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수첩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소파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마음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메이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그물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826
  • 산시성 2경-핑야오구청…중국 5대 고성

    산시성 2경-핑야오구청…중국 5대 고성

    몐산에서 타이위안을 향해 1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핑야오구청(平遙古城)에 닿는다. 중국 5대 고성 중 하나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최원성 가이드는 “약 2800년 전 주(周)나라 시대에 처음 조성된 뒤 명∙청(明淸)시대 보수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며 “성곽만 남아 있는 여느 고성들과 달리 상가와 가옥, 은행 등이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전했다. 흙으로 조성된 성벽은 2800년 전, 벽돌로 된 성벽은 명나라 때 축조된 것으로 보면 틀림없다는 것. 고성의 면적은 1260㎢, 성곽 둘레 6163m, 성벽 높이는 12m다. 당시 주변 소수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이후, 한(漢)족을 중심으로 약 4만 5000명의 주민이 아직도 거주하고 있다. ●72 성루 살피며 현인 헤아리고  하늘에서 보면 핑야오구청은 거북을 닮았다. 실제 축성 과정에서도 거북을 모델로 삼았단다. 먼저 남쪽으로 향한 문은 머리, 북쪽 문은 꼬리에 해당한다. 각각 동·서 방향으로 난 문 4개는 발이다. 그리고 가운데 스러우(市樓)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길은 등껍질을 형상화했다. 핑야오구청에서 10㎞ 떨어진 곳엔 녹대탑을 세웠다. 도망가려는 거북을 묶어 두려는 뜻이다. 아울러 성벽마다 몸을 숨긴 채 총을 쏠 수 있는 총안(銃眼)을 3000개 뚫어 놓았다. 이는 공자의 3000제자를 의미한다. 성루는 모두 72개를 세웠는데, 이는 72명의 중국 현인들을 뜻한다.  핑야오구청은 계획도시다. 큰 길과 작은 길들이 교차하며 네모반듯한 블록을 이룬다. 중심가는 명·청대 거리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 보면 건물의 높낮이가 다르다. 가이드 최씨는 “지붕이 낮은 건 명나라, 높은 건 청나라 때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경 명나라를 이은 청나라 왕조가 문화적 우월의 차이를 건물의 높이로 가름하려 했던 게다.  명·청대 거리의 랜드마크는 스러우다. 성 안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1756년께 지금의 모습으로 지어졌다. 좁은 통로를 따라 위로 오르면 성곽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신했지만 핑야오구청은 청나라 때만 해도 상하이에 버금가는 상업 중심지였다. 19세기 중국 최초의 은행 ‘표호’(票號)가 탄생한 곳도 이곳이다. 당시 금·은을 결제수단으로 지니고 다니던 상인들은 도적의 위협으로 애를 먹었다. 이에 핑야오를 본거지로 삼은 중국 최대의 상단 진상(晉商)에서 지점망과 신용을 바탕으로 어음을 발행했다. 상인들은 종이 한 장으로 자신이 맡긴 금·은을 중국 어디서나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가장 오래된 표호인 ‘르성창’(日昇昌)이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번화가 뒤편의 골목을 돌아보며 ‘명·청시대 한족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고성’이라는 수식어를 몸으로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골목길엔 울긋불긋한 홍등 대신, 누런 흙먼지를 뒤집어쓴 집들이 대부분이다. 인적이 드물어 허허롭기까지 한 골목 사이를 자박자박 걷다 보면 몇백년 전 사람들도 나와 같은 풍경을 보며 지났다는 묘한 동질감에 빠지게 된다. ●이건몐 한 그릇에 펀주 한 잔 걸치면  걷다 배가 고프면 육포 ‘핑야오 소고기’와 바싹 구운 과자 스터우빙(石頭餠)을 사먹는다. 핑야오의 이색 음식이다. 산시성의 명주(名酒) 펀주(汾酒) 한 잔 곁들이는 건 물론이다. ‘입과 눈으로 맛본다’는 면 요리도 빼놓을 수 없다. 어깨에 반죽을 올리고 칼로 빠르게 면발을 잘라내는 다오샤오몐(刀削麵), 면발을 길게 한 가닥으로 뽑아내는 이건몐(一根麵) 등은 면을 뽑아내는 과정 자체가 볼거리다.  하루를 마감하는 곳은 객잔(客棧)이다. 호텔이라기보다 술과 음식에 봉놋방까지 갖춘 주막에 가깝다. 성안에는 오래된 객잔들이 많다. 영화 ‘신용문객잔’(1992년 작)의 무대인 듯한 객잔의 정원에 앉아 와이파이로 스마트폰을 검색하는 독특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진나라의 시조 모신 진사로 발길을 타이위안 시내 인근 관광지 가운데 첫손 꼽히는 명소는 진사다. 진나라를 세운 당숙우와 그의 어머니 읍강을 모신 사당이다. 여기에 원림(園林) 문화가 덧씌워지며 독특한 건축 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5세기 북위(北魏) 시대에 처음 세워진 이후 18세기까지, 1300년 동안 증축됐다고 전해진다.  진사의 핵심 건물은 성모전(聖母殿)이다. 제사 공물을 바치는 헌전(献殿), 십(十)자형 다리 어소비량(魚沼飛梁)과 함께 진사(晋祠)의 3대 보물로 꼽힌다. 건물 내부엔 기둥이 없다. 외부를 둘러친 회랑과 처마의 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 건물 정면엔 반룡이 조각된 8개의 기둥이 있다. 900년쯤 된 것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반룡 작품으로 꼽힌다. 진사 내부의 노거수들도 잊지 말고 살필 것. 거의 대부분 2000~3000년은 족히 넘긴 나무들이다. ■여행수첩 ①6월 2일~10월 20일 인천에서 산시성 타이위안 국제공항까지 아시아나항공이 주 1회(토요일) 낮 12시 20분에 출발한다. 비행 시간은 약 2시간 20분. 시차는 한국 보다 1시간 늦다. 보딩 패스에 붙은 수하물표는 꼭 챙길 것. 수하물을 찾을 때 공항 직원에게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②산시성 국내 총판은 특수지역 전문여행사 레드팡닷컴(www.redpang.com)이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자유투어, 참좋은여행, 온라인투어 등 각 여행사에서도 연합 판매한다. 몐산(윈펑수위안 2박)~왕자다위안~핑야오구청(객잔 1박)~진사~타이위안(1박) 등을 돌아보는 4박 5일 상품이다. 69만 9000원부터(어른 기준). 유류할증료, 중국비자비는 별도다. (02)6925-2569. ③기온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뜨겁다. 다만 몐산 등 고산지대는 일교차가 커 밤에는 다소 쌀쌀할 수 있다. 연 강수량은 350~700㎜로 건조한 편이다. ④물은 생수를 사 마셔야 한다. 생수 3위안(약 550원, 1위안=약 180원), 콜라는 5위안쯤 받는다. ⑤타이위안 국제공항은 규모가 꽤 크지만 별다른 시설이 없다. 기념품 등은 핑야오구청 등에서 미리 구입하는 게 낫다. 다만 핑야오구청이 워낙 세계적인 관광지인 만큼 기념품 살 때 흥정을 잘해야 한다. 아울러 물건을 살 마음이 있을 때만 흥정하도록 한다. 가격을 깎아 놓고 사지 않는 것은 도리를 벗어난 일로 여겨져,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⑥산시성 어디서든 국수 파는 집을 흔히 볼 수 있다. 한번쯤 현지 토속 국수를 맛보는 것도 좋겠다. 대부분 한 그릇에 10위안을 넘지 않는다. 글 사진 핑야오·타이위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광진구 어린이교통기자단 17일 출범

    지난해 9월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교통안전 시범도시로 지정된 광진구가 어린이 사망원인 중 절반에 가까운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교통약자의 눈높이에서 안전하고 선진화된 생활교통 환경을 조성하는 어린이 교통기자단을 출범시킨다. 구는 17일 구청 대강당에서 발대식을 가질 예정이다. 발대식에는 초등학교 4~6학년 120명으로 구성된 기자단과 녹색어머니회, 모범운전자회,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 ㈜현대모비스 직원 80명 등 모두 200여명이 참가한다. 이 자리에서 김기동 구청장은 어린이 기자단에 위촉장과 기자증, 모자 등을 수여하고 현대모비스에서는 이들에게 호루라기가 달린 교통사고 예방용 우산과 어린이 교통안전수칙이 담긴 취재수첩을 나눠 준다. 어린이 교통기자단은 앞으로 2년 동안 현장을 누비며 교통과 관련한 기사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쓰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들이 발굴한 기사는 구 홈페이지(www.gwangjin.go.kr)와 구 소식지 ‘아차산 메아리’ 등에 실린다. 김 구청장은 “앞으로도 교통약자인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추진하는 교통정책을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3) ‘슈퍼스타 K’ 가수 김지수

    [만화는 내 사랑] (3) ‘슈퍼스타 K’ 가수 김지수

    “저에게 만화는 음악과 비슷해요. 음악은 들을 때 행복하고 할 때도 기분 좋고, 마치 쉬는 것과 같죠. 만화도 울고 웃고 감동을 느끼고 위로를 받을 수 있잖아요.” 튀는 개성을 가진 싱어송라이터 김지수(22)에게 만화는 소통의 수단이다. 학교를 다닐 때 만화는 친구들과 즐거움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해 주는 도구였다. 이후 음악에 몰두하면서 만화와 다소 멀어졌지만 지금도 만화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팬들과 교감하는 통로 중 하나다. “어려서 만화에 빠져 살았어요. ‘날아라 슈퍼보드’, ‘검정 고무신’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에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는데 주제가까지 선명하게 생각나네요.” 학창 시절 그의 미술과 음악 성적은 다른 과목 성적보다 훨씬 좋았다. 특히 만화는 보는 것만큼이나 그리는 것도 즐겼다. 어머니가 떼밀어 보낸 미술학원은 그가 그림 그리기에 더 많은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 틈이 날 때마다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보여 주곤 했단다. 일기를 만화로 채우기도 했다.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 진학한 것도 이 같은 주위 여건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교 때 만화를 그리면 옆 반의 친구들이 구경을 와서 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황당한 내용을 많이 그렸어요. 한 강아지가 불이 난 집에서 사람을 구하고 죽는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강아지 캐릭터에 담임 선생님 이름을 붙여 혼나기도 했죠.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물리치고 학교를 정복하는 이야기를 그리기도 했어요. ‘미안하다, 사랑한다’처럼 결말이 애매한 드라마를 확실하게 끝나는 내용으로 바꿔 그리기도 했죠.” 음악 쪽으로 삶의 물줄기를 돌리지 않았다면 코믹 액션 웹툰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김지수. 지금도 만화는 그와 함께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은 수첩과 4B 연필을 항상 갖고 다니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직접 그려 액자에 담아 걸어 놓는 것을 즐긴다. 이 같은 취미를 아는 팬들은 스케치북이나 색연필을 선물하곤 한다. “전 제 얼굴은 잘 못 그리는 데 이따금 제 캐리커처를 그려 보내 주시는 팬들이 있어요. 그럴 땐 더 재미있고 힘이 나죠.” 요즘엔 웹툰 보는 재미가 여간한 게 아니란다. 즐겨 보는 웹툰을 묻자 ‘갓 오브 하이스쿨’, ‘이말년 씨리즈’, ‘패션왕’, ‘폭풍의 전학생’, ‘고3이 집 나갔다’ 등을 줄줄이 쏟아낸다. 한번에 보는 분량이 짧은 게 아쉽지만 인터넷에 실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는 “‘이말년 씨리즈’는 한국의 코믹 개그 캐릭터인 점이 마음에 들고 ‘패션왕’은 요즘 친구들이 공감할 수 있는 특별한 소재를 색다른 그림체로 다뤄서 좋다.”고 평가했다. 김지수는 만화를 보고 그리며 키워 온 상상력과 감수성, 섬세함이 자신의 음악 활동에 꽤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처음으로 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을 도맡은 두 번째 미니앨범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이 앨범에서 그는 앨범 디자인을 꾸미는 작업에까지 도전했다. 노래의 느낌을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을 직접 그려 앨범 표지와 해설지에 채운 것. “가사도 손글씨로 써넣었더니 앨범이 제 자신처럼 소중히 느껴져요. 여기에다 도와준 형, 누나들의 얼굴도 하나하나 그려 넣었는데, 조금도 안 닮았다네요. 그래도 보람은 있어요. 하하하.”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탄강댐 공사로 ‘상처입은 비경’… 경기 연천 재인폭포를 가다

