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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자 1천5백명 추산 7백여명 한국망명 희망/김 대통령 밝혀

    김영삼 대통령은 12일 『현재 제3국에서 한국으로의 입국을 희망하는 탈북자가 7백명 가량 있다』면서 『그러나 정부는 이들을 무조건 받아들일수 없고 선별적으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낮 이북 5도지사와 도민회장단을 비롯한 이북 5도대표 2백32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정부는 북한을 탈출한 난민의 정착 지원을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으나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 『이들에게 수용소 생활을 시킬 수는 없는 만큼 이북 5도민들이 이들의 의식전환과 적응을 위해 적극 협조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을 탈출,중국과 러시아를 떠돌고 있는 탈북자는 1천5백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날 오찬에는 권오기 통일부총리,김우석 내무장관과 함께 현승종·강영훈 전 총리와 홍성철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이북출신 주요 인사 27명도 참석했다.
  • 페레스 “하마스 근거지 추적 공격”/연쇄 테러에 강경 대응

    ◎특별 군사령부 창설… 전권 위임/클린턴,「테러지원」 이란 제재 결정 【텔아비브 AP AFP 연합】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총리는 4일 회교 과격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테러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해 하마스의 근거지를 직접 공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레스 총리는 이날 또다시 텔아비브 번화가 대형 쇼핑센터 부근에서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최소한 13명이 사망하고 1백25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열린 긴급 각료회의를 마치고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근거지를 끝까지 추적해 파괴할 것이며 그들이 숨을 곳은 이제 없다』고 선언했다. 페레스 총리는 이같은 군사작전을 위해 하마스에 대한 특별 군사령부를 창설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이 사령부의 아미 아얄론 사령관은 군사행동의 전권을 행사할 것이며,이에 따라 테러분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군사적 공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건은 예루살렘에서 버스 폭탄테러로 19명이 사망한 지 하루만에 다시 일어난 것이며 지난달 25일 2건의 폭탄테러를 포함,9일동안 4차례의 폭탄테러로 60여명이 희생됐다. 하마스의 한 지도자는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에 전화를 걸어 이같이 말하고 이번 공격은 형제단체인 지하드와 합동작전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회교 테러단체 근거지에 대한 대대적 수색에 나선 이스라엘군은 이날 요르단강 서안의 파와르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 및 헤브론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 테러용의자 수십명을 체포했으며 예루살렘 교외의 아부 디스에 있는 대학교 기숙사에 대한 수색 작업을 펼쳤다. 【워싱턴 AFP 연합 특약】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자살폭탄테러와의 전쟁을 도와주고 자살폭탄테러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란을 격리시키기 위해 폭발물 탐지장비 및 전문가들을 파견하는 일련의 반테러 기술지원 조치를 취했다고 백악관 마이클 매커리 대변인이 5일 밝혔다. 이번 조치는 지난 4일 예루살렘에서 4번째 자살폭탄테러 공격이 있은 이후 나온 것이다. 매커리 대변인은 미국은 중동평화 정착을 위해 『이란을 격리시키기 위해 유럽국가들을 포함하는 반테러연합 결성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대 「이」 테러 중단 선언 【예루살렘 로이터 연합】 과격 회교단체인 하마스의 카삼 군사조직은 5일 조직내 정치지도자들의 촉구를 수용,이스라엘에서 자살폭탄 공격을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카삼 군사조직은 이날 팩시밀리로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 있는 예하 조직에 보낸 전문에서 『유태인을 향한 순교공격을 중단하기 위해 카사 지도부가 내린 중앙의 결정에 즉각 그리고 절대적으로 복종하라』고 명령했다. ◎「팔」 강·온파 내분… 통제력 상실/잇단 자폭테러 배경/“「이」 배제하면 평화정착 불가능” 현실론­온건파/지도부에 반발… 해외와 연계 독자행동­강경파 위태롭게 명맥을 유지해오면서도 조금씩 진전을 계속해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협정이 회교 과격단체 하마스의 연쇄폭탄테러로 또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문제의 본질은 평화협정을 받아들이느냐 여부를 둘러싼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극한대립.이스라엘 내부에서도 극우 과격단체들의 반발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더 심각한 것이 팔레스타인 단체내에서의 반발.이스라엘을 배제한 평화정착은 불가능하다는 지도부의 현실론에 반발하는 하부 행동조직이 지도부의 통제력을 무시한 채 잇단 테러를 자의적으로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특히 3월8일까지 정전하겠다는 하마스 군사조직인 「이제딘」의 제안과는 달리 자살폭탄테러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 이같은 분열을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예루살렘 지역 하마스 지도자인 자밀 하마미는 이와 관련,무장단체 대원들간에 「혼란」이 있음을 시인하면서 일련의 자살공격은 정치적 지도자들의 통제권 밖에서 활동하는 하마스 대원들에 의해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 3일과 4일 연이틀 계속 발생한 폭탄테러 이후 과격파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영향력을 점점 잃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과격파들은 이같은 모든 우려들을 무시한 채 레바논에 있는 과격 회교단체인 헤즈볼라와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아라파트와 화해하기보다는 이란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길을 추구하고 있다.이들 과격파들은 수단과 시리아에 있는 하마스 해외지도자들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와파통신의 간부인 지아드 압델 파타의 분석이다. 이스라엘과의 성전을 고집하는 해외지도자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과격무장세력이 건재하는 한 이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그만큼 중동평화의 길은 멀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극점 치닫는 북한체제의 모순/사토 가쓰미(해외논단)

    ◎엘리트층 망명 속출­지도부 대립 표면화/천문학적 군비지출로 경제난 타개 난망 김정일의 전처를 시작으로 북한엘리트층의 망명사건이 이어지고 있다.또 평양중심가,그것도 노동당 중앙위 건물을 마주보는 러시아대사관 내에서 총격전이 일어나는 등 주변국가의 긴장된 눈길이 이 나라에 쏠리고 있다. 북한이 식량·에너지 부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식량부족 소식이 처음 들린 것은 85년.그 이유는 84년의 수해 때문이라는 것이다.그 뒤 주의해서 보면 매년 수해의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 매년 수해가 발생하는 것은 76년 김일성의 명령에 따른 경지 확대운동으로 전국에 대규모 계단식 경작지를 조성한 때문이다.계단식 경작지에 토사저류지를 만들지 않아 비가 내리면 토사가 하천으로 흘러들어 하상을 서서히 상승시켰고 84년부터 하천의 범람이 시작됐다.지난해에는 강우량이 많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천재라기보다는 김일성 농업정책 실패에 따른 인재인 것이다. 게다가 김정일은 서울올림픽에 대항해 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거행했다.그들의 발표에 따르면 체육관,경기장,도로등 제반 시설 건설에 47억달러가 들었다고 한다.이 해 북한의 무역수출액은 15억6천만달러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생산을 저하시킨 것은 재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천문학적 군사비다.한국 통일원 등의 시산에 따르면 군사비가 북한의 GNP(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0년부터 오늘까지 가장 적었을 때가 20%,최고가 25%에 이른다.김일성부자정권은 한·미가 침략해올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사실은 적화통일하려는 군사력이다.그것은 노동당 공식문헌으로부터 쉽게 입증된다.또 그것을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한국에 대한 게릴라와 테러행위다. 이밖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개선문과 주체사상탑 등 재생산과 관계가 없는 분야에 거액을 낭비해 왔다.구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눈밖에 난 것은 십수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련에의 차관을 갚지 않고 중국에도 때때로 무역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추악한 콘크리트 대형건물을 잇따라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그 결과 농업,공장,철도,도로,통신,발전소,송전선,광산,항만 등의 시설이 노후화돼 대부분이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에 구조적 문제가 있어 이것이 식량문제로 나타났다는 점이다.구조적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권력자 김일성의 언동에 오류가 없어 2천만 국민이 김일성의 지시대로 움직이면 공산주의국가가 실현된다고 하는 전근대적인 개인신격화의 정치체제에 있다. 토사저류지가 없는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면 토사가 하천에 유입된다는 것은 농업토목의 전문가는 물론 농민은 전부 알고 있다.하지만 이같은 의견을 말하면 「반혁명분자」로 강제수용소에 집어넣어지거나 살해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할수 없게 된다.이런 공포상황이 전분야에 걸쳐 반세기동안 계속된 것이다.이같은 개인신격화 체제의 타파없이는 경제의 재건도 인간의 해방도 있을 수 없다. 엘리트층의 망명 및 지도부간의 대립도 공공연화하고 있다.이는 북한체제의 모순이 정점에 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독재국가가 붕괴할 때 폭력은 피하기 어렵다.문제는 폭력이 안으로 향하는가 밖으로 향하는가에 있다. 어느쪽이더라도 위기관리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북한군이 폭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 「인구 1% 정치범」 세계가 관심을(사설)

