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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서 아이스레이싱 사업하고 싶어”

    ‘할리우드 액션’으로 유명한 미국의 쇼트트랙 대표인 아폴로 안톤 오노(26) 선수가 제주에 아이스 레이싱사업 의사를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달 초 강원도에서 열린 2008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남자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한 오노 선수는 19일 스포츠마케팅 회사인 아이스더비 관계자 등과 함께 제주도를 찾아 김태환 제주지사를 면담했다. 오노는 “아름다운 섬 제주는 아이스레이싱 경기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주에 아이스레이스 경기장 건설 등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사업성 검토가 끝나 투자 계획을 확정하면 많은 관심을 갖고 지원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제주도의 수호신인 ‘돌하르방’을, 오노 선수는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시상식에서 입었던 운동복 상의에 사인을 해 각각 선물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한국의 토종](3) 삽살개·진돗개·동경이

    [한국의 토종](3) 삽살개·진돗개·동경이

    “개야 개야 삽살개야, 너에게 밥을 줄 때 먹기 싫어 너를 줬냐. 윗집 총각 오시거든 짖지 마라 너를 줬지.” 연인들의 은밀한 사랑놀음이 개 짖는 소리에 들통 날까 조바심을 내는 내용의 전래민요의 한 소절이다. 삽살개를 비롯해 진돗개, 동경이 등 토종개 이야기는 옛 민요나 시조·민화 등에 종종 등장한다. 신라 김유신 장군의 충견(忠犬)이던 삽살개가 군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일본 사찰의 수호신 동물석상인 ‘고마이누´(高麗개)도 이 땅에서 건너간 ‘삽살개´가 뿌리라고 한다. 온몸에 털이 복슬복슬한 삽살개. 눈과 귀를 덮은 긴 털이 야성적이면서도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삽´은 퍼낸다, 없앤다는 뜻이며 ‘살(煞)´은 액운을 의미하니, 삽살개란 액운을 물리치는 개라는 뜻이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삽살개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준 것은 일제시대 때였다는 게 한국일(41) 한국삽살개보존협회 육종연구소장의 말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총독부 산하에 ‘조선원피주식회사´를 세우고 군용 모피로 견피(犬皮)를 연간 10만장에서 많게는 50만장까지 수집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전국의 개가 몰살하다시피 했다는 것. 한 소장은 삽살개가 천연기념물 368호로 지정된 1992년부터 삽살개의 체계적인 혈통관리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 오랜기간 우리 풍토에 적응해온 삽살개는 우리와 정서적으로 매우 잘 통하며 질병에도 강하고, 주의력이 깊고 복종심이 뛰어나다. 최근 애완견을 이용한 정서장애 치료법이 유행인데 삽살개가 좋은 치료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다만 애완견치고는 다소 몸집이 큰 게 흠이어서 삽살개를 작게 만드는 육종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한 소장의 주장이다. 삽살개와 자웅을 겨루는, 또 하나의 명견인 진돗개. 진돗개는 섬이라는 ‘진도´의 특수성 때문에 순수 혈통이 비교적 잘 보존돼 왔다. 평야와 산야지대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진도. 그곳에서 노루, 토끼, 너구리 등을 사냥하며 승부근성 및 민첩성을 발달시켜온 대표적인 토종견이다. 진돗개축산사업소는 진돗개를 세계적인 명견으로 우뚝 서게 하려는 야심찬 계획에 따라 우수 혈통을 얻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전남 진도군이 진돗개 혈통 보존과 보호육성을 위해 설립한 이곳에서 현재 18명의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윤한성(50) 소장은 “주인에게는 한없이 순하지만, 위험 앞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을 갖췄다.”며 특히 멀리 대전까지 팔려 갔다가 진도의 주인에게로 돌아온 ‘백구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경이적인 귀소본능까지 갖췄다고 칭찬했다. 냄새가 거의 없는 청결한 개이기도 하다. 진도군은 2005년 세계 최고 권위의 개 등록기관인 영국의 케넬클럽(KC)에 진돗개를 등록시켰다. 한국에도 고유 품종의 국견(國犬)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알린 것이다. 동경이(東京犬)는 숨겨진 토종견이다. 조선 순종 때 발행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동경(경주를 말함)에 꼬리가 없거나 이상한 개가 많았다. 그래서 이들을 동경견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한때는 꼬리가 잘린 개거나 돌연변이로 취급 받았다. 그러던 동경이가 최석규(51) 서라벌대학 동경이보전연구소 소장에 의해 천연기념물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최 소장은 “동경이가 토종개 가운데 문헌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개”라면서 “주인과 함께 있으면 낯선 사람에게 절대 짖지 않는 성품을 지녔다.”고 칭찬했다. 이어 “우리의 중요한 생물자원인 동경이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체계적인 관리와 육종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요즈음 근본도 알 수 없는 수입견들이 국내 애완견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견들은 대부분 인위적으로 개량한 작출견(作出犬)인 데 비해, 우리의 토종개는 우리의 환경이 만들어낸 자연산 그대로다. 최근 멸종위기에 처했던 우리의 토종개들이 DNA 지문법이나 혈청분석법, 역사적인 고찰 등을 통해 복원, 육성되고 있다. 우수 토종견을 보급하는 일은 새로운 국가산업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잃어버린 고향의 마음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바둑이도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사진 글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한국의 토종] 곧고 단단해 소나무 중 으뜸…문화재용 목재로 인기

    [한국의 토종] 곧고 단단해 소나무 중 으뜸…문화재용 목재로 인기

    이 땅에서 선조 대대로 내려온 토종 동·식물은 우리 모두가 지켜야할 공동의 자산이며 자자손손에게 물려줄 귀중한 유산이다. 오늘날 우리의 토종은 크고 빨리 자라는 수입종에 밀려서 구경조차 힘들어졌다. 토종의 유산을 잃었을 때 우리만의 고유한 삶은 침체된다. 토종은 하나의 씨앗으로서 ‘종 의 영속수단’이고 차세대의 식량으로서 ‘근원적인 자원’이다. 새로운 종자가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만큼 현대는 종자전쟁의 시대이다. 따라서 환경오염속에서도 살아남은 다양한 장르의 토종과 그것을 발굴. 보존하는 사람들을 정확히 알림으로써 토종자원의 무분별한 대외유출과 소멸을 예방하고 나아가 우리의 ‘종자주권’을 지키고자 한다. 예로부터 마을 어귀에는 ‘당산나무’라 불리는 수호나무가 있었다. 당산나무는 숭상과 두려움의 대상이며 하늘과 땅, 신과 사람이 만나는 신성한 곳이라 하여 우주의 중심으로 여겼다. 당산나무로는 소나무가 많았다. 우리문화를 ‘소나무 문화’라고 부를 정도로 소나무는 우리민족과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선산에 소나무를 심었고, 소나무 서까래를 얹은 집에 살다가, 죽은 뒤에는 태어날 때 심은 그 소나무로 짠 관에 묻혀 영면에 들었다. 조선시대에 소나무는 벌채가 금지될 정도로 귀한 영물로 취급됐다. 세종은 송목금벌지법(松木禁伐之法)을 만들어 소나무를 함부로 벨 수 없게 했다. 또 궁궐 건축 등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목재를 생산하기 위해 특정 산림을 금산(禁山)으로 지정, 함부로 오르지도 못하게 했다. 지금도 소나무를 수호신처럼 여기는 마을들이 적지 않다. 강원도 보호수로 지정된 강릉시 연곡면의 ‘제왕송(帝王松)’은 500년 동안 마을 주민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그곳에서 5대째 살고 있는 전명찬(46)씨는 “매년 초파일에 서낭당에서 재를 올리고, 천재지변이나 재앙이 있을 때 마다 재를 올리면서 수호목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한다. 소나무중에서도 금강송(金剛松)을 단연 으뜸으로 여긴다. 흔히 춘양목이라고 불리는 금강송은 나무가 곧고 질이 단단하다. 또한 송진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서 최고의 건축용 목재로 꼽힌다. 현재 토종 소나무의 멸종위기는 일제 강점의 아픈 역사와 무관치 않다. 당시 산업용도의 무분별한 벌채로 울창했던 송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해방 후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식목일을 제정해 묘목을 심는 등 대대적인 노력이 이뤄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30∼40년산의 ‘청년기 소나무’는 전체 소나무의 60% 정도를 차지할 뿐이다. 이 나무들은 앞으로 30년 이상 지나야 건축용 소나무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근래 들어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되면서 토종 소나무 되살리기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2007년 한 해 피해면적만 6855㏊에 이를 정도다. 산림청은 피해나무들을 공중에서 촬영 분석하고, 약제살포, 나무주사 등 적절한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 보수 및 복원에 사용될 목재 확보를 위해 강원·경북지역 국유림에 있는 금강송 숲 811ha를 ‘문화재용 목재생산림’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산림청 목재이용팀 이종건 팀장은 “우리 땅에서 자란 나무를 이용해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국민의 자존심을 높이는 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하며 토종 소나무 보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사진 글 강릉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내고장 이야기속 인물] ‘해남의 논개’ 官妓 어란

