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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5미술의 해/「천안 횃불대제전」 개막행사

    ◎조직위,새달 16일 세종회관서 「미술의 해」 선포식/작가 12명 작품세계 조명… 총 157개행사 확정/국토미화작업 추진… 「한민족 미술전」도 열어 95년 「미술의 해」사업계획이 확정됐다.미술의 해 조직위원회(위원장 이대원)가 22일 발표한 「미술의 해」사업은 학술사업 4건,미술관계법과 제도제정및 개정사업 3건,이벤트사업 9건,전시사업 16건 등 중앙 32개 행사와 지역 1백25개 행사 등 총 1백57개 행사다. 이들 행사는 내년 1월16일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의 「미술의 해」선포식에 이어 2월28일 천안삼거리공원에서의 미술횃불대제전을 개막행사로 차례로 추진된다.특히 「미술의 해」선포식에서는 식이 끝난 직후 동·서양화·조각·공예·서예등 5개 분야에서 월별로 선정한 한국의 근·현대작가 12명의 작품세계를 영상으로 제작,상영하며 개막행사에서는 「미술의 해」사업시작을 알리는 횃불점화식과 행진,시민과 만남전,설치대제전 등 행위예술을 벌일 예정이다. 「미술의 해」를 보다 뜻깊게 하기 위해 조직위가 마련한 이벤트사업 가운데는 ▲미술유적지및 작고작가 화비제작 ▲미술정보센터 설립,발족 ▲영상아트자료 제작을 통한 국토미화작업 추진 ▲유명미술인과 패션디자이너의 연계패션쇼 ▲미술의 해 기념우표발행 ▲무명작가발굴,진혼제 등이 있다.또 노수현·김환기 등 월별작가로 선정한 근·현대작가 12명의 작품세계를 집중재조명하는 한편 세계 저명미술관과 미술관계 명승지를 소개하는 작업도 펼치기로 했다. 전시사업으로는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줄 「오늘의 한국미술전」이 5월중 예술의 전당에서,광복50주년 「한국미술 30인전」이 11월중 파리시립미술관에서,비디오아트·영상미술 등 「테마별 현대미술전」이 11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진다.내년 광복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각국에 거주하는 한민족 작가의 작품을 초대,전시하는 「한민족미술전」도 마련돼 있다.한민족의 문화적 얼을 되살리기 위한 야심찬 계획이다.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을 기념하는 「이탈리아현대미술전」(11월중),「전국휘호대회」(8월중),「한·중수묵화교류전」(5월중),「전국공예품 디자인개발전시및 워크숍」(10월중),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마련한 「디자인 40년전」 등도 굵직한 행사로 추진된다. 이밖에 학술행사로는 국내외 저명작가가 참여하는 「미술세미나」와 세계현대미술의 경향을 소개하는 「국제심포지엄」,전국순회 「미술강연」등이,지역사업으로는 「광주 비엔날레」,「대구 미술제」,「제1회 제주 비엔날레」,「해운대 바다미술제」,「강원 야외조각공원설립」 등이 추진된다. 박광진 집행위원장은 『사업수립이 다소 늦어졌으나 사업추진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며 『다만 행사를 보다 알차게 추진키 위해 앞으로 더욱 보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한국 고미술품/소더비 경매장서 인기 급등

    ◎출품 134점중 하루 85점 220만$ 팔려/조선시대 백자 최고가로 2억원에 낙찰 미술품 경매의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뉴욕 경매장에서 한국미술품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지난 3일 뉴욕 소더비경매장에서 열린 한국미술품 경매에서는 출품된 1백34점 가운데 85점,2백20만달러어치가 팔렸으며 특히 18∼19세기 조선시대 작품인 붉은색 연꽃줄기무늬의 진사연화문호백자가 25만5천5백달러(한화 약2억원)에 낙찰되는등 가격면에서도 강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최고가를 기록한 진사연화문호백자는 한 유럽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익명의 아시아고객에게 예정가 1만5천∼2만달러보다 열배이상이나 높은 가격에 팔려 경매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날 경매에서는 또 지질학자인 미국인 데이비드 조트 부부가 30여년전 한국에서 수집한 고미술품이 관심을 끌었는데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그린 열폭짜리 묵란도병풍이 13만4천5백달러에 팔렸고 18∼19세기 작품인 군호도가 예정가 1만∼1만5천달러를 수배이상 상회하는 9만2천7백달러에 낙찰됐다. 또한 19세기 조선시대 백자인 청화누각문병이 16만2천달러,고려시대 청자인 역상감운학문대접이 7만7백달러,12세기 청자제품인 철채음각문유병이 5만5천2백달러에 팔렸고 미국인 개인수집가에게 돌아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거북이껍질 칼집의 검(귀갑초검)은 4만8천3백달러에 낙찰됐다. 그밖에 현대화가들에 대한 인기도 높아 박수근 화백의 유화 「어머니와 아이」(15.2㎝×9.2㎝)가 9만5백달러,청전 이상범의 수묵화 「풍경」(49.5㎝×134.6㎝)은 6만8천5백달러,김환기 화백의 추상화 「무제」(54.6㎝×43.8㎝)는 4만6천달러를 기록했다. 뉴욕 소더비의 수잔 미첼 한국·일본미술담당 부사장은 이날 경매결과에 대해 『조트의 컬렉션은 수준높은 작품이어서 예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낙찰됐으며 기타 개인소장가들이 내놓은 품목들도 특히 자기와 청자의 인기가 높아 만족할만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91년부터 단독경매를 시작한 한국미술품은 뉴욕의 양대 경매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에 의해 매년 두세차례씩 경쟁적으로 경매에 올려지고 있으며 91년이래 뉴욕경매에서 팔린 한국미술품은 크리스티에서 5백여점,소더비에서 3백여점에 달하며 낙찰가격도 3천만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가운데는 91년 소더비경매에서 1백76만달러에 낙찰돼 경매계를 놀라게 했던 고려불화를 비롯,지난 4월 크리스티경매에서 3백8만달러로 세계 도자기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조선청화백자접시등이 포함돼 있다.
  • 한국화의 다양한 면모 선보인다/「한국화의 오늘과 내일 94전」

    ◎17명 40여점 출품 한국화란 무엇인가.단순히 전통 문인화풍의 동양화만을 한국화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한국적인 소재의 한국그림을 모두 한국화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인가. 동·서양화의 구별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처럼 한국화의 명쾌한 정의도 갈 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다양성과 다원화로 표현되는 요즘 미술풍토상 어찌보면 이런 질문은 무의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같은 의미에서 오는 7월2일부터 30일까지 워커힐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화의 오늘과 내일 94전」은 한국화의 현주소를 살피고 흐름을 짚어보는 볼거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6개대학 출신 17명이 모두 40점을 출품해 한국화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30대를 주축으로 한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란 점에서 흥미를 끈다. 참가 작가는 강구철 김광일 김덕용 김송열 김학곤 노경상 박성태 배성환 안석준 오숙환 왕형렬 유영렬 이성영 이은경 이종송 조용백 한정수등 17명. 이가운데 한지에 수묵담채풍경 「북한산 추경」을 내 놓은 안석준이나 「무등산 입석대」를 그린 노경상,수묵담채산수 「반천」을 그린 김송렬,수묵담채 「운암풍경」을 선보이는 김학곤등은 전통 산수화에 충실한 편. 반면 혼합재료를 사용하는 강구철이나 수묵작업을 보이는 김광일,장지에 먹 분채작업을 하는 유영렬은 추상적인 분위기의 서양화쪽에 가까운 화풍이다. 그런가하면 종이에 먹과 채색을 혼용한 배성환은 동서양화가 만나는 분위기를 전하며,광목에 먹 채색그림을 내 놓는 이종송의 작품은 수채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 “안견의 산수화” 7점 새로 공개

