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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도 없는데...” 볼리비아 두 번째 큰 호수 증발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 볼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가 사실상 증발했다. 볼리비아 오루로 주정부는 푸포 호수가 증발해 사막화하고 있다며 최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푸포 호수는 티티카카 호수에 이어 볼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푸포 호수는 한때 면적 4600km2를 자랑했지만 지금은 먼지가 휘날리는 큰 공터로 변해버렸다. 오루로 주정부는 뒤늦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가용예산을 총동원해 호수를 살리겠다고 나섰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현지 언론은 "물이 고인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호수가 말라버렸다"며 "회복이 불가능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미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오루로 주정부는 지난주 언론의 보도를 통해 호수가 말라버린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볼리비아 중앙정부 역시 호수가 말라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형 호수를 사라지게 한 건 기후의 변덕이다. 현지를 답사한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엘니뇨와 라니냐가 호수를 생명이 없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답사에 참여한 오루로대학 농과교수 밀톤 페레스는 "면적은 컸지만 수심은 1.5~4m에 불과한 게 푸포 호수의 특징이었다"며 "기후변화에 취약한 호수가 무방비로 버려졌다가 수명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호수가 말라버리면서 주변에선 재앙에 가까운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물세가 완전히 사라지고 물고기는 폐사해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과거엔 파충류도 대거 서식했지만 불모의 땅으로 변한 옛 호수엔 흙먼지만 날리고 있다. 오루로대학 관계자는 "푸포 호수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철새에 쉼터 역할을 했고, 푸마 등에게도 귀한 식수를 제공했었다"며 "인근의 에코시스템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지금이라고 호수를 살려보기 위해선 8억 볼리비아노스(약 1350억원)이 긴급 투입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사진=라손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전문가 “주택자금 부담 커져 거래절벽 걱정”

    신규 주택 구입 대출 규제 강화로 주택시장은 거래 절벽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모처럼 살아난 주택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보인다. 실질소득이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서 주택 구매 욕구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신규 주택 구입 대출자의 상당수는 3년 정도의 거치기간을 두고 빌렸지만 거치 기간이 1년 이내로 줄어들면 곧바로 원리금 상환에 들어가야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금 부담이 커져 주택 구입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박합수 국민은행 명동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주택구입 시 거치기간 3년은 자금 마련이나 팔고 나갈 수 있는 시간을 벌기에 충분하지만 단기대출이나 분할상환 대출이 강화되면 주택 구입 수요가 떨어져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팀장도 “거치기간 없는 원리금 상환에 소득증빙까지 강화하는 것은 대출 축소를 의미한다”며 “거래가 위축되고 가격도 약세를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 집단대출 규제로 청약열기가 식을 것으로 걱정했던 건설업체들은 한숨을 돌렸다. 집단대출 규제는 청약경쟁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대출 규제에서 집단대출이 제외돼 기존 주택 구입이 어려워진 일부 수요자들은 분양시장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새 아파트는 잔금대출까지 종전 대출 방식이 유지되므로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러운 수요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월세 세입자들의 주택 매수심리도 위축돼 전세난을 더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함영진 부동산114 센터장은 “재건축·재개발 이주가 증가해 전세난이 걱정되는데 내 집 마련 수요마저 줄어들면 전세난은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길이 10m·무게 150kg ‘괴물 오징어’ 낚였다

    길이 10m·무게 150kg ‘괴물 오징어’ 낚였다

    길이가 무려 10m, 몸무게가 150kg에 달하는 거대한 오징어가 잡혀 화제에 올랐다. 최근 스페인 현지언론은 북부에 위치한 비야비시오사 해안에서 한 어부가 던진 그물망에 거대한 대왕 오징어가 낚였다고 보도했다. 입이 딱 벌어질 만큼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이 오징어는 수심 500m 정도에 사는 대왕 오징어 종으로 몸통만 해도 사람만한 크기다. 뜻하지 않게 거대 오징어를 잡은 어부는 "처음 봤을 때 너무나 놀라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면서 "수 십년 바다에서 일을 했지만 두번 다시 보기 힘들 것" 이라며 놀라워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오징어는 냉동된 후 현지 해양종보호연구협회(CEPESMA)에 보내졌으며 조만간 부검이 이루어질 계획이다. CEPESMA 대표 루이스 라이아는 "최근 몇 년 사이 잡힌 대왕 오징어 중에서도 최대 크기" 라면서 "특별하게 큰 만큼 연구용으로 사용된 후 일반에 전시할 것" 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지역에서는 2년 전에도 거대한 오징어가 잡혀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잡힌 오징어는 길이 9m, 무게 80kg으로 죽은 채 바다에 떠다니다 어부에게 발견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길이 10m·무게 150kg 거대 ‘괴물 오징어’ 낚였다

    길이 10m·무게 150kg 거대 ‘괴물 오징어’ 낚였다

    길이가 무려 10m, 몸무게가 150kg에 달하는 거대한 오징어가 잡혀 화제에 올랐다. 최근 스페인 현지언론은 북부에 위치한 비야비시오사 해안에서 한 어부가 던진 그물망에 거대한 대왕 오징어가 낚였다고 보도했다. 입이 딱 벌어질 만큼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이 오징어는 수심 500m 정도에 사는 대왕 오징어 종으로 몸통만 해도 사람만한 크기다. 뜻하지 않게 거대 오징어를 잡은 어부는 "처음 봤을 때 너무나 놀라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면서 "수 십년 바다에서 일을 했지만 두번 다시 보기 힘들 것" 이라며 놀라워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오징어는 냉동된 후 현지 해양종보호연구협회(CEPESMA)에 보내졌으며 조만간 부검이 이루어질 계획이다. CEPESMA 대표 루이스 라이아는 "최근 몇 년 사이 잡힌 대왕 오징어 중에서도 최대 크기" 라면서 "특별하게 큰 만큼 연구용으로 사용된 후 일반에 전시할 것" 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지역에서는 2년 전에도 거대한 오징어가 잡혀 화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잡힌 오징어는 길이 9m, 무게 80kg으로 죽은 채 바다에 떠다니다 어부에게 발견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바다’ 위에 둥둥 뜬 풍력 발전소...영국, 세계 최대규모 추진

    ‘바다’ 위에 둥둥 뜬 풍력 발전소...영국, 세계 최대규모 추진

    풍력 발전은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로 인기가 높다. 특히 해상 풍력 발전은 일반적으로 육상 풍력발전보다 효율이 높다. 산처럼 바람을 가로막는 지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상 풍력 발전이 가능한 지역은 한정되어 있다. 현재의 해상 풍력 발전은 거대한 기둥을 바다 바닥에 세운 후 여기에 거대한 풍차를 건설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수심이 얕은 바다만 가능하다. 육지보다 바다가 훨씬 넓지만, 해상 풍력 발전이 가능한 지역은 극히 한정된 것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수요가 증가하는 지금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다. 수심이 깊은 바다에 풍력 발전기를 경제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 위에 뜨는 부유식 풍력 터빈(Floating wind turbine)을 건설하는 것이다.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니다. 거대한 탑 모양의 풍차가 바다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잘 지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시도되는 방식은 물이나 무거운 물체를 채운 거대한 기둥을 물에 띄우고 이를 다시 바다 바닥에 와이어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건설 방식은 다소 복잡하지만, 풍력 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는 지역을 훨씬 확장할 수 있다. 최근 스코틀랜드 정부와 영국 정부는 노르웨이의 스타토일(Statoil)이 개발한 하이윈드(Hywind) 부유식 풍력 터빈을 스코틀랜드 피터헤드(Peterhead) 해안 25km 떨어진 바다에 건설하기로 했다. 이 지역은 바람은 강하게 불지만, 수심이 100m 이상이라 고정식 풍력 발전기를 건설하기는 어렵다. 하이윈드 풍력 터빈은 속이 비어 있는 거대한 기둥 위에 풍력 터빈이 설치되어 있다. (첫번째 사진) 기둥은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고 무거워지는 구조이며 높이는 200m이다. 이 기둥은 세 개의 와이어로 바다 밑에 고정된다. 거대한 풍차가 내는 출력은 6MW급이며 모두 5개를 시험적으로 설치하게 된다. 30MW의 발전량은 많지는 않지만, 이런 대형 부유식 풍력 발전단지로는 세계 최대급이다. 아직 기술 수준이 초기 단계인 점을 고려해 영국 정부는 안전성 및 신뢰성, 경제성을 검증한 후 더 대규모의 부유식 풍력 발전소 건설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보다 작은 크기의 부유식 풍력 발전기는 이미 북해의 거친 바다에서 신뢰성을 검증했다. 이번에 건설될 최대 규모의 부유식 풍력 발전기가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난다면 이미 포화단계에 이른 연안 해상 풍력 발전기가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해안선에서 멀기 때문에 시각 공해나 소음 공해에서 자유로운 것은 덤이다. 참고로 영국 정부는 MWh 당 100파운드(약 17만 원) 미만의 발전 단가를 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조사 측은 85~95파운드 정도로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풍력 발전을 비롯한 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상 풍력 발전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부유식 풍력 발전의 성공 여부와 경제성 여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해외여행 | 미처 몰랐던 이탈리아 풀리아 Puglia②Monte Sant’Angelo, Polignano a Mare

