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수이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후임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면책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한창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필터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280
  • 「삼풍」 희생자 보험금 얼마나/사망·실종자 121명 225건 가입

    ◎예상지급액 총 58억1천여만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희생자 가운데 생명보험금을 타게 되는 사람과 액수는 얼마나 될까. 7일 현재 붕괴사고로 사망한 사람과 실종자 가운데 국내 33개 보험회사의 생명보험을 가입한 사람은 모두 1백21명,2백25건으로 집계됐다.이들에게 지급될 예상지급 보험금은 58억1천4백53만원이다. 삼성생명은 사망자 가운데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있는 94명을 조사한 결과 28명,52건이 생명보험에 가입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예상지급액은 14억7천여만원이다. 가장 많은 보험금을 타는 사람은 삼풍백화점 매장에 파견근무를 하다 사망한 김모씨(25).김씨는 모두 3건의 보험에 가입,1억3천만원을 받게 돼 현재까지는 가장 많은 액수이다. 보험금과 직원 박동철씨(30)는 『사망자를 3백50여명으로 보고 이 가운데 28%가 보험에 가입,1건에 4천8백∼5천만원의 보험금을 받을 것으로 산정할때 모두 50억원이 보험금으로 지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한생명은 사망자 6명과 실종자 15명 등 21명이 모두 33건에 가입,8억9천8백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될 것으로 예상했다.회사측은 실종자를 포함해 신원이 확인된 70명 가운데 21명이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나 최종 사망자가 나오게 되면 보험금 지급대상자는 1백20여명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교보생명은 25명,43건에 9억7천만원으로 집계됐으며 동부생명도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23명에게 11억3천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생명보험협회 정진택 조사과장(39)은 『현재까지 파악된 1백21명말고도 실종자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때 33개 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보험금은 대략 1백50억∼2백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세기의 인물탐구:77)

    ◎비학과 첩학을 접목한 온자한 서풍/우리 전통서예 존중,「옛것」 부활 노력/동방연서회 설립… 후학 7천명 양성/보통학교때 붓글씨 시작… 단 1점의 타작도 안써 「고졸하나 우둔하지 않고 활달하나 법도가 있고 염미하나 속되지 않고 웅혼하나 패도하지 않아 강과 유가 서로 돕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다」,즉 『글자마다 생동미 넘치는 운필은 자연스러운 리듬과 균형미에 따라 「중화의 기」가 흐른다』는 뜻이다.이는 여초 김응현 서법에 대한 종명선 교수(서안교대)의 평이다.종교수는 현재 중국서협 학술위원이며 평론가,중국서법대가의 한 사람이다.지난 92년 한·중건교기념 김응현서법전에 붙여진 이 찬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경사범대 교수이며 당대 명서법가로 명성을 떨치는 계공은 여초의 서법을 전대의 대가인 추사와 비유하는데 아무 주저함이 없다.우선 두 사람이 모두 「금석고고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비학과 첩학의 접목을 중시하여 자재로운 천취를 얻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단지 추사의 글씨가 「바람을 끼고 비를 몰고오듯 유유자적하게 걸어나오는 데 비해 여초의 서법은 유고유아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70년대 북경서 초대전 널리 알려지다시피 여초는 우리 서예계에서 옛것을 존중하여 전통을 부활시키며 이를 연구하여 마침내 새로운 것을 이뤄내는 데 전생애적 노력을 기울여온 원로다. 그는 일찍이 국제무대로 눈을 돌려 70년대 중반에 대북과 도쿄에서 각각 초대전을 가졌고 80년대말에는 본격적으로 중국본토에 진출하여 북경의 계공,상해의 사치유·왕북악등과 교분을 트면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에서 개인전을 개최,연변·장춘·심양등을 순회하여 그곳 서예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중국여행중 발표한 「당대의 해서가 동국에 미친 영향」 「안진경이 한·일서법에 끼친 영향」제하의 논문은 「중원시대의 문자와 단군시대의 문자,중원서법과 고구려의 인연관계」를 정밀하게 파헤쳤고 「동방의 금석은 자발적으로 진전됐으며 서체 또한 중국 영향권에만 있어왔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여 한·중 학자간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그러나 「심도 있는 견해와 견실한 입론,광활한 사로로 펼쳐진 그의 문장은 추호의 빈틈 없는 치학태도」로 평가되어 오히려 중국 서법가들의 공감과 호감을 산 바 있다. 여초의 초기의 서법은 주로 진의 왕희지,당의 구양순,원의 조맹부에 영향을 받아 「새벽바람 속의 잔월(효풍잔월) 같은 청려,대해파도 같은 웅호,뜬구름 스치듯한 표일,고하고 졸하며 기하고 위한 여러 글씨체를 지나」비학을 통한 광개토왕비체와 훈민정음체를 탐구하면서 「화려와 아첨(유미)을 몰아낸 강건한 주경을 성취」한 것으로 대찬되고 있다. 그는 18대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대부명가의 후손이다.그의 증조부는 구한말 종일품벼슬을 지내다 경술국치때 순국한 김석진 학자이며 조부는 비서원승직을 지낸 동강 김영한,창문여고 설립자인 김윤동씨의 5남3녀중 3남으로 태어나 숭인보통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벌써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고 휘문중시절 동몽선습과 명심보감,율곡의 격몽요결 등 옛명현의 시문에 접근해 있었다.그러다가 1944년 아무 연고없이 일경에 연행됐다가 풀려나온 데 대한 후유증으로 도봉동 초가에 묻혀 그때부터 법첩으로 독학한 것이 친형인 김충현·창현 등과 함께 서예의 길을 걷게 된 동기다. ○불의에 타협않는 성품 성품이 꼿꼿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그는 50년대 중반 「평론 없는 분야는 독립된 분야로 성립될 수 없다」는 자각에서 60년대초까지 스스로 필봉을 휘둘러 「붓에 먹을 찍어서 종이에 긋기만 하면 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문의 뜻도 모른 채 쓰거나 글씨를 그림그리듯 하거나 남의 글씨를 임서하거나 손끝의 재주로 숙달된 필체」가 아닌,「오랜 서법에 의해 연마되고 탁마된 고매한 인격에서 우러나온 작품」을 주장해왔고 국전 서예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선현의 가언경구나 명문장을 선택하여 민족의 나갈 바를 열어주는 진취성 있고 주체적인 내용」,그리고 「아무리 원로라도 공부하지 않는 원로」는 심사위원으로 추대할 수 없으며 「추호의 사정이 깃들이지 않은 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심사원 선출」을 역설하여 서예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서예계의 난맥상을 쇄신한다는 차원에서 56년 체계적인 서예연구와 보급을 위해 지금의 동방연서회를 창립,전예해행초 오체의 철저한 연구와 훈련끝에 그동안 배출한 서예인만도 7천여명,서예전문지 「서통」을 지난 30년간 개인의 힘으로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다. 그가 평생을 두고 신조로 삼는 것은 노자의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라는 글귀다.「스스로의 만족됨을 알게 된다면 부끄러움이 있지 아니하고 그칠 바를 알아서 위태롭지 아니하여 오랠 수 있다」는 경구다. 그런 그에게 사욕이란 있을 수 없다.더구나 지난 91년 봄 손위 형인 창현씨가 「대화도중 갑자기 쓰러져 타계」하는 것을 보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인생」에 무상을 절감한 나머지 그해 여름 자신의 사재 18억원을 출연,「사람은 사라져도 세상에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을 남긴다는 취지와 함께 동방연서회를 재단법인으로 재출범시켰다. 그는 지금도 새벽이면 도봉동에 있는 그의 집을 나와 아침 8시 서실이 있는 동방연서회에 도착,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서실은 글씨를 쓰는 책상외에 방안 가득히 서법에 관한 서적이 산적해 있고 행길가인데도 난향과 수석과 녹차향 때문일까,온자한 서풍이 감도는 속에서 그는 「오늘은 심선이 그려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엄숙히 자문해본다.낙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그는 한점의 타작도 용납치 않으려는 주의다.그래서 한평생 붓을 잡으면서도 지금까지 아무 때나 기분내키는대로 가볍게 붓을 잡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심기가 평화롭고 사방이 청결하고 날씨가 화창하면 그날은 왠지 일점일획에도 오차가 없는 「정수」가 탄생될 것을 기대해 볼 뿐이다. ○세속적 취향과는 멀어 전보다 많이 옳은 말을 줄이고 일체의 세속적 취향에 타협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골프를 하고 싶어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일조」하는 것같아 철저히 외면한다.물론 서예와 관련된 모든 잡사에도 끼어들지 않는다.하오에는 문중 사람을 더러 만나지만 특별히 친분 있는 사람도,그렇다고 서로 소원할 필요도 없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시기다.다만 그의 개인전을 집중적으로 주선해온 동방화랑의 서정철사장과는 30여년간 난향 같은 청교를 나눈다.가족은 부인 강영순 여사와 5남매,서예를 잇는 자녀는 없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안되는 것이 글씨다.서법은 쓰는 사람의 내면의 성숙과 외율의 조화이기 때문에 천질만으로도 부족하고 노력만으로도 미치지 못한다.따라서 서예는 미숙만이 있을 뿐 영원한 프로는 있을 수 없다」.이는 여초의 변이다. 그러나 그 서체가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어 「천외천,예술외 예술」로 찬사되고 있는 시점에 서 있다.명지대 진태하 교수의 평처럼 「고희를 내년으로 앞둔 여초의 세계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넘치는 가운데 원숙과 창로의 경지에 들어 혼연천성하고 묘합자연하여 자신만의 서법언어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그로서는 「예술이상과 예술도에 이른 자신의 지음을 눈부신 지면에 향기로 뿌리는 일만이 남았다. □연보 ▲1927년 서울 출생 ▲46년 휘문중 졸업 ▲51년 고려대 졸업 ▲50∼61년 국회보 주간,국회도서관 창설참여 ▲56년 동방연서회 창립멤버 ▲60년 국전 추천작가 ▲69년동방연서회 이사장 ▲70년 숙대·홍대·성균관대 강사 ▲71년 동방연서회 회장 ▲74년 방화전(중국국립 고궁박물원) ▲75년 국전 초대작가,한중 서법학대회 대회장 ▲76년 현대화랑초청 개인전 ▲78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79년 국제서도연맹초청 개인전(도쿄),중국국립 역사박물관 초청 개인전(대북) ▲80∼현재 한국전각학회 회장 ▲82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83년 신가파 중화서화협회고문 ▲84년 이마미술관 초청 개인전 ▲86년 중앙일보사 초청 개인전 ▲89∼현재 사단법인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이사장,동방연서회 서법교류 방중단단장 ▲90년 김응현서법전(중국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신가파 제1회 국제서법교류대전 ▲91년 염황예술관이사회 명예이사,절강성박물관·서호서원 명예원장,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종남인사 예술고문,서안서학원 특격원위 ▲92년 김응현·김종길시화전,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의전(추모의전),김응현서법전(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 및 상해) ▲93년 산동대학 동방서화연구원 고문겸 교수,김응현서법전(정주 하남성서화원),하남성서화원 고문 ▲94년 김응현·계공서법전(북경 영보재) 김응현서법전(서울 동방화랑) ▲95년 7월3일부터 8월7일까지 한·중·일 산경 서법전(한국 김응현·중국 계공·일본 임금동 일본 동경 선샤인문화회관)예정
  • 4대 지자선거 진기록 풍성