    ◎이양재씨,「청산백운도」등 진작주장… 학계 논란/기존학설/“「몽유도원도」가 유일한 작품”/일부학자/“철저히 검증… 진위규명 해야” 몽유도원도가 안견의 대표작이며 현존하는 유일한 진작이란 국내 학계의 안견론을 뒤집는 그림들이 공개됐다. 재야미술사연구가 이양재씨(40)와 중국미술품 수집가 이건환씨(50·우상헌대표)가 17일 공개한 「청산백운도」등 산수화 7점이 그것으로 모두 당대에 제작된 안견의 진작으로 추정되고있어 학계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개된 청산백운도는 가로 1백4㎝,세로 1백78㎝크기의 회견위에 호분과 석채를 써서 설채한 청록수묵산수도로 왼쪽 상단에는 「청산아아 백운유유」라는 제기와 함께 주경이란 서명및 「지곡안씨」란 낙관이 새겨져 있다.우측 하단에는 위쪽으로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4개의 수장인이 찍혀 있다. 이와함께 공개된 산수화는 도산전서등에 퇴계 이황이 안견의 산수화에 쓴 것으로 기록된 시의 분위기에 그대로 들어맞는 그림으로 6점 모두 가로 47.5㎝,세로 45.5㎝크기의 다듬이 장지위에 수묵으로 그려져있다. 이씨등 두사람은 이 가운데 청산백운도에 명기된 주경은 바로 안견의 별호이고 서체가 몽유도원도에 쓰여진 「지곡가도작」이란 안견의 서명 필적과 동일할뿐 아니라 주경이란 서명 하단에 「지곡안씨」라는 도장을 찍은 점을 들어 안견의 진작이라고 주장했다.또 우측하단에 찍힌 소장자들의 도장이 모두 당대 안견과 가까운 상류층을 암시하는 내용의 것들이어서 이 그림이 안견의 진작임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등은 이 그림과함께 공개한 산수화에 대해서도 이황이 제발한 시 구절이 산수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것들인만큼 기록에 전하는대로 안견의 산수화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내 안견론을 주도하고 있는 학자들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몽유도원도만이 안견의 화풍을 대표하는 유일한 진작」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번 기회에 명확한 검증을 거친 진위여부규명작업이 이뤄져야하며 이 그림들이 진작으로 판명될 경우 안견에 대한 재조명작업을 서둘러야한다』고 밝혔다.
  • 남북한 고가구 비교해 보세요/현대백화점 전시 판매전

    ◎뒤주·반닫이·약장 등 210점 선보여 남북한의 고가구와 골동품을 한자리에 모아 비교 전시및 판매하는 행사가 22일까지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지하1층에서 열리고 있다. 이 행사는 실향민들에게는 향수를 달래주고 예술품과 고가구·생필품 등을 비교 해 봄으로써 남북한간의 동질감을 찾도록 해 날로 희박해져 가는 통일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기 위한것이다. 18 80년에서 19 00년 사이에 북한의 평양 박천 개성 등에서 제작된 반닫이 등의 고가구 2백10여점과 골동품이 남한의 뒤주·반닫이·약장·머릿장등이 한자리에서 전시되고 있다.또 현재 북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나무 밥그릇·숟가락·다리미·스케이트·놋쇠 밥그릇·칼갈이 등 각종 생활소품및 북한산 수예품과 수채화 수묵화 유화와 보석돌로 제작한 보석화등도 함께 선보였다. 전시회에 반입된 북한상품들은 중국 연변 도문시의 박물관에서 수집한 고가구와 도문시 신하용 박물관장이 진품임을 인증한 예술품들로 고려무역 중국지점을 통해 들여온 것들이다. 북한의 고가구들은 남한의 가구들이 나무의 자연적인 결감을 강조하는데 반해 독특한 금속장식을 사용,투박하면서도 가구의 웅장함을 돋보이게 꾸민것이 특징.특히 북한산 반닫이는 의복이나 책 두루마기 등의 생활용품을 보관하는 목적외에도 윗판에 항아리나 이불을 쌓아두기도 한「다용도」가구라는 점이 특이하다.
  • 조선 청화백자 24억에 팔렸다/뉴욕 크리스티 경매소서

    ◎도자기 경매사상 세계최고가 기록 조선조초기인 15세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보상당초문 접시(지름 21.9㎝)가 세계도자기 경매사상 최고가인 3백8만달러(한화 24억6천만원)에 팔렸다고 뉴욕의 크리스티경매소가 28일 밝혔다. 크리스티경매소측은 지금까지 국제경매에 부쳐진 한국 예술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이 도자기가 지난 27일 전문가들의 당초 예상가격인 30만∼40만달러의 10배에 달하는 가격에 팔려 전세계의 도자기 경매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도자기가 형태가 좋고 짜임새가 우수할 뿐만 아니라 무늬도안이 매우 선명하고 드문 모양』이라면서 높이 평가했다. 지금까지 한국 미술품으로서 국제경매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것은 지난 91년 10월 1백76만달러(한화 14억원)에 낙찰됐던 14세기의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였다. 또한 도자기중 세계 최고경매가를 기록한 작품은 지난 92년 12월에 2백86만달러(한화 23억원)에 팔린 중국 명대의 항아리와 그 덮개였다. 경매소측은 이번에 팔린 도자기가 현존하는 같은 모양의 도자기 3점 가운데 하나로 나머지 2점은 일본 오사카(대판)의 동양도자기박물관과 야마가타(산형)현의 데와자쿠라박물관에 각각 소장돼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조선조 도자기가 사상최고시세로 팔려나간 것은 예술품경매시장에서 한국도자기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크리스티경매소는 설명했다. 이 당초문접시의 낙찰자 인적사항은 크리스티 경매장 관례에 따라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매장 주변에서는 한국인,일본인,또는 한국계 미국인 등 동양계일 것으로 추측했다. 이 경매품의 가격은 두 명의 전화응찰자가 경쟁하는 바람에 더욱 고가로 낙찰됐으며 세계 최고가를 기록하자 경매장의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번 경매에서 관심을 모았던 또 다른 작품은 15∼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 어문병으로 예상가격 8만∼10만달러였던 이 병은 일본인에게 18만9천달러에 팔렸다. 이날의 경매는 한국 미술품 단독 경매였으며 청자·백자·분청사기등 도자기와 금속공예품·수묵화와 현대회화로 박수근 도상봉 이응로 김흥수 이대원씨등의 작품 1백4점이 출품됐다. 현대화가들의 개수양 대부분 예상가를 웃도는 값에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 채색화 30년 결산전 개최/오랑자씨(인터뷰)

    ◎“한국적 소재로 새로이 변모”/꽃·잉어 그린 「전설」등 38점 선보여 『대학졸업반때의 국전 입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0년이 됐어요.나름대로 작품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됐는데…허무한 것같아요』 작품생활 30년을 결산하는 전시회를 26일부터 5월1일까지 서울갤러리에서 열고있는 채색화가 오랑자씨(51). 8년만의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엔 잉어와 꽃을 함께 그린 1백50호짜리 89년작품 「전설」을 비롯해 1백호이상 11점등 모두 38점을 선보이고 있다. 수묵산수에서 배운 기법을 채색화에 도입해 꼼꼼한 화풍을 일궈온 오씨는 색채와 형상의 섬세함으로 인해 감수성강한 사실주의 작가로 불려왔다. 국전 입선때의 초기부터 지난 80년까지 꽃과 새등을 은은한 서정으로 화면에 담았다면 그 이후엔 색채의 강렬한 느낌을 강조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한때 열대성 꽃등 강한 이미지의 형상에 심취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한국적인 소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가장 한국적인 소재가 가장 세계적인 소재라는 명제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우리 것이 좋아지는게 신기해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신의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는 오씨는 따라서 이번 전시회에 상당수 내놓은 한국적인 소재의 작품들을 또하나의 새로운 변모로 주의깊게 봐달라고 주문한다.
  • 동서양 넘나든 화풍 고암 유작전

