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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피플+] “탈출 원해” 혈혈단신 우크라 소녀…엄마는 ‘여과 수용소’ 끌려가

    [월드피플+] “탈출 원해” 혈혈단신 우크라 소녀…엄마는 ‘여과 수용소’ 끌려가

    지하 벙커에서 탈출하고 싶다던 우크라이나 소녀가 우여곡절 끝에 피란길에 올랐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항전 중인 아조우 연대는 엄마 없이 홀로 지하 벙커에 숨어 있던 소녀가 안전지대인 자포리자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마리우폴 지하 벙커에서 탈출한 민간인 170여 명이 8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주둔한 자포리자에 도착했다. 자포리자는 마리우폴과 헤르손, 미콜라이우 등 러시아군 공격이 집중된 남부 지역을 겨우 탈출한 피란민이 집결하는 도시다. 데니스 프로코펜코 아조우 연대 사령관은 제철소 내에 있던 민간인이 전원 자포리자로 피란했다고 확인했다. 혈혈단신으로 벙커에 숨어 있던 알리사(4) 역시 주민 틈에 섞여 안전하게 밖으로 나왔다. 알리사는 지난달 18일 동영상 하나로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당시 아조우 연대는 “마리우폴과 마리우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전 세계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알리사 영상을 공유했다. 영상에서 알리사는 “벙커에서 탈출하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할머니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면서도 특유의 장난기를 숨기지 못했다. 해당 영상은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덩달아 아조우스탈 제철소 상황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하지만 얼마 후 알리사에 관한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조우 연대는 마리우폴에서 군의관으로 활약하며 다친 군인과 민간인을 치료하던 알리사의 엄마 빅토리아 오비니다가 러시아군에 적발돼 이주민 임시 캠프인 ‘여과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전했다.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지역에 설치된 여과 수용소는 러시아가 마리우폴 주민을 자국으로 강제 이주시키기 전 사상 검증을 하는 수용 시설이다. 지난 3월 여과 수용소로 끌려갔던 한 우크라이나 여성은 워싱턴포스트(WP)에 “러시아 군인이 한 명씩 불러내 사방에서 사진을 찍고 지문을 채취했으며, 휴대전화와 비밀번호를 대라고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군인은 물론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 요원까지 민간인 신문과 심층 조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알리사의 엄마도 여과 수용소로 끌려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아조우 연대는 9일 “알리사의 엄마는 행방불명”이라면서 “전 세계 공동체가 합심해서 알리사를 어머니 품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읍소했다.일단 마리우폴을 탈출해 자포리자로 간 알리사는 앞으로 친척과 지낼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감독관 류드밀라 데니소바는 “알리사의 엄마는 여과 수용소로 끌려갔지만, 알리사는 이제 안전하다”고 전했다. 데니소바 감독관은 “자포리자 군사 관리국 직원이 소녀를 임시 보호하고 있다. 수소문 끝에 찾은 친척에게 곧 소녀를 인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러시아군은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제네바협약에 의해 보장된 우크라이나 어린이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데니소바 감독관은 유엔인권이사회(UNHRC) 조사위원회를 향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간 발생한 우크라이나 아동 권리 침해를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한편 우크라이나 준군사조직인 아조우 연대는 러시아군이 포위한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항전을 이어가고 있다. 부상자 700명을 포함, 약 2000명의 병사가 제철소 지하 벙커와 터널에 몸을 숨긴 채 러시아군과 대치 중이다. 아조우 연대의 정보장교인 일리야 사모일렌코 중위는 "러시아는 우리의 생사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항복은 선택사항이 아니"라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에 안전지대로 후퇴하도록 퇴로를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현재도 러시아군은 제철소에 맹폭을 퍼부으며 아조우 연대를 압박하고 있다. 일각에선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마리우폴 시의회 올렉산드르 라신 시의원은 9일 소식통을 이용해, 러시아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해 제철소를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마리우폴을 장악하면 러시아는 2014년 강제병합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잇는 육상 회랑을 완성하게 된다.
  • [여기는 남미] 결혼식 날 욕만 잔뜩 먹은 신혼부부..무슨 이벤트를 했길래?

    [여기는 남미] 결혼식 날 욕만 잔뜩 먹은 신혼부부..무슨 이벤트를 했길래?

    이제 막 새출발을 한 멕시코의 신혼부부에게 축복은커녕 비난과 욕이 쇄도하고 있다.  멕시코 틀락스칼라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페르난도와 호세피나가 바로 그 신혼부부. 두 사람에겐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페르난도와 호세피나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식은 예사롭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흔치 않은 나치 테마 결혼식이었다.  결혼날짜를 4월 29일로 잡은 것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일이었다. 77년 이날 희대의 전범이자 학살범 아돌프 히틀러는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을 했다.  결혼식도 나치 테마 결혼식답게(?) 나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신랑 페르난도는 예복 대신 나치 장교복을 입었다. 신부는 평범한 웨딩드레스를 입었지만 드레스에도 작은 나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심지어 결혼식 들러리 역할을 한 친구들도 나치 장교복을 입고 식장에 섰다.  부부는 나치 정권 때 탄생한 독일의 클래식카 비틀을 결혼식 날 자동차로 이용했다. 자동차도 사방을 나치 문양으로 뒤덮어 나치독일의 장교가 타는 차를 연상케 했다.  비난을 받을 게 뻔한 나치 테마 결혼식을 부부가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치 테마 결혼식은 남편 페르난도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16살 때부터 나치주의에 푹 빠진 그는 열렬한 히틀러 신봉자다.  언제 어디에서나 공개적으로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밝히곤 하는 페르난도는 "연합군이 쓴 역사를 보고 사람들이 히틀러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페르난도는 히틀러에 대해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잃은 국토를 되찾아 국민에게 돌려주고, 독일을 가난에서 건진 위대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를 학살범, 인종차별주의자, 폭군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승자의 관점에서 본 히틀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개인적 신념이 그렇다고 해도 전범이자 독재자였던 히틀러와 나치를 찬양하는 듯한 테마 결혼식은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온라인에선 축복이 아니라 비판과 욕이 쇄도했다.  유대인 인권단체 사이번 비젠탈은 "나치를 찬양하는 건 히틀러와 나치로부터 갖은 탄압을 받고 수용소에서 죽어간 유대인들을 조롱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 韓·日 민간연대 빛났다···일본정부, ‘소록도’ 한센인 가족 보상 줄이어

