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수호신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구조대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달러 유입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종전 논의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北 제재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81
  • ‘도깨비’ 공유♥김고은, 운명적 로맨스 시작 “내가 도깨비 신부예요”

    ‘도깨비’ 공유♥김고은, 운명적 로맨스 시작 “내가 도깨비 신부예요”

    ‘도깨비’ 공유 김고은의 운명적 로맨스가 시작됐다. 2일 첫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에서는 김신(공유 분)과 지은탁(김고은 분)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전파를 탔다. 이날 ‘도깨비’에서는 한때 인간이었던 김신이 도깨비가 된 사연이 그려졌다. 장수였던 김신은 질투심 가득한 어린 왕(김민재 분)한테 배신을 당하고 역적으로 몰려 가슴에 칼을 맞고 죽었다. 김신에게 천상의 존재는 상인지 벌인지 모를 늙지도 죽지도 않는 생을 주었고, 그는 심장에 검을 꽂은 채 1천 년 가까이 도깨비로 살게됐다. 그에게 꽂힌 검을 뽑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도깨비 신부 뿐이었다. 도깨비로 다시 새롭게 태어난 김신은 불멸의 삶을 살아갔다. 그는 한 여인(박희본 분)의 교통사고 현장을 보고 말았다. 김신은 인간의 생사에 관여하지 않는게 원칙이라고 말했지만, 뱃속의 아이를 걱정하며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인의 부탁을 결국 들어줬다. 가까스로 살아난 그 여인은 무사히 딸 지은탁을 낳았다. 김신은 은탁의 생명의 은인이었던 것. 그로부터 8년후, 여인은 또 한번의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됐고, 은탁은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이모 밑에서 살아가게 됐다. 10년의 시간이 흘러 은탁은 귀신을 볼 수 있는 특별함을 지닌 19살 고3 수험생으로 자랐다. 그리고 비가 내리던 어느날 은탁은 하교길에서 김신과 우연히 마주쳤다. 두 사람은 스치듯 지나갔지만 은탁의 생일날 다시 마주쳤다. 생일을 맞은 은탁은 홀로 쓸쓸하게 바닷가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키고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은탁이 촛불을 끄는 순간, 김신이 소환됐다. 김신은 은탁에 “너야? 나 불러낸 게 너냐고”라고 물었고, 은탁은 “저요? 제가 안 불렀는데요”라며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내 은탁은 김신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은탁은 “내가 귀신을 본다”라고 말했고, 김신은 자신을 수호신이라고 소개한 뒤 사라졌다. 두 사람의 이 같은 만남은 계속됐다. 은탁이 촛불을 끌때마다 항상 김신이 은탁의 앞에 나타난 것. 김신의 정체를 두고 의문을 품던 은탁은 결국 김신이 도깨비라는 것을 알아챘다. 은탁은 김신에게 “제가 도깨비 신부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김신은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을 보지 못하는 은탁에게 실망하며 “넌 도깨비 신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은탁은 “아무리봐도 아저씨는 도깨비 맞는 것 같다. 나 결심했다. 아저씨한테 시집가겠다. 사랑해요”라고 고백했다. ‘도깨비’는 불멸의 삶을 끝내기 위해 인간 신부가 필요한 도깨비, 그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기억상실증 저승사자, 그런 그들 앞에 ‘도깨비 신부’라 주장하는 소녀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공유 이동욱 김고은 유인나 육성재 등이 출연한다. 매주 금,토요일 밤 8시 방송. 사진=tvN ‘도깨비’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조국의 수호신’ 연평도 희생장병 넋 기린다

    해병대 주관 대전현충원서 열려 서방사 지휘소 통합훈련도 실시 해병대사령부는 23일 대전현충원에서 연평도 포격 도발 6주기 추모행사를 거행한다고 22일 밝혔다. ‘조국의 수호신으로 영원히 살아 숨쉬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행사에는 북한의 포격 도발 당시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유가족과 전상자, 참전장병, 이상훈 해병대사령관 등 200여명이 참석한다. 행사는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영상물 상영, 헌화·분향, 추모사, 추모공연 등의 순서로 진행되며 본 행사에 앞서 현충탑 참배와 전사자 묘역 참배가 이뤄진다. 추모공연은 서 하사의 모교인 문성중 학생들의 추모헌시 낭독, 해병대 군악대 중창단 합창 등으로 꾸며진다. 연평도 포격 도발과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을 통합한 ‘서해 수호의 날’이 제정되면서 지난해까지 정부 행사였던 연평도 포격 도발 추모식은 올해는 해병대 주관으로 열린다. 해병대는 앞서 지난 16일 문 일병의 고향인 군산에서 흉상제막식을 진행했다. 해병대는 11월 한 달을 ‘해병대 전승의 달’로 지정, 지휘관 특별 정신교육을 하고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가 주관하는 통합훈련을 실시한다. 통합훈련은 서방사를 비롯해 백령도 해병대 6여단과 연평부대 등 서북도서 부대가 참가해 화력도발과 기습상륙, 무인기 도발 등 북한군의 다양한 도발을 상정해 실시하는 지휘소 훈련이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링스 헬기 순직 장병 영결식 “참군인, 대한민국은 영원히 감사할 것”

    링스 헬기 순직 장병 영결식 “참군인, 대한민국은 영원히 감사할 것”

    지난달 26일 동해에서 한미 연합작전 중 순직한 해군 링스 해상작전헬기 조종사 등 순직장병 3명의 합동영결식이 2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체육관에서 엄수됐다. 조종사 김경민(33)·박유신(33) 소령,조작사 황성철(29) 상사 영결식은 이날 9시 엄현성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유가족과 국회의원, 장관, 장병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엄 해참총장은 조사에서 “해군은 순직장병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며 “부디 하늘에서 이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편안히 영면하시라”고 애도했다. 박 소령의 동기생인 박상홍 대위는 추도사에서 울먹이며 “박 소령의 부인과 세 살 아들,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중의 둘째는 전우들이 가족처럼 보살피겠다”고 다짐했다. 운구 과정에서 유족들은 오열했고 동료 장병들도 눈물로 배웅했다. 정조종사 김 소령은 2005년 육군 학사장교 46기로 임관, 2008년 육군 중위로 전역했으나 해군 조종사를 꿈꾸고 2010년 해군사관후보생109기로 임관했다. 2014년 해군 6항공전단 포술 최우수 승무원 선정, 지난해 해군 관함식 대함유도탄 발사 시범기 조종사 선발 및 해참총장 표창 수상 등으로 우수한 조종사이자 15개 자격증을 소유할 정도의 학구파 군인이었다. 부조종사 박 소령은 2004년 해병대 병장으로 전역한 후 해군 조종사가 되고자 재입대해 2011년 해군사관후보생 111기로 임관됐다.2014년 세월호 실종자 탐색 임무에 참여했고 지난해 1해상전투단 창설에 기여한 공로로 해군작전사령관 표창을 받는 등 대잠전술 분야 전문가였다. 2008년 해군부사관 217기로 임관한 조작사 황 상사는 헬기정비학과를 졸업했으나 비행에 대한 열정으로 링스 헬기의 장비조작과 기총 사격을 담당하는 항공조작사를 선택했다.2011년 청해부대 7진 파병에 자원해 아덴만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합동참모의장 표창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00년 전 ‘인신공양’된 발 잘린 어린이 유골 발견

    '미라 천국' 페루에서 이번에는 ‘인신공양’(人身供養)된 것으로 보이는 유골들이 발견됐다. 최근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 고고학 연구팀은 페루 수도 리마 북쪽에 위치한 초투나-초르난캅에서 최소 15세기 이전에 묻힌 17개의 무덤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잉카문명이 들어서기 전인 프레 잉카(pre-Inca) 시대에 묻힌 이 유골들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모두 인신공양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신공양은 사람의 몸을 신적 존재에게 제물로 바치는 행위나 풍습을 의미한다. 이는 유골의 특이한 상태에서 확인됐다. 총 11구의 성인남녀 유골의 경우 신체에서 인위적인 훼손 흔적이 발견됐다. 특히 총 6구의 어린이 유골도 함께 발견됐으며 이중 2구는 발이 잘린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발 잘린 어린이를 무덤을 지키는 일종의 수호신으로 해석했다. 연구를 이끈 하겐 클라우스 박사는 "잉카시대 전과 후로 이루어진 인신공양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면서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온 전통으로 이는 당시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무덤들의 중앙에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 토기와 조각품과 함께 묻혔다"면서 "무덤가 외곽에는 발 잘린 어린이들이 묻혀 이를 지키는 것으로 수호신 역할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잉카문명은 15세기 부터 16세기 초까지 지금의 페루·볼리비아를 지배한 고대 제국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유골과 미라가 자주 발견돼 고고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보물창고다. 지난 60년 간 현지와 서구 연구팀이 유적지를 중심으로 조사에 나섰으나 현재 약 10% 밖에 발굴하지 못했을 정도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新전원일기] 원주 ‘고니골’ 조영준 대표

