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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무슬림도 적셨다

    월드스타 ‘비’의 공연은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통했다. 비의 소속사인 스타엠 관계자는 29일 “지난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부킷 자릴 푸트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비 월드투어 인 쿠알라룸푸르’ 공연에 기대를 뛰어넘는 1만 2000명의 관객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보수적이고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 관객들의 반응이 어느 지역보다도 뜨거운 것에 대해 비와 모든 스태프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비는 공연 내내 어느 때보다 자주 특유의 귀여운 미소로 무슬림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공연전 말레이시아 문화부의 엄격한 규제에 따라 공연영상 및 의상수정이 불가피했는 데도, 무슬림 여성팬들은 뚜둥(Tudung)을 쓰고 입장해 공연 내내 엄청난 열기를 나타냈다. 이날 비는 홍콩 공연에서 입은 팔부상 때문에 ‘아임 커밍’이 끝난 다음 잠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였으나, 팬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성과 함께 이내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공연장에는 홍콩의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 ‘진추하’가 찾아와 비를 격려하기도 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열린세상] 통합의 조건/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인하대 겸임교수

    통합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도성장 시절에 자주 쓰이던 ‘총화단결’이라는 구호이다. 국민이 일심단결해서 목표를 이루자는 정치적 논리로, 오랫동안 국민통합이라 하면 많은 국민들이 이 뜻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실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통합의 의미는 그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해소를 통한 사회적 통합을 가리킨다. 그래서 ‘통합의 위기(integration crisis)’라 하면 소외된 계층들이 그 사회의 기득계층이나 특권계층에 대해 불만을 갖고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말한다. 지금 많은 이들이 통합을 외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통합의 위기’에 빠져 분열되었음을 의미한다. 분열의 핵심은 당연히 경제이다. 소득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니계수이든, 소득 양극화를 보여주는 ER지수이든 별로 좋아지고 있는 것은 없다. 좋은 일자리 대신 나쁜 일자리가 늘고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는 자료도 나온다. 특히 부동산에 의한 자산 양극화는 국민 분노의 초점이 되고 있다. 양극화의 갈래도 여러 가지이다. 부동산 양극화를 필두로 교육 양극화, 수도권과 지방간, 도시와 농촌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양극화 등 그야말로 총체적이다. 당연히 사회경제적 층위의 양극화는 ‘이념’ 양극화도 심화시키게 마련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의 이념성향이 북한에 대한 관점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며 나뉘었다면, 최근에는 성장과 분배와 같은 ‘경제’에 대한 가치관을 중심으로 확연히 보수와 진보로 나뉘고 있다. 지역문제와 대북정책에 따른 사회적 분열을 해소하기도 전에 경제 문제로 인한 ‘계층 양극화’가 이념대립의 동력이 되고 핵심적 사회분열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재분배 정책을 통한 양극화 해소가 중요하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3만달러 시대에 진입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해법을 놓고서 보수와 진보의 양쪽 입장은 갈린다. 꼭 짚고 넘어갈 것은 둘 중 어느 편이 맞는 것이든 ‘국민의 합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만일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대로 성장 잠재력을 향상시켜 장기적으로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면 서민과 중산층이 불만을 누르고 한동안 더 참아야 됨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을 요구할 때에는 도덕성에 입각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반대로 진보 측의 주장대로 재분배를 촉진하는 공공정책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고자 한다면 부를 더 많이 점유하고 있는 상위 계층의 양보가 필수적이다. 억울하게 뺏긴다는 느낌을 줘서는 안 되며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것임을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분열을 막연히 비난하거나,‘통합’을 구호로 외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분열에는 이유가 있으며,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분열이 먼저 해소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금년은 대선이 있는 해이다. 대선후보와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양극화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법을 내놓고 있다.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가 양극화 해소의 방향을 정하고, 양보해야 하는 쪽의 동의를 구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가족이든, 단체든, 국가이든 아무 문제없이 조용히 갈 수만은 없다. 문제가 있다면 불만을 가진 쪽을 참도록 설득하든지, 아니면 그들의 불만을 해소해 주든지 둘 중의 하나는 해줘야 사회구성원이 함께 뭉칠 수 있다. 이러한 합의에 실패한다면 정치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국민통합’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인하대 겸임교수
  •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무너진 ‘간판’… 한국 2위 비상

    한국 남녀 쇼트트랙의 간판 안현수(22·한국체대) 진선유(19·광문고)의 쇼트트랙 첫날 금사냥 실패는 한국선수단에 충격적인 사건이다. 한국선수단은 당초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8∼10개의 금메달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중국에 이어 종합2위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달랐다. 물론, 정은주가 대회 첫 금메달을 신고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당초 전관왕(금4개)을 벼르던 안현수는 일단 목표가 물거품이 됐고, 여자 500m를 제외한 나머지 3종목 석권을 노리던 진선유 역시 목표를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둘은 지난해 이맘때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나란히 올림픽 3관왕에 오른 한국 쇼트트랙의 ‘자존심’이다. 더욱이 남녀 1500m는 둘 모두가 훤히 트랙을 꿰뚫고 있는 ‘장기 종목’이다. 결국 둘의 탈락은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다. 더욱이 동계아시안게임에 처음 나선 중국의 신예 수이바쿠에 무릎을 꿇은 안현수의 경우는 아시아 ‘쇼트트랙의 지존’ 한국의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중국은 그동안 한국 쇼트트랙을 따라잡기에 나서 이미 여자부에서는 왕멍 등 걸출한 스타를 배출해 냈고, 남자부에서도 ‘대항마’를 길러왔다.“이대로라면 자기네 안방에서 대회를 치르는 중국의 텃세까지 가세할 경우 종합2위 수성의 버팀목이던 쇼트트랙에서 6개 이상의 메달을 따내기가 힘들 수도 있다.“는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물론 안현수와 진선유 모두 대회 직전까지 발목과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제 컨디션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막판 뒷심 부족 때문에 스케이트날 반쪽 길이 차이로 물러선 건 ‘지존’들의 지나친 자신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女쇼트트랙 새별 떴다

    창춘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밭’인 쇼트트랙 첫날 한국선수단의 희비가 엇갈렸다.‘새별’ 정은주(19·서현여고)가 대회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반면 기대주 안현수(22·한국체대)와 진선유(19·광문고)는 모두 은메달에 그쳤다. 정은주는 29일 창춘 우후안체육관에서 벌어진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에서 2분24초089로 동갑내기 진선유(2분24초124)를 0.035초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함께 나선 변천사(20·한국체대)는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밀치기반칙으로 실격, 아쉽게 동메달을 놓쳤다. 이어 열린 남자 1500m 결승에서도 전관왕을 벼르던 안현수가 중국 수이바쿠에 0.089초로 밀려 2위에 그쳤다. 이호석(경희대) 송경택(고양시청)과 함께 결승에 오른 안현수는 마지막 바퀴에서 중국의 수이바쿠(2분20초590)에 뒤지는 2분20초697로 결승선을 통과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긴 정은주는 여자 쇼트트랙의 기대주. 토리노 동계올림픽 여자 3관왕의 위업을 일군 진선유와 동갑이지만 생일은 3개월이 빠르다.161㎝,55㎏의 크지 않은 체격에 소녀티가 채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이지만 순발력만큼은 발군. 진선유의 그늘에 가려 있던 정은주가 국제무대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건 지난해 루마니아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정은주는 당시 1000m와 2000m 계주,1500m·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개인종합 1위까지 차지해 5관왕의 위업을 일궈냈다. 같은해 4월 종합선수권대회에서도 정은주는 500m에서 대표팀 에이스인 진선유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정은주는 이번 대회에서도 진선유와 폭발적인 파워를 자랑하는 변천사(한국체대)보다 스포트라이트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지만 중국 선수들까지 모두 따돌리고 감격의 첫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한편 한국 빙속의 장거리 전문 여상엽(23·한국체대)은 대회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여상엽은 남자 5000m에서 6분43초34로 결승선을 통과, 일본의 히라코 히로키(6분39초71)에 3초63 뒤진 기록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여상엽은 “기대하지 못한 메달을 따게 돼 너무 기쁘다.”며 “우승은 놓쳤지만 다른 선수들이 금메달을 많이 따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앞서 이주연은 여자 3000m에서 4분18초05로 결승선을 끊어 3위에 오른 타바다 마키(일본·4분17초00)에 1초05 모자란 기록으로 4위에 그쳤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6국)] 후수의 선수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6국)] 후수의 선수

