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수유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2400만원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통치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신자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저자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893
  • 제모제·데오드란트 함께 사용하지 마세요

    제모제·데오드란트 함께 사용하지 마세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16일 털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제모제’와 땀냄새 제거제인 ‘데오드란트’를 동시에 사용할 경우 피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식약청은 제모제를 사용한 뒤 바로 데오드란트를 사용하면 피부 자극이 심해져 빨갛게 부어오를 수 있기 때문에 24시간의 시차를 두고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향수나 수렴화장수(피부를 수축시키면서 피지 분비를 억제하는 화장품)도 제모제와 함께 사용하면 알코올 성분 때문에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동시에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특히 식약청은 제모제가 인체의 호르몬 분비체계에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임신부나 수유 중인 산모, 생리 중인 여성이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 대부분의 제모제는 산성도가 10.5 이상으로 높기 때문에 비누를 이용해 씻을 경우 자극을 유발하기 쉽다면서 물로 씻어낼 것을 권고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여름철 들어 제모제를 사용하는 여성이 늘고 있지만 기본적인 사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제품을 피부에 바른 채 건조시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0)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0)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대자연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가장 위대한 재능의 비가 천상의 작용을 거쳐 사람들의 몸을 적시기도 하는데 가끔 단 한 사람만이 초자연적인 이유에서 이러한 아름다움, 우아함, 능력으로 흠뻑 젖기도 한다.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너무나도 신비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를 뒤따르면서 그 사람이야말로 인간세계에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바로 신이 점지한 천재, 혹은 그 자신이 바로 신이란 것을 재삼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자신보다 한 세대 앞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를 “놀랍도록 신적인 사람”으로 묘사한다. 레오나르도는 고상한 교양인 행세를 하면서도 이름 없는 풀을 스케치하려고 풀밭에 엎드리고, 30구가 넘는 시체를 해부했는가 하면, 낯선 풍경과 기괴한 얼굴을 찾아 시장을 누볐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에 도전하는 ‘천재’의 면모였다. ●“재주가 많으나 일 마무리 못짓는 사람”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조용한 시골 마을 빈치(Vinci)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는 17살에 아버지를 따라 피렌체로 이사한다. 15세기의 피렌체는 흑사병이 창궐했던 불결하고 역겨운 과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길을 닦고 성당을 지으며 우아한 문명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상업과 금융으로 성장한 부르주아 계급은 독자적인 윤리를 만들어가며 변화를 주도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낡은 세계가 부서지고 인간의 손에 의해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는 신천지였다. 레오나르도의 아버지는 능력 있는 공증인으로서 피렌체의 변화를 민감하게 주시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지 못한다. 사생아였기 때문이다. 사생아라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별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으나 새로 성장한 계급은 부정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집단에 들어오는 것을 철저히 금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레오나르도에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아들의 재능을 간파한 부친은 그를 당시 최고의 장인이었던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공방에 보낸다. 베로키오는 청동 주물과 회화, 건축에서 인정받는 장인이자 ‘기술 개혁가’였다. 그의 공방은 최신 공법의 실험실이었으며, 정치 토론의 장이었고, 고대 철학을 비롯하여 음악과 문학을 즐기는 문화의 메카였다. 이런 지적 활기는 소년 레오나르도를 자극했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시대의 장인은 스스로 경험하고 탐구하여 새로운 것을 창안해야 한다는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을 배웠다. 배움과 창조의 매력은 그를 사로잡았고, 더 많은 것을 알수록 앎에 대한 그의 열정은 더해갔다. 새로운 창작 의욕으로 가득 찬 재주 많은 젊은이 레오나르도. 하지만 스승에게서 독립한 이후 그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전쟁에 시달리던 피렌체의 재정은 파탄나기 시작했고, 교황과의 갈등도 심해져 성당을 신축할 수도 없었으며, 흑사병의 창궐로 아름다운 도시는 혼돈의 장으로 변했다. 보티첼리, 페루지노, 피에로 디 코시모 등은 교황의 부름을 받아 신축 성당의 벽화 작업을 위해 로마로 떠나갔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명단에 없었고, 몇몇 작업을 의뢰 받았으나 작품을 완성하지도 못했다. 피렌체에서 그는 아직 “재주가 많으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장인에서 창조자로… 다빈치코드 레오나르도는 새로운 길을 찾아 밀라노로 향한다. 밀라노에서 세력을 잡은 루도비코 일 모로(Ludovico il Moro)가 부친의 청동기마상을 제작하고 싶어한다는 정보를 알아낸 것. 레오나르도는 일 모로에게 보낸 ‘구직편지’에서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아주 가볍고 튼튼한 다리’, ‘성을 무너뜨리는 기계’, ‘공포를 자아내는 여러 종류의 포’ 등 온갖 전쟁 기술을 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저는 대리석이나 청동 또는 진흙으로 조각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림도 그릴 줄 압니다.” 레오나르도의 예상은 적중했다. 밀라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군사와 상업의 요충지로, 격렬한 쟁탈전과 복구 작업이 번갈아 일어나고 있었다. 젊은 지배자 일 모로는 군사력을 기르는 한편 밀라노를 피렌체와 같은 문화 도시로 재정비하고자 했다. 레오나르도는 각종 분야를 넘나드는 박학한 지식과 놀라운 언변, 우아한 태도로 일 모로를 사로잡았다. 일 모로의 후원 하에 그는 자동으로 연주되는 악기를 만들고 화려한 축제를 기획하는 한편, 햇빛이 잘 들고 굴뚝의 연기는 잘 빠져나가는 쾌적한 가옥을 설계했으며, 밀라노 외곽의 강물을 도심으로 연결하여 물레방아를 돌리고, 화초를 키우고 자동으로 거리를 세척하는 설비를 고안한다. 신이 창조한 자연이 고유한 법칙대로 작동하듯이, 그 역시 자신의 ‘창조’에 따라 작동하는 도시를 꿈꾸었던 것.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는, 말 그대로 신에 필적하는 창조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700쪽에 이르는 레오나르도의 노트북은 온갖 그림과 암호 같은 문자들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다빈치 코드, 즉 신비한 ‘비밀’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밀이나 암호보다는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한 백과사전의 초고와 같다. 회화에 필요한 원근법, 빛과 그림자의 원리, 색채론은 물론, 비행원리, 인체와 동식물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 예술가의 윤리적 지침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사색까지, 그의 노트북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더듬는 화가의 잡담이 아니라 자연에 숨겨진 신의 창조 법칙을 알아내고자 하는 탐험가의 일지에 가깝다. 레오나르도의 왕성한 탐구욕은 회화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기존의 관습적 도상을 깨고 전에 없던 화면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암굴의 성모’에서는 옥좌에 앉은 성모가 아니라 어두운 동굴 안에서 사랑스러운 아들 예수가 가야 할 길을 안타까워하는 성모의 마음을, ‘최후의 만찬’에서는 고상한 성인들이 만찬이 아니라 저녁 식탁에서 갑자기 “너희들 중 나를 배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는 예수의 발언이 몰고 온 충격을 포착했다. 일 모로가 실각한 뒤에도 레오나르도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떠돌면서 자신의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를 우리는 ‘모나리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나리자’에는 윤곽을 명확하게 그리지 않고, 멀어질수록 대상을 뿌옇게 처리하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이 사용되었다. 세밀하게 표현된 풍경은 안개가 쌓인 듯 흐려지면서 사실감을 더했고, 살짝 흐릿하게 표현된 그녀의 입술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표정을 지었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것은 입술이 아니라 미소였고, 얼굴이 아니라 내면이었다. 대상을 재현하는 단순한 손 기술자를 넘어서 인간의 영혼을 눈앞에 되살려내는 창조자가 된 것이다. “시인은 이야기나 글로 형태를 정확히 묘사할 수 있지만, 화가는 얼굴 표정을 드러내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인물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그릴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시인의 펜으로는 할 수 없지만, 화가의 붓을 통해서는 이룰 수 있는 일이다.”(다 빈치의 ‘노트북’) ●위대한 탐구자, 겸허한 연구가로 레오나르도의 완성작은 10점 남짓이다. 바사리에 따르면, 이는 그가 “그조차도 실현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미완성 상태가 더 예술적이기 때문에 일부러 완성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레오나르도 스스로가 완성하는 일보다는 착상하는 일에 더 큰 기쁨을 느꼈다는 해석이다. 예술은 그에게 과학과 철학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 꽃과 시체를 관찰하고 스케치하는 일은 생명의 원리를 파악하는 일이었으며, 대포를 고안하는 일은 물리법칙을 알아내기 위한 실험설계였다. 그리고 그 모두는 자연의 섭리를 숙고하는 과정이었다. 그림은 목적이 아니라 사유를 돕는 도구였기에 생각이 완성되면 붓도 멈추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탐구욕으로 자연을 탐사하던 레오나르도는 말년에 이렇게 고백한다. “자연은 경험이 절대로 보여주지 못한 무한한 원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첩 한 구석에 이렇게 쓴다. “나는 계속하리라.” 위대한 탐구자만이 만날 수 있는 인간 이성과 경험의 한계에 이른 뒤에, 그는 겸허한 태도로 경이로운 자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생의 마지막까지 자연을 탐구한다. 그것이야말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놀랍도록 신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 위대함이었다. 구윤숙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더 헷갈리는 새 도로명

