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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에 태우고 긁고 두드려… 탐구와 비유 한지의 時間

    불에 태우고 긁고 두드려… 탐구와 비유 한지의 時間

    전통 회화 재료인 한지의 물성을 독창적으로 실험해 온 중견 작가 2인의 전시가 나란히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한지를 불로 태워 그 조각으로 다양한 형태와 색조의 작품을 완성하는 김민정 작가와 철솔로 한지를 긁고 두드려 서양화의 마티에르 같은 두껍고 거친 질감을 만들어 내는 유근택 작가다. 두 작가 모두 4년 만에 여는 개인전인 데다 공교롭게도 ‘시간’을 전시 주제로 삼아 눈길을 끈다.●김민정 작가 새 연작 ‘커플’ 등 30여점 공개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김민정 작가는 오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펼치는 ‘타임리스’(Timeless)에서 대표 연작인 ‘마운틴’, ‘스토리’를 비롯해 새 연작 ‘커플’ 등 30여점을 공개했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1991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그는 서양미술의 원류인 그곳에서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재료인 한지의 가능성을 재발견하고 현대미술의 매체로 실험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어릴 때 부친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하루 종일 종이를 갖고 놀던 추억과 서예를 배운 경험이 그의 예술적 자산이 됐다.●동양화 ‘선’ 탐구… 불과 종이의 협업 한지를 불로 태우는 작업은 동양화의 선(線)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촛불이나 향불에 한지 끝을 살짝 댔다가 엄지와 검지로 재빨리 눌러 끄는 일을 반복해 불규칙한 검은 선을 만들어 낸다. 우연성에 의지하는 ‘종이와 불의 협업’이다. 이렇게 수작업으로 가공한 한지 조각을 길게 잇대고 원형으로 자른 뒤 화면에 콜라주해 수묵화 같은 바다의 잔잔한 물결을 형상화하거나(‘타임리스’ 연작) 우산으로 가득 찬 거리의 서정적인 풍경(‘더 스트리트’ 연작)을 완성한다.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에 대해 작가는 “내겐 상념을 없애는 참선이나 명상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표현했다. “한지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그는 “종이를 섬긴다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덧붙였다.●유근택 작가 신작 56점 ‘시간의 피부’ 展 유근택 작가는 동양화에 미학적 기반을 두면서도 현대인의 일상과 역사적 사건 등에 관한 주제를 자신만의 조형 어법으로 펼치는 화가로 유명하다. 한지에 수묵으로 작업을 이어 온 그는 2017년 한지를 철솔로 긁어 물성을 극대화한 작품을 처음 발표해 호평받았다.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시간의 피부’전에선 최근 몇 년간 일어난 사회적, 정치적 격변의 상황을 다룬 신작 56점을 만날 수 있다. 지구촌을 휩쓴 코로나19 사태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초현실적인 현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껏 부풀었던 통일에 대한 희망과 좌절의 시간들을 화폭에 담았다. 출품작 중 ‘시간’ 연작은 지난해 여름 코로나 확산 와중에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레지던시에 참가하면서 겪었던 불안감을 예술로 승화한 작품이다. 유 작가는 “절대적인 고립감 속에 신문을 태우는 작업을 했는데 재의 흔적이 마치 뼈처럼 보였다”면서 “시간의 영속성과 무한성에 대한 비유”라고 설명했다.●철솔 드로잉… 섬세하게 살아난 거친 질감 기법 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꾀했다. 6겹으로 배접한 한지에 물을 뿌려 철솔로 종이의 올을 세운 뒤 호분을 바르고 드로잉하는 과정을 반복해 독특한 요철 질감을 만들어 냈다. 이전에 했던 작업보다 표면에 비비거나 딱딱한 물질로 화면을 긁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거친 질감을 더 섬세하게 살렸다. 4월 18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차 한 모금… 시름이 저만치 가네

