기·널뛰기·노래자랑대회등의 「전통민속놀이」행사가 다채롭게 꾸며진다. ▷용인자연농원◁ 3만평규모의 눈썰매장에는 연령층에 따라 6개코스가 마련돼 설원속에서 막바지 겨울의 정취를 만끽할 수있다. 이외에 특히 온 가족·친지들이 함께 즐길 수있는 「굴렁쇠 돌리기」「투호놀이」「제기차기」등 「민속놀이판」이 동물원광장에 상설된다. 오는 13일 막을 내리는 베트남 「수중인형극」도 하루 4차례씩 공연된다.
  • 이키섬의 성모궁(일본속의 한국문화:12)

    ◎신공황후의 신사… 임난·일제침략 악용/“궁밑에 적의 목10만구 묻었다” 악감정 촉발/성모상은 한국과 일본 잇는 “뱃길의 수호신” 신공황후를 모신 이끼섬의 성모궁은 크지도 않고 오래되어 보이지도 않았다.그러나 통신사가 이곳에 묵고 가던 3백년전에도 확실히 성모궁이 있었으니까 상당히 오래된 신사임에 틀림없다. 옛날의 통신사들은 성모를 모셨다는 설명을 듣고 일본인들의 미신을 비웃었다.그런 신공황후라는 무당이 신자를 정벌했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한국침략의 구실로 이용되었다.한가지 신화가 이토록 오래 침략전쟁에 이용된 예는 달리 없다할 정도로 성모궁에 모신 귀신은 우리에게 무서운 마귀인 것이다. 중상씨가 두주를 찾는동안 안내판을 들여다 보았더니 엄청난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 중애천황의 부인 신공은 구주의 당진에서 이끼섬을 향해 3천2백70척의 군선을 출발시켰다.그때 배가 항해하는데 좋은 동풍이 불었다.일기를 그래서 풍본이라 했는데 황후는 이곳에서 잠시 바람을 기다려 다시 대마도의 악포로 갔다.삼한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황후는 이곳에 다시 들러 앞서 지어주신 풍본이란 이름 대신 승본이라 지어주셨다. ○안내판에 학살 숫자 안내판을 읽고 있노라니까 사주가 흰 제복을 갈아 입고 나왔다.손에는 항아리 하나가 쥐어져 있었는데 표면의 커피색 유약이 일부 떨어지고 깨어지기까지 한 골동품이었다. 『이것좀 보아 주십시오.혹시 도자기를 볼줄 아신다면 이 항아리의 제작연대를 가리켜 주십시오』 속으로는 웃음이 터져 나올듯하였으나 웃을수는 없었다.도자기 감정을 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신공황후라는 무녀의 존재 자체가 하늘로 올라간 이마당에 이 항아리 하나를 가지고 다시 지상에 끌어내릴수 없기 때문이었다.항아리에 쓰인 글귀는 이러했다. 『진입,일본이끼섬 풍본궁 성모대보살 귀신을 위한 다항아리.이것을 바치나이다.희재 백양내촌생천정 20연 경백』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항아리가 제작되었다는 천정20연이란 해다.본시 천정은 19년으로 끝나고 임진위란이 일어나는 천정20년을 문록 1연으로 고쳤다.그래서 일본인들은 임진왜란을 문록·경장의 역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 항아리가 제작된 해가 1592연 바로 임진년이었다.그러고 보니 이 항아리의 내력을 알법도 하다. 희재 백양내촌이란 자는 풍신수길의 침략군이 대거 이끼섬에 도착하니까 기뻐서 이 항아리를 성모궁에 바친 것이다.그 뜻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신공황후가 옛날에 삼한정벌을 하고 돌아왔듯이 이기고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안내판의 끝부분을 읽어보니 끔찍한 학살사실이 숫자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적의 목 10만1천5백을 들고 돌아온 황후는 풍본의 해안가에 굴을 파서 묻고 그 위에 석축지를 쌓아 보전을 세웠으니 이것이 바로 성모궁의 기원이다』 ○조작된 역사의 표본 필자는 10만1천5백의 목을 잘라서 바로 이 성모궁 밑에다 묻었다는 구절을 보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물론 신공황후의 이야기는 후대에 조작된 역사왜곡의 표본이지만 이 거짓말이 그뒤 정말 있었던 일처럼 꾸며져서 일본인의 대한인감정을 촉발시키고 그것을 다시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침략전쟁을 자행하여 수백만명의 인명을희생시켰으니 치가 떨리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신공황후의 신화는 임진왜란때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19세기에 와서는 일제침략전에 이용되어 『한국은 본시 일본땅이었다』『조선은 신공황후때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아 왔다.그러니 지금의 한일합방은 잃었던 우리땅을 되찾는 것이고 조선인은 본래의 주인을 찾아 돌아오는 것이다』라는 침략논리를 발전시켰다. 일본식민주의 사학자들은 신공황후의 신화만 가지고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니까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문을 훼손하여 1백년,2백년 틀리는 기사를 신공황후에 맞추는가 하면 백제왕이 위왕에게 하사했다는 칠지도를 거꾸로 위왕이 백제왕에게 바친 것처럼 꾸미다가 발각되었다. 지금도 비교적 양심적이라 평가되고 있는 고대사학자,예컨대 이노우에 히데오(정상수웅)와 같은 일본학자가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아주 부정하는데 망설이고 있다.신공황후의 이야기는 어린이용 만화같은 것인데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이 우화 하나때문에 한 민주이 한 민주을 증오하고 죽이고 한 2천년 역사가실제로 벌어지고 만 것이다. 과거의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수 있다. 물론 일어나지 않을수도 있다.그러나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끼섬의 성모궁 같은 것을 과감히 헐어 없애거나 본래의 성모상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성모는 한국과 일본을 잇는 항군의 수호신의 어머니였다.뱃사공들이 그녀에게 빌고 그녀를 배안에 간직하고 떠나면 반드시 살아서 돌아온다는 해신이었다.그런데 어느듯 위구가 이바다에 득실거리게 되자 도적놈들과 침략자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바뀌고 말았다.성모가 어디 도적놈을 지켜주어서야 되겠는가.도적을 막아주어야 한다.침략자를 응징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한 마귀할머니란 누명은 벗기 어려울 것이다.