    제3보(51∼67) 흑51로 빠진 수는 기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실상의 선수 활용이기도 하다. 흑51을 본 주형욱 3단은 지체하지 않고 백52로 받았다. 이 수를 생략하고 (참고도1) 백1로 한칸 뛰어서 우변을 차지하면 흑2로 메우는 순간 백은 중앙 진출이 원천 봉쇄된다. 게다가 절대 선수이기 때문에 백은 3으로 받아야 한다. 그때 흑4를 한번 더 선수하고 6으로 걸쳐가면 하중앙 일대가 전부 흑집으로 굳어진다. 중앙 세력이 워낙 철벽이기 때문에 백은 섣불리 삭감을 시도할 수도 없다. 흑53의 한칸 뜀도 선수나 다름없는 수이다.(참고도2) 백1로 걸친다든지 손을 빼서 다른 곳에 두면 흑2로 먹여치고 4로 막는 수가 선수이다. 백5부터 백이 두어도 겨우 한수 차이로 흑돌을 잡을 수 있으므로 흑4에는 손을 뺄 엄두도 낼 수 없다. 결국 흑53은 이른바 후수의 선수이다. 그래서 우변 흑진을 굳혀주는 의미가 있더라도 백54로 끼워 이은 것이다. 백58로 다가선 수는 하변 흑 대마를 압박한 수. 흑가로 받아달라는 주문이지만 그것은 굴복의 느낌이다. 그래서 흑59로 뛰어나간 것인데 백도 60부터 64까지 꽉꽉 틀어막으며 최강으로 버틴다. 그러자 윤준상 4단은 흑65,67로 맞끊으며 좌하귀에서 수단을 부리기 시작했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 직업과 그 한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 직업과 그 한계