    [그 책속 이미지] 차 한 모금… 시름이 저만치 가네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정광호 글·김창배 그림/로대/383쪽/2만 3000원 작은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맑은 차를 우려낸다. 바람이 소곤소곤 불던 두 겨드랑이에 어느새 훈풍이 든다. 잡생각도 조금 걷히는 것 같다. 한 모금 머금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절로 번진다. 쉬운 명상법을 꾸준히 소개해 온 빛명상의 정광호 학회장이 글을 쓰고, 문인화가 김창배의 그림 174점을 담았다. 따뜻한 산문과 수묵화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다양한 명상 법 중에서도 차를 활용한 명상으로 여유를 찾는 팁이 특히 유용하다. 코로나19로 혼자 있는 시간이 늘고 끝을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마음이 어두워져 가는 요즘, 책장을 넘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불끈불끈, 겨울이 빚은 설근

    불끈불끈, 겨울이 빚은 설근

    충북 괴산에서 물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단양, 충주 등과 만난다. 이 도시들의 한겨울 풍경도 꽤 극적이다. 특히 36번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풍경들이 그렇다. 드라이브스루로 빙하기 풍경을 관통하는 느낌이랄까. 달래강과 충주호(제천 관내에선 청풍호라 부른다)를 따라 충주와 단양의 겨울 명소들을 돌아봤다.●칼바위 암벽 요철 따라 근육질 뽐낸 수주팔봉 괴산 산막이옛길에서 달래강(달천) 물길 따라 충주 쪽으로 가면 살미면에서 수주팔봉과 만난다. 달래강변에 솟아오른 8개 봉우리라는 뜻이다. 오래전에 절벽 가운데가 절단돼 원래 모습은 잃었지만, 절개면을 따라 실개천이 폭포처럼 흐르면서 이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일반적으로는 한여름 장마철에 폭포수가 넘쳐 흐를 때의 수주팔봉을 절정으로 친다. 그 모습도 나무랄 데 없다. 한데 바위 절벽의 우람한 골격이 도드라져 보일 때는 한겨울 눈이 내릴 때다. 흰 눈이 암벽의 요철을 따라 쌓이면서 음영을 만들고, 암벽 전체에 운율이 생긴다. 보디빌더가 애면글면 만든 근육질의 몸을 보는 듯하다. 바위산은 그래서 겨울에 더 멋있다. 흑백 사진 같은 암벽 사이로는 폭포수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진다. ‘북극 한파’가 며칠 더 이어졌다면 폭포수마저 얼어붙었겠지만, 이만 해도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빼어나다. 멀리서 보면 딱 수묵화다. 칼바위 암벽 위엔 전망대가 있다. 폭포 위를 오가는 출렁다리도 조성됐다. 전망대를 가려면 수주팔봉 뒤편으로 가야 한다. 주차장 옆에 출렁다리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수안보 성봉 채플·금봉산 석종사 ‘인증샷 명소’ 수주팔봉과 인접한 수안보면엔 성봉 채플이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즐기는 충주 지역 젊은이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작은 예배당이다. 수안보 온천단지를 감싸고 있는 산자락에 숨어 있어 일부러 찾지 않으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공식 명칭은 성봉메모리얼채플이다. 예배당은 우리나라 성결교단의 부흥을 이끈 이성봉 목사를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이 목사의 딸이 세계 여러 곳의 아름다운 예배당을 돌아본 뒤 장점을 따 지었다고 한다. 금봉산 자락의 석종사도 요즘 SNS의 ‘인증샷’ 명소로 관심을 모으는 곳이다.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은 천척루와 대웅전 사이 공간이다. 보통은 탑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감로각이라는 작은 전각이 들어서 있다. 이름 그대로 다디단 물이 솟는 곳에 세운 건물이다. 주변 산세와 어우러진 가람 배치가 꼭 경북 봉화의 축서사를 보는 듯하다.●충주호 달리면 도담삼봉 겨울 풍경 주렁주렁 드라이브스루의 최종 목적지는 단양 도담삼봉이다. 강력한 한파가 몰려올 때 극한의 풍경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충주에서 도담삼봉까지는 충주호 수변 도로를 타고 간다. 36번 국도다. 차창 너머로 한겨울 풍경들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길이다. 적막에 싸인 산간 마을, 시린 겨울 호수, 월악산 영봉 등 우람한 산들이 번갈아 차창을 비집고 들어온다. 도담삼봉은 남한강 물줄기가 휘어 도는 도담마을 앞의 세 기암괴석을 일컫는다. 단양의 아이콘이라 불릴 만큼 이름난 명소다. 한겨울이면 도담삼봉까지 얼음길이 열린다. 