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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화가 허달재씨 개인전/동양문자 소재 형상화… 강남 지현화랑서

    한국화가 허달재씨(45)가 개인전을 13일부터 오는 21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지현화랑(3444­0521)에서 갖는다. 한국화단의 거성 허백련 화백(1891∼1977)의 손자인 허씨는 수묵계통의 전통산수에 치중하던 작가.지난 86년부터 88년까지 뉴욕 스토니브룩대에서 한국화를 강의하기도 했으며 뉴욕 파리 등에서 전시를 열어 독특한 화풍을 인정받아왔다. 이번 전시는 뉴욕 스토니브룩대에서 강의하던중 서양의 미술계가 빠르게 변화한다는 사실을 인식,3년전부터 시도한 작업을 처음 소개하는 자리.중국의 갑골문자 등 동양문자에서 소재를 택해 형상화한 것으로 「업」이란 큰 주제아래 정중동의 분위기를 풍기는 암채와 수묵담채의 간결한 작품들이다.
  • 무용가 김현자(이세기의 인물탐구:109)

    ◎일체의 형식 거부… 생명·자유를 춤춘다/끈질긴 실험정신… 공연마다 변형춤 창조/5살부터 정식 사사… 발레·현대무 고루 섭렵 2년전 백남준의 초청으로 뉴욕 코트하우스시어터에서 김현자가 「생춤」공연을 가졌을때 뉴욕타임스는 생춤을 「Lived dance」로 표기하고 「무대에서의 빛의 번쩍거림과 깊은 어둠의 교차조차 춤이며 빛의 어둠과 밝음의 존재를 수묵화로 그려낸 춤」이라고 평했다.특히 가야금산조에 맞춘 그의 「묵」과 「샘」은 한국춤에서의 정중동과 동중정을 아름답게 일깨우면서 때론 훨훨 벗고 때론 독수리처럼 훨훨 날면서 비상중의 정지,빛과 어둠속에서의 움직임과 정지를 교묘하게 엇가른다. 중앙대 정병호 교수는 김현자를 두고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그는 무한한 창의력과 에너지로 자신의 춤을 추고있다.남의 춤을 흉내내는 춤은 아무리 잘추어도 「좋은 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무용가라면 시의에 맞는 자신의 춤을 만들수 있어야하며 그가 바로 김현자다』 그리고 「현대한국무용」이라는 차원에서 「그의 춤은 단연 빼어나다」고 못박았다. 92년 문예회관대극장에서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김현자의 춤」을 공연했을때도 이를 관람한 도올 김용옥은 「백남준 선생의 해프닝 등 두개의 퍼포먼스가 한무대에 있어야만하는 아무 의미나 커넥션을 발견할수 없었으나」 「얼음덩어리들이 매달려있는 좁은 연단위에서 김현자선생이 추는 춤에대해서는 누구나 좋았다고 생각했고 탁월한 수작이라는데 이의가 없었다」고 그의 「석도화론」에 쓰고 있다. 김현자는 의외성이 많은 무용가다.한군데 머물러 「스스로 고이거나 누적되지 않고」「춤의 완성」을 위한 끈질긴 집념을 불태운다.그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생춤」은 이른바 「무와의 대결」이며 시인 김영태에 의하면 「얽히고 설킨 칡넝쿨이 바람에 쓸리고 흔들리면서 춤이 자연의 일부임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춤」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식상과 타성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얻는다」는 신념으로 오늘에 이른 예술가다. ○의외성 많은 무용가 69년 「황진이」부터 82년 대한민국무용제 연기상을 수상한 「열녀문」까지는 그의 선배들이 걷던 전통춤의 맥을 잇는 작업이었고 그때는 철저하게 계산된 스토리가 있는 정교한 극춤을 추었었다.특히나 흰수건을 떠받치고 추는 「살풀이」는 「살을 푸는 그의 떨림이 관객의 피부에 예리하게 촉감」될 정도였고 그의 부드러움은 「안개와 같다」고 찬사하는 이들도 있었다.이후 대한민국무용제 대상작품인 「홰」에 이르러 원로 박용구씨는 「단일하고 통일된 상상력과 구성력을 갖춘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는가하면 김태원은 신무용의 전통과 밀착된 「신신무용」이란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키기도 했다.그의 「춤의 비약」의 기미는 그렇게 태동하고 있었다. 둘째는 87년 럭키무용단을 창단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실험정신이 깃든 춤을 선보이고 나섰다.창단기념공연인 「황금가지」는 인위적으로 모자이크된 박제된 춤을 버리고 무용수들이 거의 반라로 무대에 올라 「외설시비」를 불러일으킬만큼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던졌다.「그것이 한국춤이냐 아니냐」는 논란이전에 그의 변형춤은 그가 춤출때마다 하나의 사건으로 무용계를 긴장시켰고 철근골조와 육체의 대비를 그린 「회일」경우는 「강렬하고 자신만만하게 허심탄회를 춤추었다」는 평을 받았다.다음은 수년간 기훈련에 심취하더니 최근 7,8년사이 「인체에 내재하는 자연의 섭리」로 「육체와 정신의 무화」를 꾀한 자연스러운 춤을 끌어내게 되었다. ○럭키무용단 해체 아픔 그는 경관이 수려한 진주에서 태어나 푸르른 남강을 내려다보면서 장래 「강물처럼 춤추는 무용가」가 될것을 꿈꿔왔다.부친은 소설가 이병주씨와 절친하던 김성범씨(전 마산대 교수)이고 그를 실질적으로 무용가로 키워낸 사람은 그의 어머니 조우상달 여사(76)다.만 다섯살이전에 황무봉문하에 들어가 춤을 배웠고 김백봉 송범 이매방 한영숙을 사사, 발레와 현대무용을 고루 섭렵하면서 일찍이 「비범」을 보여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다.무용가답게 아름답고 아담한 체구에 강인한 그의 춤은 언제나 「최고」라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살아있지 않은 춤, 자신을 일깨우지 못하거나 상투적인 무대형식」을 경계하여 「무위」로 가기 위한 긴 몸부림을겪을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자연그대로의 생생한 춤」, 모든 형식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기로 추는 「생명의 춤, 자유의 춤」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정이 많고 대범하면서도 불투명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선명한 성격이다.춤에 침몰하여 「우주의 심장에 도사린 춤의 핵심」에 파고들뿐 사교적인 자리에 나타나거나 단체공연에는 비교적 참가하지 않는다.그처럼 철저한 그에게 얼룩이 있었다면 럭키산하의 무용단 창단후 「세계적인 무용단」을 표방하고 밤낮없이 하드 트레이닝을 강행한 것이 단원들의 반발을 산것과 단체를 2년만에 해산한 것, 이로인해 아끼던 제자들과의 결별이 아픔으로 남아있으나 지금도 「공들이지 않고 달콤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안일한 정신은 용서되지 않는다」고 외면한다. 그동안 부산에 살고있다가 7년전 서울근교인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에 정착, 부군 정정철씨는 철학과 종교에 심취한 자유인이고 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살면서 일주일에 3일은 부산대 강의, 그외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집에 머물러 주로 안무와 관련된 사색을 즐긴다. 「묵」과 「샘」이후 지난봄 호암아트홀에서 보여준 그의 「메꽃」은 「예살과 서기를 배제하고 몸으로부터 치솟는 샘물같은 정기와 몸속깊이 스민 묵존을 춤추어」 다시한번 관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그러나 「회전하는 버선끝에서는 살풀이나 승무의 무보가 현란하고 사선과 나선형으로 말려 올리는 자진몰이부분은 한층 미의 극치를 이루어」 지난날 김영태가 그의 「살풀이」를 보고 「김현자의 살풀이는 독하고 요기가 서려 한의 끝자락이 강물에 녹는듯하다」던 평을 상기시킨다. 한군데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도 그것이 한낱 시도나 실험정신이 아닌 「완성된 정품」이기를 원하는 그는 무대 한복판에 박힌 「한덩어리의 보석」인양 언제라도 눈부신 광채를 발하면서 「이시대 찬연한 존재」임을 그때마다 확인시켜 주고 있다. □연보 ▲1947년 경남 진주 출생 ▲54∼74년 황무봉 사사외 김백봉 한상묵 이매방 송범 한영숙 사사 ▲57년 진주개천예술제 특상·한국무용협회 주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신인상 ▲63년 이화여대 주최 전국무용콩쿠르 1등 ▲70년 이대 무용과 졸업 ▲75년 김현자 무용발표회 ▲76∼82년 부산시립무용단장 ▲79년 일본 오키나와 한국인위령탑건립 5주년기념 초청공연 ▲82년 논문 「동래 기방무에 대한 연구」로 동아대대학원서 석사 ▲83∼현재 부산대 무용과 교수 ▲83년 김현자무용단 창단,뉴욕 한국문화원 및 호암아트홀개관기념 초청공연,마사 그레이엄센터 하계 연수 ▲84년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및 미국 한스빌본브라운센터 초청공연,머스 커닝햄댄스스튜디오 연수 ▲85∼87년 럭키창작무용단장 ▲96년 아시안게임 개막식 안무 ▲87년 김현자 춤아카데미 설립,서울창작무용제 주관 ▲89년 김현자 「생춤」 발표 ▲92년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김현자의 춤」 공연(문예회관 대극장) ▲94년 한양대서 이학박사,백남준 기획초청 뉴욕 코트하우스극장공연 ▲96년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초청 「한국의 소리」,현대춤작가전 「메꽃」 공연(호암아트홀) 〈대표작〉 「황금가지」 「분리에서 합으로」 「윤사월」 「바람개비」 「갯마을」 「여자 새되어 울다」 「보리피리」 「홰」 「하루1,2」 「생춤」 「샘」 「묵」 등 다수 〈수상〉 대한민국무용제 연기상(82년) 대한민국무용제 대상(84년) 부산예술대상(90년) 〈저서〉 「김현자 생춤의 세계」(문학사)
  • 김용준·김환기 화백 미공개작… 「근원·수화」전

