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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 美 우주왕복선시대 막 내렸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21일(현지시간) 애틀랜티스호의 귀환으로 3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날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4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인류 첫 달착륙 42주년 되는 날 애틀랜티스호는 지난 8일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돼 12일간 국제우주정거장 내 실험실의 작동에 필요한 부품과 보급품을 수송하는 등 마지막 임무를 수행했다. 크리스 퍼거슨 선장과 더그 헐리 미 해병대 대령 등 4명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왕복선의 마지막 역사를 써내려 갔다고 현지 외신들은 전했다. 나사 관계자는 “우주를 향한 도전의 한 시대가 마감됐다.”면서 “이제 우주왕복선은 인류의 우주 개척사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유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은 1981년 4월 12일 우주비행사 2명을 태운 컬럼비아호 발사를 시작으로 본격 궤도에 올랐다. 애틀랜티스호의 이번 임무는 135번째이자 마지막 비행이었다. 지금까지 프로그램에는 컬럼비아호와 챌린저호, 디스커버리호, 애틀랜티스호, 인데버호 등 5대가 참여했다. ●세계각지 애호가 기념품 확보 경쟁 우주왕복선 시대가 쾌거와 영광의 기억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왕복선인 컬럼비아호는 2003년 지구로 돌아오다 폭발했고, 챌린저호는 1986년 발사된 지 73초 만에 공중 폭발했다. 두 사고에서 각각 7명씩의 우주비행사 전원이 희생됐다. 퇴역 우주왕복선들은 앞으로 지상에 마련된 전시장에서 일반 관광객들을 맞는다. 디스커버리호는 스미스소니언의 국립항공우주박물관 별도 전시장인 스티븐 우드바르 하지 센터에 9월부터 전시된다. 애틀랜티스호는 우주왕복선 발사 장소인 케네디 우주센터에, 인데버호는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과학센터에 둥지를 튼다. 한편 우주왕복선 시대가 마감되면서 우주선 전용 경매 사이트에 세계 각지의 수집 애호가들이 몰리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골드버그 옥션에는 애틀랜티스호가 마지막 비행에 나선 직후 수백명의 수집가들이 몰려들어 우주에서 가져온 각종 잔해나 우주비행사의 자필 사인, 기념 메달, 나사의 비공식 사진물 등 역사적인 유물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USA투데이는 “적게는 수십 달러에서 많게는 50만 달러까지 가격이 치솟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마릴린 먼로, 무명시절 찍은 ‘야동’ 경매 나와

    마릴린 먼로, 무명시절 찍은 ‘야동’ 경매 나와

    전설적인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무명시절인 20살 경 찍은 것으로 알려진 포르노 영상이 경매에 나왔다. 한 스페인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던 이 포르노 영상은 6분짜리 흑백 8mm 필름으로 다음달 8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경매된다. 이 필름의 최저 낙찰가격은 50만 달러이나 행사 측은 100만 달러는 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행사관계자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이 필름은 먼로가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던 1946년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며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한 남자와의 정사를 담고 있다.” 고 밝혔다. 경매에 나온 이 필름의 존재는 지난 1997년에 알려졌다. 당시 출연여성이 진짜 먼로인지 논쟁이 일었으며 미국 영화협회(AFI)는 “먼로가 아니면 쌍둥이 자매일 것”이라며 사실 가능성에 무게를 둔 바 있다. 마릴린 먼로의 포르노 필름은 이밖에도 더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8년에도 먼로로 추정되는 여성의 흑백 필름이 개인 수집가에게 150만 달러에 판매된 바 있다. 한편 마릴린 먼로는 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로 세계적인 섹시 심벌로 인기를 얻었으나 결혼실패 등 불운을 겪다 1962년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제인 오스틴 희귀 원고, 17억에 낙찰돼

    제인 오스틴 희귀 원고, 17억에 낙찰돼

    ‘오만과 편견’으로 유명한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초기 미발표 원고가 소더비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17억원에 달하는 거액에 낙찰됐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런던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 제인 오스틴의 원고 ‘왓슨가의 사람들’(The Watsons)이 애초 경매 최고예상가인 30만 파운드의 3배가 넘는 입찰가에 익명의 전화 입찰인에 낙찰됐다. 무려 99만 3250파운드(약 16억 9716만원)에 낙찰된 이 원고는 전체의 4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68쪽 분량의 필사본으로 1804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이 소장하다 옥스퍼드 대학 보들리언 도서관에 팔렸으며 이번 소더비 경매에서 다시 개인 수집가에게 팔린 셈이다. 특히 제인 오스틴의 완성된 소설 중에서는 ‘설득’과 ‘레이디 수잔’ 등을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친필원고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해 오스틴 권위자인 캐스린 서덜랜드 옥스퍼드대 영어영문학 교수가 그동안 ‘문체의 여왕’으로 불렸던 제인 오스틴이 명성과 달리 문장이 엉망이어서 출판사 편집자가 문체를 다듬었다고 주장한 뒤, 이번 원고에 큰 관심이 쏠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소더비 선임 전문가 가브리엘 히튼은 “이번 원고는 학자들에게 제인 오스틴이 어떻게 작업하고 수정했는 지뿐만 아니라 편집자에 의해 수정되기 전 다른 원고들과의 비교 역시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제인 오스틴은 섬세한 시선과 재치있는 문체로 18세기 영국 중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다룬 작품을 많이 썼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그의 작품 중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엠마’등이 수차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현대인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지구 역사상 최강의 ‘바다 포식자’ 화석 공개