날씨가 혹독할수록 얼음길은 더 단단해진다. 이맘때 선착장 부근엔 어김없이 ‘출입금지’ 현수막이 나붙지만, 스스로 ‘출입을 금하는’ 관광객은 별로 없다.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굳이 막지는 않았다. 예전엔 그랬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올겨울엔 상황이 다르다. 관광객 숫자가 확 줄었고, 얼음 위로 내려서는 이도 없다. 한겨울 비경을 찍는 사진작가들의 셔터 소리만 요란하다. 이런 황량한 풍경조차 어쩌면 두 번 보기 힘든 풍경일지 모른다. 감염병이 물러나고 나면 다시 얼음나라의 기이한 풍경이 계속될 테니 말이다. 글 사진 충주·단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순백의 산’ 눈길 따라… 진경산수화 속으로

    ‘순백의 산’ 눈길 따라… 진경산수화 속으로

    오래전 절정의 단풍철에 전남 장성의 백양사를 찾은 적이 있다. 단풍으로 이름난 내장산국립공원에서도 정수로 꼽히는 곳이니 그 풍경의 화사함이야 더 말할 게 없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백양사 뒤에 버티고 선 거대한 바위산이었다. 사람들은 그 산을 백학봉(白鶴峯)이라 했다. 열병이라도 걸린 듯, 하루 종일 그 이름을 되뇌면서 언젠가 큰눈이 내리는 날 꼭 저 산을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흰 눈을 뒤집어쓴 백학은 어떤 모습일까. 그 웅장한 바위 절벽의 꼭대기에서 굽어보는 풍경은 어떨까. 장성 일대에 대설경보가 내려진 날, 백양사를 찾았다. 작은 연못과 눈 쌓인 단풍나무들, 단아한 쌍계루와 웅장한 백학봉이 수묵화처럼 어우러져 있다. 예부터 ‘대한 8경’의 하나로 명성이 높았던 쌍계루와 백학봉의 ‘겨울 버전’이 펼쳐진 것이다. 풍경의 정수는 역시 어느 한 계절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백학봉(651m)이 속한 산은 백암산(741m)이다. 장성과 전북 정읍, 순창 등이 이 산의 능선을 따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내장산 국립공원’에 포함돼 마치 내장산에 속한 산줄기로 인식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내장산과는 인접해 있을 뿐, 결이 다르다. 최근 장성 주민 거의 모두가 ‘국립공원’ 안에 별도로 백암산 표기를 하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대설경보 뚫고 올라간 백암산 산행 백암산 산행은 보통 장성과 순창에서 시작된다. 백암의 주봉인 상왕봉을 빠르게 정복하려는 이들은 주로 순창 쪽에서 오른다. 거리가 짧고 오르막도 비교적 순해서다. 산꾼들에게 정석으로 꼽히는 코스는 장성 쪽 백양사를 들머리 삼아 약사암~영천굴~백학봉~상왕봉~능선사거리(남창고개)~운문암 입구~백양계곡을 거쳐 다시 백양사로 돌아오는 코스다. 거리는 약 10㎞ 정도. 예닐곱 시간은 족히 소요된다. 이번 여정에선 백학봉까지만 다녀왔다. 장성 일대에 쏟아진 폭설 때문이다. 제설 작업이 이뤄진 약사암까지는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지만, 그 이후는 거의 러셀(눈길 뚫기)이나 다름없는 심설 산행을 해야 한다. 산행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나고, 난이도 역시 그만큼 높아진다.산행 기점인 백양사 일대는 명승(38호)이다. 문화재 명칭은 ‘장성 백암산 백학봉’. 안내판은 “백양사 대웅전과 쌍계루 너머로 보이는 백학봉의 암벽과 삼림 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백암산이 내장산과 함께 단풍 명소인 데다, 천연기념물 제153호인 백양사 비자나무 분포 북한지대를 비롯해 1500여종의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자연자원의 보고”라고 적고 있다. 백양사와 쌍계루에 더해 백학봉이 있기에 비로소 ‘문화재급’ 풍경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여러 경관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저마다의 개성 또한 잃지 않으니, 이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해도 틀리지 않겠다.●비자림 숲으로 찍어낸 푸른빛 산행 들머리는 쌍계루(雙溪樓)다. 운문암과 천진암 쪽에서 흘러온 두 계곡이 만나 작은 연못을 이룬 곳에 날아갈 듯 앉아 있다. 등산로는 백양사 옆으로 나 있다. 백학봉까지 거리는 편도 1.9㎞ 정도. 그리 길지 않지만 오가기는 만만하지 않다. 백학봉이 거의 수직벽처럼 솟아오른 터라 처음부터 끝까지 된비알투성이다. 백양사 바로 뒤는 비자림이다. 높이 8∼10m에 달하는 비자나무 5000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비자나무 북한지대(생장할 수 있는 북쪽 한계선)에 형성된 숲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진초록의 이파리들이 인상적이다. 