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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원순 시장 집무실 디자인한 헌책방 주인 윤성근씨

    박원순 시장 집무실 디자인한 헌책방 주인 윤성근씨

    ‘심야식당’이라는 일본드라마가 있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작은 식당을 배경으로 주인과 다양한 손님들과의 교류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매개체는 음식이다. 소박하면서도 정성이 담긴…. 책이 음식을 대신하면 안 되는 걸까? 안 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너무 잘 어울린다. 단, 반질반질한 새책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헌책이라야 한다. 각자의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으슥한 밤에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저마다 사연이 담긴 책을 찾는다. 이름하여 ‘심야책방’이다. 이곳에서 책은 소통의 도구가 된다. ●조용한 것 좋아하는 사람 위한 ‘동네 사랑방’ 그런 곳이 실제로 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는 매달 둘째, 넷째 금요일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책방 문을 열어 둔다. 상상만 해도 궁금증이 솟구치는 이 범상치 않은 책방의 주인장은 윤성근(36)씨. 얼마 전 인터넷 취임식을 통해 공개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아래 사진)을 디자인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최근 ‘심야책방’(이매진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낸 윤씨를 만났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89-2. 너무나 평범한 이 건물의 지하 1층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있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후미진 곳에 왜 책방을 냈는지가 궁금하다. 간판도 없이 안내문 한장 달랑 붙어 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갈 만한 데가 없잖아요. 특히 예민한 시기인 청소년들이 조용하게 책을 보고 사색할 공간이 없어요. 도심에는 불가능하지만 주택가에서는 이런 공간이 가능하지요.” 그가 좋아하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책방 이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곳에는 약 30평의 공간에 중고서적 5000여권이 빼곡하다. 북카페처럼 한가운데에는 테이블을, 그 뒤에는 소파를 두어 편히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방해받고 싶지 않다면 책장 뒤편 구석의 책상을 이용하면 된다. 한쪽에는 조그만 무대와 프로젝터가 설치돼 있다. 심야책방이 열릴 때면 그곳에서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하고 매달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는 동네에 사는 영화전공 대학원생의 안내로 고전영화 감상회가 열린다. 이곳에서는 못할 게 없다. 동네 골목 살리기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이 책방은 ‘동네 사랑방’이다. ●“대형서점에 쌓인 새 책들은 공산품같아” 그렇다면 왜 헌책일까. “대형서점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은 왠지 공산품 같아요. 반면 손때가 묻은 헌책은 그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를 교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가치의 재생산’이 이뤄지는 거죠.” 그가 말하는 헌책방의 매력은 여러가지다. “일반 서점은 원하는 책만 팔 수 없는 반면 헌책방은 주인이 좋아하는 책을 컬렉션하고 고객들에게 추천할 수 있어요. 내가 읽은 책만 취급한다는 영업철칙을 지킬 수도 있고요. 그리고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정을 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어서 훨씬 진지하죠. 책이 사람을 만나고,사람이 책을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입니다.” ●朴시장 삐딱책장 양극화된 사회·조화 바람 담아 그가 책방을 통해 맺은 인연 중에 박원순 시장도 포함된다. 박 시장은 동네골목 살리기와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주소를 들고 묻고 물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찾아왔다고 한다. 윤 대표는 “사랑방 같은 이곳의 분위기가 좋았는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집무실 책 정리를 의뢰받은 데 이어 이번에 서울시장 집무실까지 디자인하게 됐다.”면서 “삐딱하게 서 있는 두개의 책장을 책이 이어주는 것처럼 양극화된 이 사회도 책을 소통의 도구로 삼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 ‘심야책방’에는 그가 모은 책과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담았다. 도스토옙스키 전집(열린책들) 중 초판보다 2002년에 나온 2판이 더 가치있는 이유, 살수도 팔 수도 없는 이오덕과 권정생의 서간집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한길사, 2003년), 한하운의 시집 ‘보리피리’에 얽힌 사연, 수집가들이 열광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빨간책시리즈(해문출판사),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 손님이 찾았던 구라다 하쿠조의 ‘사랑과 인식의 출발’(창원사, 1963년), 행방불명된 친구를 그리워하며 찾아 달라던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사상계사, 1962년) 등. 소개된 책 중 그가 특히 좋아하는 책은 존 케네디 툴의 퓰리처상 수상작 ‘저능아들의 동맹’(범욱, 1981년)이다. 남들이 보기에 저능아에 비정상인 주인공. 모두들 그를 쓸모없다고 여기지만 그로 인해 결국 사람들은 좋은 변화를 맞게 된다는 내용이다. 어린 시절부터 ‘활자중독’이었다는 그는 “책에서 길을 찾고, 지혜를 구하고,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책이 삶 자체인 그가 가는 길, 그가 하는 일과 비슷해 보였다. “우리 사회는 모두들 대세를 따라가도록 강요하고 있어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서 멋진 일을 하는 것이 대세이다 보니 아이들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죽도록 공부해야 하거든요. 비정상이고 비주류여도 자기만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각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문제는 소개된 책들의 대부분이 이미 절판됐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 그는 “읽고 싶은 책을 애써서 찾아 읽으면 의미가 다르다.”면서 “경험에 의하면 정말 읽고 싶은 책은 언젠가는 구해지더라.”고 귀띔했다.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인터뷰 동영상은 인터넷 서울신문 (www.seoul.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 [책꽂이]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고미숙 등 지음, 북드라망 펴냄) 미신 내지는 거리에 즐비한 사주카페로 소비되는 ‘사주팔자’를 가지고 ‘자기구원’을 신조로 사주 글쓰기를 시도한 책. 고전평론가 고미숙을 필두로 한의학과 명리학을 함께 공부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누드 글쓰기’(치유로서의 글쓰기)는 자기 삶의 풀리지 않는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내는 실천적 수단이다. 1만 1900원. ●아버지의 오래된 숲(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서소울 옮김, 이순 펴냄) 미국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가 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한 수필. 아버지는 평생을 맵시벌 연구에 바친 열정적인 곤충 수집가였으며, 아들은 아버지의 박물학자적 감성과 윤리의식을 이어받은 ‘변종 생물학자’가 된다. 부자의 이야기 속에 근현대 생물학 100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 2만 5000원. ●갯벌에도 뭇 생명이…(권오길 지음, 지성사 펴냄) ‘꿈꾸는 달팽이’ 등의 책으로 알려진 생물학자가 ‘흙에도 뭇 생명이’ 이후 2년 만에 출간한 생태 수필. 앞으로 ‘강에도 뭇 생명이’와 ‘산야에도 뭇 생명이’를 더 출간할 예정이다. 1만 6000원. ●정조 치세어록(안대회 지음, 푸르메 펴냄) 성균관대 교수인 저자가 조선의 부흥기를 이끈 정조의 말과 글을 엮었다. 안 교수는 정조 통치의 비결 중 하나가 글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밝힘으로써 나라를 이끈 것이라고 설명한다. 1만 3800원. ●언론분쟁 뛰어넘기(이상록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법조계를 취재했던 현직 기자가 언론보도와 관련된 법적 분쟁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뤘다. ‘생생하다’는 표현이 적확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 기자들의 경험담을 담았다. 사례를 읽다보면 구체적인 사건이 연상되면서 읽는 맛이 늘어난다. 다른 하나는 기자 측 입장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반대편 당사자인 취재원들의 목소리까지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래서 매우 역동적이다. 1만 4000원. ●도래할 책(모리스 블랑쇼 지음, 심세광 옮김, 그린비 펴냄) 프랑스 작가 겸 사상가(1907~2003)인 저자가 1959년 출간한 책으로 문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았다. 마르셀 프루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을 통해 문학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만 7000원. ●시대를 이끈 휴머니스트(김의정 지음, 학고재 펴냄) 쌍용그룹 창업주인 고(故) 김성곤 회장의 부인으로 전통 차 문화 복원을 위해 헌신해 온 명원 김미희 선생의 삶과 업적을 그의 딸이 정리했다. 2만 3000원.
  • 조선후기 산수화展-정선 ‘우화등선’ 등 첫 공개