    더 헷갈리는 새 도로명

    ‘도로명 주소’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전국 자치단체가 고시한 도로명이 천태만상이다. 외국어를 남발하거나 발음이 어려운 옛 지명을 억지로 쓰는 바람에 ‘쉽고 간편하게’라는 도로명 주소 도입 취지를 흐리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11일 지자체에 따르면 인천 서구가 고시한 청라지구의 도로명 주소는 ‘크리스탈로’ ‘사파이어로’ ‘에메랄드로’ ‘루비로’ 등 외국어 일색이다. 청라지구 사업시행자가 만든 사업 존(zone)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속셈’이 담겼다. 도로명 주소에 외국어를 써야 세련된 이미지를 풍겨 집값이 올라간다는 생각을 가진 주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루비존의 한 도로명을 우리말로 했다가 집단민원에 밀려 뜻을 접어야만 했다. 송도지구도 ‘센트럴로’ ‘하모니로’ ‘벤처로’ 등 단지의 13개 도로 가운데 7개 도로가 외국어 명칭이다. 택배기사 최모(42)씨는 “외국어 도로명 가운데는 간단치 않은 것들이 많아 당분간 길 찾는 데 고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시 북구 첨단지구 엠코테크놀러지사 앞길은 처음 ‘천변로’에서 ‘엠코로’로 변경됐다. 광주 신안사거리∼임동오거리 구간은 일대 자동차 부품·정비업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미로’에서 ‘자동차로’로 바꿨다. 인천시 연수구의 ‘함박뫼로’ ‘먼우금로’ ‘미추홀로’와 남동구의 ‘매소홀로’ 등은 옛 지명을 되살린 것이지만 발음이 어려워 주민 인식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제주역사문화진흥원이 제주시에 제시한 ‘이형상 목사길’ ‘고조기로’ ‘김대건 해안도로’ ‘이기풍 목사길’ 등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실동길은 ‘배비장로’, 동광로는 ‘오돌또기로’, 연삼로는 ‘설문대로’, 번영로는 ‘자청비로’로 바꿨다. 이들 인물 중 상당수는 역사학자나 알 수 있다. 종교 색채가 강한 도로명을 놓고서는 지자체들이 엇갈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로’를 ‘덕릉로’로,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길’을 ‘지봉로’로 변경했다. 이처럼 불교식 도로명이 일반 도로명으로 바뀐 곳은 전국적으로 100여곳에 달한다. 하지만 충북도는 2009년 고시된 종교적 도로명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보은 법주사로, 단양 구인사로 등 불교식 도로명 15곳, 음성 성당길 등 천주교식 도로명 3곳, 음성 향교길 등 유교식 도로명 3곳을 계속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종교적 논란을 불러올 도로명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는 게 정부 방침이지만 주민들이 원하면 쓸 수 있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도로명 주소에 대한 주민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지난 6월 말까지였던 이의신청 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윤의영 협성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새 도로명은 이름을 가지고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를 벗어나 주소 식별 능력이 없다.”며 “이는 도로명을 정하는 데 기본적인 규정이나 지침이 명확하지 않아 주민들의 의견이나 공공기관 위주로 일방적인 의견이 너무 많이 반영된 데 있다.”고 지적했다. 충북도 도로명 주소 위원인 김영학 청주대 지적학과 교수는 “지역 주민들이 이해득실을 따져 엉뚱한 도로명을 요구할 경우에는 지자체들이 끌려다니지 말고 적극 설득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전국종합 kimhj@seoul.co.kr
  • [서울플러스] 새달부터 ‘동대문구 건강교실’

    동대문구(구청장 유덕열) 다음 달~10월 매주 목요일 ‘엄마와 아기가 행복한 동대문구 건강교실’을 운영한다. 임신·출산에 대한 이해, 건강한 자연분만법, 모유수유 등 프로그램이 풍성하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낮 12시 아빠와 함께하는 출산교실도 마련한다. 구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별 30~40명을 선착순 접수한다. 지역보건과 2127-5388.
  • “채소 잘 먹는 자녀 원하면 임신때 자신이 먹어야”

    “채소 잘 먹는 자녀 원하면 임신때 자신이 먹어야”

    많은 부모가 자녀의 건강을 위해 채소를 먹이려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아이를 가진 임산부나 모유 수유 중인 엄마 자신이 채소를 잘 섭취한다면 자녀의 올바른 식사습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8일 미국 공영방송 NPR의 보도를 따르면 필라델피아에 있는 모넬 화학감각연구소의 줄리 메넬라 박사 연구팀은 사람은 자궁 속 태아 상태부터 맛을 구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태아나 갓난아기는 모친의 양수나 모유를 통해 전달되는 양분의 맛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연구팀은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임산부들에게 마늘이나 설탕이 든 캡슐을 제공한 뒤 양수 표본을 채집, 이후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통해 후각으로 표본을 구분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메넬라 박사는 “시험자들은 쉽게 마늘을 먹은 여성의 표본을 골라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인간은 맛을 느낄 때 미각보다는 후각으로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또 연구팀은 태아 상태에서 맛에 대한 기억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상세히 검토했다. 연구팀은 임산부를 세 그룹으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는 임신 중 매일 당근 주스를 마시도록 했다. 또 다른 그룹에는 모유 수유 중 당근 주스를 섭취하도록 했으며 나머지 그룹은 완전히 당근을 피하게 하도록 했다. 이후 연구팀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기가 된 아이들에게 물이나 당근 주스로 만든 시리얼을 먹이도록 했고, 양수나 모유에서 당근을 경험한 아이들은 당근 맛이 나는 시리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엄마들은 자신을 먹는 음식을 아이에게 주는 경향이 있기에, 이 같은 결과는 아기에게 음식과 맛을 알려주는 자연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플로리다 대학의 미각 전문가 린다 바터셕 박사는 “메넬라 박사의 연구 결과가 자녀의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소아과 학회의 학술지 ‘소아과 저널’에 상세히 실렸다. 사진=NPR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시론] 세계육상선수권 마지막 준비와 미래를 위해/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시론] 세계육상선수권 마지막 준비와 미래를 위해/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우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스포츠를 통한 국가 간 경쟁과 국민 건강의 중요성을 느꼈으며,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가 인간의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이제 불과 18일 앞으로 다가온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과연 우리는 무엇을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또한 무엇을 느끼고 남길 것인가. 첫째, 우리가 마지막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모두 함께 마음껏 즐기기 위해 육상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인간 활동은 태초부터 달리고, 뜀뛰고, 던지는 동작으로 시작됐다. 근대 올림픽의 원형인 고대 올림픽이 달리기 한 가지로 시작됐다는 것에서 엿볼 수 있듯, 육상경기는 모든 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며 인간 스스로의 내재된 능력만으로 주된 승부를 겨루는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볼 수 있다.’고 하듯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제대로 즐기려면 육상경기를 이해하고 공부해 둘 필요가 있다. 육상경기를 살펴보면 참 재미나고 의문스러운 것들이 많다. 트랙은 왜 왼쪽으로 돌게 됐을까. 투척경기에서 원반·포환 및 해머던지기는 창던지기와 다르게 정해진 크기의 원 안에서 회전과 스텝 동작을 수행해 순간적인 파워로 던지는데, 그 발생 유래는 제각기 어떻게 다를까. 100m나 200m 단거리에서 스타트가 기록에 영향을 미칠 만큼 매우 중요하며 부정 출발을 하게 되면 바로 실격처리되는 것으로 규정이 개정된 뒤 선수들이 출발동작에 매우 민감해졌다. 어떻게 응원을 해야 할까. 선수들을 소개할 때는 열렬히 환호하되, 출발 직전에는 숨을 죽이고 조용히 해야 한다. 카메라 플래시도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선수들이 호흡을 고를 때는 찍지 않도록 해야 한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처음 나타난 역발상의 비밀병기 ‘포스베리 도약’(Fosbury flip)은 왜 높이뛰기의 신기원을 이루게 됐을까. 장대높이뛰기는 양치기 소년들이 지팡이를 사용해 방목장의 울타리나 장애물을 뛰어넘은 데서 착안된 종목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봉, 탄성이 우수한 대나무, 탄소코팅처리한 첨단 특수유리섬유의 장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기록이 변화해 왔을까. 육상경기의 진정한 의미에 흥미 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대회 이후를 위해서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대구 대회의 성공적 개최의 주요 관건은 완벽한 준비와 경기운영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의 우수한 경기력을 많은 관중들이 함께 즐기는 것과 더불어 국민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우리의 스타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였다. 우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대구 개최를 계기로 그동안 ‘드림프로젝트’, ‘뿌리자 50억’ 등의 구호를 앞세우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많은 노력을 통해서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던 100m와 400m 계주에서 새로운 기록이 수립되는 등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으나 적극성과 체계성은 여전히 다소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육상경기의 발전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집중투자와 관심을 통한 저변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모든 준비는 대회 이후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하며, 대회 준비와 개최과정에서 얻어진 효과와 시설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비해야 한다. 대회 개최 뒤 시설은 국제적 육상훈련센터 및 육상아카데미로의 발전적 육성, 생활체육시설, 스포츠과학연구단지 조성, 스포츠건강산업의 육성 등을 위해서 적극 활용토록 하며, 아울러 국제육상대회의 지속적 개최를 시도해 종합 스포츠타운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또한 대회 뒤 국내 육상의 대중화 및 세계화를 통한 육상선수의 저변 확대, 세계적 육상스타 발굴, 우수지도자 육성, 육상진흥재단 설립, 학교체육 및 생활체육으로서 육상 관련 클럽스포츠의 활성화, 국제육상대회 유치와 육상경기를 매개로 한 스포츠산업분야의 개발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 “재혼후 태어난 자녀 교육기회 덜 갖는다”

