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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계에 폭언·폭행… 환자 수용시설 반대, 코로나 공포에 다시 도진 美 인종차별·님비

    아시아계에 폭언·폭행… 환자 수용시설 반대, 코로나 공포에 다시 도진 美 인종차별·님비

    인디애나선 “호텔 예약 취소됐다” 기피 택시·우버 호출 서비스 일방적 승차 거부 트럼프, 앨라배마 격리시설 계획 백지화미국 사회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곳곳에서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금기시됐던 인종차별이 노골화하고, 코로나19 수용시설을 둘러싼 님비현상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내에서 코로나19 관련 첫 사망자가 나오고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3명이 확진자로 판정받으면서 공포가 번지고 있다. 이에 코로나19 확진환자를 위한 수용시설을 반대하는 지역 이기주의(님비현상)뿐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무차별 폭언·폭행 등이 잇따르고 있다. 다민족·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님비’는 금기어였다. 최근 한인들이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의 지하철 안에서 백인 남성이 태국계 여성을 향해 코로나19 관련 폭언을 퍼부었다. 그는 “모든 질병은 중국에서 왔다. 중국인들은 역겹다. 그들이 미국으로 질병을 옮겨 온다”며 인종차별 발언을 쏟아냈다. 또 뉴욕의 지하철에서는 한 흑인 남성이 마스크를 쓴 아시아계 여성에게 “병에 걸렸다”며 무차별 폭행을 하는 사건도 있었다. 인디애나에서 아시아계 한 남성은 호텔 입실을 거부당했다. 그는 “직원이 대뜸 중국인이냐고 물었고 ‘아니다’라고 말해도 ‘예약이 취소됐다’며 쫓겨났다”면서 “근처 호텔도 똑같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택시나 우버 등 차량 호출 서비스에서도 ‘아시아인 혐오’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아시아계 승객이나 운전자를 드러내고 피하는 것이다. 워싱턴DC의 제러미 서는 “공항에서 우버를 호출했는데 몇 번을 일방적으로 취소당했다”면서 “코로나19의 공포감이 커지면서 아시아계 이름의 승객을 거부하는 등 우버나 리프트 기사들의 인종차별적 승차 거부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공포 확산이 ‘우리 동네는 안 된다’는 님비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오는 11월 대선 등을 앞두고 공화당 표밭에 관련 시설을 지을 경우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산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해외에서 감염돼 귀국한 환자들을 군 기지와 특수의료시설을 갖춘 네브래스카 의료센터에서 치료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늘기 시작하자 증상이 가벼운 일부 환자들을 앨라배마 애니스톤 한 격리시설로 이송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주지사뿐 아니라 상·하원 의원이 강하게 반대했다. 케이 아이비 앨라배마 주지사는 성명에서 “최우선 과제는 앨라배마 주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보건복지부의 앨라배마 수용소 계획을 크게 질책하며 ‘백지화’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앨라배마는 공화당의 텃밭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이 공고한 지역이다. 여기에 수용시설을 만드는 것은 오는 11월 대선을 포기하는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환자 이전 계획과 일본 크루즈 환자 이송 등으로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눈 밖에 났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평이다. 또 캘리포니아의 코스타메이사시도 같은 이유로 연방정부와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연방법원은 환자 이송 일시 중단을 명령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코로나19 공포감이 커지면서 ‘정의’와 ‘포용’이라는 미국적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자국우선주의 등에 따른 부작용이란 지적도 나온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폭탄 소리에 까르르 웃는 시리아 3살 소녀

    폭탄 소리에 까르르 웃는 시리아 3살 소녀

    폭탄 소리 맞춰 웃음 터뜨리기로아빠 “우리 머리 위에 떨어질 수도하지만 겁에 질려 죽는 것보다 나아”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시리아의 어린 소녀와 아빠가 나오는 동영상이 주목을 받았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자신과 딸을 비춘 아빠는 “비행기일까, 폭탄일까”를 묻는다. 딸은 “폭탄이야. 떨어지면 웃을 거야”라고 말한다. 폭발음이 들리자 딸은 자지러지듯 큰 소리로 웃는다. 아빠도 같이 웃는다. AP통신에 따르면 영상 속 아빠는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에 사는 압둘라 모하메드이며 세 살 난 딸 이름은 살와다. 이들이 사는 지역은 9년 동안 지속된 시리아 내전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반군 측 거점이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미군이 철수하고 중동 권력으로 떠오른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정부군이 맹렬한 군사작전과 무자비한 폭격으로 이 지역을 공략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이들 부녀는 정부군의 공세를 피해 이 지역에서만 두 번 집을 옮겼다. 살와는 태어날 때부터 폭음을 들었다. 살와가 공포를 알게 될 무렵 모하메드는 이슬람 명절에 폭죽을 갖고 노는 아이들을 보여주며 폭음은 친구들이 놀 때 나는 즐거운 것이고 알려줬다.살와가 폭죽 소리와 전투기나 폭탄 소리를 구분하게 될 때쯤엔 소리가 날 때마다 함께 웃는 모습을 촬영하는 일종의 놀이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모하메드의 행동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갇힌 상황을 어린 아들이 놀이로 알게 하려고 죽는 순간까지 웃는 모습을 보여주던 주인공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를 생각나게 한다. 이제 살와는 전투기나 포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모하메드에게로 가서 놀이를 기다린다. 매번 그 소리가 폭음으로 이어지길 기다렸다가 웃는 모습을 촬영한다. 모하메드는 자신들이 웃고 있는 동안 폭탄이 누군가의 삶을 끝낼 수 있다는 걸 안다. 카메라를 들고 떨어지길 기다리는 폭탄이 그들 머리 위를 향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는 “어쩌면 난민 캠프나 아이에게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이건 물론 우습지 않고 매우 슬프다”면서 “하지만 나는 내 딸이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폭탄이 언젠가 우리에게 떨어진다 해도 겁에 질린 채 죽는 것보단 웃다 죽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유대인 단체들, 알 파치노 주연 아마존 드라마 ‘헌터스’에 반발

    유대인 단체들, 알 파치노 주연 아마존 드라마 ‘헌터스’에 반발

    유대인 단체들이 알 파치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마존의 새 미니시리즈 ‘헌터스’가 홀로코스트를 엉터리로 묘사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유통 체인 아마존이 의욕적으로 제작한 헌터스는 1970년대 미국에서 나치 전력 인물들을 찾아내 체포하는 얘기를 10회에 담는데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첫 편을 방영했다. 파치노는 뉴욕에서 사냥꾼 조직을 만든 부자이며 신비에 싸인 인물 메이어 오퍼만을 연기한다. 그런데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서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를 엉뚱하게 묘사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른바 유대인 착취(Jewsploitation) 편향을 드러낸 것이라고 영국 BBC가 23일 전했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이 있다. 110만명 정도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감자들이 체스 경기에 말로 쓰이다 서로를 죽이도록 강요받는 장면이다. 이 수용소 부지를 역사 유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아우슈비츠 기억 재단은 이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인간 체스라는 가공의 게임을 지어내는 위험천만한 어리석음”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홀로코스트 교육 트러스트의 카렌 폴락 최고경영자(CEO)는 BBC에 그런 엉터리 묘사 때문에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의 기를 살려주고 “경솔한 오락거리”로 전락시켰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있게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한 폴락은 “부분적으로 우리는 살아있는 역사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졌고, 생존자는 얼마 남지 않았을 뿐더러 살날이 멀지 않았다. 우리만으로 해낼 수가 없다.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이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 의지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아마존은 이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또 다른 비난을 사고 있는 반유대 편견이 가득한 책을 버젓이 유통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여러 피드백을 경청하고 있다”고 답했다. 나치 선동가 줄리우스 스트라이처가 쓴 ‘교실에 가득한 유대인의 질문’이 문제의 책이다. 아우슈비츠 기억 재단은 21일 홀로코스트 교육 트러스트가 작성한 편지를 리트윗하며 아마존이 스트라이처의 책을 판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편지에는 “어떤 비판적인 언급이나 주의 공지도 없이 악의적인 반유대 나치 선전물을 출간해 돈을 벌기로 결정했으면 이 책에 나온 언어들이 홀로코스트나 많은 다른 혐오 범죄로 이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적었다. 아마존은 “책 판매자로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검열하며 이를 가벼이 다뤄서는 안된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면서 책 판매고와 그 지침을 일치시키도록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아마존은 아우슈비츠 기억재단의 항의를 받아들여 아우슈비츠를 묘사한 크리스마스 장식 등 몇몇 품목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일이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98세와 101세 자매 47년 만에 재회 “킬링 필드에 죽었겠지 했다”

