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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우표 1,820종 담은 CD롬 나와

    ◎1884년 이후 110년간 발행… 새달 시판 근대 우정시행 이후 1백10년간 발행된 국내우표 1천8백20종을 담은 CD­ROM(읽기전용 컴팩트디스크) 타이틀이 나왔다. 타이틀 개발업체인 (주)청미디어는 1884년 11월18일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부터 지난달 13일 나온 「필라코리아」기념우표에 이르기까지 모든 우표를 수록한 CD­ROM 「한국우표 110년사」를 개발,94필라코리아(8월16일∼25일) 개막에 맞춰 판매할 예정이다.이 타이틀은 전시회가 열리는 KOEX 태평양관의 「청소년공간」에서 PC로 검색할 수 있으며 행사기간 동안 우표 수집가들을 위한 염가판매도 실시한다.값은 5만원(행사장내에서는 3만원).583­3572
  • 인도­티베트지역 미술품 이색전시회/탄트라­만다라그림·조각 한자리에

    ◎서울예전 강만홍교수,다도화랑서 새달 8일까지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 강만홍교수(44)가 자신의 체험이 담긴 인도 티베트지역의 미술품과 종교유물을 한자리에 내놓은 이색 전시회를 열고 있어 미술계의 화제가 되고있다. 다도화랑에서 오는 8월8일까지 계속되는 탄트라 만다라 그림 조각전이 그것으로 강교수가 지난 82년부터 85년까지 인도체류중 수집한 탄트라 만다라 그림 조각을 비롯해 인도민화 악기등 60여점을 소개하고 있다. 출품작들은 17∼19세기의 인도 티베트의 탄트라화와 마두바니화 티베트불상 탱화 가면 조각등 인도 티베트의 희귀품들로 당시 현지인들의 의식과 전통 종교 생활 예술수준을 가늠케하며 특히 적지않은 것들이 현재 찾아볼 수 없는 문화재급들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교수가 인도로 간 것은 서울예전 연극과를 졸업한 해인 지난 82년 6월. 연기는 체험을 통한 현실 삶의 터득에서 생명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중시,그해 6월부터 3년간 인도 전역을 돌아다녔다.힌두 4성지와 불교 4성지를 두루 돌았으며 히말라야에선 토굴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것들은 모두 당시 인도를 떠돌며 주민들과 도반으로부터 받거나 다른 물건을 주고 바꾼 것,혹은 싸게 구입한 것들로 모두 강씨의 체험과 고행의 흔적이 스며있는 희귀한 것들이다. 『지금 전시회에 출품돼 작품으로 보이지만 당시 이것들을 처음 갖게됐을땐 순전히 그것에 담긴 현지 주민들의 정신적인 부분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이처럼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처음부터 수집가로 나섰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모았던 것들로 전시회까지 열게되고보니 인도체험이 새삼스레 되살아나는 것도 같다』고 회상한다. 전시작품들은 탄트라 그림·조각이 15점,만다라가 10여점등 탄트라 만다라그림이 주종을 이루지만 인도민화 10점,조각 10점,악기 10점도 눈에띄며 특히 지금은 볼 수 없는 토속품들이 상당수 전시되고 있다. 쇠똥위에 그린 그림,상아위에 그린 세필화,민화풍의 마두바니그림(시골 아낙네들이 소박하게 그려낸 그림),멕시코인디언의 가면과 남녀 두개골을 합쳐서 만든 두개골북,정강이뼈로 만든 인골피리가 그것들. 강교수는 『사람뼈로 만든 악기가 삶에 덧없음을 가르치듯 그림을 통한 명상이 이 전시를 통해 깨우침으로 연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안견의 산수화” 7점 새로 공개

    ◎이양재씨,「청산백운도」등 진작주장… 학계 논란/기존학설/“「몽유도원도」가 유일한 작품”/일부학자/“철저히 검증… 진위규명 해야” 몽유도원도가 안견의 대표작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진작이란 국내 학계의 안견론을 뒤집는 그림들이 공개됐다. 재야미술사연구가 이양재씨(40)와 중국미술품 수집가 이건환씨(50·우상헌대표)가 17일 공개한 「청산백운도」등 산수화 7점이 그것으로 모두 당대에 제작된 안견의 진작으로 추정되고있어 학계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개된 청산백운도는 가로 1백4㎝,세로 1백78㎝크기의 회견위에 호분과 석채를 써서 설채한 청록수묵산수도로 왼쪽 상단에는 「청산아아 백운유유」라는 제기와 함께 주경이란 서명및 「지곡안씨」란 낙관이 새겨져 있다.우측 하단에는 위쪽으로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4개의 수장인이 찍혀 있다. 이와함께 공개된 산수화는 도산전서등에 퇴계 이황이 안견의 산수화에 쓴 것으로 기록된 시의 분위기에 그대로 들어맞는 그림으로 6점 모두 가로 47.5㎝,세로 45.5㎝크기의 다듬이 장지위에 수묵으로 그려져있다. 이씨등 두사람은 이 가운데 청산백운도에 명기된 주경은 바로 안견의 별호이고 서체가 몽유도원도에 쓰여진 「지곡가도작」이란 안견의 서명 필적과 동일할뿐 아니라 주경이란 서명 하단에 「지곡안씨」라는 도장을 찍은 점을 들어 안견의 진작이라고 주장했다.또 우측하단에 찍힌 소장자들의 도장이 모두 당대 안견과 가까운 상류층을 암시하는 내용의 것들이어서 이 그림이 안견의 진작임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등은 이 그림과함께 공개한 산수화에 대해서도 이황이 제발한 시 구절이 산수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것들인만큼 기록에 전하는대로 안견의 산수화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내 안견론을 주도하고 있는 학자들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몽유도원도만이 안견의 화풍을 대표하는 유일한 진작」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번 기회에 명확한 검증을 거친 진위여부규명작업이 이뤄져야하며 이 그림들이 진작으로 판명될 경우 안견에 대한 재조명작업을 서둘러야한다』고 밝혔다.
  • 「청자고둥」의 맹독 뇌졸중 치료제로/미서 동물실험 통해 효과 확인

