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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F 2년 명암](上)지표로 본 경제변화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은 지난 97년 11월.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는 바닥권에서 벗어나 정상궤 도로 회복되고 있다.우리보다 앞서 외환위기를 당한 멕시코가 위기극복에 3 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빠른 회복이다.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고 금리를 축으로 한 IMF의 고단위 위기관리처방에 따라 기업도산과 실업자 양 산 등으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IMF체제 돌입 2주년을 맞아 외환위기의 극 복과정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IMF체제가 남긴 교훈 등을 알아본다. 우리 경제는 지난 1년동안 저물가를 바탕으로 고성장과 수출증가로 외환위 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가고 있다.환란후 첫해인 98년 마이너스 6.3%의 성장 률로 추락한 우리 경제는 올해는 9%안팎의 플러스 성장률로 반전될 전망이다. 요즘에는 회복 단계를 넘어 경기 과열 소리가 나올 정도이다.경제의 각 부 문에서 환란의 그늘이 가시면서 반도체와 자동차는 호황을 맞고 있다.환란후 첫 1년간 급속도로 경기가 가라앉아 세계 대공황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위 기감이 높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원유와 곡물 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락,올해 우리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저물가가 정착됐다. 원자재가격 안정에 이 어 세계 경기침체를 우려한 미국 등이 잇따라 금리를 내려 저금리가 확산됐 다.국내 물가 상승률은 올들어 1%미만에 머물 전망이다. 더욱이 달러당 원화환율이 1,200원선을 유지,수출증가를 도왔다.환율은 지 난해 12월 1,207원선에서 외자유입 급증으로 6월에는 1,150원선으로 떨어졌 으나 금융시장 불안으로 1,200원에서 횡보하고 있다. 환율 덕으로 수출가격 경쟁력이 유지됐다.99년 경상수지 흑자폭이 당초 예 상인 200억달러보다 많은 23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 경기도 회복돼 산업생산,출하와 소비가 늘고 있다.출하는 올 3월,생산 은 7월,소비는 9월에 각각 환란 전 수준을 넘어섰다.제조업가동률은 환란 전 80%수준에서 98년 7월 64.6%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가 올들어 상승세가 꾸 준히 이어져 다시 80%에 육박하고 있다.실업률은작년 12월 7.9%에서 올 2월 사상 최고치인 8.6%로 올라갔다가 절반선인 4.8%로 떨어졌다. 설비투자가 본격 살아나지 않는 등 일부 지표를 제외하면 실물경기는 거의 환란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은 콜금리가 작년 12월 6.7%대에서 5%대로 떨어졌다.회사채수익률 역시 10% 밑에서 형성됐으나 대우사태 등으로 올 하반기에는 10%선을 넘어서 기도 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금융시장 안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불안요인은 여전 하다.앞으로 실물경기 회복세의 지속 여부는 금융시장 변수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일기자 bruce@-IMF 극복 공신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들어간 지 2년만에 경제위기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것은 우리의 실정에 맞게 경제를 이끌어간 현 정부의 경제팀과 착실한 구조 조정을 한 기업,금모으기 운동에 앞장서는 등 정책에 적극 협조한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모두가 IMF 극복의 공신인 셈이다. 이규성(李揆成) 전 재정경제부장관을 경제수장으로 한 현 정부의 1기 경제 팀은 경제기조를 바꾸면서 IMF탈출에 교두보를 마련했다.IMF가 권고한 고금 리정책은 현실에 맞지않는다는 점을 IMF에 설득해 저금리정책으로 바꾸면서 기업들의 회생에 일조를 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의 역할은 매우 지대했다.그는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총사령탑으로서 가장 어려운 작업을 큰 잡음없이 이뤄냈다.아직 도 대우처리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금융시장을 안정시킨 것도 IMF 극복에 도움이 됐다.자민련 김용환(金龍煥)의원,임창렬(林昌烈) 전 경제부총리(현 경기지사),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정덕구(鄭德龜) 전 재경부 차관(현 산업 자원부장관)도 사태초기 IMF 및 외국투자자 등 대외협상 창구역을 맡아 일역 을 담당했다.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회장에 큰 점수를 주는 측도 없지않다.IMF 이후 침 체를 보였던 주식시장이 활황세로 돌아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서다.현대증권이 지난 3월 내놓은 주식형펀드인 ‘바이코리아’가 돌풍을 일 으켜 단숨에 주가 1000포인트를 돌파하는 데 기여했다.주식시장 활황으로 기 업들의자금조달이 쉬워졌고 구조조정도 보다 수월해졌다.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적극 따랐던 삼성 현대 LG SK 등 주요그룹의 행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유명인사는 아니지만 ‘착하고 순진한’ 국민들의 공은 아무리 강조해 도 지나치지 않다.한푼의 달러라도 더 모아 외채를 갚아달라며 결혼반지 생 일반지 등을 모으는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국민들과 월급이 대폭 깎여도, 한때 실업자가 2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실업대란’이 있어도 묵묵히 참고 견딘 국민들(특히 실업자)이 진정한 IMF의 공로자가 아닐까.대외적인 환경도 IMF 극복에는 호재였다. 미국의 저금리를 바탕으로 IMF 직후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보였던 것도 행운이다. 곽태헌기자 tiger@- 기업·금융권 구조조정 점검 IMF 체제 돌입후 2년간 실물·금융환경의 격변에 따라 기업·금융권 구조조 정도 급류를 탔다.부도 등으로 기업들이 대거 퇴출되고,은행은 합병 등을 통 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그러나 산업구조조정은 여전히 ‘진 행형’으로 추후 금융·기업의 또다른 판도변화가 불가피하다. [금융구조조정] 지난 한해는 금융권으로선 사상 최악의 시련기였다.98년 1월 제일·서울은행의 감자명령과 경남 등 10개 종금사의 영업정지를 필두로 고 비용·저효율 구조의 금융권에 대한 대수술이 전개됐다.5개은행의 퇴출과 상 업·한일,국민·장신,하나·보람 등 은행간 합병이 잇따랐다. 그러나 새로운 금융환경의 토대가 마련되긴 했지만 금융구조조정이 마무리 된 것은 아니다.우선 IMF 이후 엄청나게 비대해진 투신권 구조조정이 남아있 다.다음달 중 한국·대한 등 양대 투신사의 구조조정 일정이 잡혀있고,나머 지도 내년 7월 채권시가평가제 도입을 계기로 격랑의 소용돌이에 빠질 전망 이다.수익증권 환매사태의 현실화 등 경우에 따라 연내 구조조정이 단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은행권의 2차 구조조정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다.이르면 내년초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대우사태로 경영악화가 불 가피한 데다,올 연말 새로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 적용 등이 2차 구조조정의 단초가 될 것으로 꼽힌다.다만 정부가 주도한 1차 구조조정과는 달리 은행 들의 자발적인 전략적 제휴 또는 합병을 통해 추진될 공산이 높다. [기업구조조정] 금융권에 이어 시작된 기업구조조정은 대우그룹 워크아웃에 따라 바야흐로 피크를 맞고 있다.대우그룹의 사실상 해체는 퇴출은행에 이어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를 또다시 깨뜨렸다.대우를 뺀 나머지 5대그 룹도 분기별 재무구조개선약정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군살빼기’에 매달려 야 하는 형편이다.소액주주 권한의 강화,결합재무제표 작성 등 재벌의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나머지 기업의 구조조정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지난해 7월 고합그룹의 4 개 계열사에 처음 적용된 워크아웃은 현재 103개 업체로 확대됐다.6∼64대 계열기업체도 59개나 포함돼 있다.그러나 실제 경영성과는 아직은 미흡하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올 3월말 현재 기업개선약정을 체결한 65개 기업의 자구노력 실적은 8조2,571억원 중 7,407억원(9%)만 실행된 상태다. 앞으로 2 ∼3년은 지나야 경영성과가 나올것이란 견해가 많다. 박은호기자 unopark@-뜨는 기업과 지는 기업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2년동안 우리 기업들은 많은 시련과 변화를 겪 었다.외국업체에 매각된 업체들이 속출했고 법정관리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 웃)에 들어간 기업들도 양산됐다.구조조정과 빅딜(대규모 사업교환)과정에서 동종업체간 통합으로 간판을 내린 기업들도 있었다. 반면 IMF기간동안 착실 한 구조조정과 저금리,엔고 등 유리한 사업환경을 적절히 활용,눈에 띄게 건 실해진 기업들도 나와 대조를 이룬다. [저물어 간 기업들] 대우는 IMF직격탄을 맞고 그룹이 사실상 해체됐다. 지난 8월 12개 주력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이 확정된 뒤 ㈜대우,대우자동차 등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매각 또는 청산될 운명에 처했다. 쌍용의 주력 계열사도 줄줄이 국내외 업체에 매각됐다.97년 10월 쌍용제지 가 P&G에 매각된 데 이어 쌍용자동차는 대우에,쌍용증권은 미국 투자회사인 H&Q에 팔렸다.쌍용정유는 아람코 등 외국업체 컨소시엄과 막바지 매각협상을 벌이고 있다. 과잉·중복투자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석유화학,중공업분야도 고통스러 웠다.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은 통합법인을 추진중이다.한때 조선업계 세계 5위권이었던 한라중공업은 97년 12월 부도가 난 뒤 지금은 현대중공업 이 위탁경영을 하고 있다. [뜨는 기업들] SK텔레콤의 경우 IMF관리체제하에서도 순항을 계속,올 매출액 4조원에 흑자기조가 유지될 전망이다.주식시장의 호황으로 국내 증시사상 처 음으로 주당 가격이 100만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12월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뒤 회생했다.현대의 지원을 등에 업고 IMF체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끈 레저용차 시장에서 약진, 올해 창사 이래 최대규모인 1,400억원의 경상이익이 기대된다. 반도체 업체들의 상승세도 두드러졌다.반도체 값 상승,엔고 등 대외환경의 덕도 컸다.삼성전자는 올해 25조 매출에 3조5,000억원의 순익을 예상하고 있 다.빅딜로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전자는 D램업체로는 세계 최대의 시장점유 율(지난해 말 기준 20.8%)을 갖게 됐다. 과감하고 발빠른 구조조정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기업으론 한화가 꼽힌 다.경향신문,빙그레 등을 분리하고 한화에너지 등 5개사 매각,한화 기계 베 어링 부문 등 4개 사업부문 매각 등을 통해 97년말 1,200%였던 부채비율을 6 월말 현재 220%로 슬림화하는 데 성공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대한시론] 신임 감사원장에 거는 기대