    ◎29일부터 호암갤러리… “이응로화백 5주기맞아 동백림사건 사실상 해금”/58∼89년 파리체류때 작품 104점 골라/수묵∼문자추상∼군상 기법변천 한눈에 사군자와 수묵추상,콜라주 그리고 문자추상등 동양화와 서양화의 독특한 접목을 시도한 고암 이응로화백이 타계한지도 벌써 5년째다. 고 이화백은 서구에서 동양화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킨 장본인으로 작품속에서 꾸준히 새로움을 갈구했던 실험성 짙은 작가. 그러나 예술세계가 다양했던만큼이나 개인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아 동백림사건으로 인한 2년간의 옥살이와 국내 화랑들로부터의 배척,그리고 입국거부등 예술가로서의 명암을 함께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호암갤러리가 고암 5주기를 맞아 오는 29일부터 6월19일까지 마련하는 추모전시회는 이화백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다양한 작품세계를 연결하는 보기드문 자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화백의 실질적인 해금」의 의미로도 간주되는 이번 전시회는 소개되는 작품이 그의 프랑스체류 전기간을 함축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58년 도불에서부터 89년 타계할때까지 30년간 남긴 작품중 미발표작 1백4점만을 골라 선보이는데 대부분 이화백이 생전에 공개하지 말 것을 당부했던 것들이다. 작품들은 현재 파리근교에 설립중인 이화백기념관 소유로 등록된만큼 판매가 불가능해 이번 자리는 오직 국내 관람객을 위한 「전시」차원에서 열리게 된다. 파리시대 결산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만큼 전시작품들은 파리시절 그가 집착한 모든 기법과 화풍을 파노라마처럼 형상화하고 있다. 이화백의 화풍은 기법에선 동서양화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잃지않으면서도 끈질기게 동양화의 기본 분위기를 잃지 않는게 특징이다. 사군자로 시작한 고암은 수묵추상쪽에 관심을 보이다가 58년 도불직후부터 동양의 회화관을 서양 현대미술에 접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경향은 우선 수묵추상에서 종이를 이용한 콜라주로 변화한 것으로 처음 나타나는데 이후 화면이 평면화되면서 기호가 독립돼 나타나는 문자추상 시리즈에 이어 붓과 수묵을 이용한 「군상」연작,그리고 초기의 동양화에 가까워진말기작품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전시 작품들은 이 가운데 전통수묵에서 수묵추상으로 전환한후 시도했던 부조적인 형상의 콜라주에서 중국의 갑골문자를 연상시키는 초기 문자추상과 여기서 더욱 도식화된 후기 문자추상,그리고 그후의 군상시리즈로 발전돼가는 그의 작품궤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 어린이 수묵화 지도서 첫선

    ◎동문선,중국서 발간한 「… 첫 걸음」 완역 어린이들에게 동양 고유의 미술양식인 수묵화를 가르칠 수 있도록 한 지도서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동문선은 중국에서 발간한「어린이 수묵화의 첫걸음」(전6권)을 최근 번역,출간했다. 이 책은 먹과 채색물감을 이용,붓으로 화선지위에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6권 가운데 첫째「기본편」에서는 수묵화의 재료,명칭등을 소개했으며「식물」「새」「물고기와 곤충」「동물」「인물」등 각 편에서는 각각의 대상에 따른 구체적인 필법을 밝혔다. 종이에 먹과 물감이 스며드는 선염방식의 아름다움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책이 구성돼 있어 자연스럽게 흥미를 돋우는 점이 특징이다. 지은이는 중국 사천성 성도시에서 활동하는 동양화가로 어린이미술 교육에 관한 책을 20여권 썼다. 어린이는 물론 수묵화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대부분의 청장년층도 관심을 가질만한 책이다.
  • 미술 전장르 망라 「의식의 확산전」

    ◎작업 내용·자료 원활한 교류위해 마련 미술작가들이 작업내용을 교류하고 자료의 활용을 극대화하기위해 마련한 제4회 「의식의 확산전」이 지난 7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580­1610)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화 서양화 조각 판화 입체 설치 섬유등 미술 전부문에 걸쳐 3백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오는 17일까지 펼치는 이 전시회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파악과 함께 자료의 실용적인 활용이 돋보이는 기획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수묵·채색,사실·추상·반추상계열의 한국 현대미술을 특징지울 수 있는 청년 소장그룹이 능동적으로 참여한 가운데 분산된 미술자료를 수집,정리해 도록에 함께 집적시킨 점이 주목을 끈다..
  • “「몽유도원도」 안견의 대표작 아니다”

    ◎재야 회화연구가 이양재씨,안휘준교수 논문에 반론/산수화뿐아니라 초상·풍속화도 능통/기존 학설 전면 부정… 학계 논란일듯 「몽유도원도」가 안견의 화풍을 대표하는 기준작이며 그가 남긴 유일한 진작이라는 국내 미술사학계의 통설은 크게 잘못됐다는 주장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재야 회화사연구가 이양재씨(40)가 미술세계 4월호에 기고한 「안휘준교수의 안견론에 대한 비판」이 그것으로 조선초기 대표적 화가인 안견에 대한 지금까지의 학설을 전면부정하고 있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안휘준교수(54·고고미술사학)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우리 미술사학계의 안견론은 안견이 중국 북송시대 산수화의 대가 곽희의 화풍을 따른 산수화가이며 「몽유도원도」는 이 화풍을 그대로 띠고 있는 유일한 작품으로 못박고 있다. 그러나 안견은 곽희뿐만 아니라 이필·유융·마원등 중국대가들의 산수화법과 함께 초상화·풍속화·금수등 다양한 분야에 능통해 「몽유도원도」는 그의 화풍을 평가할 수 있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이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김안로(1481∼1537)의 「용천담적기」중 안견에 관한 기록인 「고화를 많이 보고… 곽희식으로 그리면 곽희가 되고 이필식으로 그리면 이필이 되었으며 유융이나 마원도 마찬가지였다.…」 부분을 인용하면서 지금까지의 안견화풍론이 「몽유도원도」에 나타난 곽희화풍의 영향만을 지나치게 강조해 협소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성현(1439∼1504)이 「용재총화」에서 「…「청산백운도」를 보았는데 참으로 더할 수 없는 보물이다.견(안견)이 늘 말하길 평생의 정력이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한다.경도 만년에 산수와 고목을 그렸는데 견에게는 마땅히 양보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기록한 점은 당시 궁중에 내장돼 있던 「청산백운도」가 바로 안견의 화풍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도임을 밝혀주는 것이라는 것. 이씨는 이와 함께 「적벽도」가 안견의 진작임에도 불구하고 안휘준교수가 『인물의 묘사가 산수의 표현보다 훨씬 우수하여 이 작품은 산수화보다 인물화에 뛰어난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이 확실시된다』고 부인한 것은 바로 「몽유도원도」=안견화풍의 척도라는 선입관을 그대로 노출하는 단견이라고 꼬집었다. 신숙주(1417∼1475)의 「보한재집」권14의 「화기」에도 안견과 관련해 「고화를 많이 보고 여러 대가들의 좋은 점을 모아 종합하고 절충해 못그리는 것이 없었으나…」등으로 기록돼 있고 안견이 14 42년에 안평대군,2년후엔 광평대군의 초상화를 그렸음이 사료를 통해 증명되고 있는 게 그 좋은 예라는 것이다. 한편 이씨는 안교수가 16 91년 서산사람 한여현이 쓴 「호산록」을 인용해 안견의 출생지를 지곡으로 판단한 점과 안견이 15세기 전반 일본 수묵화단의 주류이던 주문파의 산수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 점도 큰 오류라는 설명이다. 즉 안견은 낙관을 통해 본관이 지곡임을 밝히고 있는데 안교수가 충분한 검토없이 「호산록」의 「지곡인」이란 부분만을 인용해 출생지를 충남 서산 지곡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큰 잘못일뿐만 아니라 안견 낙관인 지곡은 출생지가 아닌 본관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안교수는 안견이 1423∼4년경 일본사신과 함께 방한한 일본인 주문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일본학계에서는 일본에 귀화한 이수문이 주문의 회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여기고 있고 특히 1385년경에 태어나 1440년대 중반에 사망한 주문의 연령으로 볼 때 당시 안견의 생년을 아무리 높여잡아도 주문이 안견의 영향을 받기란 불가능하다며 안견론의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가고 주장했다.
  • 파리작가 김정순 첫 귀국전/풍경·인물 크로키 30여점 소개