    ◎뇌 칼슘통로 폐쇄 성분 역이용 아름다운 껍데기를 지녀 수집가들로 부터 사랑을 받는 청자고둥(원추달팽이)은 화려한 외모와 달리 몸속에 살상용 맹독성 독침을 가지고 있다. 청자고둥은 껍데기속에 감춰진 긴 주둥이를 통해 독극물을 뿜어 물고기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람까지 죽게 한다.이 「조용한 살인자」의 독소 성분은 다른 생명체의 신경세포막속 칼슘이온 통로를 봉쇄,결국 세포간 신호전달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연체동물로 복족류에 속하는 청자고둥은 암초 밑 모래밭에 서식하는데 살아있을 때는 패각 표면이 흐린 갈색을 띠지만 파도에 씻겨 죽으면 청자색의 아름다운 무늬로 변한다. 과학전문지 「디스커버」 최신호는 미유타대학 발도메로 올리베라박사팀의 연구결과를 인용,청자고둥의 독극물 성분을 이용해 뇌졸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개발이 임박했다고 밝혔다. 올리베라박사팀은 만성퇴행성질환인 뇌졸중이 청자고둥의 독소에 의해 세포간의 신호전달이 안되어 죽는 물고기의 경우와는 반대로 뇌졸중은 세포간 신호전달이 과다하게 이뤄져 발병한다는 점에 착안,연구를 시작했다. 뇌졸중은 뇌의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대주는 뇌동맥의 어느 한 곳이 막혀 혈액순환이 되지 않음에 따라 필요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생기는 질환.뇌세포에 산소가 부족하면 적정 칼슘량을 유지하는 자동조절장치에 이상이 생겨 칼슘통로를 필요한 때 차단하는 능력이 상실된다. 이렇게 되면 뇌세포에 너무 많은 칼슘이 흘러들어 결국 세포를 괴사시킨다.더구나 필요 이상의 칼슘은 세포의 신호전달작용을 극도로 왕성하게 함으로써 인접 세포들의 칼슘통로까지 개방을 촉진,죽은 뇌세포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올리베라박사팀이 생쥐를 대상으로 15분 동안 전뇌에 산소공급을 중단시켜 뇌졸중상태에 빠뜨린 뒤 청자고둥에서 추출한 독소로 만들어진 합성제제를 소량 투여한 결과 뇌신경세포의 괴사가 멈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캘리포니아의 뉴럭스제약사의 연구진도 동물실험결과에서 같은 임상효과를 확인하고 신약개발 준비에 들어갔다. 올리베라박사는 『청자고둥의 독소 합성물질이 뇌졸중 환자의 칼슘통로를 차단하는 작용을 해 계속적으로 죽어가는 신경세포를 되살려낼 수 있음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 「주라기 공원」 신드롬/미에 공룡 등 화석수집 붐

    ◎값도 수백배 치솟아… 탐사여행 줄이어 영화 「주라기공원」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자 최근 미국에서는 돈벌이 목적의 화석수집이 유행처럼 번지는등 문화를 상업으로 연결시키는 발빠른 상혼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주라기공원」은 공룡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화석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복제해 놀이공원을 만들려는 장삿꾼들의 허황된 꿈을 다룬 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공상과학영화. 이 영화가 인기를 끌자 세계 도처에서 화석을 찾는 사람이 늘어 그 값이 덩달아 치솟고 있다.심지어 20년전쯤이라면 시골 길가 노점상에서 20달러면 충분히 살수 있던 화석이 뉴욕의 골동품가게에서는 수천달러에 팔리는 고가품으로 등장했다. 지난해 영국 런던 보남스 경매장에서는 23개의 공룡똥 화석이 5천달러,33마리의 곤충으로 가득찬 호박화석 덩이는 7천7백달러에 팔렸다.또 공룡알 10개와 둥지는 무려 7만8천달러에 낙찰되는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당시만해도 공룡알은 화석수집가에게는 철갑상어알(캐비어)과 다름없는 진기한 물건이었다.그러나 지난2년동안 중국 호남성등지에서 대규모 공룡알 화석무덤이 2곳이나 발견돼 가격도 급락하기 시작,6천달러는 호가했을 공룡알 2개반이 든 둥지가 2천달러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비싼 값을 고수하고 있다. 또 미국 뉴욕에서는 높이 7피트,폭7피트 짜리 약1천만년전 제3기 중신세 상어의 턱이빨 2백10개의 화석이 무려 4만달러에 팔려나가고 있을 정도로 시세가 좋다. 이같은 화석수집붐에 따라 단기코스 화석탐사여행도 붐을 이루고 있다.주라기공원에 자문역을 맡았던 고생물학자인 로버트 배커박사는 3∼7일간의 유타,와이오밍,콜로라도주 탐사여행(필드트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비용은 6백달러 내지 9백달러선.또 「중부아메리카 고생물학회」는 연15달러의 회비를 받고 회원을 모집하고 있으며 와이오밍주는 코롤라도,유타주 접경지역내 3만5천㎡에 달하는 그린리버 단층지역에서 하루 30달러를 받고 아마추어 수집가들이 물고기 화석을 발굴,개인이 소장할 수 있는 지역을 설정해 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 일본서 돌아온 청동 자루솥/출토지·유출경로 “아리송”