    정년 퇴임하는 한승헌 감사원장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공직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감사원장 직은 풍부한 경험과 경륜이필수적이기 때문에 정년을 65세로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원장의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감사원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한원장은 개정법 시행 당시의 원장에 대해서는 정년연장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의 부칙을삽입했다.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한원장의 강직한 인품을 잘 아는 여야 의원들은 이같은 부칙조항을 삭제하려 했으나 한원장 스스로가 일관성 있는 자세로 삭제를반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자신에게만 적용되는 초대 대통령 연임제한 철폐를 위해 헌법까지 개정했던 과거의 예와 비교해볼 때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이다. 한원장 재임시 감사원은 과거 정권의 비리뿐만 아니라 현 정권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엄격한 감사를 수행했다.특히 거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감사에서 금융감독원의 비능률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적절한처방을 제시한 것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신임 이종남 감사원장은 검찰 재직시 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을 처리한 경제통법조인이며 공인회계사 자격과 조세법 분야의 법학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어 적법성 감사와 타당성 감사의 적절한 조화가 요구되는 감사원의 수장으로서 적임자로 평가된다.김대중 대통령은 특별한 인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성과 강직성을 중심으로 신임 원장을 지명해 국회에서 절대 다수의 지지로동의를 받았던 것이다. 감사원은 국가 최고감사기구로서 공공부문에 대한 회계감사와 정부활동 및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수행해 정부의 재정 책임성을 확보하고,행정운영의 개선 및 향상을 기하는 기관이다.감사원의 필요적 검사 대상기관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4만개에 이르고 선택적 검사 대상도 금융기관 등 3만개에 이르고 있다. 부패를 척결해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고,공공부문의 효율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감사원의 운영방식도 개선돼야 한다.특히 감사대상 선정의 공정성,타당성감사분야의 확충, 감사요원의 전문성 확보,감사 대상기구의 자체 감사기관과의 연계 및 감사 품질관리 분야의 개선이 요구된다. 감사 대상기관 선정에 있어서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모델이 설정돼야 한다.부정이나 비능률이 개재될 위험이 높은 기관이 감사대상으로 선정될 확률이 더 높아지도록 하는 표본추출 방식을 도입해 감사대상 선정에 있어서 인간적 요소의 작용을 배제해야 한다. 한편 규정 준수여부를 따지는 적법성 감사에 치중하다 보면 공직자의 보신주의가 팽배해지고 면피용 문서를 중심으로 한 비효율적 행정이 이루어지게마련이다.따라서 행정집행의 효율성을 강조한 타당성 감사를 보다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효율성 감사의 강화를 위해서는 전문성 있는 감사요원이 확보돼야 한다.따라서 감사요원의 보수와 승진체계는 전문성과 업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감사원 스스로가 공무원 인사 및 보수체계 합리화의전형을 보여야 할 것이다. 효율적인 감사수행을 위해서는 감사 대상기관 내부 자체감사 기구와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자체감사 기구와의 합동감사를 활성화하고 감사계획 수립에 있어서도 자체감사 기구의 감사결과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특히 감사 대상기관의 감사담당 임원 선임에 있어 감사원이 적절한 제어기능을 수행해 비전문가가 정치적 이유로 임명되는 불합리한 관행을 차단해야 할 것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대해서도 효율적인 평가시스템이 운영돼야 한다.감사지적사항에 대해 감사 대상기관과 견해 차이가 있을 경우 이를 심판하는 민간인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국가 행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는 감사원을 중심으로 활성화돼야 한다.이를위해 국민 모두가 공공부문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열린 감사체제를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李 晩 雨 고려대교수·경영학]
  • ‘제2공화국과 장면’서 현대정치사 새평가

    장면의 2공화국은 과연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였을까.장면 총리는 우리 정치의 민주화에 관해 진실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을까. 2공화국 내각수반이었던 장면박사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장면박사의 삶과제2공화국을 다룬 책이 나왔다. 대한매일 문화팀 이용원 기자가 펴낸 ‘제2공화국과 장면’.이 책은 우리현대사에서 잊혀진 부분을 재발견한 역작으로 평가된다.저자는 4개월동안 신문에 실린 연재물 30회분량에 연재가 끝난 뒤 추가로 쓴 글을 함께 묶어 모두 356쪽 분량으로 책을 냈다. 책은 60년 8월19일 실시된 민의원 투표 결과 ‘장면총리 인준’이 이뤄진데서 부터 61년 5월18일 군부쿠데타의 책임을 지고 내각이 총사퇴한 시점까지의 비사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1년이 채못되는 장면의 집권기간을 지켜보다 보면 그의 정권이 정말 무능력했는지,아닌지를 절로 알 수 있다.저자는“장면정부는 민주주의와 국민경제를 발전시키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결론을 맺는다. 특히 4·19에서 5·16으로 넘어갈 때 민주당 신파 수장인 장면과 대통령인구파 윤보선이 펼친 ‘행적’은 흥미진진하다. 충실한 자료 발굴과 다양한 증언 등을 통해 학계에서 조차 제대로 다뤄지지않은 제2공화국을 제위치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책을본 다음 “장면박사가 이제야 복권되는구나”라고 반겼다.범우사정기홍기자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金明子 환경부장관

    우리에게 물은 항상 넉넉했다.그래서 ‘물 쓰듯’이라느니,‘물 흐르듯’한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 수도(水道)가 놓인 것은 1908년 서울 뚝섬에 정수장이 준공되면서다.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이 때,생명의 원천인 물에 대한 걱정이 심각하다. ‘물 전쟁’ 시나리오까지 나오는 가운데,미국의 월드워치연구소는 2025년경에는 지구상의 40% 인구가 물 기근을 겪을 것이라고 한다. 세계물정책연구소는 21세기 분쟁의 원인으로 물을 꼽고 있다.우리도 예외는 아니다.93년에 유엔이 우리 나라를 장래(2006년) 물 부족 국가로 분류했다. 과연 오늘의 우리 현실은 수질 악화와 수량 부족으로 심각한 지역갈등까지빚고 있어,물에 대한 비관적 시나리오를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이쯤 해서 우리의 물 정책도 공급 측면 못지 않게 수요 관리에 지혜를 모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그리하여 새로운 치수(治水) 사업은 ‘물살리기’와 ‘물 아끼기’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영월 동강댐 건설에 관련된 논쟁도 단순히 소모적 대결이 아니라 정책 전환의 계기로 승화시켜야 한다. 가령 앞으로 3년간 변기 수조와 수도꼭지에 절수(節水)기기를 설치하는 국가적 사업을 전개한다면,연간 동강댐 공급량의 1.1배에 해당하는 물을 절약할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민적 의지를 결집해서 물 절약 생활방식을 적극 확산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컨대 절수기기 설치와 중수도(中水道) 활용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확대하고 민간 부문이 자율적으로 적극 참여한다면,물의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음이 분명하다.근세사의 험난한 고비들을 의연히 넘기고 오늘에 이른 우리가 이런 ‘물 아끼기’ 실천을 못 해낼 이유가 없다.다만 누수율 저감과 수질개선에 대한 정부의 정책의지를 바탕으로 하여 치밀한 사업계획을 세우고,절수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실천을 이끌어내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될 것이다.
  • [대한시론] 검찰이 특검제 도입을 막으려면