    “재혼후 태어난 자녀 교육기회 덜 갖는다”

    재혼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첫 번째 결혼을 통해 출생한 아이보다 교육 기회를 덜 갖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8일 고려대 경제학과 김진영 교수의 ‘다시 결혼해야 하는가’(Should I marry again?)라는 논문에 따르면 자녀의 교육 기간과 모유를 먹는 시간은 어머니의 교육 정도, 재혼 여부, 거주 지역 등과 관련이 있다. 특히 어머니가 두 번 이상 결혼을 하는 것은 그 과정에 태어난 아이의 학업 기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경우 ‘생물학적 친부모’와 살고 있음에도 투자를 덜 받게 되고 따라서 더 낮은 성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예비적 저축에 대한 동기가 재혼 가정보다는 초혼 가정에서 더 크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9일 한국개발연구원(KDI)와 한미경제학회(KAEA)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국제화, 인적자본 그리고 불평등’ 국제 콘퍼런스에서 ‘재혼의 경제학적 문제’라는 주제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어머니 교육 기간이 길거나 도시에 사는 것은 자녀 교육 기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모유 수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교육 정도와 사는 지역에 따라 모유 수유의 중요성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인 것으로 김 교수는 해석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9)송나라 대문장가 소식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9)송나라 대문장가 소식

    우리에게 소식(蘇軾·1036~1101)은 대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문장가일 뿐만 아니라 정치가이자 화가, 시인, 서예가였다. 심지어 그는 요리에도 조예가 있는 팔방미인이었다. 다방면에 걸친 그의 재능은 자신의 문장을 자평할 때 말한 것처럼, “만 섬이나 되는 샘의 원천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용솟음쳐 나올” 정도였다. “평지에서는 도도하게 콸콸 흘러 하루에 천리를 가기에도 어렵지 않다. 그것은 산의 돌멩이들과 어울려 꾸불꾸불 흐를 때에 사물에 따라 모양을 바꿔 나간다.”(‘자평문’) 자신의 문장에 대한 드높은 자부심과 거침없는 기개야말로 소식이라는 인간 그 자체이자 그의 문장의 특징이다. ●21살에 과거 급제… 정치 행보는 부침 거듭 21살, 소식은 과거에 급제했다. 당시 최고 문장가였던 구양수는 소식의 과거 시험지를 보고, “이 늙은이는 이제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소.”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구양수의 예언대로 소식은 3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를 대신해서 문단의 맹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소식의 이름이 문장으로 널리 알려지는 것과는 달리 정치적 행보는 부침을 거듭했다. 신법당과 구법당의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소식은 지방으로 좌천되었으며, 두 차례나 유배를 당했다. 1069년, 신종은 왕안석의 신법을 채택하여 정치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 신법은 대지주와 호족들의 토지 겸병을 막고, 관료체제를 정비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한 부국강병책이었다. 대지주와 호족지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법당은 시행과정 상의 예상 문제점들을 들어 신법을 반대했다. 구법당은 사마광, 정이의 낙파(洛派)와 소씨 삼부자(소순, 소식, 소철)의 촉파(蜀派)로 나뉘어 서로 신법에 맞섰다. 북송 ‘신고문운동’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소식과 왕안석은 한데 묶일 수 있지만, 정치적인 견해에서는 서로 달랐다. 또한 신법에 대한 정견이 일치했을지는 모르나 유가의 도를 종주(宗主)로 삼는 낙파와 달리, 소식은 노장과 불교를 모두 포괄한 유학자였다. 소식은 신법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세 차례나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일로 신법당의 미움을 사 한미한 관직으로 지방을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그의 문학적 활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시, 사(詞), 기(記) 등 호방하고도 개성 넘치는 문체를 형성하게 된다. 소식을 좌천과 유배로 몬 것도 그의 문장이요, 자신에게 닥친 정치적 불운과 험난한 인생을 치고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준 것도 그의 문장이었던 것이다. ●“생각이 충만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 소식은 “마음속 생각이 충만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고 봤다. “옛날에 글을 짓는 사람은 글에 능한 것을 ‘좋은 글’로 여긴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 쓴 글을 ‘좋은 글’로 생각했다. 산천의 구름과 안개, 초목의 꽃과 열매도 충만하고 울창하게 되어야 밖으로 드러나듯이.”(‘南行前集敍’) 작가가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 얻은 충실한 사상, 내용을 갖고 있으면 예술적 형식은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이 문장론은 ‘흉유성죽론’(胸有成竹論)이라는 예술론으로 더 잘 알려졌다. 문인화론의 확립자로 알려진 소식은 사군자, 특히 문동의 대나무 그림에 주목했다. “대나무를 그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하고 나서 붓을 들고 자세히 바라보아야지 그리고자 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때 급히 서둘러 붓을 휘두른다.”(’文與可畵篔簹谷偃竹記’) ‘마음속의 대나무’를 들어 소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술과 인격의 관계였다. 일체의 객관 사물이란 모두 작가의 주관적인 색채로 그려지고, 이렇게 함으로써 의경(意境)이 조화를 이뤄 감상자에게 생동감을 줄 수 있다. 문동이 즐겨 그렸다는 ‘누워서 쳐다 본 대나무‘는 단지 몇 마디의 대나무를 그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만 자가 넘는 화가의 기세가 담겨 있다.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으며, 자신의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문인의 기세. 요컨대 대나무라는 대상을 얼마만큼 잘 모사했느냐가 아니라, 대상을 통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화가의 고유한 감정과 정신세계를 얼마나 잘 드러냈느냐가 핵심이다. 이 같은 문인의 자부심이야말로 좌천과 유배와 같은 정치적 불운에도 굴하지 않게 만든 ’소식의 힘‘이었다. ●자신의 인연 받아들이고 ‘거사’ 자처 1079년(44세), 신법당과의 악연은 마침내 필화사건으로 터졌다. 오대시안(烏臺詩案)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소식이 썼던 시들에 임금과 정부를 모욕, 비방하는 내용이 있다는 신법당의 참소로 일어났다. 136일 동안 어둡고 좁은 감옥 안에서 그는 언제 사형 명령이 떨어질지 숨죽이며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했지만, 황주(호북성) 유배령이 떨어졌다. “본성이 말을 삼갈 줄 몰라서 남들과 친하건 친하지 않건 가릴 바 없이 마음속의 생각을 다 털어놓아야지 못다한 말이 있으면 마치 목구멍에 음식이 걸린 것 같아서 반드시 토해 내고야 마는” 소식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소철은 유배길을 떠나는 형에게 신신당부했다.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글과 말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호방한 성격의 소식이었지만 충정심이 나라에 죄를 얻은 상황이라, 폄적(貶謫·벼슬자리에서 내치고 귀양 보내다) 초기에 그는 글을 한 줄도 지을 수 없었다. 그는 “문을 닫고 외부와의 출입을 끊은 채 놀란 혼백을 가다듬고 물러나 엎드려 있었다.” 붓을 놓은 일은 외부와의 완전한 관계 단절을 의미했고, 또한 자기 존재의 의의까지 회의하게 만든 일이었다. 폄적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가족을 부양하는 경제력의 원천인 관직을 잃자 소식의 가족들은 갑작스레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졌고, 설상가상으로 동생·친척과의 이산 및 지인의 죽음은 인생무상으로 엄습했다. 폄적은 소식으로 하여금 다른 경계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어떤 문턱에 서게 만든 경험이었다. 소식은 불교 서적을 읽고, 근처 절을 찾아가 향을 피우고 고요히 앉아 묵상에 잠겼다. “깊이 성찰하여, 대상과 자아를 잊고 몸과 마음이 모두 텅 비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또 소식은 지인의 도움으로 황주성 동쪽 산비탈의 황무지를 사서, 그곳을 ‘동파’(東坡)라 이름하고, 자신을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이름보다 더 유명한 ‘동파’라는 호가 탄생한 시점이다. 이 시기 소식의 두 벗은 ‘도연명집’(陶淵明集)과 ‘유종원집’(柳宗元集)이었고, 그는 스스로를 도연명에 비유하며 세속적인 욕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저절로 흘러넘쳐 글이 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황주성 밖의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지은 ‘적벽부’(赤壁賦)다. “손님도 저 강물과 달을 아는가?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이 쉼 없이 흘러가나 아주 가버려 없어진 적은 없고, 달도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 저와 같으나 결국 줄거나 늘어나지는 않았네. 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천지도 일순간을 멈추어 있지 못하지만, 불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만물과 내가 모두 무궁하다네. 그러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는가? (중략) 또한 천지간에는 만물에 각기 주인이 있어 만일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가져선 안 될 것이나,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만은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보면 경치를 이루어 이를 가져도 막는 이 없고 써도 다 없어지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의 무한한 보배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겨야 할 것이라네.” 스무 살 무렵부터 ‘장자’를 애독하며 “이 책을 보고 마음을 얻었다.”던 그는, 이제 어떤 외물(外物)에도 얽매이지 않는 ‘거사’를 자처했다. 그리고 사물을 사물로 대하고 사물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사물의 바깥에서 노닌다.”고 말하며, 초월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적벽부’에서도 보이듯, 말년의 소식은 변화와 불변의 경계조차 자유로이 가로지르면서 초월적 경지조차도 초월한 듯이 보인다. 그는 이제 억지로 세간과 출세간을 분별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인연의 오고 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편안히 내맡길 따름이었다. ‘궁이후공’(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표현대로, 소식의 문장은 궁함을 통해 하나의 궁극에 이르게 된 것이다. 최정옥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다문화 가정 미취학 아동 학교…강북구, 주민센터 4곳서 개설