    韓·日 민간연대 빛났다···일본정부, ‘소록도’ 한센인 가족 보상 줄이어

    “이팔청춘도 아닌 노인에게 돈은 그리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어머니 대부터 고통받고 차별받던 사실을 인정받고 이제라도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습니다.” 일제강점기 소록도에 강제 수용된 한센인 고 강팔봉씨의 아들 강선봉(83)씨가 26일 말했다. 아버지는 1929년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소록도로 끌려가 1936년 가까스로 탈출할 때까지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수용소를 나온 뒤 한센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후유증으로 해방 전에 세상을 떠났다. ‘미감아’로 관리된 강씨는 소록도 환자지대 밖 보육원에서 자랐다. 지난해 4월 일본 정부에 국내 ‘1호’로 피해보상을 신청한 강씨는 지난 2월 보상이 결정됐다. 한국인 한센가족보상 청구가 인정된 다섯 번째 사례였다. 한국 한센가족보상 청구변호단은 “1차로 62명을 대리한 이후 현재까지 130여명이 보상청구를 했고 일본 노동후생성이 심사를 통해 10명의 한센인 자녀·동생에 대한 보상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1년간의 소송 경과를 설명하기 위해 국회 본관에서 진행된 한일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다. 한센인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피해 보상이 이뤄지게 된 건 2019년 일본 의회가 한센가족보상법을 제정하면서다. 1945년 이전에 태어난 한센인 가족 중 현재 생존한 자에 한해 배우자와 자녀는 1인당 180만엔, 형제자매는 1인당 130만엔씩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지난해 10월 국내 최초로 보상이 결정된 박모(88)씨는 “부모님이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생한 것은 잘 알지만 고통스러웠던 삶을 이야기하는 건 아직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씨의 어머니는 1920년대 발병해 여수 애양원에 수용된 이후 199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 가족을 대리한 이영기 변호사는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의 문제를 가족까지 확대 인정해 사과와 피해보상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일본 정부가 이를 계기로 다른 과거사 사건에도 전향적인 태도로 임할 것을 바란다”고 밝혔다. 박영립 한국 한센인권변호단 단장은 “일제가 소록도에서 저지른 잔혹한 인권침해는 한일 간 꼭 풀어야 할 한 맺힌 과거사였다”면서 “한일변호단과 시민단체가 민간 영역에서 18년이 넘는 연대 활동을 통해 성과를 이뤘고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한센인 격리정책에 따라 설립된 전남 고흥군의 소록도 수용소에서 환자들은 강제노역을 비롯해 생체실험과 강제단종, 낙태를 강요받으며 각종 인권유린 피해를 입었다. 일본 정부가 2001년 한센보상법을 제정한 이후 소록도에 격리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도 제기됐다. 한일 변호단과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2006년 법이 개정되면서 일제가 운영한 국외 수용소에 입소한 한센인도 보상 대상에 포함됐다.
  • [마감 후] 청년이여 앞길을 바라보라/문경근 정치부 기자

    [마감 후] 청년이여 앞길을 바라보라/문경근 정치부 기자

    고당 조만식(1883~1950) 선생은 강서(江西) 사람이다. 평안남도 강서군은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다. 무학산이 높게 솟아 있는 이곳은 ‘강서약수’와 고구려 때 그려진 ‘강서고분벽화’가 유명하다. 특히 약수가 명물이어서 조선시대 때는 팔도의 사람들이 속병을 고치려고 모여들었다. 민족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당은 평양 숭실중학교와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 당시 마하트마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크게 영향을 받아 이를 사상과 민족운동의 기준으로 삼았다. 고당은 일제시대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정주 오산학교에서 교장을 맡았다. 북한 김일성 통치 시절 오랫동안 2인자로 자리해 온 최용건이 오산학교 때 그의 제자였다. 최용건은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했으며, 1950년 6·25전쟁 때 조선인민군 전선사령관을 지냈다. 고당은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향할 때 국내에 남아 일본에 저항했고, 조선물산장려운동 등을 이끌었다. 해방 후 1945년 평양에서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당수가 됐다. 당시 38선 이북에서는 고당이, 이남에서는 몽양 여운형 선생이 거두(巨頭)로 통했다. 고당은 소련군을 등에 업은 김일성과의 정치적 대결에서 패한 뒤 감금됐다. 그는 월남 대신 평양에서의 고난을 택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싫어 대거 남으로 내려왔다. 백범 김구 선생이 1948년 남북 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에게 고당의 석방을 요구했다고 한다. 우남 이승만 박사가 남한 주도의 단독 정부 구성을 관철시키려고 하자 남쪽에서 고당을 따르는 월남자들의 세를 빌려 우남을 견제하려던 목적이었다. 김일성의 거부로 백범은 빈손으로 귀환했다. 고당은 일제의 민족 말살이 극에 달하던 1936년 대중잡지 삼천리에 ‘청년이여 앞길을 바라보라’는 글을 썼다. “우리 청년들은 매우 영리한 한편에 심히 유약하여 자기 정신으로 생활하지 못하고 세상 풍조에 휩쓸리어 그야말로 취생몽사(醉生夢死)의 처세의 형편이 많음은 흔히 본다. 대현(大賢)은 여우(如愚)라고 함과 같이 바라건대 약빠른 것 같으면서 크게 어리석지 말고, 어리석은 것 같으면서 참 현철(賢哲)하게, 세상 풍조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로 생의 의식, 말하자면 살겠다는 굳센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운명을 자기 스스로가 개척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비로소 인생으로서의, 청년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고당은 성취감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식민지 청년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삶의 목표와 의식을 가지길 권했다. 고당의 이런 가르침은 오늘날 북한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주문이 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한 한 20대 청년은 북한에서의 삶은 죽음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김정은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아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온 가족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야 하는 공포 속에서 항상 죽음을 떠올려야만 했다고 한다. 그는 해외 유학의 꿈이 있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안 뒤 탈북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에서 프로그램 개발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각종 자격증을 취득 중이다. 북한에 남겨진 청년들 역시 이처럼 앞길을 바라보길 기대해 본다.
  • [월드피플+] “빌어먹을 푸틴!”…히틀러, 스탈린, 푸틴 모두 겪은 홀로코스트 할머니

    [월드피플+] “빌어먹을 푸틴!”…히틀러, 스탈린, 푸틴 모두 겪은 홀로코스트 할머니

    세기의 독재자인 독일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그리고 이번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두에게 고통을 겪은 할머니의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독일 공영 ZDF등 유럽언론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우크라이나 출신인 아나스타샤 굴레즈(96) 할머니의 사연을 보도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독일 바이마르 교외에 세워진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를 찾아 헌화한 할머니의 생애는 인류의 가장 암울했던 비극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아나스타샤 할머니는 지난 1945년 1월 불과 19세 나이에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할머니가 머물던 곳은 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로 이곳에서 그는 15세로 생을 마감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와 함께 보냈다.사실상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였으나 4개월 후 기적이 찾아왔다. 나치가 패망하면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아나스타샤 할머니는 "지금도 여기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보낸 1분도 잊을 수 없다"면서 "수용소가 해방된 순간 기쁨을 느낄 만큼의 기력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자유의 몸이 됐지만 조국 우크라이나는 이미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풍부한 식량과 자원을 가진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권력 유지와 세계를 지배하는 땅으로 주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탈린은 1930년 대 우크라이나 민족을 말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우크라이나인 수백만 명이 대기근 속에 죽어간 ‘홀로도모르’(Holodomor·우크라이나 언어로 기아에 의한 살인이라는 뜻)를 야기했다.    이렇게 역사의 가장 암울했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한권의 책으로 담아 지난달 출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앞으로 새로운 장이 추가될 예정이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아나스타샤 할머니는 러시아의 침공 후에도 계속 자택에 머물기를 원했으나 결국 아들과 딸과 함께 독일로 탈출했다. 아나스타샤 할머니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인을 상대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벌이고 있다"며 "나는 히틀러에서도, 스탈린에서도 살아남았다. 이 빌어먹을 푸틴에게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 [STOP PUTIN] 젤렌스키, 독일 콕 집어 “피묻은 돈으로 러 에너지 수입”