    통일원산하 민족통일연구원이 최근 펴낸 「북한의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정치범 숫자가 20만명에 이르고 지난 55년이후 강제 납북된 3천7백38명 가운데 4백42명이 아직도 억류돼있다고 밝힌 것은 충격적이다.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실태와 납북인사들의 숫자는 몇차례 단편적으로 보도된 바 있지만 이 백서는 6백여건의 국내외 관련자료와 최근 북한을 탈출한 귀순자들의 증언을 집대성한 최초의 공식보고서라는 점,그리고 북한의 인권상황을 심도있게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백서도 지적했듯이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예가 정치범수용소다.이곳의 참상은 부분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북한전체인구(약2천3백만명)의 약1%가 정치범이고 또 이들중 해마다 수백명이 가혹한 학대에 못이겨 죽어나간다는 사실은 우리의 가슴을 새삼 섬뜩하게 한다. 아무리 국제사회와 담을 쌓고 사는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수용소군도」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인류문명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그것도 먼나라의 얘기가아니라 우리와 한 핏줄을 나눈 북한동포들의 상황임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우리는 그동안 북의 핵개발을 저지하고 남북대화재개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명분아래 북한의 인권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이런 입장에 일리가 없는건 아니지만 이제는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반성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그런 점에서 공로명 외무장관이 지난해 9월 유엔총회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인권문제를 공식거론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현단계의 남북관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대화를 통한 신뢰회복과 인적·물적교류를 촉진하는 일이지만 이때문에 북한의 인권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납북인사들의 송환을 강력히 촉구하는 한편 북한동포들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개선을 요구하고 비판할 것은 주저없이 비판해야 한다.
  • 북 정치범 20만명 수용/통일원 「인권백서」

    ◎동구붕괴뒤 통제 강화… 배로 늘어/입북자 4백42명 억류 현재 북한내의 각종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수용인원은 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55년이후 강제납북돼 북한에 억류중인 남한출신 인사도 4백42명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일원 산하 민족통일연구원(원장 이병용)의 「북한인권자료정보센터」가 25일 발표한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북한내에서 82년 무렵까지 8개 정치범수용소에서 약 10만명이 넘는 인원이 종신강제노역에 시달려왔으나 80년대말 동구권 붕괴이후 내부통제가 강화되면서 수용소와 수용인원이 이처럼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혀졌다. 이 백서는 북한주민 사이에 「특별독재대상구역」 「이주구역」 「종파굴」등으로 불리는 이들 정치범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가혹한 대접을 받다가 죽어나가는 인원이 1개 수용소당 매년 수십명에서 수백명에 이른다는 첩보도 수록하고 있다. 수용소의 주요수용대상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 등 김일성·김정일체제 위해분자를 비롯해 당정책위반자·자유주의성향자·불순북송교포 등이며 특히 최근에는 해외탈출기도자와 해외실정 유포자도 수용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백서에 따르면 지난 55년이후 지금까지 강제납북된 것으로 확인된 남한인은 모두 3천7백38명으로 이중 3천2백96명만이 송환되고 아직까지 4백42명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억류자중에는 동진호 선원 12명을 비롯,어부가 4백7명으로 가장 많으며 해군 I­2정 20명,대한항공 피랍억류자 12명과 지난 78년 노르웨이에서 납치된 고상문씨와 87년 오스트리아에서 납북된 이재환씨,지난해 중국에서 납치된 안승운목사 등이 포함돼 있다. 백서는 이밖에 러시아 북한벌목공의 인권실태에 관해 『경제적 궁핍과 인권침해를 피하기 위해 95년말까지 수백명이 우리 공관에 귀순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전하고 『한때 1만5천명에 이르던 북한벌목공이 현재는 5천명수준으로 대폭 줄었다』고 덧붙였다.
  • 수용소 탈출기도 정치범 공개처형/통일원 「북한인권백서」 내용

    ◎정치범 수용소­5∼10곳… 매년 1곳서 40명 사망/시베리아벌목공­혹한·중노동속 월 10명꼴 숨져/강제납북자실태­55년이후 3천7백38명 납치 김일성·김정일체제의 북한이 인권의 완전한 사각지대임이 거듭 확인됐다. 통일원산하 민족통일연구원의 「북한인권정보자료센터」가 25일 펴낸 「북한인권백서」는 구체적 방증자료를 통해 북한주민의 열악한 인권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이 백서는 정부차원에서는 처음 발간된 북한인권실태에 대한 종합자료집이다.귀순자들과 제3국을 통해 수집한 북한인권실상과 국제인권단체에 흩어져 있던 북한인권관련 자료를 집대성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앞으로 매년 이를 보완,국내인권단체는 물론 유엔고등판무관실·국제사면위등 국제인권기관들의 인도적 차원의 북한인권개선 캠페인을 지속시키는데 필요한 객관적 자료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북한당국도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인권유린실태를 호도하기 위해 우리측에 대해 각종 역공작을 펴고 있다고 민족통일연구원측이 이날 밝혔다.이를테면 지난해부터 북한노동당의 외곽단체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약칭 조평통)서기국 명의로 남한인권백서를 펴내 국제기구들에 보내고 있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백서에 수록된 주요내용을 간추린다. ◇정치범수용소 실태=북한의 함남·함북·평남·평북등지에 5∼10개의 정치범수용소가 설치되어 있다.정치범수용소는 수용대상 및 죄질에 따라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완전통제구역」에 수용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출소가 불가능하다.각 수용소규모는 수용인원이 약 5천명에서 5만명으로 일부 수용소는 외부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지하감옥형태로 설치돼 있다. 김일성부자체제 위해분자와 당정책 위반자 및 자유주의 성향자,불순 북송교포들이 주요 수용대상이나 최근 식량난등 경제난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해외탈출기도자,해외실정 유포자들도 포함된다.수용자들은 일상적인 구타·고문 등을 당하고 있고 명령불복종자나 탈출기도자,규율위반자 등은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간혹 열악한 수용소환경을 참지 못해 탈출하다 체포된 자는 재판없이 공개처형되는데 그 숫자는 매년 1개소에 15∼20명정도 된다.수용소의 중노동을 이겨내지 못해 별도로 격리,방치되어 죽는 사람도 매년 1개 수용소당 40∼50명에 이른다. ◇시베리아벌목공 인권실태=북한은 한때 1만5천명선의 벌목공들을 러시아에 주재시켰으나 95년말 현재 약 5천명의 벌목공이 남아 있다.동절기의 경우 영하40도 이하로 내려가는 혹한속에서 하루 12시간의 중노동으로 한달에 10명꼴로 사망한다는 보고도 있다. 경제적 궁핍과 인권침해를 피하기 위해 95년말까지 수백명이 한국 공관등에 귀순의사를 타진해왔다.이중 95년까지 벌목공 40여명이 구소련지역으로부터 한국으로 귀순했다. 작업장내에서의 체제비판자,지시위반자,범법행위자,탈출시도자등은 「구류장」이라고 불리는 사설감옥에 재판없이 구금된다.탈출시도자등 중범죄는 가혹한 구타와 고문을 받으며 북한으로 송환시 다리를 구부리지 못하도록 무릎 위까지 족쇄를 채운다. ◇북송교포 인권실태=북송 재일교포들은 일본의 친지로부터 송금을 받는 일부를 제외하곤 일반 북한주민들보다 더 열악한 사회·경제적 대우를 받고 있다.지난 74년 1백여가구 6백여명이 요덕수용소에 처음 수용된 이후 많은 북송자들이 소원이나 항의를 제기하다 수용소에 보내지거나 공개처형됐다. 북한당국은 조총련 간부나 상공인출신 북송가족을 인질로 삼아 이들의 재일 가족들을 「자금원」으로 확보하고 있다.북송교포들이 재일 친척과 상봉하기 위해서는 5천만엔이상의 현금이나 물품이 필요하다.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인사의 석방을 위해서는 5천만∼1천억엔이상의 기부금이 요구된다.북송 일본인 처들을 위해 일본의 민간단체가 매년 4백50∼6백여상자의 구호품을 보냈으나 88년 약 70%가 이를 받았다는 답장을 보내왔으나 90년이후 답장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납북억류자 실태=지난 55년이후 지금까지 강제 납북된 것으로 확인된 남한인은 모두3천7백38명으로 이중 3천2백96명은 송환됐다.그러나 지난 79년 노르웨이 연수중 북한 공관원에 의해 납치된 고상문씨와 95년7월 중국 연길에서 선교활동중 강제납치된 순복음교회 안승운목사등을 포함해 현재총 4백42명이 억류돼 있다.억류자의 대종은 동진호 선원등 4백7명의 어부들이다. 이들중 KAL기 스튜디어스였던 성경희와 정경숙등 일부 납북자들은 대남방송등에 활용되고 있으며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는 나머지 대부분이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됐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 「내인생…」 출간 전 구세군사령관 김석태씨(인터뷰)