    [新전원일기] 원주 ‘고니골’ 조영준 대표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일은 큰 즐거움이다. 우리나라 산천의 모습과 정서, 고향의 맛과 시골 사람들의 정,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일어서는 사람을 붙잡고 각종 야채들을 신문지에 싸서 둘둘 말아주던 아줌마들, 집 앞 나무에서 감이며 밤이며 바로 따서 가방에 찔러 넣어주던 이장님, 주름진 손을 흔들며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던 촌부와 노모의 모습, 반가운 손님 왔다며 온 동네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돼지 잡아 잔치 벌인 일 등. 나에게 각인된 농촌은 그런 구수한 정이고 따뜻한 마음이며 흐뭇한 기억이다. 그래서일까. 흙을 만지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스스럼없이 다가가진다. 마치 몇 번 만난 사람처럼 인사를 나누게 된다. 자연과 마주하고, 그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정직하고 진실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 친환경 무농약 뽕… 잠든 양잠산업 깨우다 강원 원주시 고산리에 위치한 고니골 농장은 옛 지명 ‘곤의골’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곤의골 마을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천주교 교우 가족들이 피신해 정착한 곳으로 ‘곤란을 당했지만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저는 곤의골에서 태어나서 쭉 이곳에서 자랐어요. 농장 이름을 ‘고니골’로 붙인 것도 그 이유에서죠. ‘곤의골’ 발음이 어려워서 소리가 나는 대로 상호를 바꿨더니 ‘고니’라는 새를 키우는 곳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때문에 처음 3년은 답변하느라 고생했어요. 하하하” 울림이 좋은 목소리를 가진 조영준(57) 대표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10만평 규모의 고니골 농장은 국내 유일의 양잠테마단지로 120년 동안 4대째 양잠을 지켜온 가족 기업이다. 4대째 가업을 잇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게다가 양잠은 한때 사양길에 접어들어 꽤 오랜 시간 주춤했던 농업 아닌가. 하지만 조 대표는 단 한번도 자신의 길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 일을 도와서 할 때도 농사일이 힘들다거나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농부가 내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고니골 농장은 3만평 규모의 친환경 무농약 인증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가루, 누에환, 누에 비누, 뽕잎환, 뽕잎차, 뽕잎나물, 뽕잎진액, 뽕잎비누, 오디잼, 오디진액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6차 산업을 수백년 전부터 했다고 봐야 해요. 자, 보세요. 콩을 심으면 1차 산업이죠. 메주를 쑤어서 장을 담그면 2차 산업이고, 그걸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 3차 산업이에요. 단지 기존에 있는 걸 끄집어내서 특정한 이름을 붙여주질 못했던 것뿐이에요.” 백번 맞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도 1995년에 시작한 ‘뽕잎음식 무료 시식회’로 이미 오래전에 6차 산업에 발을 디딘 셈이다. 그렇게 출발한 무료 시식회는 ‘고니골 농장 고객 만남의 날’이라는 좀 더 멋진 타이틀을 달고 매년 7월 넷째 주 토요일에 열린다. 올해로 벌써 27번째 생일을 맞았다. 남녀노소 누구나 누에와 뽕잎으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무료로 먹으며 건강한 맛을 즐기고 누에, 고치, 뽕잎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농장을 알리기 위해서 재미로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1년에 한번씩 고객을 초청해서 정성껏 대접하는 것만큼 좋은 홍보 전략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에요.” 이 행사 덕에 고니골 농장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향토산업 육성 사업으로 30억원을 지원받아 지금의 양잠테마단지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 조 대표는 지역에 흩어져 있던 13개의 양잠 농가를 모아서 법인을 만들었다. 사라져 가는 양잠산업을 살리고 지역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셈이다. # 누에도 사람도 뽕잎을, 자연을 만끽하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뽕 따러 가셔야죠.” 조 대표가 건네준 시원한 뽕뿌리 달인 물을 한 입에 털어 마시고 따라나섰다. 뽕밭으로 가는 길에 나의 눈을 잡아끈 것은 수령이 120년 된 할배 뽕나무였다. 이곳에 있는 뽕나무 중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나무로 농장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상징이라고 한다. 마치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1982년에 심기 시작했다는 뽕밭은 녹차 밭처럼 고랑을 사이에 두고 정갈하게 심겨 있었다. 이제 녀석들은 누에들이 도착하면 영양 가득한 최고의 식사거리가 될 것이다. 5월 중순과 8월 중순, 1년에 두 번 개미누에 160만 마리가 고니골 농장에 들어온다. 누에는 워낙 예민해서 밥 끓이는 냄새, 찌개 냄새조차도 심하면 금세 죽어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농장에 강아지는 고사하고 병아리 한 마리도 키우지 않는다. 누에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누에가 잠을 네 번 자고 5령기에 접어들면 하루에 먹어치우는 뽕잎 양이 어마어마하다. 160만 마리가 하루에 먹어 치우는 뽕잎의 양이 대략 2t 정도가 된다. 2000평의 뽕밭을 이틀에 끝내는 꼴이다. 누에의 식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배꼽시계’가 정오를 알렸다. 조 대표는 농장 안에 있는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100여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식당은 농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다 함께 식사하는 곳이다. 음식은 자연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했다. 최근 10년간 먹은 적이 없는 뽕잎 나물은 맛이 기가 막혔다. 뽕잎을 넣고 삶았다는 돼지고기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고기를 삶을 때 뽕잎을 넣으면 고기가 부드러워지고 기름 성분을 제거해 줘요. 뽕잎이 지방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거든요. 게다가 고기 맛도 한결 더 살려주죠. 그거 아세요. 원주의 대표 음식이 뽕잎황태밥이에요. 아, 그걸 맛보셔야 하는데” 뽕나무는 잎부터, 가지, 뿌리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효자 작물이다. 뽕잎은 가루와 환과 나물로, 가지는 밥, 국, 찌개를 만들 때 함께 넣어 끓이면 음식의 맛을 더욱 살려주며, 뿌리는 달여 마시면 잇몸 염증에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조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뽕잎으로 친환경 인증을 받아낸 장본인이다. 사람들에게 뽕잎을 야채로 인지시키고 좀 더 쉽게 식탁에 올릴 수 있도록 건조 뽕잎나물과 냉동 뽕잎나물을 만들어 한 살림에 납품하고 있다. 물론 뽕잎과 누에로 만든 가공식품도 함께 말이다. # 옥수수 밭에서도 살아남은 뽕… 희망을 배우다 1960~70년대 중반 전성기를 누리던 양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친구들도 하나둘씩 고향을 떠났다. 누에를 키우던 농가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뽕나무를 캐내 버리고 돈이 되는 특용 작물로 옮겨 갔다. 하지만 아버지와 형은 도리어 2만 그루의 뽕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모두가 등을 돌리는 사양산업을 끌고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조 대표가 군대를 제대한 후 먼저 한 일은 형이 심어놓은 2만 그루의 뽕나무를 도끼로 찍어내는 일이었다. 결국 현실 앞에 가업의 의지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형이 고향을 떠나고 뽕나무 2만 그루를 심느라 떠안은 빚은 고스란히 조 대표의 몫이 되었다. 한겨울인데다 산골짜기다 보니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낼 수도 없었다. 아버지와 조 대표 는 단둘이서 2만 그루나 되는 뽕나무를 도끼로 모두 베어 불태워 버렸다. 베어내고 남은 뿌리에는 제초제를 뿌렸다. 뿌리까지 모두 죽였으니 3대를 지켜온 뽕나무와는 이젠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이 선물한 생명의 힘은 강했다. 그 이듬해 봄이 되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뽕나무 뿌리에서 싹이 올라온 것이다. 그는 또다시 제초제를 뿌렸다. 싹이 또 올라오면 또다시 제초제 뿌리기를 수차례. 그리고는 고랑마다 옥수수를 심었다. 뽕나무를 키우던 3만평 땅에도 콩, 팥 등 잡곡농사를 지었다. 뽕나무는 마음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영준아, 옥수수 밭으로 올라오너라.” 조 대표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옥수수를 심은 밭인데 어느새 자란 뽕나무가 옥수수보다 더 높이 자라 있는 게 아닌가. “보통 옥수수가 2m 50㎝ 정도 자라거든요. 그런데 뽕나무가 햇빛을 보려고 살기 위해 뚫고 올라온 거죠. 옥수수를 수확하고 나니까 완전히 뽕밭인 거예요. 예전보다 더 튼튼하게 올라왔더라고요. 그 생명력에 감동을 받았죠. 그렇게 자연으로부터 배웠어요. 자신과 싸워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사람 사이에 인연이 있듯이, 조 대표와 뽕나무는 어쩌면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뽕나무에서 배운 강인한 생명력이 그의 마음을 돌아서게 한 것이다. 때마침 잡곡농사 때문에 농약 중독증에 걸린 그에게 농약을 멀리해야 하는 양잠만큼 적합한 농사는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인 양잠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이제 고니골 농장은 연간 2만명 이상이 찾아오는 즐거운 테마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생산, 가공, 유통, 체험으로 발생하는 연간 매출이 4억원이나 된다. 오랜 시간 그 어떤 반대와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고 뽕나무밭을 지켜온 조 대표의 한결같은 의지 때문이리라. # LED 400만개 ‘빛의 나라’… 미래를 가꾸다 고니골 농장에 어둠이 깔리면 생명의 숲은 ‘빛의 나라’로 변신한다. 지난해 처음 시도한 불빛 축제가 성공의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가져왔다. 조 대표는 10만평에 400만개의 각종 발광다이오드(LED)와 대형 조형물, 그리고 레이저를 설치해 겨울밤 내내 환상적인 야경을 선사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체험을 만들어 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조 대표의 도전정신이 또 한번의 홈런을 날린 것이다. “‘겨울에도 우리 농장을 찾게 할 수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됐어요. 그래서 조사를 했는데 겨울에 빛 축제를 하는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 이거다. 제대로 한번 해 보자 결심하게 된 거죠.” 마을 입구부터 시작되는 1만 송이 LED 장미길부터, 100m 사랑의 터널, 은하수처럼 빛나는 뽕나무 밭은 사람들을 또 다른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산골짜기에서 마을 사람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던 17살 소년은 이제 원주를 대표하는 체험테마단지의 수장이 됐다. 고니골 농장의 빛 축제도 지역을 빛내는 겨울철 대표 축제가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올겨울, LED 빛으로 물들 고니골 농장의 모습이 궁금하다. 따뜻한 뽕잎 차 한 잔과 함께 그 불빛들을 바라보며 마음에도 따뜻한 불이 켜질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글쓴이 방송작가 한정원 ‘6시 내고향’, ‘생방송 투데이’, ‘주주클럽’, ‘TV내무반 신고합니다’, ‘기분 좋은 날’, ‘여유만만’ 등 다수의 TV 프로그램 참여. ‘지식인의 서재’, ‘CEO의 서재’, ‘명사들의 문장강화’, ‘명인명촌’ 등 출간.
  • ‘화산학 교과서’ 수월봉 펼쳐보니… 겹겹이 쌓인 역사와 전설