    그동안 한양 인왕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중인들의 이야기를 몇차례 소개했다. 그 가운데는 관청의 아전들이 많았지만, 역관이나 의원들도 있었고, 서당 훈장도 있었으며,인쇄전문가도 있었다. 조선시대 신지식인 이라고 평가되는 중인은 과연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본다. ●중인의 직업은 수십가지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인문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지으면서, 서론이라고 볼 수 있는 사민총론(四民總論)에서 우리나라 백성을 네가지로 나누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네 부류를 신분으로 보지 않고 직업으로 보았다. 벼슬하지 못한 선비는 농·공·상(農工商) 가운데 한 직업을 택해 일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혹시 사대부라고 하여 농·공·상을 업신여기거나 농·공·상이 되었다고 하여 사대부를 부러워한다면, 이는 모두 그 근본을 모르는 자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직업은 네가지가 아니라 수십가지였다. 이 책의 총론에서 그 예를 들었다. “종실(宗室)과 사대부는 조정에서 벼슬하는 집안이 되고, 사대부보다 못한 계층은 시골의 품관(品官)·중정(中正)·공조(功曹) 따위가 되었다. 이보다 못한 계층은 사서(士庶) 및 장교·역관·산원(算員)·의관과 방외의 한산인(閑散人)이 되었다. 더 못한 계층은 아전·군호(軍戶)·양만 따위가 되었으며, 이보다 더 못한 계층은 공사천(公私賤) 노비가 되었다.” 이 가운데 “노비에서 지방 아전까지가 하인(下人) 한 계층이고, 서얼과 잡색(雜色)이 중인 한 계층이며, 품관과 사대부를 양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집안의 흥망성쇠에 따라 “사대부가 혹 신분이 낮아져 평민이 되기도 하고, 평민이 오래 되면서 혹 신분이 높아져 차츰 사대부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중인은 전문직업인 이중환이 말한 중인은 서얼과 장교·역관·산원·의관 등의 전문직업인이다. 서얼은 물론 양반이지만 진출에 제한받기 때문에 저절로 중인과 한 부류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위항문화가 가장 발달한 시기는 정조시대였는데, 정조(正祖)는 중인과 시정배(市井輩)를 이렇게 구분하였다. “중인에는 편교(校)·계사(計士)·의원·역관·일관(日官)·율관(律官)·창재(唱才)·상기(賞技)·사자관(寫字官)·화원(畵員)·녹사(錄事)의 칭호가 있다. 시정(市井)에는 액속(掖屬)·조리(曹吏)·전민(廛民)의 이름이 있다. 이것이 중인과 시정의 명분이다. 이들 밖에도 하천(下賤)의 복사역역자(服事力役者)들이 수만이나 되니, 군예(軍隸)·노복(奴僕)·공(工)·상(商)·용고(傭雇)같이 미천한 자들도 또한 낫고 못한 차이가 있다.” 정조가 말한 중인들의 직업을 요즘으로 치자면 장교, 공인회계사, 의사, 외교관 겸 동시통역사, 천문학자, 변호사와 법관, 서예가, 화가, 공무원 등이다. 정조는 중인 외에 시정(市井)과 하천(下賤)을 구분했는데, 이 세가지 계층을 아울러 당시에는 위항인(委巷人)이라고 했다. 사대부와 상민 사이의 중간계층인데, 넓은 의미의 중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임숙영이 지은 서문에 “유희경은 본래 위항인이다.”고 했는데, 본래는 천한 종이었다.‘화곡집’ 서문에는 “아깝게도 황군은 위항인이다.”라고 했는데, 황택후는 금위영 서리였다. 역관이나 의원 같은 중인만이 아니라, 훨씬 낮은 서리나 노예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 바로 위항인이다. 위항인은 글자 그대로 위항(委巷)에 사는 사람이다. 위(委)는 곡(曲)이고, 항(巷)은 ‘이중도(里中道)’이다. 즉 ‘마을 가운데 꼬불꼬불한 작은 길’이 바로 위항이고, 작은 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위항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네에 사는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조선 후기로 내려가면서 양반보다 부유한 중인들이 많아졌으므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열가지 복을 누린 역관 조수삼 송석원시사 동인 조수삼(趙秀三·1762∼1849)의 호는 추재(秋齋)로 한양 조씨이다. 그의 후배 조희룡은 그의 전기를 지으면서 “그는 풍채가 아름다워 신선의 기골이 있었다. 문장력이 넓고도 깊었는데, 시에 가장 뛰어났다.”는 칭찬으로 시작했다. 사대부의 풍채와 문장을 지녔다는 뜻이다. 그의 문집을 엮어준 손자 조중묵이 화원이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원래 직업적인 역관이 아니었는데,28세에 이상원의 길동무로 처음 중국에 따라갔다고 한다. “길에서 강남 사람을 만났는데, 같은 수레를 타고 가면서 중국말을 다 배웠다. 그 뒤론 북경 사람과 말할 때에도 필담(筆談)과 통역의 힘을 빌지 않았다.” 역관을 선택한 중인들은 사역원(司譯院)에서 몇년 동안 그 나라 말을 배웠는데, 그는 북경까지 가는 길에서 중국어를 다 배운 것이다. 여섯차례나 중국에 다녀왔다고 하니, 아마도 그 뒤엔 역관의 신분으로 따라갔을 것이다. 19세기가 되면서 서울의 모습이 바뀌자, 전에는 듣고 보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조수삼은 그러한 이야기를 71편 골라서 ‘기이(紀異)’라는 시를 쓰고 그 앞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군상의 소묘이면서도 사회변화를 보여준다. “내 나무(吾柴)는 나무를 파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를 팔면서) ‘나무 사시오.’라 말하지 않고,‘내 나무’라고만 말하였다. 심하게 바람 불거나 눈 내리는 추운 날에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내 나무’라고) 외치다가, 나무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틈이 나면 길가에 앉아 품속에서 책을 꺼내 읽었는데, 바로 고본 경서였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추위에도 열두 거리를 돌아다니며 남쪽 거리 북쪽 거리에서 ‘내 나무’라고 외치네. 어리석은 아낙네야 비웃겠지만 송나라판 경서가 가슴속에 가득 찼다오.” 고본 경서를 읽는 것으로 보아 나무 장사꾼은 양반계층에서 몰락한 지식인인 듯하다. 그래서 차마 다른 장사꾼들처럼 “나무 사시오.”라는 존댓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아,“내 나무”라고 반말을 씀으로써 양반 선비의 마지막 체면을 세웠던 듯하다. ●양반에 60년 뒤진 중인 그러나 송나라판 경서가 가슴속에 가득 찼어도 쓸 데가 없는 것이 당시 사회였고, 그런데도 끝까지 양반의 알량한 자존심과 경서를 내버리지 못하는 것이 그의 한계였다. 그에 비하면 조수삼은 행복한 중인이었는데, 조희룡은 그의 행복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 사람들은 추재가 지닌 복이 모두 열가지라고 하면서, 남들은 그 가운데 하나만 지녀도 평생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가지란 첫째 풍도(風度), 둘째 시문(詩文), 셋째 공령(功令), 넷째 의학, 다섯째 바둑, 여섯째 서예, 일곱째 기억력, 여덟째 담론, 아홉째 복택, 열째 장수이다.” 88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정말 장수하여 남의 부러움을 샀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공령문인데, 과거시험 때에 쓰는 시나 문장이다. 양반들은 대부분 과거시험을 보았으며, 답안지를 쓰기 위해 공령문을 배웠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하면 더 이상 배울 필요도 없고, 쓸 일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문집에 공령시가 실리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그의 문집에는 공령시가 57편이나 실렸다. 그가 공령시를 잘 지었다고 소문났지만, 자기가 시험을 보기 위해 연습한 것이 아니라 양반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연습한 것이다. 그는 61세에 경상도 관찰사 조인영의 서기로 따라갔는데, 실제로는 가정교사이다. 그는 83세에야 진사에 합격했는데, 영의정 조인영이 시를 짓게 하자 ‘사마창방일구호칠보시(司馬唱榜日口呼七步詩)´를 지었다. 뱃속에 든 시와 책이 몇백 짐이던가. 올해에야 가까스로 난삼을 걸쳤네. 구경꾼들아. 몇 살인가 묻지를 마소. 육십년 전에는 스물 셋이었다오. 합격자 명부인 방목에 그를 유학(幼學)이라고 표시했으니,83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양반들은 20대 초반에 이미 진사에 합격하고 곧이어 문과에 응시했는데, 그는 60년이나 뒤처졌다. 시의 제목은 “진사시 합격자를 발표한 날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입으로 읊은 시”이다. 조인영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그 기쁨을 시로 표현해 보라는 주문을 한 것인데,“가까스로” 합격해 난삼을 걸친 기쁨과, 몇백 짐의 책을 외우고도 60년 늦게 합격한 중인의 한을 함께 표현했다. 그나마 영의정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전문직업을 지녀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었으면서도 신분적으로는 60년이나 양반에게 뒤진 것이 바로 중인의 한계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28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주둥이가 완전히 깨진 도자기가 진품명품에 의뢰되었다.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입체적으로 복원한 도자기의 본 모습. 철제 도자기의 제작과정을 공개한다. 한국 남종화의 큰 획을 그은 소치 허련.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우리 고유의 남종화를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그의 작품이 공개된다. ●진실(YTN 오후 11시5분)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가전복을 획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대법원 판결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된 ‘인혁당’사건 8인의 사형수. 물증 하나 제시되지 않았고 ‘인민혁명당’ 명칭이 적힌 문서 한장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들어본 적도 없던 ‘인민혁명당’의 당원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스페이스-공감(EBS 오후 10시) 미국 버클리 음대 출신의 레이 강은 서른두살의 늦깎이 신인 가수이다. 김건모와 김진표의 음반작업에 작곡가로 참여해 음악성을 인정받은 뮤지션이다. 새로운 음악장르를 개척하면서 진정한 뮤지션으로 거듭나고 싶은 그의 소망을 담았다.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 매력에 빠져본다. ●게임의 여왕(SBS 오후 9시55분) 은설과 함께 강재호의 유골이 뿌려진 곳으로 간 한미숙은 처음으로 은설에게 마음을 터놓는다. 은설은 한미숙이 애처로워 다음에 아빠를 만나면 대신 따져드리겠다 말한다. 신전은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는데, 그 자리에서 은설과의 결혼식 청첩장을 건넨다. 둘은 충실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일본 유학생인 성민은 단짝 친구인 쇼타를 통해 세계적인 화가 고흐에게 영향을 준 일본화가에 대해 듣게 된다. 성민은 쇼타가 말하는 그 화가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게 된다. 몇달 후, 성민은 한국에서 온 한 교수에게 쇼타가 자랑스러워하던 일본의 화가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반올림#3(KBS2 오전 8시50분)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사고로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된 일권. 친구들은 그런 일권이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보충수업으로 몰아치는 교장의 매몰찬 모습에 아이들은 더욱 속상하고, 모두 한 마음으로 일권이 일어나 주길 바란다. 윤만이만 차갑게 일권 문제를 외면한다.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6국)] 유행 포석,유행 정석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6국)] 유행 포석,유행 정석