    ◎“남북한 형제들 서로 용서하고 회개해야” 『70 평생을 살면서 민족과 민족간의 갈등도 체험했고 사상과 사상의 치열한 싸움도 경험했습니다.이제는 민족의 통일을 위해 남과 북이 서로 회개하고 용서하는 운동을 펴 성경의 야곱과 에서 같은 형제의 만남이 이 땅위에서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김석태 전 구세군 전사령관은 살아온 이야기 「내 인생,내 마음대로 할 수 있나요」를 도서출판 홍성사에서 출판했다. 신국판 2백20쪽의 이 책에는 김 전사령관이 일제치하에서 20년,북한공산주의 제도아래에서 5년,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의 3년,그리고 한국의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42년등 70평생을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대로 살어온 생활을 진솔하게 간증하고 있다. 김 전사령관은 『남쪽으로 내려올 때는 길어야 2∼3년이면 다시 가족을 보리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버렸습니다.이제는 원수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리고 오직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라며 민족의 용서와 회개를 강조했다.그는 『남과 북이 통일 되어 부강한 나라를 이룬 뒤 자선냄비를 모두 합쳐 또 다른 세계의 불우한 이웃을 돕자』고 제의했다. 1천만명이 넘는 우리나라 기독교 신도중 구세군 신도는 1%에 불과한 10만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세군 신도들은 겨울철의 자선냄비와 함께 어느 자리에서건 열심히 봉사하는 집단정신을 보이고 있어 눈에 뜨인다. 구세군의 집단 봉사정신은 구세군의 교단 지침이 「마음은 하느님께,손은 이웃에게」라는 표어에 따라 김 전사령관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오랜세월을 청빈하게 모범적으로 살아오면서 구세군의 고결한 정신을 신도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전하고 있다. 그는 『구세군 사관은 배가 고프면 흰돌을 먹을지언정 검은 돈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 “머리에 총탄1발”유일한 증거/평양의 「망명총성」­과연 자살일까

    ◎망명불허는 곧 죽음… 스스로 선택한듯/“신병인도­사살­자살” 잇단 번복에 의혹 평양주재 러시아 무역대표부에서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던 북한의 조명길 하사가 러시아정부의 발표대로 자살했는지 아니면 북한군 특수부대원에 의해 사살됐는지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러시아 대사관에 불법침입한 북한군인이 자살한 것으로 이번 사건은 모두 마무리됐다』고 밝혔다.외무부의 카라신대변인은 『자살한 북한인은 자신들의 경비병을 쏘아 죽인 현행범임을 들어 북한당국에 인도하는 것이 순리였다』고 지적하고 정확한 자살경위등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했다. 그러나 이타르타스통신은 조하사가 북한 특공대에 의해 사살됐다고 당초 보도했다.실제로 평양 러시아대사관의 허용아래 북한군이 개입,문제의 군인을 사살했다면 여기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러시아 정부가 정상적인 절차없이 망명을 요청한 한 군인을 희생시키는데 동의했다는 얘기이며,이는 국제인권관례에도 크게 어긋나는 행위라고 보여진다.만일 러시아가 문제의 북한인의 신병을 북한당국에 인도하고 더 이상의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러시아로서는 비교적 「매끄럽게」일을 처리한 셈이 된다. 러시아당국은 『우리는 그가 생명을 앗아간 범인이기 때문에 15일 상오 10시 30분(한국시간)그를 북한당국에 인도했다』는 내용의 짧막한 성명을 발표,조하사가 북한에 인도된 뒤 죽었음을 시사했다.말하자면 인도즉시 현장에서 사살됐거나 본인이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이타르타스통신은 15일 상오까지도 러시아대사관의 허용에 따라 북한특공대가 대사관에 진입,그를 사살한 것으로 보도했다.이타르타스통신은 잠시후 다른 외무부 소식통을 인용,『그가 자살했다』고 보도했다.바로 이 점이 석연치 못하다는 것이다.이타르타스통신측은 『기사에서 인용한 소스가 틀려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서 『자살한 것같기도 하다』고 얼버무렸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에 앞서서도 여러사실들의 발표를 발빠르게 바꿔나갔다.즉 14일 외무부관계자들은 『그가 러시아대사관을 무력으로 침입하면서 북한경비병을 죽였다』고 말해주었다.그러나 이 말은 14일 밤부터 바뀌기 시작했다.문제의 북한군인이 국가보위부 소속으로 수용소의 경비병이었으며 그가 러시아대사관으로 침입하기전에 이 수용소를 탈출하면서 이미 수용소의 경비병을 사살했으며,이는 엄격한 『북한 현행법을 어긴자로』「탈영병」이라고 강조했다.러시아외무부의 이같은 설명은 그대로 믿기가 어렵다.현장의 유일한 목격자들이 러시아대사관직원들이며 바로 러시아대사관 영내에서 모든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그렇기때문에 뭔가 러시아 정부가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러시아 정부가 사실을 은폐하려한다면 이는 「북한과는 북한식으로,한국과는 한국식으로」라는 식의 외교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 일을 확대해 북한당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조하사가 머리에 단 한발의 총탄을 맞아 사망했다는 것은 자살의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북한 특공대가 죽였다면 온몸에 벌집을 내며 사살했을게 아니냐는것이다.그러나 이 역시 현장 상황을 정확히 목격하지 않고서는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다른 관측통들은 평양으로부터의 여러 정보를 종합할 때 문제의 북한인은 『북한특공대가 사살했거나 아니면 자살을 유도한게 분명하다』면서 『이럴 경우 사살과 자살유도와는 도덕적책임면에 큰 차이가 있을수 없고 다만 외교적 법적 책임문제를 따질때만 문제가 달라질것』이라고 주장한다.
  • 평양의 「망명총성」­러 대표부 진입서 자살까지

    ◎29시간만에 막내린 망명의 꿈/14일 새벽 「김정일 축제」 허점 노려 결행/「러」 신병인도 조기결정에 “최후의 결심” 북한청년 조명길하사가 미명에 잠든 평양거리의 심장부를 뚫고 높이 2m의 러시아대사관 담장을 넘은 것은 14일 새벽 5시35분.북한의 최대경축일인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생일축제를 불과 이틀앞둔 시간이었고 김정일의 집무실을 바로 지척에 둔 곳에서,그것도 불과 30m 간격으로 경비병이 배치된 삼엄한 경비망을 뚫은 것이다.진입과정에서 그는 소지한 권총1정으로 현장의 북한군경비병과 총격전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3명의 북한군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했다.일단 공관에 무사히 도착한 그는 곧바로 대사관구역내에 위치한 무역대표부의 1층사무실로 뛰어들며 『정치적 망명』임을 외쳤다.지상유일의 스탈린국가의 심장부에서 드디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순간이었다.『쫓기고 있다.정치적 망명을 하려니 도와달라』고 그는 러시아공관원들에게 호소했다. 곧바로 북한경비병 수십명이 그를 뒤쫓아 대사관 주변을 에워싸는 가운데 러시아당국은 사태파악에 들어갔다.평양주재 파디예프러시아대사가 달려오고 곧바로 그와 협상을 시작했다.러시아측은 총기반납을 종용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며 『망명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며 이를 거부했다.사건발생 1보부터 평양밖으로 나오는 유일한 뉴스원인 이타르­타스통신은 그가 침착한 태도로 러시아관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러시아대사관이 제공하는 식사를 먹었다고 타전했다.극도의 신변불안에 떠는 조는 러시아측 대표가 항상 자기곁에 함께 있어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다.모스크바의 러시아당국은 긴급대책논의를 시작했다.체르니예프 러시아외무차관이 인테르팍스통신과의 회견에서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힘에 따라 크렘린이 일단 그를 정치적 망명요청자로 대우하는 것 같은 기대감이 퍼져나왔다.이후 모스크바로부터 갖가지 엇갈린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57년 옛소련과 북한사이에 맺어진 범인인도협정이 유효하기 때문에 조가 북한측으로 넘겨질 것이라는 설과 인도적인 고려와 국제관례가 무시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섞인 설이 교차됐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러시아측은 당초예상보다 일찍 조의 신병인도를 결정했다.북한측에 이같은 결정이 전달되자 곧바로 북한 사회안전부 요원 10여명이 대표부안으로 진입했다.러시아 공관원들이 자리를 피한 가운데 조는 10여명의 특수부대원과 단신으로 마주하게 된다.그리고 그의 숨을 멈추게 한 1발의 총성.15일 상오 10시 30분.한반도 전역을 전대미문의 불안감 속으로 몰아넣은 이 사건은 발생 29시간만에 이렇게 막을 내렸다.타스통신은 특수부대가 진입하면서 그가 사살됐다고 보도했으나 몇시간이 지난후 자살로 바꾸어 보도했다.이어 러시아정부도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러」 외무부 대변인 일문일답/“범죄자 인도 마땅한 처사”/자수·무장해제 수차례 요구 거절/평양당국­대사관 「작전」 긴밀협력 그리고리 카라신 대변인은 15일 하오 외무부 회견실에서 정례회견을 갖고 조명신하사사건과 관련한 러시아의 입장을 밝혔다. ­침입과정은. 『14일 아침 그가 러시아 대사관 영내,무역대표부를 무장한채 무단침입했다.그는 『나는 네사람을 죽였다』고 말해주었다.나중에 세사람이 죽고 한사람이 부상당한 것을 알게됐다.그는 자신이 수용소의 초병이라고 했다. ­어떻게 자살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더 조사를 해야한다.그는 북한당국에 자수를 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거절했다.그래서 우리는 북한당국과의 긴밀한 협의하에 특공대의 영내진입을 허락했다.특공대의 작전과정에서 그는 자살했다』 ­협의를 진행하면서 특공대를 불러들인 것인가. 『범인은 협상의 진행과정에서 무장해제를 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우리는 북한정부와의 협의하에 특공대를 불러야 했다』 ­왜 정치적인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안된다.그는 범죄자이다.러시아 정부는 그를 정치적망명요청자로 받아들일수 없었다.러시아 대사관측과 북한당국,그리고 러시아외무부는 이번 작전전에 긴밀한 협의를 벌였다』 ­투입특공대의 규모는. 『알 수 없다.다음에 가르쳐 주겠다』 ­그의 자살시간을 알려줄 수 있는가. 『알 수 없다.다음에 가르쳐 주겠다』 ◎모스크바 한국대사관 표정/돌발사태 대비 대책반 확대 가동 ▷모스크바 한국대사관◁ ○…한국대사관측은 이날 상오 정화태 대리대사 주재로 북한상황전반에 대한 채널을 점검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 특히 대사관측은 이번 문제가 러시아와 북한간의 문제로 한국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판단아래 일단 러시아 외무부와의 다각적인 채널을 점검하고 관련정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일단 인명이 희생됐다는 점은 유감스런 일』이라고 밝히면서도 향후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사태결과에 대해서는 논평을 자제하는 등 신중한 반응을 보이기도. 대사관의 다른 한 관계자는 『조하사의 자살소식도 이날 상오에 러시아측으로부터 전달받는등 비교적 빨리 우리 정부에 전달됐다』고 전하고 『성혜림씨 사건등 최근 남북한 관련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 때보다 러시아와의 협조가 긴밀히 이뤄지고 있다』고 자평. 현재 한국대사관측은 남북한이 동시에 수교하고 있으며 대사관이 있는 모스크바의 특수성을 고려,북한의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한 대책반을 이날부터 확대가동.
  • 생활 적응 못하는 귀순자 많다/김형덕씨 밀항기도 계기로 본 실태

