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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작가들은 체제수호 선봉장… 정형화된 글쓰기 작업에 신물 났다”

    “북한의 작가들은 체제수호 선봉장… 정형화된 글쓰기 작업에 신물 났다”

    “사회주의적 자연주의를 강조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카프)과 구 소련의 영향을 받은 북한 문학은 세계적 조류와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김정일이 1970년대 문화예술계를 장악하면서 문학 속 우상화 작업도 마무리됐지요.” 14일 경북 경주에서 폐막한 제78차 국제펜(PEN)대회에서 정식 회원으로 가입한 ‘망명 북한 펜 본부’의 정해성(67) 이사장은 탈북 이후 작품 활동을 “감개무량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1996년 탈북 전까지 조선중앙TV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망명 북한 펜 본부에 소속된 28명의 탈북 작가 중 가장 먼저 한국에 왔고, 그런 인연으로 이사장을 맡았다. 정 이사장은 “북한 문학 속 등장인물은 한번 타락하면 벗어나지 못하는 이분법적 구조에 갇혀 있다.”며 “친일파가 회개해 해방 이후 당과 수령을 위해 목숨 바쳤다는 설정은 상상도 못하고 아예 친일 반동분자의 등장을 금한다.”고 강조했다. 문학성의 기준은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느냐이고, 김일성 가계를 우상화해 인민의 충성을 끌어내는 정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직접 쓴 대본에서 “김일성·김정일 교시를 집행하지 못하면 밥을 먹어도 모래알 씹는 것 같다.”는 대사를 인용해 이를 설명했다. ●‘망명 북한 펜 본부’ 국제펜 정식회원 가입 이어 북한에도 시·소설·희곡 등 분과가 있는데 남측 글쓰기와의 공통점은 권선징악이며 차이점은 표현의 자유라고 덧붙였다. 김일성 가계와 관련된 작품을 창작하는 4·15 문학창작단의 현승걸 단장을 예로 들어, 그가 사석에서 “언제쯤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나.”라고 푸념했다가 요덕 수용소로 끌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적시했다. 엘리트 작가였던 정 이사장은 북한에서 즐겨 읽던 남한 작품으로 소설 장길산·토지·허준 등을 꼽았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에서 발간한 ‘시대’라는 잡지에 실린 시인 김지하의 시도 모두 섭렵했다고 했다. 1970년대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희곡 특등상을 받은 이진명(59)씨는 “북한의 정형화 작업에 신물이 났다.”면서 “북한에서 문학 한다면 체제수호의 선봉장쯤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청진의 문학기자(통신원) 출신인 김정근(44)씨는 “또래인 임수경 의원이 1989년 6월 방북했을 때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남한사회를 동경하게 됐다.”면서 “체제의 위대성을 선전할 각오가 없다면 북한에선 작가나 기자의 꿈을 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안전부와 대외경제위원회에서 일했던 림일(44)씨는 “김정일은 사실 문학에 관심이 없고 무용·노래·영화 등 극예술에 치중했다.”면서 “해외유학파인 김정은도 일종의 ‘쇼’를 하고 있고 결국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림씨는 평양출신으로 쿠웨이트의 조선광복건설회사에 파견돼 일하다 탈출해 1997년 한국에 왔다. 탈북 뒤 소설 김정일 1, 2권을 잇달아 내놓았다. ●‘절반의 성공’ 그친 경주 국제펜대회 한편, 북한출신 문인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던 경주 펜대회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 체제의 폐쇄성은 널리 알렸지만 정작 국내 문학계에 대한 정부의 압력에는 침묵했다. 진보성향의 젊은 문인들을 끌어안는 데도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글 사진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北 안전보위부 소속 위장탈북 간첩 체포

    국가정보원 등 공안당국이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로 들어온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공작원을 체포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탈북자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김모(50)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 등 혐의로 지난 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김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1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지난 6월 국내에 들어온 김씨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자신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의 탈북자 위장간첩이라는 사실을 자백했다. 국정원은 두달간에 걸친 추가 조사 결과 김씨의 진술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김씨는 15년전 국가안전보위부로부터 중국에 있는 남한 출신 주요인사 등의 동향을 파악하고 탈북자 정보 등을 수집해 보고하라는 지령을 받고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6월에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정보를 수집해 북한 당국에 보고하기 위해 국내로 들어왔다. 중국에서 동거하던 여성과 함께 입국한 김씨는 이 여성과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기 위해 간첩혐의로 처벌받을 것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분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김씨와 함께 입국한 이 여성에 대해서도 위장간첩인지 를 조사하고 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반체제 인사를 색출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 관리하는 공안기구로 체제수호의 첨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관은 대간첩 업무와 해외정보 수집, 해외공작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약 5만여명의 요원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민보안부, 정찰총국과 함께 북한의 3대 정보기관으로 불린다. 공안당국은 지난 5월에도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로 들어온 보위부 소속 이모(46·여)씨를 검거한 적이 있다. 하종훈·홍인기기자 artg@seoul.co.kr
  • 반기문 총장 “‘통영의 딸’ 문제 해결에 적극 노력할 것”