    제1보(1∼21) 윤준상 4단은 잘 나가는 신예기사이다.2006년 상금랭킹은 10위, 통합랭킹은 11위였다. 올해 1월 현재 랭킹은 12위이다.4천왕에는 못 미치지만 거의 바로 뒤까지 추격하고 있는 정상급 신예기사인 것이다. 윤4단은 1987년생으로 권갑룡 7단의 문하생으로 2001년에 입단했다. 입단 초기에는 괴력의 힘바둑을 구사했는데, 최근에는 세밀한 바둑을 구사하며 완숙의 경지에 들어선 모습이다. 주형욱 3단은 바둑팬들에게 다소 생소한 기사이다. 1984년생으로 허장회 9단의 문하생이며 2000년에 입단했다. 입단한 지 벌써 7년 가까이 됐으면 성적을 냈어도 벌써 냈어야 하는데 이렇다 할 만한 실적이 없다. 다만 최근 군에서 제대한 뒤에 심기일전하여 다시 바둑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돌을 가리니 윤준상 4단의 흑번이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실력이 센 기사일수록 흑번의 승률이 더 좋다고 한다. 흑을 쥔 쪽은 초반 포석의 주도권을 쥐고 있어 사전에 연구한 자신만의 포석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바둑에서 윤4단이 준비하고 나온 포석은 무엇일까? 흑1,5,7의 미니중국식이 윤4단이 준비해 온 수이다. 너무 많이 보아온 포석이기에 다소 식상할 수도 있는 진형이지만 이 포진을 펼치면 초반부터 급전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따라서 시원한 전투바둑을 구경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의미에서 바둑팬에게는 만족감을 주는 포석이라고 하겠다. 이어서 백8부터 21까지 역시 흔하디흔한 요도정석이 등장했다. 백20으로 (참고도) 1에 지키면 흑도 2로 하변을 지키는 정석이 완성된다. 그러나 요즘 그렇게 두는 프로기사는 거의 없다. 백20으로 빠지고, 흑21로 끊으면서 복잡하게 변화하는 포석을 모두 즐기고 있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임기말 대통령과 탈당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임기말 대통령과 탈당

    15대 대통령선거가 있던 1997년 10월쯤인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는 김영삼(YS)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에서 안기부장 인사권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 YS는 이후 사석에서 “그 사람(이 후보를 지칭)이 그럴 줄 몰랐어.”라며 배신감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진다.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당한 이 후보 진영은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후보의 비자금 의혹을 회심의 반전(反轉)카드로 꺼내든다. 하지만 도와줄 것으로 기대했던 YS는 공정한 대선관리를 들어 임기중 수사 불가 방침을 천명했다. 이에 반발한 이 후보는 YS와 건건이 갈등을 빚다 끝내는 YS의 탈당을 요구하게 되는데, 안기부장 인사권 요구도 이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YS도 결국 대선을 한 달가량 앞둔 11월7일 신한국당을 탈당한다. 선거 불개입 원칙을 겉으로 내세웠지만 이 후보의 승리를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 배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YS의 탈당은 이 후보 패인의 여러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YS도 민자당 대통령후보 시절이던 1992년 9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관권선거 개입의 폐습을 청산하겠다.”며 전격 탈당하는 바람에 뜻밖의 타격을 입은 바 있다. 현직 대통령의 여당 탈당은 그때가 처음이다.YS는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선거자금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YS는 2박3일이나 3박4일간의 지방유세 중에도 매일 저녁 서울로 급히 올라와 지인들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다음날 새벽에 유세단과 합류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다행히 11월부터는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금문제는 해소됐으나 YS 측근들은 그때 일만 떠올리면 몹시 불쾌해한다.YS 본인도 나중에 “노 대통령이 나를 대통령에 당선시키지 않기 위해 탈당했다.”고 밝힐 정도였다. DJ는 대선을 7개월여 앞두고 일찌감치 민주당을 탈당했다. 세 아들의 비리가 기폭제였지만 노무현 후보를 배려하는 차원이었다는 게 중론이다.DJ의 이른 탈당으로 민주당과 노 후보는 검찰 수사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물론 대선가도에도 한층 탄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두 케이스와는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탈당 얘기를 꺼냈다.“대통령 때문에 탈당한다면 차라리 그 사람들이 나가는 것보다 내가 나가는 것이 당을 위해서도 좋은 일 아니겠느냐.” 깨질 위기에 처한 열린우리당을 살려보겠다는 간곡함이 깃들어 있다. 난파선과 같은 우리당의 상황이 변수이지만 노 대통령의 탈당은 이제 상수(常數)다. 대략 하반기쯤으로 점치는 추론이 대체적이었던 만큼 이번에 탈당하면 시기는 무척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전 세번의 직선 대통령의 경우 전부 여당 후보가 결정돼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 오리무중이다. 탈당 시기는 노 대통령의 의중에 달렸지만 정쟁을 야기하는 탈당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정파적 이해에 얽힌 탈당, 정치 개입을 위한 탈당이 돼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탈당 즉시 중립 선거관리내각을 출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임기말 대통령의 의무라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정치 개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하지 않았다. 지금 봐도 잘한 결정이다.” jthan@seoul.co.kr
  •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만성골수성 백혈병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만성골수성 백혈병

    “예전과 달리 이제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도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처럼 평생 관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새로운 약제 개발과 의료 기술의 발전이 그만큼 눈부십니다. 환자들이 자신의 삶에 희망을 가져도 되는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선양 교수는 한때 ‘죽음의 질병’으로 알려진 만성골수성 백혈병(CML)에 대해 “백혈병 중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라며 현재의 치료 전망에 대해 이같은 희망을 전했다. 그를 통해 만성골수성 백혈병의 전모를 짚어 본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인구 10만 명당 1∼2명 꼴로 발병하는 희귀질환이다.“대한혈액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약 18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또 백혈병을 앓고 있는 성인 환자의 약 15∼20%가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이지요. 대개는 나이가 들면서 덩달아 발병률도 높아져 소아에서 40대 중반까지는 발생률이 서서히 증가하다가 중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골수에서 초기의 미분화된 조혈모세포나 자손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악성 종양의 일종으로 혈액 내 백혈구 수가 급증하는 특성을 보인다.“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원인인 변이염색체 즉, 필라델피아(Ph) 염색체는 ‘Bcr-Abl’ 타이로신 인산효소라는 비정상적인 효소를 생성하는데, 이 효소가 불필요한 백혈구의 생성을 멈추도록 하는 신체 내의 정상적인 신호체계를 막아 백혈병을 발병, 진행시키게 됩니다.”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95%에 이르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골수에서 발견되는데, 이 염색체 출현이 바로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특징이기도 하다. 발병 원인으로는 방사선 노출이나 화학적 또는 환경적 인자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뚜렷한 유전적 성향을 보이지는 않는다. 박 교수에 따르면, 대개의 증상은 서서히 발생하며, 일부 환자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아 건강검진때 혈액검사를 통해 확인되기도 한다. 환자는 혈액검사 결과 백혈구와 혈소판의 증가가 뚜렷하고, 빈혈 증상을 보인다. 피로감, 체중감소 및 좌상복부 통증이나 비장 비대도 일반적인 증상이다.“골수검사에서는 골수세포와 대핵세포의 증식이 관찰되며, 절반 가량의 환자에서 상당한 골수섬유화증이 함께 관찰됩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혈액과 골수 내 미분화세포의 양에 따라 만성기, 가속기, 급성기로 구분한다.“만성기에는 혈액과 골수에 미분화세포가 거의 없으며, 증상이 미미하거나 거의 나타나지 않는데, 이런 단계가 몇 개월에서 수년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가속기에는 혈액과 골수에 더 많은 미분화세포가 나타나고, 정상세포가 거의 관찰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는 25∼40%의 환자들은 가속기를 거치지 않고 만성기에서 급성기로 곧바로 진행하게 됩니다. 또 급성기에는 뼈나 림프절의 골수 외부에 종양이 생기기도 하고요.” 치료는 백혈구 수를 줄이고, 병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필라델피아 염색체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원인이기 때문에 이 염색체를 제거하는 것이 치료의 가장 기초적인 목표가 됩니다.” 전통적인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치료는 ‘하이드록시유리아’나 ‘부스판’ 같은 약제를 이용한 화학요법에 의존했다. 그러나 예후가 썩 좋지 않아 환자의 평균 생존률이 3∼5년에 불과했다. 글리벡이 등장하기 전까지 표준치료로 인정받았던 인터페론 병용 치료 역시 초기에는 효과를 보였으나 진행 중인 환자에게서 보이는 효과가 미미해 글리벡 출시 이후에는 사용이 최소한으로 제한되고 있다. 최초의 표적 항암제 글리벡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다른 만성 질환처럼 관리가 가능한 질환으로 전환시킨 공로가 있다. 최근 ‘뉴 잉글랜드 메디신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 글리벡을 복용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 10명 중 9명이 5년 이상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기존 항암치료가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적인 세포에도 영향을 미쳐 부작용이 심했던 것과 달리 글리벡은 암세포를 생성하는 단백질인 ‘타이로신 키나아제’만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도록 ‘설계된 약’으로,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표적치료로 바꾸는 계기가 된 약물입니다.” 약물치료 말고는 동종 골수이식이 주로 쓰이나 이식 자체의 위험성 때문에 환자의 조기 사망률이 높은 것이 문제이다. 박 교수는 “골수이식에도 환자와 골수 공여자, 숙주질환 여부 등 많은 변수가 있다.”며 “환자의 장기 기능이 정상이어야 하고, 연령이 65∼70세 이하여야 하며, 조직형이 일치하는 건강한 공여자가 있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치료 효과는 혈액학적 반응과 세포유전학적 반응, 분자학적 반응으로 측정된다. 완전한 혈액학적 반응이란 백혈구 수가 최소 4주간 정상적으로 지속되어 나타나는 단계를 말하며, 이런 혈액학적 반응이 있더라도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여전히 남아있다. 세포유전학적 반응이란 골수에서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완전히 제거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의료계는 환자들이 분자학적 반응을 나타낼 때 가장 좋은 치료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한다. 즉, 백혈구를 증식시키는 비정상 단백질의 생산을 촉진하는 ‘Bcr-Abl’의 수가 감소하거나 소멸되는 상태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다른 백혈병과 달리 발병 원인이 규명돼 있고 분자생물학적 소견도 단일한 데다 현재 글리벡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차세대 약제들을 개발 중이어서 희망적이다.게다가 건강보험에서 90%의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본인부담금 10%도 노바티스사가 ‘글리벡 환자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해 모든 환자가 본인 부담없이 글리벡을 이용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5국)]갑작스러운 백 대마 공격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5국)]갑작스러운 백 대마 공격