    ◎제도적 지원불구 체제차이로 방황/사기피해 늘어… 자활의지 부축해야 북한을 탈출한 귀순자들 가운데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94년 9월 귀순한 김형덕씨(22)가 거액의 외화를 갖고 중국으로 밀항을 기도하다 7일 적발된 사건도 대표적인 사례이다.김씨는 『남한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괴로웠고,북에 있는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다.심지어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90년 들어 지금까지 귀순한 북한동포는 모두 1백26명.한 때 러시아에서 일하던 벌목공들이 혹독한 여건에 못 견뎌 「귀순러시」를 이룬 지난 94년에는 48명이 자유를 찾아왔다.70∼80년대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체제가 크게 흔들리며 굶주림과 불안감으로 귀순자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귀순자가 늘어나자 정부는 지난 94년 12월 그동안의 각종 특별보상금을 주던 「귀순용사」를 「망명동포」로 격을 낮추고 한때 선별입국의 방안까지검토했다.이들에게는 월 최저생계비의 20배에 해당하는 「정착금」을 지원하는데,그나마 예산이 넉넉치 못해 지급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 보건복지부의 귀순동포 지원예산은 30여명분으로 1인당 4백90만원선이며 별도로 주거 지원비가 8백40만원선이다.이밖에 안보강연회 등에서 강연료 등을 벌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 문제가 아니다.체제의 차이에서 느끼는 심리적 갈등이 훨씬 더 크다. 경제감각이 익숙지 않아 사기를 당하는 일도 많다.북에 두고온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폭음을 하는 등 생활이 흐트러진다. 지난 해 9월 충북에서 데이트하던 남녀를 공기총으로 쏘아 중상을 입히고 총을 맞고 쓰러진 여자를 성폭행해 경찰에 구속된 신광호씨(28·충북 음성군 음성읍)는 국민들에게 크게 충격을 주었다. 또 기관원을 사칭해 사채업자를 납치,폭행하고 금품을 뜯다가 적발된 이모씨(39),술을 마시고 파출소 기물을 부순 혐의로 구속된 김모씨(37)등도 우리를 안타깝게 한 사례이다. 물론 적응에 성공해잘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지난 87년 일가족을 이끌고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았던 김만철씨(56)는 장남 광규씨(30·토지공사 근무)를 결혼시키고 경남 해남에서 양로원과 노인병전문진료소 등을 개설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고 있다. 그 역시 송아지를 수입해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1억1천여만원을 사기당한 일이 있다. 나이가 어린 귀순자들은 남한에 와서 대학진학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91년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탈출해 귀순한 안혁(28),강철환씨(28)는 귀순 이듬해 한양대에 입학했고 89년 귀순유학생 전철우씨(28)는 한양대를 졸업하고 최근 개그맨으로 데뷔,김용씨(49)에 이어 연예인으로 활약한다. 정부 관계자는 『몇푼의 정착금보다 자활의지를 키워주고 우리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을 다각적으로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 한적의 「임시 수용소 계획」 안팎

    ◎탈북사태 “바라진 않지만 대비는 해 두자”/정부선 북 자극 우려… 민간차원 준비/「귀순자 보호」 등 관련법 손질 시급 최근 잠비아 주재 북한외교관 현성일씨를 비롯해 귀순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장기적 탈북자 수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6일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제안을 내놓았다.민주평통자문회의가 이날 개최한 통일문제토론회에서 이병웅한적사무총장이 『한적이 대량 탈북자 발생시 한강 이북의 초·중학교 시설 2백70개를 임시수용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사실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방안에 대해 한적측은 『정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아이디어차원』이라고 스스로 의미를 평가절하했다.정부측도 『민간기구인 한적 차원에서 탈북자가 급증할 경우에 대비한 자체 구호대책일 뿐 정부 방침과는 무관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이같은 자세의 저변에는 북한당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깔려 있다.교류협력의 확대를 통해 점진적인 평화통일을 이룩한다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표방하는 정부로선 자칫 흡수통일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 자체가 아무런 실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측의 「의지」와 관계없이 북한이 개혁·개방이라는 세계사의 대세에서 낙오,스스로 붕괴하는 사태를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 경우 그 단초는 대규모 탈북사태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정부 차원을 넘어선 범국가적 수준의 사전 대책수립이 불가피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한적측이 밝힌 탈북자 수용대책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바로 그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수순일 수 있다. 과거 서독측도 베를린과 기센 두곳의 국경부근 도시에 긴급수용소를 설치한 사례가 있다.이 수용소에서 2∼7일간 머무르는 동안 간단한 정착안내를 받아 서독내 11개주로 분산 배치됐던 것이다. 물론 현재 북한체제가 당장 붕괴할 정도의 위기상황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이후 탈북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사실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판단의 연장선상에서 「귀순북한동포보호법」등 관련 법제도를현실에 맞게 고쳐야 된다는 지적이 많다. 93년에 제정된 이 법의 적용대상자는 현재 70명 정도이나 앞으로 귀순자가 급증할 경우 당장 재정부담 문제가 관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 경기하강 빨라지고 있다/12월 산업활동동향

    ◎생산증가 22개월만대 6%대 하락/재고증가율 15.4%… 3년만에 최고 경기 하강이 가속화되고 있다.12월중 전년동기대비 산업생산 증가율이 1년10개월만에 최저치인 6%대로 떨어졌고 재고증가율은 3년5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30일 발표한 12월중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2월 산업생산은 경공업부문의 부진에다 전기기계 석유정제 등의 내수부진과 기계장비의 수출감소가 겹쳐 지난해 12월보다 6.9% 늘어나는데 그쳤다. 산업생산 증가율이 6%대로 떨어지기는 94년2월(1.8%)이후 1년10개월만이며 지난 7월 14.9%에서 5개월째 둔화세를 지속했다. 이에 따라 4·4분기의 산업생산증가율은 8.2%로 3·4분기의 13.1%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호황을 주도해온 중화학공업의 생산증가도 10월 12.9%,11월 10.2%,12월 10.1%로 둔화됐고 경공업 생산은 12월중 3.9%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80.7%로 11월에 비해 1.1%포인트 감소하면서 94년 7월(78.8%)이래 최저를 나타냈다. 재고증가율은 전년동월대비 15.4%로 92년7월(16.6%)이래최고를 기록했으며 출하증가도 7.2%로 둔화세를 계속했다. 국내기계수주와 건설경기 선행지표인 건축허가면적은 각각 11.4%와 10.4% 감소했다. 도소매 판매증가와 내수용소비재 출하만이 8.8%와 8.5%로 11월의 6.7%와 6.6%에 비해 늘었다.실업률은 11월과 비슷한 1.8%를 기록했다. 평균 6개월 후의 경기상황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는 1백43으로 11월에 비해 0.3포인트 감소했고 현재 경기의 상승 또는 하강상태를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4로 11월에 비해 0.5 감소,경기하강 추세를 보여줬다. 조휘갑통계조사국장은 『최근 경기가 경제지표상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년동기의 호조세에 대한 상대적 효과 등을 감안할 경우 그렇게 낮은 수준이 아니다』면서 『경기연착륙 여부는 1,2월 동향을 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무진장한 광물 마가단주(시베리아 대탐방:61)

