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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그다드·암만/하트라의 축제(아랍서 지중해까지:2)

    ◎「저항의 역사」 신전을 무대로 재현/로마군 물리친 베드윈족 그려… 제사땐 양을 제물로 우리가 모술의 호텔 현관으로 들어설 때 아가씨 몇명이 나와서 일행들의 가슴에 빨간 장미 한송이씩을 달아주었다.가이드로 나온 사람,호텔 종사원들이 달려나와 박수까지 쳐줬다.우리를 환영한다는 뜻인데 이 장면은 약간 어색했다.환영하는 그들도,꽃을 받은 우리도 우리가 완전한 동지라는 확신은 아직 갖지 못했던 것이다.몇사람의 아랍계 사람을 제외하면 일행은 대부분 미국과 그 추종세력(?)인 서방세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모술시로 두시간 내겐 그 꽃선물이 「동지가 되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기 보다 지루한 기차여행을 견디고 모술까지 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받아들여졌다.바그다드 정거장에서 모술역까지는 꼬박 9시간이 걸렸다.호텔 만수르의 어떤 가이드는 간밤에 모술까지 서너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말해줬다.서너시간이 9시간으로 늘어난 것이다.이곳 사람들의 시간개념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은 여러곳에서 확인되었다. 바그다드 정거장은 우선 그 구역이 매우 넓고 복잡한 선로와 플랫폼이 질서정연하게 분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었다.시설은 아주 낡았지만 최초의 설계가 매우 치밀했음을 알 수 있었다.이 정거장이야말로 독일제국이 3B 정책의 상징으로 건설한 바그다드 철도의 시발점이 아닌가.비잔티움·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이 노선에서 모술도 중요한 거점의 하나였다.우리는 독일제국이 식민쟁탈의 수단으로 건설해 놓은 이 고색 창연한 철도를 이용해 모술로 가는 것이다. 넓고 긴 플랫품에는 북쪽에서 귀환하는 많은 군인들과 고향으로 가는 많은 민간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특히 군복을 느슨하게 입은 젊은 군인들이 아주 많았다.해가 진뒤 스산한 저녁나절에 군인들과 검은 차드르 혹은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부녀들이 한데 뒤섞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피난길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객차 좌석에 앉아있는 부녀자들은 거의 표정이 없었다.군인들도 표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그들은 골격이 크고 윤곽이 분명해서 희노애락을 드러내기가 한층 쉬울텐데 마치님루드궁전 입구의 돌조각처럼 시종 무표정이다.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물자궁핍과 낙후된 생활환경에 잔뜩 불만을 품고 있을까? 혹은 유구한 역사가 현재와 혼재되어 그 역사의 숨결을 하루하루 생생하게 느끼며 살고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일까? 그야 어떻든 그들이 우리 이방인의 시각에서 보면 놀라울만큼 순수하고 순진하다는 것은 분명했다.그점은 그들의 투명하고 매혹적인 눈빛에서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바그다드∼모술간 철도주변은 대부분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해당되는 곳이다.밤에는 못봤지만 새벽이 되자 차창 밖으로 크게 자란 옥수수밭과 밀밭,감자밭들이 이어지고 있었다.그러나 농지관리는 산만했고 구획이 정해진 농지보다 버려진 초지가 많은걸 볼 때 경작방법은 아직 원시상태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들에는 천막 가득 모술에는 아시리아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성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이 도시 자체가 유적이었다.인구 백만을 헤아리는 북부 최대도시로 알려졌지만 현대도시란 느낌보다 역사의 시간속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고대도시란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우리가 묵은 모술호텔은 이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었다.호텔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모술 유적관람을 뒤로 미루고 축제가 열리는 하트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모술에서 하트라까지 버스로 다시 두시간 반이 소요되었다.가는 길목에서 이따금 언덕위에 설치된 포대와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이 포대는 아마 터키 국경부근에 출몰하는 무장 쿠르드족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다.양떼나 놀고 있어야 할 한가로운 언덕위에 견고하게 구축된 포대와 병사들,이것은 오늘날 이라크가 처해 있는 복잡한 내외환경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상징물로 보였다. 대상도시 하트라는 AD 1세기쯤 아라비아 반도에서 흘러온 베드윈족들이 건설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유명한 하트라 성도 베드윈의 캐러밴들(대상)이 세운 신전이며 하트라 부근에는 베드윈의 분위기,그 흔적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 검은색 아라비아 의상을 걸치고 쿠트라란 이름의터번을 쓴,말을 탄 용감한 병사들이 많이 등장한다.골격이 뚜렷한 얼굴,멋진 수염,날카로운 눈빛이 이 용맹한 무사들의 공통된 특징이다.하트라에는 이런 복장,용모를 지닌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길가에 천막을 설치해 놓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앉아 있었다.수염을 멋지게 기른 베드윈의 촌장쯤 되어 보이는 남자들이 수십명 천막아래 나란히 앉아 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천막안에도 사담 후세인의 초상화는 한가운데 걸려있었다.한쪽에서는 산채로 양의 목을 베어 큰그릇에 그 피를 쏟아붓고 있다.사람들이 양의 피를 마시려고 주위로 몰려들었다. 축제때면 알라신에게 살아있는 양의 피를 바친다는 베드윈의 관습을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다.멀리서 온 극동의 손님에게도 친절하게도 한 양푼의 양의 피를 권한다.우리가 질겁하고 뒤로 물러서자,촌장들은 점잖고 인정스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이런 천막들 숫자가 하트라성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늘어났다.들에는 흰 천막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축제의 본무대인 신전은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이다.헬레니즘의영향을 받은 코린트식과 이오니아식의 화려한 원기둥들이 즐비하며 벽면의 조각품에도 그리스나 페르시아의 양식이 도입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얼핏 보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많이 닮은 꼴이었다.그리스 신화 속의 괴물인 메두사의 머리가 전면 벽에 크게 부조된 것도 좋은 증거물이었다.무대로 사용되는 신전의 회랑에는 아무런 장식물도 설치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무대가 너무 썰렁하고 보잘것이 없었다.그러나 개막프로인 「사막의 힘」(춤과 노래가 혼합된 무용음악극)이 펼쳐지면서 붉고 푸른색 조명이 비쳐지자,지금까지 그늘진 폐허로만 보였던 그 무대가 갑자기 역사의 현장을 되살린 것 같은 지극히 환상적인 무대로 돌변했다.투구와 갑옷을 입고 방패와 창을 든 고대 로마군의 진격과 거기에 맞서는 베드윈 용사들의 항전­이것은 AD 2∼3세기 로마군이 하트라 성채를 공략했으나 주민의 저항으로 퇴각했던 실제 역사를 재현한것­이같은 극의 전개와 무대배경이 된 하트라 신전의 전면 회랑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저음의 합창 장엄 이 무대는 역사물을 다룬 어떤 오페라 무대보다 더 장엄하고 더 환상적이며 더 실제적이었다.유적현장을 장식없이 그대로 무대로 사용한 착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그러나 주최측이 심혈을 기울인 「사막의 힘」은 구성과 춤동작에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볼쇼이의 명품 「스팔타카스」처럼 춤동작이 좀 더 다양하게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면 그 환상적인 무대는 좀 더 빛이 났을 것이다.대형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진 아랍인의 합창­이것은 하트라에서 내가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다.정치적 의미를 배제하고 단순히 소리라는 측면에서 그것은 아름답고 장엄한 합창이었다.저녁 어스름에 뒤덮인 하트라의 평원을 찌렁찌렁 울려줬던 아랍 남성들의 저음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어떤 비원을 담고 있는 듯한 그 노래가락은 군중에게 충분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이 합창을 듣고 나는 하트라의 축제가 소기의 목적을 거두고 있음을 확인했다.왜냐하면 거기 모인 군중들­대부분이 차를 가졌거나 차에 편승이 가능한 중류층 이상이며 이들은 지배이데올로기 편에 서있을 가능성이 많지만­의 표정이 노래가 들리는 순간 하나같이 엄숙해졌기 때문이다.그들은 그 순간에 침략자를 상기하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민족이 더욱 뭉쳐야 한다고 다짐한건 아닐까. 하트라 축제의 포스러를 보면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 카드 네자르 2세(BC 605∼562년)와 나란히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 나와있다.네부 카드 네자르 2세는 바빌론의 재건자이며 특히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태인을 끌어다가 노예로 부린 장본인이다.이 포스터가 말하는 것은 후세인이 바로 그의 계승자란 사실이다.후세인은 아득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빌려 그의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그는 역사의 복원을 외치며 국민에게도 역사와의 동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었다.
  • 바그다드·암만/사막의 모래바람(아랍서 지중해까지:1)

