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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얽히고 설킨 동북아 역사 재조명

    얽히고 설킨 동북아 역사 재조명

    최근 일본의 ‘독도 만행’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 식민지침탈 정당화 움직임 등으로 한반도 전역에서 반일 감정이 들끓고 있다. 중국도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 등으로 일본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올라 있는 상태. 역사 전문 히스토리채널은 이같은 분위기 속에 소중한 우리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특집물을 편성했다.26∼27일 방송되는 한국·중국·일본의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6편이 선보이는 특집 ‘우리 역사 지키기’가 그것. 26일 오전 10시에는 일본 만주군 731부대의 비밀 연구소를 다룬 ‘731부대의 망령’편을 방송한다.1930년대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던 하얼빈 외곽에 위치한 이 연구소에서는 생화학무기 개발을 위한 잔혹한 생체실험이 이뤄졌고, 일본 패망 이후 실험 결과는 모두 미국에 넘어갔다. 같은 날 오전 11시부터는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미국인 포로들이 겪은 기아와 고문 등에 관한 다큐멘터리 ‘일본군의 전쟁범죄’와 1937년 중국의 난징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무차별적인 학살을 다룬 ‘난징 대학살을 고발한다’ 등 2편이 연속 방영된다. 오후 4시에는 중국의 한국고대사 왜곡작업인 동북공정의 중심에 있는 간도의 역사와 역할을 짚어본 ‘잊혀진 역사, 간도’를, 오후 6시에는 한·일협정을 살핀 ‘피해보상인가, 독립축하인가-65 한·일협정’이 전파를 탄다. 또 27일 오후 3시에는 우리 문화재가 프랑스·일본·미국 등 해외로 유출된 과정, 역사적 의미 등을 짚는 4부작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서’가 시청자를 찾아간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나치 전술核 가졌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을 몇개월 앞둔 기간동안 독일 나치가 소형 핵무기 폭파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백명이 희생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독일의 역사학자 라이너 칼시는 14일 발간된 저서 ‘히틀러의 폭탄’에서 “베를린 근처에서 수일 혹은 수주 동안 원자로가 가동됐으며 독일 남부 투린지아와 발트해에서 핵무기 실험이 실시됐다.”고 주장했다. 나치가 핵무기 개발에 열중했지만 원자폭탄 개발 단계에 훨씬 못 미친 상태에서 종전을 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논란이 되고 있다. 칼시는 옛 소련이나 서구 국가들의 문서보관서, 옛 동독 기록들을 검토한 이 책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미 원자폭탄의 파괴력에 훨씬 못 미치는 전술 핵무기였지만 실험은 몇 차례 성공을 거뒀다.”고 밝혔다. 그는 또 45년 3월3일 투린지아주 오르드루프에서 실시된 마지막 핵무기 실험에서 반경 500㎡ 지역이 파괴됐고 전쟁 포로와 수용소 수감자 수백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폭탄은 농축 우라늄을 포함하는 2t급 실린더로 추정되며 우라늄양이 너무 적어 연쇄적인 핵분열 반응을 일으킬 만한 위력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칼시는 덧붙였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美인권보고서“中·러·사우디 인권상황 열악”

    미 국무부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한 연례 인권보고서는 ‘폭정의 전초기지’로 분류된 북한, 쿠바, 미얀마, 이란, 벨로루시, 짐바브웨 외에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상황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지적했다. 북한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가장 잔인한 정권의 하나’로 지목됐다.15만∼20만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 중이며, 주민들은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채 언론자유나 공식 재판을 받을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특히 여성 수감자들은 강제로 낙태를 당하거나, 출산 직후 신생아들이 살해되는 아픔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얀마는 보안군이 수감자를 상대로 강간을 저지르거나 고문, 구타를 일삼는 등 “인권이 극도로 악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은 지난 2002년 미·중간 인권협상에서 합의된 내용들이 이행되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 반체제 인사에 대한 체포 남발, 사법부의 독립성 결여 등 지난해 중국의 인권 신장은 “실망스러웠다.”는 평가다. 한국은 대체로 인권 상황이 개선됐지만 경찰 및 교도소의 수감자 학대, 국가보안법 등이 지적됐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지구촌 ‘양심수의 벗’ 피터 베넨슨 타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국제사면위원회·AI)의 창설자인 인권운동가 피터 베넨슨이 25일 사망했다.83세. 브렌던 패디 AI 대변인은 26일 베넨슨이 런던 서부 옥스퍼드의 존 래드클리프 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AI측은 “평생 불의를 비전과 용기로 맞서온 베넨슨의 행동은 전세계 감옥과 고문실, 죽음의 수용소에 빛과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고 애도했다. 영국의 변호사였던 베넨슨은 40세이던 1961년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카페에서 자유를 위해 건배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투옥된 2명의 포르투갈 학생의 석방운동을 계기로 AI를 창설했다. 당초 1년간의 한시적인 조직으로 발족됐던 AI는 지지자들의 후원에 힘입어 전세계 180만여명의 회원과 160여국에 지부를 둔 세계 최대 인권단체로 성장했다. 이튼 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그는 1950년대초 노동당과 노동변호사협회에 가입, 스페인 노동운동가들의 재판 감시인으로 파견되기도 했으며 그 뒤 10여년 동안 남아프리카, 헝가리 등에서 법률 구조활동을 폈다. 또 남아공 보안기관의 인권유린행위를 폭로했으며, 서방국가들의 공평하고도 독립적인 인권유린행위 방지 정책 확립에도 기여했다. AI는 이데올로기와 정치·종교상의 신념이나 견해 때문에 체포, 투옥되거나 부당행위를 받고 있는 양심범들의 석방과 공정한 재판, 옥중 처우개선 등을 위해 전세계적인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AI는 그동안 2만여명의 양심수를 석방시켰으며 이 공로로 1977년에 노벨평화상,1978년에 유엔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9)근대 문화유산의 보고 군산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9)근대 문화유산의 보고 군산