    반기문 총장 “‘통영의 딸’ 문제 해결에 적극 노력할 것”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4일 북한에 의해 강제 구금된 ‘통영의 딸’ 신숙자씨 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여수세계박람회 폐막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반 총장은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새천년개발목표(MDG) 달성을 위한 한국의 역할 제고’ 간담회에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통영의 딸 문제에 적극 나설 의향이 있는지’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반 총장은 “지난 5월 유엔 실무그룹에서 그 문제(통영의 딸)에 관해 내려진 판단을 잘 알고 있다.”며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내가 적극 개입해 1차적인 조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유엔 차원에서 이 문제에 관한 특별보고관을 임명했지만 북한이 특별보고관의 방북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신씨는 가족들과 1985년 밀입북했다가 남편 오길남씨가 1년 뒤 북한을 탈출한 뒤 두 딸과 함께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은 이어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국민이 의지를 갖고 화해를 도모하고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서 반 총장은 오전 서울 중구 유니세프한국위원회를 방문, 영양·보건·식수 등 분야에서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포럼을 마친 뒤에는 강창희 국회의장을 면담, 대한민국 국회와 유엔 간 협력 증진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어도 입법화되고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쓴소리도 던졌다. 최지숙기자 truth173@seoul.co.kr
  • 美상원 ‘탈북자 강제 북송 제동 법안’ 의결… 美 - 中 인권 갈등 격화되나

    미국 상원이 미 행정부에 대해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조치에 제동을 걸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을 의결했다. 지난 5월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면 법안은 자동적으로 발효된다. 법안 속에는 ‘탈북자 북송 중단’ 등 중국 측을 자극하는 내용이 적지 않아 미·중 간 인권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리애나 로스레티넌(공화) 하원 외교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중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 조치가 유엔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 등에 정면 배치되기 때문에 미 행정부는 중국이 탈북자 북송 조치를 즉각 중단하고 난민협약 등의 의무를 준수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명문화했다. 또 유엔 난민최고대표사무소(UNHCR) 직원이 중국 내 탈북자를 접촉해 난민 여부를 판단토록 하고, 미 행정부가 중국 정부에 UNHCR 직원의 탈북자 면담 허용을 요구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법안은 미 행정부가 탈북자들의 미국 정착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의무화했으며 올해로 시한이 만료되는 북한인권법을 2017년까지 5년 더 연장했다. 물론 중국이 미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요구 등을 거부할 경우 미국 입장에서 뚜렷한 제재수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미·중 간, 또는 유엔과 중국 간에 민감한 주제인 탈북자 논란이 이는 것 자체가 중국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만일 중국이 미국의 요구에 호응하는 상황이 전개될 경우 북한으로서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1951년 유엔 난민협약과 1967년 난민의정서에 가입한 당사국이지만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신 1960년 북한과 맺은 ‘조·중(북·중) 탈주자 및 범죄인 상호인도협정’ 등을 근거로 북한의 탈북자 강제 송환 요청에 협조하고 있다. 로스 레티넌 위원장은 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세계는 평양 정권에 의해 지속적으로 저질러지는 만행에 대한 관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면서 “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북한의 안보 위협에 대처하는 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향해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 한다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강제노역과 굶주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참혹한 고문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풀어 줘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조선도 일본도 기억하지 않는 그 이름, 양칠성을 아시나요

