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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대 교수 “위안부 성노예 아니다” 발언 논란

    고려대 교수 “위안부 성노예 아니다” 발언 논란

    고려대 교수가 수업시간에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19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고려대 경제연구소 소속 정안기 연구교수는 지난 15일 ‘동아시아 경제사’ 수업에서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었고 몇달만 일하면 고국으로 돌아갈 비행기삯을 구할 수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 시대에는 모두가 친일파였다. 당시 시대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정안기 교수는 또 아베 담화를 옹호한 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한국인, 당신들은 누구인가?’라는 칼럼을 복사해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영훈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하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계열 인사다. 지난해에도 정안기 교수가 수업시간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수탈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일본은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을 줬다”라거나 “야스쿠니 신사가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안기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실체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우리가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려는 건데 끊임없이 과거라고 하는 문제가 우리 발목을 잡고 사람들의 세계관, 역사관을 왜곡시킨다는 것은 이상한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당시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1명 때문에 99명의 ‘보통’ 사람들이 모두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역사교과서 개혁,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현장 블로그] 우경화 목매는 일본에 국정교과서 있었다면…

    청년 역사 연구 모임 ‘홀로그램’<2015년 7월 27일자 25면>이 주말인 12일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일본 답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홀로그램은 지난달 19~27일 후쿠오카, 나가사키, 교토, 오사카 등을 돌며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박물관, 기념관, 묘지 등을 하나하나 방문했습니다. 최근 한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돼 화제가 됐던 우토로 마을도 다녀왔다고 합니다. 홀로그램은 답사를 통해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경화 흐름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오사카에 있는 리버티박물관, 피스박물관에는 원래 식민지 시대 때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전시관, 전시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는 필요한 제도였다”는 망언을 한 극우 성향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이 과거 부지사 재임 시절부터 시 보조금을 무기로 해당 전시 내용을 없애거나 바꾸도록 했습니다. 또 그는 우익 출판사인 이쿠호샤가 만든 역사, 공민(사회) 교과서를 오사카시 중학교 교과서로 채택했습니다. 이 교과서는 일본의 러·일 전쟁 승리가 “유색 인종도 백인종에게 지지 않는다는 희망을 아시아인들에게 심어 줬다”고 서술하는 등 일본의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검정 교과서 체제 아래 일본 중학교 전체의 6% 정도만이 이쿠호샤 교과서를 채택했다고 합니다. 또 비록 일본 정부가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일본인들은 반인륜 범죄를 저질렀던 일본의 과거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시도하는 평화헌법 해석 변경에 국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사설 박물관·연구소 운영 등을 통해 전범 국가로서의 과오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일 일본이 국정 교과서 체제였다면 어땠을까요. 조선을 수탈하고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하고 731부대를 만들어 생체 실험을 일삼은 인권 유린의 역사가 ‘근대화의 상징’으로 왜곡된 채 일선 학교 현장에서 가르쳐지지 않았을까요. 현재 우리나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국사의 국정 교과서 체제 전환을 우려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국정 교과서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현재의 검정 국사 교과서들의 상당수가 ‘좌편향’이라고 공격합니다. 그들 중 일부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거나 개발 독재 시대의 경제적 성과를 지금보다 한층 더 부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의 희망 못지않게 견디기 힘든 독재와 인권 탄압의 절망도 동시에 겪어 온 우리 국민입니다. 하나의 역사를 부각하면 다른 역사는 묻히기 쉽습니다. 역사 교육의 목적을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하나의 역사’를 계속 강조하지만 하나의 역사로는 모두가 바라는 진실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무한도전 하시마섬, 찾기힘든 공양탑 위치에 하하 분노 “이걸 어떻게 찾아” 고국 밥상 전달

    무한도전 하시마섬, 찾기힘든 공양탑 위치에 하하 분노 “이걸 어떻게 찾아” 고국 밥상 전달

    무한도전 하시마섬, 찾기힘든 공양탑 위치에 하하 분노 “이걸 어떻게 찾아” ‘무한도전 하시마섬’ ‘무한도전’ 멤버 하하가 하시마섬에서 강제 노역 중 희생당한 한국인 유골이 묻힌 다카시마의 공양탑 위치에 분노했다. 12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배달의 무도’ 편에서는 멤버 하하가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하시마 섬을 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시마 섬은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로 일제강점기 당시에 한국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하시마섬에 입도한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강제징용 등 역사적인 사실은 쏙 뺀 채 근대화의 상징이라고만 홍보하는 관광 가이드의 말에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하는 “가슴이 답답하고 속상하다. 일본은 사람들한테 본인들이 한 것에 비해서 너무 아름다운 것만 기억에 남게 하려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이후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강제 노역 중 희생당한 한국인 유골이 묻힌 다카시마의 공양탑을 찾아갔다. 공양탑을 찾기 위해 온 마을을 뒤졌으나 결국 찾지 못했고, 제작진은 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했다. 몇 시간만에 찾아낸 공양탑은 거의 찾기힘든 수풀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하하는 “이걸 어떻게 찾아”라며 분노를 드러냈고 서경덕 교수와 함께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하하는 서경덕 교수와 함께 다시 공양탑을 찾았다. 앞서 하시마섬에 강제징용 됐던 할아버지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고향 쌀밥과 고깃국을 먹는게 소원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하하는 쌀밥과 고깃국을 챙겨 공양탑에 놓았고,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사진=MBC 무한도전 방송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왜?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왜?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왜? 무한도전 하시마 섬 ‘무한도전’ 하시마섬을 찾은 하하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을 방문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는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하시마섬을 방문했다. 하시마섬은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뒤로 일본 측은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알리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하하는 나가사키 내륙의 공동묘지를 찾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에 방문했다. 공양탑을 찾기 위해 덤불 속 숨겨진 길을 걷던 하하는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며 분통을 터뜨려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한도전’ 하시마 섬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어땠나 보니?

    ‘무한도전’ 하시마 섬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어땠나 보니?