    ‘화산학 교과서’ 수월봉 펼쳐보니… 겹겹이 쌓인 역사와 전설

    ‘화산섬 제주 탄생의 비밀을 풀어 보세요.’ 제주 올레길이 아름다운 제주의 속살을 보여 준다면 제주 지질 트레일은 화산섬 제주의 모든 것을 보여 준다. 1만 8000년 전 제주 서쪽 고산리 앞바다 땅속에서 올라온 마그마는 지하수와 바닷물이 만나면서 격렬하게 폭발했다. 폭발과 함께 솟구친 화산재들은 화산가스, 수증기와 뒤엉켜 쌓이고 쌓여 ‘화산학 교과서’라 불리는 수월봉이란 지질 명소를 탄생시켰다. ●9일간 화산활동 변화 한눈에 체험 수월봉은 높이 77m의 작은 언덕 형태의 오름(기생화산)으로 화산섬 제주를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명소.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에 깎이면서 화산체 대부분이 사라지고, 1.5㎞에 이르는 해안절벽이 병풍을 두르듯 남아 지금의 수월봉이 만들어졌다. 수월봉 화산재층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층리의 연속적인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세계적인 지질 명소로 손꼽힌다. 11일 제주시에 따르면 화산섬 제주의 비밀을 찾아가는 2016 지질 트레일 행사가 오는 13일부터 21일까지 제주시 한경면 수월봉 일대에서 펼쳐진다. 13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9일간 수월봉 엉알길, 당산봉, 차귀도 등 3개 코스에서 지질 트레일 걷기 행사가 열린다. 수월봉 코스는 해경 파출소에서 출발해 용암과 주상절리, 갱도 진지, 화산탄, 수월봉 정상, 한장동 엉앙길, 검은모래해변, 해녀의집으로 들어온다. 당산봉 코스는 거북바위에서 시작해 생이기정, 가마우지, 당산봉수까지다. 차귀도 코스는 자구내 포구, 차귀도 역사, 장군바위, 차귀도 등대, 차귀도 지질로 이어진다. ●엉알길 태평양전쟁 당시 갱도 흔적 4.6㎞ 수월봉 엉알길 코스의 수월봉 정상 절벽 아래 ‘엉알’은 화산재 지층이 가장 잘 발달한 곳이다. 엉알길은 벼랑·절벽 등을 뜻하는 제주어 ‘엉’과 아래쪽을 이르는 ‘알’이 합쳐진 말로 ‘벼랑 아래 있는 길’을 뜻한다. 엉알에는 화산 분출 당시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분출물이 쌓인 화산재 지층이 70m 두께로 기왓장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어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엉알길 코스에는 아픈 역사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일본군 갱도 진지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이 상륙을 시도할 것에 대비해 갱도에서 바다로 직접 발진, 전함을 공격하는 자살 특공용 보트와 탄약 등이 보관돼 있었다. 수월봉에는 어린 남매의 애틋한 전설도 전해 온다. 병을 앓던 어머니를 보살피던 수월이와 녹고 남매에게 누군가 100가지 약초를 구해 어머니를 구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남매는 백방으로 약초를 캐러 다닌 끝에 99가지 약초를 구했으나 마지막 한 가지 오갈피를 구하지 못했다. 수월이는 수월봉 낭떠러지 절벽 아래 있는 오갈피를 발견하고 홀어머니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을 내려가다 떨어져 죽었다. 동생 녹고도 누이를 잃은 슬픔에 17일 동안 눈물을 흘리며 시름하다 죽고 만다. 녹고의 눈물은 절벽 곳곳에서 솟아나 샘물이 됐다. 전설 속 녹고의 눈물은 비가 오면 수월봉 해안절벽 화산재 지층 옆으로 흘러내린다. ●희귀식물 82종 서식 차귀도 천연기념물 3.2㎞에 이르는 당산봉 코스에는 거북바위와 당산봉 가마우지, 당산봉수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자구내 포구에서 2㎞ 떨어진 무인도인 차귀도에는 다양한 수목과 양치식물 등 82종의 식물이 서식,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 중이다. 차귀도에는 옛날 중국 송나라 사람 호종단이 제주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을 경계, 제주의 지맥과 수맥을 끊고 돌아가려 할 때 한라산의 수호신이 폭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해 차귀도(遮歸島)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수월봉 일대는 제주 올레 12코스(무릉리~수월봉~용수포구)와도 겹쳐 지질 트레일과 올레길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엉알길 입구~자구내 포구(1㎞)는 장애인도 편하게 올레길을 즐길 수 있는 제주 올레 휠체어 구간이다. 수월봉 인근의 고산리 선사유적지에는 8000~1만 2000년 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수렵채집 생활을 했고 발굴된 사냥도구, 토기 등의 유물은 국립제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제주지오’ 앱 통해 역사·생태 탐방 스마트폰으로 제주 세계지질공원을 즐길 수도 있다. ‘제주지오’ 모바일 앱은 세계지질공원 제주의 지질학적 특성과 경관, 마을의 역사·문화·생태 이야기 등 다양한 문화자원을 탐방해 볼 수 있다. 지질트레일(Geo-Trail)과 지질트레일 내 이용할 수 있는 지오하우스(Geo-House), 지오푸드(Geo-Food), 지오액티비티(Geo-Activity) 등 지오브랜드 체험 정보를 담았다. GPS를 이용한 실시간 지질트레일 지도 안내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며, 코스 내 주요 포인트 소개, 날씨 정보 등을 제공해 준다. 수월봉 지질명소는 한 해 40만여명이 찾는 등 도보여행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행사 기간에는 전문가와 함께하는 특별 탐방도 마련됐다. 전용문(지질), 김완병(생태), 박찬식(역사·문화) 박사가 동행해 자연자원의 가치와 제주의 역사·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제주 세계지질공원 사생대회 및 사진공모전도 열린다. 세계지질공원수월봉트레일위윈회는 “수월봉은 자체로도 경관이 뛰어난 데다 화산이 만들어낸 지층을 가까이에서 연속성 있게 볼 수 있어 화산섬 제주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벽 속에 벽’ …제주, 안도 다다오 건축작품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벽 속에 벽’ …제주, 안도 다다오 건축작품

    “빛과 그늘이 함께하는 것이 인생이다. 건축 이야기에는 반드시 빛과 그늘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안도 다다오(安藤忠雄·75). 세계적이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인 동시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일본 예술가이다. 전직 프로복서 출신, 오사카의 한 공업고등학교 졸업, 방황, 실패의 연속, 독학으로 건축학 입문이라는 그의 ‘그늘진’ 고생담은 동경대 건축과 교수, 세계적 건축가라는 한 편의 ‘빛나는’ 설화(說話)로 재탄생하였다. 서울의 랜드 마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1950~2016)가 2004년에 받아 그녀의 이름값을 드높인 상(賞)이 바로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이다. 흔히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이 상을 안도 다다오는 이미 1995년에 받아 책상 한 켠에 얹어 두었으니 지금에서야 그의 실력을 평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터. 이토록 유명한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제주도에만 무려 3개나 자리 잡고 있다. 바람, 빛, 물, 콘크리트를 통해 제주의 풍광을 담고 있는 그의 건축철학을 만나보자. ● 제주의 바다를 품다-지니어스 로사이, 글래스 하우스 제주섬 아래켠 섭지코지에도 안도 다다오의 작품들이 있다. 바로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 글래스 하우스(Glass House)이다. “인간과 자연 공간의 합일점을 찾는 것, 그런 건축이 훌륭한 건축입니다. 섭지코지는 아주 매력적인 땅입니다.” 안도 다다오가 섭지코지에 그의 작품을 남기는 의도가 정확히 설명되는 표현이다. 바로 인간과 자연, 공간이 합쳐지는 하나의 명상 장소가 지니어스 로사이다. 이곳은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안도 다다오의 건축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공간이라고 평가된다. 여기에서 안도 다다오는 도시 생활에 지친 관람객들에계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고품격의 명상장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지니어스 로사이라는 어원은 바로 ‘대지의 수호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지의 평온한 속에서 인간의 영혼을 찾길 희망하는 그의 바람은 독특한 건축미로 구현된다. 지니어스 로사이에 들어서는 기분은 묘하다. 흡사 팀 버튼의 영화 속에서나 연출이 가능한 4차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가득하다. 명상의 공간이다. 제주의 삼다(三多·돌, 바람, 여자)를 품듯 노출된 콘크리트 벽체와 길게 뻗은 보도 옆 현무암들, 그리고 쉼 없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제주의 물방울들은 기존의 건축에 대한 개념마저 흔들어 버린다. 입구의 차단벽과 연못을 통과해 현무암 사이 길을 걷다 보면, 꽃밭에서 뿜는 여러 빛을, 사각형의 억새밭 사이로 부는 바람과 만난다. 또한 좌우 콘크리트 벽체에서 쏟아지는 폭포 사이를 지나면, 작은 프레임을 통해 성산일출봉을 감상할 수도 있다. 실제 관람객들은 지니어스 로사이에서 안도 다다오의 콘크리트 벽이 뿜는 속내음이 인공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콘크리트 쓰임새는 안도 다다오 건축의 지향점인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위한 훌륭한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높은 장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내부가 서로 서로 연결되어 공간이 닫힌 것이 아니라 뚫려 있고 열려 있다. 또한 하늘로 열린 벽체 기둥들은 온전한 자연의 빛을 건축물에 담아 낸다. 지니어스 로사이에는 총 3개의 전시관이 있다. 제 1전시관은 문경원 작가의 ‘Diary'. 나무의 생장과 소멸. 제 2전시관을 어제의 하늘-바닥에 비춰지는 어제의 하늘을 보며 지나간 시간에 대한 명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3전시관은 오늘의 풍경-실시간 일출봉 풍경을 화면에 투사해서 보여준다. 지니어스 로사이를 뒤로 한 채 언덕을 올라가다보면, 멀리 정동항을 향해 두 팔을 벌린 형상의 글래스 하우스(Glass House)를 만난다. 이곳은 현재 1층은 지포(Zippo)뮤지엄, 2층은 레스토랑 민트(Mint)가 위치하여 제주 바다의 훌륭한 전망을 제공하는 상업적 건축물이다. 1층 바닥이 언덕 아래보다 3.6미터가 높은 곳에 위치해서 건물 내부를 입구에서 가늠할 수가 없다. 막상 입구에 도착하면 멀리 정동항과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화려한 경치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건물의 정면은 뒷면과는 달리 콘크리트가 아닌 유리로만 마감되어 확 트인 공간감을 보여준다. 이는 정동항을 향해 손 벌린 기하학적인 평면으로 태양이 떠오를 때 해의 기운을 품는 모양을 드러낸다. ● 제주의 산(山)을 품다-본태 박물관 2012년 11월, 제주 산방산 기슭에 산과 바다를 한껏 품은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본태박물관’, 불어로 ‘Bonte'의 뜻은 ’봉떼‘, 즉,’아름답다‘ 혹은 ’좋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한자로 ’본태(本態)‘는 ’본래의 형상, 아름다움, 본질‘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박물관 이름으로는 제격이다. 원래 박물관 터가 경사진 곳이지만 이곳을 다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공간적인 조화를 꾀하고 있다. 또한 높은 콘크리트 벽체를 배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확 트인 공간감은 하늘 높이 뻗어 있다. 산방산 자락 하늬바람이 이곳에 늘상 머물렀다 가도록 바람 길도 터놓았다. 또한 콘크리트가 뼈대를 이루는 구조체이자 건물의 느낌을 자아내는 마감재이다 보니 당연히 불필요한 장식은 다 걷어낸 진솔한 공간과 빛을 통해 가늠되는 시간만이 온전히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미술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본태박물관은 고(故)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부인인 이행자 본태박물관 고문이 수집한 생활 속 골동품과 소품들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까지 아울러 전시하는 공간이다. 20세기 현대조각의 새로운 장을 연 안소니 카로(Anthony Caro·92)의 <물결Wave>, 대담한 색상과 특유의 ‘컷아웃 기법’으로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팝아트 조각가 데이비드 걸스타인(David Gerstein, 1944 ~ )의 <불타는 입술 Burning Lips >등이 전시되고 있다. 이 밖에도 피카소, 마티스와 더불어 가장 비중 있는 모더니스트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1881 ~ 1955)의 노동 연작 <건설노동자 Les constructeurs>,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1904~1989)의 <늘어진 시계 La Montre molle>등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안도 다다오의 특별 공간이 마련되어 백남준의 대표적인 작품들과 더불어 본태박물관 설계 변천 과정을 볼 수 있는 스터디 모형, 건축과정을 사진으로 모아둔 스틸컷이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모시조각보를 형상화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안도 다다오 <명상의 방>까지 본태박물관은 제주도를 넘어서 세계적인 예술 체험이 가능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제주 안도 다다오 건축물에 대한 10문 10답> -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 10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요? -꼭 이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2. 이 공간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섭지코지를 방문한 관람객들. 제주도를 최소 3번 이상 방문한 경험을 지닌 관광객들. 건축학도. 3. 숙소 등의 시설환경에 괜찮은가요? -제주도이다. 휴가 계획을 미리 짜서 숙박 공간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이 제주 여행에서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휴가철에 임박해서는 가격대가 천정을 뚫고 올라간다는 것은 상식이다. 4. 건축물들의 실제모습은? -지니어스 로사이의 경우 안도 다다오에 대한 이해 없이 들어갔다가는 난감해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글래스 하우스는 바다 풍경이 멋지다.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를 추천. 본태박물관은 제주도의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찾아가야 한다. 고즈넉하다. 5.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안도 다다오에 대한 이해 없이 접근하면 모든 체험이 고난으로 바뀔 수도 있다. 반드시 안도 다다오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 조사와 공부는 필요하다. 6. 홈페이지 주소 및 도움되는 사이트 주소는? -지니어스로사이(https://www.phoenixisland.co.kr/pi/index) -글래스 하우스(https://www.phoenixisland.co.kr/pi/index) -본태 박물관(http://www.bontemuseum.com/) 7. 먹거리 정보와 식당 정보는? -유명한 식당을 찾는 것도 의미 있지만, 제주도민의 주거 공간에 있는 작은 식당을 추천한다. 굳이 이름나지 않는 곳이라면 더더욱 좋은 식당일 수도 있다. 8. 제주도에 가 볼만한 다른 건축 공간도 있나요? -포도호텔: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863. 064-793-7000 -방주교회: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62. 064-794-0611 -아고라: 서귀포시 섭지코지로 107, 1577-0069 -기적의 도서관: 제주시 동광로 12길 19. 064-738-3003 9. 이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공간이나 체험은? -지니어스 로사이, 글래스 하우스에 대한 섭지코지 도슨트 건축투어(064-731-7791·1인당 2만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제주도에서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다만, 안도 다다오 건축 미학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상식을 가지고 만나야 제주도 여행이 역대급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먹거리·볼거리 가득한 ‘삼막마을축제’ 8월 3일 개막