    98세와 101세 자매 47년 만에 재회 “킬링 필드에 죽었겠지 했다”

    올해 98세와 101세의 캄보디아 자매가 헤어진 지 47년 만에 재회했다. 두 할머니는 서로 1970년대 이 나라를 공포에 떨게 한 크메르 루주의 통치 기간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 센(98) 할머니는 세 살 위 큰 언니 분 체아, 여섯 살 아래 남동생과 1973년에 헤어진 뒤 거의 반세기 만에 지난주 얼굴을 마주했다고 영국 BBC가 21일(현지시간) 전했다. 1973년은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 폴 포트 정권이 수도 프놈펜을 함락하기 2년 전이었다. 1979년 크메르 루주가 전복될 때까지 목숨을 잃은 사람만 200만명에 이른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800만명이었으니 국민 4명 중 한 명은 희생됐다. 많은 가정이 시곗바늘을 중세로 되돌려 놓겠다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붕괴됐다. 도시에 살던 사람들을 시골로 이주시켜 집단노동 수용소에 가뒀다. 자녀를 부모로부터 떼어놓은 일도 허다했다. 1985년 영국 감독 롤랑 조페의 영화 ‘킬링필드’에 적나라한 실상이 그려졌다. 분 센 할머니도 남편을 잃고 수도 프놈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버리는 스퉁 메안체이 야적장 근처에 정착했다. 쓰레기를 뒤적거려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팔아 연명하며 아이들을 길러냈다. 프놈펜에서 동쪽으로 140㎞ 남짓 떨어진 캄퐁 참의 고향 마을을 늘 찾고 싶어했다. 나이도 많은 데다 잘 걷지도 못해 여행은 힘들게만 여겨졌다. 캄보디아 어린이 기금이란 비정부 기구(NGO)가 2004년부터 분 센 할머니를 후원하고 있었는데 고향 방문을 주선하기 시작했다. 어이없게도 언니와 남동생이 고향 마을에 살고 있음을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었다. 분 센 할머니는 “오래 전 고향을 떠나 돌아오지 못했다. 난 늘 자매들과 남자형제들이 죽었다고만 생각했다. 언니를 되찾은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남동생이 내 손을 잡자 울음이 터져나왔다”고 말했다. 이번 주 여동생과 함께 프놈펜을 여행 중인 분 체아 할머니 역시 남편을 크메르 루주의 손에 잃고, 혼자서 12명의 자녀를 키워냈다. 그녀 역시 여동생이 죽었다고만 믿고 있었다. “폴 포트에 숨진 친척만 13명이었으니 당연히 여동생도 죽었겠지 했다. 참 긴 세월이었다. 우리는 그녀 얘기를 많이 했지만 다시 그녀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UN은 1998년 세상을 떠난 폴 포트 외에 살아남은 크메르 루즈 지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전범 재판부를 2009년에야 세울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단 3명만 사법적으로 단죄했다. 악명 높은 투오이 슬렝 교도소를 운영한 카잉 구엑 에아브, 키우 삼판 국가 수반, 폴 포트의 2인자 누온 체아 등이다. 얼마 전 다섯 나라로부터 퇴짜를 맞아 바다를 떠돌던 호화 유람선 웨스테르담 호의 기항을 허용한 뒤 허술한 검역 후 배에서 내리게 해 문제를 야기한 훈 센 현 총리 역시 크메르 루주 정권에 부역했던 전력 때문에 더 이상의 전범 재판을 막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여기는 호주] 中 우한서 대피해 섬에 격리된 호주 시민들 본토 입국

    [여기는 호주] 中 우한서 대피해 섬에 격리된 호주 시민들 본토 입국

    코로나19를 피해 중국 우한에서 대피해 크리스마스 섬 난민 수용소에서 2주간 격리 생활을 했던 278명의 호주 시민들이 호주 본토로 입국하기 시작했다. 1차로 우한을 떠난 243명이 지난 17일(현지시간)부터 여객기를 이용해 전국으로 돌아갔고, 2차로 우한을 떠난 35명도 20일 본토로 들어올 예정이다. 우한 대피 당시 이들이 격리될 시설이 호주 북서쪽 해안에서 2000㎞ 떨어진 크리스마스 섬의 난민 수용소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크리스마스 섬 난민 수용소는 그동안 난민들을 수용하면서 열악한 시설과 인권 논란 등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 이들 대피 시민들의 주류가 백인계 였으면 크리스마스 섬 난민 수용소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 17일 퍼스 공항에 도착한 엘리자베스 테일러(10)는 “수용소에서 새로운 친구도 사겼고, 테니스도 하고 홍게도 보고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섬은 거대한 홍게 군락지로도 유명하다. 엘리자베스의 동생 이사벨(9)은 “섬에서 2주 정도 더 머물렀으면 좋았을텐데 벌써 집에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엄마인 빙 빙 가오는 “사실 난민 수용소로 보내진다고 해서 걱정을 했었는데, 도착한 후부터 관계자들이 정말 친절하게 보살펴주어 너무 좋았다”며 “사실 우리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난민 수용소에서 더 지냈으면 좋겠다란 생각도 했다”며 웃음 지었다. 그녀는 이어 “격리 시설에서 보살펴 준 모든 관계자와 호주 정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드니 공항에 가족과 도착한 멜 플레노는 “우한에서는 건강과 안전에 불안했었다. 난민 수용소의 생활은 너무 좋았다. 모든 분들이 정말 친절하게 보살펴 주었다. 전세기를 보내 호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호주 정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섬에서 격리 생활을 한 이들 시민들에게서는 단 한 명의 유증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현재 호주내에서는 지난 6일 우한에서 온 중국인 관광객이 15번째 코로나19 확진환자로 알려진 이후 더 이상의 감염 환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20일 오후에는 일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선에서 200여 명의 호주 시민들이 대피할 예정이다. 총 24명의 호주 시민이 감염되었고,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15명의 가족은 일본에 남기로 결정했다. 200여 명의 호주 시민들은 역시 크리스마스 섬 난민 수용소에서 2주간 격리 생활을 마친 후 호주 본토로 들어오게 된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수염 길러서, 아이 많아서… 中 ‘테러범 수용소’에 갇힌 위구르족

