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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킹 목사 석상 앞에 모여 흑인들 “오바마, 4년 더”

    “4년 더.” “4년 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단상에 오르자 많은 흑인들이 일제히 외쳤고, 오바마는 미소 띤 얼굴로 화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등 뒤로는 흑인 인권운동의 표상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대형 석상이 우뚝 서 있었다. 16일 낮(현지시간) 워싱턴 DC의 심장부 ‘내셔널 몰’에서 열린 킹 목사 기념관 헌정식의 한 장면이다. ●재선 앞두고 흑인 유권자 결집 노려 헌정식에는 1만여명의 인파가 몰렸는데 대부분 흑인들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인 미셸 여사는 물론 두 딸 사샤, 말리아까지 동반했다. 내년 재선을 앞두고 자신이 흑인 대통령이라는 점을 흑인 사회에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였고, 흑인들은 이에 적극 호응한 셈이다. 사실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흑인 유권자 사이에는 다소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난 8월 미국 평균 실업률은 9.1%인 반면 흑인 실업률은 16.7%로 거의 2배나 높았다. 폴리티코 등 미국 언론은 “오바마가 백인 표를 의식해 흑인 문제를 외면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기류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에서도 확인된다. 2008년 대선 당시 흑인 유권자의 96%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고 5개월전에도 83%가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이 수치는 지난달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58%로 줄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흑인들에게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달 24일 흑인 의회 지도자 대회에서 “힘들다고 투덜대거나 징징대지 말고 헤쳐 나가라. 떼쓰는 것은 안 통한다.”고 뼈 있는 소리를 했다. ●다시 버스 투어… 일자리 법안 압박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17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두 번째 버스 투어에 나선다. 접전지역인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주가 목적지다. 지난달 제시했지만 상원에서 막혀 버린 4500억 달러 규모 ‘일자리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새달 6일 개막 BIFF 화제작 풍성… 최고의 궁합을 찾아라

    새달 6일 개막 BIFF 화제작 풍성… 최고의 궁합을 찾아라

    해마다 9월 말이면 영화팬들은 마음이 급해진다. 10월 초면 절로 부산으로 발길이 향한다. 아시아 최대, 최고의 영화잔치인 부산국제영화제(BIFF) 때문이다. 새달 6~14일 열리는 제16회 부산영화제는 도약을 꿈꾼다. 정들었던 남포동과는 작별이다. 4000석 규모의 야외극장과 1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4개 상영관을 갖춘 영화제 전용관 ‘영화의전당’이 완공됐다. 영화의전당, CGV·롯데시네마 센텀시티, 메가박스 해운대 등 해운대 일대의 5개 극장에서 상영된다. 영문 표기법 변화(Pusan→Busan)를 수용, 올해부터는 PIFF(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가 BIFF로 바뀌었다. ●개막작 ‘오직 그대만’ 예매 7초 만에 매진 올해에는 송일곤, 이정향, 이와이 슌지, 정지영 등 오랜 기간 팬들을 기다리게 했던 감독들의 복귀작이 눈에 띈다. 개막작의 스포트라이트는 송일곤 감독이 6년 만에 발표한 ‘오직 그대만’이 차지했다.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전직 복서와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명랑한 텔레마케터의 사랑. 스토리만 보면 최루성 멜로다. 게다가 소지섭과 한효주다. 1시간 36분을 한번의 호흡으로 찍어낸 ‘원 테이크 원 컷’ 방식의 ‘마법사들’(2005) 등 실험적인 작품을 찍어온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송일곤답게’ 뻔한 사랑 이야기를 통속적이지 않게, 특유의 절제 미학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다. 26일 예매 시작 7초 만에 매진(현장판매분 제외)됐다. 지난해 기록(18초)을 크게 경신해 송 감독의 바람대로 ‘개막작 징크스’(개막작 흥행 부진)를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폐막작인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일본 영화 ‘내 어머니의 연대기’도 1분 23초 만에 매진됐다. ‘오늘’은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집으로’(2002)의 이정향 감독이 9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약혼자를 죽인 17세 소년을 용서한 다큐멘터리 PD가 1년 후 자신의 용서가 뜻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 것을 알게 되면서 겪는 혼란과 슬픔을 통해 사형 제도와 폭력적 가부장 질서의 이면을 짚어낸다. ‘패티시’(미국) ‘일대종사’(중국) 등 해외 활동에 주력하던 송혜교가 ‘황진이’ 이후 4년 만에 한국영화에 출연했다. 1995년 ‘러브레터’로 일본영화 열풍을 몰고 온 이와이 슌지도 5년 만에 단독 작품 ‘뱀파이어’를 내놓았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하나와 앨리스’(2004)에서 열연했던 아오이 유도 함께했다. 인터넷으로 자살 희망자를 찾은 뒤 온몸의 피를 뽑아내는 살인마 사이먼. 그가 자살을 원하는 소녀와 사랑에 빠지고, 끝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또 다른 소녀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영화는 종착역을 향해 달린다. 대학교수가 부장판사를 공격한 석궁 테러사건을 극화한 ‘부러진 화살’은 정지영 감독이 ‘까’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복귀작이다. 60대 중반이지만,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 등 전성기의 문제의식을 여전히 끌어안고 있는 듯 보인다. 안성기가 교수 역을 맡았다. ●칸과 베니스 화제작, 고스란히 부산에 뤽 베송 감독의 ‘더 레이디’도 흥미롭다. 오락영화 달인인 그가 미얀마의 국민영웅 아웅산 수치의 일대기를 다뤘다. 어느새 쉰 살을 코앞에 뒀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량쯔충(楊紫瓊)이 수치 여사로 열연했다. 천커신(陳可辛) 감독은 정통 무협영화 형식에 현대적인 수사물의 긴장감을 더한 ‘무협’을 내놓았다. 전쯔단(甄子丹), 진청우(金城武), 탕웨이(湯唯) 등 화려한 캐스팅이 기대치를 끌어올린다. 올해 세계 3대 영화제(베니스·칸·베를린)에서 주목받은 거장들의 신작도 국내 첫 선을 보인다.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파우스트’(베니스·황금사자상),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칸·여우주연상),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타는 소년’(칸·심사위원대상), 테렌스 멜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칸·황금종려상), 울리히 쾰러의 ‘수면병’(베를린·감독상), 빔 벤더스의 ‘피나 3D’(베를린·경쟁부문),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칸·주목할 만한 시선), 난니 모레티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칸·경쟁부문) 등이 눈에 띈다. 셀프 다큐멘터리 ‘아리랑’으로 칸과 충무로를 뒤집어 놓았던 김기덕 감독이 뚝딱 찍어낸 로드무비 ‘아멘’과 배우와 감독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혜선의 ‘복숭아나무’, 3차원(3D)으로 돌아온 봉준호의 ‘괴물’도 예약전쟁을 일으킬 만한 유력 후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연금해제’ 아웅산 수치, 정치 행보 본격화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68) 여사가 지난해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이후 처음으로 공식 정치 행보에 나선다.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니얀 윈 대변인은 오는 14일 수치 여사가 수도 양곤에서 북쪽으로 80㎞쯤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하고 청년포럼 회원들과 만날 예정이라고 7일 밝혔다. 니얀 대변인은 이번 방문이 ‘정치적’이긴 하지만 “14일 오전 6시 출발해 당일 저녁에 돌아온다.”며 양곤을 벗어난 외출이 단 하루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치 여사는 이번 지방 방문 뒤 다시 양곤 밖으로 여행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6월 미얀마 당국은 7년간 가택연금이 해제된 수치 여사에게 모든 정치활동을 중단하라면서 정치 목적의 지방시찰이 혼란과 폭동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김정은 ‘타임 100인’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이하 타임 100인)에 포함됐다. 타임은 21일 ‘타임 100인’을 발표하면서 김정은에 대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난하고 핵을 보유한 국가의 절대적 통치자로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 ‘타임 100인’에 선정된 바 있다. 한류 스타 가수 비는 2006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타임 100인’에 꼽혔다. 온라인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던 비에 대해 타임은 “한국의 팝 스타에서 영화배우로 변신했다.”면서 그가 온라인 투표에서 인상적인 영향력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미국의 공교육 개혁을 주창해 주목을 받았던 한국계 미셸 리 전 워싱턴 DC 교육감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해 선정됐던 ‘피겨 여왕’ 김연아는 올해 빠졌다. 이집트 시민 봉기의 영웅인 구글의 중동·아프리카 담당 임원 와엘 고님(30)은 ‘타임 100인’ 명단의 첫 번째로 이름이 올랐다. 무아마르 카디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은 ‘떠버리’라는 소개와 함께 목록에 포함됐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넷플릭스 최고경영자 리드 해스팅스,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창설자 줄리언 어산지도 100인에 포함됐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 중국의 반체제 인사이자 설치 미술가 아이웨이웨이, 오는 29일 ‘세기의 결혼식’을 거행하는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커플, 엄격한 교육 방식을 소개해 논란을 일으킨 책 ‘타이거 맘’의 저자 에이미 추도 명단에 들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세계를 뒤흔드는 여성 150명’ 중 유일한 한국인 김필주씨