    ◎투표용지 1억장/선관인 120만명/연설회 2만4천회/홍보물 15억장… 쌓으면 백㎞ 높이/후보들 쓴돈 2천7백억 넘을듯 27일 동시 실시된 4대 지방선거는 우리나라 선거사상 규모와 기록 측면에서 가히 최대선거였다.이번에 수립된 갖가지 진기록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선거사상 유례없는 1만5천4백18명의 후보들이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에 출사표를 던졌고 후보들은 열전 16일동안 마치 둑이 무너져내리듯 홍보명함·선거홍보물 등 인쇄물을 쏟아냈다.선거관리위원회도 여느 선거와 달리 폭증한 업무를 감당하느라 엄청난 인원과 장비를 투입했다. 특히 이번 선거는 각 후보들이 TV·라디오토론회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등 선거문화측면에서 「TV 정치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기록은 선거관련 인쇄물량.먼저 투표용지는 총 3천1백4만3천5백63명의 유권자 한사람에게 색깔별로 4장씩 모두 1억2천4백17만4천2백52장이 인쇄됐다.이를 무게로 따지면 1.5t트럭 1백60대 분량이다.각 지역별로 인쇄단가가 달라 약간 차이가 있으나 한장에 10원으로 계산하면 12억4천1백70여만원 가량 된다. 후보들이 지역유권자들에게 돌린 선거운동용 홍보물도 만만치 않다.후보를 소개하는 소형인쇄물이 8억5천만장인 것을 비롯,선전벽보 85만장,선거공보 2억8백만장,명함형 인쇄물 4억3천만매 등이다.이들 홍보인쇄물을 차곡차곡 쌓으면 그 높이가 1백㎞나 된다. ○…선관위는 법정선거 비용 제한액을 기준으로 후보자들이 쓴 선거비용을 총 2천7백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그러나 여기에는 선거사무실 임대료·전화료·일용직 사무원의 급료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때문에 향응,선물제공 등 선심공세 비용까지 합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이 풀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관리에 쓰인 예산 및 동원인원,장비도 단연 사상최대치.책정된 총예산액은 1천9백92억원으로 지난 91년 지방의회선거때 들어간 6백억원에 비해 3배이상 늘어난 액수이다. 선관위측은 이처럼 소요예산이 늘어난 것은 선거공영제의 확대로 일정비율 이상의 득표를 한 낙선자에게 다시되돌려주는 선거보전비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거관리인원도 선관위직원 10만8천명을 비롯,관계기관 지원인력 72만명·일용직 근무자 및 자원봉사자 38만명 등 모두 1백20여만명이 동원됐다.또 중앙선관위와 시·도선관위에 주컴퓨터가 2대씩 설치됐고 개인용컴퓨터도 7백60대를 지원했다. ○…이번 선거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후보들이 선거운동방식으로 TV·라디오 등 대중전파매체를 적극 활용한 점이다.자치단체장 후보에게 허용된 방송연설은 대상후보자 55명 가운데 TV 49명(89%),라디오 43명(78%)이 활용했다.또 이들 자치단체장 후보들 가운데 40명이 1백20회에 걸쳐 TV방송광고를 통한 지지를 호소했다.
  • 출범 반세기 유엔의 과제/이건영 뉴욕특파원(오늘의 눈)

    26일은 유엔헌장서명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50년전인 45년 이날 미국과 옛소련을 비롯한 세계 51개국 대표들은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전날 채택한 유엔헌장에 서명했다.유엔의 정식발족은 서명국의 과반수이상이 비준서를 기탁한 같은 해 10월24일(유엔의 날)이었지만 「유엔호」는 실질적으로 이날 출발한 것이다.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각종 50주년 행사가 지난 24일부터 열리고 있다.그러나 행사에 관계하는 사람들이나 참가자들은 마냥 축제분위기에만 젖어 있지 못할 형편이다.유엔의 장래문제때문이다.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유엔사무총장이 직접 주재하는 세미나의 주제가 「유엔의 개혁」이라는 것은 유엔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출범이후 한때 이데올로기 갈등의 「피해자」였던 유엔이 냉전종식이후 평화의 사도로 적지 않은 역할을 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물론 최근 보스니아내전개입같은 공과가 엇갈리는 활동도 없는 것은 아니나 적극적 평화유지자로서의 역할은 부인하기 힘들다. 유엔은 이제 반세기를 살아온 시점에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약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위기를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갈리사무총장이 「유엔의 개혁」을 50주년의 주된 이슈로 삼고나온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강대국중심의 기구운영방식부터 개선돼야 할 것이다.안보리의 개편논의는 몇년전부터 있어왔으나 결판은 다음 세기에나 가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확보면에서는 회원국들의 분담금도 분담금이지만 유엔기구의 「군살」을 시급히 제거해야 한다.2천6백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조직의 예산낭비요소는 없는지 재점검해봐야 한다.금고가 비어 직원들 월급을 못주지 않을까 걱정만해서는 안될 일이다.재정타개책도 작지만 내부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엔이 정치논리의 장이 돼서는 안된다는 명제를 유엔 스스로 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정치가 인권이나 환경,개발보다 앞서지 않도록 1백85개 회원국들 모두도 유엔헌장의 참뜻을 새겨야 할 하루다.세계평화질서의 감시자는 영원히 존재해야 한다.유엔안보리회의장에 걸려있는 「불사조」벽화와 함께.
  • 6·25 45돌/진상 규명 서적출간 활발/주목받는 국내외 3개역저

    ◎일 공산주의자가 본 북침설의 허구­한국전쟁/미 육군 작전상황 기록한 공식전사­밀물과…/미 정책결전과정 분석한 「한국전쟁과 미국」도 나와 광복 5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룬 서적들이 많이 나와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다.이런 흐름의 하나로 6월 들어 「6·25」를 분석한 국내외 역저 몇권이 선보였다.이 가운데 대표적인 책들이 국내 학자가 쓴 「한국전쟁과 미국」,미 육군성에서 낸 「밀물과 썰물」,그리고 일본 저널리스트의 저서 「한국전쟁」등이다. 「한국전쟁」(한국논단 펴냄)은 「6·25가 미군과 한국군이 일으킨 북침」이라는 김일성과 조선노동당의 주장이 허구로 가득 찬 것임을 그들의 문서를 통해 입증했다.지은이 하기와라 료(추원료)는 이를 위해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공문서보관서에 소장된 「북한문서」1백60만쪽을 2년 반에 걸쳐 열람했다.이와 함께 「6·25」 당시 조선인민군 중장이었던 유성철,옛소련 공산당 간부 허진등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뒷받침했다. 이에 따르면 김일성은 49년 초 중국공산당에게 조선계 군인 3만여명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받아들인다.50년 6월23∼24일에는 인민군 전체 7개 사단중 5개 사단이 38선에서 수㎞이내에 집결한다. 지은이는 인민군 2사단,3사단,6사단등에서 낸 작전명령,병력배치도,작전일지등 각종 자료를 이용해 남침 상황을 생생히 그려냈다.예컨대 6사단 문화부(정치부)가 6월13일 예하부대에 보낸 극비문서 「전시 정치 문화사업」에는 38선 인근에 집결해서부터 남진명령의 접수,진공,점령지 활동에 이르기까지의 행동지침이 5단계로 분류돼 자세히 지시돼 있다.지은이는 이밖에도 「김일성이 가짜」라는 사실과 북한 주둔 소련군의 쌀 수탈등 만행도 공개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의 지은이는 공산주의자.하기와라는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의 평양특파원을 지낸 기자 출신으로 지금도 일본 공산당에 몸담고 있다.그는 책을 쓴 이유를 『한국전쟁은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진로에도 중대한 연관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전쟁과 미국」(평민사 펴냄)은 국방대학원 교수이자 한국전쟁연구회 회장인 김철범박사가 저술했다.미군이 남한에 진주한 19 45년부터 53년 「6·25」종전까지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분석한 연구서이다.지은이는 당시 미국의 정책은 장기적인 점령아래 적극적인 경제원조를 하자는 국무부측과,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해 조속한 철군을 주장한 군부가 대립했던 것으로 보았다.새롭게 「관료정치적 모델」을 분석틀로 삼은 점이 돋보인다. 이에 견줘 「밀물과 썰물」(대륙연구소 출판부 펴냄,모스맨 지음)은 「6·25」과정 중에서 50년11월∼51년7월 부분을 다루었다.미군의 대규모 작전은 물론 대대 단위의 부분적 전투도 상세하게 소개·분석했다.미 육군의 공식 전사로서 객관적인 사실 기록에 치중했다.재무부장관을 지낸 백선진 예비역 육군소장이 우리말로 옮겼다.
  • 대북쌀 장기저리 지원/정부,우선 5만t 선적/관계진전 봐가며 확대

    정부는 대북 쌀지원과 관련,우선 5만t을 아무런 조건없이 빠른 시일내에 북한에 제공한 뒤 앞으로의 남북관계 진전과 연계해 그 양을 점차 늘려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쌀은 모두 유상으로 제공하되 장기저리로 하며 상환방법은 북한의 무연탄 등과의 구상무역 형식을 취할 것으로 전해졌다.이같은 방식은 북한의 체면을 고려한 것으로 내용면에서 사실상 무상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19일 『제공 주체는 우리측의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와 북한의 삼천리총회사가 될 것』이라면서 『대북 쌀제공에 따른 재원은 남북협력기금을 양곡관리기금으로 전용해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어 쌀 수송방법과 관련,『우리 측에서는 육로를 주장하고 있으나 북한은 해로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수송방법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북한측 주장을 전향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나웅배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은 19일 북경 남북 쌀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나 회담은 당분간 더 진행될 것이라고 밝혀 늦어도 이번주 중반쯤 회담이 타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나부총리는 또 『쌀문제를 주로 논의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남북 대표가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얘기가 많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쌀문제외의 우성호 선원 석방문제 및 경수로 부지조사단 파견문제 등 다른 남북간 현안들도 함께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쌀 5만t 지원땐 최저 4백50억원 정부가 5만t(34만7천섬)의 일반 쌀을 북한에 지원할 때 드는 대북 쌀지원 관련비용은 최고 7백4억원에서 최저 4백51억원인 것으로 추산됐다. 농림수산부는 19일 북한에 대한 쌀 지원관련 예산을 잠정 집계한 결과,소요예산(정부 방출가 기준)은 94년산 쌀의 경우 7백4억원으로 가장 많고 89년산 쌀이 4백51억원으로 가장 적다고 발표했다. 94년산 쌀을 제공한다고 할 때의 소요 예산은 94년산 쌀의 정부 방출가가 40㎏들이 1부대당 5만2천2백50원이므로 모두 7백4억원이 된다.이는 5만t에 대한 순수 쌀값 6백53억원에다 쌀을 찧는 데 드는 도정비 등 쌀 가공비 28억원,포장재 등 포장비 9억원,선적하는 데까지의 국내 수송비 8억원,창고 출고료·상하차료 등 기타 조작료 6억원을 합한 액수이다.93년산은 6백82억원으로 두번째로 많고 92년산(6백39억원),91년산(6백14억원),90년산(5백82억원),89년산(4백51억원)의 순이다.
  • 민노준「연대파업」호응 미미/첫날 일부 자동차등 10개 노조만 태업

