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수학여행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43
  • ‘열여덟의 순간’ 옹성우, 달라진 김향기에 가슴앓이 “이걸 믿었어?”

    ‘열여덟의 순간’ 옹성우, 달라진 김향기에 가슴앓이 “이걸 믿었어?”

    ‘열여덟의 순간’ 옹성우와 김향기의 로맨스 꽃길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19일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연출 심나연, 극본 윤경아, 제작 드라마하우스·키이스트) 9회에서는 휘영(신승호 분)이 보낸 문자 메시지 한 통에 흔들리는 준우(옹성우 분), 수빈(김향기 분)의 애틋한 변화가 그려졌다. 준우와 수빈의 첫 데이트를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휘영의 메시지였다. 휘영이 준우에게 받았다고 밝힌 메시지에는 ‘너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 유수빈이지? 나도 너처럼 뺏어줄게’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휘영에 대한 보복심에 준우가 자신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좀처럼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마음 졸이며 수빈을 찾아온 휘영은 자신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음을 깨닫고 깊은 자책감에 빠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준우는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한순간 달라진 수빈의 태도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오제(문빈 분)에게 수빈이 첫사랑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은 그는 “좋은 건 요만큼? 나머지 이만큼은 뭔가 무겁고 찜찜하다”며 “숨만 쉬고 있어도 걔한테 뭔가 실수하는 느낌? 잘 하고 싶은데 자꾸자꾸 잘못하는 느낌”이라고 수빈을 향한 마음을 고백했다.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복잡미묘한 감정에 준우의 가슴앓이는 점점 깊어져 갔다. 준우를 향한 감정을 애써 지워보려는 수빈.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미(한성민 분)가 그를 자극했다. 마치 준우를 좋아하는 일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로미에게 “솔직히 말할게. 나도 걔 좋아해, 좋아했어. 네가 좋아한다고 나도 그래선 안 된다는 법 없잖아. 사람 마음 어쩔 수 없는 거니까”라며 당당히 마주했다. 그러나 준우를 좋아하냐는 돌직구 질문에 선뜻 대답 못 한 채 자리를 떠난 수빈. 그때 그 옆을 지나가는 준우를 발견한 로미는 “너 분명히 얘기했다? 최준우 안 좋아한다고”라고 되물으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하굣길 수빈을 찾아간 준우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더욱 마음이 아픈 수빈은 “그냥, 누구를 사귄다는 게 부담스러워졌어”라며 둘러댔고, 준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전하지 못한 그림 선물을 건네 안타까움을 배가시켰다. 그러던 중 ‘천봉고’의 수학여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반장 준우를 중심으로 아이들은 추억으로 남길 특별한 이벤트 준비에 나섰다. 수빈은 관심 없다는 듯 돌아선 휘영에게 함께 하자고 부탁했고, 두 사람의 추억이 있는 오락실에서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그날 밤, 서로의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에수빈은 “나를 진짜 좋아했구나,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최준우가 보낸 문자까지 나한테 보여준 거구나. 내가 괴로워할 거 알면서도. 순간의 질투심이었을까?”라며 휘영의 마음을 찔렀다. 수빈을 아프게 했다는 후회에 휘영이 모든 것을 고백하려는 찰나, 준우가 나타나며 세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형성됐다. 결국 망설이던 수빈은 준우에게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휘영이 꾸며낸 거짓 메시지의 존재를 알게 된 그는 “넌 이걸 믿었어? 나보다?”라며 자신을 믿지 못했던 수빈에게서 돌아섰다. 이날 아슬아슬하게 꼬여가는 준우, 수빈, 휘영의 감정 변화가 세밀하게 그려졌다. 특히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 슬픔에 젖은 준우의 눈빛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천봉고’ 전학 생활의 시작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었던 수빈, 하지만 휘영이 꾸며낸 거짓 메시지 한 통에 한순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다는 사실을 마주한 그의 아픔이 공감을 자아냈다. 자신의 오해로 인해 준우에게 상처를 남긴 수빈,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수빈에게 상처를 남긴 휘영, 꼬여버린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풀어질 것인지 궁금증을 더한다. ‘열여덟의 순간’ 10회는 오늘(20일) 밤 9시 30분 JTBC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In&Out] 국내여행은 사시사철, 비수기가 더 좋다/윤영호 한국관광협회중앙회장

    [In&Out] 국내여행은 사시사철, 비수기가 더 좋다/윤영호 한국관광협회중앙회장

    우리 관광업계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해 4월 16일, 세월호 사고 이후 수학여행이 전면 금지되고, 2015년 5월에 시작된 메르스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의 감소가 가을까지 이어졌다. 2016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정부의 한국 단체관광 금지조치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일 경제전쟁의 심화와 일본정부의 한국 여행주의보 발령에 따른 일본인 관광객 감소로 국내 관광업계의 시름이 깊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관광업계는 외래 관광객 감소로 인한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한국은 세계 6위의 국제 관광소비국가로 올해 해외여행자는 3000만명으로 예상된다. 즉 우리 국민은 해외여행을 즐긴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국내여행보다 해외여행을 선호할까. 휴가 시기와 휴가지의 쏠림현상 그 자체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일부 관광지에서의 ‘바가지 요금’과 불친절 때문 아닐까. 그걸 경험한 뒤 국내여행에 대한 생각을 접지 않나. 관광업계의 극히 일부라 하더라도 국내여행을 많이 다니게 하려면 먼저 변화가 필요하다. 본디 여행은 무엇보다도 마음 편하게 지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들이 왜 국내여행을 가지 않냐고 호소하기 전에, 어떤 점에서 관광객들이 불편함을 느꼈는지 반성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관광은 서비스 산업이다. 관광의 기본은 종사자의 친절이다. 정해진 요금을 받고, 약속한 서비스를, 친절하게 제공하는 기본을 지키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올여름 일부 지역의 숙박요금과 식비가 비싸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방학과 여름휴가라는 성수기에, 해안가 등 더위를 씻을 수 있는 특정 지역에 사람이 몰리면서 일시적으로 관광지의 서비스가 관광객의 기대수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본다. 분명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점이다. 다만 여름 성수기에 관광지의 수용력이 낮다고 해서 비수기에도 그런 것은 아니다. 휴가철이 마무리되면 전국의 관광지는 이제 본격적인 비수기로 접어든다. 이때 숙박업소의 가격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7월 말 국내 숙박비를 검색해 보았다면, 8월 말에서 9월에 이르는 시기에 가격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숙박업소라도, 비수기에는 훨씬 저렴하고 서비스도 좋아진다. 국내 여행수요를 비수기로 분산하기 위해 정부와 관광업계도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국민들도 비수기 여행의 장점을 적극 이용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국내여행은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제조업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에 활력을 부여하고, 외교 갈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관광산업에도 큰 힘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러한 취지의 당부를 하지 않았던가. 여행을 오는 국민을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고, 관광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때다. 관광업계부터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준비해야 한다.
  • [사설] ‘노 재팬’에도 민간교류는 흔들리지 않아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비롯된 한일 갈등이 전방위로 꼬리를 물고 있다. 정치외교 분야의 경색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민간교류마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문화 관광 등 순수한 민간 차원의 교감조차 발붙일 여지가 없어지는 지금의 사정은 결코 가볍게 봐 넘길 문제가 아니다. 당장 스포츠나 문화 교류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연기되는 사태가 속출한다. 두 나라 모두 학생들의 수학여행부터 상대국에 보내지 않겠다고 취소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짧은 기간에 상대국 여행객은 양쪽 모두 30%가량 뚝 떨어졌다. 국내에는 한류 스타들의 일본 활동도 중단돼야 한다는 급진적인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한류 불매운동이 일본의 시민사회에서도 맞대응식으로 불거지고 있다. 지난 주말 국내 시민단체들이 주도한 ‘아베규탄시민행동’은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어 ‘반일 연대’를 재확인했다. 일본의 적반하장식 경제 옭죄기에 오죽 분통이 터졌으면 불볕더위에 청소년들까지 나서서 촛불을 들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정치와 민간교류를 구분하는 냉정한 시각을 되찾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상대국에 여행 발길을 하루아침에 끊다시피 하는 신경전 속에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리고 있기는 국내 관광업계도 마찬가지다. 민간교류의 최일선 창구인 지방자치단체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서울 중구청이 곳곳에 내걸었던 ‘노 재팬’ 배너가 시민들의 지적으로 철회됐다. 이처럼 시민보다 균형감과 인식 수준이 떨어지는 지자체들이 많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일본 영화 상영을 취소하자는 시 의회 주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은 다행스럽다. 정치외교에 감정이 상했다고 전시장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치우는 졸렬하고 편협한 대응을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 김포시 “경제 독립운동 실천하겠다” 천명