    경기 안양시는 먹거리, 볼거리가 가득한 ‘삼막마을축제’를 다음 달 3일 오후 삼막골에서 개최한다고 27일 밝혔다. 안양문화원과 삼막마을외식업지구상인회가 주최하는 이번 축제는 삼막마을이 우수외식업지구로 선정된 후 처음 열리는 행사다. 삼막마을축제는 전통마을제인 ‘쌍신제’를 시작으로 맛자랑경연 등 ‘삼막푸드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주요 행사로 삼막마을 대표음식·신메뉴 시연회, 삼막장터 운영, 나트륨줄이기 식생활개선 체험 등이 열린다. 이외에도 삼막마을의 외식업을 소재로한 체험관도 4시간 동안 운영된다. 한식·중식·양식 등 50여개의 다양한 음식업소가 모여 있는 삼막마을은 2014년 4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우수외식업지역으로 선정됐다. 시는 이곳을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수도권 최고의 맛거리 명소로 육성하고 있다. 개막 행사인 삼막골 쌍신제는 500여년된 마을 수호신인 서낭할아버지 느티나무와 할머니 나무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전통마을제다. 할머니 나무는 고사해 은행나무를 새로 심었다. 이필운 안양시장은 “이번 축제가 삼막마을을 다시 한번 수도권 외식업명소로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이야깃거리 풍부한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을 맞이하겠다”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한국에선 ‘강남역 살인’…伊선 여대생 엽기 피살 왜?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한국에선 ‘강남역 살인’…伊선 여대생 엽기 피살 왜?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불안과 공포, 분노의 여진에 떨던 지난달 29일 오전 3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20대 남성이 여대생(22)의 몸에 알코올을 끼얹고 불을 붙여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가 자신과 헤어진 것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끔찍한 범죄였다.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이 이탈리아에 만연한 남성우월주의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및 우월주의가 개별 국가 단위를 초월함을 보여 주는 사례다. 현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 사건이 155건, 구타 사건이 8856건, 스토킹 사건이 1261건에 달했지만, 이 중 신고를 한 여성은 10%에 불과했다. 나머지 90%는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며 어린 시절부터 교육에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이러한 사상이 문제로 지적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국가와 종교를 막론하고 보편적 사상으로 인식돼 온 남성우월주의, 그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시대·국가 초월한 남성의 폭력·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의 역사는 수렵채집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존을 위해 자연과 동물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당시 인류가 스스로 집을 짓고 도구를 이용해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타인 혹은 자연과 동물로부터 자신의 것, 공동체의 것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발생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성과 여성의 명확한 구분이 시작됐고,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이들이 믿는 신의 모습은 대부분 ‘남성’이 됐을 만큼 남성은 우월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신화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이 등장하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제우스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자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테네 여신 등 일부 여신이 제우스 못지않은 유명세를 떨쳤지만, 서구 신화 속 가장 우월한 신으로 제우스를 꼽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은 많지 않다. ●신화·종교에서도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 종교는 또 어떠한가. 이슬람은 남녀 불평등 종교의 대표로 꼽힌다. 21세기에도 무슬림 여성들은 여전히 차도르와 히잡으로 온몸을 감싸야 한다. 이를 단순히 옳고 그름이 아닌 문화적 차이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성 차별로 대두되는 이슬람의 남성우월주의가 10세 전후 어린 소녀의 강제 결혼과 오로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염산테러 등의 폭력적 행태를 낳은 것만은 사실이다. 자비와 자애를 강조하는 불교에도 여자는 남자가 돼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전여신설(轉女身說), 여성은 제석천(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범천(불교의 호법수호신), 불타가 되지 못한다는 여인오장설(五障說) 등이 존재하며, 현대에 들어서는 과거에 비해 지위가 비교적 상승하긴 했으나 여전히 비구니는 비구의 종속적 위치에 있다. 이 밖에도 다수의 개신교는 현재도 여성 목사 안수를 불허하며, 대대로 남성 교황을 필두로 해 온 가톨릭 역시 종교적 자유는 인정하나, 주요 보직을 둘러싼 종교 내 정치적 자유는 불허하는 반쪽 평등을 고수한다. 조선시대 유교사상의 심화는 남성 중심 사회를 만들었고 이것은 남존여비, 남성우월사상으로 가지를 뻗쳤다. 사상이 또 다른 사상을 낳으면서 17세기 이후 조선 여성들은 ‘칠거지악’, ‘삼종지도’ 등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예속적 숙명을 따라야 했다. 결국 시대와 종교, 국가를 불문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해 왔으며, 이러한 구별이 나아가 차별 및 남성우월주의로 발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권신장·양성평등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지금 이 시간에도 남성우월주의를 타파하고 여성 인권 신장을 이루기 위한 각양각색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 흥미로운 것은 신(神)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성차별을 지양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영국 성공회 교회의 한 여성 주교는 신을 표현할 때 남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인 ‘그’(He) 대신 ‘신’(God)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글로스터의 레이첼 트레위크 주교는 “신은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그렇다고 신(God)이 남성(Male)인 것은 아니다. 신은 신일 뿐(God is God)”이라면서 “신을 묘사할 때 ‘그’(He) 또는 ‘그녀’(She)의 대명사를 쓰는 것보다는 ‘신’(God)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면서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 가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신학자들은 “언제나 신이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말해 왔지만 우리가 스스로 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신에게는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기나긴 역사적·종교적 근거를 들어, 누군가는 남성우월주의를 포함한 성차별적 습성이 인류의 내재된 본성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남성우월주의와 여성 차별은 그저 문화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성(神性)의 성별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처럼 여성과 남성의 가치를 달리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남녀가 아직 평등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기 마련이다. 성 평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남성우월주의가 타파됐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과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huimin0217@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한국에선 ‘강남역 살인’… 伊선 여대생 엽기 피살 왜?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한국에선 ‘강남역 살인’… 伊선 여대생 엽기 피살 왜?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불안과 공포, 분노의 여진에 떨던 지난달 29일 오전 3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20대 남성이 여대생(22)의 몸에 알코올을 끼얹고 불을 붙여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가 자신과 헤어진 것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끔찍한 범죄였다.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이 이탈리아에 만연한 남성우월주의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및 우월주의가 개별 국가 단위를 초월함을 보여 주는 사례다. 현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 사건이 155건, 구타 사건이 8856건, 스토킹 사건이 1261건에 달했지만, 이 중 신고를 한 여성은 10%에 불과했다. 나머지 90%는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며 어린 시절부터 교육에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이러한 사상이 문제로 지적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국가와 종교를 막론하고 보편적 사상으로 인식돼 온 남성우월주의, 그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시대·국가 초월한 남성의 폭력·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의 역사는 수렵채집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존을 위해 자연과 동물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당시 인류가 스스로 집을 짓고 도구를 이용해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타인 혹은 자연과 동물로부터 자신의 것, 공동체의 것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발생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성과 여성의 명확한 구분이 시작됐고,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이들이 믿는 신의 모습은 대부분 ‘남성’이 됐을 만큼 남성은 우월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신화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이 등장하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제우스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자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테네 여신 등 일부 여신이 제우스 못지않은 유명세를 떨쳤지만, 서구 신화 속 가장 우월한 신으로 제우스를 꼽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은 많지 않다. ●신화·종교에서도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 종교는 또 어떠한가. 이슬람은 남녀 불평등 종교의 대표로 꼽힌다. 21세기에도 무슬림 여성들은 여전히 차도르와 히잡으로 온몸을 감싸야 한다. 이를 단순히 옳고 그름이 아닌 문화적 차이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성 차별로 대두되는 이슬람의 남성우월주의가 10세 전후 어린 소녀의 강제 결혼과 오로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염산테러 등의 폭력적 행태를 낳은 것만은 사실이다. 자비와 자애를 강조하는 불교에도 여자는 남자가 돼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전여신설(轉女身說), 여성은 제석천(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범천(불교의 호법수호신), 불타가 되지 못한다는 여인오장설(五障說) 등이 존재하며, 현대에 들어서는 과거에 비해 지위가 비교적 상승하긴 했으나 여전히 비구니는 비구의 종속적 위치에 있다. 이 밖에도 다수의 개신교는 현재도 여성 목사 안수를 불허하며, 대대로 남성 교황을 필두로 해 온 가톨릭 역시 종교적 자유는 인정하나, 주요 보직을 둘러싼 종교 내 정치적 자유는 불허하는 반쪽 평등을 고수한다. 조선시대 유교사상의 심화는 남성 중심 사회를 만들었고 이것은 남존여비, 남성우월사상으로 가지를 뻗쳤다. 사상이 또 다른 사상을 낳으면서 17세기 이후 조선 여성들은 ‘칠거지악’, ‘삼종지도’ 등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예속적 숙명을 따라야 했다. 결국 시대와 종교, 국가를 불문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해 왔으며, 이러한 구별이 나아가 차별 및 남성우월주의로 발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권신장·양성평등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지금 이 시간에도 남성우월주의를 타파하고 여성 인권 신장을 이루기 위한 각양각색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 흥미로운 것은 신(神)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성차별을 지양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영국 성공회 교회의 한 여성 주교는 신을 표현할 때 남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인 ‘그’(He) 대신 ‘신’(God)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글로스터의 레이첼 트레위크 주교는 “신은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그렇다고 신(God)이 남성(Male)인 것은 아니다. 신은 신일 뿐(God is God)”이라면서 “신을 묘사할 때 ‘그’(He) 또는 ‘그녀’(She)의 대명사를 쓰는 것보다는 ‘신’(God)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면서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 가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신학자들은 “언제나 신이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말해 왔지만 우리가 스스로 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신에게는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기나긴 역사적·종교적 근거를 들어, 누군가는 남성우월주의를 포함한 성차별적 습성이 인류의 내재된 본성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남성우월주의와 여성 차별은 그저 문화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성(神性)의 성별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처럼 여성과 남성의 가치를 달리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남녀가 아직 평등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기 마련이다. 성 평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남성우월주의가 타파됐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과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huimin0217@seoul.co.kr
  • 경산자인단오제 9일 개막

    영남 지역 최대 단오제인 ‘경산자인단오제’가 오는 9∼12일 경북 경산시 자인면 계정숲 일대에서 열린다. 경산자인단오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약 1100년 전 신라시대부터 전해져 왔다. 음력 5월 5일인 단오에 지내는 향토신제로, ‘단오굿’이라고도 한다. 축제는 첫날 자인의 수호신인 한(韓)장군 사당으로 제사를 지내러 가는 행렬을 시작으로 막이 오른다. 한장군은 9세기 전후 신라시대 경산 자인 도천산 일원의 도천산에 기거하면서 자인현 주민들을 괴롭혀 온 왜구들을 섬멸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이어 한장군이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꽃관을 쓰고 췄다는 춤 ‘여원무’ 공연과 자인단오굿, 팔광대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둘째 날에는 천연기념물 제368호인 경산삽살개 공연, 마술쇼, 삼천포 농악놀이, 고성 농요 공연, 음악회가 열리고 셋째 날인 11일에는 경기 웃다리농악, 경남 농악 등 풍물놀이 공연과 부채춤, 영남 민요, 피리 독주, 한국무용 등의 공연을 선사한다. 최영조 경산시장은 “올해 경산자인단오제는 잊힌 우리 전통의 멋과 흥을 경험하는 데 손색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말했다. 경산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영남지역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 경산 자인단오제 9~12일부터 4일간 열려