    ◎중견작가 4인의 연작 문학기행/아늑한 도시… 걸프전 피폭 잊을뻔/직격탄 맞았던 호텔 현관바닥에 부시얼굴 새겨 밟고다녀 새벽 4시가 조금 지나 12시간에 걸친 사막의 질주를 끝내고 드디어 우리는 바그다드시내로 들어왔다. 거리에 통행자는 없는데 전등들은 모두 그대로 켜져있다.낮은 상가건물들이 서울 어느 변두리 건물들처럼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아직 형체가 분명하지 않다.태양이 떠오르면 그것들은 전혀 다른 색채와 분위기를 드러낼 것이다. 암만에서 버스를 함께 타고온 열댓명의 우리 일행은 알 만수르호텔로 안내되었다.일행중엔 튀니지에서 온 남녀 두사람,고고학자라는 오스트리아인 중년 두사람도 끼여 있었다.알 만수르는 기원763년 바그다드에 새로 수도를 창설한 압바스 왕조의 지배자 이름이다.튀니지 사람들이 묵게된 알라쉬드호텔 이름 역시 압바스왕조의 칼리프(지배자)이름에서 빌린 것인데 알 라쉬드호텔은 걸프전 당시 미사일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유명했다.그 호텔현장에 가봤는데 지금은 건물이 말끔하게 복구되었고 피폭지점에는기념설치물이 마련되어 있었다.또 이 호텔 현관바닥 복판에는 부시의 얼굴이 크게 부조되어 드나드는 사람마다 그것을 밟게 되어 있었다. ○12시간 버스 여행 7층 객실에 짐을 풀어놓고 피곤했지만 발코니로 나왔다.바그다드와 첫인사를 나누지 않고는 잠들수 없었기 때문이다.바로 눈앞에 티그리스 강이 조용히 흐르고 강 저쪽으로 현대식 빌딩들이 드문드문 솟아있는 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강 이쪽은 공원처럼 보이는데 키 큰 야자수와 종려나무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그 숲만 바라봐도 가슴이 후련해진다.원경으로 낮은 회색건물들이 숲 사이사이에 끼여있는 모습은 무척 평화롭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여기가 그 소란했던 걸프전의 포화앞에 노출되었던 도시라는 생각을 잠시 잊어버린다. 문득 레바논 출신의 여가수 마즈다 루미의 노래소리가 강건너 저쪽에서 들려오는 것같다.물론 환청이다.방콕에서 암만으로 가는 비행기 좌석 리시버를 통해 오랜만에 마즈다 루미의 청승맞은 목소리를 들었을때 나는 무척 반가웠다.십여년전부터 나는 그녀의슬픔으로 저며진 것 같은 목소리에 정신을 홀딱 빼앗겨 왔던 것이다.「사랑이 바로 해답」,「그는 모래언덕으로 나를 찾아왔다」.내가 좋아하는 마즈다 루미의 노래들이다.나는 마즈다의 노래에 이끌려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아닐까?내 마음의 밑바닥을 살펴보면 그 흔적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마즈다 루미의 노래를 닮은 여인들,그 노래가락처럼 슬픈 마음을 지닌 여인들,시원한 눈매로 문득 잠에서 깨어 놀란듯한 표정을 짓고있는 마즈다의 재킷 사진을 닮은 여인들이 지금 이 도시에서 잠들고 있을 것이다. 암만∼바그다드간 자동차여행은 정말 멀고 지루했다.이처럼 장시간 자동차를 타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게다가 국경선을 중심으로 검문검색하는 초소들이 수없이 널려있어 여행자를 더욱 짜증나게 만들었다.이상하게 느낀건 이라크쪽보다 요르단 관리들이 더 딱딱하고 거만하게 굴었다는 점이다.그들은 여권검사를 할 때 무려 한시간 이상이나 우리를 기다리게 만들었다.이 작고 가난한 왕국의 관리들은 명망높은 폐하의 관리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있는 것 같았다.비교적 친절했던 이라크 사람들도 무기검색에는 아주 철저했다.그들은 자동차 밑바닥을 조사하기 위해 도로상에 세차장에 설치된 것같은 페치카까지 파놓고 있었다. ○갈증해소에 인기 국경을 넘어서자,우리가 제일먼저 마주친 얼굴은 도로 중앙에 설치된 사담 후세인의 대형 입간판 초상화였다.우리는 비로소 이븐 탈랄 후세인의 땅에서 사담 후세인의 땅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왕과 대통령,두사람의 직함은 분명 다르지만 후세인의 대형 초상화 앞에 섰을때 그런 차이는 별 의미가 없었다. 국도에는 대형 유조트럭들,화물트럭들이 줄을 이어 달리고 있었다.일반 차량을 구경하기가 도리어 어려웠다.항로마저 폐쇄된 현재 이도로가 아라크의 유일한 젖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도로 주변은 대부분 황량한 땅이다.모래사막은 아닌데 풀은 겨우 손뼘만큼 자란게 고작이다.그래도 제법 많은 양떼를 거느리고 들판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양치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양떼들이 어디서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좌우의시야에 지평선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그리고 이따금 희미한 샛길들이 지평선쪽으로 뻗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분명 사람들이 걸어간 흔적일텐데 한차례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샛길 흔적이 지워져버릴 것만 같다.저 길로 끝까지 걸어가면 과연 마을이 나타날까?거기에 나타나는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어린시절 그랬듯 이런 부질없는 상념들이 불현듯 떠오르곤 했다. 점심을 먹기위해 처음 찾아든 국도변의 식당은 꼭 우리 시골길가에 있는 주막겸 잡화점의 분위기였다.식당 홀 옆에 가게가 붙어있는데 여기에는 생필품과 간단한 차량 부속품들이 선반에 조금씩 진열되어 있었다.이 가게에서 펩시콜라는 단연 인기품목이었다.코카콜라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 회사가 유태계란 것이 그 이유였다.콜라는 사막의 갈증을 해소하는 명품으로 이곳 사람들에게 이해되는 모양이었다.여행자건 현지인이건 식탁에 앉으면 펩시콜라부터 찾았다.우리가 식탁에 앉자,우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식당주인인 키큰 아랍 남자는 당연한 순서라는듯 펩시콜라부터 한병씩 안겨줬다. 간이식당 식탁에서 처음으로 이라크인들의 주식인 카밥과 코르사를 만났다.카밥은 양고기를 손가락 두께로 말아서 구운 것인데 그런대로 맛이 구수했다.누군가가 까마귀밥이란 뜻이 아니냐고 농담을 했지만 이곳에서는 비싼 음식에 속하는 것으로 육류섭취의 대표적인 음식이었다.코르사는 화덕에서 구운 밀가루 전병인데 제분상태가 안좋아서 거칠고 딱딱하며 때로는 밀짚쪼가리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이것은 주식으로 코르사에 카밥을 둘둘 말아서 손으로 들고 먹는게 관습이었다.그밖에 채소 샐러드 접시가 하나 나왔는데 잘게 썰은 토마토와 상추,그리고 종려나무 열매인 대추야자가 고루 섞여 있었다.우리는 토마토를 과일로 여기고 판매도 과일가게에서 하고 있는데 반해 아랍지역과 지난날 아랍의 세력이 미쳤던 지중해의 여러 지역에서는 토마토는 순수한 채소로 대우받고 있는게 우리와 달랐다.코밑 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랐고 종일 손을 씻지 않았을 것처럼 보이는 식당 주인남자가 자기 머리통을 싸매고도 남을만큼 크고 넙적한 코르사 여러장을 들고와서 식탁위에 턱턱 던져 놓았다.우리는 기겁을 했지만 값비싼 펩시콜라를 곁들여 그런대로 만족스럽게 최초의 아랍식 식사를 끝냈다. ○2백디나르 사기 버스에 좀 야릇한 옷차림의 손님이 중도 승차한 것은 밤이 으슥해서 우리가 바그다드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그는 헐렁한 추리닝을 입은 중년남자인데 국도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그는 몸집이 좋고 비윗살깨나 있게생긴 사내였다.처음 아무도 이사람을 주목하지 않았다.차가 한참 달린 뒤에야 그가 활동을 개시했다.그는 차에 함께 타고있는 정부관리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이 관리는 우리를 데려가려고 암만으로 파견된 사람이다.그래서 누구나 추리닝을 단번에 신뢰하게 되었다.그는 자기가 우연찮게 디나르를 많이 소지하고 있는데 좋은 환율로 달러와 바꿔주겠다고 제안했다.현재 달러당 80디나르인데 1백25디나르로 바꿔준다는 것이다.튀니지 사람들만 제외하고 누구나 돈을 바꿨다.추리닝은 버스중간 통행로를 바쁘게 오가며 말했다. 『여러분은 나의 친구다.그래서 기쁘게 돕는것이다』 한차례 환전이 끝나자,추리닝은 헐렁한 바지속에서 해바라기씨를 잔뜩 꺼내 우리 모두에게 일일이 나눠주었다.환전보답품이었다.그런뒤 차내 불이 곧 꺼졌는데 그 어둠속에서 그는 바람처럼 종적을 감춰버렸다. 바그다드호텔 환전소에서 돈을 바꿨을 때 환율은 달러당 3백25니다르였다.추리닝은 달러당 무려 2백디나르를 훔친 것이다.그렇다고 이 사실 하나로 아랍인의 대의와 순결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그는 다만 옛날 사막의 대상들이 지녔던 장사솜씨를 손님에게 잠깐 선보인 것 뿐일 것이다.
  • 골다공증/50세이상 남성도 잘 걸린다