    [내고장 이야기속 인물] ‘해남의 논개’ 官妓 어란

    1592년 임진왜란 때 경남 진주에 논개가 있었다면 1597년 정유재란 때 전남 해남에는 어란(於蘭·?∼1597)이 있었다. 충절의 여인 논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어란은 모른다. 두 여인 다 신분이 천한 관기(官妓)였다. 논개가 왜군 장수와 함께 투신해 조선 여인의 기개를 알렸다면 어란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어란이 세계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명량대첩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란은 400여년간 철저하게 묻혀버렸다. 뒤늦게 해남 출신 원로 교육자인 박승룡(81)옹에 의해 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최근 문헌으로 확인돼 빛을 보게 됐다. (편집자주) 새해 1일 새벽, 땅끝인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답게 해마다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400여년 전통이다.‘당주신위(堂主神位)’라고 돌에 쓰인 신주는 정유재란 때 나라를 구한 할머니로 보인다. 이 마을 옆 동산에는 17세기 초쯤 조선시대에 세워졌다는 석등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할머니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박승룡옹은 “일제 강점기 때 25년 동안 해남에서 순사를 한 일본인 사와무라 하지만다로(澤村八幡太朗)의 유고집에서 ‘어란’이란 여인의 행적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유고집인 ‘문록경장(임진·정유년)의 역(전쟁)’에서는 명량대첩의 패배를 어란의 간첩행위로 보고 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이 알고 있는 마을의 수호신인 할머니 이야기와 책의 내용이 한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들어맞았다.”고 흥분했다. 마을주민들은 신주로 모신 주인공의 실체를 이제야 어란 할머니라고 알게 됐다. 박옹은 “정유재란 때 어란과 관계를 맺은 왜장 스가 마사가게(管正陰)는 실존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스가 마사가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에 파견한 스가 히라에몬(管平右衛門)의 서자라고 일본 히로시마대학의 히구마 교수가 확인해줬다. ●명량대첩 일등공신 어란 명량해전은 충무공이 남은 12척의 배로 왜군 133척을 울돌목(명량)에 수장한 정유재란 최대의 승리다. 난중일기 등으로 당시 해전을 되짚어보자.1597년 8월26일 충무공은 우수영인 어란진에서 울돌목 앞인 진도군 벽란진으로 옮겨간다.9월7일에는 왜장 스가 마사가게가 군선 13척으로 정탐차 어란마을에 들어온다. 이어 14일쯤 왜군 총대장인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通總)가 어란마을로 들어온다. 이렇게 보면 어란이 왜장 마사가게를 만난 기간은 일주일 남짓이다. 마사가게는 첫눈에 어란의 미모에 넋이 나갔을 것이다. 결국 그는 잠자리에서 명량해전 출전일을 누설하고 만다. 때마침 조선인 김중걸이 왜군에게 붙잡혀 마사가게 앞으로 끌려온다. 그러나 누군가의 구명으로 김중걸이 풀려난다. 이 누군가는 김중걸이 떠나기 전 “나는 김해인”이라고 안심시킨 뒤 “‘왜놈들이 배들을 모아 조선 수군을 모두 몰살한 뒤 바로 경강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하더라.’는 말을 우수영에 전하라.”고 귀띔했다. 왜군 장수의 총애를 받는 어란이 아니고는 포로가 풀려날리 만무하다. 김해인이란 본관이 김해 김씨일 듯하다.100만부가 넘게 팔린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는 ‘왜군이 어란항에서 출항할 때 적장(구루시마 미치후사)의 몸시중을 들던 조선인 여자 1명이 물에 뛰어들어 죽은 것으로 묘사된다. 소설이지만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충무공은 김중걸로부터 적진 동향을 안 뒤 명량해전 이틀 전인 14일 본진을 벽파진에서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으로 옮긴다. 이로써 충무공의 전술이 명량해협을 뒤에 둔 배수지진에서 앞에 둔 전법으로 급선회한다. 이 전술변경이 명량대첩의 승리를 가져온다. 명량해전 일인 9월16일 충무공은 전투 2시간여만에 불리한 전세를 뒤짚고 왜군 133척을 울돌목에 격침한다. 왜군은 좁고 물살이 센 울돌목에 놀라 큰 배들은 뒤에 남기고 작은 배들로만 울돌목을 건너 전투에 나섰다가 격침됐다. 퇴각하던 스가 마사가게는 이날 벽파진에서 익사한다. 일본 전사(戰史) 기록도 똑같다. 충무공은 9월14일자 난중일기에서 “(김중걸의)말이 모두 믿기는 어려우나 그럴 수도 없지 않을 듯해 전령선을 우수영으로 보내어 피란민들을 육지로 피하라고 타이르도록 했다.”고 적었다. 우수영으로 진을 옮긴 대목이다. ●어란은 이순신의 간첩 사와무라는 유고집의 48,49쪽에서 명량해전 대패의 원인을 어란진의 간첩사건으로 규정했다.‘어란진에 주둔한 스가 마사가게는 이순신군의 간첩인 미기(美妓) 어란과 애인관계로 사랑에 빠져 명량해 출전기일을 발설한다. 어란은 이를 이순신군에 연락한다. 결국 명량해전에서 애인 스가 마사가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에는 충성했지만 인간적인 양심의 가책으로 다음날 달 밝은 밤에 명량해가 보이는 서쪽바다에 투신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어란이 투신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또 87쪽 그가 지은 한시에는 ‘무희 요염에 유혹돼 어란진의 여심(旅心)에서 정을 맺은 것이 간첩의 그물에 걸리다.’ ‘정유재란 때 논개와 같은 업적을 남긴 여인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지금 마을주민 가운데 누구도 모르던 ‘어란’이란 이름도 이 유고집에서 처음으로 나온다.‘어란’이라는 마을 이름은 고려 공민왕 때부터 나온다. 사와무라의 유고집에 신뢰성을 더한 문장이 있다.‘대흥사 앞쪽인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에 임진란과 정유재란 때 붙잡힌 일본인 포로수용소(2000여명)가 존재한다.’고 적었다. 실제 현장확인에서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처음으로 서울신문(1983년 3월 13일자)에 보도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을사람들의 증언 어란마을 주민들이 알고 제사 지내는 할머니 이야기는 이렇다. “명량해전 이튿날인 9월17일, 마을 앞 바닷가로 한 여인의 시체가 떠오른다. 이를 마을 어부가 발견, 시신을 수습해 근처 소나무 밑에 묻는다. 묘 앞에 석등을 세우고 불을 밝혀 이 할머니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할머니가 투신했을 것으로 보이는 매봉산 절벽에서 가까운 산에는 사당의 주춧돌이 나뒹군다. 지금 마을 뒤편 사당은 두번째 옮긴 것이다. 주민 김학채(73·향토연구사)씨는 “70살 넘은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 석등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릴 때 마을에서 날마다 저녁에 불을 켜고 새벽에 불을 끄던 일을 한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말을 했다.“사당의 할머니 신주를 일본의 장군 가문(스가 마사가게)에서 가져가려는 것을 주민들이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주민 최사홍(90)옹은 “한학자이신 조부께서 ‘이 등대가 있는 곳은 유서깊은 신성한 곳이고 영을 기리기 위해 석등을 세우고 불을 켰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기억했다. 이처럼 석등에 불을 밝히는 어란마을의 관습은 일제 강점기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불을 켜도록 허용한 점은 의혹이 있다. 이에 대해 히구마 교수는 “사료를 연구해봐야 할 일이지만 불을 켠 것은 일본인들도 등대로만 알았지 정확한 내용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어란항은 남다른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곳임에 틀림없다. 뭍에서 툭 튀어나온 천혜의 군사 요충지이다. 마을회관 앞마당에는 조선시대 수군 무관인 만호 5분의 비석과 해방기념비 1개가 세워져 있다. 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구국의 여인’ 찾아낸 박승룡옹 구국의 여인 ‘어란’을 처음으로 찾아낸 박승룡옹은 지난해 8월10일 세기 준이치(瀨木俊一) 일본 해남회 회장으로부터 부탁했던 책을 받았다. 그가 펴낸 사와무라 하지만다로의 유고집이다. 유고는 사와무라의 큰딸인 시마구라 이구고(75·島倉郁子)가 보관하다 해남회에 전달해 인쇄됐다. 해남회는 일제 때 해남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의 친목 단체이다. 해남회 회장은 “임진·정유재란 때 조선과 일본에서 첩자를 서로 활용했다. 어란도 진주의 논개와 같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옹은 친분이 있는 히구마 다게요시 히로시마대학 교수로부터 “경장 2년(정유재란)에 스파이(간첩)로 활동한 어란 할머니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한국인인 김학래(85·서울 광진구 광장동)씨는 “일년에 10번 이상 해남을 왕래하는 해남회 초대 회장인 다니구지 노보루(谷口登)에게서 어란 이야기를 들었다. 어란진에서 경찰관을 한 기무라 세이지(木村精一)의 차남인 기무라 오사무(木村修·81)에게서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 오사무는 나의 순천농업학교 동기”라고 말했다. 박옹은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도 우리 기록에는 없지만 일본 기록을 참고로 해 오늘날의 유적지가 복원됐다.”며 “어란 할머니의 얼이 깃든 곳을 성역화하면 한·일 우호 교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남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수메르, 최초의 사랑을 외치다

    사랑이 인간을 낳았다면 신화를 낳은 신화가 있다.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신화인 수메르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신화가 끊임없이 회자된 이유는 신화가 지닌 철학적 사유의 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신화가 가진 세계관과 사상 속에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있는 이야기의 ‘재미’는 몇 번을 반복하여도 퇴색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가 여전히 새로운 판본을 배출해 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와 신, 인간의 기원에 대한 신화의 상상력은 기적적이라 할 만큼 경이롭다. 특히나 문명이 존재하지 않던 인류의 원시시대라고 알려진 선사시대의 상황을 돌이켜 보면 말이다. 바로 그 시기에 수메르에서 최초의 신화가 탄생하였고, 문명이 꽃피었다. 나는 이 ‘최초’를 찾아 꽤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거듭 반복했다. 예전에 길가메시를 만났고, 그리고 이번에 수메르의 여신과 조우했다.2000년을 묻혀 있던 여신은 오랜 시간의 흐름을 딛고 다시금 부활했다. 저승의 문턱을 넘어서고도 살아 났던 것처럼. 그녀의 이름은 ‘인안나’이다. 하늘과 땅의 여왕, 전쟁, 풍요, 다산(多産), 완전하고 다양한 여성성, 여성적인 삶의 원리, 여성들의 수호천사, 품위 있고 당당한 부인, 수많은 도시와 왕들의 수호신, 금성(金星) 등으로 상징화된 여신들의 본바탕에 자리잡고 있던 진정한 여신이다. 그녀와 죽음을 불사하고 사랑을 나눴던 이의 이름은 ‘두무지’였다. 수많은 목자의 선조로서 왕의 자리에 올랐던 남신. 그들은 죽음과 부활을 넘나들며 사랑을 기록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사랑은 ‘아키티’라는 신년 축제로 자리 잡아 국가적 행사로까지 이어졌다. 그것은 수메르가 지상에서 자취를 감춘 뒤에도 1500년의 세월 동안 신명을 바꿔 명맥을 이을 정도로 열렬한 사랑이었다. 잊혀졌던 목소리를 점토판의 행간을 더듬으며 ‘최초의 사랑’을 되살려 내는 것은 분명 고된 작업이었다. 하지만 신화가 시간의 흐름을 넘어 생생한 육체를 가지기 위해서는 끝없이 이야기 되어야만 한다. 연인들의 사랑이 그들의 입술사이를 오가는 밀어를 통해 완성되듯이 수메르에서 시작된 사랑이 이 책을 통해 현실에 재생되기를 빌었다. 수메르의 열정적 연인들을 둘러싼 세계관을 통해 신화의 지적 토대에 대한 인식과, 인간 기원의 틈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인안나와 두무지의 밀월여행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수메르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로맨스의 기원을 향한 걸음을 뗄 것인가 아닌가는 독자들의 선택 영역이다. 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사랑을 읽어 주고 이야기 해주기를, 그리하여 잠들어 있던 그들의 사랑이 공백을 넘어 깨어나길 희망한다. <김산해·수메르 신화 저술가 http:////blog.naver.com/gshmyth>
  • 장승 벌타령/책읽는곰 펴냄