    경기도 지사와 그 부인의 수뢰·독직,전 공안부장의 파업유도 사건을 처리하는 검찰의 추상같은 모습을 접하니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다.검찰은할 수 있었다.특검제 도입의 여론을 피하려 한다든지 이를 법제화하려는 정치인들에 대한 경고이든지 또는 범인(凡人)이 미처 측량하지 못하는 원모(遠謀)에서 왔더라도,어쨌든 검찰은 능력이 있었다. 검찰권과 정치권력간의 상관관계를 지적한 대표적인 표현이 김영삼정권 당시의 ‘검찰공화국’이었다.당시 여당의 당 사무총장이라는 사람이 ‘기소는 없을 것’이라느니 ‘소환은 혐의에 대한 소명의 기회를 주는 것일 뿐’이라느니 등의 말을 거침없이 해대는 상황이었다.강직한 검사들은 “검찰총장위에 사무총장”이라 자조하면서,정치로부터 독립을 되새겼다. 당시 전 복지부 장관의 부인이 이익단체인 한 협회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는데 정작 ‘장관 본인은 몰랐다’라는 판단기준을 원용한 검찰은 그를 형사책임으로부터 면책시켰다.‘개인책임’이라는 법의 원리에 따르면 검찰의처리결과는 법률가들의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의 시정 인심은 그렇지가 않았다.검찰은 실정법에 한정한 법리의 개진에 그쳐서는 안 되었다.오히려,“그는 장관인 동시에 국회의원이다.때문에 헌법상 청렴의무(제46조 제1항),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직무를 행할 의무(동 2항),그 지위를 남용하여 재산상의 권리·이익 등을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는 의무(동 3항)등이 있다”는 등 공직자의 헌법적 수신제가(修身齊家) 의무를 판단기준으로 삼았어야했다. 한보 스캔들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권력형’ 부패임을 인정한 후에야검찰권은 추상같이 행사되었다.5·18 불기소 처분 역시 같았다.노태우 정권당시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은 당시 청와대의 한 비서관에 대한 처벌로써마무리하였지만,95년 ‘노태우 독직’ 처리과정에서 대통령 자신이 관여되었음이 확인되었다.검찰권은 무참하게 손상되었다. 시민들은 형사소송법상의 검사동일체 원칙이 검찰권의 정치화를 결과적으로 가능케 하는 현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기소법정주의의대상이 되는 범죄를 재조정하고 한시적으로나마 특별검사제를 채택하라는 요구가 그치지 않았다.그렇지만 검찰권과 정치권력을 같이 태워서,즉 구분(俱焚)하여 검찰권을 사리와 같은 결정체로 만들어 정치권력과 검찰권을 구분(區分)할 수 있게 하려는 이런 제안들은 실현되지 못했다. 검찰은 정의의 규범적 칼로 사법적 해법의 길을 열어 법치국가를 세워야 할 책무의 수행자이다.국회에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고 청문회를 열어 사안에접근한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정치적 해법에 그친다.특별검사도 직무범위에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정치권에서’ 칼을 잡고 있는 ‘지금의’ 특검제 법제화는 동시에 검찰권에 대한 진검(眞劍)도 되고 있다. 검찰은 기로에 서 있다.국민의 진심은 검찰권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 것이다.특별검사는 그 한 방편으로 생각할 뿐이다.그렇다면 정치권은 특검제 도입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검찰의 이번 수사와 기소과정을 중단하라는 등의 개입은 금해야 한다.자칫 검찰조직을 또다른 형태로 정치권에 복속(服屬)시키려는 정치적 시도라는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 록히드 의혹을 파헤치면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수상을 구속·기소한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와 같은 명망을 얻어 특별검사법 제정의 현실을잠재울 수 있는가,실체적 진실의 발견 문턱에서 수사검사의 기를 꺾어 특별검사법을 도입케 하느냐는 오로지 ‘지금의 사건’을 처리하는 검찰의 수장인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몫이다. 미국의 특별검사제도는 특별검사를 해임시키라는 닉슨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고 옷을 벗은 법무장관,법무차관의 ‘토요일의 대학살’이 있었기에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姜京根 숭실대 교수·헌법학]
  • 조직개편 60일 점검(1회)-달라지는 인사패턴

    24일로 제2차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한지 60일이 됐다.적지않은 공직자들이명예퇴직이나 부처 감축 등으로 공직을 떠났고,아직도 구조조정이 진행중이다. 중앙인사위원회를 비롯,국정홍보처와 기획예산처는 신설 부처로서 자리매김이 한창이다.특히 인사위의 활동은 공직 사회 인사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2차 개편이후 공직사회의 바뀌고 있는 모습을 차례로 살펴본다. 지난 5월24일 중앙인사위원회가 발족할 당시만해도 공직사회에서의 기대는그리 크지않았다.65명의 초미니 부서인데다 법령과 집행권한은 대부분 행정자치부 등 내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중앙인사위 활동은 그러한 우려를 뛰어넘어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23일 현재 160개 직위의 인사안을 심사,17건에 제동을 걸었다. 심사대상 전체 직위를 놓고 볼때 부결률이 높은 것은 아니나 종전의 인사패턴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특히 공직사회의 관행으로 여겨지던 인사안에 잇단 제동을 걺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보건복지부가 청와대로 전출할 인사를 승진시키려고 심사의뢰를 했다가 최근 부결당한 일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러나 인사위는 보직이 없는 사람은 승진할 수 없다는 법규를 내세워 불가 결정을 내렸다. 또심사대상 공무원의 업무추진실적과 성과에 관한 자료를 요구,꼼꼼히 챙기는것도 공직사회에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어쩌면 당연한 일임에도 근무실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지금까지 전무한 실정이었다.중앙인사위가 이 자료를 챙기면서 당사자는 물론 각 부처의 인사 당당부서에서 실적자료를 축적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고 인사위의 한 관계자는 귀띔한다. 인사심사시 후보자의 보직경로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도 공직사회 인사패턴의 변화 중 하나다.초임·중견·승진 예정보직을 살핌으로써 연공서열로 승진하는 관행의 타파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부담없고 편안한 직위에서 보내다 때가 되면 승진하는 ‘일따로 승진따로’라는 말은 이제 공직사회에서 사라질 판이다. 중앙인사위가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재 데이터베이스(DB)’구축은 인재 등용에 있어서 비교적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중앙인사위의 활동이 모두 장밋빛만은 아니다.벌써부터 각 부처로부터 ‘심하지 않느냐’는 견제와 비판의 소리가 들리고 있다.공정한 인사와합리적인 급여제도 개선 등을 확립해야 하는,쉽지 않은 과제도 안고 있다. 홍성추기자 sch8@ * 행정부내 반응…人事제동 걸린 재경부 긍정半-부정半 재정경제부 직원들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장관의 인사권이 제동걸린 사상처음있는 일을 당하고서다.고위관계자들은 “재경부가 밀린 것은 아니다. 재경부가 인사 원안을 고집했으면 부처간 갈등으로 비쳐졌을 것”이라고 양보론을 펴면서 “앞으로는 잘될 것”이라고 짐짓 의연하게 말한다.버티다가 괜스레 ‘미운 털’이 박히면 다음 인사때도 매끈하게 처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도 없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직원들의 분위기는 다르다.그들은 “장관이 직원 인사도 마음대로하지 못하면어쩌라는 말이냐”며 “직원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다”고 볼멘소리를 털어 놓는다.공무원들은 재경부뿐 아니라 다른 부처의 장관들도 부처 장악에 적지않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한다. 부처내에서는 ‘앞으로 인사를 신중히 하라는 것’이라는 소수의 긍정적인목소리도 없지 않으나,불만의 목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재경부직원들은 경제부처의 수장(首長)의 인사권이 제동걸린 원인을 부처의 힘이빠진데서 찾고 있다. 정부 부처에 막강한 힘을 휘둘러온 예산권을 기획예산처에 빼앗겼고,금융관련 권한마저 금융감독위에 이양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빨빠진 호랑이’가 됐다는 얘기다.청와대 산업경제비서관 자리를 기획예산처에 넘겨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인다. 장관의 인사권이 거부당하는 재경부의 경우를 바라보는 다른 부처 공무원들의 관전법은 이중적이다.중앙부처 A과장은 “재경부는 그동안 숱한 낙하산인사로 적체를 해소해 왔다”며 고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하지만 경제부처의 B공무원은 “자체 승진도 좋으나 본부 직원들은고생을 많이 하기 때문에 보상성이 강한 낙하산 인사를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박정현기자 jhpark@ *金인사위원장 인터뷰 “정부부처들끼리도 균형과 견제가 필요합니다.중앙인사위원회가 바로 그러한 견제장치의 하나입니다” 김광웅(金光雄)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은 23일 “정부 각 부처에서 인사 심사를 요청할 때 좀 더 신중을 기하게 된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앙인사위의 위상은 인정된 셈”이라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특히 “지금까지 관행으로 굳어진 연공서열식 인사나 지연 혈연학연 등 연(緣)에 의한 인사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면서 “보다 공정한 인사원칙을 세우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인사위 출범 60일을 맞아 서울 통의동에 있는 위원장실에서 만나 그간의 활동과 소감을 들어봤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관료가 된 소감은. 행정조직이 생각보다 딱딱하고 벽이 두꺼운 조직이라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학교에선 비교적 자유로운데 여기서는 틀에 얽매일 때가 많다.자유를 박탈당했다고나 할까. ■아직도 일반국민들은 중앙인사위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르고 있다. 인사제도의 개혁을 위해 지난 5월 제2차 정부조직 개편때 대통령직속 기관으로 설치됐다.인사행정과 정책의 기본방향을 마련하고 1∼3급 공무원의 채용·승진 심사를 담당하는 곳이다.인사 제청시 부처의 안대로 통과시키는 ‘원안 통과’와 법적 요건 미비시 내리는 ‘부결’,절차상 흠이 있을 때 ‘보류’,부처의 안을 바꾸는 ‘수정의결’등 4가지 결정을 내린다. ■다른 부처에서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장관이 국실장 인사도 마음대로못하느냐는 얘기도 들린다.가장 중시하는 인사 원칙은 무엇인가. 연수만 차면 올라가는 연공서열식 인사,능력보다 안면이 중시되는 인사는배제하고 있다.인재풀제도를 마련한 것도 그 일환이다.그 자리에 필요한 인사를 배정함으로써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자는게 궁극적인 목표다.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지난 16일 대통령 업무보고 때도 나왔던 얘기다.공무원들이 먼저 세계화가돼야 한다.앞으로 고위 공직자가 되려면 외국어 해득능력은 있어야 한다.그러려면 공무원들에게 해외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인사 심사기준에 외국어 능력을 첨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그 다음이 의사전달능력이다.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행정의 실수나 업무 착오를 줄일 수 있다. ■지금까지 청탁이나 외압같은 것은 없었나. 지난번 직무분석팀을 공채할 때도 한번도 없었다.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아마도 내가 깐깐하다고 소문나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홍성추기자 * 수협 회원조합 경영진단 수협중앙회는 부실이 누적된 회원조합에 대한 구조조정 및 합병해산을 추진하기 위한 조합별 경영진단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경영진단은 지난해 말 조합결산 결과 자본금 결손규모가 큰 조합 순으로 35개 회원조합을 선정,두차례로 나눠 실시된다. 지난 20일 시작된 1차 진단은 10월 말까지 12개 조합을 대상으로 실시되며,2차 진단은 10월부터 연말까지 나머지 23개 조합에 대해 진행된다. 수협은 이번 경영 진단 결과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조합에 대한 부실정비 기준을 조속히 마련,합병 혹은 폐지하는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자본잠식으로 경영진단 대상으로 선정된 조합은 전남지회 관내가 13개로 가장 많고,강원 5개,충남과 전북이 각각 4개,경인 3개,경북·경남·부산 각각1개,업종별 조합 3개 등이다. 수협 관계자는 “수협중앙회를 포함,전체 조직에 대한 민간 회계법인의 경영진단 최종결과가 지난 9일 나옴에 따라 회원조합에 대한 경영진단에 착수한 것”이라며 “이번 진단결과를 토대로 회원조합의 경쟁력을 배가할 수 있는 과감한 구조조정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수협의 적자조합 수는 전체 87개 조합 중 27개며,적자규모는 62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적자조합 가운데 22개 조합은 자본이잠식된 상태다. 함혜리기자 lotus@
  • 자치단체 건의사항 ‘홍수’ 중앙부처 해결은 ‘가랑비’