    한탄강댐 공사로 ‘상처입은 비경’… 경기 연천 재인폭포를 가다

    그리 밝은 곳은 아닙니다. 외려 재난이나 사고 현장을 둘러보는 다크 투어리즘에 적합한 곳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때 경기 북부 여행지의 맹주였던 연천군 재인(才人)폭포입니다. 폭포 앞에 서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존재감 넘쳤던 검은 현무암의 세계가 상처입은 몰골을 한 채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재인폭포는 눈이 아닌, 가슴으로 봐야 합니다. 사람 손에 휘둘리지 않았을 옛 모습까지 상상하면서 말이지요. 타고난 자태가 어디 가겠습니까. 비록 상처투성이 몸이지만, 기상만큼은 또렷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에 앞서 다녀오길 권합니다.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내릴라치면 폭포 앞에 발을 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니까요. ●광대의 슬픈 이야기 담긴 폭포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 했다. 재인폭포가 꼭 그 짝이다. 명줄이 끊긴 건 아니지만, 헤쳐나가야 할 앞날이 여간 드셀 것 같지 않다. 원인은 한탄강 댐이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홍수 조절을 위해 공사중인 댐인데, 이로 인해 재인폭포가 해마다 일정 기간 물에 잠기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잠기는 기간에 대해서는 저마다 말이 다르다. 댐을 만든 한국수자원공사 측은 일년에 5~7일 잠길 것이라 보고 있다. 연천군 측은 생각이 다소 다르다. 군의 한 관계자는 “물이 차고 빠지는 기간까지 포함하면 최소 한 달 정도는 출입이 힘들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잠기는 기간 또한 들쭉날쭉할 것이기 때문에 비가 많은 계절엔 재인폭포 방문이 사실상 어려울 거라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다. 한탄강댐이 만수위에 이르면 재인폭포는 완전히 물에 잠기게 된다. 폭포 주변 민가는 이미 댐 하류 쪽으로 이주했다. 꼭 만수위가 아니더라도 접근이 불가능한 건 마찬가지다. 예컨대 재인폭포가 10분의1만 잠겨도 폭포 아래 계곡은 저수지처럼 변하고 만다. 지난해 두 차례 재인폭포를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계곡 초입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 번은 많은 비로 불어난 물이 폭포가 있는 계곡의 중턱까지 차 있었고, 또 한 번은 계곡을 삼킨 물이 빠지면서 토해낸 진흙 때문에 도무지 접근할 수가 없었다. 재인폭포를 되살리자는 생각은 군과 수자원공사 모두 갖고 있다. 문제는 ‘온도 차’다. 양측은 상생협의체까지 만들어 계곡 양안을 연결하는 구름다리 조성 등의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검은 현무암이 만든 기이한 세계 재인폭포 초입, 연분홍 진달래꽃이 살랑거리며 피어 있다. 폭포로 향하는 계곡의 양쪽 절벽은 죄다 주상절리다. 수십만년 전, 철원평야의 위쪽, 그러니까 북한의 평강군 오리산 등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와 식으면서 만들어진 풍경이다. 계곡 전체의 길이는 대략 300~400m쯤. 조태곤 연천군 관광기획팀장은 “주상절리를 따라 지반이 밑으로 꺼지면서 절벽이 생겼고, 협곡 사이로 물이 흐르면서 빼어난 폭포도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게 재인폭포다. 재인폭포는 구닥다리 여행지다. 1970~80년대만 해도 경기 북부에서는 명자깨나 날렸다. 요즘엔 다르다. 올레길, 둘레길은 찾아도 낡은 여행지는 거들떠도 안 본다. 한번쯤 들어본 듯한 관광 명소를 이제야 찾게 된 것도 그런 까닭일 터다. 재인폭포에 담긴 이야기도 이른바 ‘뽕필’(예전 트로트 분위기)난다. 오래전 연천땅에 줄타기를 잘하는 재인(才人)이 살았다. 재인에겐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부인의 미색에 반한 고을 원님이 폭포에 줄을 매달아놓고 재인에게 줄놀이를 시켰다. 그리고는 재인이 줄을 탈 때 줄을 끊어 재인을 죽이고 부인에게 수청을 들라했다. 부인은 원님의 코를 문 뒤 폭포로 몸을 던져 자결했다. 마을 이름 또한 코문리였다가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고문리(古文里)가 됐다고 한다. 폐허와 다름없는 주차장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곧바로 계곡이다. 계곡 아래라고 위쪽과 다를 리 없다. 바위마다 30㎝는 족히 넘게 진흙이 쌓여 있고, 양쪽 절벽 끝자락까지 지난해의 침수 흔적이 남아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는 녹이 슬었고, 계곡 귀퉁이 팔각정도 허름하기 짝이 없다.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른 듯한 풍경이다. ●장마철 침수로 계곡은 진흙범벅 여기서부터는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 흙탕물이 누렇게 말라 버린 절벽의 뒤편은 검은 현무암 주상절리다. 진흙 뒤집어쓴 계곡 밑자락엔 미끈한 바위들과 맑은 계류가 있을 게다. 주변은 엉망이지만 그래도 폭포는 장관이다. 높이 18.5m. 각진 형광등처럼, 줄줄이 세로로 내려 선 현무암 절벽 덕에 폭포는 실제보다 훨씬 기골이 장대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폭포 아래 연못의 물빛이 곱다. 연한 파스텔톤의 옥빛이다. 포천의 비둘기낭을 연상하면 알기 쉽다. 다른 점도 있다. 비둘기낭엔 촛농 등 치성(致誠)의 흔적이 대부분이지만, 재인폭포 앞은 작은 돌탑들로 빼곡하다. 필경 재인폭포의 ‘쾌유’를 비는 기원이 담긴 돌탑들일 게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연천엔 재인폭포와 같은 현무암 주상절리가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백미는 미산면 동이리 주상절리다. 높이 40~50m의 주상절리 절벽이 1.5㎞ 정도 뻗어 있다. 한눈에 보이는 길이만 얼추 1.2㎞에 이른다. “이처럼 직선으로 뻗은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는 게 조 팀장의 설명이다. 전곡읍 은대리와 고포리, 군남면 왕림리 경계에 있는 차탄천 주상절리는 강변 바닥 근처에 절리가 형성돼 있는 것이 독특하다. 은대리 왕림교 인근의 주상절리도 웅장하다. ●과거로 가는 독특한 시간여행지 관점을 달리하면, 연천은 낡은 여행지가 아니라 학습 여행지로 손색 없다. 전곡읍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그중 앞줄에 선다. 세계 고고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1978년 한 미군 병사가 전곡리에서 아슐리안형 석기를 발견했는데, 이게 당시 고고학의 정설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아슐리안형 석기는 양쪽 면을 가공해 날을 세운 석기다.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사용됐고, 동아시아는 찍개문화였다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한룡 전곡선사박물관 큐레이터는 “아슐리안형 석기를 사용한 유럽 쪽 선사 인류가 동아시아에 견줘 한결 진화가 빨랐다는 우월 의식이 고고학계에 퍼져 있었는데, 이게 뒤집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역사교과서도 전곡리 유적의 발견으로 모두 수정됐다는 것. 쉽게 말해 동아시아의 자존심과 같은 곳이 전곡리란 얘기다. 전곡리 선사박물관엔 이 지역에 살았던 인류 조상의 모형들이 전시돼 있다. 프랑스의 라스코동굴, 스페인의 알타미라동굴 등에서 발견된 구석기인들의 동굴벽화도 재현해 놓았다. 아울러 연천읍 차탄리와 통현리 백학면 학곡리에도 다양한 고인돌 유적들이 보존돼 있다. 글 사진 연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경기 북부에서는 자유로를 타고 문산에서 빠져 전곡 방향으로 가면 된다. 연천읍내 못 미처 오른쪽으로 재인폭포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5~9월은 상시, 나머지 기간은 주말에만 개방된다. 서울 동부권에서는 의정부를 거쳐 연천 방향으로 간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송추 나들목에서 빠져도 된다. 의정부를 지나 3번국도를 타면 된다. 연천군 문화관광과 839-2061. ▶주변 볼거리:열쇠전망대는 철책선 걷기 체험이 가능한 곳. 연천군 문화관광과에 사전 신청해야 한다. 출입은 주민증만 있으면 가능하다. 단, 화요일은 출입 통제다. 전곡선사박물관(830-5628)과 전곡리선사유적지에서는 구석기시대의 문화를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다. ▶맛집:한탄강 오두막골은 가물치 구이로 유명한 집. 얼큰한 민물 새우탕이 곁들여 지는데, 제법 별미다. 832-4177. 불탄소가든의 잡고기 매운탕도 맛있다. 재인폭포 아래 있다. 834-2770. 망향비빔국수는 1968년 군인들 간식 팔면서 인기를 얻어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게 된 국수집이다. 삶은 뒤 급냉해 쫄깃한 맛을 살린 면발이 별미다. 531-2507. ▶잘 곳:초성모텔은 한국관광공사가 인증한 ‘굿스테이’ 업소다. 청산면 초성리에 있다. 835-2610.
  • [커버스토리-실종아동 가족들의 눈물] 사진·신체특징·연락처 담은 실종예방수첩 반드시 챙겨야