    약 1억 5500만년 전의 지구 바닷속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포식자로 군림했던 해양 공룡의 새로운 화석이 공개됐다. 7일 영국 방송 BBC에 따르면 최근 도싯 카운티 박물관에서 플리오사우루스의 한 종으로 여겨지는 공룡의 두개골 화석이 일반인들에 공개되고 있다. 이 두개골 화석은 ‘쥐라기 해안’으로 잘 알려진 도싯과 동부 데번 해안에서 최초로 발견됐으며, 지난 1년 6개월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완성됐다. 과학자들은 이 화석을 플리오사우루스와 같은 종이거나 새로운 생물로 보고 있다. 카운티 위원회의 지구과학 매니저 리처드 에드먼즈는 “처음에 단순한 뼈 더미로 생각했다. 지금은 95%가량 완성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완벽하고 가장 큰 플리오사우루스의 화석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화석은 약 1억 5500만 년 전의 것으로, 지역 수집가인 케반 시핸이 지난 2003년부터 6년간 조금씩 뼛조각을 모았다. 당시 화석은 점점 웨이머스만 인근의 한 절벽 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고. 시핸은 “해변에 앉아 있다가 (절벽에서 화석 파편) 세 조각을 목격했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모른 채 발굴을 진행했고 몇 년간 새로운 조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처음 그 화석은 ‘바다 괴물’보다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더 닮았지만, 화석 전문가 스콧 무어- 페이는 그 뼛조각을 오랜 과정을 거쳐 정교한 화석으로 바꿨다. 다소 스테로이드를 맞은 악어처럼 보이는 이 ‘바다 괴물’ 화석은 쥐라기와 백악기 기간동안 산 플리오사우루스로 그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특히 이 바다 괴물은 육상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보다 무는 힘이 무려 10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4개의 물갈퀴를 갖고 있었던 것을 예상하면 거대한 몸집에 매우 빠른 동력까지 갖춘 말그대로 바다의 제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두개골 외에는 어떠한 몸통 화석도 발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2.4m에 달하는 두개골을 통해 과학자들은 이 포식자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약 15~18m의 몸길이로 추정했다. 고생물학자 리처드 포레스트는 “이 두개골 화석은 지난 몇 년간 발굴된 가장 흥미로운 화석 중 하나이며 상징적인 표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그 ‘바다 괴물’의 완전한 화석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세계 최대의 바다 괴물’이라는 타이틀의 주인으로 확인되기는 힘들다. 잠재적으로 더 큰 표본 조각은 옥스퍼드셔의 벽돌 원토 채취장에서도 발견됐으며, 호주에서 크로노사우루스로 불리는 플리오사우루스 한 종의 두개골 길이는 최대 3m로 나타났다. 또 최근 스발바르에서 발견된 ‘괴물’이나 ‘프레데터 X’로 명명된 화석뿐 아니라 멕시코에서 발견된 ‘아람베리의 괴물’ 또한 이 ‘바다 괴물’의 경쟁 상대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역대 지구 최강 ‘바다 괴물’ 화석 공개

    약 1억 5500만년 전의 지구 바닷속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포식자로 군림했던 해양 공룡의 새로운 화석이 공개됐다. 7일 영국 방송 BBC에 따르면 최근 도싯 카운티 박물관에서 플리오사우루스의 한 종으로 여겨지는 공룡의 두개골 화석이 일반인들에 공개되고 있다. 이 두개골 화석은 ‘쥐라기 해안’으로 잘 알려진 도싯과 동부 데번 해안에서 최초로 발견됐으며, 지난 1년 6개월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완성됐다. 과학자들은 이 화석을 플리오사우루스와 같은 종이거나 새로운 생물로 보고 있다. 카운티 위원회의 지구과학 매니저 리처드 에드먼즈는 “처음에 단순한 뼈 더미로 생각했다. 지금은 95%가량 완성됐으며,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완벽하고 가장 큰 플리오사우루스의 화석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화석은 약 1억 5500만 년 전의 것으로, 지역 수집가인 케반 시핸이 지난 2003년부터 6년간 조금씩 뼛조각을 모았다. 당시 화석은 점점 웨이머스만 인근의 한 절벽 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고. 시핸은 “해변에 앉아 있다가 (절벽에서 화석 파편) 세 조각을 목격했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모른 채 발굴을 진행했고 몇 년간 새로운 조각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처음 그 화석은 ‘바다 괴물’보다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더 닮았지만, 화석 전문가 스콧 무어- 페이는 그 뼛조각을 오랜 과정을 거쳐 정교한 화석으로 바꿨다. 다소 스테로이드를 맞은 악어처럼 보이는 이 ‘바다 괴물’ 화석은 쥐라기와 백악기 기간동안 산 플리오사우루스로 그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특히 이 바다 괴물은 육상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보다 무는 힘이 무려 10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4개의 물갈퀴를 갖고 있었던 것을 예상하면 거대한 몸집에 매우 빠른 동력까지 갖춘 말그대로 바다의 제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두개골 외에는 어떠한 몸통 화석도 발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2.4m에 달하는 두개골을 통해 과학자들은 이 포식자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약 15~18m의 몸길이로 추정했다. 고생물학자 리처드 포레스트는 “이 두개골 화석은 지난 몇 년간 발굴된 가장 흥미로운 화석 중 하나이며 상징적인 표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그 ‘바다 괴물’의 완전한 화석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세계 최대의 바다 괴물’이라는 타이틀의 주인으로 확인되기는 힘들다. 잠재적으로 더 큰 표본 조각은 옥스퍼드셔의 벽돌 원토 채취장에서도 발견됐으며, 호주에서 크로노사우루스로 불리는 플리오사우루스 한 종의 두개골 길이는 최대 3m로 나타났다. 또 최근 스발바르에서 발견된 ‘괴물’이나 ‘프레데터 X’로 명명된 화석뿐 아니라 멕시코에서 발견된 ‘아람베리의 괴물’ 또한 이 ‘바다 괴물’의 경쟁 상대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속 훤히 보이는 ‘시스루 자동차’ 경매가 무려…

    속 훤히 보이는 ‘시스루 자동차’ 경매가 무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일명 ‘고스트 카’(Ghost Car)가 경매에 나와 수집가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시스루’(See-through) 스타일의 이 자동차는 1939년 제너럴모터스(GM)사와 화학약품 연구업체인 롬 앤드 하스(Rohm and hass)가 합작으로 제작한 것으로, 정식 이름은 ‘폰티악 디럭스’다. 미국에서 최초로 생산된 시스루 자동차로, 차체 전체가 특수 유리로 덮여 독특한 느낌을 주며 6실린더 엔진과 3단 수동변속기를 갖췄다. 1940년 뉴욕 월드페어(New York World‘s Fair)에서 최초 공개됐고, 딱 3대만이 생산된 탓에 희귀가치가 매우 높아 자동차 수집가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이중 한 대가 오는 7월 말 미국서 열리는 경매에 나올 예정이며, 경매 주최 측은 최소 27만 5000달러(약 3억 원)에서 최고 47만 5000달러(약 5억 640만원)의 낙찰가를 예상하고 있다. 경매 주최 측 관계자는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엔진 등 다양한 부품들이 매우 깨끗하고 여전히 작동된다.”면서 “뜨거운 경쟁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사진=데일리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美최고총잡이 ‘빌리 더 키드’ 사진 25억원 낙찰

    美최고총잡이 ‘빌리 더 키드’ 사진 25억원 낙찰

    미국 서부시대의 전설적인 총잡이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의 사진이 무려 230만 달러(약 25억원)에 낙찰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경매에서 빌리 더 키드의 유일한 진본 사진으로 알려진 사진이 개인 수집가인 윌리엄 코흐에게 팔렸다. 이 사진은 1879년 혹은 1880년에 빌리 더 키드가 단돈 25센트를 주고 멕시코주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속에서 빌리 더 키드는 모자를 쓰고 오른쪽에는 소총을, 왼쪽에는 콜트 리볼버 권총을 차고 있다. 빌리 더 키드는 1859년 생으로 보안관 3명을 포함, 총 21명을 살해한 미 서부시대 최고의 총잡이다. 그의 삶은 각종 영화와 전기로 나와 큰 인기를 끌었으며 1881년 21세 나이에 보안관 팻 커럿에게 사살되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마릴린 먼로 ‘통풍구 드레스’ 경매 낙찰가 무려…