    ◎1926년 경주 서봉총서 공식발굴 추정/국립발물관 소장품과 달라… 남분 도굴품 일수도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경북 경주시 노서동 서봉총 출토품으로 보이는 청동자루솥(청동초두)이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와 학계의 관심을 끌고있다.그 이유는 19 26년 당시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참관한 가운데 공식 발굴된 서봉총유물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느냐에 있다.문제의 청동자루솥은 국내 수집가인 진이근씨(47·부산시 중구 중앙동2가)가 최근 일본으로부터 들여와 24일 공개한 것. 소장자가 수없이 바뀐 이 유물의 보관상자 표면에는 「경상북도 경주 서봉총일구이육년 청동산량수류초두」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이어 책이름으로 여겨지는 지나고동정화」라고 써넣은 뒤 이같은 사실을 로슈(능추)가 썼다고 덧붙여놓았다.그래서 첫 소장자 로슈가 누구냐에 초점이 모아지지만 일본 역대 컬렉터 중에는 로슈라는 아호를 가진 인물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경로를 거쳐 처음 청동자루솥을 소장하게 되었을까.궁금증이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다.이에 대해 일본학계는 다만 심증적으로 「지나고동정화」저술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왜냐하면 청동자루솥 보관상자 기록속에 「지나고동정화」가 언급되었기 때문이다.이 저술의 지은이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있는 일본 고고학 초창기의 학자.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60년대 초반까지 금동유물 전문학자로 활약했다. 이에대해 서봉총발굴에 참여했던 일본 원로고고학자 아리미츠(유광교일·84)씨는 자루솥이 한 점밖에 출토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그 한 점이라는 것은 현재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다른 청동자루솥.그러나 서봉총은 2개의 무덤이 쌍으로 붙은 표주박모양의 무덤(표형분)이고,남분이 파괴된 상태에서 북분을 발굴했기 때문에 남분 도굴품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청동자루솥은 항아리모양의 몸통 한가운데에 띠를 둘렀고,말굽형 발이 셋 달린 삼발이.그리고 봉황머리의 주둥이와 속이 빈 4각막대형 손잡이,산양 머리모양의 뚜껑꼭지가 돌출되었다.주둥이 반대쪽의뚜껑 가장자리와 몸통사이를 여닫이 경첩으로 연결했다. 이 유물을 살펴본 동국대 정명호교수(고고학)는 뚜껑이 달아나지 않도록 고착시킨 경첩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서봉총 출토 청동자루솥과 바로 다른 점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서봉총의 본래 명칭은 경주지역 고분 일련번호에 따라 부여된 노서동129호분.발굴을 참관한 황태자의 나라 스웨덴(서전)과 출토유물인 금관의 봉황장식에서 각각 한자씩을 따서 서봉총으로 명명했다.그 유명한 금관(경주박물관소장)과 지금은 잃어버린 연호인 「연수원년」과 「신묘년삼월」이라는 새김글자가 든 은합,금제허리띠 등이 출토되었다.새김글씨에 따라 AD451년경 고신라의 무덤으로 보고있다. 어떻든 흘러나간 유물이 되돌아왔다.그러나 청동자루솥에 대한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지는 않았다.그래서 국내 학계는 보고서용으로 가져갔다가 내놓지 않은 서봉총 출토유물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폈다.
  • 일제,우리문화재 「눈가리고 아웅식」반출/기증형식으로 약탈증거 인멸

    ◎가야·신라·낙랑고분 마구 파헤쳐/전문수집가 20여명 두고 빼내가 문화체육부의 해외유출 약탈문화재 분류는 아직 첫 단계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 숫자는 빙산의 일각 일 수도있다.특히 일본은 한반도 강점시 통치권력에 의해 많은 문화재를 반출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우리가 주권을 상실한 이후 강점기에 일본으로 빠져 나간 유물들은 약탈근거가 거의 인멸되어 약탈문화재에 대한 실태파악이 무척 어려운 것이다. 문체부가 그동안 산하기관인 문화재관리국,국제문화교류재단,한국도서관협회,개인들로부터 협조를 얻어 공식 파악한 해외유출문화재는 6만4천7백3점이다.이 가운데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우선 1차적으로 가려낸 약탈문화재는 1천5백7점에 이르고 있다.이번에 공식 분류한 약탈문화재 보유국은 일본 7백46점,프랑스 3백8점,미국 4백53점으로 밝혀냈다.일본은 주로 고분발굴 매장문화재를 토쿄국립박물관이 조장해왔다.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과 미국회도서관은 전적류,서화,지도를 가지고있다. 일본은 당시 한반도 통치기관인 조선총독부가 우리문화재를 전적으로 빼돌렸다.총독부 고적조사위원장(금정전청덕)이 유적을 발굴,출토품을 총독부가 기증받아 반출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 대표적 케이스가 경북 경주시 노서동 고분(1933년)과 황오동16호분(1934년),평남 대동강변 정박리고분(1933년)이다.여기서는 금목걸이와 은목걸이,금은고리금귀걸이 따위의 몸치레걸이를 대량 가져갔다. 그리고 경기도 이천에서는 폐사지에 남아있는 5층공양탑 1기(1919년)를 몽땅 들어갔다.1921년에는 그 유명한 경남 양산군 양산면 북정리 부부총을 발굴했다.허리띠,금귀걸이,금반지,옥목걸이 등의 출토품을 역시 총독부에 기증하는 형식을 빌려 일본으로 내보냈다.이 무렵에 경남 창년군 창녕읍 교통리 가야고분도 발굴되었다.금제및 옥제 치레걸이와 미술적으로 가치가 큰 토기 등의 출토품이 모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대학까지도 몰려들었다.동경제대 문학부의 경우 1925년 평남 대동군 대동강면 왕우지묘를 파헤쳤다.「건무이십일년」글자가 든 칠기잔을 비롯한 낙낭시대 칠기유물이 쏟아져 나왔지만,1930년 총독부가 일본으로 보냈다.1920년대 초기 평양을 중심으로 일본인 전문수집가 20여명이 거주한 것으로 전해진다.평남지역의 낙랑고분이나 고구려 고분이 이른바 대란굴 시대를 겪었다는 것이다.이로 미루어 보면 약탈문화재는 조사방법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이 밝혀질 전망을 안고 있다. 문체부가 최근 쿄토대에서 확인한 5천여장의 문화재 관련자료(서울신문 2월25일자 22면보도)도 약탈문화재와 무관치않다.일제때 일본인 총독부관리가 유출한 이 자료에서도 약탈 흔적이 엿보이는 것이다. 프랑스와 미국에 가있는 약탈문화재는 비교적 그 실상이 소상히 나타나고 있다.19세기말 서양인들이 무력으로 쇄국의 문을 두들인 이른바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때 소장목록이 뚜렷한 외규장각 등의 전적을 털었기 때문이다.
  • 모네서 피카소까지/불 인상파 명작전 모스크바서 성황

