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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연속 승부차기 선방 신화용 “서 감독 복귀 첫 승 이 손으로”

    3연속 승부차기 선방 신화용 “서 감독 복귀 첫 승 이 손으로”

    ‘수원의 수호신’ 신화용이 승부차기에서 3연속 선방 쇼를 펼쳐 ‘세오’에 복귀 첫 승을 안겼다. 신화용은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불러들인 제주와의 대한축구협회(FA)컵 8강전에서 연장 후반까지 2-2로 비겨 승부차기에 들어가 제주의 첫 키커부터 3연속 킥을 연거푸 막아내 2-1 짜릿한 승리를 챙겼다. ABBA룰로 진행된 승부차기에서 신화용은 첫 키커 권순형의 슈팅을 막아냈다. 수원 데얀이 킥을 성공해 앞섰지만 두 번째 키커 이기제의 슈팅이 제주 골키퍼 이창근에게 걸려 그대로 1-0이 됐다. 신화용은 두 번째 키커 찌아구의 슈팅을 앞으로 나와 막아낸 뒤 세 번째 김성주의 슈팅까지 막아냈다. 수원 세 번째 키커 염기훈이 성공한 뒤 신화용이 제주 네 번째 키커 마그너를 막지 못해 2-1 상황에 제주 마지막 키커 이창근의 슈팅이 골대 위를 한참 벗어나 긴 승부가 끝났다. 원래 FA컵 8강전은 지난 3일 세 경기가 열려 전남, 대구, 울산 등이 선착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과 겹쳐 이날 치러진 제주전에서 승리한 수원이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물러난 지 50일 만에 FA컵과 AFC 챔스리그 일정을 명분으로 돌아온 서정원 감독에게는 복귀 첫 승을 선사했다. 수원은 A매치 일정 관계로 주축인 사리치, 홍철이 빠진 상태로 제주와 단판 승부를 펼쳤다. 제주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중원의 핵심 이창민이 무릎을 다쳐 결장했다. 수원이 앞서나갔다. 데얀이 전반 4분 상대 수비진의 압박이 느슨해진 틈을 타 골을 넣었다. 왼쪽 크로스를 간결한 트래핑으로 잡은 뒤 정확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제주의 반격은 만만찮았지만 0-0으로 전반을 마친 수원은 후반 중반까지 추가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되레 후반 32분 제주의 김성주에게 동점 골을 내줬다. 김호남의 왼쪽 크로스를 김성주가 절묘한 헤딩슛으로 연결했고, 공은 신화용의 겨드랑이를 빠져 골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수원은 연장 후반 8분 박기동이 염기훈의 왼쪽 크로스를 헤딩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지만 후반 추가시간 제주 마그노의 슈팅이 골대 오른쪽을 맞고 나온 것을 찌아구가 침착하게 밀어 넣어 승부차기로 끌려갔지만 신화용 덕에 세오에게 값진 승리를 선사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000년 동안 화산재에 묻혀 있던 ‘고대 신전’ 찾았다

    2000년 동안 화산재에 묻혀 있던 ‘고대 신전’ 찾았다

    약 2000년 동안 화산재에 파묻혀 있던 ‘잃어버린 고대 신전’이 완벽하게 보존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이 발견된 곳은 이탈리아 나폴리 연안에 위치한 폼페이다. 폼페이는 약 2000년 전인 기원전 79년, 폼페이 인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양의 화산재에 뒤덮였고, 결국 1만 6000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도시는 소멸했다. 이후 1592년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 및 미술 작품들의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발굴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것은 폼페이가 소멸되기 전, 가정의 수호신을 모신 사당으로 추정된다. 2000년 가까이 화산재에 묻혀 있던 이 사당은 밝은 붉은색 벽을 가지고 있었으며, 외벽에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그림은 로마 제국의 전형적인 예술 스타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벽에는 이집트의 신 아누비스(Anubis)의 로마 버전으로 추정되는 개 머리를 가진 남자 및 새와 뱀 등이 그려져 있다. 사당 안에는 작은 방이 있었으며 현재 이 방은 아직 발굴 작업 중이다. 벽과 벽화 등의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했으며,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2000년간 잃어버린 도시였던 폼페이에 대한 더욱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폼페이 고고학 발굴 담당자인 마시모 오산나는 “모든 집에는 각각의 신전이 있었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거대한 수영장과 화려한 장식을 가진 특별한 방에 이 신전을 두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당 발굴에 대해 “매우 믿기 어렵고 불가사의한 발견”이라면서 “차근차근 상세히 연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정조가 임명한 장승 우두머리, 수호신 되어 노량진 품었구나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정조가 임명한 장승 우두머리, 수호신 되어 노량진 품었구나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7회차 동작-장승배기의 전설 편이 9월의 첫 주말인 지난 1일 진행됐다. 5회에 걸친 여름야행 프로그램이 지난주 마무리되고, 장승배기의 전설을 품은 동작구에서 주말 오전 프로그램으로 돌아왔다. 서울 그랜드투어는 올 연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에 열린다.치열한 예약전쟁에서 승리한 낯익은 얼굴과 새로운 얼굴 40여명이 이날 오전 10시 정각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6번 출구를 출발했다. 장승배기역은 집결지와 출발지로 알맞은 장소이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 한 쌍이 정겹게 참가자들을 맞아주고, 옆에는 벤치도 마련돼 있다. 일행은 장승과 장승제가 열리는 동작도서관을 지나 송학대에 올랐다. 높이 40m의 선유봉 절집이 폭파되면서 갈 곳을 잃은 돌부처를 모신 극락정사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를 구경했다. 고구동산 길과 서달산 자연공원으로 이어지는 제법 깊은 숲길을 트레킹한 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짧지만 긴’ 투어를 마무리했다. 적당한 높이의 산자락과 숲에 안긴 동작은 한강 남쪽의 강변도시라는 고정관념을 불식시켰다.해설을 맡은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 거실 안까지 들어가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도록 섭외,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또 숭실대 캠퍼스 안 한국기독교박물관 관계자는 휴일인데 출근해 문을 열어줬다. 희망자에 한해 담당 학예사가 1시간짜리 해설을 제공했다. 모두 27명이 참여한 전자 설문조사에서 주관식 소감을 밝힌 11명은 “김 전 대통령 사저와 기독교박물관 탐방이 인상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 유익한 트레킹” “특별한 대접을 받은 기분”이라고 답했다. 동작구는 동작진(동재기)이라는 한강의 나루에서 이름을 따왔다. 노량진과 흑석진이라는 만만찮은 이웃 나루와의 경쟁을 물리치고 자치구 지명을 거머쥐었다. 동작이라는 지명 아래 노량진과 흑석진을 품었으니 한강진(한남동)과 용산 사이 서울 강남과 강북을 잇는 주요 간선망을 통합한 셈이다.조선 시대 한강(경강)에 놓인 13개의 주요 나루는 동쪽에서부터 광진(광나루)~송파진(송파나루)~삼전도(삼전나루)~뚝도(뚝섬나루)~두모포(두무개나루)~한강진(한강나루)~서빙고(서빙고나루)~동작진(동재기나루)~노량진(노들나루)~용산(용산나루)~마포(삼개나루)~서강(서강나루)~양화진(양화나루)을 꼽는다. 경강을 한강·용산·서강 등 3개의 나루로 크게 나누면 3강이고, 여기에 마포·양화진 2개를 더하면 5강이라고 파악했다. 두모포·서빙고·뚝섬을 합쳐 8강이라고도 호칭했다. 모두 강북 쪽 나루이다. 그러나 현대의 나루인 다리는 강남쪽 노량진(한강대교, 제1한강교)에 먼저 놓여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했고, 이어 양화진(양화대교, 제2한강교)과 한강진(한남대교, 제3한강교)에 각각 개설됐다. 연도로 따지면 광나루에 놓인 광진교가 2번째이지만 제2한강교라는 영예를 얻지 못했다. 전국과 서울을 잇는 철도와 고속도로 부설 순서에서 동쪽 나루가 밀린 탓이다. 한강나루와 다리의 역사를 보면 서울과 전국, 서울과 세계를 잇는 물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3강, 5강, 8강 사례로 보면 한강 건너편 강남에 위치한 동작진이나 흑석진, 노량진은 주요 나루로 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강진의 강남 쪽 부속 나루쯤으로 여겼다. 다만 노량진은 나루의 역할보다 강남 쪽 군사기지의 역할이 컸다. 한강진이라는 나루의 개념 속에는 반포대교가 놓인 서빙고와 강 건너 사리진(신사동)은 물론 동작진, 흑석진, 노량진이 포함됐다. 경강이 점차 한강이라고 불린 이유도 한강진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이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한강진은 한강 이남으로부터 수도 한양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군사기지였다. 한강진의 강북 쪽 나루 기능은 서빙고나루가 맡았고, 강 반대편에 사리진, 동작진, 흑석진, 노량진이 늘어섰다. 한강진은 서울의 물류가 광주, 과천, 시흥을 거쳐 삼남(충청·경상·호남)으로 내려가고, 올라오는 중앙통로였다. 강원도와 함경도로 가는 동쪽 통로는 광나루, 강화도를 거쳐 서해로 나가는 길목은 양화진이 담당했다. 동작과 노량진은 강폭이 좁아 서울에서 수원으로 향하는 최단거리였지만 마포와 서강에 비해 물이 얕아 큰 배가 다니지 못하는 게 흠이었다. 진경산수화 시대를 개척한 겸재 정선이 1744년에 그린 ‘동작진’에는 산과 고개 그리고 나루로 이뤄진 온화한 풍광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민가가 빼곡한 오늘의 국립현충원 자리 뒤로 관악산과 청계산이 솟아 있고, 남태령을 거쳐 과천으로 가는 길과 반포(서릿개), 흑석동의 수려한 모습도 담겨 있다. 흑석동 앞 한강을 ‘금호’(琴湖)라고도 불렀는데 이 일대에 권문세가의 별서(별장)들이 즐비했다. 흑석동이 일제강점기 ‘명수대’라는 국적 불명의 일본인 별장지대로 둔갑하면서 망가진 것도 빼어난 경관 탓이다. 국립현충원은 선조의 조모 창빈 안씨가 이곳으로 묘를 옳긴 뒤 선조가 이후 역대 왕의 혈통을 장악한 천하의 명당이다. 다행히 현충원이 들어서면서 명당을 노리는 사람들의 욕망을 좌절시켰다. 동작진이 동재기나루~사당~남태령~과천으로 가는 길이라면, 노량진은 노들나루~장승배기~시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수원에서 합쳐진 뒤 삼남으로 흩어진다. 두 길 모두 정조라는 걸출한 임금에 의해 전설이 만들어졌다. 정조는 옛 수원(경기도 화성)에 마련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찾을 때 두 길을 이용했다. 정조재위 24년 가운데 모두 66회의 행차가 있었는데 이 중 현륭원 참배가 12차례였다. 1795년 노들나루에 배다리를 놓고 건너기 이전까지는 주로 남태령을 넘었다. 한번은 남태령 고갯마루에서 쉬면서 고개이름을 묻자 과천현 이방이 “남태령”이라고 답했다. 여우고개로 알고 있던 정조가 되묻자 이방이 “요망한 짐승의 이름을 댈 수가 없어서 남쪽의 가장 큰 고개라는 뜻에서 둘러댔다.”라고 고했다. 그 뜻을 가상하게 여겨 남태령이라고 명명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장승배기라고 부르는 지명과 이곳에 세워진 두 개의 장승 또한 정조의 작품이다. 민가가 없고 숲이 울창한 곳에 가마를 멈추고 휴식을 취하던 정조가 “이곳에 장승 두 개를 세우되 남자장승에는 천하대장군, 여자장승에는 지하여장군이라고 이름을 새기라”라고 명했다. 어명에 따라 세워진 노량진 장승은 팔도 장승의 우두머리 대방(大房) 장승이 됐고, 임금의 행차 길을 알리는 노량진의 랜드마크가 됐다. 또 “경기 노강(노들강) 선창(부두) 길목에 대방 장승을 찾아가서 문안한 연후에 원통한 사연을 아뢰기에…”라는 판소리 ‘변강쇠가’가 전한다. 변강쇠가 경상도 함양의 장승을 뽑아다가 장작으로 사용해 재로 변한 장승이 원통해 노량진 대방 장승을 찾아가는 대목이다. 이후 전국 길의 경계나 마을입구, 절 입구에 장승이 세워졌다. 장승은 장생, 벅수라고도 불리면서 액을 막는 마을의 수호신이나 이정표가 됐다. 망원동, 염곡동, 우면동, 염창동, 흑석동 등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 여러 곳에 장승이 세워졌고,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붙었다. 노량진에 배다리를 놓고 관리하는 주교사라는 관청이 들어서고, 왕이 쉬어 가는 ‘용이 꿈틀대고 봉황이 높이 난다’는 뜻의 용양봉저정이 주교사 옆에 세워졌다. 공식 명칭은 노량진행궁이다. 조선 최고의 볼거리는 왕의 행차였고, 그중 노들나루 배다리 건너기가 압권이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송파(백제의 꿈) ●일시 : 9월 15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 장소 :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사라져 가는 은행나무 열매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사라져 가는 은행나무 열매

