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수용소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조계사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김병찬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가가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기억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65
  • “南서 북한 인권에 관심 낮아 아쉬워”

    “南서 북한 인권에 관심 낮아 아쉬워”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태어나 2005년 탈북한 신동혁(32)씨.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을 지낸 블레인 하든이 그를 인터뷰해 쓴 ‘14호 수용소 탈출’로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던 그의 얘기가 이번에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오는 3월 일본에서 개봉한다. 2012년 로카르노와 토론토 영화제에서도 상영됐던 ‘캠프 14-토털 컨트롤 존’의 일본 개봉을 맞아 신씨는 27일 도쿄의 재일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책이나 다큐멘터리 모두 나에 대한 이야기지만 내가 받은 고통이나 상처는 지금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면서 “이런 충격적인 사실은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고 내 입에서만 나온 얘기이긴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면서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신씨는 “아쉽게도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에서 방영될 기회가 없었다”면서 “한국에서는 국민적인 여론도 그렇고 정치권에서 북한 인권이 이슈화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낮은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해 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장성택 처형에 대해 “정치범 수용소에서도 자기 가족을 감시해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신고해서 죽게까지 하는데, 독재자가 자기 고모부를 죽이는 것은 북한 독재 정권하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김 제1위원장의 공포정치로 인한 정권 붕괴의 가능성에 대해 “지난 70년 동안 북한은 철저한 독재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 스스로 혁명이나 투쟁을 통해 북한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인들이 향후 3년이나 5년 내 통일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20년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할 때도 곧 통일이 될 듯했지만 아직 정권은 건재하다. 김정은 정권이 언제 무너질 거라고 예견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글 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나치학살 부역’ 역사 헝가리 대통령 인정

    “아우슈비츠는 헝가리에서 수백㎞ 떨어진 먼 곳이지만, 헝가리 역사의 일부이다.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50만명에 가까운 우리 유대인 동포가 숨졌고, 당시 헝가리 정부는 나치의 학살에 부역했다.” 야노시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일을 하루 앞두고 이례적으로 2차 세계대전 때 헝가리가 독일 나치의 인종 말살을 도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침략 전쟁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어서 주목된다. 아데르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70년 전 독일에 점령됐던 헝가리는 6개월 만에 게토(유대인 격리구역)를 완공하고 유대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면서 “히틀러와 헝가리 파시스트들의 계획대로 전쟁이 진행됐더라면 헝가리 유대인들은 완전히 몰살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944년 3월 독일에 점령된 헝가리 정부는 자국 내 유대인 43만 7000여명을 수용소에 몰아넣었고, 이들 대부분은 학살됐다. 강제 이주는 그해 7월 중단돼 유대인 수만 명이 겨우 학살을 면했다. 의회에서 간접 투표로 선출되는 헝가리 대통령은 행정적 실권은 별로 없지만 국가를 대표해 상징적 의미가 크다. 더욱이 중도 우파 집권당이 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기의 피해만 앞세우고 유대인 학살 책임은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과거사 인정이 더 돋보인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행정부는 최근 헝가리가 독일에 점령된 것을 추모하는 기념비를 세울 계획을 발표해 유대계와 지성인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루마니아 태생의 저명 미국 역사가인 랜돌프 브라함은 대통령 성명이 나오기 직전에 헝가리로부터 받은 공로 훈장을 반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홀로코스트 추모일인 1월 27일은 나치 정권의 가장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1945년 소련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날이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특파원 칼럼] 시진핑의 외신 홍보술/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시진핑의 외신 홍보술/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지난 2012년 센카쿠열도 국유화 사건 당시 중국은 폭력적인 항일 시위로 비난을 자초했지만 신사참배와 관련해선 폭력 시위 대신 일제의 침략 역사를 국제 이슈화하고 있어요. ‘안중근 기념관’ 개관 사업도 일본의 이미지를 망가뜨리려는 선전이에요. 중국이 똑똑해지고 있어요.” 최근 중국 하얼빈(哈爾濱) 기차역에 들어선 ‘안중근 기념관’에서 만난 한 일본 여성 특파원은 안중근 기념관 개관을 두고 중국 선전 스타일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이후 중국을 취재하는 외신기자로서 중국의 대외 홍보 수준이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지난 19일 한국과 중국이 안중근 기념관 개관을 ‘깜짝’ 발표하면서 기념관 취재가 갑작스러운 출장이었음에도 예상외로 순로롭게 진행된 게 비근한 예다. 기념관 책임자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하얼빈시 외사판공실은 불과 20분 만에 담당자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팩스로 취재 요청서부터 보내라고 요구하던 고압적인 태도가 일상적인 것임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책임자는 인터뷰에서 기념관은 역사를 직시하기 위한 의도이며, 한국과 중국은 항일투쟁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유대가 강한 우호국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앞서 중국 외교부 소속 외신기자신문센터(IPC)가 외신 기자들에게 지난 16일부터 이틀간 일본 관동군이 주둔한 동북지역 침략 현장 취재 자리를 마련한 것도 같은 예다. 이례적으로 취재 등록 마감이 끝난 이후에 신청한 기자들까지 모두 데려갔다. 출장은 일본군이 세균 무기를 개발해 연합군 포로를 실험하던 포로수용소 유적지, 일제가 중국인 3000여명을 몰살시킨 핑딩산(平頂山) 학살사건 기념관 등 일제 만행을 공개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이 밖에 각국 주재 대사들은 해당 국가 매체에 일본 비난 기고를 내고 있고, 일제 만행을 입증하는 일본 관동군 관련 문서도 잇달아 공개되고 있다. 중국의 저돌적 공세 탓인지 외교부 정례 브리핑 때마다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던 일본 기자들은 요즘 침묵하고 있다. 한 주중 일본 특파원은 이와 관련, “중국 대변인의 멘트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일본 비난 무대를 만들지 않으려고 질문을 자제하고 있다는 게 중평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해 8월 선전·사상공작회의를 주재하면서 ‘대외선전(對外宣傳·외신홍보)의 일대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과 세계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과 범주, 표현을 만들고 중국의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하여 중국의 목소리가 세계에 전파되도록 대외선전을 치밀하게 하라”고 말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전략을 짜서 형세에 맞게 움직이는 게 선전의 예술”이라고도 했다. 중국의 대일 비난전을 보고 있으면 시 주석의 주문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중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차선출해’(借船出海·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다)라는 말에 빗대 외신을 이용한 중국의 대외 홍보 강화를 주장한 연구가 쏟아졌지만 체제 안정 우선을 이유로 실행되진 못했다. 인권과 민주화 등 여러 면에서 개선할 점이 많은 중국이 시 주석의 주문 대로 신사참배 이외의 문제에서도 외신을 상대로 홍보의 예술을 구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jhj@seoul.co.kr
  • 교도관들, 女수감자 성폭행 하고도 태연히…