    ‘무한도전’ 하시마 섬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어땠나 보니? 무한도전 하시마 섬 ‘무한도전’ 하시마섬을 찾은 하하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을 방문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는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하시마섬을 방문했다. 하시마섬은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뒤로 일본 측은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알리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하하는 나가사키 내륙의 공동묘지를 찾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에 방문했다. 공양탑을 찾기 위해 덤불 속 숨겨진 길을 걷던 하하는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며 분통을 터뜨려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무슨 일?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무슨 일?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무슨 일? 무한도전 하시마 섬 ‘무한도전’ 하시마섬을 찾은 하하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을 방문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는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하시마섬을 방문했다. 하시마섬은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뒤로 일본 측은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알리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하하는 나가사키 내륙의 공동묘지를 찾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에 방문했다. 공양탑을 찾기 위해 덤불 속 숨겨진 길을 걷던 하하는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며 분통을 터뜨려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한도전 하시마섬, 방치된 공양탑에 하하 “이걸 어떻게 찾아..”

    무한도전 하시마섬, 방치된 공양탑에 하하 “이걸 어떻게 찾아..”

    12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배달의 무도’ 편에서는 멤버 하하가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하시마 섬을 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시마 섬은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로 일제강점기 당시에 한국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하시마섬에 입도한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강제징용 등 역사적인 사실은 쏙 뺀 채 근대화의 상징이라고만 홍보하는 관광 가이드의 말에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강제 노역 중 희생당한 한국인 유골이 묻힌 다카시마의 공양탑을 찾아갔다. 몇 시간만에 찾아낸 공양탑은 거의 찾기힘든 수풀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하하는 “이걸 어떻게 찾아”라며 분노를 드러냈고 서경덕 교수와 함께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무한도전 하시마섬, 공양탑 찾으러 간 하하 울분 터뜨려..

    무한도전 하시마섬, 공양탑 찾으러 간 하하 울분 터뜨려..

    12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배달의 무도’ 편에서는 멤버 하하가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하시마 섬을 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시마 섬은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로 일제강점기 당시에 한국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하시마섬에 입도한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강제징용 등 역사적인 사실은 쏙 뺀 채 근대화의 상징이라고만 홍보하는 관광 가이드의 말에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강제 노역 중 희생당한 한국인 유골이 묻힌 다카시마의 공양탑을 찾아갔다. 몇 시간만에 찾아낸 공양탑은 거의 찾기힘든 수풀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하하는 “이걸 어떻게 찾아”라며 분노를 드러냈고 서경덕 교수와 함께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대체 왜?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대체 왜?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대체 왜? 무한도전 하시마 섬 ‘무한도전’ 하시마섬을 찾은 하하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을 방문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는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하시마섬을 방문했다. 하시마섬은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뒤로 일본 측은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알리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하하는 나가사키 내륙의 공동묘지를 찾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에 방문했다. 공양탑을 찾기 위해 덤불 속 숨겨진 길을 걷던 하하는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며 분통을 터뜨려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

    ‘무한도전’ 하시마 섬, 대체 어떤 곳?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분통 무한도전 하시마 섬 ‘무한도전’ 하시마섬을 찾은 하하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을 방문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는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하시마섬을 방문했다. 하시마섬은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뒤로 일본 측은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알리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하하는 나가사키 내륙의 공동묘지를 찾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에 방문했다. 공양탑을 찾기 위해 덤불 속 숨겨진 길을 걷던 하하는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며 분통을 터뜨려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한도전’ 하시마 섬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어땠길래?

    ‘무한도전’ 하시마 섬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어땠길래?

    ‘무한도전’ 하시마 섬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어땠길래? 무한도전 하시마 섬 ‘무한도전’ 하시마섬을 찾은 하하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을 방문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는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하시마섬을 방문했다. 하시마섬은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뒤로 일본 측은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알리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하하는 나가사키 내륙의 공동묘지를 찾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에 방문했다. 공양탑을 찾기 위해 덤불 속 숨겨진 길을 걷던 하하는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며 분통을 터뜨려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한도전’ 하시마 섬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대체 어떤 곳?

    ‘무한도전’ 하시마 섬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대체 어떤 곳?