    군산은 식민 수탈의 가장 전형적인 공간이었다. 식민공간답게 전통과 근대가 공생하고, 강요된 근대의 기형적 뒤틀림이 강한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군산은 오쿠라, 이와사키 등 수많은 일본 토지재벌들이 지배했다. 그들은 고리대금업도 겸했으니,‘허리에 권총 차고, 손에 망원경 든’ 무장상인, 바로 약탈자였다.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한국문학사의 금자탑인 채만식의 탁류는 이렇게 시작된다. 채만식 문학관은 소설 대목처럼 금강이 끝나면서 황해와 만나는 그 곳에 서있다. 문학관에서 조금만 서쪽으로 내려가면 ‘째보선창’이 나온다. 소설 속의 정주사는 서천땅을 처분한 뒤 똑딱선을 타고 째보선창으로 건너온다. 하지만 쌀 현물을 가지고 투기하는 미두장에서 돈을 다 날리고는 선창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탁류’ 속 정주사 자살시도했던 ‘째보선창’ ‘째보선창’은 지정학적으로 ‘옆으로 째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 실제로 백마강과 금강이 합수하면서 바다로 흘러드는 길목에 자리잡아 Y자로 째진 곳이다. 구한말까지도 삼남의 농수산물이 이곳에 집산했다가 서울로 보내지던 중요한 선창이었다. 채만식 시절까지만 해도 제 몫을 다하던 선창이 금강하구언이 축조되면서 쌓일 대로 쌓인 퇴적물 때문에 항구 기능을 거의 상실해 문화원이 세운 입간판만이 그 역사를 말해줄 뿐이다. “탁류는 당연히 픽션이지만 역사적 전형성을 고스란히 획득하고 있지요. 두벰이산 정상에 있는 정주사 집터, 한창봉 쌀집, 콩나물고개 같은 소설 속의 역사현장을 짚어가면 식민지시대 군산의 풍경이 오롯이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군산 지킴이’ 이복웅 군산문화원장의 증언이다. 세종실록지리지 만경현조에 ‘군산은 병선을 정박시킨 곳으로, 섬이 둘 있는데 군산도와 망입도가 있다.’고 했다. 군산진은 본디 군산도(현재의 선유도)에 있었다. 그 후 군산진을 오늘의 군산시 영화동 해변의 진포로 옮기면서 이름도 따라와 군산으로 확정됐으며, 과거의 군산진은 고군산이 되었다. 그러니 고군산열도는 본디 군산의 원적지인 셈이다. 1899년 개항과 더불어 전혀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한다. 당시의 군산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갈대밭이 무성한 비좁은 곳이었다. 일제는 이 갈대밭을 매립하고, 시가지를 일본식 마치(町)체계로 바꾸었다. 본정통, 명치정, 강호정 따위가 그것이다. 메이지(明治), 에도(江湖) 같은 이름에서 식민지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일제는 군산을 강제로 개항시킨 뒤 대규모 항만시설을 서둘러 건설한다. 당시의 항만 흔적은 ‘뜬다리’같은 유적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탈의 신작로’ 전주~군산가도 일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만경평야의 곡식을 군산항에 모았다가 일본으로 실어냈다. 전주~군산을 잇는 ‘전군가도’가 벚꽃으로 유명한 이유는 이런 역사적 연원을 지닌다. 일직선으로 뻗은 신작로는 수탈을 위한 토목공사의 증거였다. 오죽하면 당대 민중들이 ‘아깨나 낳는 년 갈보짓하고, 힘깨나 쓰는 놈은 목도질한다.’며 식민의 애환을 읊조렸을까. 일본 영사관이 설치되고 일본 거류민단이 세력을 확장해 갔다. 수탈은 금강을 거슬러서 상류인 부여 위쪽의 부강까지 미쳤다. 추수철이면 충청도와 전라도의 이 황금 곡창지대에서 개땅쇠처럼 일만 했던 소작인들은 피땀흘려 거둔 알곡을 바리바리 싣고 지주집으로 향했다. 소작 떼일 것을 걱정한 작인들은 굶주리면서도 정성껏 엿을 고와 받쳐야 했으니, 참으로 ‘엿 같은 세상’ 아니었을 것인가. 조선인 지주는 일본인 지주에 비하면 수나 양 모두 ‘별것’ 아니었다. 전국에서 전북처럼 일본인 농장이 많은 곳은 없었다. 전북은 일본의 기업형 농장이 가장 많이 진출한 일본 식량조달의 거점이었다. 금강, 동진강, 만경강 3대 강 유역에 펼쳐진 30만 정보의 대평원, 그 곡창의 문호인 군산 일대를 오쿠라, 이와사키 등 수많은 토지재벌들이 지배했다. 그들은 땅만 소유한 것이 아니라 고리대금업도 겸했으니,‘허리에 권총 차고, 손에 망원경 든’ 무장상인, 바로 약탈자였다. 폭력적 토지겸병 과정을 보노라면 사무라이 낭인집단의 건들거리는 풍경이 되살아난다. 가령,1904년에 이곳에 들어온 가와사키는 옥구군 서수면 일대를 자신의 향리인 일본 니가타현 모형으로 일본화할 계획을 가지고 온 골수 국수주의자였다. 일본 고향의 지주들을 서수면에 불러들여 농장설치를 권유했는가 하면 서수에는 신사까지 세웠다. 그리하여 가와사키농장이 모체가 된 이엽사농장이 탄생하는데, 이엽사는 전주의 삼례, 익산의 황등, 옥구의 서수면 일대에 논 1000정보, 밭 200정보, 소작인 1700여명을 거느린 대농장주로 군림하게 된다. 이들이 농장을 순찰할 때는 말을 타고, 승마복에 권총까지 찬 채 말채찍을 휘두르며 다녔다고 한다. 봉건시대의 영주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하여 군산과 옥구·김제 등의 농민들은 대부분 소작인으로 전락했으며, 일본인 농장에 가족들까지 예속되어 노예 같은 삶을 이어나갔다. 보릿고개 때는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으며,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북간도 허허벌판으로 야반도주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아니면 소작쟁의를 벌여 죽기살기로 저항하는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34년 통계를 기준으로 무려 200만섬 이상의 쌀이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반출됐다.1930년대 일본 농업공황을 계기로 조선은 완전한 일본의 식량 공급기지로 전락했다. 황금쌀은 일본으로 나가고 조선사람들은 만주에서 들여온 콩 같은 잡곡, 일제 말기에는 그것도 모자라 기름 짜고 버린 깻묵으로 연명했다. 일본인들이 끊임없이 수탈을 감행하는 동안 ‘멍청한’ 조선인 지주들은 미두장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공인 도박장 격인 미두장에서 실의에 빠진 조선인 지주들과 자본가들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과 토지를 탕진했다. 탁류의 정주사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한 쪽에서는 거대한 기선에 수천 섬의 쌀이 실려나가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서는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빈 밥그릇에 멍한 눈길을 주던 곳, 바로 군산이다. ●일본인은 평지 살고 조선인은 산동네 살고 일본인들이 평지에 살고 조선인은 산동네에 얹혀 살았다.‘언덕 비탈에 의지해 오막살이가 생선비늘 같이 들어박힌 개복동 그 중에서도 산꼭대기에 올라앉은 납작한 토담집, 방이라야 안방 하나 건넌방 하나 단 두 개뿐인 것을 명임이네가 도통 5원에 집주인한테서 세를 얻어가지고 건넌방은 먹곰보네한테 2원씩 받고 세를 내주었다.’고 채만식은 묘사했다. 군산은 식민 수탈의 가장 전형적인 공간이었다. 식민공간답게 전통과 근대가 공생하고, 강요된 근대의 기형적 뒤틀림이 강한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개항장은 제국주의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관철되는 시험장이었다. 네덜란드가 건설한 바타이유 같은 해양 식민도시처럼 일본이 건설한 목포·군산·마산·원산 등이 그랬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이 곳은 숫자조차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숱하게 징용 나간 이들의 눈물이 넘치던 항구였다는 점이다. 쌀만 수탈당한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수탈당한 곳이다. 해방 직후 군산항에서 노무자들의 퇴직금 요구와 귀화 노무자의 착취에 대한 격렬한 보상요구 투쟁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근자에 다시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일협정 과정에서의 반민족적인 협상으로 그만 영구 미제사건으로 덮이고 말았다. 재미있는 점은 조선에서 살다가 8·15 후 일본으로 되돌아간 일본인들은 ‘인양자(引揚者)’라며 일본에서도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점이다. 실로 아이로니컬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식민지를 체계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경찰, 군대, 식민 경영기관, 거류민단, 금융기관 등이 필요하다 보니 으레 항구에는 이런 흔적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군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로서는 거대했을 조선은행 건물, 번듯한 세관건물이 지금도 남아있으니 가히 근대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뒷골목에는 이른바 왜정시대의 적산가옥도 즐비하다. ●방치된 수탈의 흔적들… 박물관 재활용해야 그러나 어쩌랴. 극장식 카바레로 쓰이던 조선은행 건물은 방치돼 있다. 안될 일이다. 식민지 시대를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그 시절의 흔적을 이런 식으로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식민지의 역사적 교훈을 위해서라도 말끔히 복원하여 박물관이나 자료관 등으로 재활용할 일이다. 군산항의 역할은 일제시대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군산 수용소에는 진남포에서 LST를 타고 내려온 무려 5만여명의 피란민이 수용되었다. 이곳 미군기지와 공군비행장은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증명해 준다. 항구는 이처럼 사회변동의 축소판이다. 군산은 더 이상 화려한 곳이 아니다. 서해안시대를 부르짖지만 침체한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없다. 영화롭던 영화동에는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항구는 먼 외곽의 신항으로 밀려났고 토사가 쌓이는 본래의 군산항은 그저 자그마한 배들만 오갈 뿐이다. 예로부터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 길목에 자리잡아 대중국 전진기지였던 천년 역사의 군산은 그렇게 정중동의 움직임만 보이고 있다. 건너편 장항에 오래된 제철소만 남아 옛날의 영화를 증명할 뿐. 개항 100년을 기념하는 백년광장에서 우리는 과연 개항 백년의 기념비적 의미를 제대로 챙기고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또 좋든 싫든 근대 100년의 음지와 양지를 모두 지닌 군산항의 21세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말로만 서해안시대를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군산 같은 항구에서부터 그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 [씨줄날줄] 2月의 명절/김경홍 논설위원