    ◎1백20점 한자리에… 연일 대만원/러시아 부호가 수집… 26년간 창고서 썩다 “햇빛” 피카소,모네,세잔,고갱,고흐,앙리 마티스 등 프랑스 초기인상파 화가 20여명의 작품 1백20점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고 있다.전시장인 모스크바시내 중심가의 푸시킨 미술관은 러시아전역과 유럽각지에서 몰려온 미술애호가들로 연일 대만원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12월1일 시작돼 오는 2월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여러면에서 단순한 인상파전이 아니다.전시작품들은 모두 러시아국내에 소장돼 있는 작품들인데 초기인상파의 명작 대부분이 러시아에 소장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이 작품들의 원소장자가 러시아제국말기 2명의 러시아 부호였다는 점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거부로 미술에 뛰어난 안목을 가졌던 이반 모로조프,세르게이 슈힌 두 사람은 20세기초 틈만나면 프랑스를 드나들며 작품들을 사모았는데 이번 전시회는 바로 작품의 원소장자인 이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전시회 이름도 「러시아의 수집가,모로조프와 슈힌­모네부터 피카소까지」. 1871년생인 모로조프는 벨벳과 실크무역을 해 섬유왕국을 건설한 조부의 부를 물려받은 당대 러시아의 거부.예술에 뛰어난 안목을 가졌던 그는 1921년 사망할때까지 초기인상파 화가들의 예술실험을 높이 사 친구이기도 한 슈힌과 함께 파리를 오가며 이 작품들을 사모았다.두 사람은 이렇게 모은 그림들을 집에다 전시했는데 방마다 「모네홀」 「고갱홀」하는 식으로 꾸며져 당시 이들의 집은 미술관을 방불케했다.볼셰비키혁명 직후인 1918년 레닌은 모로조프의 집을 몰수해 「새서구미술관」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두사람이 수집한 그림들을 함께 소장케 했다. 그뒤 이 그림들은 48년 스탈린이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전시를 영구 금지시키면서 에르미타주박물관과 푸슈킨미술관의 지하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된다.이 그림들이 다시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74년에 가서이다. 푸슈킨미술관 관장인 마리나 베소노바여사는 『이 두사람이 아니었다면 20세기 미술계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것』이라고 말한다.마티스는 인상파실험을하던 무명일때 슈힌이 사준 그림값으로 화실을 열고 작업을 계속할수 있었다.슈힌은 당시 미친사람 취급받던 고갱의 재능을 인정해준 사람으로도 유명하다.고갱의 그림을 산뒤 그가 『미친 화가의 그림을 미친 수집가가 샀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모로조프는 피카소가 큐비즘이라는 생소한 실험을 할때 1905년작 「공위의 소녀」등 유화 수점을 사주어 큐비즘운동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러시아 미술비평가들은 또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당시 러시아미술계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카지미르 말레비치,바실리 칸딘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 전위미술 「아방가르드운동」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모은 작품들은 러시아에 남아있지만 두사람은 혁명뒤 모두 유럽으로 망명,고국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슈힌은 1936년 프랑스에서 사망직전 소련을 상대로 작품반환소송을 내라는 주위의 권고에 대해 『나는 러시아국민 모두를 위해 작품들을 모았다.내가 어디에 있건 그 작품들은 러시아땅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 홍콩/세계최대 예술품시장으로

    ◎예술상 1백명 몰려 4억불 「아트전」 성황 홍콩이 세계최대의 예술품거래시장으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세계적 예술품거래상들의 홍콩유입이 근년 들어 부쩍 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조짐의 한 단면이다. 파리와 뉴욕에서 화랑을 경영하는 세계적 예술상 구이 빌덴슈타인도 이 대열에 끼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는 사람중 하나다.그는 「돈을 벌기 위해」 홍콩에 조만간 화랑을 열 계획을 갖고 있다.그뿐만이 아니라 지난달말에는 세계각지의 내로라 하는 예술상 1백여명이 홍콩을 찾아 「아트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그림·조각품 등을 포함한 대대적인 예술품전시회를 가졌다.이때 이들이 내놓은 작품들의 총평가액은 4억달러에 달했다. 거래상들이 홍콩으로 몰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아시아지역이 지칠줄 모르는 경제성장을 계속하고 있는데다 서양예술에 관한 한 지상에서 마지막 남은 처녀지나 다름없기 때문이다.따라서 거래상들은 홍콩을 거점으로 여타 아시아지역까지 파고들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홍콩 자체가 가장 매력적인 시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거래상들이 이곳을 찾는 빼놓을 수 없는 이유중 하나로 꼽힌다.홍콩엔 가진 돈으로 무엇을 할지 몰라 고민하는 부자가 많기 때문이다.그리고 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마당에 영국과 중국의 정치협상이 난항을 겪을수록 방황하는 돈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세계 예술품거래시장의 지루한 침체도 거래상들의 홍콩유입을 촉진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경기불황의 여파로 예술품가격이 하락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예술의 도시 파리의 경우 불황타개책으로 90년 중반부터 예술품에 대해 30∼40% 할인판매와 가격예시제를 도입하기까지 했으나 상황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마지막 희망이던 일본의 큰손들도 이때부터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일본경제의 거품이 걷혀진 결과다. 아직은 홍콩의 시장성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경계론의 논거는 이곳 예술품수집가들이 오로지 수천년된 청자나 청동제기 등 중국 골동품에 관심을 쏟을 뿐 서양의 예술품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같은 반박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시장성에 관해서는 밝은 전망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런던 크리스티경매회사의 홍콩·대만지역 담당자인 앤터니 린은 이와 관련,동양과 서양의 구분이 갈수록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동양인들의 서양예술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를테면 서양에서 유학한 돈많은 동양인 자녀들을 중심으로 서양문화의 동양유입이 확산되면서 동양인들의 서양예술품에 대한 관심도 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17세 요절… 일 아마화가 가마치/유작전에 관객들 줄이어

    ◎“삶의 용기준다”… 하루 6백명넘게 찾아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작가의 지명도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아마추어의 작품이 그 순수성으로 인해 관객을 더욱 매료시키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군마현의 다카사키에서는 요즘 20세도 못채우고 비운에 간 아마추어 화가 가마치 야마다의 유작들을 전시한 한 기념관이 연일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한번도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가마치는 오늘날 일본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작가로 부상해 있다.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가마치의 그림들이 거칠지만 힘이 들어가 있으며 그 힘을 보는 이의 마음에 불어 넣어준다고 평한다. 가마치가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다는 점이 사람들의 연민을 자아낸 면도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더 큰 이유는 그가 비록 짧은 인생이나마 뜨겁게 살았다는데 있다. 가마치는 1977년 8월 어느날 17번째 생일선물로 받은 전자기타를 치다가 뜻밖의 감전사를 당한다.사람들은 그가 죽고 난뒤에야 그의 침대밑에 숨겨져 있던 1천여점의 수채화및 스케치,일기와 시가 적힌 18권의 일기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마치는 17년간 1천여점의 작품을 만들어낼 만큼 꿈에 가득찬 소년이었다.그림들은 선과 채색이 거칠고 불완전했지만 그림속엔 소년의 격정이 살아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미술품 수집가이자 화랑 운영자인 다케오 히로시씨의 눈에 띄면서부터. 그의 작품을 처음 본 순간 충격에 사로잡혔다는 다케오는 즉시 군마현의 마에바(전교)시에 있는 자신의 화랑에서 저명화가들의 작품들을 떼어내고 가마치의 작품을 내걸었다. 프로들이 그림을 그릴때부터 마음속에 고객과 관객,비평가들을 의식하는 것과 달리 가마치는 젊은 힘을 순수하게 그림에 담았을 뿐이라는 것이 다케오의 설명이다. 다케오는 마침내 지난해 도쿄에서 신간선으로 1시간 거리인 다카사키에 70평 넓이의 2층건물인 가마치 기념관을 세워 가마치의 그림들을 상설전시하게 됐다.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찾는 이가 늘기 시작해 초창기엔 하루평균 50∼60명에 불과하던 내방객이 요즘은 6백명을 넘고 있다.최근 도쿄의 긴자에서 가마치 작품전이 열렸을땐 하루 평균 관객이 6천명을 넘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기년관을 찾는 사람들중엔 군마현 이외의 외지인이 더 많다는 점이다.삶에 의욕을 잃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자유롭게 소감을 적는 기념관내 공책은 이미 91권이 채워져 있다.공책에 적힌 글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삶의 용기를 얻었다』『용기를 잃었을땐 이곳을 다시 찾겠다』
  • 불황터널 벗는 세계미술시장/피카소 그림 3시간만에 매진

