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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潘 “국내 행동 과대해석·추측 자제했으면 좋겠다”

    潘 “국내 행동 과대해석·추측 자제했으면 좋겠다”

    “무슨 말을 할 것인지는 제가 결정 유종의 미 거두도록 도와줬으면” 대권시사 발언 파장에 수위조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30일 “저의 국내에서의 행동에 대해 과대해석하거나 추측하는 것은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방한 일정이 대권을 위한 정치 행보로 해석되자 방한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수위조절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무슨 일을 할 것인지는 제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한 첫날 대권 의지를 강력 시사하며 정치권에 폭풍을 몰고 왔던 반 총장은 한국을 떠나면서 다시 마지막 여운을 남긴 것이다. 반 총장은 이날 경북 경주시 경주화백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6차 유엔 비정부기구(NGO) 콘퍼런스 개회식 직후 기자회견에서 “제 방한 목적은 개인적 목적이나 정치적 행보 등과 전혀 무관하게 오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 행사에 참여하고 주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반 총장은 지난 25일 관훈클럽 간담회에서의 발언이 대권 의지를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데 대해 “과대하게 증폭된 면이 있어 저도 좀 당혹스럽다”면서 “(임기가) 7개월 남았다. 국민들께서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앞으로 뭘 할 것인지 많이 추측하고 보도하는데 제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는 제가 잘 아는 사람이고 제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이 말한 ‘결정’은 방한 첫날 “(퇴임 후) 한국인으로 돌아오면,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결심하겠다”고 말한 것과 같은 뜻으로 풀이된다. 이번 방한이 올 12월 31일까지인 임기 중 사실상 마지막 방한일 가능성이 큰 만큼 퇴임 후 새해 초 귀국하면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반 총장은 오찬장과 신경주역 등에서 ‘기자회견 발언이 불출마를 뜻하는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미소를 띤 채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반 총장은 기자회견에 앞서 열린 기조연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반 총장은 “박 대통령께서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데 농촌 개발과 사회경제 개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의 경험과 기술을 아프리카에 알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이번 방한 행보를 둘러싸고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지역 기반인 ‘대구·경북(TK)+충청 연대론’이 제기되는 상황이라 의미심장한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반 총장은 방한 마지막 날인 이날 유엔 및 외교부 관계자들과의 조찬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NGO 콘퍼런스 개회식 및 기자회견 직후 수행원들과 오찬을 한 반 총장은 이어 KTX로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한 뒤 미국 뉴욕으로 출국하며 방한 일정을 마무리했다. 경주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반기문 “국내 행동에 대해 과대해석, 추측 자제해 주면 좋겠다”

    반기문 “국내 행동에 대해 과대해석, 추측 자제해 주면 좋겠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방한 이후 자신의 행보를 둘러싼 정치적 해석에 대해 “국내에서 행동에 대해 과대해석하거나 추측하거나 이런 것은 좀 삼가, 자제해 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30일 경주화백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6차 유엔 NGO 콘퍼런스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관훈클럽 비공개 간담회를 했는데 그런 내용이 좀 과대확대 증폭이 된 면이 없잖아 있어, 저도 좀 당혹스럽게 생각하는 면이 많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반 총장은 그러면서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이런 데 대해 많이 추측들 하시고, 보도하시는데 제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는 저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사람일 테고, 제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방한 중 활동과 관련해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란다”면서 “정치적 행보와 전혀 무관하게 오로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적 행사에 참여하고 주관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저는 아직도 (임기가) 7개월, 정확히 오늘로 7개월이 남았다. 제가 마지막까지 잘 마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께서 제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반 총장의 이같은 언급은 지난 25일 관훈클럽 간담회 발언이 대권 도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큰 파장이 일었고 이후 행보에 대해서도 정치적 해석이 잇따르자 이에 대한 수위를 조절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당시 간담회에서 “유엔 사무총장에서돌아오면 국민으로서 역할을 제가 더 생각해보겠다”,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 때 (임기종료 후) 가서 고민, 결심하고 필요하면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반기문, 정치보다는 유엔 사무총장 역할 다해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 중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반 총장은 지난 26일 전날 밤 제주에서의 대선 출마 시사 발언에 대해 “확대 해석됐다”며 수위 조절에 나서는 듯했다. 그러나 곧바로 김종필 전 총리를 비공개로 만나면서 정치 행보의 보폭을 더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연말 종료되는 사무총장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국내 정치의 한복판에 서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반 총장은 그제 김 전 총리의 자택을 찾아 배석자 없이 30여분간 대화했다. 김 전 총리가 얼마 전 한 행사에서 “계기가 되면 반 총장을 만나 보고 싶다”고 한 데 대한 화답의 성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 전 총리는 우리 정치사에서 충청권의 최대주주였던 인물이다. 누구든 ‘대망론’을 펼치기 위해선 그의 ‘승인’을 얻어야 할 만큼 큰 힘을 발휘했다. 반 총장이 대권 의지를 밝힌 데 이어 김 전 총리를 찾은 것은 ‘충청 대망론’에 불을 지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 전 총리도 20대 총선 이후 ‘충청 역할론’을 강조해 온 터라 이런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반 총장은 어제도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정치색 짙은 행보를 이어 갔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고택에서 김관용 경북지사,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 권영세 안동시장 등과 오찬을 함께 했다. 서애 선생은 임진왜란 전 이순신·권율 장군을 발탁하고 명나라 원군을 끌어들여 전쟁 극복에 헌신한 명재상이다. 반 총장이 잠재적 대권 후보로서 안보와 외교에 탁월했던 서애의 리더십을 자신의 이미지와 연결해 보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 총장이 대권에 뜻을 두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외교적 전문성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춘 지도자는 국가에 큰 강점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반 총장이 지금 국내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은 누가 봐도 이른 감이 있다. 그는 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7개월의 임기를 남겨 두고 있다. 그동안 추진했던 사업들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등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그는 얼마 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로부터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이란 평가를 받았다. 평가의 공정성에 의심이 가긴 하지만, 정치에 성급히 발을 들여 총장의 역할에 소홀히 할 경우 이런 기사가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인 사무총장이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을 우리 국민은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반 총장 자신과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당분간 정치에 거리를 두었으면 한다.
  • 반기문 “北과 다시 대화해야”…대북제재 정부 정책과 ‘온도차’

    반기문 “北과 다시 대화해야”…대북제재 정부 정책과 ‘온도차’

    “총장으로 北에 도움되는 일 기여” 외교안보 전문가 자질 부각 관측 통일부 “지금은 때가 아니다” 전격적으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해 파장을 일으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6일에는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적극 제기하는 등 이슈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대선과 관련한 직접적 발언은 삼갔다. 이날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반 총장은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향한 길을 다시 찾아야 한다”며 “북한에 더이상의 도발을 중단하고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는 방향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개인적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해 무산됐던 방북 추진을 상기시키며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역할론을 강조함으로써 외교안보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읽힌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는 이 같은 반 총장의 인도적 접근론에 대해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이후 대북 제재·압박 원칙론을 견지했다. 반 총장은 이날 오전 전직 외교부 장관 및 외교부 인사들과의 비공개 조찬에서 “(언론에) 바로 대선 출마를 결심한 듯 보도됐는데 확대·과잉 해석됐다”고 얘기했다고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기자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반 총장의 이날 발언은 수위 조절용이라는 관측이 더 많다. 실제 이날 조찬에서 그는 전날에 이어 또다시 ‘국민 통합 지도자론’을 강조했다. 한 참석자는 “반 총장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강연에서 ‘국가 지도자는 국민 통합을 해야 된다. 분열을 조장하는 이가 리더가 돼선 안 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고 소개하더라”고 전했다. 반 총장은 또 올해 말 임기 종료 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언급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찬 이후 반 총장은 황교안 국무총리와 비공개 면담을 하고, 원희룡 제주지사 초청 오찬에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등과 함께하는 등 활발한 면담 행보를 이어 간 뒤 오후 늦게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으로 출국했다. 한편 반 총장의 전격적인 대선 출마 시사 발언에 그의 측근 그룹의 조언 등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관심으로 떠올랐다. 반 총장의 측근으로는 송민순·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 오준 유엔대사, 박수길 전 유엔대사, 최종문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 이태식 전 주미대사, 주철기 전 외교안보수석, 박준우 전 정무수석, 임성준·조창범 전 대사 등이 포진해 있다. 반 총장을 오랫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김원수 유엔 군축고위대표 대행, 윤여철 전 유엔 사무국 의전장, 김숙 전 대사, 박인국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등도 핵심이다. 새누리당 윤상현·홍문종 의원 등 친박(친박근혜)계도 원군(援軍)으로 알려진다. 제주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서울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재건축 앞둔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재건축 앞둔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