    평양 모란봉 기슭에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은 지난 1977년 4월15일 김일성의 65회 생일을 맞아 준공됐다.1989년 시민혁명으로 처형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이를 보고 대통령궁을 지었다고 한다. 준공 당시는 금수산의사당, 주석궁으로 불리다가 김일성 사망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후 ‘궁전’으로 승격된 것이다. 유럽식 궁전을 본떠 만든 5층 복합 석조건물 앞에는 콘크리트 광장이 조성돼 있는데 그 너비가 415m, 길이가 216m다.‘415’는 김일성의 생일을,‘216’은 김정일의 생일을 상징한다.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김정일의 생일인 2월16일부터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태양절)까지 두달동안을 축제기간으로 정해놓고 일반인의 혼인식도 자제할 정도다. 북한이 지난주 설날 연휴기간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더니, 내부적으로는 ‘2월의 명절’로 불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3회 생일준비로 분주하다고 한다. 평양방송은 “장군님은 역사가 일찍 알지 못하는 희세의 위인, 절세의 애국자, 불세출의 영웅”이라면서 “선군정치를 따르는 것은 세계의 흐름”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중앙TV는 김 위원장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의 기슭에 버들개지가 피었다고 소개하며 2월 평균기온이 영하 25도를 오르내리는 백두산에서 버들개지가 핀 것은 자연의 현상을 초월한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이 이렇게 김 위원장을 세계적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있는 와중에 미국의 한 잡지는 김 위원장을 세계 최악의 10대 독재자 중 2위로 선정했다.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의 한 언론이 김 위원장을 독재자 상위에 랭크했다고 해서 공정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숭배 강요, 적대계급으로 분류된 북한주민 3분의1에 대한 차별,25만명의 수용소 감금, 공개처형 등 독재라는 굴레를 씌운 선정 이유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남의 명절이나 생일, 축제에 재를 뿌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 협박이나, 봉건왕조 시대에도 없던 개인숭배 현상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북한이 특수한 국가라는 것만으로는 체증이 가시지 않는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외국인노동자 ‘눈물의 설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설날은 더 서러웠다. 고향을 찾아 가족들을 만나는 명절이기에 그들의 향수는 더욱 짙어졌다. 특히, 지진해일 피해를 당한 동남아 근로자들의 고통은 사그라지기는 고사하고 더욱 커지기만 했다. ●동료 대신 고국방문… 가족에 소식 전하다 눈물 불법체류자 신분인 페마 랄(34)은 지진해일로 쑥대밭이 된 고향을 뒤지고 있다. 랄의 고향은 스리랑카 남부 해안 지역인 당갈라. 이 작은 도시에서만 20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랄은 부모님, 남동생과 연락이 끊기자 지난달 초 급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동료들을 대표해서 불법체류자 신분을 무릅쓰고 8년만에 한국을 떠난 것이다. 다행히 가족은 모두 무사했다. 짧은 해후 뒤 친구들이 준 주소를 갖고 골, 마타라, 한반토 등 피해지역을 찾아갔다. 친구 가족들은 살아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미크(33) 가족처럼 해일에 휩쓸려 사망한 사람도 많았다.“친구 부모님을 찾아가면, 아들 소식을 물으며 눈물만 흘립니다.‘왜 너만 왔느냐.’고 다그치면 할 말이 없지요.” 가족의 사망 소식을 친구에게 전화로 알리다 함께 울기도 했다. 랄은 가족이 사라져 전하지 못한 친구들의 편지도 3통이나 간직하고 있다. ●“형가족 잃었지만 생존 부모 위해 일 더해야” 칼바람이 몰아치는 경기도 광주 외국인 노동자의 집. 랄의 친구 다미크는 얼음장 같은 3층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요즘 일자리가 없어 이곳에서 먹고 잔다. 랄에게서 소식을 들은 다미크는 “잊어야 하는데 힘들다.”고만 했다. 다미크는 바닷가 근처에 살던 형과 형수, 조카 두 명을 잃었다. 부모님과 여동생은 간신히 살았지만, 그가 8년간 일해 마련한 집은 산산조각이 났다.“랄이 난민수용소에서 부모님을 만났는데 ‘우리 아들은 언제 돌아오냐.’고 하셨대요.” 다미크는 그래도 돌아갈 수 없다. 스무살 때부터 가장 역할을 해온 그는 “가족을 굶길 순 없다.1∼2년만 더 일하겠다.”고 말했다. ●“재입국 허용” 정부 발표도 못 믿어 불법체류자들은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불법체류자라도 해일 피해를 당한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재입국 규제를 풀었는데도 믿지 못했다. 정부는 1월5일부터 2월10일까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태국, 인도, 미얀마 등 지진해일 피해국 출신 불법 체류자들이 출국하더라도 범칙금을 물리거나 입국을 규제하지 않았다. 큰 혜택을 베푼 셈이다. 그러나 출국자는 지난 4일까지 2234명뿐이다. 해당국 노동자 9만 8700여명(불법 3만 7300여명)의 2% 정도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김상헌 사무국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정부의 정책을 쉽게 믿지 않는다.”면서 “게다가 고용허가제 명부 관리는 해당국이 맡고 있어 한국 정부가 요청해도 그 정부가 이름을 올려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지 6년이 지난 스리랑카 노동자 안토니(29)는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왔다가 불법체류자가 됐다. 불법체류자가 된 뒤에도 홀어머니(61)에게 돈을 보내며 생계를 책임졌다. 그는 지진해일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닷가에 살던 어머니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름 만에 어머니가 바닷물에 휩쓸렸다가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은 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옷도 한 벌 챙기지 못한 채 허리를 크게 다쳤다고 해요. 난민수용시설에 계시다는데….” 그러나 안토니는 돌아가지 않았다.“어머니를 치료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집도 다시 마련해야 합니다.” 울음을 참느라 꽉 깨문 안토니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고국에 집·학교 지으려 모금 그들은 서로 다독이며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 안산지역 스리랑카 노동자모임인 ‘스리랑카 독립협회’는 회원 250명에게서 5만∼10만원씩 모았다. 모은 돈으로 고국에 집과 학교를 지을 계획이다. 집 한 채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은 350만원. 이들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이렇게 되뇐다.“내가 한국에서 일하니까, 가족들이 고국에서 살 수 있는 거예요.”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최승희 무용전수받은 김영순씨 “조카찾고 싶다”

