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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주제 누드 이승연 영상 파문

    탤런트 이승연의 ‘종군위안부’ 테마 영상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관련단체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승연과 네티앙엔터테인먼트는 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종군위안부라는 의미있는 주제로 영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승연은 이 영상 프로젝트에서 상반신이 노출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한국여성단체연합,나눔의 집,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대구시민모임 등은 즉각 반발하며 영상 프로젝트 중단을 요구했다.이들은 공동성명에서 “다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모욕과 수치심을 주는 상업주의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승연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이 반대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직접 가서 만나 뵙고 들어볼 생각이며,말씀이 옳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승연은 최근 팔라우에서 영상 및 사진촬영을 마쳤고,오는 19일 일본으로 가 추가 촬영한 뒤 3월부터 영상과 사진을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유료 서비스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
  • 김응수감독 '욕망’…남편의 애인, 알고보니 남자

    최근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동성애를 유해매체물 판정 기준에서 삭제키로 해 온오프 라인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삭제에 반대하는 이들도 속내를 보면 ‘청소년이어서 이르다.’고 전제를 단다.그만큼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것이다. 20일 개봉하는 ‘욕망’(제작 명필름)은 동성애·양성애·이성애 등의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포착하면서 현대인의 이면에 담긴 ‘욕망의 양상’을 끄집어 낸다.“편견에 도전하고 싶었다.”는 김응수 감독이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은 복잡한 방정식을 풀 듯 얽히고 설켜 있다. 평범한 주부 로사(수아)가 남편 규민(안내상)의 외도 사실을 알고 미행을 한다.더 큰 충격은 상대가 남자인 레오(이동규)라는 것.남편에 대한 일그러진 복수심과 질투심이 섞여서일까? 레오를 뒤쫓던 로사는 그에게 복수 대신 격렬한 정사를 나눈다.한편 규민에게 버림받은 레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로사 주위를 맴돌다 그녀에게 빠져든다.둘 사이를 알게 된 규민은 수치심과 분노가 혼재된 상태에서 아내에게 모욕감을 준다. 파격적 소재를 다룬 이 영화는 일그러진 욕망에 의해 성의 정체성이 움직이거나 규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절제된 대사 속에 이미지에 무게를 두면서 펼쳐지는 장면은 배우의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에 눈길을 가게 하면서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 그러나 감독의 언어가 너무 앞선 탓인 듯 메시지가 와닿지 않는다.이미지를 통한 심리묘사와 마지막 장면에서 로사의 눈물을 통해 ‘욕망의 결과’를 암시하지만 그 윤곽은 흐리다.뒤엉킨 ‘욕망의 삼각형’의 의미는 감독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고 관객에게는 멀게 느껴진다. ‘욕망’은 국내 처음으로 온·오프라인 동시 개봉을 시도한 작품.‘작가주의’ 영화라는 내용과 HD(High Definition)디지털영화라는 형식을 결합하여 처음엔 디지털 전용상영관에서 개봉하려고 했으나,기술적 문제가 많아 고민해오다 고화질 디지털화면의 특성과 잘 어울리는 온라인의 주문형비디오(VOD)상영관 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명필름의 이은 감독은 “블록버스터나 상업영화가 주도하는 한국영화 배급시스템에서 틈새 시장을 찾는 제작사에는 유통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욕망’은 예술영화전용관 연합체인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 소속 극장과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이종수기자˝
  • 주부건강 자치구가 챙겨요

    ‘여력(女力)은 구력(區力)’ 자치구마다 여성들의 건강 다져주기에 힘을 쏟고 있다.집안 살림살이의 기둥인 주부들이 건강해야 가정이 평안하고,가정이 편해야 구민 전체가 조화로운 삶을 영유할 수 있다는 뜻에서 갖가지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다양한 서비스 ‘짱’ 동작구(구청장 김우중)는 여성 건강 다지기 교실의 원조 격이다.4년 전인 2000년 3월 처음으로 보건소에 설치했다.곧 4돌을 맞는 건강 다지기 교실에서는 올 상반기 참가자를 합치면 5000명이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참가비는 없다. 특히 출산으로 몸이 나약해진 상태인데도 자녀교육 등으로 한참 뒤에야 질환에 관심을 갖게 되는 40대 이상의 중년을 대상으로 했다.골다공증 예방,요실금 치료를 비롯한 기본적인 건강 유지는 물론 산전·산후 조리법,여성 암을 막는 생활습관 등에 대한 정보를 알뜰하게 가르쳐 준다.16주 교육과정에서 스트레스 관리 전략,수면장애 뛰어넘기 등 알차면서도 재미있는 내용도 곁들인다. 동작보건소는 오는 28일까지 올 상반기 여성건강교실 참가자 5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강의는 다음달 9일부터 6월말까지다.820-1424. 관악구(구청장 김희철) 보건소는 3월 3일부터 ‘2004년도 여성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11월까지 무려 10개월 과정이 무료다.라마즈 출산,관절염 자조관리,요실금 교실,골다공증 교실 등 4부문으로 나뉜다.880-0235. ●돈도 안들어 일석이조 병원 못잖은 시설인데도 비용은 거의 안 든다.대부분 무료다. 중병을 다스리는 일부 시스템을 빼고 섬세한 부분을 검진하는 장비는 병·의원보다 오히려 성능이 뛰어나다.최근 예방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건소들이 대민 서비스 향상을 위해 첨단시설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특히 골다공증은 흔히 나타나는 건강상 문제임에도 불구,대부분이 바쁜 일상에 쫓겨 방치하다 뒷탈을 일으키기 십상이어서 자치구의 강좌 프로그램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요실금 또한 70.7%의 높은 발병률을 보이는 데도 수치심 등의 이유로 치료를 멀리 하는 실정이고,유방암도 검진율이 18%로 위험도에 비춰 훨씬 낮다. 관악보건소 지역보건 담당 정영주(여)씨는 “병·의원과 달리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보건소의 경우 질병의 예방에 치중하기 때문에 해당부문 시설투자에 인색하지 않은 편”이라면서 “이런 점에서 유명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이 출강하는 프로그램은 시민들에게 더 없이 소중하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호박(琥珀) - 김효동