    ◎매장량 1백t 넘는 금광 곳곳에/다이아몬드·백금 빼고는 모든 광물 존재/교통·기후나빠 금·은·동 등 고가품만 캐내/32년 죄수동원 금광 개발… 연80t까지 생산 극동 시베리아의 우상귀끝에 위치한 마가단주는 자원의 보고다.블라디미르 바닌 마가단주 자원담당 부지사는 『마가단주에는 다이아몬드와 백금만 빼고는 없는 광물이 없다』고 말문을 열면서 마가단주가 사상 최초로 95년 외국회사와 금생산 합작기업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마가단 동북쪽 1천㎞ 지점에 위치한 매장량 1백t인 쿠바카지역의 금광 개발을 위해 미국회사와 합작해 총 2억달러를 투자,96년말부터 연 9t씩 생산할 예정이다.마가단 동북쪽 4백㎞지점의 줄리에타지역에도 영국·캐나다사와 합작으로 모두 5천만달러를 투자,97년말부터 연간 3.5t씩 금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앞으로 외국과 합작할 대상도 두곳이 남아 있다고 바닌부지사는 상세히 설명했다.1백t의 금이 매장돼 있는 나타오카지역에 2억5천만달러를 합작투자하면 연간 8∼10t을 생산할 수 있고,은이 4만t이상 매장된 두카트지역에는 총 8천만달러만 투자하면 연간 1천t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외국기업과 첫 합작개발 바닌부지사는 『예전에는 연방당국이 일방적으로 싸게 책정한 가격으로 전량 매입했지만 최근 대통령령이 개정되어 이제는 런던금속시장 가격으로 사가고 외국합작기업에는 대금의 50%를 달러로 지불한다』면서 『법적으로 잘 돼있어서 합작기업이 앞으로 잘 될 것』이라고 은근히 투자를 권했다.얼마전 만난 LG 관계자가 은개발기술을 안다고 하길래 투자를 권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가단주에는 광물매장량은 풍부하지만 철도가 전혀없고 북쪽의 교통과 기후가 나빠서 금·은·구리·건축자재 등 고가품만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다.금광석이라도 1t당 금함유량이 15g이상 되지 않으면 개발하지 않는다. 금생산은 70년대 중반 최고 80t까지 기록하며 러시아 최고를 자랑했지만 그후 사금 고갈로 점차 줄어들어 94년에는 사하공화국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는 금 28t,은 70t 생산에 그쳤다.세계적으로 금생산중 광석과 사금비중이 9대1이지만 러시아에서는 거꾸로다.그러나 앞으로 사금 비중은 점차 줄고 금광석을 캐내는 비용은 그만큼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금광을 직접 가보고 싶었으나 너무 멀고 교통편이 나빠 뜻을 이루지 못했다.최소한 수백㎞이상 떨어져 있고 교통도 좋지않아 육로로는 가기 어렵고 비행기로 가야 하는데 비행기가 1주일에 1∼2편 정도만 운항하기 때문에 한번 가면 4∼7일을 그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사금채취는 하천이 결빙되기 전인 10월중순부터 이미 작업을 중지했단다.짧은 취재일정을 효율적으로 쪼개써야 했던 취재팀은 고민끝에 결국 금광행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주청사 옆에는 마가단 최대 금광회사인 북동채금합동총회사가 있었다.금생산이 마가단의 70%,러시아전체의 20%를 차지한다.블라디미르 쿨핀 부사장은 『유공에서 각종 기름도 구입하고 삼성에서 생필품도 6백만달러어치 구입했다』고 한국기업과의 관계를 과시하면서 『기계가 노후해 많이 교체해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기후여건이 안좋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도 1.5배이상 줘야 하고,연방정부의 금매입가격은 좋아졌지만 기름·전기·물값 등이 비싸져 이익은 많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광석보다 금이 더 많아 1928년 마가단에서 금이 발견돼 32년부터 캐내기 시작할 당시에는 죄수들의 강제노동에 의존했다.지식인 등 트로츠키주의자들 위주로 1백여명의 정치범및 일반죄수들이 32년 2월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편으로 이곳에 도착,콜리마지역으로 간 이래 죄수수는 이듬해 2만7천여명 등으로 급속히 늘어났고 세보스틀락 등 곳곳에 수용소가 늘어만 갔다.죄수수에 비례해 금생산도 늘어 32년 5백㎏에 불과했던 데서 40년대 초반 몇년간은 80t으로 절정을 이뤘다. 지하 수m 깊이의 하천바닥에 퇴적돼 있는 사금층을 채굴하려면 영구동토인 지표면을 파내야 한다.요즘이야 준설기와 불도저 등 중장비를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화약의 힘만 빌릴 뿐 인력에 의존해야 했으니 당시 강제노동이 얼마나 가혹했는 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계 교포 1백명 거주 53년 3월5일 스탈린이 73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자 정치범들이 대거 석방되고 수용소도 잇따라 없어졌다.53년 12월 마가단주가 설치됐다. 시외곽의 마가단주 박물관 3층에는 수용소실이 있다.개혁·개방정책을 계기로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91년 설치돼 5년간 시한부로 운영된다.이 전시실에는 당시 사진과 기록,강제노동장비 등이 보관돼 있다. 전시실 담당인 나제스타 훼도노바(여·51)는 『죄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아깝게 강제노동시켰던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근 지질박물관에는 마가단에서 나온 수백종의 광물이 전시돼 있다.32년 첫해에 콜리마금광에서 나온 사금과 22㎏짜리 순금덩어리,소 위장에서 나온 금도 보관돼 있다. 마가단 시내에는 한국계 교포가 1백여명 살고 있다.강제로 끌려온 한인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식 이름의 식당도 두곳 있다.그중 도라지식당에 갔더니 타슈켄트에서 온 30대 후반의 한국계여인이 운영하고 있었다.교포3세라서 한국말은 인사말정도밖에 못한다.음식도 국수와 밥정도 말고는 거의 러시아음식에 가깝다. 이 여인의 시아버지인 박재욱씨(70)를 식당에서 만났다.박씨는 신의주 학생의거에 가담했다가 46년 러시아로 끌려와 스탈린 사망 이듬해인 54년 석방되기까지 8년간 건물·도로 건설및 광산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같은 민족을 이역만리 러시아 땅으로 보내는 냉혈한이 이세상 어디에 있겠느냐』고 북한당국에 대한 원망을 삭이지 못했다. 박씨는 『이곳은 1년 열두달 모두가 동지달』이라고 추운 날씨를 설명한 뒤 시내건물들을 가리키면서 『저 건물은 한인들이 지었고 이 건물은 일본군 포로들이 지었는데 먹을 것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하루 16시간씩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죽고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쓰라린 기억을 되살렸다. 북극에 가까운 마가단에는 해가 낮게 뜬다.그래서 한낮에도 그림자가 실물보다 1.5배이상 더 길다.마가단주는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만큼이나 어두운 과거의 부담을 안고 어렵사리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었다.
  • “굶주린 북한군 차라리 전쟁 바란다”/귀순 3인 합동회견

    ◎집단농장 아편재배 외화벌이/교화소는 생지옥… 고문 예사로 북한군 병사로 배고픔과 무리한 전쟁준비를 견디지 못해 한달전인 지난해 12월23일 귀순한 최광혁하사(25)는 25일 『지든 이기든 96년엔 무조건 전쟁이라는 독려속에 대부분의 북한군 하전사들은 배가 너무 고파서 남한과 한번 붙어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북한군 1군단 69포병여단 1대대 통신병으로 근무하던중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최하사는 이날 상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난해 12월13일 중국을 거쳐 귀순한 이순옥씨(49·여)와 아들 최동철씨(29)와 함께 가진 합동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회견에서 이순옥씨는 87년 11월부터 5년 동안 「국가재산 탐오죄」라는 누명을 쓰고 평남 개천교화소에 수용된 뒤 그곳에서 받았던 인간이하의 고문과 수용소 생활을 폭로했다. 특히 이씨는 교화소생활을 「땅위의 생지옥」이라고 표현하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임신한 여죄수들에 대한 강제유산과 태아 살해실상 등을 자세하게 진술,큰 충격을 주었다. 또 이씨와 함께 북한을 탈출한 최동철씨는 어머니 이씨의 죄로 다니던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퇴학 당한뒤 88년 4월부터 6년동안 함북 온성군 담배농장에서 농장원으로 지내며 경험한 북한의 아편재배 실태 등을 털어놓았다. 이씨는 『경작된 아편은 외화벌이를 위해 홍콩·일본과 중국교포들에게 밀매된다』며 『주민들은 밭에서 아편을 훔쳐 고위당원에게 뇌물로 바치거나 말아서 몰래 피우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 정치범 11개 수용소에 20만명 복역/북한 탈출 3인 일문일답