푸른 빛깔의 참빗을 닮았다. 소복이 쌓인 흰 눈 덕에 푸른빛이 한결 도드라져 보인다. 약사암 초입까지는 비교적 무난한 산길이다. 다소 경사는 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약사암으로 향한 갈지자 계단 앞에 서면 비로소 진짜 오르막이 시작됐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표지판엔 백학봉에 이르는 계단 수가 1670개라고 적혀 있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수명이 4초 늘어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니 백학봉까지 가면 최소 112분, 얼추 2시간 가까이 수명이 늘어나는 셈이다.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약사암’ 계단 곳곳에선 ‘2분 휴식하면 심장이 편해진다’는 푯말도 종종 눈에 띈다. 쓸데없이 빠르게 오르는 걸 경쟁하지 말라는 거다. 서두르다 보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백학봉 같은 급경사의 산은 특히 그렇다. 약사암은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터를 잡았다. 양지바른 곳이어선지 ‘북극 한파’가 들이닥친 와중에도 볼에 와닿는 겨울 햇살이 제법 따스하다. 발아래 펼쳐지는 풍광도 기막히다. 백양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주변 산자락들이 마루금을 좁힌 채 쏟아져 내려가고 있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한 폭의 거대한 진경산수화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약사암 뒤로 돌아가면 영천굴이다. 거대한 암벽 옆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암자다. 먼 옛날, 영천굴에서 수도하던 고승의 독경 소리에 흰 양이 깨달음을 얻어 인간으로 환생했다던가. 이 설화는 백양사(白羊寺)라는 절집 이름이 탄생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백학의 등 오르면 펼쳐지는 일망무제 영천굴에서 백학봉까지는 시종 된비알이다. 목재 계단에 코를 박은 채 올라야 할 만큼 힘은 들지만, 전망이 사방으로 트인 덕에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백학의 등자락에 오르면 일망무제의 풍경과 만난다. 백양사나 장성호 쪽 풍경도 좋고, 순창 등 이웃 고을을 들여다보는 맛도 각별하다.들머리의 백양사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명찰이다. 흰 눈 뒤집어쓴 당우들의 어울림이 근사하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팔층석탑(팔정도탑이라고도 불린다)의 설경도 인상적이다. 보통은 금당 앞에 불탑을 두는데 특이하게 대웅전 뒤에 세웠다. 주차장에서 경내로 드는 갈참나무 숲길, ‘국민 포인트’라 불리는 쌍계루 등의 설경 역시 명불허전이다. 백양사 인근의 장성호는 필수 방문 코스다. 눈 덮인 ‘장성호 수변 길’을 따라 적요한 호수를 돌아보는 맛이 각별하다. 호수 뒤엔 문화예술공원이 조성돼 있다. 백미는 조각공원이다. 박목월의 ‘나그네’ 등 시, 이중섭 등의 그림, 정약용 등 위인들의 어록에서 모티브를 얻은 조각작품 103점이 나지막한 언덕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일대만 차분히 둘러봐도 예술의 향기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언덕 꼭대기의 전망대에선 장성호 등 일대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글 사진 장성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코로나19로 장성 관내의 일부 실내 시설들이 문을 닫았다. 이 지역 출신 임권택 감독의 영화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장성호 시네마테크와 북상면 수몰문화관, 필암서원, 홍길동테마파크 등이 대표적이다. 재개장 여부는 17일 이후 결정된다. 방문하기 전에 장성군 홈페이지 등을 참조하는 게 좋겠다. 건물 바깥은 언제든 접근할 수 있다. 특히 필암서원의 경우 조용하고 너른 솔숲에 앉아 옛 건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산, 호수 등 실외 여행지 대부분은 별문제 없이 돌아볼 수 있다. 코로나 탓에 어디를 가도 방문객이 적은 편이긴 하나 서로를 위해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는 필수다. →백양사와 장성호 사이에 있는 북이면 사거리는 고흐 벽화거리로 유명한 마을이다. 두 명소를 오갈 때 잊지 말고 둘러보길 권한다.
