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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換亂 무죄선고] 이모저모

    20일 오전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 이호원(李鎬元) 부장판사가 서울지법 311호 중법정에서 20여분간에 걸쳐 전 경제부총리 강경식(姜慶植)피고인과 전청와대 경제수석 김인호(金仁浩)피고인에 대한 환란 책임 사건의 판결문을읽어내려가는 동안 검찰은 시종 침통한 표정이었다.피고인의 가족 등 일부방청객들은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법정에는 강·김피고인의가족과 친지,취재진을 비롯한 관계자 100여명이 재판부의 최종 판단에 귀를기울였다. ■강·김피고인은 재판 시작 30여분 전에 미리 공판정에 나와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서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긴장감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강피고인은 환란 당시의 상황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강피고인은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환란에 대한 근본적인원인 규명이 없는 구조조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구조조정에 생산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 책임자로서 경험을 담은책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검찰측 대표로 공판에 참석한 이승구(李承玖) 대검 중수1과장은 대부분의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굳은 표정으로기록에만 열중했다.이과장은 공판이 끝나자 취재진의 질문을 뒤로 한 채 서둘러 법정을 빠져나갔다.재판 초기에는 “경제사를 다시 쓴다는 심정으로 수사에 임했다”며 비장감마저 보였으나 그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7월10일부터 1년3개월 동안 계속된 환란사건 재판은 갖가지 진기록을남겼다. 모두 27차례 열린 공판에 증인 50명이 출석,12·12,5·18 공판의 증인 41명을 앞질렀다.재판 기록도 12·12,5·18 사건의 18만여쪽에는 못미치지만 수사기록 24권,공판기록 9권을 합쳐 모두 4만여쪽에 이르는 분량을 남겼다.변호인측 최후 변론 요지서가 188쪽,판결문도 151쪽에 이르렀다. ■이번 사건을 맡았던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 이호원 부장판사를 비롯한 담당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 대한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면서 “판사는 판결로만 얘기할 뿐”이라고 답했다.그러나 재판부는 이달 초 이미 합의과정을 거쳐 직무유기 혐의 부분은 무죄라는 데 의견을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재판은 서울지법의 다른 판사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한 판사는“직무유기 혐의 부분에 대한 무죄 선고는 지금까지의 대법원 판례로 볼 때예상된 결과였지만 국민들이나 언론이 이런 사정을 이해해주지 않고 법원에화살을 돌릴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상록 김재천기자 myzodan@
  • 파행 치닫는‘옷로비’조사

    옷로비 의혹 사건 진상조사가 파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회 법사위는 진상조사 이틀째인 19일 경찰청과 서울지검에 대한 문서검증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해당기관의 거부로 무산됐다. 경찰청 문서검증은 초반부터 전 사직동팀장 최광식(崔光植) 과장의 출석여부와 내사자료 공개여부를 놓고 여야간 설전이 벌어져 정회를 거듭하는 등 난항을 겪었다. 안상수(安商守)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직동팀은 청장의 지휘없이바로 청와대로 보고하기 때문에 최과장의 출석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 조순형(趙舜衡) 의원 등 일부 여당의원들도 동조했다. 반면 국민회의 박찬주(朴燦柱) 의원은 “이번 조사는 국정조사나 국정감사와는 구별되는 상임위활동으로 한정해야 한다”면서 “최과장의 출석여부는경찰청장의 재량권”이라고 반박했다.한영애(韓英愛) 의원도 야당의 주장을“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김광식(金光植) 경찰청장은 “이미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됐고 사건관련재판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며 내사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김청장은 “청와대에 제출한 결과보고서는 사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야당의원들은 경찰청 자료공개가 끝내 무산되자 일방적으로 퇴장했고,목요상(睦堯相) 위원장과 여당 의원들만이 서울지검을 방문했다. 서울지검 문서검증은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임휘윤(任彙潤) 지검장도 “사생활 침해와 재판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며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했다. 한편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이날 “신동아그룹 최회장 부인 이형자(李馨子)씨가 이모장관 부인 차명계좌에 돈을 입금했다”는 등 또다른 로비의혹을제기했다. 박준석기자 pjs@
  • ‘파업유도’ ‘옷로비’ 국정조사 본격 착수