    월령 29일,그믐이다. 동쪽 하늘에 그믐달이 비껴 떠 있다.망원경 경통에 입을 맞추고 숨을 길게 내쉰다.경통의 옆면을 스치며 부연 입김이 날아간다.파인더에 눈을 들이댄다.그믐달은 파인더의 십자선 중앙에 꼼짝없이 잡혀 있다.접안렌즈로 눈을 옮기고 핀트를 맞추자,달 표면의 크레이터가 또렷이 나타난다.달의 바다인 습기의 바다가 거친 암영을 채워가고 있다.그 주위를 비에타나 티코와 같은 크레이터들이 점점이 두르고 있다.크게 심호흡한다.내뱉은 입김이 옅은 달무리를 만들어내다간 금세 흩어진다.눈을 떼고 고개를 젖뜨린다.금방이라도 화구를 열 듯한 하늘이지만 아직껏 짙은 어둠만 머금고 있을 뿐이다.깊은 바다의 잔잔한 침묵을 그려내는 듯하다.꼭 움켜쥐고 있던 액세서리 호박을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온다.로스토크 연안 부두,김 선배는 독일에 가고 싶어 했다.오래 머물진 않을 거야.어디까지나 여행이니까…….호박이야.발트해를 상징한대.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북두칠성 국자의 머리 부분에 머물러 있던 눈동자가 작은곰자리를 거쳐 북극성으로 옮겨간다.호박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발트해,김 선배가 그곳에서 곤충이 박힌 호박을 캐고 있다면,나는 이곳에서 놈들을 낚아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친다.간들거리는 고목 가지가 그믐달을 콕콕 찌르기 시작한다.할아버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방한복을 여미는 모습이 어줍다.담배는 안 돼요.할아버지는 담배를 먼저대로 담뱃갑 속에 쑤셔 넣는다.할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방한모를 씌우고 요철(凹凸)형 단추를 채워 드린다. 때각! 할아버지의 어깨가 움찔한다.손전등을 입에 물고 점퍼 속에 손을 넣는다.손바닥만한 관측일지가 차가운 공기를 맞는다.9월15일,강원도 횡성,오리온자리가 희미하게 보이다.맨눈 관측,화성이나 황소자리보다는 밝은 편임…….두 달이 훌쩍 지났구나.펜을 꺼내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11월18일,경북 문경새재.그믐달에 가까워 맨눈으로 3,4등성도 확인 가능.사자자리 부근을 향해실험 촬영.바람이 불지만 촬영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듯……. 망원경 앞으로 돌아온다.파인더를 단단히 고정하고 조심스레 미동나사를 조절한다.망원경의 방향이 찬찬히 천정(天頂)으로 향한다.하늘은 자정을 기해 이전까지의 침묵을 깨뜨릴 것이다.삼십 년을 넘게 만삭이었던 하늘이 자궁을 연다? 굉장히 매혹적이야.놈들을 사냥하는 일은 얼마나 더하겠어! 근사한 녀석들 많이 담아 와.플레이트로 고개를 돌린다.넉 대의 카메라가 좁은 플레이트 위에 빽빽이 올려져 있다.많이 잡아오면 괜찮은 놈으로 한 마리 주는 거지? 나도 꼭 찍고 싶었는데…….작년에 소백산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한 놈도 찍지 못했잖아.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서 큰 놈에게 희망을 걸었는데,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아서 그것마저도 물 건너갔지 뭐야.편지하면 그 주소로 보내주는 거 잊지 마.바람에 실려 온 검불이 얼굴을 스친다.망원경의 접안부를 두 손으로 꼭 감싼다.밤하늘 이곳저곳에 빛을 게우고 번뜻 사라질 녀석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은 기필코 대어를낚아야 한다. 문경새재는 초행이다.소백산이나 함백산에서보다 수월한 등반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귀띔이 이곳을 선뜻 결정하게 만들었다.잡광(雜光)이 없고 먼지가 적어 촬영이 용이한 곳이라는 정보는 관련 잡지를 통해 앞서 접한 터였다.산꼬대가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괜찮은 촬영지다.나무가 많지 않은 나지막한 산언덕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 또한 썩 마음에 든다.고개를 들어올린다.밤하늘에 지독한 정적이 연출되고 있다.바람이 차다.귓불을 스치는 산바람은 가랑이까지 으스스하게 만들 정도다.할아버지가 으레 신경이 쓰인다.차에 계시는 편이 낫겠어요.내려가시겠어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가벼이 손을 올려본다. “괜찮아요.다 늙어서 한 번 찾아온 감기가 그 무슨 대수라고.”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영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손자를 따라나서야겠다는 얄망궂은 고집을 쉬이 꺾을 수가 없었다.두통 때문에 소다를 댓 수저 퍼먹었거든.어째 머리가 다섯 배는 더 지끈거려요.바람을 쐬면 조금 나아지려나…….할아버지를 향한 불안함이 이제는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옮겨간다.온천 관광을 떠나는 부모님이 홀로 집에 계시기 적적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동행을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서릿바람에 아이를 업고 밭에 나온 기분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수안보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내내 말이 없던 할아버지의 입을 트게 한 것이 차가운 기침이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생각하게 된다.화분증 탓에 봄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은 없는 분이다.성치 않은 오른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져 온다.당장 차로 모셔다드릴게요.얼마 버티기 힘드실 거예요.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니까…….그나저나,등나무집 할머니 말이다.왜,너도 알잖아,얼마 전에 네 엄마가 소개시켜준…….” 낚시용 승창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청승궂다.이내 지팡이 끝으로 낙엽 더미를 헤적이기 시작한다.땅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듯도 하다.낙엽을 헤치는 소리가 듣기에 좋지 않다.선영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네.경영학을 전공한다고? 수치에 매우 민감하겠군.아,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난…….찻잔을 내려놓는 종업원의 행동이 거치적거린 모양이었다.남자는 말을 멈추고 김 선배의 어깨를 두드렸다.영문학과 선배야.우리 동아리 회장이었고…….이 년 전에 졸업했어.둘 다 초면이겠지? 나는 김 선배의 재킷에 박힌 장식용 버클에 시선을 고정했다.반갑네.남자는 내 시선을 밀쳐내듯 손을 내밀었다.손이 형편없이 못생겼군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나는 그가 청하는 악수를 건성으로 받아들였다.형편없기 짝이 없는 그 손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합니까! “성우라고 했지,아마?” 김 선배가 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은 많이 찍어봤나? 사진 속에 별을 담는 것과 정물을 담는 것은 확연히 다르지.쉽사리 덤비지 말아야 할 것이 천체를 담아내는 일이야.한낱 취미 정도로 생각했다간 큰 오산이지.듣자하니 소질이 많다던데…….무엇이든 역량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이 녀석이 찾아왔더라고.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이라고 보여주는데 볼품이 없더군.난 처음에 반딧불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농담 삼아,개똥벌레의 일주 사진이네,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그랬지.” 남자는 김 선배를 돌아보며 짐짓 미소를 지었다.김 선배의 얼굴로 미소가 이어졌을 때,그녀의 재킷에 달려 있는 버클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었다.어째서 별을 찍지? 나는 남자의 점잖은 말투가 듣기에 거북했다.글쎄요,뭐든 좋아지기 시작하면 따라가는 법이죠.남자는 한동안 내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선물을 하나 할까 하는데,어떤가?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과장된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누군가 카페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놓아두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괜찮아,성우야? 불편해 보여.난 너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나는 김 선배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이 분야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이야.물론 지금은 접은 상태지만…….작년엔 외국의 한 천문대가 주최한 천체 사진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어.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이 대단해.열정이라는 말로 남자의 나이를 짐짓 감추어보려는 그녀의 말투가 왠지 우스꽝스러웠다.저 사람 곧 인도로 떠날 거야.다른 세상을 접해 보고 싶대.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도와줄 거니까,한국에 머무는 동안 자주 만나봐.남자의 구두 소리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카페 가득 둔탁한 공명을 일으키며 다가왔다.할머니가 마음에 안 드세요,할아버지? “아니,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기침을 토해낸다.기침 소리가 밤하늘에 긴 메아리를 긋는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의 안경알에 그믐달이 갇혀 있다.그믐달이 거듭 요람으로 변하는 착각이 든다.할아버지의 심상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다.산록을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내내 요람 위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무릎을 매만지며 번번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요람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의족이 할아버지를 지탱하기엔 무리이지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 아랑곳없다는 듯 쉬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점점 뒤처지는 할아버지를 이곳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마도 달의 이미지가 전하는 느긋한 안주(安住)가 아니었을까.회답이라도 하듯 북극성 주위를 오르내리던 낙엽이 요람 위에 사붓 내려앉고 있다. “할망구가 은근히 피하더구나.어쩐지 아니다 싶었어.미련일랑 한푼 남길 것도 없다.네 엄마도 그렇지,그리 줏대 없는 할망구를…….” 할아버지는 의각이 끼인 다리를 쭉 뻗는다.아닐 거예요.할머니가 일부러 피하기야 하시겠어요? 할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플레이트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 한 대를 집어 든다.애지중지하는 펜탁스67 기종이다.노출을 중단하고 필름을 교체한다.노출 시간을 초과한 감이 들지만 유성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일은 없다.다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필름이 아까울 뿐이다.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장만했던 카메라야.니콘FM2지.선배로서 주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자! 그믐달을 할퀴면서 한참을 꼬박거리던 나뭇가지가 툭 부러진다.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배낭으로 고개를 돌린다.어서 받아,성우야.내년 가을에 유성을 촬영할 거라면서? 이번에 못 찍었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카메라 한 대 더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잘 알면서.어서 받아.나는 김 선배를 바라보다가 남자가 건네는 카메라를 말없이 받아들었다.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별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상이 끝없이 생기더군.혼자 여행을 선택한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가면 갈수록 새로운 걸 찾게 돼.물론 과거가 바탕이 된 새로움이겠지만.인도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나? 힌두교? 일처다부혼? 아니면,마하트마? 남자와 김 선배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해해.아,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야,마하트마란.김 선배는 다시 돌아와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갔다.나는 김 선배가 잠시 우주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불안감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힘으로 나타났다.그들이 지나간 카페 홀에 문뜩 간디와 마하트마를 외치는 남자가 부딪쳤다가 분산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커피 리필해 드릴까요? 종업원은 나의 대답을기다리는 투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무안해하길 바라면서 그녀의 코밑을 계속해서 쏘아보았다.리필해 드리겠습니다.위대한 영혼 좋아하시네!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한달음에 몰려온다.옹그리고 있던 낙엽 더미가 소르르 흩어진다.달빛을 빌려 주위를 둘러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융단이 말리듯 낙엽 더미가 굴러간다.굴러간 낙엽만큼의 양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거년스럽다.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낙엽 한 장이 사부랑삽작 걸터앉는다.아니,어느새 날아간다.할아버지,녹차 드릴까요? “아니,됐다…….애초에 소개를 받는 게 아니었지,여시 같은 할망구!” 배낭에서 녹차 티백과 보온병을 꺼낸다.배낭 옆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힘없이 나동그라져 있다.다만 동아리 선배로서 소개시켜줬을 뿐이니까…….웃음이 나온다.플레이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삼각대에 장착한 카메라와 플레이트 위에 올린 넉 대의 카메라가 하늘을 향해 조리개를 가만 열어놓고 있다.적도의 가대에 올린 카메라는 천구의 이동을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가져오지 않은 남자의 카메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유성을 담아내기에 카메라가 적은 듯도 하다. 티백을 간닥거리며 망원경의 접안부를 들여다본다.카시오페이아와 페르세우스 사이에 웅그리고 있던 은하단이 어느 틈에 천정(天頂) 부근으로 이동해 있다.별들의 바다를 감상하기에 녹차의 양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없네,부담이 엔간히 드네,민망해서 자식들 볼 면목이 없네,다 늙어서 주책이 아닌가 싶네…….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더니,뭐 그리 둘러댈 것이 많은지.보험 들으랄 때부터 알아봤지,내가! 참말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네 그려.” 녹차를 들이켜다 사레가 들린다.입술을 훔치며 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나의 시선이 어느새 할아버지의 고개를 따라간다.성도(星圖)를 펴놓은 듯한 밤하늘이다.고개가 각각의 별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남쪽 하늘에 고래자리가 자오선 위를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서쪽 하늘,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말없이 지고 있는 모습이다.달을 품은 동쪽하늘,쌍둥이별의 카스트로와 폴룩스가 드높게 떠 있다.가슴속에 새겨진 성도가 보이지 않는 별마저 또렷이 그려내고 있다.아마 잦은 촬영에서 밴 습관일 것이다.멀리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외롭게 반짝인다.별을 본다는 건 말이야…….그건 결코 값싼 센티멘털리즘만으로 되지 않는 거야,적어도 우리 같은 사람에겐.김 선배의 손가락이 작은개자리에 머물렀다.끝내 그 모습만을 유지하는 별은 없어.나 역시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진 않아.프로키온,다른 별들처럼 모여 있지 않고 외롭게 떠 있지.저 별을 보고 있으면…….아니다,값싼 감상은 내가 찾고 있네…….자,봐봐! 김 선배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였다.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베텔게우스를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다시 시리우스로 돌아오면…….김 선배의 손가락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김 선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어색한 마음에 멀리 횡성군(郡)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그러니까,그렇게 그려보면 겨울의 대삼각형이 이루어지는 거야.네 손으로 한번 그려볼래?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주머니 속의 호박이 얼굴에까지 느껴진다. “생판 모르는 할망구 만나서 뭔 득을 보겠다고.내가 미쳤지!” 할아버지는 두 손을 비비며 몸을 움츠린다.몸 전체가 굼벵이처럼 오그라든다.정말 안 되겠어요,차로 돌아가요.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눈을 치켜뜨고 달 쪽을 올려다볼 뿐이다.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달은 달일 뿐,요람은 그저 값싼 감상인 모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지독한 난시 탓에 할아버지에겐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밤하늘이라는 것마저 이곳에 와야 할 명분을 지우는 것 같아 답답하기까지 하다.어느새 할아버지의 발목까지 낙엽 더미가 덮여 있다.의족으로 낙엽을 헤치는 모습이 곰상스럽다.갑자기 할아버지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창에서 일어선다.차로 가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땅을 꾹 찌른다. “칼을 들었으면 두부라도 썰어야지,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산중턱을 엷게 스친다.등나무집 할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다.칠순을 넘겨보는 할아버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나에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기억도 나지 않는 할머니 얼굴을 등나무집 할머니의 얼굴로 대신하겠다는 생각도 없다.다만,물 건너간 사랑을 되돌리지 못할 때 찾아올 슬픔을 고스란히 할아버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작년 가을에 콤바인 예취날에 바짓부리가 걸려 발목을 잃은 할아버지에게 사랑은 그 후유증마저 낫게 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생각지 못한 섬으로 가로막힐 때가 있다.경우에 따라선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쉽사리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들지 않는다.등나무집 할머니는 둘러대는 것이 아니다,어쩌면.할머니도 일부러 그러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럼 만나지 말자는 게 진심이라는 게냐?” 아니,그런 것이 아니라,뭔가 사정이…….갑자기 눈 속에 번뜩하며 섬광이 스민다.고개를 젖히자 곧 하늘이다.드디어 화구를 벌린 모양이다.그대로 하늘에 눈을 처박는다.이중성단을 관통하며 희미하게나마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단말마와 같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따라 금세 사라진 녀석이지만 잔상으로나마 눈 속에 남는다.보셨어요? 저기…….손가락을 펴 하늘을 가리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관심도 없는 투다.대인이 또 세상에서 사라지는구나,하고 말하면서 그 사람 이런 말을 꼭 덧붙였어.자신은 타 없어지는 유성이 아니라,우주에 버려진 별이 되고 싶다고 말이야.그 말이 무슨 뜻일까? 나는 선배가 말하는 남자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더니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걸까? 그 사람 지금은 인도에 없어.또 다른 낯선 곳을 찾아갔겠지.김 선배는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토해냈다.그러면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었다.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이번엔 네 엄마가 아니라,내가 직접 말해야겠어.만나서 담판을 짓든지…….성우야,두유 좀 가져다 다오.목이 다 탄다.” 배낭으로 다가간다.지퍼를 열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두유를 찾는데 다시 유성이 떨어진다.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다.큰곰자리 부근으로도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큰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북극성을 오매불망하는 듯한 눈매가 큰곰으로부터 전해져 온다.거듭 긴장이 몰려온다.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십 년 후에나 찾아올 사자자리 유성우다.모(母)혜성의 궤도 문제로 삼십 년의 주기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무엇이든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머물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봐.무슨 일이 있어도 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김 선배가 일러주었듯,아니,그녀가 전하는 어느 화백의 말처럼 하늘은 곧 오랜 세월 품어온 정한(情恨)을 차가운 땅덩이를 향해 쏘아댈 것이다.정한이란 비타민E 다음에 아직 나타나지 않은,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비타민F와 같은 인생의 알 수 없는 영양소일지도 모른다고 천경자 화백이 말했지.그 여자,아니,그 화백이 자신의 그림을 참 재미있게 표현했었어.전시회 작품들이 대부분 오로라와 같은 몽롱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거든.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로라를 목격했다는데,글쎄,갓 잡은 등 푸른 생선이 파닥이는 것 같더라나? 화가의 표현치고는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아? 김 선배는 말을 마치자마자 상념에 사로잡힌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김 선배의 시선은 언제부턴가 내 어깨에 머물러 있었다.또 그 사람 생각하는군요? 김 선배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망원경에 눈을 들이대는 김 선배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다.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표정이었다.그런 식으로 시치미 떼지 말아요! 내뱉지 못한 말이 가슴속에서 빙빙 돌았다.김 선배는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사람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에게서도 머물지 않으려는 걸까? 그녀는 자신의 상념을 자르려는 듯 의외의 말을 던졌다.성우야,횡성에 가자.너도 태기산에 간 적 있지? 나는 한참 뒤에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렇지 않아도 오리온자리 일주 사진을 찍을 곳을 찾고 있었어요.그래요,가요.김 선배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밀황색 호박을 꺼내 코에 가져다 댔다.그래,가.가보고 싶던 곳이었어.“얘,두유가…….” 느지감치 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린다.옷깃에 달라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버름한 방한복을 여며드린다.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라이트 버튼을 누르자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빛을 발한다.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노출 시간을 체크하고 카메라로 다가간다.노출 시간을 또다시 오버한 감이 든다.필름을 새로 갈아끼운다.때마침 희미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연속 촬영을 한다. 다시 한 마리가 떨어진다.제법 모양을 갖춘 놈이다.운이 좋으면 긴 유성흔을 잡은 사진을 현상할 수 있을 듯하다. “땃땃하게 데운 베지밀이 최곤데 말씀이야.그,병에 든 거 말이다.” 카메라의 구도를 바꾸어본다.이번엔 복사점을 중심으로 앵글을 잡지 않고 주변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구도를 잡을 생각이다.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놈들이기 때문에 천구가 모두 피사체다.사진으로 태어난 녀석들이 깨알과 같이 작다 하더라도 사진을 현상하는 동안만큼은 현장에서 느꼈던 흥분이 다시 살아나 그야말로 황홀하다.마지막이라는 말이 얼마나유혹적인지 알아?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놈들을 잡을 수 있는 해는 아마도 네가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거나 손자도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겪고 나서야 올 거야.군침이 돌지 않니?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유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거의가 떨어져서 그다지 훌륭한 사진은 찍을 수 없을 거야.운이지,뭐.노벨이 태어난 해엔 한 시간 동안 무려 만 개 이상이 떨어졌다는데…….성우야? 김 선배가 나직이 내 이름을 불렀다.꼭 갈 건가요? 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나를 가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성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선배가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인도에 갈까?” 그 사람 인도에 없다면서요? 아직 거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김 선배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물음에 뜬금없이,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의 얼굴빛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나는 내가 말했어야 하는 부분을 모욕적으로 도난당한 느낌이 들었다.널 좋아하는 것 같아.그녀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땐 수치심마저 치밀었다. “젊었을적엔 참 고왔을 얼굴인데…….에이,모르겄다.늙을수록 애가 돼 간다는데 남사시럽게…….이놈의 나이도 이냥저냥 시들어갈 판인가?” 시계를 들여다본다.12시30분.유성은 카메라를 향해 간헐적인 입김만 뿜을 뿐 탄성을 자아낼 만한 모습은 보여주질 않고 있다.어쨌든 물고 늘어져야 한다.새벽 1시에서 2시 사이가 녀석들이 한꺼번에 태어나는 극대 시각이라는 정보를 굳이 믿으라면 아직 3,40분 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그때에 대비해 아껴두었던 커트필름을 꺼낸다. 갑작스레 휴대전화기가 엉덩이를 간질인다.어머니의 전화다.걱정이 되는 모양이다.할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이미 내 목소리에서 할아버지의 안전을 확인했을 것이다.할아버지를 내려다본다.할아버지가 나를 따라나선 것에 대한 불만이 가신 것일까.할아버지는 세상을 관조하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다리를 절단하고 병원에 누워 계실 때,이제는 바라만 보며 살란다,하면서 관조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뭐든 간섭하고 살았는데,이젠 좀 앉아서 쉬어야지.늙어서 다리 쓸 일이 뭐가 있겠어.방바닥에 앉아서 창 밖이나 구경하면 됐지.그걸 관조라고 해도 될 거야.할아버지가 관조라는 말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라 말했을 때,사실 너무 우스웠다.세상에는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일보다 시기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니까.사학년생들끼리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작년 선배들처럼 여러 가지 테마를 가지고 전시하지는 않을 거야.그만큼 작품이 적다는 얘기겠지.그러고 보면 선배들은 참 대단해.별을 잡아온다는 게 어디 쉬워?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김 선배는 밖을 바라보며 전면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뽀드득뽀드득 듣기 싫은 소리가 귓전에 머물렀다.선배는 사진 많이 찍으러 다녔잖아요. “주문하시겠어요?”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여자가 테이블 앞에 섰다. “고작해야 일주 사진이 전부야…….커피 두 잔 주세요…….다른 사람들은 은하며 성단이며 그림 같은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탁자 밑에서 자꾸만 나의 구두코가 그녀의 발을 차고 있었다.그런데도 김 선배는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내가 말을 걸지 않는다면그녀는 그녀의 생각 속에 머물고 말 듯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어차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말이야.아,계획은 세웠니? 유성우 말이야.할아버지 사고 때문에 작년에 찍지 못했잖아.맞다,할아버지는 괜찮으시지?” 플레이트를 돌아본다.아무래도 좁은 플레이트 위에 넉 대의 카메라는 무리이지 싶다.사진 주변에 수차(收差)가 나올 것을 감안해야 할 듯하다.옆 카메라의 릴리즈가 들어올 것도 예상해야 할 판이다.사진 표면에 검은 줄이 생길 것이 뻔하다.필름을 스캔하고 이미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작품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망원경과 카메라를 부착하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한다.카메라 한 대를 들어 망원경 앞으로 가져온다.신발 끈을 끄른다.망원경의 접안부와 카메라의 렌즈를 맞대고 신발 끈을 감는다.왜요,필요한 거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요 좀 보련다.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배낭을 걸어 놓았던 나무로 절뚝절뚝 다가간다.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크다.늦었구나! 지도교수가 내 어깨를 치고 홀을 빠져나갔다.몇 작품 전시하지 않은 전시회 치고는 꽤나 엄숙한 분위기였다.선배들의 사진전은 ‘우주의 신비’라는 제목으로 열렸다.‘끝의 향연’이었던 작년의 제목에 비하면 꽤나 성의가 없어 보이는 제목이긴 했다.사진전은 학교 도서관 입구의 홀에서 개방적으로 열렸다.얼마 안 되는 작품이 전시되었다고는 하지만 안드로메다은하나 플라아데스 성단 사진은 그 몇 안 되는 작품들까지 빛내기에 충분했다. “겸연쩍긴 하지만,그래도 차지 않은 달이 더 정이 간다니까.” 달은 고개를 젖힌 할아버지의 코끝에 붙어 있지만 바람에 끄덕이는 나뭇가지 탓에 자꾸만 명멸한다.‘달과 금성의 일주,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올림푸스 OM-1,45㎜ 광각렌즈…….’ 공책 크기만한 사진 속에 지평선을 향해 사선을 내리긋는 달과 금성의 일주가 힘차게 다가왔다.개똥벌레 일주 사진,감히 반딧불로 별을 대적하다니……. “성우야.” 어느 결에 김 선배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나는 사진 속의 달과 금성을 머릿속에 그려진 반딧불과 견주어 보았다.미친놈!“늦었구나?” 김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선배는 자신의 사진을 한번 훑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횡성에 가본 적이 있군요? 나는 물으려다 말았다.실망했지? 사진을 찍을 때도,인화할 때도 온통 딴생각이었으니…….괜찮아요.개똥벌레 같지 않은데요,뭘.정말 괜찮아요.나는 김 선배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입아귀를 부풀렸다. “괜찮으면,너 가질래? 지금 가져가도 돼.” 김 선배가 조용히 물었지만,나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때부터 김 선배의 입도 열리지 않았다.그녀는 홀 주위를 돌기만 할 뿐이었다.나는 김 선배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김 선배는 ‘개똥벌레의 일주’가 놓인 이젤을 무려 다섯 번이나 거치면서도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나는 그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고 되뇌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못 봐주겠어!” 김 선배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돌연 도서관을 빠져나갔을 때에도 내 입 속에선,선배 사진을 내가 어떻게 가져요,하는 말만 반복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바다뱀자리와 큰개자리의경계선 부근에 섬광이 스친다.지평선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한참 만에 나타난 녀석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다.기대를 많이 한 탓이다.플레이트 앞에 선다.50㎜ 표준렌즈를 광각렌즈로 교체한다.필름을 빼내면서 웬일인지 작품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46도 화각으로 유성을 잡는다는 것이 무리이지 싶었다.새 필름으로 갈아끼운다.이번엔 초점비에 따라 4분에서 8분씩 노출을 주기로 한다.버름했던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망원경으로 다가간다.경통에 키스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로 눈을 가져다댄다.잘 보여? 힘없는 목소리로 김 선배가 물었다.오늘따라 잘 잡히지 않네요.횡성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무엇인가가 불안했다.달의 상을 또렷하게 끌어오는 것마저 힘에 부칠 정도로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잘 안 되니? 김 선배는 까치발을 하면서 재킷 주머니에 손을 꼭 찔러 넣었다.천문학도 아닌데 왜 그렇게 쩔쩔매? 천문학이면 괜찮게요? 이건 완전히 막노동이니…….안 되겠어요.카메라 좀 가져다 줄래요? 그냥 찍어야 할 것 같아요. “왜,내가 있어서 그래?” 카메라를 받아들려고 했지만 김 선배는 잠시 악력을 썼다.카메라가 중요해,내가 중요해? 나는 뜬금없는 그녀의 질문에 장난스레 되물었다.선배는 아빠가 좋아요,엄마가 좋아요? 김 선배가 갑자기 카메라를 놓아 버리는 바람에 몸이 뒤로 밀렸다.두 시간 동안 노출할 거니까 지겨워도 참아요.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망원경 접안부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셔터를 누르자,김 선배가 대뜸 딸꾹질을 토해냈다.나 몰래 뭐 훔쳐 먹었어요? 나는 배낭으로 다가가 보온병과 녹차 티백을 꺼냈다.자,마셔요. “자연현상이라는 게 그 자체로 인간에게 많은 감상을 주는 거 같아.” 김 선배에게 녹차가 담긴 잔을 건넸다.안 좋은 부분이 있다면 때론 인간을 징벌하기도 한다는 점이죠.김 선배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그래,맞아.때론 징벌하기도 하지.그걸 피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김 선배를 돌아보았다.피할 수 없어요.다만,치유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답일 뿐이죠.감상만 쫓아가지 말아요,제발! 그러다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징벌을 안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뱉어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긴 한숨으로 대신했다.프로키온,외로운 별이야.김 선배는 감상에 빠지고 있었다.그녀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연거푸 그려댔다. 김 선배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그녀가 대뜸 일어섰다.우리 그만 내려가자.나 너무 피곤해.나도 모르게 김 선배를 쏘아보고 있었다.피곤하다니요? 올라온 지 고작해야 한 시간 지났는데.노출 끝내려면 적어도…….김 선배는 기필코 가야 한다는 표정이었다.그녀의 눈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쏘아보았다.일단 내려가자.김 선배는 무턱대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선배님,지금! 김 선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선배,이건 반칙이에요.여기까지 와서 그냥 내려간다는 건…….저따위 별들이야 언제라도 볼 수 있어! 그녀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 미안해,그냥 내려가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성우야,넌 여기가 어디 같니? 아까부터 유심히 살펴봤는데,아무래도 이상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온 할아버지가 묻는다.주위를 둘러본다.내 눈엔 그저 낮은 산언덕으로만 보인다.무슨 겁을 주시려구요? “모르겠니? 난 아무리 봐도…….” 안 갈 거예요? 김 선배는 ‘횡성여관’ 앞에 섰다.그녀는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여관이라는 글자에서 ‘관’자의 네온사인이 끔벅이며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차 있는 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돼요.빨리 가요,선배! “나…….나,여기 예약했어.” 예약요? 여관도 예약이 돼요? 응,오래 전에…….할아버지 손끝에서 라이터 불꽃이 번뜩인다.깊은 고랑이 팬 이마 위에 돌연 플라아데스 성단이 나타난다.영묘한 빛을 산란하는 산개성단.할아버지는 담배를 문다.성단이 단박 사라진다.담배! 손전등을 켜고 할아버지를 향해 불빛을 겨눈다.담배요! 나도 모르게 뱉어버린 소리가 맞은편 산허리에 부딪힌다.어이없이 큰 내 목소리에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툭 불거진다.죄송해요,전 다만……. “다시 한 번 비춰보거라…….아무래도 무덤자리 같은데.”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펴고 팔을 뻗어 허공에 둥그런 원을 그린다.손전등 불빛이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라간다.어느새 이슬이 맺힌 언덕 주위가 불빛에 번뜩인다. “그래,맞다.무덤자리가 확실해.둔덕이 좀 진 곳이 있잖니? 오래 돼서 다 깎여 내려갔지만 그것이 봉분이고…….” 할아버지는 이번에 두 팔로 허공을 감싸는 시늉을 한다. “양쪽의 활이 엉성하게나마 살아 있잖니.저 봐라,가지가 이리저리 벌어지긴 했지만 묘목도 있잖아.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다시 주위를 비추어본다.엉성한 이팝나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그루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을 좀 쓰지,죽어서도 한이겠구먼.” 네,그런 것 같네요.할아버지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가 하늘로 고개를 든다.때를 맞추어 북두칠성의 국자 옆으로 상당히 밝은 유성이 떨어진다.준비해 두었던 커트필름으로 모든 카메라의 필름을 교체한다.하늘은 등갓이 손톱에 찢긴 순간처럼 번쩍 발한다.긴 유성의 꼬리가 눈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긴 궤적을 남긴 유성은 할아버지가 등진 산의 허리춤에 박히면서 소리 없이 부서진다. 망원경 접안부에 맞댄 카메라의 필름도 커트필름으로 교체한다.망원경과 카메라가 불안하게 맞대어져 있다.상이 선명하지 않잖아! 자,다시 해보자.김 선배가 내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처음엔 다 그런 거야.심호흡하고 다시 해봐! 천천히! 여자 다루어본 적 있을 거 아니야! 그래,천천히 렌즈를 돌리면서…….상을 잡아야 사진이든 뭐든 나올 거 아니야! 다시,다시! 신발 끈을 다시 단단히 매고 상이 선명해지도록 접안렌즈를 천천히 조정한다.무한대를 응시해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피하려면 파인더를 보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그래,그래야 한다.파인더에 들이댄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아랫입술을 꼭 깨문다.다시 상이 가능한 한 선명할 때까지 망원경 접안렌즈의 초점을 맞춘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댄다.전망이 별로 감동적이지 못하다.다시 망원경의 초점을 정밀하게 맞춘다.들어온다.선명해진다.조리개를 최대한 개방하고 최대한의 노출을 유도한다.긴장이 밀려온다.검지에 힘을 주고 셔터를 누른다.순간 내 행동에 대한 반감 섞인 생각이 스친다.우주는 가만히 있어도 가슴에 소지할 수 있다는.그것 봐,하면 되잖아.어,언제 왔어요? 김 선배가 남자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나는 스스로 거역하고 있었다. “가만,그러고 보니,내가 죽은 이 위에 버릇없이 앉아 있었네 그려.” 할아버지는 승창을 들고 망원경 쪽으로 다가와 앉는다.배낭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과 두유를 꺼낸다.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꼭 다시 한 번 만나보세요.좋으신 할머니 같던데.할아버지 손에 두유를 쥐어드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차갑지만 폭신한 낙엽방석이다.녹차가 담긴 컵을 가볍게 감싸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영묘하게 빛나는 큰개자리의 시리우스가 동쪽 하늘을 호령하면서 지평선 위에 드높이 떠 있다.궁수자리의 남은 마지막 밝은 별들이 서서히 지고 있다.켄타우루스와 남십자가자리의 별들 그리고 에라다누스강자리의 아케르나르가 남쪽 하늘에 깊이 박혀 있다.할아버지,돌아가는 길에 온천욕이라도 하시겠어요? “아니다.온천은 무슨…….” 들추어진 할아버지의 바짓부리를 정리해드린다.차갑고 딱딱한 의족이 손끝에 느껴진다.할아버지가 내 어깨 위에 천천히 손을 얹는다. “힘들여서 만나봐야 게 잡아 물에 넣는 꼬락서니지.안 그러냐,성우야?” 죄송하지만,삼백이호실로 방 하나 더 주세요.돈을 지불하고 김 선배의 뒤를 따랐다.층계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벌건 융단을 뒤덮고 지루하게 이어졌다.관측장비가 무거운 탓인지도 몰랐다.삼층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김 선배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냈다.미안해,괜찮아질 거야.나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나는 그녀가 괜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선배와 나는 삼백일호와 삼백이호 앞에 나란히 섰다.선배의 옆얼굴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그녀는 문을 향해 다시 한 번 딸꾹질을 토해냈다.괜찮아,정말이야.그녀에게 열쇠를 건네고 문손잡이를 돌렸다.꼭 자고 가야겠어요?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요.더군다나 차도 있는데…….김 선배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목에 걸린 호박을 떼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짐짓 어색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깔려 있었다.미안해…….오래 머물 것 같지는 않아.무엇이든 오래 머문다는 건 좋지 못해.기억이든뭐든…….그녀는 내 손바닥 위에 호박을 얹어놓고 꼭 쥐어주었다.호박이야.발트해의 상징이래.독일에 사는 이모가 보내줬는데 이젠 필요 없게 됐어.직접 가서 캐보려구…….이왕이면 북해까지 돌아볼 생각이야.보트니아만을 거쳐 핀란드만까지…….독일 북동부에 있는 발트해 연안 도시라는데.주 이름이…….아주 긴 이름이었는데……. 무척이나 밝은 대화구가 눈에 들어온다.사방이 일순 밝아진다.느낌이 좋다.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으로 다시 여러 개의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다.곧 큰곰의 머리 부분으로도 유성이 떨어진다.유영하는 연어의 등지느러미처럼 은빛을 산란하며 하늘을 가른다.제법 공격적이다.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쾌감이 전해진다.맞아,포어포메른주였어.독일의 북동부,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망원경 앞으로 다가간다.카메라에 눈을 들이대자 동전 크기의 유성이 망원경 안으로 날아온다.몸이 반사적으로 꺾인다.조금만 참으세요,할아버지.이것만 찍으면 다 되니까.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카메라에 키스한다.너만 믿으마.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할아버지 등뒤로 다가간다. “그놈의 미련이 문제라지…….성우야,등나무집 할머니가 만나는 주겠지?” 나는 할아버지 등뒤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때마침 유성의 꼬리가 할아버지의 긴 하품 소리를 따라 하늘에 은회색 칼날을 하늘에 긋는다.뒤이어 서너 개가 더 떨어진다.지평선 어딘가에 떨어졌을 유성의 잔상이 오래도록 눈 속에 남는다.무덤 주위를 둘러본다.하필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호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곳이 한때는 슬라브족의 요새였다는 거야.맞아,슬라브족의 요새.한자동맹이란 것도 그곳에서…….엉터리 수작 말아요! 입이 열릴 뻔했지만 참았다.내 손으로 호박을 채취하고 싶은 게 꿈이야.고대 생물이 들어 있는 호박 말이야.난…….김 선배는 말을 멈추고 문손잡이를 잡았다.잠깐만요! 김 선배는 여관 복도가 울릴 만큼의 내 부름에도 놀라지 않은 듯했다.김 선배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망울에 작은 프로키온이 나타났다.우는 거예요,지금? 그녀는 다시 딸꾹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이거요,잘 구경했어요.아무리 찾아도 개똥벌레는 없던데요.나는 돌돌 만 ‘달과 금성의 일주 사진’을 점퍼에서 빼내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나,잠깐 약국에 좀 다녀올게.기다리지 말고 자.” 김 선배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나는 호박과 돌돌 만 사진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말해줘요! 아니야,내가 갔다 올게.먼저 자고 있어.그녀는 이미 층계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나는 슬라브족도 한자동맹도 아닌,김 선배가 그곳에 가겠다는 이유만을 알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이 다시 시작이다.할아버지를 돌아본다.할아버지의 발 앞으로 낙엽 더미가 굴러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흡사 융단이 말리는 듯하다.굴러간 양만큼의 낙엽이 또다시 굴러오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발 아래 펼쳐진다.그믐달로 날아간 낙엽들이 한점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다.주머니에 손을 넣는다.호박이 느껴진다.호박 속에 갇혀버린 것은 나일지 모른다.손님,삼백일호 손님,안에 있어요? 복도 끝,창유리를 통해 어슷하게 비쳐든 새벽의 푸른 기운이 물 위에 떠가고 있었다.발트해,삼백일호 문 아래로 차가운 해수가 밀려나오고,나는 그 위에 밤새 쥐고 있던 호박을 떨어뜨렸다.점벙! 발끝으로 밀려온 해수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김 선배는 결국 호박을 캐러 떠났다.손님,손님! 이봐요! 하늘을 올려다본다.동쪽 끝에 겨우 고개를 내민 시리우스에 손가락을 찍는다.천천히 베텔게우스와 연결하고 프로키온으로 옮긴다.다시 시리우스로 손가락이 이동하지만 그만 손가락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만다.나는 겨울의 대삼각형을 그릴 수 없는 모양이다.곧 겨울이 찾아올 테지만 그때에도 삼각형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관측일지를 꺼내든다.11월19일,사자자리 감마성 부근을 복사점으로 20여 개의 유성 출현.30년 후에는…….호박을 꺼내 코밑에 가져다 댄다.발트해의 짙푸른 해수가 밀려간다.로스토크,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고 없다.
  • 온라인 ‘헤어누드’ 허용되나