    [커버스토리-실종아동 가족들의 눈물] 사진·신체특징·연락처 담은 실종예방수첩 반드시 챙겨야

    자녀의 실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말이지만 자녀를 혼자 두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아이가 잠이 든 사이 부모가 “잠깐인데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외출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이가 잠에서 깬 뒤 엄마를 찾아 나서는 것은 본능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실종 아동 예방용품을 항상 휴대하게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부모나 집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 팔찌, 이름표 등을 착용하게 하는 것이다. 단 예방용품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옷·가방·신발 안쪽 등이 좋다. 유괴 가능성이 높아서다. 부모 등 보호자의 연락처가 겉으로 드러나 있으면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는 유괴범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자녀의 사진을 정기적으로 찍어 보관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녀가 실종됐을 경우 당시의 사진은 가장 중요한 열쇠다. 촬영 주기는 최대 6개월 이내로 짧아야 한다. 아이들은 성장이 빨라 오래된 사진은 별 소용이 없다. 자신의 이름과 나이, 집주소, 부모 전화번호와 이름 등을 미리 암기시켜 놓으면 찾을 때 큰 도움이 된다. 단, 처음 보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도록 평소 교육시키는 일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유괴범에게 개인 정보를 발설하면 오히려 화를 키울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경찰이나 복지사 등 도움을 주는 이들과 유괴범을 구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예를 들어 상황을 설정해 학습을 시키는 것이 좋다. 중요한 순간에 정보를 털어 놓지 않으면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어서다. 부모는 혹시 모를 자녀의 실종·유괴에 대비해 자녀가 외출할 때 입은 옷의 색깔과 스타일을 항상 기억해 두어야 한다. 누구와 어디로 가는지도 미리 파악해야 한다. 자녀와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주로 놀러 가는 장소는 어딘지 정도는 미리 알아둬야 실종 상황에서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위탁 운영하는 실종아동전문기관은 ‘아동 실종 예방 수첩’을 제작, 배포하고 있다. 수첩에는 아동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가 담겨 있다. 아동의 사진, 손가락 지문, 유전자(DNA) 견본뿐 아니라 신체 특징, 가족 연락처 등이 들어 있다. 이는 발 빠른 대처·발견·구조에 소중한 단서가 된다. 실종아동전문기관 관계자는 “자녀에게 실종 예방 3단계인 ‘멈추기-생각하기-도움 요청’ 등의 대처 방법을 확실하게 숙지시키기만 해도 자녀의 실종은 대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10)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10)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로 시작되는『목포(木浦)의 눈물』은 그 가사가 현상공개모집의 당선 작품이란 데서 또 최초를 기록한다. 이난영(李蘭影)을 얻은 OK「레코드」는 33년도에 충천하는 사세(社勢)를 과시할 겸 유행가 가사모집 광고를 냈다. 약 3천통의 응모 작품이 들어왔는데 그 중에서 뽑힌 게『목포(木浦)의 눈물』이고 작사자는 바로 목포(木浦) 출신인 문일석(文一石)이란 사람. 문(文)씨는 이 가사 하나로 가요사적 인물이 됐지만 작사 활동은 이 한편으로 끝났다.  이 가사가 마음에 들었던지 곡도 현상 모집했으나 마땅한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OK 전속 작곡가 손목인(孫牧人)에게 맡겼다.  손목인(孫牧人)은 그때『갈매기 항구』란 곡을 만들어 고복수(高福壽)한테 연습을 시키고 있었다.『목포(木浦)의 눈물』가사를 받고 보니 내용이 비슷했던지『갈매기 항구』의「멜러디」를 그냥『목포(木浦)-』에 붙여 버렸다. 결국 고복수(高福壽)는 이난영(李蘭影)한테 노래를 빼앗겼고 『갈매기-』는 날아가 버렸다.  어쨌든 이난영(李蘭影)은 이『목포(木浦)의 눈물』로 아무도 따를 수 없는「스타」가 되었다. 요즘 말로「슈퍼·스타」라 할까? 그때 돈으로 5백원씩의 월급을 받게 되었다. 일류 월급장이의 1년분 봉급에 해당했다. 당초 별로 넉넉지 못한 가정에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못받은 16살 소녀가 출가 3년만에 거둔 성공이었다. 엄청난 봉급에 OK 전속…월급장이 1년치 한달에  『회현동에 2층 양옥을 샀어요. 가 보면 없는 게 없이 꾸미고 살았어요. 특히「피아노」가 모든 연예인들의 부러움을 샀지요.』  이난영(李蘭影)보다 먼저「데뷔」한 신(申)「카나리아」의 회상이다. 그 때만 해도 가수가「피아노」를 갖는다는 건 하나의 꿈었다고.  신(申)「카나리아」가 이난영(李蘭影)을 처음 만난 것은 이(李)씨가 단성사에서 조선악기단의 막간 가수로 나왔을 때.『귀엽고 똑똑하게 생겼는데 화장할 줄을 몰랐어요. 내가 화장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머리를 빗겨 줬더니, 두고두고 그때 얘길 하더군요. 착하고 눈물 많은 애였어요』  이난영(李蘭影)의 오빠 이봉용(李鳳龍)은 목포(木浦)를 소재로 한 또 하나의 노래『목포(木浦)는 항구(港口)다』를 만들어 동생이 부르게 했다. 박남보(朴南甫) 작사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①영산강(榮山江)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삼학도(三鶴島)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그리운 내고향 목포(木浦)는 항구다/똑딱선 운다.  ②유달산 잔디 위에 놀던 옛날도/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그리운 내 고향 목포(木浦)는 항구다/추억의 고향  이 노래 역시 크게「히트」했고『목포(木浦)의 눈물』과 함께 아직도 애창되는 노래다. 이난영(李蘭影) 남매의 고향 목포(木浦)가 그렇게 좋은 곳일까?  사실 그때만 해도 목포(木浦)는 개항장(開港場)이기는 했으나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한산하고 쓸쓸한 항구, 그것이 이난영(李蘭影)의 노래 때문에 일약 정서와 낭만이 깃들인 명승지로「글로즈 업」된 것이다.  창씨개명(創氏改名)이 실시된 뒤 이난영(李蘭影)은「오까광고(岡蘭子)」란 일본 이름으로 이『목포(木浦)의 눈물』을 일본말로 취입했다. 일본말 노래는 20년대에 이미 채규엽(蔡奎燁)이「하세가와(長谷川史郞)」란 이름으로 취입한 일이 있다.  일본 노래로 된『목포(木浦)의 눈물』은 그 뒤에 손목인(孫牧人)이 만든 몇개의 노래와 함께 상당히 많이 팔려 나갔다. 이미자(李美子)가 도일(渡日)했을 때도 이『목포(木浦)-』를 일어로 취입했고 최근엔 남상규(南相奎)에 의해서 다시 일본 노래『목포(木浦)의 눈물』이『리바이벌』됐다.  덕택에 일본서 인세를 받고 생활해 나가는 한국인 작곡가가 탄생했다. 손목인(孫牧人)이 바로 그 사람. 손(孫)씨는 6·25때 도일(渡日)한 뒤 동경(東京)에 정착, 그곳에서 가요학원을 경영하고 있다. 남편 김해송(金海松)의 납북 이후 아들 딸들을 보컬로 키워 가요계의 여왕 이난영(李蘭影)은『목포(木浦)-』다음으로『알아 달라우요』『해조곡(海鳥曲)』『진달래 수첩』『울어라 문풍지』『다방의 푸른 꿈』등 수많은「히트·송」을 계속해서 내놓았다. 가수로서의 그는 누구보다 화려하게 살다 갔다.  그러나 사생활은 항상 외로움에 우는 여인이었다. 남편이 가진 수많은 여자와의 관계가 그렇게 만들었고 그나마 남편이 납북당한 뒤에는 더욱 그랬다. 서대문형무소에 남편 김해송(金海松)이 갇혀 있을 때 이난영(李蘭影)은 얼굴에 숯검정을 바르고 걸인으로 변장하여 형무소 주변을 맴돌았다 한다.  김해송(金海松)이 납북된 뒤 이난영(李蘭影)은 가수 남인수(南仁樹)에 위탁해서 외로움을 달래려 했다. 그러나 그마저 먼저 세상을 떠난 것.  김(金)「시스터즈」와 김(金)「보이스」7남매를 지금의 일류「보컬·그룹」으로 키운 건 이난영(李蘭影)의 노래에 대한 애정 때문으로 해석된다. 생활이 어려워졌을 때도 그는「피아노」만은 팔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6·25때 드디어 모든 세간이 없어진 뒤 그녀는 손바닥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아들 딸한테 노래를 가르쳤다.『가수는 노래를 계속하기 위해 작곡가와 결혼하는 게 옳다』는 주장을 후배한테 얘기했고 평소『자식들을 가수로 키우는 게 남겨진 의무』라고 그녀는 말해 왔다. 70년도에 김(金)「시스터즈」는 미국에서 금의환향하여 서울 시민회관에서 어머니 추모 공연을 열었다.  흘러간 가요계 여왕 이난영(李蘭影)의 노래는 그녀의 분신들에 의해 지금도 계속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조관희(趙觀熙)기자>  [선데이서울 73년 3월 11일 제6권 10호 통권 제230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9)

    사연따라 연예반세기(演藝半世紀)…그시절 그노래(9)