    ◎「생전의 우정」 한자리서 활짝 생전 돈독한 교우관계로 화단의 화제가 됐던 두 작고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서울 환기미술관(391­7701)이 15일부터 11월17일까지 동양화가 근원 김용준과 서양화가 수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연결해 마련하는 「근원과 수화」전이 그것.근원의 수묵 담채화 16점과 30년대 후반부터 50년대초까지 걸친 수화의 초기 미공개작을 보여주는 자리로 눈길을 끈다. 근원은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귀국한뒤 동양화로 전향,문인화를 중심으로 한 동양의 정신세계를 일관되게 추구했던 작가.30년대와 40년대 작가 뿐만 아니라 뛰어난 논객으로 눈부신 할동을 벌이다 50년 9월 월북해 56년부터 67년 사망때까지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장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수화와는 수화가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과 고향 기좌도를 오갈 무렵인 30년대 후반과 해방전 40년대 초부터 교우관계를 갖기 시작,술자리에서 자주 어울렸던 것으로 화단에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1942년 작품 「문방정취」,41년작 「송노석불노」 등 근원의 작품과 수화의 초기 작품외에 수화의 부인인 김향안씨가 근원의 모습을 담은 「수화소노인 가부좌상」 등 생전 수화와 근원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작품들도 소개된다.〈김성호 기자〉
  • 한국작품 일서 전시회/한·일 현대미술의 만남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현대미술은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나.한국 현대미술을 본격적으로 일본인들에게 소개하는 국가적인 차원의 교류전이 처음으로 일본에서 열린다.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이 지난 92년부터 한·일교류전을 추진해와 오는 25일부터 11월17일까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관장 니시자키 기요히사·서기청구)에서 성사를 보게된 「한국현대미술 90년대의 실상」전이 그것.내년에는 이에대한 일본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게 된다.그동안 양국간에는 개인화랑 혹은 사설미술관 차원의 소규모 단편전이 열려 작품교류가 있었지만 양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이 전시주제나 작가선정,준비를 총체적으로 맡아 교류전을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의 이치카와 마사노리(시천정헌) 기획실장과 지바 시게오(천엽성부),나카바야시 가쓰오(중림화웅)씨 등 3명의 큐레이터가 한국의 주요 기획전과 전국 각지의 작가 작업실을 방문해 선정한 한국 작가는 모두 14명.서양화의 제여란·김홍주·김명숙·김종학·이영배·엄정순씨와 설치미술의 김수자·박인철·우순옥·유명균·윤석남씨,한국화가 김호득씨,조각가 정광호씨,사진작가 배병우씨가 그 초대작가들로 모두 한국화단에서 탄탄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는 30∼40대의 중견들이다. 이번 전시장인 도쿄미술관은 지난 68년 「한국근대회화전」을 마련해 모노크롬회화 중심의 한국현대미술을 소개한 곳.28년만의 한국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서양화·한국화·설치·조각·사진 등 전 장르를 통해 한국작가들의 조형정신과 실험성,한국현대미술의 발전된 면모를 함께 보여주게 된다. 정밀한 사진작업을 보여주는 사진작가 배병우씨는 대작 병풍형식의 「소나무」연작을 통해 한국인의 보편적인 한국인상을 표현하며 서양화가 김명숙씨는 목탄과 콘테,연필등 드로잉 재료로 선을 중첩시킨 신비로운 분위기의 나무숲을 선보인다. 엄정순씨와 김호득씨의 경우도 드로잉적 요소가 강한 편으로 엄씨는 주로 식물을 소재로 다채로운 색감과 질감을 살려 식물의 부분 또는 전체 이미지를 조형화하고 김호득씨는 자유분방하고 힘찬붓질의 독자적인 수묵기법으로 한국의 자연을 재현해낸다. 제여란씨는 특유의 검은 단색조의 화면으로 60∼70년대의 모노크롬회화가 90년대에 어떤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며 이영배씨는 흑과 백,그리고 수평선과 수직선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의 추상화면을 선보인다.70년대부터 극사실적인 표현기법으로 인물상과 풍경을 그려온 김홍주씨는 풍경과 인물,문자와 형상의 2중적 이미지를 표현한다.또 회화와 설치수법의 병용을 통해 복합적 회화작업을 선보여온 김종학씨는 포스터 이미지와,나사 볼트같은 물체의 결합등을 통해 「동과 서」,「전통과 현대」란 대립적인 이미지가 한 화면속에 공존하는 독특한 정물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또 설치작가 김수자씨는 강한 원색의 보자기와 이불천을 자연과 결합시켜 한국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조형화하며 윤석남씨는 빨래판이나 나무판에 사람의 형상,특히 어머니의 초상을 만들어낸다. 이밖에 나무의 재,석고로 만든 뼈,살아있는 장미꽃으로 「생과 사」의 문제를 다루는 박인철씨,형체를 알아보기 힘든거대한 인간군상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해 파고드는 유명균씨의 작업이 모두 한국 작가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예술관을 드러내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 동양화가 박대성(이세기의 인물탐구:104)