    김포시 “경제 독립운동 실천하겠다” 천명

    경기 김포시가 일본의 경제침략을 강력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포시는 5일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 제외 결정이 자유무역 질서를 교란하는 부당하고 무도한 결정이라면서 ‘경제 독립운동’을 실천하겠다고 천명했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지방정부연합은 적극적으로 공동 대응하고 행정용어와 지명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정리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또 일본산 물품·공사자재 불매운동과 피해기업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일본 교류나 방문지원을 전면 중단하고 시민과 함께 경제독립운동을 지속 전개하기로 했다. 다음은 일본 경제보복에 대한 강력 규탄 성명서 전문. 김포시는 일본 정부의 부당한 경제침략 행위를 강력 규탄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2일 대한민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자유무역 질서를 교란하는 동시에 정경 분리의 원칙을 훼손하는 부당하고도 무도한 결정이다. 뿐만 아니라 부당한 경제적, 기술적 압력과 보복을 통해 우리 경제를 뒤흔들어 미래를 망치려는 고의적 경제 침략행위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시는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해 시민과 함께 당당히 맞설 것이며, 일본은 경제침략 행위를 조속히 철회하고 반성과 사죄를 해야 한다. 시는 우리나라와 국민 각자가 입은 피해에 대해 정당한 배상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경제 독립운동’을 실천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①김포시는 지방정부연합에 참여하여 적극적인 공동 대응에 나설 것이다. 지난 7월 30일 52개 기초 지방정부로 구성된 ‘일본 수출규제 공동대응 지방정부 연합’에 참여하여 일본의 경제보복에 공동 대응하겠다. ②김포시는 행정용어 및 지명 등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말끔히 정리할 것이다. 행정기관에서 사용하는 각종 용어와 지명 또는 행정구역 명칭 등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고유한 우리말로 바꾸겠다. 이에 대한 작업은 시민들과 함께 숙의하고 토론하여 가장 민주적 방법으로 추진하겠다. ③김포시는 각종 물품 구입과 공사자재 등 납품 시 일본산 제품을 쓰지 않을 것이다. 시에서 발주하는 물품 구입이나 공사와 관련하여 일본산 제품의 사용을 엄격히 통제하고 국산제품으로의 대체를 적극 추진하겠다. ④김포시는 지역 내 피해기업에 대한 지원을 적극 실시할 것이다.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피해상황을 꼼꼼하게 파악하는 한편, 사태 수습에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을 적극 실시하고 대응책 마련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 아울러, 경쟁력을 갖춘 관내 기업들이 소재?부품?장비 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동시에 중소기업 육성자금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 ⑤김포시는 일본과의 교류 및 방문지원을 전면 중단할 것이다. 이 상황이 마무리 될 때까지 일본과의 상호 친선 교류방문 및 일본 해외 시찰 등을 지원하는 각종 사업을 취소하고 중·고교생 수학여행 경비 지원 시 일본방문에 대한 지원을 배제 하겠다. ⑥김포시는 시민과 함께 경제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 할 것이다. 김포시는 시민사회단체의 일본제품 불매운동 및 일본 여행 자제를 적극 지지하는 등 우리의 강한 의지를 표명해 나가겠다. 시관계자는 “일본 정부 행태는 과거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며, “우리 선조들은 들불처럼 일어나 나라와 겨레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졌다”고 밝혔다. 이어 “김포시민 모두는 그 후손으로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경제를 수호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경제침략에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포시는 ‘제2의 독립운동’을 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일본의 경제침략에 단호하게 대응해나갈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냉부해’ 한상진 “과거 47kg 감량, 비결은 1일1식에 조깅”

    ‘냉부해’ 한상진 “과거 47kg 감량, 비결은 1일1식에 조깅”

    배우 한상진이 ‘냉부해’에 출연해 47kg를 감량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지난 29일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해’)에서는 배우 한상진과 전 농구선수 허재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MC 김성주는 배우 한상진에 대해 “중학교때 키 158cm에 몸무게가 108kg이었다고 들었다. 지금은 관리를 하시는 거냐”고 물었다. 이에 한상진은 그렇다고 밝히며 과거 식사량에 대해 “방과후에 치킨 프렌차이즈에서 패밀리팩을 혼자 먹고, 집에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먹고, 집에 가서 밥을 먹는다. 치킨은 밥이 아니다. 학원가기 전에 햄버거를 먹고, 저녁 먹고, 저녁 먹고 있으면 다른 가족들이 온다. 다른 가족들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는다. 그 때는 배고프다는 감정을 몰랐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한상진은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살을 빼기로 결심했다”며 그 계기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깨우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상진은 “수학여행을 가서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디스코 타임에 그 여자친구 앞에서 춤을 추면서 ‘나 너 좋아해’ 그랬는데 그 여자친구가 저를 보면서 ‘너 너무 뚱뚱해’ 그러더라. 순간적으로 나를 제외한 주변이 다 흑백이 된 기분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다음날부터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뛰었다. 밥도 하루에 한끼만 먹었다. 그렇게 47kg를 감량했다”고 덧붙였다. 사진=JTBC ‘냉부해’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학교로, 지자체로… 들불처럼 번지는 NO JAPAN

    학교로, 지자체로… 들불처럼 번지는 NO JAPAN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노노재팬’이 학교와 지자체까지 확산되는 등 범국민적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남도교육청은 산하 전 기관과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 일본 공무 출장과 현장체험학습 자제를 권고했다고 25일 밝혔다. 기관 교류, 연수 등 모든 일정을 중단하도록 했다. 이미 계획된 출장도 가능한 한 변경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예약 취소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도 학부모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전남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청소년미래도전프로젝트와 도내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 등 일본 현지 활동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2019 청소년미래도전프로젝트’ 일본팀 6개의 현지 활동을 취소했고, 보성초·동복초·보성복내중·진상중·전남기술과학고 등은 2학기에 예정된 일본 수학여행을 취소하거나 장소를 변경했다.광주에서는 제10기 한일 청소년 평화교류단의 일본 방문이 취소됐다. 광주시교육청은 2013년부터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주관하는 양국 청소년 교류 사업을 지원해 왔다. 올해도 학생 20여명이 26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일본 나고야 등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광주제일고는 학교 매점에서 일본 음료를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제일고 학생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펼치고, 역사동아리 학생들은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전남 광양고 학생 280여명도 지난 24일 일본 제품 불매운동 동참을 선언했다. 수능을 코앞에 둔 3학년 학생들까지 참여해 “일본 정부는 사과하고, 무역 규제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광주 광덕고 학생들은 일본 학용품보다 국산을 구입하고, 부모님에게 한국 음식을 사 먹도록 권장하기로 했다. 충남도에서도 10개 학교가 일본으로 계획했던 수학여행지를 변경하거나 국제 교류행사를 취소할 예정이다. 부여정보고는 일정 자체를 없앴다. 다음달부터 11월까지 자매결연 교류가 예정된 공주금성여고, 온양한올고, 논산여상, 부여교육지원청 등은 행사를 취소하거나 무기한 보류했다. 직업교육 교류를 계획했던 금산하이텍고는 대만으로 변경했다. 자치단체들도 적극 호응하고 있다. 부산시, 강원도, 경남도 등도 청소년 교류와 우호 교류 등을 위해 예정된 방문행사 등을 줄줄이 취소했다.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와 부산지역 8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일본 제품 불매운동 범시민운동을 결의하고 “안 팔고, 안 사고, 안 가고, 안 타고, 안 입는 ‘5NO 운동’을 중소상인과 시민이 함께한다”고 선언했다. 충북 괴산군은 이달 말 계획했던 청소년 일본 연수를 전격 취소하고 장소를 중국 상하이로 변경했다. 증평군의회와 옥천군의회도 일본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군민과 함께 일본 제품을 불매하고 일본 여행을 자제하자는 범국민운동을 강력하게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북 경산시도 1994년부터 시작된 자매도시 조요시와의 중학생 상호 교류를 무기한 연기했다. 경남도도 오카야마현과 맺은 우호 교류 협정 1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 등을 협의하기 위해 도 공무원 등이 다음달 16일부터 사흘간 오카야마현을 방문하려던 일정을 취소했다. 도는 행정부지사 등이 오는 11월 오카야마현을 방문하는 일정도 취소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경남도 소방행정과 공무원 6명은 공무국외여행으로 9월 초 예정이던 일본 배낭여행을 취소하고 나라를 변경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전국종합
  • 구로다, 불매운동 조롱…“유니클로 대신 삼성스마트폰 불매해야”

    구로다, 불매운동 조롱…“유니클로 대신 삼성스마트폰 불매해야”