    제100차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가 7일(현지시간) 여권 신장에 이바지하거나 각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세계를 뒤흔드는 여성 150명’을 선정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김필주 애글로브 서비스 인터내셔널 대표가 북한으로 국적이 잘못 표기된 상태로 선정됐다. 애글로브 서비스는 북한에 농업기술을 전수하고 인도적 식량지원을 하는 국제 시민단체이다. 최근 중동을 휩쓸고 있는 민주화열기를 반영한 듯 중동과 북아프리카 출신 여성들이 많이 포함됐다. 지난달 이집트 혁명에 참가했던 80세 여성 작가 나왈 엘사다위와 20대 블로거 살마 사이드, 200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이란 민주화 운동가 시린 에바디 등이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정치계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여성 정치인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낸시 펠로시 전 미 하원의장,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등이 선정됐다. 지난 1월 괴한의 총격으로 중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회복중인 게브리엘 기퍼즈 의원과 미얀마 민주화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도 있었다. 대중에게 친숙한 얼굴들도 있다.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와 메릴 스트리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41세의 나이로 은메달 3개를 따낸 아줌마 수영선수 다라 토레스 등도 공적을 인정받았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1위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각각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남성과 여성으로 꼽혔다. 일간 유에스에이(USA) 투데이는 갤럽과 함께 미국 성인 남녀 1019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27일(현지시간) 공개하고 “11월 중간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의 자리를 위협할 뚜렷한 경쟁자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2%의 지지율을 얻어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5%의 지지를 얻어 2위에 올랐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 3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4위에 올랐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9년 연속 가장 존경받는 여성으로 꼽혔다.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2위에 올랐고,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미셸 오바마 여사,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뒤를 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영화배우 앤절리나 졸리,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미얀마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 등도 이름을 올렸다. 응답자의 25%가량은 존경하는 인물이 없다고 답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美 막판 압박에도 中 방해작전 계속