    # ‘강남 토박이’ 나고 자란 추억의 고향 -고등학교 시절 다녔던 상가 학원의 방이 아늑했던 기억. -초등학교 때 버스 갈아타던 동네로서 남다른 애착. -이곳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 -언제 돌아와도 같은, 고향 같은 느낌. -상가 3층을 주택형 사무실로 몇 달간 사용했던 기억. -00치킨은 인문학자들의 아지트. 강북 사대문 안 어느 오래된 동네 출신들의 추억담이 아니다. 강남하고도 신반포로 양쪽, 낡고 어수선하고 모양 없이 길쭉한 몇 개의 건물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박한 건물군과 그 길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이 이런 정도다. 소위 ‘강남 토박이’들의 정서다. 1974년에 완공됐으니 나이로 보면 이제 40년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한 사람의 추억을 오롯이 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꼭 수백년 나이를 먹어야 역사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꽃피는 산골’만 내 고향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 ‘강남 스타일’이 유쾌하게 희화화했던 그 강남도 알고 보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정든 고향이다. 그 무시할 수 없는 일부인 추억의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이 일대의 재건축 분위기 속에 이제 기억 너머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다른 고향이 사라지려는 참이다. # 5층 이하 ‘워크업 유형’… 전형적인 근대건축 한국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대규모 단지를 이룬 것은 1970년대부터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 단지는 과도기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 이전의 아파트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나 홀로’ 유형이 많았다. 길에 바짝 붙어 있는 경우도 흔했다. 이후 아파트는 점점 더 폐쇄적인 성격을 띠게 돼 지금은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1970년대만 해도 길이나 주변 지역에 대해 비교적 열려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길과의 관계를 거의 차단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이러한 1970년대 아파트 단지의 느슨한 과도기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구반포 노선상가 아파트가 속해 있는 반포주공1단지다. 1972년에서 1974년 사이 건립된 이 단지는 무려 3786가구의 대단지다. 지금도 구반포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한다. 5층 이하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소위 워크업 유형이며 전형적인 근대건축의 미학을 보여준다. 좋게 말해서 간결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무미건조하다. 유럽의 초기 근대주의 건축을 보러 간 사람들이 농담조로 ‘여기까지 와서 반포주공1단지를 보다니’ 할 정도다. 지금은 워낙 수목이 울창하게 자라 어딘가 북유럽을 연상케 하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생겼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 담장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통행을 제한하지 않는다. 동마다 수위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누구의 제지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신반포로를 따라 양쪽에 있는 몇 동의 노선상가 아파트다. 최대 424m에 달하는, 상당히 긴 건물군이다. 안타깝지만 시각적으로는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간판이 혼란스럽게 붙어 있고 말이 상가 아파트지, 당초 주거였던 2층과 3층은 이미 용도 변경돼 주로 학원들이 들어서 있다. 건립 후 10년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 생긴 변화라고 한다. 역시 사람들은 큰 길가에 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일까. 특이하게도 단지 내 다른 건물들이 5층인데 유독 거리에 면한 상가 아파트는 3층으로 오히려 더 낮다. 상가가 저 정도로 활성화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주거도 큰 길가라서 인기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결과일 것이다. 만약에 5층이어서 아래 2개 층이 상가이고 그 위 3개 층이 주거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이 연재를 통해 후에 소개할 동부 이촌동 한강맨션의 노선상가 아파트가 그런 경우다.) 이 건물군은 아파트 주민들만을 상대하지 않는다. 수많은 버스 노선이 지나가는 신반포로의 특성상 유동인구가 상당하며 이들 또한 상가를 찾는 고객들이다. 9호선 구반포역이 들어서면서 그 성격은 더욱 강화됐다. 그야말로 지역의 거점이다. 덕분에 몇몇 장소가 상당한 지명도를 얻었다. 위에서 언급한 치킨집은 인문학자들의 발길이 하도 잦아서 재건축을 해도 ‘한국 인문학의 성지’로 보존해야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수제비나 떡볶이로 유명세가 따르는 곳도 있다. 단지 주민들만 이용하는 상가라면 이런 현상이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건물군이 전면 도로와 후면의 단지를 대하는 태도다. 전면에만 상가가 있을 것 같으나 뒤로 돌아가 보면 단지 쪽으로도 열려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노선상가 아파트가 애초에 어떤 의도로 계획됐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엄연히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속해 있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려 있다. 바로 이 개방성이 이 건물에 대한 많은 사람의 애정과 추억을 가능하게 한다. # 설계자들의 고민 ‘가능한 한 많은 상가 넣기’ 주공이라는 거대 조직이 지은 건물이므로 설계자들의 존재가 따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나름대로 치밀하고 섬세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2, 3층의 주거는 36평이라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대형 평수다. 나름 고급 주거였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채광을 위해 비교적 가로 폭을 넓게 했다. 이에 반해 그 아래의 상가는 주거를 반으로 자른 형태다. 즉 폭이 좁고 깊은 평면을 갖는다. 이것은 상업 가로를 만드는 기본 원칙, 즉 주어진 거리에 가능한 한 많은 상가를 집어넣는다는 개념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그 결과 정면의 폭(‘프런티지’라 한다)은 좁지만 내부 공간에 깊이가 있고 게다가 양쪽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이렇게 좁고 긴 평면 형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업 가로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유형이다. 유럽의 상인 주거가 그렇고, 일본의 나가야(長屋)가 그렇고, 베트남의 보편적 도시 건축들도 그렇다. 한편으로 주거로 올라가는 계단을 후면, 즉 단지에 면한 쪽에 놓음으로써 주거는 엄연히 단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설계자들의 섬세함은 건물의 방위를 다루는 데서도 드러난다. 신반포로를 중심으로 남쪽에 H, J, L동이, 북쪽에 G, I, K, M동이 있다. 언뜻 생각하면 같은 평면을 데칼코마니처럼 마주 보도록 뒤집어 적용했을 것 같지만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향을 선호하는 문화를 고려해 모든 거실이 남쪽을 향하게 했다. 그 결과 남쪽 건물군은 거실과 계단실이 남향으로 붙어 있고, 북쪽 건물군은 계단실은 북쪽에, 거실은 남쪽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발코니, 주방의 위치 등 수많은 세부적 변화를 만들어 낸다. 즉 유사하지만 같은 평면은 아닌 것이다. 신반포로가 동서로 달리고 있어서 그렇지 만약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서 주거가 동향이나 서향이어야 하는 상황이 됐으면 과연 어땠을까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다.(주방에 딸린 작은 침실이 있는데 요즘 용어로 하면 ‘재택 가사 도우미’를 위한 방이어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신반포로 양쪽의 건물 입면이 매우 다를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또한 이 설계의 묘미다. 워낙 간판으로 뒤덮여 있기는 해도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실 창도 시원하게 열린 통창이 아니라 가로로 긴 창이다. 일반 방의 창과 높이는 같으나 길이만 다르다. 즉 거리에 직접 면하고 있음을 고려해 주거 부분 창의 크기와 형태를 조절한 것이다. 단지 내부의 일반 아파트 거실 창이 통창인 것을 보면 이것은 매우 의도적인 결과다. 동시에 이것은 거리의 통일적인 분위기를 위해서도 매우 적절하고 사려 깊은 조치다. 지금의 다소 초라한 모습에 가려 만만치 않은 생각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 압구정과는 다른 편안함… 미래에도 남겨질까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이 일대의 재건축 사업이 시작되면 갓 불혹을 넘긴 이 노선상가 아파트의 운명도 결정될 것이다. 물리적인 실체가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100%다. 다만 그 유형적 개념이 유지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가로변에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인터넷에서 찾아본 조감도에 의하면 단지 내부는 상당히 고층화되지만 신반포로를 따라서는 여전히 길게 늘어선 저층 건물군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애초에 한꺼번에 개발됐던 주공1단지와는 달리 재건축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진행된다고 한다. 따라서 반포로 양쪽 가로변의 경관이나 도시 구조가 서로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므로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욕심을 내 보자면 이 노선상가 아파트의 개념이 좀 더 발전된 형태로 다시 구현되는 것, 그리고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과정을 통해 반포로의 양쪽이 어느 정도의 통일성을 갖는 것, 이렇게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건물은 변해도 그 장소의 성격은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마침 이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재미 건축가 지정우의 증언을 옮겨 본다. “(…) 양쪽에 상가가 길게 있었기 때문에 가운데의 신반포로는 도로임에도 어떤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형성했습니다. 몇 군데의 횡단보도들이 그런 커뮤니티 장의 역할을 했고 보도 양쪽에서 서로 지인들과 동네 주민, 친구들을 발견하고 부르며 ‘내가 건너갈게’ 등의 손짓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한편 안쪽에 한신종합상가와 그 더 안쪽에 반포 상가열이 하나 더 있어서 ‘없는 게 없는’,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동네가 됐지요. 아파트나 상가나 형태적으로는 중성적인 모더니즘이어서 더 이 지역 주민들의 정서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후의 압구정이나 청담의 트렌디한 변화들과는 다른, 언제 돌아와도 같은,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을 갖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 정부 “北, 황강댐 무단방류 유감”

    정부는 18일 북한의 임진강 수계 댐 방류와 관련해 “북한이 (남북) 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무단 방류한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남북은 2009년 10월에 임진강 수해 방지 실무접촉을 가진 바 있다. 실무접촉에서 (댐) 방류 시에는 사전에 통보하기로 합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지난 16일 밤부터 17일 새벽까지 경기 연천군 임진강 군남홍수조절댐 상류의 수위가 급격히 늘어 북한의 방류 가능성이 제기됐다. 정 대변인은 “우리 국민의 재산 피해는 물론이고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러한 방류 행위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겠다”며 “앞으로 방류한다면 우리 측에 즉각 통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북한의 황강댐 방류와 관련해 “무단 방류한 적도 있고, 통보를 하고 방류한 적도 있었다”며 “통보할 때는 대개 군 통신을 활용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 2월 남북 사이 군 통신 및 판문점 연락 통로를 전격 폐쇄해 현재는 모든 채널이 단절된 상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임진강 군남댐 수위 늘어...北 ‘수공’ 의도?