  • 개/“충복의 상징”/민속박물관,94 갑술년맞이 세미나

    1994년은 갑술년 개띠 해.자기가 태어난 그 해의 수호신이라 할수 있는 띠 동물의 장점을 배우고 따르며 그 동물이 갖고 있는 좋은 성품과 덕성을 덕담으로 나누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갑술년을 꼭 열흘 앞둔 22일 하오 「개의 생태와 관련 민속」을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이 자리에서는 천진기 국립중앙박물관학예연구사가 「한국문화에 나타난 개(술)의 상징적 의미」,오창영 서울대공원연구위원이 「인생과 개」를 주제로 발표했다. 천씨에 따르면 개는 십이지의 열한번째 동물로 시간으로는 하오 7∼9시,방향으로는 서북서,달(월)로는 음력 9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개는 이 시각에 오는 사기를 막아주는 동물신인 셈이다.십이지의 띠 동물은 12주년을 주기로 매년 바뀌는데 육갑 가운데 개띠 해는 갑술 병술 무술 경술 임술등 6번이 든다. 천씨에 따르면 오랜 시기를 사람과 함께 살아온 개는 동·서양을 가릴것 없이 사람에게 헌신하는 충복의 상징이다.그러나 한국문화에 나타난 개는 충성과 의리의 충복,심부름꾼,안내자,지킴이,조상의 환생,인간의 동반자등 상징적 의미와 함께 서당개 똥개등과 같이 비천함의 대표격으로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한편 천씨는 불가에서는 개,특히 개고기를 금기시하나 유가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불가에서는 눈이 셋 달린 개가 삼목대왕의 환생이라는 불교설화와 개가 조상의 환생이라는 속설로 개고기를 먹지않게 된데다 절이 대개 산속에 있으므로 개고기 냄새를 풍기고 산에 가면 호환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더욱 피하게 됐다고 한다.
  • 민족 수호신 양만춘(온가족이 함께 읽는 우리역사:24)

    ◎안시성전투서 「수십만명의 당군」 물리쳐/살수·한산도대첩 못지않은 위대한 승전/“정사에 기록없다”… 국사교과서에 안실려 645년 6월 중국 당나라의 태종은 수십만명의 병력으로 고구려의 안시성(현 중국 요령성 해성현 영성자고성)을 에워쌌다. 당에 앞서 중국을 통일한 수왕조가 598∼614년 4차례에 걸쳐 고구려에 침입했다 모두 참패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침략군은 사기가 드높아 안시성쯤은 금세 함락시킬 듯했다.당군은 이미 개모성·비사성·요동성·백암성등 주변의 주요성들을 빼앗은데다 고구려의 구원병 15만명을 격파했기 때문이다. 안시성은 고립무원의 상태였다.그러나 당군의 총공격에도 안시성은 끄덕도 하지 않았고 침략군은 60여일만에 포위를 풀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안시성전투는 고구려의 살수대첩(612년),고려의 귀주대첩(1019년),임진왜란 때의 한산도대첩(1592년)에 못지않은 한국사상 위대한 승전이었다. 역사에 있어서「가정」이란 의미없는 것이긴 하나 만약 안시성이 당군에 함락당했다면 이후의 한국사는 어떻게 전개됐을까.고구려는 당시 정예군 15만명을 요동일대에 보내 당군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섬멸된 뒤였으므로 당태종이 친히 이끄는 침략군에게 멸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또 대륙세력의 침입에 방파제 구실을 해왔던 고구려의 멸망은 백제·신라의 존립에도 큰 영향을 미쳐 결국 한민족의 국가는 사라지고 이 땅은 중국의 변경지대로 전락했을 것이다. 당이 이후 혼자의 힘만으로는 고구려를 정복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신라와 연합,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신라가 독립을 유지해 민족의 정통성을 이은 것과는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현행 고교 국사교과서는 안시성전투의 승리를『백제·신라까지 보호하는 민족수호의 의의를 지닌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시성싸움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는 누구인가. 살수대첩의 을지문덕,귀주대첩의 강감찬,한산도대첩의 이순신등이 그 이름을 후세에 남겨 길이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과는 달리 안시성을 지킨「민족의 수호신」은 그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현재 나와 있는 많은 역사책 가운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한국사」등 일부 사서에서만「양만춘」을 안시성주라고 밝히고 있을뿐 고교 국사교과서를 비롯한 대부분의 역사책은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그의 이름이「삼국사기」「삼국유사」등 우리의 정사는 물론 중국의 어떤 정사에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조선 중기이후 나온 윤근수(1537∼1616)의 월정만필,김시량(1581∼1643)의 부계기문,성호사설의「경사문」,동사강목의「고이」,박지원의 열하일기등에는 양만춘을 안시성주로 기록하고 있다.특히 월정만필과 부계기문은「양만춘」이야기가 중국측 사서인「당태종동정기」「당서연의」등에 나온다고 밝히고 있어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의 정사가 그들이 거꾸러뜨리지 못한 적장의 존재를 묵살한 것은 이민족과의 관계에서 당한 수치를 기록하지 않는 그들의 일관된 역사서술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사책에서마저「양만춘」을 부인할 이유는 없다.자랑스러운 선조를 한명 발굴한다는 의미말고도 중국측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되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 대상에 창녕 3·1 민속문화회/7일 시상식