    수염 길러서, 아이 많아서… 中 ‘테러범 수용소’에 갇힌 위구르족

    수용자 311명·친인척 등 2800명 정보 담겨 부모 터키 여행 등 연좌제로 구금되기도 中 “직업 훈련소… 극단주의자만 구금”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 가족을 두고 2002년 터키로 망명한 로진사 마마토티는 최근 위구르 운동가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문서에서 2016년 연락이 끊긴 여동생의 근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동생 파템은 중국 정부가 ‘직업훈련소’라고 주장하는 시설에 구금돼 있었다. 정부의 가족계획 정책을 따르지 않고 자녀를 네 명 낳았다는 게 이유였다. 문서엔 파템뿐 아니라 마마토티를 비롯한 온 가족의 사진과 상세한 신상이 기록돼 있었다.CNN 등 외신은 17일(현지시간) 위구르족 탄압을 위해 신장 주민을 광범위하게 감시한 기록이 담긴 중국 정부 문서를 입수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137페이지 분량의 문서엔 전부 신장 남서부 모위(위구르어 지명은 카라카슈)현 출신인 수용자 311명과 친인척 등 주변 인물 2800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수용 장소와 입소일, 구금 사유, 종교, 배경과 수용자 주변에 대한 평가도 기록돼 있다. CNN은 워싱턴에 있는 공산주의 희생자 기념재단의 중국 전문가를 통해 자료가 중국 정부의 공식 문서임을 확신했다. 자체 조사로 문서에 이름이 올라간 인물 중 337명의 신원도 확인했다. 중국 정부는 신장 곳곳에 설치한 수용소가 훈련 시설일 뿐이며 테러 위험이 있는 극단주의자만 구금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수용자들의 구금 사유는 대부분 중국 현행법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들이다. 예컨대 수감자 중 114명은 너무 많은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25명은 해외여행을 하지 않으면서 여권을 가지고 있어서, 또 13명은 가족이 이슬람 전통을 엄격하게 따른다는 이유로 갇혀 있다. 이슬람식 기도를 했다, 히잡이나 차도르를 썼다, 수염을 길렀다는 것도 죄목이 됐다. 문서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일종의 연좌제를 적용해 수감자의 가족 등 주변인까지 마구 잡아들였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 이맘으로 활동한 멤티민 에메르는 공산주의 이론을 설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2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아무 죄 없는 그의 세 아들까지 수감됐으며, 이웃의 신상 자료엔 에메르의 전과가 같이 올라가 있다. 마히레 마무트라는 수감자는 2016년 부모와 언니, 오빠가 여행 금지국인 터키를 여행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CNN은 문서 사본을 중국 외교부와 신장 자치 당국에 보내 진위를 확인하려 했지만 아무 응답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독일을 방문 중인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외교관이나 언론이 직접 신장을 방문해 진실을 확인하기 바란다”며 “방문한 사람들이 본 것은 모든 민족이 평화롭고 조화롭게 사는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100만명을 가두고 있다는 소위 강제수용소는 100% 소문이며 완전히 가짜뉴스”라면서 “왜 이들이 사실을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중국에 관해 깊은 편견을 갖고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고 했다. CNN은 앞서 왕 외교부장의 말처럼 신장을 방문하려 했지만 현지 당국이 이를 차단했다고 전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기고] 이제는 대한민국 인권도 생각할 때다/정선미 변호사·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기고] 이제는 대한민국 인권도 생각할 때다/정선미 변호사·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휴전선 하나를 두고 있는 북한 인권 수준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그런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중국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는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을 믿고 목숨을 담보로 일종의 도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과 바람과는 달리, 탈북민들은 오히려 대한민국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에 암담해한다. 특히, 탈북민 여성들은 탈북 과정에서 중국 남성과 결혼을 하든가, 인신매매를 당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은 후 대한민국에 겨우 정착하는 경우도 많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모은 돈으로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을 탈북시키기 위해 브로커에게 거액의 돈을 지급한 탈북민들은 자신의 가족이 중국 공안에게 붙잡혔다는 처절한 소식을 듣게 되기도 한다. 중국에서 강제 북송되어 잔인한 고문 끝에 처형을 당하든가 극히 열악한 교화소 혹은 정치범 수용소에 가게 되는 등의 모진 처벌을 예상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2017년에는 탈북민 가족 5명이 모두 음독자살을 한 바 있다. 작년 11월에는 중국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선원 2명이 급하게 강제 북송되는 믿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 주민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러나 탈북민들의 인권에 대해 현 정부, 특히 외교부나 통일부는 모두 뒷짐을 지며 중국과 북한 눈치만 보고 있다. 마찬가지 현상들이 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가오는 3월 26일은 천안함 폭침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장병 46명이 전사한 가슴 아픈 사건임에도 현 정부는 아직도 북한의 만행을 100%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천안함 생존자 58명 중 22명이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으나 9명만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 이와 같이 천안함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거나 잊혀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특히 최저임금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폐업이 늘고 있지만 이러한 절규들도 다 묻힌다. 일부 근로자는 주52시간으로 끊기 때문에 일을 많이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돈벌이가 너무 줄었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처럼 힘없고 억울하며 어려운 분들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진짜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분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고, 이런 분들이 억울하지 않게끔 진짜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며, 이런 분들이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는 사회가 진짜 공정한 사회라고 하겠다. 정선미 변호사·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 [유정훈의 간 맞추기] 우리는 안전할 수 있을까

    [유정훈의 간 맞추기] 우리는 안전할 수 있을까

    1923년 9월 간토대지진이 일본 수도권을 덮쳤다. 조선인이 방화하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천재지변을 틈타 조선인이 집단으로 일본인 공격에 나섰다는 얘기가 심각해졌다. 조선인을 극도의 위험으로 여긴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했고, 일본 정부와 언론은 유언비어를 방관했다. 수많은 무고한 희생이 뒤따랐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으로 일격을 당한 미국은 대일본 선전포고와 함께 2차대전에 참전한다. 미국 정부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일본계 미국인들을 모하비사막과 같은 오지에 설치된 캠프에 강제 수용한다. 적대국 출신 혈통을 가진 미국 시민의 존재 자체를 국가안보에 대한 위험으로 판단한 것이다. 20세기 미국은 구조적인 인종분리 정책을 시행했다. 학교, 교도소 등의 공공시설은 물론 호텔이나 레스토랑 같은 상업시설 또한 인종분리 대상이었다. 흑인과 백인의 주거 지역 구분은 단순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아니라 치밀한 인종분리 법령과 정책 때문이었음이 밝혀졌다. 소수 인종을 내 삶에 대한 위험으로 느낀 주류 백인의 정서가 근저에 있음은 물론이다.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특정 무슬림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한다. 명분은 테러리스트의 위험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다 틀렸다. 조선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지진 피해 극복에 도움이 될 리 없다. 미국이 진주만에서 기습을 당한 것은 일본계 스파이 때문이 아니었고, 이후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내부의 적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수용소에 가두어 버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민권법 제정과 일련의 연방대법원 판결로 인종분리가 철폐됐다고 하여 백인들의 삶이 더 위험해진 것은 아니다. 무슬림 테러리스트에 의해 본토에서 사망한 미국인보다 총기난사 사건(공교롭게 대부분 범인은 백인 남성)으로 스러진 미국인이 훨씬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20년이다. 유럽에서 한국인 여행자 또는 교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현지인으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한편 한국에서는 중국인 입국 금지 국민청원 서명이 70만에 달하고, 중국인 혹은 중국인 밀집 지역에 대한 노골적인 기피가 드러나고 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숙명여대에 합격하자 서울 지역 6개 여대 21개 단체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한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혐오가 아니라 그저 여성들의 안전한 공간을 지키기를 원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오류를 반복한다’, ‘사람들은 낯선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와 같은 뻔한 말로 넘어가기에는 슬픈 장면이다. 트랜스젠더가 여대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면 여성의 안전이 지켜질까? 바이러스 발생 지역과 뭔가 관련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눈에 보이는 곳에서 몰아내면 과연 우리는 안전할 수 있을까?
  • ‘감시국가’ 中 권위주의 통제전술로 신종 코로나 대응