    북한 김정은 정권이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탈북자들을 붙잡아 사살하고 고문하는 등 북한의 인권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21일(현지시간) 밝혔다. HRW는 이날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세계 90여개국의 인권 상황을 검토한 ‘2014 세계 보고서’를 발표하고 “북한 김정은이 2011년 권력을 승계한 이후 허가 없이 국경을 넘는 이들을 바로 사살하고 있다”며 “탈북자가 중국 등에서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되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져 고문당하고, 교도관들은 여성 수감자를 성폭행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필 로버트슨 HRW 아시아 부국장은 “김정은은 공개 처형과 정치범 수용소 확대, 노동력 착취 시스템을 감시하면서 할아버지(김일성), 아버지(김정일)가 중단했던 것을 재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김정은이 지난해 11월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공포심을 키우고 있다”며 “그가 스위스에서 공부했으니 온건할 것이라는 ‘소설’은 그의 무자비함에 의해 철저히 허위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빌 게이츠는 이날 자신이 운영하는 ‘빌 앤드 멀린다 재단’이 발간한 ‘2014 연례 서한’ 보고서를 통해 “2035년에는 세계에서 빈곤 국가가 거의 사라질 것이지만 북한 등 일부 국가는 예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이츠는 “20년 후에는 절대적으로 가난한 국가는 세계적으로 아주 예외적인 사례가 되겠지만 일부 국가는 전쟁이나 정치적·지리적 이유로 뒤처질 수 있다”며 “특히 북한은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큰 변화가 없는 한’ 빈곤국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생체실험 박사 논문/최광숙 논설위원

    나치의 의사 요제프 멩겔레는 ‘죽음의 천사’로 불린다. 독일 친위대 대위이자 아우슈비츠의 강제수용소 내과 의사이던 그는 끔찍한 인간 생체실험들을 자행했다. 쌍둥이를 하나로 꿰매 샴쌍둥이로 만들고, 푸른 눈을 만든다며 어린 아이의 눈에 화학약품을 넣었다. 아이의 생식기 교체와 마취 없이 간 꺼내기 등 그의 생체실험은 엽기 그 자체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도 멩겔레 못지않은 ‘냉혈 의사’가 있었다. 생체실험으로 유명한 ‘731부대’ 책임자 이시이 시로다. 교토제국대 의과를 졸업한 의사인 그가 지휘한 731부대에서는 포로로 잡힌 중국군, 우리 독립투사, 여성과 어린이 등 모두 1만여명을 생체실험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균전에 대비해 페스트균과 탄저균 등을 주입한 음식과 물을 포로수용소의 사람들에게 먹였다. 거리의 아이들에게도 콜레라균이 묻은 사탕을 나눠주기도 했다. 산 채로 사람의 피부를 벗겨 내기도 했고, 성병 연구를 위해 남녀 수용자에게 강제로 매독·임질균을 감염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동상실험을 한다며 중국인을 발가벗겨 물벼락을 내린 뒤 추위에 저녁 내내 방치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 교토대와 규슈제국대, 심지어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의학부에서 731부대 관계자 수십여명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이 생체실험을 바탕으로 쓴 논문은 일본 국회도서관에 극비 문서로 대량 보관돼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된 23명의 전범 중 20명이 의사였다. 하지만 마루타 실험에 나섰던 일본 의사들은 오히려 전후 의학계, 학계에서 유명인사로 출세했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전쟁의학 범죄에 대한 단죄는커녕 오히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역사의 역주행을 일삼고 있다. 731부대원들이 생체실험도 모자라 이를 바탕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실은 일본의 니시야마 가쓰오 시가대 의대 명예교수에 의해 이번에 처음 드러났다. 그가 용기 있게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몰역사인식을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일제 강점기를 비롯한 과거사 연구에 우리는 얼마나 매달리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일본과의 ‘역사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일제 강점기 전문가를 비롯한 일본 전문가들을 긴 안목을 갖고 길러내야 한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일본 내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과 연대해서라도 과거의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해야 일본의 억지 논리에 실증적으로 반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美, ‘北 감옥 실태’ DB화…수용자 명단 인터넷 공개

    미국이 북한의 감옥과 강제수용소 실태를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하고 수용자 명단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기로 하는 등 북한 인권 개선작업 제도화에 나선 것으로 20일(현지시간) 확인됐다. 지난 17일 발효된 미국의 2014회계연도 세출법안(H.R.3457)의 ‘국무부 대외운영 및 관련 사업 예산’에는 ‘민주주의 기금’을 활용해 북한의 감옥과 정치범 강제수용소에 대한 DB를 구축하며, 강제수용소 실태는 지속적으로 내용을 갱신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실상을 알린다는 항목이 포함됐다.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북한의 강제수용소 실태를 관리하기로 하고 법으로 명시하기는 처음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이란 빼고 시리아 평화회담