  • 왼손 까매진 여든셋 스승… 옆자리 지킨 예순셋 제자

    왼손 까매진 여든셋 스승… 옆자리 지킨 예순셋 제자

    뇌졸중으로 오른쪽 손발 마비된 오 화백왼손으로 그림 그리며 제2의 그림 인생 김선두·서정태·김진관·고찬규·이길우은사 그림 옆 자신들 작품 나란히 전시“괜찮네” 무덤덤한 스승 한마디에 반색“괜찮네.” 예순셋 제자의 그림을 보고 여든셋 스승은 딱 한마디 했다. “잘했다”도 아니고, “좋다”도 아닌 무덤덤한 표현이 서운할 만도 한데 제자는 오히려 반색했다. “이 정도면 최고의 칭찬이에요. 학교 다닐 땐 괜찮다는 말도 거의 안 하셨으니까요.” 스승은 1970년대 고대 벽화 기법을 도입한 석채화와 수묵화로 한국화의 새로운 양식을 개척한 산동(山童) 오태학, 제자는 현재 한국화의 현대적 변화를 이끄는 대표 작가 김선두다. 둘은 중앙대 한국화과 사제지간이다. 1978년 입학한 김선두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산동에게 배웠고, 스승의 뒤를 이어 모교에서 제자를 길러 내고 있다. 스승 그림 옆에 제자 5명의 그림이 나란히 걸렸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지난 5일 개막한 ‘사제동행전’은 김선두를 비롯해 서정태 화백, 김진관 성신여대 명예교수, 고찬규 인천대 교수, 이길우 중앙대 교수 등 산동의 가르침을 받은 중앙대 제자들이 은사를 위해 마련한 그룹전이다.산동은 청전 이상범, 운보 김기창에 이르는 정통 한국화단의 계승자로 20대 초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연이어 특선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먹을 사용한 추상화 기법으로 1960년대 한국화에 새바람을 일으켰고, 1970년대부터는 먹을 쌓아 나가듯 석채를 쌓아 올려 채색과 수묵의 조화를 이룬 독창적인 산동 양식을 구축했다. 그러나 중앙대 부총장이던 1999년 불운이 닥쳤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손발이 마비됐다. 좌절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각고의 노력과 집념으로 휠체어에 앉아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제2의 화가 인생을 시작했다. 제자들은 그런 스승을 한없는 존경심으로 바라봤다.이번 전시에는 산동이 쓰러지기 전에 작업한 그림과 왼손으로 그린 작품 7점, 제자들이 2~3점씩 출품한 작품을 합해 18점이 걸렸다. 한 스승 아래서 수학했지만 간결한 형식미가 돋보이는 김진관, 청색과 회색조의 인물화를 그리는 서정태, 소시민의 일상을 채색화로 담아내는 고찬규, 동서양의 이미지를 중첩하는 이길우 등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김진관은 “작가로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본인의 길을 올곧게 가는 스승이었다”며 “대상을 수없이 관찰해 정수를 이끌어 내게 하는 사생의 기본기를 특히 강조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김선두는 “2학년 때쯤 선생님께 ‘그림이 완성됐으니 봐 달라’고 했다가 ‘그림에 완성이 어디 있냐’는 호통을 들었던 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김선두는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 화가 장승업 역할을 맡은 최민식의 그림 대역을 맡았을 때 제작진에게 이 에피소드를 들려줘 영화에 대사로 쓰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선생님의 예술 세계가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오래 만나지 못하다가 개막 날 마스크를 쓴 채 조심스럽게 해후한 스승과 제자들은 전시장을 둘러보며 감회에 젖었다. 그토록 칭찬에 인색했던 스승은 이제 제자 한 명 한 명의 그림 앞에서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열심히 노력해 이렇게 컸으니 기분이 좋네. 난 할 일 다했어.” 방명록을 쓰려고 장갑을 벗은 스승의 왼손이 까맸다. 먹물이 배어 아무리 비누로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제자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기생들의 얼굴 광고

    [근대광고 엿보기] 기생들의 얼굴 광고

    일제강점기에 해마다 새해가 되면 하정(賀正) 또는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제목 아래 신년 축하 광고가 여러 신문의 지면에 실렸다. 평소에 광고를 하던 방직회사, 고무회사 등 크고 작은 기업이나 양화점, 약방, 정미소, 음식점 등 자영업자들의 광고가 대부분이었고 그 밖에도 은행, 종교단체, 변호사, 병원, 서점 등 매우 다양한 단체나 직종의 종사자들이 광고를 실었다. 명함만 한 것부터 그보다 더 크거나 작은 사각형 모양에 상호와 이름, 전화번호를 적는 형식의 광고였다. 새해 첫날에만 광고를 싣다가 시간이 갈수록 광고 물량이 늘어났는지 1주일 동안 축하 광고를 싣는 해도 있었다. 