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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야구 2005] 삼성 “짜릿했지”… 2연승

    삼성-두산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 2차전이 벌어진 16일 대구구장. 연장 12회말에 접어들었지만 2-2 균형은 좀처럼 깨질 줄 몰라 무승부가 점쳐졌다. 하지만 선두 타자는 이날 2안타·2볼넷으로 모두 출루한 ‘걸사마’ 김재걸(33).대구구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은 ‘1차전 영웅’인 그의 이름을 뜨겁게 연호하며 기적을 빌었다. 김재걸은 두산 이재영의 2구째를 노려 좌중간을 꿰뚫는 2루타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보내기번트로 맞은 1사3루에서 백전노장 김종훈은 이재영으로부터 짜릿한 우전 끝내기 안타를 터뜨려 포스트시즌 사상 최장인 4시간45분간의 혈투에 종지부를 찍었다. 삼성은 김종훈의 연장 12회 끝내기안타와 오승환의 특급 마무리로 3-2로 승리, 안방에서 2승을 독식하며 3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큼 다가섰다. 삼성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잠실 원정 3연전을 떠나게 됐다.3차전은 18일 오후 6시 잠실에서 열린다. 역대 22차례의 한국시리즈에서 먼저 2연승을 거둔 팀은 10차례 있었으며 어김없이 우승을 했었다. 김재걸을 위한 한편의 드라마였다.1차전에서 2루수 박종호의 손가락 골절로 갑작스럽게 출전,2안타 2타점의 ‘원맨쇼’로 승리를 견인한 김재걸은 이날도 3타수 3안타 2볼넷으로 100% 출루를 하며 팀에 금쪽같은 2연승을 안겼다. 10회부터 이틀 연속 등판한 ‘사자 수호신’ 오승환(23)은 3이닝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무안타 무실점의 퍼펙트 피칭을 과시했다. 기선을 잡은 쪽은 두산.2회 홍성흔의 볼넷에 이은 안경현의 적시 2루타로 선취점을 올린 것.7회 무사 2·3루에서 진갑용에게 희생플라이를 맞아 동점을 내준 두산은 8회 1사3루에서 안경현의 2루타로 다시 2-1로 앞섰지만 9회말 구원왕 정재훈이 대타 김대익에게 통한의 동점포를 허용, 망연자실했다.대구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디비전시리즈] 찬호 “나를 뺐다고”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가 5년 만에 패권 탈환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88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양말전쟁’ 1차전에서 승리했고, 리그 유일의 ‘100승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도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양키스는 5일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5전3선승제) 1차전에서 ‘슈퍼루키’ 로빈슨 카노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LA 에인절스에 4-2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십시리즈(7전4선승제) 진출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양키스는 지난 98∼00년까지 3연패를 달성한 이후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승부는 일찌감치 갈렸다. 신인임에도 양키스의 올스타타선에서 6번으로 중용된 카노는 1회 2사 만루 찬스에서 사이영상 후보인 바톨로 콜론을 상대로 싹쓸이 2루타를 뿜어내 기선을 제압했다. 에인절스는 7·9회 1점씩 쫓아갔지만, 끝내 ‘양키스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의 벽을 넘지 못했다. 화이트삭스는 US셀룰러필드에서 열린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5홈런을 폭죽처럼 터뜨리며 ‘디펜딩챔프’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화이트삭스의 14-2 대승. 이로써 화이트삭스는 1959년 LA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1차전 승리 이후 포스트시즌 홈구장 9연패의 사슬을 끊고 46년 만에 첫 승의 감격을 누렸다. 당초 화이트삭스의 ‘방패’와 레드삭스의 ‘창’ 대결로 관심을 모은 ‘양말전쟁’은 막상 뚜껑을 열자 정반대로 흘러갔다. 시카고는 선제 3점홈런과 쐐기 솔로홈런을 뿜어낸 AJ 피어진스키를 필두로 막강 화력을 뽐냈지만, 리그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보스턴의 방망이는 9안타를 뽑고도 단 2득점에 그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의 첫판은 래지 샌더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독무대였다. 올시즌 메이저리그 30개팀 가운데 유일한 100승팀 세인트루이스는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1차전에서 만루홈런을 포함, 혼자 6타점을 쓸어담은 샌더스의 활약에 힘입어 8-5로 승리했다. 디비전시리즈 진출 8개팀 가운데 최약체로 평가받는 샌디에이고의 ‘물방망이타선’은 7∼9회 10안타를 집중시키며 5득점을 뽑는 뒷심을 발휘했지만,‘에이스’ 제이크 피비가 4와3분의1이닝 동안 8안타 8실점으로 무너져 전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국 도깨비불’ 벨기에서 질주

    ‘한국 도깨비불’ 벨기에서 질주

    한국의 ‘도깨비불’이 마일드세븐르노 F1(Formular1)팀의 레이싱카를 장식하며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열린 F1 벨기에 그랑프리 서킷을 질주했다. 한해 약 8억명이 TV중계를 지켜보는 F1경주에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마일드세븐르노 F1팀의 레이싱카 ‘R25’에 도깨비불 문양(커스텀 디자인)을 새긴 작가는 인터넷카툰 ‘마린블루스’로 널리 알려진 킴스라이센싱 소속의 디자이너 정철연(28)씨. 정씨는 F1 디자인 산업에 뛰어든 최초의 한국인이다. 정씨는 인터넷카툰 영역의 개척자로 불리며 2003년 네티즌이 선정한 독자만화대상, 대한민국 만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도깨비는 고대 한국의 지배자이자 승리를 부르는 군신, 치우천왕으로써 강한 기상을 표상하며 설화 속에서는 악을 심판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도깨비의 강함과 도깨비불의 빠름이 F1팀이 질주하는 모습이며 도깨비가 승리의 수호신이 되어 함께 달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F1벨기에 그랑프리에 참석, 자신이 디자인한 도깨비불이 질주하는 모습을 관람한 정씨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도깨비불 디자인으로 몸소 느꼈다.”고 말했다. 마일드세븐르노 F1팀은 지난해 월드 챔피언십에서 3위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현재 드라이버 부문(페르난도 알론소)과 팀 부문에서 모두 1위를 달리고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쌀, 밥짓는 데만 쓰나요?

    “밥값을 쌀로 받으세요.” 전북농협이 남아도는 쌀을 판매하기 위해 튀는 소비전략을 펼쳐 화제가 되고 있다. 이상준 농협 전북본부장은 지난달부터 직원회식 등을 할 때 음식점에 지불해야 하는 현금이나 카드결제를 대신해 농협쌀을 지급하고 있다.1960년대 쌀이 가치의 척도였던 시절처럼 ‘물물교환’을 실시하고 있는 셈이다. 음식점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가 어차피 구입해야 하는 쌀을 확보하고 매상도 올릴 수 있어 대환영이다. 농협이 쌀로 지급하는 것은 밥값뿐이 아니다. 본부장이 직원들에게 주는 각종 시상금은 물론 심지어 각종 경조사까지 화환 대신 쌀을 전달하고 있다. 최근 완주군 평통협의회장 취임식에는 즐비하게 늘어선 화환들 속에 20㎏들이 쌀 2포대가 얹어진 자그마한 지게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결혼식장에는 무거운 쌀을 직접 가져다 줄 수 없어 새출발을 하는 신혼부부집에 택배로 배달해준다. 쌀과 함께 보내는 결혼축하 메시지도 화제다.‘행운의 수호신 전북쌀에 행복을 담아드립니다.’로 시작하는 이 메시지는 ‘잘 지은 쌀밥의 향기처럼 끈끈한 사랑이 넘치는 훌륭한 가정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로 끝맺음한다. 이 본부장이 이같은 쌀소비촉진에 나서자 임직원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전북농협은 올해 안에 ‘20만포 더 팔아주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본부장은 “예전에는 햅쌀이 나올 때쯤에는 양곡창고가 텅비어 있었지만 올해는 양곡창고에 빈공간이 없을 정도로 쌀이 가득 차 있다.”면서 “쌀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농민들을 돕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다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3)묘청은 ‘정감록’의 숨은 뿌리였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3)묘청은 ‘정감록’의 숨은 뿌리였다