    앞으로 온라인에서 ‘헤어누드’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을까? 남녀의 체모가 드러나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뜻하는 헤어누드에 대한 규제가 내년부터 완화될 예정이어서 네티즌의 관심을 끌고 있다.헤어누드는 지금까지 음란물로 취급,사실상 유통이 금지됐다.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지난 15일 서울 지식산업재단센터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윤리심의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개정안이 정보통신윤리위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개정안은 ‘성적인 욕구를 지나치게 자극하거나 혐오감을 주는’ 식으로 모호하게 돼 있는 음란물 기준을 ‘구체적’,‘사실적’,‘직접적’ 등으로 적시했다. 특히 개정안 21조는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규제 대상을 ‘남녀의 성기,국부,음모 또는 항문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내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15조 ‘남녀의 성기,국부,또는 항문이 노출되거나 투명한 의상 등을 통해 비치는 내용’보다 규제 대상이 대폭 축소된 셈이다. 지금까지는 성기나 음모가 단순히 ‘보이기만’ 해도 규제 대상이 됐지만 한두장의 컷이나 사진에서 흐리게 노출되는 것은 허용한다는 뜻이다. 국제법률경영대학원 김형진 교수도 이날 “단순히 헤어누드물이나 둔부가 보인다고 해서 예술적 요소 없이 성적 호기심과 수치심을 유발하는 음란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유통 자체를 금지하는 음란물은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온라인에서 성기 노출과 헤어누드가 전면 허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음란물 판단의 절대 기준이 되는 ‘예술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한 탓에 사안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또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는 연예인 누드 사진은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예술적이라고 주장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윤리위 심의조정1팀 한명호 팀장은 “완화된 것은 사실이나 상업적인 누드물의 노출까지 허용된 것은 분명 아니다.”면서 “‘음란물은 일반 정상인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고 극히 혐오스러운 내용으로서 성적 도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법원 판례대로 음란한 성기 노출이나 헤어누드는 계속 강하게 규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 후세인 체포/후세인 전범재판후 사형 가능성