    해외여행 | 미처 몰랐던 이탈리아 풀리아 Puglia②Monte Sant’Angelo, Polignano a Mare

    ●Monte Sant’Angelo 동굴 예배당에서 평온을…성당의 재발견 카스텔 델 몬테에서 더 위로 차를 달리면 풀리아주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몬테 산탄젤로Monte Sant’Angelo가 있다. 북부로 올라가는 차장 밖 풍경은 단조롭다. 바닷물을 수차례 걸러 양질의 소금을 만드는 염전과 머지않아 신의 물방울이 될 포도나무, 올리브가 넉넉하게 펼쳐진다. 바다가 있고 너른 평야가 있으니 과거부터 의식주는 풍요했으리라.가벼운 상념에서 깨어나면 차는 꼬불꼬불 가파른 언덕을 쉼 없이 올라간다. 굳이 이 험한 비탈길을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성 미카엘San Michaele 성당 때문이다. 성 미카엘 성당은 흔히 생각하는 유럽의 성당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웅장한 규모로 기를 죽이지도 않고 화려한 장식으로 시선을 분산시키지도 않는다. 가르가노산에 기대 세워진 성당 예배당은 동굴을 이용한 독특한 구조가 종교에 상관없이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스도교 일곱 수호천사 중 하나인 성 미카엘이 3차례 출현한 곳으로도 유명해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당 안에는 역대 교황의 방문 사진과 성당의 역사가 소박하게 전시돼 있다. 성당에서 나와 언덕을 오르면 노르만노 성이 든든히 버티고 있다. 몬테 산탄젤로는 독특한 수공예품과 빵으로 유명한데 성당과 성을 오가는 언덕길에 상점이 많다. ●Vieste→Mattinata 아드리아해를 만나는 시간 풀리아주는 해안선만 800km다. 산에서 하루를 보냈다면 바다로 나갈 시간이다. 주말이면 사람들은 요트를 타거나 개인 보트를 타고 나가 비치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젊은이들은 다이빙을 하고 연인들은 해변에서 키스를 나눈다. 샴페인 한잔의 여유를 어찌 거부하겠는가. 풀리아주의 끄트머리 비에스테Vieste에서 시작해 맛티나타Mattinata까지 3시간 가량의 보트투어는 아드리아해를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땅에서 보는 바다와 바다에서 보는 땅은 확실히 다르다. 햇빛에 따라 바람에 따라 바다는 검푸르기도 에메랄드빛으로도 변하는데 이곳의 풍광이 여느 바다와 다른 것은 해안 절벽의 색 덕분이다. 흰색을 기본으로 다양한 색이 층층이 쌓인 석회암 절벽은 세월에 순응하며 자연스레 주름진 민낯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항구를 떠나 강렬한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바다를 떠다니면 이탈리아 특유의 강렬한 색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시시각각 그 빛을 달리하는 망망한 바다에서 마주하는 사방은 온통 원색으로 가득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티 없이 파란 하늘과 바다와 맞닿은 하얀 석회암 절벽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아침 일찍 해가 들면 바닷물과 어우러져 동굴 벽의 색이 파랑, 빨강 등 다양한 색으로 물든다고 해서 ‘화가의 팔레트’라고 이름 붙은 해상동굴도 있다. 어려서부터 이 같은 풍광을 매일 보고 자라면 제일 먼저 짧아지는 크레파스의 색깔도 우리와는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겠다. 내용 자체만 치면 아드리아 보트투어도 다도해 선상 유람과 큰 차이가 없다. 선장은 사자를 닮은 바위 아래로 데려가 조물주의 놀라운 솜씨를 보여 주고 하트 모양의 전설을 설명한다. 약간의 차이점이라면 배가 훨씬 날렵하고 플라스틱 잔에 샴페인이 나온다는 점과 선장을 보조하는 가이드가 잡지에서 막 튀어나온 모델같다는 점 정도다. 아, 선장의 운전 솜씨도 아찔하다. 평평한 도로에서 주차를 해도 어려울 것 같은 좁디 좁은 해안가 동굴 속도 자기 집 주차장처럼 여유롭게 들락거린다. 금액도 3시간 코스에 1인당 13유로 정도니까 확실히 싸다. 바다가 고요해서 멀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Polignano a Mare 달력에 나올 법한 예쁜 비치 바리에서 아래로 방향을 틀면 나오는 폴리냐노 아 마레Polignano a Mare라는 그림처럼 예쁜 동네를 놓치지 말자. 이미 언급한 것처럼 풀리아주의 고속도로는 황량하다. 너른 평원에는 올리브와 포도, 수풀이 무리지어 있을 뿐이다. 그런 고속도로 중간중간 휴게소처럼 세워져 있는 마을은 종종 놀랄 만한 경험을 선사한다. 사전 정보나 큰 기대 없이 폴리냐노를 찾는다면 단언컨대 남녀노소 탄성을 내지를 것이다. 폴리냐노의 보물은 작고 예쁜 비치다. 바다를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길을 낸 것처럼 마을 안으로 쑥 들어온 해변은 한적하고 아기자기한데 그 바다가 맑고 맑고 맑다. 위에서 본 바다는 수미터가 넘는 수심에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파도를 막아 주는 독특한 지형 덕에 파도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골목에는 발길을 붙잡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가득해 여성과 동행했다면 10m 전진을 위해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 여기에 국제적으로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도 있으니 1박을 계획해도 좋다. 폴리냐노에 있는 그로타 팔라체세Grotta Palazzese는 세계 10대 경관을 자랑하는 레스토랑 중 하나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해안가 석회암 동굴 절벽 안에 자리를 잡아 파도소리와 바다 전망이 압권이다. 레스토랑 안에서는 아침에 해가 뜨는 장관도 볼 수 있다. 예약도 예약이지만 점심 식사라도 1인 평균 300유로 정도를 예상해야 하니 예산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TIP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그곳 폴리냐노와 가까운 카스텔라나 그로테Castellana Grotte에 가면 비교적 최근에 탐사를 마친 카스텔라나 동굴Castellana Caves이 있다. 석회암 동굴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 석순 1cm가 자라는 데 80년이 필요하고 좀 크다 싶으면 20만년이 기본이다. 아래 위에서 자라 서로 만나기 일보 직전인 석순도 볼 수 있는데 닿을 듯 말 듯한 두 인연이 만나기까지 앞으로도 200년이 필요하다고. 3,000m 길이의 동굴 입구에 있는 지름 60m의 구멍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근사한 장관을 만든다. 안내를 받아 단체로 이동해야 하며 3시간 코스가 기본이다. 1시간짜리 짧은 코스도 선택할 수 있다. 동굴 안은 추우니 바람막이는 필수. www.grottedicastellana.it 글·사진 김기남 기자 취재협조 이탈리아관광청(ENIT) www.enit.it / www.italia.it 풀리아주관광청(PUGLIA PROMOZIONE) www.viaggiareinpuglia.it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 [와우! 과학] 극희귀종 ‘오무라 고래’ 야생서 첫 영상 포착

    [와우! 과학] 극희귀종 ‘오무라 고래’ 야생서 첫 영상 포착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극희귀종인 오무라 고래가 야생에서 처음으로 포착됐다. 최근 야생생물보전협회(Wildlife Conservation Society) 살바토레 케르치오 연구원은 마다가스카르 인근 해안에서 살아있는 오무라 고래의 모습을 촬영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름조차도 생소한 이 고래는 지난 2003년 처음 일본인 고래학자 오무라 히데오에 의해 발견돼 그의 이름을 따 오무라 고래(Omura whale)라는 이름이 붙었다. 문제는 거의 사람에게 발견된 적이 없는 고래이기 때문에 생태 등 연구된 것도 거의 없다는 점. 이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멸종됐을 가능성도 제기해왔으나 이번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연구에 탄력이 붙게됐다. 살바토레 연구원은 "수년동안 관련 학자들이 조사에 나섰으나 거의 발견된 적이 없어 미스터리한 고래로 남아있었다" 면서 "그 이유는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살며 특유의 물을 뿜는 모습도 보이지 않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오무라고래는 길이가 약 11m 정도로, 고래종 중 작은 덩치에 속하며 턱주변 색깔이 묘하게 대비된다. 오른편 턱이 흰색으로 보이는 반면 왼쪽은 검정색인 것.  살바토레 연구원은 "야생에서의 생태모습을 담은 첫번째 영상" 이라면서 "오무라 고래는 낮은 수심에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며 사냥 모습, 소리 등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4월에도 오무라고래가 오래만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안타깝게도 죽은 채 호주 해안으로 밀려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몸값 높은 연어, 국내 양식 다음 달 첫 출하

     우리나라에서 국내 기술로 키운 양식 연어가 다음 달 첫 출하에 들어간다.  해양수산부는 26일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 가두리 시설에서 ‘부침식 가두리 시스템’이란 우리 기술로 키운 연어(1.5~2㎏)를 다음 달 시범 출하한다고 밝혔다. 국내 상업용 연어 양식 시설로서는 처음이다. 상업용 크기(4~5㎏ 이상) 출하는 1년 뒤다.  부침식 가두리 시스템은 수온 상승이나 태풍이 발생했을 때 가두리를 하강해 안전하게 보호하는 기술이다. 연어는 대표적인 한해성(寒海性) 어종이어서 그동안 수온이 높은 우리나라 바다에서 양식이 어려웠지만 이번에 수심이 깊고 수온이 낮은 외해에서 연어 1만 마리 양식에 성공했다.  지난해 11월 캐나다에서 수입한 연어 알을 육상 내수면에서 부화시킨 뒤 10개월간 바닷물에 적응하는 순치 과정을 거쳐 외해 양식장에서 키워왔다. 상업용 연어 크기로 자라려면 바다에서 14∼24개월 정도 키워야 한다.  연어는 우리나라에서 광어(넙치)에 이어 두 번째로 수요가 많은 양식 어종이지만 수요의 98%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잡힌 연어는 437t으로 연어 수입량(2만 2810t)의 1.9%에 불과하다. 연어는 지난해 수입 어류 가운데 금액 기준 1억 9670만 달러(약 2200억원)로 명태 다음으로 많다. 물량은 적지만(전체 수입 어류 9위) ‘몸값’이 비싼 셈이다. 해수부는 내년 상반기 20만 마리를 추가로 들여와 대량 생산을 추진해 연간 양식언어 약 800t을 생산할 예정이다.  오운열 해수부 어촌양식정책관은 “내년 11월 상업용 크기 연어 출하에 앞서 홍보 목적 등으로 연어를 시범 출하한다”면서 “고부가가치 양식 품목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국내 양식 연어 다음 달 첫 출하