    조선 광해군 때였다. 술관 이의신이 상소하여, 경기도 교하현(현재는 파주군 교하)으로 서울을 옮기자고 주장했다. 한양의 지기가 쇠했기 때문이라 했다. 당파싸움과 청나라 세력의 등장으로 골치아파하던 광해군은 이의신의 천도론에 솔깃해 했다. 그러자 예조 판서 이정구는 이의신의 천도론을 거세게 공격했다. 풍수설은 유교 경전과 거리가 먼, 한낱 방술(方術), 아무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거였다. 이 때 이정구는 멀리 고려 때의 일을 들먹였다.“요승 묘청(妙淸)이 음양가의 설을 빌려 임금을 현혹했습니다.‘송경은 왕업이 이미 쇠하였는데, 마침 서경에 왕기가 있으니 도읍을 옮겨야 한다.’고 하여 서경의 임원역(林原驛)에 새로 궁궐을 짓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변란이 일어났던 것입니다.”(실록, 광해 4년 11월 15일 을사) 이정구의 이 같은 주장으로 이의신의 천도론은 무너졌다. “요망한 승려” 묘청을 연상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한국 역사상 묘청만큼 천도문제를 개혁과 맞물려 철저하게 내세운 이는 없었다. 그는 국정을 쇄신하고 종속적인 기왕의 대외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방편으로 천도론을 폈다. 잘 따져 보면 묘청의 천도론은 ‘정감록’과 일맥상통한다. 정감록의 주요 골자는 계룡산에 도읍해 세 세상을 열자는 것인데, 묘청의 생각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예언가 묘청의 비극 묘청은 서경(평양)의 승려다. 그는 인종 5년(1127) 검교소감(檢校少監) 백수한의 천거로 조정에 알려졌다. 서경의 천문 지리 관계 분사(分司)를 이끌던 백수한은 묘청의 제자였다. 이후 8년 동안 묘청은 인종의 신임을 받으며 국정을 좌우하다시피 했다. 그 무렵 내외정세는 무척 혼란했다. 권신이 날뛰고 북방의 금(金)나라가 압력을 가해오는 상황이었다. 인종은 수도 개경 출신의 귀족들을 억제할 생각이 없지 않았다. 혹시 금나라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해야만 되었다. 묘청은 인종의 이런 고민을 잘 헤아렸다. 묘청이 제시한 해결책은 서경천도였다. 인종7년(1129) 묘청의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서경에 신궁이 낙성되었다. 이 기회를 빌려 묘청 일파는 칭제건원(稱帝建元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세움)을 주장했다. 금나라에 대한 선제공략도 건의했다. 실로 국가의 명운을 건 과감한 시책이었다. 인종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비롯해 여러 도참설을 이용하였다. 신비한 이적을 조작하기도 했다. 예컨대 인종이 신축된 서경의 궁궐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는 순간 공중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고 허풍을 친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서경 한 가운데를 흐르는 대동강에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났다고 야단이었다. 신룡(神龍)이 침을 토해 강물에 오색빛깔이 영롱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신이한 현상에 대해 묘청 측은 위로 천심에 따르고 아래로 인망을 잃지 않은 결과라며 장차 고려는 동북아 최강의 패자로 급부상하던 금나라도 제압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공중에서 풍악소리가 저절로 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환청 같은 것에 불과했다. 대동강물에 서기가 비친 것도 역시 조작된 것이었다. 묘청 등은 남몰래 큰 떡을 빚어서 속을 빼내고 볶은 기름을 채운 뒤 구멍을 뚫었다. 그런 다음 이 떡을 대동강에 가라앉힌 것이었다. 떡에서 나온 기름방울이 햇빛에 비쳐 오색을 뿜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고려사’, 권 127) 처음에 인종은 묘청의 개혁안에 적극 찬동하였다. 그러나 왕은 결국 묘청과의 약속을 배반했다. 본래 왕의 성격이 우유부단한데다 개경의 구 귀족들이 벌인 반대공작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묘청과 대립한 개경파의 거두는 김부식이었다.‘삼국사기’의 저자로도 유명한 김부식은 문무를 겸전한 인물이었다. 그는 개경의 구 귀족 세력을 결집시켜 우선 인종과 묘청을 이간시키고, 이어서 묘청을 비롯한 서경파를 완전히 제거할 생각이었다. 인종13년(1135) 묘청은 더 이상 인종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력으로 개혁을 추진하기로 결심해 평양에 새 나라를 세웠다. 국호를 대위(大爲)라 정하고 연호를 천개(天開)라 했다. 묘청의 군대는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 하늘이 보낸 충의로운 군대)이라 불렀다. 그러나 김부식이 이끌던 고려군의 전술적 능란함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묘청은 한 때 그의 충실한 부하였던 조광에게 암살되었다. 이로써 묘청의 개혁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조선말까지도 유학자들은 묘청을 단죄해 왔다. 앞에 예로 든 이정구처럼 유학자들의 눈에 비친 묘청은 한갓 요망한 승려에 불과했다. 예언과 이적을 빌려 나라를 망치려 든 역적이란 것이다. 이런 악평을 처음으로 뒤집은 이는 아마도 단재 신채호(1880~1936)일 것이다. 그는 묘청과 김부식의 대결을 한국사에 있어 자주노선과 사대노선이 격돌한 일대사건으로 보았다. 신채호에 따르면, 묘청의 실패는 한 개인의 패망이 아니라 한민족의 주체성이 외세의존적인 세력에 완전히 무릎을 꿇고만 중대사건이었다. 나는 신채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묘청의 행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예언가 묘청은 개혁의 웅지를 품었던 역사상의 일대 거인이었기 때문이다. ●서경 궁궐터와 36국 조공설 ‘정감록’을 신봉하는 이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정씨가 계룡산에 도읍하면 나라의 수명은 6백 년이요,36국의 조공을 받게 된다. 사실상 세계 통일 정부가 한반도에 출현할 시운이 오는 것이다.” 지리산 청학동 골짜기에 있는 어느 신종교의 본부 건물에 부착된 주련(柱聯)에도 비슷한 구절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세계의 운이 돌고 돌아 이제 동방의 작은 나라로 들어오리라.”는 것이다. 36국이라면 적은 숫자가 아니다.36이란 숫자는 자연수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전통적인 지리 관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동, 서, 남, 북의 4방으로 나뉜다.4통8달이란 말도 있지만 4방은 다시 여럿으로 세분화된다.12 간지를 모방해 지관의 나침반에서 보듯 4방은 다시 12로 나뉜다. 이것이 36으로 더욱 미세하게 갈라지기도 한다. 요컨대 36은 온 세상을 포괄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장차 한국이 36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게 된다는 말은, 다시 말해 한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로 등장한다는 뜻이다. 물론 세상 모든 나라가 한국에 굴복할 거라는 기대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다시피 고대로부터 중국대륙에는 강대한 정치세력이 연이어 들어섰다. 그들 나라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엔 독특한 세계 질서가 형성되었다. 조공체제란 것이다. 한 편엔 당연하다는 듯 조공을 받는 문명한 큰 나라가 있고, 다른 한 편엔 조공을 바칠 의무를 걸머진 여러 개의 미개한 나라들이 있다고 보는 위계적인 세계관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여진과 유구 등 몇몇 나라의 조공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 조공을 바쳐야만 되었던 경우가 좀더 많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한국 사람들은 언젠가 다른 나라들에서 조공을 받는 날이 오기를 꿈꾸게 되었다. 근원을 헤아려 볼 때 ‘정감록’ 신봉자들이 36국 조공설을 주장하는 것은 민중의 오랜 갈망을 드러낸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조공 자체에 비중을 둔 것 같지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새 국가의 건설을 바랐던 염원으로 봐야 옳지 않을까 한다. 36국 조공설을 처음으로 편 사람은 다름 아닌 묘청이었다. 그것도 서경천도론을 펴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인종 6년(1128) 고려 수도 개경의 인덕궁과 남경(뒷날의 한양)에 있던 궁궐이 연이어 화재를 입었고, 이 무렵 묘청은 이렇게 주장했다.“서경에 있는 임원역의 지기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 곳이 음양가에서 말하는 이른바 대화세(大華勢)입니다. 만약 그곳에 궁궐을 세우고 수도를 옮기신다면 천하를 아우를 수 있습니다. 금나라가 조공을 바치게 되고 저절로 항복해올 것입니다.36국이 모두 조공을 바치게 될 것 입니다.”(‘고려사’, 권 127) 이 말에서 보듯 묘청은 한국의 지세를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체로 인식했다.“대화(大華)”란 대화(大花)다. 국토를 한 그루의 나무로 볼 때 가지마다 크고 작은 꽃이 핀다. 이것이 각지의 길지 또는 명당이다. 이들 명당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명당이 큰 꽃이다. 그 자리가 평양 임원역에 있으므로, 그곳에 궁궐을 지으면 나라가 가장 융성하게(大華) 된다는 것이다. 인종은 묘청의 36국 조공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동안 개경의 귀족들에게 억눌려 지내온 자신의 처지를 일거에 개선하고, 나아가 쇠약해진 국운을 개척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왕은 묘청의 건의에 따라 서경에 궁궐을 지은 뒤, 개혁의 꿈을 이렇게 담아냈다.“해동 선현(海東先賢 옛날의 어진이들 즉, 예언가들)이 말하기를,‘대화세(大華勢)에 궁궐을 창립하여 나라의 운명을 연장할 것이다.’고 했다. 이제 이미 그 터를 잡아 새로 궁궐을 지었다. 나는 때때로 그곳을 순회하여 은혜와 덕택이 안팎에 고루 미치게 하려 한다. 이를 기념하여 죽을죄를 범한 자는 감하여 유배형에 처하고, 유배 형 이하의 죄를 지은 자는 모두 용서하겠다.”(‘고려사’, 권 16) 인종이 내린 글에서 보듯, 묘청은 ‘대화세´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앞 시대의 예언서에서 찾아 놓고 있었다.‘해동선현’이 했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런 예언이 묘청 일파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어쨌거나 인종은 서경에서 발견된 대화세 명당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당시 조정 대신들 가운데서도 문공인과 임경청 등 일부 인사들은 묘청을 추종했다. 그들은 묘청을 “성인(聖人)”이라며 떠받들었다. 묘청의 제자 백수한 역시 그들에겐 존경의 대상이었다. 문공인 등은 왕에게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모든 국가의 일을 묘청과 백수한 두 사람에게 일일이 자문한 뒤에 시행하십시오. 그들의 견해를 따른다면 나라가 다스려져 평안할 것입니다.”(‘고려사’, 권 127) 이 말대로 인종은 한동안 묘청의 말이라면 무조건 다 좇았다. 그러나 의심 많고 나약한 왕은 결국 묘청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왕은 신하들이 “성인”이라 추앙하는 묘청의 종교적 카리스마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훗날 조선조의 중종이 개혁파 조광조를 중용하다가 겁을 내어 처단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려 인종은 본래 자기의 적이었던 송경의 귀족들을 앞세워 묘청을 제거했다. 묘청의 죽음과 더불어 36국 조공설은 끝장났다. 하지만 그 꿈은 민중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았다. 묘청이 죽은 지 900년 가량 지난 오늘날에도 ‘정감록’ 신도들은 여전히 36국 조공설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묘청의 팔성당과 십승지 묘청이 국토를 한 그루의 나무로 인식했다는 점은 이미 앞에서 말했다.‘대화세´로 집약되는 묘청의 풍수 이해 가운데서 나는 ‘정감록’에 언급된 십승지의 원형을 본다. 이런 짐작은 인종9년(1131) 묘청이 인종에게 올린 글에서 더욱 뚜렷이 확인된다. 그는 궁궐 안에 “팔성당”(八聖堂)을 설치하자고 제안하였다. 국토의 수호신인 여덟 성인을 위해 사당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이들 여덟 성인은 풍수지리와 관계가 깊었다. 동시에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팔성”에 관한 묘청의 말은 이랬다. “첫째는 호국(護國) 백두악(白頭嶽 백두산) 태백선인(太白仙人)인데 실체는 문수사리보살(文殊舍利 菩薩)입니다. 둘째는 용위악(龍圍嶽 금강산으로 추정) 육통존자(六通尊者)로 실체는 석가불(釋迦佛), 셋째는 월성악(月城嶽 경주 남산으로 추정) 천선(天仙)으로 실체는 대변천신(大變天神), 넷째는 구려(駒麗) 평양선인(平壤仙人)으로 실체는 연등불(燃燈佛), 다섯째는 구려(駒麗) 목멱선인(木覓仙人 목멱은 남산)으로 실체는 비파시불(毗婆尸佛), 여섯째는 송악(松嶽) 진주거사(震主居士)로 실체는 금강색보살(金剛索菩薩), 일곱째는 증성악(甑城嶽 속리산으로 추정) 신인(神人)으로 실체는 륵차천왕(勒叉天王), 여덟째는 두악천녀(頭嶽天女 이른바 지리산 聖母)로 실체는 부동우파이(不動優婆夷)입니다.”(‘고려사’, 권 127) 묘청의 주장은 ‘정감록’의 십승지설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가 거론한 지명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백두산을 비롯해 백두대간의 주요 마디가 중시되었다. 백두산, 금강산, 속리산 및 지리산을 비롯해 송악산과 서울 및 경주의 남산 등이 언급되었다.‘정감록’에 언급된 길지들이 이들 여러 산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말했다. 얼핏 보기에 ‘정감록’과 전혀 다른 점도 눈에 띈다. 전국 8대 명산의 실체를 도교의 신선이자, 불교의 불보살로 인식한 점이다.‘정감록’에는 이런 종교적 관점이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없지는 않다. 부안의 변산이나 보은 속리산처럼 미륵불교의 성지가 십승지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례로 ‘정감록’의 핵심 예언서에 해당하는 ‘감결’을 살펴보더라도 불교 최고의 성지 금강산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불교의 성지가 바로 최고의 명당이요, 국가의 운명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 이런 믿음이 풍수지리사상과 결합해 팔성당이나 십승지라는 관념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에는 불교의 위세가 많이 위축되었다.‘정감록’에는 불보살의 존재가 그저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더욱이 ‘정감록’을 전국에 전파시킨 술사들이 유교적 교양을 갖춘 평민 지식인들이고 보니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묘청이 팔성당의 건립을 주장했을 당시만 해도 사정은 아주 달랐다. 왕은 화공을 시켜 팔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당대 최고의 명문장 정지상은 팔성의 덕을 이렇게 찬양했다.“오직 천명(天命)만이 만물을 제어할 수 있고 오직 땅의 덕(土德)만이 사방에 왕 노릇을 하게 돕는다. 이제 평양 한 가운데 대화(大華)의 지세를 골라서 궁궐을 새로 짓고 음양의 이치에 순응하여 팔선(八仙)을 모시노라. 백두산을 받들어 우두머리로 삼으니 밝은 빛이 어리누나.” 묘청은 한국 풍수지리의 비조(鼻祖) 도선국사의 정맥(正脈)을 이었다고 했다. 도선의 후예답게 그는 팔성당 이론을 폈고, 이는 훗날 십승지설로 다시 피어나게 될 운명이었다. ●묘청의 새 상원(上元)과 후천개벽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정감록’의 이면에 간직된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사상도 실은 묘청에 기원을 두었다는 점이다. 인종10년(1132) 왕이 반포한 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옛 가르침(예언서)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천지가 생긴 뒤 수만 년이 지나면 반드시 동지(冬至)가 갑자일이 되리라. 그때가 되면 해와 달 그리고 수화목금토 다섯별이 모두 정북(正北,子)에 모여든다. 이 때를 상원(上元)으로 삼아 일력의 출발점을 삼으라. 천지가 열린 뒤 성인(聖人)의 도(道)가 이때부터 행해질 것이다.’(‘고려사’, 권 16) 하늘을 수놓은 일곱 개의 주된 별이 정북에 모이는 동짓날이 되면 후천이 개벽된다는 예언이었다. 이런 예언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묘청이었다. 그는 그해 동짓날을 기점으로 후천개벽이 시작된다며 왕에게 정치의 혁신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왕은 결국 묘청의 제안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건 그랬지만 한국 민중은 묘청이 한 번 싹을 틔운 이상세계의 꿈을 끝내 접지 않을 것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알림 지난 18일자에 게재된 정감록 32회 기사중 경북 울진 ‘불영사’의 한자 표기는 ‘不影寺’가 아닌 ‘佛影寺’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마카오 유럽인가 중국인가