    ◎청한­적요가 배인 시인같은 화가/한때 전국산천 스케치… 실경산수” 화풍지켜/인위·조작이 없는 소쇄한 화격에 선모심이… 희부연 연묵과 엷은 보라빛이 먼산을 이루는 가운데 가늘고 섬세한 수목사이로 청명한 물줄기가 운문율처럼 퍼져 있다. 사방이 온통 겨울을 재촉하는 계절의 끝에서 수면에 비친 스산함은 청한과 적요의 시를 흩뿌린다. 인적이 끊긴 촌가며 물가에 매어둔 빈 뱃전에도 긴휴면이 스며들어 보는 이의 가슴에 뭉클한 시심을 던진다. 소산 박대성의 수묵담채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소산은 시인같은 화가다. 실제로 화면에 시를 직접 써넣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카비르의 구절들을 어슷어슷 배경속에 수놓기도 한다. 「저 황홀한 피리소리를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누구의 피리소리인지는, 여기 등불하나가 타고 있다. 불꽃의 심지도 기름도 없이 연꽃 한송이가 꽃피어난다」 그의 작품은 간경·산뜻한 선묘가 특징이다. 묵광의 묘취를 한껏 펼쳐 마치 폭우가 쏟아지고 난뒤의 산자수명을 깊은 사유로 그려내고 있다.그중에서도 지난 94년 1천2백호 대작으로 일컬어지는 「성산포 일출봉」은 갈대가 휘날리는 일대장관을 「풍죽처럼 소화한」 호방한 화면이 일품이다. 이 한폭의 대작을 위해 그는 겨울태풍이 그칠줄 모르는 성산포에 머물면서 배를 타고 몇차례나 섬주변을 돌기도하고 봉우리의 성격을 소상하게 파악한후 「의젓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기상을 포착해냈다」고 말한다. ○추경·초동 즐겨 그려 1천호에 손댄 것은 경주 계림의 고목을 그린 「고목의 정원」이 처음이다. 수백년 풍상속에 의연히 서있는 계림의 노목은 그의 넘치는 화심을 움직여 「미의 내용을 구명하는 작업」에 철저하게 몰두할수 있게했다. 진한 먹을 튕겨서 쓰는 갈필대신 산마호라는 장봉을 써서 큰 그림을 그릴때의 일필휘지의 붓길과 은은한 번지기(휘염)로 변화가 풍부한 산의 형세를 제압한 것이다. 드넓은 공간에 그의 소재들을 들어앉히는 동안 『집사람이 먹을 갈아주는데 정말로 한도 끝도 없이 갈았다』고 웃는다. 부인 정미연씨는 생명이 집결된 누드화로 주목받는 서양화가다. 지방에서 활동하던 소산이 중앙화단에 부상된 것은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다음해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그때 심사위원의 한사람이던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새로운 작가, 역량있는 신인을 발견한다」는 대전의 취지대로 「그의 그림은 우선 한눈에 새로웠다」고 못밖는다. 소산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과 「커다란 수확」으로 화단에 받아들여졌다. 그는 주로 늦가을 풍경이나 초동을 즐겨 그린다. 평론가 유홍준은 그의 추경을 보고 「고담한 필묵과 스산한 운치의 적막감이 오늘날 박대성 작품의 미점」임을 상찬해 마지않는다. 작가자신도 아일과 풍요보다 쓸쓸함에 깃든 자연의 천리속에 고격이 숨어있음을 터득하고 있다. 그의 초기그림들은 까슬까슬한 붓자국을 들어낸 석묵으로 소슬한 한국의 산천이 안고 있는 정취를 섬세하게 표출해낸다. 그러나 88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대작전에 이은 최근의 작품들은 벽오동과 청오동, 청람이 넘실대는 바다와 수목에 산호색과 비취색 호박색을 장식하여 화사미를 보인다. 전경은 우람창울하고 원경은 생략과 절제로 짙고 엷고 가늘고 굵은 선과 색채가 상조되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나 그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적 시각은 빠른 붓의 속도와 날카로운 선획으로 스케일이 장대한 대작을 성취하였고 이는 「이제까지의 실경산수의 일반적 유형에서는 맛볼수 없는 다른 화격을 이끌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대해 오광수는 하나의 형식이나 틀에 안주해버리는 우리 미술풍토에서 「부단하게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자세는 「조선후기의 진경산수와 청전 소정을 중심으로하는 근대산수에 이은 「제3세대」로 정의를 내린다. 그는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화단의 시선을 집중시켰을뿐만 아니라 독학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그림을 공부한 것은 청대초기의 화집인 「개자원화전」이 바탕을 이룬다. 경북 청도 한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3살때 부모를 잃고 왼손마저 다치자 고향의 빼어난 경관을 사생하는 것으로 그는 외로운 시절을 보낸것 같다.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이고 형과 누나들의 도움으로 17세되던해 부산으로 내려가 서정묵화숙에서 사사, 부산동아대가 주최한 국제미전 입상과 21세때 국전 첫입선을 비롯해 연속 8회 입선이 그의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국전서 연속 8회 입선 그러나 연이은 국전입선후에는 당연히 특선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학맥 인맥이 없는 그는 번번이 도외시되었고 여기에 한맺힌 그는 「뭔가 최고가 돼야 한다, 실력으로 이 모든 것을 설욕하겠다」는 의지로 전국을 떠돌면서 혼자서 산천을 스케치해 나갔다. 『그림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는 고백에는 여전히 저항이 들어가 있다. 그가 화가로서 행운을 잡은 것은 대구매일신문 화랑개관기념 초대전이다. 대구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던 주경과 서동균 등 어느 한쪽을 선택할수 없었던 신문사측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이 전시를 계기로 대만과 일본초대전에서 그의 그림은 「소산화」로 크게 호평되었다. 당시 대만의 원로화가 양우명은 그의 그림을 「청전 이후」로 비유하면서 대만에 머물 것을 극구 권유했으나그는 중앙화단이 있는 서울에 정착했다. 그리고 뒤늦은 나이인 35세때 효성여대 회화과 출신인 정미연씨와 결혼, 부인의 그림자같은 내조가 「시대감각에 걸맞는 현대한국화」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자녀는 딸만 둘. 성격은 내성적인 편으로 일체의 그룹활동이나 단체전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가 평창동에 화실을 마련한 것은 10년간의 팔당시대를 거친 90년초부터다. 북악터널 못미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소산의 화실은 선비의 화숙처럼 은일하게 숨겨져 그의 정원과 화실은 하나같이 명품이다. 안방에서 내다보면 북악산 줄기가 사방으로 둘러치고 추분이 머잖은데도 연과 소나무와 죽의 푸르름은 작가의 초일한 화경인듯 시들줄을 모른다. 소산은 독특한 실험정신과 물결치는 소재의 전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는 화풍」을 지켜 기를 앞세운 작업보다 광활한 대자연을 테마로한 서정적 세계로 자기변신을 이루고 있다. 창일한 개성과 영롱한 구슬빛이 감도는 소산의 그림앞에 서면 인위와 조작이 없는 소쇄한 느낌, 거르고거른 영매의 화격에 선모심을 금치못하게 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에 한구절의 시를 품게한다. □연보 ▲1945년 경북 청도출생 ▲66년 국전 18회부터 25회까지 8회 연속입선 ▲68년 부산동아대 국제미전입선 ▲70∼80년 국내서 8차례 개인전개최 ▲74∼75년 태만 공작화랑초대개인전 ▲75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개관기념초대 개인전 ▲76년 일본 후쿠오카(복강) 선화랑개인전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 「추학(추학)」으로 장려상수상 ▲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 「상림(상림)」으로 대상수상 ▲80년 「계간미술」이 선정한 「새시대 9인전」,한국 화랑협회초대 「12인전」출품 ▲81년 국립현대미술관주관 「한국미술,81년」「한국현대수묵화전」 신세계미술관선정 「청년작가 10인전」초대출품 ▲82년 경기도 남양주 팔당정착 ▲84년 샘터화랑초대 「박대성·황창배 2인전」 ▲85년 국립현대미술관초대 「현대미술초대전」출품,가나화랑전속 ▲86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초대 「박대성·강대철 2인전」,도쿄 후지갤러리개인전 ▲88년 서독 쾰른시 파리나갤러리 초대전,중앙일보주관 「박대성 작품전」(호암미술관)에 대작 1백여점전시(3월9일부터 30일간) ▲89년 윤범모와 중국문화기행 ▲90년 백두산 만주일대여행,가나화랑초대 제15회 개인전 ▲94년 실크로드 기행전(동아갤러리),개인전(가나화랑)
  • 「역사적 인물 20인」 이색 전시회