    ◎제9회 향토문화대상 7명 선정/서울신문사 제정·금성 협찬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계승과 지역문화의 창달에 힘써온 숨은 일꾼을 찾기위해 제정한 제9회 향토문화대상수상자가 1일 결정됐다. 전통문화부문과 현대문화부문으로 나눠 전국 시·군의 문화공보실과 문화원,예총등 관련단체에서 추천한 단체및 개인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영예의 대상에는 경남 창녕의 3·1민속문화향상회(회장 전병우)가 선정됐다. 또 본상중 전통문화부문에서는 ▲김기복씨(64·안성남사당보존회 상쇠) ▲안동문화연구회(회장 권오기) ▲고경재씨(60·양양문화원장)▲양인식씨(51·논산문화원 사무국장)등 4명이 뽑혔다.현대문화부문에서는 ▲정용채씨(67·해남문화원부설 문화학교교장) ▲이종찬씨(71·천안문화원장)등 2명에게 돌아갔다.대상에는 상금 3백만원,본상수상단체및 개인에게는 각각 2백만원씩의 상금이 주어진다. 올해 심사는 구상(시인)·여석기(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임동권(중앙대 명예교수·민속학)·정영호(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이중한씨(서울신문사사사편찬위원장)등 5명이 맡았다. 서울신문사 주최,금성 협찬,문화체육부 후원으로 열린 이번 향토문화대상의 시상식은 오는7일 하오3시 한국프레스센터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대상 「3·1 민속문화회」/경남 창녕·전병우 회장/매년 문화제 열어 민속놀이 재현/영남지역 만세발상지… 61년에 발족/쇠머리대기등 행사통해 전통 계승 『이번 수상을 계기로 3·1민속문화향상회는 더욱 훌륭한 향토문화를 계승하는 구심점이 될 것입니다』 대상 수상단체로 선정된 경남 창녕군 「3·1민속문화향상회」 전병우회장(49)은 수상의 영광을 모든 창녕군민들에게 돌리며 앞으로 향토문화 계승발전에 향도가 되겠다고 말했다. 창녕군 영산지역은 1919년 당시 서울의 3·1독립만세소식이 전해지면서 구중회,장진수,김추은,남경명 등으로 조직된 22인의 결사대를 중심으로 3월13일 영남지역에서는 최초로 만세의 함성이 울렸던 곳이다. 3·1민속문화향상회는 이같이 영남지역 최초의 독립운동 발상지인 창녕군 영산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선조들의 전통민속놀이를 계승하자는 온 군민들의 뜻이 한데 모아지면서 군민 전체를 회원으로 삼아 지난 61년 발족됐다.이같은 취지에 따라 발족된 3·1민속문화향상회는 61년 발족때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3월1일을 전후해 창녕군의 문화행사인 3·1민속문화제를 주최하면서 향토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해 오고있다. 향토문화 전승의 장으로 해마다 개최되는 이 3·1민속문화제의 각종 행사가운데 특히 중요행사로 매년 열리는 무형문화재 제25호 쇠머리대기와 무형문화재 제26호 줄다리기는 창녕 지역의 향토색이 짙게 담긴 고유의 민속놀이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이를 통해 길러진 단결력과 정의감·용감성은 과거 임진왜란의 항쟁을 비롯해 3·1독립항쟁등 조국수호를 위한 희생정신의 밑거름이 되면서 오늘날까지 그 정신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영산쇠머리대기는 영산지방의 마주보고있는 두 산을 힘센 황소로 형상화해 생소나무와 짚줄로 나무소를 만들고 동·서 양군으로 나누어진 수백여명의 장정들이 그쇠머리위에 각각 장군을 태워 메고 함성을 지르면서 부딪치거나 밀치는 가운데 상대편 쇠머리를 땅에 꽂아 승부를 가리는 것으로 이보다 앞서 깃발과 서낭대를 들고 펼치는 진잡이 놀이및 서낭대싸움과 함께 부상자가 생길만큼 박진감 넘치고 실전을 방불케 한다. 벼농사의 풍요를 비는 의례에서 기원된 줄다리기도 남녀노소가 한데 어울려 해마다 계속 이어가고있는 창녕지역 고유의 대규모 민속놀이다.이밖에 논매기와 관련해 노래와 춤과 농악을 엮은 괭이말타기 놀이나,수호신을 숭상하는 뜻의 토속민속놀이 행사인 호장굿,골목줄다리기등도 창녕지역에서만 볼 수있는 향토민속놀이다. 전통문화를 발굴해 계승하고자하는 군민들의 뜻이 모인 3·1민속문화향상회는 이러한 여러가지 지역 특유의 향토민속놀이를 전승해 해마다 재연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참여와 화합의 정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청소년향토사교실 운영/안동문화연구회 권오기회장 지난84년 창립된 이래 매월 문화강좌및 문화유적현지답사를 계속해 왔으며 86년 이후 매년 「안동문화연구」를 발간하는등 안동지역의 향토문화발전을위해 기여했다. 이밖에도 월례회원발표를 통해 수준높은 연구업적을 보였다.88년부터는 중학교3년∼고등학교2년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향토사교실을 운영해 오면서 교재로 쓰이는 「안동문화의 이해」를 발간하기도 했다. 또 안동지역에 산재해 있는 각종 현판 1백10여점을 탁본,내년 2월에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며 올 9월에는 「향토사연구의 이론과 실제」를 주제로 전국향토사연구회세미나를 안동문화회관에서 가지는등 지역문화단체로는 보기 드문 활동상을 보여온 점을 높이 샀다. ◎현산문화제 정착에 힘써/고경재씨 양양문화원장 양양문화원 설립의 산파역을 맡았다.설립후 초창기부터 16년동안의 사무국장을 거쳐 문화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향토문화사업을 천직으로 삼고 일하며 지역문화의 파수꾼노릇을 해냈다. 양양군의 유일한 향토축제인 「현산문화제」를 주관,범군민적인 행사로 정착시켰으며 고유의 민속놀이인 패다리놓기,귀애파기놀이,탁장사뽑기등을 발굴했다.또 현산문화제의 인기종목인 양주방어사행차와 신석기인가장행렬등을 발굴·고증·연출하는등 1인3역을 담당한 재주꾼이기도 하다. 향토사연구회,청소년윤리교실,노인회,노인학교등을 조직하거나 구성토록 주선해 문화의 지방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왔으며 1천회이상의 각종 행사에 초청강사로 나가 지역문화홍보에도 이바지했다. ◎해남문화유산 발굴 40년/정용채씨 해남문화원 문화학교장 46년 옥천국교 교사에서 시작,지난해 화산국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할때까지 40여년동안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해남지역의 문화유산을 발굴,계승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의 명랑대첩을 조사해 「울돌목」을 펴냈으며 임진왜란때의 충신 정운장군의 전기인 「구국의 횃불」,해남군 금호도의 자연환경과 미풍양속을 수집한 「금호도」,「내고장 해남」「고산 윤선도」를 발간하는등 해남지방의 묻혀 있던 향토사발견에 앞장섰다. 지난해 3월부터는 해남문화원 지역문화학교 교장으로 부임,국민학생 43명에게 매주 글짓기지도를 해오는등 퇴직이후에도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안성남사당 재건에 큰공/김기복씨 안성남사당보존회 17살때 6·25이후 맥이끊길 위기에 처해 있던 이원보남사당패에 들어가 기예를 익힌뒤 82년 남사당의 발상지이자 경기농악의 대명사격인 안성남사당을 재건하는등 남사당의 계승·보존에 기여했다. 86년에는 철도부지였던 안성읍 석정리에 전수장을 건립,88년부터 전승학교로 지정된 서운중학교 학생들에게 남사당풍물놀이를 전수하는등 후진양성에도 정열을 쏟았다. 89년 경남 마산에서 열린 제3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영예의 대통령상및 개인연기상을 수상하는등 각종 경연대회에서 안성남사당의 명성을 드높인 공을 인정받았다. ◎구전 「천안삼거리」 소설화/이종찬씨 천안문화원장 천안로터리클럽회장,한국반공연맹천안시·군지부장,선거관리위원,도·시정자문위원,의료보험조합이사장,도체육회부회장등 천안지역의 사회일꾼으로 일해온 인물. 