    마카오 유럽인가 중국인가

    홍콩에서 서쪽으로 64㎞쯤 떨어진 마카오(澳門)는 면적이 23.8㎢에 불과한 조그만 땅이다. 중국 대륙의 주하이(珠海)시와 접한 마카오 시구와 타이파섬, 콜로안섬의 면적을 모두 합해도 홍콩의 5분의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마카오의 인구는 약 45만명. 이중 95%가 중국인이며 수천명의 포르투갈인이 살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지배 아래서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중계무역항이었으며 기독교 포교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오늘날 세계화는 마카오가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간의 무역중심지였던 18세기 후반 마카오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들도 있다. 지금은 영향력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지만 마카오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향수의 도시’로 사랑받고 있다. 마카오까지는 지난해 인천∼마카오간 마카오항공 직항노선이 개설돼 한층 편리하게 갈 수 있다. 글 사진 마카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Fusion City (1) 유럽의 문화재 ●돌에 새긴 대자연의 교훈 마카오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 행정특별자치구다. 마카오는 ‘도박의 도시’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카오야말로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유서 깊은 문화의 고장임을 알 수 있다. 수백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마카오에는 아직도 유럽의 정취가 남아 있다. 마카오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면 단연 성바울 성당 유적이다. 이곳은 원래 중국의 첫번째 교회이자 예수회의 대학이었다.17세기 초 이탈리아 예수회 신부인 카를로 스피놀라가 디자인한 이 성당은 일본의 종교박해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건너온 일본인 기독교 석공들의 도움으로 완성됐다. 1835년 태풍 때 화재로 소실돼 지금은 건물 정면과 계단, 지하실 등만 남아 있다. 유럽과 아시아 예술양식이 결합된 건물 정면에는 성직자들의 청동상이 안치돼 있다. 성당 벽면에는 성모 마리아가 발로 뱀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형상이 있는가 하면 ‘죽을 때를 생각해 죄를 짓지 말라.’는 구절도 새겨져 있다. 이것들은 종종 ‘자연물에 숨은 교훈(sermons in stones)’이라 불린다. 성당 지하에는 1996년 문을 연 천주교예술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예수회 신부의 묘와 일본인 선교사 등의 유골,17세기 종교예술 작품 등이 진열돼 있다. 유리 케이스에 담긴 순교자의 뼈가 주위를 숙연하게 만든다.1600년대 마카오에는 종교박해를 피해 건너온 일본 기독교인들이 특히 많았다. ●네덜란드 공격 막아낸 요새 성 바울 성당 터 동쪽의 꾸불꾸불한 ‘포트리스 힐’(요새 언덕)을 올라가면 구릉 모양의 ‘몬테 요새’에 이른다. 원래 성 바울 성당과 같은 시기인 1617년 예수회의 의식용으로 세워진 것으로 1626년 요새로 바뀌었다. 몬테 요새는 네덜란드의 공격으로부터 마카오를 지켜낸 곳으로 유명하다.1622년 세례자 성 요한의 축일인 6월24일 예수회 신부가 네덜란드 화약고에 대포를 발사해 적으로부터 마카오를 구해낸 곳이 바로 이곳이다. 몬테 요새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카오의 도시 풍경과 이웃 주하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요새는 훗날 총독의 관저로 사용됐다. 현재는 마카오박물관이 들어서 있어 지난 4세기 동안의 마카오 역사를 웅변해 준다. ●한국천주교의 상징 김대건 동상 성 바울 성당에서 골동품·재활용 가구 거리인 루아 데 산토 안토니오거리를 지나면 카모에스 공원이 나온다.1557년 한때 마카오에서 살았던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카모에스를 기려 만든 곳이다.‘흰비둘기 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카모에스 공원에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1837년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도착해 신학수업을 받았다. 김대건 신부 동상은 1985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제막한 것. 홍콩과 마카오의 한국인 가톨릭 신자들이 이를 다시 보수해 1997년 새로 봉헌했다. ●마카오 시내의 세나도 광장 세나도 광장은 분수와 나무, 벤치, 카페와 공공행사를 위한 공간을 갖춘 보행자 전용 광장이다. 물결무늬가 인상적인 이 광장은 수세기에 걸쳐 도시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1999년 12월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될 때 포르투갈에서 돌을 가져와 새로 깔았다. 포르투갈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광장의 물결무늬는 세나도에서 성 바울 성당까지 이어진다. 광장 한쪽 편에는 시의회 건물이 있으며 반대편에는 16세기에 지어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선시설 인자당(仁慈堂)이 있다. 광장 끝 쪽에는 17세기 도미니크회에서 지은 바로크 양식의 성 도미니크 성당이 웅장하게 서 있다. ●유럽풍의 콜로니얼 건축물 세나도 광장에서 택시로 15분 거리에 있는 타이파 주거박물관에서는 20세기 초엽 마카오에 살던 포르투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콜로안 섬을 바라보고 있는 박물관 주변에는 400년 전 포르투갈인이 가져와 심었다는 가(假)보리수가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다. 박물관 안에는 초기 포르투갈 정착민과 ‘토생포인(土生葡人·마카오에서 태어난 포르투갈인) 등의 주거생활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마카오의 또 다른 상징은 마카오 타워다.2001년 개장한 마카오 타워는 높이가 338m로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초고층 건물이다. 마카오 전경과 주강 삼각주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마카오 타워에서는 안전벨트를 맨채 타워 바깥 수백m 고공을 걷는 스카이워크(skywalk)라는 프로그램도 있어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참가자로선 스릴을 느낄 수 있지만 전망대에서 시내를 조용하게 조망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 Fusion City (2) 중국의 전통문화 ●마카오 최고(最古)의 사원 신앙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마카오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를 믿는다.7% 정도는 가톨릭 신자다. 아마 사원은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가운데 하나다. 배를 타는 사람들의 수호신인 도교 여신 아마(阿)와 불교의 여신인 쿤람을 모신 사원이다. 입구에는 마조각(祖閣)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다. 사원 안에는 늘 향 냄새가 진동한다. 마카오 사람들은 현재와 과거, 미래를 상징하는 뜻에서 보통 향을 세 개씩 피운다. 아마신은 특히 푸젠성 사람들과 타이완인들이 많이 섬기는 신이다. 아마 사원은 마카오라는 지명의 발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인이 마카오에 처음 상륙해 지명을 묻자 원주민이 현지어로 ‘아마카오’라고 대답했는데, 그때부터 마카오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 막아주는 나무 마카오 시내에서 또 하나 들를 만한 곳이 전당포박물관이다. 박물관 직원은 1994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실제로 영업을 했다고 말한다. 입구에는 ‘차수판(遮羞板)’이라는 붉은 색 칸막이가 설치돼 있어 눈길을 끈다. 부끄러움을 막아주는 나무라는 뜻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는 말도 있는데…. 하지만 남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은 중국인에게도 역시 수치스러운 일인가 보다. 전당포에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따로 돼 있는 점도 특이하다. 박물관 나무기둥 아래에는 물이 담긴 돌받침이 깔려 있다. 마카오에는 개미가 유난히 많아 이런 장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장대한 스케일의 민속공연 중국의 민속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원명신원(圓明新園)도 주하이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청나라 황제의 정원인 원명원이 열강의 침략으로 불탄 뒤 주하이에 이를 그대로 옮겨 지었다는 곳이다. 원명신원은 황제의 정원답게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중국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야외쇼가 하루 한차례 열린다. 무도사극 ‘대청(大淸)황조’도 그중 한 레퍼토리다. 드럼 위에서 춤추는 고상무(鼓上舞), 방패춤인 순패무(盾牌舞), 청나라 병사의 위용을 그린 팔기병무(八旗兵舞) 등 20여개의 춤이 중국인의 웅대한 스케일을 느끼게 한다. ■ Fusion City (3) 휴식: 라스베이거스+온천 마카오의 문화유적과 카지노를 즐겼다면 휴식을 위해 하루쯤 마카오와 이웃한 주하이에서 머무르는 것도 괜찮다. 주하이 사람들은 “주하이는 공기가 깨끗해 깡통 포장을 해 수출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남중국의 진주’라 불리는 주하이는 주강삼각주(Pearl River Delta)의 한 축을 이루는 경제특구. 중국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이 곳은 쑨원의 정치활동 무대이자 국민당 혁명의 근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하이는 14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백도지시(百島之市)´라 불린다. 북쪽으로는 중산시, 남쪽으로는 마카오와 연결돼 있다. ●꿈꾸는 ‘동방의 라스베이거스’ 마카오의 밤은 화려한 카지노 전광판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마카오에는 처음으로 지어진 리스보아 카지노를 비롯, 지난 5월 문을 연 미국 ‘라스베이거스식’ 진사(金沙)오락장(일명 샌즈 카지노) 등 모두 19개의 카지노가 있다. 특히 샌즈 카지노는 카지노 겸 엔터테인먼트의 복합시설로 100만평방피트의 규모를 자랑한다. 카지노는 크게 미국식과 유럽식, 그리고 동양식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식은 대규모 테마파크 같은 유희시설을 갖춘 가족 단위 개념이 강하다. 반면 유럽식은 멤버십 개념으로 상류사회의 사교클럽 형식을 띤다. 동양식 카지노는 게임 위주의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는 게 보통이다. ●주하이 최고의 웰빙온천 주하이에서 무엇보다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히는 곳은 온천이다. 특히 광둥성 지역에서 최고·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어온천(御溫泉)은 홍콩자본으로 지어진 일본식 노천탕으로 꽃탕, 삼합탕, 화흥탕, 명주탕, 성신탕, 명목탕, 감무탕, 광피탕, 폭포탕, 지열탕, 망경탕, 욕족탕, 육복탕, 커피탕 등 다양한 온천탕을 갖추고 있다. 어온천은 당나라 시대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우아한 모습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입장객에게는 전통차와 음료, 샌드위치 등이 무료로 제공된다. ●발의 즐거움을 안다 주하이 여행의 피로는 주하이의 유서깊은 발마사지로 풀 수 있다. 이곳에서 누구나 아는 발마사지 가게는 ‘지족락(知足樂)’이다. 발의 즐거움을 안다는 제목이 운치가 있다. 이곳의 발마사지사들은 3개월 길게는 6개월의 교육을 받은 뒤 자격증을 딴다. 그렇게 천하지도 흔하지도 않은 직업이다. 피부미용사 정도다. 이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1일 3교대로 하루 24시간 영업한다. 값은 한국돈으로 5000원 정도니 별 부담은 없다. ●이렇게 가세요 마카오항공에서 주 5회 마카오 직항편을 운행한다. 목요일과 일요일은 부산에서, 나머지 요일은 인천에서 출발한다. 단 9월부터 매일 인천에서만 출발한다. 마카오는 홍콩에서는 배로 한 시간, 헬기로는 15분 걸린다. 마카오를 통해 주하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카오 반도 북쪽의 궁베이세관이나 타이파와 콜로안 섬 사이 매립지에 만들어진 연화대교를 건너 횡금도에 있는 횡금(橫琴)출입국장을 거쳐야 한다. 마카오관광청 서울사무소(02)778-4402, 자유여행사 (02)3455-8888, 에어마카오 (02)3455-9900.
  • [MLB] 불펜 ‘불쇼’… BK 또 빈손