     우리나라에서 국내 기술로 키운 양식 연어가 다음 달 첫 출하에 들어간다.  해양수산부는 26일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 가두리 시설에서 ‘부침식 가두리 시스템’이란 우리 기술로 키운 연어(1.5~2㎏)를 다음 달 시범 출하한다고 밝혔다. 국내 상업용 연어 양식 시설로서는 처음이다. 상업용 크기(4~5㎏ 이상) 출하는 1년 뒤다.  부침식 가두리 시스템은 수온 상승이나 태풍이 발생했을 때 가두리를 하강해 안전하게 보호하는 기술이다. 연어는 대표적인 한해성(寒海性) 어종이어서 그동안 수온이 높은 우리나라 바다에서 양식이 어려웠지만 이번에 수심이 깊고 수온이 낮은 외해에서 연어 1만 마리 양식에 성공했다.  지난해 11월 캐나다에서 수입한 연어 알을 육상 내수면에서 부화시킨 뒤 10개월간 바닷물에 적응하는 순치 과정을 거쳐 외해 양식장에서 키워왔다. 상업용 연어 크기로 자라려면 바다에서 14∼24개월 정도 키워야 한다.  연어는 우리나라에서 광어(넙치)에 이어 두 번째로 수요가 많은 양식 어종이지만 수요의 98%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잡힌 연어는 437t으로 연어 수입량(2만 2810t)의 1.9%에 불과하다. 해수부는 내년 상반기 20만 마리를 추가로 들여와 대량 생산을 추진해 연간 양식언어 약 800t을 생산할 예정이다.  오운열 해수부 어촌양식정책관은 “내년 11월 상업용 크기 연어 출하에 앞서 홍보 목적 등으로 연어를 시범 출하한다”면서 “고부가가치 양식 품목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新국토기행] 제주 우도

    [新국토기행] 제주 우도

    ‘섬 속의 섬’ 우도는 제주도의 축소판이다. 쪽빛 바다와 오름(기생화산), 해안 절경, 푸른 초원과 검은 돌담, 하얀 등대와 물질하는 해녀…. 우도는 제주 본섬의 풍광을 쏙 빼닮았다. 제주도에 딸린 여러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면적은 6.18㎢, 해안선 길이는 17㎞에 이른다. 소가 드러누운 형상이라고 해서 우도라고 불리며 1700여명의 주민이 농업과 수산업, 관광업에 종사한다. 우도는 요즘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한적했던 해안가에는 카페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박시설도 앞다퉈 문을 열었다. 2010년 12월 제주 본섬과 연결되는 해저 상수도가 통수되면서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는 말끔하게 해소됐다. 한때 일부 주민들이 우도와 제주 본섬을 연결하는 연륙교 개설을 주장했으나 ‘섬이어서 더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여론에 밀려 없던 일이 됐다. ‘우도에 가기 위해 제주에 온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요즘 우도의 인기는 상한가다. 한 해 15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우도를 찾는다. 우도 절경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바야흐로 우도 전성시대다. 제주도 개발 광풍이 작은 부속 섬에까지 불어닥치면서 우도도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최근에는 우도의 대표적 해안 절경 중 한 곳인 돌칸이해안과 인접한 곳에 대규모 체류형 숙박시설 조성이 추진돼 경관 파괴와 환경 훼손 논란을 빚고 있다. >>볼거리 ●현무암과 대비되는 강력한 풍경의 홍조단괴해빈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빈 퇴적물이 홍조단괴로만 이뤄진 해빈(바닷가)으로 우도의 대표 명소다. 홍조단괴해빈은 우목동 해안에 길이 300m, 폭 15m 정도로 백사장처럼 펼쳐져 있다. 홍조단괴는 홍조류가 석회화되면서 암석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만들어진다. 우목동 해안 앞바다에 서식하는 홍조류가 강한 조류와 태풍 등의 영향을 받아 뒤집히고 굴러다니면서 점차 성장하고 돌멩이처럼 굳어진 뒤 떠밀려 와 해빈을 형성하고 있다. 홍조단괴해빈은 너무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이 돈다. 2004년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지정됐다. 화산섬의 검은색 현무암과 대비되는 하얀 홍조단괴해빈은 강렬한 풍경을 연출한다. 과거에는 ‘산호사 해빈’으로 알려져 왔으나 수년 전 해빈 퇴적물이 홍조단괴로 밝혀졌다. 태풍 등 기상이변과 온난화 등으로 해마다 홍조단괴해빈은 침식돼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1979년 10월에는 홍조단괴해빈 면적이 1만 8318㎡였으나 2013년 8월 조사에서 1만 2765㎡로 34년 새 30.3%(5553㎡)가 사라졌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의 상승으로 수심이 깊어져 같은 파도라도 해안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데다 인공 구조물인 호안이 설치돼 홍조단괴해빈이 계속 침식되고 있다. 1995년 이곳에 해안도로가 건설됐다. 2005년에는 파도와 모래가 제방 등을 넘어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높이 0.4∼2.5m, 폭 0.3∼4.8m, 길이 282.5m의 호안벽이 설치됐다. 환경단체 등에서는 이런 인공 시설 때문에 홍조단괴 해빈이 훼손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을 조망할 수 있는 우도봉 우도의 동남쪽에 솟아 있는 소머리오름인 우도봉(132m)은 우도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다. 우도봉 아래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17㎞ 해안선을 따라 해안 절경이 펼쳐진다. 우도봉 정상에서는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의 동쪽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성산일출봉의 동쪽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우도봉 정상이 유일하다. 정상에는 제주에서 가장 먼저 들어선 우도 등대가 있다. 우도 등대는 1906년 3월 무인 등대로 점등됐다가 1959년 9월 유인 등대로 바뀌었다. 2003년 12월에 신등탑을 신축했고 97년간 불을 밝히던 서쪽 옛 등탑은 2003년 11월 문을 닫았다. 옛 동탑은 역사적 가치 등으로 원형대로 보존 중이다. 신등대 설치와 함께 들어선 국내 최초의 등대 테마공원도 볼거리가 많다. 덴마크 안홀트, 미국 킹스턴, 프랑스 코르두앙, 일본 다테이시사키, 독일 브레머하펜, 이집트 파로스와 부산 오륙도, 인천 팔미도, 포항 호미곶, 강원 대진, 제주 마라도 등대 등 우리나라와 세계의 유명한 등대 모형이 전시돼 있다. ●옛 돌담 등 가장 제주다운 풍경 선물하는 우도 올레 제주 올레 1~1 우도 올레는 푸른 초원과 검은 돌담, 하얀 등대 등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터벅터벅 걸으며 사계절 내내 쪽빛 바다색을 자랑하는 우도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쇠물통언덕을 지나 제주도의 옛 돌담을 고스란히 간직한 돌담 올레를 걷고 호밀과 보리, 땅콩이 자라는 밭둑 올레도 즐길 수 있다. 기존 우도봉 산책 코스는 바로 올라 전망대로 가지만 우도 올레는 해수를 담수로 만들었던 우도저수지 옆길을 지나 우도봉으로 오르도록 길을 냈다. 이 길은 꽃양귀비와 크림손클로버로 뒤덮인 아름다운 초원 풍경을 보여준다. 천진항을 출발해 홍조단괴해빈 해수욕장~하우목동항~산물통 입구~파평윤씨공원~하고수동 해수욕장~조일리 오거리~연자마~우도봉 입구~우도 등대~천진항으로 돌아오는 우도 올레는 17㎞로 4~5시간이 걸린다. 관광객이 늘면서 우도 올레는 요즘 방해꾼들이 많아졌다. 하루 내내 관광객이 대여한 사륜차와 모터사이클이 굉음을 내며 우도를 휘젓고 돌아다녀 호젓한 올레길을 즐기기는 어렵게 됐다. 또 이들의 잦은 교통사고도 골칫거리다. 한가롭고 호젓한 분위기를 기대했다가 하루 내내 시끄러운 모터사이클 소리가 끊이지 않는 우도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도 많다. 우도에서 모터사이클을 추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대여업을 하는 주민들의 생계와도 연결돼 있어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다. 다행히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 600대의 차량만 우도 반입을 허용하는 차량총량제를 실시 중이다. ●집담·산담·밭담 등 제주만의 풍경 간직한 돌담 우도는 집담, 산담, 밭담 등 화산섬 제주의 독특한 돌 문화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집 울타리 역할을 하는 집담은 집의 경계를 나타내고 소나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산담은 무덤가 울타리 돌담이다. 밭 울타리인 밭담의 경우 산에는 짐승들이, 들에는 소나 말, 가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하며 수시로 부는 바람과 태풍 등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것이다. 누군가 쌓아 올린 우도의 돌담은 오랜 시간의 흔적이자 노동 축적의 산물이다. 무너진 돌담은 세대를 이어 쌓고 또 쌓았다. 우도의 해안 돌담은 13㎞나 된다. 북쪽 지역의 돌담 높이는 무려 3m가 넘는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우도는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더 높이 쌓았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면 그 씨앗이 바람에 날리지 않게 높은 돌담을 쌓아야만 했다. 돌과 돌 사이에는 구멍으로 바람 길을 냈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고 오랜 세월을 이겨낸 견고한 제주 돌담의 비결이다. 돌담은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어 지난해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자연스러운 울림·선율이 흐르는 고래콧구멍동굴 고래콧구멍동굴(경안동굴)은 우도 검멀레해안에 있는 해식동굴이다. 넓은 실내 공간과 동굴의 자연 울림으로 1997년 동굴음악회를 시작한 이래 해마다 음악회가 열린다. 1992년 ‘동굴소리연구회’가 제주의 여러 동굴을 직접 답사한 후 최적의 동굴음악회 장소로 낙점했다. 동굴이 지닌 공명 등 자연 음향의 우수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음악회에는 전국에서 팬들이 찾아온다. 동굴소리연구회는 오는 25일 오후 2시 30분 고래굴에서 ‘한국 가곡의 대향연’이라는 주제로 ‘2015 우도 동굴음악회’를 연다. ‘자연스러운 소리 감각이란 자연스러운 울림 공간에서 더 효과적으로 체득된다’는 게 동굴음악회가 주는 매력이다. 동굴 공간 울림의 뛰어남을 알리고 동굴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동굴음악회는 우도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이다. 검멀레해변은 이름처럼 검은 모래로 이뤄졌다. 응회암이 부서져 만들어진 덕에 독특한 빛깔을 낸다. 이곳에서 올려다보는 우도봉은 해안 절벽의 높이가 20m나 된다. 인근 남서쪽의 돌칸이해변은 둥글고 큰 먹돌이 지천이다. ‘돌칸이’는 소의 여물통이라는 뜻이다. >>먹거리 ●껍질째 먹어야 맛있는 우도 땅콩 우도는 바람, 토지, 기후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땅콩 재배 최적지다. 타 지역에 비해 땅콩이 작고 껍질은 얇고 부드럽다. 우도 땅콩은 껍질째 먹어야 더 맛있다. 우도 땅콩은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E, 니아신, 엽산 등 비타민 공급원을 다량 함유해 치매 예방과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타 지역 땅콩은 조단백질과 조지방 위주로 구성됐지만 우도 땅콩은 조단백질, 조지방 외에도 탄수화물까지 골고루 함유하고 있다. 우도 땅콩으로 만든 땅콩아이스크림은 우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 땅콩밥, 땅콩국수 등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세계 땅콩요리 페스티벌, 땅콩아이스크림 만들기, 땅콩 수확 체험 등 우도 땅콩 축제가 열린다. 최근에는 ‘치맥’(치킨과 맥주) 대신 ‘땅맥’도 우도에서 인기다. 고소한 우도 땅콩과 맥주 한잔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몰이 중이다. ●바다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우도 소라 우도 소라는 크기부터 다르다. 제주에서 가장 큰 소라가 우도 바다에서 잡힌다. 수심이 깊은 데다 물살도 세 우도 바다에서는 큰 소라가 자란다. 해녀들이 갓 잡아 올리는 우도 소라는 다소 비리지만 바다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소라 특유의 맛을 자랑한다. 소라회로도 먹고 소라구이로도 먹는다. 소라구이를 할 때는 소라를 석쇠 위에 올려 놓은 후 물을 조금 부어 끓기 시작하면 부어낸 뒤 소주를 넣고 다시 굽는다. 어느 정도 끓으면 소주잔에다 비우고 또 소주를 부어 끓인다. 이렇게 2, 3회 한 후에 소주는 소주대로 알맹이는 알맹이대로 꺼내 먹는다. 생소라에는 경단백질인 콜라겐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 비타민, 미네랄도 풍부하다. 우도에는 소라구이집이 수두룩하다. 연간 2000여t을 생산해 일부는 일본으로 수출한다. 해마다 10월이면 추억의 소라목걸이 만들기, 맨손으로 소라 잡기, 소라구이 시식회 등 소라 축제가 열린다. 글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가을 이사철 전세난에 ´주택 거래´ 다시 늘었네