    지난 16일 밤부터 17일 새벽까지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군남홍수조절댐 상류의 수위가 급격히 늘어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따라 북한이 댐의 물을 의도적으로 방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임진강 건설단은 “지난 15∼16일 북한지역에 100㎜가량의 비가 오며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16일 밤부터 17일 새벽까지 수위가 급격히 높아졌다”고 18일 밝혔다. 군남댐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필승교 횡산수위국 수위는 평소 30∼40㎝를 유지했다. 하지만 16일 오후부터 서서히 높아져 오후 10시쯤 1.0m를 돌파한 뒤 17일 오전 1시 20분께 1.97m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수위는 점차 낮아졌다. 군남댐 수위도 16일 오전 7시 31.26m에서 오후 9시 31.75m, 오후 10시 32.03m, 오후 11시 32.30m로 높아진 뒤 17일 오전 1시에서 2시 사이 32.71m까지 올라갔다. 이에 따라 임진강 건설단은 17일 오전 1시께부터 수문을 열고 초당 500t의 물을 방류했다. 앞서 연천군청과 군부대, 소방서, 연천 어촌계 등 유관기관에 통보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다만 인명피해는 없었고 파주시와 연천군에 신고된 어민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관계자는 “군남댐 상류 임진강 수위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댐을 방류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 “물이 급격히 불어나 유관기관 통보 등 필요한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면허 정지·분노조절 교육… 호주, 최대 10만 달러 벌금

    美, 면허 정지·분노조절 교육… 호주, 최대 10만 달러 벌금

    지난해 말 국회는 보복운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했다. 난폭운전에 대해서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법정 형량을 높였다. 다른 주요 국가들은 이미 10여년 전에 처벌 수위를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였다. 7일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난폭·보복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2004년 26건에서 2013년 247건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은 주(州)마다 교통 분야 관련 법령를 정비해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2000년부터 총과 같은 무기를 사용한 폭력, 폭행, 뺑소니, 난폭운전 등 ‘로드 레이지’ 행위에 대해 유형별로 4년 이하의 징역이나 1만 달러(약 1151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사처벌과 동시에 6개월간 면허를 정지시킴과 동시에 분노조절 교육 이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뉴저지주는 난폭 운전자가 몰던 차에 치여 반신불수가 된 10대 소녀의 이름을 딴 ‘제시카 법’을 2012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로드 레이지 행위에 대해 징역 2~5년 또는 1만 5000달러(약 1727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호주는 로드 레이지를 ‘중범죄’로 규정하고, 상대 운전자를 쫓아가며 협박한 경우 징역 5년까지 선고한다. 실형과 함께 최대 10만 달러(약 1억 1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면허를 박탈하기도 한다. 독일도 운전 중에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공격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실제 사고로 이어지면 징역 2년까지 내릴 수 있다. 프랑스는 2003년 형법을 개정해 운전 중에 안전을 해친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마련했다. 운전자의 인내심이나 조심성 부족, 안전성 무시 등이 처벌 대상이다. 상대방이 사망하면 사고의 고의성이 없어도 최대 징역 7년에 처할 수 있다. 홍창의 가톨릭관동대 인문경영대 교수는 “프랑스의 경우 운전자의 73%가 다른 운전자에게 모욕적인 제스처를 해 본 경험이 있고, 53%가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우리나라처럼 보복운전의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경우가 많아 프랑스도 처벌 규정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당신의 감정 브레이크는 고장나지 않았나요

    당신의 감정 브레이크는 고장나지 않았나요

    회사원 서모(35)씨는 지난 2월 15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운전을 하다 앞으로 끼어드는 25인승 초등학교 통학버스를 향해 사정없이 경적을 눌러 댔다. 버스는 끼어들지 못하고 차로로 복귀했지만 서씨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교차로에서 창문을 열고 버스 기사 강모(69)씨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그 기사가 아버지뻘인 것도, 뒤에 초등학생들이 타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씨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더욱 화가 치민 서씨는 버스 앞으로 끼어들어 급제동을 반복하며 200m가량을 갔다. 결국 그는 보복 운전을 한 혐의(특수협박)로 경찰에 입건됐다. 서씨는 경찰에서 “버스 기사가 대꾸도 않고 나를 무시해 더 화가 났다”고 말했다. ●분노조절장애로 툭하면 길 위의 분풀이 난폭·보복 운전에 대한 당국의 제재와 처벌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올 하반기부터 문제 있는 행동을 한 운전자들에 대한 심리 테스트가 의무화된다. 또 오는 7월부터 심리교육 의무 이수 대상자가 난폭 운전 입건자 외에 보복 운전 입건자로 확대된다. 경찰청은 최근 ‘난폭·위협 운전 위험 지수 자가테스트’를 만들고 하반기부터 이를 실용화하기로 했다. 난폭·보복 운전을 하다가 적발된 피의자는 의무적으로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테스트 결과는 도로교통공단으로 통보돼 피의자 심리교육의 기본 자료로 이용된다. 현재 난폭 운전자에 대해 의무적으로 실시되는 도로교통공단의 6시간 심리교육(상담 5시간·교육 1시간)은 올 7월부터는 보복 운전자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지난 2월 15일부터 3월 말까지 보복·난폭 운전자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인 결과 도로에서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이른바 ‘로드 레이지’(Road Rage·도로 위 분노) 사례들이 대거 적발됐다”며 “난폭·보복 운전을 줄이기 위한 운전자 심리교육이 절실하다”고 4일 밝혔다. ●‘난폭·위협 운전 위험 지수 자가테스트’ 해 보세요 경찰이 보복 운전자들의 유형을 분석한 결과 ‘앞차의 서행’, ‘방향지시등 없이 끼어들어서’, ‘내 차를 앞질러서’, ‘경적을 울려서’ 등이 많았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네가 뭔데 내 차를 막아’라는 인식을, 지위가 낮은 사람은 ‘안 그래도 되는 일이 없는데 길에서도 무시당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독립된 공간에서 마음대로 차의 방향과 속도를 조종하는 게 운전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품은 사람들이 못마땅한 일에 대해 즉시 보복을 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운전 중에 작은 손해라도 당하면 참지 못하고 항의를 하거나 타인의 운전을 방해하는 로드 레이지 사례가 늘고 있다”며 “단속과 처벌도 필요하지만 잘못된 운전 습관과 마음가짐을 고치도록 교육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강신 기자 xin@seoul.co.kr
  • “속도 지키면 속 뒤집어져” 분노조절 못하고 자기합리화… ‘괴물’로