    국회 ‘조폐공사 파업유도 국정조사특위’는 19일 조폐공사 본사 및 옥천조폐창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섬으로써 본격적인 국정조사 활동에 착수했다.또국회 법사위는 ‘옷 로비’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기록 검증을 위해 경찰청과서울지검을 방문,이틀째 조사활동을 했다. 그러나 김광식(金光植)경찰청장이수사기록 열람을 거부, 오후에 있은 서울지검 문서 검증작업은 여당 단독으로 진행되는 등 파행을 겪었다.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국정조사특위 여야 의원들은 이날 현장조사에서 옥천조폐창 통·폐합과 결정과정의 합법성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묻고 관련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국회 법사위는 이날 경찰청을 방문,김청장을 출석시킨 가운데 사직동팀이지난 2월 실시한 ‘옷 로비’사건 내사자료와 청와대에 제출한 내사보고서열람을 요구했다. 박준석 주현진기자 pjs@
  • 李勳圭 특별수사본부장, 國調 참고인 신문 거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참고인으로 결정한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의특별수사본부장인 이훈규(李勳圭) 서울지검 특수1부장은 오는 27일부터 내달3일까지 실시될 국정조사 특위의 참고인 신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18일 밝혔다. 검찰은 재판에 계류된 사건의 수사기록을 공개한 전례가 없는 점 등을 들어파업유도 및 옷 로비 사건과 관련한 국회의 수사자료 공개 요구를 모두 거부키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병철기자 bcjoo@
  • 朱惠蘭씨·崔箕善시장 혐의시인

    경기은행 퇴출저지 로비사건에 연루돼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된 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 부부와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최기선(崔箕善)인천시장 등 6명에 대한 첫 공판이 16일 인천지법에서 제11형사부(재판장 李宇根부장판사)심리로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 임지사의 부인 주혜란(朱惠蘭)피고인은 서이석(徐利錫)전 경기은행장으로부터 은행퇴출 무마조로 2차례에 걸쳐 4억원을 받은 것 등 공소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최시장도 검찰의 직접신문에 공소사실을 모두 시인,재판부가 검찰에 구형을요청했으나 검찰이 이견을 제기해 구형이 연기됐다. 임지사는 변호인단이 검찰 수사기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신문 연기를 요청,인정신문만 이뤄졌다. 한편 서 전행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영우(李映雨)피고인은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은행퇴출 저지나 취업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며 공소사실을 일부 부인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9월 6일 오후 2시 속개된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
  • 김현철씨 재상고 취하

    검찰은 27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가 26일 재상고 취하서를 대법원에 제출,형이 확정됨에 따라 재수감 절차에 들어갔다.현철씨의 잔여 형기는 1년6개월이다. 대검은 이날 대법원으로부터 현철씨의 판결문 정본과 수사기록 일체를 넘겨받아 2∼3일의 검토를 거쳐 현철씨의 자택(서울 종로구 구기동) 관할인 서울지검에 형 집행지휘를 내릴 방침이다. 이에 따라 서울지검은 이르면 이번 주말이나 늦어도 다음 주초 현철씨에게7∼10일 이내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발부해 교도소에 재수감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소환통보는 3차까지 가능하고 3차 소환에 불응할 경우 서울지검 검사가 형집행장을 들고 구인절차에 들어간다.그러나 현철씨가 소환에 불응하고이 기간중 8·15특사에 포함될 경우 재수감되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임병선기자 bsnim@
  • 세관 마약밀수단속 ‘유명무실’