    ‘불펜 탓에….’ ‘핵잠수함’ 김병현(26·콜로라도 로키스)이 19일 RFK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해 6이닝을 7안타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구원 투수 마이크 드잔의 ‘불쇼’와 야수들의 실수로 3승째를 날려보냈다. 이로써 김병현은 시즌 2승7패를 유지했고 방어율을 5.46에서 5.25로 끌어내렸다. 지난 5일 LA 다저스전에 이어 2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김병현에게는 무척 아쉬운 한판이었다. 홈에서 30승14패(승률 .682)로 메이저리그 최고 승률을 거둔 ‘안방불패’ 워싱턴을 맞아 최고 143㎞의 직구와 체인지업을 섞어 고비마다 삼진 3개를 솎아내며 상대타선을 제압했다. 하지만 1회부터 동료들의 어설픈 수비로 고전을 했다.1사 2·3루에서 4번 프레스턴 윌슨을 평범한 플라이로 유도했지만 2루수와 유격수, 중견수가 콜플레이를 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사이 공은 중간에 떨어져 선취점을 내줬다.2회에는 김병현의 기지가 빛났다. 선두 브라이언 슈나이더에게 우전안타를 맞았지만 크리스찬 구스만의 번트타구가 뜨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원바운드가 된 뒤 처리, 병살로 이끌었다.4회 1사만루에선 폭투가 나왔지만 백스톱의 광고판에 맞고 튕겨나오는 새 머뭇거리던 3루 주자를 포수가 3루에 던져 아웃시켜 위기에서 탈출했다. 김병현은 4-2로 앞선 7회 투구수가 96개에 달해 마운드를 넘겼지만 구원투수 드잔이 1사만루의 위기를 자초했고, 후속 라이언 처치의 외야플라이 때 중견수가 무리하게 3루로 던지다가 공이 빠져 순식간에 4-4 동점이 됐다. 콜로라도는 9회 워싱턴의 ‘수호신’ 채드 코데로를 상대로 결승점을 뽑아 5-4로 승리했다.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은 “초반 직구승부가 많아 투구수 조절에 실패했다.”면서 “슬라이더를 가다듬고 체인지업 비중을 늘려 최소 7이닝,110개까지 던져야 벤치의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프로야구 2005] ‘뚝심의 곰’ 8연패 탈출

    단 1승이 간절한 두산이 무려 6명의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는 물량공세 끝에 삼성 타선을 완봉으로 틀어막고 지긋지긋한 8연패에서 탈출했다. 두산은 10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에서 ‘철벽 계투’로 삼성을 3-0으로 완파했다. 지난달 26일 수원 현대전 이후 14일 만에 감격의 승리로 8연패를 끊었고, 삼성과의 상대전적에서도 8승3패로 앞서 ‘천적’임을 뽐냈다. 두산은 올시즌 첫 선발 등판한 상대 권오준을 1회부터 효과적으로 두들겼다. 톱타자 전상열과 장원진의 연속안타로 만든 무사 1·3루에서 최경환의 우중간 2타점 3루타로 손쉽게 선취점을 올렸고,1사 뒤 홍성흔의 적시타로 3-0으로 달아났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선발 김명제(3과 3분의1이닝 2안타 무실점)의 구위가 괜찮았지만,4회 양준혁에게 2번째 안타를 맞자 곧장 김성배를 마운드에 올리는 ‘강수’를 띄웠다. 이후 전병두(6회)-이재우(6회)-금민철(8회)을 줄줄이 내보냈고,8회 ‘수호신’ 정재훈(8회)을 올려 승리를 지켰다. 이날 양준혁(삼성)은 4회 김명제를 상대로 사상 첫 350번째 2루타의 이정표를 세웠다. 3위 한화는 광주에서 4-5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 1사 1·2루에서 주포 김태균이 기아 마무리 최상덕으로부터 짜릿한 3점포를 뿜어내 7-5로 역전승을 거뒀다. 7위 현대는 사직에서 다승 1위(13승) 손민한으로부터 4회까지 5점을 뽑아 일찌감치 강판시키며 롯데를 6-2로 물리쳤다.4위 SK도 문학에서 선발 신승현의 7과 3분의1이닝 1실점 호투를 앞세워 LG를 5-3으로 꺾고 3연승을 달렸다. 한편 정규리그 311경기(62%)를 소화한 이날 4개 구장 3만 1000여명 등 올시즌 총 233만 9584명의 관중이 입장, 지난해 총관중(233만 1978명)을 221경기나 앞당겨 돌파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4) ‘원조’ 예언자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4) ‘원조’ 예언자들