    ◎수묵화가 김호석씨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전 13일부터/동양적인 초상화풍에 현대적 표현 조화/역사상황 묘사 풍경화 18점도 함께 전시 「가을 등불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되새기니/세상에 선비구실 어렵기만 하구나」­.일본침략에 자결로 항거한 선비,매천 황현이 자살전 남긴 절명시다. 일본침략에 선비정신으로 맞선 황현을 비롯,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민족해방과 국토통일을 위해 치열하게 살거나 외곬 인생을 꿋꿋이 지킨 역사적 인물 20명의 인물화를 보여주는 이색 전시회가 열린다.1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동산방화랑(733­5877)에서 열리는 한국화가 김호석(39)의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전. 홍익대 출신인 김호석씨는 전통초상화에서 집요하고도 오랜 훈련을 거쳐 정확한 묘사력과 발묵,먹의 농담처리에 뛰어나 이 시대의 장인이란 평을 받고 있는 수묵화가.주로 역사적 현장의 인물을 가려 리얼리즘 계통의 초상화에 치중하는 작가다. 이번 전시는 김씨가 지난 86년 황현 그림을 처음 그린 뒤 전통 초상화 기법을 변형시켜 최근5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한 인물화중 엄선한 작품 20점과 이 인물들과 관련한 역사적 상황을 나타내는 풍경화 18점 등 모두 38점을 보여주는 자리.황현외에 국가개혁의지의 선구자 김옥균,농민전쟁 지도자 전봉준,항일의병운동의 선도자 최익현,독립운동의 거목인 안창호 신채호 홍범도,해방직후의 민족지도자 김구 여운형,현대 종교계에 우뚝선 존재인 성철 스님 관응 스님 김수환 추기경,문화예술계를 빛낸 최순우 임창순 윤이상 박경리,남북화합을 시도한 문익환목사,민중시인 김남주,민주화투쟁의 기수인 국회의원 김근태의 초상화와 무명 농민상이 나온다.이가운데 생존자는 김수환 추기경과 관응 스님,토지의 작가 박경리,한학자 임창순,김근태 의원 등 5명. 김씨는 이 인물들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동양적인 초상화풍인 전신사조 양식으로 그리면서도 현대적 표현성을 창의적으로 조화시킨 점이 특징이다.전신사조란 대상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인품과 정신 등 내면세계까지를 담아내는 것.인물묘사에 정확성을 주기위해 김옥균 관응 스님 성철 스님의경우,한지에 들기름을 먹인 밑그림 형태의 유지초본 양식으로 그렸고 박경리 윤이상 문익환 목사 김근태 의원은 한지 뒷면에서부터 30여차례 색을 덧칠해 앞면에 배나오도록 배채로 처리한게 눈에 띈다. 이번 전시는 김씨가 민족의식과 외길인생에 투철했던 우리 역사의 대표적 인물들을 얼마만큼 철저하게 형상화했는가와 함께 전통초상화의 현대적 접목형태를 정리해보는 자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새 시집 「사이」 출간 이시영씨(인터뷰)

    ◎“풍요 담긴 커다란 시 쓰고 싶어요” 『나는 주로 모든 것이 잠들고 난 한밤중에 시를 씁니다.시상을 차곡차곡 오랫동안 재워뒀다가 원고지에 옮길땐 단숨에 풀어씁니다』 이시영 시인이 신작시집 「사이」를 창작과 비평사에서 냈다. 요란한 수식이며 군더더길랑 죄다 떨어버린 시인은 곧바로 핵심을 파고든다.그래서인지 유달리 짧은 그의 시들은 말끔히 닦인 유리창을 통해 내다뵈는 풍경이나 한폭의 담백한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순간들」) 언어로 하나의 화폭을 짜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알싸한 진리를 드러내려는 시인은 어찌보면 선승을 닮은 것도 같다.하지만 시인이 지향하는 것이 탈속은 아니어보인다.그렇기는 커녕 어머니의 죽음앞에 절절하고 죽음과 인사동에 가 함께 한잔 걸치기도 하는 그는 생사의 「사이」에 걸린 인간존재의 숙명을 예리하게 느끼고 있다. (「산천아파트」) 정지된 풍경에서도 사람의 흔적을 읽어내는 그의 눈은 굴뚝에 오르는 연기를 보고 인간을 감지한 브레히트의 인문적 시세계를 빼어 닮아있다. 이씨는 『아름답고 뚜렷하긴 해도 쉴곳이 없는 쨍쨍한 햇볕같은 시들을 많이 본다』면서 『풍요로운 의미가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큰 그늘을 거느린 시를 쓰고싶다』고 말했다.
  • 「오늘의 한국화 그 맥락과 전개」전/오늘부터 인사동 덕원미술관

    ◎혼돈된 사회속 전통의 미 표출 표현양식에 파격적 실험까지 이뤄지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화.정통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조차 적지 않은 가운데 한국화의 현실을 살피는 특별전 「오늘의 한국화­그 맥락과 전개」전이 6∼1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덕원미술관(723­7771)에서 열린다. 「혼돈된 현대사회속에서 전통의 미의식을 표출하는 작품을 한데 모았다」는 취지의 이 전시회는 한국화의 미래를 이끌어갈 작가들의 세대간 조형의식과 기법등을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작가 40여명을 초대했다. 한국화의 위상을 새롭게 점검해보는 자리로 손색이 없기 위해 전시내용은 네개의 구획으로 나눠 해당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수묵을 기조로 하면서 사경산수를 다루는 작가 오용길·문봉선등 10명의 작품과 작가 이철주·이종상·이왈종 등 11명의 작품이 전시되고 실험적 범주가 넓은 젊은 작가 작품도 출품된다.
  • 여류작가 이윤희씨 서울·파리 개인전