    「민주노총준비위원회」가 본격쟁의에 들어가기로 한 19일 일부 자동차노조 등 10여개 노조가 이날 하루 또는 1∼3시간 동안의 파업과 태업에 들어갔으나 전국 동시다발 연대파업 사태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이날 상오 사업장에서 토론회를 가진뒤 하오에는 대국민 홍보에 나서 하루동안 공장가동이 중단됐다. 쌍용자동차 노조는 그러나 『사측의 협상태도에 따라 추후 쟁의 일정및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전면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만도기계는 이날 상오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현장토론회를,기아자동차 노조도 1시간 동안 결의대회를 갖는 등 부분파업을 벌인뒤 작업을 계속했다. 이밖에 한라공조 노조가 보고대회 벽보붙이기 등을 통해 1시간동안,경주지역의 일진산업,아폴로산업,경신공업,일흥공업이 2∼3시간 가량 각각 부분파업을 벌였으며 정일산업은 「품질향상운동」을 이유로 태업을 벌였다. 한편 서울지역의 이화여대,한양대 병원등 대형 병원 노조들도 이날 쟁의 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등 파업을 위한 수순을 밟아가고 있으나 실제 파업돌입 여부는 미지수이다.
  • 「순수문학」 외길 걸은 문단거인/타계한 김동리 선생의 문학과 생애

    ◎생명·인간성 탐구 중시… 문학의 도구화 반대/한국적 샤머니즘 담은 「무녀도」·「황토기」 남겨 17일 타계한 김동리(본명 김시종)씨는 한국 현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들을 남긴 우리 문단의 거목이었다. 작가로서의 그는 60여년의 작품활동을 통해 1백여편에 이르는 중·단편소설을 남긴 빼어난 글쟁이였다.이른바 「순수주의」를 지향한 그의 소설들은 해방이후 우리 문학의 큰 줄기로 이어져 내렸다.뿐만 아니라 그는 참여주의 논객들과의 지속적인 논쟁을 통해 이같은 자신의 문학관을 적극 옹호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191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김동리씨가 처음 문단에 나온 것은 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시 「백로」를 통해서였다.그러나 35년 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36년 동아일보에 「산화」 등 두편의 소설이 잇따라 당선되면서 그의 재능은 산문쪽으로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문학적 지향은 30년대말 발표된 「무녀도」와 「황토기」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기독교신자인 아들과 갈등을 빚는 무당,가공할 힘을 지닌 장사의 사연을 다룬 이 단편들엔 한국적 샤머니즘과 신화의 세계에 대한 지은이의 본능적인 이끌림이 나타나 있다. 이무렵 그는 자신의 창작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평론작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문학의 사회·역사의식 회복을 촉구한 임화·유진오의 글에 맞서 「순수이의」(39년)「신세대의 정신」(40년) 등의 평론을 발표한것.이런 글에서 그는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개성적인 삶의 탐구여야 한다』며 정치나 이념에 종속되지 않는 순수문학이야말로 문학의 본령이라는 주장을 폈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이같은 순수문학 옹호는 그후 그의 창작에 일관되게 깔리는 철학적 기조가 된다.해방공간의 좌­우 논쟁,70년대말 순수­참여 논쟁 등을 거치면서 그는 문학의 도구화에 반대하고 생명과 인간성 탐구를 문학 고유의 역할로 여기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다.이때문에 리얼리즘 문학이 성했던 80년대엔 삶의 현실이나 인간의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문단 한켠의 거센 비난에 맞닥뜨리기도 했다.그러나 그와 이념적으로 대척되는 지점에 놓인 시인 고은씨조차도『동리문학은 한국소설의 원점』이라고 평할 정도로 그의 탁월한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었다. 그는 한국문인협회장·예술원회장·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학장등을 거치면서 이념과 사상을 떠난 특유의 포용력으로 이른바 「김동리 사단」을 거느리는 문화예술계의 대부로 군림하기도 했다.장용학·손창섭·박경리·이범선·최일남·한말숙·정을병·이문구·서영은·문순태씨등이 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고 천승세·김원일·송상옥·유현종·오정희씨등이 서라벌예대 제자들이다. 문학과 삶의 동반자였던 부인 손소희씨가 작고한지 얼마 안된 지난 87년 30세 연하의 문단 제자 서영은씨(52)와 결혼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나 90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념의 시대가 지나가고 90년대에 접어들어 동리문학의 짙은 문학성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그의 단편 대표선집이 나오고 연구논문들이 책으로 묶이는 가운데 민음사에서는 「김동리 문학전집」을 7월부터 2∼3차에 걸쳐 펴낼 예정이다.여기에는 장편「사반의 십자가」「을화」를 포함한 그의 모든 소설들과 문학평론,에세이들이 수록된다.한국 토속정서에서 인간의 보편적 구원문제로 확대돼온 그의 문학적 지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이 책이 유작이 되는 셈이다. □연보 ▲1934년 조선일보 시 「백로」,35년 중앙일보 단편 「화랑의 후예」,36년 동아일보 단편 「산화」 각각 신춘문예당선. ▲36년 「무녀도」,39년 「황토기」,41년 「소년」발표후 8·15까지 침묵. ▲1946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초대회장,「윤회설」.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소설분과위원장,장편 「해방」. ▲1950년 문교부 예술위원,서울시 문화위원,「인간동의」 ▲1954년 예술원회원,「마리아의 회태」. ▲1955년 「흥남철수」「밀다원시대」「실존무」. ▲1957년 장편 「사반의 십자가」 ▲1961년 문인협회 부이사장 「등신불」. ▲1966년 「까치소리」「송추에서」「백설가」. ▲1967년 3·1문화상 수상,대표작선집 전 5권 간행. ▲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중편「극락조」. ▲1971년 장편 「아도」. ▲1973년 중앙대 예술대학장 장편「삼국기」 수필집「사색과 인생」 ▲1974년 장편 「이곳에 던져지다」. ▲1978년 장편 「을화」 수필집 「취미와 인생」. ▲1981년 예술원회장. ▲1983년 5·16민족 문화상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예술원 원로 회원.시집 「패랭이꽃」. ▲1987년 장편 「자유의 역사」(59년 신문 연재작). ▲1990년 소설가 협회장.7월 30일 뇌졸증으로 쓰러짐. ◎한국문학의 영원한 큰별이시여…/고 김동리 선생 영전에/한승원 작가 이세상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고 선생님 혼자서만 아시는 그 깸없는 무상한 오랜 잠 주무시더니,그 잠 깨시기 바쁘게 선생님 어디로 떠나가시려 합니까.간밤 검은 구름장들 지붕머리 짓누른채 궂은비 흩뿌리고,그 습한 어둠속에서 허리 꼬며 강물 슬프게 앓아대고,북한산 지빠귀 한 마리 제 잠 설치게 하더니,신새벽의 푸른 빛살 속에서 선생님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고무줄처럼 잡아당기기도 하고 보석처럼 단단하게 앙금지게 해놓기도 하고,몇 천억겁을 찰나로 오그라들게 하기도 하고 그 찰나를 다시그 몇 만억겁으로 늘어나게 하기도 하는 혼자서만 아는 시간을 주무르고 노시다가 그 시간을 서리서리 호주머니에 넣으시고 가시는 거기가 어디입니까. 영화도 많았고 욕됨도 많았던 이 땅,이곳에서의 머무름은 얼마만한 잠시였습니까.이제 가시는 그곳은 「달」속의 달이와 「무녀도」의 을화가 있는 곳입니까.「황토기」와 「등신불」속의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입니까. 30년 저쪽의 어느 늦은 가을날,저희들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뚝섬으로 소풍을 갔을 적에,저는 폭음을 하고 취한 척하고는 선생님께 건주정을 하였고,호래자식인 저를 유도하는 한 친구가 못됐다면서 모래밭에 내리 꽂았었습니다.이튿날 얼굴에 반창고 붙이고 찾아간 저에게 싱긋 웃으시며 어깨를 두들겨주시던 선생님의 그 인자스러운 동안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속된 저로서는 지루하게만 느껴진 그 깸없는 신비한 잠을 주섬주섬 사려담고 문득 떠나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제 가슴을 쓰라리게 하지만,저는 결코 슬퍼 울지 않습니다.이 밤,저는 북한산 위의 별들을 보고 있습니다.지금 선생님께서 이르게 되는 그곳은 선생님께서 신비롭게 형성해놓은 세계일터입니다.제가 쳐다보는 별처럼 떠있는 비가시적인 커다란 시공. 우리들의 우주안에서는 가는 것은 없고 오는 것만 있습니다.헤어지는 것은 헤어지는 것처럼 보일 뿐,사실은 긴긴 강의 하구에 잇닿은 바다에서 다시 만나 어우러지게 됩니다.그것을 굳게 믿는 저는 별로 오래지 않은 시간안의 즐거운 회후가 예정되어 있음도 믿습니다.선생님 그곳에 먼저 가셔서 큰 예술학과 하나 마련해놓고 계십시오. 저 선생님의 그 학교에 또 입학하겠습니다.선생님,명명한 그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 대북 거래/이렇게 하라/무공 「비즈니스 18계」 소개