    언제 누가 무슨 예언으로 세상을 움직였을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예언자의 계보도 많이 달라졌다.20세기 초엔 손병희를 비롯한 신종교단체 지도자들이 ‘정감록’을 근거로 ‘후천개벽’을 예언했다. 그에 앞서 조선 후기에는 풍수지리와 점술에 밝은 ‘술사(術士)’들이 예언자로 활동했다. 그들은 정권에서 소외된 이른바 ‘원국지사(怨國之士)’들과 연합해 새 왕조의 창립을 꿈꾸었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언서 ‘정감록’을 민간에 유포시켰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좀더 다양한 부류의 예언자들이 발견된다. 우선 고려 후기에는 미륵불의 화신이라고 주장하다가 사기꾼으로 단죄된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고려시대만 해도 국가는 정치적 예언을 독점 관리하였으며, 이를 위해 천문과 지리 등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술관(術官)을 따로 설치했다. 국가가 예언을 제도적으로 독점하는 경향은 이미 고대로부터 비롯됐다. 우리와 이웃한 고대 중국은 물론, 서양문명의 뿌리로 알려진 로마제국에서도 정치적 예언은 국가의 통제를 받았다. 정치적 예언은 허가받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만큼 고대사회에서 예언의 역할은 중요했다. 한국 고대의 예언자들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왕, 무당, 일관 및 승려가 그들인데, 이들은 예언의 원조였다.‘정감록’의 가장 깊숙한 뿌리였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신성한 왕들의 예언능력 고대엔 왕들이 직접 예언자 역할을 담당했다. 예컨대 신라 선덕여왕이 그랬다.‘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인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 줄거리만 간단히 언급하겠다. 영묘사 옥문지에 개구리 떼가 모여 여러 날 동안 울어댔다. 이것을 보고 여왕은 여근곡이란 곳에 백제 군사가 잠복해 있는 줄을 알아냈다. 개구리는 눈이 툭 불거져 있어 성난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병사로 해석했다. 개구리가 울던 옥문은 곧 여자의 생식기인데 여자는 음이요, 빛깔로 말하면 흰색, 방향으로는 서쪽이다. 여왕은 적군이 서쪽에 있음을 짐작했다. 그런데 남근이란 여근 속에 들어가면 죽는 법이라 여근곡의 적군은 물리치기가 쉬울 것으로 판단했다. 선덕여왕의 예언은 사물의 형태, 이름, 빛깔이 당시 사람들이 공유한 상징체계의 틀 안에서 이뤄졌단 점이 주목된다. 역사가들은 이 설화를 예로 들어 선덕여왕은 개인적으로 대단한 능력이 있었다든가, 또는 여왕의 권위가 만만치 않았다는 주장을 편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고대의 왕은 신성시 됐는데, 왕의 초월적 능력에 대한 기대가 그 이면에 자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집트의 파라오나 중국 고대의 진시황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신성한 능력의 소유자로 간주돼, 사시사철 천지의 순조로운 운행을 알리는 달력을 공포할 권리가 있었다. 심지어 고대 동양에서는 신기한 동식물의 출현, 별자리의 움직임을 비롯해 갖가지 천문 현상, 바람과 비 등 일체의 자연 현상에서 하늘의 뜻을 발견하고자 했다. 자연환경의 사소한 변화에도 한 나라의 정치적 공과가 반영되어 있다고 믿었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물론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도 이에 관한 기사가 수없이 많다. 왕은 이 모든 현상의 이면에 암시된 하늘의 뜻을 정확히 읽고 적절히 대응해야만 됐다. 그것이 하늘과 백성에 대한 왕의 의무였다. 이런 점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한국 고대엔 왕이 흉년이나 자연재해에 대해 직접 책임을 져야 됐다. 부여에선 여차하면 왕을 바꾸기까지 했다고 한다. 부여 왕은 정치적 수장이자 최고의 사제로서 책임을 져야 했다. 부여 사람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하늘의 의지가 절대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이 벌어지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그 발굽 모양으로 길흉을 점칠 정도였다. 일종의 동물 점(占)이 애용되었던 것인데, 그 방법이 중국 고대 은(殷)나라의 갑골점(甲骨占)과 비슷해 보인다. 고대에는 아직 세속적인 지식과 종교적인 신앙심이나, 정치권력과 종교적 권위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 왕은 최고 권력자이자 종교적으로 신성한 존재로서 하늘의 뜻을 정확히 읽어내야 된다는 사명을 떠안게 됐다. 심한 경우, 예언과 주술의 능력이 부족한 왕은 퇴출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상적인 왕은 선덕여왕처럼 예지 능력을 구비했어야 됐다. ●궁중의 무당 또는 일관들, 예언 전문가로 국정에 간여해 시일이 흘러감에 따라 정치와 종교는 점차 분리되었고, 정치권력이 종교적 권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왕 노릇을 하는 데는 여전히 정치적 예언능력이 요구되었지만, 왕이 직접 예언자여야 할 필요는 사라졌다. 왕은 궁궐 안에 예언자들을 고용했고, 그것으로 족했다.‘삼국사기’에 보면 이미 백제의 초창기인 온조왕 때,‘일관(日官)’이란 전문가가 측근으로 기용돼 있었다. 어느 한 해엔 왕궁의 우물물이 갑자기 넘쳤고, 도성에 사는 어떤 백성의 집에서 말이 소를 낳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더욱이 그 머리는 하나였으나 몸은 둘이었다. 이런 변고(?)에 대해 일관이 해석을 내놨다.“우물물이 갑자기 넘친 것은 대왕이 크게 세력을 일으키게 될 징조입니다. 소가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둘인 것은 대왕이 이웃 나라를 병합하게 될 징조입니다.” 예언은 맞아들었다. 얼마 후 온조왕은 진한과 마한을 병합하는 데 성공했다. 일관의 정체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고구려에서는 일자(日者)라고도 하였다. 그는 천체의 이상현상을 예언으로 풀이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예컨대 149년(고구려 차대왕 4년) 5월에 다섯 별(歲星 또는 木星,熒惑 또는 火星,太白 또는 金星,辰星 또는 水星 그리고 鎭星 또는 土星)이 동쪽 하늘에 모였다. 일자가 보기에 흉한 조짐이었다. 그러나 그는 왕의 마음에 거슬리면 공연히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임금의 덕”이 있다는 증거라고 거짓으로 둘러댔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 늦어도 2세기에는 천문에 정통한 직업적인 예언자들이 고구려 왕실에 존재했다. 일자는 이를테면 전문직 관리로 왕을 보좌했다. 고구려 왕실에는 또 다른 부류의 예언자들도 있었다. 역시 고구려 차대왕 때의 기록이 참고가 된다.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마침 하얀 여우가 보이기에 활을 쏘았다. 그러나 맞히지 못해 떨떠름해했다. 왕은 ‘무사(巫師)’에게 이 일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스승 사(師)’ 자를 붙여 무사라 일컫는 데서 짐작되듯, 최상급의 무당이었다. 무사는 그 일이 아주 나쁜 징조라고 말했다. 여우는 요사스러운 짐승인데 하물며 그 빛깔이 하얗다면 더욱 괴이한 일이라 했다.“임금님은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여 덕을 닦고 잘못을 반성하십시오. 만일 임금님이 덕을 닦으시면, 화가 변하여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왕은 화가 치밀어 올라 이렇게 간언하는 무사를 죽여 버렸다. 나라 안의 최고 무당으로서 예언자는 자연 현상에 은밀하게 담긴 하늘의 뜻을 제대로 알아맞혀야 했다. 여기서 반드시 언급돼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 무당은 자연 현상의 예언적 의미를 캐낼 때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의 정치적 개입은 위의 이야기가 상징하듯 상당한 위험이 뒤따랐다. 우리에게 삼국통일의 명장으로 널리 알려진 김유신만 해도 본래는 고구려의 무당이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는 전생에 고구려의 무당 추남이었다 한다. 추남은 천지자연의 여러 현상을 예언으로 풀이하는데 능했다. 뿐만 아니라 점술에도 밝았다. 하지만 고구려 왕비의 뜻을 거스른 바람에 무고하게 죽음을 당했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적국 신라의 귀족 가문에 환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삼국유사’에 보면, 고구려의 연개소문 역시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적국의 장수로 환생하였다고 했다. 환생에 얽힌 전설이 사실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점은 추남이든 또는 차대왕 때의 무사든 국가의 운명을 바로 예언해야 될 사명을 띤 무당들이 왕의 곁에 포진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과 별도로 천문에 밝은 일자들 역시 예언을 임무로 삼았다. ●명산대천과 시조 사당의 제관들, 국운을 예언하다 7세기의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얼핏 무당과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구별되는 새로운 부류의 예언자들이 등장했다. 사제 또는 제관(祭官) 즉, 나라의 중요한 제사를 담당하던 종교인들이 예언자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고구려 말기인 보장왕 때 일이다.654년(보장왕 13년) 4월, 마령 고개 위에서 신인(神人)이 나타나 고구려의 멸망을 예언했다. 마령의 신인이란 산신령을 가리킨 것이 거의 틀림없다. 신라의 경우 김유신의 전기를 읽어보면 삼산(三山)의 여신들이 국운을 수호하는 신으로 언급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고구려의 마령도 국가적으로 중시되던 명산이며, 그 곳의 산신이라면 특별한 신앙대상이 아닐까 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마령 산신의 예언을 청취한 사람은 결코 평범한 사람일 수가 없다. 그는 산신령의 제사를 전담하는 사제였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딱히 고구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삼국에는 저마다 국가적인 제사의 대상이 정해져 있었다. 유명한 산천과 국가의 시조묘(始祖廟) 등이 신앙 대상이었다. 이들 종교시설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따로 있었다. 고구려 요동성(遼東城)만 해도 시조 주몽(朱蒙)의 사당이 설치돼 있었는데 그에 얽힌 이야기는 마침 예언자에 관한 우리의 논의에 도움이 된다. 보장왕 때 당나라 장수 이세적(李世勣)이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그 성 아래까지 쳐들어 왔다. 당나라 군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달아 성을 공격했다. 당 태종까지 친히 합세해 요동성을 수십 겹으로 에워싸 북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요동성 주민들의 사기는 저하됐고 성은 함락직전이었다. 바로 그때 주몽 사당을 관리하는 사람이 나섰다.“우리가 모시는 주몽 사당에는 철판을 이어 만든 갑옷이 있고 날카로운 창이 있다. 전해오는 말로 이것은 전연(前燕·249∼370) 때 하늘이 내려 보냈다고 한다. 지금 적에게 포위되어 형세가 위급하다. 미녀를 단장하여 주몽 신에게 아내(‘婦神’)로 바치자.” 그의 제안대로 미녀를 바친 다음 제관이 다시 말했다. 주몽이 기뻐하시므로 성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란 이야기였다. 그러나 요동성은 바로 함락되고 말았다. ‘삼국사기’에는 주몽 사당의 제관을 단순히 무당(‘巫’)이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크게 괘념할 일은 아닐 성싶다. 요동성의 함락에 관한 내용은 고구려의 적국인 당나라 측의 사료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 사당을 보호하고 관리할 ‘사제’ 또는 ‘제관’이 없었을 리는 만무하다. 이쯤에서 요점을 간추려보자. 첫째, 고구려의 건국 시조 주몽은 사후에 국방의 요충인 요동성을 수호하는 신으로 간주돼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비슷한 예로 신라의 문무왕도 죽어 국가의 수호신이 되었다. 문무왕과는 달리 주몽은 성곽의 수호신이었다. 그런 점에서 주몽 사당은 후대 중국 성황(城隍)의 원형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둘째, 주몽 신에게 젊은 여성이 희생으로 바쳐졌다는 점이다. 사람을 산 채로 무덤에 부장품으로 삼는 순장(殉葬) 풍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종교적 희생은 오랫동안 끈질기게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인용한 사료에서 확인되듯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 사당을 관리하는 제관이 있었고, 그는 수호신 주몽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바로 이 점이 지금 우리에겐 가장 중요하다. 백제의 경우에도 명산대천은 국가적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중요했던 만큼 국가의 멸망을 예언하는 징조가 가장 분명하게 포착된 장소이기도 했다. 백제가 멸망하기 몇 해 전부터 기이한 현상들이 자주 목격됐다. 빨간 말이 북악의 오함사(烏含寺)에 들어와 울었다고 했다. 그 말은 사찰을 여러 날 동안 맴돌다 죽었다는 것이다. 북악이라는 명칭에서도 짐작되듯 그 산은 백제의 오악 가운데 하나였다. 명산 중의 명산으로 백제가 국가적 신앙대상으로 삼았던 북악 산신이 나라의 멸망을 알리는 징조였다면 의미심장하다. 하필 ‘말’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상징적이다. 앞서 예로 든 고구려의 산신도 마령 즉 ‘말 고개’에 출현했던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고대에 말은 전쟁 또는 군신(軍神)의 상징이었다. 멸망을 눈앞에 두고 백제의 우물, 강물 그리고 바다에도 재앙의 조짐이 역력했다. 서해안 해변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어찌나 많던지 백성들이 아무리 먹어도 남았다고 했다. 생초진(生草津)엔 거대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됐다. 그 길이가 무려 18척이나 됐다고 한다. 수도 사비성의 서남쪽으로 흐르는 사비하(금강)에는 큰 물고기가 죽어 떠올랐는데, 길이가 3척이나 됐다. 이어서, 사비하의 물이 핏빛처럼 붉게 물들었다. 도성의 우물물도 핏빛으로 변했다. 모두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따져보면 우물물이나 강물이 붉게 변했다는 이야기는 큰 물고기나 거대한 여성이 폐사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대 한국인들의 관념에 따르면 물속에는 물의 신이든가 아니면 용이 살고 있었다. 그 형상은 특출한 사람의 모습일 수도 있었고 물고기 또는 지렁이와 같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물의 신은 우선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등장한다. 주몽의 외할아버지 하백이 바로 그렇다. 작은 물고기들은 물의 신(水神,河伯)의 신하로 인식됐다. 적에게 쫓기던 주몽이 무사히 강물을 건너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물고기와 자라들 덕분이었다. 만일 주몽이 수신의 외손이 아니었더라면, 수중 생물들의 도움을 기대하긴 어려웠다는 것이 신화의 논리다. 백제 왕실은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였던 만큼 명산 못지않게 대천(大川)도 중요했다. 수도 사비성을 감싸 흐르던 사비하, 생초진 그리고 서해 바다의 수신은 모두 백제의 수호신이었을 것이다. 물론 수호신들의 죽음에 대한 관찰은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현상을 목격하고 보고하고 기록한 것은 보통사람들의 몫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언자인 제관들의 고유한 권리요, 또한 의무였다. ●호국사찰의 승려들, 불안한 미래를 보다 삼국에 불교가 전파된 뒤로 각 나라엔 호국사찰(護國寺刹)이 들어섰다. 기존의 산신과 수신에 더하여 부처님의 가호가 나라의 융성을 보장해주리란 믿음이었다. 그러다 나라가 망하게 되자 그 조짐이 호국사찰에도 나타났다. 백제의 경우, 천왕사(天王寺)와 도양사(道讓寺)의 탑이 벼락을 맞는가 하면, 백석사(白石寺) 강당에도 벼락이 쳤다. 왕흥사(王興寺)에선 배의 돛과 같이 생긴 것이 강물을 따라 절간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목격됐다. 왕흥사 승려들은 이런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한다. 정치적 예언은 본래 신성한 왕과 무당들의 독점적 영역이었으나, 역사 속에 새로 등장한 일관(日官)들, 불가(佛家)의 스님들에게도 예언의 권능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이런 고대 예언자들의 직업적 계보가 이어져, 조선후기엔 술사(術士)와 스님들이 정감록의 생산과 유통을 주로 담당하게 된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프로야구2005] 박명환 7이닝 퍼펙트

    ‘불패의 투수’ 박명환(28·두산)이 시즌 9승째를 챙겨 다승 단독2위로 올라섰다. 두산은 1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서 선발 박명환의 7이닝 무실점 ‘퍼펙트 피칭’에 힘입어 한화를 4-2로 제치고, 선두 삼성을 0.5게임차로 바짝 추격했다. 박명환은 7회까지 90개를 던져 스트라이크존에 60개를 꽂아넣는 등 흠잡을데 없는 ‘명품 피칭’의 진수를 뽐냈다. 최고구속 150㎞의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한편,131∼138㎞의 슬라이더를 절묘하게 섞어 7이닝동안 단 3안타,1볼넷을 내주고 삼진을 9개나 솎아냈다. 특히 5∼7회는 삼자범퇴로 완벽하게 틀어막아 한화가 반격할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8일 현대전 이후 10연승의 ‘불패행진’을 이어간 박명환은 올시즌 승률 1위(1.000)를 유지했고, 지난해 타이틀을 거머쥔 탈삼진 부문에서 2위(80개), 다승(9승) 및 방어율 2위(2.26) 등 선발투수 전부문에서 2위 내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박명환은 지난 91년 선동열(당시 해태)을 마지막으로 끊긴 다승-탈삼진-방어율 ‘투수 3관왕’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했다. 한화는 9회 마지막 공격에서 이범호가 ‘철벽마무리’ 정재훈에게 투런홈런을 빼앗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너무 늦었다. SK는 대구에서 ‘삼성킬러’ 고효준의 호투와 함께 홈런 3방으로 삼성마운드를 융단폭격,10-3으로 대승을 거뒀다.SK는 주말3연전을 2승1무로 마감해 4위 현대에 1경기차로 다가선 반면, 삼성은 1승1무3패로 최악의 한 주를 보내면서 1위 수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올시즌 삼성과 2경기에서 12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친 고효준은 이날도 6회 1사까지 2실점으로 틀어막아 올시즌 자신의 2승을 모두 삼성을 상대로 챙기는 천적의 면모를 과시했다. 사직에선 LG가 연장11회 박용택의 결승홈런에 힘입어 7-6,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박용택은 5-6으로 뒤진 8회 동점홈런에 이어,11회에는 ‘롯데 수호신’ 노장진에게 결승 솔로아치를 뿜어내는 원맨쇼를 펼쳤다. 기아는 군산에서 4-4로 팽팽하던 8회 대타 이재주의 천금같은 2루타가 터져 현대를 5-4로 따돌렸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프로야구 2005] 독수리 ‘훨훨’ 갈매기 ‘끙끙’