    조선도 일본도 기억하지 않는 그 이름, 양칠성을 아시나요

    ‘아리랑’(님 웨일즈·김산 지음, 동녘 펴냄)의 혁명가 김산이 풍기는 묘한 매력은 이념보다는 광활한 대륙에서 나온다. 한반도 안에서 지지고 볶고 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대륙에서 태평양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어떨까. ‘적도에 묻히다’(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는 또 한 번 시야를 확 틔워준다. 인도네시아에서 조선인 군무원들이 결성한 항일단체 ‘고려독립청년당’에 대한 얘기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에야 한국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동남아에 군무원으로 동원됐다가 전범으로 내몰린 조선인에 대한 얘기는 그간 간간이 알려져 왔다. 전범재판 기록이 존재하는 데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수기 같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이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 전범자들의 모임 ‘동진회’를 취재해 ‘적도 아래의 맥베스’라는 연극 작품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1980년에 나왔으니 그보다 앞서 있을 뿐 아니라, 항일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조선인들을 다뤘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희미하게나마 조선인 군무원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저자들은 1975년 인도네시아 유학을 계기로 본격 연구에 나섰다. 인도네시아로 건너간 그해 11월 18일 그들은 흥미로운 행사에 참가했다. 공동묘지에 있던 3구의 시체를 자카르타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행사였다.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던 동지들이 인도네시아 정부 요직에 오르면서 이들에게 독립영웅의 지위를 부여했다. 이들 3명의 이름은 아부바카르, 우스만, 코마르딘. 이들의 일본 이름은 아오키, 하세가와, 야나가와. 그 가운데 야나가와의 본명은 양칠성, 그러니까 조선인이다. “일본 정부가 두 명의 일본인 병사에 대해서는 기념식에 맞춰 유족을 찾아내 그들의 희망에 따라 분골의식까지 행하게 했으면서 조선인 양칠성의 유족에게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제에는 ‘조센징’, 연합군에는 ‘전범’이었을 양칠성이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이라는 점에 이끌렸다. 이 부분을 연구하다 조선인 군무원들이 항일단체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책은 이를 추적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이야기다. 배경은 일제의 대동아전쟁이다. 1941년 12월 일제는 진주만 공격 1시간 전에 말레이 반도에 상륙했다. “수마트라 남부 팔렘방 유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군사작전은 성공했으나 일제는 곧 당황했다. 25만~30만명에 이르는 영국·네덜란드 포로들 때문이었다. 포로가 되느니 죽으라고 배웠던 일본군이 보기에 패전한 주제에 포로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서구인들은 구제불능이었다. 그래서인지 혹독하게 부려먹다 쓰러지길 내심 원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 봤듯 밀림을 뚫는 가혹한 철도공사에 동원하거나, 호주 북부를 기지 삼아 북진해 오려는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태평양의 산호초섬에다 비행장을 건설하는 작업에 동원했다. 이들을 부리고 감독하기 위해 고용된 이들이 바로 조선인이었다. 월급 50엔씩이나 주고 2년만 근무한 뒤 귀국하면 면서기라도 시켜 줄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갔다. 전시동원체제 자체가 가혹했고 민족차별까지 겹치니 조선인들로서는 먹고살 거리가 없었다. 더구나 개죽음당할지 모르는 군인으로 끌려가느니 차라리 군무원이 더 나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제가 오래가지 못하리라고 내다본 사람이 있었다. “과달카날, 솔로몬, 뉴기니, 자바, 말레이, 미얀마, 그리고 북쪽으로 애튜섬에 이르기까지 활 모양으로 길게 펼쳐진 2만㎞나 되는 긴 전선에는 무리가 있다.” 1942년 조선인 군무원들을 태우고 자바로 향하던 배 안에서 고야마 도오조, 그러니까 서울 태생의 이억관이 조선인들을 모아두고 한 말이다. 기회를 엿보자는 제안이다. 이 말은 1944년 12월 29일 웅아란산 기슭 스모오노 연병장에서 현실화된다.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고 불만이 끓어오르자 집안 단속 차원에서 연병장에다 조선인 군무원들을 다 모았는데, 이게 조선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였다. 수용소 별로 흩어져 있던 조선인들이 한데 모이자 이억관을 중심으로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했다. ‘아시아의 강도, 제국주의 일본에 항거하는 폭탄아가 되라.’고 결의한 뒤 혈서를 썼다. 말로만 떠든 게 아니었다. 저자들이 인도네시아를 샅샅이 훑고 다닐 때도 여전히 “상하이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으로부터 받아둔, 당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취지의 친서와 태극기”가 자카르타 시내 어딘가에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저자들은 여러 정황과 진술을 종합했을 때 “연합군이 상륙할 때 일본군의 후방을 교란”한다는 목표 아래 “조선인 군무원, 반일 화교, 친 네덜란드 화교, 네덜란드계 혼혈 인도네시아인 등”이 연합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됐다고 본다. 실제 이들은 1945년 1월 암바라와에서 의거를 일으키기도 하고 연합군 포로들과 짜고 탈주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조직이 탄로나 1945년 7월 모두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제의 패망이 확인됐으나 다시 진주하기 시작한 영국·네덜란드 등 연합군은 조선인을 일본군의 일원으로 간주했다. 전범으로 몰아버린 것이다. 심지어 영국군은 위안부를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군에게는 해 주다가 왜 우리에게는 안 해 주느냐는 주장이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조선인 군무원들 가운데 일부는 인도네시아 독립운동 쪽으로 기울어진다. 제국주의가 물러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제국주의가 몰려온 것이다. 이에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무기를 가지고 투항한 뒤 그들의 일원이 되어 싸웠다. 양칠성이 속한 부대는 1948년 11월 네덜란드군에 졌고, 포로로 사로잡힌 양칠성은 몇 달 뒤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저자들은 양칠성 외에도 더 많은 조선인이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저자들은 “항일 독립 조직 결성, 항일 반란,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참가, 연합군의 보복 기색이 농후한 재판정에서 내려진 전범판결 등등. 조선인 군무원 3000명이 걸어온 길은 각자 달랐지만, 그 모든 길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그러나 일본은 그 어떤 경우에도 명확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인도 완전히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 장교와 하사관은 ‘조센징은’이라고 말하고 ‘조선인 아무개’라는 고유명사로 조선인 군무원을 말한 적이 거의 없다. 그것은 마치 조선인 군무원들이 인도네시아인을 고유명사로 말하지 않는 것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일치를 보여줬다. (중략) 일본인은 ‘조센징’이라 하고, 조선인은 ‘인도네시아인’이라고 한다. 오로지 인도네시아인만이 고유명사를 써서 ‘가네미쓰 나리’, ‘야나가와’, ‘아오키’, ‘하세가와’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타자화의 유혹에서 자유로울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1만 6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세습체제 비판 인사들 처단하겠다는 북한

