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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올 추석에는 쌀을 화두로 삼자

    바람결이 소슬하고 나뭇잎 색깔도 달라보인다.어김없이 가을이고 추석명절이 다가온다.주말부터 새달 3일까지 연휴가이어진다. 들녘에는 벼가 무르익어 황금빛 물결이 지고 황금연휴가 시작되면 공해와 일상에 찌든 도시인들은 훨훨 털고 귀향길에 오를 것이다. 추석은 예부터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듯이 덥지도 춥지도 않고 햇곡식과 잘익은 과일로 차례지내고 헤어졌던 친족이 다시 만나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화자 얼씨구’가 절로 나오고 두둥실 어깨춤을 추는때가 중추 가배절이었다. 올해도 풍년이다.90년래의 가뭄과 폭우로 농사가 어려움을겪기도 했지만 농민들의 피땀어린 정성으로 5년 연속 풍작을 일궈냈다.하지만 농민들은 울상이다.풍년맞은 농민들 얼굴에 그늘이 짙고 분노가 스민다. 우리 역사에서 ‘풍년에 즐겁지 않은’ 현상은 초유의 일이다.수탈과 기근과 배고픔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온 민초들에게 그나마 풍년은 하늘이 준 은덕이고 나라님의 시혜처럼여겨졌다. 씨를 뿌리고 거두기까지 여든여덟번의 손이 가야거둘 수 있는 작물(米)이었으므로 쌀은 그만큼 귀한 존재였다.귀한 만큼 수탈이 심하고 그래서 농민들에게는 애환의대상이었다. 봉건왕조 시대에 쌀은 지배계급의 전유물이 되고 서민들은잡곡이나 초근목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래서 북쪽지방에서는 쌀밥을 임금과 그 일족(이씨 왕조)만 먹을 수 있는것이라 하여 ‘이밥’이라 불렀다.각종 민란과 동학혁명이농민들의 쌀을 수탈하는 악세(惡稅)에서 비롯되었음은 다아는 일이고. 올 추석에는 화제를 바꿔보자.테러사건,보복전쟁,정치문제등 화젯거리가 넘치고 고스톱이나 노래방도 단골메뉴이지만,틈을 내서라도 가족끼리 쌀문제를 토론하면 어떨까. 우리들 삶의 근원이고 겨레의 주식으로 자리잡아 온 쌀문제의 토론은 중요하다.풍작과 소비량의 격감으로 창고마다볏가마가 쌓이고 관리비가 엄청 들며 과잉생산(?)으로 수매가와 수매량이 줄어 농민들의 시름이 깊고 더러는 다익은벼논을 갈아엎기까지 한다. 쌀이 모자라 배곯아 온 민초들에게 쌀이 남아 걱정인 현실은 어찌보면 ‘배부른’ 투정일지 모르지만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심각하다.구한말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방곡령을 내리고,식민지시대 질좋은 우리 쌀을 ‘공출’이란 이름으로 빼앗길 때 쌀은 바로 우리의 생명줄이고민족의 혼이었다.지금 북녘에서는 ‘쌀밥에 고깃국’이 최고의 이상인 터에 남녘에서는 쌀과잉으로 농민과 정부가 함께 걱정이니 이것이 축복인 것인지 재앙이 될는지 판단이어렵다. 현재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쌀재고량은 735만섬,햅쌀까지합치면 1,000만섬이 넘고 쌀 보관 비용에만 한 해 1,000억원이 넘는다.2004년 부터 WTO의 쌀협정으로 값싸고 질좋은중국,호주쌀이 국내에 들어오면 농촌경제는 더욱 어려워진다.그렇다고 수출로 먹고사는 처지에 외국산 쌀을 막을 수도 없다. 방법은 없는가.이것이 추석토론의 주제가 돼야 한다.현재식량자급률은 30%선에 불과하다.쌀과 감자·고구마가 자급될 뿐 나머지는 수입해다 먹는다. 밀은 자급률이 5%,지난해 302만톤이상 들여왔다.옥수수 자급률 3.9%,콩 36.5%,보리 74.4%다.곡물전체의 자급률은 1970년 80.5%에서 1995년29.1%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28.4%밖에 안됐다. 정리하자.쌀은 남아돌고 잡곡은 모자라 비싼 외화 주고 사온다.뭔가 잘못되지 않았는가.실정이 이러하니 해답은 내부에 있다.한민족의 뿌리인 농촌을 살리자면 쌀값을 안정시키고 벼농사를 보장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밀가루음식 대신 쌀음식을 먹도록 한다.‘쌀음식 장려’의 캠페인을 벌이고 벼농사 대신 밀·옥수수·콩을 심도록 정부가 지원한다.남는 쌀을 북녘에도 넉넉히 보내주고 과자나 빵을 쌀로 제조하면 면세혜택을 주자. 그나마 정부가 쌀 400만섬을 추가로 매입하고 야당인 한나라당도 30만톤 대북지원을 제기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다행이다. 김삼웅 주필 kimsu@
  • [전통주 이야기] 경남 함양군 솔송주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노리끼리한 색깔,은은한 솔향.한 모금 넘기면 시원한 솔바람이 부는듯 목구멍이 확 트이는술이 솔송주다. 솔송주는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하동 정씨 문헌공(文獻公)파 종가에서 비법으로 전해지는 전통주다.조선 정종의 손녀인 완산 이씨가 세조11년(1465년)성리학의 대가인 문헌공 정여창(鄭汝昌) 선생에게 시집와집안의 대소사 및 과객접대를 위해 빚기 시작했으며,성종임금에게 진상까지 했다. 원래 이름은 송순주(松筍酒)였지만 1996년 16대 며느리인 박흥선(朴興善·49)씨가 대량생산을 위해 주조허가를 받으면서 ‘솔松酒’로 등록했다. 솔송주도 다른 민속주와 마찬가지로 제조법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구전으로 536년간 비법이 전수되고 있다.일제때는 곡물수탈로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박씨의 시어머니 이효의(李孝宜·92)씨의 집념이 전통을 지켜냈다. 솔송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찹쌀로 죽을 끓여 밑술을 만든다.이를 3∼4일쯤 발효시킨 뒤 여기에 이른 봄철 지리산자락에 자생하는 토종 소나무에서 채취한솔잎과 솔순,엿기름을 넣어 본담금을 한다.한달쯤 숙성시켜 술을 거른뒤 섭씨 3∼5도쯤 되는 시원한 광으로 옮겨 재숙성시킨다. 두달정도 지나 술이 알맞게 익었을 때 창호지로 걸러내면알콜도수 13∼15인 약주가 된다.봄·가을·겨울에는 약주로 만들었지만 여름에는 소주로 내렸다.여름에는 재숙성과정의 온도유지가 어려워서다. 동의보감에는 솔잎을 신선이먹는 식량이라고 했으며,본초강목에는 중풍과 각기병에효험이 있다고 적혀 있다.따라서 솔송주는 콜레스테롤을분해시키고 신진대사를 촉진한다.알콜도수 13도와 40도 2종류.가격은 4,000∼4만원으로 우편판매도 한다.문의 (055)963-8992. ●홍인외과 최홍택원장 맛평가. 경남 함양읍 홍인외과 최홍택(崔弘澤·40) 원장은 “솔송주는 순하면서 깨끗하고 뒤탈이 없어 좋다”고 말한다.97년 이곳에 개원하면서 우연히 맛을 본 뒤 친지들과 어울릴때면 꼭 이 술을 찾는다. 최 원장은 “어쩌다 찾아온 친구들과 전골안주로 솔송주를 마시며 세상돌아가는 얘기를 하면 시간가는줄 모른다”고 말했다.맑은 물과 푸른 소나무를 벗삼아 솔송주를 마시며 시와 풍류를 즐기고,학문을 논하던 선비가 된 기분이든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나오기 시작하는 송이와 고기를 안주삼아 마시면 금상첨화”라고 귀뜸했다. 글·함양 이정규기자jeong@
  • [대한광장] 열린사회 흔드는 적들