    제6보(115∼147) 흑115도 기분 좋은 선수다. 백은 좌변 흑 대마를 공격하는 데에서 마지막 승부를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흑에게 끝내기만 당했을 뿐, 이렇다 하게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 흑119는 하중앙 흑집을 키우면서 혹시 모를 좌변 흑돌에 대한 백의 공격을 사전에 방비한 수이다. 현재 흑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좌변 흑 대마의 사활일 뿐, 그 외에는 실리나 두터움에서 백보다 한참 앞서 있다. 백120은 그나마 흑이 노려볼 수 있는 마지막 승부처이다. 흑121과 교환하고 122로 늘어서 중앙 흑 두점을 크게 잡겠다는 뜻이다. 좌변 흑 대마 공격을 하는 와중에 중앙에 커다란 백집을 만들 수 있다면 물론 바둑은 계가로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 너무 터져 있는 곳이 많아서 이곳에 큰 집을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흑123부터 132까지는 흑의 선수권리이다. 다만 수순 중 흑125는 작은 실수로 (참고도) 1로 그냥 넘는 것이 정수였다. 그랬으면 흑7이 확실하게 선수로 듣는다. 이 흑7이 선수로 듣느냐 아니냐는 끝내기로 제법 크다. 이 수가 없다면 백A, 흑B, 백C를 선수하고 백7로 젖혀 이어서 2집이 차이 나기 때문이다. 흑133으로 중앙 흑 두점마저 살리려 하자 백134,136으로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며 가로막는다. 그러자 형세가 넉넉한 홍성지 5단은 흑 두점을 포기하고 143까지 좌변 흑 대마를 연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 이것으로 충분히 이겼다는 계산이었을 텐데 갑자기 흑147로 좌변 백 대마를 잡으러 갔다. 이 수는 정말로 백 대마를 잡겠다는 뜻일까? 유승엽 withbdk@naver.com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군악과 연희집단의 민간 공연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군악과 연희집단의 민간 공연