     ①능라적삼 옷깃을 여미고 여미면서/구슬같은 눈물방울 소매를 적실 때/장부에 철석간장이 녹고 또 녹아도/한양가는 청노새 발걸음이 바쁘다.  ②금의환향 하실 날 바라고 바라면서/송죽매란 사군자로 수놓아 드릴 때/낭자에 일편단심 참고 또 참아도/해 떨어진 석양길에 솔바람이 차고나  <김능인(金陵人) 작사·문호월(文湖月) 작곡『불사조(不死鳥)』  30년대로 접어들면서 가요계가 얻은 가장 큰 수확으로 이난영(李蘭影)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64년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년간「가요계의 여왕(女王)」이었고 바로「가요계의 여왕(女王)」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불사조(不死鳥)』는 이난영(李蘭影)의「데뷔」곡이다. 31년도에 만들어져 이난영(李蘭影)이 OK「레코드」에서 취입했다.  가사 내용은 남녀간의 애틋한 이별을 그린 것 같지만 제목은 거창하게도『불사조(不死鳥)』.  이난영(李蘭影)은 16살에「태양(太陽)극단」의 막간 가수로「데뷔」했다.「토월회(土月會)」의 후신인「태양(太陽)극단」이 목포(木浦) 공연을 갔을때『가수가 되고 싶다』고 무대 뒤로 찾아온 아가씨가 바로 이난영(李蘭影). 본명은 이옥례(李玉禮)로 작곡가 이봉용(李鳳龍)의 누이동생이었다.  「태양(太陽)극단」의 박승희(朴勝喜)씨는 이 무명의 신인 가수를 그 길로 일본(日本)교포 위문공연에 참가시켰다. 노래를 들어보고는 곧 재능을 인정했고 난초처럼 청초하다고「난영(蘭影)」이란 예명을 지어줬다. 그때 공연「포스터」에는「천재가수(天才歌手) 등장」이라고 자못「스타」취급을 해줬고 끔찍이 귀여움을 받았다.  이난영(李蘭影)의 출세는 이 1개월간의 재일교포 위문공연에서 굳어졌다.「태양(太陽)극단」에는 석금성(石金星) 김연실(金蓮實) 강석연(姜石燕) 최승이(崔承伊) 최은연(崔銀燕) 등 쟁쟁한 연기자들이 있었다. 견습가수 격인 이난영(李蘭影)은 막간에『아리랑』『도라지타령』을 불러 교포들의 인기를 독점했다. 그 무렵은『도라지타령』이 굉장한 인기「넘버」였고 그래서 이 노래는 선배들이 독점했는데 마침내 이난영(李蘭影)도 얻어 부르게 된 것. 비음이 섞인 축축한 목소리로 불러 넘기는 타령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어서 마침내 이난영(李蘭影)의『도라지타령』이 되고 말았다.  16살때 태양(太陽)극단 들어가…일본(日本)공연서 일약 스타돼 일본 공연에서의 인기가 이쯤되자「레코드」사의 손길이 재빨리 작용됐다. 맨 먼저「스카우트」의 손길을 편 게 OK「레코드」의 이철(李哲).  대판(大阪) 공연길에서 이난영(李蘭影)은 그때 그곳에서 음악공부를 하던 강사랑(姜史浪)과 조일(朝日)악기점 주인(성명 미상)을 만났다.  강사랑(姜史浪)은『감격시대(感激時代)』『굳세어라 금순아』등의 가사를 만든 작사가. 강(姜)씨는 그때 마침 대판(大阪)에 와 있던 이철(李哲) 사장한테 이난영(李蘭影)을 추천했고 이철(李哲)은 즉석에서 전속계약을 맺어 버렸다.  여기서 취입한 노래가『불사조(不死鳥)』와『봄맞이』(윤석중(尹石重) 작사 문호월(文湖月) 작곡)다. 문제는 그 다음 일어났다.「태양(太陽)극단」은 애써 뽑아 놓은 유망주를 하루 아침에 OK에게 빼앗기게 됐기 때문이다. 춘강(春崗) 박승희(朴勝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항의를 했지만 이난영(李蘭影) 자신이『OK에 있겠다』고 잘라 말하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또 하나의「에피소드」는 OK 전속이 된 줄 알면서도 살짝 다른「레코드」사에서 이난영(李蘭影)의 노래를 취입시킨 사건이다. 그때 송죽(松竹)영화사의 음악전담 겸 태평(太平)「레코드」의 전속 작곡가 김준영(金駿泳)이 이난영(李蘭影)의 재능에 취해서 OK 몰래 취입을 했다. 영문을 모르는 이난영(李蘭影)은 김준영(金駿泳)이 시키는대로「태평(太平)」쪽에도 취입을 하고 귀국.  이난영(李蘭影)의 첫 취입한『불사조(不死鳥)』는 국내에서「클린·히트」를 했다. 이에 뒤질세라 태평(太平)「레코드」에서도 이난영(李蘭影)의 노래(곡목 미상)가 나왔다.깜짝 놀란 이철(李哲)은 태평(太平)을 걸고 고소를 제기. 이것이 가수의 전속 문제를 둘러싼 소송사건 제1호가 됐다. 결말은 물론 먼저 계약한 OK쪽이 이겼지만.  태평(太平)「레코드」는 한동안 이난영(李蘭影)을 납치해서 감시원을 두고 연금했는가 하면 OK측은 사원들이 총 동원돼 변장까지 하면서 이난영(李蘭影) 색출작전을 폈다.  치열한 스카우트 싸움에 전속 소송까지 이난영(李蘭影)의 오빠 이봉용(李鳳龍)은『낙화유수(落花流水)』『아주까리 수첩』(백연설(白年雪) 노래)『고향설(故鄕雪)』(최병호 노래)『목포(木浦)는 항구다』 등을 작곡한 대가였다. 김(金)「시스터즈」숙자(淑子) 애자(愛子) 민자(民子)의 민자(民子)가 바로 그의 딸. 72년도에 미국에 있는 딸의 주선으로 일가족이 모두 미국 이민을 했다.  이난영(李蘭影)의 남편 김해송(金海松)은「하와이언·기타」의 명수였고 타고 난 편곡가였다.(작사가 고명기(高明基)씨의 딸) 장세정(張世貞)의『역마차』『연락선은 떠난다』『코스모스 탄식』(박향림(朴響林) 노래) 등 손꼽을 수 없을만큼 많은「히트」곡을 작곡했다. 이난영(李蘭影)과는 초혼이었지만 염문이 하도 많아서 이난영(李蘭影)의 속을 무던히 썩였다.(신(申)카나리아 말)  『연애를 해도 감쪽 같이 했다. 이난영(李蘭影)과 2년간 연애했는데 아무도 몰랐다. 이철(李哲) 사장은「스캔들」있는 사원은 당장 내쫓았지만 김해송(金海松)·이난영(李蘭影)만은 특별「케이스」로 눈감아 주었다』(조춘영(趙春影) 말)  『한번은 난영이가 소양강에 투신했었어요. 결혼한 지 3년쯤 지나서인데 남편의 바람기가 자지 않았던가 봐요. 뱃사공한테 발견되어 익사 직전에 구출됐는데 이렇게 속 썩고 살아 뭣 하느냐고 서럽게 울더군요』(신(申) 카나리아 말)  김해송(金海松)은 50년 6·25때 공산군에 잡혀 납북되었다. 그의 작곡들은 처남 이봉용(李鳳龍)이 일부「어레인지」했고 문헌에는 거의가 이봉용(李鳳龍) 작곡으로 나와 있다.<조관희(趙觀熙)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3월 4일 제6권 9호 통권 제229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산·물·바람이 머무는 곳…충북 제천 옥순봉