    ◎국내 전체환자의 25%… 50만명 추정/성기능 장애·당뇨병·만성 간질환자에 다발 골다공증은 흔히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감소하면서 생겨나는 것으로 알려져 마치 폐경기 여성들만이 앓는 병처럼 돼 왔다. 하지만 최근 50세 이상의 남성도 골다공증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다는 지적이 잇따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연세의대 골다공증클리닉 임승길교수(내과)는 『국내 골다공증 환자는 2백만명으로 이중 남성이 전체의 4분의1선인 5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남성 골다공증 환자가 이처럼 많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데 대해 임교수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폐경이라는 고비가 없어 환자를 명백히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성 내분비학에 대한 국내 연구가 아직 미진하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이에앞서 영국 국립골다공증협회(NOS)는 『50세 이상 남성 12명 가운데 1명이 골절및 갑작스런 신장위축을 가져오는 골다공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영국에서는 매년 1만2천명의 남성이 고관절 골절을 당하며 1만여명이척추골절을 입는다』고 소개했다.협회는 또 『남성 골다공증이 여성의 경우 보다 더 극심한 신장위축을 불러 남성환자의 10%는 키가 13∼26㎝ 줄어 들었다』고 덧붙였다. 골다공증은 뼈의 양이 감소하고 뼛속에 많은 구멍이 생겨 결과적으로 뼈가 쉽게 부러지는 병.골절이 생기기 전까지는 신장감소 말고 별 증상이 없으며 흑인 보다 동양인과 백인에서 많이 발생한다. 남성 골다공증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성호르몬 관련설이 가장 유력하다.임교수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테스테론이 어떤 원인으로 인해 분비가 잘 안이뤄지면 뼈가 급격히 손실되면서 근육량이 감소,낙상때 골절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남성 골다공증은 또 성기능 장애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연세의대 이무상교수(비뇨기과)는 『뼈의 생성및 유지에는 성선호르몬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성기능 저하증이 있는 사람은 예외없이 골다공증에 걸린다』고 말했다.특히 노화로 성기능이 떨어진데다 운동부족까지 겹치면골다공증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다.이교수는 『연세의대에서 현재 관리하고 있는 성선기능 저하증환자 4백명을 검사한 결과 거의 모두 골밀도가 평균치를 크게 밑돌았다』며 50세 이후에 턱수염이 크게 줄어들거나 냄새를 못맡는 증세가 보이면 지체말고 골밀도검사를 받도록 권했다. 이교수는 또 당뇨병·만성간장질환·류마티즘성관절염·갑상선기능항진증등을 앓는 사람들은 2차적으로 남성골다공증이 쉽게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약제들도 남성골다공증의 위험요인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한때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던 스테로이드제나 무릎관절통에 쓰이는 오이씨,간질치료제인 항경련제,부신피질호르몬,알루미늄이 포함된 제산제,결핵치료제인 아이나등을 남용할 경우 골다공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제일병원 한인권박사(내과)는 『골다공증을 예방하려면 젊어서부터 골량이 최고로 유지되도록 칼슘이 풍부한 식사와 함께 체중 실린 운동을 해둬야 한다』며 『인스턴트식품·흡연·음주·커피등은 골아세포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므로 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는 또 40대 이후 건강진단 때 뼈의 건강진단도 함께 받아 기록에 남겨두면 나중에 다른 질환의 치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한국산하 누비는 한국호랑이는(박갑천 칼럼)

    주먹패끼리 한바탕 붙을양으로 마주섰다.입으로 길게 뒵들 짬도 없다.한쪽에서 대뜸 이렇게 으름장을 놓는다.『이봐.인왕산모르는 호랑이도 있나?』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우백호를 이루는 산이 인왕산이다.한국의 호랑이는 반드시 이 산을 한번은 와본다는 옛말이 전해져 내려오기에 하는 말.주먹깨나 쓴다면서 나를 못알아봐? 하는 뜻이다. 저런 산에 호랑이가 내려왔을까 싶어 뵈지만 옛날의 인왕산은 지금보다 훨씬 울창했다.호랑이의 「순례지」가 될 수 있을만큼.「용재총화」(용재총화:3권)등에 보이는 고려 명장 강감찬의 얘기도 서울 호랑이에 관한 것이다.그가 한양판관으로 부임하자 부윤이 호환 많음을 걱정한다.이에 강감찬이 중으로 탈바꿈해 있는 늙은 호랑이를 불러 호통치니 이튿날 호랑이 수십마리가 동쪽 교외로 빠져나갔다. 호랑이는 건국신화에 나온다.그만큼 우리와는 가까웠다는 뜻이다.맹수이기에 화를 당하는 일도 많았지만 한편 산신령으로 존경받기도 한다.민담 또한 적지 않다.그런 민담가운데는 호랑이를 희화화 한것도 보인다.두려움을 희석시키자는 뜻이었을까.곶감이 무서워 도망친 호랑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신부의 알몸뚱이를 보고 나둥그러진 오대산 호랑이도 있다. 강원도 산골 신혼부부가 친척집에 갈일이 생겼다.오대산 높은 봉우리를 넘는데 기척이 이상하여 신부가 고개를 드니 산마루에서 호랑이가 이쪽을 내려다본다.떨렸지만 신부는 처녀때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여자가 벗고 누워서 기면 무서워 도망친다는….신부는 옷을 벗었다.하늘을 향해 누운 자세로 두다리를 앞으로 하고 눈을 모들뜨면서 두팔은 뒤로 하여 땅을 짚은채 엉금엉금 호랑이한테 다가갔다.호랑이는 이 괴물을 바라본다.앞다리는 제것보다 훨씬 크고 빨간 입은 세로 찢어졌는데 수염도 장군감이다.꼬리(풀어진 머리칼)또한 치렁치렁 힘깨나 쓸 것같지 않은가.무서워 뒷걸음질치다가 낭떠러지에서 뒤로 넉장거리하며 죽는다. 가을이면 순종 백두산(한국)호랑이 한 쌍이 서울에 올 예정이다.김대통령 방중기념으로 중국정부가 선물한 것인데 시베리아나 벵골산 호랑이밖에 없던터여서 반가운 일이다.하지만 이소식에 접하면서 우리에 갇혀 「이민」오는 호랑이 아닌,한국의 산야를 동서남북으로 누비고 다니는 「인왕산 호랑이」를 기려본다.그게 사람의 위선을 대갈하는 연암 박지원의 「호질」의 호랑이다.그런 호랑이가 북한땅에는 상당수 있다고 들린다.동물도 휴전선을 못넘는 것인가.
  • 디자털식 SW 「페인트」 이용 사진합성 “감쪽같이 연출”

    ◎미 과학전문지,참단기술 최근 소개/인물배치 자유자재로… 색깔도 조정/기존 것보다 정교,육안식별 힘들어 컴퓨터를 이용해 이미 찍은 사진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되고 있다.미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최근호에서 다양한 사진합성의 예와 합성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잡지에 따르면 이러한 「가짜 사진」은 사진속의 인물을 자유자재로 재배치 할 수도 있으며 색깔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페인트」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디지털방식에 의해 가능하다.이 소프트웨어는 전혀 다른 여러개의 상을 하나의 새로운 상으로 결합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여배우 마릴린 먼로와 에이브러햄 링컨이 각각 그 시대에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합성하면 그 두명이 정답게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을 쉽게 만들 수 있다.물론 팔짱을 낀 팔 등의 정교한 부분은 그 둘의 사진이 아닌 컴퓨터로 합성한 새로운 사진이다. 과거의 사진조작은 주로 독재자의 위상을 높이거나 선전선동 효과를 노리기 위한 방편으로 쓰여왔다.하지만 그때는기껏해야 해상도가 불량한 흑백사진의 인물을 지워버리거나 인물에 수염을 다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역사적으로 사진조작의 유명한 예로는 레닌이 20년 5월 인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에서 스탈린이 자신의 정적이었던 트로츠키를 지워버린 경우다.물론 이 경우에도 손작업으로 덧칠을 한 것이므로 결과사진은 선명도가 원래의 것보다 훨씬 떨어지고 사진의 밝기도 원판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사정이 다르다.첨단 컴퓨터과학을 이용한 디지털방식의 포토몽타주기술은 사진의 합성·조작을 훨씬 빠르고 정확하면서 육안으로는 거의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만들 수 있다. 재래의 합성사진은 그 원래의 모습이 비교적 추적하기 쉬웠다.사진 속의 피사체의 윤곽 부분을 주의깊게 관찰하거나 사진의 선명도나 밝기를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조작된 사진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디지털 합성사진은 추적작업이 육안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사진은 움직일수 없는 시대의 기록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 「빨간코트의 산타」/1931년에 탄생