    ‘2012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으로 권력이양이 진행되던 지난 1월 국가안전보위부를 통해 200명 이상의 관료를 구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요덕수용소 등 정치범수용소 6곳에는 최대 20만명이 구금돼 있다고 한다. 공개처형이 예사로 벌어진다. 북한이 최근 자의적인 체포와 구금을 한층 강화한 것은 3대 세습 강행에 따른 내부 불만을 잠재우고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공포통치’다. 그러나 미국의 식량지원까지 마다하며 김정은 체제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쏘아올린 장거리 로켓 발사가 실패하는 등 체제불안 요인은 상존한다. 북한은 늘 그랬듯 체제불안을 외부로 발산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도모하려는 ‘고전적’ 수법에 기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그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 탈북자 출신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등을 ‘처단’하겠다며 위협했다. ‘우리 주민들의 유린·납치행위에 가담한 범죄자들’에 대한 상응한 조치라는 것이다. 재판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소로 몰아넣는 ‘인권외면국’이 북한 아닌가. 북한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이들에 대한 처단 운운은 상식 이하다. 특히 김영환씨에 대해서는 ‘극악한 민족반역자’ 등 온갖 위협적 언사를 퍼부었다. 중국에 114일간 억류됐다 풀려난 김씨는 “북한 주민은 참혹한 인권 침해와 잔혹한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북한의 실상에 대한 생생한 증언인 셈이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는 지난 3월 북한인권결의를 표결없이 채택했다. 그만큼 북한인권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미 국무부가 최근 홈페이지에 게재한 ‘2011년 국가별 테러보고서’에서 북한에 대해 무기수출통제법에 따른 ‘대(對)테러 비협력국’으로 재지정한 것도 유의할 대목이다. 북한은 올해를 사회주의 선진국, 곧 강성대국 원년으로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이제 선군(先軍)을 넘어서야 한다. 선민(先民)·선경(先經)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체제안정의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北 정치범수용소 인간성 말살… 집단학살에 해당”

    “총포로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이는 것만 집단 학살이 아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처럼 교묘하게 인간성을 말살하는 야만성도 학살에 해당한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성격을 ‘집단 학살’(genocide)로 규정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 있는 홀로코스트기념박물관 주최 ‘학살 방지’ 심포지엄 연설에서다. 클린턴 장관은 “총포로 사람들을 무더기로 죽이는 것만 학살이 아니다.”라면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 않지만 장기간에 걸쳐 자행되고 더 해결하기 어려운 ‘슬로 모션’ 위기 상황들도 학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야만성을 사례로 들 수 있다.”며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탈출한 탈북자 신동혁씨의 증언을 근거로 제시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나치전범 수배 1호 차타리 헝가리서 체포

    나치전범 수배 1호 차타리 헝가리서 체포

    국제 유대인 인권단체 시몬비젠탈센터의 나치 전범 지명 수배자 1호인 라슬로 차타리(97)가 18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체포됐다. 부다페스트 검찰은 이날 새벽 차타리가 은신하고 있던 한 아파트를 급습해 그를 붙잡았다. 검찰은 “차타리에게 고문을 저지른 죄를 물어 법정 최고형을 구형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타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슬로바키아 코시체에서 벽돌 공장의 강제 수용소를 이끌며 유대인 1만 2000여명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시몬비젠탈센터에 따르면 차타리는 300여명의 유대인을 슬로바키아의 코시체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송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으며, 그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1941년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차타리는 자신은 “당시 명령에 따라 임무를 다했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조희선기자 hsncho@seoul.co.kr
  • [새터민 2만시대의 자화상] 관련 단체 수백여개…일부 급진적 행동방식 우려도