    “속도 지키면 속 뒤집어져” 분노조절 못하고 자기합리화… ‘괴물’로

    분노와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차들이 도로를 질주하며 다른 운전자들을 공포로 몰아간다. 순한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진다는 말이 어제오늘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정도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자동차 2000만대 시대’ 국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급기야 작년 말 국회가 난폭·보복 운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했고, 지난달 말에는 법원이 난폭·보복 운전에 대한 처벌 수위(양형 기준)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까지 파괴하는 ‘도로 위 분노’(로드 레이지)의 실태와 원인, 해결 방안을 4회에 걸쳐 짚어 본다.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저를 난폭한 운전자로 만드는 것 같아요. 저 자신이 이렇게 운전하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고쳐지지가 않네요. 사고 위험도 높고, 보행자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잘못하면 감방에 갈 수도 있고, 그런 거 다 알기는 하는데….” 사업가 A(37)씨는 바이어를 만나고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하루 평균 다섯 번 정도 운전대를 잡는다. A씨가 가장 참지 못하는 것은 차량 정체다. 가속 페달을 꾹 눌러 밟고 싶은데 브레이크 페달에만 발이 놓여 있을 때는 가슴이 터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여성 운전자와 노인 운전자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여자하고 노인은 차를 끌면 안 돼요. 차량 흐름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죠. 운전면허증을 왜 아무나 다 줍니까.” 심리 테스트 결과 그는 스트레스와 분노 지수가 정상 수치를 크게 웃돌았다. 분노조절장애도 있었다. 지난 1월 주변의 권유로 첫 심리 상담을 받았을 때만 해도 “다른 사람도 다 이 정도로 운전하는데 뭐가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였다. 다행히 상담을 통해 ‘스톱버튼’ 기법을 배우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 스톱버튼 기법은 화났다고 느껴질 때 바로 폭발시키지 않고 가슴 부위에 화를 참는 단추가 있다고 가정한 후 그 버튼을 누르거나 치면서 상황을 넘기는 심리 안정 요법이다. 서울신문은 ‘도로 위 분노’(로드 레이지)의 일반적인 형태와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4일 도로교통공단에서 심리 상담 및 치료를 받는 ‘난폭 운전자’ 5명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은 모두 업무나 차량 정체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통제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평소에는 안 그런데, 이상하게 운전대만 잡으면 자신도 모르게 ‘괴물’로 돌변하는 것 같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심리 테스트 결과 다른 운전자의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규칙을 잘 지키는 데 대해 ‘고지식하고 답답하다’며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원 B(29)씨는 유복한 가정환경 덕에 3억원짜리 이탈리아제 스포츠카를 끌고 다닌다. 심리 테스트와 상담을 해 본 결과 스트레스 지수가 높고 공격적인 성향도 두드러졌다. 상습적인 과속과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등으로 면허정지 처분을 두 번이나 받은 상태였다. 그는 규정 속도를 지키는 차들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운전 못하는 사람들이나 규정 속도를 지키는 거죠. 왜 그렇게 도로에 1000㏄짜리 경차가 많은지 모르겠어요. 그런 차들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아주 속이 뒤집어집니다.” 자기 운전 실력에 대한 지나친 확신도 나타났다. “사람들은 저더러 난폭 운전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큰 사고 낸 적 없어요. 과속이야 재수 없으면 걸리는 거고. 벌금은 어차피 제 경제력으로 감당할 수 있죠.” 그를 상담했던 교수는 “이런 유형의 운전자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확신이 너무 강해 개선이 가장 어려운 경우”라며 “심리치료 후에도 운전 습관이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 C(46)씨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했다는 것에 자부심이 높았다. 스트레스와 분노 지수는 평균 수준이었는데, 그는 사회 시스템에 불만이 많았다. “예전에는 아는 사람을 통해 뒤로 일을 처리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필요한 서류도 많고 복잡합니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각박해졌어요.” 그는 최근 강화된 교통법규 준수 의무도 우리 사회 시스템이 답답해진 결과라고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없으면 빨간불에도 갈 수 있고 우회전 전용 차로에서 직진도 할 수 있는 거죠. 또 어쩌다 보면 깜빡이 안 켜고 끼어들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는 고지식하게 신호를 다 지키는 차들이 앞에 있으면 심하게 짜증이 난다고 했다. “행인이 없는 1차로에서 빨간 신호마다 서는 차 뒤에 있으면 답답해 죽을 것 같아요. 그럴 때는 당장이라도 내려서 앞차 문을 두드리고 욕을 퍼부어 주고 싶습니다.” 그를 상담한 교수는 “교통 시스템은 바뀔 수 없으니 운전자 스스로 바뀌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설득하는 데 역점을 뒀다”고 전했다. 택시 기사 D(44)씨는 거의 분노조절장애 수준이었다. 9년째 회사 택시를 운행하는데 다른 택시와의 경쟁 때문에 분노 지수가 높아진 경우였다. “자꾸 손님을 놓치니까 화가 나죠. 내가 점찍어 놓은 손님을 다른 택시가 태우면 너무 화가 납니다.” 그는 자신을 앞질러 손님을 태운 택시에 경적을 울리며 추격하거나 욕설을 퍼붓고 위협하다 여러 차례 경찰에 적발됐다. 버스 정류장 주변에서 손을 흔드는 고객을 태우려다 버스가 끼어들어 손님을 놓친 뒤 버스 기사와 시비가 붙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납금 내기가 버거워요. 지난해 말부터 마이너스통장으로 생활하고 있다고요. 손님들도 툭하면 신고한다고 하고, 취객의 난동도 많고, 사는 게 완전 스트레스예요.” 음식점을 운영하는 E(41)씨는 심리 테스트 결과 스트레스와 분노 지수는 정상 범위였다. 하지만 난폭 운전을 즐기는 자동차 마니아였다. 1억 2000만원짜리 수입차(BMW M3)를 탄다. 후방에는 대형 스포일러(날개)를 달았고 소음기를 떼내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차는 천둥 치는 소리를 낸다. 그 역시 운전대를 잡으면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이렇게 잘 나가는 차인데 좀 밟아 줘야 하지 않겠어요. 차가 막히면 답답해서 성질이 납니다.” 그는 자동차 경주를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는 이른바 ‘칼치기’를 즐긴다. “틈이 보이면 일단 머리부터 들이밀고 보는 거죠. 그러면 다 알아서 비켜 줘요. 깜빡이는 안 켜요. 깜빡이를 켜면 오히려 안 비켜 주려고 하는 차들이 많아서요.” 그는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공단 측은 심리치료로 역할극을 하도록 유도했다. 자기 차가 고장 나서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달리는 상황을 가정했다. 뒤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지나가며 창문을 열고 욕설을 해댔다. 그는 “빨리 가고 싶지만 차량 문제인 것을 어쩌라는 건지 당황스러웠다”며 “다른 사람의 심정을 다소는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난폭·보복 운전자도 자기가 거칠게 운전한다는 걸 알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피해자의 심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상담을 하면서 자신의 운전 방식이 타인에게 공포심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운전 습관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사설] 北 GPS 교란 허둥대며 더 큰 도발 대응 가능한가

    북한의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GPS 항해 장비가 먹통이 된 탓에 어민들이 조업에 큰 불편을 겪고 서울과 경기 등 지역에는 전파 교란 ‘주의’ 경고가 내려져 있다. 선박, 항공, 통신에 지속적인 교란 신호가 잡힌다니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민간 항공기나 어선이 GPS 오작동으로 대형 참사를 빚거나 본의 아니게 월북하는 등의 실질적인 불상사가 없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 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어떻게 수위를 높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북한의 위험천만한 도발 행태다.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며칠째 전파 교란을 계속하는데도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고만 되풀이하는 정부의 태도는 안이하기 짝이 없다. 당장 인명 피해가 없으면 안심해도 좋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북한의 GPS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이후 벌써 네 번째다. 정전협정은 물론이고 국제전기통신연합의 국제 규정까지 위반한 명백한 공격 행위다. ‘간 보기’식 도발을 실험한 북한은 번번이 교란 범위와 강도를 조절하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다. 교란 전파에 기껏 방해 전파를 쏘고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우리의 대응책이니 북한으로서는 갈수록 대담해질 만도 하다. 반복되는 북한의 공격 행태에 우리 정부와 군이 무감각해져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이번 교란 대응 과정에서도 대책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한심스럽다. 국방부, 미래창조과학부, 국민안전처 등 관련 부처에서 내놓는 피해 집계 상황부터 따로국밥이다. 이런 수준인데 교란 망동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컨트롤타워는 기대할 수도 없다. 군 당국은 한 달 전부터 북한의 전파 교란 징후를 파악하고서도 입을 닫고 있었다니 무슨 계산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얼마나 큰 불상사가 터져야 뒷북을 칠 요량이었는지 군은 해명하고 반성해야 한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와 국제 사회의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 5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겠다는 북한의 엄포를 공갈로만 흘려 들을 수는 없다. GPS 교란 정도에도 이렇게 허둥지둥 쩔쩔매고 있어서야 갈수록 대담해지는 도발을 어떻게 막아내겠는가. 강도 높은 사이버 공격과 민간인 테러, 에너지 시설 파괴 등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미리 철저한 대응 태세를 갖춰야만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다.
  • 北 체제결속 강화 포석… 고강도 추가 도발 가능성

    북한이 지난달 29일 300㎜ 신형 방사포로 추정되는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한 지 불과 사흘 만인 1일 동해상에 지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이틀 연속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전파를 내보내는 도발을 이어 갔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의 잇단 저강도 무력시위가 다음달 초 7차 당대회를 앞두고 내부 결속을 다지고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하면서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추가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로켓) 발사에 대응해 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지난달 3일 300㎜ 신형 방사포 6발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6차례에 걸쳐 17발의 다양한 발사체를 발사했다.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지대공미사일은 사거리가 10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나 한·미·일 3국 정상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강력한 공조체제를 과시한 직후 발사했다는 점에서 국제 사회의 대응을 지켜보며 도발 수위를 조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는 “북한의 잇단 단거리 발사체 발사는 당대회를 앞두고 남측에 위협을 가해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체제 내부 결속을 강화하며 경제력 건설에도 전념하겠다는 ‘양수겸장’의 의미”라고 분석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여러 형태의 핵·미사일 공격이 가능하다는 시위를 한 다음에 우리가 이에 추가 대응하면 기존과 다른 군사적 도발을 과감하게 시도하며 한반도에 핵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미 군 당국은 특히 북한이 지난해 10월 열병식을 통해 선보인 ICBM ‘KN08’ 개량형을 ‘KN14’라고 따로 명명해 분석하고 있다. 이는 9000㎞ 이상으로 추정되는 KN08보다는 사거리가 짧은 것으로 추정되나 조만간 시험 발사와 실전배치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청소년인줄 모르고 술 판매 땐 처벌 완화