    플라톤도 나쁘고 마르크스도 나쁘다.철학자 칼 포퍼가 반세기 전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한 말이다.포퍼는 자유를 열린사회의 기준으로 삼아 인류사의 자유로운 발전을저해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심판대에 세웠다.그러나 포퍼의문제의식을 우리 사회로 가져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도시 얘기로 접근해 보자.유럽의 도시가 갖는 특별한 의미는 광장에서 나온다.도시에는 성당이 있고 성당보다 낮은곳에 시청이 있으며,그 사이에는 넓은 광장이 조성돼 있다. 중요한 건물이나 역사적 조형물 역시 광장과 함께 있다.도시에서 광장의 존재는 휴식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데,특히 시민들 사이의 ‘회합’과 ‘의사소통’을 상징한다.따라서 광장은 시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열린도시의 증거로서 민주주의의 보루가 된다. 도시가 강을 끼고 발달하기 때문에 도시와 강의 유무상통역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런던과 템스강,파리와 센강처럼 도시와 강은 하나로 통합돼 있다.그러니 도시에서 강도 사람에게 열려 있다.독일 프랑크푸르트 지하철에는 개찰구도없고 검표원도 없다.자동발매기에서 기차표를 사서 자유롭게 이용하다가 집에 가면 된다.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지하철을 운영하는 것인데,지하철의 중심에 시민이 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상황이 열린사회와 열린정치를 가능하게하는 것 아닐까. 이 잣대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자.우리에게는 담벼락으로둘러싸인 폐쇄적인 휴식공간이나 놀이공원은 있을지언정 개방된 시민적 광장은 없다.도시생활에서 원초적인 휴식이나놀이는 허용하되,시민적 회합과 의사소통은 봉쇄당하고 있는 것이다.강 역시 도시를 가로지르기는 하지만 강과 도시는 분리돼 시민적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지하철 이용시 개찰구 차단장치와 씨름해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도시는 시민을 배제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시민은 도시의 중심이 아니며,도시는 시민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도시가 공간적으로만 닫혀 있는 것이 아니다.도시의 내부를 들여다보자.모든 권력기관들이 시민들의 접근을가로막고 있지 않는가.국회,정부청사,대법원,대검찰청 모두가 닫혀 있으며 “접근하면 발포한다”고 위압하는 자세다. 청와대의 폐쇄성은 닫힌사회의 압권이다. 민주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은 권력기관 앞에서 비굴한 민원인일 뿐이다.더 깊이 들여다보면 정치와 경제와 교육 등 사회의 모든 곳이 닫혀 있다.결국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닫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닫힌사회로 전락한 것은 플라톤이나 마르크스 때문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개발독재의 경험 때문이다.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극한적인 수탈과 배제의 통치를 유산으로 물려주었다.해방 후에는 식민주의를 승계한 자들이 극단적 반공주의와 개발독재를 통해 식민주의의 경험을 재생산했다.이몰상식한 상황이 국민들에게 이기주의와 기회주의,가족주의와 지역주의를 생존의 법칙으로 가르쳤다.지배집단이 시민배제적 통치구조를 강제하고 국민들은 스스로 그 속에 숨어버린 것이다. 21세기 우리 사회의 화두는 민주화와 개혁이다.개혁의 원리는 간단한데,그것은 한마디로 닫혀 있는 모든 것을 국민들 앞에 활짝 여는 것이다.개혁은 청와대와 행정부와 국회를 비롯한 국가 기구의 문호를 개방하고 운영을공개하는데서 시작된다. 정치·경제·교육도 마찬가지다.그렇게 해야 독점과 전횡과 부패가 사라지면서 소외와 불만과 갈등도 사라진다.그과정에서 시민적 참여가 확대되면서 시민 중심의 재구조화가 이뤄질 수 있다.그것이 민주주의다. 포퍼가 우리 사회를 본다면 어떻게 말할까? 개혁을 방해하는 자들을 열린사회의 최대 적으로 지목할 것이다.극단적반공주의에 사로잡혀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자들과 수구보수의 논리로 국민들을 현혹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또 있다.시민운동을 음모론으로 몰아 시세차익을 노리는자,언론자유와 탈세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식한 세도(稅盜),지역주의에 빌붙어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정치적 ‘아편쟁이들’도 모두 열린사회의 적이다.당연히 포퍼는 우리가 이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정 대 화 상지대교수·정치학
  • 박찬호·이치로 ML 올스타 격돌

    박찬호(LA 다저스)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정면 충돌’하나. 오는 11일 시애틀의 세이프코필드에서 벌어지는 미국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박찬호는 중간계투 요원으로 등판할 가능성이 높은데 견줘 팬투표 1위를 차지한 이치로는 외야수로선발 출장,3이닝정도를 뛸 것으로 보여 맞대결 성사 여부는불투명하다.그러나 성사되지 않는다해도 한국과 일본의 걸출한 두 스타가 ‘별들의 축제’에 참가,정상급 기량을 펼치는 것 자체가 팬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맞대결이 이뤄진다면 한일 프로야구는 물론 메이저리그사에서도 한페이지를 장식할 일대 사건이 된다.또 28살 동갑내기인 박찬호와 이치로는 자국의 명예와 자존심을 건 명승부로팬들을 한껏 매료시킬 것이 틀림없다. 94년 미국에 진출한 박찬호는 96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9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연속 ‘두자리 승수’를 챙기며 메이저리그 특급투수 반열에 올랐다.6년연속 ‘세자릿수탈삼진’을 기록하며 올해 개인통산 1,000탈삼진도 돌파했다. 박찬호는 5일 현재 다승 공동11위(8승) 탈삼진 4위(128개)방어율 5위(2.91) 피안타율 2위(.192) 등 투수 전부문에 걸쳐 상위에 올라 있다.특히 올해는 14경기 연속 ‘퀄리티피칭’(한 경기 6이닝이상 던지면서 3점이하로 막는 것)으로 진가를 더했다. 일본 오릭스시절 7년연속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오른 이치로는 올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 마자 공수에서 눈부시게 활약,‘야구 천재’임을 입증했다.일본팬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속에 신인 사상 첫 최다득표의 영예를 안은 이치로는 이날 현재 타격 2위(타율 .352) 최다안타 1위(129개) 득점 2위(72점) 도루 1위(28개) 등 홈런을 제외한 타격 전부문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올스타전에서 두 ‘야구영웅’이 일으킬 바람의 강도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박찬호는 6일 오전 11시10분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샌프란시스코전에 등판,시즌 9승에 4번째 도전한다. 김민수기자 kimms@. ** 올스타 선정방법. 메이저리그 올스타는 두가지 방법으로 뽑는다.하나는 팬투표이고 다른 하나는 감독의 추천이다. 팬 투표 대상은투수를 뺀 야수.내셔널리그는 8명,지명타자 제도를 둔 아메리칸리그는 9명이 팬 투표로 뽑히며 지난 3일 확정됐다. 투수와 교체야수(후보)는 감독의 추천으로만 선발한다.전년도 리그 우승팀 감독이 올스타전 사령탑을 맡게 되며 올해는 뉴욕 메츠의 보비 발렌타인(내셔널리그)과 뉴욕 양키스의 조 토레(아메리칸리그). 한편 올해 올스타 투표 용지는 미국 외에 멕시코 캐나다푸에르토리코 일본 등에도 할당됐다.일본에 할당된 50만장은 대부분 스즈키 이치로에게 몰려 최다득표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박준석기자 pjs@
  • 동학혁명 국제학술대회 참가

    동학농민혁명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한국과 일본,중국 등3개국 대표는 2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의 한승헌(韓勝憲)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장과 일본의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나라여자대 명예교수,중국의 왕시아오치우(王曉秋) 북경대 교수 등 3명은 이날 전주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학술대회장에서 성명을 내고 “일본은 현재 추진중인 역사왜곡 작업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대표는 일본의 아키라 교수가 낭독한 성명서를 통해“역사교과서 왜곡작업은 중대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침략과 수탈,불신의 과거를 극복하고 화해와 공존의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우리 아시아 민중의 염원을 짓밟는 행태”라고비난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제주민란 성남 8·10사건 재조명

    제주지역 문화·학계 인사들이 1901년 당시 세리의 수탈과 천주교의 폐해에 저항,일어났던 ‘제주민란’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제주대 김동전·송재호교수와 화가 박경훈·시인 강덕환·다큐멘터리 감독 김동만씨 등은 최근 제주민란(이재수난) 100년 기념사업을 펴기로 했다. 이들은 ‘이재수 난’봉기일인 16일 남제주군 대정지역에서 기념식을 갖고 당시 천주교의 교폐에 대해 대한민국 천주교교구청과 로마교황청,프랑스 정부의 공개 사과도 촉구할 계획이다.학술심포지엄 개최,범도민 모금운동을 통한 기념조형물 건립,관련 자료집 발간 등의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현기영씨의 소설 ‘변방의 우짖는 새’를 통해 알려진 이재수 난은 99년 박광수 감독이 영화로 제작,제52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청년 비평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韓·日 교과서 갈등 해법 전문가 좌담