    美 막판 압박에도 中 방해작전 계속

    미국 하원 의회가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이틀 앞둔 8일(현지시각)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에 나섰다. 결의안에는 중국 민주화를 요구한 류샤오보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고 중국 정부에 류샤오보의 석방과 그의 부인 류샤(劉霞)의 가택연금 해제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 중국 정부가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퍼지지 못하도록 언론 매체와 인터넷을 검열하고 있는 행위를 중단하고 류샤오보 비방 운동도 멈추라고 촉구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7일 이 결의안을 지지하는 연설에서 “중국 정부는 류샤오보를 즉각적이고 조건 없이 풀어줘야 한다.”며 압박했다. 민주·공화 양당 하원 지도자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공화당의 프랭크 울프 의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은 감옥에 수감된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시상식 참석을 막음으로써 나치 독일과 구소련, 미얀마 군정과 같은 대열에 선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같은 당 일리나 로스-레티넨 의원은 나치 독일이 1935년에 카를 폰 오시츠키의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석을 막았고, 구소련은 1975년 안드레이 사하로프를, 미얀마 군정은 1991년 아웅산 수치 여사를 시상식에 못 가게 막았다며 울프 의원을 거들었다. 결의안을 작성한 공화당의 크라이스 스미스 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1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면 중국 내 정치·종교적 자유 확대를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짐 맥거번 의원도 “류샤오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화려한 메달이나 상금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와 열망을 지지하는 미국의 지속적인 의지”라고 말했다. 한편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은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에서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며 미국과 중국의 대화에서 인권은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생명의 窓] 세계 평화와 내면적 비무장/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생명의 窓] 세계 평화와 내면적 비무장/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지난달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리던 시기 일본 히로시마에서는 ‘제11회 세계 노벨평화상 수상자 세계 정상 회의’가 있었다. 1990년 평화상 수상자였던 옛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발의해 매년 한 번씩 세계 여러 곳을 돌며 개최되는 이 모임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평화를 사랑하는 단체 및 개인이 참가해 세계 평화를 증진시키는 일을 위해 지혜를 모은다. 올해에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65주년을 맞아 히로시마에서 ‘히로시마의 유산-핵무기가 없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고르바초프는 건강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고, 2009년 수상자인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G20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같이하지 못했다. 올 수상자 중국의 류사오보와 1991년 수상자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는 자유롭지 못한 몸이라 대리인을 보내 인사말을 전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1989), 북아일랜드 평화운동가 메이리드 맥과이어(1976), 넬슨 만델라와 함께 남아프리카 인종 차별 정책을 종식하는 데 공헌한 전 남아프리카 대통령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1993), 지뢰금지국제운동(ICBL)을 이끈 미국인 조디 윌리엄스(1997), 이란의 인권운동 지도자 시린 에바디(2003), 국제원자력기구의 이집트인 사무총장 모하메드 엘바라데이(2005), 기타 국경 없는 의사회, 노동운동이나 사회봉사로 수상한 단체의 대표 등이 참석했다. 1945년 8월 6일 인구 30만명이던 히로시마에서는 원폭투하로 14만명이 죽었다. 필자의 부모님도 2차 대전 당시 일본 도쿄에 살고 계셨는데, 폭격이 너무 심해 친척이 살고 있던 히로시마로 갈까 하다가 결국 한국행으로 결정하셨다고 한다. 그때 만약 히로시마로 결정이 났다면 필자도 이렇게 살아서 아내와 함께 히로시마를 방문할 수 있었겠나 생각하니 이번 히로시마 방문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이 세상이 핵무기가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세상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제안이 나왔다. ‘가난이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므로 가난을 퇴치해야 한다. 이제 국가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개별 도시 간의 공조, 젊은이들 간의 우의를 통한 협력으로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 이제 무력이나 군사력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생명, 평화, 문화, 교역 등 소프트웨어가 힘임을 자각해야 한다.’ 등이었다. 달라이 라마의 발언이 의미 있게 들렸다. 그는 20세기를 세계 인구 2억명을 희생하면서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 ‘유혈’의 세기로 규정하고, 이제 21세기를 ‘대화’의 세기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전쟁이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계라는 이상을 실현하려는 방법으로 ‘외적 비무장’과 ‘내적 비무장’을 들 수 있지만, 결국 궁극적 해결은 내적인 비무장에 있다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와 가슴을 가리켰다. 세계 평화는 우리 속에 있는 욕심과 미움과 어리석음을 없앨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권력이나 물질에 대한 욕심을 기본으로 하는 ‘물질적 견해’에 지배되면 사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총체적 견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물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으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고 서로 의존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과 저것, 너와 나,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어울려 있는 존재이기에 세상이 잘못되면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집단만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원수를 파멸하는 것이 곧 나를 파멸하는 것”이기도 한데 왜 싸우겠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그의 이런 안목이 불교적 세계관에 따라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불교인뿐 아니라 종교인이라면, 아니 인류의 장래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 아니겠는가? 히로시마에서 배운 교훈을 곱씹어 본다.
  • [씨줄날줄]더 레이디(The Lady)/육철수 논설위원

    미얀마(버마) 민주화운동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65) 여사는 눈 밑에 늘어난 주름을 빼고는 예나 지금이나 외모에 큰 변화가 없다. 옅은 색 루주 외에 화장끼라곤 거의 없는 얼굴, 블라우스 차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특히 깃이 없는 버마식 블라우스를 즐겨 입는다. 대학시절엔 블라우스의 다림질이 제대로 안 돼 있으면 외출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 유학 중엔 고국에 돌아오면 항상 새 블라우스를 맞췄는데, 바느질이 조금이라도 고르지 않으면 다시 만들라고 할 정도였다(미카미 요시카즈 저서 ‘아웅산 수치’). 1990년 총선 유세 때도 그의 깐깐하고 빈틈 없는 성격은 드러났다. 아무리 바빠도 치자꽃·재스민꽃 모양의 머리핀을 꽂는 위치가 정위치에서 1㎜라도 벗어나면 안 되었다. 블라우스도 매일 다른 색깔·무늬를 준비해 다녔다. 이런 깔끔한 성격은 품격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으나 반대세력에겐 외고집, 자의식 과잉, 비타협적이라는 편견을 낳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웅산(버마 건국의 아버지) 장군의 딸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문학을 좋아하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갈 것 같던 그에게도 장군의 피가 흐르고 있음은 피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1972년 영국인 학자 마이클 앨리스(1999년 사망)와 결혼하면서 “나와 조국 사이를 가로막지 말고, 버마인들에 대한 나의 기본적 의무 실행을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말해 남편에게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결국 1988년 어머니의 병을 간호하러 버마에 들렀다가 군사정권의 폭정에 맞서 22년째 민주화운동의 역정을 걸어왔다. 이런 수치 여사에게 민주화를 열망하는 버마인들은 여러 애칭을 붙여주었다. ‘작은 딸’(Little Daughter), ‘수 아주머니’(Aunty Sue), 그리고 최근엔 ‘귀부인’(The Lady)이란 고유명사가 하나 더 늘었다. ‘더 레이디’가 지난 13일, 7년 만에 가택연금에서 풀려났다. 민주화운동 투신 이후 3차례, 15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면서 그의 의지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식지 않은 사랑을 보여주는 버마 국민이 그에겐 단단한 버팀목이다. 수치 여사는 대학시절 자신의 이름을 ‘희귀한 승리의 찬란한 집합’(A Bright Collection of Strange Victories)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아웅(Aung)은 승리, 산(San)은 희귀·대단하다는 뜻이며, 수(Sue)는 집합·포용, 치(Kyi)는 빛난다는 의미여서다. 이름에 걸맞게 그가 버마와 그 나라 국민에게 민주주의의 빛나는 승리를 꼭 안겨주길 기원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미얀마 수치 가택연금 해제 이후] “민중의 분노 정점… 향후5년 민주화 고비”

    [미얀마 수치 가택연금 해제 이후] “민중의 분노 정점… 향후5년 민주화 고비”