    위조된 신분증에 속아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거나, 청소년의 강압에 못 이겨 술을 내준 술집 업주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아진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청소년에게 술을 판 식품접객영업자를 보호하고자 처벌 수위를 조절해 영업정지 처분을 기존 60일에서 6일로 줄인다고 30일 밝혔다. 관련법인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전날 입법예고했으며, 5월 9일까지 의견을 받고 8월 4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대상인 식품접객영업자에는 호프집이나 소주방뿐만 아니라 일반 음식점, 편의점 등이 모두 포함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경쟁 주점에서 청소년을 고용해 일부러 위조한 신분증으로 술을 사게 하고 청소년에게 술을 판 업주를 신고하는 등 악용하는 사례가 생기다 보니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영업정지 기간을 줄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임을 알 수 있더라도 아르바이트 직원 혼자 근무하는 심야 편의점에 건장한 체격의 청소년이 우르르 몰려와 술을 팔라고 요구하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례가 접수되면 지방자치단체의 위생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 나가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강압적인 상황이었다고 판단되면 처벌 수위를 낮춰 행정 처분을 내린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최문순 강원 화천군수

    [자치단체장 25시] 최문순 강원 화천군수

    “산천어축제로 세계인들에게 알려진 접경지역 화천 군민들이 이제는 풍요로운 경제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해 나가겠습니다.”지난달 16일 기자와 함께한 최문순(61) 강원 화천군수는 휴전선을 지척에 둔 인구 2만 7000명 안팎의 산골마을을 살기 좋은 고장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혼신의 열정을 쏟고 있었다. 산천어축제가 끝난 화천천을 찾아 청정 생태하천 복원과 안전을 챙기고 인재교육의 산실이 될 어린이도서관 공사 현장을 찾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최 군수 자신이 군 지역경제과장으로 일할 당시 기획하고 시작했던 ‘산천어축제’가 대박을 터뜨리고 자치행정과장 시절 시작한 다양한 ‘인재육성 프로그램’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큰 자신감이 생겼다. 폐장한 축제장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조각을 돌아보며 안전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꼼꼼함이 묻어났다. 최 군수는 화천 토박이로 하남면 원천리 산골마을의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살림 탓에 고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농사를 지어야 했다. 하지만 근면함으로 화천군 4H 연합회장을 맡는 등 리더십을 키워 나갔다. 24세 때 군 9급 농업직으로 공무원에 입문한 뒤 행정직으로 옮겼고 기획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면장과 주민생활지원과, 기획감사실장을 두루 거쳤으며 강원도인재개발원 교육연구실장과 화천 부군수직을 끝내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화천군수로 당선됐다. 평소엔 실무자에게 업무를 맡겨 성과를 지켜보는 성격이지만 자수성가한 탓에 ‘될 성싶은 사업이다’ 판단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꼼꼼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별명도 ‘탱크’다. 산천어축제의 시작부터 성공까지 관여했던 산증인으로 이 축제만큼은 군수가 직접 챙기며 독려한다. 2003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산천어축제가 승승장구하는 이유다. 비슷한 겨울축제를 펼치는 인근의 다른 자치단체들이 화천군을 따라가지 못하는 노하우의 대부분은 최 군수가 직접 챙기고 지시하며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날 얼곰이성 등 축제가 끝난 현장을 찾은 최 군수는 “2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한 ‘2016 산천어축제’도 역대 최고의 축제로 기록됐다”면서 “지난해보다 4만명이나 많은 154만여명이 축제장을 찾았고 이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만 7만 5000여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방문은 집계를 시작한 2006년 1000여명이 찾은 이후 10년 새 70배 이상 늘어났다.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잡았다는 방증이다. 여기에는 산천어축제가 갖는 남다른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함께 간 오경택 예산계장은 “흐르는 물은 웬만한 추위로는 얼지 않지만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화천천은 흐르는 물의 수위를 조절해 얼음을 얼리는 노하우로 20㎝ 이상 안전한 얼음 얼리기에 성공하고 있다”면서 “수년간 축제를 이어 오면서 터득한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최 군수는 “이상고온과 최강 한파라는 최악의 기상 조건에다 남북 긴장으로 군 장병의 외출·외박이 통제됐지만 많이 찾아준 관광객과 헌신적인 노력을 해 준 주민들께 감사한다”면서 “축제 기간 미흡했던 부분을 개선해 내년부터 본격 체류형 축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머물 수 있도록 야간 얼음낚시와 야시장 등을 처음으로 연 것도 대박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특히 안전과 환경을 최우선으로 축제를 펼쳤고 마무리작업까지 완벽하게 하고 있다. 축제 기간 UDT·특전사 출신 안전요원 22명이 산소통을 메고 수시로 축제장 얼음 속을 점검했다. ‘이상고온으로 혹 얼음 상태가 나빠질까’ 안전에 올인했다. 축제가 끝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안전점검팀은 여전히 현장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혹시나 녹아내린 얼음조각들이 행인들을 덮치지 않을까, 축제장으로 쓰던 화천천에 행인들이 빠지지 않을까, 밤낮 경비를 서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반종철 안전점검팀장은 “안전은 기본이고 그물과 대형 자석까지 동원해 강물에 남아 있는 산천어와 쓰레기, 낚시 등을 건져 내는 일도 함께 하며 화천천의 청정 환경 유지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축제 성공의 자신감으로 지역경제 살리기와 복지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화천읍, 간동면, 하남면, 상서면, 사내면 등 5개 읍·면을 대상으로 권역별 특별경제활성화 계획을 마련했다. 낙후된 산골마을이지만 성공 축제를 기반으로 지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복안이다. 화천읍과 사창리에는 이미 100~150석 규모의 작은 영화관들이 들어섰다. 산양리에도 오는 9월쯤 작은 영화관이 개관한다. 간동면과 상서면 다목리 일대에는 야구장 등 생활체육공원이, 하남면 일대에는 교량 등을 활용한 호수변 힐링관광산업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공무원 현장도우미제도’는 취약계층과의 소통의 끈이 되면서 현장 복지의 표본이 되고 있다. 군수와 실·과장, 복지담당이 수시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구를 찾아 희망의 불씨를 심어 주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방문한 가구만 1000곳이 넘는다. 최 군수는 “화천은 농산촌 주민들과 군 장병들이 많아 그동안 안정된 생활이 어려웠다”면서 “세계적인 산천어축제 성공을 발판으로 관광객들이 머물며 즐기고 힐링할 수 있도록 하고 군 장병들이 외출, 외박 때 화천에 머물며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결국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 복지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행복한 마음, 신나는 삶, 밝은 화천’이란 군정 슬로건만큼 최 군수의 얼굴도 신나고 밝았다. 글 사진 화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김종인 “바보 같은 룰로는…” 문재인표 공천혁신안 대수술 시사

    김종인 “바보 같은 룰로는…” 문재인표 공천혁신안 대수술 시사

    “정치적 판단 못하는 항목 많아” 오늘 당무위서 당규 개정 논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8일 문재인 전 대표 시절 만들어진 공천혁신안에 대한 수술을 시사했다. 비례대표 홍의락 의원 등 컷오프(공천 배제) 대상자 구제 논란에서 촉발됐지만 이면에는 당 대표의 재량권이 없다시피 한 ‘시스템 공천’ 룰을 손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현역들의 불안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문재인표 혁신안’을 무력화할 경우 구주류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김 대표가 수위 조절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 대표 측은 29일 당무위에서 현 지도부의 공천 권한 확대에 필요한 당규 개정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김 대표는 이날 취임 1개월 기자회견에서 “당무위에서 어떻게 결론 날지 모르겠지만 지금 혁신안은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돼 있는 항목이 너무 많다”고 밝혔다. 또한 “만들 때는 아무 말 안 하다가 이런 사태가 터지니까 왜 재량으로 정무적 판단을 못 하느냐고 하는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앞서 김 대표는 “지금처럼 바보 같은 룰(공천혁신안)로는 해 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비대위원장을 맡겼으면 비상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컷오프에서 살아남은 의원들의 총선 경쟁력을 가늠하기 위한 여론조사를 끝냈다. 공관위는 조사 결과를 봉인해 놓고 29일부터 현역 의원 공천 면접을 본 뒤 이르면 주말(3월 5~6일)쯤 3선 이상 중진(24명) 중 50%, 초·재선(71명)의 30%에 대해 가부 투표로 배제 대상을 추릴 예정이다. 공관위 관계자는 “경쟁력 평가는 여론조사와 의정 활동 및 지역 실사 자료를 종합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관위는 당초 공관위원 가부 투표로 부적격자를 거른 뒤 ‘생존자’만 공천 면접을 할 계획이었지만 일단 전체를 대상으로 면접을 치른 뒤 심사 결과를 발표할 때 2차 컷오프 명단도 밝히는 것으로 변경했다. 최소 10여명에서 최대 30여명에 이를 공천 배제 대상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美·中 합의는 잘 짜여진 각본?