    조선후기 산수화展-정선 ‘우화등선’ 등 첫 공개

    “뭐랄까…. ‘박연폭포’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었어요. 소장가 집에 가서 보는데 포장이 주르륵 흘러내리면서 드러나는 그림에서 폭포 소리가 고스란히 나는 것 같아 그 앞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거든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오죽했으면 임진강을 직접 답사해 사진 찍어서 이 그림하고만 같이 전시해 둬도 충분하다고 말했을까요.”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흥분해서 말하는 작품은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이다.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이 임술년(1742년) 늦가을 무렵 연천현감 신주백, 관찰사 홍상공을 모시고 연강(지금의 임진강)에서 유람한 모습을 비단 위에 그려 놓은 ‘연강임술첩’(蓮江壬戌帖)이다. 이렇게 제작돼서인지 화첩치고는 무척 크다. 일단 화첩 자체가 보통 화첩의 두배 크기인 데다 펼친 양쪽을 한개의 화면으로 모아 썼다. 일반적인 화첩에 비해 4배나 큰 셈이다. 작품은 모두 세 벌이 만들어져 정선, 신주백, 홍상공이 나눠 가졌다. 따라서 존재 자체는 이미 학계에 보고된 상태. 한 벌이 실물 그 자체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리는 ‘조선후기 산수화전-옛 그림에 담긴 봄 여름 가을 겨울’전이다. 그러니 이 교수가 흥분할 법도 하다. 임진강 사진을 찍어 대조하자는 것도 진경산수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서다. 그는 “겸재의 ‘인왕제색도’ ‘금강전도’가 바위와 산을 그린 대표작이라면 이 작품은 강에 대한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림에는 시종들이 관찰사를 모시고 나오고, 참가자들이 관찰사에게 인사하고, 같이 배를 타고 나가는 과정이 시간순으로 배열돼 있다. 전시에서는 겸재 작품 외에 김명국, 심사정, 강세황, 이인문, 김득신, 허련 등 23명의 작가가 그린 산수화 40여점을 함께 선보인다. 간송미술관의 ‘풍속인물화대전’, 삼성리움미술관의 ‘조선화원대전’에 이어 또 하나의 고서화전인 셈이다. 박우홍 동산방 대표는 “겸재 작품을 비롯해 대부분의 작품은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면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우리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고 수집가들을 일일이 설득해 어렵게 마련한 자리인 만큼 차분한 마음으로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2)733-587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문이 만난사람]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인생을 살면서 간이 안 맞으면 섬으로 간다. 그런데 향기가 그립다면 어디로 갈까. 겨울의 언덕을 넘으려는 듯 늦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런 까닭에 쌀쌀했으나 그윽했다. 비탈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비에 젖어 고고한 사색의 향기를 뱉어냈다. 이리저리 뒹구는 그것들이 황량하게 비어 있는 마음의 곳간을 조금씩 채운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 입구에 들어서자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간송미술관은 간송이 33세 때 자신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1966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서화를 비롯해 자기, 불상, 전적(典籍), 와당 등 국보급 문화재 14점과 보물급 고서화 12점 등 많은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간송은 교육가이자 문화재 수집가로 평생 민족 문화재를 모으는 데 힘썼다. 또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지원·경영하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아 오늘날까지 그 뜻을 기리고 있다. 그런 이곳에서 지난달 겸재의 ‘어초문답’, 신윤복의 ‘미인도’ 등 조선시대의 풍속인물 그림을 내걸어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채워주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관람객으로 전시 기간 내내 장사진을 이뤄 다시 한번 국민 미술관임을 입증했다. 이렇게 우리 문화의 지킴이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뭐니 뭐니 해도 최완수(69)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공력이 절대적이다. 지난 45년 동안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매년 두 차례 논문집 ‘간송문화’를 발간하고 이를 통해 ‘추사명품집’ ‘겸재명품집’ 등을 발표하며 미술사 연구의 산실(産室)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연구실에는 박사급 연구원만 수명이 있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층 연구실에서 만난 최 실장은 올해 우리 나이로 칠순인데도 10년은 더 젊어 보였다. 여기에 있으면 세월의 시계가 거꾸로 가느냐고 인사말을 먼저 건넸다. 그는 ‘부지노지 장지운이’(不知之 將至云爾)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걱정을 잊으며 늙음에 이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나 보다.”라며 웃는다. 청년의 미소처럼 해맑다. 전시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난 뒤여서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쁜지 물었다. “그제는 (연세대) 강의 나갔고 어제는 오랜만에 겸재 만나러 북악산과 인왕산에 다녀왔다.”고 했다. 겸재를 만나러? 궁금해하자 웃으면서 대답한다. “겸재는 장동팔경(壯洞八景)을 남겼습니다. 인왕산과 북악산에 걸친 장동(壯洞) 일대의 경승지 8곳, 그러니까 필운대, 대은암, 청풍계, 청송당, 자하동, 독락정, 수성동, 취미대 등을 그렸지요. 겸재 동호인 몇 명과 겸재를 생각하며 그림 속을 같이 답사했지요.” 그는 겸재 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1993), ‘진경시대’(1998), ‘겸재의 한양진경’(2004), ‘겸재 정선’(2009) 등을 펴내 겸재 연구의 종결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가 겸재와 인연이 된 것은 1966년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의 권유로 간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이곳에서 겸재의 작품들과 만나면서다. 그는 숙명적으로 연구에 몰입했다.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조선 왕조를 문화적 정체기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이를 뒤집기 위해 조선 문화의 절정기인 진경시대의 가치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지요. 조선 전기에는 중국을 닮아보려고 했지만 나중에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주자 성리학을 발전시켜 조선 성리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성리학이 꽃을 피웠고 이를 토대로 진경 시문학과 진경 산수화가 나왔습니다. 겸재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차원 높은 회화미로 표현한 최고의 화가이지요.” 겸재에 대한 찬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는 84세까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진경 산수화를 창안하고 절정에 올려놓은 뒤 추상 단계에까지 한꺼번에 통달한 말 그대로 화성(畵聖)입니다. 일부에서는 화원 출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당시에는 선비가 아니면 (진경산수를) 창안할 수가 없었지요. 그는 주역 등 사서삼경을 거의 외울 정도로 7서에도 아주 능통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주역의 음양조화, 중국 화가들도 감히 흉내조차 못 낸 남·북방 화법을 동시에 표현해 낸 겸재의 그림을 본 중국 사람들은 아주 환장을 합니다. 중국이 우리 문화에 미쳐버리는 이유도 바로 이런 확실한 종결편 때문이지요. 유라시아를 거쳐 우리나라에 흘러 들어온 문화들을 간단 명료하게 융합시키면서 종결 처리 하는 것이 우리 문화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림에서는 겸재, 글씨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최 실장은 “조선 성리학 이념이 주도하던 진경시대(1675~1800)에는 우리의 문화가 세계 제일이라는 자존 의식이 아주 높았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우리 민족은 ‘요점 정리’를 하는 데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 실장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요점 정리의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모으고 있으며 간송미술관에서 이뤄지는 연구와 전시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지난달 전시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 것도 그러한 자긍심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자부했다. 전시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최 실장은 “(찾아준)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며 웃는다. “2시간 넘게 기다리면서도 어느 누구도 짜증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를 무려 7번이나 본 사람도 있어요. 올 때마다 간송미술관 도록을 가지고 가서 친척들에게 나눠 주면 그분들이 다시 간송미술관을 찾고 그랬습니다. 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왔는데 기다리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여긴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 문화를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다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도 했습니다. 관람객 대부분이 찬란했던 진경시대로 돌아가게 하는 즐거운 자리라고들 표현해 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매년 5월과 10월, 봄과 가을 딱 두 차례만 전시를 한다. 1971년 ‘겸재 정선 서화전시회’를 시작으로 그 원칙을 한번도 어기지 않았다. 특히 이를 통해 겸재와 추사에 관한 연구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의 독보적인 경지에 도달했다. 겸재와 추사만 연구하는 이른바 ‘간송학파’(30여명)까지 생겨났을 정도니 말이다. “우리 미술관은 연구 중심의 박물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를) 수집·보존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대중에게 봉사하기 위해 전시하는 것이지요. 문화의 고향에 돌아오게 하는 서비스를 하는 것입니다. 전시에 중점을 두다 보면 연구가 안 되고 산만해지고, 그러면 전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은 ‘괜히 왔나’ 하면서 다리만 아파합니다. 우선 연구에 집중한 다음 일목요연하게 전시를 해야 관람객에게 좋은 느낌을 선사할 수 있지요. 그래서 1년에 두번만 전시하는 겁니다.” 이어 요즘 세상이 쾌속과 안락 위주로 가다 보니 문화의 기반인 의식주마저 우리 것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들에게 우리의 것, 우리의 고향을 찾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했다. 다음 전시에 대해 묻자 그는 “연구 중”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요즘에는 어떤 것을 연구하는지 물었다. “조선 왕릉에는 석상, 호석 등 조선시대의 문화를 오롯이 표현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간직한 것들이지요. 진경시대의 석인들이 아주 사실적으로 조각한 덕에 시대적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에 대한 연구는 많이 진척됐습니다. 조선 초기의 석상은 명나라와 비슷하다가 점차 조선 스스로의 문화를 표현하고 있지요. 또 거기에는 의궤가 담겨 있습니다. 현장은 물론 자료 조사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걸 발표하면 (기존의 내용들이) 뒤집어질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웃음). 바로 새롭게 쓰는 조선통사거든요.” 최 실장은 겸재에 이어 내년에는 추사의 종결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뒤이어 ‘왕릉 종결편’도 개봉하겠다는 의욕을 내보였다. 사학자로 올곧게 살아온 그의 진지한 모습에서 다음 작품이 사뭇 기대된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고교 때 백아 김창현 선생 만나 조선 사대부의 한문·문화 섭렵 ●최완수 실장은194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한학과 보학(譜學)의 대가였던 백아(白牙) 김창현 선생을 만나 한학에 빠져 조선 사대부의 한문과 문화를 모두 섭렵했다.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동국대 등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 오다 지금은 연세대 대학원 강의만 하고 있다. 1965~1966년 국립박물관을 거쳐 1966년부터 지금까지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추사집(1976), 금추사연구초(1976), 그림과 글씨(1978),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1993), 명찰순례 1,2,3(1994),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1998), 조선왕조 충의열전(1998),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1999), 겸재의 한양진경(2004), 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1, 2, 3(2007) 등이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 집무실을 헌책방으로 만들어준 그 사람