    강북구가 다문화 가정을 위해 아주 특별한 학교를 운영한다. 구는 이달부터 다문화 가정 미취학 아동을 위해 동주민센터 4곳에 ‘꿈동이 예비학교’를 개설했다고 3일 밝혔다. 꿈동이 예비학교는 언어·문화적 차이로 학교 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다문화가정 미취학 아동들에게 한글 교육을 해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송천동, 삼각산동, 번3동, 수유1동 등 권역별 거점 동주민센터에서 열리며, 센터별로 3~6명씩 모두 18명의 다문화 가정 자녀가 교육을 받게 된다. 강북구 인력풀 시스템에 등록된 퇴직 교사를 채용해 퇴직자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교사는 모두 5명이다. 예비학교는 한글 읽기와 쓰기, 영어, 수학 등 초등학교 1학년 교과과정 수업을 비롯해 독서, 생활 지도, 예절 등을 교육 내용으로 한다. 운영 시간은 월~금요일 오후 3시부터 4시 30분까지 2교시다. 번3동 주민센터 예비학교의 최명희 교사는 “발음, 낱말 등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부분들을 반복 지도할 계획”이라며 “한국인에게 필요한 역사와 전통문화 등에 대한 교육도 병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SH공사, 대학생 임대주택 8일부터 공급