    20여년 만에 가장 강도가 높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에 이견을 보였던 미국과 중국이 합의한 것을 둘러싸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보리 결의안 합의 과정과 맞물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북한과의 평화협정 논의가 동시에 벌어지면서 미·중이 사전에 세 가지 이슈를 조율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으로 안보리 결의안 이행과 함께 사드와 평화협정 문제가 어떻게 추진될 것인지 주목된다. 미국 뉴욕의 한 외교소식통은 27일(현지시간) “미·중 간 합의한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이 중국의 전향적인 협조로 예상보다 수위가 높아졌다”며 “향후 결의안의 효과는 중국의 적극적 이행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은 북한의 모든 화물 검색과 광물 수출 금지, 항공유 공급 금지, 재래무기 금수 등에 합의하면서 북한 선박·항공 제재와 석탄·철 수출 금지에 대해 민생 목적의 경우 예외 조항을 넣었다”며 “결의안의 ‘북한 주민들이 처한 심각한 어려움을 우려한다’는 내용도 중국이 넣은 것”이라고 전했다. 또 여행 금지·자산 동결 대상인 신규 제재 개인 17명에 중국이 북한의 고위급 인사를 포함시키는 것을 반대해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 정부와 군이 사드에 대해 수위를 낮추는 듯한 분위기를 보인 것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미국 방문과 무관치 않다”며 “왕 부장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는데 한·미 간 사드 협의 공동실무단 운영 약정을 체결하면 왕 부장의 뺨을 때리는 꼴이니 중국의 체면을 살려 주기 위해 일정을 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드 시기 조절론이 급부상한 것은 미 정부가 왕 부장의 방미를 고려한 것임을 시사한다. 이 소식통은 “왕 부장이 워싱턴 싱크탱크 강연에서 밝혔지만 사드는 한국이 결정할 문제이고 안보리 결의안과 관련 없다는 것을 이해한 것으로 안다”며 “미 정부와 군의 최근 언급은 양국 간 부지 선정 등 기술적 협의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평화협정 논의와 관련해 “북·미 간 최근 평화협정 재논의는 없었다”며 “중국은 안보리 결의안에 합의했지만 북한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어 대화로 끌어내겠다며 평화협정을 언급한 것인데, 비핵화가 먼저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비핵화와 함께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의 병행 협상을 제안함으로써 중국의 결의안 합의에 반발하는 북한을 달래는 제스처를 보인 것으로 관측된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김무성 “선거 지는 한 있어도 수용 불가” 이한구 “대표에게도 공천 안 준적 있다”

    김무성 “선거 지는 한 있어도 수용 불가” 이한구 “대표에게도 공천 안 준적 있다”

    친박 “당헌·당규 따른 공천룰” 비박, 공관위 해산까지 주장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20대 총선 공천 룰을 놓고 17일 정면충돌했다. 비박(비박근혜)계 좌장 격인 김 대표는 “공관위를 해산시키겠다”며 격노했고, 친박(친박근혜)계인 이 위원장은 “과거 당 대표에게 공천을 안 준 적도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위원장이 지난 16일 공천 룰을 발표하며 “전국 광역시·도별로 최대 3곳을 우선추천지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힌 것이 충돌의 도화선이 됐다.  이 위원장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 대표는 (공천에서)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당 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회가 관여할 수 있는 (공천 관련) 아이템이 몇 개로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천 관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위원장직 사퇴 가능성에 대해서는 “자꾸 그렇게 말하면 당헌·당규에 따라 당 대표가 물러나든지 내가 물러나든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당헌·당규를 열심히 지키는 사람에게 자꾸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할 수 있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길 바란다. 도를 넘어선 말을 듣고 있기가 민망하다”고 말했다고 대표 비서실장인 김학용 의원이 전했다. 앞서 김 대표는 이날 아침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그 누구도 국민과 약속한 국민공천제의 틀을 흔들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못박았다. 이어 비공개회의에서도 김 대표는 “선거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를 안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위원장의 안을 수용할 수 없다”면서 “이제 의총을 열어야겠다. 이 위원장이 방침을 철회하든가 공관위를 해산하든가 (해야지)”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친박계, 비박계 의원 간의 날 선 설전도 이어졌다. 친박계 중진인 정갑윤 의원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 대표의 면전에서 “상향식 공천 방식은 분야별로 놓치기 아까운 유능한 인력 영입에 한계가 있다”면서 “우선추천지역을 중심으로 당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 영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전략기획본부장인 권성동 의원은 정 의원에게 “본인 지역부터 (인재 영입을) 한다고 해야지 다른 지역을 하라고 하면 어떡하느냐”면서 “국회부의장 선거할 때 뽑아 드렸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따졌다. 사태가 확산일로를 걷자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공관위원들과의 논의 후 수위를 다소 조절했다. 이 위원장은 “우선추천지역은 과거 전략공천과 다르다. 소수자에게만 관계되는 얘기이고, 추가 재공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론조사 반영 비율도 3대7을 원칙으로 하되 합의가 안 되면 나(위원장)는 국민경선 100%를 주장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비박계 의원들이 이날 의원총회 소집 요구를 해 양측은 조만간 의총장을 전장으로 다시 한번 크게 충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새누리당은 이날 4·13총선 지역구 후보 공천 1차 접수 마감 결과 822명이 신청을 마쳐 3.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현역 의원 27명은 해당 지역구에 단수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다. 이 지역에서는 ‘무경선 공천’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조선족 이주여성인 ‘워킹맘’ 이홍(45)씨는 이날 “비례대표 의원직에 도전하겠다”며 새누리당 입당 신청서를 냈다. 중국 지린(吉林)성 출신인 이씨는 20년 전인 1996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며 서울로 왔다. 중국 명문 베이징이공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김무성 “공관위 해산하든가 철회하든가” 이한구 “대표에게도 공천 안 준 적 있다”

    김무성 “공관위 해산하든가 철회하든가” 이한구 “대표에게도 공천 안 준 적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20대 총선 공천 룰을 놓고 17일 정면충돌했다. 비박(비박근혜)계 좌장 격인 김 대표는 “공관위를 해산시키겠다”며 격노했고, 친박(친박근혜)계인 이 위원장은 “과거 당 대표에게 공천을 안 준 적도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위원장이 지난 16일 공천 룰을 발표하며 “전국 광역시·도별로 최대 3곳을 우선추천지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힌 것이 충돌의 도화선이 됐다. 이 위원장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 대표는 (공천에서)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당 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회가 관여할 수 있는 (공천 관련) 아이템이 몇 개로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천 관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위원장직 사퇴 가능성에 대해서는 “자꾸 그렇게 말하면 당헌·당규에 따라 당 대표가 물러나든지 내가 물러나든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당헌·당규를 열심히 지키는 사람에게 자꾸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할 수 있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길 바란다. 도를 넘어선 말을 듣고 있기가 민망하다”고 말했다고 대표 비서실장인 김학용 의원이 전했다. 앞서 김 대표는 이날 아침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그 누구도 국민과 약속한 국민공천제의 틀을 흔들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못박았다. 이어 비공개회의에서도 김 대표는 “선거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를 안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위원장의 안을 수용할 수 없다”면서 “이제 의총을 열어야겠다. 이 위원장이 방침을 철회하든가 공관위를 해산하든가 (해야지)”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친박계, 비박계 의원 간의 날 선 설전도 이어졌다. 친박계 중진인 정갑윤 의원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 대표의 면전에서 “상향식 공천 방식은 분야별로 놓치기 아까운 유능한 인력 영입에 한계가 있다”면서 “우선추천지역을 중심으로 당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 영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전략기획본부장인 권성동 의원은 정 의원에게 “본인 지역부터 (인재 영입을) 한다고 해야지 다른 지역을 하라고 하면 어떡하느냐”면서 “국회부의장 선거할 때 뽑아 드렸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따졌다. 사태가 확산일로를 걷자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공관위원들과의 논의 후 수위를 다소 조절했다. 이 위원장은 “우선추천지역은 과거 전략공천과 다르다. 소수자에게만 관계되는 얘기이고, 추가 재공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론조사 반영 비율도 3대7을 원칙으로 하되 합의가 안 되면 나(위원장)는 국민경선 100%를 주장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비박계 의원들이 이날 의원총회 소집 요구를 해 양측은 조만간 의총장을 전장으로 다시 한번 크게 충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새누리당은 이날 4·13총선 지역구 후보 공천 1차 접수 마감 결과 822명이 신청을 마쳐 3.3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현역 의원 27명은 해당 지역구에 단수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다. 이 지역에서는 ‘무경선 공천’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조선족 이주여성인 ‘워킹맘’ 이홍(45)씨는 이날 “비례대표 의원직에 도전하겠다”며 새누리당 입당 신청서를 냈다. 중국 지린(吉林)성 출신인 이씨는 20년 전인 1996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며 서울로 왔다. 중국 명문 베이징이공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불가피한 선택 vs 중단보다 축소… 北, 군사 위협 수위 높일 것”