    [STOP PUTIN] 젤렌스키, 독일 콕 집어 “피묻은 돈으로 러 에너지 수입”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피 묻은 돈으로 러시아 석유를 계속 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의 상황실에서 영국 BBC와 인터뷰를 갖고 “우리 친구와 파트너 일부는 이제 사업과 돈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걸 이해한다”면서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 노력에 찬동하고 있지만 독일과 헝가리가 더 강한 제재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했다. 독일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 비중이 가장 높아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는 데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BBC는 올해 러시아가 석유와 가스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이 2500억 유로(약 335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무기 공급을 재차 요구하면서 “미국, 영국, 일부 유럽 국가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지만 우리는 더 빨리 필요하다. 키워드는 ‘지금’”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몇주 동안 러시아 공격으로 수만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실종됐다”며 “러시아 여권을 받고 수용소나 다른 도시 등 러시아 깊숙이로 끌려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마리우폴, 키이우 외곽 부차 등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만행은 평화회담 가능성을 더 좁힌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주 부차에 갔을 때 모든 종류의 감정을 느꼈는데 나중에는 러시아군을 향한 미움만 남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군이 위부터 아래까지 모두 전범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 전에 무기 공급 관련 협상을 하는 한편 경제 불안을 초래하지 않도록 공포감을 없애는 데 집중하고 있었으며 “전면전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 동부가 가장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크라이나군의 가장 강력한 부대가 모인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우리를 죽일 수도 있지만 그들 또한 죽을 것”이라며 “그들이 왜 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전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해 왔고, 공급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며 “제대로 된 무기를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에 퇴짜를 놓은 것에 난감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이날 rbb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기로 함으로써 결정적으로 노선을 바꾸기로 했다”면서도 “독일은 단독 행동을 하지 않고 다른 나라와 다르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무기 재고 가운데 사용 가능한 무기가 있는지 점검하고, 우크라이나와 군수업계에서 빠르게 공급이 가능한 무기들을 담은 목록을 만들었다”면서 “탄약과 대체 부품이 있는 제대로 된 버젓한 무기를 공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독일을 비롯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이 전쟁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방문을 거절한 것은 “다소 당혹스럽다”면서 “그를 맞이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의 정상들과 함께 키이우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숄츠 총리를 초청했다. 숄츠 총리는 “전쟁이 나기 며칠 전에 키이우를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당분간 우크라이나를 찾지 않을 것임을 시사랬다. 그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도 자주 통화를 하고 있다”면서 “내가 젤렌스키 대통령처럼 긴밀하게 접촉하는 정상은 없다”고 덧붙였다. 숄츠 총리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에 곧바로 1억 유로어치의 무기를 제공하겠다고 밝혀 세계와 자국민들을 놀래켰다. 러시아 에너지에 많이 의존하는 독일이 냉전 이후 이렇게 대규모 해외 원조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숄츠 총리는 “Zeitenwende”(획기적 변화)라고 했고, 사방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6주 뒤 찬사는 멈췄다고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전했다. 러시아군의 잔학한 행위가 연일 전해지는데도 숄츠 총리는 너무 비용이 늘어난다며 석유와 가스 금수 조치를 배제했다. 100대의 장갑차를 우크라이나에 보내며 독일은 “급하게 앞서지 않겠다”고 질질 끌고 있다. 집권 연정 안에서도 얼마나 빨리를 따지지 않고 그가 앞에 놓인 숱한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 “한국의 대표 부패 이슈는 대장동·언론중재법 개정”

    “한국의 대표 부패 이슈는 대장동·언론중재법 개정”

    미국 국무부는 12일(현지시간) 공개한 ‘2021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한국 관련 인권과 부패 이슈로 언론중재법 개정과 대장동 사건을 꼽았다. 보고서는 우선 한국 편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둘러싸고 극심한 논란을 빚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예시했다. “(한국) 여당은 거짓 및 날조로 판명된 보도의 희생자가 언론이나 온라인 중개업자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구하도록 하는 논쟁적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정부와 관련된 부패 사례로는 해직 교사를 부당하게 특채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관련 유죄 판결 및 가석방,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내 공공개발 땅 투기 논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씨의 자녀 입시 비리 문제 등이 적시됐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논란이 됐던 대장동 사건에 대해선 “검사가 확보한 증거는 지분 1%를 보유한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가 시 공무원과 공모하고 정치인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제기한다. 화천대유와 연관 회사들은 초기 투자의 1000배가 넘는 이익을 얻었다”고 썼다. 보고서는 지난해에 이어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논란도 표현의 자유 부문에서 다뤘다. 지난해 보고서에선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라고 말한 정부 및 여당 인사들의 입장을 다뤘다면 올해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대북 전단 50만장을 보냈다가 사법 처리 대상이 된 문제를 지적했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고강도로 비판했다. 정부에 의한 불법적 살해·강제적 실종·고문 등 중대 인권문제와 함께 정치범 수용소, 연좌제, 종교 및 거주의 자유 제한 등이 포함됐다. 특히 북한이 구금했다 2017년 석방한 직후 숨진 오토 웜비어에 대해 북측이 어떤 설명도 없다고 비판했다. 리사 피터슨 미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 담당 차관보 대행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라고 지적했다.
  • 美 인권보고서 “北 수많은 학대 처벌 안해” “南 언론중재법·대장동 문제”

    美 인권보고서 “北 수많은 학대 처벌 안해” “南 언론중재법·대장동 문제”