    서울시 SH공사는 대학생을 위한 임대주택 ‘유스하우징’ 92개 방을 8일부터 공급한다고 2일 밝혔다. 도봉구 덕성여대 주변(수유·도봉·쌍문동) 37개 방, 마포구 명지대 주변(갈현·구산·역촌동) 25개 방, 성북구 정릉동 국민대 및 서경대와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주변 등 30개 방이다. 남학생에게 48개, 여학생에게 44개를 공급한다. 넓이는 5~12㎡다. 유스하우징은 SH공사가 기존주택 매입 분량 중 일부를 리모델링해 학생들이 적은 비용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한 기숙사형 주택이다. 주택에는 부엌 등 공용면적에 냉장고, 세탁기, 가스레인지 등을 갖췄으며 각방에 책상, 의자, 옷장 등도 마련돼 있다. 임대보증금은 100만원에 월 평균 임대료는 5만 8800원이며, 평균소득 50% 이하 차상위계층의 경우 보증금 100만원에 임대료는 7만 600원이다. 서울시 소재 전문대 이상 재학생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수도권 외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을 우선으로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차상위계층·도시근로자 평균소득 50% 이하 가정 자녀 순으로 선정한다. 신청은 공사 홈페이지(www.i-sh.co.kr)로만 받으며 당첨자 발표는 18일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계약기간은 26~31일, 입주는 26일부터 10월 25일까지다. 자세한 문의는 SH공사 콜센터(1600-3456)로 하면 된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185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 보바리라는 여인의 불륜을 다룬 소설이 발표되었다. 작품은 즉각 가족주의와 금욕적 도덕관을 내세우는 신흥 부르주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다음 해, 제2제국의 권위주의적 재판부는 풍기 문란과 종교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이 작품을 기소한다. 유부녀가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불륜을 저지른 여인의 종부성사를 장님의 상스러운 노랫소리가 화답하는 등 작품 전체가 간통을 미화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마지못해 문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변호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마담 보바리’와 작가 플로베르는 예술 창작을 암암리에 규제해 오던 부르주아적 도덕의 허위를 폭로했다. ●아버지, 나는 부르주아가 싫어요 플로베르는 1821년 소도시 루앙의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장력 있던 조숙한 소년은 자신의 재능이 문학으로 꽃필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방 부르주아였던 닥터 플로베르가 보기에 이 똑똑한 아들이 해야 할 일은 딴 데 있었다. 파리의 법대에 들어가 입신출세하고 부와 명예를 얻는 것! 1820년 왕정복고시대에 태어난 플로베르는 1880년 죽을 때까지 왕정, 공화정, 제정이라는 각종 정치 체제의 변혁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어떤 체제가 되었든, 사회의 주인공은 부르주아였다. 온갖 정치적 변혁의 한가운데에서 이 계급은 금융과 산업을 주도하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갔다. 소년 플로베르는 루앙의 시민들이 각자의 이권과 보신을 위해 질투에 찬 중상모략을 일삼는 것을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다들 온순하고 근면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비정한 야욕이 도시에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부르주아거나, 부르주아를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트거나. 청년 플로베르는 부르주아라는 말을 특정한 계층에만 국한해서 쓸 수는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돈이 없고 지위가 낮은 하층계급 안에서도 의사나 변호사 같은 번듯한 직업을 갖고, 돈 있는 가문과 결혼하고, 사교계에 나가 출세할 수 있으리라는 부르주아의 삶이 하나의 꿈으로 확실히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란 재정상태가 아니라 정신상태의 이름이어야 했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는 미덕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부르주아’라는 말에는 프록코트를 입은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작업복을 입은 부르주아들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써 보냈다. 플로베르는 1843년과 1844년 연이어 일어난 치명적인 신경발작을 겪었다. 그때부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예 부르주아적 삶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법대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포기하고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학계 안에서도 부르주아적 태도가 판 치고 있었다. 작가들은 기존의 문학잡지나 아카데미를 부와 명예를 향한 도약대로 삼아 그 안에서 자족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치의 격변기마다 부화뇌동하면서 사회문제, 대중의 교화, 진보, 민주주의 같은 판에 박힌 소리만 되풀이했다. 사실주의를 내세우면서 서민들의 대변자로 자처하고 하층민들을 동정할 뿐이었다. 플로베르는 이들을 보며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문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자신의 길은 분명했다. 부르주아적 세계관을 버릴 것!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창조할 것! 플로베르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오직 문학에 자신의 삶을 다 바치기로 했다. 나중에 카프카는 이런 플로베르를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모시며 평생 그의 작품을 가까이 했다. ●“나는 보바리다”-자살 장면 쓰면서 구토 플로베르는 본격적인 첫 작품을 구상하면서 안토니우스라는 성인에게 끌렸다. 안토니우스는 250년 무렵 이집트 북부에서 태어난 기독교 초기의 성자다. 그는 사막에서 고행하며 각종 이교도의 신들과 자기 안의 탐욕, 질투, 회의에 맞서 신앙을 지켜냈다. 플로베르는 이 성인의 삶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끊임없이 유혹을 마주하면서 수도해야 하는 성인처럼, 그 자신도 계속해서 부르주아적 태도와 취향을 마주하며 글을 써야 했다. 문학에 인생을 건다는 것은 그런 적극적 대결이 필요한 일이었다. “진주는 조개의 병에서 생기는 것이라지만 문체는 아마 그보다 더 깊은 고통을 통해 나오는 것일 거요. 예술가의 삶, 아니 예술 작품의 완성도 그렇지 않겠소? 거대한 산을 오르는 일처럼 말이오. 얼마나 집요한 의지가 필요하겠소! 그 산 정상은 창공 속에서 순수함으로 빛나고, 그 엄청난 높이는 공포를 가져다주지. 우리는 더듬더듬 바위에 손톱들을 찢겨가면서, 외로움 속에 눈물을 흘리며 계속 걸어가지. 우리는 욕망의 백색 고통 속에서 소멸하는 거요. 정신의 격류가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얼굴을 태양으로 향한 채!”(편지, 1853년 9월 16일) 제목은 ‘성 앙투안의 유혹’. 그는 3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의 이야기는 서정, 인물의 움직임, 구성 어느 것도 새롭지 않았다. 초고를 본 친구들은 상투적인 반복과 무질서한 구도에 진저리를 쳤다. 플로베르는 성 앙투안을 쓴다면서 결국 자신의 의식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자신도 타인의 삶, 다른 존재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여느 부르주아들과 다를 바 없었다. 플로베르는 작가의 개성과 정념이 지배하는 문학은 예술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플로베르는 예술이 제2의 자연과 같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불가해한 것. 숲 속에 살아 있는 수많은 나뭇잎과 초록의 속삭임처럼 무한하면서도 준엄하게 존재하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작가란 자신의 경험과 정념을 지움으로써 이 제2의 자연을 창조하는 존재여야 했다. 플로베르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기술하는 글쓰기, 그것이 바로 작가 주체를 소멸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는 나밖에 모를 거요. 주제, 인물, 효과 등등 모든 것이 나의 바깥에 있거든.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오. 예술과 예술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편지, 1852년 7월 26일) 그렇게 해서 플로베르는 자신과는 출신도, 성(性)도, 교육 배경도 완전히 다른 시골 유부녀 에마 보바리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그는 에마와 그녀 이웃들의 속물주의가 주는 혐오감을 견디며, 작품 속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도록 6년 동안 쉬지 않고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에마가 비소를 먹고 자살하는 장면을 쓰다가 구토를 하기도 했다. 플로베르는 종종 “나는 에마 보바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도승처럼 철저히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소멸시키고 에마 보바리라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시대의 허위와 대결 생애 마지막에 플로베르가 도전한 것은 두 명의 필경사 이야기다. 최신의 근대 학문을 다 섭렵해 보기로 한 부바르와 페퀴셰. 하지만 저명하다는 원예학, 지질학, 의학, 고고학, 심리학, 교육학 안에는 논리적 모순이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각각의 지식들은 현실에 적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정보를 추상적으로 나열하고 있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근대 지식의 한계에 대항하면서 진리와 미,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 작품의 부제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백과전서’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위해 1500권이 넘는 학술서들을 철저히 검토했다. 근대적 학문에 맹종하면서 인류의 진보를 신봉하는 부르주아의 어리석음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부바르와 페퀴셰의 인생에는 그 어떤 극적 드라마도, 감동적인 사건도 없다. 오직 실험과 논증이 백과사전처럼 한없이 펼쳐진다. 오락으로 읽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논리적인 대화의 연속이었다. 한가한 부르주아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사소설, 연애소설과 같은 소설의 전통적 구분은 이 작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미완으로 붙이게 된 뒷부분 개요에서 서술 방법과 작품 분석을 소개하기도 했다. 소설 안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해석하다니! 상상물인 소설과 현실의 작가가 뒤섞여 버린 것이다. 이렇게 플로베르는 19세기 문학의 온갖 관습을 무너뜨려 버렸다. 이 최후의 싸움은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면서 근대 학문의 어리석음과 부르주아 문학의 허위와 대결했다. 오선민(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중부 또 폭우] 지자체, 수해 주민 돕기·방재시설 확충 잰걸음

    [중부 또 폭우] 지자체, 수해 주민 돕기·방재시설 확충 잰걸음

    서울시와 경기도가 수해 지역 주민을 위한 긴급 지원과 방재설비 확충에 나선다. 서울시는 지난 26~27일 기습 폭우에 따른 피해 주민과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선지원 후정산 원칙’ 아래 총 193억원을 투입했다. 긴급지원금 160억원이 자치구를 통해 배정된 것이다. 이어 31일까지 추가 피해 현황을 확인한 뒤 1일 2차분이 집행된다. 시는 침수가옥 1만 2747가구와 소상공인 3230개 업체에 가구·업소당 100만원씩, 160억원을 투입했다. 이는 지난해 태풍 ‘곤파스’가 발생했을 때 지원한 규모와 같다. 가족이 사망한 가구주에게는 1000만원씩의 재난구호금을 지급하며 주택 파손 정도에 따라 최고 3000만원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피해 소상공인에게는 중소기업육성기금 200억원을 저리로 융자해 주고 응급복구비 33억원도 지원한다. 주택, 자동차 등 재산 피해를 본 주민에게는 7월분 재산세 징수유예, 침수 차량 자동차세 감면, 피해 주민이 대체 취득하는 주택·차량에 대한 취득세·등록면허세를 감면해 주기로 했다. 이번 집중호우로 주택이 파손되거나 사라진 경우 신청이 없더라도 7월에 부과한 재산세를 구청장이 직권으로 징수유예하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경기도는 주택이나 자동차가 호우로 파손된 피해지역 주민이 2년 안에 주택을 복구하거나 자동차·기계 등을 새로 사면 취득세와 등록면허세, 자동차세 등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피해 농가에는 농약대금으로 ㏊당 9만 9880원을 전액 국·도비로 지원할 계획이다. 피해 면적이 전체 경작지의 50%가 넘으면 양곡 80㎏들이 5가마에 해당하는 생계자금과 고등학생 자녀의 6개월분 수업료를 지원한다. 피해 농가의 농축산경영자금 상환을 피해율에 따라 1~2년간 연기하고 농업경영자금을 1년 거치 1.5% 상환조건으로 피해 농가당 6000만원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수해방지시설도 확충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서초·관악·동작구를 중심으로 방재시설물에 대한 설계용역 입찰을 서두르고 있다고 31일 밝혔다. 앞서 지난 28일 3개 지점 공사에 참여할 각 대상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냈으며, 3개 업체까지 공동도급도 가능하다. 사당역 주변에는 3만㎥ 규모의 빗물저류조 2개를 설치하고 사당천의 단면 폭을 16m에서 19m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용산구 한강로 일대에 빗물을 하수관으로 흘려보내는 시설인 관거를 총 1830m의 길이로 새로 만들며 빗물펌프장 2곳을 세운다. 특히 광화문광장 침수 방지를 위해 지하 40m 이상의 깊은 지하공간에 지름 3.5m 이상, 길이 2㎞의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을 설치하는 계획을 연말까지 조기에 확정하고 2013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우면산 산사태에 따른 서초구의 피해액이 95억원이 넘으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구는 이번 폭우로 17명이 숨지고 20명이 부상했으며 주택 2076가구를 포함해 5만㎡가 침수되는 등 1000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잠정 집계하고 있다. 김병철·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폭우 피해주민 지방세 감면