    마릴린 먼로 ‘통풍구 드레스’ 경매 낙찰가 무려…

    ‘섹시 아이콘’ 마릴린 먼로의 트레이드마크인 ‘통풍구 드레스’가 최근 열린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낙찰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마릴린 먼로가 영화 ‘7년만의 외출’(1955)에서 입은 흰색 원피스가 46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0억원에 낙찰됐다고 CNN등 현지 언론이 18일 보도했다. 지난 18일 미국 캘리포니아 커스텀 컬렉션 경매장에서 열린 경매는 수수로 100만 달러를 더 지불해야 하는 원칙에 따라 최종적으로 560만 달러(약 61억원)에 팔린 셈이다. 이 원피스는 먼로가 지하철 통풍구에 서서 올라오는 바람을 맞으며 아찔하면서도 귀여운 포즈를 취한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덩달아 유명해졌다. 먼로의 원피스는 할리우드 영화 의상과 소도구 수집가로 잘 알려진 배우 데비 레이놀스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놀스는 “할리우드 영화 역사박물관을 만들려 각종 소품을 수집해 왔지만, 최근 박물관 건립이 무산돼 희귀 드레스를 경매에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가에 먼로의 드레스를 손에 넣은 낙찰가는 전화로 경매에 응모했으며, 먼로의 오랜 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팬은 이번 경매를 통해 ‘통풍구 드레스’ 뿐 아니라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 등장한 붉은색 드레스를 포함해 총 3벌을 낙찰받는데 성공, 총 1000만 달러(약 11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했다. 한편 지금까지 경매에 나온 먼로의 의상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1962년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의 생일파티 때 입은 드레스로, 1999년 경매 당시 낙찰 금액은 126만달러(약 13억6000만원)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누군가에게 그들은 알록달록 그림이 가득한 옛날 책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냥 도서관 한편에 놓인 채 잊혀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은 민족문화의 정수였다. 수백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조상들의 삶과 생활을 알 수 있는 역사의 기록이었다. 그들이 145년의 세월을 건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들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은 이제 옛 사람의 후손들에 의해 다시금 숨결을 되찾고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30여년에 걸친 우리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우리의 유산들이 외국에서 이 땅을 그리워하고 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장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는 전 세계의 유명한 ‘약탈(掠奪) 문화재’도 모습을 나타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같은 신세였던 외규장각 도서를 부러워하면서…. 그들이 저마다 고향을 향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얘기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덕분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대여’(貸與)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게 아쉽지만, 저와 제 가족은 다시는 이 땅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휘경원(徽慶園) 원소도감의궤(園所都鑑儀軌)가 건배사를 시작하자,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1993년 휘경원 의궤가 홀로 파리 국립도서관을 떠나 한국으로 갈 때 다들 그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후로 18년. 휘경원 의궤의 뒤를 이어 자신들도 금의환향한 것이 스스로 믿기지 않는 그들이었다. 1866년 강화도를 떠난 지 무려 145년 만이다. 휘경원 의궤가 파티장을 둘러본 후 다시 말을 이으려는 찰나, 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문이 열리자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어디선가 떨어져 나온 듯한 조각 뭉치부터 미라 머리까지 괴기스럽기 그지없었다. 표정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조각상이 대표로 말을 꺼냈다. ●엘긴 마블 축하드립니다. 한국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조선왕실의궤처럼 다른 나라에 무참히 끌려간 인류의 유산들입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매일 얼굴을 팔면서 살고 있지만, 한순간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의궤가 너무 부럽고 해서 함께 찾아왔습니다. ●휘경원 의궤 감사합니다. 우선 이쪽으로 앉으시죠. 여기 계신 손님들이 잘 모르실 수도 있어 간략하게들 자리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엘긴 마블 안녕하세요. 전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장식입니다. 기원전 440년 무렵에 만들어졌고, 인물 360여명과 말 219마리로 구성돼 있어요. 제 치욕스러운 이름은 영국 외교관인 엘긴 브루스에서 비롯됐습니다. 19세기 초 터키의 그리스 지배 당시에 저희를 몽땅 긁어모아서 영국으로 옮겨왔죠. 대수집가로 추앙받는 경우도 있던데, 정말 어이없는 일이죠. 저희 가족은 ‘파르테논 마블스’로 불려야 마땅합니다. 성스러운 신전의 장식물을 떼어 와 감상하려 한 약탈자의 이름을 붙이다니요. 아마 가능하기만 했다면 파르테논 신전을 통째로 가져오고도 남았을 테죠. 현재 저희 가족은 대부분 대영박물관에 있고, 일부는 루브르박물관에도 있습니다. ●휘경원 의궤 파르테논 마블님은 문화재 반환운동의 대부로 유명하시죠. ●파르테논 마블 가만있자…, 그게 1960년대였을 거예요. 런던을 무대로 영화를 촬영하던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가 저희가 대영박물관에 있는 걸 보고 통곡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메르쿠리는 1981년 문화부 장관이 되면서 정부와 전 국민을 상대로 반환운동을 벌였고, 1994년 세상을 뜰 때까지 한시도 운동을 쉬지 않았어요. 지금도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메르쿠리 이름으로 된 호소문을 받게 됩니다. ●휘경원 의궤 그리스에도 우리나라 박병선 박사 같은 분이 계셨군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더 듣기로 하고, 그 옆에 계신 분도 역시 영국에서 오셨죠? ●로제타스톤 안녕하세요. 전 기원전 196년에 만들어진 프톨레마이오스왕의 공덕비입니다. 1799년 나폴레옹 원정군이 로제타(현재의 라시드) 마을에서 요새를 쌓다가 발견했죠. 뭐 신기한 돌이다 싶어 슬쩍 프랑스로 가져오려고 했는데, 2년 뒤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하면서 영국 소유가 됐죠. 이 전투에서 프랑스가 이겼으면 아마 지금 제 거처는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루브르박물관이 됐을 겁니다. 전 세계 교과서에 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테지만, 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어요.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존재라고 할까요. 이집트 상형문자, 민용(民用)문자, 그리스어 등 세 가지로 쓰여 있어 상형문자 읽는 방법을 현대에 전달했죠. 물론 제 고향인 이집트에서는 절 돌려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벨리스크 여기서 오랜 친구 로제타스톤을 만나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전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보통 신전 앞에 쌍으로 있고 수십개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고향에 있는 애들은 6개에 불과하고 외국에 더 많아요. 뉴욕, 파리, 런던에 하나씩 있고 이탈리아에는 무려 16개나 있습니다. 오벨리스크를 무슨 열강의 상징쯤으로 여긴 때문이겠죠. 심지어 뉴욕과 런던의 오벨리스크는 원래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이름으로 투트모세 3세가 만든 한 쌍입니다. 파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람세스 2세 오벨리스크의 나머지 한쪽이고요. 게다가 더 놀라운 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우리가 운반을 위해 다 쪼개졌다는 거죠. 상처 입고 신음하는데 보기만 좋으면 다인가요. ●휘경원 의궤 뒤쪽에 계신 아리따운 여자분과 용맹한 전사님은 누구시죠? ●네페르티티 흉상 저 역시 고대 이집트 출신이에요.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 클레오파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으로 알려진 네페르티티 왕비의 모습을 하고 있죠. 1912년 독일오리엔트협회 조사단이 공방터에서 발견해 지금은 베를린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 말이 조사단이지 마구잡이로 파헤쳐서 가지고 오면 그만인 시절이었죠. 이집트 최고 미녀의 조각이자 최고의 조각상으로 평가받는 저를 정작 이집트의 후손들은 볼 수 없는 셈이죠. ●토이 모코 전 집으로 돌아갈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는 뉴질랜드의 토이 모코입니다. 마오리족 전사가 전투에서 사망하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신을 새겨 머리를 보관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일종의 미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소장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아예 마오리 전사에게 문신을 새긴 후 목을 자르는 일까지 벌어졌죠. 그 당시 500여개가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1992년부터 뉴질랜드 정부가 저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 300여개가 돌아갔습니다. 그나마 고향에 돌아가기 쉬운 건 아마 저희는 문화재라기보다는 개인의 수집에서 비롯된 기념물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저희가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죠. 누구보다 재불 사학자인 박병선 박사의 역할이 컸습니다.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저희들을 찾아냈고, 이를 고국에 알렸죠. 프랑스 내 지식인층에 약탈문화재의 고국 반환을 주장하면서 30년 넘게 외롭게 싸워오고 계십니다. 여러분들 역시 고국에서 수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뭐죠? ●오벨리스크 자랑스러운 그들의 박물관이 약탈문화재로 가득차 있다는 점 때문이겠죠. 그들은 조상들의 유산을 돌려 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루브르의 이집트 천궁도를 비롯한 이집트 유물들도 대부분 도굴된 물건이지요. 마치 장물(贓物)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꼴입니다. 우리 오벨리스크를 가장 많이 소유한 이탈리아는 정작 우리 요구는 무시하면서 자기네 로마 유적은 돌려달라고 떠들고 있어요. 역지사지라는 말도 모르나봐요. 심지어 약탈국 정치인들은 대놓고 “하나둘씩 돌려주다 보면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떠들기까지 합니다. 남의 나라 문화재를 강제로 뺏거나 훔쳐다 놓고 그게 할 소리입니까. ●로제타스톤 맞습니다. 관람객들은 마땅히 우리의 단순한 역사적 가치 이외에 언제 어떻게 훔쳐서 이 나라에 왔고, 그 나라에서 돌려 달라는 운동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는 사실, 또 전 국민들의 소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집트에서 만들어졌고 이집트 상형문자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지, 대영박물관에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휘경원 의궤 뭐 사실 그렇습니다. 유명하면 포기하기 더 힘들겠죠. 만약 저희 의궤들이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로제타스톤이나 오벨리스크처럼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면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네페르티티 흉상 프랑스나 영국 정부가 항상 말하죠. 우리가 문화재 보존에 대해 최고의 노하우를 갖고 있고, 돌려받을 국가를 믿기 힘들다고 말입니다. ●파르테논 마블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자 핑계일 뿐입니다. 반환운동이 시작된 후 그리스 정부는 아테네에 영국 박물관 분관을 지어 저희를 전시하자고 영국에 제안했고, 그 전시실은 실제로 대영박물관에 견줘 손색 없이 지어졌죠. 하지만 영국 정부는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둘씩 돌려주는 선례를 만들다 보면, 아직 먹고사느라 조상의 문화에 관심이 적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남미 국가들이 나중에 떼로 달려들 것이 겁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박 박사가 저희를 찾아냈을 때 저희는 폐지 더미 속에 묻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보관과 연구능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한문을 읽고 조선의 문화를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저희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실제로 145년 동안 프랑스 사람들은 저희의 0.1%조차도 파악하지 못했고, 분류조차 못했으니까요. 오늘 이 자리에 걸음해 주신 각국의 약탈 문화재 여러분. 우리 의궤의 반환 축하 역시 이른 감이 있습니다. 한국 역시 아직까지 18개국에 7만여점에 가까운 조상의 문화재가 외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문화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소망이 실현되는 날. 다시 한번 진정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약탈 그 역사와 진실(샤론 왁스먼·오성환/ 까치) 위대한 유산 74434(위대한유산 제작팀/ 지식의숲) 조선을 죽이다(혜문/ 동국대출판부) 오벨리스크(권염흠/ 스틸로그라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휴머니스트)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김경임/ 홍익출판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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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투’ 벌이는 공룡 화석 30억원 낙찰 눈길