    ◎설화속 요정서 변신… 코카콜라 광고에 첫 등장 빨간코트와 긴장화에 흰 수염,발그스레한 볼­성탄절 어린이들이 기다리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이다. 이같은 산타의 모습은 1931년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해돈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를 위해 그린 그림에서 처음 탄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드블롬이 택한 산타모델은 루 프렌티스라는 정년퇴직한 세일즈맨으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인자한 이웃 할아버지의 전형이었다.이같은 그에게 선드블롬은 북실거리는 흰 턱수염과 쾌활한 미소,붉은 코트,붉은 장화를 신겨 오늘의 산타를 창조해 낸 것이다. 선드블롬은 35년간 산타를 그려오면서 기존의 요정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콜라를 마시기위해 느닷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는 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했다. 산타클로스 설화는 4세기 당시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크리스마스때 선물을 나눠주곤 했던 소아시아 프란체스코회의 수사 니콜라스가 그 주인공. 이후 산타는 전설 또는 설화로 발전돼 산타의모습은 늙은 난쟁이,동굴에 사는 거인등으로 나라마다 달랐다. 또 이름도 피어 노엘,크리스 크링글,산 니콜라,파더 크리스마스등 갖가지였으며 선물도 12월6일부터 다음해 1월6일사이에 가져다 준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생각들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계기는 18 23년 12월클레멘트 무어의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소식지에 게재되면서 부터.이 시는 나중에 「크리스마스 전야」라는 제목으로 전세계에 알려졌으며 이 시에서 최초로 『통통하게 살이 찐 쾌활한 어른 요정』으로 비춰졌다. 시가 발표된지 1백년이 지나면서 산타가 시에서 그려진 모습과는 달리 다양하게 변화돼 오다 선드블롬이 그린 산타가 오늘날의 이미지로 굳어진것. 코카콜라사는 올 크리스마스를 맞아 산타를 북극곰과 함께 TV광고에 처음으로 등장시킬 예정이다.
  • “쿠나제와 북핵문제 논의”/러총선 참관후 귀국 정재문의원

    ◎밀사설 부인… “친서휴대 없었다” 정재문 국회외무·통일위원장이 탑승한 대한항공 902편이 14일 상오10시46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정위원장은 45분 뒤인 11시30분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모처」에 들를 시간도 없이 바로 국회로 온 것이다. 4박5일동안의 러시아방문 일정과 12시간 가까운 항로로 약간은 피곤해 보이는 정위원장의 첫마디는 『집에 들러 수염도 못깎고 국회로 바로 왔다』는 것이다.한때 정위원장은 황병태주중대사와 함께 북한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밀사」라는 설이 나돌아 그의 러시아방문이 주목됐었다. 정위원장이 이날 귀국하자말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가진 것도 이같은 「밀사설」을 의식한 때문처럼 보였다.러시아방문에서 북한사람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없다』면서 『이번 방문 목적은 러시아총선 참관에 있었다』고 밀사설을 강력히 부인했다. 정위원장은 『다만 귀국하기 전날 쿠나제 러시아 외무차관을 만나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북한 핵문제도 거론됐다』고 밝히고 『북한 핵문제가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지적하자 쿠나제 차관은 「남북대화를 해야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저쪽(북한)에서 대화를 원하지 않는데 어찌해야 하느냐고 말하자 「좀더 노력해야 한다」는게 쿠나제차관의 답변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위원장은 『대통령의 친서는 휴대하지 않았으며 동료인 강신조의원과 함께 줄곧 총선과정을 지켜봤다』면서 총선참관 말고 다른 목적은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국회차원의 선거참관단이 외국을 방문한 것은 우리 의정사상 처음있는 일』이라면서 회견의 대부분을 러시아의 총선을 지켜본 소감과 전망에 할애했다. 정위원장은 『라보프 러시아 선거관리위원장등을 만났으며 거리에 선거벽보가 거의 붙어있지 않았다』면서 『투표장안에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로웠고 투표장 바깥에는 커피와 옷가지를 파는 상인들로 북적댔으며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선거날은 축제분위기로 하루를 즐겁게 지낸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난 89년 당시 김영삼통일민주당총재의 소련방문을 성사시킨 장본인이자 국회에서 손꼽히는 「외교통」이라는 점을 들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가 밀사역을 맡기에 충분한 인물로 보고 있는 듯하다.
  • 한 외무 서안초대 이유/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경계를 알 수 없는 벌판위에 잘 정리된 밭,그 사이로 패어있는 깊은 협곡,군데군데 마을들,말이 끄는 마차,마을의 무수한 감나무….모든 것들이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옅은 황사에 뿌옇게 뒤덮여 있었다.가장 중국적인 정취의 고도 서안.버스 차창을 스치는 마을의 풍광은 우리것과 흡사했다.끝없는 옥수수밭만이 대륙의 풍모를 과시하고 있었다.「아,황사현상이 이래서 생기는구나」.서툴게 포장된 신작로 주변엔 하늘에선 숲으로 보이던 조그마한 정사각형의 「산」들이 스쳐 지나갔다.당조의 13개 황릉.『진시황릉과 같이 아직 발굴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유물의 보존방법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외교부 신문국 직원의 설명이었다.1974년 농부가 우물을 파다 발견했다는 진시황릉의 병마용은 서안 시내에서 2시간 가량 더 가야했다.능은 가로 4㎞×세로 4㎞의 어마어마한 크기였다.병마용은 그 일부.고색의 담장에 둘러싸인 역사 기록상에 나타난 외형상의 황릉 1㎞ 앞에 자리했다.그래서 1천5백여년이 훨씬 지난뒤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동작과모습이 모두 다른 3천여개의 병마용은 황하문명의 진수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13살의 진시황이 무려 39년 동안 78만명의 인원을 동원해 지은 대역사.당시 진시황의 친위부대를 그대로 본따 만들었다는데 젊은 병사,수염 난 늙은 병사….각양이었다.모자를 쓴 사람은 지휘관이고 진시황이 타던 청동마차를 끄는 사람은 장군이다.손 모양이 모두 다른데 안내원의 설명은 창 칼 활을 든 모습이라고 한다.무기는 나무로 만든듯 발굴때부터 없었다고 했다.진시황이 나들이 때 타던 청동마차는 무기가 뚫지못하고 온도 습도를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 밖을 훤히 내다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 움직이는 별궁이었다.토용은 원래 색이 있었으나 보존방법을 몰라 밖으로 나오자 색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아직도 땅속엔 5천여개의 병마용이 더 묻혀있다.그러나 발굴은 먼 뒷날의 일이라고 주위에서 누가 거든다.버스로 30분정도 시내쪽으로 달리니 당현종과 양귀비가 놀던 온천휴양지 화청지가 나왔다.귀비가 혼자서 목욕을 즐겼다는 돌 목욕탕과 아름다운 정원,연못,화려한 누각,양귀비의 춤추는 벽화….귀비를 빼앗긴 안록산의 반란이 이해되고도 남았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서안의 길가 주점들이 하나 둘 붉은 등을 밝히기 시작했다.보름달이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고 있었다.중국이 왜 휴일에 맞춰 한승주외무장관을 문화유적의 보고,서안에 초대했을까.지금 우리 하늘에도 떠있을 「똑같은」 보름달을 보게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 이 추어탕 먹는 계절에(박갑천칼럼)

    요맘때 고향엘 가면 읍내 사는 아우가 추어탕집에서 점심을 산다.추어탕집에 들어서면 농촌 아낙네들이 미꾸라지가 든 바구니를 들고와 저울에 무게를 단다음 돈받는 것을 볼수 있다.추어탕집에서는 「야생」미꾸라지 거둬들여 좋고 잡아온 이들은 곧바로 「현금」이 되어서 좋은 거래이다.통속의 미꾸라지를 들여다보느라면 배때기가 누렇게 기름진 품이 어린날 둠벙을 푼다음 진흙더미 들쑤셔서 잡아냈던 미꾸라지와 다를 것이 없다.그러니 서울서 먹은 양식미꾸라지 추어탕맛과 같을 수 있다 하겠는가. 생무지들은 한마디로 미꾸라지라 해버리지만 물고기박사 최기철교수에 의하면 미꾸라지 아닌 미꾸리도 있다는 것이다(「민물고기를 찾아서」).그것들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인데 싸잡아서 미꾸라지라 함은 잘못이라는게 최박사 말이다.국어사전을 뒤적여봐도「미꾸리」는 「미꾸라지」의 준말로만 나와있다.하지만 추어탕감을 파는 사람들은 몸통이 원통형인 동글이(미꾸리)와 납작한 납작이(미꾸라지)를 구별하여 동글이쪽을 납작이보다 비싸게 판다는 것이다.미꾸리와 미꾸라지는 다같은 기름종개과에 속한다.겉모습부터 둥글고 납작한 차이를 보인 외에도 미꾸리는 입수염 5쌍중 가장 긴 것이 눈의 지름의 2·5배를 못넘는데 비해 미꾸라지의 경우는 가장긴 입수염이 눈의 지름의 4배나 된다.분류학상으로는 분명히 별종이라는 것이다.일반적으로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많고 맛도 좋다는 것이고 보면 이름도 미꾸라지보다는 미꾸리라 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다.최세진의 「훈몽자회」에 「믿구리츄추」,허준의 「동의보감」에 「추어=□꾸리」,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 「밋구리=이추」로 나와있기도 하다. 추어탕도 푹 고아 살만을 발가내어 다시 끓여먹는 방법과 몸통을 그대로 두고 끓여먹는 방법으로 크게 나누인다.그밖에 추두부탕등의 요리법도 있다.미꾸라지에는 특히 비타민A가 많으며 칼슘의 공급원이 되어주기도 한다.강장식품으로 알려져 남성의 발기불능에 끓여먹기도 했다.그런데 북한의 월간지「천리마」 최근호에 미꾸라지가 「만병통치약」같이 소개되었다고 한다(내외통신).폐결핵·급성간염·간경변·당뇨병…등의 치료와 예방에는 이러저렇게 활용하라는 내용인데 예컨대 당뇨에는 미꾸라지를 말린뒤 태워서 가루를 만들어 복용한다는 따위이다. 추어탕 먹는 계절이다.매사에 잘도 빠져나가는 미꾸라지 생리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한다.『미꾸라지국 먹고 용트림하는』 군상을 잠시 떠올려보게도 한다.
  • 원형탈모증 학생 크게 증가/중앙대의대 노병인교수 발표