    박원순 서울시장 집무실을 헌책방으로 만들어준 그 사람

    ‘심야식당’이라는 일본드라마가 있다.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작은 식당을 배경으로 주인과 다양한 손님들과의 교류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매개체는 음식이다. 소박하면서도 정성이 담긴…. 책이 음식을 대신하면 안 되는 걸까? 안 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너무 잘 어울린다. 단, 반질반질한 새책이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헌책이라야 한다. 각자의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으슥한 밤에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저마다 사연이 담긴 책을 찾는다. 이름하여 ‘심야책방’이다. 이곳에서 책은 소통의 도구가 된다. 그런 곳이 실제로 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는 매달 둘째, 넷째 금요일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책방 문을 열어 둔다. 상상만 해도 궁금증이 솟구치는 이 범상치 않은 책방의 주인장은 윤성근(36)씨. 얼마 전 인터넷 취임식을 통해 공개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디자인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최근 ‘심야책방’(이매진 펴냄)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낸 윤씨를 만났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89-2. 너무나 평범한 이 건물의 지하 1층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있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후미진 곳에 왜 책방을 냈는지가 궁금하다. 간판도 없이 안내문 한장 달랑 붙어 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갈 만한 데가 없잖아요. 특히 예민한 시기인 청소년들이 조용하게 책을 보고 사색할 공간이 없어요. 도심에는 불가능하지만 주택가에서는 이런 공간이 가능하지요.” 그가 좋아하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책방 이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곳에는 약 30평의 공간에 중고서적 5000여권이 빼곡하다. 북카페처럼 한가운데에는 테이블을, 그 뒤에는 소파를 두어 편히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게 했다. 방해받고 싶지 않다면 책장 뒤편 구석의 책상을 이용하면 된다. 한쪽에는 조그만 무대와 프로젝터가 설치돼 있다. 심야책방이 열릴 때면 그곳에서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하고 매달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는 동네에 사는 영화전공 대학원생의 안내로 고전영화 감상회가 열린다. 이곳에서는 못할 게 없다. 동네 골목 살리기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이 책방은 ‘동네 사랑방’이다. 그렇다면 왜 헌책일까. “대형서점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은 왠지 공산품 같아요. 반면 손때가 묻은 헌책은 그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를 교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가치의 재생산’이 이뤄지는 거죠.” 그가 말하는 헌책방의 매력은 여러가지다. “일반 서점은 원하는 책만 팔 수 없는 반면 헌책방은 주인이 좋아하는 책을 컬렉션하고 고객들에게 추천할 수 있어요. 내가 읽은 책만 취급한다는 영업철칙을 지킬 수도 있고요. 그리고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정을 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어서 훨씬 진지하죠. 책이 사람을 만나고,사람이 책을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입니다.” 그가 책방을 통해 맺은 인연 중에 박원순 시장도 포함된다. 박 시장은 동네골목 살리기와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주소를 들고 묻고 물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찾아왔다고 한다. 윤 대표는 “사랑방 같은 이곳의 분위기가 좋았는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집무실 책 정리를 의뢰받은 데 이어 이번에 서울시장 집무실까지 디자인하게 됐다.”면서 “삐딱하게 서 있는 두개의 책장을 책이 이어주는 것처럼 양극화된 이 사회도 책을 소통의 도구로 삼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 ‘심야책방’에는 그가 모은 책과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담았다. 도스토옙스키 전집(열린책들) 중 초판보다 2002년에 나온 2판이 더 가치있는 이유, 살수도 팔 수도 없는 이오덕와 권정생의 서간집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한길사, 2003년), 한하운의 시집 ‘보리피리’에 얽힌 사연, 수집가들이 열광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빨간책시리즈(해문출판사),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 손님이 찾았던 구라다 하쿠조의 ‘사랑과 인식의 출발’(창원사, 1963년) 등. 소개된 책 중 그가 특히 좋아하는 책은 존 케니디 툴의 퓰리처상 수상작 ‘저능아들의 동맹’(범욱, 1981년)이다. 남들이 보기에 저능아에 비정상인 주인공. 모두들 그를 쓸모없다고 여기지만 그로 인해 결국 사람들은 좋은 변화를 맞게 된다는 내용이다. 어린 시절부터 ‘활자중독’이었다는 그는 “책에서 길을 찾고, 지혜를 구하고,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책이 삶 자체인 그가 가는 길, 그가 하는 일과 비슷해 보였다. “우리 사회는 모두들 대세를 따라가도록 강요하고 있어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서 멋진 일을 하는 것이 대세이다 보니 아이들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죽도록 공부해야 하거든요. 비정상이고 비주류여도 자기만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각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문제는 소개된 책들의 대부분이 이미 절판됐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 그는 “읽고 싶은 책을 애써서 찾아 읽으면 의미가 다르다.”면서 “경험에 의하면 정말 읽고 싶은 책은 언젠가는 구해지더라.”고 귀띔했다.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영친왕 부부의 일생 만나보세요” 고궁박물관 22일부터 특별전

    “영친왕 부부의 일생 만나보세요” 고궁박물관 22일부터 특별전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에서 22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하정웅 기증전-순종 황제의 서북 순행과 영친왕·왕비의 일생’ 특별전이 열린다. 하정웅(72)씨는 일본 오사카 출신의 재일교포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하씨가 기증한 영친왕비의 사진, 서신 등 유품 610건을 공개한다. 하씨는 1974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미술품 바자를 준비하던 영친왕비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오랫동안 영친왕비와 친분을 유지해 왔으며, 영친왕비 사후 그가 남긴 유품을 인수하게 되었다. 전시에서는 ‘순종황제의 서북 순행’ 사진첩과 영친왕 휴대용 수첩, 영친왕비 일기 등이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된다. 영친왕비 일기 등 일부는 지난해 10월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순종황제의 서북 순행’ 사진첩은 1909년 1월 27일~2월 3일 순종 황제가 당시 남대문역(지금 서울역)을 출발하여 평양, 신의주 등 한반도 서북지역을 순행한 전체 일정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다. 영친왕 휴대용 수첩은 영친왕이 일본을 비롯한 유럽, 미주지역을 순방하며 개인적인 소견을 기록한 것으로 “일본의 교육은 모방, 수입교육이다. 제도, 방법도 모두 서양교육과 닮아 있다. 국민의 성장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 서양 것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 “…농업을 구하자. 자작농의 유지, 자작농을 늘리는 일에 힘쓰다. …국방필요상 힘들어도 국내에서 농업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영친왕비의 일기는 1919년 한 해 동안 쓴 것으로 결혼을 한 해 앞둔 신부로서의 설렘과 영친왕에 대한 연민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갑자기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에 슬픔에 잠기는 내용도 있다.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과 영친왕 부부의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사진 100여점도 함께 전시되어 영친왕과 왕비의 일생을 엿볼 수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약 17억원 ‘세계서 가장 비싼’ 만화책 보니…

    약 17억원 ‘세계서 가장 비싼’ 만화책 보니…

    무려 16억 8000만원에 달하는 만화책이 있다? 1938년 DC 코믹스에서 내놓은 ‘액션 코믹스’라는 만화책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 11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슈퍼맨이 표지에 등장하는 액션 코믹스 제1권은 만화 애호가 및 수집가 사이에서 소장가치가 가장 높은 만화책으로 손꼽혀 왔다. 이 책은 11년 전 미국인 수집가의 집에서 도난당한 뒤 자취를 감췄고, 경찰이 끈질기게 행방을 추적한 끝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액션 코믹스 제1권 초판은 지난 해 오프라인 경매에서 무려 100만 달러에 팔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만화책’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경매 전문가들은 곧 있을 경매에서 액션코믹스 제1권이 최소 150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고, 세계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를 경매에 내놓은 스테판 피러쉬 메트로폴리스 콜렉터블즈(Metropolis Collectibles·만화판매업체) CEO는 “잃어버렸던 ‘전설의 책’을 찾게 돼 매우 기쁘며, 이 책은 만화 역사상 가치가 매우 높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액션코믹스 제1권 온라인 경매는 오는 30일 열릴 예정이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180억원 넘는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경매 나온다

    가격이 무려 180억 원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가 다음 달 경매에 나올 것으로 알려져 수집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6일자 보도에 따르면, 노란색을 띠는 이 다이아몬드는 110캐럿에 달하며, 성인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를 자랑한다. 이 다이아몬드는 지난해 남아프리카에서 발견한 것으로, 현재 뉴욕의 다이아몬드 제조업체인 코라 인터네셔널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다음 달 15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소더비 보석 경매에서 새 주인을 찾을 예정이다. 디자인과 색상이 매우 희귀한 편에 속해 최소 1000만 파운드 이상에 거래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소더비의 한 관계자는 “이 보석의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면서 “지금까지 경매에 나온 다이아몬드 중 가장 큰 크기로 110캐럿에 달한다. 벌써부터 수집가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재까지 가장 비싸게 거래된 다이아몬드는 지난해 경매에 나온 25캐럿 핑크 다이아몬드로, 컬러와 디자인의 희소가치가 인정돼 4610만 달러(약 520억원)에 낙찰돼 세계 기록에 오르기도 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제 2의 모나리자?” 다빈치 초상화 추정작품 발견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또 다른 초상화가 세상에 나올까. 영국의 미술역사학자가 다빈치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화를 공개했다. 옥스퍼드 아카데믹(Academic)의 마틴 켐프 박사는 1998년 뉴욕 경매에서 1만 4000파운드(2500만원)에 개인 수집가에 팔린 초상화 한 장이 사실은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이 작품이 다빈치의 초상화로 밝혀진다면 그 가치는 엄청나다. 당초 이 그림은 폴란드에서 발견된 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던 작품이었다. 이후 찢겨져 따로 거래됐다. 그림의 제목은 ‘왼쪽을 바라보는 소녀의 머리’(Head of a Young Girl in Profile to the Left)로, 주인공이 비앙카 스포르자(Bianca Sforza)로 전해졌다. 비앙카는 다빈치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자의 딸로, 1496년 그녀가 갈레아조 산세베리노와 결혼을 하자 다빈치가 축하의 의미로 이 그림을 그려줬다는 것. 이후 월쇼 국립도서관에 쭉 보관됐다고 AP통신이 덧붙였다. 켐프 교수는 “이 초상화가 다빈치의 지장이 찍혀 있을 뿐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공 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빈치의 초상화가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켐프 교수의 견해는 미술계에 전반의 동의를 얻진 못했다. 진품에 대한 논란 때문에 다음 달 런던 국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도 걸리진 못하게 됐다. 이에 켐프 교수는 “이 작품에는 더 없이 정확한 증거들이 숱하게 포함돼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무려 94억원…33캐럿짜리 ‘물방울 옐로우 다이아’