    2016년 영국의 식물원이자 식물 연구기관인 큐가든에서는 식물원 내의 오래되고 의미 있는 나무를 그림으로 기록하는 ‘헤리지티 트리’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식물 목록 중에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은행나무가 중요 수종으로 프로젝트 결과물인 전시 포스터와 출판물 표지에 크게 걸렸다. 중요한 사연을 사진 수백 살의 나무들 사이에서 은행나무는 특유의 존재감과 가치를 드러내고 있었다.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의 존재는 각별하다. 마을 입구에 식재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주고, 천년목이라 불리며 절이나 서원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들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이면서 동시에 생명력이 가장 긴 나무 중 하나다. 한여름에 가을의 대명사인 은행나무 이야기를 하는 건 얼마 전 버스 정류장에서 은행나무 열매를 보았기 때문이다. 정류장 위를 보니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에 동그란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암그루인가 보다’ 생각하며 지나는 찰나, 건너편 은행나무 아래에서 장대로 열심히 뭔가를 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새 여름마다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은행나무 열매 냄새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열매가 채 익기 전에 따는 모습. 우리나라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여름 풍경이다.은행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호수임과 동시에 도시에선 주요 가로수종으로 이용돼 왔다. 생명력이 강해 가지를 잘라도 금방 다시 새순을 틔우고, 병충해와 공해에 강하며 무엇보다 미세먼지와 차들이 내뿜는 오염 물질인 아황산가스를 흡수하는 훌륭한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서울시 가로수의 40% 정도가 은행나무지만, 점점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식재하는 일이 줄고 있다. 워낙 생장을 잘해 수고가 높고 잎이 무성해 주변 상가의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가을이면 낙엽이 많이 떨어져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불만이 많기 때문이다. 은행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식물 삶의 당연한 과정, 그들의 존재는 누군가에겐 불편이 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사랑받지 못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가을이면 내뿜는 특유의 냄새 때문이다. 이 냄새는 열매 과육에 함유된 은행산과 빌로볼(bilobol) 때문인데, 가을이면 열매가 익어 떨어지고 밟혀 노출된 과육에서 냄새가 나게 된다. 그즈음이면 동사무소와 구청 등에는 은행 냄새가 지독하니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초기에는 열매를 수거해 해결했지만 그것으로 안 되자 2013년부터는 아예 열매가 익기 전 한여름부터 아직 익지 않은 녹색 열매를 수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열매가 달리는 건 식물의 자연스러운 번식 과정이고, 특히 이들의 특유 냄새는 이들이 1억년이 넘는 오랜 시간 지구에서 살아온 힘이기도 하다. 초식 공룡들이 닥치는 대로 식물을 잡아먹는 동안에도 냄새와 독성으로 먹히지 않아 멸종되지 않을 수 있었고, 그 후에도 굶주린 동물들의 먹이가 되지 않아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식물의 힘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열매를 미리 수거하는 것도 모자라 곳곳에서는 은행나무 암그루를 뽑아내고 수그루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열매가 달리는 나무는 모두 암그루이기 때문에 열매는 달리지 않으면서 은행나무의 장점만 가진 수그루로 재식하는 것이다. 이처럼 은행나무 암수를 구분하는 것이 시급하다 보니 우리나라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암나무와 수그루를 식별하는 기술도 연구했다. 식물세밀화를 그리면서 식물의 삶을 오랫동안 곁에서 관찰하다 보면 그들이 드러내는 형태, 냄새, 소리 그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모두들 내게 어떻게 그렇게 식물을 좋아할 수 있느냐 물어보지만 나는 특별히 사랑을 많이 가진 사람도, 은행나무 열매의 지독한 냄새를 잘 견딜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가을이 되기 전 한 번 더 생각해 봤으면 한다. 처음부터 은행나무는 찻길 옆 가로수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은 그들이 좋아하는 환경도 아니다. 다분히 우리의 필요로 그들은 그곳에 심어졌다. 그렇게 심어진 그들은 차가 내뿜는 공해와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한여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그늘이 되었다. 가을 노란 단풍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도 해 주었다. 한 생물의 존재, 생장과 번식의 과정이 다른 한 생물에게 한시의 불편을 안겨 줄 때, 생태계는 약자를 향한 강자의 이해와 양보로 그 문제를 해결해 왔다. 도시의 나무와 우리 인간의 공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인형에 생명을 주고 싶었어요.제가 조물주도 아닌데 말이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인형에 생명을 주고 싶었어요.제가 조물주도 아닌데 말이죠.”