    시리아 내전을 끝내기 위해 2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 평화회담(제네바2)이 개막 직전까지 이란 참가를 둘러싼 혼선과 시리아 반군 내 분열 등으로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AP통신 등은 20일 유엔이 이란 정부를 회담에 초청하기로 한 당초 방침을 철회했다고 전했다. 마틴 네시르키 유엔 대변인은 이날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이란이 제네바1 합의문을 승인하지 않는 등 국제사회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반기문 사무총장도 이란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며 이란에 대한 초청 철회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그동안 이란의 참가를 반대해 왔던 시리아 반군 측과 미국은 반색을 표했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제서야 회담의 당사자들이 현안으로 돌아와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시리아 반군 연합체인 시리아국민연합도 회담 참석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시리아국민연합 내 가장 큰 단체인 시리아국민위원회는 이날 연합을 탈퇴한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시리아국민위원회는 “회담에 참가하는 것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 전에는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같이 선언했다.국제적 지명도는 높았지만 시리아 반군단체들 사이에서 대표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 온 시리아국민연합은 시리아국민위원회의 탈퇴로 대표성 문제에 다시 직면할 전망이다. 이란과 러시아의 반발도 회담 성사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날 유엔의 초청 번복 직후 무함마드 카자이 유엔 주재 이란대사는 “이번 회담 참가국들이 이란의 지지를 잃었다”고 비난했다. 한편 CNN은 이날 알아사드 정권이 자국민을 고문·살해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고 폭로했다. 시에라리온 특별법정(SLSC) 검사팀에 따르면 시리아 수용소에서 사망한 수감자 시신 사진 5만 5000장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시신에서 굶주림과 구타, 교살의 흔적이 발견됐다. SLSC는 해당 보고서를 국제전범재판소에 제출할 예정이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北, 장성택 측근 박춘홍·량청송 숙청한 듯

    北, 장성택 측근 박춘홍·량청송 숙청한 듯

    북한이 지난해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 그의 측근 제거 작업을 이어 가고 있는 가운데 한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수행했던 박춘홍, 량청송 노동당 부부장이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 17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게재된 김 제1위원장의 공개 활동 기록 중 수행자 명단에서 이들의 이름이 장성택과 마찬가지로 모두 삭제됐음이 확인됐다. 통일부는 북한이 기록을 삭제한 것은 맞지만 이들의 숙청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북한은 망명하거나 숙청한 고위 인사들의 이름과 사진을 모든 공식 기록물에서 삭제한다는 전례에 비춰 볼 때 이들은 장성택처럼 처형됐거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된다. 박춘홍은 김 제1위원장을 2012년 5월 말부터 지난해 10월 초까지 14회 수행했으며 건설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김일성 훈장’과 ‘노력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 량청송은 2012년 5월 말부터 작년 3월 초까지 7회 수행했지만 그의 경력은 북한 매체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것이 없다. 지난해 11월 말 장성택 세력으로 몰려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당 행정부의 리룡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의 이름도 김정은 공개 활동 수행자 명단에서 모두 사라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수직적 리더십 집권 전보다 심해… 메르켈 민심 수용 새기길”