    행정안전부가 이번 집중호우 피해주민을 돕기 위해 일부 지방세 납부를 면제하기로 했다. 행안부는 이를 위해 28일 ‘집중호우 피해주민 지방세 지원기준’을 시·도에 시달하고, 적극적인 시행을 독려했다. 집중호우로 주택, 선박, 자동차 등이 파손·멸실돼 2년 이내에 복구 또는 대체취득하는 경우에는 취득세와 등록면허세가 면제된다. 자동차세는 소멸, 파손돼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시장·군수가 인정하는 경우에만 혜택이 주어진다. 또 주택파손, 농경지·비닐하우스 침수 등에 대해 지방세 감면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자치단체장이 지방의회의 의결을 얻어 감면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 납세자 신청, 자치단체장의 직권으로 6개월 이내 취득세 등의 납부기한 연장이 가능해지고 재산세, 자동차세 등도 신청 또는 직권에 의해 6개월 이내 징수유예가 이뤄진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호우피해 납세자 징수유예

    국세청은 최근 수도권과 강원도 등에서 발생한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납세자에게 최장 9개월까지 세금징수를 유예하고 납세담보 제공을 면제한다고 27일 밝혔다. 대상은 이달 31일 납기로 고지된 국세이며 불가피하게 납부기한이 지나 체납이 발생한 경우에도 체납액(가산금 3% 포함)에 대해 독촉 납부기한(독촉장 발부일로부터 20일내)까지 징수 유예 신청이 가능하다. 소규모 성실 사업자는 최장 18개월까지 징수 유예를 받을 수 있다. 국세청은 또 8월 중간예납 법인세 등 앞으로 납기가 도래하는 각종 국세에 대해 납부기한 연장 등을 실시하고 체납액이 있더라도 압류 부동산이나 임차 보증금에 대한 공매 등 체납 처분의 집행을 최대 1년까지 유예할 방침이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부고] 中 ‘兩彈一星’ 공훈 과학자 왕다헝

    중국의 저명한 과학자로 이른바 ‘양탄1성’(兩彈一星·원자폭탄, 수소폭탄, 인공위성) 개발에 큰 공을 세운 왕다헝(王大珩) 중국과학원 원사가 21일 노환으로 베이징 301병원에서 사망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22일 보도했다. 96세. 왕 원사는 중국이 세계적인 첨단과학기술 수준을 갖추게 된 기반을 마련한 인물로 유명하다. 왕 원사는 1986년 3월 다른 과학자 3명과 함께 최고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첨단과학기술 발전과 관련된 보고서를 담은 편지를 보내 덩의 결심을 이끌어 냈다. 이때 만들어진 ‘863계획’을 통해 중국은 항공우주, 신소재 등 첨단과학기술 발전에 자금과 인력을 지금까지도 집중 투입하고 있다. 칭화대 물리학과 출신으로 영국 셰필드대학에서 광학유리를 전공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엄청난 비밀에 속했던 특수유리 제조 기법을 습득하기 위해 박사학위 논문을 쓰다 말고 영국의 유리회사에 ‘위장취업’했다는 일화가 있다. 1948년 귀국해서는 다롄(大連)대학 공학원 설립을 맡았고, 창춘(長春)광학기기연구소에서 30년간 소장으로 지내면서 광학기술 연구를 주도했다. 1999년 양탄1성 공훈상을 받았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이젠 갑자기 진통 와도 마음 편안해요”

    “이젠 갑자기 진통 와도 마음 편안해요”

    지난 9일 충북 영동군 영동읍 설계리에 있는 영동병원 앞마당에서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얼마나 기쁜 일이 있기에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이시종 충북지사와 이용희 국회의원, 정구복 영동군수까지 참석했다. 잔치에 참석한 주민 200여명은 국수와 떡을 실컷 먹고 선물로 우산까지 받아갔다. 행사는 영동병원 산부인과 개소식이다. 도시 사람들은 “산부인과 병원 하나 생기는데 저렇게 잔치까지 하느냐.”고 하겠지만 영동군민들에게 산부인과 개설은 꼭 풀어야 할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19일 충북도에 따르면 농촌 지역인 영동군은 유일하게 있던 산부인과 개인 병원이 경영 악화 등으로 문을 닫은 뒤 2년간 임신부들이 옥천과 대전, 김천으로 ‘원정 출산’을 가야 했다. 부유한 사람들이 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나가는 해외 원정 출산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불룩 나온 배를 안고 힘겹게 1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서 진료를 받다 보니 임신부들은 병원만 갔다 오면 녹초가 됐다. 직행버스를 타고 가서 택시를 이용하다 보면 교통비로만 3만원 정도가 나간다. 출산을 앞두고는 돌발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주변에 산부인과 병원이 없다는 게 임신부들을 불안하게 했다. 일반 여성들도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려면 인근 지역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 지원으로 영동병원에 산부인과가 생기면서 이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서울과 대전에서 활동하던 산부인과 전문의 2명과 간호사 8명이 배치됐고 입원실, 진통실, 분만실, 신생아실, 처치실, 수유실, 초음파실 등이 마련됐다. 최신 의료장비 31종도 갖췄다. 물론 분만실은 24시간 운영된다. 산부인과가 없던 ‘분만 취약지’에서 한순간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분만 천국’이 된 셈이다. 시설비 10억원은 보건복지가족부와 충북도, 영동군이 분담했다. 정부는 해마다 인건비 5억원을 지원한다. 요즘 하루 환자가 30여명인데 이 가운데 6명 정도가 임신부라고 한다. 다음 달 출산할 예정인 이영하(35)씨는 “첫째를 옥천에 가서 낳느라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는 동네에 산부인과가 생겨 기쁘다.”면서 “특히 갑자기 진통이 와도 바로 병원에 갈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영동병원은 산부인과 개설을 기념해 1호 출산 아기에게 40만원 상당의 유모차와 육아용품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도 마련했다. 이르면 이달 말쯤 주인공이 탄생할 예정이다. 김하영 산부인과 간호팀장은 “없던 산부인과가 생기니까 가끔 남성분들이 불쑥 찾아와 ‘진짜 분만까지 하느냐’며 분만실 내부를 구경하고 간다.”면서 “지역의 출산율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정부 지원을 받아 경북 예천과 전남 강진에도 산부인과 병원이 생겼다. 예천은 산부인과 병원이 없어진 지 5년 만이다. 영동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與野 대표 친서민 정책에 ‘올인’

    與野 대표 친서민 정책에 ‘올인’