    장승 벌타령/책읽는곰 펴냄

    동화작가 김기정씨의 입담이 어린 독자들을 마구 꼬드기는 재기발랄한 그림책이 나왔다.‘장승 벌타령’(책읽는곰 펴냄)은 옛날 마을과 사찰, 성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이정표가 됐던 장승을 이야기 소재로 잡았다. “옛날옛적 어느 마을에,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게으름뱅이가 살았어. 이름은 가로진이인데, 아침 먹고 뒹굴, 점심 먹고 빈둥, 저녁 먹고 드렁 했지.” 시작이 이쯤되면 아이들의 호기심에 확 불이 댕겨질 만하다. 인기 그림작가 이형진씨의 먹선을 두른 채색화가 익살맞고도 멋스럽다.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게으름뱅이 주인공 총각 가로진이의 캐릭터는 판소리 ‘가루지기 타령’에서 살짝 빌려 왔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게을러터진 아들에게 나무 한 짐을 해오라고 시킨다. 게으름병을 고치지 못한 가로진이가 장만해온 땔감나무는 마을의 수호신 장승.“마을 사람 보살피고, 몹쓸 병 막아 주고, 도적놈 혼내 주고, 나그네 길 가르쳐 주는” 장승은 가루지기가 괘씸해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전국 팔도 장승들을 불러들인다. 이제 가로진이는 장승들한테 눈물 쏙 빠지게 매운 벌을 받게 생겼다. 세상의 온갖 흉측한 병은 다 받기로 됐을 때에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난다. 게으름뱅이가 우여곡절 끝에 개과천선하는 줄거리 자체는 그닥 참신할 게 없다. 하지만 아이들 눈에는 흥미포인트가 적잖다.“그게 참말이드래?”“좀만 참거래이, 내 퍼뜩 가서 콱!”“뭔 하늘 두 쪽 날 소리다냐!” 팔도 장승들이 쏟아내는 속사포 사투리 향연도 재미있다.6∼9세.9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프리미어리그] 박지성 복귀후 첫 선발 ‘펄펄’

    ‘맨 오브 더 매치’는 “아직도 더 보여줄 게 많다.”고 겸손아닌 겸손을 떨었다. 박지성(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2일 올드 트래퍼드 홈구장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1라운드 버밍엄시티전 후반 30분, 오언 하그리브스와 교체되기 위해 그라운드를 빠져나오자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부상 이후 9개월 만에 시즌 첫 선발 출전한 박지성은 홈경기가 끝날 때마다 실시하는 모바일 팬투표에서도 최우수선수(MVP)에 해당하는 맨 오브 더 매치에 뽑혔다. 2경기 출전정지를 당해 관중석에서 지켜본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리그 15위 버밍엄을 상대로 거둔 1-0 승리에 불만을 드러냈지만 박지성에겐 칭찬 일색이었다. 그는 “관중석이 장례식장 같았다.”고 투덜거린 뒤 “박지성과 네마냐 비디치가 최고의 수훈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특히 9개월 떠나 있었던 박지성이었기에 오늘 더욱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지성은 지난 시즌부터 선발 출전한 8경기 연속 팀 승리를 가져다주는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는 결승골을 넣은 카를로스 테베스(9점), 파트라스 에브라(8점)에 이어 팀내 세 번째인 평점 7을 매겼고.‘그의 에너지는 맨유가 필요했던 바로 그것”이었다고 했다.‘스카이스포츠’ 역시 ‘그가 돌아온 것을 보니 좋았다.’는 촌평과 함께 같은 평점을 매겼다. 초반 볼터치와 키핑에서 문제를 드러낸 박지성은 “경기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느끼고 있고 이를 고치려 노력하고 있다.”고 다짐했다. 특히 후반 6분 수비수를 제치며 오른쪽 골라인을 치고 들어가 올려준 크로스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머리에 맞혔지만 골키퍼 테일러가 반사적으로 뻗은 다리에 맞고 튀어나온 건 아쉬웠다. 공격포인트를 올릴 수 있었던 결정적 찬스였다. 정규시즌은 연말 박싱데이부터 시작된 험난한 일정을 뒤로 하고 2주 휴식에 들어간다. 그러나 박지성은 6일 애스턴 빌라와의 FA컵 3라운드에서 첫 골 사냥에 다시 나선다. 한편 애스턴 빌라 원정에서 8경기 연속 선발 출장한 이영표(30·토트넘)는 풀타임을 뛰었지만 팀이 1-2로 져 풀타임 활약한 최근 6경기 만에 처음 쓴맛을 봤다. 스카이스포츠는 ‘너무 쉽게 잡혔다.’는 평가와 함께 평점 ‘5’를 매겼다. 에버턴전에서 2경기 연속 선발 투입됐지만 후반 13분 교체된 이동국(29·미들즈브러)은 ‘결코 골을 넣을 것 같지 않았다.’는 혹평과 함께, 전날 첼시전에 후반 22분 조커로 투입된 설기현(29·풀럼)도 ‘영향 없었다.’는 평과 함께 각각 같은 평점을 받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민속학으로 풀어본 ‘쥐’] ‘쥐띠’의 문화적 의미

    [민속학으로 풀어본 ‘쥐’] ‘쥐띠’의 문화적 의미

    쥐(子)는 십이지의 첫자리이다. 쥐(子)는 정북(正北)과 오후 11시에서 새벽 1시, 달로는 음력 11월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 쥐띠 해는 풍요와 희망, 기회의 해이다. 쥐해에 태어난 사람은 식복(食福)과 함께 좋은 운명을 타고났다고들 한다. 쥐가 우리 생활에 끼치는 해는 크지만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본능이 있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살아남는 동물이다. 쥐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상으로 나타난다. 가야지역에서는 지붕 위의 고양이가 곡식창고로 올라오는 쥐 두 마리를 노려보는 집모양 토기가 출토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곡식창고나 뒤주의 주인은 쥐였나보다. 쥐는 문화적으로 재물·다산·풍요기원의 상징이며, 미래를 예시하는 영물이다. 쥐는 훔치는 행위가 늘 지탄의 대상이 되는 반면, 그 근면성은 칭찬을 받아 왔다. 아무리 딱딱한 물건이라도 조그마한 앞니로 구멍을 내어놓은 일에서 근면성과 인내력이 감지된다. 쥐는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 놓기 때문에 숨겨 놓은 재물을 지키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쥐띠가 밤에 태어나면 부자로 산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우리 설화에 ‘혼쥐’ 이야기가 있다. 도둑질을 생업으로 하는 사내가 낮잠을 잘 때, 코에서 팥알만 한 생쥐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이를 바느질하던 그의 처가 보았다. 그래서 이 생쥐를 다리미며, 잣대, 다림질판 등으로 길을 터 주었다. 그러자 그 생쥐는 복장(伏藏)인 황금더미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 잘 살았다. 이 이야기에서도 쥐는 도둑과 재물의 연관성을 암시하고 있다. 쥐는 생태학적 특징에서 보듯이 번식력이 왕성하다. 십이지의 자(子)는 玆(자),滋(자)와 동음으로 ‘무성하다.’에서 ‘싹이 트기 시작한다.’는 뜻으로 싹트려고 하는 ‘만물의 종자’라는 다산(多産)의 상징이 된다. 또한 상자일(上子日) 풍속이나 쥐불놀이, 쥐와 관련된 주문이나 풍속에서 이러한 특성으로 풍요기원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정월에 들어 첫째 자일(子日)을 상자일, 일명 ‘쥐날’이라고 한다. 이날 쥐를 없애기 위해 농부들은 들에 나가서 논과 밭두렁을 태우는 쥐불을 놓는다. 논밭에 낸 거름기를 빨아들여서 잡초가 잘 자란다. 이것이 겨울을 맞아 자연히 마르면 여기에 불을 놓아 해충을 제거하고 동시에 불탄 재는 거름이 되어 땅을 거름지게 한다. 또 마른 잡초들을 태워 버리듯이 쥐도 없어지라는 뜻에서 이날 불은 놓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음해의 농사가 잘된다고 믿었다. 쥐불놓기는 보름달의 달맞이 풍속과 겸해서 쥐불놀이와 함께 행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음력 11월은 자월(子月)이라 하는데, 자월의 자일(子日)이나 자시(子時)에는 무슨 일이든 도모해도 이루어지지 않으며 헛수고뿐이고 종국에는 구설, 송사, 파산에 이른다고 믿었다. 자일(子日)에 쑥뜸을 뜨면 무슨 병이라도 고친다고 한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자일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성격이 수그러진다고 한다. 쥐는 예로부터 농사의 풍흉과 인간의 화복뿐만 아니라 뱃길의 사고를 예시하거나 꿈으로 알려주는 영물로 받아 들여졌다. 쥐에게는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진이나 화산, 산불이 나기 전에 그것을 미리 알고 떼를 지어 그곳에서 도망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쥐의 예지력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쥐는 해안도서 지방에서 섬기는 수호신의 하나이다. 전남의 비금도 월포리 당과 우이도 진리, 대촌리, 경치리, 서소우이도의 당은 쥐신을 모신 대표적인 예이다. 쥐는 예로부터 농사의 풍흉과 인간의 화복과 뱃길의 사고를 예지하여 꿈으로나 행동으로 알려주는 영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파선이나 난선을 미리 쥐신이 꿈으로 알려주거나 암시해 준다고 믿었다. 선원들에게는 ‘쥐떼가 배에서 내리면 난파한다.’거나 ‘쥐가 없는 배에는 타지 않는다.’는 속신(俗信)이 있다. 따라서 쥐의 이변은 미래에 일어나게 될 특수한 사건의 상징적 예시로 보고, 아무런 변고가 없도록 제단을 설치하고 당의 주신(主神)과 더불어 제를 올리고 있다. 해안지역의 쥐신 신앙은 농작물의 풍년을 기구(祈求)하는 것보다는 뱃길을 지켜 주는 쥐의 효험을 믿었기 때문에 항해의 안전을 위해 쥐신을 모시고 있다. 속담의 소재로 사용된 쥐는 약자·왜소함·도둑·재빠름 등으로 표현되었다. 쥐와 고양이의 관계는 먹고 먹히는 천적으로 흔히 약자와 강자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약자로서 쥐는 언제나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자의 마지막 오기로서 강자에게 달려드는 역설도 있다. 쥐가 작거나 하찮음을 비유한 예가 많다. 쥐보다 더 큰 동물과 사물을 대비시켜 왜소함과 하찮음을 더욱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쥐구멍, 쥐꼬리, 쥐간에 이르면 그 왜소함의 표현은 극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우리 속담에 쥐의 생김새라든지 행동, 습관 등의 생태를 보고 만들어 낸 것도 있다. 여기서도 도적, 왜소함, 약자 등을 표현한다. 특히 재빠르고 약삭빠름에 비김이 많다. 문학 작품에서는 쥐의 모습을 도적이라는 이미지로 많이 묘사했다. 중국 고대의 시가집인 ‘시경’의 ‘석서(碩鼠)’편에는 큰 쥐가 백성에게 세금을 과중하게 거둬들이는 것을 탓하는 장면이 있다.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식량 앗아가지 말라/3년이나 널 보살폈는데도 날 보살필 생각은 없구나/이제 너를 버리고 저 평화로운 지역을 찾아가련다 여기서 큰 쥐를 폭정을 일삼는 임금이다. 임금이 백성을 못살게 굴어 견딜 수 없음을 한탄한 것이다. 정약용은 이노행(奴行)이라는 시에서 쥐를 간신과 수탈자에 비유했다. 쥐는 구멍 파서 이삭 낟알 숨겨 주고/집쥐는 집을 뒤져 모든 살림 다 훔친다/백성들은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하고/기름 마르고 피 말라 뼈마저 말랐다네 들쥐는 백성의 곡식을 수탈하는 지방관리, 집쥐는 궁궐 내에서 국고를 탕진하는 간신배이다. 특히 인의(仁義)에 의한 덕치주의를 표방하는 유교는 국왕의 교화에 의한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한다. 이 시에서는 이같은 군주의 정치가 쥐로 표상되는 간신배에 의해 피폐화됨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옛말에 ‘나라에는 도둑이 있고, 집안에는 쥐가 있다.’는 말과 통한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11)전북 남원시 뱀사골 와운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11)전북 남원시 뱀사골 와운마을