    ‘사투’ 벌이는 공룡 화석 30억원 낙찰 눈길

    쥐라기를 상징했던 거대한 공룡 화석 한 쌍이 경매에 나와 무려 우리 돈으로 30억원에 가까운 가격에 낙찰돼 관심을 끌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댈러스에 있는 헤리티지 옥션 하우스에는 최초로 공룡 화석들이 경매에 나와 수집가와 박물관 관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날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경매품으로는 ‘싸우는 한 쌍’(Fighting Pair)이란 제목의 알로사우루스와 스테고사우루스의 화석뼈로, 마치 두 ‘괴물’은 서로 생사를 걸고 싸우는 듯 보이는 장관을 연출했다. 옥션 측은 “이 화석들은 쥐라기를 대표하는 중요하고 상징적인 표본”이라며 “미국이 아닌 외국 박물관에 275만 달러(약 29억 8000만원)에 팔렸다.”고 밝혔다. 이 한 쌍의 화석은 고생물학자인 헨리 가리아노 연구팀이 지난 2007년 미국 와이오밍 주 다나 채석장에서 발굴한 것으로, 연구팀은 지속적인 연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번 경매에서 이 화석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싸우는 한 쌍’ 공룡 화석은 발굴 당시 육식 공룡인 알로사우루스의 턱뼈 부분이 초식 공룡인 스테고사우루스의 다리를 물고 있는 형태로 발견돼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던 중 화석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이번 경매에서는 이외에도 운석과 광물, 화석 등 200여 점이 출품됐으며, 함께 나온 거대한 크기의 트리케라톱스 화석은 65만 7250달러(약 7억 1000만원)라는 가격에 한 개인 수집가에 낙찰됐다. 사진=헤리티지 옥션 영상=유튜브(http://youtu.be/fLYvHwMr5rE)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머리 둘에 다리가 여섯?”…희귀 도마뱀 화제