    인형작가 류오동이 말하는 헝겊인형의 세계란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인형을 좋아한다. 작고 귀엽고 예쁜 것을 보면 심리적으로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까닭이다. 아주 먼 옛날 주술적인 측면에서 인간을 보호하는 수호신을 형상화했다거나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한 인간 속죄물 대용으로서 인형이 생겼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미적 감각이 담긴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거나 애착 대상의 장난감으로 장르가 다양화됐다. 애착 대상의 인형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독거 노인들까지도 좋아하며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정겨운 느낌을 주는 헝겊인형을 만들고 이들이 사는 가상의 세계를 창작해낸 인형작가 류오동(48)씨를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갤러리인사아트에서 만났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벽에는 인형이 서 있고, 옆에서는 못질 소리가 한창 났다. 전시 작업 준비에 한창이던 류오동씨는 “제가 만든 인형이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끊임 없이 말을 걸어와요. 그 말을 따르다보니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졌죠.”라고 말한다. 바닥을 정리하고, 조명의 각도를 손질하는 이들은 남편과 아들, 두 언니와 사촌 여동생이란다. 손발이 척척,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인형, 인형 의상, 인형 가구, 인형 수공예품 손수 만들어 류오동씨는 이곳에서 8~13일 자신의 인형소설 ‘마담 리우의 인형이야기 1: 두루비 갤러리엄’ 등을 출판한 기념으로 ‘류오동 인형 조형전’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그는 단순히 헝겊 인형을 만드는 차원을 넘었다. 인형 텍스타일, 인형 가구와 더불어 인형들이 사는 가상의 세계까지 구축했다. 인형을 이용한 베개, 텍스타일을 활용한 쿠션과 가방 등 수공예품도 개발했다. “두루비를 상표로 등록도 해뒀죠.” - 인형 만들기는 언제부터 했나요.☞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코바늘로 인형을 떴던 기억이 나요. 그땐 그냥 재미로 해 본 것이었구요. 제가 인형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때는 2011년 8월쯤이었어요. 그때부터 저 만의 인형을 만들고자 연구를 시작했고, 다른 작가들의 인형을 수집하고 인형 관련 자료들도 모으기도 했지요. 인형이 산업으로서는 발달해 있는데 대학교에 전공학과도 없고, 관련 인문학적 책도 상당히 부족하더라구요. 주로 퇴근해서 잠자기 전까지 집에서 3시간 정도 집중해서 만들지요. ●“인형을 완성했을 땐 아이를 낳았을 때의 기쁨이 오죠”- 인형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여러 수공예 활동을 해보았지만, 인형을 완성한 후의 기쁨과 성취감은 말할 수 없이 좋았어요. 첫 인형인 ‘비비아나’가 완성됐을 때의 그 느낌은 저에게 딸이 생긴 그런 감동이었죠.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그 설레고 벅찬 환희가 밀려왔죠. 그래서 인형을 계속 만들게 된 것 같아요. - 누구에게서 배웠나요.☞ 어려서부터 손으로 만들고 꾸미는 걸 좋아했어요. 코바늘뜨기나 대바늘뜨기는 언니들이 하는 걸 보고 어깨너머로 배웠고, 친정어머니께서 손바느질하시는 걸 보고 혼자 따라해 보기도 했어요. 인형 만드는 것을 특별히 배우지는 않았지만, 재봉틀, 퀼트, 프랑스 자수, 십자수, 비즈 공예 등 다양하게 경험해 봤지요. 이런 수공예 활동이 많이 도움됐어요. ●“헝겊인형, 동심 자극···인간 본연의 순수에 가까워져” - 특히 헝겊인형 작가로 알려졌는데.☞ 인형 재료는 아주 다양합니다. 헝겊·나무·도자기·우레탄·흙·옥수수 잎 등···. 작가에 따라 때로는 재료를 혼합해 쓰기도 하지요. 제가 헝겊인형을 선택한 이유는 천이라는 소재가 부드럽고, 편안하며, 따뜻해 정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헝겊인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꿉놀이 동심을 자극한다고 할까요, 아니면 인간 본연의 순수에 가까워진다고 느껴요. 저는 헝겊 인형에 생동감을 넣어주기 위해 관절을 만들어줬지요. - 인형을 만들 때 주로 어떤 생각을 하나요.☞ 특정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인형을 만들지 않습니다. 소수를 위한 인형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인형을 만들고 싶거든요. 제가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성별·연령·국적·장애에 관계 없이 누구나 사용 가능한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제 인형은 특별히 아름답거나 독특한 인형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죠. 그래서인지 저의 전시회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제 작품을 보고 행복해 합니다. 그게 최고의 만족이죠.- 헝겊인형에 ‘마담 리우’라는 이름이 있던데.☞ 마담 리우는 제가 만든 관절헝겊인형 이름이고, 제가 쓴 인형 소설 속의 주인공이랍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바로 저 자신이 투영됐다고 할 수 있어요. ‘리우’라는 이름은 저의 성인 ‘류’를 본떠서 지은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바로 저 자신이 되는군요. 또 ‘두루비’는 ‘두루두루 비추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제가 창작한 관절헝겊인형들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입니다. 두루비의 특징은 얼굴이 입체적이고 어깨·팔꿈·손목·고관절·무릎·발목이 연결돼 있어서 자세를 바꿀 수 있지요. 굳이 관절헝겊인형을 만든 것은 좀 더 사람과 비슷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인형을 만들고 싶어서죠. 반면에 ‘두루비아’는 두루비 즉, 관절헝겊인형이 아닌 모든 인형을 말합니다. 두루비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만듭니다. 재료는 빈 병·깨진 컵·키친 타올 홀더·하프 돌 등으로 다양합니다. ●“인형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며 어울려 사는 커뮤니티를 만들었죠” - ‘두루비 갤러리엄’은 뭐죠?☞ 두루비 갤러리엄은 마담 리우가 운영하는 지상 3층, 지하 1층짜리 인형가게예요. 백조 모양을 한 건물 지하에는 그녀(마담 리우)가 만들었거나 소장한 인형들이 전시된 화랑이 있죠. 1층에는 인형을 만드는 다양한 재료들을 판매하는 가게가, 2층에는 사무실과 강의실이, 3층에는 리우네 가족이 사는 주택이 있어요. 사실, 이 건물은 실제로 제가 짓고 싶은 인형박물관의 모델이랍니다. 인형을 만들에 한참 들여다보면 인형이 제게 속삭여요. 말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두루롬어’ ‘두루한어’를 만들어줬죠. 이들 인형이 읽는 신문도 있어요. 새로운 옷이 필요하다고 하면 제가 디자인을 하죠. 가구도 만들어주고, 집도 만들어주고···. 이렇게 해서 하나의 세계가 인형 세계가, 두루비 커뮤니티가 만들어진거죠.- 삽화도 직접 그렸네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만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림을 직접 그리는 이유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장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서죠. 전문가들의 시각에선 형편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인형 공예활동의 연장으로 시도해 본 것입니다. 종이인형도 어릴 적 직접 그려서 놀던 추억이 생각나서 두루비 캐릭터들을 그려봤지요. - 텍스타일 디자인도 직접 하나요?☞ 텍스타일은 원단에 프린팅하기 위한 패턴인데, 몸집이 작은 인형 의상에 적합한 패턴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디자인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제가 디자인한 텍스타일로 인형 뿐만 아니라 양산, 가방, 쿠션도 만들었지요. ●“인형 커뮤니티에선 각자의 입장과 갈등을 풀어나가죠” - 그런 인형을 소재로 이야기를 쓴 이유는.☞ 제가 만든 인형들이 많은 사람과 공유할 방법을 찾다가 스토리텔링을 생각해 냈죠. 인형을 소재로 한 이야기나 영화들을 찾아봤죠. 대개 공포영화에서 인형들이 등장하는 사례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제가 인형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어른이 무슨 인형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는냐’, ‘무섭지 않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래서 인형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이야기를 통해서 인형의 따스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야기는 제가 만든 인형을 사람들과 공유하기에도 아주 좋은 방법이고요. 처음에 책을 쓸땐 어린애나 소녀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50~60대 남성들에게서도 ‘신기하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의외였죠. 책은 영어로 번역도 할 거예요.- 인형 이야기의 특징은?☞ 저는 애니메이션이나 동화 같은 판타지를 좋아합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트와일라잇’ 등을 읽고 작가의 상상력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제 작품이 감히 그 대작들과 견줄 정도로 스케일이 크거나 흥미진진하지는 않습니다만 제 인형들이 등장하는 상상의 세계를 구축해 보고 싶었어요. 물론 제 이야기에는 선과 악의 구도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아요. 절대적인 악의 무리에 맞서서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도 없지요. 오히려 수공예의 따스함과 느림의 미학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각자의 삶에서 등장 인물들이 생각과 입장의 차이에서 생기는 갈등을 함께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전개가 됩니다. 또 규중칠우쟁론기와 조침문을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끌어와서 현대판 규방문학을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말하는 투가 전업 작가들과는 다르게 느껴져 직업을 물었더니 중학교 교사란다. ‘미술 선생’이냐고 확인하니 뜻밖에도 “영어를 가르칩니다”고 답한다. 교사의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인형작가라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단다. 그래서 그가 인형작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도 많다. “본업 대신 인형을 한다는 것이 마치 ‘외도’하는 것같아서···. 학교 일에 소홀하다는 말을 듣고싶지 않아서 더 일찍 출근하고, 더 열심히 가르쳐요.” 영어 교사인 점이 해외 인형 작가의 동향이나 인형 정보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단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남촌 ‘다크투어’… 일제·독재의 잊고 싶은 기억을 기억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남촌 ‘다크투어’… 일제·독재의 잊고 싶은 기억을 기억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9회 서울사방 남촌 편이 지난 7일 중구 필동과 예장동, 회현동 일대 남산 아랫마을에서 진행됐다.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소서(小暑)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뤘다. 인터넷 예약에 실패한 네댓 분이 “신문 보고 왔다”며 즉석 합류를 요청해 운영진을 곤혹스럽게 했다.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 40개가 동나는 바람에 진행자용 기기를 양보했다. 많은 인원이 시원한 그늘을 찾아다니다 보니 행렬이 길어지고 시간이 지체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서울미래유산이 비록 국가공인 지정 및 등록문화재는 아니지만, 참가자 본인이 직접 겪고 들은 유형과 무형의 소중한 미래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실감했다.남산은 서울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코스이다. 다크투어란 인간이나 자연이 저지른 어두운 현장을 찾는 역사교훈관광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남산골한옥마을(청학동, 조선헌병대사령부)을 출발, 필동 예술통(남학당)~서울소방재난본부(중앙정보부 유치장)~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녹천정, 통감관저·총독관저)~문학의 집(중앙정보부장 공관)~서울유스호스텔(중앙정보부 남산본관)~서울애니메이션센터(통감부·총독부)~남산원(노기신사)~한양공원비(왜성대공원)~백범광장(조선신궁)~안중근의사기념관(조선신궁)까지 빡빡한 코스를 2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김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독창적인 관점의 해설을 열정적으로 들려줘 호응을 얻었다. 투어가 끝난 뒤 실시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21명 중 6명이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다”면서 해설시간 연장이나 코스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참가자는 늘 걷던 남산 길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남산은 상념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서울 어디서나 고개만 들면 보이는 누이 같은 산이고, 서울 바깥에서 봤을 때 서울 진입을 상징하는 표상이다. 서울이 사대문 안을 벗어나 10배 이상 확장되면서 옛 서울의 남쪽 경계였던 남산과 한강이 서울의 중심부가 됐다. 조선 말 고종이 종로구 인사동 194(하나로빌딩)에 세운 서울중심점 표식이 지금은 남산 정상으로 남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의 관문 노릇을 하던 한강 또한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관통하는 도심 속 하천이 됐다. 남산은 광화문네거리에 솟아 있던 황토마루(黃土峴) 역할을 하는 중앙산이 됐고, 한강은 사대문을 북촌과 남촌으로 나눈 청계천처럼 서울의 강남과 강북 사이 중앙천이 됐다. 한강이 허리띠처럼 감싼 남산은 명실공히 서울을 대표하는 자연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서울의 북쪽을 병풍처럼 두른 삼각산(북한산)이 왕조와 왕을 지키는 장풍(藏風)의 산이라면 남산은 백성과 함께 즐기는 득수(得水)의 산이다. 신라의 고도 경주의 남산, 고려 개성의 자남산에 이어 서울 남산은 한반도를 지배하는 왕조가 백성에게 내준 어울림의 영역이다.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 뒤 백악산(북악산)에 여신 진국백(鎭國伯)을 둔 반면 남산에는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는 남신을 모신 국사당을 세운 데서 나타난다. 남산은 국가의 제례 공간이자 민간신앙의 터전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세워진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관왕묘 중 남관묘가 남산에 가장 먼저 건립됐고 제갈공명을 모신 와룡묘도 따라 들어섰다. 남산 범바위를 중심으로 한 무속신앙이 성행한 이유도 남산을 한양도성의 수호신 목멱대왕이 깃든 신성한 산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팔도에서 올라오는 봉수대의 종착 지점을 남산에 둔 까닭이기도 하다. 제왕은 남면(南面)하는 법이다. 남산은 왕이 바라보는 산이다. 이를 쫓아 옛사람들은 마을의 앞산을 남산이라고 불렀다. 남산의 남(南)자는 ‘남녘 남’ 자가 아니라 ‘앞 남’ 자를 썼다. 남산의 다른 이름 ‘마뫼’는 우리 말 ‘앞산’과 동의어다. 목멱이란 마뫼의 이두식 표기다. 남산=마뫼=목멱 등식이다. 남산은 소나무를 베거나 돌을 캐거나 무덤을 두지 못하게 엄히 규제한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역이기도 했다. 남산에 소나무를 심었다는 실록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애국가 가사 중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서울사람이 늘 보는 일상 풍경이었다. 남산을 그린 옛 그림 ‘목멱산도’와 ‘은암등록’, ‘장안연우’ 속 큰 소나무 한 그루일 수도 있다. 서울에 사는 남인 양반촌의 시대는 옛 노랫가락처럼 흘러갔지만 남산만큼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을 제대로 겪은 산이 또 있을까. 남산 아랫마을 중 회현동(호현동)과 필동, 충무로 일대에는 본래 경주 이씨, 동래 정씨, 안동 김씨, 풍산 홍씨 같은 경화사족(京華士族)이 살았다. 서울에 기반이 없던 다산 정약용 같은 ‘남산골샌님’이나 ‘딸깍발이’ 신세의 남인 선비들도 산등성이와 계곡에 초가를 지었다. 연암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이 살던 가난한 동네였다. 남산산록을 수놓은 귀록정, 노인정, 청학동, 녹천정, 천우각, 쌍회정은 남산풍류의 본거지였다. 한양의 대표적 경관시 중 하나인 정이오의 ‘남산팔영’은 사실상 한양팔경가였다. ‘장소의 윤회’인가. 조선 건국 초 왜국사신 숙소 동평관을 지금의 인현동에 둔 게 화근이 돼 200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을 점령한 왜군이 진을 친 곳이 예장동(왜장대)이다. 또 300년이 흐른 1885년 일본공사관이 녹천정(통감관저 터)으로 틈입하면서 남산은 수난의 그림자에 덮였다. 황현은 “녹천정을 빼앗아 일본공사관으로 삼은 후로 야금야금 주동, 나동, 호위동, 남산동, 난동과 종현, 저동을 가로지르는 진고개 일대를 점거하여 남촌 50개 동 가운데 30개 동이 일본인 촌이 됐다”고 ‘매천야록’에서 절규했다.남촌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심장부였다. 통감부를 중심으로 통감관저, 헌병대사령부, 정무총감 관저(필동 한국의 집)가 집결했다. 명동과 충무로에 화려한 상가가 들어서고 조선은행과 식산은행, 동양척식회사 등 경제수탈기구가 남대문에 집결했다. 벚꽃 묘목 1500그루를 들여와 왜성대공원(한양공원)에 심은 게 1907년이었다. 한양도성의 수호신 남산은 일본 국교 신도(神道)에 무참히 유린당했다. 1925년 조선신궁이 세워지면서 남산은 정치와 종교, 문화의 지배공간이 됐다. 1932년 남산기슭 장충단 자리는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로 둔갑했다. 남산은 식민지배의 상처를 씻어내지 못한 채 광복과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 산업화 과정에서 훼손됐다. 경성호국신사(용산동 2가) 자리에 해방촌이 들어선 데 이어 적산 처리 과정에서 동국대, 서울중앙방송국, 숭의학원, 미군 통신부대, 외인주택 등 각종 정부기관과 학교, 군 및 종교단체가 파고들어 잠식당했다. 동상과 기념물 그리고 터널과 타워는 남북 체제 경쟁과 정치이데올로기 홍보의 상징물이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시대 중앙정보부는 ‘남산’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예장자락에 무려 41개의 건물을 차지하고 정권의 홍위병 역할을 했다. 그 상처를 씻어내는 진혼곡이 이제야 연주되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홍릉산책(홍릉수목원) ●일시: 7월 14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수호신 나야 나