    ‘독수리군단’ 한화가 끈끈한 뒷심을 과시하며 파죽의 8연승을 이어갔다.‘부산갈매기’ 롯데는 8연패의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한화는 12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경기에서 이도형의 동점홈런과 김태균의 적시타에 힘입어 7-5로 승리, 연승행진을 ‘8’로 늘렸다. 한화의 8연승은 지난 99년(9월24일~10월5일) 10연승을 거둔 이후 팀 최다연승. 한화는 초반 4-0으로 달아나며 싱겁게 앞서갔지만,5회 선발 김해님이 LG의 ‘고졸루키’ 박병호에게 솔로홈런을 맞으며 흔들렸다. 급기야 6회 사사구 3개로 만루찬스를 헌납한 뒤 정의윤의 2타점 적시타와 안재만의 내야땅볼로 역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연승의 상승세를 타는 한화의 저력은 무서웠다. 7회 대타 이도형이 구원투수 송현우의 2구를 노려쳐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115m짜리 동점포를 터뜨린 뒤, 계속된 찬스에서 ‘해결사’ 김태균이 바뀐 투수 박만채의 초구를 우전적시타로 연결, 역전에 성공했다. 삼성은 수원에서 ‘언히터블’ 배영수가 9회 2사까지 역투한 데 힘입어 현대를 4-3으로 힘겹게 따돌렸다. 배영수는 8과 3분의2이닝 동안 탈삼진 3개를 솎아내며 6안타 2실점으로 호투, 시즌 8승째를 거두며 박명환과 함께 다승 2위에 올랐다. 현대는 9회 정성훈의 투런홈런으로 1점차까지 쫓아갔지만 삼성의 ‘수호신’ 권오준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는 실패했다. SK는 문학에서 김재현과 이진영의 홈런포를 앞세워 롯데에 8-2로 낙승을 거뒀다. 두산은 잠실에서 ‘필승계투조’ 이재우-정재훈을 투입, 힘겨운 투수전 끝에 기아를 4-1로 꺾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프로야구 2005] 손민한 ‘아니 벌써 7승’

    손민한(롯데)이 시즌 7승으로 다승 단독 선두에 나섰다. 손민한은 17일 사직(관중 2만 68명)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7과 3분의2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3안타 1볼넷 1실점으로 눈부시게 호투했다. 손민한은 파죽의 6연승으로 시즌 7승째를 기록, 바르가스(삼성)를 1승차로 제치고 다승 단독 1위에 올랐다. 또 방어율 2위(2.25)로 선두 배영수(1.84 삼성)를 바짝 뒤쫓았다. 롯데는 손민한-노장진의 ‘황금계투’로 4-1로 이겼다. 삼성은 승차없이 승률(.667)에서 두산(.676)에 뒤져 6일 만에 2위로 내려앉았다. 8회 2사 1·2루의 위기에서 구원등판한 ‘수호신’ 노장진은 강동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워 불을 끈 뒤 9회 3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봉쇄, 전 구단 상대 세이브를 기록했다. 구원 선두 노장진은 14세이브째. 손민한과 루더 해크먼(7이닝 6안타 2실점)의 팽팽한 투수전으로 전개되던 이날 경기에서 0-0의 균형을 깬 것은 롯데. 롯데는 4회 신명철의 좌익선상 2루타로 만든 2사3루에서 펠로우의 좌전 2루타에 이은 손인호의 좌전 적시타로 2-0으로 앞섰다.7회 양준혁의 2루타와 박한이의 적시타로 1점차로 쫓긴 롯데는 8회말 정수근의 안타로 맞은 1사2루에서 라이온의 1타점 2루타와 펠로우의 적시타로 2점을 추가, 승부를 갈랐다. 삼성은 8회초 1사3루의 귀중한 찬스를 잡았으나 김재걸의 스퀴즈번트때 3루주자가 홈에서 아웃돼 동점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한편 이날 예정된 LG-현대(수원)전은 비로 취소됐고 SK-두산(잠실), 기아-한화(청주)전은 노게임이 선언됐다. 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40년 만에 고국무대 서는 배우 오순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40년 만에 고국무대 서는 배우 오순택

    화목란(花木蘭)이란 전설의 여인이 있다. 왈가닥 아가씨로 불린다.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 시대였다. 여인은 어느날 아버지한테 온 입영 통지서를 받았다. 병든 아버지를 걱정한다. 고민끝에 남장했다. 아버지 대신 전쟁터에 나섰다.10년 가까이 유연(柔然, 흉노 또는 훈족)과 싸우며 나라와 왕을 구했다. 여인의 생일은 4월8일, 고향 사람들은 매년 이날 묘당에서 제사를 지낸다. 1500년이 지난 후 여인은 ‘뮬란’(목란의 중국식 이름은 무란)으로 다시 태어났다.1998년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됐다. 지금도 비디오 대여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날의 ‘월트 디즈니’를 일궈낸 일등공신으로 여긴다. ●‘뮬란’ 서 목소리 더빙으로 팬 사로잡아 이런 ‘뮬란’을 탄생시킨 아버지가 있다. 놀랍게도 한국인이다. 오순택(69)씨. 물론 전설 속의 아버지는 ‘화조우’다. 오씨는 애니메이션 ‘뮬란’에서 ‘화조우’ 목소리로 등장, 팬들을 사로잡았다. 영화배우 에디 머피(천방지축 수호신 ‘무슈’의 목소리)와 함께 출연했다는 사실도 주목할 점이다. 오씨는 국내보다는 세계 무대에서 더 잘 통하는 인물이다. 연극·영화인이라면 꿈의 무대로 여기는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서 40년 가까이 명성을 쌓았다. 특히 65년부터 CBS 인기드라마 ‘하와이 50’의 단골 게스트를 시작으로 에미(Emmy)상 후보에 오른 ‘에덴의 동쪽’ 그리고 ‘마르코폴로’‘맥가이버’ ‘50수사대’ ‘매쉬’ ‘매그넘 P.I’ 등 150편에 달하는 TV 드라마에 출연, 미 안방극장의 스타로 군림했다. 영화로는 75년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로저 무어와 짝을 이룬 홍콩주재 영국 정보원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또 액션스타 척 노리스와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대특명’ 에 출연, 뛰어난 무술연기를 했다. 이래저래 40년 동안 출연한 영화만 100여편에 이른다. 이같은 화려한 연기 경력 외에 83년과 86년 미스 유니버스대회에서 두차례 심사위원을 지냈고, 현재 아카데미상의 후보와 최종 심사를 맡은 ‘아카데미회원’에 가입돼 있다. 모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다. 그의 유명세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얼마전 ‘뮬란2’의 더빙을 마친 오씨는 현재 서울예술대학 석좌교수로 몸담고 있다. 수준높은 연기력을 후학들에게 전달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이를 수락했다. 당분간 서울과 미국을 오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또 오는 29일부터 5월8일까지 국립극장에서 공연되는 ‘떼도적’(원작 쉴러, 이윤택 연출)에도 출연한다.40년 만에 서는 고국무대여서 나름대로의 설렘이 적지 다. 서울 장충동에 있는 국립극장 예술감독실에서 오씨를 만났다. 먼저 “40년 만에 (고국무대로)돌아왔다. 늦게마나 출연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면서 “(강의를 하다보니)많은 얘기를 했기 때문에 무대위에서 실천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라면서 웃는다. 어떻게 해서 할리우드 스타가 됐을까. 전남 강진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다. 광주고를 1회로 졸업하면서 형(이승만 대통령 당시 외교담당 비서관)의 영향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외교관이 돼라는 것이 집안의 주문이었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에 빠지는가 하면, 서울 단성사 주변을 맴돌면서 영화구경에 몰두했다. 영화배우들이 우상처럼 여겨졌다. ●국립극장 ‘떼도적’서 연기선보여 59년 군복무를 마친 뒤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국제사법을 공부하라는 집안의 권유로 UCLA에 진학했다. 그러나 천부적인 ‘끼’는 속이지 못했다. 결국 교수와 주위의 추천으로 네이버후드 연극학교(Neighborhood Play House)로 전학했다. 이 학교는 그레고리 펙, 스티브 매퀸, 폴 뉴먼 등을 배출한 연기부문으로는 미국 최고의 명문이었다. 그는 정식 오디션을 거쳐 입학한 첫 동양인으로 기록된다. 입학 당시 157명 중 졸업한 사람은 16명뿐일 정도로 까다로운 과정을 무난하게 통과했다. 졸업 후에는 다시 UCLA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땄고, 연기분야 최고 학위인 MFA도 받았다. 학자금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65년 브로드웨이 ‘라쇼몽’에서 남편역으로 연극무대에도 데뷔한 그는 LA 타임스로부터 ‘무대에 새 스타가 탄생했다.’는 평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주목받는 동양인 배우가 됐다. 이 무렵 TV에 스카우트됐고, 모던댄스, 발레, 팬싱, 태권도, 유도, 쿵후 등의 실력을 갖춘 만능배우로 영화·연극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미싱 인 액션(Missing In Action) Ⅱ’‘파이널 카운트타운(Final Countdown)’ ‘비버리힐즈 닌자’ 등에서 조연을 하면서 제작자들의 스카우트 대상으로 떠올랐다. 또한 ‘뮬란’에서 뮬란의 아버지 목소리로 연기한 직후 할리우드에서는 ‘아버지 목소리의 전형’이라는 극찬을 받았다.LA에서 발간되는 각종 일간지 ‘할리우드 소식’란에 하루라도 안나오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많은 팬들이 생겼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흥행하기 위해서는 주연배우의 3요소가 있습니다. 백인, 블론드(금발), 블루아이(파란 눈동자)가 그것이죠. 이런 풍토에서 동양인 배우가 살아남기란 솔직히 말해서 힘듭니다. 돌이켜보면 제 자신도 놀랄 뿐이죠.”할리우드에서 조연일 수밖에 없는 심정과 현실을 토로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동양인을 소재로 하면 돈을 못번다는 것이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고정관념이라는 것도 귀띔해준다. ●한국비난 영화 출연거부로 강한 인상 미국에 있다 보면 애국심은 없지만 ‘애족심’은 저절로 생겨난다고 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미국에서도 ‘Soon-Tek Oh’로 통하는, 예명이 없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 배우로서 자존심도 강하다. 그는 더티 코리안 영화로 비난을 받은 ‘폴링 다운’(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출연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해 교포사회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연기란, 삶의 오묘함과 숭고함을 담아야 합니다. 또한 진실하면서 배우의 상상력이 이루어낸 것이어야 해요. 순간의 진실을 영원화하는 행사가 바로 연기입니다.” 현재 할리우드 배우협회에 가입된 회원은 8만여명이다. 이 가운데 한국인 1.5세 또 2세들이 30명가량 된다고 말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배우 중 대부격인 오씨는 스스로가 “A급 스타는 아니다. 그러나 존경받는 배우로 살고 싶었다.”면서 영화의 재미는 조연배우가 어떻게 끌고 가느냐에 따라 확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6년 전남 강진 출생 ▲52년 광주고 1회 졸업 ▲5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59년 미국 유학 ▲63년 뉴욕 네이버후드 플레이하우스 졸업 ▲65년 ‘라쇼몽’으로 연극계 데뷔,CBS드라마 ‘하와이50’으로 미 안방극장 데뷔. ▲이후 ‘에덴의 동쪽’ ‘찰리의 천사들’‘침략자’ 등 드라마 150편에 출연. 영화 ‘007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뛰지 말고 걸어라’ ‘파이널 카운트다운’ 등 100여편에 출연. ▲1979년 미국 드라마 로지 비평가상 최우수 연기상 수상 ▲현 서울예술대학 석좌교수
  • [톡톡한마디] “도둑 없어도 현관 잠그고 자야”

    6일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으로 선출된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본회의장을 폭소로 이끌며 다시 한번 ‘국보법 수호신’임을 자처했다. 그는 이날 무기명 투표에서 재석 209명이 투표해 152명 찬성으로 선출된 뒤 “국가보안법 폐지에 누구보다 앞장선 입장이어서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많은 표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소신 발언은 계속됐다. 김 위원장은 “안보가 무너지만 국가가 무너진다는 신념으로, 국보법은 개정을 해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면서 “아무리 도둑이 없다고 해도 현관문은 열고 자는 것보다 잠그고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산자위 회의장에서 여야의 책상 간격을 좁히고, 위원장석의 (높은)책상과 걸상도 바꾸는 등 잔잔한 변화를 이끌겠다.”고 포부도 내비쳤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MLB] ‘밤비노의 저주’ 부활?

