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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빈라덴 제거, 무엇을 가르쳐 주나/한희원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시론] 빈라덴 제거, 무엇을 가르쳐 주나/한희원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미국 정보공동체의 추적을 받아 오던 21세기 최고의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라덴이 파키스탄에서 사살되었다. 언론은 검거과정에서의 의문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악독한 어느 테러리스트의 죽음에서, 국가운영의 참된 모습을 보이고 무고한 국민의 원혼을 위무함으로 말미암은 정의의 구현보다, 미국이 처음부터 빈라덴 살해를 정당화하고자 기획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테러범의 살해에 대한 비난에 열을 올리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법치국가에서 무고한 시민 단 한 사람에 대해서라도 공권력의 압제적 대응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빈라덴은 누구인가? 전 세계를 무대로 테러를 자행해 온 그는 2001년 9월 11일 새벽, 연료 가득한 대형 점보비행기 4대를 하이재킹하여 미국 세계무역센터빌딩, 펜타곤 그리고 의회의사당으로 돌진시켰다. 무려 2996명의 민간인을 사망케 한 전대미문의 테러를 기획하고 지시한 사람이다.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외부세력에 의해 본토 공격을 당했다. 빈라덴은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비무장의 민간인을 상대로 상상을 초월한 테러를 자행했던 것이다. 일찍이 인류에게 인간이 왜 존엄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며 자유와 인권이 왜 그렇게 소중한지를 가르쳐 주었던 18세기 철학자 칸트는 영원한 도덕법칙의 하나로 “인간을 목적으로 대할 것이고,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테러는 본질적으로 특정 정권이나 정책에 대한 분노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민간인에게 퍼붓는다는 점에서 인간성을 무기력하게 하고 상실케 하는 종결자적 범행이다. 국가경영자들은 냉정해야 한다. 그동안 ‘그라운드제로’를 상징물로 남겨두면서 처절하게 그 비참함을 되뇌던 미국은 국가의 자존심과 국민의 분노를 잊지 않고 정의의 구현이라는 목표로 임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범 응징의 각오를 밝혔다. 같은 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감행하며 응징에 나섰다. 연방수사국(FBI)은 전 세계 10대 지명수배자의 1순위에 빈라덴을 올려놓고 그의 목에 최고 5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빈라덴은 휴대전화기나 팩스, 메일 같은 현대 전자 장비를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비밀의 손으로 불리는 CIA는 10년간의 추적 끝에 목적을 달성했다. 관타나모 테러범 수용소에서 실낱같은 단서를 잡은 것이다. 미국 정보공동체는 빈라덴의 심복이 옛 친구에게서 “어떻게 지내느냐. 보고 싶다.”라는 안부전화에 대해 “예전에 같이 있던 사람들과 다시 같이 지내고 있다.”라는 대답을 단서로 빈라덴의 은신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원래 국가 위신과 명예는 국가안보의 중요한 속성이다. 미국은 여와 야를 초월하여 10년 가까이 한 사람의 테러리스트를 추격했고 드디어 목적을 이루었다. 일관된 국가안보정책의 결과물이었다. 부시와 오바마는 정당과 정치관이 다름에도 초국가적 안보위협세력인 대(對)테러 정책에 대응하는 문제에서는 합일된 모습을 보였다. 빈라덴을 정의 앞에 데려 오거나, 정의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무릎 꿇리거나의 양자택일에 대해서 미국의 여·야는 일치했다. 빈라덴의 저격은 유사한 수준의 테러리스트 반열에 있는 북한 김정일 체제에도 경각심을 일깨워 그에 대한 경호가 한층 강화될 것이고 북한 주민들은 또다시 영문 모를 불편을 겪을 것이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외교·안보 정책이 바뀌고, 정보기구가 정권의 눈치를 보며 정보활동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진정한 교훈이 있다. 미국 정보공동체가 보여준 빈라덴에 대한 대처는 바로 우리의 문제이고, 참된 국가경영의 첫 단추는 국가실패 사례를 잊지 않고 합일된 마음으로 국민의 분노를 위무해 주는 것임을….
  •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제자 지휘에 맞춰 연주하고 싶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제자 지휘에 맞춰 연주하고 싶다”

    라트비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음악을 사랑했던 부모는 큰딸에게 피아노를, 큰아들에게는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두 자녀에게 음악을 가르쳤기 때문에 막내까지 시킬 생각은 없었다. 때문에 여덟 살이 돼서야 비로소 첼로와 만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서 기본기를 익힌 소년은 196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6위에 입상한다. 그를 눈여겨 본 첼로 거장 므스티슬라프 로스토포비치(1927~2007)가 소년을 모스크바음악원으로 데려간다. 활을 처음 잡은 순간부터 우상으로 여긴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발탁됐으니 꿈을 이룬 셈. ●노동수용소·정신병원 감금 후 이스라엘 망명 하지만 운명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1969년 누이와 가족들이 이스라엘로 망명한 탓에 이듬해 노동수용소에 감금된 것. 18개월 뒤 풀려났지만, 2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또 수용됐다. 1972년 출국 허가가 내려지자 미련없이 이스라엘로 망명, 비로소 그의 재능을 꽃 피웠다. 첼리스트 가운데 요요마와 더불어 확실한 ‘흥행 카드’로 꼽히는 미샤 마이스키(63)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큰 파도를 일찌감치 겪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연주는 고막이 아닌 가슴을 두드린다. 마이스키는 “당연히 힘든 경험이었지만, 콘서바토리(음악원)에서 받은 디플로마(학위)보다 가치 있는 배움이자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첼리스트 장한나(29)의 스승으로, 트레이드 마크인 곱슬머리로도 친숙한 마이스키가 딸 릴리(24·피아노), 아들 사샤(22·바이올린)와 함께 오는 12~16일(13일 제외) 내한공연을 갖는다. 12일 대구를 시작으로 14일 군포, 15일 서울, 16일 청주에서다. 마이스키를 이메일로 먼저 만났다. ●“한나 처음 본 순간 아직도 생생” 마이스키는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하는 게 언제나 꿈이었다.”면서 “릴리와는 6년 이상 함께 연주했고 최근에는 처음으로 도이치그라모폰에서 음반을 녹음했는데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 사샤와는 3~4차례 연주를 함께 했는데 한국에서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릴리와 사샤는 첫 결혼에서 얻은 자녀다. 여섯 살, 세 살짜리 아들을 더 둔 마이스키는 “네 명의 아이들과 다 함께 무대에 서는 게 꿈”이라고 한다. 마이스키는 장한나가 아홉 살 때부터 인연을 이어왔다. 그는 “처음 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장한나 아버지로부터 (한나가 첼로를 켜는) 비디오테이프를 받았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재능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이제 지휘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의 재능에 또 한번 찬사를 보내고 싶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지휘자로서의) 그녀와 함께 연주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미 ‘그리운 금강산’과 ‘청산에 살리라’ 등 한국 가곡들을 녹음한 마이스키는 “더 많은 한국 가곡을 앨범에 담고 싶다.”면서 “다른 곡들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라고 말했다. 음악적 목표를 물어 보았다. “심플하다. 모든 연주에 감사하고, 훌륭한 연주로 전 세계의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음악으로 보답하고 싶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며 발전하고 싶다.” 내한공연에서 마이스키 패밀리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1번, 사라사테의 스페인 춤곡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02)599-5743.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북한인권법 제정 지상논쟁