    최승희 무용전수받은 김영순씨 “조카찾고 싶다”

    “최승희 선생은 보통 사람과는 달랐어요. 모든 동작에 심장의 울림이 전달되어 살아 숨쉬는 것 같았지요.” 새터민(탈북자) 김영순(68)씨가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설을 맞는 느낌은 남다르다.2003년 12월 한국에 온 뒤 정착훈련을 거쳐 ‘대한민국 국민’으로는 처음 맞는 설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펼쳐놓기에 앞서 평양음악무용대학 시절 ‘조선민족무용 특강’을 가르치던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기억을 더듬었다. ●대학서 최승희에게 무용배워 김씨는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선생은 워낙 엄해서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살풀이를 가르칠 때면 ‘엿가락을 늘이듯 팔을 움직이라.’면서 손바닥으로 ‘탁’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려서 학생들의 뻣뻣한 자세를 바로잡아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의 동거녀가 된 성혜림이라는 존재로 하여 평양음악무용대학 시절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바뀐다.1953년 김씨와 성혜림은 무용학부와 영화연극부에 각각 입학했다. 김씨는 성혜림이 “홑꺼풀의 자그마한 눈과 좌·우 턱이 약간 각진 소녀로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웃을 때 생기는 보조개가 무척 사랑스럽고 귀여웠으며 고상한 기품이 풍겨 정이 가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성혜림과 조선인민군협주단서 일해 김씨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13년 동안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일했다. 그러나 평탄했던 김씨의 삶은 성혜림의 말 한마디 때문에 송두리째 뒤틀리고 만다.1967년 성혜림은 2·8영화촬영소에서 돌아가는 길에 김씨에게 들러 “나 5호댁으로 간다.”는 말을 남겼다.‘5호댁’이란 김일성의 친족이 모여 살던 창광산의 옛 관저를 뜻한다. 김씨는 1970년 함경남도 요덕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김씨는 성혜림이 김정일의 동거녀라는 것을 안다는 사실 때문인 것으로 믿고 있다. 남편도 이 때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뒤 소식을 알 수 없다. 김씨는 소금국과 강냉이밥으로 연명하며 수용소 건설현장에서 8년을 중노동에 시달렸다. ●막내아들은 탈북시도하다 총살돼 1978년 수용소에서 나온 김씨는 세 아이를 데리고 금광 채굴 일꾼으로 일한다. 이후 1981년 양재기술을 배워 함흥의 양복점에서 일하면서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8년에는 탈북을 시도하던 막내아들이 붙잡혀 총살되는 아픔이 있었다. 이제야 두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됐다는 김씨의 가장 큰 소망은 어딘가에 살고 있을 조카 유숙화(1941년생)씨를 찾는 것. 가족과 함께 중국에 살던 큰언니는 1943년 남편을 따라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떠났고 그해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다. 김씨는 “나이가 드니까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간다.”면서 “조카를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씨줄날줄] 독일의 눈물/이용원 논설위원