    무려 94억원…33캐럿짜리 ‘물방울 옐로우 다이아’

    우리 돈으로 약 94억원에 달하는 가치를 지닌 33캐럿짜리 물방울 모양의 옐로우 다이아몬드가 공개돼 눈길을 끈다. 28일 이그재미너닷컴에 따르면 경매업체 크리스티가 물방울 옐로우 다이아몬드를 포함한 보석 340여 점을 오는 10월 1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경매에 출품한다. 세계의 보석 경매 시즌 개막이 되는 이번 경매는 주식 시장이 세계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 속에서 보석이 새로운 ‘안전 자산’으로 검토되고 있어 투자자와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특히 이 33캐럿짜리 물방울 옐로우 다이아몬드는 그 희소가치 때문에 예상 낙찰 가격이 최고 800만 달러(약 94억원)로 예상되고 있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보석 감정 등을 실시하는 미국보석학회(GIA)에 따르면 이 옐로우 다이아몬드는 동종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보석에 속한다. 크리스티 미국 보석 부문 담당 라훌 카다키아는 “수집가들에게 이번 경매는 이 귀중한 보석을 얻을 일생 일대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크리스티 측은 이 옐로우 다이아몬드의 1캐럿당 낙찰가가 지난 1990년 영국 런던에서 기록된 1캐럿 당 낙찰가인 20만 30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크리스티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부고] 영어교육 새 지평… 국보·보물 26점 나라에 바치고

    [부고] 영어교육 새 지평… 국보·보물 26점 나라에 바치고

    지난 1970∼90년대 중·고교생들에게 ‘영어의 바이블’로 통했던 ‘성문영어’ 시리즈의 저자인 송성문(본명 송석문)씨가 22일 오후 4시 30분쯤 별세했다. 80세. 송씨는 2003년 간암 판정을 받은 뒤 8년간 투병 생활을 하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송씨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신의주교원대를 졸업했다. 6·25전쟁 당시 신의주에 들어온 미군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미군 앞에서 중학 영어 교과서를 읽자 미군은 “통역이 되겠느냐. 함께 평양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미군의 통역장교로 일하던 중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을 왔다. 이후에도 국군 통역장교로 근무하면서 영어 검정고시 중등·고등과정에 합격했다. 부산 동아대를 졸업한 뒤 부산고와 마산고, 서울고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안상수 한나라당 전 대표가 마산고 제자 중 한명이다. ●40여년간 1000만부 이상 팔린 시리즈 송씨는 1967년 성문종합영어(당시 정통종합영어)를 펴냈다. 성문각 출판사 사장이 1960년대 중반 송씨를 찾아와 당시 집 한채 살 돈인 200만원을 건네며 “1년 내에 제대로 된 영어 참고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송씨는 때마침 1965년 문교부의 교사 재교육 차원에서 뉴질랜드로 파견됐을 때 모은 영어 교육 자료를 활용해 성문종합영어를 냈다. 이후 성문기본영어와 성문핵심영어로 이어졌다. 이른바 성문영어 시리즈다. 문법과 독해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학생들이 영어 기본을 다질 수 있도록 짜인 성문영어 시리즈는 40여년간 1000만부 이상 팔렸다. 해마다 30여만부가 팔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성문종합영어에 실린 지문이 서울대를 포함한 주요 대학의 본고사에 그대로 출제될 만큼 수준이 높았다. ●30여년 모은 문화재 아낌없이 기증 송씨는 문화재 수집가로도 이름이 났다. 귀중한 고서가 벽지의 초배지로 사용되는 등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해 고서 등의 수집에 나섰다. 30여년간 고서 등 문화재를 모아 국립중앙박물관에 아낌 없이 기증했다. 2003년 대보적경(大寶積經·국보 제246호)을 비롯해 국보 4점과 보물 22점 등의 문화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2003년 문화재 보존에 앞장선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02-3410-6916), 발인은 24일 오전 6시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화순씨와 장남 철(성문출판사 대표)·차남 현(재미)·딸 미선씨가 있다. 장지는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비틀즈가 쓰다만 ‘화장실 휴지’ 한칸에 얼마?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즈는 사라졌지만 그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비틀즈가 사용을 거부한 화장실 용 두루마리 휴지가 한 칸에 1000파운드(180만원)에 경매에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워릭셔 코번트리에 사는 토마스 배리(66)가 1969년 비틀즈가 12번째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를 녹음할 당시 사용을 거부했던 누런 두루마리 화장지 하나를 경매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 화장지에는 당시 비틀즈의 음반제작을 맡았던 영국 음반회사(EMI)의 마크가 새겨져 있다. EMI 측은 이 화장지가 비틀즈가 썼던 것이라는 공식 확인서와 함께 “비틀즈 멤버들은 이 화장지가 ‘질이 너무 억세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불평을 했다. 이후 매니저들 이 휴지 대신 좀 더 부드러운 것으로 교체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화장지는 이후 1980년에 열린 비틀즈 물건 경매에 올랐고, 당시 녹음실을 운영하던 토마스에 85파운드(15만원) 팔렸다. 토마스는 “당시 사람들도 왜 화장지를 사냐고 물어봤지만 이건 비틀즈의 진짜 물건이자 매우 특별한 소장품이지 않나.”고 반문했다. 토마스는 “이미 일본인 비틀즈 물건 수집가가 거액을 제시하며 이 화장지를 팔라고 제의했으나 거절했다.”는 일화를 뒤늦게 전하면서 “전 세계에 있는 비틀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칸씩 팔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인가, 이타적인 동물인가.’  이 질문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이기도 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현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순수하게’ 이기적인 동물이다. 1976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의 이 이론은 여전히 생물학계의 주류로 각광받고 있다. 도킨스의 이론은 결코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다.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이자 기계’ 정도로 요약된다.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보존의 원칙이라는 한 가지 목적만을 갖고 있으며 유전자는 이에 맞춰 프로그램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흔히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하는, 남을 위한 희생정신과 이타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타성은 수많은 학자들이 진화생물학을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이번 주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 & What)에서는 ‘인간의 이타성’에 대한 공개재판을 열었다. 피고석에는 역사상 가장 ‘이타적인 과학자’로 꼽히는 러시아의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가 앉았다.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를 떠돌며 종자를 모았지만, 정작 본인은 감옥에서 굶어죽은 비극의 주인공이다. 인간의 근원에 대한 왕성한 탐구욕을 보여 온 영화 ‘혹성탈출’ 속 원숭이들의 영웅 시저가 검사로 나서 바빌로프의 이타적 유전자를 기소했다. 바빌로프의 변호는 그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녹색혁명의 아버지’ 노먼 빈센트 볼로그(1914~2009)가 맡았다. 시저 니콜라이 바빌로프. 1887년 모스크바 출생. 작물학자이자 식물유전학자, 수집가, 탐험가. 맞는가? 바빌로프그렇다. 시저법정에 섰는데도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 보통 피고인석에 서게 되면 죄를 지은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모두 긴장한 모습이게 마련인데. 바빌로프 2년 정도 수용소와 법정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보다는 오히려 분위기나 의자가 편하다. 시저당신이 왜 여기에 불려 왔는지 죄목을 알고 있나. 바빌로프잘 모르겠다. 시저당신은 유전자의 법칙을 거스른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 진화생물학의 핵심 토대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유전자는 오로지 생존만을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의 일생은 이 이론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자리의 배심원 앞에서 그걸 입증해 보이겠다. 당신의 집안은 꽤 부잣집이었다. 당신의 부모는 당신이 섬유공장을 물려받기를 원했는데 왜 따르지 않았나. 바빌로프우리 가족이 부유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난 세 명의 형제들을 어려서 병으로 잃었다. 그 때문에 나를 포함한 나머지 형제들은 당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던 과학과 의학을 통해 이 같은 불행을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누나 둘은 의사와 세균학자, 형은 물리학자, 난 식물학자가 됐다. 시저다른 형제들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왜 당신은 식물학인가. 당시에는 식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별 의미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빌로프사실 의사가 될지 식물학자가 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 입학 직전 러시아에 최악의 흉년이 닥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시저당신 자신을 위해서였다면 분명 의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니었나. 잘살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식량을 걱정해서 식물학자가 됐다는 사실부터 아이러니하다. 과학적 발견으로 인류의 고통을 덜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 아닌가. 바빌로프그게 나의 가장 큰 희망이었다. 난 새로운 발견을 할 때마다 ‘이 발견을 어떻게 농사에 활용할 수 있을까.’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또 작물의 질병과 전염병 때문에 생겨나는 기아, 사망, 이주, 사회불안을 막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시저그래서 결국 당신은 가족조차 버리고 먼 길을 떠났다. 1916년에 처음 파미르 고원으로 ‘페르시아 밀’을 찾아 떠난 이후 1933년까지 115차례나 소위 ‘종자찾기 여행’을 했다. 첫 여행을 떠날 때는 신혼이었고, 아들이 태어났는데 안아 줄 시간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도대체 얼마나 숭고한 여행이었기에 가족도 팽개쳤던 건가. 바빌로프작물이 지닌 질병면역력을 찾기 위해 지구상에 어떤 식물이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를 알고자 했다. 농작물이 잘 자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날씨의 영향도 있고, 병충해가 생겨서 순식간에 초토화되는 일도 많다. 무엇보다 인간이 생산성이 높다거나 하는 이유로 한 가지 작물에만 집착하면 그 작물에 병충해가 생길 경우 모두 굶어 죽게 마련이다. 하지만 다양한 생물을 키울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더위에 강한 작물, 추위에 강한 작물, 생산성은 낮은 대신에 병충해에 강한 작물을 적절하게 섞어서 키운다면 어떤 경우에도 기아를 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작물의 근원을 찾아야했다. 밀, 벼, 콩 등이 처음 태어난 곳을 찾는다면 그곳에서 가장 강하게 자란 품종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시저그래서 도대체 품종을 얼마나 모은 것인가. 바빌로프정확하지는 않지만 5대륙을 모두 돌면서 나와 동료들이 모은 종자와 덩이줄기가 14만 8000개에서 17만 5000개 정도 될 거다. 당연히 모두 땅에 심는 순간 자랄 수 있는 발아 가능한 종자들이었다. 시저그동안에 당신은 이혼도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류를 구한다는 목표 아래 결국 가족을 잃은 건데, 만족하나. 바빌로프아내 에카테리나와 아들 올레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종자여행을 위해서 말을 배울 시간도 부족했다. 시저전 세계를 돌아다녔는데, 몇 개 국어나 할 수 있나. 바빌로프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라틴어는 기본이고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나 페르시아어까지 배웠다. 땅과 씨앗의 진정한 주인은 농부들이고, 종자에 대해서는 그들이 가장 잘 안다. 그들의 말로 대화하는 것이 종자여행의 핵심이었다. 시저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오로지 씨앗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았고, 그 결과 가족을 잃었다. 심지어 국가도 당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러시아에 식량이 부족해지자 스탈린 체제의 농업학자들은 당신이 지나치게 많은 종자를 가져와 방치했기 때문에 식량정책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가뒀다. 재판에서 총살형을 선고받았고, 물론 다행히 집행되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량을 모은 당신이 감옥에서 굶어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잖은가. 당신은 뭘 위해 일한 건가.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면, 당신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것 아닌가. 심지어 당신의 제자들은 연구소의 종자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다가 세계대전 중에 봉쇄된 도시에서 굶어 죽었다. 이 또한 당신의 책임 아닌가. 바빌로프…. 볼로그바빌로프의 성과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뒤를 이었던 내가 좀 더 보충하고 싶다. 병충해에 강하고, 식량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당신의 목표였다. 맞는가. 바빌로프그렇다. 그것만이 인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볼로그현재 러시아의 경작지 80%에서 바빌로프가 세운 연구소의 종자에서 개발된 품종을 키우고 있다. 불과 80년이 지나지 않아 수천년을 내려온 농업의 뿌리를 바꾼 거다. 종류는 1000가지가 넘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물다양성은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화두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를 뿌리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살포한 덕분에 땅은 피폐해졌고 새로운 병충해에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결국 식물학자와 농업학자들은 80년 전 바빌로프가 주장했던 생물다양성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시저바빌로프의 노력들이 실제로 인류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것인가. 볼로그나 역시 바빌로프의 여행에서 연구의 기본을 얻었다. 밀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밀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고, 병충해에 강한 앉은뱅이 밀을 얻었다. 이 밀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을 기아에서 구했다. 시저그 덕분에 당신은 197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평생 아쉬움 없이 연구를 하고 영광을 누렸다. 그런데 바빌로프는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희생만 한 것 아닌가. 여러 가지 정황상 바빌로프의 유전자는 유죄가 분명하다. 볼로그시저 당신은 ‘이기적 유전자’의 가장 큰 함정에 빠져 있다. 바빌로프가 이타적이냐 하는 질문에 당신은 ‘그렇다.’라고 대답하겠지만 실제로는 바빌로프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주장하는 유전자 설계론의 핵심은 유전자가 자신이 속한 종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유전자를 위해 행동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는 이타주의자들은 결국에는 생존을 위해 교묘하게 이타성으로 위장된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바빌로프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을 위하는 대신 인류라는 종의 생존을 위해 철저하게 프로그램된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까지 버릴 수 있는 이타성이 바로 지독한 이기적 유전자의 증거다. 오히려 바빌로프야말로 ‘이기적 유전자’ 그 자체가 아닌가. 바빌로프이기적 유전자니 이타적 유전자니 하는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난 그냥 내 머리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죽는 순간까지 내가 모은 종자들에 대해 걱정했는데, 그 덕분에 인류가 기아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됐다니 기쁘다는 생각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게리 폴 나브한·강경이/아카이브)  이타적 유전자(매트 리들리·신좌섭/사이언스북스)  이타적 과학자(프란츠 부케티츠·도복선/서해문집)  기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스코트 킬맨·이순주/에이지21)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이상임/을유문화사)  생각의 역사2(피터 왓슨·이광일/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러시아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가 밝힌 유전자의 비밀
  • ‘전설의 쿵푸스타’ 이소룡 코트, 고가에 낙찰