    북한인권법 제정 지상논쟁

    북한인권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1년 넘게 계류중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 개선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야가 이견이 없다. 그러나 법안의 취지와 내용에 대해서는 양측이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법안은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 자문위원회와 북한인권재단 ▲외교통상부 북한인권 대외직명 대사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등 정부 내 4개 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담고 있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주장을 들어 봤다. ◆찬성 “인권 국제공론화로 北 압박 北눈치 안보는 지금이 적기”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인권법 제정과 관련, “인권침해사례 수집, 해외 탈북자 지원 등 국내외 활동을 통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서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는 지금이 법 제정의 적기”라고 말했다. →북한인권법 제정이 어떤 의미가 있나. -북한 인권개선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4개 기구를 설립하는 게 골자다.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의 일부라는 것을 선언함과 동시에 인권개선에 무관심하지 않다, 노력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매년 투입되는 예산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분명치 않지만 해마다 100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매년 국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실제 북한 인권개선에 효과가 있을지 실효성의 문제를 지적한다. -인권이란 시간이 걸리는 문제고, 내외부의 노력과 지원이 시너지를 내서 촉발되는 것이다. 북한인권보고서 작성, 국제사회 공론화, 해외 탈북자 보호·지원 등 국내외 활동을 통해 북한의 눈을 돌리고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당장 실효성이 없다고 속단하는 것은 법 제정을 막기 위해 만들어낸 얘기다. 1970~80년대 우리나라 인권개선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북한에는 이중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인권도 있는 것 아닌가. -북한은 1950년대 후반부터 정치범 수용소가 있었고, 식량사정이 악화된 것은 1995년 이후다. 식량과 관계없이 인권탄압이 있어 왔다. 반인권적인 법제도와 관행, 보이지 않는 제약을 타파하지 않고는 외부에서 식량을 지원해도 효과가 없다. 인권개선은 인도적 지원과 병행돼야지 이 둘을 대립구도로 몰고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인권기록보존소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했나. -1961년 서독의 11개주 법무장관이 니더작센주 법무부 산하에 중앙법무기록보존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동독 내 정치적 폭행, 인권탄압 범죄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보존, 관리하는 기구다. 통일 전 1989년까지 3만~4만건이 축적됐다. 물론 동독은 반발하고 협박했지만 서독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이 기록은 통일 후 과거 청산 자료로 활용되고, 구동독 관리를 채용할 때도 활용됐다. →국가인권위에 이미 기록보존소가 있는데. -법정기구가 아니라 임의기구이기 때문에 형사법상 증거능력을 가질 수 없다. 국가기관이라도 근거와 권한이 없으므로 비정부기구(NGO)들이 만든 자료와 다르지 않다. →인권법 제정이 북한의 심기를 건드려 남북관계를 악화시키진 않을까. -오히려 지금 해야 한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북한이 일시적으로 반발은 하겠지만 결정적인 악영향이 되진 않는다. 법 제정을 안 한다고 북한이 잘해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 노무현 정부 때는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에 찬성했지만 정상회담도 했다. 당당하게 할 말은 해야 한다. ◆반대 “인권단체들 지원 위한 수단 임기후반 보수층 결집 의도”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해 “실효성이 없고 인권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면서 “보수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인권법 제정에 반대하는 이유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처음 법을 제정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데 철학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북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정책적 기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압박을 통한 인권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압박뿐 아니라 관계개선을 통한 인권개선도 중요하다. 시기적으로 반드시 지금 통과돼야 할 절박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법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인권재단이 실제 인권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전단살포 등에 앞장서는 인권단체에 정부예산이 공식적으로 지원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인권개선 이전에 남남갈등을 더 심화시킬 뿐,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고 싶으면 공청회를 열고 1~2년에 걸친 여야 간 토론을 거쳐야 한다. 기록보존소도 독일의 경우 인권법으로 만들지 않았다. ‘○○기구 설립에 관한 법’을 만들면 된다. →인권개선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정권에 따라 흔들리면 안 되지 않나. -2005년 12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 토론과 공청회 끝에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 법안에 남북관계에 대한 기본적 철학이 담겨 있는데, 이번 정부 들어 이미 휴지조각이 됐다. →법 제정을 반대하는 민주당이 북한 눈치를 보는 것 아닌가. -일각의 지적처럼 민주당이 눈치를 봐선 안 된다. 옳은 것이라면 북한이 기분 나빠해도 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인권개선을 위한 철학도 없고 실효성 있는 내용도 없다. 법 제정을 거부하는 쪽을 김정일 추종자로 몰기 위한 정치적 이유가 다분히 있다. 4·27 재·보선 때 분당을 지역에 탈북자가 유권자의 약 0.3%(300여명)였다. 투표율이 낮을 때 0.3%는 큰 숫자다. →그럼 북한인권개선을 위한 대안이 있나. -국회 북한인권 결의안으로도 충분하다. 2006년 인권위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에 대한 조사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이런 것들은 법을 바꾸거나 새로 선언하면 된다. 인권개선을 위한 우리 정부의 입장 등 총괄적이고 상징적인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 →지금이 과연 적절한 시기인가 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정부가 남북관계를 잘해 왔다면 인권개선의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주던 쌀도 안 주고 북한 붕괴에 혈안이 됐다고 의심받는 정부로서 뜬금없다. 임기 후반 보수진영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계산이 다분히 깔려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북한인권법을 반대하면 김정일 추종세력, 반인권 세력으로 매도하기 위한 색깔론의 무기로 사용될 여지가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美·英 경계강화 속 ‘알카에다 보복테러’ 현실화 ?

    [빈라덴 사살 이후] 美·英 경계강화 속 ‘알카에다 보복테러’ 현실화 ?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 이후 알카에다의 보복 테러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2일 밤(현지시간) 외국인 병사 25명이 파키스탄 국경지대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으로 침투하려다 아프간 당국에 의해 사살됐다. 빈라덴 사살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보복공격의 징후가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태국 등 자국 미국시설 경계 수위 높여 아프간 북동부 누리스탄주의 자말루딘 바드르 주지사는 3일 전날 밤 파키스탄 국경 인근의 누리스탄주 바르그이마탈 지구에서 작전을 벌여 중동과 체첸, 파키스탄 등에서 온 외국인 병사 25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바드르 지사는 이번 작전이 테러세력의 보복공격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국경 침입을 통제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면서 “우리는 알카에다와 다른 테러 세력들이 아프간으로 침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알카에다 지도부가 아직까지는 어떤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지만 일부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들도 보복을 다짐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소말리아의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 대변인은 “미국과 이스라엘, 유럽 및 소말리아 기독교인들에게 보복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AP통신이 2일 보도했다. ●소말리아 무장단체 “서방에 공격” 아프간·파키스탄 부족 문제에 정통한 라히물라 유수프자이는 AFP에 “알카에다와 성전의 동맹들, 파키스탄 탈레반 등 연계 조직들은 이번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테러 전문가들은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리와 추종자들이 빈라덴 사후에도 알카에다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보복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수일 또는 수주 내에 테러 조짐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신문은 또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발견된 비밀 문서에 따르면 알카에다가 빈라덴이 체포되거나 사살될 경우 핵무기를 터뜨린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알카에다가 아직 핵무기를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빈라덴의 사살 뉴스는 미리 준비해 놓은 공격 작전들을 개시하라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10년 넘게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후속 테러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은 해외공관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미국인의 해외 여행시 주의를 당부했다.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은 이날 알카에다의 보복 테러에 대비해 “경계 상태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태국과 이스라엘 등은 자국 내 미국 관련 시설들에 대한 경계 수위를 높였다. ●美, 駐파키스탄 대사관 대민업무 중단 특히 빈라덴이 사살된 파키스탄 내에서의 테러 가능성이 높아 그간 알카에다의 공격 대상이 됐던 서방 국가들은 자국민 보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 국무부도 소요사태를 우려해 파키스탄 주재 자국 대사관과 영사관의 대민업무를 무기한 중단하기로 했다. 영국, 호주 정부 등도 전 세계 외교공관에 경계 강화를 지시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빈라덴 경호원 위성전화 한통에…