    지방자치제 실시이후 기초단체들이 제도개선 등을 광역단체나 중앙부처에봇물처럼 건의하고 있으나 해결률이 극히 낮아 행정불신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대부분 지역실정에 맞는 개발방안을 찾기 위한 사안들이지만 관련법규에 배치되거나 무리한 예산요구 등으로 건의내용이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운면이 많기 때문이다.게다가 관련부처 및 상하단체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도 한 이유이다. 경남도 자치단체들은 올들어 정부에 무려 50여건의 제도개선안을 건의했다. 이 가운데 ▲1도 1금고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임대용 부지매입비 국고지원 등 2건만 해결됐고 나머지는 불가 또는 검토중인 상태다. 특히 외국인 투자촉진법이 정한 세제혜택 범위를 확대해 달라는 건의는 재정경제부가 불가입장을 고수해 외자유치에 차질을 빚고 있다.지난 3월 도내시장·군수협의회가 건의한 광역상수도 정수장건설비 보조를 위한 법 개정건도 국회 상임위에서 부결돼 무산됐다. 충북의 경우 올들어 도내 시장·군수협의회를 통해 농산물검사소 충북지소설치 등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사항 15건을 도 및 중앙부처에 건의했다.이가운데 회신을 받은 것은 1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도의 검토 결과 현실과다르거나 이미 관계법령 정비 및 시기를 놓친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중앙부처에 8건의 건의안을 올린 부산 구청장·군수협의회도 일반상업지역내 단독주택 건축제한 완화방안과 합병정화조 설치규정개선 등 2건만이해결됐거나 해결을 앞두고 있다. 강원도는 지난달 도내 18개 시·군으로부터 중앙부처에 대한 건의사항을 수렴했다.그러나 담배소매인 지정건의 경우 담배인삼공사의 적법판정을 받아시·군에서 신청을 받은 뒤 지정해 왔으나 담배인삼공사에서 일관 처리하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아 승인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이와함께 전국 6개 광역시 중심구청장협의회는 재정확충을 위해 광역단체가 갖고 있는 식품진흥기금의 관리권을 기초단체에 넘겨주도록 건의했으나 아직까지 이해관계로 실마리를 못찾고 있다. 박응격(朴應格)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은 “지자제 도입단계에서부터 제도정비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관련법 개정이나 예산수반 등의 문제로해결률은 낮은 형편”이라면서 “기초단체들이 ‘너도하니 나도 한다’는 식으로 지나치게 지역현안에만 매달려 제도개선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전국 종합
  • 검찰 오늘 최대규모 물갈이 人事

    법무부는 ‘고급 옷 로비의혹’ 사건이 일단 마무리됨에 따라 분위기 쇄신을 위해 4일 고검장급과 검사장급 승진 및 전보인사를 단행한다. 이번 인사에서는 박순용(朴舜用·사시 8회) 검찰총장 임명에 따른 선배 및동기들의 용퇴로 검사장급 이상 빈자리가 무려 12자리나 돼 전례없는 규모의 연쇄 승진 및 전보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고검장급으로 7명,검사장급으로12명이 승진한다. 법무부는 이를 위해 박총장의 임명과 함께 용퇴한 사시 5∼7회의 고검장급6명에 이어 사시 8회 동기 고·지검장급 7명 가운데 2명만 남기고 모두 용퇴시킬 방침이다.고검장급으로 분류되는 최경원(崔慶元)법무부차관과 김수장(金壽長)서울지검장이 총장의 지휘라인에서 벗어나 있는 법무연수원장과 법무부차관에 기용될 것으로 알려졌다.나머지 5명은 이날 용퇴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검장에는 사시 9회에서는 신승남(愼承男) 법무부 검찰국장,이태창(李泰昌) 광주지검장,강신욱(姜信旭) 인천지검장 등 3명이 모두,10회에서는 박주환(朴珠煥) 대전지검장 등 4명 가운데3명이 승진하리라는 견해가 우세하다.고검장급 가운데 서열 1위인 대검차장에는 신국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부산·수원·대전 등 주요 지검장에는 사시 11회인 이명재(李明載)대검 중수부장,진형구(秦炯九) 대검 공안부장,김경한(金慶漢) 법무부 교정국장,김영철(金永喆) 법무부 법무실장,제갈융우(諸葛隆佑) 대검 공판송무부장이 포진할 전망이다.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교정국장,대검 중수부장·공안부장 등에는 사시 12회인 신광옥(辛光玉) 법무부 보호국장,임휘윤(任彙潤) 대검 강력부장,한부환(韓富煥) 대검 총무부장,이종찬(李鍾贊) 전주지검장,조준웅(趙俊雄) 춘천지검장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검사장 승진에는 사시 14회의 재경지청장,15회인 서울지검 1·2·3차장을포함,사시 13∼15회가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특히 검찰인사의 적체 요인이 되고 있는 사시 15회(16명) 가운데 일부를 용퇴시키기 위해 사시 16회에서 서울지검 차장이나 재경지청장이 발탁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검 차장 및 부장·부부장검사의 전보 인사는 다음주 초에 이뤄진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는 그동안 관행화된 지역안배나 ‘특정기수 봐주기’ 등은 절대 없을 것”이라면서 “능력과 고과에 따른 인사가 될것”이라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 [외언내언] 봉정사의 앞뒤

    ‘조용한 산사(山寺)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는 글귀 아래 영국여왕이 서명했던 곳에 최근 다녀왔다.엘리자베스 여왕이 “너무나 아름답고인상적이다”고 감탄했던 대로 봉정사는 신록 속에 숨겨진 작은 보석처럼 빛났다.결코 큰 절은 아니나 대웅전과 극락전 공간의 병렬적 배치와 대비에서연출되는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兪弘濬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3)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여왕의 안내를 맡았던 스님의 이야기도 미소를 자아냈다.영국 교회의 수장(首長)으로서 부처님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말에 여왕을 극락전 안으로는 모시지 않았다는 것이다.그 스님의 자존심은 여왕의 안동방문 추진 과정에서 영국측 인사가 “당신들은 양반이지만 이쪽은 왕이다”란 말을 해야했을 만큼 안동 양반들이 전통적인 격식을 고집했다는 이야기도 상기시켜 주었다.대충대충 절을 둘러보는 어른들과 달리 가져온 자료를 들추며 꼼꼼히감상하는 청소년들의 모습도 흐뭇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런 기분은 절 뒤쪽을 돌아본 순간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대웅전(보물 제55호) 뒤편 지붕이 곧 무너질 듯 내려앉아 나무 받침대가 어설프게설치돼 있고 극락전(국보 제15호)에서 떼어낸 벽화는 비바람이 들이치는 처마 밑에 세워져 있었다.극락전이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앞선 국내 최고의 목조건물로 고려 공민왕때 중수했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 지난 72년인데 당시완전 해체 보수작업 과정에서 벽화를 떼내고 지금까지 방치해둔 것이다.성묵(性默)총무스님은 두달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벽화와 벽 사이가 개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면서 벽화를 쥐가 파먹는 등 크게 훼손된 상태라고 안타까워 했다.봉정사 보수비로 3억여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으나 대웅전 지붕이 기울고 있어 완전 보수를 하려면 6억여원이 든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우선 올해 장마철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도 했다. 봉정사의 앞과 뒤는 우리 문화재 보호의식과 행정의 앞뒤 모습이 아닐까.건국 이후 최고의 국빈이었던 영국 여왕을 안내할 만큼 자랑스러운 문화재이지만 너무도 허술하게 보존된 그 뒷모습을 엘리자베스 여왕이 보았더라면 한국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여왕은 다행히 앞모습만 보고 떠났지만 여왕 방문후부쩍 늘어난 관광객들에게 봉정사의 뒷모습은 많은 부끄러움을 안겨준다.문화재관리청이 문화관광부 소속 문화재관리국에서 승격돼 24일 발족했다.자랑스러운 문화재를 남겨준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도록 문화재 보호관리와 보존행정 그리고 예산지원도 한차원 높아져야 할 것이다.
  • 호화인맥 사시8회…동기들 거취 관심