특히 85년부터 천안문화원장을 맡아 3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천안문화원이 22만 천안시민의 문화사랑방으로 자리잡도록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천안삼거리」로 구전돼 오던 천안의 전설을 책으로 엮어내는 한편 연극으로도만들어 「천안삼거리 능소전」을 국내외에 알렸다. 지난해에는 총25억원의 경비를 들여 2천여평의 부지위에 초현대식 음향시설과 완벽한 공연장·이동벽면·조명이 설치된 전시공간등을 갖춘 전국최대규모의 문화원을 건립하는데 헌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예산향토사 체계적 발간/양인식씨 논산문화원 사무국장 지난84년부터 논산문화원사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논산문화의 발굴과 계승 및 발전에 헌신해온 공로.부족한 예산속에서 원고료한푼없이 「놀뫼의 문화­사적지편」등 11권에 달하는 각종 논산문화향토지를 혼자서 자료수집·정리·집필해 발간한 것을 비롯,「내고장소식」「향토연구회지」를 각각 통권43호와 6집까지 펴내는 저력을 보였다.각 1백40페이지짜리 9개읍의 읍면지발간도 그의 작품. 이같은 공로로 지난해에는 전국문화원발간물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올해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중앙도서관으로부터 「논산의 민속」「논산지역의 독립운동사」등 2권을 기증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등 논산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 대마도의 토속신앙(일본속의 한국문화:6)

    ◎돌 쌓은 소도 해변에… 우리풍습 그대로/우리땅 향해 세워… 제사도 서낭당제와 비슷/“죄인 숨어도 못잡는다” 고속 이곳에도 남아 백제산성보다 훨씬 더 원초적인 우리나라 고대문화유적이 대마도에 남아 있다.그냥 죽은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있다.바로 소도가 그것이다.소도는 흔히 솟대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두가지 형태가 있다.그 하나가 긴 장대위에 세마리의 새를 조각하여 올려 놓은 목제소도이고 다른 하나는 돌을 차곡차곡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적석(돌무더기)소도가 그것이다.이 두 가지 소도는 옛날에 우리나라 어느 고을이나 마을에 반드시 수호신으로 설치되어 있었던 것인데 최근에와서야 새마을운동을 한다고 많이 헐려서 지금은 산간벽지나 바닷가 어촌 그리고 섬마을에만 남아 있다. ○삼근마을에 위치 정 대마도에도 이 적석소도가 남아 있는데 일명 석탑이라 불리고 있다.대마도의 소도는 우리나라 남해안과 면한 이섬의 서해안에 특히 많이 남아 있다.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이곳에서는 마을마다 매년 여름에 보리농사를 마칠 무렵 「야쿠마제」라는 하수감사제를 올려왔다.6월초오일이다.이날 하루는 각자 돌을 날라서 탑을 쌓고 치성을 드리며 말타기와 씨름을 하면서 즐겁게 하루를 보내게 되어있다. 우리가 찾아 간곳은 대마도의 윗섬에 있는 삼근정,일명 봉정(미네정)이라는 고을이다.미네(삼근)란 세 뿌리란 뜻이어서 삼신신앙과 관련이 있고 또 봉이라 전사하여도 천신산이 있는 고을이란 뜻이 되어 그 원의를 살려 주고 있다 할 것이다. 우연치않게 우리를 안내해주고 있는 아비류(아비루)씨와 영류씨의 고향이다.특히 아비류씨는 대마도주 종가가 이 섬을 지배하기 이전의 호주으로서 다분히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건너 이 섬에 정착한 여기서 말하는 소위 도래씨주이다.지금도 대마도에서는 아비류씨의 세력이 막강한데 우리로서는 여간 대견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참고로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이 아비류씨 고가에서 세종대왕 한글 창제이전의 옛 한글 38자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이 문자를 일본에서는 아비류문자로 알려지고 있고 일면 신대문자라고도부르고 있다.이 문자 하나만 가지고서도 소도가 있는 마을 미네(삼근)정의 유래와 대마도의 호주 아비루씨의 뿌리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삼근정에는 이 고을 독자의 역사민속자료관이 있고 유물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으나 사진찍는 것만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그냥 보기만 하고 돌아섰다.그리고 대망의 대마도 소도를 보러 떠났다.소도는 우리나라를 건너다 보는 바닷가에 하나가 아니라 서너개 무더기로 서 있었다.어쩌면 그렇게도 정답게 고개를 북쪽으로 돌려서 있는지 갑자기 향수를 느끼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가슴이 뿌듯했다. ○신사에다 모신 곳도 『역사는 가고 없으나 이름만은 남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옛날 이곳 대마도를 찾아온 님들의 발자취는 지워져서 없으나 돌무더기 솟대만은 남아서 우리를 반겨주고 있는 것이다.소도가 있는 해안가를 지나 조금 들어 가면 거기 또 하나의 신라금동불이 우리를 반긴다.김동불뿐만 아니다.동검 동모 동경을 비롯하여 토기 고려청자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물론 소도보다 훨씬 뒤에 조국에서 가져온보물들이다.그들이 훔쳐 왔든 사왔든 그것은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제품이다.이렇게 귀중한 보물을 간직한 신사의 이름이 해신신사인데 뒷산 이름은 이두산(이즈산 즉 성산,천신산)이라 한다.이 이즈산에서 북쪽을 내려다 보면 바닷가에 소도가 서있고 바다 건너에는 우리나라 산들이 아롱거린다.왜 바다신을 모시려 했는지 알법도 하다.바다신이 아니라 바다건너에 보이는 조국의 신이 곧 바다신으로 변한 것임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도를 쌓아 바다 건너 조국을 바라 보고 서 있는 망향의 신사가 이밖에도 여럿 있다.모두 대마도 서해안에 자리잡고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이 섬 최북단의 좌호천도신사이고 다른 하나는 최남단의 두두(소두)의 천도단이다.둘다 경내에는 본당이 없고 돌로 쌓은 신단만 있다.다시 말해서 당집이 없고 제단과 소도 그리고 성스러운 수풀(성림)만 우거져 있는 것이다. 일본학자들은 일본신도신앙의 원점을 대마도의 이 천도신앙으로 보고 있다.그렇다면 이 천도신앙의 원점은 어느 나라에 있다는 것인가.두말할 나위도 없이 한국의 단군신앙이 그 원점이다. 