    여류작가 이윤희씨(47)는 한국화(서울대)를 전공하고 파리에 가서 다시 예술및 고고학(소르본대학원 박사과정)을 전공한 독특한 약력의 소유자다. 이런 과정에서 창출되고 있는 그녀의 작업을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동·서양화의 융화라는 상투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동양고유의 정신세계로의 회귀를 꾸준히 추구해가고 있는 값진 작업』이라고 평했다. 최근 어느 때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이씨가 올겨울 서울과 파리에서 개인전을 잇달아 개최하는 의욕을 과시한다. 29일부터 12월5일까지 서울 공평아트센터(733­9512)에서 개인전을 갖고 12월14일부터 27일까지 파리의 한국문화원에서 1차발표의 자리를 꾸민 후 내년 1월16일부터 2월17일까지 파리 중심부 화랑가에 있는 모던아트갤러리에서 화랑초대전을 갖는다. 수묵화의 세계속에 화사한 색채를 가미,생기 있는 화면을 구현하면서 독특한 조형어법을 창출해내는 그는 서울전에서는 최근 천착하고 있는 「꽃담」시리즈를 선보이고 파리전에서는 수묵으로 담아낸 「에펠탑」등파리풍경을 출품한다.
  • 비엔날레서 졸도/관집중씨 영결식

    광주 비엔날레에 참석했다 갑자기 쓰러져 치료를 받던중 지난 24일 숨진 대만의 세계적인 수묵화가 관집중(64)의 장례식이 26일 전남대병원에서 치러졌다. 장례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약력 소개,최종만 비엔날레 사무총장의 조사낭독의 순으로 진행됐다.부인 팽용용(60)등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따라 화장한 뒤 유해를 안고 이날 대만으로 돌아갔다.유족들은 고인이 가장 아끼던 작품 연화우를 광주시에 기증했다. 광주비엔날레 동양화와 문인정신전에 목호방학과 대미불언을 출품을 준비하던 중 지난 19일 저녁 갑자기 쓰러졌었다.〈광주=최치봉 기자〉
  • 「뇌사 대만 화가」 끝내 사망/생전 뜻따라 한국인에 안구 기증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 비엔날레 참석차 광주에 왔다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대만의 세계적인 수묵화가 관집중(64)씨가 24일 하오2시25분 쯤 전남대병원에서 숨졌다(서울신문 23일자 22면 보도). 관씨의 부인 팽몽용(50)씨는 한국을 좋아한 남편의 뜻에 따라 관씨의 안구를 한국인을 위해 기증키로 한 서류에 서명했으며 장례식도 한국에서 치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 광주 비엔날레가 펼친 의의와 과제

    ◎세계 미술계에 한국 존재 새롭게 각인/신선한 구성미… 국제무대진출 발판/작품 마구잡이 진열·소개부족 아쉬움 광주 비엔날레의 탄생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속에 크게 자리매김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나 독일의 카셀도큐멘타,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는 물론 제3세계인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이 오늘 날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가며 중심부에 자리잡았듯이 세계 미술계에 한국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시킬 수 있는 큰 계기를 광주비엔날레가 마련한 것이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 국제 미술 시장에서 한국 작가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경향에 맞물려 세계 미술제 주최국으로서 한국의 이미지가 달라지면서 한국작가들의 국제무대 진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또 신생 비엔날레답게 구성면에서 세계 미술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우선 작가들의 연령이 평균 37세로 젊고 세계 미술계에서 소외돼온 남미,아프리카,오세아니아,아시아등 제3세계 작가들을 전면에 부각시켰다.대상수상작가가 25세의 쿠바인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복잡다단한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예술이념을 제시하기위한 것이라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 「경계를 넘어」도 세기말의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감성과 예술형식을 수용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 미술계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진정한 미술행사로서 비엔날레를 과연 얼마만큼 잘 관리 운영하고 지켜나가느냐에 있다. 본 전시와 관련된 여러 부분에서 전문적인 실수가 드러날 경우 국제 비엔날레의 권위는 서기 힘들다. 이번 비엔날레의 도록 내용은 오자와 허점투성이인데다 전시장의 작품도 지역적 구분등 특별한 배려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진열됐다.작품에 대한 기본적 소개가 부족해 난해한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은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졸속추진에 따른 이같은 실수들이 다음에는 기필코 개선돼야 한다. 첫 해인만큼 출품작들의 수준을 까다롭게 가늠할 것은 아니나 앞으로 출품작가를 선정하는 커미셔너의 안목과 권위가 크게 뒷받침돼야 비엔날레가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국내미술인들의 관심과 후원이 지속적으로 따라야한다.현실적으로 미술계의 모든 흐름이 서울에 치우쳐있는 상황에서 지방에서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자칫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때문이다. ◎개막 이틀째 이모저모/북 작품전시장 아침부터 “장사진”/「작품설명 헤드폰」 제대로 작동안돼 불만 ○…광주 비엔날레 개막 이틀째인 21일 상오 비엔날레 행사장인 중외공원으로 향하는 시내 도로에는 비엔날레 홍보 아치탑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심한 교통체증을 유발.이날 사고는 광주 비엔날레 개최를 알리는 대형 아치탑의 절반가량이 무너져 비엔날레 행사장으로 가는 4차선을 막아버린 것으로 무너진 아치탑이 철거될 때까지 행사장으로 가던 관람객과 출근 시민들이 꼼짝없이 3시간가량 갇힌채 불편을 겪었다. ○…중외공원내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 2층에 마련된 프레스센터는 20일 개막식 취재를 마친 기자들이 대부분 철수해 썰렁한 분위기.프레스센터에 파견된 비엔날레 자원봉사자들은 『개막 3일전부터 내외신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이느라 북새통을 이루던 것과는 퍽 대조적』이라면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는데 왜 프레스센터가 이처럼 텅비게 됐는지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 ○…비엔날레 조직위는 본 전시장인 중외공원내 신축전시관 1층 로비에 전시작가와 작품을 설명해주는 수신 헤드폰 5백개를 마련해 관람객들에게 2천원씩에 대여하고 있으나 헤드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관람객들이 불만.관람객들은 각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작동하도록 돼있는 이 헤드폰이 일부 전시공간에선 설명이 끊겨 안타까울때가 많다며 아쉬움을 토로.특히 이 헤드폰은 당초 우리말과 영어로 입력되도록 계획했으나 영어입력이 안돼 외국인 관람객들에겐 무용지물. ○…중외공원 북한관에서 열리고 있는 북한 미술품 전시회에는 동양화와 도자기,금속공예품 등 북한작가 96명의 작품 1백40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이번 전시가 국내 공식행사에서 처음 시도되고 있는 북한전인 만큼 이른 아침부터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등 큰 관심을 반영.이중 북한의 천재 소녀화가로 알려진 오은별양(15)의 작품 7점가운데 수묵화인 「기러기」(540×90),「참대는 곧고 바르다」는 큰 화폭에 담긴 장중한 느낌 등으로 북한 미술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비엔날레란/「2년마다 개최」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1895년부터 「2년주기 국제미술행사」 통용 「비엔날레(biennale)는 「2년마다 열리는」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이 용어가 「2년마다 열리는 국제적 미술행사」라는 의미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1895년 베니스 비엔날레부터이다.그후 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이 열리고있으며 미술이외에 영화 음악 무용등을 포함하는 종합축제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3년마다 열리는 트리엔날레(triennale)로는 인도 트리엔날레가 있다.
  • “광복 50돌… 나라사랑 새롭게”/민족사 관련 전시회 대성황