    영남지역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 경산 자인단오제 9~12일부터 4일간 열려

    영남지역 최대 단오제인 ‘경산자인단오제’가 오는 9∼12일 경북 경산시 자인면 계정숲 일대에서 열린다. 경산자인단오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약 1100년 전 신라시대부터 전해왔다. 음력 5월 5일인 단오에 지내는 향토신제로, ‘단오굿’이라고도 한다. 축제는 첫날 자인의 수호신인 한(韓)장군 사당으로 제사를 지내러 가는 행렬을 시작으로 막이 오른다. 한장군은 9세기 전후 신라시대 경산 자인 도천산 일원의 도천산에 기거하면서 자인현 주민들을 괴롭혀 온 왜구들을 섬멸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이어 한장군이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꽃관을 쓰고 추었다는 춤 ‘여원무’ 공연과 자인단오 굿, 팔광대 놀이, 계정들소리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둘째 날에는 천연기념물 제368호인 경산삽살개 공연, 마술쇼, 삼천포 농악놀이, 고성농요 공연, 음악회가 열리고 세째 날인 11일에는 경기 웃다리농악, 경남농악, 전라도 우도농악, 충천욱다리농악 등 풍물놀이 공연과 부채춤, 영남민요, 피리독주, 한국무용 등 다양한 공연을 선사한다. 마지막 날에는 공중줄타기와 대동놀이, 창포머리감기 시연, 전통혼례, 단오춤풀이, 도립국악단 공연, 정가(正歌), 국악한마당, 불꽃놀이, 가야금병창, 사물놀이, 한국무용, 민요 등 공연으로 축제 한마당을 장식한다. 이와 함께 윷놀이, 투호놀이, 씨름대회, 널뛰기, 그네뛰기, 단오떡·엿치기, 도자기공예, 서예·문인화체험, 천연염색체험, 전통다도체험 등 전통 민속놀이 체험과 농특산물 직판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한다. 최영조 경산시장은 “올해 경산자인단오제는 잊힌 우리 전통의 멋과 흥을 경험하는데 손색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말했다. 경산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이번주 토요일 마포에서 액운 쫓아냅니다

    이번주 토요일 마포에서 액운 쫓아냅니다

    ●망원지구서 ‘나루 굿’ 재현 마포에는 조선시대 때 소금과 생선, 새우 등이 유통되던 한강의 대표적인 나루터가 있었다. 언제 험악한 민낯을 드러낼지 모르는 물 위에서 조업해야 했던 뱃사람들은 당시 굿을 하며 무사 항해를 빌었다. 서울 마포구가 조상의 지혜가 담긴 마포나루 굿을 되살리는 행사를 연다. 마포구는 오는 4일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에서 ‘제26회 마포나루 굿’ 재현행사를 개최한다고 1일 밝혔다. 마포문화원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오전 10시 30분 성산대교 밑에서 진행된다. 주민 누구나 행사장을 찾아 관람할 수 있다. 재현행사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주당물림’, 주위의 부정을 물리치고 이날 모셔야 할 신령을 청하는 ‘부정청배’, 제단 촛대에 불을 켠 뒤 술을 따르고 복을 비는 ‘점화’ 등으로 이어진다. 이어 강이나 바다 등 물의 신령인 용신에게 바치는 ‘용신굿’(배굿), 지역 수호신 등을 모신 뒤 제물을 바치고 굿거리를 진행하는 지역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육지굿’(도당굿) 순으로 진행된다. ●“지역 고유 향토문화 보존·계승”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마포나루 굿처럼 잊혀져 가는 지역의 향토 문화를 보존·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남성우월주의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

    [송혜민의 월드why] 남성우월주의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으로 한국사회가 불안과 공포, 분노의 여진을 갖고 있던 지난달 29일 오전 3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20대 남성이 여대생(22)의 몸에 알콜을 끼얹고 불을 붙여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가 자신과 헤어진 것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끔찍한 범죄였다.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이 이탈리아에 만연한 남성 우월주의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및 우월주의가 개별 국가 단위를 초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사건이 155건, 구타사건이 8856건, 스토킹 사건이 1261건에 달했지만, 이중 신고를 한 여성은 10%에 불과했다. 나머지 90%는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며 어린 시절부터 교육에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이러한 사상이 문제로 지적된 것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국가와 종교를 막론하고 보편적 사상으로 인식되어 온 남성우월주의, 그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남성우월주의를 품은 역사 남성우월주의의 역사는 수렵채집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존을 위해 자연과 동물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당시 인류가 스스로 집을 짓고 도구를 이용해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타인 혹은 자연과 동물로부터 자신의 것, 공동체의 것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발생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성과 여성의 명확한 구분이 시작됐고,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이들이 믿는 신의 모습은 대부분 ‘남성’이 되었을 만큼 남성은 우월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신화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이 등장하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제우스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자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테네 여신 등 일부 여신이 제우스 못지않은 유명세를 떨쳤지만, 서구 신화 속 가장 우월한 신으로 제우스를 꼽는 것에 있어 반대하는 여론은 많지 않다. 종교는 또 어떠한가. 이슬람은 남녀 불평등 종교의 대표로 꼽힌다. 21세기에도 무슬림 여성들은 여전히 차도르와 히잡으로 온 몸을 감싸야 한다. 이를 단순히 옳고 그름이 아닌 문화적 차이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성차별로 대두되는 이슬람의 남성우월주의가 10세 전후 어린 소녀의 강제 결혼과 오로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염산테러 등의 폭력적 행태를 낳은 것만은 사실이다. 자비와 자애를 강조하는 불교에도 여자는 남자가 되어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전여신설(轉女身說), 여성은 제석천(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범천(불교의 호법수호신), 불타가 되지 못한다는 여인오장설(五障說) 등이 존재하며, 현대에 들어서는 과거에 비해 지위가 비교적 상승하긴 했으나 여전히 비구니는 비구의 종속적 위치에 있다. 이밖에도 다수의 개신교는 현재도 여성 목사 안수를 불허하며, 대대로 남성 교황을 필두로 해 온 가톨릭 역시 종교적 자유는 인정하나, 주요 보직을 둘러싼 종교 내 정치적 자유는 불허하는 반쪽 평등을 고수한다. 조선시대 유교사상의 심화는 남성 중심 사회를 만들었고 이것은 남존여비, 남성우월사상으로 가지를 뻗쳤다. 사상이 또 다른 사상을 낳으면서 17세기 이후 조선 여성들은 ‘칠거지악’, ‘삼종지도’ 등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예속적 숙명을 따라야 했다. 결국 시대와 종교, 국가를 불문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해 왔으며, 이러한 구별이 나아가 차별 및 남성의 우월주의로 발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성 평등을 위한 노력 지금 이 시간에도 남성우월주의를 타파하고 여성 인권신장을 이루기 위한 각양각색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 흥미로운 것은 신(神)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서 인간의 성 차별을 지양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 해, 영국 성공회 교회의 한 여성 주교는 신을 표현할 때 남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인 ‘He’ 대신 ‘God’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글로스터의 레이첼 트레위크(Rachel Treweek) 주교는 “신은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그렇다고 신(God)이 남성(Male)인 것은 아니다. 신은 신일 뿐(God is God)”이라면서 “신을 묘사할 때 ‘그’(He) 또는 ‘그녀’(She)의 대명사를 쓰는 것 보다는 ‘God’의 표현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면서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가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신학자들은 “언제나 신이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말해왔지만 우리가 스스로 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신에게는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기나긴 역사적·종교적 근거를 들어, 누군가는 남성우월주의를 포함한 성 차별적 습성이 인류의 내재된 본성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남성우월주의와 여성 차별은 그저 문화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성(神性)의 성별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처럼, 여성과 남성의 가치를 달리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남녀가 아직 평등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기 마련이다. 성 평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남성우월주의가 타파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과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해외여행 | 스리랑카-코끼리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해외여행 | 스리랑카-코끼리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스리랑카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코끼리들이 사는 나라였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코끼리와 인간의 관계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죽고 죽이는, 그 악업의 고리를 끊을 해결책은 아직도 막막하다. 실론티와 불교 그리고 코끼리의 나라 90년대 초, ‘실론티’라는 제품이 국내에 처음 나왔다. 약간 쓰고 떫은맛의 홍차를 단숨에 좋아하게 만들었던 음료였다. 뚜껑을 따면 독특한 차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기분 좋게 씁쓸하고 달콤한 맛이 혀를 즐겁게 했다. 액체를 마시면서 ‘실론’이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해 찾아본 기억이 난다. 실론은 지금은 ‘스리랑카’ 라고 불리는 섬나라의 옛 이름이다. 15세기부터 전 세계의 바다로 진출한 포르투갈이 1505년 이 섬에 도착해 실론Ceilao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1815년 영국이 실론을 지배하게 되면서 1867년부터 내륙 산악지대에서 차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차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지형에서 생산된 실론티는 고급차의 대명사가 됐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차 산업은 부침을 겪었지만 스리랑카는 지금도 세계 4위의 차 생산국이다. 사람들은 스리랑카를 ‘인도양의 진주’, ‘인도 대륙이 흘린 눈물방울’로 비유한다. 남한의 3분의 2 면적에 2,000만 인구가 사는 이 나라는 차 외에 다른 두 가지로도 유명하다. 바로 소승불교와 코끼리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로부터 전파된 불교는 지금까지도 스리랑카의 주류 종교다. 인구의 70%가 불교 신도다. 10세기 이후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가 득세한 반면, 스리랑카는 소승불교의 진수를 면면히 보존하고 있는 종주국이다. 오래전부터 스리랑카 승려들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불교의 전통을 전파했다. 오늘날 인도의 고대 불교 사원들은 폐허가 되어 관광객과 순례자들만 찾아가는 쓸쓸한 곳으로 남았지만, 스리랑카의 오래된 불교 사원들은 아직도 신도들로 붐빈다. 매일 승려들이 주재하는 종교 의식이 열린다. 사원을 찾아 꽃과 음식을 정성스럽게 바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습은 진지하고 숭고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스리랑카는 코끼리의 나라이기도 하다. 불교는 코끼리를 신성시한다. 석가모니는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여러 전생을 거쳤는데, 그중 하나가 코끼리였다.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싯다르타석가모니의 속명를 낳기 전 자궁 속으로 흰 코끼리가 들어오는 태몽을 꾸기도 했다. 코끼리는 불교 사원과 부처의 수호신이면서, 스리랑카 건축과 미술의 가장 흔한 소재이다. 종교 행사의 맨 앞장에 서는 동물도 코끼리다. 해마다 지역별로 열리는 페라헤라Perahera 축제 행렬의 선두는 좋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점잖게 걷는 코끼리의 차지다. 그토록 사랑받는 동물이라 그런지 스리랑카의 단위 면적당 코끼리 밀도는 어느 국가보다도 높다. 현재 약 6,000마리의 야생코끼리가 국립공원과 민가 주변의 숲에서 노닐고 있다. 같은 소승불교를 믿는 라오스나 미얀마에선 좀 다르다. 코끼리를 일꾼으로 부린다. 그곳의 코끼리들은 산악 벌목 현장에서 베어낸 통나무를 끌고 내려오는 고된 일을 해야 한다. 반면 스리랑카의 코끼리는 유유자적, 먹이를 먹으며 숲과 들판을 어슬렁거린다. 개발에서 시작된 비극 다큐멘터리 제작차 스리랑카의 내륙을 지나던 중 도로에서 50m쯤 떨어진 들판에서 코끼리 3마리가 나뭇가지를 훑으며 이파리를 먹는 모습을 보았다. 늦은 밤 숲을 관통하는 도로에선 길을 건너는 코끼리 가족을 여러 번 마주쳤다. 그럴 때면 스리랑카 운전사는 자동차를 멈추고 거대한 동물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새끼를 거느린 어미를 자극할까 봐서다. 자동차에 위협을 느낀 어미나 성난 수컷 코끼리가 자동차를 공격하고 짓밟아서 탑승자가 사망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고 한다. 코끼리의 습격은 민가나 경작지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스리랑카에선 매년 코끼리에 밟혀 죽는 사람이 60~70여 명에 달한다. 밭에서 일하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코끼리와 잘못 마주쳐 변을 당하는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비참하게 죽는 일이 호랑이한테 잡혀 먹히는 호환虎患이었다면, 21세기 스리랑카에선 상환象患이 가장 끔찍한 죽음이다. 코끼리는 인가를 습격해 집을 부수기도 한다. 취재팀이 방문한 지방의 양곡상 주인은 집에 설치해 둔 CCTV에 찍힌 코끼리를 보여 줬다. 대낮에 열어 놓은 대문으로 코끼리 한 마리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 침입자는 주인이 소리를 지르자 뒷마당으로 가서 짖어대는 개의 집을 부셔 버리고 내뺐다.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 양곡상 주인은 인근에 국제공항이 들어선 이후부터 코끼리의 침입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스리랑카엔 몇년 전부터 개발붐이 일고 있다. 코끼리 서식지인 정글을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공항과 크리켓 경기장, 신규 주택지를 조성했다. 살 곳과 먹이를 잃은 코끼리들은 경작지와 민가를 습격했다. 코코넛야자나무를 머리로 박아 쓰러뜨린 뒤 잎을 훑어 먹고, 논밭을 짓밟고 다니며 벼와 토마토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식성이 좋은 코끼리는 하루 200kg의 식물을 먹는다. 코끼리 한두 마리가 경작지를 휩쓸고 지나가면 몇 달 농사를 한순간에 망쳐 버리는 셈이다. 내가 만난 코끼리 피해지역 농부들은 농사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농민들도 반격에 나섰다. 코끼리를 쫓기 위해 함정을 파고, 고압 전기선을 설치했다. 가장 잔인한 퇴치법은 호박폭탄이다. 코끼리가 좋아하는 둥근 호박의 윗부분을 칼로 오려내고 속에다 폭발물을 집어넣는다. 그걸 농민들이 밭에 뿌려 두면 코끼리는 폭탄이 든 줄도 모르고 큰 호박을 코로 집어 한 입에 우적 씹는다. 그 순간 폭탄이 터지면서 턱과 입이 찢겨 나간다. 당장 죽지 않은 코끼리는 쓰러져서 며칠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다가 숨이 끊어진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매년 100마리 이상의 야생코끼리가 죽어 간다. 정글을 없애고 개발이 계속되는 한 코끼리와 인간이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의 악순환은 끊이지 않을 테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생긴 그 악업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지, 해결책은 아직 막막한 실정이다. 오늘도 버려지고 죽어 가는 코끼리 스리랑카에는 코끼리 고아원과 임시보호 센터가 몇 곳 있다. 고아원은 말 그대로 어미를 잃은 새끼 코끼리를 거둬 키우는 곳이다. 임시보호 센터는 고아 코끼리가 국립공원이나 밀림으로 돌려보내질 때까지 야생에 적응하도록 돌봐 주는 곳이다. 인간과의 갈등으로 희생되는 코끼리가 많아질수록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는 어린 짐승도 늘어난다. 고아 코끼리가 가장 많은 곳이 스리랑카 정부가 운영하는 피네왈라Pinnewala 고아원이다. 이곳엔 약 60마리의 코끼리가 살고 있다. 코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어린 새끼에게 우유를 주고 먹이를 먹이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지 못한 아기 코끼리들은 관광객이 든 우유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더 달라고 보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른 녀석들은 다른 새끼의 등 위에 올라타고 장난을 친다. 코끼리와 인간의 분쟁을 취재하던 중, 어느 마을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달려가 보니 야자나무 옆에 어린 코끼리 한 마리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다 자라지 않았는데도 누워 있는 몸집은 커다란 바위처럼 육중했다. 허공으로 뻗은 네 다리는 단단한 기둥 같았다. 새벽에 누군가가 설치해 놓은 전기선에 감전된 것 같다고 주민들이 알려 줬다. 코끼리의 사체를 처음 봤기에 가슴이 저렸다. 코끼리의 감은 눈에는 물기가 서려 있었다. 밤새 맺힌 이슬인지, 아니면 고통스럽게 죽어 가며 흘린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냄새를 맡은 독수리와 까마귀들이 하늘을 까맣게 덮은 채 맴돌고 있었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사진 손현철 KBS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佛法 수호’ 넘어 ‘전쟁 교훈’ 까지 담은 조선 후기 천왕문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佛法 수호’ 넘어 ‘전쟁 교훈’ 까지 담은 조선 후기 천왕문