    “불가피한 선택 vs 중단보다 축소… 北, 군사 위협 수위 높일 것”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에 우리 정부가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맞불을 놓은 것과 관련해 대북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렸다. 남북관계를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실효성 없는 조치라는 평가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양립했다. 향후 북한이 대남 군사 위협 수위를 높일 것이라는 전망은 공통적이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불가피했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국제 사회가 제재의 필요성을 언급하는데 우리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으면 모순적”이라면서 “적절성, 타당성의 문제라기보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달러박스’를 잠그는 조치는 국제사회의 시각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했다. 이어 “2013년 4월에는 북한이 개성공단 문을 닫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문을 닫는 것이어서 다시 열기는 그때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면서 “포기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남 교수는 개성공단 폐쇄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 “미사일 한 발에 3000억원인데, 1000억원이 날아가니까 아프긴 할 것”이라면서 “그 피해는 개성공단 근무자 5만 4000명과 가족까지 포함해 20만명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고 봤다. 김진하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 소장도 “일단 북한의 대응 양상을 봐야겠지만 이번 조치에는 정부가 고심을 한 흔적이 묻어난다”면서 “정부가 향후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예상을 하고 개성공단을 볼모로 이런 조치를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 소장은 또 “그동안 중국으로부터 ‘너희(한국)도 개성공단 운영하면서 왜 우리(중국)에게 대북 제재 조치를 강요하느냐’는 식의 문제제기가 많았는데 이런 부분이 사라질 것 같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김 소장은 조치의 파장에 대해서는 “김정은이 개성공단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이 크지 않기 때문에 바늘로 살짝 찌르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에 투자하고 운영했던 이들이 받을 손해를 어떻게 보상해 주느냐에 대한 법률적인 문제가 불거질 텐데, 우리 정부로서는 이를 해결하는 게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전문가들은 대체로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을 나타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개성공단 폐쇄가 고강도 조치인데, 쉽게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마지막 카드를 너무 빨리 쓰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면서 “남북관계를 다 닫자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마지막 남은 라인(남북 교류의 통로)조차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한번 몰아보려는 것 같은데, 중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북한을 매우 아프게 하진 못할 것 같다”면서 “우리 정부 단독으로 북한에 뼈아픈 조치를 할 수 있는 게 객관적으로 없다. 결국 ‘국내용’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또 “앞으로 북한은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개성공단 폐쇄로 응답했다’는 식으로 선전전을 하면서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며 남남 갈등을 촉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수영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단호함을 보여준다는 데에는 의미가 있겠지만, 실효성은 없고 기업인들만 괴로울 것”이라면서 “개성공단 폐쇄가 정부로서 북한의 돈줄을 죄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향후 비난 수위를 더욱 높이게 될 것”이라면서 “북한이 금강산에 있는 우리 측 자산을 일방적으로 몰수했듯,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유사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 정부의 향후 대응에 대해 그는 “이렇게 강수를 두면서 한편으로는 대화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일 수 있다”면서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계속 밀고 나간다기보다는 일단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강하게 대응하면서 북한의 반응을 보며 대화의 방법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면 중단보다는 축소 정도로 제재 수위를 조절하는 게 바람직했다는 견해도 있었다. 동용승 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그동안 개성공단을 유지해 왔던 게 놀라울 정도”라며 “그 모양새가 이상하긴 했는데, 어렵게 끌고 온 만큼 전면 중단보다는 축소 쪽으로 가는 게 나았다. 전면 중단을 하려면 이미 예전에 했어야 했다. 어떤 대비책을 갖고 중단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의 실효성 측면에 대해 동 위원은 “개성 지역과 주민들은 힘들어 할 수 있지만 북한 정권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124개 기업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산기를 잘 두들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향후 대응책에 대해 그는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곤란한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가 이현세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가 이현세