    [새터민 2만시대의 자화상] 관련 단체 수백여개…일부 급진적 행동방식 우려도

    현재 통일부에 비영리민간단체로 정식 등록된 탈북자 관련 단체는 50여개. 종교단체와 연계해 국내 거주 탈북자들의 정착을 지원하거나 소규모로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단체들까지 포함하면 수백개에 이른다. 1980년 처음 등장한 ‘숭의동지회’와 ‘통일연구회’ 이후 1990년대 말부터는 ‘자유북한인협회’ 등 자발적인 탈북자 단체까지 속속 등장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숫자가 크게 늘었다. 국내 탈북자 단체의 성격은 크게 북한 민주화 운동을 펼치는 단체와 탈북자 정착 지원단체로 나뉜다. 지난 2003년 출범한 ‘북한민주화운동본부’를 시작으로 한 북한 민주화 운동 단체들은 정치범 수용소 해체와 3대 세습 종식,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로 잘 알려진 ‘자유북한운동연합’은 현 정권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대형 풍선을 이용해 북한으로 전단을 날려보내는 작업을 강행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북한인권 NGO단체로서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 해방을 가장 중요한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면서 “한국은 북한 정권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데 대북정책도 북한 주민들을 위해 짜여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탈북자 정착 지원단체로는 국내 거주 탈북자의 69%를 차지하는 여성 탈북자들을 돕는 ‘탈북여성인권연대’가 있다. 재봉과 피부마사지 등의 교육을 통해 탈북여성들의 취업과 자립을 지원하고 이들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도 세웠다. 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도 실시한다. 북한사회의 실상을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한 학술단체도 등장했다. 2008년 조직된 ‘NK지식인연대’는 컴퓨터 공학박사로 북한에서 교수로 근무했던 김흥광 대표를 중심으로 대졸 이상의 고학력 탈북자들이 모인 단체다. 탈북자 단체가 증가하고 활동 영역도 다양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는 구심점이라는 의견과 일부 단체의 급진적인 정책과 행동방식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교차한다. 강석승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들의 활동이 직접적인 탈북자 지원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샘이나·배경헌기자 sam@seoul.co.kr
  • [데스크 시각] 무죄 확정 그 후/황성기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무죄 확정 그 후/황성기 문화부장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 대법원 1호 법정. 대법관의 말을 자세히 들으려 귀에 양손을 대고 있던 그가 복받친 듯 눈시울을 붉힌다. 김동순(67)씨. 2008년 여름, 광우병 촛불집회 와중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모의 여간첩 사건’ 원정화씨의 옛 의붓아버지다. 장맛비가 내리는 대법원을 빠져나오면서 김씨는 “꿈만 같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판결이 잘못돼 법정구속되지 않을까 전날 한숨도 못 잤다.”고도 했다. 악몽 같던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하늘을 올려다본다. 4년 전 수원지검은 원씨와 김씨를 탈북자로 위장한 ‘부녀간첩’이라고 발표했다. 김동순씨는 원씨 구속 직후인 2008년 7월 26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수원지법은 이듬해 2월 김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린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증거가 없다.”는 취지였다. 검찰은 항소했으나 1심 판결을 뒤집을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2010년 7월 서울고등법원의 무죄판결. 결기라도 부리듯 거듭된 검찰의 상고. 지루하게 시간이 흐르고 2년이 더 지나 대법원의 무죄확정을 받았다. 수사당국이 원정화씨의 옛 의붓아버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2001년 함께 탈북하고, 북한을 상대로 한 무역사업도 함께 했던 김씨의 정체가 실은 원씨를 관리하는 ‘고위간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상식적이다. 간첩 잡는 게 공안검찰의 임무니 거기까진 좋다. 하지만 검찰이 법원에 낸 증거는 초라했다. 김씨의 노동당원증, 원씨와의 전화 감청 등이 고작이었다. 김씨는 탈북자들이 받는 합동신문에서 ‘노동당원’이었다고 진술했다. 북에서의 신원을 소명할 유일한 자료였던 당원증은 김씨가 검찰에 전해준 것이었다. 간첩이라면 당원증을 소지할 리도, 집에 둘 리도 없다는 게 김씨 주장이었다. 원씨와 전화로 주고받은 대화는 딸과 아버지 사이였던 이들의 소소한 일상사가 전부다. 감청 내용을 법정에서 듣던 1심 재판장의 한심스럽다는 표정이 아직도 기자의 기억에 생생하다. 김씨가 대법원 판결 직후 “정의가 살아 있다.”고 했지만, 대한민국 판사라면 응당 내릴 무죄판결일 수밖에 없는 증거불충분의 기소였다. 의심이 들면 내사하고, 증거가 모이면 수사해 필요하면 인신을 구금하고, 기소를 하고 재판에 붙여서는 ‘유죄의 심증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되어서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할 검찰이, 의심만으로 덜렁 올가미부터 씌운 결과다. 형사사건 무죄율 2%의 사법현실에서 김씨 사건의 대법원 무죄 판결은 검찰로선 수치스러운 사례다. 후배들에게 고개 들기 어려운 ‘무죄의 공안사건’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공안통 수원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낙마하긴 했지만 검찰총장 후보에도 올랐고, 수사검사들은 대체로 승진했다고 한다. 만신창이가 된 건 김씨뿐이다. 김씨는 무죄로 풀려나고서도 따라다닌 ‘간첩’ 딱지, 탈북자정착지원금이 한동안 끊긴 것, 취업을 못하고 크고 작은 인권침해를 받은 건 그런 대로 견딜 만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치가 떨리는 것은 2008년 수사당국이 그의 당원증을 공개한 일, 그리고 압수됐던 가족앨범을 수사당국이 분실한 일이다. 2로 시작하는 7자리 숫자의 당원증 번호와 이름, 김씨 얼굴이 TV 등에 보도돼 신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래서 북에 두고온 자식들과 친척에게 일찌감치 북 당국이 위해를 가했을 거라는 게 김씨 생각이다. 가족들이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브로커에 부탁할까도 생각했지만 괜한 의심을 살까봐 4년간 아무 일도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요덕 수용소의 수용자 신원까지 알 수 있다는 국정원이 내 가족의 안부를 확인해 주는 게 도리 아니냐.”고 했다. 통일이 되면 서로를 알아볼 증명사진 요량으로 갖고온 그 소중한 앨범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건지 분통을 터뜨렸다. “북이 싫어 탈출한 남한에서 이런 고초를 겪을 줄 알았다면 남에 오는 게 아니었어요.” 집으로 향하는 그의 어깨가 천근만근 무겁게 보였다. marry04@seoul.co.kr
  • [본색 드러내는 日] 아우슈비츠, 비극의 역사 ‘교훈’… 미쓰비시는 근대화 ‘치적’?