    인물 많기로 소문난 사시 8회 출신 박순용(朴舜用)대구고검장이 검찰총장에임명됨에 따라 동기들의 거취가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은 후배나 동기가 총장으로 승진하면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선배나 동기는 용퇴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67년에 치러진 사시 8회 시험 합격자 83명 가운데 25명이 검사의 길을 택했다.이들 가운데 현직은 박 신임 총장을 포함,총장후보군으로 분류됐던 최경원(崔慶元)법무부차관,김수장(金壽長)서울지검장,이재신(李載侁)수원지검장,이광수(李光洙)청주지검장,전용태(田溶泰)대구지검장,유재성(柳在成)부산지검장,안강민(安剛民) 대검 형사부장 등 8명이다. 따라서 박 신임 총장의 동기들이 “무조건 옷을 벗고 나가는 전통도 이제깨질 때가 됐다”는 검찰내 여론과 고시 8회 선배들의 전례를 들어 버티면강제로 물러나게 할 방법도 없어 귀추가 주목된다. 임병선기자 bsnim@
  • [대한포럼] 북녘동포돕기 적극 동참을

    5·24개각에서 임동원(林東源)장관의 통일부 수장 부임은 대북정책이 모색단계에서 실행단계로 한차원 높게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포용정책의 추진에 더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특히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의 방북을 계기로 급류를 타게 될 남북간 해빙무드를 남북 당국자회담으로 이어가겠다는 포석인 만큼 임 장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큰 것이 사실이다.이번 개각을 계기로 통일부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과제는 무엇보다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동참을 이끌어내는 일이라고 판단된다. 보수적 현실주의자인 전임 강인덕(康仁德)장관이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충분히 했지만 포용정책에 대한 국민적합의와 동참을 유도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 집권 1년3개월 동안 대북 지원사업에 대한 국민적 참여가 부진한 것이 이같은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은 어려움에처한 북한동포를 도와주면서 남북간 신뢰를 회복하고 자연스럽게 북한의 사회주의 민주화를 유도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이다.지난 3월 정부가 10만t의대북 비료지원을 통해 북한동포를 돕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적십자사가 3월15일 대북 비료지원을 위한 모금활동을 시작한지 2개월이 지났지만 모금실적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당초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에서 제공하는 5만t(180억원 상당)과 민간인 모금을 통해 확보키로한 5만t 등 모두 10만t의 비료를 북한에 지원하려던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빚어질 전망이다.24일 현재 접수된 비료성금은 TV방송 3사가 전화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모은 8억2천여만원을 포함해 총 35억300만원에 불과하다.민간의 비료지원은 3t 수준에서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은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적 반응이 아직 미미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물론 이같은 결과가 초래된 것은북한이 지원을 받고도 화답(和答)이 없는 데 따른 불신이 작용하고 있음을부인할 수 없다.그러나 대북 비료지원에 대한 우리 국민의 소극적 정서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굶주리는 북녘 동포를 위한 지원은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대북지원이 인도주의 및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한 조치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지난달 베이징(北京)에서 한국을 비롯한 55개국의 비정부기구(NGO)대표들이 참석한 국제회의에서 대북 식량지원의긴급성이 제기됐다.현재 북한 어린이의 62%가 영양실조 상태에 있으며 기근으로 인해 초·중·고교의 25%가 폐쇄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데이비드 모던 세계식량기구(WFP)북한담당관은 95년 이후 적어도 150만명의 주민들이 기근으로 사망했으며 북한의 식량배급은 4월 초에 이미 끝났고 보리,감자 등이 출하되는 6월까지가 가장 힘든 시기라고 밝혔다.비료 10만t이 북한에 지원됐을 때 북한 주민 130만명이 1년간 먹을 식량을 생산할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북녘 동포를 도와줘야 할 이유를 잘 말해준다.북녘동포에 대한 식량·비료 등의 지원은 정치와 이념을 떠나 따뜻한 동포애로도와줘야 하는 인도적 문제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도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활발히 돕고 있는실정이다.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같은 피를 나눈 동포 입장에서 북녘 동포지원을 외면하는 것은 비인도적 처사로 지적된다.평화통일을 말하면서 아사지경의 북녘 동포 지원을 외면하는 것은 민족의 의무를 저버린 이율배반이라하면 지나친 말일까.어쨌든 통일부는 임 장관의 부임을 계기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제고시킴은 물론 대북 지원사업의 국민적동참을 적극 유도하기 바란다.그리고 국민들도 대한적십자사의 대북 비료지원사업에 적극 참여해서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북녘 동포들을 성심껏 도와주는 동포애를 발휘,남북간 화해·협력의 시대를 앞당겨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張淸洙 논설위원
  • 국민의 정부 2기내각 출범-개각단행 배경·의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번 ‘5·24 개각’에서 그동안 지근(至近)거리에서 자신을 보좌해온 3명의 청와대 수석을 전진배치함으로써 국민의 정부 제2기 내각의 성격을 분명히했다.강봉균(康奉均)재경부장관과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그리고 박지원(朴智元)문화부장관이 그들로,김대통령의 국정운영과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자리를 맡았다.다시말해 김대통령이 심혈을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재벌개혁과 대북 포용정책,21세기 지식기반국가 구축을 책임지는 부처의 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 제2기 내각은 느슨해진 개혁분위기를 다잡고 국정개혁을 마무리짓는 책무를 안고 있다.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이 “2기 내각은 21세기 세계화에 대비하고,국정개혁의 내실을 다지는 행정 내각”이라고 배경설명을 한 것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정치인인 이종찬(李鍾贊)국가정보원장을 전격 교체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내각에 정치색을 배제하고 정치개혁에 힘을 싣기 위해 당을 보강하려는 고육책(苦肉策)으로해석된다.특히 강 재경부장관을 ‘수장’으로 기존 경제팀 진용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5대 그룹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새로운 제2차 재벌개혁정책이 나올 공산도 크다.정덕구(鄭德龜)산자부장관의 기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임 통일부장관의 임명 또한 대북 포용정책의 변함없는 기조를 읽게 하는단초다.즉 김대통령의 과감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드라이브를 알 수있다. 여기에 김대통령은 일부 차관급 인사의 내부 발탁을 단행,공직사회의 분위기 쇄신과 사기진작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실제 재경부차관,국세청장,그리고 검찰총장이 입각함으로써 해당부서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후속 승진인사가 예고된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예상보다 폭이 크지 않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어쨌든 ‘5·24개각’에는 김대통령의 강한 개혁의지가 실려있다.공동정권의 지분에 대해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양보를 얻어낸 것도 이를 반증한다.다만 일부 면면을 볼 때,일정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어 이를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내각의 앞날에 있어성패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양승현기자 ya
  • 검찰인사 어떻게 될까-새달초 수뇌부 대폭 물갈이

    김태정(金泰政) 검찰총장이 24일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됨에 따라 검찰에 인사태풍이 조만간 불어닥칠 전망이다.25일 후임 총장이 임명되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다음달 초에 고등검사장과 검사장 등 검찰 수뇌부의 대폭적인 물갈이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오는8월로 예정됐던 검찰 인사가 두달 가량 빨리 단행되는 것이다. 후임 검찰총장에 사법시험 몇회가 임명되느냐가 인사의 폭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변수이다.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후임 총장으로는 사시 8회가 유력시될 만큼 파격적인 인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사시 4회였던 김 신임장관에서 8회까지 내려갈 경우 검찰인사는 지난 93년 재산공개 파동 이후 최대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총장의 기수가 낮아지면 검찰 조직의 연소화(年少化)에 따른 사법부와 경찰과의 관계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될 수도 있다. 총장 후보군에는 사시 5회인 이원성(李源性)대검차장에서부터 사시 8회의박순용(朴舜用) 대구고검장에 이르기까지 고검장 8명이 포진해 있다.이가운데 이 대검차장,김진세(金鎭世·〃 7회) 대전고검장, 박 대구고검장,최경원(崔慶元·사시 8회) 법무부차관 등이 총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박고검장이 가장 유력한 총장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검찰의 인사가 개혁적인 차원에서 단행된다면 사시 8회 출신의 총장 기용가능성은 보다 커진다.자연스럽게 물갈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례에 따라 선배 기수인 5∼7회 출신 대부분은 용퇴할 수밖에 없다.동기중에서도 상당수는 옷을 벗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검찰 내부에서는 “경우에 따라 많게는 10명 이상의 검사장급 간부들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조심스레 진단하고 있다. 반면 퇴진한 검사장의 자리를 메우기 위한 승진인사의 폭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검란(檢亂)’의 후속 조치로 단행된 검사장급 이상 인사에서는박순용 서울지검장이 고검장으로,김대웅(金大雄·사시 13회)·정홍원(鄭烘原·〃 14회) 지청장이 검사장으로 승진했었다. 이에 따라 고검장으로는 8회 출신 일부 검사장을 비롯,신승남(愼承男)법무부 검찰국장과 김수장(金壽長)서울지검장 등 사시 9회 출신의 승진도 유력시된다.검사장으로는 김진환(金振煥)서울지검 남부지청장 등 사시 14회가 주축을 이루는 가운데 사시 15회의 발탁인사도 예상된다. 박홍기기자 hkpark@
  • 리뷰-연극 ‘나운규’ 주인공 강신일