    “머리 둘에 다리가 여섯?”…희귀 도마뱀 화제

    머리 둘에 다리 여섯 개가 달려 화제를 모았던 희귀 도마뱀이 한 살 생일을 맞게 돼 관심을 끌고 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매체 AOL뉴스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처음 소개된 ‘판초와 레프티’란 이름의 턱수염 도마뱀이 오는 11일 한살 생일을 맞았다. 판초와 레프티는 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턴 외곽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 희귀한 외모 때문에 이 동물은 희귀 동물 수집가 토드 레이에게 5000달러(약 600만원)에 팔려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판초와 레프티는 머리부터 앞발이 나 있는 상체까지 나뉘어 있으며 몸통부터는 한 몸으로 돼 있다. 이에 오른쪽 왼쪽 머리가 각각 일컫는 이름대로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인다. 레이의 말을 따르면 판초와 레프티는 평소 서로 잘 지내지만 둘 중 하나가 피곤할 때 다른 하나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걸어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베니스 비치 프릭쇼’라는 희귀 동물 전시회를 운영하고 있는 레이는 판초와 레프티의 1주년 생일을 자축하며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동물들이 여기 있다.”면서 자신감을 표했다. 한편 레이는 10여년 전부터 판초와 레프티와 같은 머리 둘 달린 동물을 수집하고 있다. 그는 살아 있는 동물 22마리를 포함한 100여 마리의 희귀종 중 6마리를 공개했었다. 사진=베니스 비치 프릭쇼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90년 된 라이카 카메라 ‘20억원’ 경매 최고가

    90년 된 라이카 카메라 ‘20억원’ 경매 최고가

    1920년대에 만들어진 카메라가 역대 최고경매가를 경신하며 팔렸다. 에페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경매회사 베스트리히트의 경매에서 1923년 제작된 라이카 카메라가 190만 달러(약 20억원)에 팔렸다. 종전의 카메라의 최고 경매가는 지난해 베스트리히트가 진행한 경매에서 기록된 100만 달러였다. 28만6300달러에서 시작된 이날 경매에서 카메라는 50만-57만 달러 사이에서 낙찰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가격은 예상을 깨고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다. 20분 만에 아시아의 한 수집가가 카메라의 새 주인이 됐다. 웬만한 고급 아파트 두 채 값에 팔린 카메라는 라이카라는 브랜드가 탄생하기 2년 전 전신인 레이츠 카메라가 제작한 ‘O’시리즈의 7번째 모델이다. 회사는 당시 시장조사와 특허등록을 위해 이 모델 25대를 한정 생산했다. 기록에 따르면 카메라는 특허등록을 위해 뉴욕으로 보내졌다. 라이카가 처음으로 수출한 카메라인 셈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이건희회장 뉴 아우디 1호 주인공

    이건희회장 뉴 아우디 1호 주인공

    자동차 수집가로 알려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6일 국내에 첫선을 보인 아우디 ‘뉴 A8L W12’ 1호 주인공이 됐다. 프리미엄 럭셔리 자동차 중에서도 최상위 모델인 ‘뉴 아우디 A8L W12’는 판매 가격이 2억 5800만원에 달하는 6300㏄ 12기통의 최고급 대형 프레스티지 세단이다. 이 회장은 이날 국내 출시와 함께 1호차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7억원대의 ‘마이바흐 62’를 즐겨 타고 다니지만 이날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 사옥으로 출근할 때는 롤스로이스 팬텀을 이용했다. 이날 국내 첫선을 보인 아우디 뉴 A8L W12는 고효율의 강력한 가솔린 직분사 엔진에 신형 전자제어식 8단 변속 시스템과 풀타임 4륜 구동 시스템을 탑재했다. 최고출력 500마력과 최대토크 63.8㎏·m의 힘을 낸다. 연비는 8.0㎞/ℓ. 불과 4.7초 만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등 스포츠카와 같은 성능도 발휘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혼자서 희귀 차량 500여대나 수집