    미국의 입장에선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체포는 낭보이지만,그의 신병처리문제는 ‘뜨거운 감자’다.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14일 “제네바 협정에 따른 전쟁포로 대우를 할 것”이라고 말했을 뿐 미국측 고위인사들이 후세인의 처리방향에 대해 아직 극히 신중한 입장이다. 제네바 협정에 따르면 전쟁포로는 인도적 대우를 보장받는 것은 물론 ‘모욕적이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도 금지돼 후세인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그가 어떤 형태로든 전범 재판에 회부될 것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15일 벌써부터 후세인의 사형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에 앞서 피에르 리처드 프로스퍼 미 국무부 전범문제 담당대사도 이라크 전범들의 경우 이라크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며 사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후세인의 사법처리 절차는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다만 후세인은 ‘전범 수뇌’로 이라크 전범 재판소에 회부될 소지가 가장 크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미국 군정당국과 이라크 과도통치위는 지난 10일 이라크에서 자행된 반인륜행위 등 전쟁범죄를 단죄하기 위해 전범 특별재판소를 설립했다. 이 재판에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사형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이 재판소 설립을 추진한 이라크 과도통치위 위원들은 명확한 입장을 유보하고 있지만 대부분 사형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드러난 범죄 사실만으로도 후세인은 이라크 특별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다. 그가 ▲1983년 쿠르드족 바르자니 부족 학살사건 ▲1988년 화학무기 사용을 통한 쿠르드족 학살 ▲1991년 걸프전 이후 시아파 교도 대학살 혐의 등으로 기소될 경우다. 하지만 후세인을 사형제도가 없는 국제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특히 인권단체들은 미 군정이 지배하는 이라크내 재판은 공정성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는 명분을 내걸며 유엔감시하의 국제 재판을 요구하고 있다. 구본영기자 kby7@
  • [시론]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