    “수직적 리더십 집권 전보다 심해… 메르켈 민심 수용 새기길”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추진위원회’ 윤여준 의장과 이상돈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중앙대 명예교수)은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1년에 대해 “‘내 생각이 원칙’이라는 식의 대통령 리더십으로는 민주주의적 국가 운영을 하기 어렵다”고 박하게 평했다. 이날 서울신문사에서 이뤄진 특별대담에서 두 사람은 박 대통령의 집권 1년과 여야 정치권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개헌 논의에 대해서는 “내각제 개헌이 바람직하다. 시기적으로도 늦지 않다”고 밝혔다. 다음은 주요 대담 내용.→박 대통령의 1년 국정운영을 점수로 매긴다면. 윤여준(이하 윤) 저는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리더십의 성격이 수직적, 폐쇄적, 권위적이라고 비판했다. 집권 이후를 보니 제 걱정보다 훨씬 심한 것 같다. 집권 1년도 되기 전에 사회 일각에서 퇴진운동이 일어났다면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이 시간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 이상돈(이하 이) 본인 내재적인 측면도 있지만 전임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정국 등 의도치 못한 측면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벽파계획’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대통령 지시사항이 ‘벽’이라면 공무원들이 벽을 깨부수듯 지시사항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아직도 이런 구시대적 국정운영이 엿보인다. 박 대통령이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회피하는 언행을 못해 더 진통을 겪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 대통령의 ‘불통’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윤 박 대통령 특유의 ‘원칙과 신뢰’의 태도는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내 생각이 원칙이다’는 규정자 의식은 곤란하다. ‘내가 아니면 아니다’는 고집으로는 안 된다. 이 박 대통령과 비교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한국에선 ‘대타협의 정치인’이라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2005년 총선 당시 메르켈은 슈뢰더 전 총리의 우파적 개혁정책 ‘어젠다 2010’이 사회적 반발을 얻은 덕분에 집권했는데 집권 뒤 자기 원칙은 폐기하고 슈뢰더 정책을 받았다. 메르켈이 선거에 나타났던 민심을 받아든 게 아닌가 생각해볼 부분이다. →대통령 단임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윤 민주국가는 반응성과 책임성이 중요하다. 지금은 반응성은 거의 없고 책임성도 물을 수 없는 상태다. 5년 단임제라는 정치제도의 탓이 크지만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의 탓이 크다. 이 대통령 단임제라고 국민심판을 안 받는 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5년 지방선거에서 패했고 그 외 여권이 중간선거에서 매번 패하지 않았나. 윤 여당에 (중간선거로) 책임을 묻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책임을 묻는 게 아니다. 2012년 총선 직전 한나라당이 당 이름과 로고를 다 바꿨다. 집권세력을 심판할 중요계기를 앞두고 심판의 대상을 바꿔버린 것은 정당정치의 본질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제 실패에 대한 반성에서 개헌한다면 의원내각제를 해야 한다. 분권형이나 이원집정부제는 의미가 없다. 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의원내각제로 가는 게 맞다. 개헌논의는 국회에서 하면 된다, 블랙홀이 아니다. 개헌논의를 국민에게 개방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학자들은 권력집중의 폐해 때문에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저는 동의 안 한다. 권력은 나뉘지 않는 속성이 있는데다 요즘 국가안보, 내정 등 명확하게 구분할 수가 없다. 내정과 안보를 줄 긋듯 분리하기 어렵다. →분권형이나 대통령중임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분권형 대통령제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예가 없다. 윤 결국 사람이 먼저냐 제도가 먼저냐의 문제다. 제도를 통해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 →6·4지방선거의 정치·역사적 의미와 야권연대나 전격 통합의 가능성은. 윤 이번 선거가 중간심판의 성격이 강하냐 약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집권 1년차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중간심판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 여론 관심이 온통 안 의원의 신당, 야권연대에만 쏠려 있는데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지방분권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방선거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 지도자들이 ‘야권연대’, ‘단일화’, ‘신당’ 같은 말초적인 데에만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 야권분열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는 주장은 원천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 지금 민주당의 전체 판세를 보면 여당을 이기지 못한다. 신당 창당 여부와 관계없이 지는 선거다. 우리는 이미 (민주당이) 잃어버린 표를 가져올 뿐이다. 이번 기회에 신당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당선시키느냐도 중요하지만 새 정치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크다. 이 구정치에 대한 총체적 심판이냐 혹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이냐를 놓고 볼 때 이번 선거는 불행히도 후자 쪽이 더 강하다. 민주당의 문제는 항상 호남이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개혁, 쇄신을 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100년 만에 동북아 안보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한·일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일본에 대한 국민정서, 역사문제와 안보·경제 분야는 별도로 접근해야 한다. 과거엔 한·일 관계에 비공식 채널이 있었는데 이제는 끊어져 버린 게 아닌가 걱정도 든다. 한·일관계가 개선되어야 함은 말할 여지가 없다. 박 대통령이 국내정치의 긴장을 풀어야 남북관계도 풀린다. 윤 일본에는 아베 총리의 극우적 언행에 반대하는 지식인, 중산층 계층이 두껍다. 이들과의 시민적 교류를 병행해야 한다. 대통령은 통일 한반도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미·중 지도부 설득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현 외교안보라인을 보면 군 출신, 국방통은 많지만 외교안보통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교과서 논란은 어떻게 보나. 윤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해석학의 영역으로 과거 사건에 대해 해석상의 논쟁이 붙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이념을 앞세운 나머지 사실 관계조차도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념 잣대에서 불리하면 팩트를 고치는 게 어떻게 교과서인가. 역사학자들이 학문적 논쟁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미국 고등학생들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 지휘관 이름은 몰라도 일본계 주민들을 집단수용소에 가뒀던 것은 다 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보도연맹, 노근리 사건은 아는데 6·25 전쟁의 중요 전투는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권위 있는 우파 전통의 교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관련 특별검사제 도입 논란이 장기간 지속됐다. 이 의혹이 터져 나왔던 지난해 여름에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했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윤 박 대통령이 업보로 짊어지고 가야 한다. →야당의 특검 정치공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이 야권에서 정치공세를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검찰이 기소해 재판하더라도 국민들이 이를 믿겠느냐는 것이다. 검찰 수뇌부에 대한 신뢰가 붕괴한 마당에 강도 높은 검찰개혁을 시도한다 해도 이에 실패한 정권·대통령에 대해선 국민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윤 대선 불복을 떠나 야권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이슈다. 대선개입의 규모보다 국가가 선거에 개입했다는 객관적 사실이 드러났고, 박 대통령으로선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앞으로 이 정부에 두고두고 큰 짐이 될 것이다. →지도자 자질 논란이 많다. 국가지도자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 그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를 알아야 한다. 영국은 그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마가릿 대처, 토니 블레어를 총리로 원했다. 성공하는 대통령·총리는 ‘소통과 위임의 달인’이 돼야 한다. 소통은 기본이고 좋은 사람을 써서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로 혼자서 껴안고 가면 100% 실패한다. 세세한 문제도 챙긴 미국 존슨, 카터 전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이 된 이유다. 윤 대통령은 두 가지 기초소양이 필요하다. 첫째, 국가의 핵심 가치가 공공성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공인 의식이 없으면 권력을 마치 물려받은 유산처럼 착각해 모든 병폐의 근원이 된다. 둘째,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 →윤 의장이 안철수 의원에게 다시 합류한 이유는 무엇인가. 윤 지금 새 정치의 심벌은 안철수다. 새 정치 요구 현상은 기존 정치에 대한 혐오 때문에 생겼고 안철수란 사람이 다른 정치인과 다르기 때문에 이름 석자 앞에 ‘새 정치’란 단어가 붙은 것 아니겠나. 새 정치를 만드는 데 헌신한다고 했으니 도울 뿐이다. 한국 정치를 바꾸고 싶은 제 소망이 있지만, 만약 안철수가 ‘대통령을 만들어달라’고 했다면 돕지 않았을 거다. 진행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정리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사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이상돈 前비대위원은 새누리당 쇄신과 19대 총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2012년 초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다. 대선 때는 박근혜 캠프의 정치쇄신위원으로 활동하며 박근혜 후보의 중도보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박근혜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비판적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윤여준 새정추 의장은 최근 새정추에 합류해 창당 준비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윤 의장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각종 선거에서 이름을 날린 보수진영의 대표적 전략기획통으로 평가받는다. 문민정부 때에는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 등을 지냈고, 지난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선대위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았다.
  • 할리우드와 ‘731부대’ 영화 만든다