    한국 불교는 이른바 숭유억불 정책으로 곤경에 처했던 조선시대 때조차 뛰어난 돌파력을 보여주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오히려 자신들이 처한 존립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았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호국 활동을 펼치며 입지를 넓힐 수 있는 명분을 쌓은 것이다. 수행자들은 왜란이 일어나자 승군을 조직해 싸웠고, 호란을 앞두고 수도를 방어하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쌓고 지킨 것도 이들이었다. ●당시엔 유교 대신 불교가 민심 보듬고 위로 당시의 국가 이념인 유교는 죽음의 문제에 직면한 백성을 보듬을 방법이 없었다. 고통을 위로하고 죽은 이를 극락왕생케 하는 불교는 사실상 민심을 아우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렇게 되자, 왕실도 불교에 일정한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불교에 대한 민심의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대부들도 더이상 불교를 무시할 수 없었다. 양란(兩) 이후 전국 각지에서는 불사(佛事)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파괴된 사찰의 모습을 이전 상태로 회복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전보다 키우는 대대적인 불사도 적지 않았다. 급격히 강화된 불교의 위상은 오늘날 추측하는 것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양란은 불교 신앙의 모습을 바꿨고, 사찰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웬만한 절에는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천왕문(天王門)의 유행도 양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본격적인 사찰 영역에 들어서면 대개 처음 마주치는 전각이 천왕문이다. 내부에 무섭게 생긴 사천왕(四天王)이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절을 호위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사천왕 양란 이후 천왕문 형태로 규모 커져 사천왕은 고대 인도의 토속신앙에서 유래했지만, 불교에 편입되면서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천왕은 세상의 중심이라는 수미산 중턱에서 각각 자신들의 권속을 거느리고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각각 맡아 지키는 존재라고 한다.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이다. 그렇다고 사천왕이 양란 이후 갑자기 부각된 존재는 아니다. 사천왕상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신라시대에는 경주 사천왕사터의 소조 사천왕이나 감은사터 석탑의 사리장엄 같은 소규모 조각상이나 불탑에서 나타난다. 고려시대에도 석탑·석등이나 구리거울에 조각한 경상(鏡像)에 보인다. 작은 장엄으로나 나타나던 사천왕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갑자기 천왕문의 형태로 스케일이 커진 것이다. ●지금 전하는 임진왜란 이전 천왕문은 보림사뿐 조선 후기 천왕문은 전국에 17곳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이전 천왕문은 1515년 세워진 장흥 보림사 것이 유일하다. 보은 법주사는 1624년, 순천 송광사는 1628년, 구례 화엄사는 1632년, 완주 송광사는 1649년 천왕문을 조성한다. 이후 고흥 능가사, 홍천 수타사, 고창 선운사, 청도 적천사, 남해 용문사, 하동 쌍계사, 양산 통도사, 안성 칠장사, 서울 봉은사, 여수 흥국사, 영광 불갑사에 잇따라 세워졌다. ●선수·각성 스님 건립 주도… 12곳 승군과 관련 조선 후기 천왕문을 새로 지은 사찰 가운데 임진왜란 당시 승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은 모두 9곳에 이른다.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었던 절도 3곳이 더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군대장 부휴당 선수(1543~1615)와 그의 제자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승군을 이끌었던 벽암 각성(1575~1660)을 비롯한 문도들이 천왕문의 건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천왕문은 종교 건축의 좁은 의미를 뛰어넘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교훈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역사적 기념비다. 불교 쪽에서 보면 유교 국가 조선에서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해낸 불교를 왕실과 조정에서 기억하라는 의미를 담은 무언의 상징물이다. 삼일절을 앞두고 찾은 절에서 천왕문을 발견한다면 이런 의미를 되새겨 봐도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

    혜음령은 경기 고양시 고양동과 파주시 광탄면을 잇는 고개다. 지금은 자유로와 통일로가 서울과 개성을 잇는 간선도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고려 말과 조선 시대에는 혜음령을 지나는 의주대로가 한양에서 황해도, 평안도 지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혜음령은 고양향교가 있는 고양동에서 흔히 용미리공동묘지로 불리는 서울시립용미리공원묘지로 넘어가는 고개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옛 의주대로는 정비가 이루어져 서울과 경기가 경계를 이루는 삼송동에서 임진강과 만나는 임진나루까지 걸어서 탐방할 수도 있다. ●혜음원 국립 숙박시설… 석불입상 높이 17.4m 혜음령과 광탄면 사무소 사이에는 혜음원 터와 용미리 석불입상이 있다. 혜음원은 고려시대 개경과 남경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예종 17년(1122) 세운 국립 숙박 시설이다. 왕의 행차를 위한 별원(別院)과 사찰도 있었다. 발굴 조사에서는 혜음원(惠陰院)이라고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나왔고, 동서 104m, 남북 106m의 절터에서 9개 석단에 27개 건물터가 확인됐다. 혜음원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나타나는 장지산 기슭에 용미리 석불입상이 세워진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높이가 17.4m에 이르는 한 쌍의 석불입상은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상에 새겨진 글을 토대로 조선 성종 2년에 해당하는 성화(成化) 7년(1471) 조성한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성화는 명나라 헌종의 연호다. 명문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도 줄줄이 적혀 있으니 석불입상의 조성과 연관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석불입상·혜음사 사회안전망 필요성 인식 담겨 하지만 석불입상에 얽힌 구전설화와 혜음사 창건 배경을 담은 고려시대 문신 김부식의 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고려시대 조성설(說)에 다시 마음이 기울게 된다. 설화에 따르면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 궁주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태기가 없었다.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궁주의 이야기를 들은 왕이 그들이 있다는 곳을 찾아가게 했더니 과연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 왕이 바위에 두 도승을 새기게 하고 불공을 드렸더니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편찬자이기도 한 김부식은 ‘혜음사 신창기’(惠陰寺 新創記)에서 혜음령 길을 두고 ‘산이 깊고 초목이 우거져 범과 이리가 떼 지어 모이고, 도둑의 무리도 숨기 쉬워 통행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모으고 병기를 휴대해 지나가는데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자가 한 해 수백 명’이라고 탄식했다. 이런 실상을 파악한 신하가 “허물어진 절을 새로 지어 중을 모으고, 그 옆에 집을 지어 노는 백성들을 정착시킨다면 짐승과 도둑의 해는 절로 멀어져 통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질 것”이라고 진언하자 왕이 그대로 따랐고 결국 ‘무서운 길이 평탄한 길이 되었다’는 것이다. ●빈민구제 정신 함축하고 있는 석불입상 용미리 석불입상 창건 설화와 혜음사 신창기는 의주대로 주변에 살고 있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단순히 도적을 토벌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빈민의 배고픔을 막아 도둑의 길에 빠져들지 않게 한다는 적극적 사고는 오늘날에도 배울 만하다. 고려시대에 오늘날의 표현으로 사회 안전망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석불입상 창건 설화는 상징성이 강한 설화의 특성상 구구절절한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신창기’와 다르지 않은 빈민구제 정신을 함축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석불입상은 혜음원과 비슷한 시기 일종의 세트로 조성한 것은 아닐까 상상도 해 본다. 반면 ‘세조와 정희왕후가 일시에 깨달을 것을 미륵에 기원했다’는 명문에서 비롯된 조선시대 창건설은 감동이 없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김욱동 창문을 열며] 새해 1월은 야누스의 달