대마도를 지금 쓰시마 즉 「두 섬」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 말의 본래 뜻은 우리나라 말의 「다물」(다물)이라는 설이 또한 있다.쓰시마가 우리의 「두섬」이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까지 완강히 부인하는 그들이기 때문에 「다물」이 대마도의 원명이라고 하면 성을 낼지도 모를 정도로 거부감을 갖는다.과연 옳은 태도인가. ○“삼한시대 유물” 놀라 앞서 지적한 대마도 최남단의 천도신사는 우리나라 삼한시대의 소도가 그대로 이 곳의 신앙으로 옮겨져 온 것인데 그 이름까지도 소즈(졸토)즉 소도란 말로 사용되고 있다.이 소즈만은 상설화되어 있으나 나머지 바닷가의 소도제 즉 소위 야쿠마제는 해마다 파도에 휩쓸려 쓰러지기 때문에 다시 쌓아 복원하고 그러고나서 그 앞에다 고기와 술을 놓고 마을 사람 모두가 절을 하며 음복까지 한다.우리나라 서낭당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집수리를 할때 흰 쌀에 흰 소금 그리고 흰 무를 상에 올려놓고 맹승이라는 무당이 만신이름을 연호하는 광경도 우리 산신제를연상시키는 것이었고 『밤에 손톱을 깎지 말고 휘파람을 불지 마라』는 우리나라 속신까지도 고스란히 대마도에 건너가 있다. 놀라운 것은 범인이 소도를 모신 성역에 도망해 들어가면 아무도 그를 붙잡지 못한다는 삼한시대 고속이 이곳에 남아 내려 왔다는 사실이다.민속신앙은 본고장을 멀리 떠나면 떠날수록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확인할수 있었다.이렇게 볼때 대마도는 가깝고도 먼 섬이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섬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조선땅 마을 지킴이/사진 황헌만·글 주강현 장정룡(화제의 책)

    ◎마을지킴이 의례·유형 다뤄 「마을 지킴이」는 「마을을 지켜주는 이」를 뜻한다.곧 마을굿을 할때 신격으로 모시는 전통적인 「마을수호신」이다.짐대 입석 장승 마을미륵 탑 당산나무 서낭신 산신 마신등이 모두 여기 속한다.마을굿은 이들을 모시는 의례다.당산제 동제 천룡제 영신제 풍어제 산신제 천신제 우물굿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2백46점의 사진과 「마을 지킴이와 마을굿­그 씨줄과 날줄」,「마을지킴이의 유형과 실제」라는 두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앞의 논문은 마을지킴이와 마을굿에 대한 선조들의 이해방식을 검토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들의 역사를 살폈다. 뒤의 논문은 지역별 마을별로 어떤 마을 지킴이를 어떤 의례로 모시며 각 지역의 마을지킴이 유형이 어떻게 다른지를 검토하고 있다. 열화당 3만원
  • 도심의 산신제(외언내언)

    70년대초 새마을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을때의 일이다.전국 도처에서 산신당과 서낭당이 무참하게 헐려 나갔다.새마을운동의 젊은 역군들은 「미신타파」를 외치며 산신당과 당집을 부숴버렸다.동구밖에 세워져 있던 천연덕스런 장승들도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뽑혀나가는 수난을 겪었다.무지와 단기가 저지른 문명의 파괴였다. 산신신앙은 우리 민족의 뿌리깊은 민간신앙의 원류이자 무속신앙의 기원이다.설화에서는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되고 신라의 탈해왕도 경주 동악에 들어가 국토의 수호신이 된다.무속에서도 지리산의 성모천왕과 법우화상이 결혼하여 낳은 여덟 딸이 8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우리 조상들에게 산신은 국토의 수호신이자 마을의 수호신이었다.신라때도 산신을 숭상하여 삼산과 오악신에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는 전국 명산마다 산신령을 호국신으로 봉하기까지 했다.마을에서는 진산인 마을 뒷산에 산신이 살고 있다고 믿어 그곳에 산신당을 세웠다. 산신도에는 호랑이 또는 호랑이를 탄 백발노인이보인다.호랑이가 곧 산신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이다.산신제를 지낼때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호환을 당한다고 믿어왔다. 서울 한복판 종로구 신영동에서 엊그제 주민들이 산신제를 지냈다해서 화제다.4백년째 내려오는 유서깊은 산신제라고 한다.제사를 받는 삼각산의 신이 여신이라서 숫돼지를 제수로 올린다는 것도 유머러스하다.전국적으로 산신제니 부락제니 하는 민간신앙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농촌의 도시화로 인해 민간신앙의 기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리라.도심의 산신제는 근래서 더욱 귀중한 느낌이 든다. 산신제나 부락제는 주민들의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을 일깨워주고 애향심과 화합을 키워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해왔던 것이다.
  • 탄광촌 태백시 금천 폐허화… “마을 되살리자” 주민들 안간힘

    ◎향토소식지 발간·문화재 복원 등 열성/태백산 관광민속촌으로 탈바꿈 노력 탄광경기퇴조에 따라 폐허로 변해가는 강원도 태백시 계산동 금천마을주민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향토문화재를 복원하고 향토소식지를 발행하는등 마을되살리기운동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태백산아래 첫동네인 금천마을은 50∼70년대까지만해도 각 광원의 사택인구등을 합쳐 5백여가구에 주민 2천명이 넘는 마을이었다.또 69년 개교한 금천국민학교의 학생수도 6백명에 달했다.그러나 광업소등이 다른 마을로 옮겨가면서 한때 번성했던 사택마을은 폐동되어 흉물스러운 빈집으로 남았다.국민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도 30여명에 불과해 분교화되지 않으면 개교25년만에 폐교해야 하는 위기에 몰려있다. 현재 남아있는 1백여가구 2백여 주민들은 금천동재건을 위해 지난 정월대보름날을 기해 태백산 서낭당주변을 정비한뒤 당제고사를 지냈으며 마을수호신인 장승건립도 추진하고 있다.또 마을주민들이 농지를 내놔 길이 1·8㎞의 아스팔트포장길을 새로 뚫어 태백산관광민속마을로 탈바꿈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다. 특히 마을주민들이 지난2월20일자로 창간호를 펴낸 「검천향토소식」지는 현재 금천으로 행정구역상 잘못 표기되고 있는 마을이름을 본래의 검천으로 되돌릴 것을 주장하는 기사를 특집으로 실었다.이 소식지는 커가는 청소년들에게 고향마을의 유래를 알리고 객지로 떠난 출향인사들에게 마을소식을 전함으로써 고향되살리기운동에 동참해 줄것을 요청하고 있다.