    일본의 왜곡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야기된 한·일간 갈등과 감정의 앙금이 좀처럼 해소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있다.대한매일은 16일 ‘가깝지만 먼 이웃’ 한·일 두 나라 사이에 야기된 이 어려운 숙제를 풀고 바람직한 선린의길을 모색하기 위해 긴급 좌담을 마련했다.좌담에는 일본교과서 왜곡 대책반 부반장인 임성준(任晟準)외교통상부차관보,일본정치 전문가인 박한규(朴漢圭)경희대 교수,기시 도시로(岸俊郞) 전 NHK 서울지국장 등이 참석했다.참석자들은 다양한 갈등해소책을 제시했으나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 일본이 21세기의 진정한 세계의 지도적 국가가 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임성준 차관보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결과가 발표되기전부터 우리 정부는 왜곡된 기술이 포함될 수 있음을 예상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현재 정부차원의 교과서왜곡 대책반이 구성돼 정밀분석중입니다. 초기 정부대응이미온적이라는 일부 지적이 있는데 정부는 이 문제가 나올때부터 역사인식의 문제는 한·일관계의 근본에 대한 문제라 생각, 대단히 중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왔습니다. ■박한규 교수 정부의 초기대응이 미온적이었습니다.지난98년의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근거해 미온적으로 대처한것입니다.기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21세기 진정한 동반자 관계는 없습니다.처음에 강경한 대응을 하지 못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범한 것 같습니다. ■기시 도시로 전 지국장 한국측이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한국 정부가 목표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는 세가지 논점이 필요합니다.첫째,교과서 어느부분이 왜곡됐는지가 명백해야 합니다. 어느 것이 왜곡이고 삭제·축소인지 밝혀주십시오.두번째,일본 정부를 상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 모임’) 등 우익집단,아니면 일반 일본인들을 상대로 할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임 차관보 5∼6명의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가 20일쯤나오면 왜곡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정부는 이를 국내 역사학계와 ‘역사편찬위원회’ 등의 재평가를 거치도록 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부여할 방침입니다. ‘새 모임’의 교과서는 일제의 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바꿨습니다.기업들이 해외에 영업망을 넓히는 것을 진출이라 하는데 제국주의 진출을 기업의 해외진출과 같이쓸 수는 없습니다.반면 ‘침략’이란 단어는 새 교과서에없습니다.군대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존엄성을 짓밟고 인격을 파멸시킨 중대한 문제입니다.이에 대해서는 검정을통과한 8개 교과서 중 5개가 언급이 없습니다.과거에 있었는데 이번에 없으므로 명백한 ‘삭제’입니다. ■박 교수 민간학자들은 문제의 교과서가 일제의 침략과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미화했다고 봅니다. 첫째,한·일합방에 대해 찬성하는 조선 내의 일부 목소리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당시 이완용 일파의 처신을 확대과장,한·일합방에 대해 양국이 합의한 것처럼 해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두번째 식민지 개발론입니다.철도를 놓고 관개시설을 정비하고 토지조사를 했다고 하는데이는 개발이 아니라 경제수탈을 위해서였습니다.세번째 군대위안부 문제입니다.이는 역사적 문제이면서인도주의적문제입니다.일본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태평양 전쟁 당시 수많은 고통과 피해 속에서 살아온 위안부의 실체를 없애는 것입니다. ■기시 전지국장 진보파의 대표적 학자인 와다 하루키 교수가 한 기고문에서 ‘새 모임’의 교과서가 137곳을 수정당한 것은 ‘새 모임’의 패배라고 지적했습니다.문제의교과서가 검정을 거쳐 많은 수정을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상당부분 개선된 교과서에 대해서 아직도 시정해야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합니다. ■임 차관보 역사가 왜곡된 교과서를 정부가 인정했다는점에서 일본 정부가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교과서 왜곡에 있어서 82년과 86년,두 차례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당시에는 사회당과 교원노조 등 일본 내 진보세력이 상당히 있었습니다.이념은 달랐지만 교과서 문제에서뜻을 같이해 일본 내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아시아 여러나라가 힘을 합쳐 수정했습니다.이들이 힘을 잃어가면서일본의 전후처리과정에 의문을 품은 보수우파세력이 힘을얻고 있습니다. ■기시 전지국장90년대는 일본인에게 ‘잃어버린 10년’입니다.경제적 침체와 정치적 혼란 사이에서 목적을 잃고떠돌고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좌·우파가 양립했습니다.전후 미국의 정책은 좌파가 힘을 얻게 되어있지만 천황의 존재를 인정,우파의 존재도 가능해졌습니다.미국의 모순된 정책 때문에좌·우파가 양립하면서 일본이 왜 아시아를 침략할 수 밖에 없었고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가에 대한 ‘사고 정지’가 50년간 계속됐습니다. 좌·우파는 각각 10%에 불과합니다.80% 일반 일본인들은‘잃어버린 10년’ 사이에 일본과 일본인의 정체성에 대한의문과 모색을 시작했습니다.이 가운데 우파의 주장이 호감을 얻었습니다.우리가 과거 역사에 잘못은 있지만 죄인같은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죠.한국이 도덕적인 공격을 계속하면 일반 국민들이 오히려 새 모임의 주장에 경도되지나 않을까 우려됩니다. ■임 차관보 일본의 보수우경화는 세계평화에 지장을 초래하지만 않는다면 우리 정부로서는 간섭할 사항이 아닙니다.일본 내에 양식있고 건전한 국민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우경화와 관련,자민당의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정조회장이 “주한미군이 공격받으면 한반도에 자위대를파병한다”는 위험한 발언이 대단히 경솔하고 유감스러운발언이지만 일단 지켜보고 있습니다. ■박 교수 교과서 왜곡이나 일본 군사대국화 등 우익 주장이 또다시 아시아에서의 안정과 평화를 깨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임 차관보 어느 나라든지 자존심이 있고 자국의 역사는자국이 만들어가는 겁니다.단 객관적인 역사를 왜곡하는것은 미래지향에 걸림돌이 됩니다.미래를 담당할 젊은 세대들의 교과서에 그런 문제가 담기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시 전지국장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재수정을 요구해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까요.검정이란 행정행위는 일단끝났습니다.2003년에 쓰일 내년도의 교과서 검정에 이번결과를 충분히 반영하라고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검정을다시 요구할 법률적 근거가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임 차관보 검정을 통과한 뒤 사실의 오류가 있거나 사정의 변경에 있어서 문부대신이 집필자에게 수정을 권고하는조항이 있습니다. 침략을 진출이라 쓴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이를 근거로 수정을 요구할 것입니다. ■기시 전지국장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재수정 여지가 없다고 하고 자민당 총재 후보 4명도 같은 입장이라 양국간의 접점이 보이지 않습니다.어떤 경우든 이 문제가 외교문제로 비화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박교수 동감입니다.양국간에는 2002년 월드컵,대북 문제등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 많습니다.이를 위해서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합니다.일본 정부가 재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항의할 권리가 있습니다.반면 교과서 문제를 다른 외교수단과 연계하는 것은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시 전지국장 98년 파트너십 이후 양국의 민간교류가급속도로 늘고 있습니다.전후 세대는 한국을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한국을 친구로 인식한 뒤 위안부 문제 등과거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사람의 감정과 아픔을 알게되면 일본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임 차관보 한국은 피해자로서 아픔의 깊이가 다릅니다. 현재 양국이 미래를 향해 나가는데 교과서 문제가 나와 우리 국민의 상심과 분노가 큽니다.‘과거사에 대한 반성을잊지 않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정리 진경호 전경하기자 lark3@
  • 역사왜곡 日교과서 검정통과 파장/ 신용하교수가 본 ‘우익교과서’