    혼자서 희귀 차량 500여대나 수집

    오래된 자동차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이는 누굴까. 재벌 회장님이 아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교전 장면에 미군의 ‘60’ 트럭과 ‘험비’ 지프, 러시아산(産) ‘지스’가 왔다 갔다 한다. 이런 자동차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수집가 백중길(68·경기 남양주)씨의 열정 덕이었다. 27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은 남양주시 덕소에 있는 그의 ‘창고’를 찾았다. 1970년에 제대하고 나서 아버지의 자동차 부품회사를 물려 받은 그는 국내에서 생산된 자동차들이 시나브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100대만 모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뒤 희귀 자동차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손에 넣었다. 자동차를 사 모으는 데만 수억원을 썼다. “거저 얻는 헌 자동차라도 서너 달 수리하려면 1000만원 이상 들어가는 일이 허다해요. 외국 대사관 직원이나 미군 병사들이 다시 본국으로 가져가려는 외제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웃돈까지 건네기도 했지요.” 4년 동안 대구의 차량 소유주를 설득한 끝에 얻은 1960년산 ‘삼륜차’, 10여 차례 부산 경매장을 찾아 손에 넣은 1935년산 ‘디럭스 세단’ 등에 특히 애착이 간다고 했다.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 “1990년 경기 능곡에 물난리가 났을 때 사흘 동안 차량 60대가 잠겼어요. 수리해서 다시 쓰려고 했는데 쓸 수가 없더라고요. 얼마나 애통하던지.” 어쩔 수 없이 폐차를 한 ‘대가’로 손에 쥔 것은 120만원뿐이어서 눈물을 삼켰다. 벌써 41년. 시대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희귀 차량을 500여대나 모았다. 1950년대 시발 택시부터 1950년산 오스틴, 1962년산 벤츠 230 등 해외 고급차는 물론 1960년 이승만 박사가 타려고 들여온 국내 최초의 리무진,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탔던 ‘캐딜락 플리트우드 68 리무진’도 있다. 그의 자동차가 출연한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제3공화국’ ‘쉬리’ 등 영화와 드라마가 3000여편이다. 백씨는 “자동차는 인간처럼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물건입니다. 누군가 보관하지 않으면 우리의 자동차 역사는 사라지고 마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꿈은 청소년들에게 자동차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을 짓는 일이다. 이 밖에 ‘TV 쏙 서울신문’에서는 행정처분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청문, 뺑소니 오해 안 사려면, 프로야구가 열리려면, 옹알이부터 말 연습을, 진경호의 시사 콕-웬 반값 등록금?, 시베리아 호랑이의 포효 등이 방영된다. 글 사진 남양주 박홍규피디 gophk@seoul.co.kr
  •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15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라는 시간의 흐름.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와 일제 강점기 아시아의 소국(小國) 조선이라는 공간과 위상의 차이. 이 시대를 살았던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메디치’로 불리며 이탈리아, 아니 중세 유럽을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렌조 메디치(오른쪽·1449~1492)와 자국의 역사책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간송(澗松) 전형필(왼쪽·1906~1962). 겉으로 보이는 배경으로는 너무나 다르지만 이들에겐 엄청난 ‘돈’과 예술을 알아보는 ‘혜안’(慧眼)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은 각각 피렌체 우피치미술관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형태로 오늘날 우리에게 ‘인류의 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남겼다. 만약 그들이 막대한 재산을 흥청망청 쓰는 데만 골몰했다면, 또는 재산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면 중세미술사와 한국미술사는 다시 쓰여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로렌조 메디치와 전형필이다. 막대한 재산을 문화유산에 아낌없이 쏟아부은 이들의 노력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 결과로 우리는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서양미술사에만 관심을 갖다가 지난주 간송미술관을 다녀온 후 한국미술의 전통과 매력에 흠뻑 빠진 직장인 윤정은(33·여)씨가 궁금한 점을 모아 인터뷰에 나섰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물려받았다. 도대체 어떤 가문이었고 재산 규모는 얼마나 됐나. -메디치 내 증조할아버지인 토스카나 대공(大公) 코지모는 피렌체인들 사이에서 ‘국부’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은행업을 통해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가문의 수장이 됐을 때 내 나이 고작 20세였다. 당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특히 우리 가문은 직물산업의 핵심이었던 ‘백반’(양모 세척제)을 움직였고 메디치 은행의 주요 고객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교회였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냥 피렌체가 메디치였고, 피렌체의 모든 것은 메디치 가문의 재산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에 와세다대 법대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서울 일대는 물론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를 지나면서 우리 집안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만석꾼 집안이었다. 미곡상을 했는데 내가 24세에 물려받은 논은 4만 마지기(800만평)에 달했다. 1년에 소작농으로부터 쌀 2만 가마니(1만석)를 거둬들였는데, 이를 당시 기와집 값으로 환산하면 150채 정도였다.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환산하면 매년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논을 몽땅 판다고 가정하면 6000억원 정도였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수치 환산이고 당시 논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훨씬 더 가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1년에 나만큼 버는 조선인은 43명에 불과했다. →<윤정은> 역사적으로 많은 재산이나 권력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흥청망청 쓰다 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 집안만 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실패하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도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메디치 할아버지 코지모의 영향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피렌체에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난 그들과 토론하는 법을 배웠다. 10대 때부터 이미 유럽 각국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 덕에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로마어에 비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리스어까지 능통하게 구사했을 정도였으니. 내 신분은 공식적으로는 돈이 많은 시민이었지만 피렌체 안팎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됐고, 그렇게 살았다. 물론 금욕적인 삶을 지향하지는 않았다. 난 바람둥이였고, 수많은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권력자에게는 그런 게 큰 흠이 되지 않았다. -전형필 난 원래 경성에서 대학을 다니며 조선어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변호사가 될 것을 강권하셨고, 그 덕분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만든 법을 연구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가업인 장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부모의 상을 당한 상황에서 본인이 즐기는 데 그것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사랑했는데 특히 수집(蒐集)에 관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메디치 ‘위대한 로렌조’라는 호칭과 달리 난 콤플렉스가 많았다. 심한 주걱턱이었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었다. 코도 낮았고 목소리는 거칠었다. 하지만 난 비올라와 류트(당시의 현악기), 승마술, 매사냥까지 섭렵했고 유려한 글솜씨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예술에 대한 조예는 못난 겉모습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를 지원해 그들의 작품이 자신을 찬양하도록 했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난 할아버지나 아버지, 다른 귀족들과는 좀 달랐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이외에 고대 미술품을 수집하고 동양의 예술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라는 당시 사회상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휘문고보 시절 은사였던 고희동(1886~1965·서양화가) 선생과 3·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위창 오세창(1864~1953·서예가) 선생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두 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고 선생은 나에게 “글을 읽으면서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그 결과 나는 왜놈들 손으로 넘어가는 우리 서화와 전적을 지키는 선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위창 선생은 나에게 ‘간송’이라는 호를 주셨고, 내 수집활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작품을 모아야 하는지, 어떤 눈을 갖춰야 진품을 구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윤정은> 돈으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사실 취미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재산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데, 다른 목적은 없었나. -메디치 (웃음) 난 상인이었지만 정치인이기도 했다. 정치인에게 100% 순수한 호의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밀라노에 보내고 1488년 안토니오 다 산갈로를 나폴리에 보냈다. 그 공국들에 내가 후원하던 예술가를 보내는 게 좋은 작품을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호의를 베풀면서 실은 정치를 한 거였다. 솔직히 내가 예술가를 후원한 돈은 대부분 내가 피렌체의 공직을 겸하면서 공금으로 썼다. 내 재산은 오로지 내 수집품을 모으는 데 집중적으로 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에 대한 환상이 좀 깨지지는 않았나. -전형필 왜 수집에 나섰느냐고 위창 선생이 물었을 때 난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선이 언젠가 독립될 것이란 믿음이 없었는데도 수집을 계속했을지는 나도 자신이 없지만, 난 반드시 독립될 것으로 믿었다. 1933년 성북동에 터를 구해 미술관을 지은 것도 독립이 됐을 때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팔려 갔던 고려석탑을 다시 사 오면서 난 한번 유출된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해방된 후에는 이전처럼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일제에 더 이상 빼앗길 염려가 없어진 후에는 조선 사람이 모은 것은 모두 조선 것이기에 해방 후에는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에만 전념했다. →<윤정은> 소장품들에 대해 묻겠다. 두 사람의 노력은 우피치와 간송 미술관으로 남았지만 두 사람 모두 박물관의 개관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메디치 우피치는 영어로 하면 ‘오피스’(사무실)를 뜻한다. 그곳은 내 증조부 코지모의 집무실이다. 물론 내가 가장 주목받기는 하지만 우피치 수집품은 우리 가문 전체의 공이다. 14~16세기 르네상스 화가부터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에 이르기까지 소장 규모 자체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조토의 ‘성모자’, 다빈치의 ‘수태고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도록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피치를 박물관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 이후로 200여년이 지난 후 메디치가 최후의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토스카나 공국에 기증하면서 단 하나의 조건만을 남겼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어느 것도 피렌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형필 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운학문매병’ 등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이 있다. 1937년에는 영국 변호사 개스비에게서 청자 20점을 40만원에 사기도 했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이었다. 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가치는 후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고, 그것이 원래 내가 수집을 시작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잡스러운 그림을 그린다고 폄하됐던 겸재 정선(1676~1759)을 화성(畫聖)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내 최대의 성과로 생각한다. 그럼 내가 묻겠다.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끼나. →윤정은 당대 최고의 좋은 자재로 지었다는 미술관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930년대의 근대식 2층 건물과 창틀에는 현대미술관처럼 멋진 조명도 없고 첨단 잠금장치도 없다. 화장실 냄새도 코를 찌른다. 아이들이 유리에 온갖 손자국을 내며 코를 박고 보는 모습은 유럽 미술관의 풍경과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전시하지 않아서 좋았고, 온전히 우리 것이라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보고 있는 전시품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조상의 것이라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바티칸이나 루브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친구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간송미술관에 가면 간송이라는 사람과 그가 남긴 뜻이 마음으로 전해진다고 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참고서적 간송 전형필/이충렬/김영사 조선의 그림수집가들/손영옥/글항아리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최완수·한상남/샘터 조용헌의 명문가/조용헌/랜덤하우스코리아 메디치 머니/팀 팍스·황소연 옮김/청림출판 메디치‘의 음모/피터 왓슨·김미형 옮김/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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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16억원, 중국 최고가에 낙찰된 미술작품