     가을 이사철 속에 전세난이 가중되면서 서울지역 주택 거래량이 이달 들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서울 아파트와 연립·다세대 등의 거래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20일 현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7491건으로 조사됐다. 하루 평균 374.5건이 거래된 것으로, 지난달 일평균 거래량(304건)보다 70건 이상 늘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들어 8월까지 역대 최대 거래량을 보였지만 추석 연휴와 함께 7월 말 가계부채 관리 방안이 발표되면서 지난달 매수세가 잦아들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사철 성수기를 맞으면서 매수심리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역별로는 강남구의 거래량이 414건으로 지난달(424건) 전체 거래량의 97.6%에 달했다. 노원구(833건), 동작구(332건), 양천구(412건) 등이 지난달 거래량의 90%를 넘었거나 육박했다.  다세대·연립, 단독·다가구 등도 거래량이 늘었다. 전세난 심화로 아파트보다 싼 다세대·연립 등을 구입해 이전하려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지역 다세대·연립주택 거래량은 3734건으로 일평균 186.7건이 거래됐다. 일평균 135건이 거래된 지난해 10월(4210건) 거래량을 훨씬 넘어설 전망이다. 단독·다가구도 이달 들어 하루 평균 65.8건(1317건)이 거래돼 일평균 48건이 팔린 지난해 같은 달 거래량을 넘어섰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가계부채 대책 발표 후 폭발적으로 늘던 매수세가 다소 주춤한 분위기지만 연말까지 증가세는 이어질 듯하다”고 말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곤파스 피해보다 더해… 병들고 소금물까지 먹어 農心도 쭉정이”

    “곤파스 피해보다 더해… 병들고 소금물까지 먹어 農心도 쭉정이”

    15일 오전 9시쯤 찾은 충남 서산A·B지구는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이 간척지 방조제 너머 천수만에서 불어오는 갯내음이 섞인 듯 안개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왼쪽은 서해, 오른쪽은 간척지 논이 넓게 펼쳐졌다. B지구로 들어서자 바로 부남호다. 평소 3~4m의 물로 찰랑거려야 할 부남호의 수심이 고작 30~40㎝이다. 일부는 맨바닥을 드러냈다. 맨땅에는 녹조류들이 떠 있다. 가뭄으로 말라붙은 부남호는 더는 담수호가 아니다. 바닷물처럼 짜다. 좀 더 들어가니 드넓은 논에 잎이 말라 죽은 벼들이 무더기다. 오래된 지푸라기처럼 생기가 없다. 노랗게 익은 이삭이 가을 바람에 출렁이는 ‘황금 들판’은 어디에도 없다. 논을 살피러 나온 구자승(58)씨는 “1986년부터 여기서 농사를 지었지만 이런 가뭄 피해는 처음”이라면서 “벼 베기를 포기하는 농민도 많다”고 혀를 찼다. 구씨는 “쌀 수확량이 예년의 절반이나 되려나 모르겠다”고 우울해했다. 그는 현대건설로부터 B지구의 논 14만평을 임대해 농사를 짓고 있다. 벼 잎이 시든 시점은 지난 8월 중순이었다. 처음에 잎이 약간 마르더니 날이 갈수록 회색이 돼 말라 죽어갔다. 면적도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구씨는 “자식 같은 벼가 죽어가니 약을 치고 별짓을 다했다”면서 “약을 치면 살기도 했는데 올해는 그냥 죽어버리더라”고 전했다. 가뭄으로 한여름 논 말리기 작업도 못했다. 그래야 벼가 흙 속에 넓고 단단하게 착근한다. 구씨는 “가뭄이 시작됐는데 그때 물을 빼면 다 말라 죽을 것 같아 엄두도 못 냈다”고 했다. “논물이 그대로 마르면서 짜졌고, 벼가 활착을 못해 약해지니까 잎마름병부터 오더라”라고 회고했다. 농민들은 지난 6월 중순 벼가 잘 자라지 못하자 벼를 추가로 계속 심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구씨는 “생육이 더디니까 7~8월에는 질소비료를 흠뻑 뿌려줬지만 별수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벼는 잎마름병이 온 상태에서 염분 농도가 짙은 수분까지 흡수하면서 죽어갔고, 이삭이 여물지 않아 쭉정이가 됐다. 벼를 까보니 쌀이 쉽게 부서졌다. 농민 신동재(57)씨는 “잘 여문 벼는 도정을 하면 80%의 소출이 나는데 70%도 안 나온다”고 했다. 2010년 8월 닥친 태풍 ‘곤파스’ 때보다 피해가 크다고 신씨는 덧붙였다. 당시 강풍으로 벼의 수분을 빼앗아 백수현상을 부르면서 알맹이를 맺지 못했다. 신씨는 “수확을 포기하는 농민도 있지만 ‘울며 겨자 먹기’라도 수확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논 한두 군데에서 콤바인으로 시든 벼를 베고 탈곡해 15t 트럭 한 대에 쏟아부었다. 신씨는 “예전에는 논 6000평을 베면 세 대 트럭분이 나왔는데 올해는 겨우 한 차를 채우고 있다”면서 “도정해도 싸라기여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데 어디에다 팔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20만평을 짓는데 60% 이상 망쳤다”면서 “자꾸 얘기해 봐야 속만 터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라 가창오리와 기러기 등이 떼 지어 날았다 앉았다 하는 것을 지켜보던 한 농민은 “벼를 베지 않은 곳도 많고, 볏짚을 거두지 않아 철새들이 올해 호강하겠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작목반별로 매일같이 만나 불안한 앞날만 걱정할 뿐이다. 서산A·B지구에는 경기 평택 등 각종 개발로 땅을 잃고 이곳을 대토해 컨테이너 박스에 머물며 농사 짓는 이들도 많다. 이대로라면 내년 농사도 걱정이다. A지구 담수호인 간월호에서 염도가 높아진 부남호로 물을 공급해야 내년에 벼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간월호는 홍성, 서산 등에서 생활용수를 정화한 물이 유입돼 염분이 거의 없다. 가뭄 피해도 별로 입지 않았다. 서산B지구 농민들은 정부의 벼 전량 특별수매와 가뭄 피해농가 지원대책을 요구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도 요구했지만, 요건이 안돼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선(68) 천수만경작자연합회 대표는 “이곳 농민은 대부분 소작농이라 한 번 망가지면 선불 임대료조차 내지 못해 땅을 빼앗긴다”면서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주지 않으면 볏짚을 들고 집단시위라도 불사하겠다”며 호소했다. 서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곤파스 피해보다 더해… 병들고 소금물까지 먹어 農心도 쭉정이”