    지난 15일 문예회관 소극장.연극 ‘나운규’의 1회 공연(4시30분)이 끝나자 주인공 강신일(39)은 이화여대동대문병원으로 향했다.다리가 저려와 진통제 주사를 맞아야하기 때문. “‘쿵’ 떨어지는 순간 아찔 하더군요.공연 중이라 빨리 일어나려고 했는데 하체가 말을 듣지 않더라구요”. 12일 공연중 뜻밖의 사고를 당했다.나운규 신이 많고 장면전환이 잦아 늘뛰어다니던 중 무대로 나오다 발을 헛디뎌 통로와 벽사이의 2m 바닥 아래로떨어진 것.뒤따라 오던 한명구(윤봉춘역)가 내려가 보니 머리엔 유혈이 낭자했다.관객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으로 데려갔다.머리를 꿰매고 X레이 촬영을 해보니 꼬리뼈와 머리에 타박상.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무리를 하지말고 쉬라”는 담당 의사의 처방은 안중에 없었다.공연 일정이 23일까지 잡혀 있었다.2회공연(오후 7시30분)을 고집했으나 연출을 맡은 한태숙을 비롯,제작진이 말렸다.모두 가슴은 ‘숯’이었지만 대역이 없는 터라 길게 봐야했다. 강신일은 다음 날부터 무대에 서서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공연마다 진통제로 버티면서 ‘영화사의 전설’ 나운규를 불러내고 있다. “연기할수록 매력적인 인물입니다.비록 36년 동안의 짧은 삶이었지만 춘사 선생이 남긴 업적은 컸고 그의 예술혼은 불가사의 할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아쉬운 것은 남은 자료가 적어 선생의 ‘광기어린 천재성’을 상상하기가 벅찼다는 점입니다”. 애써 상처 얘기를 접고 화제를 배역이야기로 돌린다.우직한 모습은 지난 86년 ‘칠수와 만수’에서 열연했던 ‘원조 만수’를 떠오르게 한다. 주위에서 “미련하다”고 걱정할 정도로 한 우물만 파오다 최근 영화에도 얼굴을 내밀었다.박광수감독의 ‘이재수의 난’의 마찬삼역인데 유생출신으로천민 이재수장군을 보좌하는 인물이다. ‘나운규’를 지탱하는 것은 진통제의 힘이 아니다.강신일의 연극 사랑과극중 인물에의 몰입이다.“평소 말도 어눌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배역에 따라 변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02)737-2723이종수기자
  • [역경을 딛고…]고대에 10억 기증 최병순할머니 육필수기(6)

    재심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다.사형수든 무기수든 가족이 찾아와 변호사에게 착수금으로 2,000원을 내고 재심 신청만 하면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전쟁통에 이루어진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 수 있다. 나도 재심을 신청했지만 돈도 변호사도 없다 보니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공주형무소로 이감돼 1년을 살다가 형기 만기를 4년정도 남기고 서울구치소로 옮겨왔다. 나는 감옥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눈썰미가 좋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척척 일을 해냈다.한번은 형무소에 스웨터를 짜는 기계가 들어왔는데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혀 사흘만에 기계를 다루자 간수장은 내게 총책임을 맡겼다.광목에 물감을 들여 옷을 만들어 간수들과 주변에 나눠주기도했다.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었다.나는 손에 못이 박히도록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만기 2년을 남기고 비보가 날아들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왜 2년을 못 기다리시느냐”며 땅을 치고 울었다.“그 고초를 다 겪고 살아남았는데,아버지를 못뵈다니….” 얼마 안있어 작은 아버지와 삼촌이 면회를 왔다.10년이란 세월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61년 7월17일.잊을 수 없는 날이다.10년 형기를 채우고 서울 서대문 101번지 서울구치소의 붉은 담을 등지고 나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이젠 살아보겠다”는 희망이 있었다.내 나이 46세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인사동에서 내로라 하고 살던 옛적이 아니었다.집은 어디론가 사라졌다.청량리에 있던 삼촌댁에 가보니 다섯식구가 방 한칸에서 지내고 있었다.잠시 그곳에서 기거하기로 했다.다시 또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양파장사를 했다.한 포대를 100원에 받아와 종로로 청량리로 장바닥을 돌아다녔다.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돈을 모으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식모자리라도 알아보기 위해 예전에 알던 사람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천대를 받았다.‘빨갱이’로 10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사람을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세상이 박해졌다고 한탄했다.자유를 찾았지만정말 비참했다.사기도 당했다.옛날부터 함께 바느질을 하던 친구를 찾아갔더니 같이 살자고했다.삯바느질도 하고,옷장사를 하던 작은 아버지에게서 옷감을 가져다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내 몫을 모두 가로챘다. 어렵사리 남대문의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는데 함께 일하는 할머니가 사장집 식모자리를 알선해 주었다.약수동에 있는 사장집에 갔더니 “곱고 얌전하게 생겼는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색을 했다.“일을 잘 할테니 써달라”고 애원했다.사장의 노모가 다른 식모를 구하려 했지만 막무가내로 부엌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다.쌀을 고르려 키질을 했더니 사장 부인이 보고는 칭찬했다.합격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일을 시작했다.옷을 빨고,장작불로 목욕물을 데우고,설거지에 청소까지.2∼3시간쯤 눈을 붙이고 이른 새벽부터 다시 장작불로 물을 끓이고,초·중학교에 다니는 네 아이와 가정교사의 도시락 다섯개를 쌌다.아이들과는 별도로 주인 내외와 시어머니의 밥상을 따로 차려냈다. 일을 시작한 8월18일은 내 생일이었다.
  • 東江의 감춰진 秘境을 본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백룡동굴,강에서 뛰노는 물고기 비늘이 비단 같다고해서 이름붙여진 어라연(漁羅淵) 등 동강(東江)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는 ‘동강자연학교’(교장 김수진 서울대 교수)가 문을 열었다. 지난 1일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회마을 백룡동굴 앞 절매에서 문을 연 ‘동강자연학교’에서는 정선군 고성리 납운들∼영월군 거운리 섭세강의 40㎞를 래프팅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동강의 감춰진 비경(秘境)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동강자연학교’가 열리는 날은 매주 토·일요일.토요일 낮 12시부터 일요일 오후 5시까지 1박2일의 일정으로 래프팅을 하면서 동강을 탐사하고 동강이 갖고 있는 자연생태적 가치에 대한 강의도 듣는다. 첫날에는 납운들∼고성취수장∼파랑새 절벽∼수달동굴∼소사나루터∼백룡동굴을 답사한다. 저녁에는 동굴전문가인 석동일씨의 ‘동강은 흘러야 한다’와 ‘한국의 자연동굴’,한상훈 박사의 ‘동강유역의 자연생태적 가치’란 주제의 강의에 이어 캠프파이어가 열린다. 둘째날에는 칠목령 답사에이어 배를 타고 백룡동굴∼황새여울∼진탄나루터∼문산나루터∼어라연을 구경한다. 어라연 도착 뒤에는 근처 응봉을 등반하고 진용선 정선아라리연구소장으로부터 ‘아리랑이 흐르는 강,동강’이란 주제의 동강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 이어 어라연∼된꼬까리∼동강댐 건설 예정지∼섭세강을 래프팅으로 둘러본다. ‘동강자연학교’에 참가하려면 일단 평찬군 미탄면에 있는 동강레포츠까지 개별적으로 가야 한다. 참가비는 래프팅,숙식비,보험료 일체를 포함해 1인당 9만원.중·고생은 30%,40명 이상 단체는 20% 할인해 준다.래프팅을 하면 옷이 물에 젖기 때문에 반드시 여벌의 옷을 준비해야 한다. 문의는 동강레포츠 (0374)333-6600,6689. 문호영기자
  • [정직한 역사 되찾기 34] 친일의 군상