    오사마 빈라덴의 운명을 가른 것은 경호원의 위성전화 한통이었다. 파키스탄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정보당국이 빈라덴의 경호원이자 최측근 연락책인 셰이크 아부 아메드(쿠웨이트 출신)가 지난해 7~8월 사용한 위성전화를 도청하다 빈라덴의 은신처를 알게 됐다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 등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빈라덴은 그간 미국의 추적을 피해 전화나 이메일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에 전할 메시지가 있어도 개인 연락책 편에 보낼 정도로 보안에 철저했다. 실제로 전날 미군이 사살 작전을 편 빈라덴 은신처에는 전화기도 없었고 인터넷도 아예 연결이 안 돼 있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했다. 하지만 위성전화가 한대 놓여져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이 위성전화가 지난 10년간 신출귀몰하게 미국의 포위망을 피해 다녔던 빈라덴을 죽음으로 몰고 간 셈이다. 미 정보당국은 이미 수년전부터 2001년 9·11 테러 이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로부터 아메드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2004년 이라크에서 잡힌 알카에다 고위급 요원 하산 굴도 아메드에 대한 핵심 정보를 제공했다. 정보당국은 오랫동안 그를 가명인 ‘아부 아메드 알쿠웨이티’로 알고 있었으나 2007년 마침내 그의 진짜 이름을 알아냈다. 이어 지난해 8월 아메드와 그의 동생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까지 파악하면서 빈라덴 제거 작전에 속도가 붙었다. 미국 정부는 아메드가 동생, 제3의 가족과 함께 사는 이 집이 부유층이 사는 교외에 있는 데다 다른 저택보다 8배는 넓고 담장 높이가 최대 5.5m에 이르는 등 경계 태세가 아주 치밀했다는 데 놀랐다. 이에 따라 밀사가 살고 있는 주택의 가격(100만 달러)이나 다른 가족의 구성원과 규모를 감안했을 때, 빈라덴이 가장 젊은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는 추론에 이르렀다. 결국 이 추론은 100% 맞아떨어졌다. 미국은 지난 2월 중순 이곳에 빈라덴이 은신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3월 중순부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재로 5차례에 걸쳐 국가안보위원회(NSC) 회의를 열고 작전 계획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그리고 세계의 눈이 영국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쏠린 지난달 29일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미군 철수엔 희소식… 자생 테러조직과 전쟁은 지속될 듯

    미군 철수엔 희소식… 자생 테러조직과 전쟁은 지속될 듯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직접 발표한 오사마 빈라덴 사살 소식은 오는 7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개시를 앞둔 미군에겐 상당한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군이 철군을 시작하면 알카에다 활동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게다가 주요 친미국가인 이집트, 예멘, 바레인 등에서 민주화 시위가 이어지면서 골치를 앓아 왔던 미국 정부에 빈라덴 사살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오사마 빈라덴이 알카에다를 움직이는 유일한 우두머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아 자생적으로 생겨난 뒤 알카에다와 연계해 활동하는 급진 테러조직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더구나 탈레반에 미치는 알카에다의 영향력도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대 발표를 한 이날은 공교롭게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미군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을 겨냥한 춘계 대공세를 개시하겠다고 공언해 온 날이었다. 이날 12살 소년이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지역인 팍티카에 있는 한 시장에서 폭탄조끼를 터뜨려 4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AP통신은 이날 벌어진 자살폭탄테러 소식을 전하면서 관타나모 수용소 심문기록을 인용해 탈레반이 조직적으로 모스크와 이슬람 종교학교 등에서 소년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육군사관학교 소속 대테러전센터가 지난해 낸 보고서에서도 탈레반은 미성년자를 위한 별도 테러훈련소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대 최연소 자살폭탄테러범’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테러조직 수괴’ 처단이 향후 아프간 정세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와 관련, 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 직후 아프간 전장에서 다리를 잃고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해병대 소속 캐머런 웨스트 소위가 “아프간에서 복무했던 모든 전우들의 승리”라고 기뻐하면서도 “그는 단지 한 명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고 전했다. 웨스트 소위는 “(아프간에는) 우리가 처치해야 할 적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우리는 반군 전체를 파괴해야만 한다.”면서 “오사마 빈라덴은 뱀의 머리였지만 그 뱀의 머리는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는 그걸 모두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 역시 “테러리즘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美, 주적 ‘빈라덴’ 제거에 10년간 430조원 쏟아부어

    美, 주적 ‘빈라덴’ 제거에 10년간 430조원 쏟아부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됐다는 소식이 1일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환호하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미국인들이 9·11테러의 주범을 쫓아온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깊은 속앓이를 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명분 잃은 싸움’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지속해온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10년 만에 최대 성과를 얻었다. 미국의 대테러전은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 대원들이 미 본토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테러범들은 이날 아침 미국 민간항공기 4대를 납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을 잇달아 들이받았다. 세계인의 눈을 의심하게 한 충격적 범행으로 모두 3000명 가까운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9·11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를 처음 꺼내들며 이슬람 무장세력 등 테러단체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특히 빈라덴을 숨겨 주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테러 주모자를 넘겨 달라는 요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같은 해 10월 7일 아프간을 공습했다. 전쟁의 최우선 목표물은 당연히 빈라덴이었다. 미 의회 산하 정책연구기관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미국은 아프간전 개전 이후 2010년까지 4006억 달러(약 430조원)를 전비로 쏟아부으며 주적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백악관은 특히 아프가니스탄 등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한 해에 1593억 달러를 쓰겠다는 ‘2011년 회계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2003년 3월에는 대량살상무기와 테러 확산 방지를 명분 삼아 이라크 침공도 감행했다. 그러나 빈라덴을 중심으로 한 테러 세력들은 미국의 노력을 비웃듯 대규모 테러를 기획해 성공했다. 9·11테러 이듬해인 2002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 쿠타 해변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모두 202명이 숨졌다. 또 2004년 3월과 2006년 7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와 인도 뭄바이에서 통근 열차를 겨냥한 폭탄 테러가 터져 각각 191명과 200여명이 사망했다. 아프간 공습 초기 주춤하던 탈레반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8년에는 탈레반 무장 반군의 역습이 극에 달해 미군 등 연합군 200여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대테러전이 명분을 잃었다.’는 국제적 비판 역시 미국으로서는 부담이었다. 미군이 9·11 이후 테러 용의자를 수용해온 관타나모 수용소는 ‘인권의 무덤’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특히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최근 관타나모 수용소의 기밀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인권 수호자’로서의 미국 이미지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미국이 테러 용의자에게 소변을 자신의 몸에 싸도록 강요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아프간에서 미군 무인 공격기의 폭격 등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간 것도 부담이었다. 또 올해 재스민혁명 이후 아랍 지역의 반정부 시위가 불붙으면서 이 지역 친미 정권이 물러나거나 위기를 맞은 것도 미국에는 큰 고민거리였다. 특히 테러 조직의 거점인 예멘에서 정정 불안이 이어지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대대적인 역공을 위한 기지개를 펴 왔다. 올해부터 아프간 전력을 철군시키겠다고 공언한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빈라덴 사살 소식은 미국의 위기상황에서 들려왔고 이 때문에 미 대륙은 더욱 들뜰 수밖에 없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끊임없이 적을 만드는 전쟁 선동자…‘지지 않는 탐욕의 해’가 만든 분쟁사