    [김욱동 창문을 열며] 새해 1월은 야누스의 달

    영미 언어권의 사람들은 새해 첫 달을 흔히 ‘재뉴어리’(January)라고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장비에’(Janvier), 독일에서는 ‘야누아르’(Januar)라고 부른다. 발음은 조금씩 다르지만 언어 계통에서 보면 같은 조상에서 태어난 자손들로, 말하자면 서로 사촌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월을 뜻하는 이 단어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야누스’(Janus)라는 로마 신을 만나게 된다. 야누스 신은 머리 앞쪽과 뒤쪽에 눈이 달려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기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누스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흔히 ‘야누스의 두 얼굴’의 관용어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야누스 신은 두 얼굴의 사나이, 즉 위선자의 의미로 통한다. 그래서 야누스 신은 ‘악어의 눈물’이라는 표현처럼 자칫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대 로마 사람들에게 야누스 신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스 신화도 마찬가지지만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에는 각자 맡은 임무, 요즈음 말로 하면 ‘보직’이 하나씩 있다. 야누스 신은 동시에 양쪽으로 사물을 볼 수 있으니 파수를 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할 것이다. 그래서 야누스 신이 맡은 임무는 날이 밝으면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 새 아침을 밝아오게 하고, 하루가 지나면 하늘의 문을 닫아 황혼이 오게 하는 것이었다. 고대 로마에서 흔히 집이나 도시의 출입구 같은 곳에 이 신의 상(像)을 세워 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이왕 달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북아메리카 대륙에 오랫동안 살아온 인디언 원주민들에게는 새해 첫 달을 부르는 이름이 무척 많았다. 드넓은 대륙에 2000여 부족이 흩어져 살아온 만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가령 크리족 인디언들은 1월을 ‘노인들 수염이 헝클어지는 달’이라고 불렀고, 주니족 인디언들은 ‘눈 때문에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이라고 불렀다. 한편 알곤퀸족 인디언들은 ‘해에게 눈을 녹일 힘이 없는 달’이라고 불렀다. 이렇듯 인디언들은 사물을 추상적이나 관념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기 일쑤였다. 오늘날의 노스다코타주 지역에 살아온 아리카라족 인디언들이 1월을 두고 부른 이름은 아주 특이하다. 그들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이라고 불렀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매섭게 불고 대지가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 그들은 바깥출입을 삼가고 대신 집안에 머물며 마음을 가다듬고 내면세계를 점검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편 동양 문화권, 그중에서도 동아시아 세 나라에서 새해 첫 달을 부르는 방식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과는 사뭇 다르다. 아라비아숫자로 그냥 1월이라고 부른다. 물론 ‘정월’이니 ‘단월’(端月)이니 하는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본어로 ‘쇼가쓰’라고 부르는 ‘정월’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서양 문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메이지유신 시대에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음력을 과감히 버리고 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양력 1월 1일 설날을 ‘일본 설’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새해 첫 달을 ‘1월’이라고 부르는 것은 언뜻 보면 아주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군더더기 없이 내용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숫자나 색깔보다 우리의 가슴을 때리면서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서유럽이나 인디언들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1월’이라는 명칭은 아무래도 멋이 없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병신년 새해를 맞이한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이제 야누스 신처럼 지난해를 되돌아보면서 희망찬 새해를 설계할 때다. 지난 한 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가 유난히 많았다. 이제 반성할 것은 반성해 두 번 다시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새로 밝아 온 한 해를 내다보며 차분하게 미래의 계획을 세울 때다. 또한 아리카라족 인디언들처럼 우리의 시선을 마음 깊은 곳에 돌려 삶을 관조하고 명상할 때다. UNIST 초빙교수
  • [이주일의 어린이 책] 연못에 살던 어린 용의 ‘수호신’ 도전기

    [이주일의 어린이 책] 연못에 살던 어린 용의 ‘수호신’ 도전기

    경복궁 어린 용/조대현 지음/배종숙 그림/예림당/58쪽/9500원 얼마나 찌뿌둥했는지 몰라요. 연못 진흙 속에 100년 넘게 웅크리고 있어야 했으니까요. 내내 잠만 자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꿈을 꾸고 있었답니다. 코발트빛 잉크를 쏟아부은 듯 시퍼렇게 넘실대는 동해 바다 용궁으로 날아갈 꿈을요. 아직도 기억해요. 뜨거운 쇳덩어리로 나를 만들며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하시던 말을요. “저 깊은 동해 바닷속 용궁에 살아야 할 용이 고작 궁궐 연못 속에 있다니…. 하지만 네가 진짜 용이 된다면 바다로 날아갈 수 있지.” 19년 전 연못에서 건져 올려지던 날, 난 온몸의 비늘을 부르르 떨었어요. 진짜 용이 된 줄 알았다니까요. 하지만 난 150㎝ 길이의 쇳덩이에 지나지 않았어요. 바깥 세상도 백년 전과는 영 딴판이었어요. 인왕산 기슭 올망졸망 모여 있던 기와집은 어디로 갔나요. 순하고 느긋하던 사람들의 눈빛은 왜 불안으로 번뜩이고 날이 서 있는 걸까요. 온몸에 멍이 박히도록 날아가려 애썼어요. ‘죽어야 산다’는 장인의 말만 떠올리면서요. 어느 날 장인 할아버지와 눈빛이 비슷한 소년이 다가왔어요. “너도 뱀처럼 허물을 벗어 봐.” 맞아요. 나는 1997년 경복궁 경회루 연못에서 발견된 청동 용이에요. 고종 할아버지가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불이 나지 말라고 묻어두었죠. 나는 물의 신이니 불을 막을 수 있다면서요. 내가 정말 수호신이 될 수 있을까요. ‘나’를 벗고 날아갈 수 있을까요. 응원해 주세요. 초등학생 이상.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해외여행 | 세 가지 빛깔 네팔 여행