    할리우드와 ‘731부대’ 영화 만든다

    2차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일본 731부대의 생체 실험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가 할리우드 유명 배우와 제작진의 재능 기부 형식으로 제작된다. 이들을 움직인 주인공은 할리우드 감독을 꿈꾸는 영화학도 김영민(38)씨다. 2008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화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한 그가 졸업작품으로 선택한 소재는 1932~1945년 생체 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 관동군 731부대다. 영화 ‘룸 731’(포스터·Room 731)은 일본군 수용소에 갇힌 ‘웨이’라는 10대 소녀가 고문당하다 숨진 희생자의 영혼을 목격하면서 겪는 일화를 다룬다. 15분짜리 단편영화지만 출연진과 스태프의 면면은 상업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에 출연한 한국계 배우 팀강(41·한국명 강일아)이 배우 겸 제작자로 참여하며 할리우드 영화 다수에 참여한 다이애나 최(특수분장), 에디 양(특수효과), 바네사 리(의상 디자이너) 등이 재능 기부 형태로 나선다. 제작비는 총 11만 달러(약 1억 1000만원)가 투입된다. 이 가운데 7만 달러를 USC와 영화 촬영 장비 제작사 파나비전 등에서 지원받기로 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생명의 窓] 스페로, 스페라!/차동엽 인천 가톨릭대 교수·신부

    [생명의 窓] 스페로, 스페라!/차동엽 인천 가톨릭대 교수·신부

    지난해 말 모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요즘 한 대학생이 대자보를 통해 던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우리 사회가 울고 있습니다. 왜 웃지 못하고 울어야만 하는지요?” 대답을 주기 전에 나는 잠시 멈칫거려야 했다. 답변이 궁해서가 아니었다. 처진 어깨의 젊은이들 모습이 떠오르고 사회에 대한 그들의 장탄식이 귓전에서 웅성거렸기 때문이다.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을 밝혔지만, 정확하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격의 없는 공감으로 단초를 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비단 젊은이들뿐이겠는가. 40대건, 5060세대건, 노년층이건 다 나름대로 사는 게 수월치 않았던 2013년이었다. 실체적 어려움, 현실적 고충, 실물적 절망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공감을 넘어 같이 아프다. 하지만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러면 절망이 답인가. 불평과 분노가 답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상황이 혹독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극한의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는 사람은 살아남는다는 교훈을 유대인 집단 학살의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직접 확인하고서 이렇게 결론지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체격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내 체력이 바닥나 약골들이 되었다. 최후의 생존자들은 살아남아야 할 이유, 생존의 목적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거듭 확인하거니와 최후의 생존자들은 삶의 목적이 뚜렷한 사람, 살아야 할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 이 귀한 진실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된다. 여기서 삶의 목적이나 이유는 내용적으로 희망의 동의어다. 그러니 모두가 똑같은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끝까지 버티는 힘은 희망에서 나온다는 실존법칙이 성립하는 것이다. 요컨대, 불평과 분노만으로는 처절한 현실의 고통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시련이나 고통이 지속될 때는 당장 결실이 없더라도 끈질긴 희망을 갖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건강한 비판도 꼭 필요함을 전제로 제언하는 역경의 출구전략이다. 나의 이 희망철학은 하루 이틀의 주제가 아니다. 특히 2013년 한 해는 입만 열면 ‘희망의 귀환’을 역설해 왔다.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는 말은 어느 자리에서건 나의 후렴구였다. 2014년 새해 벽두! 나 자신과 독자들을 위해 덕담으로 라틴어 희망 경구를 건네고 싶다.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뜻은 발음만큼이나 간명하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아직 의미가 또렷하지 않다면 좀 더 격하게 번역해 볼 수도 있다. “나 같은 놈도 희망한다. 그러니 너도 희망하라!” 여기서 지금 희망을 권면하는 이는 누구인가. 극한의 곤경에서 겨우 간신히 억지로 희망을 품고 사는 이, 이를테면 노숙자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다. 그러면 듣는 이는 누구인가. 권하는 이보다는 훨씬 형편이 나은 사람, 말하자면 그래도 생계는 보장돼 있는 사람이다. 이 경구의 절묘함은 바로 반전에 있다. “죽네 죽네”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살 만한 처지에 있는 이들임에 비할 때, “살아 보자, 살아 보자”하는 이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막장이라는 역설. 2014년,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이 경구를 상기해 봄이 어떨까. 그럼으로써 사치스러운 절망의 유혹을 가차 없이 떨쳐 봄이 어떨까.
  • [열린세상] 아베 정권의 탈선과 우리의 선택/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베 정권의 탈선과 우리의 선택/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야 말았다. 침략의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한국과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역사의 현장인데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는 의미가 된다. 이런 일본의 앞날을 예측했던가. 일본을 항복시킨 맥아더 원수는 일본을 점령하자마자 중요한 몇 가지 정책을 펼쳤다. 첫째, 지독하리만큼 독한 일본의 보수세력들의 결합을 끊는 일이었다. 맥아더는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원동력을 군벌과 재벌의 결탁이라고 보았다. 군국주의를 내세운 군벌은 결집된 재벌의 자본력을 배경으로 항공모함, 가미카제 전투기 등 수많은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맥아더는 점령정책의 첫째를 군사력 해체, 두 번째를 재벌 해체로 정책목표를 삼았다. 그리고 군국주의에 물든 국민들의 사상을 바꾸기 위해 민주화를 단행시켰다. 그래서 일본은 패전한 지 7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미국과의 동맹하에 조용히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일본의 보수세력의 생각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군사력으로 강대국이 되는 염원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 속마음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중국의 센카쿠 위협으로 수면 위로 부상해 본격화되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보수세력은 존재하는데 일본의 보수세력은 성격이 다르다. 한국이나 중국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비판하면 잘못되었다고 진정하게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가 그 당시 국력이 약해 자신들의 나라를 못 지킨 것일 뿐 침략전쟁이 잘못됐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60년 이상 사과와 반성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나치 학살의 독일은 지금도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며 주변국들과 동행하려 한다. 작년 봄 베를린의 중심가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 나치 학살의 잘못됨을 수많은 관 모양의 건축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독일 뮌헨 근처에는 최초의 강제수용소 다카우가 있고 베를린 근처에는 나치가 생체실험을 했다는 작센 하우스가 있어 과거 나치 만행의 시설을 보존하며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고 있는데, 수도 중심가에 어쩌면 흉물스럽기도 한 진회색의 관들로 건축돼 있는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 독일을 신뢰받게 한다. 일본은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비겁한 일이다. 세계는 동북아 세 나라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두려워도 한다. 각각의 한 나라가 세계의 어느 국가와도 견줄 만큼 경제력이 발달한 나라들이다. 서로가 평안하여 협력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동북아를 만들 수 있는데 소아적인 생각에 머물러 값비싼 무기를 사들이는 군비경쟁에 휩싸여 있다. 일본은 침략 역사를 부정하며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고, 중국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넘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온 상태를 깨뜨리려 한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일본의 침략 역사 부정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주장해야 한다. 36년의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은 직접적인 피해자이며 일본의 침략 역사를 그 누구보다도 잘아는 당사자다. 독일은 교과서에 나치 만행을 제대로 쓰고 정권이 바뀌어도 피해자들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에 후세들이 선대의 잘못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반면에 일본의 후세들은 제대로 역사를 배우지도 못해 한국이나 중국을 여행하면서 선조들의 잘못을 알게 되는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일본의 지도자들이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면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하며 센카쿠를 넘보는 것에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는 한국 외교의 역할이다. 일본의 보수우익화가 더욱 강화되는 것은 중국의 위협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일본과 중국의 무기 사재기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한국 경제에 주름이 지게 하고 있다. 동북아의 군비경쟁 축소라는 화두를 갖고 한국이 선제적 외교에 나서야 동북아 평화의 미래가 있다.
  • ‘항일투쟁’ 안승갑 선생 유고집 내년 발간