    ◎영재교육·입시준비 시달려 5년새 10% 늘어/대증요법보다 신경정신과서 근원적 치료를 조기 영재교육이나 입시준비에 시달리는 소아및 청소년들 사이에 원형탈모 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이른바 「공부 스트레스성 원형탈모증」으로 불리는 이 질환은 특히 청·장년기때 곧잘 재발하는등 병증이 매우 고질적이어서 초기 원인치료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중앙대 의대 노병인교수(피부과)는 지난 1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피부과학회 학술대회에서 『지난 1년동안 원형탈모증환자 1백67명을 분석한 결과 20세 이전 저연령층의 비율이 전체의 24%로 나타나 91년 21.1%,88년 15.7%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또 10세이전 소아 원형탈모증환자의 비율도 10%에 이르러 88년 5%,91년 7.8%에 이어 꾸준한 증가세를 기록했다.이밖에 조기 원형탈모증환자의 1차 치료뒤 재발률이 27%에 육박,88년 보다 두배 남짓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노교수는 소아및 청소년의 원형탈모환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입시 준비나 과외·학원수업 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범』이라고 진단했다. 원형탈모증은 유전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안드로겐성 탈모증」(대머리)과 달리 후천적인 여러 요인에 의해서 생긴다.지금까지 밝혀진 대표적인 원인은 자율신경및 혈관의 기능이상,내분비장애,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알려져 있다.원형탈모증은 저절로 낫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 속눈썹,겨드랑이털,수염,음모까지 모두 빠지는 전신탈모증을 일으킬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기 치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더구나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원형탈모증은 약제를 바르는 등의 대증요법만으로는 잘 낫지 않기 때문에 신경정신과 전문의에게 원인치료를 병행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노교수는 덧붙였다. 전문의들은 또 화공약품이 주성분인 염색약·파마약·무스·스프레이등 모발용품은 두피손상을 일으켜 탈모를 촉진할수 있으므로 이들을 과다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도 원형탈모증을 예방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전했다.
  • 코 안면부 육아종/콕시엘라 버네티균이 주범

    ◎연대의대 이원영교수 연구결과/코주위 썩어 들어가 사망까지 부르는 난치병/초기 발견땐 퀴놀론계 항생물질로 치유 가능 털세포 백혈병을 일으키는 「콕시엘라 버네티균」이 폐종양·척수염·간염등 각종 질환에서도 발견된다는 보고에 이어 이 병원체가 「코안면부 육아종」의 원인균인 것으로 밝혀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연세대 의대 이원영교수(미생물학)는 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2차 세계비과학회 학술대회의 초청연사로 나와 『국내 의료기관에서 연세대에 의뢰한 8명의 코안면부 육아종환자 모두가 콕시엘라균에 대해 양성반응을 나타냈다』고 보고했다.이교수는 『이들 환자의 염증조직과 혈액을 채취해 형광현미경과 종합효소반응법(PCR)으로 분석한 결과 8명 모두에게서 콕시엘라균이 검출됐다』며 『앞으로 이 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을 찾아 내는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안면부 육아종이란 코를 중심으로 한 안면부가 헐고 짓무르는 증세를 보이다 점차 썩어 들면서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질환.임상적으로 암의 전단계 또는 암으로 분류되며,치료는 항암제 투여나 방사선조사등 전형적인 암치료법을 적용해 왔으나 잘 낫지 않는 고질병이다. 하지만 이번에 콕시엘라 리케차가 코안면부 육아종의 원인균이란 사실이 첫 확인됨에 따라 이 병은 테트라사이클린이나 퀴놀론계의 항생물질로 조기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콕시엘라 버네티균은 시중에 나와 있는 일반 항생제로도 쉽게 사멸되기 때문이다. 이교수는 『이번 조사대상 환자의 경우 애석하게도 모두 병이 상당히 진행돼 방사선치료 등을 이미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항생제에 전혀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밝히고 『암의 전단계로 알려진 모든 육아종에는 반드시 콕시엘라 양성여부를 검사,조기에 적절한 항생제치료를 시도함으로써 항암제나 방사선치료등의 오류를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교수는 또 콕시엘라균이 일으키는 병이 워낙 다양하고 광범위하며 국내 감염률 또한 높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 균에 대한 광범위한 역학조사와 방역대책,임상의사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촉구했다.
  • 약수터 「여시니아균」 감염 비상/약수도 반드시 끓여 먹도록

    ◎8∼13세 어린이에 다발… 고열·복통 증세/동물배설물에 오염된 물이 감염원 약수터 수질오염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최근 야산의 약수터물을 먹는 어린이 가운데 고열·복통·피부발진을 동반하는 「여시니아증환자」가 늘어나 무분별한 여름철 식수문화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북한산과 도봉산 근처에 있는 인제의대 상계백병원의 경우 지난 6월이후 지금까지 50여명의 여시니아감염증(yersiniosis)어린이가 내원,이미 지난해의 전체 환자 수를 넘어섰고,다른 종합병원에도 같은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시니아는 그람음성간균에 속하는 세균으로 산속의 물에서 서식한다.섭씨 22도에서 번식력이 가장 왕성하고 섭씨 37도에서 활동력이 급격하게 감소한다.이 균은 8∼13세의 학령기 아동을 중심으로 5∼8월 감염위험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시니아감염증은 산속 물을 먹은 뒤 1∼2주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는데 심할 경우 급성 열성질환인 가와사키병과 증세가 매우 흡사하다.갑작스럽게 40도가 넘는 고열이 10∼20일간 지속되는가 하면 참기 어려울 정도의 복통이 온다.흔히 오른쪽 아랫배에 격심한 통증이 생겨 급성 충수염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내장검사를 해보면 장임파선이 많이 부어 있음을 알수 있다.이밖에 손과 발에 벌거스름한 발진이 나타나며 패혈증·위장관염·관절통증세를 동반하기도 한다.특히 회복기엔 10∼30%가량이 합병증으로 일시적인 신부전증을 유발하지만 배뇨엔 지장이 없다.또 다른 수인성질환과 달리 설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병은 큰 증상없이 자연치유되는 수도 있으나 고열·복통등의 증세가 보이면 신속하게 병원을 찾아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후유증을 예방할 수 있다. 인제의대 상계백병원 함영백교수(소아과)는 『여시니아증은 동물의 배설물에 오염된 식수가 감염원으로 작용한다』며『이 병을 앓는 어린이의 대변과 산속 약수에서 여시니아균 검출이 확인됐다』고 밝혔다.특히 수락산·도봉산·북한산지역의 약수에서 문제가 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는 함교수는 『이 병을 예방하는 최상의 방법은 약수를 끓여 먹는 길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연세대의대 김동수교수(소아과)도 『여름철 약수에서는 살모넬라균도 검출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수원지가 얕은 옹달샘 물은 음용수로 사용하지 말고 어떤 경우든 식수는 2분이상 끓여 먹어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 문학·문예 평론가 이어령씨(이세기의 인물탐구:32)