    “곤파스 피해보다 더해… 병들고 소금물까지 먹어 農心도 쭉정이”

    15일 오전 9시쯤 찾은 충남 서산A·B지구는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이 간척지 방조제 너머 천수만에서 불어오는 갯내음이 섞인 듯 안개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왼쪽은 서해, 오른쪽은 간척지 논이 넓게 펼쳐졌다. B지구로 들어서자 바로 부남호다. 평소 3~4m의 물로 찰랑거려야 할 부남호의 수심이 고작 30~40㎝이다. 일부는 맨바닥을 드러냈다. 맨땅에는 녹조류들이 떠 있다. 가뭄으로 말라붙은 부남호는 더는 담수호가 아니다. 바닷물처럼 짜다. 좀 더 들어가니 드넓은 논에 잎이 말라 죽은 벼들이 무더기다. 오래된 지푸라기처럼 생기가 없다. 노랗게 익은 이삭이 가을 바람에 출렁이는 ‘황금 들판’은 어디에도 없다. 논을 살피러 나온 구자승(58)씨는 “1986년부터 여기서 농사를 지었지만 이런 가뭄 피해는 처음”이라면서 “벼 베기를 포기하는 농민도 많다”고 혀를 찼다. 구씨는 “쌀 수확량이 예년의 절반이나 되려나 모르겠다”고 우울해했다. 그는 현대건설로부터 B지구의 논 14만평을 임대해 농사를 짓고 있다. 벼 잎이 시든 시점은 지난 8월 중순이었다. 처음에 잎이 약간 마르더니 날이 갈수록 회색이 돼 말라 죽어갔다. 면적도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구씨는 “자식 같은 벼가 죽어가니 약을 치고 별짓을 다했다”면서 “약을 치면 살기도 했는데 올해는 그냥 죽어버리더라”고 전했다. 가뭄으로 한여름 논 말리기 작업도 못했다. 그래야 벼가 흙 속에 넓고 단단하게 착근한다. 구씨는 “가뭄이 시작됐는데 그때 물을 빼면 다 말라 죽을 것 같아 엄두도 못 냈다”고 했다. “논물이 그대로 마르면서 짜졌고, 벼가 활착을 못해 약해지니까 잎마름병부터 오더라”라고 회고했다. 농민들은 지난 6월 중순 벼가 잘 자라지 못하자 벼를 추가로 계속 심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구씨는 “생육이 더디니까 7~8월에는 질소비료를 흠뻑 뿌려줬지만 별수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벼는 잎마름병이 온 상태에서 염분 농도가 짙은 수분까지 흡수하면서 죽어갔고, 이삭이 여물지 않아 쭉정이가 됐다. 벼를 까보니 쌀이 쉽게 부서졌다. 농민 신동재(57)씨는 “잘 여문 벼는 도정을 하면 80%의 소출이 나는데 70%도 안 나온다”고 했다. 2010년 8월 닥친 태풍 ‘곤파스’ 때보다 피해가 크다고 신씨는 덧붙였다. 당시 강풍으로 벼의 수분을 빼앗아 백수현상을 부르면서 알맹이를 맺지 못했다. 신씨는 “수확을 포기하는 농민도 있지만 ‘울며 겨자 먹기’라도 수확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논 한두 군데에서 콤바인으로 시든 벼를 베고 탈곡해 15t 트럭 한 대에 쏟아부었다. 신씨는 “예전에는 논 6000평을 베면 세 대 트럭분이 나왔는데 올해는 겨우 한 차를 채우고 있다”면서 “도정해도 싸라기여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데 어디에다 팔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20만평을 짓는데 60% 이상 망쳤다”면서 “자꾸 얘기해 봐야 속만 터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라 가창오리와 기러기 등이 떼 지어 날았다 앉았다 하는 것을 지켜보던 한 농민은 “벼를 베지 않은 곳도 많고, 볏짚을 거두지 않아 철새들이 올해 호강하겠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작목반별로 매일같이 만나 불안한 앞날만 걱정할 뿐이다. 서산A·B지구에는 경기 평택 등 각종 개발로 땅을 잃고 이곳을 대토해 컨테이너 박스에 머물며 농사 짓는 이들도 많다. 이대로라면 내년 농사도 걱정이다. A지구 담수호인 간월호에서 염도가 높아진 부남호로 물을 공급해야 내년에 벼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간월호는 홍성, 서산 등에서 생활용수를 정화한 물이 유입돼 염분이 거의 없다. 가뭄 피해도 별로 입지 않았다. 서산B지구 농민들은 정부의 벼 전량 특별수매와 가뭄 피해농가 지원대책을 요구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도 요구했지만, 요건이 안돼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선(68) 천수만경작자연합회 대표는 “이곳 농민은 대부분 소작농이라 한 번 망가지면 선불 임대료조차 내지 못해 땅을 빼앗긴다”면서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주지 않으면 볏짚을 들고 집단시위라도 불사하겠다”며 호소했다. 서산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新국토기행] 전남 목포시

