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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정부는 전쟁범죄 반성하라”韓·日 연대시위

    ‘전쟁 범죄 반성없는 일본정부를 규탄한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에 대한 분노의목소리가 한국과 일본 하늘에 울려 퍼졌다.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지 56돌이 되는 15일 오전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과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는 ‘일본총리 신사참배 규탄과 군국주의 부활저지를 위한 한·일 연대시위’가 동시에 열렸다.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A급 전범을 추앙하며 군국주의를부활하려는 음모를 반대한다”는 참석자들의 외침이 메아리쳤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9개 단체가 주최한 ‘427차 특별 수요시위’를 겸한 이날 탑골공원 집회에는 위안부 할머니 10여명과 일본 시민단체 대표,국내 중·고교생 등 600여명이 참가했다. 중·고생들은 ‘군국주의 부활 저지’‘역사교과서 왜곡 중지’라고 적은 빨강,노랑 등 색색의 막대풍선을 흔들었다.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헌정 앨범을 제작해 화제를 모았던 대중음악가 임상훈씨가 애절한 사연을 담은 창작 가요를 불렀고한성여고풍물패의 공연이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의 발길을붙잡았다.경기도 광명북고 3학년 임승연(林承延·17)양은 “주변국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지난주 수요집회에는 방학 숙제를 위해 참가했지만 오늘은친구들과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일본의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자국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생각하는 히로시마의회’ 후쿠도메노리야키(福留 範昭)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가 변할 때까지 투쟁하겠다”며 한국 시민단체와의 연대투쟁 의지를 밝혔다. 위안부 출신 이용순(73) 할머니는 “일본은 역사의 생생한증인인 우리들이 빨리 죽기만 바라겠지만 우리에게 사죄하고 배상할 때까지 오래 건강하게 살 것”이라고 외쳐 참가자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정대협 수요시위 부분허용

    경찰이 한때 금지했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를 부분 허용했다. 정신대 할머니들과 수녀,시민등 50여명은 1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별다른 마찰없이 1시간 가량 집회를 가졌다.그러나 중·고등학생과 한총련 소속 대학생 100여명은 경찰의 제지로 일군 위안부 할머니들과떨어져 국세청 신청사 건설현장 옆에서 집회를 가졌다. 경찰은 지난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수요집회에 참가한 다른 단체 관계자가 교과서 왜곡을 문제삼아 일장기를 불태운 점 등을 들어 수요집회 금지통고를 내렸었다. 경찰 관계자는 “일본대사관측에 부분 집회 허용에 대해이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씨줄날줄] 중국판 ‘훈할머니’

    ‘훈 할머니’는 중국에도 있었다.한국정신대연구소(소장고혜정)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채 중국헤이룽장성(黑龍江省)무린의 한 마을에서 60년 동안 살아온 ‘제2의 훈 할머니’박옥선(78)할머니를 찾았다고 16일밝혔다. 박 할머니는 18살때인 1941년 고향 경남 밀양에서 “방직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말에 속아 정신대로 따라나섰는데 정작 도착한 곳은 일본군 부대 근처의 위안소였고,4년동안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아키코’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렸던 박 할머니는 1945년 소련군에쫓겨 패주하는 일본군과 보름 동안이나 산속을 헤매다가밥을 얻어먹으러 마을에 내려갔다가 그곳에 눌러 살게 됐다고 한다.“휴일이면 문앞에 줄지어 서서 재촉하는 병사들을상대하다 죽을 생각도 해봤지만 죽지 못해 모진 목숨을 부지했다”는 박 할머니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오늘은 수요일.12시 정각이 되면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며 시위를 벌이는 날이다.지난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당시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일본군대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정기 수요시위’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거르지 않은 채 오늘로 456회째가된다.이 시위가 10년 가까이 계속되는 동안 정부에 등록된199명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중 57명이 한을 안은 채세상을 떴다.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배짱인지,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그런 가운데 최근 문부과학성의검정을 통과한 역사왜곡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부분’을 아예 삭제했다.“우리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일본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가!”위안부 출신할머니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더구나 명색이 대학교수라는 어떤자는 “위안부 역사는 화장실 역사와 마찬가지다”라는 폭언을 해서 우리 국민들을 자극하고 있다.그 자에게 말하겠다.눈이 있으면 한국 신문에 실린 박 할머니의 처참한 모습을 살펴 보라.그런다음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사람인지 짐승인지를 판단해 볼 일이다. ■장윤환 논설고문yhc@
  • [외언내언] 2000년 국제법정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고등법원은 일본군 위안부로 7년 동안 혹사당한 재일 한국인 송신도(78)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1,200만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항소심 판결에서 위안소 설치는 당시의국제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했다.위안소 설치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일본의 사법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재판부는 그러나 송할머니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는 “재일한국인의 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20년이 경과한 1985년에 소멸됐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6일 일본대사관이 입주해 있는 광화문 교보빌딩 옆 가로공원에서는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제438차 수요시위가 열렸다.이날 시위는집행부가 7일부터 12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국제법정’(이하 ‘2000년 국제법정’) 참가차 떠나고 없어 조촐하게 치러졌지만 1992년 1월8일 첫 집회 후 9년 동안 계속돼온 시위의 열기는 여전했다. ‘2000년 국제법정’은 1998년 4월 유엔여성단체 모임에서 일본의시민단체 대표인 마쓰이 야요리가 제안,같은달서울에서 열린 제5차아시아연대회의에서 그 개최가 결정된 것이다.남북한 중국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일본 등 9개국 시민단체가 공동개최하는 법정에는 1,000여명의 세계 인권 평화 여성단체들이 참여한다.한국에서는 위안부 할머니 24명을 포함해 모두 220명이 참가하는데 특히 남북한은 공동으로 작성한 일왕(日王) 히로히토(裕仁·1989년 사망)에 대한 기소장을 제출한다. ‘2000년 국제법정’ 행사는 국제공청회·문화행사도 곁들인다.법정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를 대신해 각국 검사단이 일왕 히로히토 등 전범들을 고소하며 국제형사재판소(ICC) 유고전범재판에 참여했던 커크맥도날드와 국제법전문가 크리스틴 친킨 등 판사단 6명이 고소장과위안부들의 증언을 토대로 심리하고 판결을 내린다. 이 행사는 아시아 8개 피해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상징적인 인권법정이란 점에서 법적 구속력은 없다.그러나 전쟁당시 성노예 범죄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냄으로써 인간으로서 명예회복과 존엄성을 회복하고 이같은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해세계적으로 명망높은 판사들이 일본정부의 잘못을 판결한다는 뜻에서의미있는 행사다. 이처럼 ‘2000년 국제법정’이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 일본군 성노예 범죄에 대한 책임자의 처벌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고있는데도 일본은 여전히 1965년 한·일조약으로 이미 과거는 청산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박찬 논설위원 parkchan@
  • [대한시론] 日국왕 訪韓前 풀어야 할 일