    “반일 애국 증후군의 일종” 주장“인터넷에서만 보여주기식 불매” 폄하한국 비판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일본 우익 언론인인 구로다 가쓰히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한국에서 벌어진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폄하했다. 은퇴 이후 서울 주재 산케이 객원 논설위원으로 매주 칼럼을 쓰는 구로다 전 지국장은 지난 20일 칼럼에서 “한국인의 불매운동은 인터넷에서만 활발한다”며 “의류, 맥주 등 일본산 소비재가 아니라 일본 부품이 잔뜩 들어간 삼성 스마트폰을 불매해야 한다”고 조롱했다. 그는 “한일 관계 악화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화제인데 한국에서 자주 보이는 ‘반일 애국 증후군’의 일종”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그는 주한 일본인의 말을 빌려 “유니클로와 아사히 맥주 대신 일제 소재와 부품을 많이 사용한 삼성전자 등 국산 스마트폰을 불매운동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일본산 문구용품의 대체품으로 주목받은 모나미 주가가 상승한 것도 언급했다. 구로다 전 지국장은 “주위에 물어보니 일제 문구는 품질과 디자인이 좋고 위생적이며 안전해서 아이들과 엄마들이 좋아한다더라”며 모나미가 일제를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로다 전 지국장은 불매운동 열기가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짐작했다. 그는 “실제 행동보다는 인터넷에서 반일 성향을 발산하는 경향이 있다”며 “남몰래 조용히 (불매)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불매)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우리 지방교육청이 일본식 한자 조어인 ‘수학여행’을 사용하지 않도록 퇴출시킨 것도 ‘반일 증후군’이라면서 “그런 식이라면 교육, 학교, 교실, 국어, 과학, 사회, 헌법 민주주의, 시민, 신문, 방송 모두 일제 아닌가”라며 비웃었다. 앞서 구로다 전 지국장은 지난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한국이 이만큼 풍요로운 나라로, 경제적으로 발전한 것은 1965년 일본이 준 3억 달러가 기초가 된 덕분”이라는 망언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아는형님’ ITZY, 소속사 대표 박진영에 “실물 진짜 잘 생겼다”

    ‘아는형님’ ITZY, 소속사 대표 박진영에 “실물 진짜 잘 생겼다”

    ‘아는형님’에 출격한 걸그룹 ITZY(있지)가 소속사 대표 박진영에 대해 애정을 드러냈다. 13일 방송된 JTBC ‘아는형님’은 수학여행 두 번째 편으로 꾸며진 가운데 걸그룹 ITZY가 게스트로 등장했다. 이날 ‘아는형님’ 멤버들에게는 ITZY 멤버들의 이름을 맞춰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솜털’ 별명을 가진 멤버를 맞춰보라”고 하자 김희철은 “입이 가벼워서 솜털 아니냐. JYP 박진영에 대해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채영은 소속사 JYP 엔터테인먼트 수장 박진영에 대해 “젠틀하고 잘생겼다”며 칭찬했고, 멤버들 역시 “정말이다. 화면보다 실물이 잘생겼다”며 입을 모아 말했다. 이를 들은 김희철은 “JYP는 회사에서 교육을 하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박진영 둘 중 누가 더 잘 생겼냐’는 질문에 리아는 “난 원래 막생긴 얼굴 좋아한다”고 덧붙여 웃음을 안겼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춤추는 로봇·우주선 탑승 체험… 마산에 로봇랜드 문 연다

    춤추는 로봇·우주선 탑승 체험… 마산에 로봇랜드 문 연다

    연구개발·놀이·전시·숙박시설 갖춘 세계 첫 산업연계형 로봇 복합공간 35m 높이 고공낙하 쾌속열차도 주목산업용 로봇 5대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노래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는 로봇극장, 35m 높이에서 순식간에 고공낙하한 뒤 질주하는 쾌속열차.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며 관람객을 반기는 높이 13m짜리 대형 로봇 모형. 지난 7일 찾은 국내 유일의 로봇테마파크인 마산로봇랜드는 오는 9월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개관 준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바닷가 산자락 125만 9890㎡(약 38만평)에 조성된 마산로봇랜드는 세계 최초로 로봇을 테마로 만든 산업연계형 대규모 로봇 복합문화공간이다. 경남도와 경남로봇랜드재단이 국비, 도비, 시비, 민자 등 총 7000억원을 투입해 진행하는 국책사업이다. 경남도청에서 차로 1시간쯤 걸리는 마산로봇랜드는 로봇연구개발센터, 컨벤션센터, 놀이 및 전시·체험시설인 로봇 테마파크, 숙박시설인 호텔·콘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전체시설 가운데 연구개발센터와 컨벤션센터, 전시체험시설은 공공시설이다. 테마파크와 호텔, 콘도 등은 민자로 건설하는 민간시설이다. 사업자로는 대우건설, SK, 서울랜드 등이 참여했다. 중심시설은 로봇을 테마로 만든 놀이·체험시설인 테마파크다. 테마파크는 전체 16만 9224㎡(약 5만 1190평) 부지에 로봇을 주제로 22개 놀이기구·시설과 로봇전시체험 11개 시설 등으로 이뤄져 있다. 로봇전시체험시설은 산업현장과 생활에서 활용되는 로봇을 실제 체험하는 공간이다. 모두 256대 첨단 로봇이 배치돼 있다. 놀이시설 가운데 쾌속열차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시설이다. 1개 기구에 9명이 탑승해 35m 높이 고공에서 2~3초 사이 시속 90㎞ 속도로 낙하한 뒤 다시 고속으로 681m를 달린다. 65m 높이에서 주변 경치를 조망하면서 낙하하는 스카이타워도 아찔함을 선사한다. 우주항공관은 흔들리는 특수의자에 앉아 4분 30초 동안 우주선을 타고 우주세계를 체험하는 로봇체험시설이다. 테마파크와 인접해 있는 로봇연구개발센터(3개동)와 컨벤션센터는 로봇산업 진흥을 위한 산업연계시설이다. 로봇연구센터에는 26개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한 컨벤션센터는 연면적 6450㎡로 전시장 1개(1916㎡)와 회의실 2개를 갖췄다. 로봇 관련 전시회와 대회, 예식장, 회의장 등으로 활용된다. 정창선 경남로봇재단 원장은 “학교 수학여행과 해외 관광객을 비롯해 연간 관광객 150만명 유치가 목표”라면서 “안전하고 재미있는 세계 최고 로봇 놀이·체험 공원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아는 형님’ 진관사, 첫 수학여행은 템플스테이 ‘어땠길래?’

    ‘아는 형님’ 진관사, 첫 수학여행은 템플스테이 ‘어땠길래?’

    ‘아는 형님’ 멤버들이 진관사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다. 6일 오후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에서는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아형 멤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수학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현재 속에 과거를 품고 있는 서촌이었다. 강호동은 수학여행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아내가 만들어준 도시락을 꺼내며 “소풍 간다고 집에서 진짜로 도시락을 밤새 싸줬다”고 자랑했다. 멤버들은 “형수님 감사합니다”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이수근은 “시후 거 뺏어 온 거 아니냐”고 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강호동은 “운동선수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훈련한다고 수학여행을 못 갔다. 예전 소풍을 생각해보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면 그 추억이 오래 남는다”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서촌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세 살 때 큰아버지 댁에 입적한 이상이 머물렀던 집터였다. 멤버들은 이상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 뒤 운영기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서촌에 이어 통인시장에 도착한 이들은 제작진에게 전달받은 엽전으로 고로케, 식혜, 기름떡볶이 등 다양한 시장 음식을 즐겼다. 서장훈은 “시장에 와서 이렇게 여러 음식을 맛볼 기회가 흔치 않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다음으로 활쏘기 체험을 할 수 있는 황학정을 찾았다. 고종의 명으로 경희궁 안에 자리했던 황학정은 사직동으로 옮기게 됐다고 아려졌다.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던 황학정 사범들의 활쏘기 시범을 보여줬다. 사범들을 따라 멤버들은 국궁 체험에 나섰지만, 활시위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했다. 멤버들은 대결에 들어갔고 김영철이 꼴찌를 하며 화살 줍기 벌칙을 수행했다. 다음 목적지는 수성동 계곡이었다. 청계천의 발원지이기도 한 수성동 계곡은 ‘계곡의 물소리가 크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 한복판 주택가를 지나 인왕산을 향해 뻗은 길옆 계곡에 멤버들은 모두 감탄했다. 이들은 점심 도시락을 걸고 과거시험 미션에 나섰고, 서장훈이 단독 1등을 차지했다. 계속해서 멤버들은 민족의 보물을 품고 있는 고려 현종 때 세워진 진관사 탐방에 나섰다. 이들은 진관사 선우 스님을 만나 90년 만에 칠성각을 보수하면서 태극기를 발견하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진관사를 둘러보며 곳곳에 자리한 역사의 흔적을 마주한 멤버들은 템플 스테이에 임했다. 템플 스테이에서 멤버들은 욕심을 내려놓고 화를 삭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졌다. 발우공양을 비롯해 절의 예법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도 보낸 뒤 숙소로 이동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하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50여년 전 걸작들이 쏟아졌다