    미국 국무부는 12일(현지시간) 발표한 ‘2021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북한 정권이 수많은 학대를 해왔다는 믿을 만한 보도들이 있지만 이를 처벌하지 않아 광범위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북한을 1949년부터 김씨 일가가 이끄는 권위주의 국가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매년 발표되는 인권 보고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두 번째로 발표됐는데 북한 인권의 취약성을 지적한 작년과 내용이 유사하다. 보고서는 북한이 사회안전성(한국의 경찰청 해당) 등 치안 관련 기구를 통한 효과적 통제를 유지했다면서 ”수많은 학대를 행했다는 믿을 만한 보도들이 있었다“고 했다. 보고서는 “중대 인권 문제는 다음의 믿을 만한 보도를 포함한다”면서 정부에 의한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살해, 정부에 의한 강제적 실종, 정부 당국에 의한 고문 및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모멸적인 대우 및 처벌을 적시했다. 또 보고서는 정치범 수용소 등 가혹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수감 환경, 자의적 체포 및 구금, 정치범 및 수감자, 다른 국가에서 개인에 대한 정치적 동기의 보복, 사법 독립 부재, 사생활에 대한 자의적 또는 불법적 간섭도 중대한 인권 문제로 거론했다. 아울러 개인이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범죄에 대한 가족 구성원 처벌, 언론인에 대한 부당한 체포 및 기소와 검열, 인터넷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제한,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실질적인 간섭, 종교 자유에 대한 심각한 제한, 국가내 이동 및 거주의 자유와 출국 권리에 대한 심각한 제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정권 교체 불가능, 정치 참여에 대한 심각한 제한, 심각한 정부 부패,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조사 및 책임 부족, 강제 낙태 및 강제 불임 수술, 인신매매, 독립 노조 불법화, 최악의 아동노동 등이 서술됐다. 또 “가장 최근인 2019년 전국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 정부가 인권 침해나 부패를 저지른 공무원을 기소하기 위해 신뢰할 만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 외교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지만,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만큼 북한 인권 상황을 묵과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번 보고서 역시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12월 북한의 강제 노동과 인권 탄압을 이유로 북한 중앙검찰소와 사회안전상 출신 리영길 국방상 등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는 바이든 정부 들어 북한을 제재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국무부는 ”이번 인권보고서는 전 세계 198개국을 대상으로 한다“며 ”인권 존중 증진과 기본적 자유 수호는 국가로서 우리의 핵심이다. 미국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인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보고서의 한국 편에서는 중대한 인권 이슈로 ▲ 형사상 명예훼손법 존재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 제한 ▲ 정부 부패 ▲ 여성 폭력에 대한 조사 및 책임 결여 ▲ 군대 내 동성애 불법화 법률을 꼽았다. 보고서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둘러싸고 극심한 논란을 빚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예시했다. 보고서는 “여당은 거짓이거나 날조된 것으로 판명된 보도의 희생자가 언론이나 온라인 중개업자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구하도록 하는, 논란 많은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며 “특히 언론은 이 법이 자유롭게 활동할 언론의 능력을 더욱 제약할 것이라면서 반대했다”고 적었다. 보고서는 정부와 공인이 명예훼손법을 이용해 공공의 토론을 제약하고 사인과 언론의 표현을 괴롭히고 검열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한 전단을 배포한 혐의로 고발당했다가 취하된 사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명예훼손죄 기소,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의 명예훼손 고발 등을 언급했다. 보고서는 대북전단금지법 논란도 다뤘다. 접경지대 주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정부 입장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인권활동가, 야당의 주장을 담은 뒤 대북전단 살포로 사법 절차에 오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사건을 거론했다. 부패 섹션에서는 해직 교사를 부당 특채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관련 유죄와 가석방을 사례로 들었다. 또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논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씨의 자녀 입시 비리 유죄도 언급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 논란이 됐던 대장동 사건도 보고서에 포함됐다. 보고서는 “검사가 확보한 증거는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가 시 공무원과 공모하고 정치인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제기한다”며 화천대유와 연관된 회사들이 초기 투자의 1000배 이상 이익을 얻었다고도 적었다. 그러면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되고, 아들 퇴직금 50억원 논란에 휩싸인 곽상도 전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했다고 소개했다. 보고서는 군대 내 문제와 관련해선 공군 소속 여군의 성추행 사망 사건, 국내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렌스젠더 군인인 고(故) 변희수 하사의 극단적인 선택 사건을 꼽았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쉰들러 리스트 작성해 유대인 구한 비서 라인하르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쉰들러 리스트 작성해 유대인 구한 비서 라인하르트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구해내야 할 유대인 명단을 작성했던 그의 비서 미미 라인하르트가 10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1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던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라인하트트는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혔다가 유창한 독일어 실력 덕에 쉰들러에게 비서로 발탁됐다. 나치 친위대(SS) 대원이었던 쉰들러는 자신의 공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의 수용소 송환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 때 구해내야 할 유대인들의 이름을 타이핑한 것이 라인하르트였다. 이렇게 구해낸 유대인 직공들이 1300명에 이르렀다.  대학에 가려고 속기를 배웠는데 그게 자신의 목숨을 구하게 될지 몰랐다. 그는 2007년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인터뷰를 통해 “평생 공부했던 것 중에 가장 쓸모있는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크라쿠프 외곽의 플라초프 노동수용소 사무실에 자리를 얻어 쉰들러의 공장에 취직할 유대인 명단을 작성하는 일을 했다. 그들을 천거함으로써 쉰들러는 나치 죽음의 수용소에 끌려갈 일을 막아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아우수비츠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 가려던 유대인들의 최종 목적지를 체코슬로바키아의 탄약 공장으로 바꿀 수 있었다. 라인하르트 역시 그 열차에 올랐다.  그의 말이다. “우리 모두 걱정했던 만큼 우리에게 도박 같았다. 쉰들러와 함께 간다고 해서 어떤 것이 보장되지도 않았다. 우리는 쉰들러가 구하는 데 성공할 것이란 확신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우리를 다른 수용소로 데려갔을 뿐이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는 쉰들러를 믿었기에 한 번의 기회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고인의 손녀 니나는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친척들에게 전한 부고장을 통해 “너무도 사랑하고 너무도 각별했던 우리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평화로운 안식을”이라고 적었다고 미국 뉴욕데일리 뉴스가 11일 전했다. 하지만 정확한 사망 시간이나 사인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종전 뒤 고인이 미국 뉴욕에 거주하다 2007년 이스라엘로 아들과 함께 이주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외아들 사샤 바이트만이 있는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바이트만은 당시 텔아비브대 사회학 교수였다. 라인하르트는 말년을 텔아비브 북쪽 요양원에서 보냈다. 유족으로는 외아들과 여러 손주와 몇몇의 증손주를 뒀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WP)는 전했다.  쉰들러가 1974년 세상을 떠나자 이스라엘에 있는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그를 ‘열방의 의인들’로 받아들였다. 나치의 박멸로부터 유대인 목숨을 구하려 애쓴 비유대인에게 주어지는 영예였다. 그는 예루살렘 외곽 올리브 산에 안장됐다.  그의 이타적이며 용기있는 얘기는 1982년 토머스 키닐리의 베스트셀러 소설 ‘쉰들러의 방주’(Schindler’s Ark)에 소개됐고 1993년 오스카 주요 부문을 휩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스크린에 옮겨졌다. 생전에 라인하르트는 영화 촬영을 앞두고 스필버그 감독을 만난 일이 있었다면서도 정작 영화를 보러 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 [STOP PUTIN] ‘쉰들러 리스트’ 붉은 코트 소녀, 30년 뒤 우크라 피란민 도와