    수호신 나야 나

    8일 치러진 러시아월드컵 8강전에서는 각국의 수문장들이 눈부신 선방을 보여 주며 영웅으로 떠올랐다.사마라 아레나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스웨덴의 경기에서는 잉글랜드 골키퍼 조던 픽퍼드(24·에버턴)가 후반에만 세 차례의 결정적인 슈팅을 모두 막아 내는 ‘슈퍼세이브 해트트릭’으로 팀의 2-0 승리를 지켜냈다. 픽퍼드는 앞서 콜롬비아와의 16강전에서도 콜롬비아의 5번째 키커 카를로스 바카의 페널티킥을 막아 내며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징크스를 깼다. ●새내기 픽퍼드 승부차기 징크스 깨 이번 월드컵을 앞둔 잉글랜드의 최대 고민은 골키퍼 자리였다. 남아공 대회 이후 대표팀의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한 조 하트가 기량 저하로 이번 대표팀에서 낙마했기 때문이다.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친 조던 픽퍼드와 잭 버틀런드(스토크시티), 닉 포프(번리)를 발탁했다. 픽퍼드는 A매치 출전 경험이 8경기에 불과한 국제 무대 ‘새내기’였지만 이번 대회에서 5경기 모두 출전해 4실점으로 막아 내는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우려를 불식시켰다.●대기만성 수바시치 선방 ‘4강 신화’ 피시트 스타디움에서 러시아와 8강전을 치른 크로아티아도 골키퍼 다니엘 수바시치(34·AS모나코)가 없었다면 20년 만의 ‘4강 신화’를 이뤄내기 힘들었다. 특히 승부차기에서 ‘선방쇼’가 빛났다. 그는 러시아의 첫 번째 키커 페도르 스몰로프의 슛을 쳐내며 기선을 제압했다. 첫 번째 키커부터 실축한 러시아는 압박감을 이겨 내지 못하고 결국 패하고 말았다. 앞서 수바시치는 지난 덴마크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도 ‘철벽 선방’으로 맹활약했다. 수바시치는 대기만성형 선수다. 2009년 A대표팀에 발탁됐지만 걸출한 골키퍼 스티페 플레티코사의 그늘에 가려 기회를 잡지 못하다 플레티코사가 은퇴한 뒤인 2014년에야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번 대회 참가 나이는 만 34세다. ‘월드컵 스타’로 떠오른 픽퍼드와 수바시치는 오는 12일 오전 3시 열릴 4강전에서 거미손 맞대결을 펼친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600년 역사 깨운다 광장의 울림 퍼진다 ‘서울의 찬가’ 울린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600년 역사 깨운다 광장의 울림 퍼진다 ‘서울의 찬가’ 울린다

    서울신문이 지난 12일부터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를 시작했다. 올해로 세 번째다. 미래유산이란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진 않았지만 미래 세대에 물려줄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서울 근현대 문화유산이다. 지난해 투어와 비교할 때 유형의 유산에서 무형의 유산으로, 사대문 안에서 사대문 밖으로 답사 영역을 넓힌 게 특징이다. 투어는 지난해 참가자들이 재체험을 희망한 사대문 안 주요코스 6개, 문학과 영화를 중심으로 새로 선정된 무형 서울미래유산 6개, 그리고 지역별·어젠다별·계절별 코스 23개 등 총 35개 코스로 편성했다. 오는 12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열리며 혹서기인 7, 8월 두 달 동안은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5회 동안 야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2일(토)과 마지막 날인 9월 26일(수) 2회는 ‘한가위 특별투어’로 운영한다. 전문성을 갖춘 18명의 베테랑 해설자가 투입되며 매회 3명 이상의 진행요원이 안전한 투어를 보장한다. 국내 도보답사 프로그램 중 처음으로 오디오 가이드시스템을 도입했다. 소음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뿐더러 해설사 앞에 있어야만 들리던 불편도 해소할 수 있어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편안하게 답사여행을 할 수 있다. 이르면 7월부터 서울시 각 중학교에서 추천, 선발된 ‘미래청소년 기자단’도 동행해 탐방 분위기를 풋풋하게 띄울 예정이다. 참가 신청은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에서 참여하기, 탐방, 접수 순으로 하면 된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그주 참여자를 선착순으로 30명 받는다. 대기자도 10명 선착순 모집한다. 무료다.# 도로원표·광화문지하보도…걸음마다 미래유산 2018년 첫 투어가 시작된 5월의 두 번째 토요일인 지난 12일 온종일 비가 내렸다. 이날 10시쯤 종각역 4번 출구 앞에서 집결해 오디오 가이드시스템을 지급한 뒤 사용법을 시연할 예정이었지만 빗줄기가 굵어져 역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등행사 등으로 광화문과 종로 일대 차량 진입이 통제돼 불참 및 지각자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우였다. 답사용 단체 카톡방에서 교통통제 및 집결지 변경을 알리는 긴급 메시지를 수신한 예약자 30여명이 예외 없이 시간을 지켰다. 형형색색 우산을 받쳐 든 참가자들은 진행자들의 ‘철통 호위’를 받는 가운데 이기훈 해설사와 함께 정시에 보신각을 출발했다. 지난달 새로 설치한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을 보고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울 공인 맛집인 청일집, 미진, 청진옥을 둘러봤다. 중학천을 따라 고종즉위40년기념 칭경비전과 교보문고 앞 벤치에 편안하게 모신 ‘3대’의 작가 횡보 염상섭도 만났다. 도로원표와 광화문지하보도, 충무공 동상, 세종대왕 동상을 차례차례 누볐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에서 비에 젖은 백악산과 경복궁의 운치를 만끽한 뒤 세종로공원에 서 있는 ‘서울의 찬가’ 노래비에 얽힌 해설과 세종문화회관 40년사를 들으면서 비에 젖은 세종로 투어를 마무리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처음 지급된 고감도 오디오 가이드시스템 덕분에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큰 불편 없이 낭만적인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참가자 단체 카톡방에서 바로바로 찾아볼 수 있는 해설 자료는 덤이었다. ‘한국의 얼굴’이자 서울의 중앙인 광화문광장과 세종로의 지층은 현재 아스팔트 지상보다 무려 8m 아래에 있다. 태조 이성계와 삼봉 정도전이 활보하던 최초의 인공도로면 위에 조선 중후기 도로 층이 쌓이고, 또 19세기와 일제강점기 때 지층 등 모두 11개의 지층이 겹겹이 덮여 지금의 표면을 이뤘다. 광화문 8m 지층 속에 600년 묵은 역사가 차곡차곡 쌓인 셈이다.# 서울의 주축은 백악~경복궁~숭례문~관악 서울은 산과 성곽의 도시이다. 유교와 풍수의 원리가 겹겹이 에워쌌다. 성곽으로 둘러싼 경계에 내사산이 있고 외곽에 외사산이 있다. 내사산 북쪽의 백악산(북악산)은 현무, 동쪽의 낙산(낙타산)은 청룡, 서쪽의 인왕산은 백호, 남쪽의 남산(목멱산)은 주작이 각각 수호신이다. 외사산 북쪽 삼각산(북한산)은 백두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조산(祖山·풍수설에서 혈에서 가장 멀리 있는 용의 봉우리)이요, 지리산에서 뻗은 관악산은 아침마다 임금을 알현하는 조산(朝山)이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은 북악을 조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근정전은 도시의 중앙에서 서쪽으로 쏠린 상태에서 남향을 바라보고 앉았고 남북 간 축선인 주작대로는 삼각산과 관악산 축선상에 놓였다. 도시 중앙에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종로(운종가)이다. 오늘의 세종로사거리에는 황토마루(黃土峴)라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었다. 관청가인 육조거리와 운종가가 만나는 지점이다. 육조거리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주작대로는 직통으로 연결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 끝자락에서 왼쪽으로 꺾어 종로 보신각까지 간 뒤 지금의 남대문로를 통해 숭례문까지 이르는 이른바 정(丁)자형 길이다. 서울의 주축(主軸)은 백악~경복궁~숭례문~관악이었다. 서울 중앙의 매력에서 음식을 뺄 수 없다. 서울음식이란 무엇일까. 명물 음식점은 도심재개발로 옛 터를 잃고 빌딩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투어단은 이날 빈대떡의 청일집, 해장국의 청진옥, 메밀국수의 미진을 순례하면서 서울음식의 정체성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미래유산 목록에 오른 42개의 음식점 중 종로구에는 이들 3곳을 포함해 이문 설농탕(설렁탕), 진아춘(중식), 형제추어탕(추어탕), 열차집(빈대떡), 원조할머니 기름떡볶이(떡볶이), 유진식당(냉면) 등 모두 9곳이 포진한다. 중구에는 용금옥(추어탕), 은호식당(꼬리곰탕), 문화옥(설렁탕), 우래옥(냉면), 안동장(중식), 명동 할매낙지(낙지볶음), 부민옥(해장국), 오장동 함흥냉면(냉면), 고려 삼계탕(삼계탕), 유림면옥(메밀국수), 산골막국수(막국수), 진주회관(콩국수), 라 칸티나(양식), 무교동 북어국집(북엇국), 전주중앙회관(비빔밥) 등 무려 15곳이 선정됐다. 종로·중구 2개 구에만 전체의 절반이 넘는 24곳이 집중돼 있다.# 궁중요리 등 서울 전통음식은 잊혀져 가 한결같이 서민음식이다. 궁중요리와 반가음식의 고향인 서울에서 살아남은 미래유산은 서울의 전통요리가 아니라 지방과 외국에서 온 이방인들이 퍼뜨린 팔도요리와 외국음식이란 점이 특징이다. 보통 서울음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궁중요리와 설렁탕, 빈대떡, 민어탕, 불고기에서 서울음식의 지평이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서울음식은 종로의 설렁탕과 빈대떡, 신당동 떡볶이, 을지로 평양냉면과 골뱅이, 동대문 닭 한마리, 오장동 함흥냉면, 신림동 순대, 마포 돼지갈비, 왕십리 곱창, 장충동 족발, 성북동 칼국수처럼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특정 음식이 손꼽힌다. 서울로 모여든 이북 사람, 영호남 사람이 음식과 함께 서울이라는 문화공동체 안에 두루 섞였다. 비빔밥 문화이다. 안타깝게도 서울토박이 음식은 뒷전으로 밀렸다. 글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이원석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사방 동촌(대학로 일대) ●일시 및 집결장소 : 5월 19일(토) 오전 10시 혜화역 2번 출구 마로니에공원 좋은공연안내센터 앞
  • 번민을 덜어내니, 차오르는 고요