    ‘무한도전’ 하시마 섬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 대체 어떤 곳? 무한도전 하시마 섬 ‘무한도전’ 하시마섬을 찾은 하하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을 방문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12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 하하는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하시마섬을 방문했다. 하시마섬은 일본 나가사키 시에 있는 무인도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의 노동력을 수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지옥섬’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뒤로 일본 측은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알리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하하는 나가사키 내륙의 공동묘지를 찾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조선인들을 위한 공양탑에 방문했다. 공양탑을 찾기 위해 덤불 속 숨겨진 길을 걷던 하하는 “이런 데를 어떻게 찾아오냐”며 분통을 터뜨려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고] 농업·농촌 하면 떠오르는 단어/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기고] 농업·농촌 하면 떠오르는 단어/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동심동덕(同心同德). 하나의 목표를 위해 마음을 모아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만큼 ‘동심동덕’을 잘하는 민족이 있을까. 일제의 수탈을 겪고도 한마음 한뜻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되찾았으며, 6·25 전란과 고통스런 가난 속에서 굴하지 않고 가족과 이웃, 동료, 나라를 일으켰다. 한국이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눈부신 양지로 나올 수 있었던 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농업·농촌이 헌신한 몫이 크다. 광복 이후 70년간 열심히 달려온 농업을 한국인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 7월 3일부터 열흘간 10대 이상 전국 1317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농업·농촌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설문조사로 알아봤다. 국민들이 선정한 10대 키워드는 차례대로 새마을운동, 비닐하우스, 친환경농산물, 경운기, 삼시세끼(방송), 귀농귀촌, 한식 세계화 등 다양했다. 우리 농업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나 트렌드로 연령별 키워드가 확연히 달랐다는 것이 흥미롭다. 10대(29.9%)와 20대(25.7%)는 방송 프로그램 ‘삼시세끼’를 키워드로 꼽았다. 농촌에서 건강한 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 일과를 시청하며 도시의 젊은이들이 농촌의 새로운 가치를 인식했다. 최근 TV 예능을 통해 농촌을 여행하고 도시에서 논밭을 일구는 모습을 접한 10~20대 젊은이들은 자급자족하며 소박하게 꾸리는 삶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단다. 미래 세대의 농업·농촌에 대한 관심은 농촌 체험과 관광 산업의 발전 가능성 및 잠재력을 나타낸다. 30대의 33.9%는 ‘친환경농산물’을 키워드로 선정했다. 돈을 더 내더라도 깨끗하고 질 좋은 상품을 사는 30대의 합리적인 소비 특성이 드러난다. 어린 자녀에게 먹일 안전한 먹거리를 고르기 위해 신선도와 생산지 등을 꼼꼼히 따져 보는 주부의 모습도 반영됐다. 정부도 날로 높아지는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관심에 부응하고자 친환경 농업 직불금 및 직거래 지원, 친환경농업연구센터 운영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40대 이상에게는 ‘새마을운동’이 가장 인상적인 키워드였다. 이들은 침체된 농촌을 살리고자 모두가 협심해 마을 길 넓히기, 지붕·상수도 개량 등에 직접 힘썼거나 가까운 가족 등으로부터 이야기로 접한 세대다. 세월이 흘러 이 세대들이 은퇴를 앞두고 자신의 고향인 농촌을 그리워한다. 현재도 여러 마을을 권역으로 묶어 생활 환경 정비, 경관 개선, 지역 역량 강화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제2, 제3의 새마을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농업·농촌 키워드는 70년 농림업의 역사를 대변한다.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보릿고개 시절부터 스마트폰으로 농사를 짓는 세상을 만들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허리끈을 졸라매고 개간·간척을 하고 저수지를 막아 지금 우리가 흰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앞으로도 변해 가는 시대와 다양한 소비자의 트렌드에 발맞춰 후손들에게 물려준 밝은 농업의 미래를 위해 꾸준히 국민 곁을 지키며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 고달픈 육백리 끝에… 마중 나온 가을