    “민주주의는 군부를 향한 민중의 분노가 탄압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설 때 돌아옵니다. 수치 여사의 귀환으로 그때가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65)의 석방 소식이 들려온 지난 13일 미얀마 출신 내툰나잉(41)은 경기도 부천의 사무실에서 맘껏 울었다.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장을 맡고 있는 그에게 이보다 좋은 ‘희망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1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수치 여사의 석방으로 버마 민주화세력이 다시 구심점을 얻었다.”면서 “수치 여사가 칠순을 맞기 전인 앞으로 5년이 버마 민주화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수치에게 ‘여사’라는 호칭을 붙였고, 미얀마보다 ‘버마’라는 옛 국명을 자주 썼다. 내툰나잉은 “수치 여사가 얼어붙은 정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안다.”면서 “그러나 그런 관측은 버마 내 그의 절대적 입지를 이해하지 못해 비롯된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얀마 민주화의 캐스팅보트는 100여개 소수민족이 쥐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슬 퍼런 군부에 맞서려면 민족을 뛰어넘어 폭넓은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지도자는 수치뿐이라고 했다. ●수치 첫 행보는 정치보다 민심 그는 수치가 14일 대중연설에서 ‘소통’을 첫 화두로 던진 데 대해 “의미심장하다.”고 평가했다. 부정선거 의혹 조사 등 쟁점을 중심으로 정치적 행보를 넓혀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세부적인 현안은 모두 실무자에 맡긴 채 ‘시민 끌어안기’ 주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국내 소식통 가운데 군부세력의 3분의 2가 이미 수치 여사를 지지하기로 마음을 돌렸다고 얘기도 나오고 있다.”면서 “분열된 힘을 잘 엮을 수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얀마 경제상황의 악화로 민심 이탈이 심화하고 있는 것도 민주화세력에게는 큰 기회다. 하루 두 끼 식사를 챙겨 먹으면 살림살이가 나은 편이고 서민 대부분은 한 끼로 허기를 간신히 달래는 수준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군정의 무능에 서방국가의 경제 제재가 겹쳐 생긴 참혹한 결과다. 그는 “처벌이 무서워 말을 하고 있지 못할 뿐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은 국민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치가 미얀마 국민에게 신뢰를 잃지 않는 이유로 ‘나라를 위한 진정성’을 꼽았다. 1999년 남편인 영국인 마이클 아리스가 임종 직전 수치와의 만남을 원했으나 재입국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 미얀마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 ●미얀마 국민 하루 한끼로 달래 그는 “대통령이 직접 수치의 석방을 환영한다고 밝힌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와 달리 미얀마에 대기업이 다수 진출해있는 한국은 외교통상부 명의의 짧은 논평을 발표하는 데 그쳤다.”고 서운함을 드러낸 뒤 “군부독재를 벗어나 선진국 문턱에 다가선 ‘선배국가’로서 버마 국민에게 큰 영감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학졸업 직후인 1994년 정치탄압을 피하기 위해 미얀마를 떠났던 그는 16년을 한국땅에서 살고 있다. 주물 공장 등을 돌며 월 100만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아가면서도 한국 내 미얀마인들끼리 매월 100여만원을 모아 미얀마 민주화인사들에게 보내왔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인들은 200명가량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국제사회 일제히 환영… “나머지 정치범도 석방을”

    아웅산 수치 여사가 13일 7년 만에 석방되자 국제사회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제18차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일본에서 석방 소식을 듣고 수치 여사를 ‘나의 영웅’이라고 표현하며 “미국은 그의 뒤늦은 석방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미얀마 군사정권이 수감 중인 모든 정치범을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치 여사의 남편 고(故) 마이클 아리스 교수의 고향인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수치 여사의 석방은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어야 할 일”이라며 축하의 뜻을 전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성명을 내고 “(석방 뒤) 수치 여사에게 다른 방식의 제한을 가하면 그녀의 기본권이 다시 침해당하게 된다.”면서 “프랑스는 수치 여사의 향후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수치 여사의 석방을 환영하면서 미얀마 군사정권이 나머지 정치범들도 모두 석방해야 한다고 밝혔고 수린 피추완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사무총장은 “그녀의 석방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 “다시 억류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14일 외교통상부 성명에서 “한국 정부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미얀마 정부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즉각적인 논평을 내지 않았다. 다만 관영 신화통신은 수치 여사를 ‘저명한 정치인’이라고 표현하며 석방 소식을 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7년만의 외출’ 아웅산 수치 가택연금 해제

    ‘7년만의 외출’ 아웅산 수치 가택연금 해제

    미얀마 민주화투쟁의 상징 아웅산 수치(65) 여사가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2003년 5월 세 번째로 가택연금을 당한 지 7년여 만이다. 그는 “이제 침묵해서는 안 될 때”라며 적극적인 행보를 선언했다. 그러나 군사정부의 철권통치가 여전한 미얀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수치 여사는 14일 오후 자신이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 양곤 당사를 방문해 에워싼 수천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첫 연설을 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라면서 “국민이 정부를 감독할 때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모든 민주주의 세력과 함께 일하고 싶다.”면서 “우선 국민의 목소리를 들은 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치 여사는 “나를 구금한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은 없다.”면서 “정부 보안관계자들이 나를 잘 대해 줬고, 그런 만큼 그들이 국민들도 잘 대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구금돼 있는 동안 하루 6시간씩 언론 보도에 귀 기울여 왔다.”고도 했다. 앞서 미얀마 군정은 13일 수치 여사에게 석방 사실을 알렸다. 수치 여사의 석방을 기다리며 옛 수도 양곤으로 오전부터 몰려든 지지자들은 땅거미가 깔린 오후 6시쯤 자택 주변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이 철거되자 환호성을 질렀다. 전통 의상을 입고 자택 밖으로 나온 수치 여사는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국민 모두가 화합해야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입을 뗐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그를 군정이 순순히 풀어준 데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권탄압 등 정치적 이유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사회의 경제제재를 받는 미얀마 정부가 ‘20년 만의 총선 실시’와 ‘수치 여사 석방’이라는 두 장의 카드로 고립무원의 상황을 벗어나고자 한다는 분석이다. 뉴욕 ‘휴먼라이츠 워치’의 아시아 담당 부국장 엘레인 피어슨은 “불법선거로 지탄받고 있는 군사정부가 국제사회의 이목을 돌리려고 (수치 여사 석방이라는) 잔꾀를 부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치 여사가 차갑게 식어 버린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전문가 벤저민 자와키는 “군부가 2002년 수치를 석방할 때도 이번처럼 조건없이 풀어 줬으나 1년 만에 수치를 다시 가택연금했다.”면서 65세 민주화투사의 활동폭이 그다지 넓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비타협 노선이 미얀마 정계의 교착상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군부 지원을 받는 여당이 의회를 지배한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 등 실질적 사회 변화를 이끌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국민의 절대적 신망을 받는 수치 여사가 부정선거 논란을 계기로 분열된 야권을 끌어모으면 엄청난 정치적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14일 NLD 당사에서 수치의 연설을 들은 한 지지자는 “미얀마 국민을 폭압적 군사정권에서 자유롭게 해줄 사람은 아웅산 수치뿐”이라며 그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나타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아웅산 수치 출마봉쇄…미얀마 ‘껍데기 총선’