    해외여행 | 세 가지 빛깔 네팔 여행

    히말라야를 품은 순백의 나라, 설산만큼 순수한 사람들이 사는 대지, 가난해도 행복지수가 높은 무욕의 삶….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네팔의 표정은 훨씬 다채로웠다. 카트만두, 포카라, 치트완으로 떠난 백, 청, 홍 세 빛깔 네팔 여행기. ●白 포카라Pokhara히말라야 미니 트레킹 포카라에 머문 사흘 내내 찌푸렸다. 네팔의 우기(6~9월)는 9월 중순 끝자락으로 몰려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늘은 잿빛에서 먹색으로, 다시 희붐하게 변색하며 비를 흩뿌리다 거두길 거듭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Annapurna는 그 너머에서 아득했다. 짙고 자욱한 흰 벽 뒤로 안나푸르나안나푸르나 지역은 에베레스트Everest 지역과 함께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을 구성하는 산군이다. 만년설로 새하얀 안나푸르나 주봉8,091m을 비롯해 안나푸르나Ⅱ7,939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마차푸차르Machhapuchhre 6,998m 같은 고봉준령이 불쑥 잇따르며 수직의 위용을 과시한다. 산 좀 탄다 싶으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나 마차푸차르 베이스캠프MBC 3,700m로 방향을 잡는다. 시간, 체력, 경험 모두 충분치 않을지라도 사랑코트Sarangkot 1,592m나 푼힐Poonhill 3,210m 같은 전망대가 있으니 안나푸르나 조망은 어렵지 않다. 관건은 언제나 날씨다. 안나푸르나로 향할 때 그 전초기지는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다.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페와 호수Phewa Lake 덕분에 호반 휴양도시의 정취가 물씬하다. 맑은 날이면 안나푸르나 연봉이 호수 표면에 그대로 내려앉는데 그 환상 같은 풍경을 쫓아 노 젖는 배들로 호수는 복작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부질없을 줄 알면서도 작은 나무배에 올랐다. 거무튀튀한 구름에 막힌 빛이 호수 물빛을 괴이할 정도로 짙은 옥빛으로 만들었을 뿐 안나푸르나의 반영은 없었다. 날씨 흐린 게 제 탓도 아닌데 여자 뱃사공은 기회 날 때마다 탁한 허공을 가리키며 저 즈음에 안나푸르나가 있다는 둥 어쨌다는 둥 졸지에 죗값을 치렀다. 끝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꼭 보고야 말겠다는 헛된 욕심만 부풀렸다. 안나푸르나 미니 트레킹은 그래서 더 비장했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Australian Camp 1,920m를 목적지로 삼았다. 푼힐 전망대나 사랑코트 같은 대중적 코스에 비하면 생소하지만 그만큼 덜 북적이고 더 호젓하다. 포카라에서 차량으로 40~50분쯤 굽이진 산길을 오르면 칸데Kande 1,750m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오스트레일리안 캠프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산행거리다.그저 산을 좋아할 뿐이라는 원로급 산악인 여럿도 동행했다. 소싯적부터 히말라야를 숱하게 오르내린 산악인의 아우라는 숨길 수 없었다. 꼬박 이틀을 걸어 올랐던 길을 이제는 차로 단박에 오르니 그 감회도 남달랐으리라! 초행 초보 트레커의 기운을 북돋기 위함이었을까, 일순 안나푸르나가 구름 커튼을 젖히고 빼꼼히 내려봤다. 푸른 다랑이 논 위로 드러난 은빛 자태가 눈부셨다. 극적인 등장에 우왕좌왕 헤매다가 금세라도 숨을까 조마조마했다. 저 위에 오르면 더 가까이에서 더 웅장하게 맞이할 수 있겠지, 숨이 헉헉대는 가파른 길이었지만 흥이 났다.그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등하교하는 산간 마을 꼬마들과 마주칠 때면 밭은 숨이 창피했다. 나마스테! 이방인과 현지인의 길이 교차했다. 구름이 몰려오니 서둘러라, 하산길의 이방인이 조언했을 때 이미 때는 늦었었나 보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흰 벽은 아무리 기다려도 걷힐 성싶지 않을 만큼 짙고 자욱했다. 아랫마을 담푸스Dampus로 옮겨 다시 기회를 엿봤지만 아예 비가 내렸다. 더 이상 욕심 부릴 수 없으니 차라리 후련했다. 빗속에서 노래가 퍼졌다. 인생을 읊조렸고 사랑을 갈구했다. 산사람들의 노래는 처연했다. 4년 전 9월 중순, 안나푸르나 남벽 등정을 위해 떠났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박영석 대장과 대원을 위한 조가였다. 조가는 비와 안개를 뚫고 더 다가갈 수 없는 아득한 산에 스몄다. 서로들 촉촉해진 눈을 피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靑 치트완Chitwan네팔 정글 사파리 네팔의 단편만 알았던 덕에 치트완은 흥미로웠다. 위로 솟은 수직의 히말라야 대신 수평의 평야와 밀림이 드넓었고, 카트만두의 소음과 번잡함은 찾을 길 없이 고요하고 평온했다. 코끼리, 코뿔소, 호랑이 노니는 그곳에서, 아련한 향수에 젖었다. 수평의 푸른 대지에서 향수에 젖다새로운 네팔을 만나는 데는 카트만두에서 소형 비행기로 30분이면 족했다. 치트완 바라트푸르공항Bharatpur Airport에 내리자마자 덥고 습한 기운이 턱 몰려왔다. 네팔 남부 지역이니 당연했지만 히말라야 설산의 차가운 기운만 떠올렸던지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과 평야도 생경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의 나라에서 해발 60m에 불과한 수평의 대지가 이토록 광활했다니….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타루Tharu족이 살고 있는 치트완 사우하라Sauraha 마을은 아련한 향수를 불렀다. 영락없이 30~40년 전 우리네 시골마을이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하릴없는 아낙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너른 풀밭을 운동장 삼은 천진난만한 동네 꼬마들 사이로 물소가 풀을 뜯었다. 호박잎 줄기를 벗기는 처자는 수줍은 미소로 이방인을 바라봤다. 흙벽과 나무로 지은 집은 초라하다기보다 따스함으로 정감 어렸다. 조무래기들은 자기들이 찍힌 사진을 보며 까르르르 웃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다시 찍어 달라 카메라 앞에 섰다. 잊었던 어린 시절 해질 무렵의 풍경이 떠올라 아련했다. 그 마을에서 치트완 정글 탐험에 나섰다. 치트완은 197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유네스코는 1984년 세계자연유산 목록에 올렸다. 희귀종인 외뿔코뿔소와 멸종위기종인 벵골호랑이 등 40종 이상의 포유동물과 450종 가량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단다. 마을에 호랑이와 코뿔소 조형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카누에 정글 트레킹 그리고 코끼리 등에 업혀서까지 치트완 정글 곳곳을 누볐는데, 932km2에 달하는 전체 면적을 생각하면 진면목에 다가서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투어용’으로는 탁월했다.나무 카누에 올라 마을과 정글을 가르는 라프티강Rapti River의 흐름을 따랐다. 땅 속과 위, 그리고 물 속에서 각각 1,000년씩 총 3,000년을 살 정도로 단단하다는 살Sal나무로 만든 카누였지만 야생 악어와 맞닥뜨렸을 때의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물 속에 손을 넣지 말라는 정글 길잡이의 지시에 충실할 수밖에…. 강 양쪽 둑으로 공작새며 이름 모를 야생조류들도 출몰했는데 악어와 달리 평온함을 선사했다. 탐험객의 긴장이 느슨해졌다고 판단한 건지, 길잡이는 카누에서 내려 정글 트레킹에 나서기 전 잔뜩 겁을 줬다. 코뿔소와 곰은 물론 호랑이와도 마주칠 수 있으니 반드시 뭉쳐서 다녀야 한다는 둥, 코뿔소가 달려들 때는 지그재그로 도망쳐야 한다는 둥, 얼마 전 마을의 한 소녀가 호랑이에게 공격당했다는 둥 진지했다.정작 정글에서 만난 것은 순하고 겁 많은 사슴과 들소뿐이어서 맥이 풀렸다. 호랑이와는 마주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 아니냐며 스스로 다독였다. 다음날, 코끼리를 타고 정글 투어에 나섰다가 강가 진흙에 선명하게 찍힌 호랑이 발자국을 보니 더욱 그랬다.조련사까지 포함해 5명을 등에 업고 물살 센 강을 건너고 빽빽한 숲을 비집는 코끼리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연민만 극복한다면 코끼리 정글 트레킹은 이곳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정글 탐험법이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코끼리 걸음 특유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정글의 정취를 느긋하게 누렸다.호랑이쯤 못 보면 어때, 일찌감치 욕심을 버렸는데 풀숲에서 뭔가 바스락거렸다. 기연가미연가 시선을 집중하려들자 쑤욱 육중한 몸을 드러내는 코뿔소! 코끼리에게 덤벼들면 어쩌나 걱정도 잠시, 녀석은 관심 없는 듯 느릿느릿 제 갈 길 가며 제 볼일을 봤다. 무사의 철갑을 두른 듯 빈 틈 없는 그 투박한 외양이 맘에 들었다. ●紅 카트만두Kathmandu세계문화유산 순례 4월 네팔을 흔든 강진은 수도 카트만두에도 상처를 남겼다. 생명과 문명이 스러졌다. 5개월이 흘렀어도 상흔은 있었다. 다행히 흐릿했다. 삶은 일상을 되찾았고 흔들린 건물은 다시 섰다. 카트만두의 세계문화유산도 변함없이 여행자를 반겼다. 카트만두 첫 여행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타멜 시장Tamel Market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카트만두의 대표적 전통시장이다. 이어지다 갈라지고 다시 합류하기를 반복하는 골목 길목마다 삶의 활기가 펄떡였고, 골동품이며 과일이며 옷가지며 삶을 지탱하는 물품으로 빼곡했다. 크고 작은 불탑과 힌두교 건축물도 가세해 티베트불교와 힌두교가 혼재된 네팔의 색채를 더했다. 네팔의 옛 왕국들은 카트만두 밸리Kathmandu Valley로 불렸던 카트만두 분지 일대를 본거지로 삼았다. 카트만두, 박타푸르Bhaktapur, 파탄Patan 왕국이다. 왕궁과 함께 네팔 전통 건축물이 보존돼 있어 가치가 높다. 유네스코도 일찌감치 그 가치를 인정했다. 네팔의 8개 세계문화유산 중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Lumbini를 제외하고 모두 카트만두 밸리에 있다. 이러니 카트만두 여행은 곧 세계문화유산과의 동행일 수밖에 없다. 타멜 시장의 인파에 밀리다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에 다다랐다. 왕궁이라는 뜻을 지닌 더르바르는 이곳이 옛 왕궁이었음을 알려 줬다. 힌두교의 원숭이 수호신인 하누만에서 이름이 유래된 하누만 도카Hanuman Dhoka 왕궁이 중심이다. 자간나트 사원Jaganath Temple에 서서 광장을 둘러보니 어떤 건축물은 나무 버팀목에 의지한 채 위태롭게 서 있었다. 가시지 않은 지진의 상흔이었다. 자간나트 사원 처마 받침목의 ‘에로틱 조각Erotic Carving’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 무거운 마음이 조금 가셨다.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남녀의 성애 장면을 조각했다고 하는데 노골적이어서 살짝 민망했다. ‘살아 있는 신’ 쿠마리가 살고 있는 쿠마리 사원Kumari Ghar에도 들렀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힌두교의 여신을 대신하는 살아 있는 신으로, 3~8살 소녀 중에서 선택해 이곳에 모시고 초경 때까지 섬긴다는데, 종교적 행사가 아닌 이상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갇혀 지내는 셈이니 외지인의 시각에서는 측은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3대 고도 중 파탄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박타푸르가 이를 달랬다. 옛 정취가 고스란하고 규모도 컸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에 세워진 옛 건축물들이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중세 도시에 현대인이 거주하는 풍경은 압권이었다. 세계적 문화재 속에 일반인의 주거지가 함께 있다니, 놀라웠다. 광장과 골목마다 가게가 즐비했고 사원이나 왕궁 앞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무리 지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타우마디Taumadhi 광장의 위용이 가장 높았는데, 하늘로 솟은 5층 규모의 냐타폴라Nyatapola 사원 덕택이었다. 그 사원에 올라 내려다보니 박타푸르가 한눈에 들어오며 마치 중세시대로 거슬러 간 듯했다. 옛 왕국이 아니더라도 세계문화유산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보드나트Bodhnath는 네팔에서 가장 큰 불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티베트 불교 순례자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순례자들은 거대한 스투파를 시계 방향으로 돌며 의식을 치렀고, 한 번 돌릴 때마다 불교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는 ‘마니차’는 멈출 틈이 없었다. ‘네팔 속의 작은 티베트’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원숭이가 많아 원숭이 사원으로도 불리는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0년 역사를 지닌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인데, 힌두교 양식도 보태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300여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하얀 돔과 황금빛 첨탑이 눈부신 스투파가 압도했다. 스투파에 새겨진 ‘부처의 눈’은 신성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네팔 힌두교 사원을 대표하는 파슈파티나트 사원Pashupatinath Temple도 지나칠 수 없었다. 네팔 최대의 힌두교 사원이자 성지인데, 외지인에게는 네팔 힌두교인의 장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소로 더 의미가 있다. 사원 앞으로는 인도 갠지스Ganges강으로 연결된다는 바그마티Baghmati강이 흐른다. 살아서는 여기에서 몸을 씻고 죽어서는 이곳에 뿌려지는 게 힌두교도의 종교적 소망이라고 한다. 강둑에 늘어선 화장시설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작불이 꺼지면 바그마티강에 뿌려지겠지, 누군가의 마지막 소망이 이뤄지고 있는 그 순간, 어린 소녀는 그 강에서 머리를 감았다. ▶travel infotravel TIP지진 이후 네팔여행2015년 4월25일 지진 발생 이후 우리 정부는 네팔 여행 안전정보를 상향 조정했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랑탕 3개 등반지역에 대해서는 ‘철수권고’를, 그 외 지역에 대해서는 ‘여행자제’ 조치를 취했다. 이번 취재는 지진 후 5개월 뒤인 9월 중순에 이뤄졌다. 전문 산악인과 미디어로 구성된 답사팀이 직접 네팔의 주요 여행지를 경험했으며 답사결과를 토대로 여행에 무리가 없다는 점을 주네팔한국대사관 등에 전했다. 대한항공도 지진 여파로 주 1회로 감편했던 인천-카트만두 노선을 10월2일부터 주 2회로 정상화했다. 주네팔한국대사관측은 우기(6~9월) 이후 여행안전정보 단계 재조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11월10일 현재까지 기존 단계가 유지되고 있다. 네팔 여행 적기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기(6~9월)가 아닌 10월부터 5월까지가 적기다. 네팔 남부 치트완은 고온다습해 한여름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는 관문도시인 포카라는 상대적으로 덜 덥고 덜 추운 편이다. 고도에 따른 기온차가 심한 만큼 겨울철 트레킹에는 특히 방한에 신경 써야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과 문화탐방3대 주요 등반 지역 중 안나푸르나 지역을 중심으로 트레킹이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기존의 푼힐 전망대 등을 대신해 트레킹 전문여행사인 혜초여행사가 새롭게 개발한 미니 트레킹 코스다. 하산까지 6시간 가량의 트레킹으로 안나푸르나를 조망할 수 있다. 혜초여행사는 우리네 둘레길처럼 히말라야 주변을 걷는 ‘히말라야 라운드’ 상품, 네팔 문화탐방 상품 등도 운영하고 있다. 혜초여행사 www.hyecho.com 02 6263 2000 히말라야 산악 비행기Mountain Flight국내선에 투입되는 소형 항공기를 이용해서 카트만두에서 히말라야 설산을 한 바퀴 돈다. 손쉽게 히말라야 연봉을 만날 수 있는 방법. 왕복 1시간 가량 소요되며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까지 볼 수 있다. 조종석도 잠깐 구경할 수 있다. 비수기에는 170달러선이지만 성수기에는 230달러 수준까지 오른다. 물론 날씨가 좋아야 가능하다.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혜초여행사 www.hyecho.com, 대한항공 kr.koreanair.com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