    ◎평론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천부적 관찰력에 해박한 지식으로 언어조율/약관 22세 데뷔… 예봉·직설로 기성문단에 파문/문학의 전장르 석권… 「흙속에…」이후 한국 재발견에 몰두 전후 한국문학의 기린아·총아 타이틀과 함께 독설적 직설,명쾌의 명문으로 이어령씨가 평단에 데뷔했을 때는 온 문단은 마치 「화약고」인듯 경계의 시선으로 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불어온 미국의 비트제너레이션이나 서구의 누보로망 앵그리영맨처럼 한국의 뉴제너레이션이던 당시 22세의 그는 「집도 가족도,그리고 그 시원찮은 문명이란 것도 학식도 없이 가진 것이라곤 분노와도 같은,자엽과도 같은 광기와 젊음뿐」이었으며 「생존하기 위하여 문관노릇을 하던 교수님들 밑에서 반세기전의 증권같은 실력없는 낡은 노트의 학설을 베끼며 인생을 배웠고」 「모든 울분과 공허를 자취방에 드나드는 늙은쥐를 두들겨 잡는 것으로나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문학을 하고 있는 몇몇 문단선배들을 만나보고 「기절할 정도로 실망」하여 그의 데뷔작품인 「우상의 파괴」에서 문단사에 남을 만한 중견문인들을 향해 「미몽의 우상」 「사기사의 우상」 「우매의 우상」 「영예의 우상」,이미 문단의 큰 봉우리로 우뚝선 노대가들마저도 「현대의 신라인」으로 신랄하게 통박하여 문단을 온통 긴장시키기에 이르렀다.그때 그의 눈에 비친 작가·비평가들은 그 어려운 시절에 「직무유기를 하는 한가한 문사」에 불과했으며 「불난 집에서 바둑을 두고 포탄이 터지는 전선에서 자장가를 노래하는 사람같아」 「파괴돼 마땅한 우상」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그때 「황무지」나 다름없는 문학풍토에서 「한국작가는 세계의 고아」 「현대 문명의 외곽지대에서 서식하는 뿌리없는 버섯」,이런 「불모의 상황을 영구화하려는 듯한 기괴한 권위」를 젊은 그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우상의 파괴」로 비판 그러나 예절과 겸허가 없는 그의 패기는 당연히 무례로 간주되었고 이 「맹랑한 문제아의 출현」을 놓고 문단은 한때 「일진광풍」이니 「일진청풍」으로 의견을 대립하는 사태가 일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6·25전 한자어세대인 제1세대는 「식민지역사에 반항하여 망명이나 감옥으로 가든지,친일적인 식민지인으로 순응하든지」의 선택의 여지에 놓였던 것에 비해 전쟁직후의 20대,이른바 제2세대들은 일본어도 제나라 말도 서툴고 한자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는 「어중간한 허공에 매달린 역사의 기예 같은 존재」라고 또한번 꼬집었다 이제 문단은 더이상 그를 좌시하거나 간과하려 들지 않았다.일부 문인들은 그로 인해 어쩌면 이제까지 쌓았던 공든탑이 무너지고 문인으로서의 생명인 명예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느끼는 듯했다.그의 문재와 번득이는 지성이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기성문단은 한결같이 그를 냉혹하게 외면했다. 심하게는 「전생에 그리스의 소피스트케이션」이나 견석백마의 곡론가로 매도하고 그의 날카로운 필봉을 완강하게 견제하려 들었다.그때 빛나는 재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안타깝게 몸부림치는 그의 적들을 향해 「알렉산드리아」의 작가 이병주씨는 『나는 동족으로서,동시대인으로서 우리에게 이만한 사재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 『이런 재능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거침없이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나섰다. 그의 절친한 후배인 작가 최인호도 「문학이라는 삼장법사를 모시고 예술이라는 구도의 길을 가는 손오공」,문학평론가 김현도 「단군이래 순발력과 기지가 가장 뛰어난 사람」임을 여러글에서 밝히고 있다.「그는 과연 동서예술을 천의무봉으로 전개해나갔고 문학평론을 예술로 승화시킨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이에 대해 이어령씨 자신은 「희극과도 같은 만용을 부려야 했던 성급한 과실들은 정말 나만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던가」란 글에서 「나는 문단생활을 해오면서 많은 평론을 했다.그리고 논쟁할 때마다 옷이 찢어지고 얼굴에 흙이 묻고 코피가 흐르던 어린날의 그 주먹다짐을 생각하곤 했다.그러나 그 아픈 상처자국을 통해서 나는 그 논쟁이 실은 하나의 대화이며 문학에 대한 애정이라는 의미를 확인했다」고 부연하고 있다. ○“언어 연금술사” 찬사 그후 그는 어린시절의 추억을오늘의 문화에 비쳐본 에세이와 한국문화·문명에 눈을 돌려 「흙속에 저바람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같은 주옥의 시리즈를 연달아 발표했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문명비평가」로서 재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독일에서 돌아온 전혜린은 센세이셔널한 언어의 풍운을 몰고온 그를 보고 「놀라운 기지,번득이는 혀,해박하고 비상한 두뇌와 창의력」은 마치 아르튀르 랭보의 「언어의 연금술사」에 못지 않다고 찬탄해마지 않아 그는 다시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반짝거리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원고청탁을 피해 신문사 캐비닛속에 숨어야 하는 행복을 누렸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흙속에…」는 1년만에 10만부,지금까지 60만부이상.한림출판사가 펴낸 영어판은 미컬럼비아대 동양학교재로 채택되는가 하면 대만 원성문화도서 공응사가 번역한 「사토사풍」표지에 쓴 영문이름자인 Lee o young으로 인해 한국에 온 중국문인들이 「이오양」을 찾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제로부터 거칠 것도 걸릴 것도없이 이어령문학시대가 막을 올리게 되자 그는 소설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 「무익조」,희곡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등 소설·희곡·시·수필에까지 문학의 모든 장르를 석권해 나갔다. 그를 새삼스럽게 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노릇이다.신문에 연재되는 글 또는 강의·강연에서 보면 그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초일목도 놓치지 않고 그속에 깃든 심오한 뜻과 사색의 깊이를 20 00년대를 향한 민족성 구성에 치밀하게 연결시켜 나간다.그의 천부적 관찰력은 하잘것없는 단서 하나에도 외과의사의 날카로운 메스처럼 가해져 어느부분에서든지 문화의식의 실체와 만나게 되는 기쁨을 활짝 열어준다. 그의 강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 그 말속에는 그때마다 현목과 일총의 영롱함이 실려 있다. 그는 어떤 강연도 미리 준비하는 법이 없다.준비자체가 불편한 걸림돌이다.다만 청중의 눈빛 하나만으로 모두에서부터 결론을 예고해버린다. 이른바 「이어령문체」로 지칭되는 그의 글은 「말이 혹은 문체가 물이라면 또는 불이라면 또는 바람이라면 또는 화살」이라면 글속에서 「물은 위안과 씻김의 언어,불은 개혁과 새로운 건설의 언어,바람은 몽상과 생성의 언어」이고 「화살은 허무의 허공을 날아가서 마침내 사물의 핵심을 쏘아 떨구는 관통력 높은 사냥꾼의 언어」이며 「시정과 미사에 감싸인 지성의 광휘」로 그 명중률이 정확하다고 평받고 있다. ○「레인맨」 보고도 눈물 그의 창의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으로 손꼽힌다.88서울올림픽때의 「벽을 넘어서」와 텅빈 그라운드에 은빛 굴렁쇠장면은 여백과 침묵속에서 팽팽하게 긴장감 감도는 매화 한송이를 그리는 동양화 이미지를 살려 신아시아 미학추구의 극치로 찬사된 바 있다. 「작은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비평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충격이후 그는 아사히,요미우리신문과 NHK방송이 주최하는 강연에 자주 초청되어 회장은 언제나 지성의 관객들로 넘치고 있다. 「독자를 시험하는 경구」 「서구에 치우친 일본으로 하여금 문화에 대한 반성」을 하게하는 그의 강연은 재치와 기발한 장단점 지적,상상치도 못한 한국 습속과의 비교론으로 언제나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아산의 유교적인 지주집안에서 5남2녀중 막내로 태어나 보타이에 양복,구두와 바스켓같은 가방을 들고 자주 서울나들이를 하는 도련님으로 성장하면서 막내답게 장난이 심했고 얼굴엔 노상 상처투성이,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다 두자리이상의 보태기 빼기등 숫자놀음은 딱 질색,그러면서도 컴퓨터광이라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끝없는 원고청탁으로 하루 3∼4시간 컴퓨터앞에 앉아 실은 물흐르듯 글을 쓰는 것 같지만 그처럼 어렵게,고통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 정도다. 집필의 산실인 보고와도 같은 서재는 수천수만권의 서적,그가 좋아하는 CD·LD,필요한 것은 다 갖춰져 있으면서도 뜸을 들이고 갑자기 쓰고 까다롭게 다듬는다. 냉기와 온기,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갖춰 남보기엔 지나치게 도시적이고 세련되어 숨막힐 듯한 완벽주의로 보이지만 그는 영화 「레인맨」을 보고 눈물짓고 수많은 넥타이중에서도 강의가 잘되던 넥타이를 다시 골라낼만큼 천진한 면이 천성이다. 흘겨보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그는 그의 책 제목인 「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처럼 바람불지 않아도 언제나 앞을 향해서만 똑바로 달려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아르튀르 랭보의 언어의 연금술사이기를 원치 않는다.자신의 푸른 생명을 증명하는 언어의 슬기,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언어탐색을 위해 그는 단지 쉬지 않고 여전히 똑바로 달려나갈 뿐이다. □연보 ▲1934년1월(음력19 33년11월15일) 충남온양 출생 ▲1956년 서울대문리대 국문과 졸업 ▲1960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1958∼60년 경기고교사 ▲1960∼66년 서울대강사 ▲1966∼67년 성균관대강사 ▲1960∼72년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논설위원 ▲1964년 경향신문 구미지역특파원 ▲1970∼71년 미국무성초청 도미 ▲1972∼73년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1967∼89년 이화여대교수 ▲1972∼86년 월간「문학사상」주간 ▲1986∼89년 이대 기호학연구소장 ▲1987년 단국대 대학원(문학박사학위) 일외무성초청 동경대 비교문학과교수(81∼82년) ▲1989년 일본대 국제문화연구원교수,환기재단초청 뉴욕체류 1982∼현재 일본생산성본부,일본문화디자인협회,NHK,일본대판JC,신일본제철,독매신문,아사히신문 초청 강연 수차 ▲19 90∼91년 초대 문화부장관 ▲1956년 「비유법논고」「카타르시스 문학론」으로 월간 「문학예술」지등단.「현대문학의 위기와 출구」「문학적 혁명기를 위하여­우상의 파괴」(한국일보)발표이래 「흙속에 저바람속에」(62년 경향신문연재) 「나르시스의 학살­이상의 시와 난해성」 「모래성을 밟지 마시오­문단 선배들에게 말한다」「조롱을 여시오­시인 서정주선생에게」 「영원한 모순­김동리씨에게 묻는다」 「자유문학상을 향하여」 「잠자는 거인­뉴 제너레이션의 위치」등 화제의 비평 1백50여편. 「저항의 문학」(59년) 「지성의 오솔길」(60년) 「고독한 군중」(61년) 「오늘을 사는 세대」(63년) 「흙속에 저 바람속에」(63년) 「이어령에세이 옴니버스」(66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75년) 「이어령 신작집(12권)」(78년) 「이어령전집(20권)」(85년) 「축소 지향의 일본인」(82년 일본 학생사) 「축소 지향의 일본인」(한국어판·영어판·불어판)(82년) 「배구□ 일본□ 독□」(PHP 일본)(83년) 「하이구(배구)문학의 연구」(한국어판 홍성사)(84년)문장대백과사전 강연집「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92년)소설집「둥지를 나는 새」 상하권(93년) 79년 대한민국예술상 수상
  • 토요일엔 차사고 많답니다(박갑천칼럼)