    식당가가 밀집돼 있는 반선에서 고도 약 600m의 와운까지는 약 3㎞. 평상시엔 배낭을 메고도 30분 남짓이면 충분하지만 폭설이 내린 날엔 1시간은 족히 걸어야 닿을 수 있다. 달달달, 눈길을 달리는 모터 소리가 들린다. 빨간 모자가 선명한 집배원의 오토바이다. 그가 가는 곳은 당연히 와운일 테고, 그 마을에 전해질 편지라곤 고작 청구서나 무의미한 인쇄물이 전부겠지만 편지를 전해 받는 마을 주민 모두 이 겨울 행복하길 바라본다. 와운에는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된 소나무(천년송) 한 그루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앙 받고 있다. 푸른 가지 곁에 서면 서쪽 끝으로 정령치휴게소가 아득히 보이고, 가깝게는 이 나무에 기대어 사는 와운의 집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건물은 많고 다양하지만 가구 수는 겨우 10여집. 쓸쓸한 마을엔 눈을 쓸어내는 비질 소리와 낯선 손님을 향해 서럽게 짖어대는 개들뿐이다. 와운마을에 사시는 정민석 할아버지 댁 마루 안으로 한겨울 오후 햇살이 기분 좋게 쏟아지고 있었다. 가끔씩 창밖을 바라보며 마른 기침을 뱉는 정 할아버지는 여수·순천사건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고개를 내저으셨다. “마을 전체가 그때 소개(疏開) 당했어요. 아마 이 인근에선 와운이 첫 번째일거라. 아홉사리를 넘어온 군인들이 이 마을로 들어왔거든. 총 무서운 줄 모르던 동네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 그나마 우리 가족은 일제 때 총의 위력을 보았던 아버지 덕분에 살았거든. 솜이불을 덮고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거나 나락 가마니를 쟁여서 그 뒤에 숨기도 했어요. 낮에는 군인, 밤에는 인민군 천지였지. 사상이 뭔지도 모르던 순진한 산골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군인들에 의해 몰살당한 일도 많아. 세 살 먹은 어린애부터 여든이 넘은 노인네까지 가리질 않았어.” 실제로 최근까지 뱀사골 곳곳엔 뼈가 ‘버글버글’ 했단다. 언젠가 바위 밑에서 나란히 죽어 누운 다섯 구의 시체를 발견한 적도 있다. 악몽 같은 고통은 여수·순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 작은 산골마을을 몹시도 괴롭혔다.정 할아버지는 아직도 ‘딱꿍총’을 기억한다. 여기서 ‘딱’하고 쏘면 저기로 총알이 ‘꿍’하고 날아갔다는 인민군의 무기다. 남원으로 쫓겨나간 주민들은 군인이 와운골을 수복한 후에야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공부는 고사하고 일만 하던 시절, 보리타작을 할 때면 찬물에 간장을 섞어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당시 장골의 하루 일당이 쌀 한 되였지만 그것도 형편이 좋을 때였지, 닷새 반을 일하고 겨우 밀가루 한 포대를 받아온 궁색한 살림이었다. 자유당 말기 때는 뱀사골 곳곳에 목재 사업이 번창했다. 명목은 후생사업이었지만 실상은 무법천지에 가까웠다. 벌목을 수시로 해댔으며 그 나무들은 철도 침목이나 숯 굽는 용도로 쓰였다. 한때는 60여가구가 살았고 초등학교 분교까지 들어설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4대째 와운에 살고 있지만 5남 1녀인 자녀 교육을 위해 꼬박 30년간 남원시내에서 살았다. 자녀들 모두 장성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혹여 도시에서의 오랜 세월로 돌아온 고향 살림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할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하다.“좋지!” 젊은 시절 아픔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준 곳이지만 그래도 결국 뼈를 묻을 곳, 마음이 가장 푸근한 곳은 어김없이 고향 차지가 되나 보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함양분기점에서 남원 방향으로 가다가 지리산IC로 나간다. 대구나 광주 역시 88고속도로 지리산IC로 진입하면 편하고, 부산에서는 진주∼함양∼남원방향으로 온 다음 인월에서 뱀사골로 들어선다. 와운까지 차량 통행은 가능한데 눈이 많이 내렸다면 운행이 힘들다. 버스는 남원이나 함양으로 간 다음 인월을 거쳐 뱀사골로 갈 수 있다.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11) 천안 광덕~성환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11) 천안 광덕~성환