    ◎88개작품 3천만불에 팔려/파격적 고가로 거래… “황금기 재현됐다” 흥분도 장기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국제미술시장이 「불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지난 몇년간 세계적인 경기부진의 여파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미술시장이 최근들어 피카소·마티스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인상파들의 작품이 예상을 뛰어넘는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데다 이들 인상파외에 상당수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에도 주인들이 속속 나서고 있어 미술시장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전망을 더욱 밝게 해주고 있다. 이같은 경기회복조짐은 지난 6월 영국의 크리스티경매장에서 르누아르의 그림 「꽃바구니를 든 아가씨」가 무려 8백50만달러에 팔린 것을 비롯해 모딜리아니·마티스·칸딘스키 등의 작품이 미술품수집가들의 관심을 끌면서 조심스레 일기 시작했다. ○인상파작품 인기 그러다 최근 미국의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유명화가들의 작품이 기대 이상의 파격적인 고가로 경매되자 뉴욕 미술시장에서는 80년대말 구가됐던 미술시장의 황금기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며 흥분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일 소더비 경매장에서 선보인 88점의 피카소작품은 불과 3시간만에 몽땅 팔렸는데 「해변의 여인과 어린이들」(1932년)이 4백40만달러에 거래되는 등 모두 3천2백만달러에 팔려나갔다.또 작품 「배우」의 습작용 스케치를 비롯해 경매된 그의 고가작품 10점 가운데 7점이 1백만달러를 호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피카소말고도 이번 소더비경매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낳은 작품은 프랑스 야수파 화가 마티스.그의 「자화상」은 내정가보다 무려 3백70만 달러가 많은 1천3백70만달러에 팔렸다.마티스에 이어 르누아르의 「빨래하는 여인」도 예상가보다 1백50만달러나 웃도는 5백만달러에 거래돼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이보다 먼저 크리스티경매에서도 1천만달러의 거래실적을 올렸고 샤갈 마그리티 미로 클레 등 초현실주의 화가의 작품들을 별도로 경매하고 있다. ○거래규모 2억불 뉴욕미술계는 이번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거래규모가어림잡아 최소한 2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 정도의 거래규모는 작품당 수천만달러짜리의 거래가 판을 치던 지난 89년의 전성기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일부에서는 국제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미술시장의 불황 역시 더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미술전문가들은 구매력이 없으면 고가품이 경매되지 않는다는 미술시장의 생리를 들어 이번 뉴욕미술시장의 고가경매는 향후 미술시장의 「건강한 신호」로 이어질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 인사동 골동품상가/신라토기서 조선가구까지 다양(전문상가)

    ◎40여곳 밀집… 고려청자 소품 20만원선 언제부턴가 골동품을 실내장식에 이용하는 예가 많아졌다.우리의 옛 미의식을 간직하고 있는 골동품은 수집 취미의 대상으로 뿐만아니라 쉽게 싫증이 나지 않는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집안을 꾸미는데도 톡톡히 한몫을 거든다. 이에따라 서울 인사동 골동품상가를 드나드는 일반인의 발길도 늘고 있다.「인사동 거리」하면 으레 골동품을 떠올릴 정도로 인사동은 골동품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곳.안국동과 종로2가를 잇는 대각선도로 양편 인사동및 관철동 골목에는 화랑·표구상·필방 등과 함께 40여곳의 골동품 점포가 줄지어 들어서 있다.진열돼 있는 골동품은 신라시대 토기에서부터 조선시대 가구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조들의 내음이 밴 간단한 집기와 생활용구를 비롯해 도자기·가구·서화류 등 종류가 다양하다. 구한말 가세가 기울어 가던 양반들이 거간꾼들을 통해 집안의 가보들을 하나둘 내다 팔던 이곳은 일제시대에는 일본이 골동품을 사들이는 집산지가 됐으며 광복이후부터 본격적인 골동품상가로서의면모를 갖추게 된다.이후 성장을 거듭해 70년대말 전성기를 이뤘다가 제2차 석유파동으로 내리막을 걸어왔다.그러나 2년전부터는 서울 장안평 골동품상가의 침체로 상대적인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주로 들르는 고객은 미적감각이 뛰어난 30대후반에서 40대중반에 이르는 장·중년층.80년대 들어서부터는 원화 가치의 상승으로 외국인은 그리 많이 찾지 않는 대신 골동품에 대한 안목과 소양은 전문수집가에 뒤지나 순수하게 골동품을 장식용 등으로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크게 늘었다는게 두초이갤러리 주인 최명언씨의 설명이다. 이에따라 그다지 비싸지 않은 소품들도 크게 인기다. 일반인들은 골동품은 굉장히 값비싼 것으로 생각해 인사동거리를 숱하게 지나면서도 진열대에 눈을 돌리지 않지만 생각보다 싼 골동품들이 의외로 많다.먼저 토기는 연대가 오래된데 비해 가격이 매우 싼편이다.1천년이 훨씬 넘은 신라시대 토기가 15만∼20만원선.고려시대 상감청자와 질그릇도 10만∼20만원선이면 구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접시류도 최하 3만원선부터 20만원까지 싼 것들이 다양하게 나와있다. 전문성이 많이 요구되는 고서화의 경우에는 초보자에게 무난한 10만∼20만원선의 간찰(편지글)들을 쉽게 구할수 있다.이밖에 7만∼20만원하는 조선시대 다식판,8만∼15만원하는 호족반(소반),20만원 가량하는 창호로 장식적 효과를 한껏 낼 수도 있다.이와 같은 가격대는 80년대에 비해 별로 오르지 않은 것으로 현재 약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씨는 초보자가 골동품을 고를때는 『희소성·보존상태·연대 등을 참고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의 취향을 스스로 비하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30억대 골동품 강도/이조백자 등 51점 훔친 3명 영장