  • 발렌타인 데이가 무엇이길래(박갑천칼럼)

    『직제학 김천령이 기유년의 진사시에 삼도부로써 첫째를 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이었다.다만 고구려국 계통을 서술하면서 「주몽이 빛나는 공업을 열었고 동명이 그 조상의 업적을 이었다…」고 했는바 주몽이 고구려 시조로서 19년을 왕위에 있다가 죽었고 아들 유리왕이 즉위하면서 주몽을 동명성왕이라고 호로 하였으므로 주몽과 동명은 한사람이다.그런데 인용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렀다.당시의 시관이 살피지 못해 뭉개지 않았고 사림이 전해가며 외면서도 알지 못한다.우리나라 사람의 본국 사적에의 자세하지 못함이 이와 같으니 가소롭다』(김정국의 「사재척언」). 『우리나라에는 문헌이 부족해서 명인)의 성명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안시성주를 두고 말하더라도…(중략)성주의 성명이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빠뜨려져 있으니 실로 애석하다.「월정만록」(월정만록:월정만필이라고도 함.조선 선조때의 문신 윤근수의 글)을 상고해 보면 「임진란 이후 명나라 장수·사졸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 오종도란 사람이 있어 내게말하기를 안시성주의 성명은 양만춘이니 태종동정기에 보인다고 했다」는 대목이 있다.…(중략)아,안시성의 공렬은 우리 역사에 압두하고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실로 그 이름을 전송해야 마땅하겠건만 중국인들이 아는 성명을 우리나라에서는 망연히 알지 못한다.…(후략)(홍만종의 「순오지」상).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리것에 대한 생각이 어떠하냐를 말해 주는 옛글 두편을 줄여서 옮겨보았다.이런 까닭으로 해서 우리의 역사를 중국이나 일본의 전적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사가 서거정이 「동인시화」(동인시화)에서 지적한바 있듯이 중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러기도 했고 기록에 대한 의식의 박약,잦은 병화등등에 연유한다 할 것이다.이러한 생각의 줄기를 잇고 있음인가,오늘에도 내것에 어둡고 내것이 업신여김을 받고 있는 사례들은 한둘이 아니다.일상의언어·문자 생활부터 그렇다. 이른바 「밸런타인 데이」라는 것도 그런 점에서 많이 불쾌하게 하는 것중의 하나이다.일부 서양나라에서의 풍습이 우리한테 들어와(그것도 일본을 통해)젊은 남녀들의 명절같이 되어오고 있는게 아닌가.상혼이 나서서 부추기는데 따라 엉덩춤을 춘 결과인데 올해 또한 백화점·호텔들이 대목을 볼양으로 법석대고 있다.문득 그리스신화에서의 헤르메스가 떠오른다.상업의 신이면서 도둑의 수호신이기도 한 올림포스 12신의 하나.그는 어째서 장사와 도둑을 함께 관장하게 되었던 것일까. YMCA등에 의해 밸런타인 데이 추방운동이 벌여져 오고 있다.올해는 또 정월 대보름을 부럼 선물하며 사랑 고백하는 날로 삼자는 움직임도 있었고.남의 것도 내것의 바탕위에 받아들이게 돼야겠다.
  • 독도 수호신 「해태암」찾았다/동도서 1백m거리 “뿔달린 사자”모습

    【대구=이동구기자】 전설속의 수호신 해태의 형상을 띤 바위가 한 경찰관에 의해 독도에서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경북 경찰청 항공대장 배영찬경감(42)은 경북 울릉군 남면 도동 산42와 산75사이(동경 1백31.52 북위37.14)에서 이 바위를 발견,지난달 울릉군과 국토지리원에 「해태암」으로 명명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바위는 독도를 이루고 있는 두개의 큰 바위섬 가운데 하나인 동도에서 1백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바위중앙에 폭2∼3m의 굴이 있어 그동안 울릉도 사람들에게 「동굴바위」로 불리어 왔으나 배경감이 헬기를 이용,북쪽에서 사진촬영한 결과 머리에 뿔이 한개있고 사자와 닮은 높이 10m,둘레 50여m의 해태상임이 드러났다는 것. 배경감은 『일본이 기회있을 때마다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독도에 전설속의 수호신 해태가 버티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동쪽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이러한 의미를 전국민에게 알리고 싶어 해태암으로 명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 남도민요 가락속 민속잔치 8시간/서울신문주최 진도 영등축제

    ◎“씻김굿·현대무용 접목” 연신풍작극 공연/선박 60여척의 해상퍼레이드 화려하게 서울신문사와(주)금성사가 공동 주최한 제15회 진도영등 축제 행사가 2일 낮12시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마을앞 바닷가에서 10만여명의 관광객과 진도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려하게 펼쳐졌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 기리는 이 축제는 이날 하오6시37분부터 50여분동안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사이 2.8㎞ 구간을 잇는 바닷길이 드러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 행사에는 번영환서울신문사이사,허규축제문화진흥회장,허길남진도군수,박사규진도군의회의장,김성환진도경찰서장등 문화예술관계자와 20여명의 기관장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하오6시37분 바다밑 모래언덕이 40m 폭으로 그 신비한 모습을 드러내자 운집한 10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신발을 벗어들고 바닷길을 건너며 소라 낙지 바지락등을 주으면서 축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영등축제 행사는 낮12시부터 남도민요 잡가 농악 강강술래 진도아리랑 만가 판소리 해상선박퍼레이드등 민속문화 행사와,연날리기 뽕할머니제사및 용왕제 연신풍장무용뒷풀이등 영등살풀이 행사로 나뉘어 8시간여동안 시종 축제 분위기속에서 진행. ○…특히 하오5시부터 씻김굿 인간문화재 박병천씨등과 서울예술단원 시울시립국악관현악단등이 합동으로 펼친 연신풍장무용극은 진도씻김굿과 현대무용을 접목시킨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참석자들로 부터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토속미가 물씬 풍기는 이 무용극은 전설속의 뽕할머니 혼을 모셔 인도하고 바다의 수호신을 맞이해 즐겨주는 무속의식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굿을 무용극화한 것으로 구성진 가락과 어우러진 춤이 남도민속의 본고장인 진도사람들의 정서를 그대로 표현해 흥겨운 잔치 분위기를 돋웠다. ○…또 하오3시30분쯤에는 회동마을과 인근 가계·모도마을 어민 1백여명이 60여척의 선박을 동원,바닷길을 따라가며 해상퍼레이드를 펼쳤는데 오색연막탄이 푸른 물살 위로 퍼져나갈 때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환상의 축제무드를 만끽. ○…이밖에 뽕할머니의 영정을 담은 연을 비롯,2백여개의 각종 연이 하늘을 수놓았으며 도립남도국악단장 조통달씨의 판소리 만가등이 신비의 바닷길이 갈라지는 것을 축원. ○…신비의 바닷길은 매년 음력 3월 중순쯤에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올해는 조수 간만의 차로 40여일 늦어져 1일 하오5시15분과 2일 하오6시37분등 2차례에 걸쳐 나타났다. ○…이곳은 지난 75년 당시 주한 프랑스대사인 피에르 랑디씨에 의해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외국신문에 소개돼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떠올랐는데 이날도 외국인 관광객 50여명이 관람했으며 일본 NHK방송을 비롯한 외국 언론사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 외언내언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마을 어귀나 길가에 세워진다.나무나 돌로 새긴 괴상한 모습의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수호신도 되고 이정표 구실도 하는 것으로 전국에 걸쳐 있다.◆표준말이 장승이지만 남녘으로 가면 벅수라고도.그 밖에도 댜ㅇ승·법시·당산·수살욕·수살이·돌하루방·거오기·거액 등등 지방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모습이 달라지기도 하고.장승배기,벅수거리라 불리는 땅이름이 전국에는 많다.장승·벅수가 서 있던 자리.오늘날 한자로 장생·장승·장상·장상·장상이라 쓰인 마을 이름이나 복수·복수·법수·법수로 된 이름은 그것이 섰던 것과 인연을 갖는다.◆기록으로는 더 여러가지 한자가 쓰인다.장생·장성·장선·후 등등.서거정의 「대평한화활계전」에는 「장생」으로 나온다.­한 시골 군수가 취중에 길가의 장생을 끌어오라고 호령한다.자기의 행차에 엎드리지 않고 뻣뻣이 서 있었다는 것이 죄목.이방이 『여기 장생 대령이오』하니까 사또는 「장생원」으로 알아듣고 더욱 노하여 매우 치라고 호통친다.술 취한 사또에 의해 장승이 「장생원」이란 사람으로 되어 얻어맞았더란 얘기다.◆서울 노량진 2동 장승배기 3거리에 세워진 장승.세워지는데도 말이 많았던 터에 세워진 다음에도 불을 맞았다.누군가가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 것.전통사회에서는 수호신 구실을 했던 터에 시대가 흐르자 저라서 스스로 횡액을 만난 셈이다.옛날에는 이곳에 이정표시를 한 장승이 서 있었기에 땅이름도 장승배기.그쪽 동네 사람들이 장승을 세운 까닭은 그 유래를 밝히자는데에 뜻이 있다.◆특정종교가 그 장승을 「우상」으로 보면서 배척을 해온다.하지만 지나치게 교리에 집착하여 배타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한나라 전래의 민속신앙은 인정해 주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종교인의 태도.불을 놓다니.