    분쟁 지역 취재를 하던 히로세 다카시는 어느 날 이스라엘 가자 지구를 찾아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만난다. 고통과 증오로 범벅된 눈빛으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만나고 돌아온 저녁에는 팔뚝에 나치 강제수용소의 문장과 수인 번호를 찍은 채 살고 있는 이스라엘 여성을 만난다. 어느 한쪽에 서서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는 상황을 몸으로 직접 맞닥뜨린 셈이다. 그리고 인류사에서 벌어진 전쟁과 갈등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스스로 묻고, 묻고, 또 묻는다. 고민과 성찰 속에서 그는 역사 속 한 인물을 만난다. 군사이론 교범서 ‘전쟁론’을 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다. 히로세는 평화와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근대사에서 전투와 전쟁의 기술적 이론을 만들어 내며 ‘천재적 군사 전략가’로 일컬어지는 이를 호출하며 전쟁의 근본 원인에 대한 의문을 풀어 가기 시작한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히로세 다카시 지음, 위정훈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는 47장의 지도를 앞세워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5년부터 1991년까지 해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과 전투, 분쟁을 빼곡히 채워 놓은 분쟁사 연속 지도다. 지도는 지구상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이 계속돼 왔음을 한눈에 보여 준다. 구구한 말과 설명 없이도 지도 자체가 전쟁의 지긋지긋함을 웅변해 준다. ‘1인 대안 언론’이자 ‘평화와 대안의 삶’을 직접 실천하며 사는 히로세는 생생하고도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전쟁이 세상과 인류를 어떻게 절멸시키는지 생생히 보여 준다. 1984년에 처음 쓰여진 책으로 히로세 평화사상의 원형과도 같다. 평화운동의 고전으로도 꼽힌다. 책의 원제목이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인 것에서 짐작되듯 그는 전쟁이 미치는 해악과 무엇을 이용해 학살을 자행했는지, 누가 전쟁을 지시했는지를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밝힌 이론을 차용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던진 ‘전쟁의 이유’라는 질문에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 끊임없이 적을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쉼 없이 전쟁을 지향하며 주변을 선동하는 사람을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라고 구분 짓는다. 히로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사는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에 의한 ‘전쟁 선동사’였으며 이들이 적을 만들어 내는 능력에 의해 전쟁이 이뤄진다고 결론짓는다. 전쟁의 근원적 이유를 탐구하기 위해 클라우제비츠를 불러냈다가 다시 그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셈이다. 히로세에 따르면 역사 속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나폴레옹, 클라우제비츠로부터 시작해 히틀러, 스탈린, 부시, 앨런 덜레스(미국 CIA 국장) 등으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며 이어져 왔다. 그리고 전쟁사는 ‘전쟁 선동사’였다고 규정하고 전쟁은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내용은 분쟁 지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A전쟁 프로젝트를 완수하면 곧바로 B전쟁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그래서 히로세는 권유한다. 독자들 또한 자신처럼 매일 신문에서 분쟁 기사를 보며 분쟁 지도를 만들어 보라고. 미국이건, 구 소련이건 가릴 것 없이 전쟁으로 탐욕을 채워 가는 존재들은 집요한 취재의 결과물 앞에서 낱낱이 까발려진다. ‘핵을 중심으로 한 군사력이 전쟁을 억지한다.’는 논리에 대해 히로세는 “핵은 오로지 핵전쟁만을 방지하고 핵이 없는 나라의 군사적·경제적 지배만을 가능하게 했을 뿐”이라며 그 허구성을 논박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도 개운찮은 구석이 있다. 뭔가 말을 마치지 않고 책을 닫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이 철저히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했는데 추구하는 ‘이익’의 실체 등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어서다. 히로세는 2년 뒤 ‘제1권력-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를 출간했다. 국내에서는 이 책이 첫 번째 책 ‘왜 인간은’보다 먼저 나왔다. 히로세는 두 책을 통해 전쟁과 자본의 연관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자신의 이론을 완성해 나간다. 한국전쟁 때 자행된 세균 전쟁의 진실과 1983년 여객기 격추 사건에 얽힌 음모, 한국과 일본의 군대를 이용한 방위 시스템을 구축해 ‘손 안 대고 코 푼’ 미국 CIA의 첩보전 실상 등도 곁들여져 있다. 세계 패권을 둘러싼 치열하고 야만적인 전쟁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 역시 주요 전장이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1만 8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진 속에 유령이 정말 보이나요?”

    “사진 속에 유령이 정말 보이나요?”

    호주 시드니에서 5월에 열리는 ‘포토 페스티벌’에 유령사진이 전시될 예정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호주 뉴스닷컴은 문제의 사진을 미리 공개하고 유령이 정말 보이는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진의 제목은 ‘유령’. 사진작가 이벳 얼보이스의 작품이다. 문제의 사진은 시드니의 유명한 정신병원의 출입구를 찍은 사진이다. 뉴사우스웨일즈 주 글래스빌에 위치한 이 정신병원은 지금 부터 170년 전인 1838년에 개원했고 1997년에 문을 닫았다. 이 병원은 ‘타반 그릭 정신병자 수용소’로 알려져 있다. 170여년동안 1200여명의 환자들이 치료 중 사망했으며 그들의 사체는 건물 주변에 묘비하나 없이 묻혔다. 현재는 주인 없는 무덤과 폐허가 된 병원 건물만이 남아있다. 이 정신병원 인근에 살았던 이벳 얼보이스는 건물에서 항상 이상한 기운을 느끼곤 했다. 그녀는 이 정신병원을 소재로 여러 사진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한 작품에 심령학자들이 주목했다. 심령가들은 이 작품 속 문의 왼쪽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은 나름대로 유령의 존재를 지목하고 있는 중. 이벳 얼보이스는 “건물에는 언제나 에너지 혹은 이상한 존재감이 느껴지곤 했다.” 며 “ 심령가들이 특히 이사진을 주목하는 것에 대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호주 뉴스닷컴 서울신문 나우뉴스 호주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알카에다의 배신·공모에 놀아난 서방”