    파리에 거주하면서 파리풍경과 인물묘사작업을 벌이고 있는 화가 김정순씨(40)가 귀국전시회를 1일부터 10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724­6328)에서 연다. 지난 84년 파리로 이주해 파리에콜 M.J.M과 파리 그랑드 쇼미에르,소르본미술고고학교에서 미술수업을 쌓은 김씨는 현재 프랑스직업화가회원으로 활동중인 중견작가. 색채의 발산적인 터치와 부드러운 화면처리가 돋보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첫 개인전인 이번 귀국전에는 그동안 김씨가 작업해온 풍경화와 인물크로키 30여편을 소개하는데 추상적인 여과작업을 통한 파리의 모습과 수묵으로 운동감을 살린 누드가 눈길을 끈다.
  • 두번째 「힘의 속성」 개인전 유근택씨(인터뷰)

    ◎“역사화로 평가받고 싶다”/태극기·유적 등 소재 26점 선보여 지난 82년 당시 고교2년 재학중 국전에 입선,연령미달로 당선이 취소돼 화제가 됐던 유근택씨(30)가 두번째 개인전을 29일부터 금호갤러리에서 열고 있다. 오는 4월6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서 유씨는 그동안 치중해온 「힘의 속성」을 첫 전시회보다 좀더 구체화한 수묵채색과 모필소묘작품 22점과 함께 목판화 4점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속에서의 힘은 단순히 사물을 그린다거나 옮겨놓는 작업보다는 체험을 통해서 구체화할때 그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난다고 봅니다』 일상속에 내재돼있는 사건들을 역사로 전환시키는 작업에 치중하고 있는만큼 자신의 작품을 역사화로 인정받고 싶다는 유씨는 역사화가 현실과 맞물려있을때 힘을 발휘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따라서 3년전 첫 전시회가 주로 할머니의 대화등 단순히 시간성을 지닌 소재만으로 힘을 표출했던데 비해 이번 전시회는 정원 태극기 유적 물결등 역사의 흐름과 맞물리는 일상속의 구체적인 대상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직까지 역사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차츰 확신을 갖게된다』고 말하는 유씨는 앞으로 구한말 명성황후와 관련된 일들과 역사상의 죽음등 과거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대상으로 삼겠다고 작품계획을 밝힌다. 충남 아산태생인 유씨는 중학2학년때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고교시절 미술부를 창단해 개인전을 열기도한 인물로 홍익대 입학후부터 예술속에서의 힘에대한 속성에 꾸준히 집착해오고 있다.
  • 사군자의 세계/허유 엮음(화제의 책)

    ◎사군자 감상·그리는 법 다뤄 문인화 또는 수묵화로도 불리는 사군자의 감상법에서부터 그리는 법까지를 다루었다. 매화는 사람을 속되지 않게 하고,난초는 그윽하게 하며,국화는 질박하게,대나무는 운치있게 한다는게 특징이자 감상포인트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리는 법에 있어서는 매·난·국·죽 4종류별로 필요한 기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가지·꽃·태점을 그리는 기법,구성법,먹의 농도조절법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다. 이와 함께 역대 유명한 그림들을 원색으로 실어 참고하도록 했다. 지은이는 국내에서 서예를 익힌뒤 대만으로 유학해 국립사범대 미술과를 졸업했으며 국내에서 여러차례 개인전을 연 중진서예가이다. 재원 1만원.
  • 참신한 공간연출/90년대 유망작가 20인전

    ◎19일부터 동아캘러리서… 평론가들이 뽑아/20∼30대 신진들 조각·설치작품이 주류/전통서양화 없고 수묵화 낀것이 특색 신년초, 우리화단을 신선하게 가꿔갈 유망작가를 대거 소개하는 전시회가 기획돼 눈길을 끈다. 서울 동아갤러리(778­4872)가 오는 19일부터 2월19일까지 개최하는 「평론가가 선정한 90년대의 유망작가」가 그 전시로 미술평론가 20명이 저마다 주목할만한 작업을 보이는 젊은 작가 1명씩을 추천해 꾸민다. 장르에 관계없이 20∼30대 국내작가를 대상으로 기존 전시관행과는 달리 복합적이고 참신한 분위기의 공간연출이 기대되는 전시이다. 내일의 한국미술을 이끌어갈 패기있는 젊은 작가들의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활동적인 30∼40대 현장비평가들이 소신과 관점에 따라 지역·성별등에 제한없이 선정하여 미술계의 다양한 양상이 있는 그대로 집약될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이 전시는 앞으로 2∼3달간 한해를 전망하는 유망작가초대전이 잇따를 것으로 예고되는 가운데 마련된 데다가 선정작가들 대부분이 예년에 많이 거론되지 않은얼굴로 짜여져 있어 화단의 관심을 그만큼 증폭시키고 있다. 평론가들의 다양성만큼 각양각색의 작가 면면으로 인해 뚜렷한 흐름이 없는 한국미술의 현주소를 확인케 할 이 전시에는 구상계열의 전통서양화는 찾을수 없고 조각·설치·혼합매체가 대종을 이루며 예상외로 한국화의 전통을 잇고 있는 수묵화가 일부 포함돼 이채를 띤다. 평론가별 추천작가는 ▲최병식­송인혁(한국화) ▲이용우­김영진(조각) ▲정영목­이각우(회화) ▲최태만­박은국(설치) ▲윤범모­임영선(조각) ▲이영욱­김명혜(설치) ▲최태석­이호신(한국화) ▲서성록­안원찬(서양화) ▲송미숙­김황록(조각) ▲이종숭­공성훈(테크놀로지아트) ▲박영택­고명근(입체) ▲강성원­김윤기(서양화) ▲이태호­하성흡(수묵화) ▲김영순­임순(회화) ▲유재길­이필하(섬유미술) ▲윤난지­박광진(판화·유화) ▲이준­류인(조각) ▲윤진섭­임형준(조각) ▲심광현­이태헌(서양화) ▲최열­송만규(전통회화)등. 이 작가들에겐 『표현의 정치학으로서의 매체』(박은국) 『튼튼한 소묘력과 전통형식의 재인식으로 일군 수묵작업』(하성흡) 『실험정신과 참신한 조형의식을 가진 젊은 작가』(이필하)등의 평론가별 평이 따르고 있다. 화단에서는 『현장을 예리하게 읽는 평론가들이 유망작가를 추천하는 이같은 작업은 매우 중요하지만 정실에 얽매이지않는 공평성이 확립되지 않은 측면도 있어 아쉽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여류명창 성창순씨(이세기의 인물탐구:35)