    산·물·바람이 머무는 곳…충북 제천 옥순봉

    옹골차다. 속이 꽉차서 건실하다는 뜻입니다. 충북 제천의 옥순봉에 서면 이런 비유가 대단히 적절하다는 느낌을 단박에 갖게 됩니다. 금수산과 가은산 등 충북의 명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쳤고, 그 사이로 연둣빛 남한강이 유장하게 흘러갑니다. 어디 하나 덧대고 뺄 것 없는, 그야말로 옹골찬 풍경입니다. 높아야 빼어난 전망대는 아닐 겁니다. 얼마나 다양하게 풍경의 정수를 수렴하고 있느냐가 보다 중요한 거겠지요. 286m 낮은 키의 옥순봉이지만 청풍호(충주호) 최고의 전망대란 헌사를 붙일 수 있겠다는 확신은 그래서 생겼습니다. 높다고 빼어난 전망대일까…낮지만 옹골찬 봉우리 제천과 단양 지역 주민들에게 ‘충주호’는 없다. ‘청풍호’만 있을 뿐이다. 이기석 단양군 문화관광해설사가 전하는 사연은 이렇다. 충주댐이 조성되기 전, 강원 정선에서 흘러온 남한강물이 도담(삼봉)과 구담 등을 거쳐 현 청풍문화재단지 앞에서 큰 호수를 이뤘다. 당시 호수의 이름도 청풍호였다는 것. 이는 호수 인근의 옛 지명이 청풍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청풍에서 좀 더 하류 쪽, 그러니까 현재의 충주 지역에 댐이 생기면서 호수의 이름도 충주호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댐 조성으로 생긴 담수호라서 단순하게 충주호라 부르기보다는 옛 이름을 살리는 것이 옳지 않겠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람이 정한 이름이 무엇이든, 호수에 산과 물 그리고 바람이 잘 어울려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상류 쪽의 옥순봉과 구담봉 일대는 청풍호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경승지로 꼽힌다. 옥순봉은 주로 눈요기의 대상이다. 대부분 유람선을 타고 가며 아래서 완상하길 즐긴다는 뜻이다. 이름의 연원만 봐도 그렇다. 퇴계 이황(1501~1570)이 ‘비온 뒤 솟아나는 옥빛(玉)의 대나무 순(荀)을 닮았다.’고 한 이래 여태 ‘옥순봉’이라고 불린다. 즉 아래서 올려다본 천길단애가 옥순봉이란 얘기다. 그런데 아마도 퇴계는 옥순봉 위에까지 오르지는 않은 듯하다. 그가 옥순봉 정상에서 사방을 굽어보았다면 다른 이름을 지었을 게 분명하다. 그만큼 옥순봉은 청풍호의 첫손 꼽히는 볼거리이면서, 최고의 전망대 노릇까지 겸하고 있다. 옥순봉과 구담봉은 이웃하고 있다. 떨어져 있되 한 몸이나 다름없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옥순봉은 제천, 구담봉(330m)은 단양에 속해 있다. 각각 등산하자면 옥순봉은 2시간 남짓, 구담봉은 3시간이 족히 걸린다. 대개는 둘을 묶어 돌아본다. 난이도는 구담봉 코스가 훨씬 높다. 따라서 구담봉을 먼저 본 뒤 옥순봉 나들이에 나서는 게 좋다. 들머리는 계란재다. 36번 국도변 국립공원탐방지원센터가 있는 곳이다. 농장터~갈림길(공원지킴터)~옥순봉~갈림길~구담봉~지원센터까지 되돌아오는 데 6.3㎞쯤 된다. 전체적인 난이도가 낮다고 알려져 있으나 얕보다간 큰코다친다. 산행시간도 5~6시간은 족히 걸린다. 단양 8경 적시는 퇴계와 기생 두향의 사랑이야기 옥순봉과 구담봉은 저 유명한 ‘단양 8경’의 4경과 3경이다. 그런데 제천에 속한 옥순봉이 단양8경의 하나가 된 사연이 재밌다. 그 과정에 퇴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퇴계는 48세 때인 명종 3년(1548년)에 단양군수를 자원해 내려온다. 단양의 풍수를 아낀 퇴계는 도담삼봉, 사인암 등 단양의 명소들에 이름을 지어 주다 옥순봉에 이르게 된다. 그가 단박에 옥순봉의 자태에 매료된 것은 당연한 수순. 그런데 아쉽게도 옥순봉이 속한 곳은 청풍이었다. 퇴계는 곧바로 청풍부사를 찾아가 옥순봉이 있는 괴곡리를 단양에 양보해 달라고 청원했으나 거절당하고 만다. 빈손으로 돌아오던 퇴계는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고 새겨 넣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풀자면 ‘신선으로 통하는 문’<서울신문 2005년 2월 15일 자 ‘유림’ 참조>이란 뜻이다. 훗날 청풍부사가 이를 보고는 옥순봉을 단양에 양보, 마침내 ‘단양8경’이 완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녹록지 않은 산길을 이러구러 돌아 구담봉에 선다. 멀리 장회나루 맞은편 산자락 아래는 강선대다. 갈수기 때에만 드러나는 바위로, 퇴계와 두향의 절절한 로맨스가 전해오는 바위다. 서울신문에 2004년 1월 5일~2006년 12월 30일 연재됐던 최인호 작가의 역사소설 ‘유림’ 가운데 이들의 로맨스를 묘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요약하면 이렇다. 단양군수에서 풍기군수로 발령난 퇴계가 두향과 보내는 마지막 밤, 두향은 퇴계에게 은장도를 주며 자신의 젖꼭지 하나를 베어 달라 청한다. 이는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동종에 얽힌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 고향을 떠나 오대산 상원사로 향하던 동종이 죽령 고개에 이르러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자, 운반 책임자가 동종의 핵심 울림 도구인 36개 젖꼭지(뉴·?) 가운데 하나를 잘라 안동 도호부 남문루에 묻어 줬고, 그제서야 동종이 미련을 버리고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결국 두향의 ‘발칙한’ 제의는 자신의 젖꼭지 하나를 정표로 잘라 줘야 퇴계를 보내주겠다는 앙탈이자 간청이었던 셈이다. 차마 젖꼭지를 잘라낼 수 없었던 퇴계는 두향의 저고리 깃을 잘라 이별의 정표로 준다. ‘할급휴서’(割給休書)다. 잘라낸 세모꼴의 옷섶이 나비를 닮았다 해서 ‘나비’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당시 서민사회에선 일종의 이혼증서로 쓰여졌다고. 두 사람에겐 연분을 끊는 이연장(離緣狀)이었을 터다. 나비를 받아든 두향은 퇴계의 복잡한 심경을 알아채고는, 자신이 죽은 뒤 옷섶을 둘의 추억이 깃든 강선대에 함께 묻겠다는 말과 함께 이별을 받아들인다. 훗날 퇴계의 요청으로 기적(妓籍)에서 지워진 두향은 멀리서 퇴계를 받들며 수절했다. 그러다 퇴계가 죽자 자신도 강선대에 투신, 임의 뒤를 따르고 만다. 강선대에서 수십m 떨어진 산자락에 지금도 두향의 묘지가 있다. 원래 더 아래쪽에 있었으나 충주댐 조성 당시 수몰될 뻔한 것을 현재의 장소로 이장했다. 두향의 묘는 남한강을 격하고 보더라도 제법 번듯하게 정비돼 있다. 이기석 해설사는 “원래 두향의 성은 안씨였던 것으로 전해진다.”며 “안씨 문중에선 그를 가문의 수치로 여겨 돌보지 않았는데, 퇴계의 학문을 잇는 영남학파 사람들이 해마다 두향제를 지내는 등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너럭바위 너머 금수산·남한강이 그려낸 수채화 구담봉에서 옥순봉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온 길을 되짚어 가거나 천길단애를 내려간 뒤 강변을 따라 걷다 옥순봉에 오른다. 산꾼들은 대체로 후자를 택하지만 고되고 험하다. 전문 가이드가 없거나 가족 단위 등반객이라면 온 길을 되짚어 가길 권한다. 공원지킴터에서 옥순봉까지는 급한 내리막과 오르막이 번갈아 이어진다. 예서 정상까지는 30~40분이면 충분하다. 옥순봉 정상에서 만나는 풍경이 실로 장하다. 너럭바위 너머 금수산과 남한강 물줄기가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다. 금수산의 옛 이름은 백암산이다. 흰색(白)의 거대한 바위(岩)들이 절경을 펼쳐 내는 산이란 뜻이다. 훗날 퇴계가 비단(錦) 위에 수(繡)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며 금수산이라고 개칭했다. 옥순봉 정상 아래 있는 너럭바위의 자태도 여간 빼어나지 않다.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에서 인상적인 엔딩 장면을 선보였던 너럭바위로, 폭은 좁되 아래로 길게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제천시에 속한 땅. 먼 옛날 퇴계와 청풍부사가 그랬듯, 오늘날 제천시장과 단양군수 간에도 ‘통 큰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옥에 티 하나. 옥순봉 정상 표지석엔 높이가 286m라고 표기돼 있다. 하지만 등산안내도 등은 283m라고 적고 있다. 서둘러 산의 높이를 통일하는 게 좋겠다. 옥순봉에서 바라본 청풍호 전경. 옥빛 호수와 우람한 산들, 그리고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남성의 ‘알통’처럼 불퉁 솟은 왼쪽의 암봉은 단양의 진산 금수산이다. 글 사진 제천·단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4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만종 분기점→중앙고속도로→북단양 나들목→5번 국도 충주방향→북하삼거리에서 36번 국도→장회나루. 단양 관광안내소 422-1146. ▶맛집:얼음골맛집(422-6315)은 매운탕과 묵밥이 유명하다. 장회나루에서 단양 쪽으로 3㎞ 정도 떨어져 있다. 장다리식당(423-3960)은 마늘솥밥을 잘한다. 쌈밥정식을 내는 돌집식당(422-2842), 더덕주물럭을 내는 자연식당(422-1806), 올갱이국의 경주식당(423-0504)도 입소문 난 집들이다. ▶잘 곳:가족이나 친구끼리 여행길에 나섰다면 대명리조트 단양이 제격이다. 객실과 아쿠아월드(2명)로 구성된 ‘아쿠아월드2’ 패키지를 5월 31일까지 판매한다. 패밀리타입은 주중 11만 2000원(토요일 15만 7000원)이다. 1588-4888. 단양읍 별곡리 리버텔(421-5600), 단성면 팔경모텔(421-2900) 등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굿스테이’ 업소들이다.
  • MB “5월 급여 ‘통일항아리’ 넣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28일 ‘통일 항아리’ 기금에 5월 월급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통일 기금의 필요성을 거론하자 “5월 월급을 통일 항아리에 넣겠다.”고 말했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그러자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그것(이 대통령의 기부)을 통일 항아리 1호로 해야겠다.”고 말했다. 통일 항아리는 옛 서독이 통독에 대비해 ‘연대기금’을 조성한 것처럼 남북통일 비용을 미리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통일부가 기획한 기금이다. 그러나 18대 국회에서 관련 법이 처리되지 않아 모금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여야 정치권에 통일기금 관련 법 처리를 압박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회의 도중 자신의 수첩을 뒤적이면서 과거 국책연구소장들과의 외부 토론에서 ‘연구소 정원 자율조정권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받았던 사실을 꺼내며 관계 국무위원들에게 “그 문제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이 대통령은 관계 장관들이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하자 “밖에 나가서 그런 회의를 하는 것은 돌아와서 바로 해결하자고 하는 것”이라면서 “내년까지 미룰 것도 없이 이달 중에 그게 가능한지 해당 부처가 모여 좀 해결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들은 5월 1일 실무회의를 열어 국책연구소 정원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길섶에서] 수첩/곽태헌 논설위원

    며칠 전 수첩을 잃어버렸다. 동료와 1차로 저녁을 한 뒤 2차로 맥주를 마시고 귀가했는데 양복 주머니에 있어야 할 수첩이 없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수첩에 비밀스러운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전화번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인들과의 점심·저녁 약속 날짜를 알 수 없어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할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요즘에는 휴대전화에 일정을 기록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그렇게 할 정도로 기기에 친숙하지도 않아 그런 휴대전화도 없다. 출근하자마자 전날 들렀던 두곳에 전화했으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맥줏집에는 직접 갔으나 허사였다. 2차 때 지인과 전화하면서 수첩을 꺼낸 것 같았는데 기억이 확실하지도 않았다. 안절부절못하던 중 함께했던 동료를 만나 수첩을 돌려받으니 여간 기쁘지 않았다. 동료는 수첩 색깔이 비슷해 착각했다고 한다. 수첩을 또 분실할지도 모르니 달력에 메모하는 등 2중, 3중의 안전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나쁠 건 없을 터.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최시중 사전영장 청구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센터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는 26일 ㈜파이시티 이정배(55) 전 대표로부터 인허가 등 청탁과 함께 수억원을 받은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실질심사는 오는 30일 서울중앙지법 박병삼 영장전담판사의 심리로 열린다. 최 전 위원장은 2007~2008년 브로커 이동율(61·구속)씨를 통해 이 전 대표의 돈 5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씨가 최 전 위원장에게 돈을 전달할 때 이씨의 운전기사 최모(44·구속)씨가 휴대전화로 촬영한 ‘돈다발 쇼핑백’ 사진 사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최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1시쯤 14시간여 동안의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국민 모두에게 사죄하고 싶다. 몸둘 바를 모르겠다”면서 “대통령이 해야 할 과제가 많은데 짐이 된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에 대한 영장청구와 함께 이 전 대표로부터 10억여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박영준(52)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소환 계획은 없지만 오늘부터 본격 수사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씨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이씨가 최근까지 만난 인사들의 이름과 약속 장소 등의 메모 등이 담겨 있는 수첩을 확보해 내용을 정밀 분석하고 있다. 파산신청 등 파이시티 사업의 위기였던 지난해 로비가 집중됐을 것으로 보고, 이씨의 동선 및 면담인사 등의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은 또 이 전 대표가 “최 전 위원장을 통해 권재진(현 법무부장관) 민정수석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에게 구명 로비를 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진위 및 청탁 성공 여부 등을 파악하고 있다. 박 전 차관이 압수수색 하루 전인 지난 24일 대구 선거사무실 물건들을 모두 모처로 옮겨 증거인멸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당시 별다른 게 없어 관계자 협조를 받아 짐을 옮겨 놓은 장소를 확인해 필요한 자료를 가지고 왔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전 대표가 이씨에게 건넨 로비 자금에 대해 “현금으로 40억원, 계좌로 11억 5000만원을 줬고, 2008년 1월에는 박 전 차관 이사 비용으로 10억원을 이씨를 통해 계좌로 보내 줬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 박 전 차관이 실제 10억원을 받았는지 계좌추적 등을 통해 확인 중이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청도에서 만난 세 가지 추억…산과 물, 인심 맑은 三淸의 땅