    [STOP PUTIN] ‘쉰들러 리스트’ 붉은 코트 소녀, 30년 뒤 우크라 피란민 도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히는  ‘쉰들러 리스트’의 붉은색 코트를 입은 소녀로 출연한 폴란드 여성이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돕는 데 앞장 서고 있다고 야후! 엔터테인먼트의 블로그 데드라인이 7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올리비아 다브로브스카(32)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 작품에 출연했을 때 세 살이었다. 그녀가 연기한 소녀는 나치의 유대인 집단수용소 게토에 갇힌 신세였다. 그 소녀의 죽음을 목도한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해내겠다는 결심을 하는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라 올리비아는 영화 촬영하며 있었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30년이 흘러 올리비아는 지금 녹색 조끼를 입은 채 국경에 몰려 오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녀가 처음 자신의 활동을 세상에 알린 것은 지난달 9일이었다. 영화에 자신이 나온 장면, 흑백에 유일하게 컬러로 표현됐던 소녀의 붉은색 코트를 푸른색으로 바꾼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우크라이나 국기의 노란색과 푸른색을 상징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녀는 털어놓았다. 올리비아는 “그녀는 항상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녀가 다시 그녀이게 하라”고 적었다. 며칠 뒤 올리비아는 국경으로 가 난민들을 돕는 한편, 소셜미디어에 그들을 대신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국경에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조그마한 것도 도움이 된다. 물질과 재정 기부가 필요하다. 직접 돕겠다고 자원할 수도 있다. 상황은 극적이다. 나도 이곳에서 자원봉사 중이다. 내 눈으로 직접 이 모든 것을 목격하고 있다.”러시아군의 공습도 직접 목격했다. “오늘 러시아가 야보리우를 공습했다. 폴란드 땅으로부터 20㎞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너무 가깝다! 겁이 났지만 난민들을 돕겠다는 의욕이 더욱 솟구쳤다.” 두 자녀를 데리고 독일 국경에 가까운 아주 먼 도시로 갈 방법을 찾아달라고 애원하는 우크라이나 어머니를 만났다. “통상 우리는 난민들을 우리 지역에서만 수송하곤 했다. 이번에는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너무도 간절하게 자매 곁으로 가고 싶어했다. 애들이, 맙소사, 난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모든 것을 말할 수가 없다. 마음에는 떠오르는데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다. 누구도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을텐데 그들의 눈에 담긴 악몽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더라.” 올리비아는 간만에 6일 새 소식을 알렸다. 어머니와 함께 우크라이나 병사들에게 응급구호 키트를 전달하는 데 진전을 이뤘으며 기부 체계를 만들어 “난민들을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으로 돕는 데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컬러로 스크린에 구현된 붉은색 코트의 소녀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일까? 스필버그 감독은 개봉 25주년인 2018년 미국 NBC 뉴스 인터뷰를 통해 학살에 반대하는 행동이 필요함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털어놓았다. 어쩌면 지금 올리비아가 몰두하는 일인지 모른다. 당시 스필버그 감독의 답이다. “토머스 케닐리의 책에 오스카 쉰들러는 크라코우 게토를 박살내는 동안 그 어린 소녀가 걸어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으로 나온다. 모두가 트럭에 실리거나 거리에서 총격을 받고 있었다. 붉은색 코트를 입은 소녀는 나치친위대(SS)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SS가 모두를 끌고가는데 어쩐 일이지 그 거리에 가장 밝은 옷을 입은 여섯 살 아이가 산책하는데도 알아보지 못한다. 내겐 루즈벨트와 아이젠하워, 아마도 스탈린과 처칠 같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잘 간직된 비밀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걸 막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내게 (붉은색 코트는) 누구나 보고 있었고, 알아볼 수 있었던 반짝이는 붉은 깃발 같은 것이었다.”
  • [씨줄날줄] 카틴 숲과 부차/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카틴 숲과 부차/임병선 논설위원

    소련을 침공한 나치 독일은 1943년 4월 13일 서부 스몰렌스크 근교 카틴 숲에서 무려 4400명이 묻힌 무덤을 발견했다. 또 메드노예에 6300명, 벨라루스 민스크에 3870명, 우크라이나 하리코우에 3800명의 집단 매장지가 있었다. 키이우와 헤르손에서도 비슷한 무덤들이 발견됐다. 신원을 확인했더니 1940년 9월 소련군에 끌려간 폴란드군 장교와 경찰, 지식인들이었다. 1939년 8월 23일 불가침 조약을 맺은 나치와 소련은 중간에 낀 폴란드를 유린하게 됐다. 나치는 그해 9월 1일 침공을 시작해 폴란드 서쪽으로, 소련은 같은 달 17일 폴란드 동쪽으로 쳐들어갔다. 바르샤바가 함락되자 폴란드군은 나치보다 그래도 공산 혁명을 표방한 소련이 낫겠다고 판단해 그들에게 항복했다. 소련군은 사병들은 풀어 줬지만 장교 등은 사상이 불온하다며 자국의 코젤스크·스타로벨스크·오스타슈코프 수용소로 이송했다. 이렇게 2만 2000명이 끌려갔다. 독일은 수용소로 이송된 포로들을 소련군이 처형한 것이라며 침공의 당위성을 선전했다. 소련은 폴란드 포로들이 1941년 스몰렌스크 공사에 투입됐는데 나치가 몰살한 것이라고 맞섰다. 독일을 패망시키려면 소련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던 영국과 미국은 못 들은 척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소련군의 잔학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소련 주장대로 폴란드 땅을 넘겨줬다. 소련 정부가 진실을 고백한 것은 1990년 고르바초프 서기장 때였다. 지난 주말 러시아군이 퇴각한 키이우 외곽 부차, 모티진 등에서 두 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머리 뒤에 총알이 박힌 민간인 시신들이 나왔다. 카틴 숲 참사와 닮았다. 한 시신은 눈과 코가 드러날 정도로 묻어 망자(亡者)에 대한 예도 차리지 않았다. 어제는 길을 가는 민간인에게 러시아군 탱크가 발포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폴란드가 포로들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스탈린이 만주로 달아났다고 거짓말했는데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동영상을 조작했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우리처럼 단일 민족으로 분단된 폴란드가 겪은 아픔을 원자력발전소는 있지만 핵무기와 핵물질 농축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되풀이하고 있다.
  • ‘죽음의 수용소’ 마리우폴 5000명 희생… 돈바스선 최후의 탈출

    ‘죽음의 수용소’ 마리우폴 5000명 희생… 돈바스선 최후의 탈출

    “거리 곳곳에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널려 있어요. 0.5m 깊이의 얕은 무덤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묻혔어요.” 러시아군에 한 달 넘게 포위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탈출한 여성은 거리에서 목격한 참상을 전하며 몸서리쳤다. 마리우폴은 친러 반군 활동지인 동부 돈바스와 러시아가 2014년 무력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을 저지선으로 결사항전했던 우크라이나군에게 보복하듯 러시아군은 집요하게 포격과 공습을 가해 대부분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6일(현지시간) “지난 몇 주간 러시아군 포격과 시가전으로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고, 그중 210명이 어린이였다”고 밝혔다. 시 당국은 러시아군이 전쟁범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이동식 소각 시설에서 시신들을 태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이쳰코 시장은 “러시아 점령군이 도시 전체를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었다”며 “이것은 새로운 아우슈비츠”라고 규탄했다. 마리우폴을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수용소에 빗댄 것이다. 최소 수백명이 학살된 부차와 보로카의 참극을 잇는 마리우폴의 재앙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쟁 전 인구 40만명의 마리우폴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한 민간인이 15만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기반시설의 90% 이상이 파괴된 마리우폴의 민간인들은 극도의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대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마리우폴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 하베르투르크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인도적 화물을 싣고 마리우폴에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러시아)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임박한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하르키우 등 거점 도시에서는 필사의 탈출이 시작됐다.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돈바스 지역 민간인에 대한 긴급 대피령을 선포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피란 행렬을 찍은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돈바스) 진격로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7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데 합의하고 다양한 무기 시스템을 제공할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 부차와 러시아의 통제에서 최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본 끔찍한 민간인 살해를 규탄했다”면서 “용감한 우크라이나인들을 돕기 위해 지금, 또 중장기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죽음의 수용소’ 마리우폴 5000명 희생 … 돈바스선 최후의 탈출