    [본색 드러내는 日] 아우슈비츠, 비극의 역사 ‘교훈’… 미쓰비시는 근대화 ‘치적’?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 강제 징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장이다. 1944년 조선인 노무자 및 가족이 나가사키시에 2만명이 거주했고 이들 중 조선소에만 4700여명이 배치돼 군함을 제조하는 데 투입됐다. 1945년 8월 9일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공장에 근무하던 조선인 노동자 1600여명이 사망한 한이 서린 장소인 셈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숨긴 채 나가사키 조선소를 일본 근대화를 이끈 장소로만 부각시키고 있다. 일본 사회가 최근 보수·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지난 3일 나가사키 조선소의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록을 신청하기 위해 22명으로 구성된 유식자 회의를 열었다. 위원회는 마쓰우라 고이치 유네스코 전 사무국장과 구오 노리카즈 게이오대 명예교수 등으로 구성됐다. 첫 회의에서 나가사키 조선소의 한국인 징용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가사키 조선소를 강제 징용의 원죄가 있는 역사적인 장소가 아닌, 일본 근대화에 이바지한 산업시설로만 등록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셈이다. 폴란드는 세계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이 자행됐던 비극의 역사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1979년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으로 등재했다. 다시는 이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다. 일본 정부의 나가사키 조선소 세계 유산 등재 이유와는 너무도 차이가 난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된 일본 유산은 모두 16개다. 여기에다 후지산을 세계 유산으로, 일식을 일본인의 전통적인 ‘식문화’로 등재하기 위해 신청을 준비 중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과 경제침체를 겪으면서 국민에게 자긍심을 키워 주기 위한 일환으로 세계 유산 등록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쓰비시 조선소나 후쿠오카의 야하타 제철소는 현재 가동 중인 시설이어서 문화재 지정이 어렵자 아예 지정 요건까지 바꿔 가며 세계 유산 등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과거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산업 시설물을 세계 유산으로 만들려 하고 있어 한국이나 중국 등 이웃 국가로부터 또 다른 역사왜곡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北 요덕수용소 희생자 추모공원 수도권에 설치 추진… ‘한국판 홀로코스트 기념관’ 논란 일 듯

    北 요덕수용소 희생자 추모공원 수도권에 설치 추진… ‘한국판 홀로코스트 기념관’ 논란 일 듯

    북한 최대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 수용소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공원이 수도권에 들어설 전망이다. 북한 인권 유린과 관련해 남한에 관련 공간이 들어서는 것은 처음이다. 북한 인권법 제정이 18대 국회에 이어 19대 국회에서도 찬반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추모 공원 설치는 북한 인권법 향배는 물론 향후 남북관계에도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북한인권운동가 출신인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5일 “북한 인권 유린 실상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고 정치범 수용소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가칭 ‘요덕 위령공원’ 조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하 의원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모델 격으로 공원 장소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 있는 경기도 파주 등 접경 지역을 물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환기하는 상징으로 떠오른 것처럼 한국에도 북한 인권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장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공원 안에 북한 인권에 관한 상설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하 의원은 “공원 조성을 위한 관련 법률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공원 부지는 당초 서울이나 수도권을 검토했으나 상징성 등을 고려해 접경 지역인 경기도 등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추모공원 조성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북한 인권법에 관련 조항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北 미녀응원단, 남한서 돌아간뒤 사형 당했다”

    “北 미녀응원단, 남한서 돌아간뒤 사형 당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화제를 모았던 북한 미녀 응원단 중 일부가 비밀리에 처형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5일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는 이같은 탈북자의 주장을 전하며 “미녀 응원단 중 일부가 수용소에 갇혔다는 말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사형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뉴포커스에 따르면 탈북자 김모씨는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응원단 사형을 집행했던던 사람의 아내라는 여성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남편이 그 일(사형 집행)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려 무척 괴로워했다.”면서 ”남편이 ‘당에서 지시한 것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솔직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고 털어놨다는 것.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미녀 응원단은 아시안게임을 끝내고 북한으로 돌아가 생활 총화를 받았다. 생활 총화는 북한 주민들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비판 모임이다. 생활 총화를 받게 된 미녀 응원단은 한국에서 보고 들은 것은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에 따라 입 조심을 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위부의 유도 신문에 걸려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무조건 일정 대상 이상을 처벌해 실적을 내야 하는 보위부로서는 실제 흠결이 없어도 온갖 핑계를 대며 미녀 응원단 가운데 일부를 수용소에 보냈다고 김씨는 전했다. 이 가운데 사회적으로 힘 없는 집안 출신 몇 명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명목으로 윗선 지시에 의해 사형에 처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뉴포커스는 김씨가 “북한 미녀 응원단원이 되려면 출신 성분도 따지지만 일단 외모가 출중해야 하기에 몇 명은 힘 없는 집 안의 자녀가 있기 마련”이라며 “그런 사람이 숙청 1순위”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북한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2003년 대국 유니버시아드 대회,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도 미녀 응원단을 파견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돌아간 미녀응원단, 사형당한 이유 알고보니

    北 돌아간 미녀응원단, 사형당한 이유 알고보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화제를 모았던 북한 미녀 응원단 중 일부가 비밀리에 처형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5일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는 이같은 탈북자의 주장을 전하며 “미녀 응원단 중 일부가 수용소에 갇혔다는 말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사형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뉴포커스에 따르면 탈북자 김모씨는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응원단 사형을 집행했던던 사람의 아내라는 여성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남편이 그 일(사형 집행)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려 무척 괴로워했다.”면서 ”남편이 ‘당에서 지시한 것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솔직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고 털어놨다는 것.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미녀 응원단은 아시안게임을 끝내고 북한으로 돌아가 생활 총화를 받았다. 생활 총화는 북한 주민들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비판 모임이다. 생활 총화를 받게 된 미녀 응원단은 한국에서 보고 들은 것은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에 따라 입 조심을 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위부의 유도 신문에 걸려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무조건 일정 대상 이상을 처벌해 실적을 내야 하는 보위부로서는 실제 흠결이 없어도 온갖 핑계를 대며 미녀 응원단 가운데 일부를 수용소에 보냈다고 김씨는 전했다. 이 가운데 사회적으로 힘 없는 집안 출신 몇 명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명목으로 윗선 지시에 의해 사형에 처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뉴포커스는 김씨가 “북한 미녀 응원단원이 되려면 출신 성분도 따지지만 일단 외모가 출중해야 하기에 몇 명은 힘 없는 집 안의 자녀가 있기 마련”이라며 “그런 사람이 숙청 1순위”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북한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2003년 대국 유니버시아드 대회,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도 미녀 응원단을 파견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알카에다 2인자, 美무인기 공격에 사망