    위키리크스가 관타나모 폭로전에 나선 가운데, 서방국가와 관타나모 교도소에 수감됐던 알카에다 대원들이 공모와 배신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지속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알카에다 대원인 아딜 하디 알자자이리 빈 함릴리가 대표적이다. 관타나모 교도소에서 작성한 문서에 따르면 함릴리는 ‘알카에다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납치범이자 암살범’으로 활약했다고 가디언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하지만 그는 2002년 파키스탄에서 두 차례 폭탄테러를 감행했을 당시 영국 정보기관 M16과 캐나다 정보기관을 위해 일하는 ‘이중생활’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알제리 시민권자인 그는 2003년 파키스탄에서 체포돼 관타나모 수용소로 보내졌다. ‘배신의 달인’도 있었다. 예멘 국적의 무함마드 바라르다흐는 미군에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 ‘중요한 소식통’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다른 관타나모 구금자 123명의 범죄사실을 넘겨주는 대가로 자유를 획득해 다른 구금자들의 변호인은 물론 미군 조사관에게도 ‘신뢰할 수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결국 미국의 요청으로 석방돼 스페인으로 넘겨졌다. 영국은 이번 폭로전의 최대 희생자가 됐다. 세계의 금융도시인 수도 런던과 세계 최대의 공영방송인 BBC 모두 알카에다에 놀아났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미군에 체포된 알카에다 요원 다수의 휴대전화 전화번호부에서 BBC 직원의 번호가 발견돼 영국 BBC는 알카에다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됐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현재 이 번호는 결번이지만 BBC 월드와이드의 본사인 부시하우스에 근무하는 직원의 자리에 있던 전화번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데일리메일이 전했다. 미국 측은 알카에다 요원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동정적인 입장이거나 반동맹 군사조직(ACM) 활동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방송인과 접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런던은 한 모스크가 이슬람 무장단체의 주요 은신처이자 테러 작전의 잉태지였던 것으로 밝혀져 ‘런더니스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지난 20년간 이슬람 무장단체 대원 수십명이 런던 북부의 핀스베리파크 모스크를 제 집처럼 드나들며 테러 계획을 짜고 무장대원들을 육성, 파견해 왔다는 것이다. 이 문서를 작성한 미국 관타나모 기지의 고위급 지휘관들은 핀스베리파크 모스크를 ‘테러 계획과 프로파간다 생산 기지’라고 일컬었다. 이 모스크의 설교자인 아부 콰타다와 아부 함자는 전 세계에서 흘러 들어온 이슬람 극단주의자 수십명을 런던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으로 보내는 핵심 모집책으로 활약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北 수용소서 28년 김혜숙씨 “마을 전체 전기 철조망…뚫린 곳은 하늘뿐”

    北 수용소서 28년 김혜숙씨 “마을 전체 전기 철조망…뚫린 곳은 하늘뿐”

    “‘자유’라는 말은 남한에서 처음 들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인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 수용생활을 했던 김혜숙(49·가명)씨는 “행동과 생각까지 어느 하나 자유가 없었던 북한의 실상을 토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수용소는 겉보기에 평범한 마을같지만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뚫린 곳이라고는 하늘뿐이었다. 그는 “보위부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배고픔과 주민 간의 불신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인정한 최장기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인 김씨가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침해 신고센터를 찾아 북한 당국과 통일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등을 상대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인권침해 실상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개인 자격으로 신고센터에 진정을 제기한 것은 김씨가 처음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관리소 들어가서 처음 본 게 공개총살 → 정치범 수용소는 어떤 곳인가. -내가 있던 곳은 평안남도 북창군에 있는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였다. 평양에서 180리쯤 들어간 산골이다. 정치범 수용소라는 이름은 남한에 와서 알았다. 북한에서는 수용소를 14호 관리소, 18호 관리소 이런 식으로 부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주민이라고 한다. 18호 관리소에만 2만명 정도의 주민들이 있었다. 그 중에 보위부 사람, 병사들, 관리원, 당 사람들 빼고 나면 1만 7000여명 정도가 이주민이었다. →수용소 하면 감옥이 연상되는데 실제로 그런가. -관리소는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18호 관리소는 끝에서 끝까지 100리 정도 된다. 마을 주변을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서 뚫린 곳은 하늘뿐이다. →13살 때부터 수용소 생활을 했는데…. -1975년 우리 5남매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까지 전부 수용소에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안 돌아오길래 집 나간 줄만 알았지 남조선으로 갔다는 건 알지 못했다. →28년 만에 수용소를 나오게 된 것은 어떤 계기 때문인가. -13살 때 관리소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부모님도 다 죽고 없으니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김씨의 아버지는 관리소로 온 직후 보위부에 끌려 갔고, 어머니는 농장일을 하다 1979년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10년 넘게 토끼, 닭, 돼지를 길러서 당 일꾼들에게 바치고 ‘모범일꾼’ 평가를 받아 2002년 2월 16일 해제받았다. →수용소에 처음 가서 받은 인상은. -거기서 처음 본 게 공개 총살이었다. 사람 매달아 놓고 총으로 쏴 죽인 뒤 시체를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실어 갔다. 개 죽은 걸 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가슴이 계속 할랑대고 공포감에 질려 견디기가 어려웠다. →수용소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굶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때 알았다. 배급이란 게 강냉이만 주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일곱 식구가 한달에 7.5~8㎏을 받았으니…. 강냉이도 다 젖은 걸 줘 놔서 말려놓으면 절반으로 줄곤 했다. 그러니 아이들은 파랗다는 건 모두 뜯어먹고, 한달에 딱 하루 쉬는 날에는 온 가족이 입산증을 받아 산에 가서 도토리나무 잎을 뜯어다 먹곤 했다. ●배고픔보다 무서운 건 주민끼리 감시 →열악한 상황에서 도망칠 생각은 못했는가. -관리소 주위 철조망에는 전기가 흐르는데 멀리서도 ‘징~’ 하고 전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전원들이 순회하면서 철조망 주위에서 발자국이라도 보이는 날에는 바로 색출해서 총살한다. 28년을 살면서 도주하는 사람은 못 봤다. →배고픔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었나. -주민들끼리 서로 경계하는 것이다. 3세대를 한 조로 묶어 서로 감시하게 했는데, 서로 말하는 걸 듣고 쪽지에 적어서 한달에 한번씩 담당 지도원 방에 넣어 줘야 했다. ‘어떤 동무가 몇날 며칠에 무슨 말을 했다.’고 아주 자세하게 적어야 한다. 그저 입을 꼭 다물고 생활해야 했다. →노동생활은 어땠는가. -학교 졸업하면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무조건 탄광일을 해야 했다. 남자들은 돌 깨고, 여자들은 석탄 캐고…, 마흔 살만 넘으면 진폐증으로 쓰러져들 나갔다. 나도 열 일곱살 때부터 탄광에서 일했는데, 얼굴 한번 제대로 씻어본 적이 없었다. 하루 8시간 노동제인데, 말이 8시간이지 막장에서 나와 또 산에 가서 나무 해다가 막장에 들여놓고 하다 보면 16시간이 훌쩍 갔다. →그래도 수용소 안에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뒀는데…. -결혼이라고 자유는 아니다. 남자는 30살, 여자는 28살이 되어야 결혼할 수 있고, 그것도 일을 잘해야지만 승인을 해줬다. 초급당, 보위부, 관리과장, 행정부서장 이렇게 단계를 거쳐서 승인을 받아야 결혼할 수 있고, ‘누구누구는 일 잘했으니 결혼 승인해준다.’ 이런 식으로 공표한다(김씨의 남편은 2001년 4월 탄광에서 얼어 죽었고, 2명의 자녀는 수용소를 나온 뒤 2003년 수해 때 사망했다). →인권과 자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근 30년 동안 ‘불복종하면 죽인다.’는 말만 듣고 살다가 자유란 말을 남한에 와서 처음 들었다. 자유란 내가 제주도 가고 싶으면 가고, 강릉 가고 싶으면 가는 것 아니겠는가. 글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주말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OBS 일요일 밤 11시 15분)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 여자의 잔혹동화가 시작된다. 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쇼(에이타)는 고향의 아버지(가가와 데루유키)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행방불명되었던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가 시체로 발견되었으니 유품을 정리하라는 것이다. 허물어져가는 아파트에서 이웃들에게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불리며 살던 그녀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쇼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마츠코의 일생을 접하게 된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며 모든 이에게 사랑받던 마츠코에게 지난 25년간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제자가 일으킨 절도사건으로 해고당한 마츠코는 가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동거하던 작가 지망생은 자살해 버리고, 그의 친구와 불륜행각을 벌인 마츠코는 곧 버림받고 절망에 빠져 몸을 팔게 된다. 심지어 기둥서방에게 배신당한 마츠코는 그를 살해한 죄로 8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한다. ●카틴(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카틴 숲에서 자행된 폴란드인 대학살을 다룬 영화 ‘카틴’은 살해당한 폴란드 장교들과 그 사실을 모른 채 남편과 아버지, 아들과 형제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련공산당이 자신들이 자행한 학살을 강제로 묻으려 했던 거짓말에 대해 단호한 평가를 내린다. 2차대전 초기인 1939년 9월 17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스탈린의 명령을 받은 소련의 붉은 군대도 폴란드 땅에 침입한다. 그로 인해 모든 폴란드 장교들이 소비에트 수용소에 억류된다. 한편 기갑부대 연대장의 아내 안나는 남편 안제이를 기다린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살지만, 카틴 숲에서 폴란드 군인들의 시체 무더기들이 발견된 후 어쩔 수 없이 소련군들이 그의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과 대면하게 된다. ●당통(EBS 토요일 밤 11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끝난 후 혁명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하나인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9월 공포정치를 펼치기 시작하며 수많은 과격파 정치인들을 단두대 위에서 숙청시킨다. 국민공회 산악당 소속 의원인 조르주 당통은 파리에서 평화를 호소하며 공포정치의 중단을 요구했고, 국민 공회와 정치인 친구들의 응원,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로베스피에르, 공안위원회 등과 맞선다. 몇 번의 비리 사건에 연루되었음에도 민중의 반발이 두려워 로베스피에르는 당통의 기소를 거부한다. 하지만 비공개 회담에서 두 사람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못하고 로베스피에르의 제안에 따라 국민공회는 당통과 그의 친구들을 체포한다. 당통은 뛰어난 웅변으로 재판장에서 자신을 변호해 보지만 결국 1794년 4월 5일 동료들과 함께 처형당하고 만다.
  • 美 “北인권 열악→개탄→암울”