매일신보에는 광고 물량은 적은 대신 ‘함경도 도청 직원 일동’, ‘북청경찰서 직원 일동’, ‘평양감옥 직원 일동’, ‘진남포 우편국 직원 일동’과 같이 도청, 경찰서, 감옥 등 관공서의 광고가 눈에 띄는데 총독부 기관지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매일신보 1923년 1월 7일자 7면에는 전남 장성·담양군, 함남 갑산군 등의 군수와 면장과 면직원들의 작은 광고들이 광고란을 장식했다. 그런데 그 바로 밑에 ‘전주 기생 일동’이라고 적힌, 다른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기생 광고가 실려 눈길을 끈다. 병풍 그림 같은 각각의 수묵화 위에 11명의 기생 실물 얼굴이 게재됐다.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앳된 얼굴부터 서른 안팎의 나이 든 기생까지 모두 한복에 비녀를 꽂은 모습이다. 박화중선(朴花中仙), 황소월(黃素月), 김하엽(金荷葉), 송진주(宋眞珠), 정유선(丁遊仙), 박백운선(朴白雲仙) 등의 이름도 같이 밝혔지만, 그 밖에는 어떤 설명도 없다. 일제강점기에 기생들이 적을 두었던 조합을 권번(券番)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아마도 전주권번 소속일 것이다. 광교기생조합처럼 권번의 이름으로 광고를 내는 일은 드물지 않았지만, 기생의 얼굴 실물과 이름을 공개한 광고는 흔치 않았다. 물론 그 후에는 기생 개인이 변호사처럼 ‘개업광고’를 내는 일도 있기는 했다. 당시 기생은 오늘날의 유흥음식점 접대부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판소리를 하고 민요를 부르는 국악인이기도 했고 전파 방송이 없던 시대에 일종의 연예인이기도 했다. 물론 손님에게서 봉사료(화대)를 받는 접객 활동을 했어도 지금보다는 사회적으로 떳떳한 직업이었고, 그랬기에 광고에 얼굴을 공개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같은 해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는 이 광고가 보이지 않는다. 권번의 주요 고객은 관청에 소속된 공직자였고 그들이 좀더 자주 접했을 매일신보는 기생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더 나은 광고 효과를 볼 수 있는 매체였을 수 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만 고수 군산 인근 서해서 1년간 집중 촬영 아웃사이더로 제한 없는 자유 추구흑과 백 사이에 수많은 회색이 존재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을 고수하는 사진가 민병헌은 ‘회색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그 복잡 미묘한 차이를 절묘하게 포착해 내는 작가다. 잡초, 폭포, 안개 등 자연을 주제로 그동안 선보인 연작 작업들은 한 폭의 수묵화나 연필화처럼 고즈넉이 스며드는 힘으로 보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그가 이번엔 ‘새’ 연작을 들고 왔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개막한 개인전에 새를 촬영한 작품 26점을 공개했다. 창공을 홀로 나는 새, 물위에서 헤엄치는 새의 무리, 하늘을 뒤덮은 철새들의 군무가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한 회색 조로 펼쳐져 마치 꿈인 양 환상인 양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사진이 흐리니까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떨어져서 봐야 외려 잘 보인다”고 조언했다. 말 그대로였다. 뒷걸음질할수록 피사체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의 사진들에는 디지털 기술을 빌린 어떤 인위적인 가공이나 첨삭이 없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실 그대로의 자연이 담겼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회화적인 느낌이 가능할까.그는 “흐릿한 사진은 흐린 날씨에 찍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똑같은 광경이라도 광선의 차이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흐린 날, 안개 낀 날, 어스름 저녁에 주로 촬영하는 이유다. 이전 연작 작업은 주제를 정한 뒤 3~4년 긴 시간을 두고 피사체를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새’ 연작은 달랐다. 지난해 과거 필름들을 정리하다 새가 찍힌 작품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촬영지는 집과 작업실이 있는 전북 군산 인근 서해안이었다. 전시회에는 서해안에서 찍은 작품과 이전에 촬영한 작품이 섞여 있다. 개인전에 맞춰 프랑스 최대 사진 출판사인 ‘아틀리에 EXB’에서 ‘새’ 연작 50여점을 실은 사진집도 나왔다. 1955년생인 작가는 홍익대 건축공학과를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그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헤어나질 못하겠더라”며 웃었다. 