    1970년 12월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옛 게토 지역을 찾아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게토란 나치정권이 유대인들을 처형하기 전에 가두어둔 집단수용지.1943년 초 게토의 유대인들은 나치군대에 대항해 봉기했다. 넉달 동안 계속된 싸움에서 전사하거나, 체포돼 수용소로 압송된 유대인 희생자는 5만 6000명에 달했다. 1975년 독일은 특별법을 제정해 게오르크 에커트 국제교과서연구소를 설립했다.1950년대에 이미 독일·프랑스 양국의 역사교과서 공동연구를 이끌어낸 사학자 에커트의 사설 연구소를 계승, 확대한 것. 이후 연구소는 제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피해국 폴란드·이스라엘과 각각 역사교과서 공동연구를 성사시켰다. 1995년 1월27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5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이는 나치정권에 대한 독일국민의 승리를 상징하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1월27일을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날로 공식 지정했다. 2000년 독일은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을 발족했다.2차대전 때 나치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한 개개인에게 국가가 배상하는 기관이다. 앞서 독일은 이스라엘에 250억 마르크를 국가 배상금으로 지급했으며 나치의 피해자 및 희생자 유가족에게는 150억 마르크를 별도로 지급했다. 2005년 5월8일 독일의 정치 1번지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는 대형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학살된 유대인 600만명 모두를 추모하는 기념물이다. 이날은 독일이 2차대전 패전 60돌을 맞는 날이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나치정권의 과오를 국가 차원에서 철저하게 반성했다. 배상기관의 이름에서 보듯 과거를 ‘기억’하고 ‘책임’져야 ‘미래’를 기약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과 이웃의 전쟁 피해국 사이에 ‘진정한 사과’‘교과서 왜곡’‘강제노역 배상’ 등을 둘러싼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2일 이스라엘 의회를 방문한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이 참회의 연설을 하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60년 동안 끊임없이 과거사를 반성해온 독일인들의 마음이 응집한, 독일의 눈물인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인혁당 사건’ 다룬 소설 ‘푸른 혼’ 펴낸 김원일씨

    ‘인혁당 사건’ 다룬 소설 ‘푸른 혼’ 펴낸 김원일씨

    그건 서른세살에 시작된 푸른 고집이었다. 진실을 본 듯 했으되 펜을 들진 못했다. 부양가족 일곱명을 거느린 결손가정의 가난한 가장이던 그때는 “겁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쓰리라, 각오를 품었었다. 그 검질긴 고집을 소설로 달래내는 데 30년이 걸렸다. 중진작가 김원일(63)이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푸른 혼’(이룸)을 냈다.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다잡고도 2년을 꼬박 매달린 결실이다. 책이 묶여나온 요며칠 머릿속이 어찔어찔하다. 출간 마무리에 진이 빠진데다 술, 담배, 당뇨 때문에 설상가상 들솟아버린 부실한 치아 때문일까. 그런데 그 따위 시덥잖은 것들이 마음자리를 이렇게 자반뒤집기 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책 출간·과거사규명은 우연의 일치” “우연이요. 이런 게 아닐까 싶소. 죽은 영혼들의 간절한 기원, 그들이 내 소설에 보내는 강렬한 암시 같은 것. 나는 정치에 관심도 없는 사람이고, 내 소설이 시사성을 갖출 이유도 없는 거라. 그냥 지금쯤 써도 되겠다 싶었던 것뿐이지.” 그가 “박정희 정권의 가장 치명적인 인권유린 사건”이라 확언하는 인혁당 사건. 그것이 국정원 과거사 위원회의 진실규명 대상에 오른 시점과 책의 출간이 일치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희한한 우연”이다. ‘푸른 혼’은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된 8명의 희생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작소설이다. 중편 6편이 모두 그들의 실화에서 발아했다.“소설을 쓰느라 한 박스가 넘는 관련 자료들과 몇년을 씨름했다.”는 그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그 사실(史實)들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무미건조한 르포가 되지 않게 글에 향기를 불어넣으려 애를 많이 썼다. 처절한 고문과 폭력장면을 묘사하지 않은 건 그래서였다. ●“역사적 사실 문학적 표현 노력”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 등 희생자들은 이름을 바꿔 작품에 등장한다. 예컨대 여정남은 ‘여의남’이란 주인공이 되어 가려진 현대사의 진실을 고발한다. 헌헌장부였다가 모진 고문 끝에 만신창이가 된 여의남은 대처승의 아들로서 떳떳이 죽음을 맞는 것으로 묘사했다(‘여의남 평전’). 10년째 대구 팔공산에서 양봉일을 하다 느닷없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사형당하는 주인공(‘팔공산’),1960년대 인혁당 사건에 연루됐다가 10여년만에 다시 누명을 쓰고 숨지는 39세의 남자(‘청맹과니’),8명의 희생자들을 처형 순간에 한 자리에 모아 혼을 위로하는 남자(‘투명한 푸른 얼굴’)….“본디 현실에 일어나는 일이 곧 소설인 법”이라는 작가의 말에 새삼 육중한 무게가 실린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곧 소설” 200자 원고지 1600장을 훌쩍 넘는 소설. 작가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애착이 간다.”라며 보듬어 안는 소설에는 어쩌면 처음부터 태생적인 부채 같은 게 있었다. “희생자들의 연고지가 대부분 내 고향인 대구였고, 그들이 자주 만나 회포를 푼 약전골 일대가 내 가족이 전쟁 후 한 세월을 힘겹게 넘겼던 동네였다.”고 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터졌을 때 가난한 출판사 직원이었다는 그는 “나중엔 그들에게 영치금을 넣어주기도 했다.”며 돌이켰다. “소설 말고는 아무것도 말하기 싫어” 이번엔 그 흔한 얼굴사진조차 책날개에서 빼버렸다.30년 묵힌 고집을 풀었으니 다음엔 뭘까.“완전히 다른 스타일. 자유인 이야기가 될 거요. 폭력전과 5범과,6.25때 포로수용소 간수였던 조부의 이야기가 오락가락 엮이는. 마르케스처럼 과거와 현재가 혼융하는 그런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어.”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김명국 기자 daunso@seoul.co.kr
  • [기고] ‘쓰나미’지역 아동보호 시급하다/차혜선 월드비전 국제협력실장