    716억원, 중국 최고가에 낙찰된 미술작품

    중국의 저명한 근대화가인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의 작품이 4억 2550억 위안, 우리 돈으로 716억 4100만원의 고가에 낙찰됐다고 중국신원왕 등 현지 언론이 22일 보도했다. 지난 22일 중국의 한 경매업체가 주최한 ‘2011 춘계 경매회’에 나온 치바이스의 작품은 ‘송백고립도·전서사언련(松柏高立图·篆书四言联)’. 이번 경매에는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구매하기 위해 몰려든 미술계 저명인사와 수집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치바이스의 작품 중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하는 ‘송백고립도·전서사언련’은 8800만 위안(약 148억 1570만원)으로 경매가 시작돼 50여 차례의 경쟁 끝에 4억 2550만 위안에 낙찰됐다. 이는 중국 현대회화작품 사상 가장 높은 금액이다. 가로 1m, 세로 2.66m의 이 작품은 작가가 83세 때 그린 그림으로,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잣나무와 영웅을 상징하는 매가 그려져 있으며 섬세함과 웅장함이 공존해 치바이스의 역작 중 역작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작품의 좌우에는 평화로운 삶은 기원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긴 ‘인생장수, 천하태평’(人生长寿,天下太平)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날 경매에는 치바이스의 또 다른 작품인 ‘화조사병’(花鸟四屏)도 9200만 위안(약 154억 9000만원)에 낙찰돼 경매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한편 치바이스는 ‘동양의 피카소’로도 불릴 만큼 주목을 받았으며, 중국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손꼽히는 다작 예술가로도 알려져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민영 부산저축은행장 문화재 ‘헐값매각’

    김민영 부산저축은행장 문화재 ‘헐값매각’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비리를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김홍일)는 20일 구속 기소된 김민영(65) 부산·부산2저축은행장이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보유하던 국보급 문화재 18점을 10억원에 판 사실을 확인, 매매 금액의 환수를 추진하고 있다. 검찰은 또 구속된 브로커 윤여성(56)씨가 은행 퇴출저지 로비 대가로 3억원을 받은 사실을 처음 밝혀내고, 이 돈의 종착지를 캐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부산저축은행 임직원 74명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부실금융기관 결정 취소’와 ‘임원 직무집행 정지 취소’를 요청하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檢 “김 행장 재산은닉 확인땐 압류” 김 행장은 지난 3월 22일 보물 제1521호인 경국대전 3권과 월인석보 9·10권을 비롯해 국가지정문화재 18점을 인천에 사는 심모(46)씨에게 10억원을 받고 일괄 매도했다. 개인이 소유한 국가지정 문화재는 매매·상속 등으로 소유자가 바뀔 경우 문화재보호법 제40조 등에 따라 문화재청장에게 15일 안에 신고해야 한다. 김씨는 문화재를 매도한 다음 날인 23일 인천 북구를 거쳐 문화재청에 소유주 변경 사실을 신고했다. 미술품 수집가로 알려진 심씨는 금융감독원에 대부업체로 등록된 K사 대표다. 김씨는 검찰이 3월 15일 부산저축은행그룹과 경영진·대주주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지 1주일 만에 문화재를 팔아넘겼다. 또 문화재 가치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이어서 배경을 둘러싸고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김 행장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환수 등을 우려해 이면계약을 통해 명의만 변경해 재산을 은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미술계 일각에서는 “한글 창제 직후 초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월인석보 두 권의 가치만 따져도 평가액이 1000억원대에 이르는 등 천문학적 가치의 문화재들을 10억원에 넘긴 것을 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비정상적 거래”라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며 “문화재를 은닉하기 위해 차명으로 돌린 것으로 확인되면 압류 등 보전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실제 거래금액 같은 세부 내역은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사안이라 문화재청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임직원 “부실금융기관 취소해 달라” 소송 한편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다른 임직원들도 사건이 터지자 재산을 빼돌린 정황이 파악되고 있다. 박연호(61·구속기소) 회장은 영업정지 다음 날인 2월 17일 자신의 땅에 친구 명의로 10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고, 김양(58·구속기소) 부회장은 주식 수억원어치를 현금화해 친척에게 나눠 줬다. 검찰은 최근 ‘책임재산 환수팀’을 구성했으며, 이들이 은닉한 재산을 모두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박록삼·임주형기자 youngtan@seoul.co.kr
  • [열린세상] 되살아난 풍류의 길/이세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열린세상] 되살아난 풍류의 길/이세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지난달 전통문화계에 참신한 ‘풍류의 물결’이 일었다. 진원지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집에서 진행된 춤강좌 ‘풍류와 화류 사이의 인문학’과 문화답사 ‘풍류로드’였다. 이 둘은 ‘따로 또 같이’ 이뤄졌다. ‘풍류와 화류 사이의 인문학’은 4월 ‘공연 같은 강좌, 강좌 같은 공연’이란 부제를 달고 한국문화의집 공연장에서 진행되었다. ‘풍류와 화류 사이의 인문학’이란 이름에 끌려서인지, 자칭 ‘난장 최고의 입담’이라는 진옥섭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이 직접 쓴 ‘전날의 전설을 접고 깊이 숨은 초야의 명인들, 그 혁혁한 무공(舞功)을 찾아 나선 최고의 무용담’ ‘춤의 뼈 새겨내는 가공할 언어의 액션’이란 카피에 혹해서인지 수강생이 몰렸다. 전주와 강릉 등 각 지역 춤꾼들이 찾아들었다. 출판인도, 고음반 수집가도 발품을 팔았다. 교수도, 시인도, 금융인도 경청하며 ‘눈춤’을 췄다.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도 몇 좌석을 메웠다. 강좌는 지난달 매주 월요일 4회에 걸쳐 이어졌다. 춤의 노름마치를 찾아서-춤판·탈판·굿판·소리판을 전전하며 기생·광대·한량을 만나 고수 중의 고수를 찾는 자전적 춤 이야기. 풍류 사내들의 춤 이력과 이면사 등 우리 춤꾼에 대한 이야기가 좌중을 휘어잡았다. 추임새가 여기저기에서 피어났다. 어깨가 들썩거렸고 무릎장단이 즉흥으로 나왔다. 흥이 절로 났고 흥은 결이 되어 풍류가 일었다. 이 분위기는 제2탄 ‘풍류로드’로 이어졌다. 강연장(공연장)에서 보고 들었던 예인들의 자취와 흔적을 만나러 가는 나들이 길이었다. 4월 16~17일 1박2일 일정에 60명이 나섰다. 우리 문화계에서 처음 시도된, 전통예인의 자취를 찾아가는 무형문화유산 답사였다. 답사 길의 징검돌은 예인의 자취와 흔적만이 아니었다. 예인들이 풀어 놓은 즉석의 소리, 춤사위, 장구 장단이 징검돌로 얹어지며 감동을 더했다. 행선지는 ‘바람 같고 구름 같은 풍류객의 모임 터’였던 충남 내포 땅과 전북 군산 소화권번(예기 관리사무소), 조선시대부터 시인 묵객과 소리꾼들이 넘나들었던 전남 담양 지실초당이었다. 내포 땅 서산에선 풍류음악과 가야금 병창의 명인 심정순(1873~1937) 일가의 예술혼에 젖어 심화영의 중고제 판소리 ‘쑥대머리’를 축음기로 듣고 그의 승무를 외손녀 이애리의 춤사위로 현장에서 맛봤다. 심정순 일가는 가야금 명인 명창인 아들 심재덕(1899~1967), 충남도 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이자 명창인 딸 심화영(1923~2009) 등으로 이뤄져 있다. 가수 심수봉은 심재덕의 딸이다. 한국 춤의 전설 한성준의 생가 터가 있는 홍성에선 이 지역 결성농요 보유자(충남무형문화재 보유자 20호)들이 농요를 직접 부르며 답사객 60명을 ‘풍류객’으로 맞아 잔치를 벌였다. 답사 길은 일제 강점기 소화권번이 있던 군산으로 이어져 예기들의 무대였던 요릿집 명월관·은정 터, 일본인 히로스가 살았던 가옥으로 옮겼다. 그 사이 젊은 소리꾼이 고수도 없이 부채 하나로 장단을 잡으며 즉석 무대를 꾸몄다. ‘풍류와 화류’ 사이를 오갔던 소화권번에서 소리와 춤을 익힌 민살풀이춤 명인 장금도(83) 선생도 젊은 풍류객들의 장구와 가야금·해금·대금 장단에 맞춰 민살풀이춤과 육자배기 한 자락을 풀어냈다. 조선 후기 호남지방 시인 묵객 송강 정철, 하서 김인후, 소쇄공 양산보와 근·현대 소리꾼 명창 박동실·김소희·임춘앵·한승호 등이 머물던 한국 최고의 정원 담양 소쇄원과 지실초당, 호남우도농악의 산실 담양 봉산에서 4월의 ‘풍류의 물결’은 갈무리되었다. 한 시대 예술의 양식을 열고 전승했던 풍류객과 후손은 세월의 무게에 시나브로 휩쓸려 간데없고 그 삶의 길목엔 외로운 혼만 떠돌지만 그날 답사 길은 지친 일상의 생채기를 치유하는 ‘꿈길’이었다. 각색된 공연이 아니라 즉흥의 난장 예술이 펼쳐진 길, 출연자의 겉모습이 아니라 평생 숨어 살던 예인의 가슴이 아련해지는 길, 예인의 숨결을 껍데기만 둘러보는 게 아니라 속살을 만져 본 풍류의 길이었다. 이처럼 우리 전통예술(인)의 속살을 살려내고 드러내 보이며 바쁜 일상을 어루만지는 예술의 방식이 우리의 구체적 삶 속으로 찾아든다면 그게 바로 이 시대의 풍류 아닐까.
  • 사진 한 장에 42억?…세계서 가장 비싼 사진 화제