    가정위탁 양육은 이웃 일본,타이완에서도 이미 오래 전 보편화된 제도다.그런 점에서 올 1월 보건복지부가 16개 시·도에 가정위탁지원센터를 개설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IMF 이후 급증한 실직,가출,이혼,별거 등 가족해체가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가정을 상실하거나 가정으로부터 분리돼 대리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의 숫자는 해마다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보도는 정부는 물론 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우리 모두의 머리를 무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맑고 밝게 키우는 것은 국민 삶의 질 개선에 힘써야 할 정부를 포함해 국민 모두의 책임이며,일시적으로 친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아동들을 위한 대리보호로서의 가정위탁 양육을 활성화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가정위탁보호는 친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회복될 때까지 제3자에게 대리보호토록 하는 제도다.따라서 일정기간이 지난 뒤에는 원래 가정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원칙이다.이런 취지를 살리려면 위탁가정은 반드시 정부에 등록해 자격을 인가받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위탁부모의 연령은 30∼55세로 제한하고 위탁부모의 교육 정도는 중학교 졸업이상으로 하며,결혼한 지 3년 이상 된 원만한 부부가 좋다. 위탁보호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위탁보호를 신청한 가정의 동기를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다시 말해 위탁부모의 과거 생활경험,공익을 넓힐 목적으로 한 순수한 자원봉사의 차원인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정위탁아동 배치의 경우 가정해체 아동의 심리 등 알아두어야 할 점이 많다.우선 위탁아동은 친가로부터 버림받아 위탁가정에 오게 됐다고 생각하게 돼 자신이 무가치하고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느끼는 자아형성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자신의 가정에 문제가 있어 남의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게 된 데 수치심을 느끼게 될 수 있다. 친부모의 사랑을 잃게 된 것과 친가에서 자신을 버려서 다시는 친부모 곁으로 돌아갈 수 없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질 수도 있다.이렇게 되면 부모에 대한 적대감이 부모 이외의 성인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위탁가정의 경우에도 유의할 점이 많다.새로운 아동이 그 가정에 들어오게 됨으로써 부부나 친자녀 등 기존의 가족 구성원 사이에 접촉 기회가 줄고,그 아동으로 인하여 애정을 빼앗겼다고 생각되는 친자녀와 부모와의 충돌,부부 사이의 새로운 문제발생 등을 고려해야 한다.심지어 그 가정 고유의 식사나 기상 및 취침시간,휴식 및 취미활동,텔레비전 시청 시간 등 새로운 변화에 따른 가족원간의 문제가 발생될 수도 있다. 가정위탁아동에 대한 정부의 지침도 미비하다.아동을 보호하기에 부적절한 위탁가정이 선정되기도 한다.위탁가정 부모에 대한 교육과 위탁가정보호에 대한 홍보가 미흡하고,위탁가정에 지급되는 생계비와 아동양육비가 현실적으로 너무나 적다.위탁가정지원센터 직원이 3명 정도로 시·도 전체를 대상으로 일하기에는 역부족인 점도 문제다. 가정위탁보호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범정부 차원의 법적,제도적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의 법적 책임,의료보호의 적용,양육비를 포함한 정부지원의 현실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그래야만 위탁가정에서도 아동의 성장,발달,보호에 대한 기초적 상식이나 경험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정위탁보호 대상 아동들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있다는 점을 감안,발달 단계에서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도록 정부는 물론 위탁지원센터,그리고 위탁가정 부모들의 배려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배 근 한국어린이보호재단 회장
  • 스와핑은 정신병!/불만·공포·열등감 인한 성도착증 충동 느낀다면 빨리 정신과 진료를

    최근 문제가 된 스와핑(부부교환 성유희)은 의학적으로 어떻게 해석될까?이 충격적인 모럴헤저드 현상에 대해 의학 전문가들은 ‘일탈적인 성도착증의 표면화’라고 지적하고 있다.‘자유롭게 산다.’는 겉모습과 달리 속내를 들여다 보면 지극히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적 쾌락에 탐닉하려는 병적 의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신문 등 언론매체를 통해 스와핑이 공공연히 이뤄져 왔고,독일에서도 얼마 전 이를 합법화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회정서상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일로만 여겨왔던 게 사실.그러나 최근 인터넷을 통해 스와핑이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정신과 분야에서 스와핑에 대해 체계적 연구나 실태조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전문가들조차 “현재 정신과 질병분류에는 포함돼 있지 않으나 향후 연구결과에 따라 질병단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수준이다. 한양대 신경정신과 박용천 교수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적 쾌락을 맛보려는 것을 성도착증이라고 하는데,부부를 바꿔 성행위를 하는 스와핑 역시 상식을 벗어난 행위로 도착적”이라며 “이런 점에서 스와핑은 정신과에서 말하는 성도착증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스와핑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는 노이로제 환자와 비슷해 겉으로는 정상으로 보이지만 본인이 느끼는 열등감이나 공포감 불만족 허무감 우울증 절망감과 무기력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 스와핑을 선택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그 뒤에 오는 수치심과 절망감 자멸감 자포자기와 분노가 상상 이상으로 커서 결국 또 다른 스와핑을 모색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인간은 금지된 행위를 하면서 일시적으로 희열을 느낄 수 있으나 ‘양심’이라는 초자아가 있어 이내 죄책감에 휩싸이며,이런 심리상태는 극심한 우울증을 겪거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의학 전문가들은 “스와핑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이런 상황에까지 다다르게 된 심리상태가 더 심각한 문제”라며 “스와핑의 충동을 느끼거나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정신과 진료를 통해 스스로 자아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심재억기자
  • 책 / 마담 세크러터리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66)의 자서전 ‘마담 세크러터리’(Madam Secretary,노은정·백영미 등 옮김,황금가지 펴냄)가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망명자의 딸에서 유엔대사를 거쳐 미국 행정부 사상 여성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기까지 숨막히는 역사의 현장을 발로 뛴 올브라이트의 삶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1937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올브라이트는 두살 때 나치의 탄압을 피해 조국을 떠난다.망명정부에서 정보분야를 담당하던 아버지를 따라 런던에서 생활하던 그의 가족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귀국했지만 체코가 공산화되면서 미국행을 택한다.미국사회의 이방인인 그는 명문 웰즐리 대학 시절 미국 굴지의 미디어그룹인 콕스 가문의 상속자 가운데 한 명인 조지프 올브라이트를 만나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한다.그러나 마흔다섯의 어느날 남편으로부터 일방적인 이혼통보를 받는다.“이 결혼은 끝났다.당신보다 더 젊고 예쁜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결혼생활 23년만에 이상적인 아내와 어머니가 되겠다는 꿈이 산산조각난 것이다.이혼 뒤 올브라이트는 조지타운대 교수,민주당 국제외교전문위원,상원의원 보좌관 등의 일을 한꺼번에 맡아 하면서 점차 이혼의 충격에서 벗어나 정치적 경력을 쌓아간다. 이 책에는 올브라이트의 사생활과 공생활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올브라이트는 서른아홉살이 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될 때까지 공직생활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하지만 그는 클린턴 행정부 1기 내각에서 유엔대사를 거쳐 1997년 2기 내각에서는 국무장관을 맡는 등 정치인생의 황금기를 맞는다.그는 ‘워싱턴 포스트’에 자신이 유대인이며 조부모가 아우슈비츠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숨졌다는 사실이 보도돼 시련을 겪기도 한다.올브라이트는 “사람들은 내가 우리 가족의 과거를 몰랐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부모님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아버지의 야심이나 속물근성 또는 수치심 때문이라고 은근히 암시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올브라이트는 2000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방북 회담과 2002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등 한반도와 주변정세를 회고하는 데 적잖은 지면을 할애한다.올브라이트는 코소보 사태를 풀기 위해 유고연방 폭격까지 마다하지 않던 강한 국무장관이었다.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유독 외교적 해결방안을 고수했다.그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 때문이었다.올브라이트는 제64대 국무장관에서 물러날 때까지 북한문제와 중동문제의 돌파구를 찾고 또한 코소보에서 밀로셰비치를 몰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국무장관 임기 말,마침내 유고슬라비아에서 밀로셰비치가 물러나면서 클린턴 행정부 외교정책의 시험장이 됐던 발칸반도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됐다.이제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스럽게 물러날 수 있었다.올브라이트는 “민주주의는 공정하지만 다소 냉혹하다.”는 말을 남겼다.민주주의의 실천을 지원하지 않는 외교정책은 어떠한 경우라도 미국의 국익을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전 2권 각권 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후유증이 더 무서운 성폭행/실태와 대처법