    서울 종로경찰서는 4일 골동품수집가 집에 침입,이조백자등 시가 30억여원어치의 고미술품을 빼앗아 달아난 김관이씨(50·무직·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5의8)등 3명을 붙잡아 특수강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등은 지난 5월13일 상오1시쯤 서울 종로구 사간동 이인구씨(88)집 철문을 절단기로 열고 들어가 도자기 16점과 허백련의 사각전지화등 고서화 35점등 모두 30억원상당의 미술품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다.
  • 앞당긴 출퇴근(외언내언)

    『관습에는 가끔 깊은 뜻이 있다』(독일의 극작가 실러)고도 하지만 『관습이란… 어리석은 자들의 우상』(영국의 격언수집가 J 레이)이라고 혹평되기도 한다.어떤 경우건 그것이 관습화했다는 것은 좋은 점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여건이 달라지면 관습 또한 바뀌게 됨은 당연하다.그렇다 할때 관습에 안주해버릴 일만도 아님을 알겠다. 직장의 출퇴근시간이라는 것을 놓고 보자.대체로 8∼9시사이 출근에서 5∼6시사이 퇴근이 정형으로 되어있다.이 때문에 생겨난 말이 「러시아워」다.어떤 시간대에 우 몰려드는 상황.교통이 막힐밖에 없다.짜증이 날수밖에 없다.월급쟁이들은 출근하면서 벌써 지쳐버린다.그런데도 모든 직장이 계속해서 출퇴근에 그 시간대를 고집해야 할 것인가는 생각해볼 대목이었다. 삼성그룹이 「상오7시 출근 하오4시 퇴근」을 도입한 뜻은 그점에서 우선 긍정적 시각으로 평가돼야겠다.이때까지의 관행만 생각하는 축에서는 생활의 리듬이 깨진다는 우려를 하고도 있는 모양이다.물론 제대로 적응하기까지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다른 직장인과의 시간대 차이가 가져오는 생활상의 불편이 없다고도 할수 없겠고.무엇보다도 일찍 퇴근한 후의 시간선용이 중요한 과제로 된다고 할일이다. 일의 능률면에서 볼때 상오가 나은 것임은 우리 모두가 경험해오는 터이다.그래서 일은 일찍 시작하는게 좋다.스스로는 러시아워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남의 러시아워를 덜어준다는 공도 크다.외국기업들의 출퇴근앞당기기 추세도 그런데에 까닭이 있다고 할것이다.퇴근후에는 어학연수원에 다닐수도 있다.건강을 위하는 일이나 취미생활을 찾아낼수도 있겠고.자기향상·자기발전의 시간으로 만들어 나가면 된다.그럴때 출퇴근앞당기기의 뜻은 더욱 빛나게 될것이다. 겨울철에는 시간을 좀 조절할수도 있겠다.아무튼 큰 기업체들이 이뒤를 따를때 출퇴근시간의 혼잡은 줄어들 것이다.더많이 파급되었으면 한다.
  • 불 6백명 소도시에 13개 서점 성업

    ◎베슈렐마을 89년 「책축제」 성공뒤 “활황”/매월 첫 일요일·부활절엔 책시장 개설/서점 한곳 없던곳이 주말마다 “북적” 프랑스 브르타뉴지방의 베슈렐이라는 인구 6백명의 한적한 마을에는 서점이 13개나 있다. 이곳이 「책마을」이 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옛 소도시의 풍취를 간직하고 있는 아담한 마을의 중심에는 나막신 제조소,전기수리소,식료품가게,술집,빵집이 있었으나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나 둘 사라지고 인구도 줄어 적막한 곳이 되었다.쇠락해 가는 이곳을 살리려는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애쓴 결과 89년부터 「책마을」로 널리 알려지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이 마을의 부흥노력은 85년에 시작되었다.향토발전에 관심이 많은 정신과 의사 하나가 친구 몇명과 「도약대」라는 애향회를 만들고 옛 나막신 공방건물 한 부분을 사서 문화센터 구실을 겸한 카페를 열었다.그러나 이것만으로 쇠잔한 마을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브르타뉴문화원 원장이 「책의 축제」를 이 마을에서 열자는 안을 내고 그 행사를 조직했다.85년 부활절때 대규모로 그 첫 행사를 벌였다. 이 마을에서의 「책의 축제」란 사실 좀 억지였다.이곳에 서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이 작은 마을에 6천명이 모여든 것이다.힘을 얻은 「도약대」모임은 아예 서점을 차리기로 했다.켈틱어 서점인 「미래」와 또 다른 서점 「뿌리」가 문을 열었다. 그뒤 외부인이 들어와서 서점을 하나 둘씩 열어갔다.서점을 차린 외부인중에는 항구도시 브레스트에서 미술도서 제본공을 하던 여자도 있고 명승지 몽셸미셸에서 카페를 하던 로렌 태생 남자도 있다.고물매매가 취미였던 이 남자는 고서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지은 우아한 화강암 건물들을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것도 이 마을이 서점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었다.옛 미장원과 옛 약국 등에 서점이 들어섰다.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첫 가게가 서점이고 한눈에 서점 여러개가 들어온다. 이 서점들은 주말에만 문을 여는 것이 특징이다.특히 매월 첫 일요일과 부활절에 「책시장」이 열린다.부활절의 것은 「책의 축제」로서 대규모 행사다.누가 이 작은 마을까지 찾아올까.첫째는 책 수집가들이다.여기서 애서가들끼리 교분이 맺어지기도 한다.본격적인 수집가가 아니더라도 주말에 가족과 함께 산보하면서 기웃기웃하는 사람들이 많다.고서 노점상들도 온다. 「책마을」로서 베슈렐은 아직 초창기라 서점들의 분야별 전문화가 안되어 있다는 평이 있으며 이 점을 서점 주인들도 알고 있어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책의 축제」와 주말 책시장을 조직하는 「도약대」가 자체 로고의 사용을 강제하는 등 전횡을 부린다고 일부 서적상들이 불평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또 다른 조직 「베슈렐 서적상협회」가 생겼다.이제 두개의 조직이 각각 축제를 열고 있다. 두 조직의 경쟁이 책마을 베슈렐에는 더욱 이로운 결과가 되었다.새 조직은 새 행사 「책과 재즈의 밤」을 꾸몄고 서점 4개외에 화방 1개를 새로 더 열기로 했다.「도약대」는 요리학교와 주점을 열려고 준비하고 있다. 베슈렐의 인구는 50명이 늘었다.집값 또한 뛰어올랐다.이 마을을 다시 일으킨 것은 책이었다.
  • 소련박물관에 고대 예술품 대량 기증(북한의 이모저모)