    [新국토기행] 전남 목포시

    전남 목포는 개항 116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항구도시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많은 예술인을 배출해 온 남도 예향의 본고장이다. 서남권 다도해를 비롯해 천혜의 관광자원과 문화유적을 자랑한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색과 맛의 향연이 넘실대는 맛과 멋, 빛의 도시다. 세계파워보트레이스를 이끄는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델 팔라시오, 주한 일본대사였던 우시로쿠 도라오 등 외국인들은 일찍이 “목포 바다는 지중해보다 아름답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일제강점기 활발한 부두경기를 누렸던 목포항은 상업 무역 중심지가 되면서 한때 3대항 6대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는 유달산 자락의 목원동 일대가 쇠락해 가면서 도심 전체가 침체에 빠졌다. 지난해 목원동 일원 60만㎡가 국토교통부로부터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되면서 2017년까지 200억원이 투입돼 제2의 도약을 꿈꾼다. 특히 중국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上海)시와의 거리가 671㎞로 가깝고, 중국 최대 경제권인 장쑤(江蘇)성, 저장(浙江)성 등 동부 연해지역과도 멀지 않은 이점을 활용해 동북아 중심도시로 성장한다는 구상이다. 물류비용 절감과 교역 접근성, 목포 입구에 있는 세라믹산업단지와 대양산단을 개발해 중국 수출의 교두보로 활용하기 위해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 >>볼거리 ●봄꽃소식 육지에 가장 먼저 전하는 유달산 남쪽바다를 건너온 봄꽃 소식이 육지에 처음 와 닿는 곳이다. 봄이 오면 유달산에는 노란 개나리와 화사한 벚꽃이 어우러진 꽃동산이 돼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노령산맥 마지막 봉우리인 유달산은 해발 228m,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기암절벽에서 온갖 조형미가 묻어나고 문향 가득한 눈요깃거리가 많다. 유달산 정문 쪽 큰 바위 노적봉은 목포 사람들에게 마르지 않은 ‘지혜의 섬’으로 통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봉우리에 이엉을 덮고 군량미로 위장해 놓은 것을 왜군이 대군이 진주하는 것으로 알고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노적봉 윗부분을 사진 찍어 90도로 회전할 경우 그 형상이 더욱 뚜렷하다. 이순신 장군을 닮은 큰 바위 얼굴로 목포를 끝까지 수호해 준다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겼다. 대학루, 달선각, 유선각, 관운각, 소요정 등 5개 정각은 고즈넉한 목포항의 정겨운 풍경과 아름다운 다도해 절경을 한눈에 바라다볼 수 있다. 4만 6280㎡(약 1만 4000평) 규모의 조각공원과 국내 희귀 난 194종이 있는 난공원도 있다. 단아한 난의 자태와 꽃냄새로 감동이 넘친다. 한때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는 신호로 사용했던 오포대를 지나 올라가면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나온다. 주말마다 새천년 시민의 종 타종 체험과 천자총통 발포 체험을 즐길 수 있어 다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체험거리도 풍부하다. ●날갯짓하는 학의 모습 형상화한 목포대교 2012년 완공된 목포대교는 총연장 4.129㎞, 너비 35~40m의 왕복 4차선 도로로 북항과 고하도를 잇는 해상 교량이다. 3346억원을 투입, 초속 74.9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높이 167.5m 다이아몬드 주탑 2개, 교각 36개, 상판 슬래브 36경간, 최대 5만 5000t급 선박과 충돌하더라도 다리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돌보호공을 설치했다. 목포 역사상 최대의 역점사업으로 추진됐다. 무안국제공항이 활성화되고 물류비용 절감과 접근성 향상으로 대불산단, 대양산단, 세라믹산단 등의 기업 유치를 촉진시킨다. 목포 북항권과 원도심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는 등 서남권 발전에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세계 두 번째이자 국내에서는 처음 도입된 ‘삼면배치(3-way) 케이블 공법’을 적용하는 등 해상교량 기술의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탑과 케이블은 목포의 시조(市鳥)인 학 두 마리가 목포 앞바다를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해 운전자들이 교량을 건널 때 케이블 모습이 마치 학이 날갯짓하는 듯한 시각효과를 느낄 수 있다. 경관 조명 설치로 학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한다. ●日영사관 등 근대 건축물 보존된 역사의 거리 1관인 일본영사관은 목포 최초의 서구적 근대 건축물로 당시 중국 샤먼(厦門) 영사관과 함께 일본 재외 영사관으로 쌍벽을 이뤘다고 한다. 일본 영사관은 목포의 근대 역사를 담은 사진을 전시하기 위한 근대역사관 본관으로 쓰고 있다. 700m 떨어진 2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전남도 기념물 제174호다. 호남지역 유일하게 보존된 일본식 정원인 이훈동 정원도 만날 수 있다. 한국 야생종과 외래 수종 등 113종의 수목과 원주형, 직부형, 설견형 등의 일본식 석등으로 이뤄졌다.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 촬영지이기도 하다. ●박물관·전시관 모여 있는 갓바위 문화 타운 갓바위를 비롯해 천혜의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한 박물관과 전시관이 집적돼 있다. 남조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예향 목포를 느낄 수 있는 문화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복합 관광지다. 산 교육 학습장으로 매년 봄이면 수학여행과 현장학습을 위해 찾아오는 학생들로 붐을 이룬다. 갓바위는 두 사람이 나란히 갓을 쓴 모습의 애틋한 전설이 담긴 바위로 지질학적, 관광학적 가치가 높아 2009년 문화재청으로부터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됐다. 파도·해류 등에 의해 바위가 침식되는 현상과 암석이 공기·물 등의 영향으로 어떻게 변화돼 가는가를 잘 보여준다. 다른 지역 풍화혈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성을 가지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자연사박물관도 있다. 공룡모형, 화석, 식물, 곤충, 조류, 어류표본 등 총 4만여점의 방대한 자료를 소장해 지구 46억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최고의 자연학습장이다. 박물관에는 전남 신안군 압해도에서 발견된 국내 유일의 초대형급 육식공룡둥지 화석을 볼 수 있다. 이 화석은 알 크기가 43㎝에 이르는 국내 최대 크기의 육식공룡알 19개가 포함된 직경 230㎝ 둥지로 복원됐다. 갓바위와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벗하는 문예역사관, 남농기념관,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관, 목포 문학관 등이 함께 있다. ●기네스에 등재된 세계최초 춤추는 바다분수 2012년 한국관광기네스에 등재된 세계 최초 초대형 부유식 음악분수다. 목포항을 형상화한 부채꼴 모양과 삼학도를 상징한 조형물, 유달산 모형의 구조물은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수반길이 150m, 높이 13.5m, 최대 분사 높이 70m로 경관 조명과 어우러져 다양한 모양이 표출된다. 환상적인 음악과 분수, 영상, 레이저 빛이 뿜어내는 다이내믹한 연출은 관광객들에게 목포의 색다른 낭만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요트 등 수상 레포츠 즐길 수 있는 삼학도 세 처녀의 애절한 사랑을 스토리로 간직한 삼학도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를 각종 사료와 영상자료로 살펴볼 수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과 갯벌 체험·심해모형잠수정·깊은 바다 재현 영상·바다 동식물 생태 및 먹이 모형 체험 등 아이들의 감각을 풍부하게 자극하도록 구성된 어린이바다과학관이 있다. 카누와 요트 체험 등을 통해 도심 속 공원에서 쉽게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먹거리 ● 원기 회복에 좋은 갯벌의 인삼 ‘세발낙지’ 목포를 상징하는 대표 먹거리다. 발이 세 개여서가 아닌 발이 가늘다는 뜻의 세(細)로 갯벌 속의 인삼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원기에 좋은 건강식이다. 세발낙지는 크기가 작아서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통째로 먹어야 제맛이다. 목포 사람들은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연포탕, 새콤달콤한 회무침, 낙지비빔밥, 갈낙탕 등 10여 가지 음식으로 조리해 먹는다. 일반적으로 낙지는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잡히지만 세발낙지만은 목포와 무안 등지에서 많이 잡힌다. 속담에 ‘봄 조개, 가을 낙지’라고 한 것처럼 가을에는 여름철 무더위에 지친 몸을 추슬러 원기를 돋우는 데 최고로 불린다. ●톡 쏘는 맛과 오돌오돌한 식감 ‘홍어’ 남도사람들이 예부터 즐겨 먹던 수산물로 지금도 잔칫상에 홍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두엄 더미에 파묻어 잘 삭힌 홍어의 오감을 관통하는 톡 쏘는 맛과 살과 뼈가 어우러진 오돌오돌 씹히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홍어는 삭힌 회를 그대로 먹는 게 가장 좋지만 무침, 찜, 애국, 전, 튀김 등 요리 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서해안 앞바다에 광범위하게 서식, 분포하고 있어서 흑산도나 인근 서해에서 잘 잡힌다. 흑산 홍어를 최고로 치지만 가격이 높아서 수입 홍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홍어회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면 오묘하고 알싸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정신을 깨우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삭힌 홍어와 삶은 돼지고기, 묵은 김치를 곁들인 삼합과 감칠맛 나는 막걸리를 함께하는 홍탁삼합은 대표적인 목포 음식이다. 지옥 같은 향기, 천국 같은 맛으로 불린다. ●두 말 필요없는 ‘밥도둑’ 꽃게무침·꽃게장 발그스레한 소스에 버무려 내놓은 꽃게무침과 꽃게살은 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가득하다. 꽃게가 많이 나는 봄에 1년분 꽃게를 사서 냉동실에 넣어둔다. 여름철에 냉동 상태에서 꺼내기 때문에 비브리오 패혈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참기름과 김가루를 얹진 밥에 비벼 먹다 보면 저 많은 양을 언제 다 먹을까 싶었던 걱정도 금방 사라질 정도로 ‘밥도둑’이다. 먹고 나면 든든한 포만감이 오래가 다음 끼니가 맛이 덜할 정도다. ●껍질·부레·지느러미까지… 민어 한상차림 수심 30~120㎝ 진흙 바닥에 주로 서식하는 민어는 다른 지역과 달리 회뿐만이 아닌 껍질, 부레, 뱃살, 지느러미까지 한 상 푸짐하게 나온다. 회맛은 쫄깃하고 달콤하다. 또한 1주일 정도 갯바람에 말린 후에 찜으로 조리하거나 쌀뜨물에 민어, 멸치, 무, 대파 등을 넣고 탕으로 요리하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먹갈치만의 독특한 감칠맛 간직한 ‘갈치찜’ 목포 먹갈치만이 가진 독특한 감칠맛 나는 갈치요리는 갈치찜, 갈치구이 등으로 목포의 대표 요리로 각광받는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갈치잡이를 하는 낚시꾼들로 호황을 이루는 북항 방파제의 살아 움직이는 풍경도 볼 수 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③이스라엘의 프로방스, 갈릴리 호수Galilee