    ◎“96년안에 무력통일 된다”… 군사훈련 강화/작년 10월 노란부대 쌀 배급… “남한산” 수군 ­귀순동기는. ▲이순옥=나는 함북 온성군 상업관리소 간부물자공급소 책임자였고 남편 최정학(56)은 온성남자고등중학교 교장이었다.85년 10월쯤 옷감구입을 위해 중국에 다녀온뒤 온성군 안전부장 김병준이 아들 혼수용 양복을 상납하라고 요구,불응하자 「국가재산 탐오죄」라는 누명을 씌워 13년형을 받고 평남 개천교화소에 수감됐다.6년간 갖은 고초를 겪다 출소한 뒤 충성으로 섬겨온 중앙당에 억울함을 호소했더니 오히려 재수감하겠다고 협박하고 남편과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던 아들마저 모두 쫓겨나 그 동안의 믿음이 사라져 죽더라도 외아들인 동철이만은 자유롭고 보람된 곳에서 살게 하고 싶어 탈출을 결심했다. ▲최동철=평소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아 몰래 들은 남한방송을 통해 경제가 발전되고 자유로운 남한사회를 동경하게 됐으며 김일성대학의 학생들 수준이 너무 형편없어 실망을 하고 있던중 어머니의 누명으로 강제 퇴학당했다. ­아편 재배실태는. ▲최동철=91년부터 담배농장의 부업토지의 아편재배 현장에서 근무했다.북한은 「도라지(양귀비)를 심어 생활필수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전국적으로 아편농장을 운영,외화벌이에 나섰다.안전원들의 철저한 감시속에 대규모로 재배되며 주로 홍콩·일본 등지에 밀반출되거나 중국교포들과 생필품을 직접 바꾸는 밀매가 성행하고 있다고 들었으며 재배중인 아편을 몰래 뜯어 당간부에게 뇌물로 바치거나 몇몇이 모여 몰래 피우기도 한다.최근에는 중독자도 크게 늘었다고 들었다. ­당간부의 부패실태는 어떤가. ▲이순옥·최동철=어려운 식량사정에도 불구하고 당간부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어 최근 빈부차가 더욱 극심해 졌다.고위간부인 1호간부는 한달에 육류4㎏·기름 3㎏·담배 30갑이 지급된다. 몰수당한 우리재산이 중앙당에 귀속되지 않고 컬러TV는 형을 내린 재판장이,냉장고는 검사가,자전거는 도안전원이,외투는 감찰간부가 중간에서 차지한 것에서 부패의 실상을 알았다.「당일꾼은 당당하게먹고,안전원은 안전하게 먹고,보위원은 보이지 않게 먹는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정치범의 숫자 등 실태는. ▲최동철=함남·북지역에만 11개의 정치범 수용소가 있었다.한 관리소에 2만여명이 수용된 것으로 미루어 20여만명이 있는 것 같았다. ­북한 교도소내의 인권실태는. ▲이순옥=인간 이하의 처참한 생활이다.개천 여자교화소의 경우,수용능력은 6백명정도이나 80년대 중반이후 사회범죄가 크게 늘어나 1천8백∼2천여명까지 수용하고 있었다.나는 수용소에서의 고문으로 이 4개가 부러졌고 수용생활 중 입이 돌아가고 허리와 다리 통증이 심해 거동도 할 수 없었으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 ­북한군의 갱도적응훈련이란. ▲최광혁=지난해 12월 두차례 실시했다.많은 용도의 갱도 가운데 남한으로 통하는 것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1개 군단의 2개 연대가 합동으로 갱도공사를 하는 것을 보았고 전쟁준비와 관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핵·화학무기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최광혁=핵무기를 직접 본적은 없지만 남한에 핵무기가 많으니 우리도 핵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특히 간부들은 지구를 깨뜨릴 수 있는 무기가 있으니 신심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최광혁=지난해 10·11월 평소와는 달리 노란부대의 쌀이 1차분 들어와 남한쌀이란 수군거림이 있었다.휴가를 가도 직접 얼굴을 보이기 전에는 배급을 주지 않는다.이대로 가면 곧 폭동 등 변화가 예상되는 분위기다. ­북한군의 사기,특히 김정일 체제이후의 상황은. ▲최광혁=최근 식량난과 보급품부족으로 하사관들의 사기가 낮다.하루 식량배급량이 8백g이지만 수송도중 간부들의 편취로 6백50g정도밖에 안되고 부식도 시래기국·미역국·염장무 3쪽정도가 고작이다. 지휘관들은 『96년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이제는 무력통일이다』라며 훈련을 강화하고 작년 11월에는 『조국통일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무기관리를 잘하라』는 말도 들었다. ­김일성 종합대학의 입학자격과 생활상은. ▲최동철=출신성분이 좋은 중앙당 간부의 자식들은 공부를 잘 못해도 입학하고 학교생활에 별 문제가 없다.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실력은 너무 낮다.27살에 입학하는 제대군인의 경우 수학과 영어 기초가 모자라 예비반을 만들어 가르친다.정치사상에 대한 교육이 많고 모내기와 건설사업,행사에 동원되는 일이 너무 많아 전공을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다. ◎이순옥씨,북 교화소 실상 폭로/“신생아 태어나면 즉시 살해·암장”/우는 여죄수는 7일간 독방에 수감/물고문에 화로 고문… 억지 자백 강요/수형자 거의 영양실조… 흙까지 먹어 25일 귀순자 3인의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정치범과 일반죄수들은 인간 이하의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순옥씨는 우리로 치면 구치소인 함북 청진 농포집결소와 교도소인 평남 개천 사회안전부 제1교화소에서 자신이 6년 2개월동안 겪은 참상을 폭로했다. 이씨는 지난 86년 10월 농포집결소에 수감돼 1년여동안 지내면서 벽돌을 굽는 뜨거운 노속에 갇혀 극심한 호흡곤란 속에 화상을 입는 등 악랄한 고문을 받았다. 또 ▲담요를 온 몸에 씌우고 집단구타한 뒤 실신하면 짐승처럼 질질 끌고가서 물을 뿌리는 고문 ▲형틀 의자에 묶어놓고 채찍을 휘두르는 고문 ▲감옥 창살에 양손·발을 묶고 고무호스로 손가락을 때리며 발로 차고 몽둥이로 구타하는 고문이 되풀이됐다. 그래도 말을 안듣자 주전자로 물을 강제로 먹인 뒤 실신하면 배위에 판자를 올려놓고 밟아서 먹은 물을 토하게 하고 의식이 회복되면 재차 반복하기도 했다. 3백㎏짜리 벽돌을 4명이 들것으로 나르게 시키고 제대로 못 움직이면 무차별 구타하거나 잠을 안재우며 공포·억압적 분위기에서 억지 자백을 강요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혹한에 알몸으로 1∼2시간 무릎을 꿇도록 해 동상에 걸렸고 남자들 앞에서 알몸이 된 채 채찍질을 당할 때는 여자로서의 수치심 때문에 차라리 죽고싶었다고도 말했다. 하루 3백g의 소금국으로 연명하거나 「감식처분」이라는 명목으로 2∼3일 동안 굶기는 일도 흔했다. 87년 11월 개천교화소로 옮겨져 겪은 일은 더 참혹했다. 이 교화소에서는 임신 7∼8개월이 된 여죄수는 위생원이 주사를 놓아 사산시키고 아이가 살아 태어나면 목졸라 죽이는 만행이 저질러졌다. 시체는 인근 야산에 암매장됐으며 이 과정에서 임산부가 울면 「당에 대한 반감」이라며 7일동안 독방에 수감됐다. 생활고가 가중되면서 특히 가정주부 수감자들이 급격히 늘어 20명을 수용하는 한 감방에 70∼80명씩 수용돼 겨울에는 한 이불을 10여명씩 덮고 「다른 사람의 발을 안고」 자야 했다.작업복 한 벌,죄수복 한 벌로 10년정도를 버텨야해 옷감이 절어 살이 베어질 정도였다. 작업에 필요하거나 질문에 대답하는 것 말고는 말을 할 수 없고 화장실 용무도 단체로 감시하에 봐야했다. 이러한 참혹함 때문에 대부분 척추뼈가 굽어 곱사등이가 되고 다리가 「문어처럼」 휘어지는 등 성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일부 수용자는 극심한 영양실조 때문에 외부작업을 할 때는 진흙을 파먹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북한에서는 수용소를 「땅위의 지옥」이라고 부른다』고 전하고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살아나왔는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 6·25와 단동시(압록강 2천리:22)