    번민을 덜어내니, 차오르는 고요

    부처님오신날이 멀지 않았다. 불자든 아니든 절집을 찾을 때다. 수많은 절집 가운데 어디를 찾아야 할까.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도전하고 있는 절집을 고려하는 건 어떨까. 문화재청에 따르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한 사찰은 경북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경남 양산 통도사,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해남 대흥사, 순천 선암사, 충남 공주 마곡사 등이다. 이름만 들어도 자부심이 충만해지는 절집들이다.일곱 산사 가운데 부석사, 법주사, 통도사, 대흥사 등 4개 사찰은 등재가 확실시된다. 반면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 등은 등재 권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결과는 올 7월 초 바레인에서 나올 터. 아무렴 어떠랴. 세계유산에 오르지 못한다 해도 우리에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보물 사찰’이다.역사가 오래되고 명성이 자자한 만큼 일곱 산사가 품은 문화재도 다양하다. 국보가 가장 많은 절집은 부석사다. 한국 목조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무량수전(18호)을 비롯해 무량수전 앞 석등(17호), 조사당(19호), 소조여래좌상(45호), 조사당 벽화(46호) 등 모두 5개의 국보가 있다. 무량수전은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처음 지어졌다.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고려 우왕 2년(1376)에 재건됐다. 이어 1916년 대대적인 해체·수리 공사가 이뤄졌다. 무량수전 앞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다. 빼어난 비례미가 일품이다. 소조여래좌상은 무량수전 안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이다. 조사당은 우왕 3년(1377)에 세워졌다. 개창 조사인 의상 대사의 초상화가 있다. 조사당 벽화는 불법의 수호신인 법천과 제석천, 사천왕을 그린 그림이다.법주사도 ‘보물 사찰’로 불린다. 부석사 다음으로 많은 3개의 국보가 있다. 목탑 형태의 팔상전(55호)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건물은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덧대 짜맞췄다. 그 기술이 워낙 뛰어나 한 부분이 소실돼도 나머지는 끄떡없다고 한다. 팔상전 뒤엔 쌍사자석등(5호)이 있다. 사자 두 마리가 석등을 받치고 선 모양새다. 연꽃 모양의 석연지(64호), 옛날 3000여명의 승려들이 먹을 밥을 지었다는 철확, 독특한 모양의 희견보살상, 바위에 새긴 마애여래의상 등 경내에 독특한 볼거리가 많다. 마당에는 높이 33m의 거대한 미륵대불이 세워져 있다. 한때 개금불사(불상에 금칠을 다시 할 때 행하는 의식)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관람객을 굽어보는 시선은 여전히 고요하다. 봉정사는 국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국보 15호)을 품은 절집이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어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확인됐다.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과 배흘림기둥, 고려시대의 대표적 석탑이라는 극락전 앞마당의 삼층석탑 등 익히 알려진 볼거리들이 많다. 조선시대 전기에 지어진 대웅전(311호)은 내부에 단청이 잘 남아 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저 유명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봉정사 극락전의 이 간결하면서도 강한 아름다움은 내부에서 더 잘 보여 준다. 곱게 다듬은 기둥들이 모두 유려한 곡선의 배흘림을 하고 있는데 낱낱 부재와 연등천장이 남김없이 다 드러나면서 뻗고 걸치고 얽힌 결구들이 이 집의 견고성을 과시하듯 단단히 엮여 있다”고 적었다. 그러니 겉만 대충 훑을 게 아니라 목을 빼고 극락전 내부를 살필 일이다.대흥사는 고려시대 마애불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308호)이 국보다. 다만 대웅전 뒤 급한 산길을 1㎞ 가까이 걸어 올라야 한다. 두륜산 입구에서 대흥사에 이르는 길의 이름은 장춘(長春)숲길이다. ‘명품’이라 부를 만한 숲이 4㎞ 정도 이어진다. 요즘엔 문재인 대통령이 고시공부를 했던 요사채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스님들의 수행 공간 안에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됐었으나 방문 요청이 쇄도하면서 안거 기간을 제외하고 개방하고 있다. 주말이면 ‘대통령 특별한 기운’을 받으려는 발걸음으로 북적댄다고 한다. 서산대사 등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도 인상적이다. 통일신라 시대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탑의 양식을 볼 수 있다. 절집 초입에 있다.통도사는 대웅전과 대웅전 뒤편의 금강계단(290호)이 국보다.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어 불보사찰로도 불린다. 은입사동제향로(보물 334호), 봉발탑(보물 471호) 등도 볼 만하다.선암사와 마곡사에는 국보가 없다. 그렇다고 볼 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선암사 진입로에 있는 승선교(보물 제400호)는 무지개 모양의 아름다운 돌다리다. 건축 기법이 매우 정미하다. 각황전, 무우전 등 오래된 전각과 돌담 등의 운치도 빼어나다. 선암사엔 모두 14개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있다.‘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 했다. 마곡사의 신록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이다. 마곡사는 주차장 입구에서 경내까지 1㎞ 정도 이어진 진입로가 아름답다.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를 찬찬히 엿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오층석탑, 백범 김구 선생이 기거했던 백범당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특히 대웅보전과 대광보전 등 절집의 중심 건물이 두 곳인 점이 이채롭다. 절집 주변으로 백범명상길이 조성돼 있다. 마곡사엔 모두 5개의 보물급 문화재가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KIA “9회 수호신 찾습니다”

    KIA “9회 수호신 찾습니다”

    김세현, 5패로 1군에서 ‘아웃’ 임창용, 성적 좋지만 체력 한계 김윤동, 잘 던지다 제구 흔들려 KIA가 또다시 ‘뒷문’ 고민에 빠졌다. 지난 시즌 겪었던 마무리 투수의 부진이 올해도 재현되고 있어서다.본래 마무리 투수로 낙점된 김세현(31)이 1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9.24, 4세이브 4블론, 1승 5패를 기록했다. 슬라이더가 밋밋하게 들어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지난 5일엔 1군 엔트리에서도 말소됐다. 김세현의 난조로 KIA는 10개 구단 중 블론세이브(6개)가 가장 많고 세이브(4개)는 가장 적다. 불펜 평균자책점도 5.45(9위)다.뻥 뚫린 뒷문을 책임질 후보로는 임창용(42)이 꼽힌다. 1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19, 5홀드로 KIA 불펜 중 페이스가 가장 좋다. 구속은 시속 150㎞ 가까이 나오고 예리한 커브와 싱커를 구사한다. KBO리그(254세이브)와 일본프로야구(128세이브)에서 382세이브를 낚은 노련함도 장점이다. 하지만 불혹을 한참 넘긴 그의 체력이 예전만 못해 연투를 할 경우 난조를 겪을 수 있다. 또 정면 승부를 고집해 난타를 당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지난 시즌 초 마무리를 맡았다가 ‘창룡영화제’란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김윤동(25)도 마무리 후보 중 하나다. 1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71, 홀드 2개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에도 임창용의 바통을 이어받아 뒷문을 맡았다. 다만 잘 던지고 있다가 갑자기 제구가 흔들릴 때가 많다. 결국 김세현이 2군에서 기량을 가다듬고 다시 마무리를 맡는 게 가장 좋은 해법이다. 김기태 KIA 감독은 김세현을 엔트리에서 제외하면서 “질책성이 아니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휴식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라는 의미다. 한 번 믿음을 주면 쉽게 놓지 않는 ‘동행 야구’를 추구하는 김 감독의 성향을 고려하면 김세현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3명 외에 딱히 마무리 후보가 없다. 임창용과 김윤동이 버텨 주는 동안 김세현이 제 컨디션을 찾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금요 포커스] 무형문화유산을 ‘대대손손’ 즐기는 방법/조현중 국립무형유산원장