  • 잇단 「걸프테러」… 관광 이집트 타격

    ◎“피라미드 피습 막자”… 개방시간 단축/박물관 경계 강화되자 여행객 격감 걸프전이 장기화 되면서 이집트 등 주변국들과 유럽 관광업계가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달 17일 걸프전 개전이후 문화유적 보호와 함께 해외공관 및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바그다드와 멀리 떨어져 있는 카이로에는 전쟁의 긴장감은 감돌지 않고 있지만 「테러와의 보이지 않는 전선」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카이로 시민들의 표정에서 전쟁의 공포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거의 끊어졌다. 한 관광안내원은 9일 걸프전쟁만 아니었다면 최고 관광시즌인 요즘 카이로시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에는 관광버스와 거대한 인파로 큰 혼잡을 빚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라미드 순환도로에는 관광버스대신 무장경찰의 순찰차만이 주위를 맴돌고 있고 관광객들은 불과 수십명에 지나지 않았다. 기자에는 가장 유명한 쿠푸왕 피라미드를 비롯,3개의 거대한 피라미드와 함께 수호신인 스핑크스가 하나의 관광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이 관광단지를 상오에만 개방하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쿠푸왕 피라미드의 내부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쿠푸왕 피라미드와 함께 이집트 국립박물관의 출입문도 걸프전쟁이후 굳게 닫혀 있다. 카이로 시내중심에 있는 국립박물관도 주요관광 코스이지만 관광객은 없고 닫혀진 출입문 안쪽으로 무장경찰과 몇명의 안내원만이 있을 뿐이다. 카이로 시내에 있는 외국공관에 대한 경계 역시 매우 타이트하다. 이집트는 특별 훈련을 받은 무장경찰과 군인들을 외국공관에 배치하고 있다. 걸프전쟁 이후 외국공관의 출입통제가 한층 강화됐다. 외국공관과 함께 외국상사나 기관에 대한 경계도 강화됐다. 카이로의 아랍연맹가의 한 빌딩에 있는 대한무역진흥공사와 미국의 IBM컴퓨터회사의 외부 간판이 최근 철거됐다. 걸프전쟁의 여파가 이집트에만 미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걸프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항공기에 대한 테러를 우려한 항공사들이 중동지역으로의 취항을 전면취소하거나 대폭 감축함으로써 중동지역에서의항공교통은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관광객수의 감소는 이집트보다는 오히려 이라크로부터 직접적인 스커드미사일 공격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나 사우디가 전쟁의 직접적인 공포때문에 훨씬 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는 관광수입에의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관광객 감소가 국민들의 생계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비쳐지는 것 같다. 물론 이집트가 전쟁으로 꼭 피해만 입었다고 할수는 없다. 다국적군에의 적극참여 등 이집트내 아랍권내에 반이라크 동맹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을 높이 평가한 부시 미 대통령이 이집트의 대미채무를 탕감시켜준 것 등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는 점도 얼마든지 지적할 수 있다. 아직까지 걸프전쟁에 대한 이집트 국민들의 지지도는 높은 편이며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히 미미한 형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걸프전쟁이 장기화하고 그에 따른 관광산업의 피해가 누적돼 국민들의 생계를 압박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걸프전쟁을 보는 이집트 국민들의 시각에 변화가생길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나일강위의 관광유람선은 비록 승객수가 줄기는 했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운행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볼땐 한가로이 흐르는 유람선 속엔 이집트 국민들의 복잡한 고민이 숨겨져 있다.