    ◎동·서편제 통달한 판소리의 달인/혼신 다한 소리인생 40년… “한 서린 득음” 정평/빼어난 성조·변화무쌍한 음색에 관객 매료/서예·국악기에도 깊은 조예… 「심청가」로 인간문화재에 성창순은 본래 강산제 「심청가」로 인간문화재가 된 여류명창의 한사람이다.음이 낮고 처절한 「심청가」는 전곡이 지나치게 구성지고 구슬퍼서 극장공연 첫날에는 소리하는 이들이 기피하는 곡이기도 하다.그러나 일명 서편제로 불리는 성창순 「심청가」는 4시간반의 완창을 변화무쌍하고도 맛갈지게 구사하여 지루감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부친 심봉사를 그리워하며 심황후가 기러기편에 편지쓰는 대목에서 「한자쓰고 눈물짓고 두자쓰고 한숨쉴제 눈물이 먼저 떨어져 글자마다 수묵이 되어」는 이조가곡과도 같은 우아미와 품격을 지녀 독특한 성음이 빼어난 것으로 손꼽힌다. 애절한 계면조뿐아니라 흥부가중에서 「놀부심술타령」 「제비로정기」 「왼갖비단타령」등 숨막히게 전개되는 자진몰이 휘몰이 속에다 우람지고 담대한 가락을 얹어 「달기가 승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흥·청의 심맥 고수 그는 판소리는 넘어가는 가락과 내뽑는 목청에 흥과 청을 담아 판소리의 심맥인 「흥청거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신을 지키고 있다.그래서 그의 무대는 언제 어디서나 흥취가 넘치고 그의 연희는 유유하고 자적하다. 최근 몇년간은 남도락에 심취하여 지난봄 국악대공연에서는 느린 육자배기에다 잦은 중몰이장단,개구리타령으로 절정을 이루더니 흥타령에서 축 늘어진 후 진도아리랑으로 활기를 되찾는 신명나는 한마당을 펼쳤었다.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을 살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서 남녀노소가 있느냐 살아생전에 객기로 맘대로 놀아볼거나」 가사의 끝이 「거나」나 「구나」로 끝나는 육자배기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곡이면서도 잘 부르려면 가장 어려운 곡으로 「그의 육자배기는 늦은 진양조장단에 한이 듬뿍 배어 멋으로 일렁이는 유장한 가락이 일품」이라는 것이 황병익교수(이대)의 말이다. 지난 6월에는 KBS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관현악과 판소리 「춘향가」의 협연을 갖기도 했다. 이「춘향가」관현악곡은 작곡가 김희조씨가 성창순명창과의 협연을 위해 8개월간에 걸쳐 재구성하여 편곡한 것으로 생소한 관현악연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황하거나 머뭇거리는 기색없이 마치 수만군을 거느린 여중호걸처럼 2시간30분의 완창을 당당한 풍모로 이끌어나갔다. 한복차림에 쥘부채,고수 한사람의 북장단에 의존하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판소리의 색다른 멋과 음악적 변화를 보인 역시 돋보인 무대로 지적된다. 북반주에 맞춘 판소리공연에서는 즉흥적인 「아니리」와 「발림」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지만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되는 관현악연주에도 그는 대로를 가로지르는 곧고 시원한 통큰소리,익살과 애조와 애원의 성음치레로 관객의 흥겨움을 흥청망청 당겨주었다. 타고난 재능과 기량이 번뜩이는 재인과는 달리 그는 끈질긴 노력과 집념으로 자신을 발전시키고 운명을 개척해온 입지전적인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며 「죽으면 죽었지 2등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오기와 배짱이 그것이다. ○예향 광주서 출생 그의 판소리 입문부터가 말못할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지나가는 길손도 단가 한마디씩은 부른다는 전남의 예향 광주에서 태어났다.부친은 권번에서 북을 가르치던 명고수 성원목씨.어릴때부터 북장단을 즐기고 동네 굿구경에 날저무는 줄 모를만큼 예살(예살)이 거센 편이었으나 부친은 이를 극구 말려 걸핏하면 매맞기 일쑤,집안에 갇히기가 일쑤였다.그렇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하거나 기죽을 그가 아니었다.오히려 부친에게 『나는 소리를 배우겠소,그렇지 않으면 집을 나가든지.어쨌든 시집이나 가서 고생하는 여자는 되지 않을 거요』하고 맞섰다.그리고 몇날을 울며불며 밥을 굶고 몸져눕자 「딸자식 하나 없는 셈치고」 부친이 져주었고 광주 북동에 있는 소리선생에게 소리를 배우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선생이 『저아이는 소리에는 소질이 없으니 잘 키워서 시집이나 보내라』고 했다.대경실색을 할 일이었으나 그는 내색없이 『소질이 없기는 왜 없어.두고보라지,내가 못해낼 줄 알고?』 이러고 학교를 때려치우고는김연수창극단에 입단해버렸다.그때 나이 15세.그러나 여기서도 소질을 인정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시절에 만난 오정숙·박옥진은 스승으로부터 장래성을 인정받고 있는 유망주로 죽어도 남에게 뒤질 수 없는 그의 심경은 못내 참담하기만 했다. 『두고보자.지금은 너희가 나보다 나은 줄 알지만 여기서 물러날 내가 아니다』 그들의 소리연습을 엿보면서 그는 한편으로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악기라면 다소 자신이 있었다.어릴때부터 부친의 북장단이 귀에 익어 어떤 악기도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가야금·거문고·칠현금을 배우는 동안에도 그는 소리한번 제대로 배우고 말겠다는 집념을 떨치지 못했다.그렇게 4년을 보내고 5·16직후 국극단이 해산해버리자 서울로 올라왔다. 단성사근처 와룡동에 정착하여 박초월씨에게 거문고를 배우다가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만정 김소희씨의 문하에서 동편제소리인 강산풍월과 심청가 바디를 넘겨받는 과정에서 생전처음 『갈고 닦으면 좀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그후 김소희씨의 권유로 보성소리를 배우기 위해 전남 보성군 회천면 도강재에 있는 정응민선생을 찾아나섰다.보성소리는 판소리 서편제중 전남 보성을 중심으로 연고를 맺고 있는 소리꾼들만의 소리제로 우조·평조·덜렁제·경두름제의 다양한 음색과 감칠맛이 특색이었다. 율포해수욕장에서 인적없는 여우고개를 넘어야 하는 30리길 산골,밥상을 갖다놓으면 물이 줄줄 흘러내릴만큼 바닥이 기울어지는 누추한 단칸방에서 그는 그를 구제하는 소리의 진수에 빠져 모진 고생을 감내하는 뼈저린 과정을 거쳤다.하루 15시간에서 어느때는 18시간,삭신이 늘어지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했으나 불에 구운 왕소금으로 부운 목을 달래면서 그는 오로지 소리에만 매달렸다. 눈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혹독한 겨울,여름내내 4개월동안 긴장마가 계속되는 궂은 날씨에도 기울어진 방에 앉아 목청을 뽑던 고된 수련과 공력은 이제는 그의 일생일대 아름다운 추억일 수밖에 없다.그로 인해 박유전∼정응민∼그의 아드님인 정권진으로 이어지는 보성소리계보에 4대째로 「소리호적」을 올리게 되었고 그는 부친이 소리를 배우지 못하게 했을 때처럼 또다시 두다리를 뻗고 대성통곡 했다.이번엔 남들이 듣고 있는 명인·명창 칭호가 그에게도 무관하지 않다는 감동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보성에서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대꼬챙이처럼 말라서 이번엔 하성이 나오지 않았다.숨돌릴 사이도 없이 그는 곧바로 환갑이 다된 박록주선생을 모시고 안양에 있는 삼막사로 들어갔다.쇠약해질대로 쇠약해 있었으나 몸속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오히려 힘이 되었다. 스승은 『명랑하게 불러라.소리는 미련해야만 한다.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그리고 인분을 먹어야만 낼 수 있다는 소리를 너는 네 집념과 오기로 백일만에 끌어냈다고 말했다.그는 마침내 한스럽고도 깊고 장려한 그러나 구슬처럼 청명한 소리를 얻어내고야 만 것이다.진양조 여섯박자를 능란하게 엮어낼 수 있게 되자 그는 「적벽가」에 나오는 한문의 뜻을 알기 위해 이번엔 우전 신호렬선생에게 서예와 한문을 배웠다.마음이 밝아지자 눈도 밝아지는 듯했다. ○청명한 소리 얻어 68년부터 명창대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수많은 해외공연,75년 남원 춘향제때는 우산을 쓴 관중들이 빽빽이 늘어선 마당 한가운데로 나가 심청가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소리에 자신이 취해 빗소리도 관중의 술렁거림도 들리지 않았었다.그리고 내게서 빠져나간 소리가 관객의 가슴속에 전달됐다가 다시 내몸속으로 들어오는 자유자재로운 차원을 경험할 수 있었다.이른바 「소리가 앵기면서」 솟구치는 환희가 분류처럼 가슴 한복판을 꿰뚫듯이 흘러내렸다. 이제 동편제 서편제의 갈래를 성큼 뛰어넘어 모든 난관을 딛고 일어선 초월의 경지,요즘은 소리속에 온자한 깊이가 배어들고 있는 시기다.더구나 지난해 4월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혼한 부군 양명환씨가 모든 뒷바라지를 책임지고 있어 마음 편하게 「소리」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가 이루고 싶은대로 모든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그는 명창 칭호에 손색이 없는 반듯한 예술가의 단행을 평생 지키고 싶은 또하나의 소원을 지니고 있다. ▷연보◁ ▲1934년 1월10일 전남 광주출생 ▲1950년 광주여고1년때 김연수 창극단입단,조선국극단등 여성국극단에서 창극 활동 ▲1955년 공기남선생에게 「심청가」2년 사사,한만갑제 거문고 김난주씨에게 사사,강태홍제 가야금 원옥화씨에게 사사,춤광대 김영철씨에게 칠현금 사사 ▲1961년 만정 김소희씨에게 「심청가」「흥보가」3년간 사사 ▲1964년 전남 보성 정응민씨에게 강산제 판소리(박유전판)「심청가」「춘향가」「수궁가」사사 ▲1965년 박록주씨에게 안양 삼막사에서 백일공부 ▲1965년부터 우전 신호렬씨에게 한문과 서예 사사 ▲1968년 신인서예전 서예부 특선,제17회 국전 서예부 입선,국악협회 주최 명창대회 「춘향가」로 세종상 ▲1969년 김소희씨와 일본 교포위문공연 ▲1975년 일본 오사카에서 판소리「흥보가」「민요」공연,유럽지역 순회공연(파리∼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1977년 「심청가」완창(4시간30분) 서울시민회관별관 ▲1979년 「춘향가」완창(5시간30분) 세종문화회관대강당 ▲1980년 일본 와세다대학서 「심청가」공연 ▲1981년 제1회 대한민국 국악제에서 「심청가」완창공연 ▲1984년 신재효100주년기념공연 「춘향가」공연(국립극장 대극장) ▲1985년 「춘향가」전판공연(국립극장대극장),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후보자 지정·국악협회 이사 ▲1988년 「심청가」 서독 쾰른음대 초청공연 ▲1990년이후 해마다 국악대공연 ▲1991년 강산제 판소리「심청가」로 인간문화재 지정,미국 카네기홀에서 「심청가」「춘향가」공연 ▲1992년 「심청가」완창(국립극장)과 예술의 전당 야외음악당 공연,일본 도쿄서「심청가」공연,대한민국 국악제 독창,사단법인 새한전통예술보존회 설립·이사장취임 ▲1993년5월 호주 브리즈번 세계음악제에 한국대표로 출연,6월 KBS국악관현악단과 「춘향가」완창공연,부산문화극장에서 판소리 5마당 큰잔치 「심청가」공연,7월 새한전통예술 보존회 설립기념 「민족예술국악대공연」 ▲1977년부터 국악고·추계예술대·단국대·전남대 출강 KBS 제1회 국악대상 수상·국악부문 방송대상 수상 「춘향가」「심청가」「흥보가」(오아시스레코드사 출반)
  • 「자연과 인간」전 7일 개막/서울신문사 주최