    ‘감시국가’ 中 권위주의 통제전술로 신종 코로나 대응

    드론이 한 노년 여성 머리 위를 맴돌았다. 드론에 달린 스피커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 든 여성을 향해 커다란 음성이 나왔다. “네, 아주머니한테 말하는 거예요. 마스크 안 쓰고 다니면 안 됩니다.” 여성이 발걸음을 서두르자 드론은 그 위를 졸졸 따라갔다. “집에 돌아가시는 게 좋겠어요. 손 씻는 것 잊지 마시고요.” 여성은 어깨 너머로 흘끗흘끗 드론을 쳐다보며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드론은 야외에서 마작판을 벌이고 있는 남성들에게도 날아가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했다. 어린 아이가 신기한 듯 쳐다보자 “드론을 쳐다보지 말고, 아빠한테 빨리 집에 가자고 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반체제 인사 다루던 통제를 일반 시민들에게통제 방침 어기면 ‘공공 안전 위협’ 최대 사형CCTV로 행적 조사해 의심환자 접촉여부까지공산당 지역조직 집집마다 방문해 감시, 보고언론 통제... 위챗에 뉴스 올리면 계정 폐쇄 10일(현지시간) CNN은 중국이 신장 자치구 위구르족이나 반체제 인사 등 달갑지 않은 대상을 탄압하고 억류·제재하기 위해 수십년 갈고 닦은 정교한 권위주의적 통제 전술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대응에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평가들은 중국 당국의 이런 대응이 국가적인 실패의 책임을 개별 시민이나 일부 부패한 관리에게 돌리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첫번째 전술은 ‘엄벌’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5일 고위관료회의에서 법적으로 감염 예방과 통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입법·사법·준수 노력을 촉구했다. 그는 공안이 여행 경로를 은폐한 혐의 등으로 국민을 단속하는 데 대해 “전염병 통제법이 엄격하게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공안은 최근 칭하이 서북부 지역에 사는 한 남성이 최근 우한에 다녀온 것을 고의적으로 은폐했다며 공공 안전을 위협한 혐의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안은 “더 가증스러운 것은 그가 우한에서 아들을 데리고 돌아왔다는 사실도 감췄다는 것”이라면서 “아들 역시 외출해서 여러 차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덧붙였다. 이런 유사 사례가 최소 다른 지방 4곳에서도 보고된 가운데, 헤이룽장성 북동부 당국은 의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전파해 공공의 안전을 위협할 경우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앙정부 역시 지난 8일 일련의 의료범죄에 대해 사형을 포함한 중형을 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은 광대한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전국 공안과 지방정부를 위해 첨단 안면인식·인공지능(AI) 기반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어디에나 설치된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포착된 얼굴을 관제센터에 구축된 장비가 인식해 범죄 용의자 여부를 파악, 공안이 출동해 붙잡은 예가 이미 보도된 바 있다. CNN은 “이 21세기 감시국가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신장 서부 지역”이라면서 휴먼라이츠워치가 2018년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이 지역을 표준으로 전국에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문제는 이런 감시 체계를 이용해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것이다. 국가보건위원회(NHC)의 리란주안 사무관은 국영 CCTV에 출연해 “빅데이터 시대에는 각 개인의 움직임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 동부 저장성의 한 남성이 우한에서 온 누구와도 접촉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자료’를 확인해 보니 전염병 지역에서 온 3명과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첨단 기술뿐 아니라 마오쩌둥 시대에 사용됐던 전통적인 통제 방식도 사용되고 있다. 지난주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공산당 지역 조직은 옛날 방식을 통해 감염자를 추적, 보고하는 임무를 해왔다. 세부 지역 위원회가 매일 가구를 방문조사해 모든 정보를 중앙당에 보고하는 것이다. 지난 8일 중앙당 지도부는 우한에 이 체계 운영위원회를 급파해 당국에 확진자와 의심환자를 격리시키기 위해 “찾아내야 할 사람을 모두 찾아내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도됐다. CNN은 이 말이 과거 신장 수용소로 보내질 위구르인을 색출할 때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언론 통제 역시 빠질 수 없다. 시 주석은 10일 “중국이 전염병에 맞서 싸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중국인의 단합과 화합의 정신을 보여주기 위한” 여론 지도와 선전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수많은 중국과 외국 기자들은 보도 통제에 직면했으며, 그 뒤엔 기자들이 신종 코로나 관련 뉴스를 공유한다는 이유로 당국이 위챗 계정을 차단하기도 했다.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은 사용자들이 유포한 불법 콘텐츠를 처리하지 못했다며 IT 회사 대표들을 이번 주 소환했다고 밝혔다.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은 인터넷 감시자와 콘텐츠 제공자들에게 “이 전염병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좋은 온라인 분위기를 조성할 것”을 요구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국내연구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트라우마 원인 발견

    국내연구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트라우마 원인 발견

    왕년의 액션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영화 ‘람보’(1982)는 많은 사람들이 액션영화로 기억하고 있지만 내용은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외상후장애스트레스(PTSD)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 람보가 군 전역 후 우연히 옛 전우를 찾았다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과거 포로수용소에서 받은 고통을 떠올리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PTSD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또 다시 극심한 공포감, 분노감 등에 시달리게 된다. 국내 연구진이 이 같은 공포상황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경험하게 되는 원인을 밝혀냈다. 한국뇌연구원 뇌발달질환 연구그룹 연구팀은 심각한 사고나 재해, 폭력 등을 경험한 사람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트라우마를 느끼는 것은 대뇌 후두정피질의 작용 때문이라고 10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뇌신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분자 뇌’(Molecular Brain) 2월호에 실렸다. 엄청난 규모의 사고나 자연재해, 전쟁, 폭력 등을 경험한 사람은 오랜 시간 반복적인 고통을 느끼는 PTSD에 시달린다. 대구 지하철 화재, 세월호 참사, 동남아시아 쓰나미 같은 재난을 겪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사건발생 장소와 비슷한 환경을 접하기만 하더라도 트라우마가 재발해 만성적인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연구팀은 생쥐에게 특정 소리와 함께 전기충격을 가하는 청각공포기억을 심어준 뒤 새로운 환경에 같은 소리를 들려주고 반응을 살펴보는 실험을 실시했다. 일종의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조건화학습 기억실험을 한 것이다. 그 결과 공포기억이 재발하는데는 후두정피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후두정피질은 뇌 뒤쪽 정수리에 있는 두정엽의 일부로 공간적 추론, 의사결정 판단 같은 인지기능을 수행하는 핵심부위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일반 생쥐는 새로운 장소에서도 똑같은 공포반응을 보였지만 약물이나 광유전학적 방법으로 빛을 이용해 후두정피질의 활성을 억제할 경우 새로운 환경에서 공포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 관찰됐다. 그렇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원래 공포기억이 심어진 장소에 갔을 때 트라우마가 재발하는 것은 억제하지는 못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PTSD나 공포증 환자의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공포기억의 재발이었는데 이번 연구로 여기에 후두정피질이 관여하고 있음을 밝혀냄으로써 공포기억 재발을 막는 치료전략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데 의미가 크다”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시리아 난민아동 보듬는 세서미스트리트