    미국프로야구의 ‘앙숙’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맞대결이 벌어진 6일 양키스타디움. 보스턴이 2-3으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초, 제이슨 베리텍이 양키스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를 상대로 통렬한 솔로홈런을 쏘아올려 승부를 원점으로 몰고갔다. 기세가 오른 보스턴은 연장 역전의 분위기에 한껏 들떠 있었다.8회 3타자를 깔끔하게 막아낸 보스턴의 철벽 마무리 키스 풀크가 9회말에도 어김없이 마운드에 올랐고, 타석엔 양키스의 ‘클럽하우스 리더’ 데릭 지터가 들어섰다. 지터는 인내심을 가지고 공을 지켜봤고, 어느새 2-3 풀카운트로 꽉 찼다. 운명의 7구째. 지터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고, 보스턴의 우익수 매니 라미레스는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공을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 양키스가 지터의 짜릿한 끝내기포에 힘입어 숙적 보스턴을 4-3으로 따돌리고 개막 2연승을 달렸다. 이로써 양키스는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보스턴에 3연승 뒤 4연패한 치욕을 되갚았다.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4년간 4000만달러의 대박을 터뜨리며 양키스로 옮긴 선발 칼 파바노는 6과 3분의1이닝 동안 8안타를 내줬지만 삼진 7개를 솎아내며 2실점으로 버텼고,‘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는 2경기 연속 투런홈런을 폭발시키는 등 4타수 3안타 2타점으로 타선의 선봉에 섰다. 한편 ‘빅초이’ 최희섭(26·LA 다저스)은 이날 SBC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 1루수 겸 2번타자로 선발 출장했지만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쓰나미 철벽대비 최전선’ 日시즈오카현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쓰나미 철벽대비 최전선’ 日시즈오카현

    “시즈오카현을 중심으로 하는 도카이 지역에서 거대지진이 내일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76년 한 교수가 이처럼 얘기하면서 일본이 잔뜩 긴장했다.100년, 혹은 150년 거대지진(리히터규모 8.0 이상)주기 이론에 따른 분석이다. 이 지역에는 1854년의 안세이 지진 이후 대지진이 없었다. 경고 이후 29년, 아직까지 도카이(東海) 거대지진은 없다. 하지만 “쓰나미(지진해일)를 동반한 도카이 지진 발생이 나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라는 것에 지진학자들이 동의한다. 따라서 시즈오카현은 일본내 어느 지역보다 지진, 쓰나미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시즈오카 이춘규특파원|인구 379만명(2003년 기준)이 밀집한 시즈오카현은 유라시아지각판, 필리핀지각판, 북미지각판 등 3개의 이른바 지각판이 충돌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100∼150년을 주기로 거대지진이 일어났다. 특히 500㎞ 이상의 해안선 연안지역에 인구가 밀집, 지난해 말 남아시아 쓰나미 피해 이후 이 지역의 쓰나미 대책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육지에도 관측기기… 사전예보 99% 시즈오카현은 도카이 지진이 발생할 경우 유일하게 사전예보가 가능한 지역으로 꼽힌다. 지각판이 충돌하는 육지에도 여러 곳에 관측기기를 설치, 지진 전조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현 방재정보실 미야다 마사토의 설명이다. 151년전 7m가 넘은 쓰나미가 강타했던 쓰루가만 안쪽의 누마즈시. 이 지역 동부의 시즈우라 지구는 인구 7000명 정도의 작은 어촌이다. 바다와 산 사이에 끼어있는 좁은 평지에 주택이 밀집해 있어 쓰나미가 닥쳐올 경우 피난 장소 확보나 예방을 위한 방조제 정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높이 12m 쓰나미 대피山 조성 당국은 쓰나미 엄습시에 대비, 산으로 피할 수 있는 피난로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피난센터도 여러 군데 운영하고 있다. 해변에는 높이 12m, 넓이 600㎡로 300명 정도가 긴급 피난할 수 있는 ‘쓰나미산’을 조성해 놓았다. 주민이나 낚시꾼 등이 대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즈우라 지구 일대에는 높이 7m 정도의 긴 방조제에 갑문도 설치, 지역주민들이 관리하도록 했다.50여개소에 고성능 확성기도 설치, 쓰나미 내습시 안내방송을 한다. 시 방재지진과의 이고사와 주간은 “8∼9m의 쓰나미가 신칸센 열차의 두배인 시속 500㎞의 속도로 엄습할 것에 대비, 철저한 사전훈련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카이 지진 발생시 쓰나미 내습이 우려되는 누마즈항에는 내항과 외항을 연결하는 항로상에 지난해 9월 대형 수문을 설치, 쓰나미는 물론 태풍에도 대비하고 있다. 수문의 높이는 9.3m, 중량은 923t으로 일본 최대다. 이 수문은 진도 ‘6약’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이를 자동감지, 수문을 5분내에 급강하시켜 완전 폐쇄한다. ●방재시설, 관광자원으로도 활용 쓰나미의 높이가 5.8m일 때까지 수문을 차단, 해발 2∼3m의 지역에 밀집한 20여만명 시민의 생명을 지키게 된다. 여기서 출발하는 높이 10m 안팎으로 80㎞나 이어진 거대한 방조제도 쓰나미 피해를 막아준다. 따라서 ‘뷰오’로 불리는 이 거대수문은 누마즈시의 새로운 수호신으로 꼽힌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높이 30m에 위치, 수문 양쪽 기둥을 연결하는 복도에는 전망대를 설치, 후지산이나 쓰루가만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다. 방재시설이면서도 평소에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일본 국내는 물론 외국서도 쓰나미 방재시설 견학자가 많이 몰려들어 “최근 3개월 동안 6만명의 외지인이 다녀갔다.”는 것이 누마즈시 항만과장 이나가키 히데토시의 자랑이다. 그래서 연간 1200만엔(약 1억 2000만원) 정도의 시설유지비나 43억엔의 시설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물론 현 차원에서도 쓰나미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3년 전부터는 목조주택의 내진강화 공사를 위해 가구당 30만엔까지 지원해주고 있다.65세 이상 노약자 세대는 별도다. 현 지진방재센터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에서 유일한 ‘쓰나미 체험 돔’도 센터 내에 설치돼 있다. 진도 ‘6강’까지의 지진을 체험하는 시설도 갖춰 하루 140명 정도가 견학하고 있다는 것이 마쓰모토 부관장의 설명이다. ●주민 방재조직 5100여개 주민들의 자체 방재조직은 현내에만 5100여개에 이른다. 이들은 종합 방재일인 매년 9월 1일 도카이 지진 발생을 상정, 훈련을 실시한다.12월 첫번째 일요일엔 돌연한 도카이 지진급 재해발생에 대비, 지역방재의 날 훈련을 실시한다. 또 7월1∼10일은 쓰나미대책 추진기간으로 설정돼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1997년에는 시즈오카현이 같은 지진대인 야마나시, 가나가와현 등 인접 지역과 재해대책연합회의를 설치, 합동 연구와 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현 당국의 철저한 쓰나미 대비에도 불구, 주민들은 남아시아의 30m급 쓰나미 소식을 접한 뒤로는 몹시 불안해졌다고 한다. 시즈우라 지구에서 만난 60대 노인 3명은 “이전에는 피난시설을 믿었지만 이젠 무섭다.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오면 무조건 높은 산으로 피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재난에 대비한 주민 자치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마쓰다 겐고도 “10m 이상의 거대한 쓰나미가 올 것에 대한 훈련도 계속하고 있다.”면서도 “실제 지진은 추정 이상으로 온다. 지진대비 시설들이 조금은 안심하게 하지만 절대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그것이 한계다.”고 말했다. taein@seoul.co.kr ■日 쓰나미연구 발달한 이유는 |시즈오카 이춘규특파원|일본은 쓰나미 연구 강국이다. 지진해일을 뜻하는 일본어 쓰나미는 국제용어가 됐다. 왜일까. 일본은 100∼150년 주기로 거대지진이 엄습, 쓰나미도 뒤따른다. 쓰나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쓰나미연구의 강국이 됐다. 기록에 따르면 쓰나미(津波)라는 용어는 1611년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의 문서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해저 지진과 화산폭발에 의한 해일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됐다. 쓰나미(Tsunami)가 국제 지진용어가 된 계기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일설에는 1946년 알류산열도에 대지진이 일어나 해일이 하와이를 급습했을 때 현지 일본계 신문이 사용, 국제적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1968년 미국 해양학자가 국제회의에서 “Tsunami를 학술용어로 하자.”고 제안, 그 이후 시나브로 퍼졌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남아시아 지진해일 때 CNN 등 서방 방송들이 쓰나미라고 칭하면서 급격히 확산됐다는 분석도 있다. 쓰나미의 80% 정도는 환태평양지진대에서 일어나는 해저지진 때문에 발생한다. 가장 높은 것은 1958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것으로 약 520m였다. 인적 피해는 1883년 인도네시아 쿠라카트아화산 폭발 때 수반된 쓰나미로 3만 6000명이 최대였다. 그러나 지난해 남아시아 지진 때 30여만명이 사망, 묵은 기록이 깨졌다. 일본은 산리쿠지진(1896·2만 2000명 사망)과 칠레지진(1960년·61명 사망)에 의한 쓰나미 피해 등의 경험이 있다. 미국, 러시아와 쓰나미연구 경쟁을 하고 있다. taein@seoul.co.kr ■이시가와 지사 인터뷰 |시즈오카 이춘규특파원|지진과 이로 인한 해일(쓰나미) 등 시즈오카현 방재대책을 책임지고 있는 이시가와 요시노부 지사는 “언제든 지진과 쓰나미가 내습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시가와 지사는 지난 3일 인터뷰에서 지진대비의 기본 개념을 ▲현민의 생명 지키기 ▲재해 뒤 현민의 생활 지키기(긴급물자 등 피난생활지원) ▲복구작업 조기 완료로 요약했다. 특히 1995년 한신대지진 때 희생자의 80%가 건물붕괴로 발생했던 점을 중시,‘붕괴 제로’를 실현하기 위해 금전적·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시가와 지사는 시즈오카현은 28년전부터 지진과 쓰나미에 대비해왔다고 소개했다. 일본 국내나 지난해 말 남아시아 지진 등 세계 대지진 현장에 현직원을 파견, 조사활동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을 보강하고 있다. 그 결과 방대한 자료가 축적됐고, 지진과 쓰나미 예측기술도 최고수준이라고 했다. 한편 현내 하마오카초에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과 관련,“일정 진동 이상이면 자동적으로 작동이 중단되도록 설계돼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20년이상 원전을 가동했지만 문제가 없었고 내진도 강화, 지역주민을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대지진으로 멈춰서면 다른 발전소 전력이나 일본내 송전망을 이용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지진위험지역으로 알려진 이후의 변화에 대해 “현 자체적으로는 물론 중앙정부에 특별 대책을 요구, 지진사전예측 기술을 많이 발전시켰다.”며 5년 단위로 그동안 5차례의 계획을 성사시켜 내진설계를 보강했고 쓰나미대피소와 대피로 등을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결과 “쓰나미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99%까지 예보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미흡한 점이 있어 ‘피해 제로’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즈오카현에는 지진발생이후 강물을 정화하는 일본 최대의 정수회사가 있다. 이시가와 지사는 그러나 지진이나 쓰나미 대책을 본격 산업화하는 문제에는 신중했다.2002년 한·일공동월드컵 등 대형행사 때도 피난유도는 이벤트회사에 맡겼다. 이시가와 지사는 29년전 대지진 경고가 나와 산업이나 관광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오히려 공장 등의 재해대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잘 돼 안전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역설적으로 자랑했다. taein@seoul.co.kr
  • 관제신앙 바탕 점복서 ‘관제영첨’ 국역서 발간