  • 쓰러진 6백년백송 되살린다/잇단 시민진정에 청와대서 소생처방 지시

    ◎「수목회생추진위」 긴급 구성/“후계수 제공하겠다” 시민동참 표명 폭우로 쓰러진 6백년 거목 백송(천연기념물 제4호)이 서울시민들의 따뜻한 손길로 소생된다. 서울시는 24일 백송을 살리기 위한 관계전문가 회의를 열고 「수목회생 추진위원회」를 긴급구성,백송 소생작업에 착수했다. 서울시는 당초 쓰러진 백송이 죽은 것으로 판단,삽목 또는 씨앗을 발아시켜 후계수로 육성하려 했으나 6백년 서울의 역사와 함께 통의동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온 점을 들어 그 소생을 강구해 달라는 주민진정과 이날 『백송이 천수를 다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살려 보라』는 노태우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회생방안을 강구케 된 것이다. 이날 낮12시30분부터 2시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대책회의에는 고건 서울시장과 이상배 청와대행정수석비서관,이창복 중앙문화재위원,강전유 나무병원장,이원렬 대지개발사장 등 조경전문가들이 참석,백송 소생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대책회의에서는 백송을 살리는 방법을 놓고 현재의 넘어진 상태에서 회생시키는 방안과 원래대로 세우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현재의 상태에서 회생방안이 확률적으로 높다는데 의견이 집약됐다. 이들 관계자들은 통의동 현지회의를 통해 현재 북쪽방향으로 넘어진 나무는 1m정도,남쪽방향의 것은 20㎝정도 위로 올리고 받침목은 ×자형으로 하며 수피보호를 위해 가마니 및 새끼 등으로 감싸 보호하기로 했다. 또 부러진 부분과 굴절되거나 고사된 부분을 제거후 방부처리하고 뿌리부분에 대한 약품공급ㆍ기술ㆍ처리 등의 조치는 별도 검토키로 결정했다. 현장을 답사,백송상태를 재점검한 관계전문가들은 『백송을 다시 일으켜 세워 소생시키기는 불가능하다』며 『그러나 잔뿌리 등이 아직 살아있어 쓰러져 있는 상태로 소생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특히 이창복 중앙문화재위원은 『백송을 일으켜 세울경우 붙어있는 뿌리마저 끊어질 우려가 크다』며 누운 상태에서 소생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앞서 서울시는 지난19일 백송의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관계전문가들이 판단에 따라 후계수를 육성키로 하고 백송의가지를 잘라내 삽목(꺾꽃이)을 실시하고 솔방울의 종자를 채취,발아시켜 현재 백송자리에 옮겨 심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같은 방침이 전해지자 10년전 씨앗을 주워 발아육성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는 김동신씨(55ㆍ동일상사대표ㆍ강남구 대치동 97의24) 등 시민 2명이 후계수 제공의사를 표명했고 오사카에 거주하는 한 재일교포는 일본에서 개발된 특수약품을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오기도 했다. 김씨는 『10년전 통의동 백송에서 떨어진 씨앗 11개를 주어 서울대 농대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발아시켜줄 것을 부탁,3개월뒤 발아에 성공했다』면서 『현재 50㎝정도크기로 자란 상태로 자신의 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밝히고 시에서 원하면 언제든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 백송의 후예는 경기도 부천시 소사1동 김태호씨(42ㆍ상업) 집에서도 자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지난87년 어머니 이예순씨(65)가 통의동에 사는 첫째며느리로부터 백송의 씨를 싹틔운 12그루를 얻어 이 가운데 살아남은 4년생 3그루(키 10㎝)를 대형화분에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한편 이 지역 주민들은 6백년동안 마을을 지키며 수호신 역할을 해내 온 백송을 추모하기 위해 23일 하오11시부터 24일 상오1시까지 동제를 지내고 24일 상오7시부터 당굿을 벌이기도 했다. 이 백송은 중국의 호북성과 하북성일대가 원산지이며 조선초기 중국에 간 사신이 가져다 심은 것으로 높이 16m,두갈래 줄기의 둘레가 각각 3.6m,3m씩인데 지난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문화재관리국의 보호를 받아 왔다. 이 나무가 있는 위치에서 50m 쯤 떨어진 곳에 「김정희선생 나신 곳」이라는 와비가 있는 점으로 미루어 추사 김정희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 수령 5백년 은행나무 고사위기/서울 사당동 은행나무골 동작구 나무

    ◎마구잡이 건축공사에 파헤쳐지고 잘리고…/「4m간격」어기고 1m거리에서 신축/“공사에 방해된다” 가지 2개 잘라버려/주민들 “시정”탄원 구청서 묵살… 보호책 시급 재개발사업 등 각종 건설사업으로 자연환경이 잇따라 훼손되고 있는 가운데 수령5백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행정관청의 관리ㆍ감독소홀과 한 건축업자의 무분별한 이기심 때문에 고사할 위기에 처해있다. 서울 동작구 사당4동 281의1 「은행나무골」에 우뚝 서있는 밑둘레 3.2m,높이 20m인 문제의 은행나무는 지난81년 10월27일과 82년10월 동작구청과 서울시에 의해 각각 「동작구 나무」 1­14­34호와 「서울시 지정보호수」57호로 지정됐으나 아무런 보호를 받지못하고 가지가 잘린채 흉한 모습을 하고있다. 수백년동안 「은행나무골」의 수호신처럼 받들어져 오던 이 은행나무가 날벼락을 맞게된 것은 지난 5월10일쯤. 나무밑둥에서 불과 1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지하1층 지상3층 연건평 2백50평 규모의 콘크리트 연립주택 건축공사가 시작되면서 시련을 겪게된 것이다. 공사를 맡은건축업자 최모씨(33)는 이 나무앞에 세워져있던 보호수표지판은 물론 나무를 보호하기위해 나무주위에 설치해놓았던 시멘트 보호벽마저 포클레인으로 깨끗이 치워버렸다. 이에 주민들은 「건물경계선은 지정보호수의 수관폭을 벗어나 나무줄기에서부터 최소한 4m이상은 떨어져 시공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건축공사를 원칙대로 해줄것을 요구하는 진정서와 탄원서를 서울시청과 동작구청에 수십차례나 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답신을 받지못하고 있다. 서울시가 펴낸 「90년도 주요업무계획 추진지침」에 따르면 「보호수는 천연보호림을 보호관리하는 요령에 따라 보호하고 특히 주택지에 있는 보호수는 관리를 철저히 해 뿌리주변이 붕괴되는 일 등이 없도록 하고 노후ㆍ훼손된 보호수표지판은 우선적으로 교체ㆍ보수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탄원과 진정은 아랑곳없이 공사는 계속 진행돼 지상1층까지 콘그리트작업이 계속됐고 지난달 1일에는 건물 1층으로 뻗어나간 직경 50㎝,길이 4m가량의 나뭇가지 2개가 공사장 인부에 의해잘려나가고 말았다. 지난 68년 7월3일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사당리에서 서울시로 편입된 뒤에도 사당4동보다는 수백년전부터 유래된 「은행나무골」로 잘알려진 이곳 주민들이 이 은행나무에 쏟는 애정과 정성은 남다르다. 해마다 촛불을 켜놓고 각종 고사와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물론 은행나무와 관련된 각종 모임도 구성돼 있다. 10년전 회원 20명으로 「행우회」를 구성했고 3년전에는 「은행나무 친목회」를 2년전에는 역시 20여명으로 「은행나무계」를 만들어 한달에 1∼2번씩 만나 친목을 도모하고 은행나무를 잘가꾸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또 파출소의 명칭도 「은행나무골」의 유래를 이어가기 위해 2년전에 「사당5파출소」에서 「은행파출소」로 바꾸기까지 했다. 이 동네 20통 통장 신석철씨(45)는 『주민들이 계속해서 건축업자에게 건물경계선이 나무밑둥에서 4m이상 떨어지도록 다시 공사를 하고 보호벽을 원래대로 세워줄 것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면서 『업자도 업자지만 수십차례에 걸쳐 민원을 냈는데도 나몰라라하고 있는 행정관청이더 원망스럽다』고 분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대해 『현재 서울시에 1백97그루가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돼 특별관리되고 있으나 이같은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앞으로 재개발사업 등에 따른 보호수의 훼손사례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보호수 실태조사를 실시한뒤 적절한 보호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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