    나이든 세대들은 지금도 곧잘 일요일을「공일」이라고 말한다.「□의 치닮음(역행동화)」따라 「굉일」로 발음하는 노인들도 적지않다.그래서 미당 서정주시인도 그의 어린날을 회상하면서 쓴 시는 제목부터가「반공일날 할머니집 찾아가는길」이다.반공일이란 절반의 공일이니 토요일 아니겠는가. 『솔숲 지나 대숲 지나/콩밭 콩밭 들깨밭/반공일엔 두고 맡는/들깨밭 냄새/할머니 막 그리워지는/들깨밭 냄새/이 들깨밭 지나서/소하나룻배 타면은/흰상투 흰수염의 장승같은 뱃사공/노질해서 건너 언덕에 나를 내렸네…』.그는 소학교(국민학교)때 토요일이면 30리남짓 떨어져있는 할머니집을 걸어갔던 듯하다.그사이 나룻배도 타고 들깨밭 콩밭 건너면서 맡았던 자연의 냄새를 되돌이키는 가운데 인정(인정)의 냄새까지 흩뿌리고 있다. 기원전 2세기께의 그리스에서 알고있었던 천문학 지식에 의할때 일곱개 천체(천체)의 지구에서 먼 순서는 토성·목성·화성·태양(일)·금성·수성·달(월)이었다.이 일곱개 천체를 당시의 점성술(점성술)에 의하여 하루의 24시간에 쪼개어 순서대로 맞춤으로써 요일(요일)을 만들었다는 것이 당시의 그리스 역사학자 카시오스의 설이고 그것은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느날의 제1시를 가장 먼곳에 있는 토라고하면 제2시는 목,제3시는 화,제4시는 일…로 되고 제8시는 다시 토로 된다.제22시는 토,제23시는 목,제24시는 화가 되어 끝나고 다음날의 제1시는 일이 된다.이렇게 배열하여 날마다의 제1시를 따져보면 첫날이 토일때 다음은 일,그다음은 월·화·수·목·금으로 된다.지금의 요일순서가 이렇게해서 정해졌다는 것이다.그럴싸해 뵈기도 한다. 토요일의 라틴어는 디에스 사투르니(Dies Saturni)로 토성(토성)의 날이라는 뜻이다.이는 로마신화에서의 농업의신 사투르누스(Saturnus)와 관계되는 이름이라고 말하여지기도 한다.유대교에서는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이 7일째에 쉬었다고 하는 구약성서의 기록에 따라 토요일을 안식일(안식일)로 치고있는 터이다. 경찰청 집계에 의할때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월별로는 10월에 요일별로는 토요일에 가장 많은것으로나타났다.10월은 휴일많은 행락의 계절이니 그렇다치자.토요일에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주말이라서 들뜬기분에 성급함이 가세한 때문이었을까.걸어다녔던「반공일」시절에는 없었던 일을 오늘의 우리는 겪고산다.오늘이 그 반공일아닌 토요일이다.안식이되게 조심해야 할 날이다.
  • 이상달씨 불구속기소/기흥CC수사 종결

    경우회 기흥골프장 변칙양도 의혹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지검 특수3부(정홍원부장검사)는 9일 이미 구속된 이인섭전경찰청장과 옥기진전치안감·예강환전화성군수등 3명 이외에 다른 전직 경찰총수들의 금품수수등의 비리는 없었던 것으로 결론짓고 이 사건수사를 종결했다. 검찰은 이에따라 이날 이 사건과 관련,출국금지됐던 전 경찰총수 7명을 포함,20명에게 내려졌던 출국금지조치를 해제했다. 검찰은 또 지난달 초 90여억원의 공사비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던 삼남개발 공동대표 이상달씨(54)는 골수염과 당뇨병으로 수감생활이 힘들다고 판단,영장을 법원에 반려하고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그동안의 조사결과 경우회측은 골프장의 회원권 분양이 여의치 않아 자금난에 처하자 새로운 자금주를 확보하기 위한 전단계로 이씨와 짜고 지난해 10월 이씨가 이 골프장의 최대 주주가 되는 내용의 2차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금품수수등의 비리사실이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 학교 시간표에 「기쁨의 콩우유시간」 등장(북한 이모저모)

    ◎일 교토시 동물원에 조선범 2마리 기증 ○“김정일동지 배려” 강조 ○…요즘 북한학생들의 시간표엔 인류교육사에 유례없는 「기쁨의 콩우유시간」이 새로 생겼다고. 북한은 지난 1년동안 「사랑의 콩우유」란 이름으로 평양시 탁아소·유치원어린이들에게 연1만8천8백t의 두유를 공급했다고 선전(6·1 평양방송)한 바 있는데 이젠 탁아소·유치원의 일과표와 인민학교·고등중학교 시간표에 「기쁨의 콩우유시간」을 설정하고 두유를 배달하는 「전문 콩우유공급원」과 「콩우유공급실」도 따로 두고 있는 것으로 북한방송이 최근 보도. 북한방송은 이같은 시책이 『어린이·학생들의 영양흡수가 가장 좋은 때를 골라서 콩우유를 먹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는 『김정일동지께서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돌려주시는 크나큰 사랑과 배려』라고 거듭 강조. 북한방송은 이에 대비,북한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의 점심시간을 「슬픔의 눈물시간」으로 모략하면서 그 이유를 『남조선에서는 영양식품은 고사하고 하루세끼 끼니도 때우지 못해 점심시간을 눈물로 보내는 어린이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라는 것. ○암컷·수컷 각각 1마리 ○…북한의 중앙동물원은 얼마전 일본과의 우호친선증진을 위해 「노랑부리 백로」를 일본 도쿄도에 기증한데 이어 최근에는 교토(경도)시 동물원에서 「조선범」 2마리를 기증한 것으로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보도했다. 북한이 교토시 동물원에 선물한 「조선범」은 암컷(봉화)과 수컷(룡성) 각 1마리로 교토시동물원 창립90주를 기념해 기증한 것인데 북한이 「조선범」을 외국에 보낸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조선신보에 따르면 「조선범」은 고양이과 가운데 표범아과에 속하는 동물로 다른 아종에 비해 크고 날새며 용맹스럽고 털가죽의 무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조선범」은 몸무게가 1백40㎏,몸길이(꼬리끝까지) 2·5m이며 잔등의 색깔은 선명한 누른밤색인데 거기에 24개의 검은 줄이 서로 연결되면서 가로놓여 있어 다른 범들과 쉽게 구별된다. 특히 머리의 이마부분에 있는 뚜렷한 임금 「왕」자 모양의 검은무늬가 유명하며 윗입술 양옆에 난 희색의 긴수염,날카롭게 생긴 둥근 눈,날카로운 이빨,늘씬해 보이는 몸집 등은 「조선범」의 위엄을 돋보이게 한다. ○「사회주의 대가정」 선전 ○…북한은 1일 북한사회를 『위대한 수령을 어버이로 모신 하나의 혁명적 대가정』이라고 규정하면서 전체 주민들이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를 발휘,「화목한 사회주의 대가정」을 이룰 것을 촉구했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전체주민이 수령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에 『어떤 풍파속에서도 끄떡없이 전진하는 우리식 사회주의의 불패성이 있고 모든 승리의 담보가 있다』면서 이를 위해 ▲당의 혁명사상·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그의 요구대로 살며 투쟁할 것 ▲집단주의 원리가 구현된 사회주의 도덕의 우월성을 신념으로 체득·구현할 것 ▲공산주의적 미담·모범들을 적극 따라 배울 것 등을 요구했다.
  • 고래사냥 금지협약 존폐 위기