    세관의 마약밀수범 단속이 겉돌고 있다. 세관 소속 마약수사관들의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제도 자체가 수사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전국에 있는 세관은 모두 31곳으로 수사권을 가진 수사관은 전체 세관 직원 3,975명의 10%에도 못미치는 250명에 불과하다.더구나 27곳의 수사관들은일반 밀수사건을 수사하는 조사과에 소속돼 마약밀수사건을 함께 맡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 마약수사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서울·김포·인천·부산세관 등 4곳만 특별조사과(계)를 따로 두고 35명이마약수사를 전담하고 있다.일반 밀수사범은 줄어드는 반면 마약사범은 늘고있어 세관 마약수사관은 단속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6월까지 전국 세관에서 적발된 마약밀수는 모두 11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6건보다 두배 이상 늘었다. 세관의 마약수사관이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범위가 전국의 공항·항만으로 제한돼 있는 점도 마약수사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수원세관의 경우 항만도 공항도 없는 곳이라 수사 인력은 있지만 독자적 활동은 거의 못하고 있다. 김포세관에서 마약수사를 전담하는 수사관의 관할지역은 CIQ(보세구역)를포함해 공항으로 한정돼 있다.따라서 마약밀수범이 마약을 팔기 위해 공항을 빠져나가면 독자적으로 수사를 할 수 없다.검찰과 합동수사반을 편성,지휘를 받아야 한다.반면 일반 밀수범을 단속하는 수사관은 독자적으로 수사를할 수 있다. 해외 마약조직에 대한 정보가 마약밀수범 단속에 관건이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공항에서 마약밀수범을 검거하면 검찰로 수사기록과 신병을곧바로 넘기기 때문에 배후를 캐는 등의 후속 수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성수기자 sskim@
  • 醫師 병무비리 무더기 적발

    병역 대상 치·의과대학 졸업자나 전문의들이 신검 담당 군의관들에게 뇌물을 주고 병역면제나 공중보건의 판정을 받았다가 군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뇌물액수는 500만∼5,000만원이다. 국방부 검찰부(부장검사 高奭대령)는 23일 이같은 병무비리로 병역을 면제받은 14명과 공중보건의 판정을 받은 8명 등 의사 22명을 적발,사건기록을대검찰청에 넘겼다고 밝혔다. 군검찰은 또 군의관과 짜고 의병전역하면서 질병등급을 올려 전·공상자 판정을 받은 뒤 보훈혜택을 받아온 12명 등 의병전역자 52명을 비롯,병역면제자 78명,공익근무요원 판정자 24명,보훈신검 청탁자 3명 등 병무비리 관련자 157명의 수사기록도 검찰에 넘겼다.이들에게 뇌물을 받은 군의관은 모두 12명으로 이들 중 일부는 지난번 발표된 1·2차 병무비리 수사와 관련,이미 기소된 상태다. 군검찰은 이번 수사결과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 지방병무청과 군병원에서 95년부터 98년 사이에 저질러진 병무비리라고 밝혔다. 한편 군검찰은 전국적으로 340여건의 병무비리와 10∼20여건의 군치·의신검비리 혐의자를 추가로 포착,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인철기자 ickim@
  • 경찰, 申씨 3번 더 놓치고 ‘시침뚝’

    경찰이 신창원의 도피행적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경찰에 불리한 내용 일부를 제외한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경찰 특별조사팀의 신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신은 이미 밝혀진 것 외에도 경찰에 3번 더 적발돼 범칙금고지서를 발급받았으나 경찰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신은 97년 2월19일 충남 천안시 다가동 김모씨(33)의 집에 침입,현금 3만원과 함께 훔친 김씨의 면허증 등 신분증을 3차례에 걸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은 훔친 포텐샤승용차에 다른 번호판을 붙이고 다니다 같은해 3월29일 오후 1시15분쯤 정읍시 옹동면 용호리 화신공원묘지 앞에서 입구 간판을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켰으나 출동한 경찰에 훔친 면허증을 제시,김씨 행세를 하며 범칙금고지서를 받았다. 4월 초에도 전북 김제시 원평동 모저수지 인근에서 동거녀 전모씨를 태우고 가던 중 택시와 충돌했으나 피해자와 300만원에 합의한 뒤 경찰관으로부터범칙금고지서를 교부받았다. 같은해 7월26일에도 충남 천안시 북면 연춘리에서 역시 전씨와 함께 충북쌍곡계곡으로 피서를 갔다오다 신호위반으로 경찰에 단속됐으나 이 면허증을 제시,범칙금고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경찰 특별조사팀은 신의 행적을 공개하면서 공원묘지 앞에서 간판을 들이받은 적이 있다는 정도의 설명만 했으며 나머지 2차례에 대해서는 단속에 걸렸었다는 내용을 아예 빼버렸다. 부산 이기철 강원식기자 chuli@
  • 국방부 특별조사단 가동… 軍내 의문사 철저조사