    고달픈 육백리 끝에… 마중 나온 가을

    가을이 왔나 싶었습니다. 어서 오시라며 버선발로 뛰어 나가 맞고 싶었습니다. 한데 아직 일러 가을은 오지 않았고 대신 초가을 풍경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외씨버선길’이라고 부릅니다. 경북의 오지 ‘BYC’(봉화·영양·청송)와 강원 영월을 잇는 트레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초가을 정취 내려앉은 그 길을 걸었습니다. 정확히는 경북 영양과 봉화를 잇는 ‘치유의 길’ 구간이었습니다. 고달팠던 여름을 털고 치유의 가을을 맞기에 이만한 곳도 없지 싶습니다. ●선비들이 숨어 살기 좋은 곳… 승무 같은 산길·숲길·들길 영양은 나라 안에서 대표적인 오지 중 하나로 꼽힌다. 구주령과 황장재, 창수령 등 사방을 둘러친 높은 산마루 안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영양의 옛 지명이 ‘선비들이 숨어 살기 좋은 곳’이란 뜻의 고은(古隱)이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외씨버선길 ‘치유의 길’ 구간은 이처럼 험한 영양 땅을 두루 거친 뒤 봉화로 넘어간다. 외씨버선길은 봉화·영양·청송의 영문 이름 첫 글자를 딴 ‘BYC’와 영월의 두메마을들을 연결하는 트레일이다. 13개 테마코스와 2개 연결코스를 합해 전체 길이가 240㎞나 된다. 청송 주왕산 입구에서 시작해 영월 관풍헌에서 끝난다. 이번에 걸은 외씨버선길은 일곱번 째 길이다. 영양 쪽 월악산자생화공원이 들머리, 봉화 우련전(雨蓮田)이 날머리다. 길이는 8.3㎞. 체력이 달린다면 봉화에서 시작해 영양에서 마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양 쪽 구간과 달리 봉화 쪽에선 2㎞ 남짓 오르막이 이어지다 줄곧 내리막이다. 외씨버선길 이름은 조지훈의 시 ‘승무’ 중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구절에서 따왔다.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조붓한 산길, 보일 듯 말 듯 휘어지고 돌아가는 숲길과 들길, 움직이는 듯 마는 듯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승무의 춤사위 같은 길이 바로 ‘외씨버선길’이다. 오이씨처럼 볼이 조붓하고 갸름해 맵시가 있는 버선이 바로 외씨버선 아니던가. 길의 형태도 외씨버선을 닮았다. 이름의 모티브가 된 ‘조지훈 문학길’은 외씨버선길 여섯번째 구간으로 조성됐다. ●전국 최대 일월자생화공원… 일제강점기 선광장 유적에 세워 들머리는 일월자생화공원이다. ‘전국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야생화 공원’이란 자찬보다, 공원 뒤편 산자락에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눈길을 확 잡아 끈다. 1939년 일제강점기 때 일월산에서 채굴한 금·은·동·아연 등 광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용화광산 선광장’이다. 나라 안에서 유일하게 남은 일제강점기 선광장 유적으로, 2006년 근대문화유산(제255호)으로 등록됐다. 1976년 폐광된 이후 독성 강한 물질들을 내뿜다가 2001년에야 밀봉됐고, 2004년부터 자생화를 심어 공원으로 꾸몄다. 광산 주변으로 목재 데크를 조성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광산 위편에 남아 있는 탄차까지 조목조목 살필 수 있다. 용화2리는 아랫대티와 윗대티로 나뉜다. ‘대티’란 영양에서 봉화로 넘어가던 일월산 ‘큰 고개’를 뜻한다. 윗대티에서 칡밭목까지 4㎞ 가까운 그윽한 산길이 이어진다. 2009년 사단법인 생명의 숲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길’ 공모에서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길이다. 오래전 이 길은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을 잇는 번듯한 31번 국도였다. 안내판은 “일제강점기에 일월산에서 캐낸 광물을 봉화 장군광업소로 옮기기 위한 수탈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적고 있다. 해방 이후 한동안 쓸모없이 버려졌던 도로는 1960년대 들어 일월산과 영양 지역 국유림에 대한 대대적인 산판(벌목)이 활기를 띠면서 다시 분주해졌다. 한국전쟁 판에서 흘러나온 이른바 ‘제무시’(GMC사 트럭)가 곧고 미끈한 육송을 가득 싣고 이 도로를 쉴새 없이 넘나들었다. 당시 삶의 애환과 땀방울이 조붓한 산길에 고스란히 서려 있는 듯하다. ●접신의 땅 일월산… 음기가 모여 있는 용화선녀탕 석굴 길은 일월산 기슭을 따라간다. 일원산은 무속인들이 ‘접신(接神)의 땅’이라 부르는 영험한 산이다. 계곡 곳곳에 돌탑, 기도처 등 치성의 흔적을 쌓아뒀다. 대티골은 그 가운데 무속인의 본거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일반적으로는 용화선녀탕이 ‘기가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옥황상제를 맞기 위해 선녀들이 머물던 곳이라는데, 작은 폭포가 오랜 세월 흘러내리며 만든 욕조 모양의 소(沼)가 인상적이다. 현지 무속인들이 정말 기가 세다고 믿는 곳은 따로 있다. 선녀탕 위쪽의 석굴이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석굴 앞에 서면 뒷목이 서늘해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하다. 숲길 주변에선 가을철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 길목마다 송이 도둑을 잡기 위해 주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킨다. 실수로 송이버섯 하나라도 채취했다간 크게 욕볼 수 있다. 간혹 입산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소천면’ 경계를 알리는 옛 국도 표지판을 지나면 시멘트 포장길이다. 종착지인 우련전까지 이어진다. 시멘트길은 다소 볼썽사납지만 주변 낙엽송숲은 깊고 아늑하다. 영양엔 은근히 볼거리가 많다. 영양의 명소 두들마을에서 5㎞쯤 떨어진 곳에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933) 지사의 생가가 있다. 남 지사는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의 실제 모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1895년 남편이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자 유복자를 키우며 의병활동을 지원하던 남 지사는 1933년 일제의 무토 노부요시 만주국 전권대사를 암살하려다 중국 하얼빈에서 체포돼 그해 8월 순국했다. 입암면 산해리 강가엔 봉감모전오층석탑이 홀로 서 있다. 국보 제187호. 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기단의 모습과 돌을 다듬은 솜씨, 감실의 장식 등이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연한 축조방식 덕에 균형 잡힌 자태와 장중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청송에 ‘꽃돌’이 있다면 영양엔 ‘폭포석’이 있다. 검은 현무암 사이에 석영 등 흰빛의 광물질이 섞인 돌로, 실제 폭포를 보는 듯하다. 오래전 화산 폭발 때 용암과 섞여 올라온 석영 등이 식으며 형성됐다고 한다. 입암면 선바위관광지 안의 분재수석야생화전시관에 다양한 형태의 폭포석이 전시돼 있다.영양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이 두 곳이다. 감천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114호)은 측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 측백나무가 중국에서 도입됐다는 학설을 부인하는 중요한 학술적 증거라는데, 현재 오토캠핑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석보면 주남리엔 시무나무, 비술나무숲(천연기념물 제476호)이 있다. 시무나무 최고수령은 350년 정도다. 글 사진 영양·봉화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으로 나와 34번 국도를 따라가다 안동시내, 임하호를 거쳐 청송군 진보에서 31번 국도로 갈아타고 곧장 가는 게 일반적이다. 중앙고속도로 풍기, 영주 나들목으로 나와도 비슷하다. 5번 국도를 따라 영주 거쳐 36번 국도를 타고 직진, 춘양 들머리 지나 31번 국도 만나 우회전해 일월·영양 쪽으로 간다. 봉화터널과 영양터널을 거푸 지나면 용화2리 자생화공원이 나온다. 경북북부연구원 외씨버선길 탐사팀 683-0031. ▲ 맛집 영양에선 흑염소 전문집들을 종종 본다. 흑염소 한 마리를 통으로 잡아 1박 2일 여행기간 동안 먹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맛보다는 보신에 가까워 보인다. 영양보양탕(682-9924)은 1인분 단위로 흑염소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집이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기도 하다. 흑염소 수육도 좋지만 맑게 끓여낸 탕이 일품이다. 읍내 끝자락에 있다. 한울가든(682-7300)은 가자미찜, 다슬기국 등 시골밥상을 내는 집이다. 영양군청 앞에 있다. ▲잘 곳 두들마을 석계종택(682-1480), 영감댁·병암고택(682-8050) 등에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모텔 등 일반 숙박업소는 읍내에 몰려 있다. 가족 단위라면 한화리조트 백암온천을 권한다. 영양에서 구주령 넘어가면 나온다. 온천과 숙박을 겸할 수 있다. 787-7001.
  • [단독] 부관훼리 경영권 45년 만에 日로… “‘한·일 협력의 상징’ 되찾아야”

    [단독] 부관훼리 경영권 45년 만에 日로… “‘한·일 협력의 상징’ 되찾아야”