    성폭행 사건이 갈수록 잦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기에 이르렀다.그러나 만약 내 가족이 피해자라면 어떻게 대처하고 수습할 것인가? 특히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행은 모르는 사람보다 주변의 아는 사람이 저지르는 경우가 더 많아 70%나 되지만 대개는 “부끄럽고 창피하다.”거나 “애 장래 때문에…”라며 쉬쉬하고 지나간다.결코 바람직한 대응이 아니다.그렇게 해서 정신적 충격이 아물 리도 없거니와 자칫 신체적으로도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황당한 가운데 속만 끓이다 마는 성폭행,어떻게 대처하고 수습해야 좋을까. ■ 해마다 300만명 성피해 검찰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300만건이 넘는 각종 성추행·성폭행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그러나 가해자가 강간 등의 혐의로 처벌을 받은 사례는 지난해의 경우 9435건에 불과했다.세계 1,2위의 성폭행 발생 빈도를 보이고 있으나 신고율은 3%에도 못미친다는 것이 검찰의 분석이다. 특히 전체 피해자 가운데 18세 이하의 여자가 55%를 차지했으며,이중 절반이 넘는 35%가 13세 이하의 여자 어린이여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 후유증 외상과 성병 등 신체적 상처 못지않게 행동 이상,정서적 혼란 등 정신적 상처도 심각하다.주로 나타나는 행동장애로는 집중력 장애,학업 부진,불면증,악몽,식욕 감퇴 등이 꼽힌다.불안감,수치심은 물론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여겨 자책감이 심하고,급기야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피해자는 대부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편두통과 신체 하부 통증,피부병 같은 증상을 보인다.때로는 분노와 증오심 때문에 음주,흡연,자살 등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약물중독 등 부차적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다. ●만성통증 통증은 6개월 이상 치료해도 쉽게 호전되지 않는다.통증이 근심을 유발하고,근심이 다시 통증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통증에서 비롯된 근심,걱정,무력감,수면장애 등이 환자를 우울하게 하고 사기를 저하시킨다. ●외상후 스트레스 외상을 입는 사고를 당한 뒤 극도의 공포감과 자기 제어능력상실,죽음에 대한 공포감 등을 보이는 증상이다.이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두려움을 준 사고를 또렷하게,반복적으로 기억하거나 악몽을 꾼다.더러는 커다란 소리나 사고와 연관된 대상,즉 자동차 등에 매우 민감하다.가족이나 친구 등 예전에 소중하게 생각했던 활동 등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지고,심각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우울증 성폭행으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비참함과 절망·죄책감,자신이 정말 살 가치가 있을까 등의 생각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일반적인 우울증 증상인 식욕상실,불면증,격심한 두통과 잦은 식체,변비등을 보이기도 한다. ●약물중독 가장 흔한 중독은 알코올과 담배,약물이다.이런 중독 현상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환자들의 반사회 성향을 높여 범죄를 유발하기도 한다. ●사회적·성적 후유증 등교 거부와 무단 결석,부모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나 가출,매춘,알코올,마약을 가까이 하거나 일탈적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며,자위행위나 모든 성적 현상에 대해 극도의 공포·혐오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수습 및 예방 만약 가족이나 주변의 누군가가 성폭행을 당했다면 신고와 함께 당시의 정황을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양치질이나 목욕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사건 당시 입었던 옷을 갈아입지 말고 곧장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병원에서는 피해자를 상대로 당시의 정황을 확인하고 가해자를 확인하기 위해 체모와 손톱 등을 잘라 보존한다.또 성병 감염 여부와 정자의 혈액형도 확인하게 된다.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과 가족에게 피해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사회적 비난이나 고립감을 피하기 위해 숨기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피해자 개인이나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가정에서는 평소 자녀들에게 성폭행 예방법을 가르치고,불가피하게 피해를 입었을 경우 즉시 가족에게 털어놔 함께 고민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병원 산부인과 박지현 교수는 “성폭행의 경우 대부분 생식기에 심각한 외상을 입을 뿐 아니라 매독 간염 에이즈 등 성병을 옮는 사례가 많으나 경찰이 일반 병원의 진단 결과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 피해자가 경찰병원에서 다시 검진을 받는 등 제도적인 문제도 있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일반적인 진료는 간단하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를 받아 정신적 안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또 대전 선병원 신경정신과 김영동 과장은 “우선 피해자가 무력감과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며 “특히 청소년들이 전문의를 찾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으면 성폭행의 공포감과 그 후의 고립감을 떨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차병원 산부인과 박지현 교수.인하대병원 감염내과 정문현 교수.대전선병원 산부인과 최영렬·신경정신과 김영돈 과장 심재억기자 jeshim@
  • [수평사회를 만들자]제3부 경찰과 시민 (10)경찰과 시민 좌담

    시민이 스스로 범인을 쫓고,미아를 찾아 거리로 나서는 세상이다.특히 시민이 당하는 사소한 사건을 해결해 주려는 의지가 부족한 공권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민생에 무관심한 공권력의 현주소를 살펴본 ‘경찰과 시민’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좌담회를 갖고 개선방향을 모색해 보았다.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과 최명숙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박형식 서울 방배경찰서 형사과장이 참석했다. ●경찰은 왜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 약한가 최명숙 사무처장 경찰에 대한 이미지는 두 가지다.시위를 진압하는 공권력으로서의 경찰과 타락한 부패경찰의 모습 두 가지다.때문에 시민이 막상 어려움에 처해도 경찰의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는다. 오창익 사무국장 경찰이 구속 사안을 처리할 때 불구속 사안보다 근무평점을 더 많이 받는다.이 때문에 경찰이 사소하고 일상적인 범죄에는 신경을 못 쓴다는 생각이 든다.경찰은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 권력의 핵심부가 관심을 갖는 쪽에 경찰 활동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파업현장에는경찰을 1만명씩 투입하면서도 초등학교 골목길 안전에는 무관심하다.큰 사안도 중요하지만 치안유지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박형식 형사과장 일부 시민은 경찰이 부패하고 멀게만 느껴진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경찰을 방문한 사람은 경찰이 달라졌고 친절해졌다고 말한다.몇년전 공무원 청렴지수 조사에서는 경찰이 1위를 차지했다.부패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개선노력을 하고 있다.모 경찰서 형사가 납치행각을 벌인 것은 개인사업에 실패해 일어난 것으로 봐달라.경찰 전체가 부패한 것은 아니다. ●시민과 경찰의 인식 차이에 대한 접점 오 국장 그 사건은 형사가 업무 때문에 알게 된 피의자를 납치했기 때문에 충격적이었다.국민은 친절한 경찰보다는 신뢰가는 경찰을 원한다.경찰이 든든해져야 한다.검사가 파출소에서 술주정을 해도 아무런 제재도 못하고 “검사는 아버지와 같다.”고 변명하는 게 경찰이다.강자에겐 약하지만 약한 시민에겐 강한 경찰을 시민들은 든든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 처장 지난해 여성단체 관련 피고소인 자격으로 경찰조사를 받았다.인적사항을 조사하는데 키와 음주·흡연 여부를 물었다. 이것이 조사와 무슨 상관이 있나.성적으로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여성단체 관계자에게 이 정도라면 일반 여성에게는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인권교육이 절실하다. 박 과장 경찰이 피해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범인을 처벌할 수 있는데,대부분의 성폭력 피의자는 범행을 부인한다.때문에 피해자와 피의자 발언에서 상반되는 부분을 확인해야 한다.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범인을 처벌하려면 꼭 필요하다.경찰도 여성 피해자는 여성 조사관이,청소년 성폭력 사건은 전문가와 경찰이 함께 조사한다.조사관이 단순히 흥미를 위해 물어보는 것은 아니다.이해해 달라. ●경찰은 왜 민생치안에 소홀한가 오 국장 시위를 진압하는 경비병력이 따로 있다.하지만 파출소 직원이 비번일 때 시위 진압에 투입되기도 한다.관련 직원의 원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국보법과 관련해서도 대학생만 겨냥하고 유력인사는 법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자의적인 공권력이다.경찰은 피의자·피해자·참고인·시민과 관계를 맺는데,모든 관계가 왜곡돼 있다.아동의 성폭행 문제도 언론을 통해 불거지니까 그제서야 대안을 내놓는다.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최 처장 관계 정상화가 중요한데,경찰이 그럴 힘이 있나. 오 국장 일선 형사가 납치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상사인 경찰서장이 직위해제됐다.그 과정에서 특정 언론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문도 있다.경찰이 스스로 조직원을 보호해야 하는데 너무 쉽게 일을 처리한 것 같다.일단 줄줄이 서장부터 직위해제다.경찰의 과도한 패배의식·이류의식·피해의식이 문제라고 본다. 박 과장 형사계장으로 재직할 때 큰 사건이 터져 매일 새벽에야 집에 들어갔다. 임신 5개월째인 아내가 힘들다고 헤어지자고 하더라.그래서 아내를 사건현장에 데려갔다.시신이 있던 자리에 누워 “제발 꿈이라도 꾸게 해달라.”고 빌고,미친 사람처럼 골목길을 다니면서 수사했다.아내는 말없이 지켜보더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그렇다.경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는것이다. 소중한 목숨을 빼앗은 살인범을 꼭 잡고 싶다.경찰에겐 거창한 사명의식은 없지만,범인을 잡아서 피해자의 억울함을 달래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 최 처장 경찰 개개인의 잘못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경찰 조직문화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박 과장 한두 사람이 실수했다고 나머지 조직원이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그래서 강남서 등에 대대적인 인사발령을 내는 것이다.경찰도 공무원이고,책임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최근 민생치안의 실상 오 국장 강력범죄가 늘어 시민이 불안해하고 있다.시민은 골목길에서 불안하지 않길 바란다.그런데 경찰력은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외국 경찰은 전체 인력의 5%만 내근을 하는데 한국의 내근 인력은 10%나 된다. 경찰력도 시국위주로 배치돼 있다.경미한 사건은 초동 단계에서 해결해 건수를 줄이자.그러면 현재 인력으로도 좋은 치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최 처장 경찰이 어디에 우선권을 두느냐는 생각을 했다.현재는 시위를 진압하는데 중심을 두고 있다.그러나 경찰은 시민을 위해 있어야 한다. 사건이 일어나면 처리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앞으로는 예방의 차원도 고려하자.경찰의 존재자체로 범죄가 예방되는 세상이 되어야겠다. 박 과장 경찰과 시민이 힘을 합치면 치안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일례로 방배서는 아파트 주민에게 가스배관에 ‘가시’를 심도록 권유했다.범인이 타고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큰 효과를 봤다.치안은 경찰 혼자보다는 주민과 같이해야 한다. 도둑을 맞았다면 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와 긴밀하게 연락해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 ●경찰개혁의 걸림돌과 해결방안 오 국장 수사역량을 제고하는 등 개선안이 있지만 경찰은 늘 권한과 책임이 합치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물론 동의한다.경찰은 충성스런 조직이다.일도 많이 하고,과로사도 많다.근로여건은 형편없다. 고생하는 만큼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한다.경찰이 스스로 만만함을 자초하기 때문이다.경찰 수뇌부가 주체적으로 노력할 때다.정계 인사나 검찰,언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신경쓰지 말라.오로지 시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봐 달라.경찰에게는 희망이 있다.외부의 지적을 수용할 만큼 성숙해져 있다. 검찰 개혁은 힘들어도 경찰에겐 희망이 있다. 최 처장 결국 경찰이 국민의 인권을 얼마나 보호하는가에 핵심이 있다.경찰 개인이 노력해서 바뀌지는 않는다.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인권 교육을 강화하자.미래를 위한 투자다.경찰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야한다.자치경찰제에 대비해 경찰 체질을 개선하는 등 철저하게 준비하자. 박 과장 시민이 안심하고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경찰로 거듭나겠다. 주민이 원하는 경찰이 되기 위해 경찰혁신위도 운영되는 것이 아닌가.제도와 관행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노력은 1회에 그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경찰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따뜻한 애정을 가져주길 바란다. 정리 박지연 이두걸기자 anne02@
  • “女환자 과잉터치 성추행”