    지난 9월 2일 김종필 총리는 한·일 총리회담에서 아키히토 일본국왕의 방한을 요청하면서,“2002년 월드컵 이전에 방한이 이뤄지면 한·일관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내년이나 2001년의 방한을 거듭 요청했다.일본국왕의 방한을 요청한 한국정부의 자세가 국민의 미묘한 대일 정서까지 고려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먼 시각에서 볼 때 일말의 전진적인 점을 엿볼 수있다. 그러나 김 총리가 지난번 방일에 이어 이번에도 공식석상에서 일본어 실력을 과시한 것이라든가 국민의 대일 정서에 앞질러 ‘일본국왕’의 방한을 요청하는 정부의 자세는 아무래도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개인적으로는일본이 과거 저지른 문제의 해결 없이 방한하는 것은 반대한다. 한국정부의 거듭된 일본국왕 방한요청에 대한 오부치 총리의 답변은 ‘환경 조성에 양쪽이 노력해 나가자’는 것이었다.‘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뜻’을밝힌 것이지만,뒤집어보면 한국이 분위기를 잘 조성해 더 간절히 요청하면방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도 볼 수 있다.대답의 이면에는 일본국왕의방한이 그동안 잠재우고 있던 한국인의 대일 정서를 자극해 예측할 수 없는결과를 돌출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점도 숨겨져 있다고 본다. 오부치 총리의 대답은 한국민의 내면에 흐르는 형언하기 어려운 대일 정서를 한국정부보다 더욱 면밀하게 간파한 것이지만,환경 조성은 오히려 일본측이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무엇이 일본정부로 하여금 ‘일왕방한’ 요청에 ‘환경 조성’을 이유로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하게 하는가.또 그 소리냐고 역정을 낼지 모르지만,한마디로 그것은 일본이 청산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과거사의 문제이다.한·일관계에서 아킬레스건처럼 중요한 대목마다 소리없이 나타나 양국 관계의 진전을 괴롭히고 있는 망령같은 존재가과거사이다.일본은 잊어버리기를 원하지만,한국인은 해방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 아직 그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일본국왕’의 방한이 바로 그런 과거사의 고리를 끊는 ‘환경 조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한국민은 한국정부만큼 그의 방한을 환영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언제 이뤄질는지 알 수 없는 방한에 앞서,한·일간의 ‘불행했던’ 과거사의 앙금을 걷어내려는 일본국왕의 노력과 결단이 기대된다. 불행했던 과거사 청산문제를 다시 건드리는 것은,그같은 잘못을 더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촉구하는 것에 다름아니다.한·일간 과거사청산문제는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고 현재의 문제이며,한·일간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북한과 일본,중국과 일본의 문제이기도 한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다. 세계는 지금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지역간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동북아시아지역만 분단과 냉전체제,일본 군국주의의 미청산으로 지난 역사의 질곡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한·일간 과거 청산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동아시아의 바람직한 관계,나아가 세계사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일본국왕은 그의 증조부 이래로 왜곡된 한·일관계의 한가운데 자리했던 만큼 방한에 앞서 과거 군국주의 침략행위에 대한 명백하고 솔직한 사죄가 있어야 한다.이것은 한국에 대한 표명일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를 향한 것이며,일본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더 높이는 계기도 된다. 일본이 청산해야 할 과거사는 이제 일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동학혁명 이래 부당한 군대 파견으로 동학군과 의병·독립운동자 수십만을 사살하였고,불법적으로 행한 한국 강점에 수많은 문화재의 강탈과 수탈통치,일제말기 100만이 넘는 노동자들의 강제연행과 사할린 동포,강제연행자들이 저축해놓은 저축금의 미반환 문제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지금도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377차까지 행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보여주듯이,일본정부가 관여를 부정하고 있는 약 10만∼20만의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와 배상문제는 유엔 소위에서까지 결의된 것이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한국인들은 제사 때마다 일제에 의해 무참히돌아간 조상의 죽음에 동참하며 일본에 대한 다짐을 새롭게 한다. 한국인의 이런 고통의 한가운데 아직도 ‘일본국왕’이 자리하고 있다.과거사에 대한 앙금을 걷어내려는 가시적인 조치가 취해진다면,일본국왕은 한국의 국립묘지에서 일본 국민들을 대표하여 항일 독립운동가들에게 향불을 피우는 것도 거리끼지 않을 것이다.일본국왕의 방한이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그때 한국민도 마음으로부터 일본국왕을 환영할 것이다. [李萬烈 숙명여대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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