    한·일 협력의 상징인 부관훼리㈜ 경영권이 45년 만에 일본으로 넘어갔다.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훼리는 해방 후 운항이 중단됐다가 한·일 협력 차원에서 1970년 6월 19일 취항했다. 25일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부산시 등이 최근 부관훼리의 자본금 변동 내역을 확인한 결과 일본 기업 라이토프로그레스가 52.14%의 지분율로 재일동포 출신 창업자 정건영(2002년 별세) 회장의 아들(23.80%)과 딸(23.80%)을 제치고 최대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관훼리는 지난 2월 주주총회를 열고 정건영씨 아들인 사토 유지 대표 외에 일본인 한 명을 공동대표로 선임하고 한국인 부사장을 해임했다. 라이토프로그레스는 2007년 창업한 일본의 대표적 인수·합병(M&A) 전문 회사로 알려졌다. 부관훼리는 일제강점기 조선과 대륙 진출을 꾀한 일본이 선박을 철도와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겠다는 취지에서 1905년 9월 11일 ‘관부연락선’ 이키마루호(1680t)를 취항한 게 효시다. 관부(關釜)는 시모노세키(下關) 뒤 글자와 부산(釜山) 앞 글자를 땄다. 관부연락선은 침략과 수탈의 상징이었다. 1970년 한국은 부관훼리, 일본은 관부훼리를 설립해 운영하기로 했다. 양국이 50대50으로 공동출자하고 공동채산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부관훼리에는 당시 협성해운 회장인 부산상공회의소 왕상은 부회장과 정건영씨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일본 내 세력이 컸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를 견제하려고 창업을 주도한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를 배제하고 일본 민단 출신인 정건영씨에게 경영권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부관훼리 성희호(1만 6875t)와 관부훼리 하마유호(1만 6878t)는 공동경영을 통해 한·일 간 새로운 협력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부관훼리가 일본 자본으로 넘어가면서 수십년간 쌓아 온 호혜·평등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제 여객선사 한 관계자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일 화해와 협력이란 취지에 따라 부관훼리 창업을 주도했던 부산 지역 상공인들이 힘을 모아 경영권을 되찾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관훼리는 라이토프로그레스가 경영에 참여한 (아들의) 우호 지분인 만큼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부관훼리에는 50여명의 직원이 있으며 연매출이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단독] 부관훼리 경영권 45년 만에 日로…“‘한·일 협력의 상징’ 되찾아야”

    [단독] 부관훼리 경영권 45년 만에 日로…“‘한·일 협력의 상징’ 되찾아야”

    한·일 협력의 상징인 부관훼리㈜ 경영권이 45년 만에 일본에 넘어갔다.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훼리는 해방 후 운항이 중단됐다가 한·일 협력 차원에서 1970년 6월 19일 취항했다. 25일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부산시 등이 최근 부관훼리의 자본금 변동 내역을 확인한 결과 일본 기업 라이토프로그레스가 52.14%의 지분율로 재일동포 출신 창업자 정건영(2002년 별세) 회장의 아들(23.80%)과 딸(23.80%)을 제치고 최대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관훼리는 지난 2월 주주총회를 열고 정건영씨 아들인 사토 유지 대표 외에 일본인 한 명을 공동대표로 선임하고 한국인 부사장을 해임했다. 라이토프로그레스는 2007년 창업한 일본의 대표적 인수·합병(M&A) 전문 회사로 알려졌다. 부관훼리는 일제강점기 조선과 대륙 진출을 꾀한 일본이 선박을 철도와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겠다는 취지에서 1905년 9월 11일 ‘관부연락선’ 이키마루호(1680t)를 취항한 게 효시다. 관부(關釜)는 시모노세키(下關) 뒤 글자와 부산(釜山) 앞 글자를 땄다. 관부연락선은 침략과 수탈의 상징이었다. 1970년 한국은 부관훼리, 일본은 관부훼리를 설립해 운영하기로 했다. 양국이 50대50으로 공동출자하고 공동채산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부관훼리에는 당시 협성해운 회장인 부산상공회의소 왕상은 부회장과 정건영씨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일본 내 세력이 컸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를 견제하려고 창업을 주도한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를 배제하고 일본 민단 출신인 정건영씨에게 경영권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부관훼리 성희호(1만 6875t)와 관부훼리 하마유호(1만 6878t)는 공동경영을 통해 한·일 간 새로운 협력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부관훼리가 일본 자본으로 넘어가면서 수십년간 쌓아 온 호혜·평등의 원칙이 무너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제 여객선사 한 관계자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일 화해와 협력이란 취지에 따라 부관훼리 창업을 주도했던 부산 지역 상공인들이 힘을 모아 경영권을 되찾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관훼리는 라이토프로그레스가 경영에 참여한 (아들의) 우호 지분인 만큼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부관훼리에는 50여명의 직원이 있으며 연매출이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독도가 세계 평화의 중심이 되는 날까지 기도할 것”

    “독도가 세계 평화의 중심이 되는 날까지 기도할 것”

    한국천주교회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17일 독도에서 첫 공식 미사를 열었다. 이날 오전 울릉도와 독도를 관할하는 한국천주교회 대구대교구 울릉도 도동성당은 울릉도에서 87.4㎞ 떨어진 독도를 방문해 동도물양장에서 순국 선열들의 넋과 한반도 평화를 기리는 성모 마리아 심신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는 울릉도에 있는 도동성당과 천부성당 신자를 비롯해 육지 신자, 기자단 등 총 65명이 참석했다. 독도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자원 수탈 대상이자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의 독도 오인 포격으로 양민이 희생된 아픔을 겪은 비운의 현장이다. 도동성당은 ‘독도 지키는 성모상’을 세워 2009년부터 매년 8월 15일에 독도 평화수호 미사를 열고 있지만 독도 현지에서 한국천주교회 차원의 공식 미사는 한 차례도 없었다. 애초 지난 6월 29일 열릴 예정이던 이번 행사는 기상 여건 탓에 수차례 연기됐다. 미사를 집전한 손성호 도동성당 주임 신부는 “독도는 난리의 중심이 아니라 조용한 평화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평화의 섬 독도가 세계평화의 중심이 되는 날까지 기도를 계속할 것입니다”라고 강론했다. 이어 “진정한 평화는 정의의 실현에서 옵니다. 부당한 착취나 압제는 평화를 깨고 인권을 짓밟는 것으로 절대로 평화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라며 약 40분간의 미사를 끝마쳤다. 손 신부는 “매년 5월이 성모성월(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달)에다가 날씨가 좋을 때라 이 시기로 독도 미사를 정례화할 생각”이라면서도 “계획은 인간이 하고 허락은 하느님께서 하신다”고 말했다. 독도 연합뉴스
  • 푸른 숲길로 다시 태어난 옛 경춘선