    지난달 26일 발생한 동남아 지진 해일 대참사가 한달여를 맞은 가운데 최근에는 언론보도마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이번 참사는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희생된 어린이들의 모습은 이미 여러차례 보도됐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수백만 명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거나 고아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이 어린이들은 가족과 떨어진 채,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는 유괴범의 검은 손길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이번 대참사에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국가적으로, 또한 민간단체 차원에서 적극적인 구호의 손길을 펼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 활동에도 불구하고 구호사업 초기 단계에 어린이 보호를 위한 특별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어린이들에게 가해지는 위험과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유약한 어린이들은 긴급구호상황의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이제라도 아시아 쓰나미 긴급구호현장의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각국 정부와 각종 단체, 언론 등이 취해야 하는 보호 조치를 생각해 본다. 첫째, 이재민 수용소 내에 ‘어린이들에게 친화적인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 어린이들이 마음대로 찾아와서 다른 아이들과 만나 놀기도 하고 공동체 활동도 하며 공부도 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말한다. 이곳에서 피해 어린이들은 점차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면서 재난으로 입은 참담한 경험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받게 된다. 둘째, 가족과 떨어진 어린이들을 등록시키고 가족찾기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족과 떨어진 어린이들은 학대와 착취, 질병과 영양실조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가족과 떨어진 어린이들을 등록하고 가족 혹은 친척과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가족을 찾지 못한 어린이들에게는 보호자에 의해 보호받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만 아동학대 및 착취를 막을 수 있다.‘어린이들에게 친화적인 공간’은 어린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적합한 장소이며, 또한 부모나 친척들에 의해 미아찾기 장소로도 사용될 수 있다. 셋째, 구호단체들의 아동보호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아시아 쓰나미 현장에 파견된 모든 구호단체들은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명시한 아동보호정책을 수립하고 준수해야 한다. 구호기관들이 아동보호정책을 준수하는 것은 구호활동의 조건이 되어야만 한다. 넷째,‘눈에 안 보이는’ 어린이들을 찾아내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구호활동의 대상에서 제외된 어린이들이 있게 마련인데 이러한 어린이일수록 가장 열악한 경우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다. 이상의 조치를 통해 피해 어린이들이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일상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월드비전은 지진해일 재난민 캠프에 3개의 아동센터(child friendly space)를 운영 중이며, 앞으로 10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 아동센터에서 어린이들은 노래, 그림그리기, 게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한 심리치료를 받으며, 웃음을 찾아가고 있다. 이번 지진해일 대참사는 긴급 구호상황에서 어린이를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과제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차혜선 월드비전 국제협력실장
  • 서남아시아 ‘지진해일’ 한달 11개국 28만명 사망

    동·서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지진해일)가 26일로 발생 한 달째를 맞았다. 수마(水魔)에 가족과 재산을 잃고 실의에 빠진 이재민들은 고통과 싸우며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복구는 더디기만 하다. 인도네시아 아체주(州)에선 요즘도 매일 1000여구의 시신이 발견되고 있으며 태국의 공동묘지에는 2400여구의 시신들이 신원 확인을 기다리며 묻혀 있다. 25일 현재 11개국에서 28만여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사망·실종자가 23만여명으로 최대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는 50만여명의 이재민 가운데 40만명 가량이 최소 2년 이상 임시수용소에서 살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이번 쓰나미 피해가 집중된 아체주에 40억달러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는 등 쓰나미 구호·복구를 국가 최대우선 목표로 두겠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적어도 5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 인도네시아 보건당국도 시신 수습 완료에만 앞으로 한 달 이상 더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2500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들을 포함,5370명 이상이 숨진 태국은 연간 100억달러 규모인 관광산업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지만 아직 태국을 다시 찾는 관광객들은 쓰나미 이전과는 비교도 힘든 수준이다. 보통 1월이면 3만개의 호텔방이 거의 매진돼온 푸껫의 경우 약 3000개 정도에 손님들이 묵고 있을 뿐이다. 다만 31일부터 이틀 동안 푸껫에서 국제관광기구 특별회의가 열리는 등 국제사회의 도움이 계속되고 정부에서 특별지원도 하고 있어 주민들은 곧 천혜의 관광지란 명성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만 1000여명이 숨진 스리랑카에선 시신 수습이 상당히 진행됐지만 신원 확인도 없이 공동묘지에 묻힌 경우가 많아 실종자 수색은 거의 불가능해진 상태다. 사망자 외에 실종자가 5600여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당국은 이제 공개적으로 실종자 생사 여부를 확인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황장석기자 외신 surono@seoul.co.kr
  • “아우슈비츠 교훈삼아 대량학살 막자”