    ◎저질화장품탓 여성 피부질환자 늘어 ○변함없는 충성 강조 ○…북한은 최근들어 주민사상문제를 빈번히 거론,난국을 타개하는 길은 변함없는 충성과 신념 뿐이라면서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불변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3∼4일 동안에만도 충·효일심,사상적 순결성,필승의 신념 등을 요구하는 논조의 기사를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잇따라 게재했다.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4일자에 「필승의 신심과 낙관에 넘쳐 힘차게 전진하자」제하의 사설을 게재한 것을 비롯해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는 것은 우리당의 일관한 노선」(5·25 노동신문 논설) ▲「우리 혁명대오를 충효일심의 결정체로 만들자」(5·26 노동신문 사설)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 교양을 더욱 심화시키자」(5·27 노동신문 사설)등을 계속해서 내보냈다. 북한은 「필승의 신념」에 대해 난관과 시련앞에서 좌절하면 재생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안팎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김일성부자가 있는한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을 확고히 견지할 것을 요구했다.○고려청자 등 포함 ○…북한은 지난 50년대 모스크바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많은 고대 예술품들을 옛 소련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방송은 25일 모스크바소재 「국립동방인민미술박물관」개관 75주년 관련기사에서 이 박물관의 「조선부」에 소장되어 있는 다수의 고대 예술품들은 북한이 50년대에 대사관을 통해 기증한 것들이며 나머지는 수집가들로부터 구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방송은 이어 「국립동방인민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예술품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8세기께 화강암으로 제작된 관음보살상과 고려청자,회화작품,그리고 16세기에 그려진 고려시대의 한 고관의 초상화라면서 고대 조선예술품들의 예술성을 극찬했다. ○「의무화장」이 주원인 ○…북한여성들의 상당수가 저가 화장품의 사용으로 인하여 각종 피부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중국 동포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피부질환은 심한 가려움증에서 부터 발진,수포 발생 등 각종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환자들 대다수가 변변한 치료를 받지못하고 민간요법에만 의존,병을 악화시켜 마치 천연두를 앓고난 것처럼 얼굴에 보기흉한 흉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북한여성들이 이처럼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것은 「의무화장」등이 주원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무화장이란 김일성 부자 생일을 비롯한 주요 국경일날 행사에 동원될 때나 외출시 반드시 화장을 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화장을 하지 않고 행사에 참석하거나 외출하여 「도로정화원」에게 적발됐을 경우에는 심한 질책과 함께 당에 대한 충성부족으로 문제가 제기되어 자아비판을 받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조각천 팬티 인기 ○…북한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 혼수용품으로 「조각천 팬티」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때문에 결혼을 앞둔 젊은 여성들은 물론 혼사를 앞둔 부모들은 딸과 며느리에게 줄 「조각천 팬티」구입을 위해 고심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조각천 팬티 암거래상까지 등장했다.암시장에서 조각천 팬티는 1장당 20원의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조각천 팬티는 각 도·시·군 소재 수출 피복공장에서 수출용피복을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 천을 이용하여 만든 「삼각팬티」로 북한의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여러가지 천을 이용하여 만들어 색상과 문양이 화려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 체코에 명화 30점 소유권분쟁

    ◎공산정권 당시 수집가가 피카소작 등 기증/“강요의한 것” 딸이 국립미술관상대 반환소 민주화된 체코에서 옛 공산정권때 국가에 헌납된 예술품의 소유권을 놓고 국립미술관과 헌납자의 자손이 첨예하게 대립,법정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체코의 각 미술관과 박물관은 민주정부가 제정한 「복원및 반환법」에 따라 지난 48년 공산정권 수립과 동시에 국유화돼 그들 기관이 보유해온 수많은 개인소장 예술품을 원주인에게 되돌려주는 일을 착착 진행해 왔다.장식예술박물관의 경우 지난 한햇동안 소장품중 7백여 작품을 개인에게 반환했다.또 프라하에 소재한 국립미술관의 루보미르 슬라비세치 관장은 『30∼40년동안 보유해온 예술품을 내놓자니 매우 서운하기는 하지만 국립미술관의 보유품목이 「몰수」에 기반을 둘 수는 없다』며 정부의 반환운동에 적극 동참할 의사를 표명했다. 그동안 국립미술관의 소장품을 대상으로한 일반시민의 반환권 제기는 1백50여건에 달하는데 대부분 원주인으로서 소유권은 인정받되 작품은 장기임대 형식을 통해 국립미술관이보유하는 선에서 원만한 타협을 보았다.그러나 빈센치 크라마르라는 예술사가겸 수집가가 일괄 헌납한 총 30점의 현대회화에 관해서만은 슬라비세치 관장을 위시,국립미술관의 자세도 「반환은 물론 소유권인정 절대불가」의 철벽을 견지,결국 법정까지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크라마르 헌납품은 한마디로 체코 국립미술관의 보물.16점의 피카소 작품과 2점의 브라크 작품을 포함한 이 일괄헌납품은 화가도 화가지만 무엇보다 1907년에 불이 붙었다가 1912년에 사그라진 「입체파」운동의 본질이 고스란히 보존된 것들이다.입체파의 활동기간은 짧았으나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며 입체파에 집중된 컬렉션 가운데 크라마르 헌납품에 비길만한 일괄수집은 찾을 수 없다. 남다른 예술안과 상당한 재력을 갖춘 청년 크라마르는 1910년부터 2년동안 파리를 드나들면서 당시 예술품애호가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입체파작품을 「헐값에」 사들였다.예를 들어 1911년5월에 피카소 3점,브라크 1점,앙드레 드렝 1점 등을 단 3천3백50프랑(6백40달러)에 매입했는데 크라마르 헌납품목록에 있는 피카소 작품은 현재 1점당 수백만달러를 호가한다.이 크라마르 수집품에 대한 반환청구는 크라마르의 딸이 제기한 것으로 그녀는 아버지가 죽기 직전인 지난 60년 공산정권의 강요에 못이겨 국립미술관에 자신의 입체파 컬렉션을 인도한다는 각서를 썼을 따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크라마르의 인도및 기증 각서를 손에 쥐고 있는 국립미술관측은 크라마르의 「자의에 의한 헌납」을 뒷받침하는 여러 보충자료와 정황증거를 댈 수 있다며 딸의 반환요구를 일축해버렸다.수천만달러에 이르는 값비싼 그림의 소유권은 법정에서 가려질 수 밖에 없게 됐는데 재판은 이달 중순 시작됐으나 소송 성격상 판결까지는 장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 전화카드 통신판매/새달 시범운영… 수집가 편의위해