    국제적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아부 야히야 알리비(49)가 4일 오전(현지시간) 파키스탄 북서부 자택에서 미국 무인 공격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5일 보도했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과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이같이 전하면서 알리비의 사망은 지난해 5월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이후 가장 큰 성과라고 자평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와 관련, 알카에다에 “큰 타격”이라면서 알카에다 최고 작전지휘관이자 ‘간판 스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그를 대체할 인물이 당분간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알카에다는 아직까지 알리비가 미 중앙정보국(CIA)이 운용하는 무인 공격기 공격으로 숨졌는지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미 정보 당국자도 알리비는 풍부한 작전 경험과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라며, 그의 사망으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무대로 한 알카에다의 일상적인 무장 활동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측했다. 알리비의 사망과 미군의 계속되는 공격으로 알카에다 본거지가 파키스탄에서 예멘과 소말리아로 옮겨 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테러 문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963년 리비아에서 태어난 알리비는 2001년 9·11 사태 이후 알카에다 와해에 주력한 미국에는 빈 라덴과 함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알리비가 조직 내 입지를 굳히고 국제적인 관심을 끈 것은 2005년 아프간 바그람 미군 기지 내 수용소에서 동료 수감자 세 명과 함께 돌로 경비병을 제압하고, 탈출에 성공한 직후부터다. 이후 미 정부는 그의 목에 1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알리비는 특히 동영상을 통해 알카에다의 존재 이유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세계에 대한 항거의 필요성을 역설, 조직원을 충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빈 라덴을 이어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가 된 아이만 알자와리에 의해 조직 내 2인자로 인정받은 알리비는 시인과 학자로서도 명성을 구가했다. 알리비는 2009년 아프간 접경 파키스탄 서북부 지역에서 진행된 무인 공격기 공습 과정에서 제거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사망자가 다른 인물로 드러나 건재함을 과시했다. 파키스탄 현지 언론들은 지난 2일부터 3일간 계속된 공격에서 알리비 등 무장 조직원 15명과 함께 민간인 등 모두 30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리처드 호글랜드 이슬라마바드 주재 미국 대리대사를 불러 “무인공격기 공습은 국제법 위반이며 파키스탄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항의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北억류 신숙자씨 송환’ 정부가 나선다

    정부가 북한에 강제 구금된 신숙자씨와 두 딸의 송환을 위해 외교 채널을 통한 압박을 강화하기로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일 “(신씨 송환 문제는) 남북 대화를 통해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국내외 인권 관련 비정부기구(NGO)가 전면에 나서서 하고 있고 정부는 뒤에서 조용히 도와주는 상황”이라면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는 데 대해서는 정부가 해 왔고 북한 수교국에는 북한을 만날 기회에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을 외교부가 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로선 북한과의 직접 대화는 어렵지만 유엔 총회와 인권이사회, 유럽연합(EU), 스웨덴 등 북한과 대화가 가능한 나라들,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은 국내외 NGO 등 여러 채널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북한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국가들을 상대로 북한과의 양자 대화 등을 통해 신씨 가족의 석방 문제를 비롯해 정치범 수용소, 국군 포로·납북자 문제 해결 등에도 적극 나서도록 요청키로 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오바마, 故 폴란드 전쟁영웅 자유훈장 수여식에서 말실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폴란드의 전쟁 영웅을 기리는 자리에서 폴란드에 있던 나치 수용소를 ‘폴란드 수용소’라고 잘못 발언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9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자유훈장’ 수여식에서 2000년 고인이 된 폴란드 태생의 미국인 얀 카르스키에게 훈장을 수여하던 중 이 같은 실언을 했다. 그는 카르스키에 대해 “제2차 세계대전의 암흑기에 폴란드의 저항을 세계에 알린 전달자 역할을 했다.”면서 “적진으로 향하기 전 저항 투사들은 그에게 유대인 대학살 사실을 알리며 그를 바르샤바 게토와 ‘폴란드 수용소’로 보내 직접 확인하도록 했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에 대해 폴란드인들은 피해 지역과 가해자를 구별해 “나치 점령 당시 폴란드의 독일 수용소”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며 즉각 항의했다. 라도슬라브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무지와 무능력”의 문제라고 비난하며 백악관이 “이 충격적인 실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폴란드 수용소’라는 말이 별 말이 아닌 것 같지만, 폴란드 사람들은 아주 민감하게 생각하는 말이다. 당시 나치 수용소가 독일군에 점령당한 폴란드 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폴란드가 마치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비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토미 비에터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은 폴란드의 나치 수용소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며 이 실언에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한국, 표현의 자유 크게 후퇴…北, 김정은체제 후 인권 악화