    일본 극우파들이 채택운동 전국조직을 만들어놓고 모리정권이 이번에 검정통과시킨 후쇼사(扶桑社·새역사교과서를만드는 모임편)의 2002년도용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한국관련 부문을 재침략 책동에 맞추어 다시 날조 왜곡한 것이 큰문제이다. 우선 고대사부터 보면,일본은 야요이시대부터 7세기 야마토 정권의 고대국가 수립 때까지 한반도 국가들의 선진 문명·기술·지식 전수와 한자와 기술자의 파견까지 간청,한민족 국가들이 이에 응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어 일본 고대국가와 문화의 기초를 만들었다.이것이 역사적 진실이어서,20년 전 한국 대통령 방일 때에 일본왕은 ‘귀국이 특히 5∼6세기에 우리 일본에 준 원조에 깊은 감사의 생각을 간직하고 있다’는 요지의 환영사를 한 바도 있다. 그런데 1890년대∼1900년대 초기에 걸쳐 일본 황국사관 주창자들은 하야시(林泰輔)를 선두로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한국침략 식민지 강점을 준비 지원하기 위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날조해내었다.야마토 정권이 4∼6세기에 한반도 가라 지방을 식민지화하여 ‘임나일본부’라는 총독부를두고 직할식민지로 통치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1910년 일본의 한국점령은 ‘침략’이 아니라 고대의 성취를 ‘복구’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완전한 날조였다. 1982년 일본교과서 왜곡사건 때 다수 교과서는 ‘임나일본부설’을 사실이 아니라고 뺐고,일부는 수록했었다.이에 분개한 한국 국민과 정부의 규탄으로 결국 모든 일본 교과서는 ‘임나일본부설’은 뺐고,전문가들이 황국사관의 지나간한 주장으로 검토하기로 낙착되었다. 이번 문제의 일본교과서는 이를 다시 부활시켜 교과서에넣고,나아가서 고구려·백제·신라가 야마토 정권에 조공을했다고 기술하였다. 수정을 요구받고는 백제·신라가 야마토 정권에 조공을 했고,고구려는 유사하게 접근했다고 고쳐썼다.완전히 역사 날조인 것이다.야마토 정권의 간청에 응해서 스승·학자·기술자·선진 문명을 보내어 가르쳐준 ‘은혜’를 ‘조공’을 했다고 배은망덕하여 날조하고,직할식민지까지 두어 통치했다고 21세기의 일본 중학생들(미래 전국민)에게 교육하겠다니,또 재침략 정신과 의지를 배양하려획책하는 것이다. 다음 근대사 부분에서 일본은 ‘정한론’ 실행의 단계로‘불평등 조약’(치외법권 등)에 의한 ‘개항’을 강요하기 위해 ‘운양호 사건’을 조작했다.강화도 조약은 일본 군함 5척의 함포사격 소리를 들어가며 일본이 작성해 온 ‘불평등 조약’문에 서명해준 것에 불과했다.개항후 일본은 단계적 침투와 침략을 감행하여 1910년 결국 ‘정한’의 목적을 달성해서 한국을 식민지로 병탄 강점하였다.1982년 일본교과서 사건 때, 일본 교과서들은 이 침략사실들은 대체로인정기술하고 한반도 ‘진출’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이에격분한 한국 국민의 규탄으로 ‘진출’을 ‘침략’이나 그에 준하는 용어로 수정했었다. 이번 2002년도용 문제의 일본 역사교과서는 아예 일본이개항후 한국의 군제개혁을 도와주는 등 원조했다고 날조했다.갑오개혁 때에 잘 증명된 바와 같이 일제가 가장 방해했던 것이 조선의 근대적 군제개혁과 자주국방능력의 증강이었다.또한 이번 교과서는 한국 병탄은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권익’을 지키기 위해 국제열강의 동의 아래 합법적으로 수행된 병합이라고 한국식민지화 강점을 정당화했다.한반도는 일본을 향해 뻗은 흉기(팔뚝)와 같은 것이어서 일본이 점령해야 일본이 안전하다는 것이다.도대체 이런 엉터리침략논리가 어디 있는가. 열본 열도가 한국과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방해하는 흉기와 같은 곳이니 폭파하여 없애버리려고 점령해야 한다면 일본 국민과 세계 인류가 납득하겠는가. 일본을 침략 강점하는 것이 한국과 중국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납득하겠는가.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요할때부터, 강박에 의한 조약은 국제법상 모두 무효라고 이미1906년부터 국제법학계는 이를 무효 선언했고,1927년 미국국제법학회,1960년의 유엔 국제법위원회가 강박에 의한 무효화의 대표적 사례로 일제의 한국침략 조약을 들었다.일제는 한국을 불법 강점하기 위해 한국을 침략했으며,청·일전쟁,러·일전쟁까지 도발해가면서 한국을 불법 강점한 것이었다. 이번 문제의 교과서는 일제의 36년간 식민지통치가 철도·관개시설 등 한국을‘개발’시켜 주었다고 하여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개발’ ‘근대화’ ‘시혜’의 논리로 정당화하였다.한국인·애국자들 수만명의 체포·투옥·학살,관동대지진 때의 수천명 재일한국인 학살,한국인 기본권 완전박탈, 식량·자원·광물약탈, 산업발흥 저지·탄압,한국어말살,한글 말살,성명 말살(창씨개명),한국민족문화유산 파괴, 민족문화 말살, 강제공출,강제연행,강제징병,종군위안부… 등 한국민족 말살정책과 수탈정책을 어느것 하나도 기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제 식민지 강점과 정책이 스스로 발전과 근대화할 능력이 없는 조선사람에게 ‘개발’ ‘근대화’ ‘혜택’을 준 것이니 일본이 한국 강점과 식민지 정책은 잘된 정책이라고 일본 중학생들에게 교육하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도된 역사의 가치관으로 교육받은 일본 중학생들이자라면서 한국 재침략을 고취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문제의 교과서는 또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소위 15년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영·불·미의 지배하에 있는아시아 민족들에 대한 ‘해방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정지시를 받고는 ‘해방전쟁’의 용어는 빼고 해방을 위한 ‘용기’ ‘계기’를 준 전쟁이라고 긍정적으로 기술하였다.‘난징(南京)대학살’은 사실이 아니며 오직 패전했기때문에 도쿄(전범)재판에서 (강요당해)인정했을 뿐이라고,‘난징 학살 사건’의 실재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현재 난징에는 일본군의 대학살 전시관이 있고 무수한 증거물이 전시되어 있다.문제의 교과서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용어인 ‘대동아전쟁’ ‘대동아공영권’의 용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면서 이것이 아시아 공동번영을 목적으로한 훌륭한 정책이었다고 시사하였다.실제로는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의 ‘아시아점령책’이었고 침략정책이었기때문에 아시아 각국의 독립운동세력은 영 ·불 ·미 세력에대항하다가 다시 일본 침략군에 맞서 이중의 더 무거운 침략에 대항,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종전후 해방·독립하게된 것이 진실이다.이 때문에 일본은 모든 침략 점령지역에대해 전후 배상하게 된 것이었다. 이번 문제의 교과서는 광복 전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국정교과서 내용을 부활시키고 황국사관을 부활시킨 것이다.이 문제 교과서 검정통과 때문에 82년에 한국·중국·동남아 각국 국민들이 투쟁하여 고친 7종의 교과서까지 ‘침략’용어를 빼고,‘종군위안부’,한국민족말살정책을 빼는 등 개악되어 버렸다.이런 교과서로 의무교육인 일본 중학생(미래일본국민)이 교육받으면,일본인들은 한국과 모든 아시아 민족들을 깔보고 재침략을 죄의식 없이 시도하게 되어 있다. 한국 국민과 정부,북한은 물론 중국·동남아 각국 등과 연대하여 82년도 이상으로 대사 소환은 물론이요 모든 가능한방법을 동원, 단호하게 강력 대응하여 조국과 아시아 및 세계 평화와 진실을 지켜야 할 것이다. 신용하 서울대교수·사회사상사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역사를 바로 보는 눈

    지난 97년 영국 국방부 방문길에 세계 3대 박물관 중의하나인 대영박물관을 관람할 기회를 가졌다.전시관을 둘러보다가 반갑게도 처음 문을 연 한국관이 눈에 띄었다.입구바로 정문 기둥에 우리나라 대형 지도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독도’가 보이지 않지 않은가.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대영박물관의 한국지도에 도대체엄연한 우리 땅인 독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니 의아스럽고 화가 났다.대사관을 통해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바로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긍정적인 답변을 듣고서 다음 행선지인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로 향할 수있었다. 지난해 조달청장으로 부임해 런던 구매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다가 그때 일이 생각나서 이 사실을 확인해 보라고했다. 얼마 후 우리나라 지도 덮개 위에 독도가 표시되어있더라는 보고를 받았다. 다행이긴 하나 비닐 덮개 위에 독도가 표시되어 있다는것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박물관측에 바로 지도에 표시해줄 것을 교섭해보라고 했다.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역사자료를 가지고 설명한 결과 대영박물관측으로부터 다음달(5월)에 전시관을 임시 휴관할 때 독도를 정식으로 표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지금 일본 우익단체의 역사교과서 왜곡파문은 한국과 중국 국민들을 크게 분노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군국주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불법침략을미화하고 식민지 수탈정책을 은폐하는가 하면 일본군위안부 가해사실마저 삭제하고 남경대학살을 축소하는 등 제국주의 황국사관적 역사인식을 갖고 일본 우월성을 부각시킨것이다. 그런데도 소위 일본 문부성 관리라는 사람은 역사인식 문제는 검정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발뺌하는,역사의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학계,종교계,시민단체(NGO),언론에서 일본의굴절된 역사교과서를 바로잡기 위해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올바른 역사인식과 진정한 동북아 평화관계 정립을 위해서 정말 잘하는 일이다.이번 일에는 남북한과 중국의 공동대처가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일본에도 역사를 바로 보는 양심세력이 적지 않다 하니이들과도 연대할 필요가 있다.진실이란 속인다고 굴절되는것이 아니다. 하물며 엄연한 사실(史實)을 왜곡한다고 진실이 감춰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에 우리의 역사를국제사회에 확실히 알리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과 사료 개발 및 보급이 민·관합동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본다.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투철한 역사의식과 역사를 바로 보는 혜안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역사를 바로 알고 실천하는 민족에게 미래가 열리기 때문이다. 김성호 조달청장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주요 어록