    ◎한국화단 30∼40대 정예작가 21명 출품/“전통회화 현대적 변천·새 이정표 제시” 한국화단의 정예작가 21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기획전인 「자연과 인간」전이 가을화단을 풍요롭게 장식한다. 서울신문사가 오는9월7일부터 19일까지 한국 프레스센터1층 서울갤러리에서 꾸미는 이 전시에는 63점의 작품이 발표된다. 최근 화단에서 주목받고있는 30∼40대 작가들의 독특한 화법과 대담한 색채,과감한 표현양식,끝없이 추구되는 실험정신을 접하게 할뿐만 아니라 한국화단의 미래를 예견할수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출품작가는 구지연 김병종 김보희 김선두 김천영 문봉선 백순실 석철주 송인혁 오용길 윤영진 이선우 이왈종 임연숙 장혜용 정명희 정종미 정종해 차대영 한진만 허진등. 저마다 독자적인 화업의 장을 가꿔가고있는 이 작가들은 「자연·인간」을 주제로 현대문명과 함께 실종돼가고 있는 자연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휴머니즘의 만남을 화폭위에 펼쳐보이게 된다. 더욱이 이번 「자연·인간」주제는 한국예술의 정체성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전통적 사고와 재료,방법등을 기초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전시의 의미를 더해준다. 평단의 자문을 얻어 선정된 이 작가들은 평소에도 자연과 인간의 테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가들로 실경산수에서 최근 서구사조를 과감히 받아들인 작가들까지 폭넓게 초대되고 있으며 수묵과 채색등 재료상의 구분도 두고있지 않다. 화력을 인정받고있는 이왈종 오용길 김병종 석철주 장혜용 정명희 백순실등과 신예유망주 문봉선 정종미 허진 이선우등이 그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즉 이번 전시는 최근 한국화단의 많은 작가들이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에 고뇌하며 그 미학의 창출을 위해 부단히 몸부림쳐온 현실위에서 오늘의 전통회화가 이 논제를 어떻게 미학적으로 수용하고 작업현장에 반영해 왔는지를 살펴보기위해 기획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동행관계를 조명하면서 전통회화의 현대적 변천과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게될 이 전시는 신선한 감흥으로 가을화단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 한국화가 송수남씨(이세기의 인물탐구:34)