    ‘전설의 쿵푸스타’ 이소룡 코트, 고가에 낙찰

    “이소룡은 죽지 않았다!” 전설의 쿵푸스타로 불리는 이소룡이 생전 입었던 코트 등 유품 13점이 최근 열린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고 AFP등 해외언론이 7일 보도했다. 지난 6일 홍콩의 완차이섬에서 열린 이번 경매에는 이소룡이 영화 속에서 입었던 코트와 친구에게 보낸 친필 편지, 무명시절 사용한 명함, 그가 미국 시애틀에서 문을 연 무술도장의 회원카드 등 총 13점이 공개됐다. 이중 최고가에 낙찰된 것은 이소룡이 유작 ‘사망유희’에 입고 출연한 뒤 사망 직전까지 즐겨 입은 청색 코트. 이 코트는 60만 홍콩달러(약 8300만원)에 낙찰됐다. 경매 전 예상가보다 9배 높은 가격이다. 낙찰에 성공한 사람은 이소룡의 열혈 수집가인 그레그 매닝. 그는 지금까지 이소룡의 유품을 수집하는데 560만 달러(약 60억 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소룡의 시애틀 무술도장 회원카드는 20만 홍콩달러(약 2770만원)에, 친필 편지는 40만 홍콩달러(약 5540만원)에 낙찰됐다. 그의 유품 13점의 총 낙찰액은 178만 홍콩달러, 우리 돈으로 2억 4700만원에 달해 그의 인기를 새삼 실감케 했다. 한편 1940년 홍콩출생인 이소룡은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등 쿵푸영화를 연달아 흥행시키며 홍콩영화계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쿵푸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다지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한 그는 그러나 1973년 뇌부종으로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을 두고 현재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홍콩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을 만큼 여전히 팬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 스타 중 하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5억짜리 마릴린 먼로 ‘섹스 비디오’ 진위는?

    5억짜리 마릴린 먼로 ‘섹스 비디오’ 진위는?

    ‘영원한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1926~1962년)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 가까이 흘렀지만 그녀가 출연했다고 알려진 섹스 비디오에 대한 진위 논란이 최근 여전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스페인의 수집가 미칼 바르사는 먼로가 미성년자 일 때 찍은 섹스신이 담겼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시작가 50만 달러(5억 2000만원)에 8일(현지시간) 열린 경매에 내놨지만 구매 희망자가 나오지 않아 결국 유찰됐다. 바르사는 당초 이 영상을 내놓으면서 “먼로가 ‘노마 진 베이커’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미성년 시절 촬영한 X등급 섹스 비디오 복사본”이라면서 “그녀가 가난과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1946~1947년께 제작된 6분짜리 8mm 흑백영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바르사는 미국영화협회로부터 받은 편지와 1965년 이 필름을 팔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언급된 FBI의 기밀문서 등을 증거로 첨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먼로의 사진 및 재산을 관리하는 ‘오센틱 브랜즈 그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낸시 칼슨 대변인은 “영상 속 여배우가 먼로와 닮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대중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먼로의 이미지에 대한 그녀의 독점적 권리를 위반하고 기타 지적 재산권을 침해한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바르사는 “비록 적정가격보다 낮은 값을 부르긴 했지만 구매 의사가 있는 미국 덴버의 익명의 희망자와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히고 “오센틱 브랜즈 그룹이 경매가 이뤄지면 자신을 고소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변호인들과 논의 중”이라고 맞섰다. 먼로의 섹스비디오를 둘러싼 논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 같은 섹스 비디오의 다른 복제본이 경매에서 120만 달러(약 13억원)에 거래된 바 있지만 영상 속 여배우가 진짜 마릴린 먼로가 맞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또 2008년에도 한 사업가가 먼로로 추정되는 여배우가 나온 섹스비디오를 150만 달러(약 16억 원)에 구매했으나 전문가들은 “아래턱과 입술, 치아모양, 몸매 등이 다르다.”며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밝힌 바 있다. 사진=마릴린 먼로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BERLIN-지금 여기 베를린