당시 사진을 전공한 유학파 1세대들이 활약하던 시기라 열등감과 소외감이 심했다고 한다. “그때는 사진이 재미있어서 열중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암실을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로 여겼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작업을 계속 하면서 “전공을 안 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아웃사이더로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홀로 작업해 온 것이 훨씬 도움이 됐다”고 했다. 안개가 잦은 양수리에서 17년을 살았던 작가는 5년 전 군산에 있는 100년 된 고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도시이면서 시골의 정취가 남아 있는 군산의 매력에 빠져 연고도 없는 곳에 무작정 정착했다. 군산과 서해안의 날씨와 풍광이 그의 카메라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전시는 오는 12월 2일까지. 글 사진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사진작가 민병헌 개인전 ‘새‘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사진작가 민병헌 개인전 ‘새‘

    흑과 백 사이에 수많은 회색이 존재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을 고수하는 사진가 민병헌은 ‘회색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그 복잡 미묘한 차이를 절묘하게 포착해 내는 작가다. 잡초, 폭포, 안개 등 자연을 주제로 그동안 선보인 연작 작업들은 한 폭의 수묵화나 연필화처럼 고즈넉이 스며드는 힘으로 보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그가 이번엔 ‘새’ 연작을 들고 왔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개막한 개인전에 새를 촬영한 작품 26점을 공개했다. 창공을 홀로 나는 새, 물위에서 헤엄치는 새의 무리, 하늘을 뒤덮은 철새들의 군무가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한 회색 조로 펼쳐져 마치 꿈인 양 환상인 양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사진이 흐리니까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떨어져서 봐야 외려 잘 보인다”고 조언했다. 말 그대로였다. 뒷걸음질할수록 피사체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의 사진들에는 디지털 기술을 빌린 어떤 인위적인 가공이나 첨삭이 없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실 그대로의 자연이 담겼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회화적인 느낌이 가능할까.그는 “흐릿한 사진은 흐린 날씨에 찍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똑같은 광경이라도 광선의 차이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흐린 날, 안개 낀 날, 어스름 저녁에 주로 촬영하는 이유다. 이전 연작 작업은 주제를 정한 뒤 3~4년 긴 시간을 두고 피사체를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새’ 연작은 달랐다. 지난해 과거 필름들을 정리하다 새가 찍힌 작품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촬영지는 집과 작업실이 있는 전북 군산 인근 서해안이었다. 전시회에는 서해안에서 찍은 작품과 이전에 촬영한 작품이 섞여 있다. 개인전에 맞춰 프랑스 최대 사진 출판사인 ‘아틀리에 EXB’에서 ‘새’ 연작 50여점을 실은 사진집도 나왔다.1955년생인 작가는 홍익대 건축공학과를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그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헤어나질 못하겠더라”며 웃었다. 당시 사진을 전공한 유학파 1세대들이 활약하던 시기라 열등감과 소외감이 심했다고 한다. “그때는 사진이 재미있어서 열중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암실을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로 여겼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작업을 계속 하면서 “전공을 안 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아웃사이더로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홀로 작업해 온 것이 훨씬 도움이 됐다”고 했다.안개가 잦은 양수리에서 17년을 살았던 작가는 5년 전 군산에 있는 100년 된 고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도시이면서 시골의 정취가 남아 있는 군산의 매력에 빠져 연고도 없는 곳에 무작정 정착했다. 군산과 서해안의 날씨와 풍광이 그의 카메라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전시는 오는 12월 2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하늘이 감춘 그림… 스님, 암각화에 꽂히다