    ◎일·노르웨이 등서 “포경재개” 일방 선언/미·호·불 등선 “통상압력 불사” 반대 입장 고래의 남획을 막기위해 47년간 활동해온 국제포경위원회(IWC)가 회원국간의 이해상충과 의견대립으로 존재자체가 어렵게 될 전망이다. 지난달 하순 일본 도쿄에서 열린 IWC총회에서 노르웨이는 『올해 노르웨이 연안에서 2백96마리의 밍크 고래를 잡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 함으로써 미국과 프랑스·호주등 포경 반대 국가들의 분노를 샀다. 노르웨이 대표단은 포경을 반대하는 나라에서 고래고기를 즐기는 국민들에게 이를 먹지말라고 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식도락으로 고래고기를 즐기는 일본도 노르웨이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으며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IWC를 탈퇴해서 포경을 주장하는 국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60년대 전성기를 이루던 포경산업에 세계각국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청고래와 흰수염고래·라이트고래 등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따라 미국·프랑스등 자연보호 국가들이 82년 상업포경금지협약을 맺고 85년부터 국제협약으로 발효시켜 이를 어기는 나라에는 강한 무역보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전세계에는 번식력이 강하고 몸무게가 10t정도의 작은 밍크고래는 약 95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고 80t급인 지느러미고래는 5만마리,50t급의 활머리고래는 7천5백마리,혹고래는 5천5백마리로 멸종 위기에 있다.
  • 사고 판 미인(외언내언)

    부끄러워서 볼낯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무색(하다)」이나 「무안(하다)」이라는 말은 미인과 관계된다.감상시중의 걸작이라고 회자되어 오는 백락천의 장한가속에 「무안색」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바 그말이 거기 연유한다고 말하여지기 때문이다. 양귀비의 아름다운 자태에 눌려 다른 미인들의 빛은 바래고만다고 노래하는 대목은 이렇다.『…눈동자를 돌려 한번 웃으면 백미가 생기나니/육궁의 분바르고 눈썹그린 미인들 얼굴빛이 없구나(육궁분대무안색)』.양귀비 앞에서는 어떤 미인도 「무색(무안)」하게 된다는 뜻이었다.일상의 언어생활에서는 「무안」을 심리적측면으로,「무색」은 객관적판단의 측면으로 갈라쓰는 경향이다. 미인을 선발하는 행사를 치르면서 한 지방언론사의 고위직간부가 사기꾼이 무색해질 짓거리를 했다.미스경기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참가자의 부모등으로부터 돈을 받고서 진·선·미를 정했다지 않은가.때가 어느때인가.새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정의 서슬이 시퍼런 시점이 아닌가.그 와중에서 시퍼런 서슬을 무색케하는 불정을 서슴지 않았다니….세상 무서운줄 모르는 못된짓이었다.물론 돈챙긴 언론사간부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돈을 바치고라도 입상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제약회사 회장이나 참가자 부모들의 전시대적 발상의 소행도용서하기는어렵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려먹을 수 있다(유전가사귀)고 했다.호랑이수염 아닌 문어 머리칼도 구해올수 있다고 했고.돈은 그렇게 힘이 세다. 근자에 성가와 명망을 한꺼번에 떨어뜨리고 있는 저명·유명인사들도 그 힘센돈을 잘못챙겼다가 얹혀서 그리된것 아니던가.돈의 위력이 그렇고보니 그힘 빌려 미인을 조작하려 했음은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도 하겠다.하지만 들통나버린 이제와서 볼때 그부모들은 제딸들을 『분별없는 미인은 마치 돼지코에 장식한 보석과 같다』(성경)는 신세로 만들어버린 꼴 아닌가.부모가 할짓이 아니었던 것을….
  • 백두산 호랑이(외언내언)

    중국 고대 지이지 「산해경」은 한국인을 이렇게 묘사한다.『군자국 사람들은 의복,모자를 단정하게 걸치고 보검을 차고 있다.그들은 아름다운 털을 가진 큰호랑이 두마리를 길러서 심부름을 시킨다』.주역에서 호랑이의 방위를 지칭하는 인방도 만주와 우리나라를 지목하는 동북방.우리 건국신화를 비롯한 여러 설화와 옛그림·조각등에도 호랑이는 많이 등장한다. 산신령·산군자·산중영웅등으로 신성시된 호랑이는 만병통치약으로 이용돼 「본초강목」에 의하면 뼈는 풍병의 치료제로 쓰이고 눈은 마음이 산란한 환자에게,코는 미친병의 치료와 어린이 경풍에,이빨은 매독이나 종기의 부스럼에,발톱은 어린이 팔뚝에 붙은 병도깨비를 물리치는데,털가죽은 학질에,수염은 치통에,오줌은 쇠붙이를 삼켰을때 사용됐다.신행길의 신부 가마에 호랑이 털가죽을 덮거나 호랑이 발톱으로 노리개를 만들어 부녀자들이 패용한 관습은 호랑이가 지닌 벽사적 의미를 실감케 해주는 일.그만큼 호랑이는 우리 민족과 가까운 동물이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지금 전세계적인 희귀동물로 국제자연보존연맹이 추정하는 야생호랑이는 총 6천3백여 마리.원래의 8아종 가운데 3종은 멸종됐고 시베리아호랑이·중국호랑이·수마트라호랑이·인도차이나호랑이·벵골호랑이만 남았다.한국호랑이가 속하는 시베리아호랑이는 겨우 3백50여마리만 남은것으로 추정된다.백두산 일대에서 서식하는 순수 한국산 호랑이,즉 시베리아 호랑이보다 머리가 약간 작고 검정줄무늬와 불그스럼한 바탕이 선명하고 복부가 백설처럼 흰,아름다운 백두산호랑이는 만주와 몽골 동부에서 80여마리가 사육되고 북한에 40∼50마리가 야생상태로 살고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남한에선 이미 멸종상태.그 백두산 호랑이 한쌍을 중국이 기증,6월중 서울대공원에서 선보일 예정이라 한다.반가운 일이다.서울올림픽전 5마리의 한국호랑이가 미국에서 반입된바 있으나 「백두산호랑이」의 혈통은 확인된바 없다.
  • 옥기진 전치안감 잠적/기흥cc사건/감시 소홀로 도주… 방조의혹

    ◎임원 이상달씨 병원서 조사 검토 기흥골프장 경영권 변칙양도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경우회에 대한 늑장 조사로 주요수사대상자인 삼남개발 공동대표 옥기진씨(63·전치안감)에 대한 감시를 소홀,옥씨가 지난 31일부터 잠적해 수사진척을 보지못하고 있어 경찰이 경우회를 비호하는게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경찰청 수사2과(과장 조창래총경)는 지난달 28일 경우회가 소유하던 기흥골프장이 이상달씨 앞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사안이 주요수사대상이라고 판단,수사에 착수했으나 경우회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은채 삼남개발과 삼강중장비측에 대한 수사에 집중해왔다. 특히 경찰은 28일 영장을 발부받고도 경우회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지 않다가 4일뒤인 1일에서야 압수수색을 벌여 경우회의 시간벌기를 도와줬다는 비난과 함께 배후인물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은 또 수사전에 끝난 감사결과 이씨와 옥씨가 주요혐의자라는 심증을 가졌으면서도 옥씨에 대해 감시를 하지 않았고 옥씨가 잠적한 사실도 이틀이 지난 2일에서야 발표,수사초점을 파악하지 못했다거나 옥씨의 돌연잠적을 방조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경찰은 이날 수사관 2명을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양아파트로 보내 옥씨 신병을 확보하려 했으나 그는 지난달 31일부터 집에 안들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한 골프장경영권 양도과정을 이전에도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지난 92년 12월에는 전임 이인섭경찰청장이 경우회 이사회 결의내용에 대한 결재를 마쳐 문제가 되지 않았다가 돌연 감사와 수사를 시작한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아울러 옥씨가 서울1느6015호 로얄프린스 승용차를 타고 나갔음을 밝혀내고 이날 옥씨와 차량을 전국에 수배했다. 경찰은 그러나 소환 대상자인 이상달씨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 골수염을 이유로 순천향병원에 입원중이어서 담당의사의 소견에 따라 소환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며 소환불가시에는 의료장비가 갖춰진 다른 곳에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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