    “아우슈비츠의 교훈에 제대로 귀기울였더라면 캄보디아나 보스니아, 르완다에서의 대량학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엔이 홀로코스트 해방 60주년 기념일을 사흘 앞둔 24일, 생존자와 희생자 유족, 관련국 정상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특별총회를 열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대량학살과 인권유린 행위를 강력히 규탄했다. 유엔이 홀로코스트를 기리기 위해 특별총회를 소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우슈비츠는 나치 독일이 1940년 4월 폴란드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해 건설하기 시작한 수용소로, 이듬해부터 유대인 대량학살에 이용됐다.45년 1월 27일 옛 소련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 110만명의 유대인이 희생됐다.2차대전 중 전체 유대인 희생자는 600만명에 이른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개막연설에서 “끔찍스러운 일은 오늘날 수단의 다르푸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학살과 인권유린 행위를 규명하는 새 보고가 접수되는 대로 안전보장이사회가 즉시 행동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아난 총장은 “유엔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직접적 반응으로 창설됐다.”며 “전후에 태어난 세대와 미래 세대들이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모른 채 자라서는 결코 안된다.”고 강조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성명을 통해 “독일의 역사적 책임은 결코 상대화될 수 없다.”면서 “테러로부터 이스라엘 안보와 영토, 시민을 보호하는 것은 이젠 독일의 핵심 외교정책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총회에서 “나의 조국이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운 짓을 저지르고 온갖 문명을 파괴한 것은 야만적인 일이었다.”고 연설해 따듯한 갈채를 받았다. 친척 대부분이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폴 울포위츠 미 국방차관은 “세계인들이 깨달아야 할 일은 대량학살을 앞에 두고 눈을 감거나 게으르게 앉아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이 기사 작성에는 본사에서 연수 중인 대학생 명예기자 최호정(인하대 사회과학부 2년)씨가 참여했습니다.
  • 럼즈펠드 獨기피?

    |베를린 연합|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다음달 11∼13일 열리는 제41회 뮌헨 연례안보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최종 통보한 것은 자신이 전쟁범죄자로 기소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21일 독일 언론들이 비꼬았다. 호르스트 텔취크 뮌헨 안보회의 조직위원장은 이날 뮌헨지역 일간지 ‘아벤트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럼즈펠드 장관이 국방부 서열 3위인 더글러스 페이스 정책담당 차관을 대신 참석시키겠다는 통보를 해왔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인권단체 헌법권리센터(CCR)와 독일 변호사단체가 지난해 11월 럼즈펠드 장관 등에게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와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수용소의 포로 학대사건 책임을 묻는 형사 고발장을 독일 연방검찰에 제출했었다. 이들 단체가 독일에 고발장을 접수시킨 것은, 독일 형법이 전쟁 및 반인륜 범죄 등에 대해서는 범죄가 독일 밖에서 이뤄지고 행위자가 독일인이 아니라도 기소할 수 있도록 재판 관할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뮌헨 연례안보회의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 러시아를 포함한 주요 국가의 국방 및 외무장관 등 각료 40명과 민간연구소 관계자, 안보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하는 민간 차원의 가장 권위있는 국제안보 협의기구이다. 텔취크 위원장은 “이란 문제 등 많은 민감한 현안이 있는데 럼즈펠드 장관이 불참하는 것에 많은 유럽측 참가자들이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주간지 슈피겔 등 독일 언론은 럼즈펠드 장관이 설사 기소되지 않더라도 이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로 부상되는 일을 원치 않은 때문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란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아 국제적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뮌헨회의에 참석하더라도 유럽측으로부터 공격만 받고 얻어낼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으로도 분석했다.
  • [함혜리특파원 유럽은 지금] 되살아나는 나치 망령

    전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나치 때문에 유럽이 시끄럽다. 영국에서는 얼마전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20) 왕자가 친구 생일파티 가장무도회에 카키색의 나치 제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 ‘선’지 표지에 실리면서 왕자의 분별력 없는 행동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해리 왕자의 무분별한 행동에 크게 분노한 찰스 왕세자는 해리 왕자에게 유대인 학살의 상징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하라고 지시했다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런가하면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76) 당수가 최근 극우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두고 프랑스가 발칵 뒤집혔다. 유대인단체와 반 인종차별주의단체가 격분한 것은 물론 좌우 할 것 없이 정계가 일제히 르펜을 비난하고 나섰다. 급기야 검찰은 르펜의 발언이 반인류 범죄를 부인하는 발언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조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최고 1년의 징역형과 4만 5000유로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그는 RTL 라디오와 회견에서 “독일의 프랑스 점령을 다른 나라 점령과 비교한다면 고통이 가장 경미했던 곳은 프랑스였다는 점에 주목한다.”며 “전후 60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런 주제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아돌프 히틀러 최후의 날들을 그린 독일 영화 ‘추락’이 프랑스 개봉과 함께 논쟁의 불씨로 떠올랐다. 올리버 히르슈비겔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히틀러가 최후 12일 동안 베를린의 지하 벙커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현실에 번민하며 자살을 준비하는 인간적 면모를 2시간30분짜리 영상물에 부각시켰다. 이 영화는 독일군이 소련군과 연합군에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구도로 짜여 있어 역사적 내막을 잘 모르는 관객들, 특히 전후 세대의 젊은이들이라면 끔찍한 전쟁 범죄자와 측근들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lotus@seoul.co.kr
  • “북한 정치범 20만명”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국제 인권 감시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RW)는 13일(현지시간) “북한이 일상적이고 터무니없이 거의 모든 국제 인권기준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HRW는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발표한 지난해 세계 60개국의 인권상황 연례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20만명으로 추산되는 정치범 ▲1990년대 이래 200만명의 아사자 ▲수십만명의 탈북 ▲북한 요원들에 의한 탈북자 체포와 강제송환 등을 인권 탄압 사례로 제시했다. 또 탈북 여성들이 납치되거나 강제결혼을 통해 윤락이나 성노예 상태에 빠지고, 일부는 생계를 위해 자발적으로 몸을 파는 등 여성의 인권 상황이 특히 악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단체의 케네스 로스 총장은 그러나 “북한 관리들이 지난해 방북한 빌 라멜 영국 외교부 차관에게 인권을 별로 중시하지 않고 있음을 시인하고 재교육을 위한 노동수용소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과거 인권유린을 전면 부인해온 것에서 작지만 진일보한 측면”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북한 인권상황을 조사·연구하기 위한 직접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탈북자 및 수용소 탈출자들과 면접을 통해 북한 인권상황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중국 역시 탈북자를 돕는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탄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스 총장은 이와 함께 기자회견에서 미군이 운용한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쿠바 관타나모 기지 수감자 학대 사건으로 세계 인권보호 체제가 약화됐다.”며 수단 다르푸르 사태와 아부 그라이브 사건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미국 정부에 촉구했다. 그는 ”미국이 9·11 테러사건 이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문제 등으로 세계 인권 지도국으로서의 신뢰를 잃었고, 이집트가 자국의 비상입법을 미국의 대 테러 입법에 비유하는 등 자국내 인권문제를 미국의 사례에 비유하거나 미국을 핑계로 대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신뢰 회복을 위한 미국의 노력을 강조했다. 로스 총장은 또 지난해 수단 다르푸르의 ‘인종 청소’와 관련,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유엔안보리 등 국제사회에 요구했다. HRW 인권보고서는 인권탄압 의혹이 큰 국가를 조사 대상으로 했다. 우리나라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HRW는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고문 등 인권탄압 사례를 폭로한 바 있으며, 김선일씨 납치, 사망 사건 직후 강력한 비난 성명을 낸 바 있다. dawn@seoul.co.kr
  • 악마의 끈-철조망의 문화사/앨런 크렐 지음