    ■바닷가에 소나무만 서있는 백사장의 사진을 찍어 가지고다니며 이곳서 배를 만들 테니 사주시오 하고 다녔다(71년 12월 현대중공업 초창기 일화에서)■모든 것은 나에게 맡겨라.겁이 나거든 집에 가서 누워기다려라(74년 6월 현대중공업 26만t급 대형 유조선의 도크 이동을 지휘하며)■기업가는 자신이 일으킨 사업이 자기가 존재하지 않을때에도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란다(77년 4월 전경련 회장취임을 앞두고)■돈 벌기는 소비재 장사가 쉽지만 그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78년 12월 국세청 고액 소득자 랭킹 1위에 오르며)■기업 스스로가 책임경영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도전하는 것이 곧 자유기업주의다(78년 10월 전경련 ‘한국 경제의 과제’강연록에서)■새벽 5시반이면 일어나 30분씩 운동을 한다.운동은 보약이 필요없는 건강 비결이다(80년 ‘주간한국’인터뷰에서)■기업이 정부정책에 협조 안하면 경제가 클 수 없다.기업은 영원한 여당이다(80년 7월 언론 인터뷰에서)■호주머니 지갑에 든 것만 내돈이다.나머지는 모두 사회의 것이요,나라의 것이다. (80년 12월 언론 인터뷰에서)■종교는 기적이 있을지 몰라도 경제에는 기적이 있을 수없다(81년 5월 동국대 강연에서)■현대의 재산은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는다.사회가 바라는 사회사업에 기증하겠다(81년 9월 KBS방송 출연에서)■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방법은 씀씀이를 줄이면서 돈 안쓰는 것이다(81년 9월 KBS방송에서)■이기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반대한다. 스포츠란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84년 바덴바덴IOC총회에서 서울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키며)■독점으로 상품의 품질이 국제 수준보다 떨어지고 값이비싸다면 이는 소비자를 수탈하는 것이다(88년 12월 언론특별대담에서)■몽헌 회장이 취임해도 중요한 일은 모두 저와 의논할 것이니 여러분은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2000년 3월 몽구·몽헌 형제의 ‘왕자의 난’때)■본인은 오늘부터 모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납니다.아들인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도 함께 모든 경영 일선에서물러나겠습니다(2000년 5월 ‘3부자 동반 퇴진’을 선언하면서). ●정주영 생애. ■1915년 11월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에서 출생■1930년(15세) 송전소학교 졸업■1940년(25세) 합자회사 아도서비스공장 설립■1946년(31세) 현대자동차공업 설립■1947년(32세) 현대건설주식회사 설립■1965년(50세) 한국 최초로 해외 건설공사 진출■1967년(52세) 현대자동차주식회사 설립■1969년(54세) 현대그룹회장 취임■1976년(61세) 한국 최초의 자동차 고유 모델 포니 생산■1977년(62세) 전국경제인연합회 제13대 회장 취임(1987년 17대까지 연임) 및 아산사회복지재단 설립■1981년(66세) 88서울올림픽 추진위원장으로 올림픽 유치에 성공■1982년(67세) 대한체육회 회장■1987년(72세) 현대그룹 명예회장 취임■1989년1월(74세) 북한을 첫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남. 금강산 공동개발 의정서 체결■1990년(75세) 소련 방문,시베리아 개발 착수■1991년(76세) 중국 방문,중국과의 경제 협력 착수■1998년(83세) 북한 세번째 방문.금강산관광 성사,김정일국방위원장과 첫 면담.IOC 올림픽훈장 받음■1999년(84세) 9월28일 7차 방북■1999년 10월1일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두번째 만남■1999년 11월18일 금강산관광 시작■2000년(85세) 5월25일 건설 상선 중공업 등 계열사 지분정리하고 현대차 지분만 소유■2000년 5월31일 ‘3부자 동반 퇴진’ 선언■2000년 6월28일 8차 방북■2000년 6월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세번째),금강산종합관광개발과 서해안공단 부지 조성 사실상 마무리. ■2001년 3월21일 사망
  • [발언대] 박차정의사 동상 6년만에 건립… 가슴 뿌듯

    3·1독립만세운동 82주년을 맞이한 올해 우리 부산시민은한껏 애국시민으로서의 자긍심과 부산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역사적 호재를 갖게 됐다.그것은 다름아니라우리 부산시민의 정성과 뜻을 한데 모아 그동안 추진해 왔던 부산의 대표적 여성 독립운동가인 박차정 의사의 동상건립이 완공, 3월 1일 금정문화회관 만남의 광장에서 그 역사적인 제막식을 거행한 것이다.전 시민이 함께 의사의 애국혼에 경의를 표하고 기쁨을 나누었다. 박차정 의사는 동래에서 태어나 일찍이 일신여학교(동래여고 전신)에서 신지식을 깨우치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저 머나먼 중국땅에서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으로 항일운동을 주도했다.박 의사는 무장항일투쟁(중국 강서성 곤륜산전투)의 선봉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중 부상을 입고 1944년 5월 27일 그토록 열망했던 조국광복과 일본의 패망을보지 못하고 순국했다.참으로 우리 부산의 자긍심이요 자랑이며,부산시민의 정신적 지도자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난 95년 유관순 열사와 같은 훈격인 ‘대한민국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해 여사의 공훈록이 발간됐다.같은 해에 박차정 의사 숭모회가 창립되었으니 여사의 동상건립 준비가 본격화된 이후 실로 6년만에 제막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부산 시민은 모두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하신 여사의 숭고한 애국혼과 위훈을 내고장 부산의 시민정신으로승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하겠다.또한 박 의사의 생가복원과기념관 건립 등 산적한 과제들도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우리 시민의 역량을 다시 한번 결집해야 하겠다.부산은일제의 대륙침략 병참기지로 그들의 수탈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던 곳으로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55주년 8·15광복절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부산광복기념관이 개관돼 독립운동사와 민족정기 선양의 산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이밖에 동래읍성지 내 마안산 정상에 우뚝선 부산 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과,구포대교 옆 구포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탑,어린이대공원 내 박재혁 의사동상 등 이미 많은 독립운동사적이 건립됐다.또한 ‘기장지역 독립만세운동 기념탑’의 건립이 추진되고 있음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영원 부산보훈청 급여계장
  • [기고] 사립대 현실과 교수노조 필요성

    사립대학이 발전하려면 재단(이사회)이 대학(학교)의 자주성과 자치를 인정하고 재정지원 등을 통해 이를 신장해야 한다.재단은 결코 학교를 ‘사유’하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지원하고 후원하는 것이다.사회에 기여할 교육과 연구를 위해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며,이러한 대학 활동을 뒷받침하고 돕기 위한 공익적목적으로 재단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학재단은 학교를 후원하기는커녕 부정과 비리로 학교를 사유물화하며 수탈했다.재단은 학교 운영의 90%이상을 등록금과국고보조금으로 충당하고 불과 5%내외의 보조금(전입금)을 내면서도학교를 장악한다.학교예산의 유용과 횡령,교수임용 및 재임용 비리,반민주적 전횡과 족벌경영 등은 끊이지 않고 보도된다. 재단은 막강한 자금력과 인맥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법을 개정하여 이 법을 악용하고,정치인 및 관료 등과 유착해 성장해 왔다.고이수인의원은 사학재단의 이러한 부패구조를 일컬어 ‘교육마피아’라고 규정한 바 있다. 사학비리는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대표한다. 사학비리는 근본적으로 사학재단의 비리이며,그 원인은 인사권을 비롯한 학교 운영상의 전권을 재단이 독점하는 데 있다. 재단의 독단과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교수들의 권리는 철저히 부정되고 있다.사립학교법은 ‘교수협의회’와 같은 교수들의 자치조직을 인정하지 않는다.대학 운영에 교수들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참여할 통로를 봉쇄한 것이다. 이로써 대학의 자주성과 독립성은 궤멸되고,재단의 자율-사실상 대학과 교수에 대한 자의적 억압과 탄압-은 증폭됨으로써 사학의 공공성과 민주성의 기반은 훼손되었다. 교수 자치는 대학 자치의 근본이다.교수 자치,대학 자치만이 대학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사립대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교수협의회에 속한 교수는 불온시되어 재단 눈밖에 나기 십상이고 특히 재단의 횡포에 맞서 대학 자치를 지키려는 교수들은 탄압받게 마련이다.부당 재임용탈락 조치로 강제해직되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재단은 연구업적과 교육능력 면에서 우수한 교수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부담없이 재임용에서탈락시킬 수 있다. 사립학교법은 교수들이 부당하게 재임용탈락 조치를 당하여도 구제해 줄 수 있는 어떤 방법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재단의 전횡과 비리에 맞서 비판ㆍ대항하고 사학 민주화를 요구하는 교수들이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해 고통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사립대 교수는 사실상 근로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마저도 인정받지 못하는,신분이 극도로 불안정한 직업인이다. 일체의 소명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갑작스런 해직통보를 받고 수년간 근무한 교정에서 쫓겨나면서도 구제를 호소할 곳조차 찾을 수 없다. 교수직이라는 것은 사실상 ‘부당해고’에도 전혀 대항할 수 없는,온전한 ‘노동직’에도 미치지 못하는 직업이다.부당하게 재임용에서탈락한 교수들의 경험이 이같은 성격을 절실히 대변한다.2002년 ‘계약제·연봉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되면,‘비정규직 노동직’으로서의 성격은 더욱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노동권’의 수준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립대 현실에서 ‘교수노조’는 교수들이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정당방위 수단이다. 재단을 견제하고 비리와 횡포에 대항하여 대학을 발전시키려는 학자및 교육자로서의 사명과 책임도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신분 안정 토대 위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교수노조는 교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궁극적으로 사립대 운영의 정상화와 발전을 위한 것이다. 성 낙 돈 덕성여대 교수·민교협 교육위원장
  • ‘부산명물’ 영도다리 철거된다