    여야 대표가 ‘친서민 행보’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이번 주부터 ‘현장 중심의 당 운영’을 내세우며 민생 간담회와 민생 투어를 진행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다음 달 중순까지 매주 분야·계층별 주제에 맞는 진보적 이슈로 승부를 걸었다. 경쟁적 친서민 행보는 8월 임시국회를 겨냥한 민심 다지기 성격이 짙다. 내년 총선 이전 마지막 여론전을 대비한 주도권 경쟁인 셈이다. 물론 여야 내부의 간단치 않은 사정도 반영된 전략이다. 홍 대표는 당 서민정책특별위원장을 겸직하지는 않기로 했지만, 친서민 정책에 손을 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7·4전당대회 이후 벌어지고 있는 당내 내홍 등을 추스르는 데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당 대표 비서실장인 이범래 의원은 17일 “서민특위에서 논의됐던 구체적인 대책들이 연속성 있게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요 정책엔 ▲대부업체 이자상한선 30% 인하 ▲국·공립대 등록금 동결 ▲전·월세 부분 상한제 도입 등이 꼽힌다. 기업들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오는 20일 서울 강북 수유 재래시장에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민생 간담회를 갖는다. 다음 달 말까지 전국 민생 투어도 나설 계획이다. 이에 맞서 손 대표는 2기 희망대장정을 통해 무상급식, 비정규직, 반값 등록금 등에 집중하고 있다. 야권 통합 국면에서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시도가 엿보인다. 실제 지난주 ‘중소기업 행보’에서 손 대표는 중소기업인과 직장인, 상인들을 잇따라 만나 경제 정의를 주장하며 재벌 및 대기업과 대립각을 세웠다. 신(新) 중소기업 보호 업종 지정, 자영업자와 골목상권 업종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 추진 등 10대 중소기업 대책도 내놓았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번 주는 ‘비정규직·청년 실업’을 주제로 정해 청년 및 민주노총·한국노총 간담회, 노동현장 체험 활동 등을 갖고 관련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혜영·홍성규기자 koohy@seoul.co.kr
  • 모유 먹이기 실습용 인형…기발한 상술 논란

    모유 먹이기 실습용 인형…기발한 상술 논란

    헉! 어린 소녀에게 모유 먹이기 실습용 인형을 선물한다고? 한 제조업체가 소녀들을 대상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교육을 시킨다는 컨셉트의 인형을 개발해 미국 사회에서 큰 파문을 불러키고 있다. 영국의 대중지 데일리 메일은 18일 ‘모유 아기(The Breast Milk Baby)’라는 이 인형이 출시를 앞두고 미국에서 엄청난 찬반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제품은 구입한 소녀가 목에 걸어 가슴에 두르는 일종의 턱받이와 유아 인형이 한 세트로 구성돼 있다. 턱받이의 젖꼭지를 가리키는 분홍색 꽃무늬에 아기 인형을 대면 젖을 빨아먹는 소리가 나고, 이후 트림을 시켜주지 않으면 아기 인형이 울도록 하는 장치가 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꼬마 숙녀들에게 매우 섬뜩한 장난감”이라면서 “모유 수유는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 가르쳐도 늦지 않다.”고 비판했다. 뉴욕 맨해튼에 산다는 니콜은 “사춘기도 안된 어린 소녀들에게 이런 기괴한 인형을 준다니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완구 제조업체 대변인은 “‘모유 인형’의 목적은 아이들이 장래에 아기들을 잘 기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데 있다.”면서 “우리는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다른 익명의 한 소비자도 “우스운 발상이지만, 특별히 유해한 제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논란 속에 이 ‘모유 인형’은 성별과 인종에 따라 6가지 차별화된 제품으로 개당 89 달러(약 9만5000)의 고가로 조만간 출시될 예정이다. 사진= 데일리 메일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7) 당나라 고문(古文)운동의 리더 한유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7) 당나라 고문(古文)운동의 리더 한유

    세상에 백락이 있은 연후에 천리마가 있으니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준마가 있더라도 노예의 손에 모욕을 당하다 (보통 말과 함께) 마굿간에서 나란히 죽어 끝내 천리마로 일컬어지지 못한다.(중략) 천리마를 채찍질하되 그 도로써 하지 아니하며 이를 먹이되 능히 그 재주를 다하게 하지 못하며, 울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채찍을 들고 말에 임하여 말하되 “천하에 좋은 말이 없노라.”하니 슬프도다. 참으로 말이 없느냐, 참으로 말을 알아보는 자가 없느냐?(‘잡설·雜說 중’) ●천리마, 백락을 찾아 나서다 송대(宋代)의 문장가 소식이 “문장으로써 8대 동안의 쇠미한 풍조를 진작시키고 도의로써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천하를 구제했다.”고 칭송했던, 당대(唐代) ‘고문(古文)운동’의 리더이자 송대 ‘신유학’(新儒學)의 계보를 논할 때 맨 앞자리에 놓이는 사상가 한유(韓愈·768~824). 그러나 한유의 청년 시절은 곤궁하고 암울했다. 당나라 대종 연간에 태어난 한유는 조실부모하고 형님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의지할 가문도 어른도 없었던, 실질적인 소년가장이었다. 집안을 일으키고 세상에 이름을 남길 방법은 과거(科擧) 합격을 통한 출세밖에 없었다. 그러나 과거를 보려 해도 추천이 있어야 했고 명문가의 자제들은 특채로 임용되었다. 한유는 자존심을 내던지고 재상의 집 근처에 머물며 자신의 추천을 부탁하는 편지를 연거푸 보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한순간도 자부심을 버리지 않는다. 스스로 천리마임을 자처하고, 세상에 그 천리마를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탄식한다. 천리마는 여기 있으나 백락은 여기 없구나! 그럴진대 천리마가 스스로 백락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유가 살았던 시대는 당나라가 경제, 문화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성당 시절에서 중당으로 넘어가던 때였다. 이 전환의 결정적 계기는 755년에 일어난 안사(安史)의 난이었다. 대규모 용병을 지휘하며 세를 키워가던 군벌의 잦은 반란으로 정치는 불안했고 유랑민이 속출했다. 당 제국은 일시에 혼란에 빠졌지만, 귀족들은 조정의 관직을 세습하면서 도교의 양생술이나 불교의 마음 수행에 빠져 백성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했다. 도대체 세상을 걱정하고 경영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런 탄식 속에서 한유는, 마음을 다스리고 뜻을 바로 하는 것이 천하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유학의 도(道)를 종주(宗主)로 삼아 스스로를 ‘유학자’로 정립한다. 당시의 사상적 조류는 불교와 도교였으며, 유학의 도는 쇠미해진 옛날의 도[古道]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한유는 이 유학의 도(道)야말로 백성을 구제하고 시대를 쇄신할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이런 신념하에, 어찌할 수 없는 신분의 특권을 인간의 능동적인 배움으로 뛰어넘고자 스승 되기를 자처했다. 그는 “옛날 성인은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데도 스승을 찾아 물으러 다녔고 지금의 사람은 성인보다 한참 부족한데도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사설·師說)라고 말하며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배움을 강조한다. 벼슬길에 나아가면 성인의 도를 실천하고, 물러나면 성인의 도를 전파하는 것이 유학자였기 때문에 제자를 키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장유(長幼)와 귀천(貴賤)에 상관없이 누구든 배우면 성인의 도에 이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의 견고한 귀족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한유에게 유학은 고리타분한 ‘옛 학문’(古之學)이 아니라 가장 혁신적인 ‘현재의 학문’(今之學)이었던 것이다. ●뿌리를 길러 열매 맺기를 기다리시오 새로운 사상은 새로운 글쓰기를 낳는 법. 한유가 귀족주의에 대항한 또 다른 방법은 글쓰기를 혁신하는 것이었다. 당대 글쓰기의 조류는 성당 시절의 화려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변려문(?儷文) 형식이었다. 변(?)은 두 마리 말이 나란히 수레를 끈다는 뜻이고, 려(儷)는 한 쌍의 남녀라는 뜻으로, 글을 쓸 때 글자와 성조(聲調)를 고려하여 나란하게 대구를 맞춰 쓰기 때문에 변려문이라 한다. 변려문은 한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중국 문학의 예술성을 한껏 높이는 글쓰기였다. 그러나 미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변려문은 당시의 어지러운 현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귀족들의 자족적인 글쓰기가 되고 말았다. 한유는 변려문의 알맹이 없는 공허함을 비판하면서 성인의 도를 드러낼 수 있는 고문(古文)으로 문풍의 변혁을 꾀한다. 한유의 주장은, 내용은 없고 화려하기만 한 지금의 글(時文)을 배척하고 누구나 읽을 줄만 알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예전의 문장을 쓰자는 것이다. 고문이란 당나라 이전 선진(先秦), 양한(兩漢) 시대의 산문적 글쓰기를 지칭한다. 맹자(孟子) 이후로 단절된 성인의 도를 계승할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자부하던 한유에게 고문은 옛 성인의 도가 담긴 모범적 글쓰기였다. 따라서 그의 ‘고문 운동’은 단순한 문장의 개혁을 넘어서, 귀족주의적 세계관에 대항하는 사상투쟁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유의 고문 운동은 중소 지주층, 과거 수험생인 젊은 지식인 계층에게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었을 때 남이 비웃으면 나는 기뻤고, 칭찬하면 근심했다.”라고 할 정도로, 한유는 전력을 다해 당시의 문장과 거리를 둔다. 그 결과 한유의 문장은 전고(典故)도 없고 성운(聲韻)도 없는 기이한 것이 되었다. 한유 문장의 특징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기(奇)’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변려문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독창적 글쓰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유는 고문의 담백한 문체와 명징한 내용 전달을 본받으면서도, 시를 산문처럼 쓰기도 하고, 글자를 반복해서 리듬감을 살리는가 하면, 참신한 소재를 글쓰기의 주제로 삼는 등 자신만의 파격을 감행한다. 그가 내세웠던 ‘유학의 도’는, 전통과 혁신이 통일된 글쓰기 속에서 효과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문장을 답습하는 것은 사유 자체를 답습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귀족적 질서에 종속되어 살 텐가.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써라! 한유의 고문 운동은 자기 시대 안에서 자기 시대를 극복하고자 했던 한 지식인의 처절한 ‘반시대적 고찰’의 산물이었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운다(不平則鳴) “대개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내게 된다. 초목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바람이 흔들면 소리를 내고, 물은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움직이면 운다. 만물이 뛰어 오르는 것은 무엇인가가 그것을 쳤기 때문이고 그것이 내달리는 것은 무엇인가가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고 그것이 끓어오르는 것은 무엇인가가 데웠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지 않는 쇠나 돌을 무엇인가가 치면 소리를 낸다. 말에 있어서 또한 이와 같아서 사람은 부득이한 일이 있은 뒤에야 말을 하게 된다. 노래하는 것은 생각이 있어서이고 우는 것은 가슴에 품은 것이 있어서이다.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마음에 편안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일 것이다(不平則鳴).” 한유는 평생 소리를 냈다. 청년 시절의 불우함, 유학자를 자처하며 많은 사람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시달렸던 비방, 두 번의 유배 생활, 생계를 위해 써준 묘지명 때문에 무덤에 아첨했다는 불명예까지, 그야말로 “평정을 얻지 못한” 한평생이었다. 56세에는 장안의 행정과 사법을 담당하는 장관인 경조윤의 자리에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한유는 평생토록 시대의 부침 속에서 민감하고도 과감하게 “소리를 냈다(鳴)”.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문장에 공명(共鳴)한 이들은 새로운 지식인 계층을 형성했고, 그가 내세운 ‘도’(道)는 훗날 후학들이 걸어가는 길이 되었다. 백락이 없음을 한탄하던 천리마의 고성(高聲)은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우리는 천리마인가, 백락인가. 천리마가 되지 못할 바에야,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세상 모든 소리(鳴)에 귀 기울이면서, 그 안에 담긴 ‘불평심’(不平心)과 공명해야 하지 않을까. 홍숙연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더위 잡고 입맛 돋우는 원기충전 ‘한 그릇’