    BERLIN-지금 여기 베를린

    베를린은 생물체 같은 역동성이 느껴지는 도시다. 도시 전체가 풍부한 표정을 가진 사람의 얼굴같다고 할까? 파괴와 갈등, 그리고 다시 화해의 역사를 지나온 도시는 한 편의 웅장한 대서사시, 그 자체다. 거기에 베를린 사람들이 그리고 싶어한 세계, 들려주고 싶던 이야기가 엉키고 버무러져 기형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총알자국이 선명하게 박힌 흉측한 건물조차 예술로 승화시키는 이 도시는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현재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비극의 도시에서 예술의 섬으로 ‘유럽의 섬’이라 불리는 베를린은 예술가들을 흡인하는 ‘수렴의 섬’인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생성하고 전파하는 ‘발산의 섬’으로 세계 예술계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여긴 독일이 아니다. 유럽도 아니다. 그저 베를린이다. 공간적, 시간적으로 독일 내에 섬처럼 존재했던 베를린은 정신적, 문화적으로도 섬처럼 독특한 생태계를 지니고 있다. 베를린이 예술의 메카로 떠오른 데는 ‘분단’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강들의 힘겨루기에 의해 동독 중심부에 위치해 있던 베를린은 차디찬 장벽에 의해 동서로 나뉘었다.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지나 장막이 무너지자 독특한 문화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약 40년간 분리됐던 문화가 섞여 무한한 시너지를 창출했다는 말들은 피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 이면에는 정부의 강력한 예술 활성화 의지가 있었다. 정부가 나선다 하면 으레 ‘생색내기’식 정책을 양산하거나 개발주의에 매몰돼 도심 한복판에 광장이나 조형물을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익숙한 우리로서는 독일 정부의 세련된 예술 지원책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베를린시는 “베를린이 예술의 장으로서 발전함은 물론 문화적 다양성과 혁신적인 작품활동을 펼치는 예술가들의 생계를 지원해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기금 지원의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이것이 정치적 레토릭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예술가들이 정부의 도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1989년 통일 이후, 정부는 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 방치된 낡은 동베를린의 건물들을 아티스트에게 무상으로 제공해 주고, 베를린에 작가로 등록만 하면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저렴한 물가, 넉넉한 예술 공간, 정부의 지원책이 조화를 이뤄 예술가들이 하나둘 운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가는 미술가부터 작가, 대중음악 연주자, 연극단까지 범주도 넓고 국적도 다양하다. 베를린에는 현재 약 600개의 갤러리가 있으며, 미술가 5,000명, 작가 1,200명, 대중음악 밴드 1,500개, 300개의 연극 극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베를린시는 기금을 조성해 이들을 후원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연간 2,000만유로(약 300억원)의 기금이 27개의 지원 프로그램에 의해 예술가들에게 지급된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업과 기관이 개별적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베를린이 예술가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실 베를린은 예술의 도시로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강Spree River에 떠 있는 섬, 뮤지엄 아일랜드Museum Island에는 200여 년을 거치며 박물관들이 하나씩 문을 열었다. 국립회화관, 보데박물관, 구립미술관, 페르가몬미술관, 공예미술관에 대성당까지….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집중 폭격으로 초토화된 박물관, 미술관들을 동독 정부는 차례로 복원시켜냈다. 포화를 맞은 흔적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에 치밀하고도 감쪽같은 복원력이 감탄스럽다. 베를린을 새로운 아트씬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이 통일 독일에 의해 추진됐다면, 전쟁으로 소실된 옛것들의 가치를 원상복구하는 것은 옛 동독의 역할이었던 것. 이념과 시대를 떠나 독일인들이 간직한 예술에 대한 깊은 애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1 분단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특수성은 베를린에 독특한 예술과 문화를 꽃피운 동력이다. 베를린 장벽에 평화를 기원하는 그림을 새겨놓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2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은 통일 독일의 상징이다 3 유럽의 대도시, 독일 주요 도시에 비해 베를린의 물가는 낮은 편이다. 예술가들과 여행자들이 최근 베를린으로 몰려드는 결정적인 이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길에서 만난 예술, 베를리너들 혹자는 이미 세계 미술계의 축이 베를린으로 이동했다고까지 말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조금이라도 덜하니 예술가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이 점이 뉴욕, 파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운집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자연스레 많은 갤러리와 작품 수집가들도 베를린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베를린에서도 가장 많은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는 곳은 미테 지구Mitte District다. 베를린 예술에 중독된 여행자가 있다면 열병처럼 그리워할 곳이 바로 여기다. 근현대 엘리트 미술과 고대 유적을 볼 수 있는 뮤지엄 아일랜드와 같은 공간은 사실 런던이나 파리에도 있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이 폐허가 된 건물을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고, 레스토랑과 카페, 기괴한 분위기의 클럽이 밀집해 있는 곳은 베를린 미테에서만 만날 수 있다. 길을 걷다 마음에 드는 갤러리를 만나면 입장료 없이 들어가 작품을 즐기고, 또 마음에 들면 구매할 수도 있는 이곳.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직접 들고 나와 여행자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곳이 바로 베를린이며, 뉴요커보다 파리지엥보다 더욱 신선한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베를리너Berliner들이다. 여행자 입장에서도 베를린의 가장 큰 매력은 저렴한 물가다. 유럽의 대도시, 다른 독일 도시를 여행하다 베를린으로 건너온다면 저렴한 베를린의 미덕을 더욱 체감하게 된다. 실제로 저렴한 길거리 음식부터, 다국적 음식까지 근사한 맛을 자랑하면서도 값은 싼 편이다.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큰 피자조각을 2유로에 사먹고, 2유로짜리 커피 한 잔까지 즐길 수 있는 유럽의 대도시는 흔치 않다. 짧게 스쳐가는 여행자보다 베를린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체감하는 물가의 매력은 더 크다. 집값이 특히 저렴한 까닭이다. 아파트를 빌려 장기 투숙을 하는 여행자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1 미테 지구에서는 소규모 갤러리를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규모 미술관이나 전시관에서 볼 수 없는 젊은 예술가들의 참신한 작품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2 유대인 박물관은 나치 시절 유대인들이 당한 고통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했다 3, 4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건물,타켈레스는 통일 이후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새롭게 태어났다. 다국적 예술가 60명이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후원금도 좋지만 나무, 철을 보내 달라” 베를린의 예술을 논함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으니 바로 타켈레스Tacheles다. 20세기 초, 백화점으로 사용되다가, 전자제품 전시관으로, 나치 당원들이 머물던 건물로, 프랑스 전쟁 포로수용소로 수차례 용도가 변경된 이 건물은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운명을 다한 듯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이 건물은 전혀 다른 용도로 거듭났다. 정부는 타켈레스를 재개발하려 했으나, 1990년 세계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은 이를 반대하며 건물을 무단 점거해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이색 퍼포먼스를 개최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결국 정부는 손을 들었고, 이제는 이곳에 상주하는 예술가들에게 지원금까지 주게 됐다. 타켈레스 내부에 들어서자 지구상의 공간이 아닌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건물은 온통 그래피티로 뒤덮혀 있고, 버려진 자동차 등 각종 폐품을 활용한 정크아트 조형물들이 널려 있다. 언뜻 보면 슬럼가 같기도 하고, 가출 청소년들의 아지트처럼 보이는 이곳에는 약 60명의 다국적 예술가들이 기거하고 있다. 자기 작품을 전시한 예술가들은 정부 보조금 외에도 작품을 팔아 생계를 영위한다고 한다. 