    6·25피난 시절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부산 영도다리가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 영도다리는 건설된 지 67년째를 맞아 노후된데다 롯데쇼핑㈜이 제2롯데월드 건축을 위한 교통 영향평가에서 현재 왕복 4차선인 영도다리를 6차선으로 넓히기로 했기 때문.시는 교량형식을 강합성형교와넬슨교,트러스교 등 3종류 가운데서 선택할 방침이나 각 장단점이 있어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도다리는 올해안으로 교량형식이 결정되면 실시설계를 거쳐 내년10월쯤 새단장을 위해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향토사료에 따르면 영도다리는 일제 때인 1931년 착공,당시 공사비 700만8,000원을 들여 1934년 개통된 부산 최초의 연륙교로 길이가 214.63m이며,도개식(跳開式)으로 거대한 다리를 하루에 2번씩 하늘로 들어올려 관광명물이 됐다. 개통 당시의 공식 이름은 부산대교였다.부산방향으로 31.3m를 들어올려 1,000t급의 기선이 지나가도록 건설됐으며 당시 가설공사로서는 매우 어렵고 큰 공사였다. 또 영도다리 가설공사는 시작부터 한인(韓人)들의 수난이 점철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산이었던 영선초등학교 자리의 산을 깎아 영도다리 호안매립공사를 하면서 산이 무너져 노무자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또 다리공사 때에도 희생자가 속출해 밤이 되면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펴졌으며 일제의 가혹한 수탈에 시달렸던 사람과 6·25전쟁 생활고에 쪼들린 피난민 등이 투신자살,한 많은 생을 마감한 장소로도유명했다. 특히 이곳에서 자살자가 속출하자 영도대교에는 ‘잠깐만’이라는팻말이 붙어 있었고,경찰관이 배치돼 감시를 하기도 했다. 교통량이 늘어나자 66년 9월1일부터 다리를 고정시키고 현재의 부산대교가 80년 1월30일 개통됨에 따라 이름도 영도대교로 바뀌게 되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대한광장] 일본 문부성 태도 유감

    며칠전 2002년부터 일본 중학교에서 사용할 역사교과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한 일본인이 문부성에 의해 전격 경질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그는 인도대사를 역임한 외교관 출신인 노다 에이지로(野田英三郞)씨였다.이유는 일본의 침략행위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교과서를 불합격시킬 것을 주장하였기 때문이었다.노다씨는 문제의 교과서가 한·일합방의 필요성을 기술하여 한국을 자극하고 또 침략전쟁을부인하였다고 평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보도가 진실이라면 일본의 앞날을 위하여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에 정부기관이 관여하여 압력을행사한 것이 된다.이것은 일본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학문적 자유와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적 분위기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보면 일제의 한반도 강점은 이웃국가에 대한 엄연한침략행위이다.식민지 지배를 통하여 한국인은 자발적으로 근대화를이룰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으며,수많은 인력과 자원을 수탈당하였다. 또한 일본을 위한 전쟁수행 과정에서다수의 한국인은 희생되고 고통을 당하였다.그럼에도 일본은 한국영토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으며,오늘날한국의 발전이 일본의 덕택인 것처럼 망언을 행하고 있다.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사실도 아닐 뿐더러 한·일 관계의 개선이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역사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문부성은 어린 중학생들에게 몰역사적인 내용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이는 노다씨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독일의 네오나치즘과동일한 것이 될 것이다.결국 이러한 역사인식의 주입은 젊은이들을미래에 침략의 주역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일본 문부성의 이번 결정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적극적으로 대항할 것인가,아니면 남의 나라 일이라고 하여 침잠할 것인가.동아시아의 평화와 역사의 진실을 위해서 그리고 일본의침략에 의하여 수없이 죽어간 영혼들을 위해서도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를 통하여 일본의 침략정책과 식민지 지배가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이것은 역사학계의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진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나아가 북한 중국 등역사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웃과 뜻을 같이하는 일본 국민들과도 공동투쟁의 장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그렇다고 하여 분노 일변도로만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일본이 이와같은 행동을 하는 데는 한국을 얕잡아 보는 태도가 가슴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이는 결국 우리 자신에도 문제가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외적으로는 일제 잔재의 청산을 주장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망각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우리는 이를 계기로 민족정신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객관적으로 쓰여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도 되돌아 보아야 한다.지나치게 주관적·심정적 민족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한국사에 대한 객관적 서술만이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우리의 역사가 올바로 쓰여질 때 일본의 역사왜곡은 자연히 시정될 것이며,그들의 망언도,그릇된 행동과 역사관도 개선될 것이다. 일본 문부성은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참회하는 길만이일본의 발전을 위한 초석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일본은 주변국가는 물론 세계 여러 민족들과 더불어 살아나갈 수 있는 후세들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좌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그런 점에서 일본의 교과서 왜곡이 하루빨리 시정되기를 바란다. 박 환 수원대 교수·역사학
  • 하늘과 땅이 잇닿은 오직 한 곳 ‘천혜의 곡창’