    갓 태어나서 큰집에 양자로 갔다 10대의 나는 연좌제에 떨었다 20대의 나는 까치였다 30대의 나는 최고 작가였다 40대의 나는 영화를 말아먹고 심의·검열과 싸웠다 50대의 나는 내 시대는 갔다고 생각했다 60대의 나는 웹툰을 배웠고 처음 신인상도 받았다 70대의 나는 동화를 쓰고 싶다 20년 동안 ‘삼촌’과 ‘숙모’로 알아 왔던 분들이 실제로는 나를 낳아 준 사람들이었다. 나 자신의 우둔함에 질식할 것 같았고, 아무 말도 안해준 식구들이 야속했다. 방황하기를 한 달여, 그 숙모가 조용히 말했다. “친자식에게 더운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인 나만큼이나 아프겠니. 나를 봐서라도 이래선 안 된다.” 어머니는 눈빛으로 아들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이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박찬호가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자기가 이긴 게임에서 던진 공들, 경기장 입장권을 다 갖고 있는 친구예요. 미국 생활에서 여러 번 위기가 왔는데, 그때마다 자기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포기를 못했다더군요.” 화실 창가에 놓인 박찬호 투구 모습 모형(피규어)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그가 말했다. 그는 박찬호를 매우 좋아하고, 또 친하다고 했다. 그의 등번과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사러 미국 LA 다저스 구장까지 갔다 오기도 했다. “자기를 정말 사랑합니다. 자유, 독립, 자존이라는,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3가지 가치를 가장 확실히 실현한 친구죠.” 그건 어떻게 보면 자신과 닮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화실. 이현세(60) 만화가는 아무런 준비 없이 평소처럼 앉아 있었다. 눈가의 주름과 희끗희끗한 머리만 빼면 영락없는 ‘까치’였다. -‘현세는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 아직 모르나 봐요.’ 친척들이 하는 나직한 수군거림이 대형 스피커 음량으로 내 귀에 꽂혔다. 경주 시내로 나가 재수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20년 동안 ‘삼촌’과 ‘숙모’로 알아 왔던 분들이 실제로는 나를 낳아 준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참석한 문중 시제(時祭). 엄마와 숙모, 누나들 모두 나에게 비밀로 해 왔던 ‘천기’를 집안 어른들이 누설하고 말았다. 내가 갓난아기 때 큰집에 양자로 들어갔고, 생부는 내가 아홉살 때 돌아가신 삼촌이었다는 사실. 나 자신의 우둔함에 질식할 것 같았고, 아무 말도 안 해준 식구들이 야속했다. -수험서를 덮고 매일 술만 마셨다. 왜 그렇게 20년을 꽁꽁 숨겼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혼자서 끙끙 앓으며 방황하기를 한 달여. 어느날 밤 술에 취해 ‘숙모’의 품에 안겨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그 숙모가 조용히 말했다. “친자식에게 더운 밥 한 그릇 제대로 못 먹인 나만큼이나 아프겠니. 나를 봐서라도 이래선 안 된다.” 어머니는 눈빛으로 아들의 마음을 읽으셨던 것이다. -그 일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대학을 포기하고, 만화의 길을 걷기로 했다. 혼자서 서울로 왔다. 경주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서울은 또 달랐다. 생활은 만만치 않았고 정착할 곳도 찾아지지 않았다. 문하생으로 받아 달라고 무수한 만화작가 화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내가 제법 ‘성공’을 한 뒤 그분들 중 한 분을 뵀는데 “눈빛에 반항기가 줄줄 흘러 부담스러웠다”고 당시 얘기를 하셨다. 처음 자리잡은 곳은 순정만화로 유명한 나하나 선생님 화실이었다. 그다음은 개그만화의 하영조 선생님 화실. 액션만화를 추구했던 나에게 두 분 선생님과의 작업은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순정만화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미학과 개그만화의 익살맞은 표정 연기 등이 합쳐져 까치를 비롯한 내 만화의 등장인물 라인업이 구축될 수 있었다. -분단의 비극을 오롯이 간직한 우리 집의 가족사를 떼어 놓고는 나와 만화를 말할 수 없다. 일제 때 만주에서 살던 할머니는 해방 직후 서른 언저리에 아들 셋을 데리고 경북 울진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향이라고 해도 먹고살 게 없었다. 얼마 후 둘째 아들은 “내가 돈 벌어 오겠다”며 다시 만주로 나갔다. 그러다 38선이 그어지면서 둘째는 졸지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됐다. 가족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6·25가 터지고 북한 인민군이 남쪽까지 밀고 내려오면서였다. 둘째는 인민군이 돼 나타났다. 형제가 어울리는 모습이 마을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화근이 됐다. 인민군이 퇴각한 후 첫째 아들이 괴뢰군 부역자로 몰려 헌병대에 끌려갔다가 죽임을 당했다. 큰아들은 처형되고 둘째 아들은 월북. 할머니는 차라리 만주에 계속 있는 게 나았다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1956년 셋째 아들의 장남으로 내가 태어났다. 할머니는 나를 큰며느리에게 양자로 보냈다. 종가의 대를 잇기 위해서였다. -우리 일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전쟁 직후에 흥해(현재 포항시 북구 흥해읍)로 터전을 옮겼다. 부역자 가족이란 딱지를 달고서 울진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길러 준 어머니는 잡화점을 냈고, 낳아 준 아버지는 자갈땅을 사서 밭을 일궜다. 그 덕에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됐을 때 ‘삼촌’이 경주역의 기차 수리 공장에 취직했다. 어느 날 삼촌에게 “크레파스를 사 달라”고 졸랐다. 선뜻 돈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극장에서 서부영화를 보고 만화책을 빌려 보느라 그 돈을 다 써 버렸다. 다음날 저녁 삼촌이 집에 들러 새로 산 크레파스로 그림 한번 그려 보라고 하셨다. 엉겁결에 나는 “저한테 돈 주겠다고만 하시고 그냥 가셨잖아요”라고 둘러댔다. 삼촌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가 착각했다”며 다시 돈을 주셨다. 아들이 거짓말하는 걸 다른 가족들이 알게 되는 게 싫으셨던 것이다.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날 수업을 받는데 작은누나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교실로 왔다. 아버지가 일하던 공장으로 뛰어갔는데 할머니와 큰어머니, 숙모가 통곡을 하고 있었다. 앞에는 아버지가 하얀 무명천에 덮여 누워 있었다. 전기 감전이라고 했다. 삼일장 내내 나는 학교에 있었다. ‘삼촌은 나를 거짓말하는 아이로 알고 돌아가셨겠구나’ 생각하니 죄스럽기도 했지만, 억울하기도 했다. 10여년 후 그가 나의 진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그 일이었다. -학교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그럭저럭 공부를 잘해서 지역 명문인 경주중에 입학했지만 줄곧 형사들의 감시 속에 살았다. 연좌제에 걸려 인생이 막혀 있다는 생각이 점차 커져 갔다. 경주고에 들어가면서 원래 좋아했던 술이 더 잦아졌다. 방과 후에 당시 경주오거리에 있던 막걸리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열성이었던 건 미술부 활동이었다. 고1 때 유도에 빠져 2학년 때는 경북 대표로 전국체전까지 나가기도 했지만, 미술만큼은 아니었다. 특히 스케치는 어렸을 때부터 꽤 소질이 있었다. 미대 진학을 유일한 길로 생각했다. 연좌제의 공포가 나를 더욱 미술로 몰아갔다. 그러나 미대 입학원서를 쓰기 위해 안과에 가서 색맹검사를 했더니 색약 판정이 나왔다. 그때는 왜 그렇게 색약에 대해 엄격했는지. 당시 입시제도하에서 나는 미대 지원을 아예 할 수가 없었다. -유신과 군사정부 치하에서는 노래나 영화가 그렇듯 만화에 대해서도 검열이 심했다. 이를테면 갈등이 증폭되는 스토리나 격투 장면 같은 게 들어가는 그림은 허용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액션만화를 보면 커서 데모를 하기 쉽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스포츠 만화로 방향을 돌리고 ‘공포의 외인구단’을 처음 내놓은 것이 1982년. 26세 때였다. -내가 만화를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캐릭터다. 날 대신해 움직여 줄 수 있는 아바타만 구현하면 그다음부터 소재나 스토리는 부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스토리 궁핍을 느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게 필생의 캐릭터인 ‘까치 오혜성’이다. 한(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의지로 부딪쳐 결국 파괴되는 인간이랄까. 가족사 때문에 트라우마와 핸디캡에 시달려야 했던 성장기의 아픔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기도 하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전에도 나는 대본소(만화방) 시장에서 꽤 인지도 있는 작가였다. 하지만 외인구단은 기존 작품과 차원이 달랐다. 어린이 만화만 있던 시절, 극단적이고 상처투성이인 주인공 영웅이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고난에 시달리다 결국 이를 극복하지만 최후에는 처절히 파멸하는 이야기의 만화는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대략 한 달에 한 권씩 2년간 30권을 내놨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본소의 맨 앞칸에는 언제나 외인구단이 자리잡았다. ‘까치’를 이름으로 내건 만화방들이 속속 생겨났다. -나이 서른 전에 최고액을 받는 작가가 됐는데, 권투(‘지옥의 링’)든 시대극(‘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이든, 페미니즘(‘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이든 뭘 그려도 잘 팔렸다. ‘남벌’은 서울대 신입생들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로 선정됐다. 만화가 뜨니 나도 스타가 됐다. 맥주 등 광고 CF에까지 나올 정도였다. 돈도 정말 많이 벌었다. 돈이 나를 거쳐 밖으로 흘러나가는 게 문제였지만. 마흔을 갓 넘긴 1997년부터는 세종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나의 40대는 ‘전쟁’의 시기였다. 첫 번째 난관은 1996년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아마게돈’의 대실패였다. 한동안 영화계에서 최고의 손실액 기록을 보유했을 정도다. 총감독으로서 투자를 담당했던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손해를 많이 봤다. 돌이켜보면 그건 영화도 아니었다. 영화 문법도 모르는 총감독의 오만과 무지 탓이다. -두 번째 난관은 ‘천국의 신화’ 필화 사건이다. 대하 역사물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서른 살 때였다. 미국에 가서 광활한 그랜드캐니언을 마주하고 나니 ‘내가 왜 스포츠 만화나 그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여년간 ‘환단고기’ 등 역사서들을 공부하고 ‘100권’을 목표로 1996년 1부 3권을 내놨다. 그러나 2년 뒤 청소년 음란물 시비로 검찰에서 기소하고, 법원이 3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터무니없는 심의와 검열에 내가 고개를 숙이면 어느 작가가 이겨 낼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은 것은 6년이 흐른 뒤였다. 당시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1남 2녀)이 끝까지 아버지를 믿어 준 데 대해 지금도 고마움이 크다. -50대가 되니 세상이 많이 변해 있었다. 더 이상 예전의 인기 만화 작가 ‘이현세’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엔 ‘내 시대는 갔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지만 이게 당연한 세상의 섭리 아닌가.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그려 큰 인기를 얻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표현이 좀 과한가?(웃음) 완벽하다고 여긴 작품은 없다. 그리고 원래 나는 ‘옥에 티’가 많은 작가다. ‘공포의 외인구단’에도 같은 사람인데 야구 글러브가 왼손, 오른손 바뀌어 그려진 장면들이 있다. 나는 쓰레기통 속에서 수많은 ‘가짜 꽃’을 피우다가 언젠가는 한 송이 진짜 꽃을 피우는 게 작가라고 여긴다. 내 작품은 아직도 쓰고 구겨서 쓰레기통에 집어던질 습작의 연장선상이다. 난 천재형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부모님께 극단적인 집중력과 낙관주의를 물려받았다. 한창때는 한번 그리기 시작하면 하루이틀 꼬박 밤을 새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덕분에 마감은 종종 늦었지만 펑크를 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남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배가 고프고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생각했을 정도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천국의 신화’ 6부를 시작했다.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도록 수위를 조절했지만, 나로서는 무척 감사한 일이다. 작년 말에는 네이버에서 ‘웹툰 신인상’까지 받았다. “60 평생에 처음으로 신인상을 받았다”고 하니 후배 작가들이 다들 자지러졌다. -지금 연재 중인 천국의 신화는 10년 정도 더 해야 한다. 6부는 고조선 멸망으로 끝난다. 이후 여러 민족들이 군웅할거했던 시기를 지나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다. 그 뒤에는 나도 70대가 된다. 그때는 동년배를 위한 동화를 그리고 싶다. 아니면 손주를 위한 동화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큰아이가 30대 후반인데, 이 녀석들이 셋 다 결혼을 안 했다는 거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만화가 이현세(60)씨는 한국 만화의 ‘오늘’을 있게 한 대표적인 작가다. 1979년 ‘저 강은 알고 있다’로 데뷔한 그는 1982년 ‘공포의 외인구단’을 통해 운명에 맞서는 열정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역동적인 그림체로 선보여 만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나이 불과 26세였다. 이후 ‘지옥의 링’(1985), ‘야수의 전설’(1985),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1988), ‘아마게돈’(1988), ‘블루엔젤’(1989), ‘폴리스’(1992), ‘남벌’(1994), ‘천국의 신화’(1997) 등 히트작과 문제작을 내놓으면서 ‘불온’과 ‘미숙’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만화를 대중문화의 중심부로 격상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초로(初老)의 나이에도 ‘천국의 신화’ 6부를 웹툰에 연재하는 여전한 ‘현역’이다. ▲경주중·경주고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1997~) ▲한국만화가협회 회장(2005~2007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2009~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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