    한국통신은 최근 들어 공중전화카드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늘어감에따라 카드수집가들의 편의를 위해 오는 5월1일부터 통신판매제도를 시범적으로 실시한뒤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키로 했다.한국통신은 우선 서울 광화문,수원,대전,광주,부산 아미,대구 태평전화국등 전국 6개곳을 통신판매 시범전화국으로 지정,5월이후 발행되는 일반전화카드를 대상으로 통신판매를 실시한다.
  • 대전엑스포 기념주화 6월에 선뵌다/5만원짜리 등 총 6종 98만장

    대전 엑스포 기념주화(사진) 곧 제작을 완료,6월중 판매에 들어간다. 엑스포 조직위는 14일 현재 세계인의 축제인 대전 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해 발행하는 기념주화의 제작 작업이 50%정도 완료돼 6월중 판매간사은행인 조흥은행 및 시중은행의 4천8백82개 지점포에서 판매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발행되는 기념주화는 액면가 5만원짜리와 2만원짜리 금화 2종,1만원짜리와 5천원짜리(A·B)은화 3종,1천원짜리 적동화 1개종등 모두 6종으로 총 발행량은 98만장이다.이 가운데 기념주화의 성격을 갖춘 금·은화 48만장은 예약판매되고 보통화(적동화) 50만장은 선착순 판매된다. 국내에서 아홉번째 발행되는 기념주화인 엑스포 기념주화는 디자인면에서 다른 기념주화와 달리 사실적인 주제와 그래픽 요소를 가미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테두리에 문자를 각인하는 레터링 기법이 도입돼 화폐 수집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새봄 화랑가 “재상공개 한파”/그림값 최고 50% 하락

    ◎인사·청담동 긴 휴면… 수집가 발길 “뚝”/상업화랑마저 고객유치 전시회 기피/경매제도입·호당가격폐지 등 불황타개 시도 화창하고 따사로운 봄볕에도 아랑곳없이 국내미술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 도무지 풀릴 기미를 보이지않고 있다. 게다가 최근의 공직자 재산공개 여파가 또다른 악재로 작용해 미술시장의 경기회복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기만 하다. 반면 지난2∼3년을 끌어온 이같은 극심한 불황을 극복하려는 미술계의 조심스러운 변화양상들이 엿보이고 있으며 천정부지로 오른 그림값도 서서히 하락하는등 새로운 조정국면을 맞고있다. 새봄 해빙기를 기대했던 화랑가에 또한번 찬물을 끼얹은 재산공개 파문은 초장엔 오히려 미술시장에 활기를 줄것이란 예측을 낳았다. 즉 실명제와 재산공개를 피한 돈줄이 미술시장쪽으로 길을 낼것이 아니냐는 추측이었던것.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지난달 중순부터 지방 화랑가에선 서울의 굵직한 컬렉터들이 몰려든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미술시장의 맥을 잡고있는 인사동과 강남구 청담동 화랑가는 그 어느때보다 심한 한랭기류에 빠져 상권의 중심부에 있던 일부화상들은 본의아닌 휴면을 즐기고 있을뿐 미술시장에 다시 돈이 몰려든다는 설은 그들의 입을 통해 사실무근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금융실명제 실시와 관련하여 저축성예금의 핫머니가 갑자기 미술품과 골동품에 몰린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또한 추측일뿐 실제로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는게 화상들의 증언이다. 다만 몇몇 연륜있는 화랑에 인기작고작가의 특정한 작품을 구입해달라고 은밀히 주문하는 사례가 한두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외 거래는 거의 중단상태인 것으로 밝혀지고있다. 인사동의 터줏대감인 동산방화랑 대표 박주환씨는 『예년같으면 웬만한 상업화랑들이 새봄맞이 신고격의 굵직한 전시회를 열고 고객유치에 바쁠 때이나 올해는 많은 화랑들이 숨을 죽이고 있으며 기존 컬렉터들의 발길도 거의 끊긴 상태』라고 털어 놓았다. 상문당갤러리 대표 박우윤씨도 『여유자금이 있더라도 미술에 소양을 갖고있지 못한 사람이 미술품을 사가는 예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한편 진통속에서 새로 태어나기위해 서서히 탈바꿈하고 있는 미술계의 몇가지 변화중에는 「그림값하락」이 가장 큰 관심사로 눈여겨진다.호가는 그림값이 가장 높았던 지난91년에 비해 다소(5∼10%) 떨어졌지만 실제는 거래가 거의 없고,혹 거래가 전제될 때에도 원로 작고작가의 경우 20∼30%,일부작가는 50%이상까지 하락한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또 이름에 매달려 있던 작품가격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제시돼가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종전의 경우 누구의 작품하면 보지도 않고 그냥 크기로만 작품값을 매기는게 일반적이었으나 요즘은 애호가들이 재료·제작연도·크기,심지어는 밀도까지 작품의 내용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 화랑들도 이름만 갖고 주먹구구식으로 장사하던 구태를 벗어날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이게 됐다. 그밖에 화단의 주요 변화양상으로 ▲미술품유통의 주요품목이 30∼40대로 젊어지고 있다는 점 ▲미술품컬렉터가 돈많은 투자자에서 진정한 미술애호가로 바뀌고 있다는 점 ▲작품가를 호당으로 일률적으로 매기던 관례가 바뀌고 있는점 ▲경매제등 미술품유통에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있는 점등이 거론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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