    국방부는 5일 군내 의문사 조사에 대한 유족들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육군 소장을 단장으로 한 국방부 특별조사단을 구성,이날부터 가동한다고 밝혔다. 특조단은 16명의 군 수사전문가와 유족대표 등이 추천하는 국내외 법의학자,전·현직 경찰 수사요원 등을 자문위원으로 위촉, 육·해·공군의 조사 진행을 지도·관리·감독하게 된다. 육·해·공군은 지난 3월부터 인사참모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조사단을구성,지난 67년 이후 군복무 중 숨졌으나 사인규명이 불명확한 132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현지부대 방문과 수사기록 재검토,사망 당시 부대 근무자 및 군지휘관 등 참고인 조사 등을 해왔다. 김인철기자 ickim@
  • ‘씨랜드’ 수사 이모저모

    ■화성 씨랜드 화재 희생자 유가족들은 4일 오전 화성 마도초등학교에 마련된 고(故)김영재 교사의 빈소를 찾아 졸지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김교사의 유족과 슬픔을 나눴다. 김교사의 아내 최영란씨(34)가 두딸 영경(11)·효경양(9)에게 “숨진 유치원생들의 엄마·아빠들”이라고 유가족들을 소개하자 두딸은 다시 참았던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숙여 인사했다. 가현·나현 두딸을 한꺼번에 잃은 유족대표 고석씨는 김교사의 두딸에게 “우리 가현·나현이 몫까지 열심히 살아달라”며 울먹였다.한 유가족은 “저런 분이 한분만 더 계셨어도 우리 애들이 불 속에서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텐데…”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에 앞서 유족들은 화성경찰서를 방문,우제항(禹濟恒)서장 등 수사관계자들과 면담했다.유족들은 면담에서 구속된 소망유치원장 천경자씨(36·여) 등의 수사기록과 화인(火因)에 관한 조사내용 공개를 요구했다.우서장으로부터 “수사중인 사건기록을 공개하는 것은 불법이며 변호사를 통한다면 기록열람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되돌아갔다. ■씨랜드 건물설계 및 용도변경 과정에서 화성군청 등 공무원들의 불법행위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검찰은 이날 “화성군청 사회복지과장 등 6명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하는 등 공무원들의 혐의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며 “이들의 구체적 불법행위를 밝히는 쪽으로 수사방향을 잡고 있다”고밝혔다. 검찰은 “수련원장 박재천씨(40)와 화성군 공무원과의 유착관계에 대한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고 밝혀 관련 공무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가 급진전되고 있음을 내비쳤다.검찰은 그러나 “김일수(金日秀)화성군수가 씨랜드사용승인·허가 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따라서김군수에 대한 소환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서장은 앞서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자청,김군수를 금명간 소환하겠다고밝혀 이번 사건과 김군수 관련 단서를 찾아냈음을 시사.우서장의 발표는 확실한 혐의 포착 전까지는 철저한 보안 속에 수사를 진행해온 공무원 수사관행과는 다른 것이어서 관련 공무원의 ‘폭로성 진술’이나 제보가있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
  • 柳지사, ‘李총재 損賠訴’ 첫공판

    고관집 털이범 김강룡(金江龍)씨 사건과 관련,유종근(柳鍾根)전북지사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안택수(安澤秀)대변인 등 4명을 상대로 낸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첫 공판이 8일 서울지법 민사합의14부(재판장 金龍均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공판에서 한나라당측 변호인단은 유지사에 대한 본인 신문과 절도범 김씨에 대한 증인신문,유지사 서울 관사의 등기서류 송부 등을 신청했으나 재판부는 “민사소송과의 관련성을 서면으로 제출하라”며 채택을 보류했다.재판부는 그러나 양측 변호인단이 낸 김씨에 대한 인천지검 수사기록과 이총재 등에 대한 형사고소사건의 서울지검 수사기록 신청은 모두 받아들였다. 유지사는 지난 4월 “한나라당측에서 본인이 지난 3월 12만달러를 도둑맞았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됐다”면서 이총재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하는 한편 이들을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총풍 법정’에 고백서 새변수