    ◎무궁화·태극기·애국지사 작품전 수만명 찾아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기위해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각종 전시회등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4일부터 서울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나라꽃 무궁화 대잔치」에는 광복절인 15일 하룻동안만 3만여명의 시민들이 몰리는등 대성황이다.19일까지로 예정했던 행사 기간을 하루더 연장했다.예상관람객은 10만여명. 이 행사에는 「백단심계」,「배달계」,「아사달계」 등 다양한 계통의 무궁화 70종과 개인이 출품한 5백점의 무궁화가 전시돼 있다. 또 서울시와 국기선양회가 지난 4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대한민국 태극기 변천사」전시회에도 하루 평균 2천∼3천명의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1백40평규모의 전시장에 국·내외 자료 1백50여점이 선보인 이 전시회의 주 관람객은 방학을 맞은 초·중·고 학생들과 주부들.16일까지 3만여명이 다녀갔다.의외로 중장년층보다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온 주부들이 훨씬 많았다. 이와함께 총무처산하 정부기록보존소가 지난 9일부터 서울종로구 창성동 정부기록보존소 전시실에서 열고 있는 「기록으로 본 광복 50년」전시회에도 광복절인 지난 15일 하룻동안 1천여명이 관람하는등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1920년대의 서울전도,백범 김구선생의 장의에 관한 안건을 의결한 국무회의록등 5백여점의 자료 가운데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들도 적지않다. 이밖에도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항일독립투사들의 서예작품·수묵화·유언·맹세문 등을 한자리에 모은 「애국지사유묵전」에는 꿋꿋한 절개의 향기를 맡으려는 학생 등 관람객이 하루평균 6백여명이 찾고 있다. 다음달 10일까지 서초구 양재동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열리는 이 전시회에는 구한말 민영환 선생의 유언,윤봉길 의사의 한인애국자선서문,안중근 의사의 유묵 4점 등 항일독립투사 1백1명의 작품 1백30점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 및 무정부주의이념에 바탕을 둔 독립운동가로 분류돼 조명을 받지못했던 홍명희,여운형,김원봉,장건상 선생 등의 수묵작품도 공개돼 관람객들로 부터 이념을 초월한 전시회라는 평을 받았다.
  • 한국화가 산정 서세옥(이세기의 인물탐구:79)