    조선후기 한양의 모습을 노래한 ‘한양가(漢陽歌)’에서 대표적인 유흥지를 이렇게 소개했다.“놀이처 어디맨고 명의루 춘수루와/홍엽정 노인정과 송석원 생화정과/영파정 춘초정과 장유헌 몽답정과/필운대 상선대와 옥류동 도화동과/창의문밖 내달아서 탕춘대 세검정과…”. 이 가운데 송석원·필운대·옥류동이 인왕산에 있었으며, 창의문밖 내달아 탕춘대 세검정도 인왕산 뒷자락이었다. 실학자 유득공이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 유상(遊賞)조에서는 탕춘대의 수석에 술을 마시고 시를 읊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한다. 이처럼 유흥지에서 흥을 돋우는 직업이 바로 악사와 기생이다. 악사들은 조선후기의 중인신분이었던 가객(歌客)들과 깊숙하게 어울리며 위항문학을 꽃피우는 역할을 했다. 조선전기에는 기생들이 모두 국가 소속이어서 영업을 하지 못했지만, 후기에 들어와서는 차츰 영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위항문학에 관여했다. 국가에서 행사 때에 기생을 동원했으나 재정이 취약해져 정식으로 봉급을 주기 힘들어 영업을 묵인한 것이다. ●군악대가 상업적으로 연주하다 기생들을 통해서 춤과 노래를 비롯한 전통예술이 전승되었는데, 기생들은 혼자 영업하기 어려워 기둥서방을 두거나 연희집단에 소속되었다. 당시 군악대는 물론 군사들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군악을 연주했지만, 후기에는 민간초청에도 동원되어 연주하였다. 아울러 수시로 민가에서 일반 악사처럼 흥을 돋우기도 했다. 이들 또한 위항문학 발전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용호영 악대는 25명, 총융청 악대는 13명인데, 취고수(吹鼓手)와 세악수(細樂手)로 나뉘어 연습했다. 취고수는 나발·대각·나각·징·자바라·북처럼 소리가 큰 악기를 연주했다. 세악수는 피리·대금·해금·장고 같은 소리가 작은 악기를 연주했다. 이옥(李鈺)이 장악원의 연주를 듣고 쓴 ‘유이원청악기(游梨院聽樂記)’에는 “용호영의 세악수가 군악을 한 번 연주하는 것만 못하다.”고 표현했다. 장안의 인기를 끌었던 군악대의 ‘매니저’ 패두(牌頭)가 거지 두목에게 협박을 당해 휘하의 악사와 기생들을 데리고 인왕산 뒷자락에서 무료로 공연한 기록을 소개한다. ●용호영의 풍악이 으뜸 한양 도성 안에는 거지들이 언제나 수백명이나 들끓었다. 거지들은 자기들의 법대로 한 명의 두목을 뽑아 꼭지딴 을 삼았다.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행동을 꼭지딴의 지시대로 했으며, 이를 조금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영조 경진년(1760)에 큰 풍년이 들자 임금이 널리 영을 내려 잔치를 베풀고 즐기게 했다. 용호영(龍虎營)의 풍악이 오영(五營) 가운데 으뜸이었으며, 이씨(李氏)가 그 우두머리로 있었다. 이른바 패두라는 것이다. 그는 본래 호탕하기로 이름이 나 한양 기생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 당시에 주금(酒禁)이 엄해 상하 잔치에 술은 쓰지 못하고, 대신 기악(妓樂)을 즐겨 썼다. 특히 용호영의 풍악을 불러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으며, 불러오지 못하면 부끄럽게 여겼다. 이 패두는 잔치에 불려 다니느라 아주 지쳐, 이따금 병을 핑계대고 집에 있었다. 그런데 한 거지가 찾아와 말했다.“거지 두목 아무개가 패두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나라의 명으로 만백성이 함께 즐기는 이 좋은 시절에, 소인네들이 비록 거지이지만 그래도 나라의 백성이라 빠질 수는 없습니다. 아무날에 거지들이 연융대(鍊戎臺)에 모여 잔치를 하려는데, 감히 패두님께 수고를 끼쳐 풍악으로 흥취를 돋우고자 합니다. 소인 또한 그 덕을 잊지는 않겠습니다.” 이 패두가 상투 끝까지 화가 올라 호령했다. “서평군(西平君)이나 낙창군(洛昌君) 대감 초청에도 내가 갈지 말지 한데, 거지 잔치에 부른단 말이냐?” 하인을 불러 내쫓자, 거지가 실실 웃으며 나갔다. 이 패두는 더욱 분통이 터졌다. “음악이 이렇게까지 천하게 되었구나. 거지까지 나를 부리려고 하다니.” 얼마 뒤에 패두 집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거세게 들렸다. 내다보니 다 떨어진 옷에 몸집이 장대한 사내였다. 그가 꼭지딴인데, 눈을 부라리고 이 패두를 쏘아보며 소리를 쳤다. “패두님 이마에는 구리를 씌웠소? 집은 물로 지었소? 우리 떼거지 수백명이 장안에 흩어져 있어 포도청 순라꾼도 어쩌지 못하는 줄 모르슈? 몸뚱이 하나에 횃불 하나면 너끈하다우. 패두라고 무사할 듯싶수? 우리를 이다지 업수이 여기다니.” 이 패두는 풍각쟁이로 한평생 떠돌아다닌 몸이라 시정의 물정에 훤했기에, 껄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자네야말로 정말 사낼세. 내가 모르고 실수했네. 이제 자네의 청대로 하겠네.” “내일 아침을 드신 뒤에 패두님의 기생 아무아무와 악공 아무아무들을 거느리고, 총융청(摠戎廳) 앞뜰에 크게 풍악을 차려주소. 언약을 어기지 맙시다.” 이 패두가 선뜻 승낙하자, 꼭지딴이 한번 더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가버렸다. ●무료 공연시킨 거지두목 꼭지딴 이튿날 아침에 이 패두는 자기 무리들을 모두 불렀다. 거문고·젓대·피리·장고 등의 악기를 새것으로 가져오게 했고, 기생도 몇명 불러 모았다. 그들이 가는 곳을 묻자,“나만 따라오너라.” 하고는 총융청 앞뜰에 풍악을 차렸다. 온갖 악기는 자지러지게 울고, 기생들은 모두 춤을 추었다. 이때 거적을 둘러쓰고 새끼로 허리를 동여맨 거지떼가 춤추며 모여들었다. 개미들이 장을 선 듯, 떠들썩하게 어울렸다. 춤이 그치자 노래가 나오고, 노래가 그치자 다시 춤을 추었다. “얼씨구 좋구나! 지화자 좋아! 우리네 인생도 이런 날이 있구나.” 꼭지딴은 상좌에 버티고 앉아 꽤나 신났다. 기생들이 그 꼴을 보고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자, 패두가 눈짓을 하며 타일렀다. “아서라! 얘들아. 웃지 마라. 저 꼭지딴이 내 목숨도 제멋대로 빼앗아 버릴 수 있단다. 너희 따위야 꼭지딴 앞에 파리목숨이지.” 해가 기울자 여러 거지들이 차례대로 둘러앉아서 저마다 자루 속에서 고깃덩이와 떡조각을 꺼냈는데, 다 잔칫집에서 얻어온 것들이었다. 깨진 기와조각이나 풀잎에 싸가지고 와서 저마다 바쳤다. “소인들 잔치가 시작되었으니, 나리들 먼저 드시라고 바칩니다요.” 이 패두가 웃으며 사양했다. “내가 너희를 위해 풍악은 잡혀주지만, 너희들 음식은 받지 않겠네.” 거지들이 히히덕거리며 굽신거렸다. “나리야 귀하신 분인데, 거지 음식을 드시겠습니까? 그럼 소인들이 다 먹습지요.” 이 패두는 풍악과 가무로 더욱 흥을 돋웠다. 음식 잔치가 끝나자, 거지들이 다시 일어나 어깨를 들먹거리며 춤을 추었다. 한참 지나자 거지들이 자루에서 산자 등의 과자 부스러기와 나물 찌꺼기를 꺼내 기생들 앞으로 내밀었다. “아씨들의 노고에 보답할 길이 없수다. 이거나마 가져다 집의 애기들에게 주시구려.” 기생들도 모두 싫다고 하며 받지 않았다. 거지들은 또 다 먹어치우고 굽신거렸다. “여러분 덕분에 배불리 먹었습니다요.” 저녁이 되자 꼭지딴이 나와서 사례하였다.“우리들은 이제 또 저녁밥을 빌러 나섭니다. 여러분들 노고에 감사합니다. 다음에 길에서 뵙시다.” 그러자 거지떼가 한꺼번에 흩어졌다. 기생들은 하루종일 굶주린데다 지친 끝이라, 패두에게 원성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 패두는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쾌남아를 보았다.”고 탄식했다. 이 패두는 그 뒤에도 길에서 거지를 보면 그 꼭지딴이 생각났지만,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해총’ 제4책 18세기 작가 성대중 ‘개수전 )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5국)]무조건 이어야 했다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5국)]무조건 이어야 했다

    제4보(49∼80) 연결되면 강해지고 끊기면 약해진다. 바둑의 절대 진리 중의 하나이다. 흑49는 비록 우하귀 흑 두 점이 약하지만 중앙과 우변의 백돌을 연결시켜주지 않으면, 백도 힘이 약해서 함부로 우하귀 흑돌을 공격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 아래에서 둔 수이다. 일단 흑51까지 백돌을 차단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물론 이 백 대마가 잡히는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려면 고생 좀 해야 한다. 58까지 부분적으로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흑이 우하귀 두 점을 타개할 차례. 흑59부터 63까지 하변 백돌을 압박하면서 자신의 아군이 있는 중앙 쪽으로 머리를 내민다. 이때 선수로 둔 백64가 엄청난 실수이다. 이 수는 (참고도1) 1로 잇는 게 정수이자 절대수이다. 이곳이 끊겨서는 백은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최원용 4단은 흑2,4로 끊는 것이 싫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백7까지 처리해서 그만이다. 백64를 외면하고 흑65로 끊으며 하변과 우하귀 흑돌이 연결되자 갑자기 흑에게 힘이 생겼다. 백은 내친걸음으로 68에 뚫어서 흑 석 점을 잡았지만 흑69로 틀어막자 80까지 쌈지 뜨고 살아야만 하는 기구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수순 중 백80을 생략하면 (참고도2)와 같은 진행으로 간단하게 잡힌다. 흑은 철벽의 세력을 구축했고, 게다가 선수이다. 갑자기 흑이 크게 우세해졌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5국)] 최신 유행정석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5국)] 최신 유행정석