    고문 공방으로 치닫던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이 지난 16일 ‘북풍(北風)모의’를 시인하는 韓成基피고인의 고백서 제출 이후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첫 공판부터 지난 15일 9차 공판까지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던 韓피고인이 처음으로 북풍 모의사실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韓피고인의 고백서를 검토한 뒤 “재판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어느 때보다 유죄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특히 韓피고인이 북측에 총격을 요청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확보되고 고백서가 제출된 만큼 더이상 고문공방으로 흐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다만 재판부가 고백서를 증거로 인정할 지는 불투명하다.韓피고인의 법정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던 것도 문제다. 검찰은 고백서가 정식절차를 거쳐 수사기록에 첨가된 이상 재판부의 혐의적용과 양형기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변호인단측은 “韓피고인의 고백서가 검찰의 회유·협박에 의해 작성됐다”면서 고백서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鄭寅鳳변호사는18일 韓피고인을 접견한 뒤 “韓피고인이 ‘검찰의 회유·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고백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韓피고인이 같은 혐의로 기소됐던 吳靜恩·張錫重피고인이 보석으로 풀려난 뒤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검찰의 회유·협박으로 고백서를 작성한 이상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때 변호인 사퇴를 고려했던 변호인단은 태도를 바꿔 오는 29일 열릴 10차 공판때 고백서의 제출경위와 검찰의 회유·협박 부분을 집중적으로 신문한다는 계획이다.이때 韓피고인이 어떻게 진술하느냐에 따라 검찰과 변호인단의 명암이 크게 엇갈릴 전망이다.
  • 국민일보 邊賢明기자 執猶

    서울지법 동부지원 형사21단독(崔喆부장판사)은 9일 검사실에 들어가 컴퓨터에서 수사기록을 빼내려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1년6월을 구형받은국민일보 기자 邊賢明피고인(28)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金 중사 정치공작 수행설은 억측”/‘金勳 중위’軍수사 이모저모

    ◎김동진 전 국방·전 기무사령관도 수사키로 지난 9일 金勳 중위 사망사건 등을 재수사하기 위해 전격 발족한 국방부 특별 합동조사단(단장 楊寅穆 중장)은 15일 출범한지 6일,金榮勳 중사(구속)의 신병과 수사기록을 넘겨받은지 이틀이 지났으나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2월 전 북한군 상위 변용관씨의 귀순 당시 林載文 기무사령관과 金東鎭 국방부장관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북한군 접촉 사실을 알고도 본격적으로 수사하지 않은 것도 조사하느냐는 질문에 ‘성역 없이 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고 수사하라’고 지시한 千容宅 장관의 당부에 유의해달라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林 전 기무사령관은 “변 상위가 진술한 경비병의 북한접촉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기무사요원의 JSA 상주가 필요하다고 판단,당시 金東鎭 장관에게 이를 건의했으며 金 장관은 유엔사령관에게 이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金榮勳 중사에 대한 기무사와 특조단의 재수사에서도 혐의점이 규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자 일부 군 고위 관계자들은 ‘군 헌병대와 육본 검찰부의 1·2차 수사가 그렇게 허술했을 리 없다’며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金榮勳 중사가 우리측 특수요원으로서 모종의 정치공작을 수행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 “金중사와 전역병 등 참고인들에 대한 조사결과 金중사는 북한군과 만났거나 물건을 받은 뒤 소대원들에게 자랑삼아 말하는 등 자신의 모든 행위를 주변 사람들에게 과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있을 수 없는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 ‘銃風’ 관련 구속 韓成基씨 계좌/대선전후 출처 불명 1억 입금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韓成基씨(39)의 예금계좌에 출처가 불분명한 1억2,000만원이 대선을 전후해 입금된 사실이 밝혀졌다. 27일 韓씨의 변호인을 통해 공개된 검찰수사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대선 직후인 올해 1월까지 韓씨의 계좌에는 1,000만원∼2,700만원씩 모두 8차례에 걸쳐 1억2,000만원이 입금됐다. 시기별로는 지난해 8월부터 대선 전까지 5차례에 걸쳐 5,900만원,대선 이후 올 1월까지 3차례에 걸쳐 6,100만원이 입금됐다.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 관계자는 “1억300만원은 현금,나머지 1,700만원은 수표로 입금돼 수표를 추적했지만 총격요청 사건과 관련된 돈은 아니었다”면서 “韓씨가 입을 다물고 있어 현금 출처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韓씨가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으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5,000만원과 2,000만원을 받아 이 가운데 2,000만원을 챙기고 나머지는 吳靜恩씨 등에게 건넸다”고 발표했었다.
  • 수사기록 절취혐의 구속/국민일보 기자 석방