    미얀마가 7일 20년 만에 첫 총선거를 실시했다. 48년간 군사정권이 집권해 온 미얀마에서 치러진 민간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이다. 미얀마 총선은 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64)가 이끄는 최대 야당인 국민민주연맹(NLD)이 승리했는데도 군사정권이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던 지난 1990년 선거 이후 처음이다. 미얀마 유권자 2900만여명은 보안군이 주요 거리를 순찰하는 등 엄중 경계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전국 4만여개 투표소를 찾았다. 총선에는 정당 등록을 마친 37개 정당이 참여했다. 정부는 소수 민족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동부와 북부 국경지대 등 6개 주 310여개 마을 주민 150만여명의 투표권 행사를 배제시켰다. 미얀마는 선거에서 상·하 양원과 지방의회 의원들을 선출한 뒤 90일 이후에 새 정부를 수립, 국명을 ‘미얀마연방’에서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바꿀 방침이다. 그러나 총선은 민주주의를 도입했다는 ‘거짓 이미지’를 심기 위한 군사정권의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CNN 등 서방 언론들은 “총선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꼬집었다. 호주를 방문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미얀마 총선에서 군사정권이 부정을 저질렀다.”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수치 등 야권 유력인사들이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데다 야당 세력이 분열돼 군정의 지지를 받고 있는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압승할 것이 유력하다. 군사정권은 지난 3월 수치 여사의 출마를 경계해 전과자들은 선거에 입후보할 수 없도록 규정한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게다가 안정적인 의석 확보를 노려 상·하원의 25%씩을 군 지도부가 지명할 수 있게 했다. 수치 여사가 주도하는 NLD는 이 같은 ‘변칙’ 선거법에 반발해 선거 불참을 선언했고 정당 등록조차 거부해 지난 5월 이후 정당의 법적 지위를 상실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군사정권 최고 지도자인 탄 슈웨(77)가 총선 이후 의회가 선출하는 미얀마연방공화국의 첫 대통령으로 재집권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 투 와이 총재는 “USDP와 정부 당국이 유권자들을 위협하고 돈을 살포하는 등의 부정행위를 벌이고 있다.”면서 “통합선거위원회에 선거 부정 행위를 비판하는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1989년 이래 15번째 가택연금 중인 수치 는 오는 13일 풀려날 예정이다. 군부 정권은 수치의 출마를 막기 위해 연금해제 시점을 총선 이후로 잡았다. 1990년 총선에서 NLD는 485석 가운데 392석을 차지, 압승을 거뒀으나 군사정권은 정권 이양을 거부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대통령이 너만 보더라”…강용석 의원 성희롱 발언 파문

    “대통령이 너만 보더라”…강용석 의원 성희롱 발언 파문

     한나라당 강용석(마포을) 의원이 대학생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여성비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까지 거론해 가며 성희롱 수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20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강 의원은 지난 16일 오후 7시쯤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 인근 고깃집에서 서울 소재 모 대학 학생 20여명과 식사를 했다. 15~16일 이틀간 열린 제2회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석한 대학생들과 심사위원을 맡은 국회의원들과의 대화를 위해 마련된 ‘뒷풀이 자리’였다.  이 신문은 당시 동석한 한 대학생의 말을 빌려 강 의원이 “사실 심사위원들은 (토론)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 “토론할 때 패널을 구성하는 방법을 조언해주겠다.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이뤄진 구성이 최고다. 그래야 시선이 집중된다.”는 등 성차별적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이날 동석한 학생의 절반가량은 여학생이었다.  그는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한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어 특정 사립대학을 지칭하며 “OO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또 지난해 함께 청와대를 방문한 한 여학생을 향해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라며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동석한 한 학생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특정 직업인(아나운서)이 성접대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들렸다.”면서 “제3자인 나도 불쾌했는데 그 말을 직접 들은 여학생은 오죽했겠느냐.”고 말했다.  강 의원은 이 같은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며 강력히 부인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강 의원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참석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만한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면서 “전현희(여·민주당) 의원이 불과 10분 차이로 그 자리에 도착했다. 전 의원이 알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성희롱 논란이 있었던 학생과) 직접 통화해 해당 발언을 들은 적이 없다고 확인했다.”며 “해당 학생의 부인에도 어떻게 기사가 이렇게 나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문제가 된 ‘아나운서 발언’과 관련, “한 학생이 아나운서와 기자 중 어느 것을 하는 쪽이 더 맞는지 고민이 된다고 물었고, 아나운서보다는 기자가 더 낫지 않겠느냐고 개인적인 의견을 밝혔을 뿐 이 과정에서 성적비하 발언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정치생명을 걸고 사실을 끝까지 밝힐 것”이라며 해당 기사를 낸 중앙일보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담당기자 개인과 사회부장에 대한 민형사상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전 의원은 “다른 사람들보다 1시간 정도 늦게 자리에 참석했다.”며 강 의원의 해명과 다른 말을 했다. 그는 “술을 마시는 자리는 아니었고 주로 격려하고 덕담하는 자리였다.”면서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아무 일도 없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전 의원은 또 “그 시간 내가 자리에 없어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겠다.”며 “그렇게 심한 성희롱 발언이 오갔으면 학생들 중 한 명은 나에게 이야기 했을 법도한데 아무 말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나라당은 오늘 강 의원의 여성비하 논란과 관련, 당 윤리위를 통한 긴급 진상조사와 함께 엄정한 대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해진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안상수 원내대표는 강 의원 발언과 관련해 당 윤리위원회에 지시해 즉각 회의를 소집, 내용의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사실로 확인될 경우 출당을 포함해 단호하고 엄중한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조 대변인은 “안 대표가 출근하자마자 김무성 원내대표 등 지도부간 의견교환을 거쳤다.”며 “당이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데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벌어진 것을 개탄하면서 윤리위 소집 및 진상조사 등을 강력히 지시했다.”고 말했다.  당 윤리위는 안 대표의 지시에 따라 빠르면 오늘 중 회의를 소집해 자체 조사에 착수키로 했으며 강 의원의 발언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출당을 포함, 단호한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출당조치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권유보다 높은 최고수준의 중징계이다. 국회의원의 출당 조치는 윤리위 과반출석,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거친 뒤 의원총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으면 최종 확정된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공연 프리뷰]그대, 아직도 근대를 꿈꾸는가