    친일파 가운데는 부자,형제,부부,사돈간 등 일가족이 집단으로 친일대열에섰던 경우가 더러 있다. 부자간에 친일을 했던 인물로는 ‘조선어 전폐론’을 폈던 현영섭과 그의 부친 현헌(중추원 참의),일진회 회장으로 ‘병합청원서’를 제출했던 이용구와 그의 아들 이석규,그리고 부자가 모두 일제하 고급관리를 지낸 손지현-손영목 부자가 대표적인 예다. 형제로는 고급관리 출신의 송문화-송문헌 형제,‘밀정형제’로 유명한 선우순-선우갑 형제 등이 있으며 부부간에는 만주에서 일본군 밀정을 지낸 이종형-이취성 부부와 초기 애국부인회 간부로 활동하다가 변절,밀정을 지낸 오현주-강낙원 부부가 유명하다. 또 사돈간에 친일을 한 집안으로는 매국노 송병준과 을미사변의 주역으로 나중에 중추원 참의를 지낸 구연수가 서로 사돈간이며 구연수의 아들 구용서는 일제하의 은행원 출신으로 해방후 초대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을사5적’의 하나인 이하영은 한일병합후 중추원 고문을 지냈는데 그의 손자 이종찬은 일본육사 49기생으로 나중에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 부자간에 친일을 한 경우로는 민병석-민복기(전 대법원장) 부자도 빼놓을수 없다.민병석(閔丙奭·1858∼1940)은 여흥 민씨 출신으로 명성황후의 척족이다.좌찬성 민영휘의 손자이며 민경식의 아들로 충남 회덕에서 태어났다.1879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예문관 검열로 벼슬길에 오른 그는 1882년 임오군란때 명성황후를 호위한 공로로 척족 가운데서는 일찍부터 권력의 핵심에 든 사람이다. 1884년 성균관 대사성에 이어 승정원 도승지,예조참판,규장각 직제학을 거쳐 1889년 11월 평안감사로 임명돼 1894년까지 재직하였는데 이때 당오전 발행을 남발,민중들로부터 원성을 샀다.평양시절 그는 대원군 계열로 몰려 당시 평남 순천에 유배중이던 우범선(禹範善)을 알게 돼 그를 장위영 영관으로 천거하였다.우범선은 나중에 친일훈련대 대대장으로 ‘명성황후시해사건’,즉 ‘을미사변’의 주역이 되었는데 그를 추천한 사람이 민씨 집안의 척족이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 1895년 일본 낭인집단의 손에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민씨 척족의 정치세력은 급격히 쇠퇴하였다.그러나 그만은 여전히 지위를 보전하였다.이듬해2월 그는 정2품 궁내부 특진관(칙3)에 임명됐으며,1898년 이후 농공상부·궁내부·학부·내부대신 등 요직을 두루거쳤다.처세술에 비범한 재간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친일·친러정권을 넘나들며 승승장구하였다.이런 그를 두고 고종은 “민병석은 짐이 부르려고 할 때는 이미 와 있고,내치려고 할 때는 이미 떠나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민병석의 대표적인 친일은 대한제국 황실의 척족으로서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에 앞장선 사실이다.‘을사조약’ 강제 체결에 앞서 그는 조정의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토(伊藤博文)를 초빙해왔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 공로로 그는 육군부장·표훈원총재·시종원경 내대신 등을 역임하였으며 1907년 10월 대훈이화대수장(大勳李花大綬章)을 수여받았다.1909년 이토가 안중근 의사에 의해 처단되자 그는 궁내부 대신으로 정부측 조문사절로 도일,이토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하였다.1912년에는이강공(李堈公)을 수행하여 일왕 메이지(明治)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도 있다. 1910년 한일병합 당시 그는 궁내부 대신으로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장직에 있었다.당시 청와대 경호실장격인 시종원경은 낙선재 윤비(순종의 황후)의 백부 윤덕영(尹德榮)이었는데 이 둘은 이완용(李完用)과 통감 데라우치(寺內正毅)의 회유와 사주를 받고 ‘병합반대론’을 무마,조정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정부 대신담당이 이완용이었다면 이 둘은 궁중담당이었다.‘한일병합’의 1등공신인 이들은 병합후 모두 일왕으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으로 매국공채를하사받았다.이때 민병석은 훈1등 자작(子爵)과 매국공채 10만엔(현 시가 10억원 정도)을 받았다. 일제치하 1911∼19년까지 이왕직 장관을 지낸 그는 1925년 7월부터 14년 3개월동안 중추원 고문을 지내다가 1939년에 중추원 부의장으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사망 직전까지 그는 일생을 친일로 일관했다.공직 이외에 그는 틈틈이 친일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중일전쟁 직후 귀족·고급관리 부인들의금비녀 수집을 목적으로 결성된 애국금차회(愛國金釵會)의 발기인으로 참가하기도 했고,조선사편수회 고문·왕공족심의회 심의관·조선귀족세습재산 심의회원을 지내기도 했다.또 서예,특히 행서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선전(鮮展)의 심사위원도 지냈다.사망 직전 종2위 훈1등까지 올랐던 그는 1940년 8월 6일 도쿄 스가모(巢鴨)의 강락(康樂)병원에서 설암(舌癌)으로 사망하였다.그의 나이 82세 때였다.그의 자작 작위는 동년 11월15일 장남 민홍기(閔弘基)가 습작하였다. 역대 정권에서 법무차관·장관,검찰총장,대법원 판사,대법원장(5·6대 연임)을 지낸 민복기(閔復基·창씨명 岩本復基·1913∼생존)는 민홍기의 동생이다.1937년 경성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38년 3월 사법관 시보로 법조계에 몸을 담았다.이후 40년 5월 경성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해방 직전인 45년 6월 경성복심법원 판사로 승진하였다.평소 얘기할때 입가에 거품이 생겨 ‘민(閔)사이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해방전후를 통틀어 법조계에서 가장 관운이 좋은 사람으로 불린다. 그는 법조계 내외에서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의 소지자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사법부의 수장(首長)으로서는 그의 말대로 ‘제삿상의 대추·밤’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2대에 걸친 친일집안은 이제 역사속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이 집안이 명문가로 불리는 것이 마땅한지는 후세의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30)