    청도에서 만난 세 가지 추억…산과 물, 인심 맑은 三淸의 땅

    파릇한 잎, 울긋불긋한 꽃. 산과 들이 색색으로 물듭니다. 그야말로 화양연화(花樣年華)입니다. 내 나라 안 구석구석이 가장 화사해지는 이때, 경북 청도를 찾아 나섰습니다. 산과 물, 그리고 인심이 맑아 ‘삼청(三淸)의 땅’이라고도 불리지요. 어디 맑기만 한가요. 산마루 곳곳에 살구꽃, 벚꽃이 흐드러지고, 마을 어귀의 연분홍 복사꽃은 한없이 객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혹시 가을철 ‘청도 반시’의 고장으로만 기억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청도의 절반밖에 보지 못한 것입니다. 시인의 연정, 그리고 편지 파란 하늘. 눈이 부시다. 시골마을 내호리를 찾아가는 길이다. 청마 유치환(1908~1967)에게서 5000여 통의 연서를 받았다던 여류 시인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다. 어렵게 찾아간 이호우·이영도 시조시인 생가(등록문화재 제293호)의 대문은 그러나 굳게 잠겼다. 시인과 외사촌 사이라는 옆집 노부부의 양해를 얻어 2층 베란다에서 생가 안쪽을 살핀다. 천리향의 그윽한 향기가 코를 간질이고, 뜨락엔 키 작은 풀들이 뾰족뾰족 자라고 있다. ‘ㄱ’자 모양의 담벼락 옆엔 허우대만 컸지, 도무지 튼실해 뵈지 않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필경 시인 오누이도 저 나무 아래서 술래잡기,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을 게다. 정운 이영도(1916~1976)와 유치환, 두 시인의 사랑이야기는 애틋하기 짝이 없다. 이종기 청도군청 문화관광해설사 등에 따르면 경남 통영여자중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청마는 같은 학교 가사교사 정운에게 마음을 빼앗겨 거의 매일같이 연서를 보내 구애했다. 1947년부터 1967년 청마가 사망할 때까지, 무려 20년 세월이다. 그동안 보낸 편지가 5000통을 넘는다. 청마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물같이 까딱않는데//날 어쩌란 말이냐”라고 절규하면 정운은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청마는 이미 결혼한 몸. 정운 또한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딸을 키우는 형편이니 그 사랑이 온전하게 결실을 맺을 리 없다. 결국, 청마는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란 시를 남기고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이영도 시인은 그에게 받은 편지 중 200여 통을 추려 서간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낸다. 시인의 생가 앞쪽 길은 꼭 영화 세트장 같다. 흙으로 쌓은 담과 여닫이 나무문이 달린 ‘영신정미소’,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사료판매소’, LP판에서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올 듯한 ‘중앙소리사’ 등 낡은 풍경들이 이어져 있다. 시인의 집 바로 앞은 오래된 극장 건물이다. 영사기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영화를 보려고 줄 섰던 사람들 틈에서 시인 남매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가에서 50m쯤 떨어진 강변에 오누이 공원이 조성돼 있다. 동창천과 청도천의 함수머리로, 강물은 이웃한 밀양시에 접어들면서 밀양강으로 이름이 바뀐다. 공원은 단출하다. 남매를 기리는 시비 두 개와 몇 그루의 벚나무, 정자 한 채가 고작이다.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정감이 간다.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花樣年華)라 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이다. 시인의 생가가 있는 청도의 끝자락에서 안쪽으로 되짚어 가는 길이 그렇다. 살구꽃, 자두꽃이 흐드러지고, 복사꽃도 연분홍으로 물들었다. 특히 청도는 복숭아 산지로 명성이 자자한 곳. 보이느니 복숭아밭이요, 즈려 밟고 가는 땅 위는 죄다 복사꽃잎이다. ‘새마을 운동 발상지’인 신도마을 앞 능수버들의 실핏줄 같은 가지엔 초록의 기운이 완연하다. 청도는 날개 펼친 나비를 닮았다. 도시가 옆으로 펼쳐진 형국이다. 이종기 해설사에 따르면 곰티재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산동, 왼쪽은 산서 지역으로 갈린다. 각 지역의 정서도 조금씩 다르단다. 평탄한 산서 쪽과 달리 산동 쪽은 상대적으로 험하다. 초야에 묻혀 살길 원했던 양반들의 고택이 즐비하고, 운문사 등 대가람도 산동 쪽에 몰려 있다. 매전면 동산리의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295호)와 하평리 은행나무(도 기념물 109호) 등을 줄줄이 지나면 금곡리 삼거리다. 동창천 맑은 물이 흐르는 삼거리 가운데엔 삼족대(三足臺)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대유가 후학양성의 근거지로 삼았던 정자다. ‘요족하지 않아도 먹을 게 떨어지지 않고, 나이 60세 넘게 산 데다, 벼슬도 할 만큼 했으니 이만하면 족하지 않으냐.’고 길손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갈래길 어느 쪽으로 가도 운문사에 가 닿지만, 다리 건너 오른쪽 길을 ‘강추’한다. 여든여덟 칸짜리 운강고택과 만화정 등 청도를 대표하는 고택과 정자가 죄다 이 길가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선암서원도 잊지 말고 돌아봐야 한다. 길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 지나치기 십상이다. 삼족당 김대유와 소요당 박하담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크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건물마다 세월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신지리와 이웃한 임당리 마을의 김씨 고택도 독특하다. 임진왜란 직전부터 16대에 걸쳐 내시(內侍)들이 살았던 고택이다. 성이 다른 내시를 양자로 들이다가 18대 이후부터 자식을 통해 대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세상 모든 존재에게 진리를 발걸음을 채근해 신라 고찰 운문사로 향한다. 국내의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이다. 가람 초입, 수백m 늘어선 솔숲이 객을 맞고 있다. 자태 단아하고 공기는 청량하다. 소나무 사이사이 진달래가 활짝 피어 화사함을 더하고 있다. 운문사에 들기 전, 꼭 찾아야 할 곳이 북대암이다. 솔숲 진입로를 지나면 왼편에 북대암 오르는 길이 나온다. 산자락 8부 능선까지 차로 오를 수 있으나, 그 뒤로도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북대암에 서면 운문사 대가람의 전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인 동시에 수백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4년제 승가대학이다. 여승들의 수도 도량답게 깔끔하면서도 화사하다. 하지만 객들이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은 여느 사찰에 견줘 매우 적다. 운문사에선 ‘사물’소리를 꼭 들어야 한다. 가죽 있는 축생에게 진리를 전한다는 ‘법고’, 물속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목어’, 하늘을 나는 새와 허공을 헤매는 영혼을 천도하는 쇠로 된 ‘운판’, 지옥의 중생까지 제도한다는 ‘범종’을 통틀어 ‘사물’이라고 부른다. 새벽예불 직전과 저녁 공양 이후(오후 5시 45분경) 사찰 입구의 2층 종각에서 울려 퍼지는 사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운문사는 법보의 보고이기도 하다. 비로전(보물 제835호), 삼층석탑(678호) 등 보물이 7개다. 만세루 옆 처진 소나무는 천연기념물(180호)이다. 이 나무는 해마다 음력 삼월삼짇날 막걸리 12말을 받아먹고 기를 보충한다. 글 사진 청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중부내륙고속도로나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대구JC에서 신대구~부산간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청도나들목으로 나온다. 조금 더 내려가 매화로 유명한 삼랑진 나들목에서 되짚어 올라오는 것도 좋다. ▶맛집:청도읍 한재미나리마을은 평일에도 식도락가들로 북적댄다. 방문객이 돼지, 오리고기를 사와 농가 미나리밭에서 구워 먹는다. 미나리 한 접시에 1만원 안팎이다. 마을 초입에 미나리와 고기 일체를 파는 일반 식당도 즐비하다. 청도역 앞은 추어탕 거리다. 원조 청도추어탕(371-5510) 등이 알려졌다. 금천면 동곡리의 강남반점(373-1569)은 ‘스님짜장·짬뽕’으로 입소문이 났다. ▶잘 곳:비슬리조트관광농원(372-0900)은 한국관광공사 지정 ‘굿스테이’ 업소다. 각북면에 있다. 선암서원(070-4150-8445)은 한옥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 “최시중에 20억 줬다”

    “최시중에 20억 줬다”

    서울 양재동 대규모 복합유통센터 개발 사업 시행사인 ㈜파이시티의 인허가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 검사장)는 이정배(55) 전 파이시티 대표로부터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20억여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검찰은 25일 오전 10시 최 전 위원장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 이 전 대표의 진술 등을 토대로 금품수수 규모와 대가성 여부, 용처 등을 캐물을 방침이다. 검찰은 일단 현재 확인된 11억여원의 로비자금 가운데 5억~6억원이 최 전 위원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파악한 상태다. 검찰은 브로커 이동율(61·구속)씨가 혐의를 줄곧 부인하다 수사에 협조하는 등 태도 변화를 보임에 따라 최 전 위원장의 혐의 입증에 문제 없다는 분위기다. 검찰은 또 이 전 대표가 인허가 청탁 대가로 박영준(52)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전달하라며 브로커 이씨에게 수억원을 건넸다는 진술도 받았다. 이 전 대표는 브로커 이씨로부터 박 전 차관에게 10억원을 건넸다는 말을 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날 대선자금도 수사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파이시티의 인허가 로비 수사다.”라고 규정하면서도 “그러나 나오면 나오는대로 한다.”며 수사에 한계를 두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은 전날 이미 “최 전 위원장이 받은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도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힌 터다. 대선자금을 폭넓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어서 주목된다. 검찰은 또 이 전 대표와 함께 파이시티의 공동대표로 올라 있는 이모씨의 역할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이씨는 검찰 고위직을 지낸 C씨와 동서지간이다. C씨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씨와는 먼 동서지간”이라면서 “저와의 관계를 이야기했을 수는 있겠지만 저를 판다고 해서 로비가 가능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사업권 유지가 위태롭던 지난해 이씨를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인 파이시티 관련 고소 사건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진행한 이 전 대표의 횡령·배임 사건 관련 자료도 넘겨받았다. 게다가 지난 23일 이 전 대표가 브로커 이씨에게 로비 자금을 건넨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지목된 파이시티 전 상무 곽모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수첩 등을 확보, 분석하고 있다. 김승훈·안석기자 hunnam@seoul.co.kr
  • 장석명·이인규 檢수사전 11회 통화