    [금요 포커스] 무형문화유산을 ‘대대손손’ 즐기는 방법/조현중 국립무형유산원장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1992년 한 TV 광고에서 판소리 대가 박동진 선생이 했던 멘트다. 우리 것을 다시 돌아보고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되살리는 문구로 당시 큰 화제가 됐다. 박 선생께서 말씀하신 ‘우리 것’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무형문화유산이란 무엇일까. 사람들 대부분은 궁중음악과 무용, 오랜 수련 기간을 거쳐 일가를 이룬 대가의 소리와 춤 정도를 떠올리지 않을까.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무형유산에 관해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돼 온 무형의 문화적 유산’으로 정하고, 전통공연예술, 전통공예기술, 전통지식, 구전전통, 전통생활관습, 사회적 의식, 전통놀이 등 7가지 범주로 나눠 설명한다. 전통공연예술이 우리의 소리와 춤이라고 한다면 전통공예기술은 청자, 백자와 같은 예술품이나 공예품을 만드는 기술이다. 중앙·지방 정부에서 정한 전통지식으로는 해녀문화, 구전전통은 속담(아직 지정된 유산은 없다), 전통생활관습은 김치 담그기, 사회적 의식은 집터다지기, 전통놀이는 씨름 등이 있다. 이렇듯 무형문화유산은 소수 애호가나 특별히 인정받은 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대대로 아름답게 보고 즐기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꾸어 온 민족 고유의 예술적 표현과 풍습이다. 필자는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깊은 산속 마을에서 열리는 ‘시이바가구라’라는 마을 제례를 조사한 적이 있다. 매년 섣달 그믐에 마을의 수호신에게 춤과 음악을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비는 의식이다. 배역을 맡은 사람들은 어린이까지 진지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고, 외지에 나가 있던 사람들도 그때가 되면 돌아와 세상에서 이 역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며 자부심을 가지고 임한다. 무형문화유산이란 나와 인연이 없거나 외부에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 삶의 원천이고, 삶의 동력으로 우리 민족이 한민족으로 그 정체성을 이어가며 존립하기 위한 불가결의 존재인 셈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무형문화유산이나 실제 우리 삶 속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의 소리, 좋기는 하나 박자도 가사도 낯설어 따라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청자, 백자의 나라라는데 집이나 식당에선 플라스틱 그릇들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그렇다면 무형문화유산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문화원, 국악원, 문화센터 등 사회교육기관 이외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이나 공방들이 곳곳에 있다. 이곳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전통공예품을 나와 먼 존재로 여기지 말고 구입해 직접 사용해 보거나 그것으로 자신이나 자신을 위한 공간을 꾸며보길 권한다. 공방이나 공예 전시회에 가보면 하나쯤 살 정도의 가격의 것도 제법 있다.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전국에서 열리는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를 지원한다. 공개행사 개최 정보도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한다. 또 전국의 전수교육관과 공방 소개와 함께 전통공예품 온라인 쇼핑몰도 한국문화재재단과 협업으로 운영한다. 원내 교육, 공연, 전시 시설을 활용해 무형문화재 체험교육과 수준 높은 무형문화유산 공연과 전시를 연중 실시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국민이 생활 가까이에서 무형문화유산을 누릴 수 있도록 전국 무형문화재 공연, 전시, 교육, 체험, 공예품 판매 및 대여 등의 정보를 지역, 연령, 여가 일정 등 개인별 취향에 따라 한눈에 찾아보고 맞춤형으로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대대손손’을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구축해 서비스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연간 국내외 관광객 천만명이 다녀가는 ‘전주한옥마을’ 인근에 ‘무형문화재 진흥 복합단지’ 건립도 준비 중이다. 무형문화재와 첨단기술을 융합한 ‘종합전수교육관’, ‘어린이 무형유산 전당’, ‘무형유산 아카이브 센터’ 등이 이곳에 들어선다. 전통과 현대,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세계적 무형문화유산 명소가 탄생할 것으로 믿는다. 이제 한 발짝 더 무형문화유산의 세계로 발을 내디뎌 보자.
  • 돌아온 김광현, 살아난 수호신

    돌아온 김광현, 살아난 수호신

    롯데전 5이닝 6K 무실점 첫승 소아암 환우 위해 긴 머리 잘라 KIA 양현종 7이닝 1실점 쾌투 토종 최고 투수를 둘러싼 동기생 경쟁이 불붙었다. ‘좌완 에이스’ 김광현(SK·30)은 화려하게 복귀했고 지난해 최고 투수 양현종(KIA·30)은 ‘명불허전’의 구위를 과시했다.김광현은 25일 인천에서 열린 KBO리그 롯데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3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78개 공을 던졌다. 직구(35개), 슬라이더(26개), 커브(9개), 투심(8개)를 섞어 뿌렸다. 직구는 최고 152㎞, 주무기인 슬라이더도 145㎞를 찍어 예전 모습을 뽐냈다. 정진기, 나주환, 한동민은 대포를 가동하며 김광현의 첫 승을 도왔다. SK는 5-0으로 개막 2연승을 달렸고 롯데는 2연패에 빠졌다.김광현의 복귀는 2016년 10월 8일 삼성전에서 세 번째 투수로 나선 이후 533일 만이다. 선발로는 2016년 9월 16일 삼성과의 홈 경기에 등판한 이후 555일 만이다. 김광현은 지난해 팔꿈치 인대접합수술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김광현은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특유의 ‘혼신투’를 자랑했다. 아울러 소아암 환우에게 모발을 기부하기 위해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예고대로 이날 첫 등판 뒤 잘라냈다. 공교롭게도 김광현의 선발 맞대결 상대도 지난 시즌을 재활로 보낸 ‘슈퍼 루키’ 윤성빈(19)이다. 고교 시절 최고 153㎞에 이르는 강속구로 주목을 받으며 롯데에 1차 지명됐다. 대형 투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어깨 고장으로 데뷔를 미뤄야 했다. 조원우 감독은 이날 박세웅을 선발 등판시킬 예정이었으나 팔꿈치 통증 탓에 윤성빈을 택했다. 윤성빈은 데뷔전에서 5이닝 동안 1점포 등 5안타 5볼넷 6탈삼진 2실점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직구 최고 148㎞를 기록했고 볼넷이 많았지만 대신 위력적인 슬라이더를 선보였다. 윤성빈은 1회 정진기에게 홈런을 맞고 안타와 2볼넷으로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하지만 더 실점하지 않은 뒤 2회부터 안정된 투구를 펼쳤다. 광주에서는 지난해 최우수선수(MVP) 양현종이 kt를 상대로 7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잡으며 4안타 1실점으로 첫 승을 신고했다. 황재균에게 홈런을 허용한 게 아쉬웠다. 미국프로야구(MLB)에서 복귀한 황재균의 홈런은 2016년 10월 2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NC전 이후 539일 만이다, ‘디펜딩 챔피언’ KIA는 양현종의 쾌투와 이범호의 홈런 두 방을 포함, 홈런 네 방을 앞세워 14-1로 대승하며 전날의 패배를 설욕했다. 두산은 잠실에서 삼성을 5-4, 한화는 고척돔에서 넥센을 4-1로 물리쳐 나란히 1승 1패를 기록했다. NC는 마산구장에서 LG를 7-1로 꺾고 2연승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내륙 위치한 남원, 곳곳에 왜구가 할퀸 상흔 … 황산엔 승전의 역사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내륙 위치한 남원, 곳곳에 왜구가 할퀸 상흔 … 황산엔 승전의 역사

    전북 남원 시내에서 순창으로 방향을 잡아 시내를 막 벗어나면 오른쪽으로 널찍한 절터가 나타난다. 만복사가 있던 자리다. ‘춘향가’의 몇몇 고전소설 판본에는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관아로 행차하기에 앞서 만복사를 찾아 노승들이 춘향을 위해 재를 올리는 모습을 구경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장면은 김연수제 판소리 ‘춘향가’에도 있다. 춘향을 월매가 만복사에 시주하고 불공을 드린 공덕으로 낳은 자식으로 그리고 있다.잘 알려진 대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금오신화’의 한 편으로 ‘만복사저포기’를 남겼다. 저포(樗浦)는 윷놀이다. 양생(梁生)은 부처님과 내기를 해서 이긴 다음 아름다운 처자를 만나 이승의 3년에 해당하는 꿈같은 사흘을 지내고는 헤어진다. 이 처자는 왜구에 죽은 혼령으로, 이후 양생도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다는 줄거리다.소설 속 여주인공이 부처님에게 바친 축원문에는 당시 사정이 담겨 있다. ‘지난번 변방의 방어가 무너져 왜구가 쳐들어오자, 싸움이 눈앞에 가득 벌어지고 봉화가 여러 해나 계속되었습니다. 왜적이 집을 불살라 없애고 노략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동서로 달아나고 좌우로 도망쳤습니다.…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가니 이제는 혼백마저 흩어졌습니다.’지금 만복사에 가면 텅 빈 마당에서 높이 1.6m의 당당한 석제 불좌(佛座)를 만날 수 있다. 소설에서도 양생이 불좌 뒤에 숨어 아름다운 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대목이 나온다. 아마도 이 불좌가 아닐까 싶다. 매월당과 시대를 초월해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최척전’을 지은 현곡 조위한(1567∼1649)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 휘하에서 종군한 인물이다. 이 소설은 최척과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여성 옥영의 사랑이야기를 뼈대로 정유재란 당시 남원이 왜군에 함락됨에 따라 가족이 붙들려 가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과 기적적인 재회를 그렸다. 소설 속에서 최척은 만복사에서 가까운 동네에 산다. ‘춘향전’이 조선 후기 남원의 사회상을 드러내고 있다면 ‘만복사저포기’와 ‘최척전’은 각각 조선 초기와 중기 왜적의 침입에 따른 살육과 파괴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남원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산 기슭이다. 왜구의 세력은 단순한 해적 수준을 크게 넘어섰다. ‘만복사저포기’가 묘사한 대로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극성을 부렸다. 특히 14세기 후반기 피해가 가장 커서 고려 멸망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역사학계는 고려시대 왜구의 발생을 크게 두 시기로 나누고 있다. 1223년 현재의 김해인 금주에 나타난 것을 시작으로 1265년까지 10차례 이상 침입했는데, 대부분 선박 2~3척 규모였다. 왜구는 1350년부터 연안뿐 아니라 내륙에도 출몰한다. 해안 조창에서 걷은 세곡을 수도로 나르는 조운선이 공격 목표가 되자, 고려가 세곡 운송의 상당 부분을 육운(陸運)으로 전환한 것이 이유의 하나가 됐다. 대형 선단을 이룬 왜구는 개경이 지척인 강화 교동도에도 출몰했고, 조정은 천도를 고민하는 단계에 이른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왜구는 태조가 즉위한 뒤 5년 동안에만 53차례나 침입했다. 황산대첩비는 고려시대 왜구의 남원 침입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신우(辛禑) 6년(1380) 경신 8월, 왜적의 배 500척이 진포에 배를 매고 하삼도에 들어와 연해 주군(州郡)을 도륙하고 불살라서 거의 없어지고, 인민을 죽이고 사로잡은 것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조선은 우왕을 신돈의 자식이라 하여 ‘신우’라 했다. 왜구가 충청·전라·경상도를 휩쓴 참상은 ‘만복사저포기’와 매우 닮아 있다. 당시 고려는 금강 하구 진포에 정박한 왜구의 선단을 최무선 장군의 화포로 모두 불사르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자 퇴로를 잃은 왜구는 지금의 충북 옥천과 경북 상주, 경남 함양을 떠돌며 살인, 약탈, 방화를 자행한다. 이어 남원으로 몰려들어 운봉 인월역 황산에 진을 친 왜구를 당시 양광·전라·경상 삼도도순찰사 이성계가 섬멸한 것이 황산대첩이다. 황산대첩비는 1577년(선조 10) 이 싸움의 현장에 세운 것이다. 만복사는 남원 시내 서쪽에 자리잡고 있지만, 황산대첩비를 찾으려면 자동차를 타고 시내에서 동쪽으로 20분쯤 달려야 한다. 이성계가 어린 두목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이끈 왜구를 무찌른 현장이다. 당시 지명 인월(印月)은 이후 인월(引月)로 바뀌었다. 부처의 교화가 세상 곳곳에 비친다는 월인천강(月印千江)에서 따온 듯한 불교적 이름이 황산대첩 당시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어두운 밤 보름달을 끌어올려 왜구를 물리쳤다는 설화 속 의미로 대체됐다. 황산대첩비는 일제강점기 수난을 겪는다. 조선총독부는 ‘학술상 사료로 보존의 필요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 존재가 현 시국의 국민사상 통일에 지장이 있는 만큼 철거함은 부득이한 일’이라면서 ‘서울로 가져오기엔 수송의 곤란이 적지 않고, 그 처분을 경찰 당국에 일임하는 바’라고 했다. 결국 1945년 1월 폭파됐고, 지금의 비석은 1957년 복원한 것이다. 그러니 대첩비는 받침돌과 지붕돌만 옛것이다. 하지만 파비각(破碑閣)에 비석 조각이 남아 있으니 역사적 의미는 훨씬 커졌다. 100m 남짓 떨어진 곳에는 어휘각(御諱閣)이 있다. 이성계는 대첩 이듬해 함께 싸운 원수와 종사관들의 이름을 이곳 바위에 새겼다. 일제는 이 글씨도 정으로 쪼아내 지금은 알아볼 수가 없다. 황산에 승전의 역사가 있다면 남원 시내에는 패전의 역사가 곳곳에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곡창 호남에 진입하지 못했다. 이를 패전의 원인으로 지목한 왜군은 정유재란을 벌이면서 전라도를 먼저 점령하고 북진하는 계획을 세웠다. 우희다수가(宇喜多秀家)가 이끈 왜군 5만 6000명은 1597년 8월 13일 남원을 공격했다. 남원성은 전라 병사 이복남과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000명 군사가 지키고 있었다. 남원 백성들까지 모두 1만명이 합심해 싸웠지만 모두 순절하고 말았다. 왜란이 끝난 뒤 시신을 합장하고 1612년(광해군 4) 사당을 세웠다. 지금의 만인의총은 옛 남원역 근처에 있던 것을 1964년 옮긴 것이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을 남원성의 흔적은 시내에서 만인의총으로 가는 중간에 일부가 남아 있다. 옛 남원읍성의 서북쪽 모서리에 해당한다. 시내 남문로 골목 안에 있는 관왕묘도 왜란의 흔적이다. 남원싸움 이듬해 명나라 장수 유정은 대군을 이끌고 왔는데, 1599년 자신들의 수호신인 관우의 사당을 지었다. 성 동문 밖에 있던 것을 174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관왕묘는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담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도쿄올림픽 마스코트 확정…엠블럼과 벚꽃 섞은 초능력 캐릭터