    차령고개를 내려오자마자 만나는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는 주막촌이었다. 고개를 힘겹게 넘다 보니 술로 목을 축이거나 국밥으로 허기를 끄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터이다. 저녁 때 고개를 내려온 행인들은 하룻밤 머물다 떠났다. 주민 김재옥(79)씨는 “옛날에는 도로변에 주막이 꽉 찼다.”고 말했다. 그것이 50여년 전 일이라고 전했다. 마을에서 만난 박상선(87·여)씨는 “문기네, 용하네…. 마을 전체가 주막촌이었다.”고 회고했다. 마을 입구에는 ‘원터’라고 쓴 바위가 있어 옛날 마을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김옥균이 양자 가기 전 3년간 살던 곳 주민들은 지금도 자기네 마을을 ‘주막’이라고 불렀다. 나그네들이 북적거리며 흥정망청대던 마을은 옛날의 영화가 사라지고 누추한 모습으로 있다. 좀더 걸어서 내려오면 이 마을 안쪽에 김옥균의 흔적이 있다. 논 옆에 ‘김옥균 선생 성장지’라는 비석이 서있다.1853년 이 마을로 이사와 형조참의이던 서울의 재당숙네 양자로 가기 전 3년간 살았다고 비는 전한다. 100평 정도의 땅에 울타리를 쳐놓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옥균 유허를 둘러보고 “작은 비라도 세워줘라.”고 해 1979년 비가 세워지고 울타리가 쳐졌다고 한다. 마을 이장 김용성(55)씨는 “제사는 지내는 게 없고 해마다 풀만 깎아준다.”고 말했다. 울타리 안에는 김옥균이 살 때부터 있었는지 늙은 감나무가 하나 있다. 금세라도 떨어질 듯한 수많은 감이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뽐냈다. ●400∼500년 전통의 왕버들·장승 마을 옛길은 곡교천을 따라 달린다. 조치원과 천안으로 갈라지는 구정마을 삼거리에서 국도 1호선으로 바꿔 천안방면으로 뻗는다. 그러다 잠시 국도를 벗어나 연기군 소정면으로 빠져 들어간다. 소정리역 못미처 곡교천 옆에 왕버들군락지가 있다. 키가 20∼30m쯤 되는 왕버들 수십그루가 자라고 있다. 조선 초기에 한 선비가 낙향을 해 집성촌을 조성하면서 “마을의 꼬리가 짧다.”는 풍수에 따라 냇가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1만 5000평에 달했으나 일제가 토지조사를 실시해 지금은 3000평 정도만 남았다. 주민 이병두(51)씨는 “400∼500년 된 왕버들은 7∼8년 전 얼어 죽었다.”며 “봄이면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많이 몰린다.”고 전했다. 소정역 옆으로 난 옛길을 따라 2∼3㎞쯤 가면 대곡4리 자연마을인 ‘한자골’이 나온다. 일제 때 지어진 소정역은 2년 전 화재로 전소된 뒤 다시 지어져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한자골 마을 입구에는 장승 5∼6개가 서 있다. 윤년이 오면 주민들이 정월 대보름 전날 장승을 새로 깎아 박고 제를 지낸다. 주민들은 장승이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믿고 있다. 주민 류재두(72)씨는 “500년 전 마을이 조성될 때부터 이어지는 전통”이라며 “묵은 장승과 새 장승을 동아줄로 묶어 놓고 제를 지낸다.”고 말했다. ●애틋한 사랑 전하는 천안삼거리 옛길은 곧바로 국도 1호선과 만나거나 결별하면서 천안시에 진입한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동조한 고려 윤사덕 장군이 왜구와 싸운 도라티(고개)를 거쳐 천안삼거리로 접어든다. 천안삼거리는 충청과 호남, 영남이 만나는 삼남의 요로다. 어사 박현수와 기생 능소의 애틋한 사랑이 전해지는 곳이다. 이 전설은 옛날 홀아비 한 사람이 ‘능소’라는 어린 딸과 어렵게 살다 변방의 수자리로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변방으로 떠나던 그는 천안삼거리에서 버드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고 “이 지팡이에 잎이 필 때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며 딸을 주막에 맡겼다. 능소는 이곳에서 기생이 돼 아비를 기다리다 과거 보러 가던 전라도 선비 박현수와 인연을 맺는다. 박현수는 장원급제 후 어사가 돼 내려오다 능소와 재회한다. 이때 ‘천안삼거리 흥∼ 능소야 버들은 흥∼’하는 흥타령을 불렀다고 한다. 이 지팡이가 자라고 퍼져 이곳에 버드나무가 많다고 전해진다. 천안삼거리에서 가지를 휘휘 늘어뜨리고 있는 수양버드나무는 이래서 능소버들이나 능수버들이라고 따로 부르고 있다. 이도령이 한양을 오간 길이고 스토리도 ‘춘향전’과 비슷하다. 옛길을 따라 이런 이야기가 유행했던 모양이다. 삼거리공원은 삼거리에서 시내로 빠지지 말고 우회전, 경부고속도로 목천IC 방면으로 400m쯤 가면 나온다. ●삼거리공원에 ‘하숙생´ 노래비 공원은 넓고 대형 연못도 있다.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 노래비가 연못 주변에 서있다.‘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천안 입장 출신인 고 김석야씨가 노랫말을 지었다고 해 2001년 7월 비석이 세워졌다.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1731∼83)의 시비(詩碑)도 있다. 그는 천안 수신면 장산리가 고향이다.‘다툼이 없으니 온갖 비방 면하겠소/재주스럽지 못하니 헛명예 있을소냐’ 홍대용은 자명종을 만들고 ‘지구는 돈다.’고 생각한 북학파의 선구자였다. 이 시비는 1983년 4월 건립됐다. 연못 옆에는 ‘영남루’도 있다. 영호남의 관문인 화축관(華祝館)의 문이었다. 화축관은 왕들이 온양온천으로 행차할 때 묵어가던 숙소다.1601년 선조 때 세워졌고 규모가 20여칸에 달했다. 일제 때 경찰서 숙소, 헌병대 사무실에서 해방 후에 학교 관사로 사용되다 헐리고 이 문만 남아 1959년 이곳에 옮겨졌다. 문화재자료 12호. 공원을 산책하던 김청동(67·삼룡동)씨는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옛날에는 이 주변이 모두 주막촌이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도로변의 능수버들만 천안삼거리의 내력을 일러준다. 옛길은 다시 시내 쪽으로 나와 천안시청이 있던 구도심을 지난다. 시청이 신도시로 옮기면서 구도심은 최근 누리던 영화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었다. 고려 왕건의 군사훈련장이었던 천안공대 뒤편 부대동을 지나 시름새로 접어든다. 시름새는 왕건이 후백제를 치러 가다 성거산에 오색 구름이 뜬 것을 보고 “산에 신이 있다.”고 여겨 제사를 지내줬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지금은 읍내 규모의 시가지 모습이다. ●숭어와 배가 드나들던 안성천 5분쯤 더 가면 성환읍 대흥리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 사적비가 나온다. 국보 7호다. 고려 현종이 1021년 아버지 안종의 뜻을 받들어 280칸짜리 사찰을 짓고 이 비석을 세웠다. 고려 10대 사찰의 하나였지만 ‘망이·망소이난’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비만 남았다. 비문은 ‘해동공자’로 불리고 있는 고려 최충이 지었다. 고려 때 이곳은 갈대밭이 우거져 강도가 많았다고 한다. 현종이 사찰을 세운 것은 나그네를 보호하려는 뜻도 있다. 현재는 갈대밭은 거의 없고 국도변 좌우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옛길은 이어 안성천에 이른다. 그 전에 길은 국도에서 약간 동쪽으로 갈라진다. 옛길이 있던 곳은 다리는커녕 징검다리도 없다. 안성천에 붙어 있는 성환읍 안궁5리 송동수(51)씨는 “아산만방조제가 생기기 전 안성천에서는 숭어와 망둥이 등 바닷고기도 많이 잡혔다.”며 “갯벌이 뒤덮여 있었고 배도 자주 들락거렸다.”고 회고했다. 안성천교를 건너면 경기 평택·안성 땅이다. 두 지역의 경계 부근이다. 글 사진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한·중·일 격전지 성환 충남 천안시 ‘성환’은 일본이나 일본인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간다. 일본이 한반도에서 벌인 전쟁의 승패에 이 일대 전투가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멀게는 백제시대 때다. 백제가 660년 멸망한 뒤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벌일 때 일본이 돕는다. 일본은 663년 이곳에서 당나라 군대와 맞붙었다.3만명의 일본군은 아산만으로 전함들을 상륙시켰다가 갯벌에 묶였다. 화공을 퍼부은 당나라에 대패했다.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아산만과 이어졌던 안성천교 주변을 지금도 지역 주민들이 ‘몰왜보(沒倭洑)’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성환읍 안궁리와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 일대이다. 천안 직산위례문화연구소 백승명 소장은 “이 전투는 신라가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이 부근 직산에서 조선을 지원하러온 명나라군과 싸운다.1597년의 일로 역시 일본이 대패한다. 왜장 구로다가 이끌던 이 전투에서 진 일본은 부산까지 밀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철군한다. 사가들은 ‘직산전투’를 행주대첩·평양전투와 함께 임진왜란 육전 3대첩으로 꼽는다. 일부에서는 직산전투 대신에 ‘진주대첩’을 넣기도 한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때 이곳에서 다시 맞붙는다. 청나라군과 첫 전투다. 일본은 이 전투에서 대승해 청나라군을 평양 위로 밀어내고 기선을 제압했다.‘안성천’이란 이름도 이 전투에서 지어졌다고 백 소장은 말한다. 이처럼 성환은 한국, 중국, 일본이 한반도에서 벌인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한 중요한 격전지로 평가되고 있다. 백 소장은 “일본은 3차례 전투 가운데 최후에 자존심을 되찾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면서 “이런 자긍심 때문에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됐을 때 성환역의 역장을 다른 역장보다 한 계급 높은 간부를 앉혀 성환에 특별 대우를 했다.”고 말했다. 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NHK PD “태사기, 日에서 거센 열풍 일으킬것”

    NHK PD “태사기, 日에서 거센 열풍 일으킬것”

    ‘태사기’가 일본에서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욘사마’ 배용준의 ‘태왕사신기’(이하 ‘태사기’)의 일본 스크린 상영예매가 지난 23일 일제히 시작된 가운데 2년간 태사기의 독점방영권을 취득한 NHK의 한 관계자가 ‘태사기가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분석해 눈길을 끌고있다. NHK 편성국의 오가와 쥰코(小川純子)PD는 27일 닛케이계열의 온라인뉴스(trendy.nikkeibp.co.jp)에 일본 방영을 앞둔 태사기가 3가지 이유로 거센 열풍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가와 PD는 첫번째 이유로 영화의 스케일과 특수효과를 꼽았다. 오가와PD는 “태사기는 할리우드 영화 ‘반지의 제왕’ 처럼 스케일이 크다. 할리우드 영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고 밝혔다. 2번째 이유로는 “사극과 환타지의 매력이 가미된 태사기의 이야기는 ‘왕위 싸움’이 주축이 되고 있다.”며 “이 점은 일본인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며 극 중 담덕(배용준 역)이 수호신을 찾아 왕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일본의 ‘난소사토미핫켄덴’(南総里見八犬伝·일본의 대표고전작품)을 기억나게 해 친근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3번째 이유로 오가와PD는 “태사기에는 한국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삼각관계의 애증극도 건재해 그야말로 환상적인 신장르의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품위있고 상냥한 매력의 배용준이 태사기를 통해 지혜롭고 맹렬한 캐릭터로도 분해 남성 시청자로부터의 큰 지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여배우들 중에서는 ‘수지니’ 역의 신인 이지아가 문소리에 지지않는 연기력으로 젊은 남성과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가와 PD는 “(태사기)는 국내(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를 무작정 싫어하는 층도 끌어당길 만큼 호소력짙은 드라마”라며 “주인공들이 환생하기 전의 모습을 그린 제1화의 시청률이 앞으로의 태사기 명암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TSG 프로덕션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경북 상주 남장 곶감마을