    ◎폭격에 끊긴 신의주행 철교는 관광명소로/전쟁발발 2개월 뒤부터 미군기 공습피해/중국지원군으로 참전… 눌러앉은 한인 많아/저목장에 화재잦아 일명 “화도”… 한국전으로 “이름값” 압록강 우안에 자리한 요령성 단동시는 중국에서 제일 큰 인구 70만의 변경도시다.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장장 7백90㎞를 흘러 내려온 압록강을 바라보면서 금강산을 등지고 있다.단동시는 이름 그대로 「붉은 동방」이라는 뜻을 지녔거니와 중국 변경의 사회주의 혁명화를 상징하는 도시이기도 하다.당나라 때 안동도호부관할지역이었다는 점과 연관시켜 1965년까지는 안동으로 불렀다. 단동에서 압록강 건너를 바라보면 북한땅 신의주다.「모진 사람 곁에 있다 벼락 맞는다」는 속담처럼 신의주를 가까이 한 탓에 한국전쟁 당시 피해도 꽤 입었다. 예부터 저목장에 불이 자주 나 「불의 도시」(화도)라고도 했는데 특히 한국전쟁 때 그 이름이 적중한 셈이다.그리고 19 50년이 저물면서 한국전쟁에 참가한 중국의 입장에서는 최전방도시여서 「영웅도시」라는 칭호도 가지고있다. ○30년전 지명은 안동 단동은 어떻든 간에 한국전쟁에 피해를 입어 그 전쟁의 흔적이 아직도 멀리 보였다.당시의 안동∼신의주를 잇는 철교가 신의주쪽으로 절반은 교각만 앙상하게 남게 된 것도 한국전쟁 때문이다.단동시에서 펴낸 「단동시정」을 보면 한국전쟁에서 입은 피해기록이 나온다.「1950년 9월22일 미군 비행기 1백여대가 신의주를 폭격,압록강대교를 끊었으나 안동철도분국에서 그날 밤 10시에 복구했다.그러나 1951년 2월 폭격에 너무 심한 손상을 입어 운수가 중단되었다」는 내용이다. 한국전쟁 때 미군기의 단동시 첫 폭격은 전쟁발발 2개월 뒤인 1950년 8월27일에 있었던 것으로 「단동시정」은 기록했다.이날 하오 4시40분 B­52폭격기 두대가 시내 랑두비행장 상공에 날아와 약 2분여 동안 기총소사 하는 것으로 시작된 첫 공습의 피해는 노동자 3명 사망과 19명 부상,자동차 2대 파손으로 집계되었다.또 같은해 9월22일 두번째 공습에는 B­29 중폭경기 한대가 떠서 12개의 폭탄을 떨어뜨렸다.이 공습으로 2명이 죽고 28채의 집이 무너졌으며 폭음으로 파손된 집도 3백여채를 헤아렸다는 것이다. 오늘 날의 단동은 평화도시다.북한의 국경도시 신의주와는 사뭇 다른 도시인 것이다.그래서 전쟁으로 끊어지고 기관포탄이 무수히 박힌 단동쪽 압록강철교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광명소가 되었다.특히 몰골사납게 교각만 앙상한 신의주쪽의 전흔은 전쟁이 남긴 교훈을 보여준다.10원씩을 주고 절반쯤 건너간 철교 위에서 한국전쟁 당시 중국 지원군 번역관으로 일했다는 김인형(69)선생을 우연히 만났다. ○요양원서 만나 화촉 그는 경북 의성 태생이었는데 전쟁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전쟁이 나면서 인차 남한 전체를 점령하는 줄 알았지.그런데 시월 잡아서 부터 조선 피란민과 군인들이 중국으로 물밀듯 들어오는기라.그해 5월 성간부학교에 들어가 다섯 달을 공부한 나는 지원군 번역관으로 일했지.통화에서 겨우내내 조선인민군과 피란민속에 묻혀 살다 보이 눈코 뜰새가 없데. 중국 변경이 전쟁에 시달리는 판이었으니 강 건너 북한땅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장백·임강·집안·관전·안동(단동)지역 맞은편 북한땅 혜산·중강·만포·삭주는 미군기폭격에 불바다를 면할 날이 없었다.임진왜란 때 의주에 통곡동이라는 동네가 하나 생겼다고 하지만 한국전쟁에서는 압록강유역 북한땅 모두가 통곡동이 되었다. 단동에 살고 있는 윤옥순(65)씨는 전쟁이 나던 해 겨울 안동의 중국지원군병원에 근무했다.함북 무순 태생으로 16살부터 동북해방군에 참전한바도 있는 그녀는 당시의 참상을 몸서리치듯 털어놓았다. 『부상병들이 들것에 실려 매일 쏟아져 들어왔지비.팔다리가 끊어지고 코가 떨어진 사람,사지가 다 날라가 덩그러니 몸뚱이만 남은 부상자들도 있었구마.몸뚱아리나마 남은 부상자들은 애기 눕히듯 보자기에 싸서 한 침대에 넷씩을 눕히기도 했슴매.새파란 나이에 죽기가 원통해 발악하는 걸 보면 불쌍해서 같이 울기도 했지비.공습경보가 울리면 부상병을 업고 방공호로 뛰어가는 일을 얼마나 했는지….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원망스럽더구마』 안동은 한국전쟁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얼떨결에 북으로 올라온 남쪽의 사람들이안동에 들어왔다가 주저앉기도 했다.북으로 가기도 싫고,그렇다고 남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이방인들이었다.단동에 머무는 동안 그런 처지의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경북 영천군 고경면이 고향인 최정순(64)씨도 그런 사람이다.지원군병원 간호원이었던 그녀는 한국군과 미군포로 부상자에게 까지 남다른 애정을 쏟은 것 같았다. 『인민군과 중국지원군 뿐 아니라 국군과 미군 부상병까지 들이닥쳤지예.인민군 부상자들은 포로들을 보면 때려 죽인다고 날뛰어 병동을 구분했십니더.미군에게는 빵과 같은 음식을 주었는데,처음에는 독이 들었는 가봐 안먹데예.그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가 먹어야 그제사 입을 댔십니더.어떤 한국군은 우리 병원에서 다리 절단수술을 했는데 수혈할데가 없다 아닙니꺼.그래서 내가 두 번이나 피를 주고 대소변도 받아내고….업고 다니며 영화도 구경시키곤 했십니더.상처가 아물어 포로수용소로 가는 날 그렇게 울더니…』 단동시 오룡배 영예군인 요양소에서 만년을 보내고 있는 박명심(66)씨도 남한 출신이다.전쟁전까지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살았다.전쟁이 일어나고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군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2학년 때 6·25를 맞았어요.전쟁전에 이미 지하혁명조직에 가담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지요.인민군에 있다가 후에 중국지원군 20병퇀 67군 정치부로 전속되어 전선으로 갔어요.선전방송 임무를 맡고 일하는데 참호에 포탄이 날아들어 그만 허리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었지 뭡니까.53년 7월21일 안동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지금까지 요양원에 살고 있습니다』 ○44년째 이산의 아픔 박씨의 남편도 두 다리를 잃은 불구자다.남편 위덕렴(65)은 한족으로 중국지원군 116사 346퇀 통신병으로 전쟁에 참가해서 큰 부상을 입었다.그가 1954년 안동요양원에 들어와서 서로 만난 이들은 이듬해 10월 결혼했다.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다.박씨는 지난 94년 서울에 편지를 해서 조카들이 다녀갔다고 무척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한국이 놀랍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이야기로 들었다면서 날보고 서울에 가보았느냐고 물었다. 단동에서 만난 또 다른 여인 전명옥(67)씨는44년째 가족소식을 모르는 이산의 아픔을 갖고 있었다.당시 북한땅이었던 강원도 화천 태생인 그녀는 집 근처 임시 인민군병원에서 간호일을 돕다가 후퇴명령이 급히 내려 2백m 밖에 안되는 집에도 못 들르고 떠나왔다.이제나 저제나 하다가 화천이 남한땅이 되고,가족소식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것이다.
  • 체첸의 비극(박화진 칼럼)