    [공연 프리뷰]그대, 아직도 근대를 꿈꾸는가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TV광고가 있다. 한 꼬마가 조국 ‘Korea’를 설명하려 하지만, 아무도 못 알아봐서 실망한다는 내용이다. 국가브랜드위원회가 나랏돈 들여 하는 광고인데, 미안하지만 ‘촌빨 작렬’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이 해외-TV광고에서 보듯, 그 해외는 또 백인이어야 한다-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강박관념이 물씬 풍겨서다. 이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 주류가 ‘근대에 대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진화’ 구호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국연극연출가협회가 ‘한국연극 100년 재발견’을 주제로 동농 이해조(1869~1927) 선생의 1910년작 ‘자유종(自由鐘)’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이런 면에서 주목된다.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과 원작을 나란히 선보이는 시도도 이채롭다. 우선 ‘2010 자유종’(박재완 연출)은 3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바통을 이어 ‘1910 자유종’(박정희 연출)이 다음달 7일부터 11일까지 같은 무대에 오른다. 엄밀히 따져 한국연극 100주년은 2008년이다. 1908년 종로 원각사에서 이인직(1862~1919) 선생의 ‘신세계’가 공연된 게 시발점이다. 그럼에도 협회 차원에서 이해조 선생의 작품을 선택한 것은 이해조 재평가와 연관 있어 보인다. 이인직은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로 유명하지만, 이완용의 비서를 지낸 친일파였다. 최근 학계에서도 이해조의 문학성이 더 높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협회 측은 이런 해석을 부담스러워한다. “원래 2009년에 100주년 기념사업을 시작하려 했으나 이해조 선생의 자유종 출간 100주년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친일 논란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이다. ‘1910 자유종’은 양반가 이매경 여사가 생일파티에 모인 신설헌, 홍국란, 강금운 등 다른 여성들과 함께 민족자주와 발전방향을 토론하는 내용이다. 지금 보면 구태의연한 계몽운동 같지만, 국운이 저물고 있다는 긴장감이 팽배했던 당시로서는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는 울분이 넘친다.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게 연출한다는 의도다. ‘2010 자유종’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근대에 대한 욕망에 접근한다. “우리는 여전히 선진강대국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 것에 대한 자만심과 수치심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연출의 변이 이를 상징한다. 자본가의 장난감인 미술관 개관 기념식으로 무대를 옮기고 유학파 출신 큐레이터, 미스코리아 출신 사모님 등으로 등장인물을 재구성했다. 근대연극사를 되짚는 작업인 만큼 학술포럼도 함께 열린다. 다음달 5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다. 최원식 인하대 국문과 교수, 홍을표 이해조 선생기념사업회장, 김석만 서울시극단장 등이 이해조 문학의 의미와 현대화 가능성을 짚어 본다. 내년에는 최초의 신연극극단 ‘혁신단’ 창단 100주년을 맞아 단장 이성구를 조명할 예정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연극은 일정한 극본이 있다기보다 큰 줄거리만 유지한 채 즉흥적인 대사로 채워졌다. 2012년에는 처음으로 희곡 형태를 갖춰 집필된 일재 조중환의 ‘희극 병자삼인’ 100주년을 기념할 계획이다. 이 작품은 1912년 11월부터 매일신보에 연재됐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내 이름은 야 인마… 툭하면 맞아도 꿈☆ 포기 못해”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내 이름은 야 인마… 툭하면 맞아도 꿈☆ 포기 못해”