    ‘죽음의 수용소’ 마리우폴 5000명 희생 … 돈바스선 최후의 탈출

    시가전으로 숨진 어린이만 210명‘이동식 소각’으로 증거인멸 의혹 유엔, 러 자격정지 결의안 표결러 “반대표 던져라” 대놓고 협박“거리 곳곳에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널려 있어요. 0.5m 깊이의 얕은 무덤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묻혔어요.” 러시아군에 한 달 넘게 포위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탈출한 여성은 거리에서 목격한 참상을 전하며 몸서리쳤다. 마리우폴은 친러 반군 활동지인 동부 돈바스와 러시아가 2014년 무력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을 저지선으로 결사항전했던 우크라이나군에게 보복하듯 러시아군은 집요하게 포격과 공습을 가해 대부분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6일(현지시간) “지난 몇 주간 러시아군 포격과 시가전으로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고, 그중 210명이 어린이였다”고 밝혔다. 시 당국은 러시아군이 전쟁범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이동식 소각 시설에서 시신들을 태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이쳰코 시장은 “러시아 점령군이 도시 전체를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었다”며 “이것은 새로운 아우슈비츠”라고 규탄했다. 마리우폴을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수용소에 빗댄 것이다. 최소 수백명이 학살된 부차와 보로카의 참극을 잇는 마리우폴의 재앙은 ‘현재 진행형’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쟁 전 인구 40만명의 마리우폴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한 민간인이 15만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기반시설의 90% 이상이 파괴된 마리우폴의 민간인들은 극도의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1일 이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민간인 대피를 시도했지만 러시아군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대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마리우폴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임박한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하르키우 등 거점 도시에서는 필사의 탈출이 시작됐다.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돈바스 지역 민간인에 대한 긴급 대피령을 선포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피란 행렬을 찍은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돈바스) 진격로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은 7일(현지시간) 19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총회에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 결의안을 표결한다. 기권·불참국을 뺀 나머지 3분의2 회원국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가 “반대표를 던지라”는 협박성 메시지를 회원국들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오는 7월 장관급 회의, 11월 정상회의가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회의체의 러시아 퇴출을 촉구했다.
  • “0.5m 깊이 무덤에 수많은 시신들이...” 마리우폴의 비극

    “0.5m 깊이 무덤에 수많은 시신들이...” 마리우폴의 비극

    “거리 곳곳에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널려 있어요. 0.5m 깊이의 얕은 무덤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묻혔어요.” 러시아군에 한달 넘게 포위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탈출한 여성은 거리에서 목격한 참상을 전하며 몸서리쳤다. 마리우폴은 친러 반군 활동지인 동부 돈바스와 러시아가 2014년 무력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을 저지선으로 결사항전했던 우크라이나군에게 보복하듯 러시아군은 집요하게 포격과 공습을 가해 대부분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6일(현지시간) “지난 몇주간 러시아군 포격과 시가전으로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고, 그 중 210명이 어린이었다”고 밝혔다.  시당국은 러시아군이 전쟁범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이동식 소각 시설에서 시신들을 태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이쳰코 시장은 “러시아 점령군이 도시 전체를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었다”며 “이것은 새로운 아우슈비츠”라고 규탄했다. 마리우폴을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던 수용소에 빗댄 것이다.  최소 수백명이 학살된 부차와 보로댠카의 참극을 잇는 마리우폴의 재앙은 ‘현재진행형’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쟁 전 인구 40만명의 마리우폴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한 민간인이 15만명으로 추산된다. 기반시설의 90% 이상 파괴된 마리우폴의 민간인들은 극도의 생존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1일 이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시도했던 민간인 대피마저 러시아군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대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마리우폴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 하베르투르크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인도적 화물을 싣고 마리우폴에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러시아)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임박한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하르키우 등 거점 도시에서는 필사의 탈출이 시작됐다.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돈바스 지역 민간인에 대한 긴급 대피령을 선포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피란 행렬을 찍은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돈바스) 진격로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엔은 7일(현지시간) 19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총회에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 결의안을 표결한다. 기권·불참국을 뺀 나머지 3분의 2 회원국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가 “반대표를 던지라”라는 협박성 메시지를 회원국들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오는 7월 장관급 회의, 11월 정상회의가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회의체의 러시아 퇴출을 촉구했다.
  • “러시아, 전쟁범죄 증거 없애려 점령지 시신 소각”

    “러시아, 전쟁범죄 증거 없애려 점령지 시신 소각”

    “러군, 사살한 민간인 시신 불태워 없애”보이쳰코 “새로운 아우슈비츠이자 마즈다네크”dpa “주장 진위 확인 못해”AP “5000명 이상 숨져…210명은 어린이”젤렌스키 “그들은 나치”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민간인 학살 의혹을 받는 가운데 전쟁 범죄 증거를 없애려 시신을 소각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7일(현지시간) 독일 dpa 통신에 따르면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러시아군이 ‘이동 소각장’을 이용해 마리우폴에서 자신들이 사살한 민간인 시신을 불태워 없애고 있다고 밝혔다.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반군 점령지인 돈바스와 러시아가 무력으로 합병한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다. 러시아군은 한달 이상 집중 포격·공습을 가해 대부분을 점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보이쳰코 시장은 6일 자신의 텔레그램에 “이것은 새로운 아우슈비츠이자 마즈다네크이다”라고 나치의 집단 수용소를 언급했다. 아우슈비츠와 마즈다네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 있는 독일의 유대인 강제 수용소로 제노사이드가 이뤄진 곳이다. 보이쳰코 시장은 마리우폴에서 발생한 잔혹행위 일부는 현지 러시아군 지지 세력에 의해 자행됐다고 했다. dpa 통신은 그러나 보이쳰코 시장의 주장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AP 통신에 따르면 보이쳰코 시장은 또 최근 몇주간 러시아의 포격과 시가전으로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으며 그중 210명은 어린이였다고 밝혔다. 또 병원에 쏟아진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한곳에서만 50명이 불에 타 숨졌으며 도시기반 시설 90% 이상이 파괴됐다고 했다.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가 학살을 은폐하려 마리우폴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AFP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터키 하베르투르크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인도적 화물을 싣고 마리우폴에 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건 비극이고 생지옥이다”라며 “수십명이 아니라 수천명이 죽고 수천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들이 이 모든 것을 숨기고 우크라이나 사상자를 모두 묻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러시아가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 등에서 범죄 증거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은 가족을 불태웠다”며 “어제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 두 아이 등 숨진 새 일가족을 발견했다. 내가 ‘그들은 나치’라고 말한 이유다”라고 했다. 다만 “평화협상 없이 전쟁을 멈추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어쨌든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날 우크라이나 곳곳 격전 지역에서 인도적 통로를 대피한 민간인은 약 5000명으로 집계됐다. dpa 통신은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의 말을 인용, 마리우폴에서 1100여명이 자가용을 타고 우크라이나군이 통제하는 자포리자 쪽으로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약 2500명이 자포리자로 피했고 동부 루한스크에서도 1200여명이 대피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전국에 11개의 인도적 통로를 개방했다고 발표했다.
  • “마리우폴 거리 곳곳에 시체가..민간인 5천명 죽어