    제2보(9∼34) 흑9로 어깨 짚는 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느낌은 뭔가 허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백10으로 밀 때 흑이 12로 강력하게 젖혀서 응수하자 그 느낌은 순식간에 강력하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오랜 연구 끝에 흑9, 백10, 흑12 때 백가로 밑에서 받으면 백이 약간 좋아지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 뒤로 잠잠했다가 흑9가 다시 등장하더니 이번에는 흑11로 늘어서 응수하는 수를 선보였다. 이 수야말로 정말 밋밋한 느낌인데 그 밋밋함이 엄청난 두터움으로 변신하기 때문에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다. 흑15가 묘한 응수타진이다. 백이 18로 받으면 흑나로 틀어막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백도 16으로 젖혔는데 이때 (참고도1) 흑1로 뚫으면 백은 2의 맥점을 구사하며 우상귀 흑집을 초토화시킨다. 아직 우하귀에도 뒷맛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진행은 흑의 불만이다. 따라서 흑17로 꽉 잇고 참는 것이 정수이다. 만약 이때 백이 (참고도2) 1로 젖혀 오면 흑2 이하 8까지 다 받아준다. 결국 백은 9로 지켜야 하는데 흑10으로 한칸 뛰면 상변 일대가 흑의 확정가로 굳어진다. 이 집은 너무 커서 백도 견딜 수 없다. 결국 백18로 지키고 흑19로 응수할 때 백20으로 상변에 쳐들어가서 흑진을 유리하는 것이 쌍방 최선이라는 결론이다. 이하 34까지는 이런 정도의 진행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사설] 31년 걸린 납북어부 최욱일씨의 귀환

    1975년 동해상에서 납북된 ‘천왕호’ 사무장 최욱일씨가 그제 귀환했다. 낯선 땅에서 신고의 세월을 보낸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꼬박 31년 5개월이 걸렸다. 활짝 웃는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 잃어버린 시간의 복잡다단한 궤적이 읽힌다. 그를 구출한 것은 가족과 납북자가족모임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어렵사리 탈북한 그를 냉대했을 뿐이다.67세가 될 때까지 나 몰라라 했던 국가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북한에 억류돼 있는 납북자는 480여명이다. 납북자에 무관심했던 정부는 2000년 이후 남북회담을 통해 생사확인에 나서는 등 한발짝씩 움직이고 있다. 비록 소수이긴 해도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이 이산가족상봉을 했다. 지난해 남북장관급회담에서는 “전쟁과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데 협력하기로 했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보수진영의 반발은 있었으나 납북자 송환과 대북 지원을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납북자 문제도 허공으로 떠버렸다. 최씨는 정부의 손을 빌리지 않고 탈북했다. 기획 탈북은 본인은 물론 북에 남아 있는 납북자와 가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납북자가족모임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납북자 귀환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기획 탈북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일본은 지난해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납치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우리의 납북자 가족들이 안전한 송환을 위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 부서를 만들라는 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며 누구의 눈치 볼 일도 아니다.
  • [베리타스·한국법학교육원과 함께하는 PAST 실전강좌] 언어논리

    [베리타스·한국법학교육원과 함께하는 PAST 실전강좌] 언어논리

    문 1.A-E는 미술가, 음악가, 교수, 판사, 한의사로 각각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다음의 사실로부터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을 고르시오. (1) A는 한의사이다. (2) B는 교수이다. (3) C는 판사이다. (4) D는 미술가이다. (5) E는 교수이다. 문 2.다음의 내용을 전제로 하여 철수, 영수, 용수의 정체를 순서대로 밝히시오. (1) 참말 하는 사람 : 참말 하는 축구선수 : 거짓말 하는 사람 (2) 거짓말 하는 사람 : 참말 하는 축구선수 : 참말 하는 사람 (3) 거짓말 하는 사람 : 참말 하는 사람 : 참말 하는 축구선수 (4) 참말 하는 사람 : 거짓말 하는 사람 : 참말 하는 축구선수 (5) 거짓말 하는 사람 : 거짓말 하는 사람 : 참말 하는 축구선수 문 3.다음 중에서 애매성(애매어, 애매구)과 관련한 오류를 발견할 수 없는 진술의 수는? (1) 0 (2) 1 (3) 2 (4) 3 (5) 4 문 1. (4) 1.(ㄱ) : A는 음악가와 미술가가 아니다. 2.(ㄴ) : B와 E는 미술가가 아니다. 3.(ㄷ) : D는 한의사는 아니다. 4.(ㄱ),(ㄹ) : A는 판사가 아니다. 5.(ㄴ) : B는 배우자가 없으므로 한의사와 판사가 아니다. 6.(ㄷ) : D부인의 언니에게 자녀가 없으므로 한의사에게도 자녀가 없는 것이며,A에게는 딸이 있고 E에게는 아들이 있으므로 A와 E는 한의사가 아니다. 문 2.(5) 용수의 말을 거짓으로 가정하면, 참말만 하는 사람이 두 사람 이상 존재해야 하므로 철수와 영수는 모두 참말만을 해야 한다. 그러나 축구선수가 한 명밖에는 없으므로 논리적으로 모순이 일어난다. 따라서 용수는 참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수와 영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므로 축구선수는 용수가 된다. 문 3.(1) ㄱ : ‘선생’이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 ㄴ : ‘독극물’의 이중적 의미 ㄷ : ‘크다’라는 상대적인 말(상대어)의 사용 ㄹ : 50%와 33.3%의 범죄건수는 동일하다.(애매성이 통계상의 수치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경우) ㅁ : ‘폭설’이라는 단어의 애매성 ㅂ : ‘무거운’은 상대어에 해당함 ㅅ : 소비자의 수명인지, 상품의 수명인지가 애매함 베리타스 법학원 PSAT강사 방재훈
  • [피플 인 포커스] 사르코지 佛여당 대선후보 공식지명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당수이자 내무장관인 니콜라 사르코지(51)가 14일(현지 시간) 대통령선거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UMP는 이날 파리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당원대회를 열고 사르코지가 지난 2주일 동안 33만 8520명의 당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투표에서 23만 3779명이 참가,22만 9303표의 찬성표를 얻어 98.1%의 지지율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그는 오는 4월22일 치를 대선 1차투표에서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53)과 박빙의 승부를 펼쳐야 한다. 1955년 파리에서 태어난 사르코지는 프랑스 정가의 ‘이단아’다.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 미국식 시장경제를 공개 지지하는 등 친미 성향을 과감없이 드러냈다. 또 내무장관으로서 이민자에 너그러운 관행에 맞서 단호한 처방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빈 건물을 점유 중이던 가난한 이민자를 추방했다.2005년 이민자들의 소요 사태 때는 시위대에게 ‘깡패’라는 표현을 써 물의를 빚었다. 또 다른 엘리트 정치인과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헝가리 2민 이세에다 학교도 고위관료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가 아니라 파리10대학을 졸업했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에는 ‘중간 지대’가 없다. 우파들은 그가 2002년 내무장관에 임명된 뒤 저돌적으로 ‘범죄와의 전쟁’과 성매매 단속 등을 추진하자 대대적으로 환호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직설적인 발언과 강성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도 많다.‘엘리제 궁’으로 가는 그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같은 당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3선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그에게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 등 시라크 계파 정치인의 반발도 만만치않다. vielee@seoul.co.kr
  • 美국방부, 개인 금융정보 편법조회 논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 국방부가 논란 소지가 있는 ‘국가안보증서’를 이용, 테러나 간첩 활동 혐의를 받고 있는 미국인 수백명의 은행과 신용카드 기록을 조회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3일 보도했다.NYT는 익명을 요구한 정보기관 관리들의 말을 인용, 국방부는 군의 국내 정보수집 업무 강화 조치 일환으로, 드물긴 하지만 중앙정보국(CIA)도 미국 기업의 금융기록들을 확보하기 위해 이 증서를 이용했다고 전했다. 관리들은 국가안보증서를 확인한 은행과 신용카드 회사 등 금융기관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군 관계자는 물론 민간인의 금융자산과 거래 내역이 담긴 서류를 넘겨줬다고 밝혔다.그러나 이 증서는 강제성이 없어 이들 기관이 국방부에 개인 정보를 건네주지 않아도 된다.9·11 테러 이후 연방수사국(FBI)이 테러 조사를 이유로 수천부에 달하는 국가안보증서를 발행, 업체와 기관에 각종 거래기록 제출을 요구해 사생활 침해 우려가 제기된 일이 있으나 국방부와 중앙정보국이 이처럼 편법으로 개인 기록을 조회한 사실이 알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국방부 정보 담당 관리들은 국가안보증서를 이용해 지난 5년간 약 500건의 사건을 조사했으며 CIA도 매년 소수이지만 이 증서를 이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의회는 2001년 이후 구속력 있는 증서를 발행하도록 해 달라는 국방부와 중앙정보국의 요청을 거부해 왔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리들은 9·11 테러 이후 좀 더 적극적으로 국내 정보 수집 범위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이 증서를 발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패트릭 라이터 국방부 공보관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는 테러와 간첩 활동을 추적하거나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확보에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CIA 국장측 대변인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이 증서를 사용했다는 입장을 밝혔다.dawn@seoul.co.kr
  • [‘특허기업’ 삼성전자 글로벌 쾌거] 미국 특허 등록 NO.2