    ◎몸짓 정확히 파악… 사회주의 혹평 말라/과장된 행동 삼가고 중개인 조심하라/지키지 못할 약속 말고 인내심 가져라 『북한 사람들과 거래할 때는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 것,자신을 고수라고 여기지 말고 영웅심리를 버릴 것,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 것』 대한무역진흥공사가 16일 소개한 「북한기업과의 비즈니스 18계」의 내용이다.최근 미국과 북한간의 경수로협상 타결로 남북경협의 활성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계는 접촉에 나서는 북한사람들의 몸짓이 자본주의 사회의 통념과 달라 이를 정확히 파악하라는 것이다.2계는 북한에서 해외활동에 나서는 기업의 구성원은 사회주의 골수분자이며 북한사회의 엘리트임을 감안,이들에게 사회주의의 장단점을 설명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3계는 북한기업이 상대를 믿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보통거래보다 2∼3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자본주의국가 간 거래보다 10배나 어렵다는 것이다. 이밖에 북한사회는 유교적 습성이 저변에 깔려 있어예의있는 행동이 필수이며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긴장을 풀지 말 것.북한기업인들은 허풍치는 스타일보다 사전준비가 철저한 상대방을 신뢰한다.정확하게 확인할 사항은 일정한 기간마다 중개인을 통하지 말고 직접 확인,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말 것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18계의 마무리는 조용한 진행으로 소개됐다.
  • 창무극 1인자 공옥진(이세기의 인물탐구:76)

    ◎고독을 춤추는 이시대 마지막 광대/타고난 끼와 파격의 몸짓으로 한맺힌 삶 표현/헤살궂은 사설조에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부친에게 창배워 유랑극단에… 장애인 동생 조카위해 국수장사도 전라도 광주땅에서 공옥진예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공옥진」 이름을 대면 「함평군 문장을 지나 40㎞쯤 들어간 영광에 가보라」고 일러준다.영광읍 교촌리 영광예술연구소에 들어서자 그는 찾아간 사람을 얼싸안고 눈물부터 글썽인다.눈물 많고 한 많고 정많은 모습은 예전이나 변함 없다.연구소 마루는 널찍한 20여평인데 비해 뒤꼍에 위치한 살림방은 사람이 둘만 앉아도 비좁은 골방에 불과했다.전국 방방곡곡 이름을 떨치지 않은데가 없건만 그의 생활은 여전히 궁핍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그러나 자신이 직접 캐온 불갑사 산나물이며 법성포 바닷가에서 주워온 바지락으로 상을 차리면서도 지난해 피땀으로 절약한 1천만원을 중고생 장학금으로 내놓아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는 얘기다.가난과 한과 고독이 점철된 그의 지나온 생애에 비춰 그는 한푼이라도 돈이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지금도 의탁할곳 없는 동네 노인들을 집에 데려다 함께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산에 가서 고사리를 캐기도 한다. ○생활은 여전히 궁핍 지금부터 17년전 중앙대 교수이자 무용평론가인 정병호씨가 「참으로 이 시대 그대로 지나쳐선 안되는 예사롭지 않은 예인」이 있다면서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데려간적이 있었다.그때 공옥진은 하얀 옥양목 치마 저고리차림의 평범한 시골 아낙에 지나지 않았으나 창과 춤뿐 아니라 일인다역으로 「흥보가」「심청가」를 혼자서 몇시간이든 두루 꿰어나간다고 했다.막상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가 「심청이 팔려가는 대목」을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 번뜩이는 예살이 범상치가 않았다.「서리서리 한맺힌 구성진 가락은 한여름철 장대비와도 같고 헤살궂은 사설조마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 담겨있었다.용궁막 황성 맹인잔치대목에 이르러 저고리 뒷섶을 활짝 뒤로 젖히더니 목속에 턱을 깊숙이 파묻고 눈을 사팔로 만들고는 엉거주춤 허리춤을 부여잡고 뒤뚱뒤뚱 휘돌아나갔다.엉덩이 빠진곱사춤,절름발이 곰배팔이 오리발 병신춤을 눈부시게 펼치는 가운데 인물치레 성음치레를 무시한 자재로운 몸짓은 도무지 몸을 사리거나 풍색을 개의치도 않았다.솔직하고 천연덕스러운 그의 춤은 얼핏 보기엔 즉흥적인 신명같지만 하나의 익살스러운 동작에는 반드시 그 시작과 끝을 알리는 회무가 따르고 있었다.경륜 있는 예인으로서의 여유와 능수능란이었다. 그의 성공에 대해 민속학자 심우성씨(문화재 전문위원)의 「고격의 예술에 식상한 관객들이 섬세한 아름다움이기를 거부한 그의 진솔한 인간적 표현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 탓」이라는 평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이후 국악관련 책자나 프로그램에서 그는 「우리나라에 예술가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공옥진을 꼽겠다」고 당당하게 밝혔고 「공옥진의 타고난 「끼」,철저한 광대기질,총명과 명석은 가히 천재적인 것으로 그는 한번만 힐끗 보고도 상대방의 모든 동작과 표정을 날카롭게 읽어낸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예술사 연구를 하는 김철순은 『일찍이 이동백옹이 이혜구씨에게 말한 것처럼 판소리 뿐 아니라 모든 한국예술의 본질은 기존의 법칙과 양식,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류의 새로운 음악과 춤으로 자연스럽게 창조해내는 것」이라야 한다면 그가 바로 공옥진』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공옥진의 춤은 춤사위로 이어진 정제된 춤이 아닌 고통스런 삶의 한풀이이자 아무도 흉내낼수 없는 진짜 고유의 조선춤」으로 호평했고 무언극공연차 한국에 왔던 마르셀 마르소도 「나는 무언극을 하지만 공옥진의 일련의 움직임은 그것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독특한 파격의 예술」임을 거듭 강조한바 있다. ○한때 입산… 비구니로 공옥진의 광기랄가,신기랄가.그의 천부적 재질은 연습과 훈련으로 이루어진 격식을 갖춘 전통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사람을 사로잡는 힘과 정과 한이 일체감을 이루면서 「고통과 슬픔이라는 껍질을 과감하게 깬 살아 있는 몸짓」은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만의 독특한 창무극을 무대에 정착시켰고 그는 일약 중앙무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7살때 단돈 천원에 일본에 팔려간 적이 있어요.당대 제일의 무용가인 도쿄의 최승희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다시 일본인집에 넘겨졌지요.5년만에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방랑길을 떠났고 어머니 마저 개가해버려 동생들과 먹고 살기 위해 그때부터 장터에서 춤을 추고 창을 하게 됐답니다』 하얀 옥양목 치마끝에 찍어낸 눈물은 그의 말을 빌리면 「눈물이 고여 바다」가 됐을 정도다.그만큼 그의 지난 세월은 어느 대목을 들어도 고초와 한숨이며 통곡의 파노라마다.그런중에도 국내 구석구석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 초대되어 젊은이들에게 「어머니」라 불렸고 미 카네기홀 링컨센터 대공연을 갖는가 하면 일본의 저명한 사진작가 세키네는 그의 공연사진과 데생으로 도쿄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옥진은 전남 승주군 송광면 추동리에서 태어났다.남도 인간문화재인 공대일 명창의 4남매중 둘째딸,그의 조부는 광주의 김채만을 사사,서울 협률사 초기멤버이던 공창식 명창이다.그는 일찍이 부친에게 창을 배운후 유랑극단의 소녀주역으로 활약하다가 두번의 결혼 실패끝에 한때는 지리산 천은사에 입산하여 「수진」스님으로 참선,중년에 접어들어 농아인 남동생과 곱사등이인 조카딸을 돌보기 위해 광주 지산면에서 국수장사를 했고 그곳에 공연을 왔던 김연수씨를 만나 우리국악단에 몸담으면서 다시 유랑생활에 나섰다.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로 얼룩진 그의 인생사는 그동안 여러잡지 신문 등에 소개된바 있지만 그 어느것도 그가 돗자리 하나만으로 장바닥에서 펼치는 통한의 눈물과 익살과 한숨에 미치지 못한다.또한 그의 「살풀이춤」은 장탄식과 짙푸른 한의 음영이 깃든 명무지만 「살다보니 어찌어찌하다 희극무인 병신춤 동물춤의 일인자」처럼 되었고 한때는 장애자들로부터 「무엇 할짓이 없어 장애인 흉내로 무대에 서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그때마다 그는 곱사춤은 옛날부터 각 지방에서 내려오던 사당패들의 자리판 놀음이며 더구나 그 자신이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과 내손으로 키운 조카아이까지 장애인의 가족으로서,살아있는 여러 삶의 절박한 표현은 춤일수 밖에 없음」을 그때마다 상기시키지 않으면안되었다. ○84년 서울생활 청산 그는 지난 84년 6년여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노부를 모시고자 그가 자라난 영광읍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동생과 조카를 앞세웠고 부친마저 90년 세상을 떠난후 지금은 예술연구소에 남아 고향의 「아기」들에게 그의 춤을 전수시키고자 만모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요즘은 수년전부터 앓아온 담석증을 세번째 수술하고 아직 건강치 못한 몸이지만 산에 가서 즉흥무를 추거나 산야에 대고 「제비 노정기」를 내지르면 「없던 힘과 신명이 절로 솟아」 아프던 몸이 거뜬히 낫는다고 말한다.지난봄부터 여수 영암공연,크고 작은 경로 효도잔치에 빠지지 않았고 7월에는 광주에 새로 생긴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을 앞두고 있다. 공옥진은 참으로 한이 많은 예술가다.그리고 그의 춤과 소리를 격조와 품위로 논하기란 어렵다.그러나 무대에 서면 진흙탕에 뒹굴듯 몸을 사리지 않고 인간의 「절대고독」을 춤추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 그 이상」이라는 한 평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누군가 말한대로 「광대가 될때만가장 인간적」이라고 한다면 꾸미지 않은 옛광대의 기질과 체취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옥진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광대라는 예감이다. □연보 ▲1931년 전남 승주 출생 ▲38∼43년 일본 체류 ▲45∼47년 조선창극단 ▲48년 고창·정읍 명창대회1등 ▲57∼63년 임방울창극단 협률사 입단 ▲61∼63년 김연수 우리국악단 ▲64∼66년 김원술안성국악단 ▲66∼67년 박녹주국극협회 ▲67·68년 일본공연 ▲78년 공간사랑 1인창무극 ▲81년 미 케네디센터 「한국전통무용」공연,전남 영광읍장터 「공옥진놀이판」 ▲84년 일본 공연,서울 결산무대 「공옥진춤판­그의 모든 것」(문예회관대극장),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서 「마당놀이 춤판」,낙향 광주서 부친 공대일명창과 「아버지와 춤을」 대공연 ▲85년 런던 국제 연극제 참가 ▲91년 1인창무극(호암아트홀) ▲92년 불우한 소년소녀가장돕기 서울공연(세종문화회관)을 필두로 인천 성남 수원 구미 대구 천안 평택 충주 제주등 15개도시 순회공연 ▲93년 뉴욕(링컨센터) 시카고 LA 하와이 중국 런던 일본등 세계순회 및 부산(KBS홀)공연,「한국의 소리와 몸짓」시리즈(예술의 전당),1인 창무극(미도파 메트로홀) ▲94년 1인창무극 「학녀의 한의 춤」(세종문화회관),그외 전국 50여 대학 초청 「공옥진 한의 춤」공연등 경로위로 잔치 수백여회 ▲95년 여수(진남체육관) 및 영암 정읍 공연,7월9일 광주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 예정 전남 영광예술연구소 대표
  • 서울시장 출마 「빅3」 3작가 밀착취재