    해외여행 | Shalom, Israel 샬롬, 이스라엘③이스라엘의 프로방스, 갈릴리 호수Galilee

    ●Galilee 갈릴리 호수 이스라엘의 프로방스, 갈릴리 호수Galilee 사해의 서북쪽 연안, 마사다에서 멀지 않은 쿰란Qumran은 2000년 전 필사한 성경이 발견된 곳이다. 1947년 베두인 양치기 소년은 쿰란 제1동굴에서 사해사본을 발견했다. 유대교의 한 분파인 에세네파 사람들이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욕주의자들이었다는 에세네파 사람들은 정결한 몸을 유지하고 의식을 치르기 위해 공중목욕탕도 만들었다. 쿰란을 떠나 이스라엘 북부의 산악지역에 있는 갈릴리Galilee 호수로 향한다. 도로 왼편은 사마리아 지방이다. 성경이나 영화 속에서 듣거나 본 장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갈릴리로 가는 길에 요르단강도 건넌다. 예수는 여리고 근처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요르단강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강이라지만 물줄기는 작다. 레바논 북쪽, 헤브론산에서 발원한 요르단강은 갈릴리 호수를 지나 사해로 흘러간다. 굽이굽이 흐르는 요르단강 강줄기는 320km에 달한다. 늦은 오후 갈릴리 호수 남쪽 마간의 한 키부츠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도착했다. 갈릴리 호숫가 키부츠다. 키부츠 안에 수영장도 있다. 키부츠 숙소는 가족 단위 여행자들이 머무르기 좋게 방갈로 형식이다. 해가 지면서 호수 맞은편 산간 지역은 실루엣처럼 보인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수면 위로 돛을 세우고 윈드서핑을 즐기는 이들도 보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붉은 병풍 같은 골란고원이 보인다. 골란고원 저편이 시리아라는 사실이 좀체 실감나지 않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갈릴리 호수의 둘레는 60km에 달한다. 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이 갈릴리 호수를 ‘바다’라고 불렀던 게 수긍된다. 영어 이름대로 ‘바다 같은 호수Sea of Galilee’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설파한 산상설교지인 팔복산Mount of Beatitudes이 바로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이요.’ 예수는 산상설교를 이렇게 시작했다. 그때 예수는 억압받고 학대받는 사람들 편에 서 있었다. 사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갈릴리 호수도 해저 222m로 매우 낮은 지역에 위치한다. 평균 수심은 30m이지만 가장 깊은 곳은 50m에 달한다. 우기와 건기에 따라 수심이 다르다.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식수의 70%를 생산할 만큼 깨끗한 상수원이다. 갈릴리 지방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프로방스’라 불린다. 이스라엘을 찾은 크리스천들은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굴곡진 요르단강을 찾아 래프팅을 즐긴다. 갈릴리 지방의 중심지인 티베리아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위가 시끌벅적하다. 미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찾은 이유는 만 열두 살이 된 아들의 성년식 때문이다. 외국에 살지만 이스라엘로 돌아와 성년식을 치르는 일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축복할 일로 여겨지는 듯하다. 비행기 값, 호텔, 식사, 촬영비 등 제법 큰돈을 들여 성대한 파티를 벌이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다.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앞에서도 매주 두 번씩 요란하게 성인식을 치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개 다른 나라에 살다가 성인식을 위해 이스라엘로 온 사람들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3 Western Coast Cities of Israel ▶십자군 성채 도시, 아코Akko 지중해의 동편을 마주한 아코는 요새처럼 구축된 항구도시다. 이스라엘에 속한 ‘아랍인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아코의 올드 시티는 지중해를 마주보고 성벽에 둘러싸였다. 북으론 레바논과 시리아, 터키, 남으론 아프리카, 서쪽으론 유럽과 면한다. 1104년에는 십자군에 점령되었고, 1291년에는 술탄 말렉 엘-아쉬라프에게 함락된 바 있다. 술탄 말렉은 아코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그나마 남은 것은 땅에 묻어 버렸다. 기구한 역사는 아코를 강건하게 만들었을까. 훗날 나폴레옹은 두 달간 아코를 포위하고 공격했으나 결국 아코 성벽을 넘지 못하고 퇴각했다. 요새 같은 항구도시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 탓에 아코는 때로 번영하고, 때로는 깨뜨려졌다. 아코의 구시가지는 2001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일몰 때 아코의 성벽을 따라 저녁 산책을 즐기면 좋다. ▶헤롯왕의 도시, 카이사레아Caesarea 헤롯왕이 만든 도시로 로마의 행정수도이자 총독의 거주지였다. 로마 시대의 항구도시로 번성하면서 남긴 유적 외에도 십자군 성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카이사레아 남쪽의 극장은 헤롯왕 때 건설된 이후 수백 년 동안 사용된 극장으로 4,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헤롯 시대의 전차 경기장 흔적도 남아 있다. 거대한 U자 모양의 전차 경주장은 1만명의 관객을 수용했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로마군 장군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카이사레아에는 헤롯 시대뿐만 아니라 로마, 비잔틴, 십자군 시대 등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유적만 봐도 영고성쇠를 거듭한 도시의 역사가 보인다. ▶자유의 도시, 하이파Haifa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무역항구로 유명하다.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있어 도시의 분위기는 자유롭다. 이스라엘 최대의 도시라지만 안식일이면 어김없이 버스가 운행을 멈추는 텔아비브보다 유대교적으로 덜 경건한 것도 하이파의 매력이다. 하이파는 이스라엘 북부의 해안 평야에서 느닷없이 솟아오른 갈멜산Mount Carmel 북서 기슭에 자리잡았다. 아코와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이 많이 살지만 생활수준은 아코에 비해 높다. 하이파의 유명한 상징 중 하나는 황금색 돔을 가진 바하이교 사원이다. 세계적인 종교 가운데 가장 최신 종교다. 아름답고 웅장한 정원이 유명하다. 바하이교 사원 밑으론 1869년 처음 조성된 독일 템플 기사단의 공동체 마을Templar Society이 복원되어 독일의 정취를 느껴 볼 수 있다. 단, 중세 시대 십자군인 템플 기사단과 헷갈리지 말 것.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이스라엘정부관광청 www.goisrael.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못생겨서 미안” 초희귀 심해상어, 스코틀랜드서 발견

    “못생겨서 미안” 초희귀 심해상어, 스코틀랜드서 발견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동물로 정평이 나 있는 ‘블롭피쉬’만큼 찌그러진 얼굴을 지닌 희귀 상어가 최근 스코틀랜드 바다에서 발견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해양 생물학자들이 아우터헤브리디스제도 바라섬 인근에서 못생긴 상어 한 마리를 포획해냈다. ‘폴스캣 상어’(학명 Psuedotrakias microdon)라는 이름을 지닌 이 상어는 수심 1400m의 깊은 수심에 사는 심해 상어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 발견이다. 전체적으로 검은 회갈색 몸을 지니고 있으며 3m까지 자라는 이 상어는 길고 좁은 눈과 크고 육중한 몸을 갖고 있으며 해저를 따라 느리게 헤엄친다. 또 큰 입과 달리 작은 이빨이 촘촘하게 나 있어 작은 어류나 무척추동물, 사체 등을 먹어 바다의 청소부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상어는 스코틀랜드 외에도 캐나다, 브라질, 포르투갈,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하와이, 일본 등 해역에 서식하지만, 좀처럼 수면 쪽으로 올라올 일이 없어 발견조차 어렵다고 한다. 이번에 발견된 폴스캣 상어는 몸길이 2m, 몸무게 60kg 정도로 측정됐으며, 인식표를 단 직후 바다로 되돌려 보내졌다. 이번 포획은 스코틀랜드 바다에 서식하는 상어의 다양성을 조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 조사에 참여한 해양조직 ‘마린 스코틀랜드’의 프랜시스 니트 박사는 “이 상어가 배 위로 인양됐을 때 꽤 놀랐다”면서 “지난 10년간 조사하면서 이런 상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크고 흐물흐물한 생김새가 흥미롭다”면서 “마치 버려진 소파와 같이 보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폴스캣 상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Red List)에서 ‘절멸위기종’(Threatened Species)으로 분류돼 있다. 사진=스코티시 샤크 태깅 프로그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베트남 북부 Deep C/딘부(DINH VU)산업단지 무역&제조업 허브로 가치 급상승

    베트남 북부 Deep C/딘부(DINH VU)산업단지 무역&제조업 허브로 가치 급상승

    베트남이 국내기업들이 직면한 비용절감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생산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한국은 베트남 내 최대 외국 투자국으로, 베트남으로 유입되는 전체 외국인 투자 중 24.4%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미 베트남 외국투자의 대다수가 베트남 북부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인프라 시설 확보를 위한 베트남 정부의 대대적인 인프라 개발 사업이 집중된 베트남 북부지역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호치민이 위치한 남부지역은 기존의 탄탄한 인프라와 지역 개방정책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최근 밀집된 투자로 투자기업간의 경쟁이 높아진 상황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발전속도가 더뎠던 하노이, 하이퐁, 꽝닌의 삼각지역에 경제지반을 둔 북부지역이 새로운 투자처로 조명 받고 있다. 현재 북부지역에는 베트남 정부가 주도하는 대형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 중에서도 ‘락후옌(Lach Huyen) 항만 건설 프로젝트’는 다른 관련 인프라 개발을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심 14m 규모의 심해항구인 락후옌 항만은 10억 달러 이상의 자본이 투입되어 100,000 중량톤(DWT)의 화물 적재가 가능한 총 12km 길이의 컨테이너 부두와 일반 화물 부두로 건설된다. 2014년 4월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으며, 2017년 준공예정인 락후옌 항만은 완공 시 대형 컨테이너선을 수용할 수 있게 되면서 대륙간의 장거리 직접 운항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락후옌 심해 항만과 하노이-하이퐁 고속도로를 연결하는Tan Vu – Lach Huyen 수상대교와 도로 건설도 한창 진행 중이다. 베트남 최대 수상대교가 될 딴부(Tan Vu) 수상대교 건설은 베트남 최대 국책사업 중 하나로, 수상대교는 폭 16m, 길이 5km 규모로 건설된다. 다리와 연결되는 딴부 도로는 길이 10km에 폭 29m 규모로 건설될 예정이다. 2017년 항만과 수상대교가 완공되면 하이퐁시까지 30분 내로 물류 운송이 가능해 혁신적인 비용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공항시설 역시 확충됐다. 북쪽의 유일한 공항이었던 노이바이 국제공항은 최근 승객 수용 규모를 연간 650만 명에서 2200만 명으로 늘리는 확장공사를 완료했다. 이와 함께 하이퐁 중심부에서5km, 노아바이 공항에서 120km 떨어진 하이퐁 국제공항 캇비(Cat Bi) 공항 역시 신청사 건설을 통해 기존 국내 공항에서 북부지방 2번째 4E 국제공항으로 증축 중에 있다. 2016년 완공 시, 베트남내 주요 도시로 직항 노선이 운항될 예정이며 대형 항공기의 수용이 가능하며 및 승객, 화물 처리가 가능해진다. 베트남 남부지역의 거점 하노이와 북부지역의 주요 항구인 하이퐁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인프라도 확충된다. 베트남 정부는 최대 속도 120km/h의 2 x 4 차선의 신고속도로를 착공하여 완공시 하노이-하이퐁 이동시간은 1시간으로 단축될 예정이다. 하노이-하이퐁을 잇는 신고속도로는 하노이의 Tranh Tri 대교에서 시작하여 DVIZ 입구까지 맞닿으며 락후옌 심해항구를 연결하는 Tan Vu – Lach Huyen 도로를 지난다. 2015년 9월 26일 기준 75%에 해당하는 고속도로가 완공되어 부분개통됐으며, 2015년말 전체 완고전체 완공은 201년 말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 노력과 북부지역을 개발시키는 베트남 정부의 상당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인프라 개발에 따른 이점을 인지하고 최근 외국인투자가 북부지역으로 집중되고 있다. 한국의 절연유 생산 기업인 ㈜동남석유공업, 철강 업체 동부제철, 그 외 외국 투자자인C.Steinweg, Yusen, SITC, MOL등의 물류 업체들이 최적의 위치인 Deep C/DVIZ(DINH VU INDUSTRIAL ZONE, 딘부산업단지)에 입주해 있으며, 각 인프라로 최단 거리로 연결되는 유일한 산업단지인 딘부산업단지가 항구 이용 빈도가 높은 현지 및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유망 투자지역으로 집중 받고 있다. 딘부산업단지 관계자는 “DeepC/DVIZ에는 다양한 국가의 55개 이상의 기업이 입주해있으며, 차별화된 전력, 수도, 액화부두 등 외국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또한 각종 행정 정책지원 등 입주기업을 위한 원스탑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라며 “공단 내 모든 입주기업에 투자규모와 상관없이 근로자의 개인소득세 50% 감면, 총 15년간 법인세 감면 등의 파격적인 세금 우대 정책을 적용해 최근 투자자들의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항구개발전문기업 RENT A Port의 숙련된 경험을 토대로 Deep C/DVIZ는 깟하이섬(Cat Hai Island)과 락후옌(Lach Huyen Port) 신항만 부근에 500ha의 공단과 딘부 반도의 남쪽 지역으로 600ha를 추가 개발했다. 국제학교, 국제병원, 주거지역, 금융 서비스, 고급 리조트 등이 하이퐁 지역을 중심으로 추가 건설되고 있어 하이퐁시는 모든 인프라가 완공되는 2017년부터는 베트남 북부의 무역, 제조업의 허브로 떠오를 전망이다. 딘부 산업단지 관련 문의는 투자/개발 전문 베트남 하노이 SMBL 메일(smbljoahhae@gmail.com) 또는 전화(070-8271-4100)로 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사교육 현장 보고서 ‘대한민국의 미친 엄마들’ 펴낸 정찬용씨