    근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아무래도 경계짓기다. 너와 나의 구분, 우리와 너희의 구분, 내 구역과 네 구역의 구분. 우주 혹은 삼라만상과 내가 연결돼 있다는 세계관은 비과학적·미신적이라는 이유로 근대에 들어 철저히 버림받았다. ‘악마의 끈-철조망의 문화사’(앨런 크렐 지음, 강미경 옮김, 사계절 펴냄)는 ‘찔리면 아프다.’는 단순명쾌한 원리로 경계·구분 짓기라는 근대성을 보여준 철조망을 통해 지나간 시대를 더듬고 있다. 철조망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74년 서부개척 붐이 일던 미국에서였다. 사실 개척 붐이라는 것도 백인 기준의 표현이다. 철조망 바깥으로 내몰린 인디언들이 철조망을 ‘악마의 끈’이라고 부른 것은 당연했다. 백인과 비백인을 가르던 악마의 끈은 비백인들의 저항이 잦아들자 이제 백인과 백인 사이를 갈라놨다. 바로 농사짓던 지주들과 가축을 기르던 농장주간 반목이었다. 놓아 기르던 가축이 철조망에 막히자 농장주들은 철조망을 잘라 버렸다.19세기 말 불었던 ‘철조망 절단 전쟁’이다. 철조망의 악마적 성격은 세계대전 때 절정에 달했다. 철조망 하면 포로수용소, 적국, 억압과 강제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이때의 경험 탓이다. 특히 유대인에게 철조망은 곧 대량학살이다. 이런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거꾸로 철조망은 예수의 면류관에 비유되기도 한다. 넬슨 만델라의 머리에 철조망으로 만든 면류관을 씌운 그림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철조망의 변주를 광고·그림·정치포스터 등을 통해 다양하게 보여준다.1만 38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美軍 가혹행위 특별검사가 조사해야”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가혹행위를 저지른 미군들에 대한 군사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비정부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가 13일 미국 정부로 하여금 특별검사를 위촉해 이 사건을 조사하도록 권고해 주목된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이날 워싱턴에서 발간된 2005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이라크에서의 미군 가혹행위와 수단 서부 다르푸르 일대에서 자행된 인권 유린행위로 인해 인권 보호장치가 “현저히 약화됐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이 권고했다. 이 단체의 케네스 로스 사무총장은 “미국 정부는 국내에서 정의를 실현하려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다른 나라에 정의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면서 “인권과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던 나라들이 이제는 미국을 상대로 같은 요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이집트, 러시아, 쿠바 등이 미국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나라들이라고 예시했다. 찰스 그레이너 상병 등 미군 병사 7명은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 수감된 이라크인 죄수들을 다루기 쉽게 만든다는 미명 아래 죄수들을 발가벗겨 인간 피라미드를 쌓게 하거나 목에 개줄을 묶고, 집단 자위행위를 강요하는 등의 인권유린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군사재판을 받고 있다. 12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포트 후드 군사법정에서 속개된 찰스 그레이너 상병에 대한 변호인측 반대 신문에서 직속 상관이었던 브라이언 리핀스키 특무상사는 그레이너 상병이 “명령을 잘 따르지 못해 고생한 불쌍한 병사”라고 두둔해 빈축을 샀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탈북 국군포로 中서 억류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간 국군포로 한만택(72)씨가 한국으로 가기 위해 북한을 탈출했다가 최근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됐다고 중국내 북한 소식통들이 10일 밝혔다. 한씨는 이달 초 두만강을 건너 중국 옌지(延吉)에서 조카와 만나기 위해 한 호텔에 머물러 있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북한 소식통들은 “한국의 가족들이 한씨의 북한 생존 사실을 알고 수개월의 노력 끝에 기획 탈북을 결행했다.”며 “그가 북한으로 압송될 경우 극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고령에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세 때문에 수용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외교경로를 통해 중국 당국에 한씨 억류 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한씨 억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중국에 신병인도와 함께 인도주의적 처분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북한에서 송환되지 않은 국군포로 500여명 가운데 지금까지 42명이 북한을 탈출해 귀환했다. oilman@seoul.co.kr
  • 印尼 정부·반군 교전… 구호 비상

    쓰나미 최대 피해지역인 인도네시아 아체에서 총격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구호단체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시적인 휴전 상태에 돌입했던 정부군과 반군이 사실상 교전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9일 새벽 아체주 주도(州都) 반다아체 유엔 구호본부 인근 아체경찰청 부청장 집에 반군이 총격을 가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사실 확인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양측간의 휴전 협약이 깨진 징후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어 구호단체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경찰과 유엔은 총격이 구호본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고 반군이 외국인을 목표로 삼은 경우가 없었다고 밝혔지만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 5일 아체 북부 이재민 수용소 부근 세우누둔 마을에서 정부군이 반군과 1시간가량 전투를 벌여 2명을 사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체주의 자치독립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싸워온 반군은 쓰나미 피해를 입은 뒤 곧바로 휴전을 제의, 전투를 중단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군이 구호 활동을 빌미로 반군을 소탕하려 한다.’거나 ‘반군이 정부군을 다시 공격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는 등 사실상 교전이 재개된 상황이다. 한편 아체에서는 의약품 등의 구호물품이 턱없이 부족, 전염병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 활동중인 인도네시아 의사 호세 리잘은 “호흡기 질환과 설사, 장티푸스, 피부병, 폐렴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8일 전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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