    ◎민자 정원식/「컴퓨터 황소」… 경륜·안정감 돋보여/“서울 면모일신” 공약은 듣기만해도 흐뭇 열전 16일의 본격적인 지자제선거전 그 첫날의 막이 올랐다.정원식 후보의 정당연설회장이라는 마포구 홍익대근처의 철도부지 공터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유세장에 가는 길은 예외없이 교통체증으로 짜증이 난다.유세 때문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시달리는 서울의 교통지옥 때문이다.수돗물은 위험해서 마시지 못한다고 성분도,청결도도 알 수 없는 생수 한사발을 먹고 나선 배가 더부룩하고 초여름의 더위에 달구어진 매연바람이 숨을 막는다. 『정말 서울은 사람 살 곳이 못돼』길을 나서면 한두번은 내뱉는 말이다.민선시장이 들어서면 마음놓고 수돗물도 마시고 확 뚫린 길을 시원하게 달리고 맑은 공기 마시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서울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그 속시원한 해결책은 가지고 있을까.그 기대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권자가 유세장으로 몰려가는 것일 게다. 첫날이어서 그럴까.아침 10시가 넘었는데도 청중은 2백∼3백명이 그것도 노인·부녀자만 연단 밑에 모여 있다.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전문운동원이 마이크를 잡고 정원식후보가 왜 서울시장에 당선되어야 하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열시반부터 열겠다면 광역후보·기초단체후보는 적어도 30분 전에는 와 있어야 하고 자원봉사를 맡았다는 인기연예인도 30분 전쯤에는 도착하여 춤추고 노래는 못할망정 유세장분위기를 띄워야 하는데 그들마저 30분,1시간 지각이다. 길이 막혀 지각을 했으면 바로 그 교통난을 이렇게 해소하겠다고 말문을 열었으면 좋겠는데 누구 하나 사과 한마디 없다.시간이 흐르면서 청중의 숫자도 불어나 2천여명이 되었다.비로소 유세장다운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땡볕에 앉아 있는 청중은 깔판을 빼내어 고깔모자를 만들어 쓰고 맨바닥에 앉아 연사들의 유세를 경청하는 열의를 보였다. 『정원식 정원식』연호소리와 함께 정 후보가 황소 같은 육중한 몸을 연단 위에 나타냈다.노익장의 전총리는 그의 별명인 컴퓨터 황소답게 특유의 미소를 띠며 청중의 환호에 두팔을 높이 들었다. 교육자이며 인격자인 동시에 누구보다 노련한 정치력과 행정력·운영능력을 갖춘 새서울 건설의 구원자는 정원식뿐이니 합심하여 밀어주자는 전원일기 김회장,최영한(최불암)의원의 열변이 터져나오자 다시한번 정원식 연호소리가 메아리졌다. 이어서 마포구청장후보의 연설이 계속되며 한표를 부탁했고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나서서 기초단체장후보들의 인사소개가 이어졌다.역시 하이라이트는 정원식후보의 연설이었다.돈은 막고 입은 연다는 이번 선거의 특색답게 말의 성찬이 이루어졌다. 교통난 해소,맑은 물 먹기,쾌적한 환경조성,서울시 빚청산,통일조국의 수도 서울로 면목을 일신하겠다는 정 후보의 공약은 시장만 되면 틀림없이 실현될 것만같이 호소력 있게 들려온다.말만 들어도 흐뭇하고 기분좋다.강물이 흐르지도 않는데 다리를 놔주겠다고 공약을 하는 사람이 정치가라 하지만 누가 되든 이번만은 부디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며 유세장을 뒤로 했다.아무튼 유세가 끝나도 교통비다,점심값이다 하며 돈봉투 안돌아다니는 것만 보아도 이번 선거는 유사이래 깨끗한 선거가 되는구나 싶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민주 조순/사려깊고 겸손… 신선한 연설 인상적/난마처럼 얽힌 서울시문제 해결사 될듯 가끔 내가 일하는 치과에서 『전에는 얼음도 깨물어 먹고 병마개도 이빨로 따곤 했는데 요즘은 이가 시리고 흔들린다』고 하는 환자를 만난다.그런 환자에게 내가 말한다.『이로는 얼음을 깨물어 먹거나 병을 따서는 안됩니다』 나는 오늘하루 조순 후보와 동행했다.그러면서 우리는 혹시 병마개를 이빨로 따고 얼음을 깨물어 먹는 시장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오늘 조순 후보는 현대미술관에서 박수근 회고전을 보았다.그리고 경인미술관에서 유홍준 교수,김초혜 시인,소설가 윤정모씨,화가 김정헌씨등과 함께 문화예술인 모임을 가졌다.그리고 명동유세와 신림동유세에 참석했다.조순 후보의 첫나들이가 미술관과 인사동에서 시작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특히 신림동에서 그의 연설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언제나 조용하기만 하던 조순후보의 변화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우리는 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 승리해야겠습니다』『서울시장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무능하고 오만하며 비전 없이 표류하는 집권층에게 단호한 각성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집권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온 그의 신중한 태도에 비추어볼 때 그의 말은 참으로 신선했다. 나는 솔직히 지금 서울이 안고 있는 심각한 위기에 대해 후보들이 얼마만큼 느끼고 있을까 궁금했다.누가 이 위기의 도시에서 시민을 구할 것인가. 나는 시민이 조순 후보는 사람은 좋은데 추진력이 좀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강력한 시장이라….우리 속담에 「싸우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듯이 지난 시절 군사문화의 잔재로서 소위 「빨리빨리」「후다닥 밀어붙이기」논리에 너나 할 것 없이 빠져 있지는 않은가.무언가 화끈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불도저식 시장을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바로 이런 우리의 요구위에서 성수대교는 만들어졌으며 가스관이 폭발했다.나는 그런 전지전능한 시장은 있을 수도 없고 바라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우리 국민이송수관이 몇개이며 그 예산이 어림잡아 얼마이고 하는 퀴즈문제에 집착하거나 서울의 문제를 단번에 고칠 수 있다는 쾌도난마식 공약에 현혹된다면 우리는 계속 위기의 서울을 만들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는 말했다.우리 사회가 잘못된 추진력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그는 또 말했다.야당을 택하지 않고 야당후보를 밀어주지 않고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서울시장만으로 서울시를 훌륭하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이라고.그는 미술관에서 「치원여민」이라는 휘호를 써주었다.「시민과 더불어 멀리 도달한다」는 말이라 했다.옳은 말이다.시장은 시민의 자발성을 끌어내 그들과 함께 문제해결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우리가 급하다고 해 이빨로 병마개를 따는 식의 강력한 시장을 원한다면 우리는 성수대교식 서울을 갖게 되리라. 조순,그는 사려깊고 결단력을 갖춘 사람이다.그는 소신있지만 독단적이지 않은 사람이다.그의 이런 민주적인 사고와 태도야말로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서울시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풀어가리라.그는 능력있지만겸손하며,그는 냉철하지만 온유하다. 오늘 내가 그를 보고 느낀 점이다.무엇보다도 그는 시민에게 배우고 시민을 두려워하는 서울시장이 될 것이다. ◎무소속 박찬종/소탈·친근미 넘쳐… 시민후보 실감/악수 유세 인기… 시민들 자원봉사 자청 D­15.6·27선거를 15일 앞둔 12일 아침7시50분.서울시민후보를 자처하는 무소속 박찬종후보는 제1한강교 중지도에서 이틀째의 공식선거운동을 시작했다.이번 서울시장선거 이슈의 하나로 떠오른 교통체증에 그의 이동차량 갤로퍼(서울2 서7582)가 발목이 잡혀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은 시각이었다. 이원등 상사의 동상이 마주한 자리에 멀티 큐브차량을 배경으로 선 박찬종 서울시민후보는 노량진쪽에서 강북으로 입성하는 출근차량을 향한 손인사를 시작했다. 8시50분,박찬종 서울시민후보는 선거유세 사상 유례가 없던 첫 손인사유세를 끝내고,1㎞ 서쪽에 자리잡은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이동,9시5분부터 흔듦에서 만남으로 변형된 악수유세를 시작하였다.상인들의 요구로 의자에 올라서 핸드폰을 이용한 10분 정도의 즉석연설이 끝나자,비린내가 발린 손을 앞치마에 급히 문지른 한 아낙이 안겨들듯이 손을 잡으며 귀밑으로 다가들어 뭔가 나즉하게 속삭였다.박후보의 손짓에 참모 하나가 다가가는 동안 조기를 파는 김상기씨(36)가 외상장부를 내밀어 사인을 받았다.「김상기씨 감사합니다.박찬종 1995년 6월12일」 9시40분,악수유세를 마친 박 후보가 아침식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들어간 곳은 수산시장 지하실 수산회관.1인분에 4천원인 우럭매운탕을 시키고 수행기자들과 노면담화식의 기자회견이 벌어졌다. 누군가 아낙이 귀에 속삭인 내용을 물었다.지원금을 보내고 싶으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것.박 후보측에 답지한 현재의 지원금은 약 1억원 안팎.법정선거자금 14억2천여만원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신문 5단통광고 2회 광고비에 해당하는 1억원으로 임대한 멀티큐브차량으로 박찬종 서울시민후보로서의 이미지선거,정책차별화선거로 지역할거주의를 앞세운 3김의 선거전략을 극복할 의지를 확실히 했다. 식사가 끝난 시각은 10시45분.자리에서 일어나는 박후보의허리띠가 없었다.서둘러 새벽에 나오다 저지른 실수였다.제1한강대교를 지나면서 그가 허리띠를 매지 않은 사실을 발견한 유권자는 몇이나 될까. 10여만원의 식사비용은 그를 지지하는 30대의 시민이 지불했다. 한시간을 민자당사 앞에 자리잡은 대변인실에서 휴식을 취한 박후보는 12시20분 여의도백화점 앞 용달트럭에 마련한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서울이 통일한국의 수도,모스크바와 북경·도쿄를 잇는 동북아의 축 서울,세계의 중심도시 서울로 만들겠다.태어난 곳은 동서남북 다 다른 곳이지만 여러분이 서울이 고향이라고 대답하는 서울로 만들겠다』점심식사를 위하여 나온 직장인들이 삽시에 몰려들었고,주위 건물난간에 무수이 많은 직장인이 나와 손을 흔들어 지지를 표명했다. 점심은 여의도백화점 지하실에 있는 설렁탕집이었다.유세를 취재나온 뉴욕 타임스의 앤드류기자와 즉석인터뷰가 이루어졌다. 박 후보는 4시쯤에 영등포시장앞 연흥극장 근처 육교 위에서 양쪽을 지나는 행인을 상대로,4시40분부터 영등포시장을 돌며 상인을 상대로 유세했다.이어 7시부터 노량진역 소광장에서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르는 유세 최대의 장비 멀티큐브차량을 배경으로 천여명의 퇴근시민을 상대로 연설했다.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으로 6월27일을 지역할거주의와 패권주의를 종식시키는 위대한 시민명예혁명의 날로 만듭시다!』 박찬종 후보가 서울시민후보인지,6월27일이 위대한 시민명예혁명의 날이 될지는 서울시민이 결정할 것이다.
  • LG­친·인척 납품사에 특혜 없었다/구본무회장 「공정한 룰」 지시