    국제앰네스티가 24일 “지난해 한국의 인권상황이 한층 악화됐다.”고 밝혔다. 앰네스티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 세계 155개국의 인권상황을 담은 ‘2012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연례보고서는 세계 각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조사를 기반으로 지난 1년간의 세계인권 관련 이슈와 상황을 정리한 인권현황 자료다. ●“언론사파업·SNS 감시가 방증” 앰네스티는 보고서에서 지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된 사람이 135명에 달하는 등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크게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개인과 단체를 표적으로 삼는 사례가 점점 늘어났다.”면서 “특히 정부가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밀접하게 감시하면서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앰네스티는 현재 진행 중인 언론사 파업도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는 사례로 꼽았다. 앰네스티 관계자는 “파업 중인 언론사의 기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 공정보도와 중립성 확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한번에 4~5곳의 언론사가 같은 이유로 파업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北, 수용소 6곳에 20만명 구금” 앰네스티는 북한의 인권상황과 관련,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면서 “사법적 판단 없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앰네스티는 “지난 1월 권력이양 과정에서 국가안전보위부가 200명 이상의 관료를 구금했으며, 일부는 처형당했고 다른 일부는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을 우려가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7월 남북대화에 참여했거나 주도한 관료 30명이 총살형에 처해지거나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당했다.”고 보고했다. 이어 “현재 요덕수용소 등 6곳의 정치수용소에 최대 20만명이 구금되고, 수천 명이 최소 180곳의 기타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기고] 미얀마의 개혁과 북한의 선택/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기고] 미얀마의 개혁과 북한의 선택/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독재국가로 고립되었던 미얀마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중동의 민주화가 미얀마에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미얀마는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수십년 동안 독재체제를 유지해 왔지만 결국 개혁의 길을 선택했다. 지난해 3월 민간정부를 출범시킨 테인 세인 대통령은 영웅이 되었고,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이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얀마에 그동안 갈망하던 ‘새로운 정치와 역사’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지난 4월 1일 보궐선거가 민주적으로 진행된 이후 압승을 거둔 야당 ‘국민민주주의연맹’(NLD)의 지도자이자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역할에 여러 나라의 관심이 뜨겁다. 이미 유럽연합(EU)은 올해 초 미얀마의 개혁 조치들을 높게 평가했으며 각료들에 대한 비자발급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등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미국도 미얀마에 대한 제재 완화에 동참했고, 일본이 수천억엔 규모 부채를 탕감해 주기로 했으며, 중국·인도 등도 적극적으로 경제지원에 나서고 있다. 북한의 혈맹국인 중국은 1970년대 말 ‘시장중심적’ 개혁·개방을 통해 30년이 넘은 현재 주요 2개국(G2)의 반열로 들어섰다. 또 1970년대 중반 사회주의 통일 이후 낙후된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빈곤에서 신음하던 베트남 역시 1980년대 후반 ‘국가중심적’ 개혁·개방을 통해 성공적으로 경제발전을 달성하고 있다. 이렇게 주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은 물론 미얀마도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해 고립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발전의 장을 열었다. 하지만, 북한은 어떠한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3대 세습체제의 절대권력 공고화에 주력하면서 북한주민은 만성적인 식량난에 고통을 받고 있다. 또 소수 핵심 특권계층의 충성심 속에 대규모 정치범수용소가 현존하는 최악의 인권 탄압을 지속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몰락해 가는 사회주의 체제 고수를 위해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하는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김정은은 불안정한 정권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년을 맞는 태양절 행사를 통한 당·정·군 장악에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시장중심적이나 국가중심적 개혁·개방 정책 없이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패 이후 가해진 유엔 안보리 강경 제재의 국제사회 압박과 달리 유화적 대북 메시지를 보냈다. 주요 핵심은 북한의 변화와 그런 변화를 우리 정부는 수용할 수 있고 지지 및 지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얀마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 또는 개방을 선택한다면, 국제사회도 북한에 가해진 제재를 완화하고 각종 지원을 할 것이다. 북한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된 김정은은 스스로 국제적 고립을 자처하지 말고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군비 경쟁과 추가도발을 하루속히 포기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적반하장의 대남 도발 협박을 중단해야 한다. 벼랑 끝에 선 북한 권력층이 정권을 유지하고 경제 파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중국, 베트남과 최근 미얀마처럼 개혁·개방을 단행하고 국제사회와 대화와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 오길남씨, 유엔에 ‘신숙자 사망’ 증거자료 요청 추가 서한

    북한이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해 온 것으로 알려진 ‘통영의 딸’ 신숙자씨에 대해 최근 유엔을 통해 사망을 통보한 가운데 신씨의 남편 오길남씨가 유엔 측에 신씨 사망에 대한 증거 자료 제공 등을 요청하는 추가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오씨가 신씨와 두 딸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9일 “오씨가 북측이 최근 보내 온 회신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유엔 산하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에 북측의 추가적인 회신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며 “신씨의 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 자료와 두 딸의 자유 의지 확인, 이를 위한 제3국 상봉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유엔 실무그룹에서 오씨의 요청을 받아 북측에 다시 전달할 것인지 검토하게 될 것”이라며 “실무그룹 측이 북측에 질의서를 다시 발송할 경우 규정상 북측이 2개월 내에 다시 답변을 보내 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국자는 또 “실무그룹이 북한의 반응 등에 따라 종합적 평가를 내리거나 언론 성명을 낼 수 있으며 유엔 총회·인권위원회 등의 특별보고관 세션에서 논의할 수 있다.”며 정부가 이 과정에서 적극 지원할 것임을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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