    푸른 숲길로 다시 태어난 옛 경춘선

    서울시는 노원구 공릉1동과 공릉2동 사이 공덕 제2철도건널목∼육사삼거리 경춘선 폐철길 1.9㎞를 ‘경춘선숲길’로 단장해 개방한다고 11일 밝혔다. 경춘선숲길 사업은 폐선 된 경춘선 중 서울시 구간인 광운대역∼옛 화랑대역∼서울시계 6.3㎞에 숲길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경춘선은 1939년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자본으로 만든 첫 철도다. 당시 철도는 일제가 자원 수탈을 위해 놓은 게 대부분이지만, 경춘선은 국가균형 발전을 목적으로 건설됐다는 점이 다르다. 건설 초기 경춘선은 성동역에서 시작해 고상전·월곡역·성북역(현 광운대역)을 지나 춘천역까지 이어졌다. 1970년에는 출발역이 청량리역으로 바뀌면서 성동역~성북대 구간이 없어졌고 2010년 복선전철화 사업에 들어가 기존 성북역~갈매역 노선도 사라지게 됐다. 이번에 개방된 구간은 1단계 구간으로 넓이는 4만 8170㎡다. 시는 기존 철길과 신호기 등을 보전하면서 산책로와 주민 커뮤니티 공간, 자전거길 등을 만들고 철길을 형상화한 의자 등도 설치했다. 산책로에는 왕벚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매화나무 등을 심었다. 또 화랑대로변 철길숲에는 옛 철도변에 있었던 스트로브잣나무 숲을 보전했다. 시는 2016년 9월까지 2단계 구간인 경춘철교∼산업대3길 고가철교 구간을 완공한 뒤 2017년 5월까지 전체 3단계 구간 공사를 마칠 계획이다. 고인석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은 “경춘선숲길은 원형을 보전하면서 시민 녹지공간으로 새 생명을 불어넣는 도시재생프로젝트 중 하나”라면서 “폐선 구간이 숲길로 탈바꿈하면서 오랜 기간 철도로 단절된 지역이 화합의 장소로 새롭게 태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칼의 춤으로 풀어낸 날 선 비극

    칼의 춤으로 풀어낸 날 선 비극

    박흥식 감독의 연출력은 영화 속 인물의 시선과 감정선을 따라가며 만들어내는 섬세한 서사에서 빛을 발한다. 데뷔작인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부터 ‘인어공주’(2004), ‘사랑해 말순씨’(2005), ‘천국의 아이들’(2012)에 이르기까지 작품마다 그만의 미학을 꾸준히 구축해 왔다. 그는 10여년 전 영화계 안팎에 무협 사극을 만들겠다는 얘기를 슬며시 흘렸다. 무협영화는 중국이 대세다. 국내의 무협 장르 영화는 불모지에 가깝다. 때문에 박흥식의 색깔을 가진 무협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큰 기대 한 구석에는 이제껏 가지 않았던 길 위에서 겪을 여러 문제에 대한 우려 또한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의 무르익음 뒤에 박 감독의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2월 촬영을 모두 마쳤음에도 영화 제작 외적인 상황으로 개봉이 1년 가까이 늦춰지는 곡절을 겪었다. ‘협녀’는 전형적인 무협영화의 외피를 띠는 듯하면서도 그 공식과 전형성을 전복해내는 작품이다. 액션사극의 장르적 외형 안에 박 감독이 가장 잘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그는 지난 5일 언론시사회를 마친 뒤 가진 간담회에서 “무협보다는 멜로의 연장선이며 액션보다 감정에 무게를 뒀다”고 말했다. 보편적으로 중국 무협영화에서 드러나는 선과 악의 대립선은 뚜렷하다. 또 주인공은 절박한 상황에서 부족한 능력을 노력으로 채운 뒤 결국 갖은 걸림돌을 뚫고 악인에 대한 복수에 성공한다. ‘협녀’ 역시 여타의 무협영화들이 그랬듯 절정의 무림 고수들이 나와 하늘을 날아다니고, 화려한 검술이 곁들여지며, 주인공은 복수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협녀’는 박흥식 감독의 작품이다. ‘협녀’의 시대는 고려 후기 즈음이다. 문인들에게 무시당하던 무신들의 정권이 들어섰고, 타고난 신분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도 있음을 확인하던 때다. 신분제의 고통과 귀족의 수탈로 기근에 시달리던 농민과 노비의 봉기가 전국 곳곳에서 들불처럼 일어난다. 천민 출신으로 무림의 고수인 세 검객 풍천(배수빈), 설랑(전도연), 덕기(이병헌)는 백성들의 봉기에 앞장서지만 권력에 대한 탐욕을 앞세운 덕기의 배신으로 좌절되고, 풍천은 죽음을 맞고 만다. 그리고 이들의 2세인 홍이(김고은)는 18년 동안 복수의 일념으로 검술을 수련하며 자란다. 실제 고려의 역사도 비슷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른바 ‘만적의 난’(1198년)으로 통하는 노비해방운동 역시 또 다른 노비 동료의 배신으로 좌절됐다. 봉기를 모의했던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 등은 산 채로 강물에 던져졌다. 배신의 대가는 금 80냥과 자신 혼자 벗어던진 노비신분이었다. 비극적인 시대에 개인의 삶 또한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깊디 깊은 증오는 역설적으로 가없는 애정과 뗄 수 없이 맞물려 있다. 이룰 수 없는 애정이 커지면 연민이 되고, 연민이 깊어지면 증오로 바뀌게 마련이다. 또한 살부(殺父)의 숙명을 타고난 이에게 복수의 완성은 비극의 절정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것과 다르지 않다. 홍이, 설랑, 그리고 덕기까지 각각이 져야 할 운명의 무게감은 너무도 크다. 박 감독은 돋보이는 미장센을 영화 곳곳에 적절히 배치했다. 탐미주의자로 오해받기에 충분할 정도다. 노란색과 연두색이 스크린 가득 하늘거리는 해바라기밭에서 뛰노는 홍이의 모습은 복수의 감정을 뛰어넘는 순수함을 상징한다. 또 하얗게 피어난 메밀꽃밭을 지르밟으며 병사들과 맞서는 장면은 설랑의 북받치는 슬픔과 대비되며 비극적 상황을 극대화한다. 이 밖에도 제 어미 설랑에게 검을 겨눠야 하는 홍이의 가슴 속 격동을 대변하듯 출렁이는 갈대밭, 그리고 몇 줄기 희미한 햇볕만 겨우 스며든 대나무 숲 속 검푸름도 ‘협녀’의 색채 영상미학을 유감없이 자랑한다. 마지막 장면, 사르락 사르락 눈 내리는 밤 한자리에 모인 세 사람의 애증의 운명은 한껏 끌어올린 비장미의 정점을 찍는다. 13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新국토기행] 전북 김제시