    美 “北인권 열악→개탄→암울”

    미국 국무부는 8일(현지시간)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여전히 암울하다.”며 정보 소통, 적법 절차, 언론·표현의 자유 등 보호받아야 할 전 분야의 인권적 가치가 북한에서 유린되고 있다고 ‘2010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평가했다. ●“北 임신한 女수감자 낙태 강요도” 국무부 인권보고서는 해마다 세계 각국의 인권 실태를 평가하는 것으로 올해는 194개국의 실태를 담았다. 2009년 보고서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열악하다.”고 했고, 지난해에는 “개탄스럽다.”고 하는 등 꾸준히 혹평을 하고 있다. 올해 보고서는 북한 체제를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의 절대적 통치 아래에 있는 독재국가”라고 정의했다. 특히 탈북자 등의 증언을 인용, “임신한 여성 수감자들이 낙태를 강요당하거나 아기들이 수용소에서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 전반적으로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병영 내 집단 따돌림, 양심적 병역 거부자 수감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특히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을 거론하면서 지난해 정신병자 남편에게 살해당한 베트남 신부 사건을 사례로 제시했다. 여성 인권을 분석하면서 “한 국회의원이 여대생들에게 성희롱으로 여겨질 수 있는 발언을 해 출당 조치됐다.”고 소개했다. 인터넷 관련 법규정을 정부가 광범위하게 해석하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점을 거론하며,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미네르바’를 비롯해 47명의 블로거에 대한 기소가 헌법재판소 결정을 바탕으로 취하됐다.”고 했다. ●“中 상황 악화” 혹평… 中 “내정 간섭” 보고서는 중국의 인권 실태도 혹평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보고서 관련 브리핑을 통해 “중국은 올 들어 인권 상황이 더 악화되는 부정적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중국 당국은 자유로운 표현을 이유로 구금된 인사들을 전원 석방하고 인터넷 등의 표현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 훙레이 대변인은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미국은 ‘인권 훈장님’을 자처해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자신의 인권 문제나 많이 반성하길 충고한다.”고 반박했다. 국무부 인권 보고서는 해마다 중국 인권 문제를 비판해왔고, 그때마다 중국은 반발했다. 올해 보고서는 러시아에 대해서도 “언론인 피살과 공격이 계속되고, 정부가 표현·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박홍환·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9·11테러용의자 4명 결국 군사법정에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려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의지가 결국 좌절되는 모양새다. 미 정부가 의회의 반대에 부닥쳐 9·11테러 주모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와 공범 용의자 4명을 뉴욕의 민간 법정이 아닌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의 군사법정에 세우기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4일(현지시각) “관타나모 수감자의 미국 내 재판 금지 조치를 의회가 지난해 12월 승인함에 따라 관타나모 기지의 군사재판을 재개하도록 국방부에 회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내 재판을 막는 의회의 제한조치가 가까운 장래에 철회되기 힘들다는 것이 정부가 직면한 현실”이라며 “10년 가까이 재판을 기다려 온 9·11테러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재판을 더 미룰 수 없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관타나모 수용소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의 부적절성을 상징하는 사례로 들면서 이를 폐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기지의 재판을 중단시키면서 이 수용소를 1년 내에 폐쇄하고 9·11테러 용의자를 뉴욕 법정에 세우겠다고 발표했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차 한잔 하실까요]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무상급식은 또다른 교육”

    [차 한잔 하실까요]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무상급식은 또다른 교육”