    ◎화폭에 시정 가득… “시인같은 화가”/수묵현대판화 개척… 「남천산수」는 독보적 경지/유연하면서도 예리한 운필로 화력 30년 빛내/가장 한국적인 소재에 집착… “동서양 넘나드는 화격” 꿈꿔 남천은 시인같은 화가다.그는 그림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그의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먼산 먼강 안개 서린 먼동,잔잔한 금강이며 섬진강 얼어붙은 겨울산하까지도 그의 그림속에는 교교한 시정이 담겨있다.공간에 뜬 몇개의 산이 담묵 농묵으로 꿈결같은 원근을 이루거나 또는 보석처럼 빛나는 수묵채색일 때도 아름다운 여백을 살려 화면전체에 서정시가 흐르는 듯한 향수를 품고 있다. 그가 쓰는 먹은 모든 색의 출발이자 모든 색깔을 포함한 색채다.어둠이 흩뿌리는 혼묵,비내리는 잿빛하늘의 회묵일지라도 단순한 검은색인가 하면 전혀 검은 색깔이 아닌 현묘 심묘의 먹색일색이다.그는 눈부시게 하얀 백지위에서 먹으로 백색을 백답게 살리고 먹색을 가장 먹답게 표현할 줄 아는 화가다. 색깔과 색깔을 배합해서 얻어지는 효과와는 달리 물과 먹의 비율은그 농도를 계산할 수는 없으나 모필이 한지에 닿는 순간의 유연성과 날카롭고 경쾌한 선조,그 번짐이 내는 의외의 조형에 흠뻑 빠져든듯 그는 지난 수년간 수묵을 매재로 하는 긴 실험과 모색의 시기를 거쳐왔다. 그리고 수묵추상 발색산수 동양화판화에서 다시 발묵산수로 이어지는 그의 수묵작업은 이제 포만과 방출의 단계를 통과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남천산수」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충격던진 첫 개인전 그의 이런 실험정신은 그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할 때도 일관되게 지켜지던 그만의 방법이다. 이대입구 신촌 하숙집 골방에 틀어앉아 낙엽이란 낙엽은 모조리 주워다가 수북하게 쌓아놓고는 이를 화면에 이리저리 꼬아 붙이는 나뭇잎 콜라주,켄트지에 유화 한지에 수채화등 그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스스로 모색하고 타진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때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향의 뒷동산」과 「강언덕 버들개지 꽃샘바람에 한바탕 춤추고 나면 온산은 진달래가 물들어」샤갈과 드가를 변주한 듯한 영롱한 색채는 그가 범상치않은 화가로 탄생될 것을 그의 주변에 일찍이 예감시켰다. 화력 30년의 화가로서나 대학교수로서나 그는 이제 중진의 위치다. 그러나 스승의 문하에서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혼자서 자신의 세계를 암중모색으로 성취한 편에 속한다.이에대해 그 자신도 「누구에게 배운 적도 영향을 받은 바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초기 「한국화」전이란 타이틀로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한지와 먹,탑이나 기와지붕등 동양화재료와 한국적 테마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의 동양화에서의 설채와 운필을 벗어나 서양추상화를 보는듯한 충격을 던졌다.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송수남 한국화는 새로운 공간예술을 실천한 예로서 70년대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우뚝 설것임』을 다짐했었다. 70년대후반 실경산수가 한창 붐 일때도 그의 산은 진채표현의 중량감을 과시하여 적묵산수의 특징을 강조했고 담백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수묵과는 달리 강렬한 발색산수에서 중성적 느낌을 안겨주는 다채로운 채색과분방한 화풍을 구사해 보였다. 야트막한 구릉과 하천을 부드러운 선과 극도로 절제된 간결한 구성으로 암시하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거대한 산봉은 휘염의 범람인듯 화면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곳에는 시의 빛과도 같은 섬세한 장식이 둥우리를 틀고 우뚝한 삼각형,묵취와 묵광,산정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빨갛고 동그랗고 자그마한 해만으로 먹구름같은 화면에 눈시린 청량감을 뿌렸다. ○동양화서 추상 시도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산」을 주제로한 판화를 제작,목판·석판·실크스크린·모노타입등 4종류를 찍어 수묵화의 수묵현대판화로서의 새로운 화경을 열었고 88년 「자연과 도시」전도 빼놓을수 없는 탁발한 전시로 손꼽힌다. 굵거나 묽은 선으로써 시작과 끝을 흐려뜨리면서 드로잉적인 필선과 발묵의 번짐으로 독특한 도시의 서정을 구현,울창한 잡목숲과도 같은 어지러운 도시의 여러 풍경을 특징적으로 묘사해 냈다. 도시나 산하외에 그가 즐겨 그리는 미루나무는 먹으로 화면을 가득채운 동양화의 현대추상을 시도한 선시리즈와 고향으로 가는듯한 휴식을 살린 첨단과 향수의 두면을 대비적으로 선보여주고 있다. 붓끝에 힘을 주어 사군자를 치는듯한 한계를 자유하여 그는 이제 모필만이 갖는 유연성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만의 화격을 이루는것이 꿈이다. 남천으로서는 어느구석에도 그 겉모습에선 화가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런 「티」는 그에게는 지난 시절의 치기일지도 모른다.문학과 철학에 빠져 세상을 온통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니힐리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이른바 가난이면 가난, 슬픔이면 슬픔, 외로움이면 외로움이었던 회오리가 한바탕 지난후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훨훨 벗고 「평범」과 「무심」을 과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굵은테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 그런거지 세상이란 그런거지」털털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지난 날이 흔적없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수류운공이 떠오른다. ○단체활동 개입 안해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눌하고 치밀하지 못하여 지난 90년 한 신문사가 주는 예술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상을 제정해주신 신문사에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여러차례 연습까지 해놓고는 막상 단상에 올라 다른 신문사 이름을 들먹이며 중언부언하는 바람에 관계자와 좌중을 난처하게 했었다. 또 두주불사로 학생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사심없이 놀다가도 갑자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한국적이란 무엇일까.중국하면 도가 떠오르고 인도하면 명상이 떠오르듯이 「한국」하면 뭐가 먼저 생각나지?』심각하게 추궁하여 주위를 당혹케하기 일쑤다.이런 한국적인데 대한 집착은 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전이후 수십차례의 세계미술전에 참가하면서 생긴 징후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농가 송대석씨의 3남매중 외아들.조부가 쓰던 먹과 벼루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소원은 언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성취하는 일이었다.소원대로 지금은 서교동 그의 집에 마련된 80여평의 드넓은 화실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끝없이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가족은 부인 백명희교수(이대사대학장·54)와 1남2녀.그림을 그리는 자녀는 없다. 화가친구보다는 옛날 신촌하숙방에서 함께 뒹굴던 소설가 이제하 시인 강위석 등과 즐겨 어울리고 80년대 수묵화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 제자들이 있지만 화단에서의 단체활동등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화가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남천을 소탈하고 소박하다고 말한다.대체로 자신의 일에만 충실할뿐 그는 만사에 서툴고 머뭇거리는 형이다. 그러나 가까이 화단일부에서 그의 후배들이 말하는 남천은 뚝심과 정열,실험정신이 투철하여 기왕에 있어온 타성을 묵살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 욕망이 꿈틀대는 야심파다.또는 감정이 격하고 제스처가 명확하며 일을 벌이면 끝장을 내고 한번 눈밖에 난 사람은 끝끝내 돌아보지않는 독선적인 면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의 완성을 설계 어느것이나 화가로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일면일 것이다.사람이 나이들면 환경과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듯이 아마도 남천 역시 그런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지닐 수도 있다.그래선지 그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미술은 음악처럼 세계도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서슴없이 긍정한다.그리고 한때 지나치게 탐닉했던 화려한 색채를 단순하게 저버린것이 아니라 이를 오채의 먹으로 종합한다는 의지다. 그는 결국 시와 철학으로 살찌운 마음속에다 그의 수많은 붓들을 담가두었다가 어느날 하얀 한지위에 먹만의 조형으로 세계화단에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그는 그림의 완성,그의 그림의 끝을 알고있는 이시대 소중한 화가의 한사람임에 틀림없다. □연보 ▲1938년 전북 전주출생 ▲전주중앙국교 서중­공고졸업 ▲1956년 홍대 서양화과 입학 ▲군복무후 1961년 동양화과로 전과 ▲1963년 홍대 졸업 ▲1962년 국전입선후 신광여고­이대부고교사 ▲1967년 제9회 동경국제비엔날레 출품(동경) ▲1969년 송수남 「한국화」전(신문회관화랑) ▲1970년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뉴델리) ▲1972년 한국현대작가7인전(샌프란시스코 아시아재단화랑) ▲1973년 송수남 개인전(신세계화랑) ▲1973년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상파울루)한국 동양화10인전(동경) ▲1974년 양지화랑 초대개인전 ▲1974년 현대 화랑 기획전(현대화랑)현대한국동양화전(나고야) ▲19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개인전 ▲1976년 한국현대 동양화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7년 한국 미술대상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8년 맥향화랑 초대전 ▲1978년 뉴욕 한국화랑 초대개인전 ▲1978년 한국미술20연 동향전(국립현대미술관) ▲1979년 한국미술­오늘의 방법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80년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개관기념 초대전 ▲1981년 백상미술대전 한국현대작가 드로잉전(뉴욕 브루클린미술관) ▲1983년 송수남전(현대화랑) ▲1983년 초대 송수남 개인전(뉴런던 코네티컷대,뉴욕브루클린대 시카고 스코키시립미술관) ▲1984년 송수남 개인전(뉴욕 한국문화원) ▲1985년 송수남 판화전(조선화랑) ▲1986년 한국화,오늘과 내일 전망(워커힐미술관) ▲1986년 한국화 100연전(호암갤러리) ▲1986년 동양화 초대전(강남현대화랑) ▲1986년 송수남 초대전(부산진화랑) ▲1988년 자연과 도시전(동산방화랑) ▲1989년 남천 판화전(청작미술관)해마다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현대미술초대전,한국의자연전,서울미술대전,현대작가초대전 등 단체전 수회출품 동아미술제심사위원,문예진흥원 미술대전심사위원,운영위원 역임〔현재〕서울 미술대전 운영위원,서울시 예술위원,홍대교수(홍대박물관장) 중앙예술대상수상 「수묵화」「동양화」「자연과 도시」「남천사군자(상·하)」
  • 흑백의 유혈(외언내언)