    ◎스스럼없이 화필 휘젓는 큰 예인/작품마다 영혼이 움직이듯 팽팽한 긴장감/화려한 채색 거부… 발묵·석묵법 자재로이/77년 「한국현대회화 유럽전」때 “동양문화의 진수” 보여 산정의 성북동 무송재는 지금 녹음이 한창이다.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벌써 그 짙푸른 녹색으로 인해 집안은 유현한 산곡과도 같다.안채로 통하는 디딤돌 외에 새파란 이끼가 휘덮인 마당은 모든 것이 푸른 가운데 허공에 우러른 첨단에마저 서슬 푸른 냉기가 감돈다.「일편연홍난입문,한조각의 붉은 빛도 문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산정의 말대로 영롱산관 죽리관 수죽원하관 창하헌 등 그의 당호들은 집안에 넘치는 푸른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화실 창앞에 쭉쭉 뻗어 있는 청청하고 곧고 차가운 대나무며 지금 막 피기 시작한 보랏빛 추국에 이르기까지 추호의 시든 빛을 보이지 않는 영롱한 환경은 서울 한복판이건만 실로 아득한 선경인 듯 감탄스럽기만하다.여기에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과 한옥중의 한채에 온통 중국고서적이 산적해 있어 그의 방대한 독서량이 얼마만한것인가를 미루어볼 수 있다. 그는 성북동 전에는 노송으로 우거진 월곡동에 살다가 대학때의 스승인 근원 김용준을 그리워하여 지금부터 20여년전 스승의 노시산방이 있는 이곳에 한옥을 지어 이사했다. ○회화예술 변혁 앞장 산정은 널리 알려지다시피 서시문화를 두루 갖추고 상식에 안주하려는 회화예술에 변혁과 개혁의 화업을 이뤄낸 동양화 대가다.초기에는 범속과 권위와 형식에 대한 강렬한 저항정신을 앞세워 「고루협애가 없는 방종자일한 표현」으로 개혁의지의 향방을 모색하다가 차츰 「감각의 해방을 원점으 로 되돌린 절제화면」을 이룩하면서 남보다 일찍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평론가 이경성씨는 그의 첫번째 전시 팸플릿에서 그와 같은 유사성을 「명대의 서위나 청초의 석도」에 비유하고 오광수 역시 「수묵화를 감필묘법으로 구사한다는 차원에서 남송의 양해나 선화파의 목계의 화격」에 닿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병관씨는 「모든 진실한 작품은 침착하다」는 칸딘스키의 말을 인용하여 『산정의 작품은 무한을 생각케 하는활짝 트인 화면공간속에서 「숭고한 형이상학적인 회화」를 구축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과연 그리지 않으면서 그리는 상태,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듯하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표현하려는 자기모순을 함축한 그의 작품은 「그 형식과 내용면에서 영혼이 움직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89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군무」「사람들」시리즈는 「붓으로 그렸다기보다는 붓을 던졌다는 표현이 더욱 옳다」는 정병관씨의 평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 바 있다.즉 「붓의 전진하는 속도감과 상하로 누르고 떼는 강약의 압력은 낭만적인 금선의 무쌍한 변화」와도 같으며 「발묵과 석묵법의 자재로운 움직임」은 바로 산정 그림의 즉흥성과 필연성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산정은 「스스럼없이 필력을 구사할 줄 아는 이 시대 재능이 뛰어난 예인」으로서 「흉중의 고고특절한 품성 없이는 문자향과 서권기를 지니지 못한다」는 추사의 지론을 실천시킨 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20세때 뒤늦게 입문 그가 화단에 등단한 것은 아직 대학재학중이던 20세였으나 뒤늦게 45세되던 해 서울 첫 개인전을 열 때까지만 해도 그의 그림에는 일정한 채색과 반추상의 형태가 깃들여 있었다.그러나 산정 자신은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메마른 구각이나 비좁은 질곡은 싫다」고 천명했고 이후 채색이 없는 검정색의 선묘형상들은 그 기호적인 성격과 힘과 자발성을 채색의 경우보다 한층 강하게 나타내게 되었다. 그는 우리 화단에서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언제나 커다란 구심점을 긋고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오늘날 수많은 미술대전에서 동양화가 구상·비구상으로 나눠지게 된 것도 단순히 이 작가의 작용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화단에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산정은 유럽쪽에 눈을 돌려 수많은 해외전에서 한국회화의 독자성을 인정받았다.그중 77년 9개월에 걸친 「한국 현대회화 유럽전」에서는 현지 신문들이 「서세옥의 추상적인 묵화들은 동양화라 일컬어지는 한국 전통미술의 현대적 전모를 집약함으로써 서양인에게 동양문화의 진미를 보여주었다」(르피가로 78년6월28일자)고 쓰기도했다. ○올 11월 개인전 열어 그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고서화가 있는 집안환경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며 자라났다.독립운동을 하던 부친 서장환(석련)공은 세 아들중 일총한 산정을 특히 총애하여 「성동」이란 아호를 내려주었으나 대학시절 영운(김용진) 춘곡(고희동) 소전(소전 손재형)등 그의 스승들이 「세옥」의 옥자와 관련된 「옥출곤강(금과 옥돌은 산에서 캔다)」이란 의미의 「산정」을 지어주었다. 지난해 서울대 정년퇴임후 산정은 무송재 녹음속에 파묻혀 그의 전생애가 그렇게 일관해왔듯이 자유하는 예술가로서의 절제와 생략과 탈속의 묘를 구체화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의 테마는 여전히 인간에 집착한다.세월도 서릿발 같은 그의 의지를 피해가는지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적진에 뛰어들어 호랑이나 사자를 사로잡듯」 우주의 올바른 기운을 수백호 화면속에 역동적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요즘은 오는 11월로 잡힌 개인전과 그가 발족한 한·중미술협회의 요청으로 그동안 써온 한시를 친필서예로 꾸미는 「산정문집」 출간준비에여념이 없다.그중 연전에 중국 양자강을 둘러보며 지었다는 「단현」이 눈에 띈다. 「비지양현회 농현감금심 고산류수곡 적막실지음 석현호불기 천재거무회 수주아양곡 공류일금대(이땅의 두 현인이 만나 거문고로 서로 마음을 느끼니 이는 고산곡과 유수곡이라,지음이 없으니 적막하구나.옛 현인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천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누가 고산 유수곡을 연주할 것인가,속절없이 거문고 튕기던 언덕만 남았구나)」이는 중국 춘추시대의 거문고 명인이던 백아가 그의 거문고소리를 좋아하던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현을 끊어버린 일화를 그린 시로 그들이 거문고를 타던 양자강가에 서자 이런 시를 읊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3∼4년전까지만해도 송죽 우거진 뜰에서 산정은 가까운 이들을 모아 거문고며 가야금연주를 즐기곤 했다.그러나 명고수 김명환씨가 4년전 작고하고 단골손님이던 언론인 예용해씨마저 지난해 타계하자 화가는 혼자 남아 그때의 감흥을 한편의 시와 한점 획(화)으로 남기게 됐나보다. 이제 산정댁의 대나무가 그 놀라운 푸른빛을 뻗치고 소나무향이 온산을 뒤덮어도 이 풍치를 음미할 만한 유장한 현금은 울려지지 않는다.단지 우거진 나뭇닢이 단 한 잎도 시든 기색 없이 싱싱한 생명력을 지니는 것처럼 시들 줄 모르는 산정의 붓끝은 그 탁발한 금선의 선율로 「청청속의 노주」를 결국 성취하게 될 것이다. □연보 ▲19 29년 대구생 ▲49년 제1회 국전서 「꽃장수」로 국무총리상 수상 ▲50년 서울대 미대 졸업 ▲54년 제3회 국전서 「휘월의 장」으로 문교부장관상 수상 ▲54∼95년 서울대 미대 교수 ▲59년 묵림회 창립대표위원 ▲61∼82년 국전 심사위원·운영위원 ▲62년이후 상파울루비엔날레 칸국제회화제 이탈리아회화제 인도트리엔날레 도쿄비엔날레 파리현대미전 등 출품 ▲64년 국제조형예술(IAA) 한국위원회위원장,신인예술상 심사위원장 ▲64∼88년 한국미협이사장·회장 ▲66∼71년 유럽·남북미 34개국 여행,한국현대미술 프랑스순회전 ▲70년 국전 초대작가상,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 ▲73년 예총부회장 ▲74년 서세옥전(현대화랑초대전) ▲77∼78년 한국현대 동양화유럽순회전,스웨덴 폴란드 독일 프랑스 ▲79년 서세옥전(도쿄 우에다화랑 초대) ▲82∼85년 서울대 미대학장 ▲83년 서세옥전(뉴욕 퍼시픽아시아박물관초대),전국미대협의회회장 ▲85년 서세옥특별전(뉴욕 바로카레지미술관 초대) ▲89년 서세옥전(현대화랑 초대),뤼턴오브 마르코폴로전(프랑스 파리) ▲90년 한국작가전(중국 북경),한·중미술협회 결성 ▲91년 한·중미술대전(중국 북경)이후 서울·남경·상해 등지서 교류전시 그외 한국회화대전및 아세아현대미술전 한국미술상황전 LA87미술전 조선일보미술관개관기념 현대작가초대전 서울올림픽아트 국제현대미술전 등 다수 출품,국민훈장석류장 서울시문화상 한·중미술협회회장,미협고문
  • “흑판을 화폭으로… 밥상을 오브제로”

    ◎「이색재료」 자유롭게 사용 “눈길”/중견화가 김명희씨­신예 홍지윤씨 개인전/김명희/폐교된 교실 포스터통해 시간의 흔적 묘사/홍지윤씨/전통성에서 현대성 탐색… 다양한 조형작업 「캔버스에 유채」「한지에 채색」이라는 전통적인 재료개념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한 두 작가의 개인전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중견화가 김명희씨는 9년만에 갖는 개인전(원갤러리·12∼25일)에서 학교에서 수업용으로 쓰이던 흑판에 그린 근작들을 내놓았다. 또 공평아트센터에서 16일까지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신예작가 홍지윤씨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자주 대하는 밥상을 오브제로 사용해 눈길을 끈다. 김명희씨가 흑판을 화폭으로 선택한 것은 그의 작업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서울대 미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맨해튼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던 그는 5년전부터 화가인 남편 김차섭씨와 강원도 내평리의 교실 네개짜리 국민학교 분교를 가정집과 화실로 꾸미고 은거하고 있다.교실 2개는공동의 공간이고 각자 교실 1개씩을 화실로 쓴다. 사실주의 화법으로 시간의 흔적을 묘사하고 생활속의 느낌을 심도있게 추적해왔던 그는 폐교된 국민학교 교실에 남겨진 태극기,칠판,각종 표어와 포스터를 통해 느꼈던 아이들의 에너지를 구체적인 기억의 장면들로 하나하나 재현해 냈다. 추억과 형상을 다룸에 있어 기록자로서의 치밀한 묘사와 목격자로서의 객관적 태도를 견지하려는 그는 「칠판」이라는 관념화되고 인지된 사회적 기호를 이용했다. 홍지윤씨는 하고 많은 재료중에서 「밥상」을 택한 것은 『단순한 조형적 실험에서 착상한 것이라기보다 삶의 실체적인 의미에서 밥상이 인간의 삶과 함께하는 오브제로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밥상외에 한지와 삼베 등 새로운 오브제들을 전통적 안료인 분채와 석채와 병용하면서 다양한 조형작업을 시도한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동양화를 단순한 수묵채색에 한정하기보다 재료를 마음대로 써가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로 전통성에서 현대성을 찾는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쓰여질 것을 기다리는 칠판이 아닌 칠판,먹을 것을 올려놓는 밥상이 아닌 밥상.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이에 대해 『재료에 대한 작가의 자유로운 태도의 좋은 반영』이라고 평했다.
  • 동산방 초대전의 한국화가 신명범씨(인터뷰)