    하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50여년 전 걸작들이 쏟아졌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중흥기로 명명된다. 아직 텔레비전이 대중화하지 않은 시기, 영화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가장 사랑받는 매체였고 한국의 할리우드라 불린 서울의 충무로3가 일대는 제작자와 지방흥행업자, 감독과 각 분야의 스태프 그리고 스타와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쳤다.‘르네상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1960년대는 무려 1500편이 넘는 한국영화가 만들어졌다. 1962년 113편이었던 제작편수는 1965년 189편을 기록했고 1968년부터는 한 해에 무려 2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됐다. 이러한 양적 성장을 뒷받침한 것은 다양하게 시도된 장르였다. 멜로드라마, 코미디, 스릴러액션 등 대중적 장르영화부터 한국식 작가주의 영화라고 할 문예영화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들이 만들어져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국가 주도의 영화기업화 정책이 가동되고 있었던 것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연재는 1960년대 전반기의 한국영화계를 살펴본 후 1960년대 초부터 두각을 나타낸 한국영화사의 거장 신상옥, 유현목 그리고 김기영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기로 한다. ●4·19와 5·16 사이 제작된 ‘오발탄’ 등 시대 반영 1960년 4·19 혁명과 1961년 5·16 군사정변 그리고 1년 7개월간의 군정에 이은 1963년 12월 제3공화국의 출범까지, 영화계 역시 한국 근대사의 정치적 격변기와 연동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4·19와 5·16 사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화계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1960년 8월 영화윤리전국위원회가 만들어져 영화검열 업무가 민간으로 이관된 것이 결정적이다. 위원장 이청기, 부위원장 이진섭, 전문위원 허백년, 최일수 등의 이름에서 당대 문화계 지식인들이 대거 참가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설립된 민간 자율 심의기구는 5·16 군사쿠데타와 함께 해체되고 만다. 그간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의 주목할 지점이다. 대표적으로 ‘오발탄’(유현목), ‘마부’(강대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삼등과장’(이봉래), ‘현해탄은 알고 있다’(김기영) 등 한국영화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 1961년의 관객들과 만났다. 이 영화들은 기존의 한국영화를 넘어서는 현실 비판적 주제와 대담한 표현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한편 전통과 근대적 가치가 경합하는 양상을 포착하며 깊은 공감을 끌어냈다. 특히 ‘오발탄’은 5·16 이후 상영 중지 등 정치적 고초를 톡톡히 겪었다. 당시 심의 서류에 따르면 영화 전반의 어두운 분위기 즉 “예술적인 견지에서는 우수하나 5·16 이전의 사회악과 국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 문제가 됐다. ●급격한 근대화에 기반한 성장… 내면은 부실 군사정권은 강력한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추진했고 영화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61년 9월 군소 영화제작사 72개사를 16개사로 통합한 데 이어 1962년 1월 20일 최초의 영화법이 제정·공포됐다. 1963년 3월 영화법 1차 개정은 영화산업의 기업화를 정부가 주도하는 제도적 근거가 됐다. 목표는 안정적인 제작 시스템 구축이었지만 실질적인 체질 개선이 힘들다 보니 정부 주도의 인위적인 정책이 대신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사 등록 요건의 강화이다. ‘35밀리 이상 촬영기, 조명기, 건평 200평 이상의 견고한 시설로 된 스튜디오, 녹음기, 전속의 영화감독·배우 및 기술자’를 구비해야 영화업자로 등록할 수 있었고 연간 15편 이상의 제작 실적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등록을 취소당할 수 있었다. 이에 1963년 6월 21일 한국의 영화사는 순식간에 극동, 한양, 한국영화, 신필름의 4개사로 정리되고 만다. 국책에 의한 영화기업화는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등록된 영화사들은 등록 유지를 위해 형식적으로만 조건을 채우기 일쑤였고 개인 프로덕션의 자율적인 창작 활동은 원천적으로 봉쇄됐다. 사실 영화법에 의해 등록된 영화사가 서류상 올린 감독, 배우, 기술진은 대부분 허위였고 연간 15편 이상의 극영화 제작 실적은 등록제작사의 자체 제작보다는 군소 프로덕션의 ‘대명제작’으로 채우는 것이 현실이었다. 즉 등록이 힘든 영화사가 등록된 제작사와 계약해 그 회사의 이름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당시 한국영화계의 가장 일반적인 제작 방식이었다. 급기야 영화인협회가 중심이 된 영화법폐기촉진위원회가 1964년 3월 영화법 폐기를 건의하며 나섰고 결국 1966년 8월 영화법 2차 개정 때 가장 현실성이 없었던 녹음시설 및 감독, 배우, 기술자 전속제에 관한 규정만 삭제된다. 이처럼 196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국가 주도의 근대화에 기반하고 있었다. 한국영화계 역시 급격히 확대된 외양에 비해 그 내면은 부실한 상황을 연출하며 이른바 한국식 근대화의 특징적 모습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특히 흑백 시네마스코프(와이드스크린)나 후시녹음 등 기술적인 부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서구영화의 일반적인 기준인 컬러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1960년대 후반에야 정착할 수 있었고 영화 속 인물들의 목소리는 실제 촬영 현장의 배우가 아닌 녹음실 성우들의 후시녹음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이는 당시 한국의 경제 상황에 맞게, 영화계가 가장 합리적인 제작 방식을 모색한 것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이제 1960년대 초에 두각을 나타낸 한국영화사의 특별한 감독 세 명을 살펴볼 차례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업성과 예술성 어느 쪽도 놓치지 않는 대중적 작가주의를 실천하며 1960년대 한국영화계를 주도하게 된다. 바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의 신상옥, ‘오발탄’(1961)의 유현목 그리고 ‘하녀’(1960)를 연출한 김기영이다. 이들은 한국영화사의 걸작들로 평가받는 작품들을 내놓으며 1960년대 르네상스의 폭과 깊이를 두루 만족시키고 있었다.●영화산업의 ‘최전선’에 섰던 감독 신상옥 신상옥(1926~2006)은 영화사 신필름의 대표이자 감독으로 1960년대 한국영화계를 주도한 인물이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외국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던 그는 나운규와 찰리 채플린을 영화적 스승으로 꼽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한다.그가 직접 가르침을 받은 감독은 최인규다. 해방 직후 ‘자유만세’(1946)를 보고 감명을 받은 그는 ‘죄없는 죄인’(1947) 등 최인규의 이후 작품에 참가해 영화를 배운다. 감독 데뷔는 6·25전쟁 시기 피란 도시 대구에서 완성한 ‘악야’(1952)였다. 피란지 작가의 암울한 일상을 그린 ‘악야’는 현재 필름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과 장르 영화의 화법을 결합해 전후 사회의 공기를 포착한 그의 1950년대 대표작 ‘지옥화’(1958)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홍성기의 ‘춘향전’과 경쟁한 ‘성춘향’(1961)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신상옥의 ‘신필름’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의 중심으로 당당히 진입했다. 사실 주식회사 신필름은 당시 정권이 제시한 영화기업화 정책에 가장 부합하는 영화사였다. 덕분에 감독 신상옥도 영화제작자로서의 기반을 다짐과 동시에 영화작가로서 이름을 찾는 데 열중할 수 있었다. 1975년 ‘장미와 들개’ 검열 사건으로 정권과 사이가 멀어졌고 신필름 역시 영화사 등록이 취소됐다. 1978년 그의 페르소나이자 부인이었던 최은희가 북한으로 납치됐고 이어 신상옥도 납북됐는데, 그들의 동지적 관계는 1983년 이후 북한 신필름 촬영소에서도 계속됐다. 둘은 ‘소금’(1985) 등 7편의 작품을 함께하다 1986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참석을 기회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할리우드에서 신(Sheen) 프로덕션을 설립해 ‘닌자 키드’ 시리즈를 흥행시키기도 했던 신상옥은 ‘겨울이야기’(2004)를 유작으로 남겼다.●충무로 시스템 속 ‘작가주의’ 감독 유현목 유현목(1925~2009)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예술영화의 지분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던 감독이다. 특히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원작·1963), ‘카인의 후예’(황순원 원작·1968) 등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그의 문예영화는 이 시기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태생으로, 동국대 국문과 2학년 때 영화예술연구회를 조직해 ‘해풍’(1948·45분)을 연출했고 ‘최후의 유혹’(1953·정창화)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이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5) 조감독을 거치는 등 현장 경험을 충분히 쌓은 후 ‘교차로’(1956)로 데뷔했다. 평생의 동반자인 서양화가 박근자와 결혼한 때는 1958년이다. 1950년대 후반 유현목은 ‘그대와 영원히’(1958) 등 그만의 미장센이 뚜렷한 멜로드라마를 선보였고 13개월에 걸쳐 제작한 ‘오발탄’을 공개하며 독보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등극한다. 6·25전쟁 이후 한국의 빈곤한 현실과 정신적 불안을 영상화한 한국영화사의 걸작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까지 ‘순교자’(1965), ‘막차로 온 손님들’(1967), ‘분례기’(1971), ‘장마’(1979), ‘사람의 아들’(1980) 등의 문예영화를 통해 예술영화 감독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했다. 뿐만 아니라 ‘아낌없이 주련다’(1962) 등의 흥행용 멜로드라마, ‘공처가삼대’(1967) 같은 세련된 코미디, ‘수학여행’(1969) 같은 아동드라마로 장르 불문하고 뛰어난 연출력을 입증했다. 또한 그는 충무로 영화계에서는 드물게 극장 개봉을 위한 실험영화 ‘춘몽’(1965)을 연출해 음화제조 혐의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1970년 ‘한국소형영화동호회’, 1978년 독일문화원을 중심으로 한 ‘동서영화연구회’를 이끌며 실험영화 제작과 영화 연구를 병행하던 그는 1976년부터 1990년까지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감독 김기영 김기영(1919~1998)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 인물이다. 본인이 설립한 영화사에서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그만의 미학과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았고 이 영화들은 대중 관객과의 소통에도 성공했다. 평양고보 시절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전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1940년 졸업 후 일본 교토로 건너가 독학으로 연극과 영화를 공부하는 ‘문화방랑객’으로 살았다. 해방 후 경성대 의학부에 진학해 이후 서울대 최초의 통합 연극반을 이끌었고, 이때 동창이자 연극반원이었던 김유봉과 결혼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란지 부산의 미공보원(USIS)에 소속돼 ‘리버티 뉴스’를 만들었고 1955년 ‘주검의 상자’를 연출하며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두 번째 작품 ‘양산도’(1955)로 김기영 영화 세계의 원형을 제시한 후 ‘초설’(1958)과 ‘십대의 반항’(1959)에서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드러냈다. 김기영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알린 것은 1960년에 발표한 ‘하녀’에서다. 스릴러 장르로 대중성을 취하는 동시에 당시 한국영화의 절대적 가치라 할 리얼리즘 양식을 과감히 거부한 작품이다. 김기영 영화의 진수인 ‘하녀’ 속 인물 구도는 ‘화녀’(1971)와 ‘화녀’(1982)로 변주됐고 또 다른 결인 ‘충녀’(1972)는 ‘육식동물’(1984)로 변형되면서 당대 사회의 불안한 공기를 담아냈다.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심연까지 파헤치는 그로테스크한 세계관, 영화 속 공간으로 계급 구조를 묘사하는 뛰어난 연출력 등 봉준호 같은 후배 감독들이 그를 칭송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을 계기로 젊은 관객들에 의해 재발견된 김기영은 1998년 ‘하녀’ 시리즈의 90년대식 변주인 ‘악녀’의 연출을 앞두고 평생의 지지자 김유봉과 함께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도현이 앗아간 씨랜드 악몽… 이젠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요