    ◎보수이미지 벗고 공격적 경영 혼신/가덕도 개발·데이콤 인수 적극 추진 LG그룹에 납품을 해온 구·허씨 소유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구본무 회장이 최근 친·인척들이 운영하는 거래선에 「공정한 룰」을 적용토록 지시,품질이 떨어질 경우 해약을 지시했기 때문이다.지난 2월22일 출범한 구 회장 체제의 달라진 LG의 한 단면이다. LG그룹은 보수적이란 말로 설명돼 왔다.공격보다는 수비,돌다리도 여러번 두드리는 조심성.친·인척에게 후한 인심을 보였던 것도 LG였다.지난 70년대까지 재계 1·2위를 다투다,지금은 3위로 밀린 주요인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구 회장의 등장으로,이런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구회장의 경영특징은 공격·정도의 두마디로 요약된다. 지난 4월 전략사업개발단을 발족,에너지·정보통신·생명공학·환경 등 21세기 성장사업 진출을 추진하기 시작한 게 공격경영의 신호탄이었다.발족 직후 LNG 복합화력 발전소 및 LNG 인수기지를 건설하는 계획과,부산 가덕도 신항만 개발 참여 청사진을 내놓았다.지난달에는광주에 오는 2002년까지 1조1천억원을 투자해 첨단소재·부품전문 단지로 조성하는 계획을,이에 앞서 4월에는 뚝섬 경마장 부지에 돔구장을 건설하는 청사진을 내놓은 것도 공격경영의 예이다. 한국중공업을 비롯한 기업의 인수에도 관심을 보이고,데이콤 인수에도 양보할 기미가 전혀 없다. 공격경영과 함께 구 회장체제를 설명하는게 정도 경영이다.깨끗하고 투명한 기업경영,정당하게 경쟁하게 한다는 것이 정도경영의 핵심.총괄은 지난 3월 발족된 공정문화추진위원회. 대주주인 구씨와 허씨 등 친·인척들도 그룹 계열사에 납품할 때 공정경쟁을 하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오너의 친인척들은 그동안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납품할 수 있고,거래조건도 후하게 받는 특혜를 누려 왔다.물론 LG그룹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각 계열사들은 오너 친인척을 포함한 전 부품업체에 그룹의 공정경쟁 방침을 통보하는 중이다.친·인척들이 특히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구 회장은 회장이라고 무게를 잡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매월 열리는 임원모임에도회의 시작 10분 전에 도착하고,회장 전용헬기도 그룹 임원들의 지방출장에 개방했다.회의에 참석해도,별도의 인사를 받지는 않는다. 초일류가 되려면,최고의 대우를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이달부터는 복지대책을 대폭 확대하기도 했다.구 회장 취임 후,LG가 대어를 낚은 것은 아직 없다.그러나 분위기는 익고 있다는 게 주변의 반응이다.
  • 서울시장후보 「빅3」 캐치프레이즈 분석

    민자당의 정원식,민주당의 조순,무소속의 박찬종후보 등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빅 3」는 이번 선거전에 사용할 캐치프레이즈를 확정하고 본격적인 홍보전에 돌입했다.이를 통해 다른 후보와의 차별성은 물론 자신의 이미지와 정책내용을 전파,부동표를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정원식 후보/“새로 나는 서울”/“교통·환경·안전 책임진다” 강한 의지/해박한 식견·강한 추진력 강조 정 후보는 이번 선거전의 캐치프레이즈로 「새로 나는 서울」을 내걸었다.서울은 6백년이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수도의 위치를 지키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도 했지만 곳곳에 문제도 산적해 있다는 게 정후보의 진단이다.따라서 서울이 자랑스런 수도,통일한국의 수도,21세기의 세계 도시로 도약하려면 민선시장의 출현과 함께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6공 때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모씨의 아이디어인 「새로 나는 서울」은 서울의 제2 탄생을 알리는 셈이다. 정 후보는 이와 함께 선거실천 구호로 「시원하게」,「깨끗하게」,「편안하게」를 채택했다. 「시원하게」는 교통시장을 지향하는 정 후보가 서울시의 최대 현안인 교통문제를 말끔히 해소하겠다는 뜻이다. 「깨끗하게」는 공해와 오염으로 찌든 서울을 맑은 물과 공기의 도시로 바꿔 놓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편안하게」는 도로·다리 등 각종 시설물과 가스 등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철저하게 점검,시민들을 불안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마음놓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게 치안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같은 선거구호 외에도 「컴퓨터 달린 황소」와 「슈퍼맨」이라는 정 후보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구호도 유세전에서 사용할 계획이다. 「컴퓨터 달린 황소」는 정 후보의 해박한 식견과 상대후보를 압도하는 경륜을 컴퓨터에 비유하면서 93㎏이라는 거구와 서울시민을 위한 진정한 일꾼이라는 뜻을 합친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높은 유행가 제목에서 따온 「슈퍼맨」은 젊은층의 신선한 감각에 호소하면서 여권후보로서의 강력한 추진력을 상징한다. 정 후보는 이밖에도 체구와 수도 서울이라는 자치단체의 비중에 걸맞는 「큰 심부름꾼」,「큰 서울 빅 정원식」 등의 구호도 예비로 마련해 두고 있다. ◎조순 후보/“살리자 서울 포청천 조순”/강직성·전문성 부각에 선거전 역점/「경제시장」 앞세워 차별화 시도 조후보 진영의 캐치프레이즈는 세가지로 나뉜다.우선 주 캐치프레이즈는 「살리자 서울,포청천 조순」이다. 인기 TV외화 프로인 「포청천」을 그대로 원용한데 대해 캠프내에서도 『조잡하지 않느냐』,『상업성이 강한 포청천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이의 제기가 있었으나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는데 적격이라는 판단에 따라 결국 채택쪽으로 기울었다고 한다. 김민석 대변인은 이와 관련,『서울시민은 포청천과 같은 강직한 시장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바로 이것이 포청천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조 후보가 과거 경제부총리와 한은총재시절 강직한 이미지를 풍겼고 지금도 그런 이미지가 남아있다는 현실적 측면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또 포청천을 캐치프레이즈에 넣음으로써 많은 이벤트를 만들수 있는 「부수이익」도 고려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조 후보 진영이 오는 11일 한강변에서 「VJ(빅토리 조)」로 불리는 자원봉사단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포청천 연날리기」를 개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 후보 진영은 이 캐치프레이즈를 후보등록전까지 최대한 활용하고 등록후에는 「서울을 살리자,포청천이 나섰다」로 바꿀 계획이다. 두번째 캐치프레이즈는 「새로운 서울,책임지는 시장」이다.표현에서 나타나듯이 일반적인 구호의 성격이 짙다. 세번째는 「미래는 경제시대,조순은 경제시장」으로 정했다.경제문제에 대한 식견이 돋보이는 조후보의 이미지를 한껏 부각시켜 정원식·박찬종 후보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배어 있다. 조 후보 진영은 이들 세가지 캐치프레이즈를 상황에 따라 적절히 혼용한다는 방침이다.물론 주 캐치프레이즈는 빠짐없이 들어간다. 조 후보의 강점인 경제와 강직성을 잘 드러낸 만큼 충분한 기대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찬종 후보/“맑고 빠르고 안전한 서울”/시민피부 와닿는 해결책 제시 주력/참신성·책임성·봉사행정 홍보 「맑고 빠르고 안전한 서울」.박후보 진영의 캐치프레이즈다.서울의 최대 현안인 환경·교통·안전문제를 짧은 문구로 표현했다.박후보 캠프의 선거 전략이 함축된 말이다. 한마디로 시민과 직결된 문제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이번 선거를 「정치선거」가 아닌 「생활선거」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다.때문에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말은 쓰지 않기로 했다. 박 후보의 투사적 이미지도 바꾸기로 했다.「거리의 반항아」같은 강성 이미지를 「무균질」의 부드러운 남자로 꾸민다는 생각이다.특히 정원식 후보나 조순 후보보다 젊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젊은 시장,뛰는 시장」의 캐치프레이즈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또 「행정은 서비스」라는 말을 내세워 시민이 주인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힘쓰고 있다.「베푸는 행정」이 아닌 「받드는 행정」을 펼친다는 것.이를 위해 「시장과 5만여 공무원은 서비스맨」「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정」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고 있다.문화적 측면을 고려한「살맛나는 서울」도 강조하고 있다.도시 생활에 찌든 때를 각종 문화행사로 말끔히 씻어주고 투명하고 시원한 시정을 펼쳐,「복마전」이라는 오명도 없애겠다고 한다. 중앙정치를 배제하고 주민자치와 생활자치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우리 서울,우리 살림,우리 시장」을 앞세웠으며 「시민에 의한,시민을 위한,시민의 시장」이란 말로 뒷받침했다. 박 후보진영은 지금같은 추세라면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한다.때문에 투표율이 높을수록 박 후보에게는 유리하다고 판단한다.그래서 다른 후보와 달리 「기권은 주민자치를 포기하는 것」,「기권은 서울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선전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박 후보 캠프는 선거 직전에 「이정도면 됐다」「예스 박찬종」이라는 말로 후보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에게 박 후보의 낙점을 유도,부동표를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 “환경오염은 우리모두의 책임”/70%