    더위 잡고 입맛 돋우는 원기충전 ‘한 그릇’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길었던 장맛비가 그치고 나면 다음 주부터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찾아온다.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다 보면 기운이 빠져나가기 십상이다. 여름 더위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면 잘 먹는 게 최선. 하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기온에 입맛마저 잃게 된다. 여름이 보양식의 계절인 이유가 다 있다. 원기충전이 필요한 시기, 미각 회복과 영양 충만을 내세운 먹거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침이 보약!…상큼 달콤한 두부·생식 아침 식사는 하루를 지탱하는 힘. 하지만 시간은 빠듯하고 입안은 깔깔해 끼니를 챙기기 쉽지 않다. 대상 FNF 종가집은 아침식사 대용으로 간편하게 떠먹을 수 있는 두부 ‘살아있는 아침’(왼쪽)을 내놨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블루베리와 키위 맛, 두 가지다. 1등급 국산 발아콩을 갈아 만든 두부는 입자가 부드럽고 한층 고소하며, 과일의 상큼함이 더해져 입맛 없는 아침에 좋다. 아침에 선식·생식을 애용하는 사람들의 불만은 맛이 없다거나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은 곡물 분말에다 과일 분말을 넣어 영양은 물론 맛도 살린 ‘과일아침’(가운데)을 출시했다. 밀감, 키위, 사과 등 국내산 과일과 보리, 현미, 찹쌀 등 3가지 곡물을 함유했다. 과일함량 23% 이상에 한끼에 115㎉로 칼로리가 낮으며 설탕이나 화학첨가물이 전혀 없다. 풀무원녹즙이 내놓은 ‘복분자와 산수유’(오른쪽·120㎖·2600원)도 더위와 피로에 시달리는 남성들을 위한 건강음료다. 복분자·산수유·오디·대추 등의 추출액이 아닌 생즙이 한병에 담겼다. 외식업체 보양메뉴…닭갈비 피자·한방 갈비탕 외식업체들도 메뉴판에 여름철 보양식을 속속 채워 넣었다. 미스터피자는 닭갈비와 파인애플이 어우러져 매콤달콤한 맛으로 여름철 입맛을 돋워줄 ‘닭갈비 피자’(왼쪽)를 선보였고, 베이커리 브랜드 브렌댄코는 마늘을 넣은 신제품들을 대거 마련했다. 마늘에 함유된 알리티아민은 피로 회복과 활력 충전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프랑스식 고급파이에 마늘과 말린 토마토 등이 들어간 ‘갈릭 토마토 끼쉬’를 비롯해 ‘갈릭 커리 브레드’, 갈릭 어니언 브레드, ‘갈릭 토마토 피자’ ‘까망베르 갈릭 바게트’ 등 다채롭다. 테이크아웃 브랜드 카페아모제도 ‘불닭 세트’, ‘커리 치킨’, ‘비비큐 폭립&킹 프라운’(오른쪽) 등 보양메뉴 3종을 내놓았다. 한식 레스토랑 불고기브라더스는 갖가지 한약재를 넣은 ‘한방보양갈비탕’으로 삼계탕에 물린 성인 고객을, 청포묵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매력적인 ‘소고기 묵 샐러드’로 어린이 고객을 잡겠다는 심산이다. 유통업체 보양식 마케팅…즉석 전복 삼계탕 등 할인 올해 삼계탕은 가격이 너무 뛰어 ‘금계탕’으로 불린다. 이에 각 유통업체들은 저렴하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삼계탕 제품으로 알뜰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8월 14일까지 ‘즉석 전복 삼계탕’을 전국 88개 점포에서 하루 70통을 준비, 1만원에 1인 1통 한정 판매한다. 미역, 전복, 인삼, 황기, 마늘 등 삼계탕 재료들도 최대 30%가량 저렴하게 판매한다. 이마트는 타이완산 민물장어 4만 마리를 들여와 20일까지 판매한다. 한 마리에 1만 2400원이란 가격에다 양념까지 다 돼 있어 주부들의 환영을 받을 만하다. 보광훼미리마트는 바쁜 직장인이나 싱글족을 위해 집에서 데워 먹기만 하면 되는 반조리 삼계탕인 ‘하림삼계탕’(600g·7000원)을 내놨다. 복날 구매하면 500㎖짜리 콜라를 무료로 증정한다. 삼계탕도 귀찮은 이들에겐 여름 전용 ‘묵밥 도시락’(3000원)을 추천한다. 데울 필요 없고 소고기 육수를 그대로 부어 즐길 수 있다. 미니스톱은 삼각김밥의 주고객층으로, 더운 여름 공부와 씨름하느라 가장 보양이 필요한 중고생들을 겨냥해 훈제 오리를 넣은 삼각김밥을 한정 판매한다. ‘훈제오리샐러드’와 ‘훈제오리주물럭’ 2종(각 800원)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