    태평양전쟁의 종전을 9개월여 앞둔 1944년 12월 29일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고려 독립 청년단’이 결성됐다. 항일운동 단체였지만 청년단을 조직한 10여명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일본군 소속의 포로 감시원이었다. 일본군에게 극심한 차별을 받았던 조선인 포로 감시원들은 당시 필리핀과 미얀마의 독립 선포에 고무돼 청년단을 조직했다. 청년단은 1945년 자바섬 동부에서 일본군 12명을 사살하는 등 일본군에 저항했다. 1942년 6월 자바섬 반둥시의 일본 제16군 포로수용소에서 연합군 포로 감시를 시작한 안승갑(1922~1987)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안 선생의 아들인 안용근 충남대 교수는 29일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야학을 개설하고 독립운동가와 접촉하다가 일본 순사에게 발각된 뒤 일본군 군속(군무원)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안 선생은 당시 자바섬에 있던 조선인 인명부와 조선인 군속들이 저축한 예금 내용을 적은 ‘사금회수증명서’ 등을 남겼다. 안 교수는 “아버지는 1947년 귀국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체불 임금과 위로금 배상청구 운동을 벌였고 청년단 활동가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도록 힘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안 교수는 내년 초 안 선생의 호를 딴 ‘낙산 유고’라는 책을 출간한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조선인 포로감시원 중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있다는 것이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유고집을 통해 이들의 기구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한국전 포로 미군 유해 63년 만에 부인품으로

    한국전 포로 미군 유해 63년 만에 부인품으로

    한국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북한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의 유해가 63년 만에 미 고향으로 귀환했다. 그동안 남편을 기다려 온 94세의 부인이 직접 남편의 유해를 맞이해(오른쪽 가운데)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AP통신과 미 로스앤젤레스(LA) 지역 방송 등에 따르면 북한 포로수용소에 사망한 조지프 갠트(왼쪽) 전 일등상사의 유해가 지난 20일 새벽(현지시간) LA공항에 도착했다. 갠트 전 일등상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군우리 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고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1951년에 사망했다. 하와이에 본부를 둔 미 국방부 전쟁 포로·실종자 합동조사본부는 북한 등에 묻힌 미군 유해를 발굴해 미국으로 귀환시키고 있다. 공항에 나와 성조기가 덮인 갠트의 관을 맞이한 부인 클래라 갠트는 “이제야 편히 눈을 감게 됐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46년 텍사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1948년 결혼했고 남편은 한국전에 참전했다. 클래라는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면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재혼하라’고 했지만 난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했고, 말한 대로 여태껏 조지프의 아내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60년이 넘도록 남편의 유해라도 돌려받기를 고대해 왔다는 그녀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서 기쁘고 내가 살아 있을 때 남편이 돌아와 더 기쁘다”고 말했다. 1924년생인 갠트 일등상사는 1942년 육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 때 남태평양 전선에서도 싸워 훈장을 탔다. 그의 유해는 로스앤젤레스 인근 잉글우드에 안장된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장성택 전격 처형] 불만 세력 처리하는 ‘막강한 힘’