    장석명·이인규 檢수사전 11회 통화

    장석명(48)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국회 등에서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가 제기돼 국무총리실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 착수 직전인 2010년 6월 3~28일 이인규(56)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과 11차례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신문이 22일 입수한 2010년 검찰 수사 자료에 따르면 이 전 지원관은 6월 11·17·22·24일 4차례에 걸쳐 장 비서관에게, 장 비서관은 6월 3·7·18·21·24·28일 7차례 이 전 지원관에게 전화했다. 업무용 전화가 아닌 개인 휴대전화로만 통화한 횟수다. 이들은 6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민주당 신건·이성남 의원이 민간인 불법 사찰 문제를 따진 당일과 그 이후 자주 길게 통화했다. 이 전 지원관은 당시 권태신 총리실장과 함께 업무 현황 보고를 위해 정무위에 출석했다 도중에 자리를 떴다. 장 비서관은 이날 오전 9시 56분부터 121초간 이 전 지원관과 통화했다. 이 때문에 당시 장 비서관이 이 전 지원관에게 모종의 ‘사인’을 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었다. 이 전 지원관은 검찰에서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참석했고 더운 날씨에 속이 불편해 잠시 밖에 나갔다가 PD수첩 취재팀이 전격 취재해 국회를 벗어났다.”면서 “차를 타고 사무실로 이동하던 중 혈압이 좋지 않음을 느껴 강남 삼성병원에 갔다.”고 진술했다. 또 “22일에는 성남 시민의원에 입원해 24일 퇴원했고 25일부터 강남 삼성병원에 통원 치료를 다녔다.”고 말했다. 장 비서관은 이 전 지원관이 퇴원하던 24일 3차례에 걸쳐 13분가량이나 통화했다. PD수첩에서 민간인 불법 사찰을 방영하기 전날인 28일에는 무려 20여분이나 통화했다. 수사 기록에 나오는 다른 날 1분 안팎의 통화에 비해 상당히 길다. 이에 따라 검찰 안팎에서는 장 비서관과 이 전 지원관의 통화 추이를 볼 때 총리실 조사 착수(7월 3일), 검찰 수사 착수(7월 5일), 증거인멸(7월 7일) 등과 관련해서도 장 비서관이 이 전 지원관과 상의하거나 ‘윗선’의 뜻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장진수(39) 전 주무관은 “최종석 전 행정관이 민정수석실, 검찰과 다 조율됐으니 점검1팀원 등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망치로 부수든지 강물에 버리든지 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2010년 수사팀은 이 전 지원관에게 장 비서관과의 통화 사실을 파악하고도 통화 내용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자료에 당시 검찰은 “피의자는 피의자의 휴대전화 010-3682-xxxx을 이용해 017-770-xxxx라는 번호를 사용하는 사람과 통화를 자주 했는데 누구냐.”고 물었고 이 전 지원관은 이에 “청와대 민정의 공직기강팀장인 장석명”이라고 답했다. 또 검찰은 “사실대로 진술했느냐.”고 물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도요새책방’ 수원서 개관

    경기 수원시는 21일 팔달구 우만동 평생학습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기증받은 도서 5만여권으로 꾸민 ‘도요새책방’을 개관한다고 20일 밝혔다. 도요새책방은 박원순 시장이 직접 작성한 메모수첩, 노트, 보고서 등 개인기록물과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아름다운 재단 등 시민사회단체가 제작한 연구보고서 등으로 꾸며졌다. 박 시장이 기증한 자료 중에는 사회적 이슈가 됐던 공판기록과 사법개혁 관련 자료 등도 포함됐다. 도요새책방은 박 시장이 기증한 자료를 상설 또는 특별전 형식으로 전시하고, 필요한 자료들은 시민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학교를 정치공론장으로 변질시킬 위험”

    2009년 6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1차 시국선언을 추진하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들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며 강력 대응했다. 전교조는 이에 반발해 같은 해 7월 2차 시국선언을 진행했고 이들은 국가공무원법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대전지법 등 일선 지법에서 재판이 진행됐지만 유·무죄가 엇갈렸다. 전주지법은 “특정 정파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포함하지 않고 헌법정신에 충실한 국정운영을 바란다는 내용에 불과하다.”며 이들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인천지법 등은 “판단능력이 미숙한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교사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같은 사안임에도 극단적으로 다른 법원의 판단이 나오자 논란과 사회적 파장은 더욱 확산됐다. 19일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에 대한 첫 상고심에서 내려진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은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대법원도 ‘교통정리’의 필요성을 염두에 두고 전원합의체에 배당해 판례정립을 꾀했다. 재판부는 우선 시국선언 당시 교사들이 촛불집회나 PD수첩 관련 수사, 용산참사 등에 대해 의견을 밝힌 것 자체를 뚜렷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교원들의 이 같은 행위가 학교를 정치공론장으로 변질시켜 학생들의 교육 환경에 영향을 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 1심 재판부가 “지금 학생들은 무한한 정보를 획득하고 지속적인 논술교육을 통해 비판적 시각을 키워 온 만큼 교사들의 의견이라도 무조건 수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이다. 대법원이 이번 상고심 선고를 통해 사실상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현실을 재차 강조하긴 했지만 대법관들 사이에 많은 반대의견이 나왔다는 점은 공무원 및 교원들의 정치활동, 그리고 집시법 적용 등과 관련한 논란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실제 박일환, 전수안, 이인복, 이상훈, 박보영 대법관은 교원들의 ‘표현의 자유’에 더 비중을 뒀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벚꽃 명소 진해 여좌천을 걷다

    벚꽃 명소 진해 여좌천을 걷다

    그곳은 벚꽃의 나라였습니다. 지금은 경남 창원시로 통합된, 옛 마산에서 진해로 향하는 터널 끝자락에서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작은 터널 하나 지났을 뿐인데, 풍경은 전혀 차원이 달랐습니다. 벚꽃이 도시 풍경의 한 축이 되는 게 아닌, 벚꽃 스스로가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 듯했습니다. 벚꽃은 곧 집이었고, 길이었으며,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잣대로는 꽃이 만개했을 때 ‘절정’이라고 표현합니다. 한데 벚꽃의 경우에도 그럴까요. 동백이 그렇듯, 벚꽃도 떨어질 때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춘설처럼 분분히 날리는 벚꽃들이 여간 몽환적이지 않지요. 그렇다면 벚꽃의 경우, 꽃이 져 흩날릴 때라야 비로소 ‘절정’에 이른 것 아닐까요. 벚꽃의 만개 소식을 듣고 난 이후 진해를 찾은 것도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진해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군항 도시다. ‘세계 최대·최고의 전략적 군항 건설’을 기치로 내건 일제가 현 장복산 자락에 만든 계획 도시다. 당시 일제는 10만여 그루의 벚나무를 군항과 시내 거리에 심었다. 광복 뒤 일제 잔재라 해서 대부분 베어졌으나, 진해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1976년부터 다시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때 심은 벚꽃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은 당시 ‘벚꽃장’이라 불렸던 현 해군교육사령부 통제부와 해군사관학교, 해군기지사령부 등 일부에 불과하다. 현재 진해의 벚나무는 대략 35만 그루로 추산된다. 18만여명(올해 1월 말 기준) 진해구민 숫자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길이 벚꽃이고 벚꽃이 곧 길인 곳 옛 마산에서 장복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진해다. 왼쪽은 장복산, 바로 앞은 여좌천 들머리다. 멀리는 벚꽃 모자 눌러쓴 대섬 등이 펼쳐진 진해 앞바다다. 단언컨대 바로 이곳부터 당신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올 게다. 그리고 탄성은 진해를 돌아보는 내내 쉼 없이 이어진다. 진해의 벚꽃 명소는 여좌천 일대와 경화역 주변, 그리고 안민고개 등이 꼽힌다. 여좌천을 중심으로 3~4㎞ 이내에 몰려 있다.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기지사령부 등이 진해 벚꽃의 ‘원조’로 꼽히지만, 군사시설인 만큼 군항제 기간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여좌천은 그 가운데 인기 상종가를 치고 있는 벚꽃 명소다.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초입부터 진해여고 앞까지, 약 1.5㎞ 구간에 벚꽃 터널이 펼쳐져 있다. 미국 뉴스채널 CNN에서 운영하는 CNN Go가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으로 선정하면서 부쩍 이름이 높아졌다. 여좌천에 서면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단박에 갖게 된다. 노란 유채꽃 만발한 개천 위로 벚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 줄기 바람이라도 불면 하얀 꽃눈이 내린다. 여좌천 물길 위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잎 배들이 동동 떠다닌다. 여좌천 맞은편의 내수면환경생태공원은 반드시 들를 것. 벚꽃 군락지로서보다는 작은 호수와 벚꽃, 그리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경화역은 진해역과 성주사역 사이에 있는 폐역이다. 경화역을 중심으로 경화 1건널목~세화여고 사이 800m에 걸쳐 벚꽃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경화역에선 열차도 쉬어간다. 보다 정확히는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 속도를 내지 못한다. ●이 길에서 경탄하지 않는 자, 사람이 아니리 안민고개는 경화역 위쪽의 장복산을 따라 펼쳐져 있다. 진해구 태백동에서 안민생태교까지 약 4㎞ 구간을 일컫는다. 말 그대로 ‘십리 벚꽃길’이다. 구간 전체에 나무 데크를 조성해 누구라도 쉽게 걸을 수 있게 했다. 길 전체에 펼쳐진 아치형의 벚꽃 터널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특히 길 중간중간 드러나는 진해 전경이 더없이 빼어나다. 차로도 오를 수 있다. ‘진해 드림로드’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트레킹 코스다. 장복 하늘마루 산길(3.8㎞), 천자봉 해오름길(9.9㎞), 백일 아침고요 산길(3.1㎞), 소사 생태길(7.6㎞) 등 네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외지인의 경우 천자봉 해오름길을 주로 걷는다. 안민고개 초입에서 3㎞ 정도 떨어진 전망대가 들머리다. 홍매화와 벚꽃 등이 평탄한 길을 따라 어우러져 있다. 진해 시가지보다 고도가 높아 벚꽃 개화도 다소 늦게 시작된다. 장복산(582m)도 진해 벚꽃 명소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여좌천 등에 견줘 다소 ‘올드 버전’인 것도 사실. 진해구민회관에서 옛 장복터널까지 산길을 따라 벚꽃길이 조성돼 있다. 이 길의 미덕은 편백나무와 벚꽃이 어우러져 그윽한 풍경을 선사한다는 것. 숲의 공기 청량하고 바람은 더없이 시원하다.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다. 장복산 중턱엔 기막힌 ‘전망대’가 또 하나 숨겨져 있다. 삼밀사(三密寺)다. 장복산 공원 옆 임도를 따라 오를 수 있다. 절집에 들면 ‘516 나한상’이 이방인을 반긴다. 표정과 자세가 제각각인 나한상 516개가 조각돼 있다. 등을 돌려 ‘516 나한상’과 시선을 나란히 하면 눈부신 진해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장복산 기슭에서 시작된 벚꽃의 행렬이 여좌천을 지나 진해 앞바다까지 ‘주르륵’ 이어져 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렸네 벚꽃의 위세에 눌려서 그렇지, 진해 일대엔 다른 봄꽃들을 완상할 만한 곳이 많다. 특히 천주산(639m)은 진달래 명산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란 호방한 뜻의 산으로, 의창구 북면에 있다. 천주산의 으뜸 볼거리는 정상 못 미쳐 장쾌하게 펼쳐진 진달래 군락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로 시작되는 동요 ‘고향의 봄’을 기억하는지.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 선생이 어릴 적 천주산 일대에서 지냈던 기억을 바탕으로 가사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꽃 개화가 유난히 늦은 올해는 진달래 축제(15일)를 넘긴 이후 절정을 맞고 있다. 진해구 해군기지사령부 내 제11부두 주변엔 유채꽃 단지가 조성됐다. 올해 처음 조성돼 일반인에게 선보이는 지역이다. 면적은 5만㎡(1만 5000평). 단일 재배지역으로는 전국 최대라는 게 진해구의 설명이다. 전망대와 관람로, 포토존 등 편의시설도 마련돼 있다. 앞서 진해군항제(1~10일) 기간 중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이상 기온으로 개화가 늦어지면서 공개도 늦춰졌다. 해군기지사령부는 진해 벚꽃의 ‘원조’쯤으로 여겨지는 곳. 평소 일반인 출입통제로 볼 수 없었던 우람한 벚꽃들의 자태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남원로터리 옆 해군사관학교 출입로를 오는 22일까지 오전 8시 30분~오후 4시 30분 개방한다. 글 사진 창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수도권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끝까지 내려가 내서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서마산나들목에서 나간다. 2번 국도를 타고 부산·진해 방향으로 가다가 양곡나들목(마창대교 분기점), 장복터널을 지나 우회전해 진해구 여좌동으로 들어간다. ▶맛집:석동 제주복집(547-5555), 진해남부교회 부근 선학곰탕(543-6969), 제황산공원 입구 사공추어탕(546-0655) 등이 알려졌다. 추억의 간식 ‘진해콩’도 유명하다. 1915년부터 경화당제과에서 가내수공업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잘 곳:신라온천(299-9301)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추천하는 굿스테이 업소다. 의창구 북면에 있다. 여좌천, 경화역 부근에도 저렴하고 깔끔한 모텔들이 많다.
  • [런던올림픽 D-99] 3인의 선구자, 막힌 금맥 캐내리라