    경북 상주 남장 곶감마을

    익어가는 가을을 맛으로 느끼기에 감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샛노랗게 물들 때면 시골마을 집집마다 감을 수확해 곶감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떫은 감을 따고 깎아 가을바람에 말리는 등 열 번의 손길을 거치면, 시린 겨울 우는 아이의 울음을 뚝 그치게 할 맛깔스러운 곶감으로 탄생한다. 장대 끝에 걸린 감을 바라보는 농민의 얼굴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다듬는 동네 아낙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환하게 가을 햇살이 맺혀졌다. 국내 최고(最古), 최대의 곶감마을 경북 상주의 남장마을을 돌아 보았다. # 전래동화 ‘호랑이와 곶감´ 주무대 상주는 곶감과 누에고치, 그리고 쌀 등의 특산물 덕에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일컬어졌다. 특히 곶감의 맛은 아주 유명해서, 달디 단 곶감에 ‘감동먹은’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전래동화 ‘호랑이와 곶감’의 주무대가 되기도 했다. 굳이 일러 주지 않아도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남장마을은 주황색 옷을 입은 강렬한 자태로 이방인을 맞았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농가 감타래에 매달린 수만개의 감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당연지사.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탄성 또한 늘어갔다. 맑은 공기 속에서 가을 햇볕과 차단된 채 말랑말랑하게 익어가는 수십만개의 곶감이 전율스럽기까지 하다. 감은 사실 사과나 복숭아처럼 쉽게 생산되는 과일이 아니다.10년된 나무에서도 몇 개 안 열리는 경우가 흔하다. 남장마을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처럼 경제성이 떨어지는 작물을 심게 되었을까. 김창근(42) 청년회장은 “60∼70년 된 나무가 대부분이니, 아버지의 아버지대에서 감나무를 심었던 거지요. 주변이 온통 야산인 데다, 예전부터 풍양 조씨 땅과 절집 땅을 빼면 농작물을 키울 변변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감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생각돼요.”라고 설명했다.30년 전쯤 남장마을 곶감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면서 이 마을 58가구 중 45가구에서 곶감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100동(1동은 1만개) 이상 생산하는 농가도 5∼6가구에 이른다. 여느 농촌의 경우 60대가 ‘청년’ 소리를 들을 만큼 고령화가 문제지만 이곳만은 예외다. 남장마을 2구에만 40대 이하가 30명이고, 귀농청년도 서너명 된다. # 절집 뒷산에서도 곶감은 익어가고 현재 마을 대부분의 나무에서 감이 수확된 상태. 하지만 ‘까치밥’만은 넉넉하게 남겨 두었다. 곶감 만드는 작업은 10월 중순∼11월 하순까지 이어진다. 떫은 맛이 있을 때 수확을 해서 두 달 정도 건조를 하면 곶감이 된다. 요즘엔 반건시(곶감이 되기 전 말랑말랑하게 만든 것)를 많이 찾아 25일 정도 건조한 다음, 출하하는 경우도 많다. 남장마을 대부분의 농가에서 곶감을 파는데, 올해 말린 반건시 외에는 작년 것이다. 올해 말린 곶감은 대부분 성탄절 즈음에 출하된다. 수십만개의 곶감이 익어가는 대규모 건조장을 둘러본 다음, 붉게 타들어 가는 감나무 사이를 산책하는 것도 별미. 남장마을 초입의 자전거박물관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봐도 좋겠다. 마을 위편으로 오르면 노악산(725m)의 품에 안겨 있는 상주 최고(最古)의 고찰, 남장사(南長寺)와 만난다. 신라 흥덕왕 7년(832)에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 한국 최초의 범패(불교음악) 보급지이며,‘보광전 목각탱’‘철불좌상’ 등 불가의 보물들이 보존된 곳이다. 남장사 진입로엔 지금 늦가을 정취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단풍과 낙엽에 취해 걷다 보면 이내 용머리 기둥, 까치발 다리 모습의 일주문에 이른다. 남장마을 수호신으로 떠받들여지는 석장승(민속자료 제33호)을 만나는 것도 이 부근. 키 186㎝로 기골이 장대한 데다,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은 심술궂게 치켜 올라가 있고, 입 양쪽으로 송곳니가 삐져 나와 있어 여간 험악한 몰골이 아니다. 애써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가만 들여다 보면 친근감이 들고 살포시 웃음도 배어 나온다. 상주시청 문화관광과 (054)530-6062, 산림과 곶감담당 530-6325, 상주곶감발전연합회 536-0907. # 하늘이 스스로 내려온 경천대 상주의 또다른 자랑거리 중 하나가 경천대(警天臺)다. 깎아지른 절벽과 우거진 송림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에 하늘도 감탄했다는 곳이다. 소박, 담백하면서도 유장한 아름다움이 그려진 ‘동양화’와 마주하면,‘하늘이 스스로 내려왔다’해서 붙여진 자천대 (自天臺)라는 또 다른 이름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경천대로 오르는 길은 어린이 차지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기구들은 거의 다 갖추고 있다. 주말이면 상주는 물론, 경북 인근지역에서 찾아온 가족 나들이객들로 만원을 이룬다.3단계 낙차의 인공폭포도 인기 만점. 경천대 주변과 푸른 비단처럼 흘러가는 낙동강을 보려면 전망대까지는 올라야 한다. 쭉쭉 뻗은 소나무숲길을 따라 아이들과 손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근의 무우정에서 바라보는 경천대도 색다른 맛을 자아낸다. 경천대관리사무소 (054)536-7040. #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상주 나들목→25번 국도 보은 방면→상주시내→남장마을. # 맛집 상주시청 맞은편, 상주여자중학교 후문 쪽 ‘참 별난 버섯집´은 이름처럼 별난 숫총각버섯탕으로 유명하다. 한우 고기로 낸 육수가 시원하다. 황금버섯 등 특이한 버섯도 맛볼 수 있다.5000원.(054)536-7745.2일,7일 장이 서는 중앙시장 중간쯤의 ‘햇살해장국’에서는 해장국과 비빔밥을 2000원, 칼국수를 2500원에 팔고 있다. 장이 서지 않는 날도 영업한다.536-6861. # 인근 관광명소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성주봉자연휴양림(seongjubong.sangju.go.kr)은 상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삼림욕장.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다.541-6512. 남장마을 초입의 상주자전거박물관은 목마에 바퀴를 단 독일 19세기 초기 자전거 ‘드라이지네´부터 첨단 자동변속 자전거까지 자전거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자전거 모양의 건물 등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자녀와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534-4973. 상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 서울 봉은사의 헤라클레스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 서울 봉은사의 헤라클레스

    그리스·로마 신화에 상상력을 가미하는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 이윤기는 런던에 있는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을 찾았을 때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록 몇권을 사가지고 나와 입구의 계단에 앉아 펼쳐보다가 ‘바즈라파니(Vajrapani)’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에 눈길이 갔습니다. 곧 금강역사인데, 뜻밖에도 ‘헤라클레스 차림으로 제우스의 벼락을 든 부처님의 수행원’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지요. 그는 다시 박물관으로 뛰어들어가 부처님 일행을 돋을새김한 이 간다라 조각을 찾았습니다.‘수행원’은 사자 가죽을 머리에 쓰고 왼손에는 제석천이 아수라를 쳐부술 때 썼다는 금강저, 오른손에는 굵직한 몽둥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지요. 올리브 나무를 뿌리째 뽑아 만든 몽둥이를 든 헤라클레스가 성미가 고약한 네메아 골짜기의 사자를 30일 밤낮으로 목졸라 죽인 뒤 그 가죽을 쓰고 다녔다는 그리스 신화 그대로였습니다. 최근 발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간다라의 불교 미술이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지역인 간다라는 서기전 327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 슬그머니 부처님의 호위무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던 것도 대대적인 문화융합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헤라클레스의 사자는 그리스 시대에 이미 무사의 어깨를 보호하는 갑옷의 어깨(肩甲·견갑) 장식으로 정착된 듯합니다.‘영웅 따라 하기’를 좋아했던 로마 황제들은 사자가 입을 벌린 채 마치 어깨를 무는 듯한 견갑 장식을 즐긴 것으로 알려지지요. 간다라에서 불교에 편입된 헤라클레스는 흔히 서역으로 부르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해졌습니다. 미술사학자 권영필은 중국에서 헤라클레스를 상징하는 사자가 어깨 장식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합니다.657년 시안(西安)의 무덤에서 나온 무인상이 그렇습니다. 베이징 교외의 명 13릉에 도열한 무인석의 어깨 장식도 로마 황제의 그것과 매우 닮았지요. 간다라에서 금강역사가 된 헤라클레스는 동쪽으로 전해지면서 다시 사천왕으로 변신합니다. 신라 문무왕이 682년 세운 경주 감은사 서탑의 사리함에 새겨진 사천왕상에 헤라클레스의 사자가 나타난 것이지요. 금강역사나 사천왕 모두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니 역할은 달라지지 않은 셈입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의 목조 사천왕상은 헤라클레스로 하여금 불법을 수호케 하는 전통이 조선시대에도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사천왕은 일주문에 해당하는 진여문(眞如門)에 버티고 있습니다. 조선 영조 22년(1746년) 당시 능창군 이숙 부부의 시주로 조성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발원문이 2002년 발견되었지요. 사자 모양의 어깨 장식을 하고 있는 사천왕은 정면에서 보아 진여문의 왼쪽 바깥쪽에 서 계시는 서방광목천(추정)입니다. 어깨뿐 아니라 배에도 사자 머리가 장식되었는데, 무섭기보다는 어수룩해 보이는 광목천의 표정에 걸맞게 귀여운 아기 사자의 모습입니다. 사자 머리 아래에는 한 마리 분의 사자 가죽이 고리로 매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가죽을 벗겼다는 네메아의 사자일 것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유서깊은 절이 지금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호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신화보다 더 신화적이지 않습니까. dcsuh@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경기 하남시 검단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기 하남시 검단산

    경기도 하남시 팔당대교를 지나 양수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강 건너편으로 우람하게 따라오는 산, 백제의 승려 검단선사가 은거하며 도를 깨우쳤다는 검단산(黔丹山·657m)이다. 검단산은 서쪽으로 하남 시가지와 서울, 북쪽으로 한강과 예봉산, 동쪽으로 팔당호와 용문산, 남쪽으로 용마산으로 연결된다.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 검단산에선 특히 동쪽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극적으로 해후하는 장면과 그 너머 용문산 능선이 장관을 이룬다. 서쪽으로는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을 따라 서울의 모습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그 너머 북한산과 도봉산의 흐름이 장쾌하다. ●가장 많이 찾는 코스 4시간 소요 산행 들머리는 크게 세 군데로 나뉜다. 하남시가지 창우동과 여기서 버스로 세 정거장 떨어진 하산곡동 산곡초교 앞에서 산길이 시작되고, 한강을 끼고 있는 아래배알미동에도 산길이 나 있다. 창우동 들머리는 다시 두 군데로 나뉘는데, 애니메이션고교 남동쪽 등산 장비점이 들어선 골목으로 들어가 호국사를 경유하는 코스와 애니메이션고교 동쪽 베트남 참전 기념탑을 들머리로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있다. 참전 기념탑에서 출발해 유길준 묘소∼전망대∼정상∼호국사를 들러 장비점 거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는 가장 많은 하남 사람들이 즐겨 찾는 코스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정상에서 호국사 대신 벽곰약수를 경유해 산곡초등학교로 내려오는 코스도 걸리는 시간이 비슷하다. 검단산 정상에서 아래배알미동으로 내려오는 길은 2.13㎞,1시간 정도 걸린다. 최근 등산객이 점점 늘고 있는 종주코스는 검단산에 오른 후, 능선을 타고 고추봉을 넘어 전망 좋은 용마산을 거쳐 광주시 삼성리 각화사로 내려가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창우동∼검단산∼용마산∼각화사 코스는 약 11㎞로 6∼7시간 정도 소요된다. 창우동 애니메이션고교를 왼쪽으로 끼고 골목으로 200m 정도 들어가면 베트남 참전 기념탑과 등산로 안내판이 나온다. 검단산이 올려다보이는 널찍한 등산로 입구에서 10분 지나면 밤나무가 많이 보이고, 이어 잣나무 터널을 지나게 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20분쯤 오르면 구한말 대표적인 개화사상가 구당 유길준(1856∼1914년) 묘소를 만난다. 묘소에서 15분 오르면 능선 사거리 안부에 도착한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약 2㎞ 거리, 중간에 전망바위를 지나게 된다. 전망바위까지 50분 정도 걸리는데, 경사가 몹시 가파르다. 전망바위는 검단산을 통틀어 가장 전망 좋은 자리다. 우선 북쪽으로 강 건너 솟아난 예봉산이 손에 잡힐 듯하고, 북서쪽으로 미사리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한강의 유장한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넓은 평야인 서울의 모습이 발아래 펼쳐지고, 서울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선 북한산과 도봉산의 능선도 인상적이다. 동쪽 운길산 옆으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아름답다. ●한강·북한산·도봉산 한눈에 전망바위에서 10분만 더 오르면 억새밭이 나오고 검단산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다시 30분 비지땀을 흘리면 정상 도착.100여평의 널찍한 공터에 헬기장이 놓여 있다. 정상의 조망도 나쁘진 않지만 잡목들이 시야를 가려 전망바위만은 못하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서면 아래배알미동으로 하산하는 길이고, 남쪽으로 가면 안부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호국사를 거쳐 창우동 애니메이션고교 앞으로 원점회귀할 수 있고, 산곡초교로 하산하려면 능선을 계속 타야 한다. 완만한 능선을 20분 밟으면 삼거리, 오른쪽으로 내려서야 벽곰약수터다. 여기서 계속 능선을 이어가면 고추봉, 용마산으로 나아가게 된다. 벽곰약수터부터 본격적인 하산로인데,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차고 맑은 물이 흘러 땀을 식히기 좋은 계곡을 따라 40분 내려서면 하산곡동 산곡초교 앞이다. 글 정수정 사진 진우석(월간 MOUNTAIN 기자)
  • [프로축구] 차붐 ‘반지의 제왕 구하기’