    ◆前한성은행장 韓相龍2,3년전 평소 알고 지내는 고서점에서 일제말기에 출간된‘창남수장(暢楠壽章)’이라는 문집 한 권을 구입한 적이 있다. 문집 이름에 ‘수(壽)’자가 들어간 것은 흔히 문집 주인공의 환갑잔치를 기념하여 만든 것이 보통이다. 일제 당시 환갑잔치에 문집까지 낼 정도라면 고관대작이나 후학이 많은 거유(巨儒) 정도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 문집 역시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첫 장을 넘겨 보니 당시 미나미(南次郞)총독의 축하 휘호가 나타나더니 뒤 이어 일본인 육군대장의 글씨와 궁내부대신을 지낸 민병석(閔丙奭)의 서문이 곁들여져 있었다. 다시 축하시 모음란에는 당대의 명사들이자 유명한 친일파들이 대거 운집해있었다.황족 친일파인 윤덕영(尹德榮)·좌옹 윤치호(尹致昊)·후작 이항구(李恒九·李完用 아들)·중추원 참의 김사연(金思演)·은행가 민규식(閔奎植)등등. 이런 수준의 인물들이 문집 주인공의 환갑잔치를 위해 시를 보낼 정도였다면 그의 수준·성향도 짐작이 간다.알고 보니 문집의 주인공은 일제당시 경제계의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한상룡(韓相龍·1880∼?)이었다. 한때 ‘조선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던 한상룡은 1880년 규장각 부제학 출신 한관수(韓觀洙)의 3남으로 태어났다.17세때 관립외국어학교 입학을 계기로 신학문에 눈뜬 그는 미국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하였으나 외숙 이윤용(李允用)의 주선으로 대신 사립 성성(成城)학교에 입학(1899년)하면서군인의 길을 택하였다. 이듬해 그는 한국정부의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었으나 장티프스로 학업을중단하고 1901년 귀국하였다.귀국후 그는 사립 중교의숙(中橋義塾)의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이 해 경부철도 기공식에서 고종의 종형인 이재완(李載完)의영어통역을 담당한 것이 인연이 돼 공직(평식원 총무과장)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의 공직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그는 자신을 둘러싼 ‘좋은 여건’을 배경으로 야심을 키워가고 있었다.당시로선 근대문물에 대한 견문과 영어·일어 구사능력을 갖춘 인재였던데다 그의 뒤에는 당대 제일의 권력자인두 외숙(이윤용·이완용 형제)이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903년 12월 그는 한성은행(漢城銀行) 총무 취임을 계기로 금융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한일병합’ 직후인 1910년 9월 이 은행의 전무취체역으로 취임한 그는 일제당국에 로비를 하여 당시 조선인 합방공로자에게 지급한 은사공채(恩賜公債)를 흡수,자본금을 300만원으로 10배나 증자하면서 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성은행이 조선 귀족들의 은행이라는 소문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며 3·1의거 당시 민중들의 표적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이 무렵 그는 40여년 동안 일본 제일은행의 최고책임자로서 일본 재계의 거두로 군림해온 시부자와(澁澤榮一)를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에서는 이토(伊藤博文),경제에서는 시부자와,건설에서는 통감부시절 재정고문을 지낸 메가타(目賀田種太郞)를 ‘조선에서 영원히 기억해야할 3대 은인’이라고 하면서,특히 시부자와에 대해서는 ‘일본은 물론 동양에서 공전 절후의 위인’이라고 극찬하였다.그는 시부자와의 좌우명 ‘일생일업(一生一業)’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기까지 했다.그가 대부분의 친일파들 처럼 정계로 나아가지 않고 실업계로 진출한 것은 시부자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가 매국에 가담한 친일파들에게 준 공채를 토대로 발전을 도모한 한성은행은 1923년 그가 두취(頭取,현 은행장)로 취임한 직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관동대지진의 여파에 이어 영업부진·경영악화가 계속됐다.이듬해 총독부는 이 은행을 정리대상으로 지목하였으며 28년 마침내 조선식산은행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나의 한성은행인가,한성은행의 나인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한성은행에서 나고,자라고 그로써 거기에서 죽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한성은행을 잃게 되자 그는 병석에 눕고 말았다.식민지 예속자본의 말로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밖에도 그는 한성은행 재직시절 금융계 내에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조선내 각종 기업·회사 설립에 중개자로 참여하였는데 실권은 전혀 가지지 못한채 명목상의 감투만 여럿 쓰고 있었다.이런 그를 두고 정신문화연구원 김경일 교수는 “‘한상룡의 경력은 반도 재계사의 축도(縮圖)’라는 표현처럼그는 제국주의 권력과 식민지 예속경제 사이에서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했던 정상배”였다고 평가했다.금융계에 평생을 바치고자 했던 그의 포부는 한성은행의 경영권 양도와 뒤이어 신탁회사 운영에서 배제되면서 날개를 접고 말았다. 한편 그의 친일이 겉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한성은행에서 물러나 사회활동을 본격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우선 그는 조선에 업적(?)을 남긴 주요 일본인들의 동상·기념비 건립을 시작으로 친일대열에 본격 합류하였다. 첫 사업은 통감부시절 재정고문을 지낸 메가타의 동상을 제작,1929년 10월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에서 제막식을 가졌으며,이 해 12월에는 이토(伊藤博文)기념회의 조선측 발기인 총대를 맡기도 했다.33년 2월에는 평소 자신이 숭배해온 시부자와의 기념비 건립을 추진,12월 장충단에서 제막식을 가졌는데 이는 전적으로 한상룡의 발의와 주동에 의한 것이었다. 또 35년 5월에는 ‘조선개화의 은인이자 일한합병의 공로자’인 데라우치(寺內正毅)의 동상건설회 발기인 및 실행위원으로 참여하여 총독부 청사내홀 우측에 그의 동상을 건립하였으며,이듬해 2월 소위 ‘2·26사건’으로 사이토(齋藤實) 전조선총독이 사망하자 부민관에서 추도회를 개최하고 39년 4월 그의 동상을 총독부 청사내 홀 좌측에 건립하였다.이밖에도 그는 러일전쟁 당시 한국주재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정무총감 출신의 시모오카(下岡忠治) 등의 동상건립에 참여하면서 식민통치자들의 업적 찬양에 열을 올렸다. 한편 한상룡이 군국주의 일제통치하에서 40여년간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군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한성은행에서 물러난 후 그는 군부관련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31년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조선내 각지를 돌면서 강연·담화 등을 통해 그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였다. 또 33년 4월 경성국방의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것을 비롯해 조선국방의회연합회 설립준비위원 및 감사(34.4),조선국방비행기헌납회 고문(34.12),해군협회 조선본부 창립위원(35.4)등을 맡아 활동하였다.37년7월 중일전쟁 발발 직전에는 관동군사령부 사무촉탁(칙임관 대우,근무기간 37.7.1∼40.7.1)으로 임명돼 군사령부를 방문,조선실업구락부 및 자신의 명의로 국방헌금을 하였다. 당시 그는 후방 전쟁지원단체인 경기도군사후원연맹 부회장이자 경성군사후원연맹 고문으로 있으면서 ‘애국금차회’ 창립을 주도,조선여성들에게 전쟁물자로 노리개 금붙이마저 내놓으라고 강요하였다.41년 태평양전쟁 개전으로일제의 인력·물자동원이 거세지자 그는 이 역시 전면에 나서서 협력하였다. 특히 43년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훌륭한 군인이 되자’라는 글에서 “반도에 불타는 애국심과 적성(赤誠)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약진 반도의 통치사상에 획기적인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며 조선청년들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27년 중추원 참의(칙임관 대우)에 첫 임명된 이래 해방 때까지 그는 만18년 4개월동안 줄곧 중추원의 참의·고문을 지냈다.해방 1년전인 44년 4월 그는 윤치호·박중양(朴重陽·중추원 참의)·이진호(李軫鎬·총독부학무국장)·이기용(李琦鎔·황족·백작) 등과 함께 일본 귀족원 의원에 선임됐는데 마지막까지 일제에 협력한 결과이자 끝까지 일제에 끌려다닌 형상이라고도 할 수있겠다. 그는 한성은행 경영권 양도를 비롯해 일제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의도적 배제를 당했지만 그 때마다 변신과 일관된 친일노선으로 버텨냈다.한마디로 일제하 그의 생존논리는 철저한 예속과 굴종이었다.그를 ‘친일 예속 자본가의 전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해방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鄭雲鉉 jwh59@
  • [외언내언] 영국여왕의 방한

    지난 92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 40년을 맞았을 때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기념문서들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위를 지킨 군주로서 그는 1,000년 역사를 지닌 영국 왕의 자리에 활력소를 불어넣었고 대영제국을 영연방으로 순탄하게 변화시키는 외교적 역할을 발휘했다’고 찬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유럽의 다른 나라 왕실들이 공산주의의 물결에 밀려 붕괴한 데 비하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의 왕위와 위엄을 굳건하게 지켜오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그는 연합왕국의 왕인 동시에 자치령 각국의 왕이며 다시 구(舊)제국에 속해있던 독립국 결합체인 코먼웰스의 수장으로서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전통을 지켜 실제의 정치에는 관여하지않고 있다. 그러나 1년에 두 번으로 제한된 국빈 방문으로 국제 친선에 기여하고 있다.지난 86년,베이징(北京) 방문 때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여왕으로서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는 계기를 만들었고 94년에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간의 잇단 불화와 추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방문하여 꿋꿋한 왕실의 체모를 과시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영 국교 재수립 50주년 기념으로 4월 19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우리나라에 온다.엘리자베스 여왕의 해외방문엔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 언론의 열띤 취재보도가 따를 것이다.이번 여왕의 한국 방문에는 영국 왕실출입기자 50여명과 세계 각국의 기자 100여명이 동행할 예정이어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TV화면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방한 스케줄은 이른바 작은 문화답사의 형태로 국립묘지 참배와 金大中대통령 면담후 서울 미동초등학교에 가서 태권도 시범을 관람하고 이화여대와 인사동 거리,남대문시장을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국악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도 찾아가 ‘서양음악사가 짧은 한국에서 어떻게 가르치기에 그처럼뛰어난 음악가가 많이 나오는지’도 확인하고 싶어한다.그리고 사흘째인 21일에는 73세 생일을 맞아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담연재(澹然齋)에서 전통한식으로 차려진 생일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한국의 양반 마을에서 신사의나라에서 온 영국 여왕의 생일맞이는 동양과 유럽의 조화를 새삼 실감시킬지도 모른다. 물론 영국 여왕의 한국 방문은 한국으로선 전세계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좋은 기회이긴 하지만 과연 인사동과 남대문시장,안동의 하회마을에서 동양적 정취를 흠뻑 맛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우리에겐 보여줄 것이 적다는 게문제인 것 같다. 이세기 논설실장
  • 척수장애 신입생 개강 첫날 엇갈린 경험-약학과 嚴漢千군

    “앞으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척수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올해 서울대에 입학한 嚴漢千군(19·약학과)은개강 첫날부터 고생을 했다. 지난 3일 오전 嚴군은 자연대 대형강의실에서 첫 강의를 듣기 위해 30분 일찍 도착했다.40도 경사의 계단은 嚴군에게 또다른 ‘장애’였다.동행한 어머니 片順子씨(46)는 체중이 90㎏이나 되는 嚴군을 업어 이동시키기는 어려웠다.옆에 있던 학생들이 휠체어를 들어줘 겨우 강의실까지 갈 수 있었다. 책상에 자리잡으려면 너무나 번잡해 휠체어에 앉은 채 뒤편 통로에서 수업을 들었다.필기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다음 수업은 100여m 떨어진 건물 4층에서 있었다.겨우 이동했지만 강의실의 책상 가운데 앉을 만한 곳은 역시 없었다. 첫날은 그럭저럭 넘겼지만 계속 같은 고생을 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대부분의 강의동에는 승강기가 없고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도 거의 없다.더 큰 문제는 용변.장애인용 변기가 없기 때문이다.당장은 휴대용소변기에 용변을 본 뒤 버리고 있다.식사시간도 고통이다.가파른 계단을 올라 식당 안으로 들어가기도,휠체어를 타고 음식을 받기도 힘들다. 집이 김포시인 嚴군은 ‘동정맥 기형’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어머니 片씨는 등교할 때부터 종일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하고 있다.片씨는 “집이 멀어 기혼자 숙소 입소를 신청했으나 미혼이어서 거절당했다”고안타까워했다. 서울대측은 嚴군이 척수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嚴군을 도울 봉사학생 선발,화장실 개량,휠체어용 경사로 확충 등을 검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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