    도현이 앗아간 씨랜드 악몽… 이젠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요

    “갯벌 체험을 한다”고 좋아하며 집을 나섰던 유치원생 19명이 다음날 숨이 멎은 채 부모 곁으로 돌아왔다.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였다. 화마는 유치원생과 교사 등 모두 23명의 삶을 앗아갔다. 날림 건축과 불법 인허가, 소방시설 미비 등이 얽힌 인재였다. 생을 마치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드러내며 큰 충격을 줬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당시 “정부가 우리를 버렸다”고 호소하던 유족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한국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다고 생각할까. 씨랜드 화재로 큰아들 김도현(당시 7세)군을 잃은 김순덕(53·여)씨와 인터뷰해 그가 겪은 20년을 재구성했다.엄마는 그날 마음속에서 태극기를 떼어냈다. 여자 필드하키 국가대표 수비수 김순덕. 그는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금·은메달을 따서 받은 체육훈장 맹호장과 국민훈장 목련장, 대통령 표창을 모두 우체통에 넣어버렸다. 국가에 반납한 것이다. 씨랜드 화재로 아들 도현이를 잃은 뒤 정부가 보인 무성의한 대응에 실망해서다. 그해 12월 남편, 둘째 아들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2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20년 전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씨랜드 사고가 나고 4개월 뒤 (56명이 사망한) 인천 호프집 화재가 났어요. ‘이 나라에서는 무슨 사고가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 둘째 아이를 이곳에서 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국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남편은 먼저 떠난 첫째 생각에 매일 울며 배달 일을 했다. 김씨는 이를 악물었다. 남편에게 “둘째 아이를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며 채근했다. 떠난 아들을 한순간도 잊은 적 없지만 부부는 도현이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얘기할 때마다 애끊는 마음이 생겨 서로에게 상처가 될까 봐 두려웠다. 부모들이 사투를 벌이는 사이 사고 당시 네 살이던 둘째는 청년으로 성장했고, 도현이를 똑 닮은 막내아들도 태어났다. 부부는 중식당을 차려 뉴질랜드에서의 삶에 적응해 갔다.한국 사회는 김씨 가족에게 악몽을 잊을 틈을 주지 않았다. 매년 어린아이들이 사고로 죽는 일이 되풀이됐다. 2013년에는 충남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고교생 5명이 바다에 빠져 숨졌다. 또 2014년 4월 16일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고교생 250여명 등 모두 304명이 선박이 침몰해 사망했다. 세월호 참사다. 김씨는 “TV로 지켜본 한국의 모습은 1999년과 달라진 게 없었다”고 했다. 누구 하나 기본 정보조차 주지 않아 TV로 아이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현장으로 달려간 가족들, 이들에게 사고 원인을 설명 못 하고 뭔가 숨기듯 주춤거리는 정부…. 씨랜드와 판박이였다. 김씨는 “씨랜드 사고 때도 관련 보도를 보고 수련원에 달려갔더니 그제야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겼다’고 하더라”고 떠올렸다. 또 “당시에도 진실을 아는 사람은 얘기하려 하지 않았고 용기 내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묻혔는데, 세월호 참사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은 세월호 참사를 보며 형이 생각났는지 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김씨는 아직도 그날 아들이 있던 방에서 왜 불이 났는지, 도현이를 지켰어야 할 선생님들은 어디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당시 검찰은 사건 한 달여 만에 “301호(도현이가 머물던 방)에 피워 놨던 모기향 불이 종이나 의류 등에 옮겨 붙어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아이들이 모깃불을 발로 차 불이 났다는 결론을 유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씨는 “유족들이 해외 연구진을 초빙해 자체 실험도 했는데 모깃불로는 발화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전선에서 불꽃이 튀는 걸 봤다며 누전 가능성을 언급한 목격자도 있었지만 전혀 수사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수사를 요구하며 정부 관계자에게 만나 달라고 7차례나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마가 20년 동안 되풀이한 가정이 있다. ‘만약 그날 상황이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도현이는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고 당시 도현이는 7세 반인 17명의 친구들과 함께 인솔교사 없이 301호에서 잤다. 6세 반 등 다른 방에서 자던 아이들은 비극을 피했다. 도현이와 같은 나이지만 동생과 함께 자려고 방을 옮겼던 아이는 살아남았다. 김씨는 “사고 나기 한 달 전까지 둘째도 같은 유치원에 다녔다”면서 “동생도 수련원에 갔다면, 그래서 도현이가 301호가 아닌 다른 방에서 잤다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끔은 ‘자칫 아이를 둘 다 잃을 뻔했는데, 한 명은 살리려고 그랬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불안을 치유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가고 있다. 둘째 아들은 엄마가 일찍 일어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카페에서 차나 마시고 오자”며 챙기기도 한다. 가족들은 20년이 지나서야 도현이에 대한 기억을 조금은 편히 얘기할 수 있게 됐다. 김씨는 “도현이가 보고 싶을 때 ‘보고 싶다’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마음에 더 좋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둘째가 ‘형도 우리가 잘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라며 토닥여 준다”고 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그나마 우리 사회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2014년 이후 아동·청소년들의 체험학습 안전 매뉴얼이 한층 강화됐다. 그는 “지난 4월 강원도 강릉 산불 때 전국 소방차가 신속하게 집결하는 등 피해를 줄이려 애쓰는 모습을 봤다”면서 “사회적 참사 앞에서는 정파 등을 떠나 한마음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도현이의 2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24일 한국에 왔다. 오는 30일 오전 11시 유족 50여명이 서울 송파구의 송파안전체험교육관에 있는 씨랜드 참사 추모비 앞에서 작은 추모제를 연다. 이후 유해가 뿌려진 주문진도 함께 찾는다. “다른 유족들과 함께 아이들을 어떻게 기억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유가족이 바라는 건 안전한 대한민국이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어린이집에 다니다 안전사고로 죽거나 다친 아동은 2013~2017년 3만 3839명이나 됐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금요칼럼] 경주의 ‘나이트 라이프’와 첨성대의 역할/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경주의 ‘나이트 라이프’와 첨성대의 역할/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첨성대는 고려시대에도 경주를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과거의 유산이었다. 신라가 망하고 월성 일대는 허허벌판과 다름없었으니, 무덤의 봉문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신라의 인공물이 첨성대였다. 이런 분위기는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남산 용장사에 머물며 ‘금오신화’를 짓고, 경주 일대를 누빈 기행시집 ‘유금오록’(遊金鰲錄)을 남긴 매월당 김시습은 첨성대에서 두 편의 시를 지었다. 특히 ‘높은 대가 드높아서 하늘까지 닿았으니/역력한 천문 현상을 한눈에 살피겠네’라 했으니,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것은 당시에도 주지의 사실이었다. 지난주 경주에서 첨성대 학술대회가 열렸다. ‘첨성대 창으로 본 하늘 위 역사문화 콘텐츠’라는 주제처럼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천문대’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초점이었다. 문화재청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단과 경주문화재연구소가 마련한 행사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천문연구원이 적극 참여했다. 첨성대 같은 과학 문화재의 활용을 위해서는 정부의 문화 정책 기능과 과학 정책 기능이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 비가 내려 장소를 실내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월성 별자리 관측 행사 역시 한국천문연구원의 고천문연구센터가 주도했다. 이날 밤 ‘월성에서 바라본 밤하늘 이야기’라는 별자리 관측 행사에 신청자가 몰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는 ‘밤의 문화유산’이자 여전히 살아 있는 교육 콘텐츠로 기능하는 첨성대의 본질을 망각했던 것이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됐다. 월성에서 천문학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별자리를 관측하는 모임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아이들을 핑계로 부모가 먼저 가고 싶을 것 같다. 이날 행사는 첨성대가 경주의 참신하고 교육적인 ‘나이트 라이프’를 창출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관광도시라는 경주에 과연 어떤 밤문화가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필자를 포함해 중고교 시절 수학여행을 경주로 다녀온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밤에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면 솔직히 ‘교육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 아이들과 함께 경주를 찾는 사람들도 해가 진 뒤 가족 단위로 함께할 수 있는 ‘나이트 라이프’의 부재(不在)에 시달리는 것은 다르지 않다. 숙소 앞 치킨집을 찾는 것 말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건전한 밤문화가 하나라도 있는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여행객들이 먹고 마시고 숙박하면서 돈을 뿌리고 가는 관광도시’를 강조하지만, 막상 어린이와 청소년이 꼭 이 도시에서 밤을 보내야 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우리는 선사시대 고인돌에 그려진 별자리 암각화에서 시작해 단군조선과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천문 자산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그 유구한 역사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본격적인 천문역사 박물관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유감스럽다. 박물관과 함께 역사에 기록된 과거의 별자리와 오늘의 별자리를 비교 관측할 수 있는 천문대도 반드시 필요하다. 천문역사박물관과 쌍을 이루는 교육용 천문대를 세운다면 입지는 첨성대가 있는 경주가 아니면 어디가 또 있을까 싶다. 교육용 천문대는 높은 산이 아니라 오히려 접근성이 좋은 첨성대 주변 옛 시가지가 바람직스러울 것이다. 한때 경주시가 천문대 건립을 추진했지만 좌절된 적이 있다. 예산 확보가 어려웠고, 지었다고 해도 전문성이 없으니 운영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천문연구원이 협력해 추진하면 좋을 것이다. 첨성대와 천문박물관, 천문대는 경주의 밤문화를 세계 어떤 역사도시의 그것보다 수준 높게 이끌어 갈 것이라 장담한다.
  • “시골 할머니와 어린 세대 간 궁합…이런 예능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시골 할머니와 어린 세대 간 궁합…이런 예능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기획안 단계선 “예능 같지 않다” 실망 노년층·어린 세대 간 우정 보여주고파 실제 조부모와 친밀성 기준으로 섭외 호평 불구 시청률 낮아 정규편성 난항 “아직 못다 한 이야기 많아요” 자신감 정말 오랜만에 만난 힐링 예능이었다. 경남 함양의 문해학교에서 한글을 처음 배우는 할머니들과 손자뻘인 20대 연예인들이 짝꿍이 돼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다. 깔깔대는 폭소는 없어도, 꾸밈없는 할머니들의 말과 행동에 보는 내내 옅은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그러다 더럭 눈가가 젖는다. 할머니들의 옛 시절, ‘가난해서’ 또는 ‘여자라서’ 글을 못 배운 이야기, ‘영감’을 먼저 떠나보낸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다.“기획안을 냈을 때 ‘예능 같지 않다’며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시청자들이 깔깔대며 보는 예능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저 같은 예능 PD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신사옥에서 만난 권성민(33) PD는 지난 9일 종영한 ‘가시나들’이 예능판에서 갖는 의미를 이렇게 소개했다. ‘가시나들’은 2012년 MBC에 입사한 권 PD의 첫 단독연출작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이나 ‘집으로’처럼 노년층과 어린 세대의 우정을 보여 주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게 기획 의도다. 마침 영화 ‘칠곡 가시나들’ 제작 소식을 들었고 김재환 감독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김 감독은 3년 동안 전국 문해학교를 돌면서 조사를 한 터라 제작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할머니와 손주의 조합에 걸그룹 멤버 4명(최유정, 수빈, 우기, 이브)과 20대 배우 장동윤이 참여했다. 이들의 섭외 기준은 ‘실제로 얼마나 조부모와 친밀한 관계인지’였다. 권 PD는 “여기에 시골 생활에 너무 낯설어하지 않을 것도 고려했더니, 어린 짝꿍들이 할머니들과 털털하게 잘 어울리는 그림이 나왔다”고 했다. 선생님이 된 배우 문소리는 사범대 출신에 교사 자격증이 있어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귄 PD는 “지금까지 했던 어떤 예능보다 촬영장 분위기가 좋았다”며 웃었다. 하루 종일 꼬박 촬영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평소엔 골아떨어졌을 스태프들이 서로 자기 할머니가 더 귀엽다고 자랑 배틀을 벌였다. 할머니와 출연진, 담당 작가들이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다. 장동윤은 최근 함양에 다시 내려가 김점금 할머니 댁에서 하룻밤 머물고 왔을 정도다. ‘착한 예능’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이 ‘무공해 청정 예능’은 그러나 정규편성이 불확실하다. 시청자와 평론가 등의 호평이 이어졌지만 파일럿 4회 방영 내내 3% 시청률에 머문 탓이다. 권 PD는 “지난 몇 년간 망가진 MBC를 정상궤도에 올리기도 바쁜데 지상파의 불안정한 환경이 겹치면서,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프로그램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는 듯하다”고 녹록잖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입사 면접 때도 “예능을 많이 보지 않는다”는 대답을 내놨다고 했다. 대신 “예능을 많이 보는 게 비슷한 후속작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한다. 저처럼 다른 콘텐츠를 많이 보는 사람이 새로운 예능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를 편 그다. 그러면 정규편성을 받기 위한 논리는 무엇일까. 권 PD는 “못다 한 이야기가 많다”면서 “학교생활과 할머니들의 일상이라는 두 축이 있다. 농촌생활이라는 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콘텐츠가 나온다. 문해학교 학예회, 수학여행, 여름 시골의 청량함, 농번기에 어린 짝꿍들이 일손을 거드는 모습 등 보여 드릴 수 있는 게 정말 많다”며 들떠 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한국인 위로하자” 헝가리 주부가 퍼트린 ‘추모의 나비효과’