    법원이 진료를 명분으로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의사에게 유죄를 선고했다.그러나 의사는 “단순진료행위로 추행할 뜻이 전혀 없었다.”며 즉시 항소했다. 서울지법 형사6단독 이일주 판사는 지난 20일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한 20대 여성 2명을 진료하다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의사 A(42)씨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판사는 “환자들이 진료로 착각,무저항 상태일 때 불필요하게 환자의 몸을 더듬는 것은 성추행에 해당한다.”면서 “환자의 은밀한 부위를 진료할 경우 성적 수치심이 생기기 않도록 세심히 배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5월 모병원 응급실 당직 근무중 새벽 2시쯤 교통사고로 가벼운 척추부상을 당해 입원한 두 20대 여성의 입원실에 들어가 차례로 깨운 뒤 ‘괜찮으세요.’라고 말하며 복부를 두 손으로 누르다 속옷 하의를 반쯤 내리고 음부 주위를 누르는 등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정은주기자 ejung@
  • [사설] 몰카도 마다 않는 검찰 수사

    현직 검사가 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의 향응현장 몰래카메라 촬영 사건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청주지검 특별전담팀은 해당 검사가 ‘몰카’의 기획,제작 및 언론사 배포에 이르기까지 배후에서 총체적으로 조종했을 뿐 아니라 별도사건 처리과정에서 금품수수 의혹도 드러났다고 발표했다.검사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탈법,불법을 저지른 셈이다.그가 몰카를 동원해서라도 ‘외압설’이 난무하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고 했을지 모르지만 수사는 수단의 합법성이 담보됐을 때만 목적의 정당성도 인정된다. 우리는 지난해 11월 현직 검사의 과욕으로 피의자가 가혹행위를 당하다가 숨진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그 사건으로 담당 검사가 구속되고 검찰총장 등 수뇌부가 옷을 벗었다.최근에도 검찰 조사 때 당한 가혹행위와 수치심이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기도 했다.이러한 상황에서 현직 검사가 협박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몰카 제작 및 배포에 주도적으로 개입한 사실이불거졌으니 검찰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됐다.적법절차와 과학적인 수사기법을 통해 ‘인권 수사’를 하겠다던 검찰의 약속이 공염불과 다를 바 없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수사 행태가 무소불위일 정도로 비대화된 검찰 권력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한다.거대한 칼을 잘못 휘둘렀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가 단적으로 입증된 것이다.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감찰권의 법무부 이양’ 등과 같은 검찰권력 통제장치가 강구돼야 한다.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 [열린세상] 복지 지향적 성범죄 해법

    요즘 우리 사회에는 경제적 불안뿐 아니라 유괴,동반자살 등 각종 사고들이 거의 매일 보고되고 있다.그 중 특히 끊이지 않는 것이 성범죄이다.성폭력의 피해자는 성인 여성을 비롯하여 새벽 등굣길의 여고생,심지어 유치원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포함된다.더구나 이제는 군대 내부에서 동료나 상관에 의한 성추행이 심각하다고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성과 관련된 폭력적 행위가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성폭력은 단순 폭력에 비해 피해자에게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두려움을 유발한다.단순 폭력을 당한 경우 쉽게 남에게 피해 사실을 알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성폭력 피해자들은 그렇지가 못하다.가해자들도 이런 점을 이용하여 심지어 금품갈취 후 입막음용으로 성폭력을 이용하기도 한다.하지만 성폭행 피해자들은 정신적 상처가 상당히 심각하다.특히 어린 시절에 성폭력을 당한 여성의 경우 성인이 되면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장애를 가질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높고 성에 대해 왜곡된 상을 가지게 된다.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가 몹시 필요하다. 성폭력 가해자들 역시 일반적인 범죄자들과 다른 특징이 많다.평소에는 선량한 시민으로 잘 지내다가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변태적 성추행을 오랜 기간 해 오는 경우도 흔하다.이 경우 범죄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우며,설사 범죄가 밝혀져 처벌받은 후에도 변태적인 행위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최근에는 성폭력 가해자의 연령이 어려져 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 아동이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하기도 한다.이런 아동들은 어려서부터 음란물에 노출되어 거의 중독이 되다시피 한 경우가 많으며 변태적인 성적 발달이 심각한 상태이다.또한 이들의 부모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녀가 정신적으로 건강한지 살펴보는 여유가 부족하고 심지어 성범죄를 저지른 이후에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따라서 이들은 연령이 어리므로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부모나 본인의 의지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같은 문제를 계속 일으킬 가능성이 몹시높다.따라서 이들 가해자들이 본인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치유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므로 사회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치료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복지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빈곤층에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복지 사회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성범죄는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가 사회적 복지 차원에서 공적인 지원이 필요하다.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성폭력 피해 아동을 위해 별도의 치료교육 기관을 제공한다든지,청소년 가해자의 경우 처벌보다는 치료를 더 우선시하는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체계적으로 피해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가해자들의 치료재활을 통해 성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의 복지제도가 없는 점이 너무 아쉽다.실제 임상에서 성폭력 피해 아동들의 심각한 정신적 문제와 청소년 가해자들의 대책 없음을 자주 접하면서 이제는 우리 모두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는사실을 강조하고 싶다.그리고 현재 우리의 성폭력 피해자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어려움과 수치심,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어떤 조처도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몇몇 시민단체와 병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고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 아동들의 진술을 한번만 받도록 개선하기로 한 점들은 고무적인 변화의 시작으로 보인다.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위한 복지가 한 단계 향상될 것으로 믿는다. 신 의 진 연세대 의대 교수 소아정신과
  • 이런 책 어때요 / 은밀한 몸·음란과 폭력

    한스 페터 뒤르 지음/박계수·최상안 옮김 한길사 펴냄 인간의 수치심과 폭력성이 문명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를 고찰.‘몸’을 통해 인간이 갖는 수치심과 본능을 밝힌다.‘은밀한 몸’은 여성의 외음부에 대한 수치심에 주목한 책.저자는 ‘그곳’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수치심은 문명의 결과가 아니라 태초부터 인간이 지닌 본성이라고 주장한다.‘음란과 폭력’은 인간의 ‘성’이 가진 폭력성을 다룬다.독일의 문화사학자인 저자는 이 ‘문명화과정의 신화’ 연작을 통해 서구에서 확고한 학문적 패러다임이 된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이론을 반박한다.‘은밀한 몸’ 2만 2000원,‘음란과 폭력’ 2만 4000원.
  • 아내 강간 /(하)혼인증명서 = 아내 성폭행 자격증?