    [저자와 차 한잔] 사교육 현장 보고서 ‘대한민국의 미친 엄마들’ 펴낸 정찬용씨

    흔들리다 못해 붕괴의 낙담까지 요란한 공교육. 위기의 공교육을 메워 활개 치는 사교육. 그 틈새에서 ‘성공 신화’의 꿈을 먹고 맴도는 학생과 학부모. 이제 그 모순과 망국의 교육 부조리를 끊어야 하며 엄마들이 가장 먼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육 게릴라’가 있다. 지난 1999년 베스트셀러 ‘영어공부 절대 하지 마라’로 센세이션을 불렀던 정찬용(58)씨. 그가 ‘내 자식도 빠질 수 없다’며 대책 없는 공부 대열에 휩쓸려 방황하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에게 방부제 같은 쓴소리를 쏟아낸 책 ‘대한민국의 미친 엄마들’(들녘)을 세상에 내놓아 주목된다. 출간에 맞춰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저 같은 비전문가가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겸손 섞인 한탄으로 인사를 건넨 정씨는 작심한듯 불만을 쏟아냈다. “이 땅의 교육과 관련한 모든 이들은 비틀린 교육의 심각함을 다 알고 있어요. 문제는 아무도 나서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쌓인 것이 많을까. 할 말이 그토록 많은 것일까. “교육 행정 당국은 물론, 교육 전문가, 사교육 담당자들이 기득권을 놓치 않으려는 게 큰 이유입니다. 시스템을 바꿔서 자신들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원치 않는 것이지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왜곡의 교육 시스템이라면 담당자들이 촛불시위라도 해서 바로잡아야 할텐데, 그렇지 않아요.” 정씨는 서울대 조경학과를 나와 독일 도르트문트대를 거쳐 하노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조경학자이다. 대학원을 마치고 귀국해 에버랜드 테마파크와 공원 설계 프로젝트를 마칠 무렵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제의 한국 교육에 눈뜨게 됐다고 한다. “처음 운동장 수업을 참관했는데 제식교육부터 시키는 것이었어요. 과제도 제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과 똑같은 수준인 걸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학교와 교사들에게 개선을 요구하고 부탁도 여러 번 했지만 ‘백년하청’의 무반응에 더 놀랐단다. 그래서 지인들과 함께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작은 대안학교를 세워 아들을 보냈고 직접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인터넷 강연을 하면서 만난 학부모들로부터 곪을대로 곪은 한국의 교육 실상을 알게 됐다고 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인생이란 도식적인 인식이 지배적이지요. 일류대학 입학 정원은 극소수로 한정돼 있어요. 공교육의 주체인 학교와 교사들은 진실을 말하지만 사교육 주체인 학원과 강사들은 그렇지 못해요. 어떻게든 이득을 남겨야 하는 학원, 강사들이 인성교육에 신경을 쓸까요?” 진실보다는 학부모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어 허황된 꿈을 부풀리고 학부모, 특히 엄마들이 그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기 일쑤라는 것이다. “욕먹기를 각오하고 책을 썼다”는 저자는 인터뷰 도중 이 말을 자주 했다. “‘일부 몰지각한’이 아니라 ‘대다수의 지각 있는’ 이들이 더 문제입니다.” 알 만하고 많이 가진 이들이 더 극성이다. 서울 대치동 학생 대상의 한 조사에서 100%가 사교육을 받는다는 결과가 실린 기사를 보여준다. 그러면 왜 ‘미친 엄마’들이 틀을 깨야 할까. 남들은 다 사교육시키는데 나만 빠지면 손해 보는 것 아닐까. 저자는 그 대목에서 정색하고 말한다. “물론 왜곡된 교육의 1차적인 책임은 당국과 교육 전문가들이 져야지요. 하지만 가장 학생들과 밀접한 관계자는 엄마입니다. 책임질 사람들이 발을 빼는 상황에서 엄마들이 입시 공부가 아닌 사람답게 사는 교육을 요구하는 행동에 적극 나선다면 당국이나, 전문가, 사교육계도 어쩔 수 없이 방향 전환을 하게 될 것이란 믿음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처음 낳았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며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작은 우주입니다. 존중과 인정,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그들은 지구라는 큰 우주 속 한 부분으로 잘 성장합니다. 엄마들이 아이에게 자신의 꿈과 욕망, 자존심, 심지어 과거의 복수심까지 투영시켜 사는 건 아닌지요.” 김성호 선임기자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21] 주꾸미 낚싯배 분주한 충청수군의 본거지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21] 주꾸미 낚싯배 분주한 충청수군의 본거지

     충청수영이란 충청도수군절도사영(忠淸道水軍節度使營)의 줄임말이다. 충청도 수군을 지휘하던 절도사가 머물던 본영이라는 뜻이다. 충청수군의 관할해역은 아산만에서 금강 하구의 장항만에 이른디. 해안선의 길이는 992.8㎞에 이르고 점점이 이어진 섬은 250개나 된다. 충청수영은 관할 수역의 중간 지점인 지금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일대에 있었다. 충청수군의 군항(軍港)이었던 오천항은 지금 가을 주꾸미철을 맞아 낚싯배의 입출항으로 분주하다.  충청수역은 고려시대 이후 호남평야를 비롯한 남부 평야지대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개성이나 한양으로 운반하는 조운선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당시 왜구가 해안은 물론 내륙까지 침범했던 것도 쌀을 비롯한 양곡 탈취가 가장 큰 목적이었던 만큼 수군의 역할은 중요했다. 조선이 고려 군제(軍制)를 발전시켜 오천에 충청수영을 설치한 것은 세종 29년(1447)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의 군선은 142척, 병력은 8414명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인 선조 29년(1596)에는 충청수사 최호가 이끄는 충청수군이 남해 한산도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기도 했다. 당시 충청수영은 해전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울창한 안면도의 소나무를 벌채해 삼도수군의 군선(軍船)을 건조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충청수영은 고종 33년(1896) 폐영(廢營)됐다.  충청수영성은 충남 해안과 안면도·원산도로 둘러싸인 천수만에서도 좁은 내만(內灣)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앞바다의 수심이 깊은 데다 서해안의 다른 포구와는 달리 심한 조수간만의 차이에도 배가 드나드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주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의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려 지금 보아도 천혜의 요새다. 석성(石城)인 충청수영성은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둘레 3174척, 높이 11척 규모로 중종 4년(1509)부터 16년 동안에 걸쳐 쌓았다.  충청수영은 봉수를 이용해 먼바다를 포함한 관할 수역의 움직임을 신속하게 파악했다. 어청도 봉수에서 외연도, 녹도, 원산도를 거쳐 충청수영성 남쪽 1.2㎞ 지점에 있는 망해정 봉수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 시스템이다.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관할수역의 지형적 특징을 감안해 충청수영이 자체적으로 운영한 이른바 권설봉수(權設烽燧)는 다른 수영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왜구 방어를 목적으로 설치된 충청수영이지만 병자호란 이후 수도권 방어가 가장 중요한 군사적 목표로 떠오르면서 본영의 이전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수영성의 위치가 왜구를 방어하고 조운선의 안전한 운항을 도모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비상사태 발생의 경우 왕실과 조정의 피난처인 강화도 일대를 보호하는 데는 적절치 않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조 3년(1779)부터 충청수사의 지휘소인 행영(行營)을 태안반도 서쪽 끝인 안흥으로 옮겨 10년 남짓 운영하기도 했다.  충청수영성의 현재 모습에서 전성기의 위용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천수만과 어우러지는 뛰어난 경관으로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잦았던 누각 영보정(永保亭)의 복원이 최근 시작됐고, 성벽을 되살리기 위한 발굴조사도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충청수영의 형장인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는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부 다섯 명이 순교한 현장이기도 하다. 차근차근 제모습 찾기에 노력한다면 지역 최고의 역사관광 자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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