    유명 사진작가 신디 셔먼(Cindy Sherman·57)의 ‘무제 96’(Untitled #96)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 타이틀에 올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17일 미국 공영방송 NPR은 “지난주 미국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셔먼의 자화상 사진이 예상 낙찰가인 150~200만 달러를 훌쩍 넘긴 389만 500달러(한화 약 42억 3286만 원)라는 최고가에 낙찰됐다.”고 전했다. 이로써 지난 2006년 필립스경매에서 335만 달러에 팔린 ‘99센트Ⅱ딥디콘’의 기록을 깬 셈. 이번에 최고가 입찰을 통해 사진을 낙찰 받은 행운아는 뉴욕 출신 딜러 필립 세갈로로 알려졌다. 크리스티 현대미술 디렉터 출신인 그는 현재 세계 부호로 꼽히는 미술 수집가들의 개인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42억 원이 넘는 고가에 낙찰되며 세계 최고가 사진 타이틀을 획득한 신디 셔먼의 작품은 1981년 작으로 과거 영화 스틸컷을 연상시켰던 기존 자화상과 달리 ‘풀 컬러 클로즈업(Full color close-up)’이라는 소재로 스튜디오에서 자신을 촬영해 실물 크기로 인화한 자화상이다. 이 사진은 우연히 포르노 책을 보고 영감을 얻게 되었다는 작품인데, 셔먼은 정적인 대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려고 가능한 한 인체에 접근하여 촬영했다. 한편 신디 셔먼의 ‘무제 153’(Untitled #153)도 지난해 270만 달러에 판매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작품은 TV 드라마 ‘트윈 픽스’에 나온 시체를 연출한 사진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심청전’ 300년 역사가 한눈에

    ‘심청전’ 300년 역사가 한눈에

    효녀 심청 이야기를 레퍼토리 공연화한 국립창극단의 ‘청’(淸) 공연장에 들어서면 특이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17~20세기에 이르는 ‘심청전’ 책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 것. 공연도 보고 300년에 걸친 ‘심청전’에서 ‘청’에 이르는 과정까지 함께 감상해 보라는 취지다. 전시는 박순호(69) 원광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민속학자인 박 교수는 1만권의 도서를 소장한 고전소설 수집가. 심청전의 경우 시대별 판본 형식으로 150여종의 도서를 수집해뒀다. 특히 2009년에는 박 명예교수가 보유하고 있는 심청전 책을 바탕으로 조선시대에 인쇄할 때 쓰던 목판을 복원해 내기도 했다. 때문에 손으로 일일이 베껴써야 했던 필사본, 목판인쇄를 통해 대량으로 찍어냈던 방각본(坊刻本), 근대에 접어들면서 수입된 활판인쇄술로 찍어낸 딱지본 등 다양한 판본으로 심청전을 만날 수 있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여염집에서도 널리 읽혔던 대표적인 소설”이라면서 “그런 소설을 시대별로 한데 모아둔 것이어서 한글 서체의 시대적 변화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각본의 경우 당대 목판까지 갖춰 놓았다. 덕분에 2000원을 내면 옛 표지를 한장 찍어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다. 극단 미추의 마당극 ‘심청’을 비롯해 국립창극단의 ‘심청’,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 영상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또 1965년 국립국극단의 ‘심청’에서부터 시작되는 공연 포스터도 갖춰 뒀다. 공연은 28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전시는 공연 기간 동안 이뤄진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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