베를린이 예술의 메카로 떠오른 중요한 대목이 여기 또 하나 있다. 작품이 팔린다는 것. 미테 지구 골목골목에는 액자나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이들이 즐비하다. 모두 현장에서 구매한 작품들이다. 집시처럼 보이는 미술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 말을 걸었다. 터키인 아드난 칼칸치Adnan Kalkanci. 그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생활이 아주 만족스럽다며 달라고 하지도 않은 자신의 그림엽서를 선뜻 건넸다. 군불을 쬐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다가갔다. 베를린 출신의 모리츠라는 친구가 차를 한잔 하고 가라며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곤 1유로밖에 안한다며 동전이 들어 있는 종이컵을 딸랑였다. 조금 의아했다. 그저 집나온 비행 청소년처럼 보이는 이들이 이곳에서 ‘예술가’로서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한다는 사실이. 모리츠에게 말했다. “난 한국에서 온 기자다. 네 얘기를 잡지에 실어줄게. 하고픈 말 있으면 무엇이든 해봐.” “하고픈 말? 좋아. 우리를 후원해 달라. 우리가 필요한 건 돈만이 아니다. 나무든 철이든, 뭐든지간에 작품에 쓸 재료들이 필요하다.” “나무? 철?” “재료가 있어야 작품을 만들지 않겠나.” 알고 보니, 보통 친구들이 아니었다. 타켈레스에서는 예술가들끼리 엄격한 기준을 세워 함량미달이면 내보내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타켈레스가 배출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도 많다고 한다. 예술가들의 치열하고도 신성한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5 타켈레스에는 폐품을 활용한 정크아트 작품들이 많다. 예술가들은 후원금도 좋지만 작품에 활용할 소재들이 필요하다가 말한다 6 유대인들은 민족적 우수성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아인슈타인은 대표적인 유대인 과학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반성과 속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베를린의 매력은 역시 길에서 발견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갤러리가 있다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일 것이다. 동과 서를 차갑게 갈랐던 장벽은 이제 베를린 중심부, 1.3km 길이의 병풍으로 남아 있다. 1990년 자유와 평화를 기원하며 다국적 화가 100명이 동쪽 벽면에 그림을 그렸다. 20주년을 맞은 지난 2009년에는 옅어진 그림을 덧칠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기억을 보존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독일인들의 기억에 대한 집착은 남다르다. 많은 독일인들은 냉전과 분단을 거슬러 올라 나치 시절 조상들의 만행을 지금도 부끄러워하고 있다. 가해자가 속죄의 의미로 박물관을 운영하는 나라가 독일이며, 그 상징적인 공간이 베를린에 있다. 유대인 박물관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랍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할레쉐스 토어Hallesches Tor역에서 내려 차도르를 두른 아랍계 어린이들이 뛰노는 아파트를 지나자 기괴한 모형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박물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어지러운 역사의 시공간을 가로지른 듯했다. 2001년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박물관은 건물 외관부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유대인들이 받은 상처와 고통을 공감적으로 표현한 고도의 설계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유대인들이 받은 고통을 형상화한 내부 디자인은 밖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기형적이다. 이토록 강렬한 감정이입을 일으키는 박물관이 또 있을까. 예술로 구현된 집단의 기억은 그 어떤 텍스트보다 강렬했다. 몇 해 전 방문한 예루살렘의 야드바쉠Yad Vashem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생각났다. 야드바쉠이 나치의 잔혹성과 유대인들이 겪은 시련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베를린 박물관은 유대인의 우수성과 독일과 유대인의 관계에 주목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용서와 속죄. 그 입장의 머나먼 간극이 예술 속에 은연히 배어 있었다. Travel to Berlin ▶베를린 가는 길 한국과 베를린을 잇는 직항편은 없다. 프랑크푸르트나 뮌헨까지 간 뒤, 항공이나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루프트한자항공이 프랑크푸르트에 취항 중이며, 루프트한자는 뮌헨에도 취항하고 있다. 이외에도 유럽의 주요 대도시에서 항공편이 운항되고 있다. 환율 1유로는 약 1,500원(2011년 7월 기준) 시차 우리나라보다 8시간 느리다.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여름철에는 7시간 느리다. 전압 독일은 240V 전압을 사용하므로 멀티어댑터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베를린 추천 명소 뮤지엄 아일랜드Museum Island 200년 이상의 유서 깊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 있는 지역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구립미술관Old Museum에는 프로이센 왕가의 예술품이 수집되어 있으며, 고대 그리스, 로마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구국립 미술관, 이집트 박물관을 비롯해 고대 도시 페르가몬의 유적이 있는 페르가몬 미술관, 비잔틴 예술품들이 수집되어 있는 보데 박물관 등이 있다. U-Bahn 프리드리히슈트라세Friedrichstr역, S-Bahn 하케쉐르 마르크트Hackescher Markt역에서 가깝다. 입장료는 박물관에 따라 5~12달러 수준이며, 베를린 웰컴카드가 있으면 절반 가격에 입장할 수 있다. www.smb.museum 미테 예술 지구Mitte District 소규모 갤러리와 베를린에서 가장 힙한 클럽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타켈레스Tacheles도 이곳에 위치해 있다. U-Bahn 오라니엔부르거 토어Oranienburger tor역, S-Bahn 오라니엔부르거 스트라세Oranienburger Strasse역, 하케쉐르 마르크트Hackescher Markt역에서 가깝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 1990년 100여 명의 화가들이 통일을 기념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뜻에서 1.3km 길이의 베를린 장벽에 그린 그림들이다. 오스트반호프Ostbahnhof역 부근에 위치해 있다. www.eastsidegallery.com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1933년 설립됐으나 폐쇄와 재개장을 반복하다가 지난 2001년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박물관이다. U-Bahn 할레쉐스 토어Hallesches Tor역에서 도보로 갈 수 있다. www.jmberlin.de ▶베를린 아트 씬이 더 궁금하다면 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 왜 베를린이 예술가의 천국으로 불리는지 현실적으로 접근한 미술 에세이다. 책의 부제도 ‘베를린의 미술과 미술 환경에 관한 에세이’다. 베를린에서 미술사와 젠더학을 공부한 저자는 예술가를 만나면 단도직입적으로 ‘도대체 어떻게 먹고사는지’를 물었다. 결국 저자는 ‘조건과 예술 사이의 접점’을 찾아가기 위해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현미경으로 바라본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와 굴곡 많은 역사, 정부의 예술 지원 정책의 어우러짐이 베를린이 가진 ‘천혜의 조건’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조이한 저/ 현암사 다시 베를린 여행기자 이동미 씨가 최근 몇년 새 미술, 건축 등 새로운 문화가 급부상하고 있는 베를린의 다채로운 매력을 소개한 에세이다. 베를린이 왜 파리와 뉴욕의 뒤를 잇는 힙한 도시인지 직접 거리를 누비며, 사람들을 만나며 취재했다.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베를린의 패션, 클럽 문화, 먹거리까지 읽을거리가 수두룩하다. 저자는 1990년대부터 스트리트매거진을 통해 도시의 트렌드와 문화를 알려왔으며 <프라이데이 콤마>의 여행팀장을 지낸 이력에 걸맞게 베를린의 구석구석을 맛깔나게 소개했다. 이동미 저/ 미디어블링 베를린 코드 ‘티 나지 않게 사람을 중독시키는 매력을 지닌 도시’, ‘틈새가 많은 도시’, ‘자유롭고 가난하고 섹시한 도시’라고 베를린을 일컫는 저자가 8년간 유학생활을 하며 경험한 베를린 이야기를 전한다. 베를린 아트씬에 대한 내용, 가난한 예술가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독일의 역사와 정치까지 다양한 베를린의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다. 저자는 여행안내서보다 더 본질적인 내용들을 다루었고, 일기처럼 사소하고 내밀한 이야기까지 숨김 없이 책에 담아냈다. 이동준 저/ 가쎄 카드 한 장으로 가벼운 여행 베를린 웰컴카드Welcome Card 베를린의 모든 대중교통을 카드 한 장으로 해결하고, 150개의 주요 관광지 입장권까지 절반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웰컴카드는 베를린 여행의 필수품. 관광객 안내센터나 주요 전철역, 호텔에서 구매할 수 있다. 2일권은 16.90유로(약 2만6,000원), 3일권은 22.90유로, 5일권은 29.90유로다. 옵션으로 인근 도시인 포츠담Potsdam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패스도 있다. 베를린관광청 홈페이지(www.visitberlin.de)를 방문하면 웰컴카드를 구매할 수도 있고, 각종 유용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워크 포 밀레’ 김명숙 작가의 청원 작업실 가보니…