    시리아 난민아동 보듬는 세서미스트리트

    50년 이상 세계 아동의 사랑을 받아 온 인형극 형태 미국 TV 교육프로그램 ‘세서미스트리트’가 중동 난민 어린이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새로운 콘텐츠를 방영한다. 8일(현지시간) 세서미 워크숍에 따르면 새 캐릭터 바스마, 자드, 마주자를 출연시킨 새 프로그램을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지역 어린이 채널과 유튜브를 통해 최근 방송했다. 새 콘텐츠는 시리아 내전으로 장기 이재민이 된 어린이들에게 놀이와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고안된 인도주의 프로그램의 하나다. 제작자인 스콧 캐머런 세서미워크샵 수석 프로듀서는 “우리는 3~8세 아이들이 감정을 다스리는 걸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면서 “바스마가 어둠을 무서워하는 장면에서 많은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어둠을 통해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새 콘텐츠는 당연히 교육, 심리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했다. 세서미워크숍과 제휴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국제구조위원회(IRC)의 책임자 마리애느 스톤은 “이 인형극이 발달의 중요 단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고 돌봄을 받지 못해 장기적이고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양육의 부재로 인해 신경학·생물학적 발육 과정이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다”면서 “뇌발육의 결정적 단계에서 유독성 스트레스를 겪는 아이들은 일생 따라다닐 수 있는 심각한 장애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새 인형극은 감정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봉사자 수천명은 4개국 진료소, 지역사회 센터, 가정 등 아이들이 모이는 곳을 방문해 이 프로그램에서 나온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할 예정이다. 극 중 가장 친한 5살 친구들인 바스마, 자드는 또다른 염소 친구 마주자와 함께 괴로운 감정을 경험하고 토론한다. 바스마와 자드는 그럴 때마다 다섯까지 세기, 배꼽으로 숨쉬기, 그림으로 표현하기 등 방법으로 감정을 다스린다. 각 회의 후반부는 실제 어린이들과 유명인들이 이들 캐릭터와 함께 게임을 하거나 노래를 부른다. 가디언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어린이 난민은 500만명 이상이 발생했다고 썼다. 인근 국가 수용소 이곳저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조기 지원과 교육은 지역별로 엄청난 격차가 있다. 다수는 극심한 폭력 상황을 경험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늘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문제에 대처하는 걸 도왔다. 2017년엔 자폐증이 있는 줄리아라는 캐릭터를 도입했고, 지난해엔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에 중독된 부모를 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칼리라는 작은 녹색 캐릭터를 만들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욕망·탐욕이라는 바이러스…우린 이미 지독히 감염됐다

    [장동석 평론가의 뉴스 품은 책] 욕망·탐욕이라는 바이러스…우린 이미 지독히 감염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발생지인 중국 우한은 이미 도시 시스템이 마비됐다. 유럽과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확진자가 나온다. 국내에서도 네 번째 확진자가 나오면서 정부는 대응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홍콩의 한 매체는 4월 말이나 5월 초 바이러스가 대규모로 창궐해 수십만명이 감염될 수도 있다는 전염병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전 세계인의 공포심은 더 커진다.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도시 전체에 ‘실명’이 전염되며 벌어지는 인간성 몰락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 실명한 남자, 그를 진찰하다 더불어 눈이 멀어 버린 안과 의사 등 실명은 빠르게 전염되고, 급기야 정부 당국은 과거 정신병원으로 쓰던 건물에 눈먼 사람들을 강제 수용한다. 수용소는 곧바로 아비규환이 된다. 모두가 눈이 멀었지만 그곳에서도 권력은 작동하고 한사코 나쁜 방향으로만 치닫는다. 처음에는 먹을 것을 독차지하더니 곧이어 폭력과 강간 등 수위가 높아진다. 도시 모든 사람이 실명했지만 오직 한 사람, 안과 의사의 부인만은 멀쩡했다. 남편이 첫 실명 환자를 진료하고 눈이 먼 뒤 여자는 수용소로 가야 하는 남편을 지키기 위해 눈이 먼 듯 사람들을 속였다. 여자는 그곳에서 인간의 온갖 추잡함을 목도하고, 아주 가끔 서로 돕고 지켜 주려 하는 온정적인 사람들에 안도한다. 급기야 수용소에 큰불이 나고, 여자는 온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도시는 지옥으로 변한 지 오래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각종 오물이 밟히고, 곳곳에 썩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굶주린 개들은 썩은 시체 사이를 오가며 배를 채운다. 눈이 먼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그 참상을 오로지 여자만 본다. 온전히 자신만 의지하는 사람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 그들을 인도해 탈출하지만 여자는 실명하지 못하는 자신을 저주하기에 이른다. 소설은 인간성을 상실한 비정한 현대인들의 모습, 아울러 제어할 수 없는 욕망에 빠진 인간의 적나라한 자화상을 여지없이 보여 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어쩌면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의 탐욕이 만든 결과물일지 모른다. 중국인의 탐욕스러운 식욕 때문이라고만 욕할 수도 없다.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잡아먹는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 아니겠는가.
  • [여기는 호주] “신종코로나 무서워”…오토바이 헬멧 쓴 여객기 승객

    [여기는 호주] “신종코로나 무서워”…오토바이 헬멧 쓴 여객기 승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자가 중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비행기 안에서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여행한 승객이 포착됐다. 호주 채널7 뉴스 보도에 의하면 이 승객은 지난 28일(이하 현지시간) 상하이를 출발해서 29일 오전 9시 30분에 서호주 퍼스 공항에 도착한 중국 동방항공 승객이었다. 창가 좌석에 앉아 있던 이 승객은 상하이부터 퍼스에 이르는 9시간 비행 내내 헬멧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이 비행기 승객인 존 푸는 “비행기 안에 오토바이 헬멧을 쓴 승객을 보았다”며 “이 승객은 마스크를 쓴 아들과 같이 여행을 하는 듯했는데, 마스크를 답답해 하는 아들이 벗으려 하자 벗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다른 승객인 마리나 잠브리나는 “나는 상하이에서 비행기를 환승했는데 공항 내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한명도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비행기는 퍼스에 도착한 후 스프레이를 이용해 간단한 소독을 한 후에야 승객들을 내리게 했다. 중국에서는 마스크 가격의 상승과 안전을 위해 생수통을 쓰거나 비닐로 온 몸을 감싼 시민들의 사진이 SNS에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호주에서는 지난 25일 50대 중국인 남성을 시작으로 30일 현재 총 7명의 신종코로나 확진 환자가 나왔고, 16명의 유증상자가 격리 검사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우환을 다녀온 중국인들만이 확진 환자지만 내국인 2차 감염에 대한 공포가 호주 사회를 휩쓸고 있다. 호주 정부는 신종코로나의 발생지로 알려진 우한에 있는 600여명의 호주 국민을 전세기로 송환한 후 그동안 난민 수용소로 악명이 높았던 크리스마스 아일랜드에 14일 동안 격리 수용할 예정이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홀로코스트 생존자 “역사 외면 말라” 각국 지도자 “反유대주의와 싸울 것”

    홀로코스트 생존자 “역사 외면 말라” 각국 지도자 “反유대주의와 싸울 것”

    유럽 12곳 유대인 89% “반유대주의 증가” 유대인 증오 범죄 급증… 우려 목소리 커져폴란드 아우슈비츠 나치 강제수용소 해방 75주년을 맞은 27일(현지시간) 전 세계가 최근 늘어나고 있는 반(反)유대주의에 대해 한목소리로 우려를 나타냈다.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역사에 대해 반성해 왔던 독일은 오는 7월 유럽연합(EU) 순회 의장국을 맡으면 ‘반유대주의와의 전쟁’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도 했다. AP통신 등은 이날 아우슈비츠 수용소 ‘죽음의 문’ 앞에 홀로코스트 생존자 200여명과 세계 50여개국 대표단이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고 보도했다.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은 유엔이 1945년 1월 27일 옛 소련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해방한 것을 기념해 지정했으며, 올해로 75년째를 맞았다. 이날 추모식은 최근 서방국가에서 유대인 관련 증오범죄의 증가세가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열려 더욱 주목받았다. BBC는 EU 산하기관인 유럽기본권청(FRA)이 최근 유럽 12개국의 유대인 1만 63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9%가 “지난 5년간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에서 반유대주의가 증가했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또 응답자의 40%는 “실제 공격을 당할지 두렵다”고도 답했다. 반유대주의 증가 추이는 개별 국가에서도 확인된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2017·2018년 672건이었던 유대인 대상 증오범죄는 2018·2019년 1326건으로 급증했다. 이는 무슬림 대상 범죄 다음으로 높은 수치였다. 프랑스에서는 2018년 발생한 반유대주의 사건이 541건으로, 전년(311건)보다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말 유대교 축일인 하누카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잔혹범죄가 일어나기도 했던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 범죄가 가장 많은 국가로 꼽힌다. 미국에서 유대인을 향한 증오범죄는 2017년에 1986건, 2018년에 1879건이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고, 2017년에는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모든 주에서 반유대범죄가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곳곳에서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절규가 터져 나왔다. 93세의 홀로코스트 생존자 마리안 투르스키는 “누군가 역사를 두고 거짓말하는 것을 외면해선 안 된다”면서 “무관심해지는 순간, 우리 후손들에게 또 다른 아우슈비츠가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날드 라우더 세계유대인회의 회장은 “반유대주의가 늘어나는 것을 내 생전에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어떤 누구에게도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각국 지도자들도 반유대주의의 부활에 맞서겠다고 강조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주간지 슈피겔 기고에서 “반유대주의가 독일의 유대인들에게 삶의 일부가 되는 모습이 우려스럽다”면서 “독일이 EU 순회 의장국을 맡게 되면 온라인상의 증오범죄나 잘못된 정보 등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아우슈비츠에서 태어난 저, 해방 75주년 맞아 다시 찾은 이유”