    [新국토기행] 전북 김제시

    전북 김제시는 농경문화의 산실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쌀을 생산하는 곡창지대다. 호남평야의 중심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풍요롭고 시원한 눈 맛은 김제 들녘만의 자랑이다. 삼복더위가 한창인 요즘 들판에 초록색 융단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앞으로 두 달 남짓이면 김제 전역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김제는 면적 544.9㎢, 1읍·14면·4동의 행정구역을 가진 전형적인 농업지역이다. 151개 이·통과 732개 마을로 이뤄졌다. 1976년까지만 해도 인구 26만명의 잘사는 지역이었다. 이후 농업환경 악화와 이농현상으로 2007년 10만명 선이 붕괴됐다. 현재는 인구 9만명의 전통 벼농사 중심도시로 전락했다. 하지만 김제시는 첨단 과학영농도시로의 도약을 꿈꾼다. 농업연구단지, 원예·화훼단지, 글로벌 첨단기업 등이 어우러진 도농복합지역으로 발돋움해 ‘돈과 사람이 몰려드는 김제’를 만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새만금 2호 방조제와 내륙 매립지도 김제시 관할로 결정 받아 20만 광역경제도시로 성장한다는 구상이다. [볼거리] ●5000년 농경문화의 상징… 우리나라 最古 저수지 ‘벽골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다. 5000년 농경문화 상징으로 1700년 전인 서기 330년(백제 비류왕 27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수리시설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1963년 국가사적 제111호로 지정됐다. 삼국사기에는 당시 벽골제 제방 크기를 1800보로 전한다. 높이 5m, 길이 3㎞의 제방을 쌓기 위해 연인원 32만명이 동원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김제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조선 세종 때 폭우로 유실됐고 임진왜란 이후 서서히 헐리게 됐다. 일제 강점기 농지개량사업을 추진하면서 대규모로 훼손됐다. 지금은 조선 태종 때 세워진 중수비와 수문자리에 있던 돌기둥만 남았다. 물을 가뒀던 제내지는 농경지로 바뀌었다. 시는 벽골제 제방 북쪽에 박물관복합단지를 조성했다. 농경문화박물관은 벽골제의 역사적 의의와 발굴 과정, 수리와 치수 역사, 전래 농경도구와 농경문화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벽골제 테마 연못에서는 두레, 무자위, 투호 등 농경문화와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쌍룡 설화를 배경으로 만든 웅장한 쌍룡 조형물도 볼거리다. 시는 벽골제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4차례의 발굴작업, 수문의 구조와 제방성토 공정을 확인했다. 전북도와 김제시는 벽골제를 농경문화의 성지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호남 불교문화의 중심지 ‘금산사’ 금산사는 모악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은 호남 미륵신앙의 도량이다. 백제 법왕 원년(599)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지어졌다. 신라 혜공왕 2년(766) 진표 율사가 중창하면서 대가람의 면모를 갖췄다. 대적광전, 대장전, 명부전, 나한전, 일주문, 금강문, 보제루 등으로 구성됐다. 주변에 심원암, 용천암 등 부속 암자를 거느린다. 신라 오교의 하나인 법상종의 근본도량으로서 호남지역 불교문화의 중심지다. 이 때문에 대웅전이 없다. 미륵전 미륵불이 주불이고 석가불은 대장전에 따로 있다. 1598년 임진왜란 당시 미륵전, 대공전 등 40여개 암자가 소실됐으나 1601년 재건했다. 스스로 미륵임을 자처했던 후백제 왕 견훤이 자신의 복을 비는 원찰로 삼고 중수했다는 설도 전해내려 온다. 국보 제62호인 미륵전과 오층석탑, 석종, 노주, 당간지주 등 많은 보물과 문화재가 있다. ●소설 ‘아리랑’의 역사의식 공유한 문학관·문학마을 조정래의 장편 소설 ‘아리랑’ 주무대인 김제시가 역사의 고장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역사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문학관과 문학마을을 조성했다. 일제에 수탈당한 땅과 뿌리 뽑힌 민초들, 항쟁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문학관은 2003년 부량면 용성리 벽골제 박물관 단지에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됐다. 조정래 육필 원고지 2만장과 소설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전시한다. 작가가 집필 당시 사용했던 필기구 등 106종 370여가지 물품도 있다. 문학마을은 죽산면 내촌 외리 마을에 조성됐다. 일제 강점기 내촌 외리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책 속에서 꺼내 펼쳐놨다. 테마별로 스토리와 역사성을 가미해 시공간적으로 구성했다.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몸부림쳤던 민초들을 감시하는 주재소, 우체국 등을 재현했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 장소였던 하얼빈역도 고증을 거쳐 건립됐다. 