    도쿄올림픽 마스코트 확정…엠블럼과 벚꽃 섞은 초능력 캐릭터

    2020 도쿄 하계올림픽·패럴림픽의 공식 마스코트가 최종 확정됐다.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는 28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마스코트를 공개했다. 조직위는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이번달 22일까지 전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도쿄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선정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다. 조직위는 대회 공식 마스코트 응모작 2042건 가운데 최종 후보 3개안을 투표에 부쳤다. A안은 대회 엠블럼을 형상화한 초능력 캐릭터이고 B안은 고양이와 수호신, 3안은 여우와 너구리였다.최종 결정된 올림픽 마스코트는 10만 9041표를 받은 A안이다. 조직위는 최종 선정된 마스코트에 대해 일본 고유의 전통적 매력과 최첨단 혁신을 함께 표현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도쿄올림픽 마스코트로 활동하게 될 푸른색 캐릭터는 정의롭고 운동능력이 뛰어나며 어느 곳으로든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도쿄패럴림픽 대회의 마스코트는 분홍색 벚꽃을 형상화한 캐릭터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차분하지만 필요하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내면의 힘과 자연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캐릭터로 설명된다. 이 마스코트는 돌과 바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보는 것만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염력이 있다. 두 마스코트는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좋은 친구로 설명된다. 둘다 친절하고 모든 사람을 응원하고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게 조직위의 설명이다. 올림픽 마스코트를 초등학생 투표로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투표에는 1만 6769개 학교가 참여했다고 조직위는 밝혔다. 학생 개인당 1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학급 단위로 투표권을 줬다. 조직위는 어린이들이 올림픽 준비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마스코트 선정 과정을 통해 토론하는 법을 배우게 하자는 취지로 이런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마스코트는 결정됐지만 이름은 추후 공개된다고 조직위는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메달은 없지만… 푸른 눈의 19명 태극전사 ‘원 코리아’

    메달은 없지만… 푸른 눈의 19명 태극전사 ‘원 코리아’

    아이스댄스 겜린, 한복 입고 멋진 무대 여자아이스하키 그리핀, 역사적 첫 골 남자대표팀 골리 달튼도 수호신 역할 랍신ㆍ프리쉐 “베이징서도 뛰고 싶다”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귀화한 선수는 모두 19명이다. 제2의 조국에 메달을 바치지는 못했지만 한국 동계 스포츠의 역사를 쓰는 데 힘을 보탰다. 러시아에서 귀화한 티모페이 랍신(30)은 한국 바이애슬론의 역사를 고쳐 썼다. 지난 11일 남자 10㎞ 스프린트 16위를 거두며 한국 바이애슬론 최고의 올림픽 성적을 작성했다. 이 밖에도 추적 22위, 개인 경기 20위, 매스스타트 25위로 모두 역대 한국 선수 최고 성적을 써냈다. 메달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귀화 선수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루지에서 멋진 질주를 보여 준 독일 출신 에일린 프리쉐(26)도 돋보인다. 그는 지난 13일 여자 싱글에서 합계 4분6초400을 기록하며 8위에 자리해 역시 한국 루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랍신과 프리쉐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도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뛰고 싶다는 뜻을 밝혀 기대된다.미국 출신 피겨스케이터 알렉산더 겜린(26)은 재미교포 민유라(23)와 호흡을 맞춰 ‘홀로 아리랑’을 세계 시청자들에게 들려준 것 하나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선수들이 코칭 스태프가 말리는데도 한복을 입고 멋진 무대를 선사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았다. 둘은 피겨스케이팅 팀 이벤트 9위를 차지한 뒤 개인전 쇼트댄스에서 16위에 오른 데 이어 프리댄스를 종합해 18위로 대회를 마쳤다. 한국 선수로는 올림픽 아이스댄스 최고 성적이었다.스키 대표 가운데 유일한 슬로프스타일 스키어인 이미현(24)은 지난 17일 여자 슬로프스타일 예선에 출전한 23명 가운데 13위를 기록하며 결선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가 받은 72.80점은 올림픽에 나선 한국 여자 스키 선수로는 최고의 성적이었다.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랜디 희수 그리핀(30)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선수다. ‘하버드대 출신’이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그는 단일팀에 ‘올림픽 첫 골’을 안겨줬다. 비록 단일팀은 1승도 하지 못했지만 그리핀은 오랫동안 역사에 남을 단일팀의 첫 골을 선사했다. 생후 4개월 때 미국에 입양됐던 박윤정(26)은 ‘마리사 브랜트’란 미국 이름 대신 한국 이름을 유니폼에 새겼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동생 한나 브랜트(25)가 미국 대표팀으로 따낸 금메달을 23일 자신의 목에 걸며 조국에서 열린 올림픽에 참가한 의미를 더했다.남자 대표팀의 캐나다 출신 골리 맷 달튼(32)은 4전 전패로 예선 탈락했지만 많은 국민들에게 이순신 장군과 같은 존재감을 심어줬다. 지난 19일 모국 캐나다와의 경기에서 45세이브의 선방 쇼를 펼친 것도 감동이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헬멧에 붙였다가 정치적 메시지를 붙여선 안 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 때문에 스티커를 붙이고 수호신 역할을 해냈다. 평창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라던스키와 안진휘 골맛, 백지선호 핀란드에 2-5 졌지만 ‘희망’

    라던스키와 안진휘 골맛, 백지선호 핀란드에 2-5 졌지만 ‘희망’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처음 출전한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4전 전패로 12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승점을 따지 못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한 모습이어서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백지선호’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대표팀은 20일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핀란드와의 8강 진출 플레이오프를 2-5(0-1 2-2 0-2)로 졌다. 단판 승부답게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다. 한국은 1피어리드 선취골을 내줬다. 4분 42초 핀란드의 ‘파워 플레이’(상대 선수의 퇴장으로 수적 우위) 상황에서 엘리 톨바넨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퍽을 크게 넘겼고 페트리 콘티올라가 슈팅을 때렸다. 골 그물이 출렁였다. 이후에도 핀란드의 공세는 매서웠다. 하지만 ‘수호신’ 맷 달튼이 모든 유효 슈팅을 막아내며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1피리어드를 버텼다. 2피리어드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초반엔 위기였다. 2분 51초만에 오현호가 트리핑 페널티로 나간 사이 핀란드의 콘티올라가 찌른 패스가 한국 브라이언 영의 스케이트를 맞고 골문으로 들어갔다. 불운이 겹친 두 번째 실점이었다. 이어 6분 23초에는 미로 헤이스카넨에게 슬랩샷을 허용하며 0-3까지 점수 차가 벌어졌다. 중반부터는 한국이 분위기를 가져갔다.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졌다. 결국 10분 6초 귀화 선수 브락 라던스키가 만회 골을 터뜨렸다. 2분 뒤에는 안진휘가 추가골을 뽑아내며 핀란드를 2-3 턱밑까지 쫓아갔다. 관중석에서도 응원의 목소리가 커졌다.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이 박수와 함께 나왔다. 핀란드 선수들도 잠시 당황하는 모습이었다.동점 골을 노린 한국이 3피어리드에선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7분 20초 우리 문전 앞 혼전 상황에서 오스카르 오살라가 퍽을 욱여 넣어 4-2로 달아났다. 한국의 기세가 꺾였다. 그리고 종료 직전 엠프티넷 상황에 쐐기 골까지 얻어맞았다. 올림픽에서 세계 랭킹 4위 핀란드를 상대로 두 골을 뽑아낸 데 위안을 삼아야 했다. 한국은 조별 예선에서 체코-스위스-캐나다를 상대로 전패했다. 체코전에서는 선제 골을 넣으며 선전했지만 1-2로 졌다. 스위스전에서는 무기력한 경기 끝에 0-8로 대패했다. ‘세계 최강’ 캐나다를 맞아서는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0-4로 졌다. 그래도 올림픽 규정 상 8강 진출의 기회는 있었다. 핀란드와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서야 가장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벽을 넘지 못했다. 강릉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백지선호 ‘수호신’ 맷 달튼 “난 내 임무를 했을 뿐, 앞으로 더 나아질 것”

    백지선호 ‘수호신’ 맷 달튼 “난 내 임무를 했을 뿐, 앞으로 더 나아질 것”