    “아우슈비츠에서 태어난 저, 해방 75주년 맞아 다시 찾은 이유”

    제가 어머니 뱃속에서 3개월이 됐을 때 어머니는 조국 헝가리에서 나치 독일에 의해 강제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보내졌지요. 어머니가 워낙 심각한 영양 실조라 간수들도 어머니가 임신했는지 눈치채지 못했답니다. 임신 3개월 때도, 9개월 때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대요.제가 태어났을 때 몸무게는 453g 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전 앙겔라 오로츠 라이트라고 하고요, 제 생일은 1944년 12월 21일(이하 현지시간))입니다. 이제 75세가 됐어요. 아우슈비츠가 옛 소비에트 군대에 의해 해방된 것이 이듬해 1월 27일이었으니 한달 조금 넘게 수용소에서 살았어요. 지금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살고 있어요. 27일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5주년 기념 행사에 초대돼 다시 이곳을 찾은 200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이랍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유럽에서 600만명 정도의 유대인이 홀로코스트 대학살에 희생됐는데 그 중 110만명이 이곳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었어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아메리카와 유럽 모두 반유대 혐오 발언이나 폭력이 급증하고 있어요. 전 그게 모두 한때의 일이었다고 안심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어요. 해서 제가 여기 와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제 믿기지 않는 얘기가 교훈이든 경고든 통할 것이라고 믿으면서요. 어머니는 1944년 5월 25일 수용소에 처음 끌려왔는데 저 악명 높은 조지프 멩겔레 박사가 있는 막사에서 생활했대요. 그는 죽음의 천사로 불렸고, 쌍둥이들을 데리고 실험한 것으로 악명 높지요. 어머니는 임신한 사실을 끝끝내 숨겨 극심한 영양실조에도 온갖 노역을 다 해냈대요. 절 감추기 위해 모든 종이를 끄러 모아 가렸대요. AFP 통신과 인터뷰하면서도 제가 철조망 담장과 붉은 벽돌 막사 옆을 빠르게 걷는 것도 다 두려움 때문이지요. 어머니의 가장 큰 두려움은 밖에 나가거나 점호에 임했을 때 쥐들이 절 먹어버릴까 걱정하셨대요. 기적처럼 제 젖을 물리셨어요. 물 밖에 마시지 않으니 젖이 나올 리가 없는데 말이죠.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는 프랑스에서는 전년에 비해 2018년에 경찰에 신고된 반유대 공격 행위가 74%나 급증했답니다. 저도 손자들을 키우는데 손자들이 정말로 걱정돼요. 증손주들도 있는데 내가 여기 나와 우리 어머니 얘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해요. 어쩌면 그네들이 뭔가 배웠으면 좋겠네요. 교육은 우리가 반유대주의와 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얘기를 듣는 아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집에 돌아가 ‘이봐, 홀로코스트란 게 있었대. 난 생존자랑도 얘기해봤어. 그녀가 거기 있었다대. 그녀가 거기를 빠져나왔다더군’이라고, 한 꼬마라도 집에 가 그렇게 얘기하면 우리는 승리한 거라고요.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나치도 유대인들도 똑같은 사람이었지

    나치도 유대인들도 똑같은 사람이었지

    ‘조조래빗’ 독일인 소년·유대인 소녀 ‘세상 끝 동물원’ 생체실험당한 쌍둥이 어린아이 눈으로 바라본 나치·전쟁 참상 그 속에서도 빛났던 인간의 존엄성 전해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지 75년, 그간 나치의 참상을 조명한 작품들은 수없이 탄생했다. 최근 유대계 감독·작가들 손에서 나온 이 작품들은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과 어피니티 코나 작가의 소설 ‘세상 끝 동물원’이다. ●‘기생충’ 제치고 토론토서 관객상 ‘조조래빗’ 새달 5일 개봉하는 영화 ‘조조 래빗’은 아돌프 히틀러를 우상으로 품고 사는 열살 소년 조조의 얘기다. 전쟁 열기에 한껏 고무된 독일인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병정놀이하듯 유쾌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집에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매켄지 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휩싸인다. 와이티티 감독이 직접 연기한 히틀러는 과장된 액션으로 아이를 어르고 달랜다. ‘수백만 목숨을 앗아간 전범을 희화화해도 되는가’라는 의문에도, 아이의 상상 속 인물이기에 심리적 방어기제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뿔과 꼬리가 있는 유대인’ 같은 허무맹랑한 우생학을 주장했던 히틀러를 상기하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아이러니로 똘똘 뭉친 게 전쟁일 터. 영화는 ‘희로애락을 가득 담은 롤러코스터’(빅토리아 애드보케이트)라는 외신 평처럼, 러닝타임 108분 동안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을 끄집어내 고양시킨다. 지난해 9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 등을 제치고 관객상을 수상했고, 새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이유가 충분히 설명된다.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미국 작가 어피니티 코나의 소설인 ‘세상 끝 동물원’(문학동네)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강요당한 쌍둥이 소녀의 눈을 통해 홀로코스트를 증언한다. 서로의 생각을 모두 공유하는 열두 살 쌍둥이 펄과 스타샤는 우생학 연구에 골몰하던 나치 의사 요제프 멩겔레의 눈에 들어 ‘동물원’이라는 막사로 간다. 실제로 멩겔레는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 유전적으로 특이한 아이들 특히 일란성쌍둥이 1500쌍을 대상으로 한 잔악무도한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다. 스타샤는 스스로를 멩겔레의 실험 대상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그 대가로 할아버지와 엄마가 수용소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지만 갑자기 사라진 펄 앞에서 절망한다. ●손자뻘 유대계 감독·작가들의 작품 이들 작품을 만든 와이티티 감독과 코나 작가는 둘 다 197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유대계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뉴질랜드 출신으로 유대인 어머니를 둔 와이티티 감독은 어려서 인상 깊게 읽었던 크리스틴 뢰넨스의 소설 ‘갇힌 하늘’을 각색해 ‘조조 래빗’을 만들어 냈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코나 작가는 생체실험 생존자 쌍둥이의 증언록 ‘불길의 아이들’을 읽고 10여년 조사와 집필 끝에 2016년 ‘세상 끝 동물원’을 발표했다. 끝끝내 살아남은 선대 이야기에서 이들이 상기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조조 래빗’의 조조와 친구 요키는 어른들이 지은 괴담에 맞서 유대인들도 다 똑같은 인간임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세상 끝 동물원’ 속 두 자매 옆에는 허기를 달래는 법을 알려 주는 씩씩한 알비노 소녀, 아이들이 좀더 오래 살아남도록 신상정보를 조작하는 일명 ‘쌍둥이 아빠’가 있다. 여기에 두 작품 모두 ‘춤’으로 인간의 자유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조조의 집에 갇혀 지내던 엘사가 해방의 그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도 춤이며, 우리에 갇혔던 펄이 끝까지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도 양심적인 의사 미리가 준 탭 슈즈였다. 아이들에게서 부모, 형제와 함께 춤을 앗아간 전쟁에 대한 반성이 이들 작품에 오롯이 녹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네덜란드 총리 사과 “유대인 박해 막지 못했고 잘못 인정도 늦었다”