    북한이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전격 처형하는 과정에서 체제 불만 세력을 처리하는 특수 성격의 사법기관이 전면에 나타났다. 장성택에게 사형을 선고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다. 장성택은 군 출신은 아니지만, 북한군 대장 계급을 갖고 있었다. 북한의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군인에 대한 재판은 군사재판소에서 관할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장성택 재판을 군사재판소의 하나인 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가 맡았다는 관측이다. 북한의 형사소송법에는 2심제가 보장돼 있다. 장성택이 상소를 포기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단 한번의 재판으로 확정된 것으로 미뤄 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가 일반적인 군사재판소와는 달리 특수한 위상을 가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권의 2인자가 속전속결로 재판 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배후에 보위부의 막강한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위부는 한마디로 북한의 비밀경찰기구로 아무런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도 용의자를 구속하고, 처단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보위부는 인적 구성이나 기구변동 사항 등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핵심 임무는 김일성 일가의 세습 독재체제 유지이다. 이를 위해 주민의 사상과 동향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 반체제 사범을 색출하고 김일성 일가에 대한 비방사건들을 전담수사한다. 관련 죄목으로 체포된 정치범들의 수용소 관리도 맡고 있다. 김일성 주석 생존 당시에는 국가주석 직속이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집권한 뒤 김 위원장이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독재를 위한 강령인 ‘유일 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에 근거한 10가지 범법규정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체제 보위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北 장성택 전격 처형] 당 행정부 측근 살생부 ‘0순위’

    [北 장성택 전격 처형] 당 행정부 측근 살생부 ‘0순위’

    13일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은 제놈이 당과 국가지도부를 뒤집어엎는 데 써먹을 반동무리들을 규합하기 위해 불순이색분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들에 끌어들였다”고 밝혔다. 이미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내란·반란 수괴’로 처형한 만큼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에 포진한 ‘반동무리들’에 대한 처단 또한 불가피하다. 장성택 관련 숙청 규모는 미지수지만 지난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한국 망명 사태 당시보다 대규모가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북 전문가들에 따르면 황장엽 망명 사건으로 친·인척 및 측근 인사 2000~3000명이 숙청 또는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의 최측근이자 조선중앙통신이 “아첨군인”으로 지칭한 리룡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은 이미 지난달 말 공개처형됐지만 이들은 시작일 뿐이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특별군사재판 사형집행문에는 장성택이 장악해온 각급 조직들로 당 중앙위 부서 및 산하기관을 적시한 것은 물론, ‘청년사업부문’ ‘부서와 산하기구’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간부’ 등을 동원해 반역을 획책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장성택이 장악했던 노동당 행정부, 측근들이 대거 포진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간부들과 함께 우선적으로 ‘살생부’에 오를 전망이다. 장 부위원장의 측근들은 지난해 11월 신설된 국가체육지도위원회에 주로 포진하고 있다. 체육지도위 부위원장인 리용수 당 근로단체부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한국의 경찰청장), 로두철 내각 부총리 등과 위원인 리종무 체육상,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등이 심복으로 분류된다. 장성택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리수용 전 조선합영투자위원장과 리광근 현 합영투자위원장, 박명철(전 체육상) 국방위원회 참사, 김기석 국가경제개발위원장, 리석철·김철진 부위원장은 물론 이미 북한으로 소환된 장성택의 자형인 전영진 쿠바 대사와 조카인 장용철 말레이시아 대사도 ‘살생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박봉주 내각총리는 경제전문가로서 ‘대체재’가 없기 때문에 장성택과의 각별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건재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장성택 처형까지…긴박했던 ‘11일’

    장성택 처형까지…긴박했던 ‘11일’

    북한 김정은 정권의 2인자로까지 불렸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결국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3일 북한이 전날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열고 ‘국가전복음모행위’ 혐의로 장성택에 사형을 판결하고 집행했다고 보도했다. 장성택의 실각설이 제기되고부터 그의 처형 사실이 공개되기까지 11일의 시간은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사회를 조마조마하게 한 긴박함의 연속이었다. 장성택의 실각설은 지난 3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게 보고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당시 국정원은 지난 11월 하순 북한이 장성택의 핵심 측근인 리룡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을 공개처형했다며 “장성택이 실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소식은 한반도 정세를 요동치게 할 메가톤급 뉴스이기에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는 실각설의 진위와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다음 날인 4일 ‘혁명적 신념은 목숨보다 귀중하다’는 장문의 글에서 “오늘 어느 한순간이라도 당에 충실하지 못하면 충신이 될 수 없다”, “충신은 99%짜리란 있을 수 없다” 등의 표현으로 최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장성택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지만 신중론이 적지 않았다. 장성택이 실제로 실각했는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주기(12월 17일) 행사까지 기다려봐야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이달 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간담회에서 ”’장성택이 실각을 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정부 내에서도 장성택의 실각설과 관련해 온도 차를 보였다. 또 장성택의 측근이 망명했다는 미확인 정보가 언론에 나오는 등 각종 ‘설’(說)이 난무하기도 했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장성택의 실각을 사실상 확인하는 증거가 북한 TV로 나왔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7일 오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제1부 선군의 한길에서’를 재방송하며 종전에 나왔던 장성택 부위원장의 모습을 모두 없앤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에도 주요 간부를 숙청하고 각종 매체에서 이들의 ‘흔적’을 지워왔다는 점에서 장성택의 실각은 사실이고 재기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결국 북한은 이틀 뒤인 9일 장성택이 ‘반당·반혁명 종파행위’를 했다며 그를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당으로부터 출당·제명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장성택의 모습을 기록영화에서 삭제하고 내보낸 다음 날인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장성택의 숙청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중앙TV는 장성택이 정치국 회의에서 인민보안원 두 명에게 끌려나가는 장면을 담은 사진도 방송했다. 북한 매체는 숙청 사실을 공개한 뒤 “장성택과 그 일당을 설설 끓는 보이라(보일러)에 처넣고 싶다” 등의 주민 반응을 전하며 대대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특히 강원도 인민위원회 간부들은 지난 11일 조선중앙방송에 나와 “장성택 일당이야말로 리승엽과 박헌영 일당과 꼭 같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극악한 종파 무리”라고 말했다. 일본강점기 혁명가로 활동했고 해방 후 남로당을 조직해 활동하다 월북한 박헌영은 1955년 12월 북한 최고재판소 특별재판에서 ‘정권 전복 음모와 반국가적 간첩 테러 및 선전선동 행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장성택도 ‘국가전복’과 관련된 혐의로 중형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은 숙청을 공개한 지 불과 나흘 만인 13일 오전 장성택을 처형한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당초 장성택이 ‘반당·반혁명적 종파분자’로 낙인찍혔기 때문에 최소한 정치범수용소로 가는 중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장성택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일한 여동생인 김경희 당비서의 남편이자 김정은 제1위원장의 고모부라는 점에서 이렇게 빠르게 사형당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리설주 성추문 촉발 ‘은하수관현악단 처형설’은 무엇?