    남자 아이스하키 ‘백지선호’가 세계 랭킹 6위 체코를 맞아 선제골을 넣고도 아깝게 역전패했다. 조민호(31)는 역사적인 올림픽 첫 골을 터뜨렸다. 귀화 선수인 골리 맷 달튼은 눈부신 선방으로 아시아 최고 골리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달튼은 “앞으로 더 나아질 일만 남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15일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체코에 1-2로 역전패했다. 한국은 1피리어드 7분 34초 환상적인 역습에 의한 조민호의 기습 골로 리드를 잡았지만 잇따른 수비 실수로 2실점하며 역전을 허용했다. 한국은 2∼3피리어드에서 날카로운 역습으로 동점 골을 노렸다. 경기 종료 1분 3초를 남기고 작전 타임을 부른 뒤 골리 달튼까지 빼며 극단적인 공격 전술을 폈지만 기대했던 골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비록 첫판을 내줬지만 충분히 웃을 수 있는 경기력이었다. 세계 랭킹 21위인 한국이 세계 ‘톱 6’ 자리를 놓치지 않는 전통의 강호 체코에 이 정도로 대등한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몰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한국이 강호 체코 안방을 수차례 드나들며 적잖은 골찬스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달튼이 뒷문을 단단히 지켰기 때문이다. 달튼은 이날 유효 슈팅 40개 가운데 38개를 막아 방어율 95%를 기록했다. 달튼은 “골리가 하는 일은 최대한 많은 슈팅을 막아 동료들에게 승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나는 내 임무를 했을 뿐”이라면서 “두번째 골을 허용해서 아쉽지만 점점 경기력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팀이 자랑스럽다”면서 “앞으로 경기도 쉽지는 않겠지만 동료들 모두가 준비를 단단히 할 것이며,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역전골은 수비수 마이클 스위프트의 범실에서 비롯됐다. 그가 수비 지역에서 퍽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면서 상대 선수에게 단독 기회를 허용했다. 달턴은 “스위프트가 동료들에게 뭔가 말을 할 것 같다. 그러나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이게 아이스하키다”라며 동료를 감싸 안았다. 조민호는 “승리하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남은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부분에서는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지선(51·영어명 짐 팩) 감독도 “올림픽에서 대단한 첫날 밤이었다. 올림픽 데뷔전에서 첫 골을 넣었다. 우리 선수들은 극도로 열심히 뛰었다. 환상적인 밤이었다”고 웃었다. 다만 “다만 (파워 플레이와 숏핸디드 상황에서 나서는) 스페셜팀이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좋았다”고 흡족해했다. 대표팀은 17일 오후 4시 40분 랭킹 7위 스위스와 맞붙는다. 강릉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도심에서 크고 오래된 나무를 보셨나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도심에서 크고 오래된 나무를 보셨나요

    일본 도쿄 시내에 있는 신주쿠공원에 처음 갔을 때를 기억한다. 도쿄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붐빈다는 신주쿠의 중심에 있는 공원. ‘도심 공원에 있는 나무가 얼마나 크겠어.’ 별 기대 없이 정문을 지나 공원에 들어섰을 때 눈앞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숲처럼 울창한 모습으로 펼쳐졌다. 높이가 15m는 되어 보이는 튤립나무와 잎갈나무,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 이곳의 거대한 나무들을 올려다보면서, 그리고 나무 아래 붙어 있던 나무에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문을 보면서 나는 어쩐지 서울의 나무들이 떠올랐다.나는 우리나라에서 나무에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문을 본 적이 없다. 그건 올라갈 만큼 큰 나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쟁과 일본의 침략을 겪으며 우리나라에 터를 잡고 오래전부터 살아온 나무들은 과거 모조리 베어져, 현재 도시에 있는 대다수의 나무는 심어진 지 불과 오십 년도 채 안 된 젊은 나무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베어진 우리나라 나무들을 생각하니, 어쩐지 그들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돌아가면 얼마 안 남은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들을 그림으로 기록해야지.’ 이럴 때마다 나는 식물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된다.수많은 전쟁과 외부의 침입,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우리나라의 나무들은 주기적으로 심어지고 베어지고, 심어지고 베어지고를 반복해 왔다. 전쟁을 치르고 배고픔에 허덕이던 우리나라 국민은 쓸모가 많아 값어치 있던 곳곳의 소나무들을 베어야 했고, 한반도를 수탈하던 일본은 우리나라의 국화이자 상징인 무궁화를 모조리 베었다. 무궁화는 수백년을 살 수 있는 나무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수백 년 된 무궁화 나무가 없다.오래전 나무는 가난했던 우리에게 식량이었고, 땔감이었지만 제국주의 일본에는 식민지를 지배하는 데 거슬리는 생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무는 베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슬픈 역사 속에서 고맙게도 몇몇 나무는 꿋꿋이 살아남았다.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지키는 정자목인 느티나무와 소나무, 절 마당의 은행나무와 같은 나무들 말이다. 다른 나무들이 베어지는 동안 느티나무는 마을 수호신인 정자목으로서 수백년간 꿋꿋이 살아남았다. 정자목에는 혼이 깃들어 있어 함부로 베면 그 사람에게 해가 간다는 소문 덕분에 유독 이들은 베어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살아왔다는 것보다는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이런 크고 오래된 나무의 존재를 소중히 여겨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을 보호수로 지정해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형이 아름답고, 크고, 희귀하고, 오래된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한다. 그리고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종이다. 내가 사는 남양주에는 300년 된 느티나무가, 저 먼 부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1300년 된 느티나무가 살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오래되고 거대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나무는 ‘헤리티지 트리’로 관리되고 보호받는다. 몇 년 전 세계적 식물연구기관이자 식물 문화가 가장 많이 발달한 영국의 왕립식물원인 큐가든(Kew Royal Botanic Gardens)에서는 그곳을 울창하게 만든, 100년 이상 된 오래되고 거대하고 역사적인 나무 개체들을 그림으로 기록해 ‘헤리티지 트리’라는 책으로 엮고, 동명의 전시도 열었다. 사람들은 이 책과 전시의 그림으로 얼마나 다양한 나무들이 우리 곁에 오래도록 살아왔는지, 그들이 그 긴 역사 동안 어떤 형태로 진화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미세먼지나 황사와 같은 공기오염 문제를 겪으며 요 몇 년 새 우리나라 사람들도 나무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나무 심는 회사들이 하나둘 생기고, 어린 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딴 나무숲을 만들고 휴일이면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 나무 심기 운동을 한다. 우리나라 역사 속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풍경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나무 심기 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산속의 소나무를 베어내고, 불타버린 숭례문을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오래된 숲의 금강소나무를 베어내고, 열매의 냄새가 지독하다며 가로수인 은행나무를 베어내고 있다. 우리는 나무를 심으면서 또 나무를 계속 베어낸다. 느티나무를 그리려 삼백년 동안 살아온 느티나무의 거친 수피를 만지면서, 두터운 잔가지들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이들이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상상할 수 있다. 긴 시간을 지나 그 어느 존재보다 묵직하고 강인한 힘을 축적해 온 나무들. 나는 그들을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작업실 창문 밖으로 재작년 어느 수목원에서 사와 심은 어린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보인다. 오십년 즈음 후에도 이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잘 살고 있을까. 자라고 또 자라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된 이들을 저만치 올려다볼 그날을 상상해 본다.
  • 평창동계올림픽 브랜드·디자인에 담긴 ‘한국의 美’

    평창동계올림픽 브랜드·디자인에 담긴 ‘한국의 美’

    역대 최대 규모의 참가국 및 선수단이 참가하는 평창동계올림픽은 브랜드·디자인 등록도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6일 특허청에 따르면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조직위)가 올림픽과 관련해 출원한 상표와 디자인이 500여건에 달한다. 올림픽 공식 브랜드와 디자인은 개최국 문화와 전통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이자 디자인 수준을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다. 이에 따라 개최국들은 자국 디자인 역량을 총동원해 공식디자인을 내놓는다. 공식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는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동물로, 한민족의 수호신과 같은 호랑이와 강원도를 상징하는 반달가슴곰을 현대적으로 표현했다. 엠블럼은 한글 ‘평창’의 자음과 눈꽃 모양을, 음양오행 원리의 전통색채인 오방색을 더해 한국미를 뽐내고 있다.디자인권으로 출원된 성화봉은 전통 백자를 모티브로 몸통에 다섯 개 불길이, 상단에는 각 불길이 하나의 불꽃으로 모아지도록 설계하면서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단아한 곡선을 살려 전통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메달 디자인은 한글 자음을, 메달 리본은 한복 소재인 비단(갑사)을 활용했고 케이스는 전통 기와지붕 곡선을 재해석해 전통미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이재우 상표디자인심사국장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 미래가 어우러진 동계올림픽의 공식 브랜드와 디자인이 화합의 상징으로 기억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특허청은 올림픽이 개막하는 오는 9일부터 네이버 홈 디자인판을 통해 디자인 지식재산권 정보를 주 1회 제공할 계획이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2017 월드리뷰 ② 中·日·亞] 1인 체제·美에 도전… 강력해진 ‘시월드’

    [2017 월드리뷰 ② 中·日·亞] 1인 체제·美에 도전… 강력해진 ‘시월드’

    “당장(당헌) 수정안에 동의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말에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을 포함한 당 대표 2336명 전원이 손을 들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손을 들라”는 말에 “메이유”(沒有·없다)라는 말이 인민대회당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시 주석은 “통과됐다”고 선언했다. 2017년 10월 24일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간 당장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순간이었다.이 순간을 기점으로 시 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의 반열에 올랐다.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에게 똑같은 의결권을 줬던 집단지도체제는 상명하복의 1인 체제로 바뀌었다. 시진핑은 관례를 깨고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아 권력 연장 가능성까지 열어 놓았다. 시진핑의 오류가 곧 공산당의 오류가 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은 개인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중국 사회를 계속 통치해 나아가야 하는 공산당 전체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빈부격차 등 사회분열 양상이 심화하고, 미국과의 패권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 때문에 2017년에 열린 다른 정치 행사도 모조리 시진핑 권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8월 1일 ‘건군 90주년’을 맞아 아시아 최대 훈련지인 네이멍구 주르허 기지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시 주석은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부대를 사열하며 “당 중앙에 대한 충성이 군사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당 중앙의 ‘핵심’인 자신에 대한 절대 충성을 명령한 것이다. 집중된 권력을 품은 시 주석은 거침없이 ‘중화 부흥’의 길로 나아갔다. 숨겨 뒀던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의 칼을 꺼내 든 시 주석은 분발유위(奮發有爲·분발해 성과를 이뤄낸다)라는 외교전략으로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질서에 도전했다. 시 주석은 지난 1월 다보스포럼, 5월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정상회의,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세계 자유무역의 수호신이 되겠다”고 거듭 밝혔다. 미국 우선주의로 고립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다. 자금성(紫禁城)을 통째로 비워 놓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제급 예우(11월 8일)를 한 것도 앞으로 다가올 ‘중화 제국시대’를 미리 보여 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하지만 철권통치에는 많은 부작용이 따랐다. 중국 정부는 인권운동의 상징이었던 류샤오보(劉曉波)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해외 치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류가 사망한 7월 13일 세계가 함께 슬퍼한 것은 중국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다. 체제 비판적 변호사, 활동가들도 줄줄이 체포됐다. 14억 인구를 기반으로 급속도로 발전한 인터넷 환경은 열린 사회로 가는 길을 열어 주는 게 아니라 ‘빅 브러더’ 구축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11월 18일 베이징 빈민촌 화재로 19명이 숨지자 시정부는 빈민촌을 모두 철거해 버렸다. 보금자리를 잃은 이주노동자(공민공)들은 시 주석이 당대회 때 약속한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게 신시대냐”고 항의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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