    이 들녘은 지금 따스하다. 누렇게 익은 벼들로 가득한 김제의 만경평야.때마침 불어온 산들바람과 흥겨운 춤사위를 나누느라 이랑마다 여유와 만족감이 충일하다. 노령산맥이 서해로 뻗어오다 그 기운을 모악산에 모두 토해내고 지리멸렬,한숨을 내쉰 형국으로 평야가 들어섰다.땅과 하늘이 잇닿은,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전북 김제시 광활면과 진봉면 일대. 들판에 서면 도리깨질을 하는 어머니와 수확을 앞둔 논에서 피를 뽑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배어나오는 바다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오래전부터 천혜의 곡창.“태풍 ‘프라피룬’인가 뭔가 ‘사오마이’인가 뭔가도 이상하게 싹싹 비켜간당게.물도 좋고 땅도 좋아,다른 곳은 흉년들면 여긴 더 대풍이지라”농심은자랑스럽기만 하다. 이곳의 어느 논두렁을 들어가도 가슴이 다 훤해지는 지평을 만날 수있다.또한 쭉 뻗은 도로를 따라 시원스레 달리다보면 도시인들은 해방감에 흠뻑 젖어든다. 그리고 일몰.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벼들의 머리위로 참연히 얼굴을 담그는 일몰을 접하는 일은 여느 곳에서 쉬 만나기 어려운 엑스터시를 안겨준다. 김제에서 유명한 벽골제에 이르는 길.그 길엔 코스모스가 연도에 나와있고 가을이 마중나와 있다.무려 13세기라는 거대한 세월을 버텨낸 벽골제.그 둘레가 44㎞에 이르렀다는 이 제방은 호남(湖南)이니 호서(湖西)니 하는 명칭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가 이곳의 물을 빼고 흙을 메워 논으로 둔갑시켜 놓는 바람에 벽골제는 박제화돼 있다. 제를 쌓는 데 동원된 일꾼들의 짚신을 털게 했다는 신털미산과 성주의 딸 단야공주가 일꾼들을 불러모아 가야금을 뜯으며 노고를 위무했다는 명금산 등이 남아있지만 일제는 많은 것을 이 천혜의 곡창에서앗아갔다.소설가 조정래씨가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으로 이 곳을 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김제시 위로는 만경강이,아래로는 동진강이 에워싸듯 흐른다.만경강위쪽이 군산.만경들녘에서 군산까지의 도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포장됐다.다 효과적인 수탈을 위해서였다.그런 아픔과 한을 되새기는 여정이 이곳 지평선위에 아로새겨져 있다. 김제시는 조씨와 함께 금산사와 심포 등 현존하는 관광자원을 돌아보는 ‘아리랑 투어‘ 상품개발을 추진하고 있다.소설에 등장하는 감골댁 일가,사금 채취장,징게맹갱 등 거점과 송수익 정재규 손판석 등 50∼60명의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투어로 진행된다. 또한 드라마 제작을 중점지원하겠다는 입장을 MBC측에 전달해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조씨는 현재 집필중인 ‘한강’을 마무리하는 2002년 이후 첫 작품으로 벽골제를 배경으로 한 소설 ‘단야’를 집필하겠다는 뜻을 밝힌것으로 알려졌다. “김제에는 사실 지평선이 두 개지라” 도인기 김제시청 문화공보담당관은 자랑했다.그대로였다.심포항에 물이 빠지니 또하나의 지평선이 얼굴을 드러낸다.평일인데도 사람들은 바지락이며 생합들로 가득한 자루를 어깨에 지고 갯벌을 훠이훠이 저어나온다. 심포 바로 곁의 망해사.소박한 절 크기에 비해 만경강,서해,군산땅,김제들녘을 한눈에 내려다보는,지평선과 수평선을 한꺼번에 맛보는조망감이 활달하다. 그리고 모악산 줄기에 자리한채 풍요로운 만경들녘을 굽어보는 금산사.국보 62호인 미륵전을 비롯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등 3개의 대형불상이 봉안된 대적광전과 점판암을 쌓은 육각다층석탑 등보물급 문화재들이 즐비하다.조계사의 큰 집 답게 호남 지역 전체를아우를만한,속리산 법주사에 비견될만한 위엄을 갖추었다. 이제 열차를 타고 남행할 때 서쪽 창변으로 내다보던 석양의 아름다움을 더깊이 이해할 것 같다. 글·사진 김제 임병선기자 bsnim@. *김제 ‘지평선축제' 내일 팡파르. 성공적인 지방축제로 자리매김한 김제 지평선축제가 올해는 29일부터 사흘동안 열린다.올해 하이라이트는 ‘떡가래 길게 뽑기’로 기네스 공인기록에 도전한다.시민과 관광객 380명이 참여,통일 염원을 담아 한반도 지도를 형상화한 380m 길이의 떡가래를 뽑는다.지금까지 비공인 기록은 지난해 12월 이화여대에서 세운 305m. 광활면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이 26m의 관람대도 주목할만하다.우마차를 타고 황금벌판을 누빌 수도 있고 40가족이 1박2일간 자매결연 농가에 머무는농사체험,허수아비와 옹기만들기를 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즐비하다. 입석 줄다리기와 벽골제 축조를 배경으로 한 쌍용놀이 등 민속놀이와 심포항에서 즐기는 조개캐기,청하면 만경대교에서 벌어지는 망둥어낚시대회 등이 펼쳐진다.축제위원회(063-540-3108)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김제 나들목을 빠져나와 714번 지방도로를이용한다.강남고속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김제행 버스가 운행되며 열차도 수시로 다닌다.29번 국도가 벽골제∼죽산∼심포항으로 연결된다.김제시와 벽골제,심포항을 돌아오는 셔틀버스가 행사기간동안6대 운행된다. ■먹거리 김제의 3대 자랑거리는 벽골제와 미질 뛰어나기로 이름난지평선쌀,싱싱한 생합(백합). 생합은 간이 나쁘거나 악성빈혈이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있다고 전해지며 쫄깃한 맛이 9월과 10월 절정에 이른다. 조금은 인파로 북적이는 심포항보다 거전(巨田)마을쪽이 한가롭고 좋다.시원한 맛이 일품인 꼬막국수와 꼬막무침도 푸짐하다.새만금횟집(063)543-6668낙조를 기다리며 거전마을 갯벌에 정박한 배에 올라 망둥어 낚싯대를기울이는 맛도 황홀하다.
  • 경의선 복원/ 경의선의 역사

    경의선은 1906년 서울∼신의주간 운행을 시작한 뒤 45년 중단되기까지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물류·교통의 대동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고종은 1896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이권쟁탈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경의선 부설권을 프랑스 피브릴르(Fives-Lille)사에 줬다.그러나피브릴르사가 약정기한(3년)을 지키지 못하자 이를 회수했다.이어 1899년 7월 ‘부설권을 절대 외국인에게 팔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대한철도회사에 넘겼으나 대한철도회사마저 자금부족으로 공사를 해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고종은 조정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고 1902년 3월 각국주한 외교관을 초청,경의선 기공식을 성대히 열었다.그러나 실은 일본이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경의선 부설권을 강탈,부설했던 것이다. 당시 수많은 의병들이 경의선 일부를 폭파하는 등 일본의 강제부설에 항거했다. 당시 일본은 경의선 부설여부가 대동아공영권의 명운을 좌우한다고믿었다.조선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이었던 야마가타는 1894년 이토 히로부미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부산∼의주 노선은 동아시아대륙을 통하는 대도(大道)로 장래 중국을 횡단해 인도에 도달하는 철도가 될것”이라고 밝혔다.일본 내각은 1902년 10월 경의철도를 만주로 확장하는 것이 정치·경제적으로 유익한 방안이라고 의결하고 1911년 압록강 철교를 건설했다. 이에 따라 경의선 열차는 부산에서 출발해 만주의 장춘과 안동까지달리며 국제철도의 기능까지 수행하게 됐다.일본은 대륙침략의 교두보뿐아니라 우리의 광물·삼림자원·농수산물을 수탈하는 이권획득의 발판으로도 경의선을 이용했다.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이 각각 남과 북에 주둔하면서 철도를 통한왕래가 제약되기 시작했다.경의선 역시 개통 40년만인 1945년 9월11일 마지막 열차가 신의주에 도착한 후 서울∼신의주간 운행이 전면중단됐다. 6.25 전쟁으로 한반도 허리에 비무장지대가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압록강까지 단숨에 달리던 총 499㎞의 경의선은 서울∼문산간 46㎞의초미니 철도로 전락한 채 남북분단의 상징물이 돼왔다. *경의선 약사. ■1896년7월 프랑스 피브릴르(Fives-Lille)사에 철도 부설권 부여. ■1899년7월 프랑스 부설권 회수,대한철도회사에 양도. ■1902년3월 기공식 ■1904년2월 일본,경의선 부설권 강탈. ■1906년4월 서울∼신의주간 열차운행 시작. ■1930년12월 서울∼수색 직결공사 완공. ■1938년7월∼1942년4월 서울∼평양간 275.5㎞ 복선화. ■1940년6월∼1943년5월 평양∼신의주간 224.0㎞ 복선화. ■1945년9월 남북철도 운행중지 조치. ■1951년6월 서울∼문산간 단축운행 실시. ■1963년11월 평양∼신의주 전철화 사업 완공. ■1985년 문산∼군사분계선(장단)간 12㎞구간 복원 위한 실시설계. ■1997년 용지매수 완료■2000년9월 서울∼신의주간 철도연결 사업 합의. 전광삼기자
  • [외언내언]’아시아 해방자’라고