    ‘워크 포 밀레’ 김명숙 작가의 청원 작업실 가보니…

    난삽해 보인다. 어린아이가 얇은 펜으로 찍찍 그은 듯 선들이 어지러이 춤춘다. 형체가 쉬이 눈에 잡히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키질하는 서양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3점 연작인데 차이라면 키질하는 곳이 점점 밝아진다는 점이다. # ‘생짜 노동’서 느끼는 정신적 극치감 인터뷰를 위해 지난달 28일 충북 청원군 산막리, 그것도 마을과 조금 떨어져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작업실을 찾은 것은 이 작품, 김명숙(56) 작가의 ‘워크 포 밀레’(The Works for Millet) 때문이다. 밀레의 ‘키질하는 사람’을 모사해 재해석한 이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왠지 모를 환희감에 젖게 한다. 동시에 이런 ‘생짜 노동’ 그 자체에 몰두하는 이가 궁금해진다. ‘만종’ ‘이삭줍기’로 유명한 밀레는 가난한 자들의 고된 노동이 지닌 경건함에 심취했던 작가다. 주 5일 마음껏 즐기다가 딱 하루 회개하고 안식을 구하는 ‘머릿기름 바른 교인’이 아니라, 비록 남이 버린 낱알을 주워 먹더라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는 절대자’에게 고개 숙여 감사할 줄 아는 이들이야말로 종교적이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작가의 연작은 이 얘기를 마치 동영상처럼 구현해놨다. 반복되는 고된 노동 속에 나타나는 세상에 대한 이해, 여기에는 동서양의 만남까지 깃들어 있다.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지혜의 발견이다. ‘키’라는 도구 자체가 서양화 전통에서는 분별력, 지혜를 뜻한다. 그래서 왕이나 귀족 초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품 가운데 하나다. 동양적 맥락에서는 키 자체보다 반복적으로 키를 흔드는 팔 동작이 핵심이다. 소 잡는 백정의 칼 쓰는 법에서도 도를 발견했다는 장자의 얘기를 떠올리면 된다. 전반적으로 침침한 그림 속에서 점차 환하게 밝아오는 빛,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극치감이다. 노동은 노동이되 ‘레이버’(Labour)가 아니라 ‘워크’(Work)다. 그래서 밀레를 위한 ‘워크’다. 작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밀레를 그저 바르비종파 화가 정도로만 알았어요. 그러다 딸에게서 러시아 에미타주박물관 화집을 받았는데 ‘땔감 나르는 소녀들’이란 작품을 보고 충격 좀 받았지요. 집에 가서 저 땔감으로 불을 때면 몸뿐 아니라 온 정신이 따뜻해지겠구나 하는, 이름 없이 사라져간 저들이 바로 프로메테우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겁니다.” 한 가지 더 있다. “혜능법사에게 하루는 고명한 스님이 수양을 많이 했느냐, 물어봅니다. 혜능의 대답은 ‘방아는 다 찧었으나 키질을 못 했습니다’였지요.” 어쩌면 키질하는 서양 농부는 동양 혜능법사의 미래인지 모른다. # 수세미로 누런 장지 위에 작업 정신적 극치감은 곧 자유다. “자유는 외줄타기 광대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보는 사람들은 위태롭다, 불안하다 말하지만 광대 스스로는 가장 집중된 순간을 즐기죠. 고도의 집중이 이뤄지고 있는 그 순간, 그 사람은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작가답게 “잘 그려서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리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린다.”고 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나와 미국 휴스턴대에서 공부한 작가가 유화를 버린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유화를 그릴 때면 내가 무슨 대단한 영웅이 된 양 흥분해서 작업하게 돼요. 그런데 종이에다 수세미로 단색 톤 작업을 하다 보면 단출하게 되죠.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작업용으로 쓰는 특출한 수세미가 있나 싶어 둘러봐도 눈에 띄는 건 흔히 가정주부가 쓰는 수세미뿐이다. 전시에도 근사한 작품을 내놓는다기보다 그간 공부한 것을 정리한다는 심정으로 임한다. 그래서 자신의 작업을 배설에 비유했다. 작업실에는 책들이 엄청 많다. 미술책들이 아니라 역사나 철학에 관한 책들이다. “음식이에요. 저걸 맛있게 먹고 잘 소화시켜 똥을 싸는거죠.” 꾸준히 ‘싸둬서’ 뒷간이 꽉 차면 방출한다. “너무 많이 싸서 내 엉덩이에 묻을 정도가 되면 그냥 화랑에 전화해요. 이름 있는 작가도 아니고, 그림이 잘 팔리게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랑마다 1년 정도 전시 일정은 미리미리 잡아두는데 중간에 끼어들 수가 없죠. 그러다 보니 (화랑이 밀집한 서울) 인사동에는 소문이 안 좋게 났어요. 하하하.” 솔직히, 쉽게 인기를 끌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반적으로 그림이 어둡다. 캔버스를 쓰지도 않는다. 수세미에 물감을 묻혀 누런 장지 위에 문지르듯 그린 뒤 핀으로 꽂아 벽에 고정시킨다. 종이에 물감을 두껍게 발랐으니 당연히 이리저리 우그러진다. 한 수집가는 “정말 사고 싶은 작품인데 사고 싶지 않게 작업한다.”고 볼멘소리를 내뱉었단다. 폼이 안 난다는 얘기다. # 포장 없이 둘둘 말아 직접 전시장 배달 한때는 정말 그런가 싶어 캔버스를 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캔버스가 주는 덩치감이 불편하더라고요. 결국 다 부숴 버렸습니다.” 순간 작업실 앞에 있던 낡은 밴이 떠올랐다. “맞아요. 전시할 때면 조심스럽게 포장하는 게 아니라 둘둘둘 말아서 제가 직접 배달해요.” 작업실에는 “요즘 작업 중”이라는 작품이 몇 점 걸려 있었다. 대부분 대작이다. 그런데도 “그냥 손 풀기용으로 하는 작업”이란다. 그래 놓고는 나중에 한데 모아 불태운다. “한번 발동이 걸리면 미친 듯이 그려대는데, 다음 날 보면 참 가관도 아니에요. 그래서 불놀이 자주 해요(웃음).” 마련한 지 2년 된 아늑한 작업실을 버리고 싶다는 작가. 그 전에 7년간 살았던 외양간이 작업실로는 더 좋았다며 웃는다. 땔감을 주우러 다니는 소녀는 작가 본인이었을지 모른다. 김 작가의 ‘워크 포 밀레’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9월 2일까지 열리는 ‘스터디’전에서 만날 수 있다. 스터디전은 김 작가처럼 아날로그적으로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뒀다. 뒷담화를 재밌는 설치작품으로 표현한 박혜수, 분자생물학적 작업을 선보이는 양대원, 오래된 철도 침목으로 인간을 형상화한 정현, 귀신처럼 눈이 뻥 뚫린 인물들을 통해 사람의 내면에 접근하는 김정욱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오각형 모나드(Monad·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하나의 단위)를 반복적으로 배열한 고낙범과 옵티컬 아트(시각 예술)를 선보이는 빅토르 바자렐리의 작품은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생각하게 한다. (02)736-4371. 글 사진 청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000만원 넘는 야구공 등장…金 칠했나?

    반세기 동안 창고의 박스 안에 보관돼 있던 ‘엄청난’야구공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평범해 보이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 야구공은 뉴욕 양키즈팀 선수 특히 ‘레전드급 선수’로 불리는 조 디마지오의 사인 뿐 아니라 마릴린 먼로의 키스마크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공이다. 이 공이 다음달 4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전미 스포츠 수집 전시회’에 나올 것으로 알려져 수집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디마지오와 마릴린 먼로는 세간을 뜨겁게 달군 스타커플이었다.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와 유명 스포츠 스타의 만남은 엄청난 이슈가 됐고, 두 사람은 1954년 결혼에 골인했지만 9개월 만에 이혼에 이르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세기의 커플인 만큼 조 디마지오와 마릴린 먼로의 흔적이 모두 담긴 이 야구공은 두 사람이 사망한 후에도 고가의 컬렉션으로 손꼽혔다. 1952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뉴욕양키즈 팀 26명 전원의 사인과 약간 흐릿해진 먼로의 입술 자국이 담긴 이 야구공은 이번 경매에서 최소 2만 달러(약 2100만원)이상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이번 경매에는 뉴욕 양키스의 4번 타자였던 루 게릭이 1934년 일본 투어 당시 입은 유니폼(낙찰 추정가 약 3억 2000만원)과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로 손꼽히는 사이 영이 1908년 입은 보스턴 레드삭스 유니폼(낙찰 예정가 약 3억 7000만원) 등 10여 점이 나올 예정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한병에 1억 3천만원

    화이트 와인 한 병이 무려 7만 5천 파운드(약 1억 3천만원)에 팔려 기네스북 최고기록이 갱신됐다고 영국 데일리 메일이 보도했다. 세계 최고 가격의 화이트 와인으로 등극된 와인은 1811년 프랑스 보로도주에서 생산된 샤또 디켐(Chateau d’Yquem). 1811년에 출시된 이 와인은 ‘대혜성 와인’으로 유명하다. 1811년은 플라우게르게스 혜성이 지구를 지난 간 해로 혜성이 출현한 해의 와인의 맛은 특별하다고 전해진다. 보통의 화인트 와인은 장기 숙성이 불가능하나 이 와인은 독특하게 와인에 담긴 다량의 설탕성분이 포도의 산성분과 융합하여 200년 역사의 향기을 느낄 수 있다고. 이 샤또 디켐은 와인 비평가인 로버트 파커와 1999년 와인 감정단으로 부터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으며 맛, 향기, 색깔에서 완벽에 가까운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런던 더 앤틱 와인 컴퍼니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이 와인을 구입한 사람은 와인 감정가인자 개인 수집가인 크리스티앙 바네께. 그는 이 와인을 9월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장하는 레스토랑에 전시할 예정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미술계 큰손 ‘씨킴’ 개인전

    미술계 큰손 ‘씨킴’ 개인전

    악조건은 두루 갖췄다. 여기저기서 ‘큰손’을 거론할 때면 세계 200위권 안에 드는, 국제적으로도 이름 있는 미술품 수집가다. 지난 5월 홍콩 아트페어에서는 50만 달러 들여 백남준 선생 작품을 샀다. 돈? 걱정없다. 충남 천안에서 대형백화점과 터미널을 운영한다. 싱글거리며 매출액을 자랑한다. 작품에는 자화상 느낌이 가득하다. 누구를 그리든 자신이 빙의된 느낌이다. 작품 크기도 소소한 건 없다. 대부분 대작이다. 이쯤에서 결론이 나온다. 돈 많아 눈 호강하니 손이 자연스레 움직였다? 이 수군거림에는 비아냥이 한가득이다. 본인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좋아 죽겠단다. 1년 가운데 절반을 제주 작업실에 틀어박혀 큰 캔버스 앞에 미친 듯 붓질하고 있으면 좋단다. “나도 예술가다.”라고 큰소리치고 싶은 욕망은 끓어넘치는데, 돌아오는 것은 ‘악플’보다 더 잔인하다는 ‘무플’이다. 그래도 굴하지 않는다. 뒷말이 두려워 못하는 것보다 자기처럼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이 더 대단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미술대학 안 나왔다고 안되라는 법 있습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인정받을 때까지 할 겁니다. 돈 좀 벌었다고 도박 같은 딴짓하는 것보다 얼마나 좋습니까.” 아라리오갤러리와 천안 신세계백화점 충청점을 운영하는 ‘김창일로서’가 아니라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작가 씨킴(60·CI KIM)으로서 하는 말이다. 현대미술은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지만, 그 말 믿고 덜컥 나섰다가는 욕먹기 십상이다. 더구나 그 ‘아무나’의 손에 돈과 권력이 쥐어져 있으면, 이죽거림은 빠질 수 없는 양념이다. 그래서 썩은 토마토와 녹슨 철가루를 응용한 그림과 설치작품이 주를 이루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Who can say What?’이다. 독설로 인기를 끈 미국 라디오 진행자 돈 아이머스는 대학농구팀 흑인 여자선수들을 두고 ‘곱슬머리 창녀’라 했다가 계약해지된 인물. 타임스지는 이 파문을 표지기사로 다뤘고, 씨킴은 그 잡지 표지를 캔버스에 그려둔 뒤 아이머스 입에다 ‘Who can say What?’이란 쪽지를 붙여뒀다. ‘Who’, ‘What’ 자리에 ‘씨킴’과 ‘미술’을 가져다 놔도 될 법하다. 그렇게도 못할 짓이냐,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전시는 천안과 서울의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서울전은 씨킴 개인전 사상 처음이다. 8월 21일까지. (041)551-5100, (02)723-619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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