    “우리 정부 기관은 정의와 안전의 수호자로 행동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이들이 (점령군이) 하라는 대로 했다.”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가 아우슈비츠 나치 강제수용소 해방 75주년을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고개를 숙였다. 네덜란드 정부 차원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박해에 대해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뤼테 총리는 이날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리는 연설을 하면서 “지금 마지막 희생자들이 아직 우리 곁에 있다”면서 “나는 오늘 정부의 이름으로 당시 당국이 했던 일들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에 거주했던 유대인 14만명 가운데 10만 2000명이 홀로코스트에 희생됐고 3만 8000여명이 살아 남았지만, 정부나 당국의 역할에 대한 네덜란드 정부 차원의 사과는 없었다. 네덜란드에서는 2012년에도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뤼테 총리는 정부의 행위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는 데 대한 지지도 폭넓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미뤘다. 그러나 이날 뤼테 총리는 “(유대인) 등록부 작성과 추방의 쓰라린 결과는 충분히 인정되지도, 제때 인정되지도 않았다”면서 “전체적으로 너무 부족하고 너무 늦었다. 보호와 도움, 인정이 부족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이어 “아우슈비츠 이후 75년, 반유대주의는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있다”면서 “이것이 우리가 일어난 일을 완전히 인정하고 그것을 큰 소리로 말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1940년 폴란드 남부에 지어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는 유대인 약 110만 명이 학살됐다. 유대인 전체 희생자 수는 600만명이다. 1945년 1월 27일 옛 소련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한 것을 기념해 유엔은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27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해방 7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서슬 퍼런 나치 치하 베를린에서 조용히 항거한 세 여성

    서슬 퍼런 나치 치하 베를린에서 조용히 항거한 세 여성

    보통 나치 독일이 점령한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이 있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나치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독일 베를린에서도 조용한 레지스탕스 활동이 있었다고 영국 BBC가 25일(현지시간) 전했다. 다른 이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엄청난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요란하지 않게 꾸준히 도운 여성 셋을 소개했다. 먼저 러스 윙켈만. 아버지가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는 등 가족 가운데 16명이 수용소로 보내져 희생됐다. 하지만 열네 살의 그녀는 유대인 혈통을 감추고 정원 움막에 2년이나 몸을 숨겨 살아남았다. 그녀는 “우리가 살았던 시대의 공포를 지금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며 “처음에는 우리 모두 나치의 위험성을 충분히 주목하지 못했지만 차츰 분명해지더니 1938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다”고 돌아봤다. 윙켈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엘리자베트 샬롯테 글로에덴 같은 베를린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고발하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흔히 리젤롯테나 릴로로 알려져 있는 글로에덴은 남편 에리히와 함께 베를린 자택에 유대인들을 숨겨준 다음 독일을 빠져나갈 수 있는 안전한 여행권을 구해줬다. 부부는 1944년까지 무려 5000명 가까운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했는데 그 해 7월 16일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던 프리츠 린데만 장군이 게슈타포에 검거되면서 정체가 발각됐다. 부부와 그녀의 어머니는 플로첸제 수용소로 보내졌는데 변호사 견습생이었던 릴로는 직접 가족을 대변했다. 하지만 판사는 선고의 90%가 사형일 정도로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해서 가족 모두 길로틴 처형을 당했다. 끝으로 펠리시타스 나를로크인데 어느날 현관 문을 두들겨 도움을 요청한 유대인 여성 차바 베르그만에게 숨을곳을 마련해줬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이었지만 10대였던 그녀가 선뜻 문을 열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할머니는 마침 딸이 여행 중이던 이웃 여성의 딸인척 살게 해주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녀는 “누구라도 나랑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머리를 숙였다. 차바의 손자 알렉스 하벨은 “그녀의 개입과 지원이 없었더라면 난 전쟁과 해방 이후 우리와 함께 20년을 더 사시다 가신 할머니를 못 ?을 것이다. 유대인 속담 ‘한 사람을 구하면 세상 전체를 구한 것과 마찬가지’를 가슴에 새기고 산다. 펠리스타스와 그 가족이 그 일을 해낸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끔찍한 그날’, 컬러로 되살아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끔찍한 그날’, 컬러로 되살아나다

    400만 명 이상이 학살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모습을 컬러사진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컬러로 재현된 사진 안에는 끔찍한 역사를 경험한 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영국 채널4 방송국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일환으로, 강제 수용소 해방 75주년을 기념해 공개됐다. 37장의 사진은 최초로 컬러로 재구성돼 홀로코스트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사진의 소유주는 1944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살아남은 릴리 제이콥이다. 헝가리의 작은 마을에 거주하던 18살 소녀는 1944년 5월 가족 모두가 강제로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야 했다. 그녀의 부모와 동생 5명은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끌려갔고, 이 여성 홀로 나치의 실험실 캠프로 이동됐다. 그녀는 이곳에서 로켓 미사일을 만드는데 필요한 허드렛일을 돕도록 강요받았다. 그러던 중 전염병인 발진 티푸스 진단을 받고 작은 막사에 격리됐는데, 이곳에서 극심한 추위를 견디려 옷가지와 덮을 것을 찾던 중 앨범 한 권을 발견했다. 그리고 앨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사진 한 장을 찾았다. 바로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헤어졌던 동생들(각각 8세, 10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독일 사진작가가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해당 사진에는 릴리의 헤어진 가족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와 억울한 죽음을 맞아야 했던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일가족으로 보이는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줄을 서서 죽음과 생존을 결정하는 나치의 명령을 절망스럽게 기다리는 모습도 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릴리는 이후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자신이 경험한 공포를 잊기 위해 새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특별한 앨범’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아우슈비츠 생존자들 사이에 퍼졌고, 전 세계 흩어져 있던 생존자들이 하나 둘 릴리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애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생존자 또는 희생자의 가족이었다. 이들은 눈물로 붉어진 눈으로 혹시나 앨범에 가족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는지 찾고 또 찾았다. 간혹, 매우 드물게, 누군가는 릴리처럼 앨범에서 가족의 사진을 찾을 수 있었고, 릴리는 그런 생존자에게 사진을 건넸다. 릴리는 1999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간직하던 앨범은 ‘불멸’의 상태로 여전히 세상에 살아있다. 그중 일부가 컬러로 재현되면서, 나치의 사악하고 끔찍한 역사는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날것의 언어로 자유 외쳤던 시인 김수영… 그의 연인이자 아내인 것이 고마울 따름”

    “날것의 언어로 자유 외쳤던 시인 김수영… 그의 연인이자 아내인 것이 고마울 따름”