    [‘특허기업’ 삼성전자 글로벌 쾌거] 미국 특허 등록 NO.2

    삼성전자가 특허기업으로 자리를 확실히 잡아가고 있다. 14일 미국 특허청(USTPO) 예비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2453건의 특허를 등록, 전년(1641건)보다 49% 늘어났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USTPO에 특허를 등록한 건수는 세계 2위다. 물론 한해 실적으로 볼 때에는 삼성전자의 역대 최다 등록건수이다. IBM은 3651건을 등록하며 자사의 최고기록(3453건)을 경신하면서 14년 연속 특허출원 1위를 지켰다.LG전자는 695건으로 25위를 기록했다. 특허출원 상위 25개사 가운데 캐논·소니·히타치 등 일본 회사가 9개사, 휼렛패커드(HP)·인텔 등 미국 회사는 7개사였다. 삼성전자는 2005년 중국에서는 각종 발명특허와 실용신안 등 모두 3508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중국에서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던 일본의 마쓰시타전기(3042건)를 제친 최다 특허출원 건수이다. 삼성전자는 2005년 11월에 연 제1회 애널리스트 데이에서 “2007년까지 특허분야 세계 톱3에 진입하겠다.”고 밝힌 뒤 본격적인 특허주권시대를 준비해 왔다. 이를 위해 지난해 2월 반도체연구소장을 지낸 이문용 부사장을 특허전담 최고책임자(CPO)로 임명하는 등 특허전담 조직을 정비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특허변리사와 해외 특허변호사, 기술가치 평가전문가, 특허업무 경력자 등 특허 전담인력을 꾸준히 확충해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특허는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도 과학기술의 수준과 상품개발 역량에 대한 지표”라며 “중장기 경쟁력과 미래의 비전을 확인하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세계가 이를 주목한다.”고 말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 헤드킥] 돌아온 스타, 인기도 되돌리길

    안정환이 돌아왔다. 한 때 ‘반지의 제왕’으로 불렸으니 수원 삼성을 통해 K-리그에 복귀한 것을 두고 ‘왕의 귀환’이라고 부를 만하다. 2006 독일월드컵 이후 소속팀 없이 혼자서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당장 상반기의 치열한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예전의 기량을 보여줄지는 의문이지만, 차범근 수원 감독 말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이며 후반의 조커로 활약’할 대형 선수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또 한 명이 돌아왔다.‘앙팡 테리블’ 고종수. 푸른 그라운드를 밟은 지가 오래전 이라 지금은 ‘잊혀진 천재’가 됐지만 최윤겸 대전 감독의 부름과 허정무 전남 감독의 용단에 힘입어 올해엔 대전시티즌의 무대를 밟게 됐다. 프랑스 작가 장 콕토의 작품에서 따온 앙팡 테리블이란 말은 문화예술이나 스포츠 분야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기존 문법에 아랑곳하지 않고 놀라운 천재성을 보여준 신예를 가리키는데 바로 그 별명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고종수가 돌아오게 된 것이다.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로 예전 같은 ‘악동’ 이미지는 많이 옅어졌다. 그러나 누구보다 고종수를 아꼈던 김호 전 수원 감독의 ‘그만큼 이쁘게 차는 선수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처럼 그는 틀림없이 대전 팬들에게 경이로운 축구의 희열을 보여줄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등 번호 10번을 단다. 이 번호는 공격수라면 누구나 욕심을 내지만 아무나 달 수 없는 번호다. 펠레, 플라티니, 마라도나 등 전설의 영웅들이 이 번호로 세계 축구를 휘저었고 지단, 호나우지뉴, 토티 같은 당대의 거장들이 이 번호를 자신의 수호성으로 삼고 있다. 안정환, 고종수와 더불어 서울의 박주영, 울산의 이천수가 10번을 달고 뛰게 되었으니 이 정도라면 올해 K-리그는 뚜껑을 열기도 전에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세련되고 공격적인 ‘마케팅’이 절실하다. 감독과 선수는 본인들의 타고난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그라운드에서 최선의 경기를 아름답게 펼치면 된다. 이를 열정적인 흥행 무대로 이끌어 낼 책임이 프로축구연맹과 각 구단에 있는 것이다. 월드컵 같은 대형 호재가 없어 오히려 프로 경기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은 충족되고 있다. 터키 출신의 귀네슈 감독이 FC서울에 부임함으로써 포항의 파리아스, 부산의 에글리 등 세 외국인 감독이 동시에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이는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여기에 안정환과 고종수의 화려한 부활을 고대하는 팬들의 발길을 이끌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섬세하면서도 공격적인 마케팅과 시너지 효과를 내 K-리그가 오랜만에 한바탕 떠들썩한 무대로 바뀌기를 기대해본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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