    아직 ‘부부간 프라이버시’ 벽 못넘어 ‘아내강간죄’ 신설, 법으로 다스려야 폭력 후의 강요된 성관계를 ‘강간’이나 ‘성폭력’으로 정의하는데 대부분 여성들은 동의한다.그렇지만 “남편을 고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들의 생각은 각기 달랐다.“그래도 남편인데.”“괜히 고발했다가는 더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라고 머뭇거리는 여성들도 많고,“법이 달라져야한다.”고 요청하는 여성들도 많았다.어떤 폭력보다 잔혹한 폭력이라는‘아내강간’,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직도 ‘부부간의 프라이버시’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범죄’라는 인식 대신 오히려 ‘선정적인 주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더욱이 남자들은 “그렇다면 부부관계 전에 ‘동의서’를 받아야 하느냐?”고 비아냥대기도 한다.그러나 “가정폭력은 처벌대상임에도 폭력 후 강간이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임에 분명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내강간에 대한 인식과 법률로 명문화할 필요성은 가정폭력을 상담하는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대두됐다.가정폭력 피해자의 50% 이상이 ‘아내강간’의 괴로움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여성부는 지난 2001년 가정폭력특별법의 개정에 앞서 아내강간을 처벌하는 조항을 도입하기로 했으나 곤욕을 치렀다.남성들의 반발이 거세 아내강간이란 말대신 부부강간이라는 다소 중립적인 단어로 바꿔 중화시키려 했지만 허사였다.그뒤 아내강간은 ‘장기과제’로만 분류된 채 현재까지 ‘시기상조’란 덫에 걸려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가정폭력은 처벌하면서… 당시 여성부로부터 용역연구를 맡았던 여성개발원의 박영란 박사는 “우리 사회의 부부폭력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낮을 줄은 미처 몰랐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있는 곳에 법이 필요하다는 의식대신,오히려 ‘나와 내 아내’의 문제로 개인화함으로써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러나 언제까지나 의식이 변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면서 “아내강간의 처벌근거를 마련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일반인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 ‘이혼 소송중이거나 별거중의 아내강간’ 등,‘단계적’ 명문화를 대안으로 내놓는 여성학자도 있다.90년대,오랜기간 폭력의 피해자였던 아내들이 어느날 가해자로 변해버린 일련의 사건들을 연구했던 동덕여대 김경애 교수는 “폭력 후 강간은 아내가 노예임을 증명하기 위한,혹은 굴복시키려는 폭력의 마지막 수단이었다. 여성의 수치심은 엄청났지만 남성들은 한결같이 ‘내 아내까지 마음대로 못한다면….’이라는 말로 이를 정당화했다.이 엄청난 의식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별거중·이혼소송 중’등 제한적으로라도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원만한 관계에서는 강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주지시키는 홍보작업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70년대 대법원 판례,아내강간 인정했다 흔히 아내강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논거로 70년 대법원의 판결을 제시한다.이로 인해 경찰에서는 피해여성들의 신고조차 접수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당시 사건은 다른 여자와 동거중인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하고,이혼소송을 제기했던 여성이 다시 ‘새출발’을 약속,고소를 취하한 이틀 후에 남편으로부터 폭력과 강간을 당했고 이를아내강간으로 고소했던 것이다.이에 대해 아내강간을 인정한 1심과 달리 대법원은 “사건이 나기 이틀 전 다시 새출발하기로 한 만큼 정교 승낙 의사표시를 철회한 상태에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 이 사건을 “아내강간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이명숙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문은 분명히 ‘파탄상태가 아닌 만큼 강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즉 정상적인 부부사이에서는 인정되지 않지만 이혼 준비중이거나 별거 등의 문제상황에서는 ‘아내강간’이 성립한다고 판결을 내렸다.판결문 전문을 읽지 않았거나 오해한 사람들이 이를 잘못 원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러므로 현재 판례로도 충분히 “아직 법률상으로는 남편이니 나는 부부관계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폭력남편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이 변호사는 “형법 297조의 강간죄 조항만으로도 아내강간을 처벌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남편은 분명 남성이고,아내는 부녀에 포함되는 만큼 강간죄의 주체와 객체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그러므로 가정을치외법권지역으로 여기는 가부장적인 의식을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경찰에서 수사중인 아내강간 사건들이 눈길을 끈다.지난 70년 판결 이후 30여년 만의 경찰 수사이기 때문이다.의처증과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남편이 폭력 후 강간한 사건이 있고,또 친구 2명과 함께 별거 중인 아내를 성폭행한 믿지못할 사건이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이들 사건의 피해자들이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새로운 판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는다면 훨씬 쉽게 아내강간의 명문화는 이뤄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또 아내강간죄를 신설하고 반드시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고있다. ●외국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에서 가정폭력법에 ‘강간’이 제외된 경우는 별로 없다.또한 1996년 유엔인권이사회는 ‘가정폭력에대한 모범입법안’에 아내강간을 가정폭력이라고 명시적으로 포함시켰다.세계적으로 아내강간을 인정하는 추세임에 분명하다. 욱이 1984년 미국 뉴욕법정에서는 “혼인증명서가 남편이 형사면책을 갖고 강간할 수 있는 자격으로 파악돼서는 안된다.기혼여성도 미혼여성과 똑같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판례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결혼한 여성에게도 인정한 사례로 주목된다.그래서 미국에서는 77년 이래 대부분의 주에서 ‘아내강간’의 면책을 폐기했다.또 영국에서도 1994년 아내강간을 인정하게 됐고 독일에서도 97년,형법을 개정하면서 혼인외 성교를 삭제,강간죄의 객체에 법률상의 처를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일본은 우리처럼 법으로 명문화되지는 않았으나 ‘계속적인 성관계를 전제로 하는’ 부부관계에서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혼인이 실질적으로 파탄난 경우 ‘아내강간’을 인정하고 있다. 허남주 기자 hhj@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최근 여성계는 큰 힘을 얻었다. “남성적인 형법이 달라져야 한다.”,“여성의 노(No)는 분명한 노(No)다.”는 서울대 법대 조국(曺國·사진·38)교수의 말이 어떤 여성학자들의 주장보다 더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4월 ‘형사법의 성편향’이란 책을 출간,형사법에서 불합리한 여성문제를 ‘시대착오적’이라 지적하고 형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가 유난히 앞선 의식의 소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형법은 폭행·강간·살인 등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약자로서의 여성을 생각하게 된 겁니다.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제가 하기 시작한 것일 뿐인데 지나친 칭찬은 송구스럽습니다.” 그는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형법학자에게 있어 특이한 관심은 결코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고 “1980년대 미국,영국,독일에서는 학문적 논의나 법원판결의 주요 주제가 여성주의였다.이때 형사법의 대대적 개혁대상이 바로 성 편향적 조항들이었다.”고 밝혔다.우리가 지금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형법을 공부하던 20대에 이미 이런 불합리함에 눈떴고,미국과 영국에서 5년간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뒤 형법학회에서 국내 형법의 불합리함을 조목조목 짚어내는 여성주의적 입장의 논문을 발표했다.여성계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삼기도 전이었다.“당시 선생님들이 당황하셨지요.하지만 제 논거가 틀리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셨습니다.그후 입장을 뒷받침하는 연구와 발표 등을 활발히 한 결과,아직 다수설은 아니지만 ‘유력한 소수설’ 또는 ‘귀기울여야할 소수설’ 정도의 대접은 받게 됐습니다.그는 평소 “분쟁도구인 법은 결코 평화로울 때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로 ‘아내강간’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보통의 남성들을 설득하기도 한단다. 사회전반에 권리의식은 높아졌는데 유독 남녀간,그중에서도 특히 부부간 문제를 다루는 법적 시스템은 제자리 걸음이라고 말하는 조 교수는 ‘가정폭력’은 처벌해도 ‘폭력 후 강간’은 처벌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또 “부부 중 일방이 성교를 거부할 경우 혼인계약 위반을 주장하는 상대방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강간이 아니라 이혼법정으로 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쯤이면 경상도 출신에,장남에,할아버지로부터 “큰 일하라.”는 당부까지 받으며 자랐다는 조 교수에게 개인적인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혹시 그의 생각과 개인적인 생활은 다르지 않을까. 조 교수는 현재 박사과정 중인 아내가 1년에 4개월간 외국으로 나가 있기 때문에 방학마다 ‘주부’로 지냈다는 주부경력 4년차.“설거지를 하기 위해 빨간 고무장갑을 끼면서 때때로 ‘이 시간에 책을 조금 더 볼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내가 선택한 길과 내가 선택한 아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즐겁게 집안일을 한다.”고 말했다.조 교수는 아버지로서 중1,초2 남매를 키우면서 ‘스스로 행동하고,책임질 것’을 가르친단다.둘째의 유치원 시절,“엄마들이 가는 유치원 행사에 아빠로 참석하는 것이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곧 익숙해졌다.”면서 “남성들에게 기존의 틀을 벗어나 달라질 것”을 권했다. 허남주기자
  • 편집자에게/ 병영내 성추행 대책 서둘러야

    -‘병영 성추행 위험 수위’기사(대한매일 7월12일자 9면)를 읽고 병영 안에서 남성들간의 성추행이 이처럼 심각할 줄은 정말 몰랐다. 사실 어찌보면 폐쇄적인 군부대의 특성상 병영내 성추행을 가벼운 장난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그 내용이나 부작용을 보니 결코 적당히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다.고참에게 성추행을 당해오던 한 병사가 휴가중 투신자살하는가 하면 성추행당한 피해자 중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사례까지 있다 하니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가.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설문조사 결과 군인 10명 가운데 1명꼴로 병영내 성추행을 경험했고,성적 수치심 때문에 밝히길 꺼려해 실제 피해율은 이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군기’가 생명인 군인들 사이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정말 믿기지 않는다. 가족 중에 군대 보낼 사람들이 있는 경우 군대와 관련된 사고소식만 접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데,이제는 난데없는 ‘성추행’ 염려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착잡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다.군 당국은 이번 성추행 파문을 계기로 병영 안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례의 정확한 실태 조사와 함께 철저한 대책 마련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혹시 병영 안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동성애자들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군 당국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자식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부모들이 국방부에 몰려가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이색적인 ‘시위’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신명자 주부·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 휴가 중 투신자살 사병 “고참이 몹쓸짓”/병영 성추행 ‘위험수위’

    병영(兵營)내 성범죄가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최근에는 고참 병사에게 성추행을 당해오던 병사가 휴가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까지 발생했다. 군 당국의 조사 결과 지난 5일 경기도 의정부 시내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김모 일병은 지난 5월 내무반에서 두차례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인 김 모 상병은 일석점호가 끝난 뒤 김 일병을 침낭속으로 불러들여 성기를 만진 사실이 드러나 11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김 일병은 숨지기 전 친구들에게 “군생활은 어렵지 않은데 고참의 성추행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영내 성추행의 경우 은밀히 발생하는 데다 성적인 수치심 때문에 피해자도 밝히길 꺼려해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군 안팎의 지적이다.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휴가 장병과 전역 후 1년 미만의 대학생 등 3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9.14%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특히 천주교측 조사에서는 육군모부대 소속 선임하사 김모 상사가 소속 부대 병사 3명을 성폭행하다,적발돼 재판을 받고 있으며,일부 피해자들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거나 의병전역을 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당 정대철 의원도 지난 2000년 국방부 국정감사에 낸 자료에서 98년 이후 당시까지 발생한 군내 성범죄가 강간 244건과 동성간 추행 133건을 포함,666건이나 된다며 경고했다. 또 당시 휴가 장병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10.5%가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강요받거나 보고 들은 것으로 나타났다. 형태별로는 성행위 흉내내기(30.2%),신체 애무(15.9%),성 경험담 발표(14.5%),동침행위(12.7%),자위행위(9.5%),성기 애무(3.2%) 등의 순이었다.이병(44.4%)과 일병(20.6%)등 계급이 낮을수록 피해율이 높았고 장소는 내무반(66.7%)과 근무초소(12.7%),목욕탕 및 보일러실,화장실,야외훈련시 막사 등의 순이었다. 국방부는 병영내 성추행 예방을 위해 취침때 병사들의 특이사항 관찰을 강화하고,장병들에 대한 설문과 면담 기회를 늘리도록 하는 한편 성(性) 군기 위반 예방을 위한 각급 부대의 교육도 강화하기로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사설] 군 내무반 성추행실태 조사하라

    며칠전 전·의경 2명이 고참들의 구타 사고로 숨진 데 이어 부대복귀를 앞두고 투신 자살한 육군 사병이 군 내무반에서 고참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지 막막할 따름이다.꽃다운 젊은이들이 병역의무를 수행하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는 당사자 가족뿐 아니라 이땅의 모든 부모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한다. 김모 일병은 포상휴가 후 귀대일인 지난 9일 오전 의정부시 한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친구들은 “김 일병이 ‘고참들이 밤마다 바지를 벗기고 성기를 만진다.’는 말을 했다.”며 성추행 의혹을 제기했고,군 수사기관은 김모 상병에 대해 지난 5월쯤 2차례 김 일병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했다.김 상병은 그러나 성추행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김 일병의 자살동기에 대해선 추가 수사가 필요하겠지만 이 사건은 군 내부의 ‘성관련 범죄’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음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동성애자들의 차별 반대운동이 벌어지는 등 우리 사회에서도 성개방 풍조가 거세게 불고 있음을 감안할 때 군이나 전·의경 부대 내무반도 성범죄의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 상명하복을 내세운 고참들의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구타보다도 더 심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주지만 그 성격상 피해신고가 쉽지 않다.철저한 예방교육과 피해신고의 제도화가 시급한 까닭이다.특히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기회에 각종 병영에서 일어나는 구타 등 가혹행위와 성범죄가 바로 국가기관이 저지르는 반인륜적 범죄라는 인식 아래 철저히 그 실태와 원인을 조사해,대책을 제시하기 바란다.
  • 성폭행범 잡은 ‘여중생의 기지’

    학교에서 귀가하던 여중생을 납치,성폭행한 60대 남자가 두 달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6일 경기지역의 한 도시에서 중학생 A(13)양을 차량으로 유인,납치한 뒤 성폭행한 손모(60·무직)씨를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5월6일 밤 9시10분쯤 손씨는 집에 가기 위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A양을 차안으로 밀어 넣은 뒤 차문을 모두 잠가버렸다.손씨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논쪽으로 A양을 끌고 가 성폭행한 뒤 A양의 집 근처에 떨궈놓고 사라졌다.A양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차안에 있던 손씨가 속한 모 단체의 명부를 갖고 내렸다. 딸에게 사실을 전해 들은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하려다 ‘아이에게 성폭행 기억이 되살아나고 수사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경찰 대신 한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상담소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상담원과 통화를 하는 도중 아버지는 ‘경찰에 알리지 않으면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을 했고, 상담원은 평소 비슷한 사건을 자주 의논해온 서대문서에 신고할 것을 권유했다.결국 아버지는 다음날 경찰서를 찾았다. 수사의 중요한 단서는 A양이 갖고 내린 단체의 명부였다.경찰은 먼저 이 명부에 있는 50여명의 사진을 모두 구해 A양에게 보여줬다.밤에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A양은 손씨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윤곽이 비슷한 몇 사람을 지목했다.경찰은 이들의 혈액을 채취한 뒤 A양의 속옷에 묻은 체액의 흔적과 함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냈고 조사결과 손씨가 범인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미 손씨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휴대전화를 꺼놓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차안에서 생활하는 등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한 달 남짓 잠복 근무 끝에 가족을 통해 손씨를 서대문구 미근동의 찻집으로 유인,검거에 성공했다.손씨는 경찰에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A양을 보고 순간적으로 충동을 느껴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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