    “한국인 위로하자” 헝가리 주부가 퍼트린 ‘추모의 나비효과’

    “피해자 가족·한국에 우리 마음 보여주자” 딸 셋 둔 평범한 엄마의 글 SNS 타고 퍼져 시민 200여명 발길… 추모의 아리랑 불러 “침략당한 역사, 다뉴브강의 아픔, 해외에서 일어난 애통한 사고까지 헝가리와 한국은 많이 닮은 나라입니다.” 헝가리 케르페스 지역에 사는 크리스티나 자카브(50)는 2일(현지시간) 부다페스트 켈리티 역 인근에서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세 딸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인 그가 지난달 31일 주헝가리 한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 추모 문화제를 기획했다. 문화제에는 200여명이 모여 사망자의 넋을 기렸고 실종자의 귀환을 빌었다. 추모제는 전날 자카브가 페이스북에 “피해자 가족과 한국에 우리의 마음을 보여 주자”며 날짜와 장소를 올리면서 시작됐다. 글은 하루 만에 헝가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빠르게 퍼졌고 시민들이 대사관 앞으로 모여들었다. 문화제가 끝난 뒤에도 추모의 꽃 한 송이를 전하러 한국대사관을 찾는 헝가리 시민들의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3일에는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서 헝가리인들이 모여 추모의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자카브의 글이 불러온 ‘추모의 나비효과’인 셈이다.자카브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는 마음이 아파 뭐라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은 아버지가 보던 드라마 ‘대장금’과 본인이 빠진 자수(刺繡) 등의 문화를 가진 매력 있는 나라였다. 지난달 29일 밤 뉴스로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 놀라 TV 앞에 앉아 기도했다. “저도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이고 고모이자 이모잖아요. 먼 헝가리에서 가족을 잃은 분들의 슬픔이 얼마나 깊을까요.” 망설임 없이 추모 행동을 조직한 자카브였지만 글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많은 헝가리인들이 동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헝가리인들도 불과 2년 전 해외에서 자국민을 잃은 아픔이 있다. 자카브는 “아마 많은 헝가리인이 유람선 침몰 사고를 보며 이탈리아 스쿨버스 사고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했다. 2017년 부다페스트의 한 학교 학생들이 프랑스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던 중 이탈리아 베로나 지역에서 버스가 전복되면서 16명이 사망했다. 그는 “우리도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면서 “그래서 한국인들을 더욱 돕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자카브는 “헝가리와 한국은 비슷한 점이 많다”면서 “한국이 과거 일본과 중국 등의 침략으로 아픔을 겪었듯 헝가리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침략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다뉴브강은 헝가리인에게 잊을 수 없는 역사가 서린 곳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된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나치는 강가로 유대인을 데려와 신발을 벗겨 사살한 뒤 강에 시신을 던졌다. 강변 한쪽에는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60켤레의 신발 모형이 있다. 모형 앞에는 늘 추모의 꽃이 놓여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으니 “헝가리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그는 최근 한국 언론의 사건 보도를 보다가 헝가리를 욕하는 댓글을 접했다고 한다. “헝가리 사람들은 이번 사고에 대해 정말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사고가 잘 수습된 이후에도 한국 사람들을 만나길 고대합니다.” 부다페스트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헝가리 싫어하지 않으셨으면…” 현지 추모제 기획한 헝가리 주부