    미얀마에서 온 마웅저(41)가 한국에서 얻은 첫 직장은 인천의 한 도색 공장.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50만원을 받았다. 한국인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야 인마.” 이게 공장에서 마웅저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결코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함께 일했던 미얀마 친구는 걸핏하면 사장에게 얻어맞았다. 7개월을 일했는데, 월급은 5개월치밖에 못 받았다. 이듬해 경기 부천의 구두 형틀 만드는 공장으로 옮겼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한번은 TV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료가 채널을 돌렸다. “너 같은 건 우리나라 여자 쳐다볼 자격이 없어.” ●힘겨운 난민의 삶 2000년에는 정식으로 난민 신청을 했다. 법무부로부터 신문과 비슷한 인터뷰를 받았지만, 돌아온 것은 ‘불허한다’는 통지. 그것도 신청한 지 5년이 지나서였다. 법원은 다행히 마웅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법무부는 계속 상소를 하며 ‘발목’을 잡았다. 결국 2008년 대법원에서 승소하면서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하늘의 별을 땄다.” 난민으로 인정된 직후 어떤 기분이 들었느냐고 묻자 마웅저는 이렇게 말했다.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줌머족’ 로넨(42)의 삶도 ‘코리안 드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택시를 탔다. 외국인인 걸 눈치챈 기사. “어디 가냐?” “5000원이다. 내놔.” 서른을 훌쩍 넘긴 로넨이었지만, 초등학생 대하듯 했다. 난민 인정에 인색한 정부 탓에 처음 몇 년간은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공장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지리아 선교사 빅토르(가명·46)는 우리나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입국과 동시에 난민신청을 했지만 불허됐고, 1심 재판에서도 졌기 때문이다. 위협을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이나 무슬림으로 추정되지만 입증할 방법이 없다. 8월 2심 재판이 열리지만, 결과가 바뀐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내 이름은 (나이지리아) TV에도 많이 나왔기 때문에 돌아가면 바로 들킨다. 한국 정부는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미얀마 출신 코와인(42)은 원래 변호사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장 행을 면할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일을 해서는 안 됐다. 난민 신청 기간 중에는 취업이 금지돼 있기 때문. 하지만 난민 신청을 한 지 4년이 지나도록 결과를 받지 못했다. “I need too much money for living expenses, so should I work.(생활비 때문에 일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코와인이 눈물을 흘리며 털어놓은 하소연이었다. ●‘꿈’을 안고 대한민국으로 왔지만 1988년 8월8일. 세계사에 ‘8888 버마민중항쟁’으로 기록된 날이다. 수도 양곤의 고등학생이었던 마웅저. ‘군부 독재 정권 물러나라’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대학생 형, 스님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목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쳤다. 항쟁은 서슬 퍼런 군부의 총부리에 밀려 실패했지만, 마웅저의 투쟁은 계속됐다. ‘버마전국학생연합(ABSFU)’에 가입해 ‘지하운동’을 했다. 탄압이 시작됐다. 생사를 함께하기로 결의했던 동료들은 하나 둘 경찰에 잡혀갔다. 이름을 바꾼 채 공사판을 전전해야 했다. 어머니와 다름없던 누나가 마웅저를 부른 것은 1992년. “망명해라.” “여권도 비자도 없는데….” “브로커를 쓰자. 돈은 내가 댈게.” 누나는 푼푼이 모았던 21만차트(Kyat·미얀마 화폐단위)를 내놓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350만원쯤 된다. 큰돈이다. 마웅저는 대한민국을 골랐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8888항쟁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마음이 끌렸다. 2년 뒤 마웅저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이 미얀마 민주화를 도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줌머족’ 로넨은 ‘인종 청소’를 하는 정부에 맞서 무장단체에서 활동했다. 산악지대인 치타공에서 종족의 생존을 걸고 싸우다 체포됐다.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마을로 돌아왔지만, 탄압은 더 심해졌다. 마을에는 1㎞마다 하나씩 검문소가 들어섰다. 대원들은 지나가던 사람들을 ‘심심하면’ 때렸다. 1999년에는 대규모 약탈과 방화가 있었고, 여성들이 집단으로 성폭행당하기도 했다. 로넨은 이듬해 고향을 떠났다. 한 살배기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한국으로 왔다. 한국인이 같은 몽골계고, 불교신자가 많다는 점에 끌렸다. 경제·사회적으로 발전한 중견국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전사(戰士)’가 아닌 ‘시민(市民)’으로 살 수 있다는 꿈이 가슴을 매웠다. 빅토르는 나이지리아 ‘오순절협회(PEN)라는 곳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강연에 나가 나이지리아의 부패한 경찰을 강하게 비난했다. 낯선 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하고 있는 일 그만둬라.” “누구냐?”고 물으면 끊었다. 험악한 인상을 한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가족을 위협했다. 운전기사가 괴한에게 폭행당하고 차를 빼앗기기도 했다. 그는 2005년 한국에 왔다. 처음에는 미국을 생각했지만, 총이 없는 한국을 선택했다. 기독교도가 많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가족들도 불러 ‘제2의 삶’을 꾸릴 계획이었다. ●여전히 꿈 키우는 난민들 그러나 난민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먹고살려는 게 아닌 신념과 양심, 존엄을 지키기 위해 온 것인 만큼, 다양한 활동을 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 마웅저는 1998년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끌고 있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를 만들었다. 미얀마 대사관 앞으로 가 시위를 하고, 틈 날 때마다 길거리로 나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미얀마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2004년부터는 우리나라 시민단체에서 활동했고, 다음달에는 자신이 직접 단체를 만들 예정이다. 단체명은 ‘버마민주화를 돕는 단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한국인 동료 100여명이 함께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코와인은 2003년 인천에 작은 미얀마 불교 사찰을 세웠고, NLD 회원들과 민주화운동에 쓸 자금을 모으고 있다. 국내 이주노동자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주 화요일에는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주한미얀마 소수민족 연합회’ 회장이기도 하다. 한때 대사관이 그를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다는 트집을 잡아 검찰에 고발했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카카나(27·여)는 얼마 전부터 일요일에는 출근하지 않는다. 공장에서 나오라고 해도 “절대 안 된다.”며 버틴다. 일요일만큼은 ‘재한줌머인연대’ 사무실에 나가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말을 어느 정도 익히면 미용기술을 배울 계획이다. 빅토르는 한남동의 한 교회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강제 송환을 당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할 것이다. 동생이 정치 운동을 하는 바람에 연좌제에 걸려 2005년 한국에 온 쇼네(가명·40·토고)는 8월 둘째를 낳는다. 병원비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최근 난민에게도 의료 혜택을 확대하는 정책을 발표해 시름을 놓았다. 새로 태어날 아이는 한국을 보고 느끼며 자랄 것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1) ‘국제인권의 잣대’ 난민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 (1) ‘국제인권의 잣대’ 난민

    ‘다문화 사회’가 유행어처럼 번지지만 다문화인이 꿈꾸는 대한민국은 아득해 보인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다문화 사회를 설계하기 때문이다. 실천 없는 구호처럼 다문화 정책이 헛도는 이유다. 서울신문은 다문화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싣는다. 1회는 ‘국제인권의 잣대’ 난민이다. 국제사회가 다문화 사회에 주목한 것은 전 세계가 난민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도 한국 전쟁으로 유민 사태를 겪었다.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김대중 전 대통령….’ 그들도 한때 난민이었다.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박해를 당해 조국을 탈출해 낯선 땅으로 망명했다. 자유를 향해 떠나온 순례자를 낯선 땅은 따뜻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일부는 ‘제2의 조국’에 공헌하며 여생을 보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우리나라에도, 희망을 품고 찾아온 난민들이 있다. 20일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난민 신청을 하거나 인정을 받은 마웅저(미얀마) 로넨(방글라데시) 빅토르(가명·나이지리아) 카카나(방글라데시) 코와인(미얀마) 쇼네(가명·토고) 등 6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일부는 안전상 이유로 가명을 요청했다. →조국을 왜 떠났나. 전사(戰士)가 아니라 시민(市民)으로 살고 싶었다. ‘인종 청소’를 하는 방글라데시 정부에 맞서 생존을 위해 피 흘리며 싸웠다. 약탈과 방화, 성폭행이 일상인 나라에서 한 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왜 한국을 선택했나. 민주주의를 이뤄낸 나라가 아닌가. 군부 독재를 시민이 무너뜨렸고,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8888 버마민중항쟁’과 비슷해 민주화 과정을 배우고 싶었다. 경제·사회적으로 발전한 국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라는 믿음도 있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라면 국제인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민이 됐나.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걸 우리는 “하늘의 별을 딴다.”고 부른다. 대한민국의 난민 인정률은 8.7%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유엔 난민협약 가입국 가운데 최하위다. 법무부에서 불인정 처분을 받고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이 승소 판결했는데 법무부가 대법원까지 상소했다. 8년 만에 별을 땄다. →심사가 까다로운가. 무성의하고 무관심하다. 전문 통역인도 없고 난민 국가의 상황도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의 불법 체류를 단속하는 법무부 직원들이 면담을 하니까 당연하다. 다른 나라는 외교부가 난민을 인정한다. 직원은 ‘한국에서 일하고 싶으면 그냥 일하다가 잡히면 되는 거지, 왜 난민 신청을 하느냐.’ 이렇게 묻는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박해받을 조국으로 내쫓기지 않으니 내 목숨을, 가족의 삶을 구한 거다. 그게 고맙다. 외국인 차별은 심각하다. 취업지원이나 쉼터 제공이 없어 힘들다. 아인슈타인도 대한민국으로 망명했다면 공장에서 일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 아이는 박해에서 벗어나 평화 속에서 자랄 수 있다. →무엇을 꿈꾸는가. 미얀마 군부 독재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싶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버마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를 만들었다. 작은 불교 사찰을 세워서 민주화 운동에 쓸 자금을 모으고, 국내 이주노동자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강제송환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정은주·임주형기자 ejung@seoul.co.kr [용어 클릭] ●난민 인종, 종교, 국적, 극심한 빈곤, 정치적 의견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고, 그로 인해 조국을 떠난 사람들을 말한다.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1967년 ‘난민 지위에 관한 의정서’ 등 국제법으로 국제사회는 난민을 보호한다. 우리 정부는 1992년에 가입했다.
  • “사진 속 그녀는 아내·어머니였을 뿐”