    ◎“10부제 시행 다리보수이후도 연장 바람직” 78%/국민의식·교육·홍보 부족 에너지절약운동 미흡/한국여학사협,「환경보호… 」의식조사 우리나라의 현재 환경·에너지문제는 「전반적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이같은 결과는 한국여학사협회사가 최근 전국 6대도시 만20세 이상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환경보호와 에너지절약 실천에 관한 의식조사 결과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에너지관리공단 95년도 에너지절약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환경오염의 가장 큰 책임자는 개인·정부·기업을 포함한 「우리 모두」라는 응답자가 전체의 70%,「정부에 우선 책임이 있다」가 20.5%,「공해배출 기업」이라고 답한 경우가 9.1%로 나타나 환경오염의 책임이 사회구성원 전체에 있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에너지절약과 관련,자가용 10부제에 대한 의견으로는 「에너지도 절약하고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이라는 의견이 44.4%,「교통체증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할 수있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응답이 44.3%로 나타나 자가용10부제 효과의 내용은 환경,에너지,교통순으로 다소 상이하지만 정책자체에 대해서는 10명중 9명꼴인 88.7%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특히 성수대교붕괴 이후 실시된 자가용10부제가 「다리보수 이후에도 계속 시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78.2%로 압도적이었다. 지금까지 전개돼온 에너지절약운동의 문제점으로는 국민의식부족 33.9%,교육·홍보부족 33.7%,정부·제도적 차원의 문제점 23.1%,자동차문제 2.9%,기업의 문제 1.3%순으로 조사됐다. 이 보고서는 또 기존의 에너지절약실천 양태가 아직까지 「한집 한등끄기」식의 소극적인 실천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설문결과 구체적인 에너지절약 실천방안으로는 한집 한등끄기,사용하지 않는 전기제품코드뽑기 등의 절전이 64.3%,절수 23.3%,쓰레기분리수거·폐지이용 5.6% 등의 순이었다고 밝혔다.
  • DJ텃밭 「비민주바람」 심상찮다

    ◎전남 천일염조합원 무더기 민자 입당 안팎/신안군 주민만 9백여명… 민주 지도부 당혹/당내분·공천잡음 따른 지역정서 변화 반영 6·27 지방선거를 불과 20여일 앞두고 천일염 전남도지부 조합원 1천2백여명이 민자당에 무더기로 입당의사를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5월 광주의 무등아파트 주민 2천여명이 집단으로 민자당에 입당하면서 시작된 「변화」의 분위기가 계속 확산되는 것이다. 광주 무등아파트 주민들의 반발로 시작된 「반민주 바람」은 지난 20일에는 나주시민 1천5백명의 민자당 집단입당을 불러 왔었다. 이 때만 해도 지역 정가에서는 『제비 한마리가 왔다 해서 봄을 노래할 수 있느냐』며 느긋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천일염 조합원들은 대부분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고향 주민들이라는 점에서 민주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입당 의사를 밝힌 조합원 1천2백명 중 70% 이상인 9백여명이 신안군 주민들이다. 이번 사태는 표면상 일부 단체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구체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목되는 점은 최근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목포 방문을 둘러싼 잡음이다.오는 11일로 예정된 김이사장의 방문에 대해 목포의 일부 재야 사회단체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노」이다.당초 김 이사장측은 기독교 등 종교계와 목포대 등에 초청해 줄 것을 타진했으나 정중하게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민주당 소속 이모 교육위원이 이사장인 목포전문대학의 초청으로 방문 일정이 잡혔지만 목포 민주화운동 협의회와 목대학생회 등에서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재야단체의 한 인사는 방문 반대 이유를 『불합리한 공천과 지역정서의 변화』라고 설명했다.그동안 광주·전남 지역 상당수의 지구당에서 공천과 관련된 잡음이 이어진 데다 중앙당의 당권내분과 집단탈당 등으로 지역정서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광주YMCA 시정지기단 등 시민단체들도 지난 달 「공천 과정이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했으며,공천으로 인한 잡음은 목포 등 전남의 여타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됐다.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도의원 18명이 무더기로 무소속 출마를 결행했다. 도의원 뿐 아니라 현역 기초의원들의 무소속 출마는 지지 당원들의 동반 탈당을 몰고와 밑바닥의 지지기반을 크게 흔들어 놨고,주민들의 집단 탈당을 불러 왔다. 이같은 호남의 비민주 움직임이 곧 친여 분위기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다.그러나 지역에서는 과거「반민자 친민주」에서 「비민주,비민자」의 양상으로 바뀐다는 데는 별 이의가 없다.
  • 상습 과적차량“운행정지”/한달간 실태 조사… 골재차량 중점“체크”

    ◎공익요원 3교대로 단속 정부는 교량 및 도로파손의 주범으로 지적받고 있는 과적차량에 대한 원천적인 단속을 위해 일정횟수이상 과적으로 적발된 차량에 대해서는 운행을 중지시키기로 했다. 정부는 특히 과적차량을 운행한 채석장·골재채취장·공사장등에 대해서는 허가를 취소하거나 일정기간 채취중지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국무총리실은 1일 이같은 내용의 과적차량 근절을 위한 보완대책을 마련,관계부처에 시달했다. 정부는 각 시장·군수·구청장으로 하여금 과적차량의 원인이 되고 있는 채석장과 골재채취장등에 대한 일제조사를 이번 달에 실시,현황을 파악한 뒤 분기마다 시행하는 합동단속의 중점대상으로 삼을 계획이다. 또 경찰과 합동으로 채석장과 골재채취장의 입구와 주변통행로및 우회도로등에 이동단속반을 투입해 수시로 단속을 실시하고 공익근무요원의 3교대근무를 통해 심야등 취약시간대에도 지속적인 단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정부는 단속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 시·도 공무원 외에 시·군·구의 공무원에게까지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한편 사법경찰관리로 임명된 공무원에 대해서는 법무부에 위탁해 수사관련 직무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부터 자동차안전기준규칙이 시행됨에 따라 자동차총중량표기가 의무화되고 다음달 1일부터 개정된 도로교통법이 시행됨에 따라 과적차량에게는 6개월이내의 자동차사용정지처분이 내려진다.
  • 창원시/민자·무소속 싸움… 젊은층표가 변수(기초장 격전지)

    도청 소재지인 창원시에는 민자당 공천으로 한 발 앞서가는 김창수씨(61·전 시장)의 뒤를 무소속 박용기씨(50·도의원)와 공민배씨(42·전 청와대 행정관)가 추격하고 있다. 이 밖에 김말태씨(58·전 경찰서장)와 민주당 공천을 받은 정기영씨(48·시의원),김영우 변호사(42) 등도 출사표를 던졌다. 창원시의 유권자는 29만여명.이 중 72%를 차지하는 20∼30대의 향배가 당락을 좌우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 전시장은 도내 시장과 군수를 두루 역임한 관료 출신.여당 조직의 뒷받침을 받는 데다 무소속 후보가 난립한 상황이라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30여년의 행정경험을 내세우지만 젊은 층과 여성들로부터 참신성과 개혁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씨는 경남고와 경희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함양군수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창원 토박이.김 전 시장이 기획실장시절 공보담당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젊고 참신한 전문 관료 출신이라는 이미지로 여성들과 청년층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그러나 바람이 얼마나 표로 연결될 지는 미지수이다. 서울공대 출신인 박씨는 창원공단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기업인.민자당과도 인연을 맺고 있었으나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뛰어들었다.행정에 경영기법을 도입,창원을 국제 도시로 발전시키겠다며 공단 근로자들을 집중 공략중이다. 김 전 서장은 공직생활중 다진 기반과 토착민들을 대상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으며,시의원 정씨와 김 변호사도 본격적으로 표밭을 누비고 있다. 그러나 당선권에 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진주시/모두 9명 출사표… 도내 최대 접전지 서부 경남의 중심인 진주시장을 노리는 후보는 9명이나 된다. 도내 최대의 격전지로 벌써부터 금품살포와 과거 들추기식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등 선거전이 혼탁하다. 선두 그룹은 민자당 공천을 받는 백승두씨(55·전 진주시장)와 무소속의 권석진(60·상의 회장)·문병욱씨(59·고려병원장) 등 3명. 아직은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팽팽하다. 「변화」를 주장하는 노정수씨(46·전 도의회 부의장)가 이들을 추격하고 있으며,윤용근(41·국회의원보좌관)·허병호975·전 통일민주당 중앙 상무위원)·이찬석(63·전 경상대 동창회장)·김동준(62·삼미건축대표)·김수생씨(55·삼동개발 대표) 등도 전의를 가다듬고 있다. 진주시 유권자는 22만5천여명. 전통적으로 친여·보수 성향이지만 지난 14대 총선에서는 여당 후보 2명이 모두 고배를 마셨다. 각 후보들은 투표율을 70%로 예상하고 6만여표만 얻으면 당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름대로들 기반이 튼튼하고 그만큼 표가 찢어져,근소한 표차로 당락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백씨는 진주고와 부산대를 나와 진주시장을 역임,각계층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풍부한 행정경험과 청렴성이 돋보인다. 그러나 팽배한 반민자 정서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권씨는 진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영진프라스틱을 경영하는 기업가.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바라는 상공인과 근로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그 동안 지역발전에 대한 기여도가 낮다는 비판이 부담이다. 문씨는 진주농고와 부산대 의대를 나온의학박사로 3∼4년 전부터 꾸준히 다진 서민층이 기반이지만 공무원들의 지지가 약한 편이다.
  • 한센씨병(외언내언)

    한센씨병이 국내에서 아직도 한해 1백여명씩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생활수준 향상과 치료약의 발달,그간 국가관리 효율화 등으로 환자 발생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았던 일반의 기대 보다는 높은 수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된 요즘 나라별 한센씨병 새 환자 발생수는 한해 미국 1백45명,영국 13명,스위스 9명등 선진국은 아주 낮다.인도 6천3백여명,인도네시아 3천8백명,중국 3천7백여명,태국 1천5백여명 등에 비해서는 우리는 이 병 퇴치에서도 선진국에 가깝기는 하다.그렇지만 후진국병으로 불리는 전염성 질환을 계속 발생시키고 있는 것에는 국민적 경각심이 있어야 한다. 한센씨병을 옛날에는 천형의 병으로 불러왔다.나균이 말초신경과 피부에 주로 침범하여 얼굴이나 수족을 변형시키고 시력을 잃게 하여 사회에서 쫓기고 핍박받는 질환이었다. BC 6백년에 인도에서 이 병이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BC 2백년 중국에도 발견 기록이 있다.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도 있는 인류사상 가장 오래된 병이다.1874년 노르웨이 의학자인 한센씨가 처음으로나균을 발견한후 치료에도 진보를 보게 되고 병명도 나병에서 한센씨병으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다.환자들에게는 격리수용 가족단절 등 너무도 수난사가 많았던 한맺힌 질환이다. 한센씨병은 그 균이 특별하여 지금까지도 정확한 감염경로는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균모양이 결핵균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시험관내 인공배양이 어려워 의학적 발전이 저조한 것이다.그렇지만 지금은 치료약이 획기적으로 발전돼 있고 완치도 되고 있다. 조기발견 치료하면 조기완치로 정상인과 다를 게 없다.나병은 유전병이 아니다.나균의 감염으로 오는 만성피부 전염병이다.단지 나병은 성인보다 어린이에게 더 잘 감염된다.국가적인 계몽과 관리 강화도 필요하지만 주민들 스스로의 조기발견 노력은 필수이다.일본은 내년 나예방법을 폐지한다고 한다.
  • 구멍뚫린 국경(두만강 7백리:13)