    “밥 한 그릇을 주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상급식은 복지가 아니라 교육입니다.” 유덕열(57) 동대문구청장은 5일 집무실에서 가난했던 어린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남 나주군 가난한 집안의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5·16군사쿠데타 때 실직한 뒤 가세가 기울면서 학교 공납금도 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밥 한끼의 소중함과 교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절감한 때였다. “신문배달을 하면서도 고교진학의 꿈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보급소에서 숙식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꿈을 꾸었어요. 따뜻한 아랫목에서 잠을 자는 것이었죠. 낡은 책상을 몇개 붙여서 그 위에 닭털 침낭을 깔고 잠이 들곤 했는데 깨보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죠.” 그가 올해 교육에 올인하는 것도 너무나 어렵게 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경비지원조례를 개정해 재정을 확보하고 전농7구역에 우수고 유치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난해보다 40억원이 늘어난 105억원을 유치원과 초·중·고교 학생들의 학력신장과 시설개선에 투입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앞으로 5년간 학생 학력신장을 위해 8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전출하는 사태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내놓은 비장의 카드였다. ●가난한 어릴적 한끼 소중함 배워 1976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에 다니던 시절 그의 꿈은 기자였다. 그러나 그 꿈은 1979년 부마(釜馬) 민주화운동 때 시위에 동참하며 바뀌었다. 민주화의 한복판에 몸을 맡기게 된 계기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부터다. “삼청교육대에서 겪은 한달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어요. 물 마실 자유도, 화장실 갈 자유도 없는 수용소군도 같은 그곳에서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더 갈망하게 됐죠. 군홧발로 짓이기고, 개패듯 곤봉 세례를 퍼부어댔죠. 수갑 찬 팔목이 피범벅인 채 악몽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또 한번 눈앞에서 보는 듯) 말을 잇지 못하다가 “덕분에 어린시절 신문배달로 근근이 살았을 때도 굽히지 않던 자존심과 욱하는 성격이 많이 고쳐졌다.”며 “요즘은 사람 비위를 가장 잘 맞추는 구청장이 됐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부인(정승교 제천 세명대 교수) 얘기로 말꼬리를 돌렸다. 아직도 주말부부로 지내느냐고 묻자 “주말에 만나면 영화를 보러 다니고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먹으러 다니곤 한다.”며 “얼마 전엔 ‘킹스피치’(올해 아카데미 수상작)를 재밌게 봤다.”며 뒤늦게 부인과 함께하는 오붓한 시간이 흡족한 듯 말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신혼부부처럼 사는 그에게 부인의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 시기(?) 서린 질문을 던지자 돌아오는 말이 ‘아내 사랑 종결자’답다. “결혼 전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걷는데 그 청순함이 확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며 “지금은 친구처럼 믿고 말없이 지켜봐 줘서 더없이 고맙다.”고 말했다. 부인은 그가 민주화추진협의회 선전부장,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가난한 정치생활을 할 때도 그렇게 말없이 지켜봐 준 ‘내조의 여왕’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좌우명도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이다. 민추협 선전부장을 지내던 1985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받은 휘호 선물이기도 하다. 민원인들과 목요일마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심지어 전농·답십리 촉진지구, 이문·휘경촉진지구 등 뉴타운을 비롯, 유난히 많은 재개발·재건축 민원으로 골치가 아플 법도 한데 현장을 일일이 찾아가 다독였다. ●“토박이 많은 동대문 인간적” 그는 지난해 취임 이후 줄곧 재개발·재건축(40곳)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을 찾아가 엉킨 실타래를 풀고 있다. 고된 현장방문 탓인지 그의 머리는 요즘 반백(半白)이 됐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어르신들을 만나러 현장에 갈 때 반백으로 나타나면 부담스러워할까 봐 염색을 했다. 사소한 것까지 생각하는 섬세한 배려가 통했던 것일까. 얼마 전 답십리16구역을 찾아가 고도 때문에 “일조권이 침해된다.”며 뉴타운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시공사를 동시에 만나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는 “조합운영에 따른 부정비리를 막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게 더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유 구청장은 차 한잔 끝에 그가 꿈꾸는 명품도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동대문구에는 토박이들이 많이 살아요.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죠. 강남과는 다른 끈끈한 정이 넘쳐요. 주민과 소통을 하는 이유도 바로 정을 나누기 위해서예요. 고품격 주거단지와 쾌적한 환경이 조성된다고 명품도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오래 살고 싶은, 인정이 흐르는 도시야말로 명품도시가 아닐까요.”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美하원, 北 테러지원국 재지정 법안 발의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법안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에 전격 발의됐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인 일레나 로스레티넌 하원 외교위원장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과 미국과 북한 간 외교관계 수립 제한을 골자로 한 ‘2011 북한 제재와 외교적 승인 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 대한 암살 시도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을 국제 테러리즘과 고강도 도발로 규정하고 국무장관이 법 발효와 동시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도록 명시했다. 이와 함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의 사과, 미사일과 핵 기술 이전 중단, 600명으로 추산되는 국군포로 석방, 북한의 강제수용소에 대한 국제적십자사 대표의 정기적 방문 허용 등 모두 12개 항에 이르는,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한 사전 입증 조항을 명시했다. 법안에는 공화당의 도널드 만줄로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과 에드 로이스 테러리즘·비확산·무역 소위원장, 댄 버튼 유럽·유라시아 소위원장 등 하원 외교위의 지도급 중진 의원들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평의원 중에서는 공화당의 빌 존슨, 데이비드 리베라, 버지니아 팍스가 참여했으며, 특히 여당인 민주당의 셸리 버클리 의원도 발의에 참여했다. 테러지원국 재지정 법안은 북한이 지난 2008년 10월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된 이후 회기마다 대북 강경파 의원들에 의해 발의됐지만 번번이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으로 변했기 때문에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여지 때문에 재지정에 신중한 입장이어서 여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서는 법안 통과가 불투명하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내 마음이 들리니(MBC 토요일 밤 9시 50분) 영규(정보석)는 순금의 반대에도 미숙과 결혼하고 싶어한다. 미숙의 딸 우리는 영규와 친하게 지내지만, 영규의 아들 마루는 청각장애인인 미숙과 정신연령이 낮은 영규를 무시하기만 한다. 한편, 현숙과 진철 그리고 동주는 장학증서를 주기 위해 지방에 내려가고, 그곳에서 동주는 우연히 우리를 만나게 된다. ●생로병사의 비밀(KBS1 토요일 밤 8시) 우리 몸을 지탱하고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척추, 일생 동안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허리 통증을 다룬다. 지금 이 순간에도 10명 중 두세 명은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허리 통증은 척추가 보내는 건강 적신호. 건강한 척추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비결을 알아 본다.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밤 10시 25분)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인터넷 쇼핑몰 사업. 그러나 진입 장벽이 낮은 만큼 경쟁도 치열해 폐업률이 높다. 그래서 탄생한 곳이 바로 인터넷 쇼핑몰 공동사무실이다. 1인 개인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한데 모여 정보를 교환하며 각자의 사업장을 운영해 나가는 현장을 찾아가 본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사료와 분뇨가 뒤섞여 악취가 진동하는 유기동물 보호소는 끔찍한 수용소와도 같다. 병든 고양이의 몸에는 구더기가 기어 다니고, 비좁은 우리 안에는 강아지들이 죽은 동물과 같이 갇혀 있다는 제보도 이어진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물들에 대한 학대와 은밀한 거래의 실태를 파헤친다. ●사랑을 믿어요(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윤희는 우진과 포옹한 뒤 우진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휩쌓인다. 그런 우진이 집까지 오자 윤희는 어쩔 줄 몰라 한다. 기창은 여기저기 강사 자리를 알아보다가 지쳐서 들어 온다. 영희는 드라마 제작사와 전속 계약을 한 뒤 계약서를 흔들어 보이며 술에 취해 들어 오는데…. ●도전! 1000곡(SBS 일요일 오전 8시 10분) 서른 한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수많은 명곡을 남기며 ‘엔카의 여왕’으로 사랑받고 있는 가수 김연자가 22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예능 프로그램에 첫 출연한다. ‘도전 1000곡’에서 예능 첫 신고식을 치르는 ‘한류 원조 스타’ 김연자가 화려한 의상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현장을 함께한다. ●꿈꾸는 U(OBS 토요일 오후 5시 55분) 청룡영화상과 신인감독상 그리고 각본상 등을 받으며 한국 영화계에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던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이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인 ‘꿈꾸는 U’에 출연한다. 최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은 ‘부서진 밤’의 양효주 감독도 나와 영화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 [나와 통일] (5) 하임숙 한동대 4학년