    서울지검 동부지청은 지난 24일 수사진행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검사방에 들어가 수사기록을 빼내려다 절도미수와 건조물 침입 등 혐의로 구속된 국민일보 邊賢明 기자(26)를 구속취소 결정으로 석방했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수사기록 절취기도/국민일보 기자 구속

    서울지검 동부지청(지청장 金大雄)은 16일 검찰의 수사진행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검사방에 들어가 컴퓨터에 입력된 수사기록을 빼내려던 국민일보 사회부 기자 邊賢明씨(26)를 절도미수 및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이에 앞서 서울지법 동부지원 李仁揆 영장전담판사는 이날 오전 11시30분쯤부터 20여분간 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3시간30여분 만에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며 邊씨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국민일보측은 邊씨의 구속과 관련 “邊기자는 검찰에 자진 출두한데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다”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을 갖고 취재하다 발생한 사건임을 고려하면 구속수사는 부당하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는 이날 각각 성명을 내고 “邊기자의 구속은 검찰권을 남용한 중대한 언론활동 침해사건”이라며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 검찰 정·관계 인사 수사 어떻게/경성로비 물증 나와야 손댄다

    ◎계좌추적 등서 혐의없어 애로/언제든 재개 뜻… 일단 잠행할듯 대전 경성그룹의 대 정치권 로비에 대한 검찰수사가 당분간 수면 밑으로 잠복하든지 장기화될 전망이다. 검찰이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관련 정치인들의 금품수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는데다 경성 관계자들도 금품제공을 한사코 부인해 정치인들을 소환·조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수사중단의 뜻을 공표한 셈이다. 다만 이날부터 시작된 이 사건 공판에서 해당 정치인들의 금품수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진술이나 물증이 나오면 언제라도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경성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고 주장한 여당과 야당의 전·현직 정치인은 모두 12명. 국민회의의 金捧鎬 安東善 趙洪奎 崔在昇 의원,鄭大哲·李龍熙 부총재,자민련 金龍煥 李元範 金範明 李良熙 姜昌熙 의원,국민신당 徐錫宰 의원 등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중 국민회의 崔의원과 과학기술부장관인 자민련 姜의원은 전혀 언급이 없었다. 이 두명은 한나라당이 관련됐다는 소문을퍼뜨림으로써 최대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10명은 수사기록에 이름이 언급돼 있다. 이들은 경성그룹 李載學 사장,한국부동산신탁 李載國 전 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최소한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회의 鄭부총재는 경성측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으나 뇌물 및 정치자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경성그룹 李사장과 동명이인인 보원건설 李재학 사장이 지난해 8월쯤 평소 잘알고 지내던 鄭부총재가 돈이 쪼들린다고 하자 경성측으로부터 로비 명목으로 받은 5,000만원 가운데 3,000만원을 주었다는 것. 경성측도 이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기록에는 이들 정치인 외에 金佑錫 전 내무장관,李桓均 전 건교부장관,金建浩 전 건교부차관,裵在昱 전 청와대비서관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그러나 경성측은 이들 정치인과 관리들에게 한국부동산신탁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직·간접 청탁을 했을 뿐 금품을 제공한 사실은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검찰도 계좌 추적을 했지만 돈을 건넸다는 증거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文永晧 서울지검 특수1부장은 “금품거래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름이 거명됐다고 무작정 정치인들을 소환할 수 없었다”면서 “돈이 건네졌다는 물증이 나와야 수사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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