    “마리우폴 거리 곳곳에 시체가..민간인 5천명 죽어

    우크라이나인 알렉산드르 오베딘스키는 죽은 줄 알았던 12세 손녀 키라의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렸다. 자신은 러시아군에 포위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인 마리우폴을 어렵게 탈출했지만 키라의 아버지는 러시아 군 총에 숨졌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손녀의 생사조차 몰라 불안에 떨던 그는 연락을 받고 기뻤지만 곧 낙심했다. 오베딘스키는 “키라는 현재 도네츠크의 한 병원에 있고 귀와 얼굴, 다리를 다친 상태”라면서 “부상이 나으면 손녀가 곧 러시아 수용소로 끌려간다”고 울먹였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마리우폴을 간신히 빠져나온 율리아라는 이름의 한 여성도 “거리 곳곳에 시체들이 있다. 고작 0.5m깊이로 만든 얕은 무덤에 사람들이 수없이 묻혀 있다”며 자신이 목격한 고향의 참상을 전하며 몸서리쳤다. 마리우폴은 전략적 요충지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반군 점령지인 돈바스와 러시아가 2014년 합병한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다. 이 점 때문에 러시아군이 한달 이상 이 지역을 둘러싸고 집중 포격·공습해왔다. 어린이 병원에 여러 개의 폭탄이 떨어졌고 제1시립병원 건물 중 하나가 파괴됐다. 바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거의 50명이 산 채로 불에 탔다”며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포격을 피해 숨어 있던 드라마 극장도 폭격을 당했다”고 참담한 상황을 알렸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와 또 다른 위성도시인 보로?카에서 수백명이 학살당한데 이어 남부 마리우폴에서도 참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보이쳰코 마리우폴 시장은 최근 한달 간 러시아의 포격과 시가전으로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으며, 그중 210명은 어린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도시기반 시설 90% 이상이 파괴됐고 이중 40%는 더이상 복구할 수 없는 수준이다. 키라처럼 수용소로 끌려가는 이들도 있다. 보이쳰코 시장은 “러시아 점령군은 우리 도시 전체를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었다”며 “이곳은 ‘새로운 아우슈비츠’다”라고 말했다고 USA투데이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우슈비츠는 과거 나치에 의해 유대인 대량 학살이 자행됐던 수용소다. 가디언에 따르면 인구 40만명인 이 도시에서 15만여명이 현재 군에 포위된 상태다. 러시아 군은 국제적십자위원회의 구호물자 버스 진입도 막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학살을 은폐하려 마리우폴에 대한 인도적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 무차별 총질, 약탈 뒤 V표식, 여군 감금 학대… 드러난 러 만행

    무차별 총질, 약탈 뒤 V표식, 여군 감금 학대… 드러난 러 만행

    공습을 피해 숨은 지하실 밖으로 러시아 전투기의 굉음이 들려왔다. 3초 뒤 전투기에서 떨어진 폭탄이 맞은편 건물을 관통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북서쪽 외곽 소도시인 보로디얀카에 사는 발레리 비시냐크는 “러시아군들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자동차와 건물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냥 무법천지였다”고 돌이켰다. 러시아군이 철수한 뒤 아파트 4채가 러시아군의 폭격에 무너져 내렸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부차보다 희생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밝혔던 보로디얀카에는 폭격을 받아 무너진 아파트 잔해에 깔린 희생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게오르기 예르코 보로디얀카 시장 대행은 5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지하실 등에 대피해 있던 주민들이 실종됐으며 잔해에 깔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것은 가정이지만 2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의 약탈과 학살의 참상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 CNN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민간인들의 집을 자신들의 막사로 사용하며 집 안에 있던 술을 꺼내 마시고 상점을 약탈했다. 러시아군의 본부로 전락했던 시청과 공공기관 건물에는 외벽 곳곳에 러시아군의 상징이 된 ‘V’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자원봉사에 나선 주민들은 검게 그을리거나 총상을 입은 시신들을 수습했다. 우크라이나 언론 키이우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안토노프 공항 소재지로 침공 초기에 격전이 벌어졌던 키이우 북서쪽 소도시 호스토멜에서는 주민 400명 이상이 실종됐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현지 군무청장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혔다. 포로로 붙잡혔던 우크라이나 여군들이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인권 옴부즈맨 류드밀라 데니소바는 “러시아와의 포로 교환으로 석방돼 돌아온 여군 12명이 감금 상태에서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면서 “벨라루스를 거쳐 러시아의 한 수용소로 이송된 이들은 남성들 앞에서 알몸 상태로 심문을 받고 머리카락이 강제로 잘렸으며, 러시아의 선전 동영상 촬영에 강제 동원됐다”고 폭로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청은 이날 기준으로 러시아군이 저지른 전쟁범죄 사건 4684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검찰총장은 “전쟁범죄 혐의가 있는 사건이 매일 수백 건씩 늘고 있다”면서 “잔학한 행위를 한 침략자 한 명 한 명이 정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지난 4일까지 어린이 123명을 포함해 민간인 1480명이 사망했으며, 마리우폴, 보로디얀카, 볼노바하 등 교전이 치열한 지역에서는 정확한 사상자 규모 파악이 어렵다고 밝혔다.
  • “‘이동식 화장장’으로 시신 은폐 … 마리우폴은 새로운 아우슈비츠”

    “‘이동식 화장장’으로 시신 은폐 … 마리우폴은 새로운 아우슈비츠”

    러시아군에 의해 한달 넘게 고립된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이 이동식 화장장으로 사망자들의 시신을 은폐하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마리우폴 시장은 마리우폴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유하며 국제사회에 강경한 대응을 호소했다. 미국 CNN 등에 따르면 마리우폴 시의회는 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에서 이동식 화장장을 운영하며 전쟁 범죄의 흔적을 숨기고 있다”면서 “‘부차 학살’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이 일자 러시아 최고 지도부는 마리우폴에서 자국 군대가 저지른 범죄의 증거를 없앨 것을 명령했다”고 주장했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이 상황은 새로운 아우슈비츠 또는 마자네크(2차대전 당시 폴란드 루블린에 세워진 강제수용소)”라고 비판했다. 보이첸코 시장은 “세계는 나치의 강제수용소 이후 마리우폴과 같은 비극의 규모를 보지 못했다. 러시스트(러시아 파시스트)들은 우리 도시 전체를 죽음의 수용소로 만들었다”면서 “세계는 푸틴의 악당들을 처벌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러시아군에 함락될 위기에 처한 마리우폴은 전기와 식량, 식수, 의약품 등 모든 물자가 바닥난 채 남아있는 주민 12만명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다. 러시아군은 마리우폴에 고립 작전을 펴며 “굶어 죽거나 항복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민간인 5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일부 주민들은 러시아군에 의해 러시아 영토로 강제 이주당했으며 그 규모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 러軍 점령한 시청 외벽에 선명한 ‘V’ 표식... 200명 실종된 보로디얀카