    [런던올림픽 D-99] 3인의 선구자, 막힌 금맥 캐내리라

    한동안 금맥이 끊겼거나 노다지를 일군 적이 한 번도 없던 종목들에서 ‘사고’를 칠지 모른다. 개회가 99일 남은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고 해도 놀라지 마시라. ‘준비된 1등’이니까. 이들의 어깨에 개인의 영광은 물론, 종목의 미래까지 걸려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민첩한 풋워크 복싱의 신종훈 1980년대 초만 해도 복싱은 인기 종목이자 메달밭이었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 때 김광선(플라이급)·박시헌(라이트미들급)의 금메달을 마지막으로 24년의 침체기를 겪었다. 올림픽은 고사하고 아시안게임에서도 메달이 사라졌다. 그 어두운 터널을 한번에 끝낼 이가 있다. 라이트플라이급(49㎏ 미만) 세계랭킹 1위 신종훈(23·서울시청). 민첩한 풋워크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연타 능력이 장점이다.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과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로 준비를 끝냈다. 신종훈은 “런던행을 확정했을 때 너무 행복해 눈물이 났다.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충격적인 성적표(8강 탈락)를 받아 설욕하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조짐도 좋다. 기존엔 커버링을 무너뜨리고 체중이 실린 주먹을 적중시켜야 점수가 인정됐지만 이젠 커버링 위라도 정확하게 가격하면 점수가 인정된다. 파워가 약하고 주먹이 빠른 신종훈에겐 호재다. 그는 “치고 빠지는 내 스타일이 물 만났다. 끝까지 마인드컨트롤을 잘해 복싱의 부활을 이끌겠다.”며 웃었다. ■스탠딩 최강자 레슬링 최규진 레슬링도 효자종목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57㎏급 안한봉부터 1996년 애틀랜타·2000년 시드니에서 심권호가 연속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정지현(29·삼성생명)을 끝으로 금맥이 말랐다. 2008년 베이징에서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노골드’였다.희망의 불씨를 살린 건 최규진(27·조폐공사). 정지현과 이정백(26·삼성생명)에게 밀려 국내에선 늘 2~3인자였지만 2009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 상승세를 탔다. 2010년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따내며 늦깎이 기대주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런던 프레올림픽에선 그레코로만형 55㎏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 바뀐 규칙도 최규진에게 유리하다. 그레코로만형은 이제 세트마다 1분 30초 동안 스탠딩 경기를 치르면서 어느 쪽이라도 기술점수를 내면 파테르 없이 끝까지 진행한다. 그라운드 싸움에 약하지만 스탠딩에 강한 최규진에게 긍정적이다. 그는 “평소 수첩과 휴대전화에 ‘금메달은 무조건 내 것’이라고 써놓고 이미지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감독님도 지금처럼 한다면 금메달은 문제없다고 하신다.”고 자신했다. ■신기술 보유자 체조의 양학선 단 한번도 없었던 체조 금메달에 양학선(20·한국체대)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장의 신기술 ‘YANG Hak Seon’으로 여홍철·유옥렬 등 걸출한 선배들도 이루지 못한 정상을 노린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공중 세 바퀴(1080도)를 돌아 내리는 난도 7.4의 신기술로 금메달을 땄다. 기존 최고 난도 기술은 공중에서 두 바퀴반(900도)을 도는 ‘여(여홍철)2’로 난도가 7.0이었다. 양학선은 숙련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면서 공중 세 바퀴 반(1260도)을 돌아 내리는 ‘양2’까지 남몰래 연마하고 있다고. 워낙 어려운 기술이라 엄청난 실수만 하지 않으면 금빛 착지를 기대할 만하다. 양학선은 “유럽심판들이 워낙 강세라 실수하면 날 무너뜨릴 것이다. 완벽하게 하겠다.”고 눈을 빛냈다. 라이벌 토마 부엘(프랑스)이 정강이뼈 골절로 런던 출전이 불투명해 꿈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양학선은 “관심 없다. 내 연기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조성동 총감독은 “남은 기간 몸 관리만 잘하면 된다. 도마는 물론 개인종합 메달까지 노릴 수 있다.”고 힘을 실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납득할 수 없다”… 郭 당혹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17일 오전 11시쯤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징역 1년의 실형”이라는 선고가 내려지자 창백해졌다. 무표정이었다. 선고 공판 내내 침착하게 수첩에 메모하던 곽 교육감은 전혀 예상치 못한 선고인 듯한 반응을 보였다. ●‘무죄’… 최소한 ‘기각’ 기대한듯 선고 전부터 서울고법 302호 법정에는 곽 교육감의 지지자 100여명이 자리했다. 대부분 ‘무죄’를 확신한다거나 최소한 ‘기각’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무죄 기도 선고문’을 외는 지지자도 있었다.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가 법정에 들어서는 박명기 전 서울교대 교수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박 전 교수는 그냥 지나쳤다. 선고가 진행되는 내내 박 전 교수는 담담했다. 강 교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실형이 나오자 법정은 웅성거렸다. 여기저기서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변호인단 선고뒤 긴급회의 곽 교육감과 변호인단은 선고가 끝나자마자 20분 정도 긴급 회의를 열었다. 어떤 변호사는 울먹였고, 또 다른 변호사는 “이거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곽 교육감은 법정 밖으로 나와 기자들에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짧게 심정을 드러냈다. 사퇴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곽노현·서울혁신교육지키기 범국민공동대책위원회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지지단체들은 재판 직후 “곽노현은 무죄”라면서 “곽 교육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대법원에서 진실이 가려질 때까지 교육감 직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교원 단체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바른사회시민회의, 자유교육연합, 바른교육전국연합, 교육과학교를위한학부모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곽 교육감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선택 2012 총선 D-4] 7년만의 ‘외박’…낙동강 사활

    [선택 2012 총선 D-4] 7년만의 ‘외박’…낙동강 사활

    선거 종반,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이 6일 ‘외박 유세’를 시작했다. 이날 서울 유세를 마친 뒤 부산으로 내려가 하룻밤 묵는 일정이다. 박 위원장의 외박 유세는 2005년 4·30 영천 국회의원 재선거 이후 7년 만이다. 그만큼 판세가 녹록지 않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에 맞선 부산사상 손수조 후보를 비롯, 북·강서을 김도읍 후보 등에게 힘을 실어줬다. 7일에는 경남 거제, 진주, 창원, 김해에 이어 경기 일산, 고양, 분당으로 일정이 이어진다. 이날 오후 부산으로 내려간 박 위원장은 김 후보 지원유세에 이어 고전 중인 사상의 손 후보에게로 달려갔다. 박 위원장은 쉰 목소리 때문에 연설 도중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성토하는 대목에서 “해군(기지건설)…제가 목이 쉬어가지고….”라며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이에 관중들 사이에선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손 후보에 대해서는 “요즘 하루 수십㎞ 걸으며 마라톤 하듯이 지역을 다닌다고 들었다. 주민 여러분의 애환을 수첩에 꼼꼼히 적으면서 어떻게 고칠까 고민한다.”면서 “할 일 많은 사상은 한번 거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사상에 뼈를 묻고 살 참된 일꾼이 필요하다.”고 문 후보를 겨냥했다. 손 후보 역시 “사상의 잔다르크처럼 일어나 우리 모두가 똘똘 뭉쳐 대한민국을 지켜내야 할 때다.”면서 “도대체 참여정부와 문 후보가 부산과 사상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후보의 명예 선대위원장을 맡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박 위원장을 거들었다. 그는 문 후보와 성희롱 논란의 핵으로 떠오른 김용민(서울 노원갑) 민주당 후보를 싸잡아 공격했다. 김 전 의장은 두 사람이 ‘나꼼수’ 멤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기도 했다. 문 후보를 향해선 “이 사람(김 후보)을 당장 사퇴시켜라. 대권에 욕심이 있다면 이런 정도는 감내할 줄 알아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이에 앞서 박 위원장은 낮에 서울 중·동부 지역 접전지 공략에 집중했다. 종로·중구 등 초접전 지역을 시작으로 광진·중랑·성동 등 여당 후보들이 살얼음판 승부를 이어가고 있는 강북 ‘한강 라인’을 훑었다. 강동호(중랑을) 후보의 유세가 이뤄진 망우동 우림시장 입구에서는 박 위원장을 보려고 몰려든 인파가 2000명(경찰 추산)을 웃돌아 교통체증이 빚어지기도 했다. 부산 이재연·서울 송수연기자 osca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