    흑과 백은 반대되는 개념이다.『흑백을 가리자』는 말이나 『검다 희단 말 없다』고 하는 속담은 그래서 대칭되는 개념의 제시로써 옳고 그름을 갈라보게 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정몽주의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고 말한 뜻도 거기 있었다.반대되는 색상을 대비시켜 자신의 뜻을 보다 명료하게 전달코자 함이 아니었던가. 비록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해도 그것이 조화를 이룰 때는 미가 되고 질서가 된다.한편의 수묵화를 보자.하얀 종이에 검은 먹이 칠해지는 것이지만 그것이 조화를 이룸으로 해서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심는다.흑백이 겨루는 바둑도 그렇다.돌이 바둑판 위에 아무렇게나 뒹굴어 있는 것은 무질서지만 조화롭게 놓여나가면 흥미진진한 오락이 된다.그래서 극과 극은 통한다고도 한다.너무 기쁘면 울음이 되고 너무 슬프면 웃음이 된다는 이치이다. 『아프리카 흑인의 존경과 우정을 바란다면 우선 국내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야 한다.우리가 해외에서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에서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흑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철폐함으로써 「제2의 링컨」이라고 칭송받은 케네디 대통령의 말이다.흑백 인종 사이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자는 외침이다.한편의 아름다운 수묵화같이 한판의 짜임새있는 바둑판같이 흑백간에 화음을 내자는 영혼의 목소리이다.하건만 아직도 미국에서는 백인의 66%가 『흑인과의 결혼은 용납 못한다』(91년 시카고대 여론센터 조사)고 응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이 이러할때 다른 나라의 경우는 더 말할 것이 없다.한동안 잘되어간다 싶기도 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또다시 흑백간의 유혈사태가 일고 있다.과격파 흑인지도자 크리스 하니가 백인한테 살해 당하면서의 일이다.골이 깊은 이나라 흑백분규 멎을 날은 언제가 될것인지.한 발짝씩 물러나 머리 맞대고 지혜를 모으면 조화를 이뤄 나갈수도 있을 것을….
  • 파리시선정 올해의 화가 고병진씨 뽑혀

    ◎한국인으로 처음… 「영토」주체 전시회/흙으로 그린 나무 동양적 생명력 표출/미술평론가 “충격적 작품”평… 일약 「유명화가」 대열에 해마다 파리시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화가 가운데 독창성이 두드러진 화가 4명을 선정하여 전시회를 파리 12구 파르크 플로랄 드 파리에 있는 전시장 「미술 광장」(카레 데자르)에서 열어준다.올해는 한국인 고병진씨(39)가 쟁쟁한 다른 3명의 화가들과 함께 선택되었다.고씨 작품의 전시회는 「영토」라는 이름으로 3월25일부터 5월16일까지 두달동안 열린다(리셉션은 4월1일).전시및 홍보와 작품 운반등 일체 경비는 파리시가 부담한다.이 전시회 혜택을 한국인 화가가 받는 것은 처음이다. 고씨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파리에는 3년전에 왔다.한국에서는 대학졸업후 동문전외에는 전시회를 가지지 못했는데 그의 작품이 당시의 주된 흐름과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그때는 예술이란 사회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이어야 했고 자기 내면을 토해내는 제 그림 같은 것은 평가를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무만 줄곧 그려왔다.흙을 써서 그린 나무들은 크고 선이 굵으며 질화로처럼 투박하다.그림 크기는 하나같이 2m×3m로 대형이다.보통 화랑에서는 전시하기 어렵다.이 넓은 캔버스에 흙을 물에 갠 유화용 분말 안료와 플라스틱접착제에 섞어 바른다.흑갈색 또는 청회색을 띠며 수묵화 같은 인상을 주는 그림 속의 나무들은 예사 나무가 아니다. 『독창적인 것이 으레 그렇듯 괴상한,어느 종에도 속하지 않는 것,고병진의 모티프는 감동적인 신호를 형성시키기 위해 거대한 화폭 안에 갑갑하게 죄어져 있다.혹은 압박이고 혹은 대화인,이 엄청난 발아의 형태들이 옛스런 균형미를 지배하는 대수림의 열주에서 비켜나 있을 때는 인간 언어행위를 흉내내고 있는 듯하다』 고씨의 한 작품에 대한 평론가 베르나르 구아씨 평이다.그는 고씨의 작품세계를 「생명력」이란 말로 집약하기도 한다. 고씨 작품을 「발견」한 것은 또 다른 평론가인 장 리크 샬리모 교수(파리 8대학)였다.지난해 작가의 화실에 와서 작품 수십점을 보고는 『충격받았다』면서 곧 파리시 미술담당관에게 소개했다.그 결과 93년에 전시기회를 누리는 4명의 화가중에 고씨가 들게 되었다. 여기 선택되는 화가들은 모두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전시 경력도 많은 사람들인데 고씨의 경우는 특례에 속한다.그는 파리에 와서도 한번도 전시회를 가지지 않았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무명」의 그는 대뜸 「유명화가」로 솟아올랐다. 파리시는 해마다 이렇게 화가들을 선정하여 전시회를 열어 주는 대신.작품 한 점씩을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다가 5년후 매각한다.해가 지나면 값이 많이 올라가게 마련이다.그 대금은 다시 다른 작가들을 위한 전시 경비등 미술 진흥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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