    관제신앙 바탕 점복서 ‘관제영첨’ 국역서 발간

    삼국지의 주인공 관우(關羽)는 촉한의 용맹한 장수이면서, 사후엔 무신(武神)으로 받들어져온 신앙 및 점복술의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관우신을 숭배하는 관제신앙(關帝信仰)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고대로부터 전래됐으며, 특히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다고 한다. 조정에서도 명의 권유로 각 처에 관성묘(關聖廟)를 짓고 나라의 수호신과 재신(財神)으로 모셨으며, 선조를 비롯하여 숙종, 정조, 순조, 고종 등 역대 국왕들도 관성묘에 제사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관제는 근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면서 그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는데,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민속문화 보존사업의 일환으로 관제신앙을 바탕으로 한 점복서 ‘關帝靈籤’(관제영첨·이정섭 해역)을 국역, 발간했다. 관제는 관우를, 영첨은 ‘신령스러운 제비’를 뜻하는데, 점을 치는 방법이 비교적 간단하고 재미있다. 즉 1첨에서 100첨까지 천간(天干)으로 엮인 제비를 뽑아 점을 치는데, 뽑힌 첨에 씌어 있는 천간(甲甲∼癸癸)에 의해 사람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각 첨엔 제목격인 첨의 운이 나오고, 이어 제목을 부연설명한 7언절구의 시, 다음엔 첨의 뜻을 풀이한 해왈(解曰), 시에 대한 뜻풀이인 석의(釋義)가 붙는다. 마지막으로 점을 쳐서 실제로 경험한 사례를 적은 점험(占驗)이 따라붙는다. 만일 100개의 첨중 갑갑(甲甲)을 뽑았을 경우, 제목은 ‘한고조(漢高祖)가 함곡관에 들어가다.’이다. 해왈 및 석의를 보면 ‘바라는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그러나 바라는 것이 재물일 경우 유명무실하여 말만 많지 공허하다.’고 풀이한 ‘대길운(大吉運)’이다. 관제영첨은 단순히 길흉화복을 점치는 다른 점복서와 달리 권선징악하는 교훈의 내용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즉 길흉화복이 모두 자기 자신의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로, 심성을 바르게 가지고 선행을 많이 하면 복도 얻고 재앙도 피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자신의 심성과 행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복만을 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는 책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Anycall프로농구] SK ‘백기사’ 랭 선두 TG 혼냈다

    [Anycall프로농구] SK ‘백기사’ 랭 선두 TG 혼냈다

    한국프로농구 최고의 높이와 수비력을 자랑하는 TG삼보의 막강 ‘트윈타워’ 김주성과 자밀 왓킨스도 절정의 컨디션을 뽐낸 SK의 ‘백기사’ 크리스 랭(24점 15리바운드 4블록슛)을 막을 순 없었다. 랭은 수비에서는 파리채 같은 블록슛으로 TG의 인사이드 침투를 무력화시켰고, 공격에서는 타점 높은 훅슛과 호쾌한 덩크슛으로 착실하게 득점을 올렸다. 랭은 SK의 외곽슈터들에게도 수호신같은 존재였다. 든든한 스크린을 버팀목으로 의지한 전희철과 조상현, 임재현 등은 8개의 3점포를 고비마다 터트려 상대전적 1승3패로 열세로 보이던 최강 TG를 상대로 소중한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SK가 1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04∼05시즌 프로농구 홈경기에서 김주성(25점 4블록슛)이 고군분투한 TG삼보를 69-60으로 따돌리고 공동 5위로 올라섰다. 랭의 활약으로 5점 안팎의 불안한 리드를 유지하던 SK는 4쿼터 5분여를 남기고 노장 전희철의 알토란 같은 3점포로 10점차로 달아났다. 전희철(9점 4리바운드)은 3쿼터까지 단 3점(야투성공률 11%)에 그칠 만큼 극심한 슛난조에 시달렸지만 승부의 분수령이 된 4쿼터에서 연달아 2개의 3점포를 터뜨려 TG의 추격에 찬물을 끼얹었다. SK는 전희철이 4분여를 남기고 5반칙으로 퇴장해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케빈 프리맨(8점)이 현란한 개인기로 상대 수비 3명을 제치고 턴어라운드 덩크슛을 터뜨린데 이어 정확한 미들슛까지 성공시켜 승리를 지켜냈다. 이로써 SK는 21승20패를 기록해 SBS와 공동 5위로 뛰어올라 플레이오프 전망을 밝혔다. 한편 꼴찌 LG는 창원 홈경기에서 생애 첫 더블더블을 기록한 박광재(14점 12리바운드)의 활약에 힘입어 갈길 바쁜 모비스를 72-68로 꺾고 7연패에서 탈출했다. 모비스는 19승 23패를 기록, 공동5위 SBS와 SK에 2.5경기차로 벌어졌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자기 성찰과 마음의 평안/권도갑 원불교 도봉교당 주임 교무

    낯선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나에게는 늘 두려움과 불안이 따라 다녔다. 그동안 이를 없애려고 노력하였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괴로웠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내 앞에는 언제나 못마땅하고 미운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성직자로서 나는 이들을 사랑하고 가슴으로 품어야 했는데 이것이 유감스럽게도 잘 되지 않았다. 마음이 깨어나면서 지금까지 상대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나의 것임을 발견하였다.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퍼 넘겨서 그들의 것이라고 비난하며 무시하고 있었다. 이로 해서 스스로 보이지 않은 죄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허물이 바로 나의 것이라는 것을 속마음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으며, 다른 사람이 이를 알아차릴까 불안했다. 이때 나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은 강한 욕심이 일어났으며, 그러지 못할 때는 마음속에서부터 분노가 치솟았다. 때때로 상대의 잘못을 바라보며 내면을 관찰해 보니, 현실에 나타난 경계는 정말로 나를 위한 고마운 거울이었다. 이제는 주어진 인연이나 상황을 통해서 이들을 원망하는 어리석음을 내려놓아야 했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 무한한 은혜로서 나의 앞에 놓여 있으며 인과의 이치는 정확히 일어나야 할 일들만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나는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이 모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릴 수 있었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이상하게도 상대의 것을 보면서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속의 미숙한 존재는 자기를 보지 않고 상대의 문제를 민감하게 바라보며 거부하고 불평하였다. 나는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책임지며 밝고 건강한 감정을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주위 상황이나 여건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이들에게 구속되는 노예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단호히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평소에 만나는 인연들을 통해서 발견한 문제점을 보면 교무인 나는 인색하고, 이기적이었다. 권위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하였다. 욕심이 많으며 위선적이었다. 이들이 모두 보이지 않게 쌓아온 허물이었다. 그런데도 이를 상대의 것이라고 불만을 표하였고,“나는 아니다.”라고 당당히 거짓을 말하였다. 때문에 많은 시간을 법신불 앞에서 참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제 만나는 인연이 누구이든지 그가 어떤 자세를 보인다 하여도 그 가치는 존귀하고 위대하다는 사실을 믿는다.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의 신비요 기적이다. 그들에게는 문제가 없으며, 언제나 옳다.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상생(相生)의 인연이다. 이들은 나를 돕는 천사이고 나를 보호하는 신장불이며 수호신들뿐이다. 지금 그가 어느 위치에 있으며 무슨 과오가 있다 하여도 그들은 나의 모습을 비춰주는 은혜로운 존재이다. 나는 이들을 무조건 존경하며 사랑한다. 이렇게 상대를 소중히 받아들일 때 자연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었다. 비로소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으며, 나 자신이 용서되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나를 진실로 사랑하고 인정하는 길과 둘 아님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많은 죄업으로 오염되었다 하여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하였는가보다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의 내가 이처럼 존재하도록 안내하고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과 법신불님의 크신 사랑에 깊이 감사드린다. 권도갑 원불교 도봉교당 주임 교무
  • “500살 은행나무 코앞 설치 에어컨 실외기 좀 옮기세요”

    “500살 은행나무 코앞 설치 에어컨 실외기 좀 옮기세요”

    “이 나무를 제발 살려주세요.”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61번지에는 1971년 산림법 제67조와 서울시 조경시설 관리조례 제4조에 의해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지정 당시 수령이 450년이었으니 현재는 50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나무는 높이 23m, 둘레는 7m에 이른다. 오래된 나무라 나무에 얽힌 옛 이야기도 많다. 마을 어르신들은 옛 조상들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구릉대감’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일부 어르신들은 수령이 800년이 넘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이 부근 땅의 기운이 약해져 마을사람들 모두 자손이 생기지 않을 조짐을 보이자 한 할머니가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신령한 은행나무 가지를 어렵게 구해와 심은 후 마을이 번창하게 됐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이 나무에 치성을 드려 가꾸어 왔다고 한다. 동네의 옛이름인 ‘은행마을’도 이 나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 때는 나무 뒤에 숨은 여러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하며, 나뭇가지를 꺾어 교자상을 만든 송씨 성을 가진 사람은 큰 병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은행나무는 신성시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은행나무가 고사 위기를 맞았다. 내년 입주예정인 H아파트 인근 E대형상가의 냉방장치 실외기 6개가 나무 5∼6m 앞으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아직은 상가입주가 시작되지 않아 피해가 없지만 상가가 모두 입주하면 실외기에서 내뿜는 열기가 나무에 닿게 된다. 이렇게 되면 속이 빈 밑둥치를 인공 보조물로 채워 견디고 있는 이 나무의 고사는 시간문제라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일부 주민들은 구청 홈페이지나 전화 등으로 구청 측의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구청 홈페이지에서 H아파트 입주예정자라는 이정석씨는 “노원구의 보호지정수이며 상징인 은행나무를 해치면 안 된다.”며 “옥상이나 나무를 향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정국(가명)씨는 “이같은 일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행패”라며 “후한이 두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원구청측은 실외기가 사유재산인 만큼 행정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그리 많지 않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구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현장조사 결과 은행나무 쪽으로 바람과 열기가 직접 닿는 것은 아니다.”라며 “실제 가동될 때 소음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울타리를 포함한 소음저감시설 등을 설치토록 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구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정효숙(가명)씨는 “수령이 500년이나 되는 나무는 정서가 깃든 또다른 생명체”라며 “올해까지 무성한 나뭇잎을 드리우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했던 나무가 구청 측의 무관심으로 죽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숙자(가명)씨는 주민들은 삭막한 아파트 숲속에서 모진 풍상을 이겨낸 고풍스러운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며 “상가 입주 전까지 구청측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병숙 시민기자·고금석 기자 dulmar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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