    옛소련 남부 카스피해와 흑해사이의 회랑지역 전체를 총칭하여 카프카즈라 부른다.영어로는 코카서스라 하며 아름다운 자연과 미남미녀의 고장으로 유명하다.톨스토이가 젊은 날 사관후보생으로 이곳 주둔 러시아 기병대에 근무했던 곳이다.그때 경험을 기초로 이곳을 무대로한 코사크 기병과 체첸족간의 갈등·마찰을 그린 것이 「코사크」란 작품이다.말하자면 톨스토이문학 개안의 무대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이 말 잘 타고 용맹하며 상무정신 강하기로 유명한 코카서스 기마민족이다.백색인종을 코카서스 인종이라 부르듯 백인의 뿌리라고도 할수 있는 유서깊은 민족이다.코카서스 내륙에 위치한 우리나라 경상북도 크기의 산악지역이 옛소련 붕괴후 분리독립을 선언,압도적인 러시아군의 집중공격을 받았으며 지금 현재 러시아를 상대로 무차별 인질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는 인구 1백20만의 체첸공화국이다.회교도인 이들은 1859년 러시아제국에 병합된후 기회있을때마다 독립투쟁을 전개해 왔다. 1944년엔 독립을 위해 히틀러의 나치스 독일군에 협력한 혐의로 스탈린에 의해 당시 80만의 온민족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스탈린사후 흐루시초프의 사면으로 1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비슷한 운명의 연해주 우리 한인들처럼 이주당시 약 24만명이 기아와 추위로 사망하는 약소민족의 비극도 치렀다. 옛소련의 붕괴가 또 한차례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것은 너무도 당연한 순서라 해야할 것이다.그러나 러시아도 결코 양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체첸은 지정학적으로 석유 및 천연가스 자원이 풍부하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러시아의 남쪽 관문이다.다른 공화국들에 미칠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옐친으로선 러시아민족주의와 보수세력의 눈치도 살피지 않을수 없다.결코 그냥 물러날수 없는 상황이다.그러나 힘에 의한 제압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예상대로 94년 10월 무력침공이후 끝없는 산악게릴라전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게릴라전의 불꽃은 테러전양상을 띠며 체첸밖으로,러시아 본토까지 확산되고 전쟁양상도 점점더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의 월남전」이나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 재판이 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체첸만이라면 몰라도 배후엔 석유자금이 풍부한 아랍회교권이 버티고 있다.사우디,이란 등 회교권이 러시아의 무력진압에 분노를 보이고 있으며 돈과 무기로 체첸독립 게릴라들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게다가 체첸족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용맹무쌍한 코카서스 민족의 하나다.그들은 러시아의 인권및 노벨상수상 작가 솔제니친이 저서 「수용소군도」에서 지적했듯이 『절대로 복종하지않는 사람들』로 유명하기도 하다.무력침공 1년이 지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들의 굽힐줄 모르는 게릴라전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이번 인질전을 진압한다해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러시아는 이길수 없으나 이겨야 하는 골치아픈 전쟁을 하고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전쟁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러시아개혁에 대한 위협요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옐친 대통령은 체첸무력개입으로 내외의 인기가 폭락했다.무력개입이 예상했던대로 아프가니스탄개입때 처럼 장기 게릴라전화하고 희생이 늘어남에따라 옐친의 입지는 점점더 어려워지고 있다.작년 12월 러시아의회 총선에서의 옛공산당세력 복귀 및 극우민족주의 세력 급부상에는 체첸무력침공도 크게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많은 희생자를 낸 인질사태와 무자비한 무력진압은 오는 6월 대통령선거에서 옐친 또는 개혁후보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결과적으로 그것이 미국 및 서방세계는 물론,우리와 러시아의 관계 및 탈냉전의 국제정치 분위기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
  • 북 주민 안전귀순 비상체제 확립/정부,잇단 망명 대비책 마련

    ◎대규모 탈북예상 집단수용소 설치 점검 정부는 북한 외교부 차순권 영접지도국장(차관보급)의 아들 차성근과 잠비아 주재 북한 외교관 부인 최수봉씨등 북한 지도층의 망명이 또다른 북한 지도부 인사들의 망명을 촉발할 것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정부는 또 북한 지도부의 이탈현상이 북한주민들의 대규모 탈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대책을 검토중이다. 외무부는 17일 북한의 재외공관이 설치된 아프리카 13개국과 중국·러시아등 북한 접경국,동구권등에 주재하는 우리 공관에 긴급훈령을 내려 차씨등의 망명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이들을 안전하게 귀환시킬 수 있도록 비상지원체제를 확립하도록 했다. 외무부는 망명신청이 들어오면 신속히 본부와 연락을 취하는 한편,주재국 정부 및 관련 우방국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도록 지시했다. 외무부는 또 북한공관이 없는 우리 공관에도 훈령을 보내,인접국에 사건이 발생할 경우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외무부는 북한 공관이 우리 공관을 위해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주재국에 경비강화도 요청하도록 했다. 정부는 또 북한 지도층과 함께 북한 주민이 대규모 탈북하는 상황에도 대비,그동안 마련했던 집단수용소 설치·북한주민 접수·지원 방안등을 재점검하고 있다.
  • 북·미 관계개선 중대변수 부각/“미군 포로 북 생존”첩보의 파장

    ◎미 「전공자」 예우… 한·미 공동과제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군 11명이 북한내에 생존해 있다는 첩보는 한반도가 아직은 탈냉전시대의 사각지대라는 엄연한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에 참전했던 이들 미군들이 지금까지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첩보가 알려지기는 한국전 종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정부당국도 이같은 첩보를 최근에 입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미국 정부는 보다 일찍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그래서 북한당국에 비공개리에 이들의 송환 가능성을 타진했을 것이라는 게 우리측 추측이다. 지난해 정치인등 다수의 미측 인사가 방북했다는 사실,세계의 「경찰국가」로서 미국은 전쟁유공자를 소중히 대접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극비리 송환을 타진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개연성이 높다.미국에는 전사자의 유해나 전쟁 실종자를 철저히 추적,찾아내 예우하는 링컨대통령 이래의 원호법이 있다. 미국은 베트남과의 관계개선도 생존포로와 유해송환 문제를 연결고리로 해 성사시킨 바 있다.또 미국은 지난 88년 북경에서 북­미 외교관 접촉을 첫머리로 최근까지 막후에서 한국전 실종 미군 수색 및 유해송환교섭을 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들 미군이 송환되지 않고 있다면 그들이 한국전 포로 송환 과정에서 형식상 「자발적으로」 북한에 남게된 케이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들 생존 미군들이 사실상 억류된 것으로 보고 있다.포로수용소 시절부터 북한측으로부터 철저한 세뇌와 회유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포로수용소에서 이미 북한당국의 이간공작에 걸려들어 「배신자」로 낙인 찍힘으로써 귀국길이 차단됐다는 애기다.대부분 북한여성과 결혼해 눌러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는 제네바 북­미 핵협상 이후 빠른 발걸음을 보이고 있는 북­미 관계개선에 하나의 의미있는 변수가 될 공산이다. 경우는 다소 다르지만 일녀 「이은혜」가 북에 납치돼 살아있었던 문제가 북­일 수교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이은혜가 KAL기 폭파범 김현희에게 일어를 가르쳤듯 생존 미국인들중 일부가 대남·대미 우회침투 요원 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첩보가 사실이라면 이들의 송환문제는 한·미 양국의 공동과제가 될 가능성도 크다.
  • 정부,극비 첩보 입수/일부 대외공작 교관요원 활약

    ◎“「6·25」 미군프로 11명 북에 생존”/미,작년 평양에 송환의사 타진설/「유해송환협상」 막후 의제 채택여부 관심 한국전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포로가 됐던 미국인 11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 생존 미군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본국송환문제는 지난 94년 북­미 제네바 핵협상 타결 이후 진전 기미를 보이고 있는 북­미 관계정상화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10일 『6·25에 참전했던 미군중 11명이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고 밝혔다.이같은 극비 정보는 미 행정부 소식통으로부터 입수됐으며 이들의 인적사항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국자는 『생존 미국인들은 대부분 북한여성과 결혼해 살고있고 이들중 2명은 영화배우로,나머지 대부분이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다만 이들중 일부는 북한당국에 의해 대미 접근 및 대남 우회침투 공작 기관의 교관요원으로 일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측은 지난해 방북했던 미 국회의원과 한 종교인사를 통해 비밀리에 이들의 송환가능성을 타진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포로수용소 생활중 북한당국의 교묘한 회유와 세뇌 및 이간공작에 의해 포로 송환교섭중 형식상으로는 자발적으로 북한에 남기로 한 것 같다』면서 『이로 인해 미국측도 송환교섭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전에서의 미군 전사자는 약 5만4천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중 2천여명이 실종자로 기록되어 있으며,미국측은 지난 88년말부터 실종 미군 유해송환을 위해 북한측과 비공개 협상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베트남과의 관계개선을 미군 생존포로와 사망자 유해송환 문제에서부터 풀어간 전례를 간파,유해송환 교섭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앞당기기 위한 협상카드로 이용하고 있다. 북­미 양측은 10일부터 미 하와이에서 미군유해 감식기술 지원관련 접촉을 갖고 있어 이 자리에서 이들 북한내 생존 미군 송환문제가 막후 의제로 다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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