    “헝가리 싫어하지 않으셨으면…” 현지 추모제 기획한 헝가리 주부

    헝가리 주부 자카브, 페이스북에 “우리 마음 보여주자”추모의 나비효과…추모 문화제에 200여명 참석“헝가리와 한국은 아픔과 정서가 닮은 나라”“침략의 역사, 다뉴브 강의 아픔, 그리고 최근 해외에서 일어난 애통한 사고까지…. 헝가리와 한국은 공감할 수 있는 아픔과 정서가 참 많아요.” 헝가리 케르페스에 사는 크리스티나 자카브(50)는 2일(현지 시각) 부다페스트 켈리티 역 인근에서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세 딸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인 그는 지난달 31일 주헝가리 한국대사관 앞에서 개최된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 추모 문화제를 기획했다. 이날 문화제에는 시민 등 200여명이 모여 사망자의 넋을 기리고, 실종자의 귀환을 빌었다. 이 행사는 전날 자카브가 페이스북에 “피해자 가족과 한국에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자”며 날짜와 장소를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 글은 하루 만에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급속도로 퍼졌고, 순식간에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다. 문화제 이후에도 한국 대사관 앞에는 추모의 꽃 한 송이를 전하기 위한 헝가리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변에 놓인 꽃과 초도 연일 늘고 있다. 자카브의 글이 불러일으킨 ‘추모의 나비효과’인 셈이다. 자카브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는 너무 마음이 아파 뭐라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국은 아버지가 보던 ‘대장금’, 자기가 빠진 ‘자수’ 등이 있는 매력적인 나라였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뉴스로 사고 소식을 처음 접하곤 너무 놀라 온종일 TV 앞에 앉아 기도했다. ●“헝가리도 겪은 해외 인명 사고의 충격…가족들 심정 떠올라” “저도 그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 누구의 고모, 이모잖아요. 먼 헝가리에서 자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나 걱정스러운 마음일까 싶었어요.” 자카브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촛불과 꽃으로라도 위로를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페이스북 글은 그렇게 게시됐다.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부다페스트에는 마음씨를 좋은 시민이 많구나’하는 점도 이번 기회에 새삼 깨닫게 됐다”고 했다. 불과 2년 전 헝가리인들도 해외에서 자국민을 잃은 경험이 있다. 자카브는 “아마 많은 헝가리인이 유람선 침몰 사고를 보고 이탈리아 스쿨버스 사고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했다. 2017년 부다페스트 한 학교 학생들이 프랑스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던 중 이탈리아 베로나 지역에서 버스가 전복되면서 16명이 사망했다. 그는 “우리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슬픔을 알고 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한국인들을 더욱 돕고 싶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자카브는 “헝가리와 한국은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과거 일본, 중국 침략으로 아픔을 겪었듯 헝가리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침략을 받고 고통당했다”고 했다. 특히 이번 참사가 난 다뉴브 강은 헝가리인에게 잊을 수 없는 역사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2차 대전 당시 자행된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파시스트들은 이 강가로 유대인을 데려와 신발을 벗게 하고 사살한 후 강으로 시신을 던졌다. 다뉴브 강변 한쪽에는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60켤레의 신발 모형이 남아 있다. 이곳에도 시민들이 두고 간 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자카브는 “모든 헝가리인에게 아픈 기억”이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헝가리를 싫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최근 한국에서 나온 보도를 읽다가 헝가리를 욕하는 댓글도 접했다고 했다. 그는 “헝가리 사람들은 이번 사고에 정말 마음 아파하고 우리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고가 잘 수습된 이후에도 한국 사람들을 만나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빗길에 하마터면…초등생 160명 태운 수학여행 버스 삼중추돌

    빗길에 하마터면…초등생 160명 태운 수학여행 버스 삼중추돌

    서울로 수학여행(현장체험학습)을 온 경북 안동의 초등학생 160여 명을 태운 전세버스 3대가 27일 경부고속도로 서울방면 톨게이트 부근에서 삼중추돌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 20분쯤 경기 성남시 분당구 경부고속도로 판교 IC 부근에서 수학여행을 온 초등생들을 태운 버스들이 잇따라 추돌했다. 당시 버스에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 158명과 교직원 등 170여명이 버스 6대에 나눠 태우고 서울 경복궁을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버스 기사 정모(65)씨와 학생 11명이 다쳐 치료를 받고 있다. 일부 학생은 이마가 찢어지고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2명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사고 당시 학생들 모두 안전벨트를 맨 상태라 큰 피해는 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서울 일정을 끝낸 뒤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로 이동해 숙박할 예정이었지만 모두 귀가 조치했다. 사고는 정씨의 버스가 정체 구간에서 제때 속도를 줄이지 못해 바로 앞에서 달리던 버스의 후미를 들이받으면서 발생했다. 이어 뒤따라오던 버스 1대가 마찬가지로 정씨의 버스를 들이받으면서 삼중 추돌사고로 이어졌다. 사고가 난 3대 외 나머지 버스 3대는 추돌사고 없이 정차해 추가 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이들 버스가 차량 간격을 극도로 좁히고 일렬로 운행하는 일명 ‘대열운행’을 하다 추돌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앞차가 속도를 줄이더라도 안전거리 확보가 돼 있었다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통해 대열 운전이 확인될 경우 지자체에 통보해 행정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북일보에 따르면 일행 중 한 학생은 “빗길에 사고가 난 승용차를 확인을 했지만 속도를 늦추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경북도 교육청 관계자는 “빗길에 차량정체가 발생하다 보니 간격이 좁아져 사고가 난 것 같다”면서 “학생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잘 나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노무현 10주기]“이익 떠나 옳고 그름 따졌던 대통령” 서울에도 추모 물결

    [노무현 10주기]“이익 떠나 옳고 그름 따졌던 대통령” 서울에도 추모 물결

    ‘벌써 10년, 당신이 그립습니다’서울 대한문에도 나부낀 노란색 바람개비평일에도 분향소에 시민발길 이어져“제게는 정치적인 우상이세요. 시대를 앞서 가면서 많은 것을 이루려 하셨던, 안타까운 분이란 생각이 들어요” (김동현 군·17)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23일 서울 대한문 앞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차린 분향소가 마련됐다. 10년 전과 같은 장소에 차려진 분향소에는 노 전 대통령의 상징인 노란색 바람개비가 나부꼈다. 이 자리에서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나누며 고인을 추억했다. 오는 25일까지 운영되는 시민분향소는 10년 전인 2009년과 같은 자리인 대한문 앞에 차려졌다. 주최 측인 ‘고 노무현 대통령 10주기 대한문 시민분향소 합동추모제 준비위원회’의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은 권력자이기보다 서민적이고 소박했던 분”이라면서 “10년 전 분향한 장소에서 시민들이 그를 함께 추억할 수 있도록 분향소를 차렸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분향소를 찾은 김군은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분향소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면서 “그 시절 나는 어렸지만 이후 학교 도서관에서 노 전 대통령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정신을 이어 정책을 펴는 것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이 정말 시대를 앞선 분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시민들은 분향소 옆에서 상영된 노 전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보며 눈물 짓기도 했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신 서울 분향소를 찾았다는 김소영(46·여)씨는 “당시엔 먹고 살기 바빠 노 전 대통령을 못 지켜 드렸다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후손들이 그 뜻을 이어 사람 사는 세상을 꼭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분향소 한 켠에는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하는 편지를 쓰는 코너도 마련됐다. 노란 종이에는 ‘늘 그립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꼭 만들겠습니다’, ‘새로운 노무현, 그게 바로 우리입니다’ 등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적혔다. 김포에서 분향소를 찾아 대한문까지 왔다는 김미숙(44·여)씨는 편지에 ‘일상 속에서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옳고 그른 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다’고 적었다. 김씨는 “노 전 대통령은 말씀과 행동이 같으신 분이라 지지해 왔다”면서 “부조리한 일에 맞서주고 시민들에겐 진심으로 대해주셨던 노 전 대통령처럼 나 역시 행동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오전에만 500여명의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을 향한 편지를 적어 주었다”면서 “이 편지들을 모아 봉하마을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5일 오후 10시까지 운영될 시민분향소는 편지쓰기 행사 외에도 추모공연과 종교행사, 3D 입체 출력으로 실물 모습과 같이 구현된 노무현대통령과 포토존, 추모사진전, 노랑바람개비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할 예정이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경기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물꼬 튼다...남북협력사업 지속 추진