    러軍 점령한 시청 외벽에 선명한 ‘V’ 표식... 200명 실종된 보로디얀카

    공습을 피해 숨은 지하실 밖으로 러시아 전투기의 굉음이 들려왔다. 3초 뒤 전투기에서 떨어진 폭탄이 맞은편 건물을 관통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북서쪽 외곽 소도시인 보로디얀카에 사는 발레리 비시냐크는 “러시아군들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자동차와 건물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냥 무법천지였다”고 돌이켰다. 러시아군이 철수한 뒤 아파트 4채가 러시아군의 폭격에 무너져 내렸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부차보다 희생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밝혔던 보로디얀카에는 폭격을 받아 무너진 아파트 잔해에 깔린 희생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게오르기 예르코 보로디얀카 시장 대행은 5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지하실 등에 대피해 있던 주민들이 실종됐으며 잔해에 깔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것은 가정이지만 2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의 약탈과 학살의 참상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 CNN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민간인들의 집을 자신들의 막사로 사용하며 집 안에 있던 술을 꺼내 마시고 상점을 약탈했다. 러시아군의 본부로 전락했던 시청과 공공기관 건물에는 외벽 곳곳에 러시아군의 상징이 된 ‘V’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자원봉사에 나선 주민들은 검게 그을리거나 총상을 입은 시신들을 수습했다. 우크라이나 언론 키이우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안토노프 공항 소재지로 침공 초기에 격전이 벌어졌던 키이우 북서쪽 소도시 호스토멜에서는 주민 400명 이상이 실종됐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현지 군무청장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혔다.포로로 붙잡혔던 우크라이나 여군들이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인권 옴부즈맨 류드밀라 데니소바는 “러시아와의 포로 교환으로 석방돼 돌아온 여군 12명이 감금 상태에서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면서 “벨라루스를 거쳐 러시아의 한 수용소로 이송된 이들은 남성들 앞에서 알몸 상태로 심문을 받고 머리카락이 강제로 잘렸으며, 러시아의 선전 동영상 촬영에 강제 동원됐다”고 폭로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청은 이날 기준으로 러시아군이 저지른 전쟁범죄 사건 4684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검찰총장은 “전쟁범죄 혐의가 있는 사건이 매일 수백 건씩 늘고 있다”면서 “잔학한 행위를 한 침략자 한 명 한 명이 정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지난 4일까지 어린이 123명을 포함해 민간인 1480명이 사망했으며, 마리우폴, 보로디얀카, 볼노바하 등 교전이 치열한 지역에서는 정확한 사상자 규모 파악이 어렵다고 밝혔다.
  • [STOP PUTIN] 1940년 러시아 카틴숲, 82년 뒤 우크라이나 부차

    [STOP PUTIN] 1940년 러시아 카틴숲, 82년 뒤 우크라이나 부차

    영화가 시작하면 1939년 9월 17일 안개가 걷힌 폴란드의 어느 다리 위다. 나치 독일의 침공에 밀려 동쪽으로 피란 가는 이들의 눈에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이들이 들어온다. 세상에나, 전쟁이 터졌는데 이쪽으로 달려오다니, 저 사람들 정신나갔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쪽에서 소련군이 침공해 피란 오는 이들이었다. 그 해 8월 23일 나치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 조약(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약)을 맺었다. 이를 빌미로 두 나라는 중간에 낀 폴란드를 마음껏 유린할 수 있었다. 나치는 커즌 선(線) 서쪽의 폴란드 땅을, 소련은 같은 선 동쪽의 폴란드 땅에 쳐들어갔다. 해서 앞의 다리 위에서와 같은 비극이 연출됐다. 폴란드 군은 소련의 공세에 압도돼 일찌감치 항복해 버렸다. 수천명의 장교가 포로 신세를 자처했다. 개죽음을 면해 훗날을 도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소련의 코젤스크·스타로벨스크·오스타슈코프 수용소에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장교들을 비롯해 경찰, 지식인, 엘리트 등 2만명을 훨씬 넘겼다. 그런데 나치가 1941년 6월 소련까지 침공했다. 폴란드 포로들의 행방이 묘연했다. 영국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가 육군을 재조직하느라 수소문했더니 중국 만주로 달아났다거나 중동으로 이송됐다는 등 소련의 해명이 엇갈렸다. 재조직된 육군의 소집에 응한 것은 448명뿐이었다. 소련에서 1942년 새로 창설된 폴란드 육군이 중동으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포로들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소련과 독일이 국경 획정을 놓고 입씨름을 한창 벌이던 1943년 4월 13일, 독일이 스몰렌스크 근교 카틴숲에서 커다란 무덤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시신들이 1940년 4월 이전 코젤스크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던 폴란드 장교들이라며 소련군이 그 다음달 포로들을 처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틀 뒤 소련 정부는 폴란드 포로들이 1941년 스몰렌스크 서쪽 건설공사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독일이 그해 7월 이 지역을 점령한 뒤 포로들을 사살한 것이라고 맞섰다. 카틴에서만 4400명의 시신이 나왔는데 민스크에서 3870명, 하리코우에서 3800명, 메드노예에서 6300명이 묻혀 있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인) 키이우와 헤르손에서도 학살극이 있었다. 1943년 4월 25일 소련 정부는 폴란드 망명정부와 단교했다. 폴란드가 조사해보니 소련 보안당국이 이들을 살려두면 폴란드 군이 재건돼 방해가 될 뿐이라는 독일 관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1940년 봄에 집단 처형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독일을 패망시키기 위해 소련의 협력이 긴요했던 영국과 미국 정부는 못 들은 척했다. 폴란드인들의 진상 규명 요구가 독일을 위협하는 연합전선의 대오를 흐트러뜨린다며 소련의 요구를 받아들여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폴란드와의 국경을 커즌 선으로 합의했다.폴란드의 명감독 안제이 바이다의 2007년 작품 ‘카틴’을 보면 실제 감독의 부친이 포로로 억류된 이후의 일들을 꼼꼼히 기록하는 폴란드 장교로 묘사돼 있다. 그의 모친은 다리 위에서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안나란 여성으로 그려진다. 수용소에서 카틴 숲으로 이송되는 버스로 향하던 장교들이 귀향하게 됐다며 좋아하다가 시체들로 가득한 구덩이를 보고 절망해 성호를 긋는 장면, 아무런 표정 없이 그들의 뒤통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소련군 병사의 표정이 사뭇 충격적이다. 폴란드 장교들의 참담한 운명도 운명이지만, 거의 2만 2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소련이 독일 패망을 앞당길 수 있다며 미국과 영국이 카틴숲 학살의 책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련의 주장대로 국경을 획정한 사실이 그야말로 어이없기만 하다. 소련이 진실을 고백하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1990년 고르바초프가 소련군이 이오시프 스탈린의 명령을 받고 저지른 집단살육이었을 뒤늦게 인정하고 사과했다. 영화에 많은 후원을 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학살 70주기인 2010년 스몰렌스크의 추모비를 참배하려다 항공기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것도 안타까움을 더한다.그런데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정부의 탈나치화를 목표로 침공(자신들 주장으로는 특별군사작전)한 러시아군이 지난달 30일 퇴각한 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부차, 모티진 등에서 두 손을 뒤로 결박당한 채 머리 뒤쪽에 총알 자국이 박힌 민간인 시신들이 “개들이 (흙을 파내)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로” 묻는 시늉만 한 채로 묻힌 사진이 여러 장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처형하듯 총격을 가한 것은 80여년 전 카틴 숲에서의 모습과 똑닮았다. 한 청년은 코와 눈이 모래 밖으로 훤히 나와 있을 정도로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도 차리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당국과 군이 조작, 연출한 것이라고 오리발부터 내미는 것도 80여년 전 소련 당국의 해명과 똑닮았다. 우리처럼 단일민족에 분단의 아픔을 겪은 폴란드, 망명정부가 얼마나 허망한지는 어느 시인의 시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원자력발전소는 있지만 핵무기와 핵물질 농축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당하고 있는 고통도 못지 않다. 힘없는 민족에게 닥친 불행은 되풀이된다, 이것이 교훈이라면 역사는 너무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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