    [나와 통일] (5) 하임숙 한동대 4학년

    나와 친구들은 지난달 서울 인사동의 가나 아트스페이스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알리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라는 타이틀로 열린 이 전시회에는 12일 동안 무려 2만 5000여명이나 다녀갔다. 예상치 못했던 뜨거운 반응이었다. 지난해 교내에서 열었던 전시회가 반응이 좋아 ‘서울에서도 한번 해 보자’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는데,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정말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왜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전시를 기획한 나조차도 사람들이 북한의 인권 같은 일에는 관심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가 없었던 것이었다. 관람객들 가운데는 20~30대의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잔인한 내용인데도 거부감 없이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끔찍한 수용소의 실상을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전시장을 나갈 때에는 북한 인권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전시장을 두세번씩 들른 사람들도 많았다. 하루는 연인 한쌍이 전시장을 다시 찾아왔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방명록을 쓰고 있는데, 그 전에 함께 들렀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너희도 다시 왔구나. 그럴 줄 알았어.”라면서 공감이 확산되는 것을 여러 차례 목도했다. 시기적으로도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것 같다. 통일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나는 통일 문제는, 경제적 이득이나 기회비용을 떠나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역사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따라 흘러간다고 본다. 같은 민족, 가족, 형제로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 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평양의 특권층 3000명은 잘먹고 잘살지만, 북한 주민들의 삶은 정말 처참하다. 탈북에 한 차례 실패해 북송 집결소에 있었던 언니 또래 여인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내 또래 20대 가운데에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통일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이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세대는 민주화를 위해, 할아버지 세대는 산업화를 위해 인생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이념적으로 대립했을 수 있고 서로에 대한 상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위 세대들이 이뤄 놓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세대다. 북한과 정치적으로 엮이지 않고, 아픔도 없기 때문에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세대다. 당연히 의견은 진보, 보수가 나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진보, 보수가 같이 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통일이 바로 그런 문제라고 생각한다. 통일 이후의 정책을 세우는 데에는 가치관이 들어갈 수 있겠지만, 통일을 이루기까지는 우리 세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어려운 북한 주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 가치가 아닌가. 나는 남한이 주도해 통일을 이뤄 나갔으면 한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의 성공과 실패는 너무나 분명하게 나뉘었다. 남한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성공을 이뤘다. 서독이 동독과 통일을 할 때 자신감이 있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통일을 이뤘으면 한다. 남한은 이제 보편적인 행복은 퍼져 있는 사회다. 그런 행복을 북한 사회와 나눴으면 좋겠다. 북한 인권을 얘기할 때 미국의 노예 해방을 많이 얘기한다. 노예 해방 문제는 남북전쟁을 일으킬 만큼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었다. 그러나 노예 해방이 이뤄진 후에는 평등, 자유가 보편적 가치가 됐다. 통일도 그렇게 될 거라는 희망이 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떤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약력 ▲24세 ▲한동대 산업정보디자인 학부 4학년·국제기업가정신 전공 ▲한동대 북한인권학회 ‘세이지’ 학회장
  • “北 인권침해 깊은 우려”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채택

    유엔 인권이사회(UNHRC)는 24일 “북한의 중대하고 광범위하며 조직적인 인권 침해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의 대북 인권 결의안을 채택하고, 마르주키 다루스만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임기를 1년 연장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상정한 이 결의안은 유엔 인권이사회 47개 회원국 가운데 30개 국의 지지를 얻어 통과됐다. 결의안에 반대한 국가는 중국 등 3개 국이었으며, 11개 국은 기권했다. 지난해 대북 인권 결의안 표결 결과와 비교하면 찬성은 2표가 늘었고 반대는 2표가 줄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결의안에서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 등에서 고문 등의 심각한 인권 침해가 이뤄지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시하고, 식량 등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 물품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세평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대사는 표결에 앞서 대북 인권 결의안은 “인권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또 표결을 통해 이란의 인권 상황을 조사할 특별보고관 선임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로써 인권 특별보고관이 지정된 국가는 북한과 미얀마, 이란 등 3개국으로 늘었다. 미국과 스웨덴이 상정한 이 결의안은 찬성 22표, 반대 7표, 기권 14표로 채택됐고, 우리나라도 찬성표를 던졌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유엔에서 이란 인권 문제에 관한 표결에 기권해 왔으며,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정부는 2008년 11월부터 유엔 총회 및 인권이사회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하는 등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 왔으나, 이란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인권 외교에서 논리적 일관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영화리뷰] ‘웨이백’ -생사 기로속 인간애

    [영화리뷰] ‘웨이백’ -생사 기로속 인간애

    역사상 최악의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라는 일명 ‘캠프 105’를 7명의 사내가 탈출한다. 고문을 견디지 못한 아내의 증언 탓에 정치범으로 몰린 폴란드 장교 야누스(짐 스터게스), 러시아 폭력배 발카(콜린 파렐), 미국인 엔지니어 스미스(에드 해리스) 등 7명은 바이칼 호수를 지나 몽골 국경만 넘으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란 희망에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부모를 잃은 폴란드 소녀 이레나(시얼샤 로넌)까지 합류한다. 하지만 국경에 이르렀을 때 붉은 별과 함께 스탈린과 레닌의 사진을 발견한다. 뒤늦게 몽골이 공산화됐다는 걸 알게 된 것. 이들은 소련의 힘이 미치지 않을 법한 인도로 방향을 튼다. 고비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을 관통하는 6500㎞의 대장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17일 개봉한 영화 ‘웨이백’(The Way Back)은 슬라보미르 라비치(1915~2004)의 자전적 소설인 ‘롱 워크’(The Long Walk)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롱 워크’는 1956년 영국에서 출간돼 26개 언어로 출판된 베스트셀러다. 실제 폴란드 기갑부대 중위였던 라비치는 1939년 간첩 혐의로 25년형을 받고 시베리아수용소로 이송된 뒤 탈출해 11개월 동안의 대장정을 회고록 형식으로 남겼다. 말이 6500㎞이지 끔찍한 거리다. 서울과 부산을 걸어서 7번 왕복하고도 부산까지 한번 더 가야 한다. 게다가 한여름 사막과 한겨울 설산을 넘어야 한다.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행군 속에서도 이들은 제 몸뚱아리보다는 서로 보살피고 보듬는 인간애를 보여 준다. 대개 이런 유의 영화가 고난 속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내길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영화는 아카데미영화제 감독상 단골 후보인 피터 위어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복귀작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 ‘트루먼쇼’(1998) 등 호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낚는 데 능한 위어 감독은 2004년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이후 수차례 프로젝트가 엎어진 탓에 메가폰을 들지 못했다. 캐스팅도 탄탄하다. 짐 스터게스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07), ‘21’(2008)로 미국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주목을 받은 유망주. 시얼샤 로넌은 10대 초중반에 찍은 ‘어톤먼트’(2007), ‘러블리본즈’(2008)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등 각종 영화제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에드 해리스는 물론 콜린 파렐도 조역으로 묵직하게 중심을 잡는다. 하지만 133분 상영시간 대부분, 주인공들은 방대한 스케일의 화면 속을 걷고 또 걷는다. 갈등을 도맡던 시한폭탄 같은 발카가 대열을 이탈하면서 드라마는 눈에 띄게 평탄해진다. 생기를 불어넣던 이레나마저 어느 순간 퇴장해 버린다. 위어 감독이 ‘연기의 달인’들을 무더기로 캐스팅한 것은 극적 요소가 적다는 점을 고려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12세 이상 관람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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