    ◎예나제나 북한쪽 변방선 밀수성행/쌀팔아 소금사서 야밤 국경 넘나들고/강변주민 10명중 8명은 밀수로 생활/보초서는 민병도 거들고 북한 요원도 한몫 두만강 7백리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에는 도적골이라고 있다.밀수꾼들이 도둑처럼 그 골짝으로 무리져서 다녔다고 해서 난 이름이다.이름 그대로 선구,배가 들어오는 어귀라서 역래로 밀수가 성행하던 고장이다. 일제시기 선구에는 해관과 일본경찰서가 있었고 곡물수레를 배에 실어 강을 건너 종성으로 넘나들었다.밀수꾼들은 야밤 삼경 도적골에서 도둑 고양이처럼 쌀짐을 지고 살금살금 강을 건너갔다.종성장거리에서 쌀을 팔아 소금을 사서 다시 야밤 도강을 시도했다.선구촌의 같은 패거리들이 소리없는 신호를 강건너로 보내는데 감시가 심할 때는 집 문앞 빨랫줄에 빨래를 널었다.빨래가 없으면 안전하다는 신호로 여기고 강을 건넜다. ○선구촌에 「도적골」 존재 해관을 용케 통과했어도 죽음의 신은 내내 그림자처럼 묻어다녔다.용정시 삼합진 경내에는 재피골이라고 있다.「잡히는 골」이 입에 오르면서 줄어든 이름이다.광복 전에 재피골에는 공안분주소가 있어서 오랑캐령을 넘는 밀수꾼들이 많이 잡혔다.그래서 사람들은 중간 골짜기로 다녔다.그런데 그 골짜기에 중국사람 쑹(송)가가 홀아비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았단다.산중의 외딴 그 집으로 밀수꾼들이 홀로 들어가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쑹가는 사람을 죽여서 뒷산 감자굴에 차곡차곡 쟁여놓았는데 광복후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용정시 백금향 평정 사람이 조선에 가서 무명 다섯필을 둘러메고 강을 건너 집으로 가는 길에 백금의 김옥래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이튿날 평정으로 떠나갔는데 종무소식이었다.후에 숲속에서 나무에 목을 매고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그런데 목을 맨 가죽띠가 김옥래의 것이었다.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결국 무사히 풀려났다.그런데 몇십년 후 문화대혁명때 그 일로 다시 잡혀 맞아죽었다고 한다. 운수 좋게도 재피골의 쑹가같은 강도를 만나지 않고 갈리골(오고 가는 길에 그 곳에 당도하면 목이 갈한다,다시 말하면 목이 탄다고 해서 생긴 이름)에 이르러 갈한 목을 축이고 집에 당도했다 해도 수시로 덮쳐드는 집사대의 눈길이 무섭다.집사대가 마을에 들어서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당시 소금은 금물이고 강역의 사람들은 열에 여덟은 밀수로 살아가는 판이라 두근닷근 뛰는 「일곱근」마음은 한시도 시름을 놓지 못했다.일단 발견만 되면 영창에 들어가거나 벌금을 톡톡히 내야만 했다. 내 외할아버지 허영혜는 강원도 내촌면 물레방앗골에서 양부모 시묘 6년을 해온 소문 난 효자였다.20년대 「나라가 망했는데 효자가 어찌 있으랴」고 효자문을 거절하고 오늘의 화룡시 용화향 개사냥골로 이주를 해왔었다.한번은 내 모친(허숙·78세·현재 필자와 동거)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였디.집사대가 오자 아버지가 소금을 옥수수밭에 감추었다 이기야.그런데 세상을 모르는 내가 소곰재(잠자리)를 잡느라고 「소곰재 꽁꽁 앉은 자리 앉아라.먼데 가면 죽는다」라고 하면서 옥수수밭을 뱅뱅 돌지 않았겠니.그 소리를 듣고 집사대가 옥수수밭을 수색해서 아버지를 붙잡았디.집사대 대장이 일본 사람인데 아버지의 상투를 끄잡고 물매를 안겼디 않았갔니.벌금을 내고 무사히 풀리긴 했어도 아버지는 일본놈이 더러운 손으로 상투를 어지럽혔다고 그날 저녁 머리를 잘랐디.목숨보다도 더 귀중히 다루어온 아버지의 상투는 철없는 내 불찰로 없어졌다이』 ○소장사로 떼돈 벌어 광복후 공산당은 청년들로 공안부대를 조직하고 변경을 단속했다.하지만 청년들 역시 밀수꾼 집안의 자손이고 또 그들도 밀수를 밥 먹듯 해왔으니 보초는 허수아비나 다를바 없었다.천중백옹은 대약진 시기 부동촌 촌장으로 사람들을 조직하여 대량 밀수를 하면서 민병들을 거느리고 변경을 순라했다. 무정한 법은 유정한 인정에 진다.이것을 중국 사람들은 앞문을 막으면 뒷문이 열린다고 한다.박길남옹의 부친 박학철의 밀수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광복나서 얼마간 중국에서 조선 돈이 통용되었디요.북흥촌 김영준이라는 사람이 회령에서 온 소련군한테 조선 돈을 받고 소를 팔았거든요.그 돈을 가지고 회령에 가서 소를 사자니 이미 폐지된 화폐였다 이겁네다. 그때 소장사가 좋았다구요.중국에서 소 한마리를 팔아 갖고 가면 소 두마리가 되었디요.우리가 살던 대소가 모두 17호였는데 세집을 내놓고는 모두가 소장사를 해서 한해에 몇백마리가 건너왔습네다.골안에서 잡아서 삼합장에서 팔기도 하고 용정에 갖다 팔기도 했디요.검사잠 잠장은 보고도 못본체 했구만요.그때나 지금이나 고약한 놈은 어디에나 있었습네다.한 마을에서 누군가 고자질을 해서 위에서 공작조가 내려오지 않았갔시요.집집마다 장정들이 잡혀 들어갔디요.이학균이가 공작조 조장이고 간사로 박씨가 있었는데 우리하고 동성동본이라 어찌어찌 하라고 알려주어 아버지는 30만원(지금 돈 30원)을 벌금내고 놓여 나왔디요.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2년,혹은 4년씩 거의 모두가 징역살이를 했구만요. ○53년이후 최고 극성 변강 보초를 강역 민병들이 담당했으므로 녹아나는 것은 면목을 모르는 외지 사람들이었다.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고지식하고 소박했으므로 돈보다 정으로 통했던 것이다.낯선 사람이라 해도 강하게 나오면 방임했다.밀수꾼은 모험을 하는 것이요 보초꾼은 직책일 뿐이라 각박하게 나오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1953년부터 3년동안 밀수는 고조를 이루었다.쌀을 갖고 가서는 암모니아비료며 광목이며 백곰표 크림이며 연필,종이 등을 대량 들여왔다.보초를 서는 민병들도 밀수대열에 끼어들었다.집집마다 밀수를 했으므로 처벌을 준다고 해도 기껏 경고를 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당시 두만강역에서 밀수에 죽은 사람은 단 하나,그것도 공포를 쏜 총알에 재수없게 맞았다.총을 쏜 민병은 당황한 김에 시체를 끌어다가 파묻었다.
  • 미,한반도 대상 모의 「컴퓨터전」/「대초원의 전사」워게임 한창

    ◎북 기습남침 대비… “인명피해 최소화”/지도부서 위성통해 전황파악·지휘 미국이 한반도를 가상전쟁지역으로 설정,21세기형 컴퓨터 전쟁연습에 한창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은 「대초원의 전사」로 명명된 이 워 게임 모델을 통해 북한의 기습남침에 대응해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미래형 전쟁지휘체계를 개발중이다. 이 워 게임은 단위부대와 전쟁지도부가 모든 전쟁상황을 위성이나 조기경보통제기(AWACS)등을 통해 동시에 지켜볼 수 있도록 돼있다.또 전쟁지휘부가 화면을 보면서 일선부대나 포대·항공기·전함등에 즉시 임무를 부여,공격력을 집중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다음은 미국 캔자스주의 포트 리븐워드기지에서 지난주부터 진행중인 「대초원의 전사 워게임」을 보도한 캔자스 시티 스타지의 현장보도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가상의 상황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증대되면서 북한군이 국경선에서 기습공격에 나섰다.서울은 곧 포위상태에 들어갔으며 주한미군 병력은 북한군 남하를 저지하고 있다.이때 최첨단 통신및 무기체계를 갖춘 특수이동타격대가 동원되면서 모의전쟁이 시작된다.이 타격대는 21세기 전쟁이 어떤식으로 전개될지를 보여주게 된다. 유럽주둔 미군사령관 윌리엄 크라우치대장은 이와 관련,『이번 가상전은 앞으로 20∼30년 또는 그 이후 시점을 대비해서 가장 효율적인 조직·기술·무기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의전을 위해 기지에 상주하는 1천3백명 전원이 지난주부터 매일 12시간씩 컴퓨터앞에 매달려 있으며 독일 그라펜보르에서부터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지의 전산망이 서로 접속돼 있다. 이번 작전에서는 북한을 오렌지랜드로,한국은 블루랜드로 명명하고 있다. 이 가상작전에는 한국장교와 프랑스·영국장교들도 참여하고 있다. 이번 가상작전에서는 「피닉스」라고 불리는 컴퓨터시스템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이 컴퓨터 시스템은 첩보위성·정찰기 등으로부터 얻은 각종 전술자료를 사단·연대·대대와 심지어 일선중대까지 직접 공급해 준다.이같은 정보전달체제는 지금은 실현불가능하지만 2010년이면 실전사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 컴퓨터 시스템이 완료되면 특정 사단의 모든 야포를 단일목표물에 발사하는데 현재 40∼50분이 소요되던 것이 10분으로 단축된다. 특수이동타격대의 가상병력구성은 아직은 실험단계이다.이 타격대는 보통의 사단보다 약 3분의1 큰 규모이며 몇개의 여단으로 구성된다.그러나 현재의 여단과 달리 스스로 중화기부대와 정찰,항공,포대및 방공부대를 포함하고 있다.이 타격대는 오는 2010년 미육군이 갖출 것으로 예상되는 정밀유도 사정거리 2백80㎞의 다탄두로켓과 같은 무기들을 구비하고 있다.이 무기는 한꺼번에 탱크 6대를 거의 실수없이 격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부대들은 미군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전쟁의 속도를 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금까지 보지 못한 작전을 펼칠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