    한국 문단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뚫고 꿋꿋하고 공고하게 융성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때론 누구는 체제를 찬양하고 또 누구는 침묵했지만, 많은 문인들은 자신의 정신과 삶을 글로 말로 풀어내면서 시대를 이야기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이자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한국 문단의 큰길을 만든 인물을 조명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들의 삶과 철학을 함께 들여다보며 문단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그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시인 김수영(1921~1968)은 한국 현대문학사의 뜨거운 상징으로서, 아직도 탕진되지 않는 신화를 거느리고 있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해방 후 그의 시는 다음 세대들에게 가장 광범위한 감염력을 가진 선행 모델이 돼 주었다. 누구보다도 치열한 정직성과 현실참여 의지로 시를 썼던 그는 그릇된 것들에 대한 철저한 부정 정신으로, 흔치 않은 비판적 지성으로, 자유와 혁명을 향한 역동적 언어로 기억되고 있는 위대한 시인이다. 그런 그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나의 가족’)라는 구절에서 보듯, 그것은 순하고 아득한 사랑의 물결에 감싸인 낡은 둥지 같은 것이었다. 지난해 말에 찾아뵀던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에게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가를 실감 있게 들려주었다. 이미 ‘김수영의 연인’(2013)에서 기억 속의 남편을 선명하게 재현한 바 있는 그녀는, 생전 남편이 남겼던 창작 일화나 소소한 삶의 맥락까지 아득하게 전해 주었다. 김현경은 진명여고 2학년이던 1942년 5월 김수영을 만났다. 여섯 살 위 김수영을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줄곧 따랐고, 1950년 초 서울 돈암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곧이어 터진 전쟁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휴전 후 김수영과 다시 결합하여 정착한 곳이 성북동이었다. 그로부터 시인이 타계하기까지 김현경은 시인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독자로 함께 살았다. 지금도 남편과 자신이 수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열정을 지켜 주었노라고 말하는 그녀는, 남편이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이 오늘의 자신을 붙잡아 주고 지켜 주고 있다고 고백한다. 시인의 시간을 그대로 품은 책과 유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면서 아직도 자신이 ‘시인의 연인, 시인의 아내’인 것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한다. 김현경 여사는 1927년생이다. 수업 시간에 김수영 초기작 ‘토끼’를 말할 때 그의 아내가 토끼띠라고 이야기한다고 하니, “토끼띠 맞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닭띠고요. 우리가 양계를 했잖아요. 양계장 안에 토끼도 길렀어요”라고 웃으면서 말을 건네신다. 김수영이 1921년생 닭띠이니 내년은 김수영 탄생 100주년이 된다. 전후를 풍미했던 조병화나 김종삼도 동갑내기들이다. “조병화 선생 부인은 진명여고 3년 선배예요. 부덕이 훌륭한 사람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김현경 여사는 현대사의 쟁쟁한 인물들과 관계가 깊다. 작곡가 김순남이 친척 오빠였고, 젊은 시절 임화, 오장환, 박인환 등과도 교유가 깊었다. 이화여대 영문과 다닐 때 정지용 선생께 배우시지 않았느냐고 여쭙자 “그때 시경을 가르치셨어요. 판서를 내가 했어요. 시경에 실린 한시를 한자로 쓰는데 참 열심히 칠판에 가득 썼어요”라고 들려주신다. 정지용 선생 댁에는 안 가보셨냐고 하자 어제인 듯 선명한 기억을 풀어놓는다. “돈암동 얌전한 기와집에 사셨어요. 근데 이화 그만두시고 녹번리로 가셨어요. 녹번리 댁은 한 번 갔거든요. 겨울철인데 한 번 술이 취하셔 가지고 나 혼자 못 간다고 그러시면서 함께 녹번리까지 갔어요. 참으로 학식이 대단하셨고 라틴어나 영어도 대단하셨지요. 한문은 물론이고요.” 김현경 여사의 첫사랑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다. 그의 첫사랑인 시인 배인철은 그때 매우 이례적으로 ‘흑인시’(黑人詩)를 쓰던 사람이었다. “형님이 인천에서 손꼽는 유수한 실업가이면서 무역상이었어요. 서울과 인천을 걸어 오가기도 했는데 우리는 참 호흡이 잘 맞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리도 안 아팠어요. 얘기를 거침없이 한 거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남산에서 그분이 머리에 총을 맞았어요. 첫사랑이었고 처음 연애다운 연애를 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배인철은 김현경 여사와 데이트 중 누군가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김현경 여사는 이화여대의 연애금지 학칙을 어겨 제적을 당한다. 그리고 김수영과 다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김수영의 1950년대는 실존적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명동 문청들 사이의 히로인이었던 김현경과 결혼하여 짧은 시간 행복한 생활을 했지만, 6·25전쟁이 터지면서 결혼 4개월 만에 의용군에 강제 동원됐고, 거기서 야간탈출했다가 체포돼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거제에서 아산 수용소로 이동한 그는 1952년 12월과 1953년 2월 사이로 추정되는 어느 시점에 아산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온다. 그리고 바로 부산으로 간다. 그때 ‘자유세계’ 편집장이었던 소설가 박연희의 청탁으로 1953년 5월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를 쓴다. 시인 박태진의 주선으로 미8군 수송관 통역으로 취직하였지만 곧 그만두고 모교 선린상고 영어교사로 잠시 근무했다. 그해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어느 날 그는 서울로 올라와 ‘주간 태평양’ 편집부에 근무하게 됐고, 그 후로 타계할 때까지 서울에서 쭉 살았다. 1952년 말부터 1954년까지의 김수영은 포로수용소에서 나와 통역으로 교사로 잡지사로 동선을 옮겨 갔고, 공간적으로는 포로수용소(거제·아산), 부산과 대구, 서울로 옮겨 갔다. “그때 시 한 편이 얼만가 하면 30원이에요. 근데 그분 시는 팔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지면이 거의 없었지요. 한 달에 시 한 편 정도 쓰고 나머지 시간은 번역에 매달렸어요. 공터에다 닭을 길렀는데 잘되었어요. 1961년인가 쌀 파동이 일어나 쌀이고 뭐고 십 배로 뛰었어요. 덩달아 옥수수도 모이도 다 수입이어서 사료 값이 너무 오르고 알 값은 떨어지는 거예요. 거의 십 년 가까울 때 내가 딱 생각하고 그만뒀어요.” 김현경은 참으로 강인한 생활력을 가진 분이었다. 이렇게 김수영은 생애 내내 김현경이라는 삶의 동반자이자 매니저이자 동지와 함께했다. 생활의 구체는 물론 시의 초고를 가지런히 정서하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김수영은 자기 책이건 남의 책이건 읽으면서 낙서나 언더라인을 치고 책장을 접어 헌책으로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정력적인 독서력을 가진 이였다. 손때와 흔적이야말로 그의 책 읽기의 결실이었다. 김현경은 이러한 흔적을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남편 사후에 의상실 경영에 미술 컬렉터 및 디렉터로 줄곧 활동하면서 살았다. 나날의 난경과 고독도 시인의 연인이요 아내라는 자의식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두루 알다시피, 김수영은 사랑의 시인이다. 그는 ‘사랑’이라는 작품에서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이라고 노래했다. 사랑의 낭만적 분위기와는 반대편에서 사랑의 모순과 복합성을 날카로운 이미지로 포착한 작품이다. 그에게 사랑이란 불멸의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번개처럼 금이 간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출렁이게 하는 매혹이 아니던가. 김수영은 이러한 번개 같은 순간의 사랑을 여러 흔적으로 남겼다. 그는 자신의 시나 산문에서 여성들에 대한 여러 경험과 기억을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는 김수영의 유일한 여인은 아내 김현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김수영은 언젠가 “시를 쓰는 나의 친구들 중에는 나의 시에 ‘여편네’만이 많이 나오고 진짜 여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 친구”(‘미인’)도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바로 “나는 닭띠이고 나의 아내가 바로 토끼띠”(‘토끼’)인 김수영과 김현경 사이의 사랑과 이별, 재회와 사랑으로 이어지는 굴곡의 여정이 김수영만의 사랑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그의 시편에 ‘여편네’가 많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김수영 작품에서 출몰하는 여러 여성들은 김현경에 비하면 김수영에게 잠깐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김현경은 시인이 글을 쓸 때 소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자, 소음이 없는 서강 언덕을 거주지로 택하기도 했다. 시인의 삶과 정서와 기분까지 헤아렸던 그녀는 그 점에서 김수영의 가장 순하고 아득한 둥지였을 것이다. 그 ‘유일한 여인’ 김현경이 “50년이 못 돼서 가셨으니까 얼마나 안 됐어요?” 하면서 김수영으로 하여 자신이 행복했음은 물론 우리 문학사도 풍요로워졌다는 것을 지금도 기뻐하노라고 한다. 번개처럼 불안하기는 했지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었던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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