    北 리설주 성추문 촉발 ‘은하수관현악단 처형설’은 무엇?

    북한 퍼스트레이디 리설주와 장성택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루머가 돌고 있는 가운데 과거 리설주의 성추문에 대해 네티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리설주의 성추문은 지난 9월 일본 아사히신문이 북한 당국이 리설주와 관련된 추문을 은폐하기 위해 은하수관현악단과 왕재산예술단 단원 9명을 8월 공개처형했다고 보도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들 9명은 자신들이 출연한 포르노를 제작했으며 북한 인민보안부가 이들의 이야기를 도청, ‘리설주도 전에는 자신들과 똑같이 놀았다’는 대화 내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리설주와 관련된 추문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8월 17일 9명을 체포한 뒤 재판 회부 없이 3일 뒤 평양시 교외의 강건 군관학교 연병장에서 군과 당의 고위간부, 악단 관계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처형된 9명의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으며 두 악단은 해산됐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이 사건이 알려진 뒤 리설주는 공개석상에서 보름 동안 모습을 감췄다. 이후 다시 공연 관람 모습이 보도되면서 리설주 성추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최근 장성택 숙청 사건이 불거지면서 다시 성추문이 불거지고 있고, 심지어 장성택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내용도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분석]회의중 끌려나간 장성택, 사진까지 공개…김정은 뭘 노렸나

    [분석]회의중 끌려나간 장성택, 사진까지 공개…김정은 뭘 노렸나

    반당·반혁명 종파주의 등의 이유로 숙청당한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8일 개최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도중 끌려나간 장면이 매체를 통해 보도돼 그 공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선중앙TV는 9일 오후 3시 18분쯤 뉴스 시간에 당 정치국 확대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앉아 있던 장성택 부위원장이 군복을 입은 인민보안원 두 명에게 끌려나가는 사진을 화면으로 방영했다. 특히 이미 실각해 행방이 묘연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장성택 부위원장을 굳이 이날 확대회의에 참석케 한 뒤 현장에서 공개적으로 체포한 배경에 북한 당국의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성택 부위원장의 측근인 리룡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체포된 것은 지난달 18일. 리룡하와 장수길은 지난달 하순 이미 공개처형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 체포 직후 장성택은 가택연금됐던 것으로 국가정보원 측은 파악했다. 이미 가택연금 처분이 내려진 장성택 부위원장이 8일 확대회의에 참석한 것은 결국 장성택 부위원장 체포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철저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2인자’로 불린 장성택 부위원장이 맨 앞줄이 아닌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다가 끌려나간 것부터 이날 장성택 체포가 고도로 짜여진 연출임을 보여준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고위인사의 체포 상황을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1970년대 초 이후에 이런 장면이 북한 매체에 공개된 적이 없어 장성택 부위원장은 앞으로 최소한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지는 운명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이 장성택 부위원장의 체포 장면을 매체를 통해 공개한 배경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 유일영도 체계를 공고화하고 이에 대한 도전을 엄중히 다스리겠다는 경고의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 권력의 2인자로 인식됐던 장성택 부위원장조차 김정은 유일영도 체계 앞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북한 전체에 명확히 강조한 것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일제징용 포로들의 삶 오롯이… 자유한인보 3호 복사본 발견

    일제징용 포로들의 삶 오롯이… 자유한인보 3호 복사본 발견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 강제 징용됐다가 연합군 포로가 된 한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됐다. 충청 지역 일간지인 충청일보는 최근 본사 자료실에서 1945년 11월 15일자 자유한인보 3호 복사본을 발견했다고 2일 밝혔다. 자유한인보는 연합군 포로가 된 한인들이 하와이수용소에서 제작한 일종의 소식지다. 7호까지 제작됐으며, 독립기념관에 유일하게 7호가 보관돼 있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간단한 노동을 하며 받은 돈으로 자신들의 단결을 위해 소식지를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일 감정이 강했던 포로들은 돈을 모아 연합군에 기금도 냈다. 이번에 발견된 자유한인보는 한글로 씌어진 50쪽 분량이다. ‘우리나라 자랑꺼리’, ‘세계뉴스’, ‘말썽꺼리’(낱말퀴즈) 등으로 나뉘어 있다. 1945년 11월 11일 이탈리아 포로들과 축구시합에서 한인들이 5대3으로 패했다는 이야기와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우승을 해 자랑스럽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표지에 ‘1991.4.4’이라고 쓰여 있어 이때 복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독립기념관 김도형 책임연구원은 “손글씨로 쓴 뒤 등사를 하다 보면 원본이 닳기 때문에 매호 500부 이상 제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3호에 담긴 포로들의 수필 등에는 반일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