    ◎“흙에서 나 흙에 묻히는 생명체 순환 묘사” 『묵선에 의해 문자화 된 이미지 작업이 지금까지 제가 추구해 온 세계입니다.그리고 형상이 매우 요약된 것이 제 그림의 특성 입니다.그러나 이번 전시작품은 그림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종전보다 서술성을 많이 가미해 봤습니다』 12일부터 21일까지 동산방(737­5877)에서 초대전을 여는 한국화가 신명범씨­. 설화성과 풍경적 내용을 특유의 이미지로 다뤄온 신씨는 그림의 내용이나 기법에서 독자적인 내면을 지고있는 작가.우선 매재(재료)의 개념에서부터 전통방식을 거부,종이에 스며드는 수묵과 모필에 의한 운필의 작동을 벗어나 화면을 두껍게 발라올려 마치 회벽처럼 형성된 안료층에 갖가지 이미지를 서술해내고 있는 것.특히 흙과 아크릴컬러를 활용한 현실감 넘친 마티에르와 질감은 그 특유의 방법적 시도로 정평이 나 있다.내용 또한 남달라 토속적 서정성에 뿌리를 둔 설화성을 추구하고 있다. 『소,닭,물고기,나무,꽃,인간 등을 소재로 그 모든 삶이 흙속에서 피어났다가 흙속에 묻혀 사라지는 순환의 단면과 원초성의 회귀를 표현한 근작들을 선보이게 됐다』는 신씨는 이 전시에 30여점을 내놓을 예정이다.
  • 임란때 뺏긴 국내최고불화/일본 사찰서 발견/통일신라때 작품추정

    【부산=이기철기자】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국내 최고의 수묵 불화가 일본에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김문길(50·일어학과)교수는 최근 일본 오카야마(강산)현의 단조사(탄생사)에서 1천여년전의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수묵 불화를 발견했다고 밝히고 2일 사진과 관계자료를 공개했다. 임진왜란때 왜장 하라타 데이사(원전정좌)가 조선에서 약탈해간 이 그림으로 채색이 전혀없는 수묵화로 중국 당나라때 괴승 한산과 습득을 가로 90㎝,세로 1백40㎝의 종이 위에 그린 것으로 한산이 빗자루를 들고 습득이 책을 보고 읽는 해학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 제빵기술에서 실내디자인까지/주부 평생교육원 배울거리“풍성”

    ◎숙대 등 11곳 1∼3월 개강/숙명여대/컴퓨터·사진·금속공예반 등 다양/덕성여대/문예창작 등 16개 프로그램 마련 「새해에는 생산적인 무엇을 해봐야 할텐데…」­매년 초 주부들이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생각이다.최근 몇년 전부터 이화·숙명여대 등 각 대학들이 실시하고 있는 평생교육원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주부들의 이같은 바람을 들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제과제빵기술」,「인테리어디자인」에서부터 동양철학,중국문제,뉴스타트건강법 등에 이르기까지 유익한 배울거리를 제공하는 평생교육원의 개강시기는 1∼3월 사이.대학의 수준높은 교육환경과 양질의 강의를 접할 수 있는 평생교육원의 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숙명여대는 박물관의 각종 유물과 유적지 문화재를 교육자료로 매학기 3회 고적답사 코스가 있는 박물관특설과정 및 외국어 컴퓨터 예능 몬테소리 및 보육교사 양성과정,미용산업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련해놓고 있다.예능의 경우 사진 도예 염직 실내디자인 금속공예 아동미술 음악교육 서예 무용 등 29개 부문이있다.문의 710­9140∼1 산업교육전문인 과정과 문예창작과정 등 총 10개의 교육과정이 있는 연세대 사회교육원의 경우 여성자원 개발과정과 실내디자인 전문인과정 등이 주부에게 알맞다. 홍익대 미술디자인교육원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는 채색화 수묵화 유화 판화 등 9개 부분이 있는 미술실기과정과 컴퓨터그래픽·의상·실내·기초 디자인의 디자인과정이 있다.교육기간은 1년 단위.문의 320­1411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은 모두 16가지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일반교양과 미술 생활예술 문예창작 등이 있는데 플라워디자인,사진,실내장식,패션일러스트레이션 등의 강의를 접할 수 있고 스트레스 해소 및 건강과정이 있다.특히 탁아소가 마련돼 있어 주부들의 편의를 돕는다.문의 765­1846 동덕여대 여성사회교육원은 디자인전문교육과정을 특징으로 한다.컴퓨터 및 패션,보육교사과정,시각정보 디자인과 정보사무처리과정이 있다.문의 919­1420,913­2048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은 일반교양강좌와 전문자교육과정으로 나뉜다.문학 역사 철학 무용 등에관한 31개 교양과정과 컴퓨터,레크레이션지도자,노인교육지도자,중국문제 전문과정 등 11개 전문자과정이 있다.문의 360­3115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산수화 6백여점 모아 개인전 이원좌씨(인터뷰)

    ◎“심산유곡 그리며 세월 잊어요”/길이 47m 청량대운도 눈길… 2백일 걸려 완성 『한장의 스케치를 얻기 위해 인적 끊긴 심산유곡 바위틈에 끼어 앉아 너댓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내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그러나 스케치를 화선지에 옮겨 작품이 익어갈 때의 즐거움에 취해 세월 잊고 살아왔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전국 산천을 주유하며 그린 산수화를 모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29일까지)를 열고있는 야송 이원좌씨(57)­.천년여 이어져 온 전통 수묵산수화가 서구의 거센 물결에 밀려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전통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뜻에서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야송의 전시는 개인전으로서는 전시작품의 수나 규모에서 거의 파격적이어서 화제다.화선지를 이용한 그림은 물론 나무와 돌,항아리 등 다양한 재료의 산수화 6백여점을 내놓은 것.이 가운데에는 47m×6m50㎝ 크기의 「청량대운도」가 포함,눈길을 끌고있다.화선지 전지 4백장 크기인 이 작품은 경북 봉화읍에 소재하고 있는 청량산을 화폭에 옮긴초대작으로 제작 기간만도 꼬박 2백여일이 걸렸다고 한다. 야송은 지난 61년 홍대 미대에서 동양화에 뜻을 둔 이래 지금까지 줄곧 실경수묵산수화에만 전념해온 작가.그동안 명산대천을 찾아 화폭에 옮긴 작품수가 천여점을 훨씬 넘는다.이 모든 작품이 몸으로 부딪치고 마음으로 느끼며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실사작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주위로부터 『미친듯이 뛰어다니고,미친듯이 붓을 휘두르는 작가』소리를 듣는 것도 이같은 실사작업 때문이라는 야송은 남은 삶도 그렇게 지내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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