    ‘반지의 제왕 기살리기(?)’ 프로축구 K-리그 2군 경기 도중 극성 서포터의 야유에 격분, 관중석에 뛰어들어 벌금 1000만원의 추가징계를 받은 안정환(31·수원)이 1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광주와의 21라운드 경기에 나설 전망이다. 구단이나 차범근 감독이 관중석 진입의 빌미를 제공한 10일 FC서울과의 2군리그 경기에 안정환을 내보낸 것도 그의 컨디션을 살펴보려는 테스트 성격이 짙었다. 안정환은 이날 모처럼 골맛을 보았고 1군 주축 선수들이 투입된 11일 아주대와의 연습경기에서도 원활한 몸놀림을 보여 컨디션이 올라왔음을 증명해 보였다.12일 상벌위에 출석한 뒤에도 개인훈련을 거르지 않았고 13일 팀 훈련에도 합류했다. 더욱이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안정환이 이를 이겨내는 길은 1군리그 경기에 복귀, 제 기량을 펼치는 것뿐이라는 구단의 배려도 작용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월드컵 이후 반년 동안 소속팀 없이 지내다 7년 만에 K-리그에 돌아왔지만 정규리그에서 골맛을 보지 못했다. 지난달 11일 부산 원정을 제외하고는 출전조차 못해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었다. 여기에 올림픽대표팀에 차출됐던 신영록 하태균 백지훈 등 젊은 선수들이 돌아오지만 누적된 피로를 풀 시간이 필요하고 미드필더 이관우마저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아 그의 1군 복귀전을 앞당기고 있다. 시리아와의 올림픽 최종예선 결승골 주인공인 김승용(광주)이 군인정신으로 수원전에 나설 경우 둘의 대결 역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한편 서울 서포터스 ‘수호신’은 “비방성 야유를 보내 퇴장, 징계로 이어진 데 유감을 표하며 팬들에게 가슴 깊이 사과한다.”며 “안정환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며 화해의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美버라이어티 “태왕사신기, 멋지게 TV 데뷔”

    美버라이어티 “태왕사신기, 멋지게 TV 데뷔”

    유명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가 MBC ‘태왕사신기’(감독 김종학·극본 송지나)의 순조로운 출발에 주목했다. 버라이어티 아시아판은 12일 ‘수호신이 TV데뷔를 멋지게 장식했다’(Guardian Gods rule in Korean TV debut)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의 ‘태왕사신기’ 첫회 반응과 출연배우등에 관해 상세히 소개했다. 버라이어티는 태왕사신기의 영문 타이틀을 ‘The Four Guardian Gods of the King’이라고 말하며 “태왕사신기가 20% 이상의 첫회 시청률을 기록하는 ‘행운의 스타트’를 끊었다.”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 “태왕사신기는 한국 TV드라마 역사상 가장 많은 430억원의 제작비가 투자됐다.” 며 “배용준 이외에도 영화 ‘오아시스’의 문소리와 최민수, 박상원, 이지아등이 출연한다.”고 덧붙였다. 또 “정교한 CG기술을 갖춘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영화 ‘반지의 제왕’과 ‘디워’를 비교하게 만든다.” 며 “70개국에 선판매돼 오는 10월 일본 NHK를 통해서도 방영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버라이어티는 고조선 개국과 광개토대왕의 활약 시기를 소개하며 “이 부분에 대해 중국 학자들이 (고구려역사가) 중국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주장을 제기해 최근 몇십년동안 논쟁거리가 되어왔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버라이어티는 TNS미디어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태왕사신기는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SBS ‘왕과나’(시청률 21%)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며 “이는 시청자들의 높은 기대를 반영한 것이며 앞으로도 좋은 반응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관련기사] 中언론“태왕사신기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관련기사] 日팬들“태왕사신기 하루빨리 보고싶다” ☞[관련기사] 中언론 “배용준이 간달프가 되어 돌아온다” 사진=MBC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프로야구] 박명환 “PS진출 맡겨”

    [프로야구] 박명환 “PS진출 맡겨”

    ‘LG,4강 사활 걸린 잠실 5연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삐걱하면 순위 싸움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남은 경기는 팀당 14∼20경기. 더욱이 2위 두산과 5위 LG의 승차가 4경기에 불과해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4위 한화와 LG의 승차는 2.5경기여서 이번 주에 4강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이럴 때 에이스의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 특히 16경기를 남긴 LG는 이번 주에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다. LG는 4일 수원에서 현대전을 마친 뒤 잠실로 옮겨 1위 SK와 주중 3연전, 주말에는 3위 삼성과 2연전 등 5연전을 갖는다. 현대를 빼고는 모두 올시즌 밀렸기 때문에 에이스 박명환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박명환은 주중 SK전에 선발 등판,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각오다. 박명환이 무너진다면 LG의 플레이오프 진출 꿈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10승을 따낸 박명환은 시즌 중반까지 팀의 연패를 끊는 수호신 역할을 했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어 팀의 기대가 크다. 20경기 남은 한화는 LG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에이스 류현진이 최근 5경기에서 40이닝 동안 세 차례 완투하며 3승을 챙겼고 방어율 1.13을 작성,‘괴물’다운 모습을 되찾았기 때문이다.3위 삼성에 0.5경기차,2위 두산에 1.5경기차로 뒤진 한화는 주중에 꼴찌 KIA를 제물로 오히려 상위권 도약을 노릴 태세다. 류현진이 나와 확실하게 승수를 쌓으며 팀에 기를 불어넣어줄 것으로 김인식 감독은 굳게 믿고 있다. 류현진은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으로 던지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다만 순위 경쟁에서 탈락한 KIA가 ‘무심타법’으로 한화의 덜미를 잡을 가능성이 있어 방심은 금물이다. 한화가 올시즌 8승5패로 앞서 있다. 한편 3위 삼성은 4일 한화와 첫 경기를 가진 뒤 현대·LG와 2연전을 치른다. 두산에 1경기차, 한화에 0.5경기차로 오히려 플레이오프 직행도 바라볼 수 있어 긴박한 한 주가 될 전망이다.15경기 남은 두산은 이번 주 3경기밖에 없어 추격전을 펼치는 팀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5) 광주~장성 길재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5) 광주~장성 길재