    “사진 속 그녀는 아내·어머니였을 뿐”

    “그는 전 세계 인권운동의 상징이다. 지난 20년 중 14년을 가택에 연금된 채 살았다. 그러나 옛 사진 속에서 그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일 뿐이다.” 17일(현지시간) 가디언은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 여사의 미공개 사진 12장을 게재하고, 평범했던 그의 일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조망했다. 18일 수치 여사의 65번째 생일을 앞두고 공개된 사진 대부분은 1999년 사망한 남편 마이클 아리스 옥스퍼드대 세인트존스 칼리지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것들이다. 가디언은 “20여년 전 노벨위원회는 수치 여사 대신 두 명의 아들과 가족에게 상을 수여해야 했다.”면서 “미얀마 군정의 감금은 가족을 향한 그의 개인적인 마음조차 옭아매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서 25살의 아웅산 수치는 부탄의 눈덮인 산을 오르고 있다. 가디언은 이를 ‘마치 13세의 소녀 같은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당시 수치 여사는 이미 유엔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부탄 왕족의 가정교사였던 남편에게서 프러포즈를 받은 시점이었다. 아리스 교수는 “아내는 히말라야의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했고, 종종 축복받은 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회고하곤 했다. 1972년 1월1일 영국에서 열린 결혼식은 불교식으로 치러졌다. 가디언은 “옥스퍼드 출신의 청년은 한 나라의 운명을 가녀린 어깨에 짊어진 신부와 결혼했다.”고 묘사했다. 수치 여사에게도 어머니로서 행복했던 한때가 있었다. 수치 여사는 티벳과 부탄을 연구하는 아리스 교수를 따라 함께 옮겨다녔으며 첫 아들 알렉산더가 태어난 직후에는 고향 미얀마(당시 버마)를 찾았다. 1977년 태어난 둘째아들 킴은 수치 여사에게 더 많은 시간을 가족에게 힘쓰도록 했다. 사진에도 담긴 수치 여사의 옥스퍼드 집 테라스는 아직도 미얀마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가디언은 “고작 10년 후 이 사진의 주인공은 모국으로 돌아가 자신이 믿는 신념을 위해 평생을 바치게 됐다.”면서 “그는 이를 ‘운명’이라고 표현했고,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가족들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1988년 수치 여사는 위독한 어머니를 보기 위해 귀국했다가 군사정권의 폭정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위해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1999년 아리스 교수는 전립선암으로 영국에서 숨졌다. 미얀마 군정은 마지막으로 아내를 보겠다는 아리스 교수의 입국을 거부했고, 수치 여사는 자신이 떠날 경우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혼 직전, 수치 여사는 남편에게 “단 한 가지, 내 조국의 사람들이 나를 원하면 당신은 내가 그들에 대한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부탁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서로에 대한 이 부부의 약속은 훗날 그렇게 지켜졌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미얀마 수치 야당 22년만에 해체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끌어온 최대 야당 민족민주동맹(NLD)이 6일(현지시간) 창당 22년 만에 공식 해체됐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미얀마는 올해 10~11월쯤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지만 새 선거법에 반발하며 총선 보이콧을 선언한 NLD는 정당 등록 마감일인 이날까지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서 활동을 마감했다. 앞서 지난 3월 미얀마 군사정부는 수치 여사의 총선 출마를 막기 위해 유죄를 선고 받은 사람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했다. NLD는 정당으로서는 해체됐지만, 수치 여사를 중심으로 민주화 투쟁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미얀마 언론인이자 최장기 투옥자인 NLD 창설 멤버 윈틴은 프랑스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NLD가 해산을 결정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군정을 위해 일한다면 모든 존엄과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사라지지 않으며 이념과 정치투쟁, 지도부를 포기하지 않는 정당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참가를 원하는 NLD 내 일부 간부들은 신당 결성을 검토하고 있지만 당원 대부분은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이어 갈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월드뉴스 위클리 프리뷰(5월3~9일)

    월드뉴스 위클리 프리뷰(5월3~9일)

    이번 주(5월3~9일)에는 2010년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평가회의가 미국 뉴욕에서 막을 올린다. 2005년 비확산을 요구하는 서방그룹과 핵군축을 주장한 비동맹그룹 국가가 대립하면서 결실 없이 끝났던 NPT 평가회의가 이번에는 결과물을 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독일 상원 의석을 결정하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으며 해체 위기의 미얀마 최대 야당의 운명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美뉴욕서 NPT 평가회의 NPT 평가회의는 3일부터 26일간 진행된다. 이번 회의는 미국이 최근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비핵보유국에 대한 안전보장을 다짐했고 러시아와 새로운 핵무기 감축협정에 서명한 데다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까지 약속한 상황에서 열리는 만큼 최종 문서 채택 여부에 더욱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NPT 체제 강화 ▲이란 핵 문제 ▲북핵 문제 ▲중동 비핵지대 창설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독일 상원 의석을 가름하게 될 지방선거가 9일 실시된다. 독일 상원은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된 주 정부 대표로 구성되는 만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이 과반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얀마 최대 야당 NLD 해산 여부 갈려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최대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해산 여부도 이번 주에 갈린다. NLD는 올해말 치를 것으로 보이는 총선을 지난달 보이콧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군부가 정한 6일까지 정당 등록을 하지 않으면 NLD는 해체된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한 ‘유럽 항공 대란’이 마무리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유럽연합( EU) 교통장관 회의에서는 오랫동안 답보 상태에 놓여있었던 유럽 영공 문제가 논의된다. EU 집행위는 지난 2004년 36개 회원국 항공관제시스템 통합 제안서를 채택했으나 일부 회원국들이 국가 안보 및 자국 항공사 보호 등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도입이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 항공 대란을 계기로 역내 단일 항공관제 시스템이 도입돼 있었더라면 효율적으로 대응,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대 여론이 많이 수그러든 상황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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