이곳 사람들의 애국·항쟁 정신과 풍요로운 고향을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자긍심을 살펴볼 수 있다. ●끝없는 절경의 황금 들판·농촌의 향수 느낄수 있는 지평선축제 김제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가을에 펼쳐지는 황금벌판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스라이 이어지는 누런 들판에 국내에서 가장 긴 100리 코스모스길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한반도 곳간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소슬한 가을 바람에 일렁이는 황금 물결과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조화를 이룬 가을 풍광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김제시는 드넓은 평야와 그곳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산물, 농경문화, 농촌의 향수 등을 축제로 승화시켰다. 1999년부터 매년 10월 초에 열리는 김제지평선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 축제다. 벽골제 일원에서 펼쳐지며 농경문화를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전통역사축제다. 자연 속 감동을 전달하면서 지역 이미지를 창출하고 농가소득 증대로 연계시켰다. 체험과 학습을 겸할 수 있는 농경문화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잡아 내외국인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벼수확, 메뚜기 잡기, 대동연날리기, 농악한마당, 쌀밥체험, 줄다리기, 소달구지 여행 등 타지역 축제와 차별화된 생생한 체험프로그램이 인기다. [먹거리] ●왕우렁이 등 이용한 친환경 재배 ‘지평선 쌀’ 김제시에서 생산되는 쌀은 연간 12만 7000t에 이른다. 벼 생육에 최적 조건을 갖춰 밥맛이 좋고 품질이 빼어난 명품 쌀이다. 지평선쌀은 전국 쌀 품평회에서 여러 차례 대상을 받는 등 국내 쌀 대표 브랜드로 명성이 자자하다. 안전하고 우수한 고품질 쌀이란 이미지를 심어줘 선호도가 높다. 단백질 함량이 낮아 구수하면서 찰지고 식감이 좋다. 지평선쌀은 생산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이력추적관리시스템에 등록, 엄격하게 품질 관리한다. 논은 1년에 한 번 토양을 검정, 시비 처방서에 따라 관리한다. 밥맛이 좋은 품종만 골라 재배하고 다른 품종 혼입을 철저히 방지한다. 수확한 뒤 15도 이하의 저온장고에 보관, 햅쌀 같은 밥맛을 유지한다. 친환경 재배를 위해 제초제 대신 왕우렁이를 이용하고 목초액으로 유기 미네랄을 공급한다. ●배·사과 섞어놓은 맛… 아시아 대표 ‘김제 파프리카’ 김제시는 아시아에서 으뜸가는 파프리카(왼쪽) 생산지다. 지역 농가들이 공동출자해 농장을 설립했다. 김제 파프리카는 전량 전자동 온실에서 생산되는 무공해 채소다. 생산량의 70%가량은 품질 검사가 까다로운 일본에 수출한다.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와 국제품질인증(ISO) 모두 획득했다. 철저한 품질 관리로 정확한 규격품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확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과피가 두껍고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배와 사과를 섞어놓은 맛이다. 하품은 전량 폐기처분하고 상품만 출하해 소비자 신뢰를 얻고 있다. 고온성 작물로 연중 낮에는 27도 밤에는 18~19도를 맞춰 줘야 해 냉난방비가 많이 들지만 오랜 노하우로 생산비를 낮췄다. ●유기질 비료로 키워 당도 높고 빛깔 선명한 ‘백구포도’ 백구면과 용지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포도(오른쪽)는 당도가 높고 향이 진하다. 이 지역은 경사 5도 안팎의 전형적인 구릉지이고 모래와 황토가 섞인 사양토로 포도 재배에 알맞다. 비옥하고 건조하지 않으며 배수성과 보비력이 우수한 토양이다. 게다가 일조량이 풍부하고 통풍이 잘돼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한 포도가 생산된다. 일제 강점기부터 포도를 재배했을 만큼 역사가 깊다. 유기질 비료를 주로 사용하고 방수처리된 봉지를 씌워 친환경적이다. 재배품종은 머루 포도로 불리는 캠벨로 당도가 높다. 농협에서 생산지를 방문해 알 솎음 상태와 알 크기, 당도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품질관리로 명성을 지킨다. 매년 8월 포도축제를 개최한다. ●밤·쌀이 섞인 듯 포근한 맛의 명품 ‘봄감자’ 광활 감자는 명품 감자로 통한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겨울을 난 뒤 3월 말에서 5월 말까지 수확하는 봄 감자다. 전국 봄 감자 생산량의 25%를 차지한다. 밤과 쌀이 섞인 듯한 포근포근한 맛이 일품이다. 씨알 굵은 광활 햇감자를 먹어본 소비자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또 구입한다. 오염되지 않은 간척지 토양은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타지산과 차별화된 맛을 낸다. 연작으로 인한 병충해도 없어 무농약 재배를 한다. 서해 바람과 넉넉한 햇볕을 받고 자란 광활 감자는 특별한 맛만큼 가격도 우대를 받는다. 많게는 타지산의 두 배를 받는다. 매년 4월이면 햇감자 축제가 열린다. ●청정 사료로 키운 육즙 많고 풍미 좋은 ‘총체보리 한우’ 총체(總體)보리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고 좋아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청정 총체보리와 볏짚으로 만든 조사료를 먹여 키우기 때문이다. 김제 축산농가들은 늦가을에 파종한 보리를 봄에 수확해 사료로 만든다. 보리가 여물기 전에 부드러운 보릿대와 열매를 함께 베어 유산균, 쌀겨, 옥수수 등을 섞어 발효시킨다. 총체보리 사료는 소의 성장과 면역력 증강, 비육에 효과가 좋다. 이 사료를 먹고 자란 한우는 잡내가 없으며 지방 빛깔이 희고 올레인산과 불포화 지방산 함량이 높아 육질이 좋고 육즙이 풍부하다. 88%가 1등급 이상 받는다. 총체보리한우 고기를 듬뿍 넣은 육회비빔밥이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김제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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