    경기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물꼬 튼다...남북협력사업 지속 추진

    경기도는 지난 2월 베트남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교착국면에 접어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남북평화협력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이화영 평화부지사는 이날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외적 상황과 남북관계의 굴곡에도 접경지역을 품고 있는 전국 최대 광역자치단체로서 남북교류협력을 지속 추진해오고 있다”고 밝히고 경기도가 추진 중인 평화협력사업과 향후 추진계획을 소개했다. 도가 추진 중인 평화협력사업은 ▲북한 평안남도 일대 밀가루 및 묘목 지원 ▲‘평화를 위한 아시아 국제배구대회’ 참가 ▲‘2019 아시아 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필리핀 공동개최 ▲평양공동선언 1주년 기념행사 DMZ 개최(가칭 DMZ평화페스티벌) ▲개성 수학여행 등 도민 차원의 상호교류 실현 등 5개 부문이다. 먼저 이달 중에 북한 평안남도 일대에 10억원 상당의 밀가루 1615t과 산림복구를 위한 5억원 상당의 묘목 11만 그루 지원을 진행 중이다.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의 인도적 물품 지원요청에 따른 조치다. 지원 물품은 현재 중국 단둥에서 신의주로 순차적으로 전달되고 있으며 북측 관계자와 협의해 밀가루 등을 추가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도는 인도네시아 국가 체육위원회와 공동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아시아 국제배구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회는 다음 달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며 북한,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4개국이 참가한다. 도는 남녀선수단을 포함해 40여명의 대표단을 파견할 계획이다. 이밖에 오는 7월에는 북측 조선아태평화위원회, 필리핀 전국언론인협회, 아태평화교류협회 등과 공동으로 필리핀에서 ‘2019 아시아 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앞서 도는 지난해 11월 ‘아시아 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전국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북측대표단의 경기도 방문 성과를 내고 지자체 남북교류협력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는 올해도 필리핀에서 열리는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북측과 심도 있는 평화협력사업 추진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오는 9월에는 평양 공동선언 1주년을 기념해 DMZ 일원에서 학술 분야에서부터 문화, 예술, 공연을 아우르는 종합축제를 열기로 했다. DMZ 포럼, 세계생태평화축제, Live in DMZ, DMZ 콘서트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도는 대규모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중심으로 문화·예술 분야 인사가 참여하는 ‘9·19 1주년 기념행사(가칭 DMZ 평화페스티벌)조직위원회’를 꾸려 운영할 방침이다. 앞서 도가 추진해온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북한 옥류관 음식점 도내 유치, 파주 개성 마라톤 등 이미 북측과 합의한 사항의 추진 여부에 대해선 북미, 남북 관계 개선에 따라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지사는 “인도적 지원에서부터 문화·체육·학술에 이르는 평화협력사업을 통해 조성되는 남북평화협력 분위기가 한반도에 확산하고 나아가 전 세계로 알려지기를 기대한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경기도의 노력에 도민과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임신 뒤 찜질방·모텔 전전…어린 부모는 인큐베이터가 필요해요

    임신 뒤 찜질방·모텔 전전…어린 부모는 인큐베이터가 필요해요

    [열여덟 부모, 벼랑에 서다] <4·끝> 청소년 부모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어린 부모들에겐 인큐베이터가 필요하다.’ 서울신문이 청소년 부모(24세 이하)의 삶을 다룬 ‘열여덟 부모 벼랑에 서다’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만난 현장 전문가들은 홀로서기를 위한 지원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금 일찍 태어난 신생아들이 인큐베이터에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듯 갑작스레 아이를 낳은 어린 부모에게도 양육자로서 능력을 갖출 때까지 도움받을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실험들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작은 민간 복지 단체들이 나서 숨어 있는 청소년 부모를 찾고, 이들의 성장통을 함께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기관들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다 챙길 수 없다”며 공공 영역의 도움을 요청했다. 복지 사각지대의 어린 부모들에게 인큐베이터가 돼 주고 있는 작은 단체들의 분투를 살펴봤다.●킹메이커 “어린 부모에겐 주거지가 급선무” “임신 뒤 찜질방에서 한 달, 모텔에서 또 한 달, 이후로는 아는 사람 집을 전전했어요. 이제라도 아기한테 안전한 곳이 생겨 다행이에요.” 김선아(19·여·이하 가명)·박이한(18) 커플이 인천의 청소년 미자립가정 지원시설인 ‘킹메이커’에 온 건 지난달 7일이었다. 외조부모와 살던 선아양은 할아버지가 출산을 반대하자 집에서 도망쳤다. 집 밖에서 생활하던 선아양은 킹메이커에 도움을 요청했다. 임신 5개월째였다. 선아양은 시설 내에 꾸려진 ‘119 응급하우스’에 거주하게 됐다. 급히 주거지가 필요한 청소년 부모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시설 측은 선아양이 응급하우스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 양육과 건강한 가정을 꾸리려는 의지가 있는지 체크했다. 의지가 확인되자 킹메이커에서는 선아·이한 커플의 금전 관리와 행정 처리를 도왔다. 양육을 위해 필요한 물품은 뭔지, 생활비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수급비 신청은 어떻게 하는지 등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듯 하나씩 알려 줬다.이 시설이 특히 집중하는 요소는 ‘주거’다. 청소년 부모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주거지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등록된 주소지가 있어야 구청의 관할 대상자가 되고, 기초생활수급 등 정부의 각종 복지 제도와 아이의 어린이집 등록이 가능해진다. 청소년 부모들은 대부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법률 행위를 할 수 없어 본인 명의의 임대차 계약조차 맺기 어렵다. 킹메이커에서는 응급하우스에 일정 기간 거주하고 나면 시설 인근에 독립된 거주지를 구해 준다. 집을 구할 때는 2가지 조건이 있다. 부부의 생활과 아이 양육 스트레스를 완화하도록 최소 방이 2개 이상 돼야 하고,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가까운 위치여야 한다. 선아 커플도 조만간 투룸 집에 입주한다. 시설에서 전세금과 월세를 지원해 주고, 자립할 수 있게 되면 지원금을 줄여 나간다. 이한군은 이달부터 부천의 직업학교에 다니며 제과와 바리스타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고깃집 아르바이트도 병행한다. 배보은 킹메이커 대표는 “청소년 부모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지속적인 집중 관리가 필요해 우리같이 작은 곳에서는 연간 2개 이상의 케이스를 받기 어렵다”면서 “각 지역마다 아이들의 대리인이자 가족이 돼 줄 거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킹메이커에 어린 부모들의 도움 요청이 빗발치지만 인력과 자금 부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행히 이달부터 아름다운 재단이 연계지원에 나서면서 선아 커플의 주거비 지원금이 마련됐다. ●해아리 대안학교 “엄마 존엄성 위한 공부필요” 경기 안산에는 지난해 3월부터 미혼모를 위한 작은 교실인 ‘해아리 대안학교’가 생겼다. 한 빌딩의 150평(약 495.9㎡) 남짓한 공간에 마련된 이곳에는 청소년 미혼모 30여명이 모여 중단됐던 학업에 재도전하고 있다. 모든 엄마에겐 1대1 검정고시 과외가 진행된다. 바리스타, 메이크업 등 직업교육도 같이 듣는다. 이 학교가 집중한 건 청소년 엄마들의 ‘존엄성’이다. 학교를 운영하는 이효천 위드맘 한부모 가정지원센터 대표는 “보통 자립 지원은 생계를 위해 돈 벌 능력을 키워 주는 데 집중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립 이후 이들의 삶의 질”이라면서 “엄마이기 전에 여성이자 청소년인 이들이 정말 원하는 걸 선물해 주자는 생각으로 학업 공동체를 꾸렸다”고 말했다.이 대표가 학생들에게 뭘 하면 행복하겠냐고 물었을 때 학생들은 답했다. “수학여행을 가 보고 싶어요.” 이때부터 학교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엄마들은 자신이 번 돈 일부를 자발적으로 캄보디아에 후원한다. 그렇게 모은 돈과 외부 후원을 합쳐 캄보디아엔 작은 학교가 하나 생겼다. 엄마들에겐 자신의 아이에게 ‘봐, 엄마가 캄보디아에 다른 아이들을 위해 학교도 세웠어’라고 말할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달 미혼모 학생 중 4명이 수학여행 겸 봉사활동을 위해 캄보디아로 떠난다. 경기 광명에 있는 아우름 센터도 2017년 9월 청소년 미혼모를 위한 공간으로 시작했다. 미혼모들을 위한 신변 보호, 생활 안정 시설이다. 지역 사회와 연계해 숙식제공은 물론 산전·산후 의료서비스, 산후 몸조리까지 일체 비용을 지원한다. 입주 기간은 무제한이다. 다음 인생을 준비할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주겠다는 취지다. 아우름 센터 관계자는 “소외된 미혼모들에게 말 그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나의 공간, 내 집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라고 전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