    [장윤환 논설고문 yhc@] 세계제2차대전 당시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아시아 민족해방전쟁’으로 왜곡하고 일본을 피해자로 철저히 둔갑시키는 역사교과서가 일본에서 곧 나올모양이다.집권 자민당이 이 교과서에 대해 검정 합격판정을 내리도록 문부성에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문부성 또한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 우파들이 편찬한 이 역사교과서는 ‘태평양전쟁’을 아예 ‘대동아전쟁’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그 침략전쟁에 희생됐던 아시아 민중들로서는 ‘대동아공영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전율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없다. 일본이 도발한 태평양전쟁이 미국의 대일 적대정책에 맞서기 위한 ‘자위전쟁’이라는 주장도 그렇다.그 전쟁은 일본군부와 산업자본의 자기팽창논리가 불러온 인류사적 재앙이라는 게 통설이기 때문이다. 이 교과서는 군국주의 일본이 구미 열강의 식민지로 있던 동남아를 차지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결행하면서 베트남·인도네시아·미얀마·인도 등지에서동원했던 현지 주민들을 ‘민족해방전사’로 묘사한다.그리고 일본 자신은그 ‘성전의 지원자’이자 ‘아시아민족의 해방자’를 자처한다.그러면서 아시아 전지역에서 전개됐던 토착 민중들의 대일 항쟁을 식민 지배하에서 이익을 얻고 있던 일부 세력의 ‘게릴라 활동’쯤으로 깎아내리고 있다.뿐만 아니다.전쟁 초기 일본군의 승리는 동남아시아인들과 인도인들은 물론이고 더나아가 아프리카인들에게도 ‘독립을 향한 꿈과 용기’를 불어 넣었다고 강변한다.일본이 반제국주의 전사이자 ‘아시아민중의 해방자’라니,‘일본 소’도 웃을 일이다. 이 교과서는 식민지 한반도에서 자행된 압제나 수탈은 어물쩡 넘기고 중국난징대학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전쟁에서 선악을 가리기는 어렵다”며 전쟁책임을 비켜간다.그러나 미국 정부기관(IWG)이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에 나선 마당이다.조사대상은 난징대학살,일본군 731부대 생체실험,일본군 위안부,강제노역 등 일본군이 자행한 전범행위 전반에 걸친다.조사결과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둘러댈 지 미리부터 궁금하다. 어떤 나라의 2세 교육에 다른 나라가 간섭할 일은 아니다.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오늘날 세계 제2 경제대국이자 5대 군사강국인 일본은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시아민중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원한다면 적어도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 공헌하는쪽으로 2세를 교육해야 한다.
  • 일제시대 군산의 멍든 역사 ‘식민시대의 흔적’展

    일제시대 전라북도 군산은 호남과 충청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쌀과 곡식을 수탈하는 본거지였다.군산은 서해와 금강을 끼고 있어 바다나 강을 통한물류이동이 쉬웠기 때문이다.군산항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원산,인천,목포,진남포,마산에 이어 1899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됐다. 서울 인사동 ‘사진이 있는 마당’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작가 김재홍의 ‘식민시대의 흔적’전(31일까지)은 이러한 일제시대 군산의 멍든 역사를 현장사진을 통해 보여주는 기획전시다. 1920년대 군산 내항의 뜬다리 부두,후쿠노야 유곽,일본 장기십팔은행 지점,금광사 대웅전 등 일제침탈의 역사를 증언해주는 사진들로 가득하다.그의 사진들은 식민잔재가 선택적인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보다 뿌리깊은 것임을 웅변해준다.(02)720-9955. 김종면기자 jmkim@
  • 22일 개봉 패트리어트

    멜 깁슨이 ‘글래디에이터’,‘퍼펙트 스톰’ 같은 올 여름 할리우드 최고흥행대작들의 출연제의를 거절하고 낙점했다는 영화는 어떨까.시대극 ‘패트리어트’(The Patriot)는 연출과 연기를 한꺼번에 해냈던 그의 대표작 ‘브레이브 하트’의 속편쯤 된다.‘브레이브 하트’에서 조국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목숨을 걸었다면,이번에 그에게 총칼을 빼들게 한 모티프는 가족애로바뀌었을 뿐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미국의 대영(對英)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770년대 중반.프랑스와의 7년 전쟁끝에 획득한 신대륙(미국)에 이주해있던 영국인들은이즈음 조국의 터무니없는 수탈정책에 분노한다.식민지 개척자들은 마침내본국과의 전쟁을 결정하고,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신생국 미국의 독립투쟁에들어간다.지난날 프랑스와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맹활약해 ‘늪속의 여우’란명성을 얻은 장군 벤자민 마틴(멜 깁슨)은 이 대목에서부터 고민에 빠진다. 전쟁의 상처를 잊고 7남매를 키우는 데만 전력하겠다고 강다짐해온 벤자민은결국 가족때문에 전장에 뛰어든다.조국독립의대의를 좇아 큰아들 가브리엘(헤드 레져)이 군에 자원입대하고 둘째아들마저 영국 왕정파에 목숨을 잃은뒤 벤자민의 부성애는 자유와 독립정신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중반까지는 가족애가 주제의 전면에 명료하게 부상해 있다.그러던 것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이 스펙터클 액션도 은근슬쩍 ‘팍스아메리카나’를 강요하기 시작한다.죽기 전 가브리엘이 전장을 뒹굴던 누더기 성조기를 주워 온전히 기워놓으면,그의 아버지는 그 깃발을 영화가 끝나도록 흔들어댄다. 서사극이면서도 이례적으로 국가간 이해나 이념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영화에는 더러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도 확보돼 있다.실어증에 걸린 막내딸이전쟁터로 향하는 벤자민의 등뒤에서 말문을 여는 장면쯤에서 마음약한 여성관객들은 눈물깨나 찍어낼 것같다. 실제 미국 독립혁명의 역사적 현장을 돌며 찍은 영화다.인물들의 투박한 영국식 억양도 극의 리얼리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멜 깁슨은 이 한편으로 2,500만달러(약 275억원)의 개런티를 챙겼다.러닝타임 164분.22일 개봉. 황수정기자 **
  • [대한광장] 서울중심주의는 가라

    얼마 전 제주도에 갔을 때 한 시민운동가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인 발언이어서 수백 번을 되짚어 보았지만 허탈한 감정은지울 수 없었다.‘이런 식으로 중앙이 지역을 수탈한다면 제주도민들은 독립운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순간‘탐라공화국’이 혜성(彗星)처럼 머리에 쏟아져 내렸다.물론 과장이겠고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이러한 현실을 목도한 필자는 독자들께서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실 것으로믿고‘서울을 해체하자’라는 텍스트를 제기하겠다.이 과격한 언술(discourse)에 이어 좀더 용감하게 이제 더 이상 서울이 민족적 삶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선언을 덧붙이고자 한다.나아가 서울은 철저하게 반성하고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다른 지역에 나누어서 공간적 평등과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실천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그리고 세계 국가체제에서 중간관리자로자처하는 김대중 정부와 그 독점의 공간 서울은 깊이 반성할 것을 정중하게촉구한다. 어떤 면에서 서울은 전통과 현대가 긍정적으로 병존하는공간이지만,동시에 식민지 반식민지를 거치면서 외세의 대리인이자 관리자로 민족을 수탈한 지배자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때문에 21세기의 우리는 이러한 공간적 모순을해체하고 서울이 더 이상 권력의 생산지로 다른 지역에 대한 지배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을 해체하고 하나의 지역으로 존재할 것을 권한다. 왜 갑자기 선전 포고와 같은 이런 발언을 하는가?그건 이래서이다.2000년우리의 열망은 ‘빛의 속도를 향한 사이버 세상을 이룩하자’라는 것과 ‘신자유주의 세계 국가체제에 조종을 울리고 민족국가를 완성하자’라는 것이다.전자는 탈 근대정보화 사회를 향해서 나가는 세계사적 전망이고,후자는 반외세 민족공동체의 완성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이다.이 두 명제는 우리의 오랜 과제였던‘잘살아 보자’와‘인간답게 살자’라는 2000년 식의 해설이자 시대에 맞게 변형된 명제다. 이러한 세계적 변화의 현 단계에서 우리는 민족과 지역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할 간절한 필요를 느낀다.지금까지 서울 이외의 지역은 파시즘과 외세의식민지인 동시에 서울에 집중된 권력에 짓밟히는 유배된 땅이었다.그렇다면왜 그렇게 되었을까?일제 강점 이래로 반외세 반파시즘의 민족적 저항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지역은 무한한 희생을 감수하면서 그 민족적 명제를 위해노력했다.그러나 그 결과 대부분의 재화는 서울에 집중되었고‘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와 같은 비인간적 발언이 당연한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지역의 식민지화는 심화되었던 것이다.이 말이 틀렸다고단정한다면 많은 서울 사람들이 지방에 내려가 사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현상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답변해 보시라.말로는 맑은 공기,깨끗한 물 운운하지만 서울의 편리함과 독점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 현실은 분명히 모순이다. 이렇게 말하면 서울 시민들은 분노하리라.서울이 무슨 큰 권력을 행사했으며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었느냐고 하면서 말이다.물론 그렇다.서울 시민 대다수는 오히려 피지배와 억압 속에서 수수백년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서울의 해체는 서울이라는 공간과 삶의 주체인 서울시민 모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서울이 가진 상징성과 부당한 권력을 가리키는 비유이다.민족 전체의 구도에서도 서울 독점화현상은 민족의 전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금이라도 서울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것만이 민족 통일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준비이며 서울이 사는 길이고,민주주의를 공간적으로 실천하는 첫 걸음임을 상기하자.끝을 맺자,서울 중심주의는 가라.동강 주민이 한 말을 잊지 말라 서울이여,‘자기들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최소한의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에게는 이렇게 비참하고 더럽게 살란 말이냐?’ [金 昇 煥 충북대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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