    말(馬)이 요즘의 고속철도 역할을 하던 때, 광주에서 한양까지 대략 720리길이었다. 광주에서 긴급한 문서를 보내려면 잘뛰는 놈을 골라 역에서 갈아타고 하루 180리(72㎞)씩 달려 4일만에 한양땅에 도착했다. 조선시대의 고려 역사서인 ‘고려사’에는 오늘날 비상 사이렌을 단 차량처럼 비상문서용 말은 방울 3개를 달고 요란을 떨며 길을 재촉했다고 적고 있다. 낮이 긴 2∼7월에는 6개역(驛)을, 그렇지 않은 8∼1월엔 5개역을 하루만에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하급 관리나 봇짐 장수, 민초들은 짚신을 허리에 꿰차고 산길과 지름길을 찾아 허기진 채 한양길에 올랐다. 고갯마루, 나루터마다 이들을 노린 주막(酒幕)거리와 역촌(驛村)이 생겼고 자연스레 물품과 사람이 모이면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옥동마을은 동학군-관군 격전지 광주 광산구 평동은 나주에서 광주로 들어오는 초입이다. 여기서 장성을 거쳐 한양에 오르는 길은 두갈래였다. 복룡산 서쪽 길은 험하고 인적이 뜸해 이용자가 적었다. 대신 동쪽 길이 애용됐다. 대개 옥동마을과 황룡강 둑길, 송촌리 원등을 지나 나룻배를 타고 건너 선암역촌으로 들어섰다. 평동사무소 삼거리를 못미친 오른쪽 길옆 논가에는 옥동이란 돌 표지석이 있다. 백제 때 복룡현의 ‘치소(감영)’가 있던 자리다. 이곳은 본래 나주땅으로 나주와 광주, 장성의 요충지였다. 때문에 후백제군과 고려군, 동학군과 관군의 격전지였다. 복룡산 꼭대기에는 지금도 봉화터와 성터가 있다. 선암마을은 선암사가 있어 탑골이다. 마을 안쪽인 정찬연(74·광산구 선암동)씨의 집 대문 옆에 서 있는 3층 석탑이 옛 흔적을 살려낸다. 정씨는 “본래 5층 석탑인데 광주공원으로 옮겨진 뒤 마을에 나쁜 일이 많이 생기자 주민들이 다시 탑을 찾아오면서 3층으로 줄었다.”고 증언했다. 선암역은 장성∼광주∼나주∼영광을 잇는 역할을 했다. 인근 소촌동에는 광산구 부자이던 천석꾼 박용철(1904∼1938) 시인의 생가가 잘 보존돼 있다. 절골마을은 연안 차씨의 집성촌이다. 인근에 있는 연화약수비(蓮花藥水碑)가 눈길을 끈다. 표지석 뒷면에 ‘만수원천 감약수(萬壽源泉 甘藥水·일만살까지 살게 하는 감로약수)’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 마을 차판오(90·광산구 운수동)옹은 “한양 가는 마을 앞길을 ‘무내미재’라 부른다. 삼국시대부터 이 길이 있었다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들었다.”고 또렷하게 기억했다. 무내미재는 물도 넘어갈 정도로 넘기 쉬운 고개라는 뜻이다. 이 고개는 경운기 한 대가 너끈히 지나갈 만하고 200m쯤 황톳길로 이어져 있다. ●주막집 딸 길손들 유혹하다 장군의 칼에 죽어 이 고개의 오른쪽 한길 낭떠러지 아래로는 다랑치 논이고 왼편으로는 산비탈이다. 막힌 산비탈 길을 돌아서면 하남역이 나온다. 마을 앞쪽 논 가운데에 시멘트 벽이 둘러친 마을 공동우물이 방치돼 있다. 이 샘이 ‘한우물’이다. 이후 ‘하나몰’이 되었고 다시 하남으로 바뀌었다. 광산구 송정리 이름도 ‘솥머리’에서 ‘솔머리’가 되었고 솔을 소나무 송(松)자로 바꿔 송정리가 됐다. 하남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 전남 장성군 남면 행정리 승가마을이다. 동네 동쪽 1㎞쯤에 고속도로가 나면서 한적한 마을이 됐지만 한 때 하남과 장성읍, 진원 등으로 통하던 길목에 신거무란 큰 장터가 있었다. ‘장성읍지’에는 ‘신거무 전설’이 전해진다.‘노 부부가 100일 치성(致誠)으로 낳은 아들이 거미같이 생겨 신거무라 불렸고 커서 현감까지 죽이는 등 갖은 행패를 부리다 죽었다. 이후 장날이면 맨 늦게 돌아가는 장꾼이 죽는 일이 이어졌다.’ 그래서 이 고장에서는 ‘신거무장 파하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장이 섰다 금세 파한다는 뜻이고 일이 흐지부지 끝나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또 후백제 견훤의 장남인 신검과도 연관된다. 지금도 승가 들판이 신거무들 또는 신검들로 입에 오르내린다. 마을 앞에 놓인 승가교 양쪽에는 신거무 다리의 돌머리가 세워져 있다. 높이는 1m80㎝쯤으로 길게 ‘기역자’로 홈이 난 화강암이다. 주민 고광석(54)씨가 10여 년 전 하천공사를 하다 2개를 발견해 다리 앞에 마을 수호신으로 세웠다. 장성읍내 바로 못미쳐 못재(마령고개)가 나온다. 맛재라고도 하는 데 주요 고개란 뜻이다. 옛날 이 고개 주막에서 어떤 효자가 호랑이를 길렀다해서 목호치(牧虎峙)라고도 불린다. 이어 호남고속도로 옆에 장성댐이 위치한다. 옛날 댐 밑에 청암역(단암역)이 있었다. 향토 역사서인 ‘호남역지’에는 청암역은 11개 역에 역리(驛吏) 등 50여명을 거느렸다고 전한다. 원래 청암역은 나주에 있었고 당시 장성역은 단암역으로 불렸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 광주세가 나주를 누르면서 나주 청암역 찰방(察訪)이 장성 단암역으로 옮겨갔다. 이후 장성 청암역으로 불린다. 전라남·북도의 경계인 입암산 아래 왼쪽으로 보이는 게 갈재다. 한자로 갈대노(蘆)자를 써 노령고개로 불린다. 장성댐 밑 청암역에서 이 고개를 넘으려면 고개밑 원덕리 미륵원에서 쉬거나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 넘어야 했다. 고개는 산적들 소굴이었다.1520년 중종 때 군사까지 파견될 정도였다. 이 미륵원 인근 500m쯤에 주막이 7개나 된 주막촌 ‘목란’이 있었다. 장사꾼이나 과거 지망생들이 목란에서 투전판이나 술 따르는 여인의 유혹에 걸려 인생을 망친 일이 많았다는 전설이다. ●장성 현감 셋 파직시킨 기생 ‘노화’ 목란과 미륵불이 있었던 원덕주막 사이 동쪽 산허리에는 처용암(處容岩)이란 미인 바위가 보인다. 짙은 두 눈썹 형상이 마치 아리따운 여인과 같다. 이곳 주막에서 태어난 ‘갈아’란 여인은 뭇사내들의 신세를 망쳐 어떤 장군의 칼에 찔려죽었다고 한다. 이후로 바위는 애꾸눈이 되고 인근 마을에서 애꾸눈 미인들이 태어났다는 전설이다. 이 전설과 관련, 정비석씨의 ‘기생열전’에서는 조선시대 성종때의 기생 ‘노화’가 나온다. 미색이 뛰어나 그의 치마폭에서 장성 현감 셋이 파직된다. 파견된 사헌부 관원마저 노화의 유혹에 걸려 팔뚝에 정표를 해준다. 다음날 관헌에게 붙들려 온 노화는 그의 팔뚝을 보여주며 노래한다.“노화의 이 팔뚝에 뉘 이름 새겼는고, 고운 살에 먹이 베어 글자도 선명코나.” 결국 이 기생은 관원의 첩으로 들어앉는다. 갈재 옛길 밑으로 지금은 호남고속도로와 호남선 터널 2개가 뚫렸다. 갈재는 전라좌도는 물론 전라우도 등 크고 작은 한양길이 모이는 주요 통로였다. 재를 넘으면 전북 전주 길목인 정읍이 펼쳐진다. 글 사진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 “사람 모이는 요지… 길 속에 돈 있다” “지금의 광주∼장성간 고속도로와 철도, 국도는 선조들이 다녔던 옛길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김경수(49·지리교사·문학박사) 향토지리연구소장은 호남에서 한양가던 옛길은 현 호남선과 위치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큰 길을 뚫기 전에 인근의 옛길들을 사전 조사하면 적잖은 교훈을 얻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 소장은 “100년 전쯤 지금의 광주 시외버스터미널 역할을 하던 자리가 시내쪽에서는 경양역이고 광산구쪽에서는 선암역”이라고 소개했다. 경양역은 관할 6개 역으로 군졸 1만명, 말 300마리, 역둔토 300결이 넘을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오늘날 시내 중심이 된 광주교대, 동신고, 옛 광주상고 터가 경양역촌이었다. 그는 “우산동 서방시장 건너편에 경양역 표지석이 세워졌다. 동신대학교와 동신고 등을 설립한 동강학원 이사장이 역터(383번지)에 집을 지어 대물림한다.”고 전했다. 풍수학상으로 이곳은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의 말대로 조선시대 경제의 중심축이던 역촌(驛村)들이 산업단지와 산업동맥으로 다시 이름을 잇고 있다. 그는 “선암역도 송정역에 밀려 쇠락하다가 오늘날 이 일대가 다시 길목이 되면서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말했다. 선암역인 선암마을 앞쪽은 광주에서 무안국제공항을 잇는 고속도로와 광주에서 영광을 잇는 국도 22호선 우회로, 평동과 하남산업단지 진입도로가 교차하는 사통팔달로 통한다. 한양가는 길목이던 하남산업단지는 광주시 전체 제조업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한다. 김 소장은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불문하고 길속에 길(돈)이 있다.”며 “교통의 요지에는 사람과 물품이 모이기 마련이어서 눈여겨 두면 뒷날 값어치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이렇게 달라졌어요] 상도2동 ‘장승배기’

    [이렇게 달라졌어요] 상도2동 ‘장승배기’

    26일 동작구 상도2동 장승배기. 장승 옆에 조성된 폭포 ‘벽천’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뒤쪽으로는 4000여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병풍을 치고 있다. 장승 바로 건너 쪽에는 허름한 집들이 계단처럼 층을 형성하고 있다. 재개발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 가운데 하나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나란히 서 있는 장승배기는 조선시대 노량진 선창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상도동은 몰라도 장승배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장승배기도 ‘개발 붐’을 타고 확 바뀌었다. ●전(前)=잡초 속에 묻힌 ‘대방 장승’ 1980대만 해도 장승배기 일대는 무허가주택 밀집지역으로 유명했다. 특히 장승의 배경이 되는 야산에는 판자촌이 즐비했다. 동작구의 대표적인 빈민촌의 하나로 아직도 일부 노후주택이 남아 있다. ‘대방 장승’으로 불렸던 상도2동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도 주변 잡초속에 묻혀 있다가 주민들의 건의로 2000년 도로변으로 옮겨졌다. 장승배기 지명 유래는 조선 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조는 화산(현 수원)의 현륭원(사도세자 묘소)에 자주 참배를 다녔는데 어가가 쉬었던 곳이 지금의 장승배기. 당시에는 숲이 너무 울창하고 적막해서 정조는 악귀를 쫓는 수호신으로 장승을 세우라고 명했다. 그때부터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붙게 됐다. ●후(後)=시민 휴식공간으로 재탄생 장승배기 일대는 2000년 지하철7호선 개통과 함께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장승배기 역세권이 형성되면서 ‘신동아 리버파크’‘SH공사 에스에이치-빌’ 등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기존 동작도서관과 동작교육청, 동작등기소, 동작문화원 등 관공서와 어우러지면서 서울 서남권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장승배기역은 하루 평균 1만 3000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여기에 노량진뉴타운 1구역 주택재개발이 지난해 12월 착공되면서 대규모 아파트 공사도 한창이다. 인근에는 90억원이 투입된 노량진 근린공원이 주민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공원 내에 첨단 어린이도서관도 9월에 준공된다.950m에 이르는 장승배기길 4차선 도로는 6차선으로 확장된다. 2002년에는 시민휴식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사실상 방치됐던 장승을 현재 위치로 옮겨놓았을 뿐 아니라 절개지를 헐고 폭포를 조성했다. 연못 안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보여준 국민 단합을 동작구의 상징인 국화꽃으로 형상화한 ‘장승배기 꽃’이라는 조각작품이 놓여져 있다. 구 관계자는 “장승의 신앙적 의미와 풍물로서의 가치는 많이 엷어졌지만 장승배기는 동작구의 대표적 역세권으로 재탄생했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한미애씨 ‘아로마 옻칠램프’ 서울 관광기념품 공모전 대상

    한미애씨 ‘아로마 옻칠램프’ 서울 관광기념품 공모전 대상

    서울시는 17일 서울 우수관광기념품 공모전 대상 수장작에 한미애씨가 제작한 ‘아로마 옻칠램프’를 선정했다. 창작아이디어 분야 금상에는 삼주기업에서 제작한 액세서리 ‘12지 수호신상’이 뽑혔다. 일반 관광기념품 분야 금상은 ‘여우와 곰’에서 출품한 ‘우리 것을 이용한 벨트, 컵 받침’과 까치공방에서 출품한 ‘십장생문양 우산’이 각각 수상했다 수상 제품은 시가 운영하는 인사동 ‘서울 관광상품 판매관’에 입점자격이 주어진다. 또 ‘전국 관광기념품 공모전’ 출품 자격을 부여하고 국내외 유명 선물용품 관련 전시회 참가도 지원한다. 공모전 시상식은 18일 서울 대치동 서울산업통상진흥원에서 열린다. 선정된 우수관광 기념품은 9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2007 서울 기프트쇼’를 통해 공개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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