    하늘이 감춘 그림… 스님, 암각화에 꽂히다

    5년간 모은 탁본 70점 인사동서 전시 고령 장기리 암각화 처음 접한 뒤 매료 몽골·카자흐 등 알타이지역 10번 탐방문자가 없던 선사시대 사람들은 동굴과 바위에 갖가지 형상을 그리거나 새겨 뭔가를 표현했다. 암각화다.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의 것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에겐 울산 반구대암각화가 익숙하다. 그 암각화는 먹고 사는 생활상의 단순한 표현을 넘어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한 동경과 두려움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종교적 상징으로까지 해석된다. 지난 5년간 암각화에 미쳐 살아온 조계종 스님이 그간의 고행과 깨달음을 책과 전시로 정리해 사람들에게 보여 준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을 지내고 지금은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소임을 맡은 수락산 용굴암 주지 일감 스님이 주인공이다.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전시회(15~21일)에 앞서 지난 7일 전시장인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만난 일감 스님은 “원래 암각화 전문가가 아니다”라는 말부터 꺼냈다. 15년 전 수묵화가이자 암각화 전문가인 김호석 화백과의 인연으로 경북 고령 장기리 암각화를 본 뒤 그야말로 ‘꽂혔다’. 2016년부터 암각화 분포 지역인 러시아 연방의 알타이공화국, 몽골,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 이른바 ‘범알타이 권역’을 10여 차례 탐방하며 150여개의 탁본을 떴다. 가져올 수 없기에 탁본으로 떠 왔다고 했다.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과 텐트를 날려 버리는 강풍, 호흡조차 힘든 해발 3000m의 고산지대에서 암각화 탁본을 뜨는 작업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암각화는 깨어 있는 사람들을 기다려 하늘이 감춰 놓은 비장(秘藏)의 그림´이라는 스님은 그 소중한 흔적들을 찾아가 만나는 과정을 놓고 “말길이 끊어진 자리를 찾는 선(禪) 수행과 흡사하다”고 했다. 스님 말을 빌리자면 암각화는 고통 없는 세상, 즉 낙원으로 향상(向上)하려는 의지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킨 예술이자 영혼의 성소인 셈이다. `하늘이 감춘 그림…’ 전시회는 스님이 5년간 수행처럼 이어 온 암각화 탐방의 결실인 탁본들을 일반에 보여 주는 자리. 150점 중 70점을 엄선해 내놓았다. 울산 반구대암각화 복제 작품 1점도 들어 있다. 전시는 갤러리 2개 층에서 나눠 열리는데 ‘하늘’ 영역으로 명명된 지상 1층에선 ‘태양신’, ‘바람신’, ‘하늘마차’, ‘기도하는 사람들’처럼 암각화에서 주로 하늘과 신으로 묘사된 작품들을 보여 준다. ‘땅’의 영역으로 나눈 지하 2층은 인간이 사는 대지며 생명을 담아낸 작품들로 꾸몄다.전시에 앞서 불광출판사에서 펴낸 동명의 책은 `암각화 명상록´이라고 할 수 있다. 70편의 암각화를 대할 때마다 떠올랐던 감흥을 시와 짧은 에세이로 정리했다. “학위만 없을 뿐 박사급 수준의 식견을 가지고 있는 일감 스님은 암각화가 말하고자 하는 그 떨림을 감지하는 특별한 감(感)이 있다”고 했던 수묵화가 김호석의 평가가 실감 난다. 시로 담아낸 그 영감의 순간들은 선 수행으로 단련된 스님의 선어(禪語)록처럼 꿰어진다. 커다란 사슴이 새겨진 암각화 앞에 서선 “피와 살은 배고픔을 채워 주었고/ 종래에는 뭇 생명들의 애달픈 염원을 안고/ 다시 또 내려올 하늘이 되었다/ 아 하늘사슴이여”라고 풀고 있다. 사람들이 짝을 지어 춤을 추는 암각화를 놓곤 “제사, 기도, 소원성취/ 그런 말은 다 잊어버렸고/ 춤을 출 뿐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신이 태어난다”고 했다. 스님이 보는 암각화는 결국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일궈 낸 `화엄만다라´인 셈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운무(雲霧)/오일만 논설위원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나면 앞산은 운무를 품은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 분위기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최장의 장맛비가 이어지는 요즘 그나마 비 갠 직후 운무에 휩싸인 산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무를 제대로 보려면 운도 따라야 한다. 간헐적 폭우가 반복되는 이즈음 비가 그쳤다고 선뜻 산행에 나섰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폭우가 가랑비로 잦아졌다가 이슬비로 변하는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야 하지만 그나마 확률은 반반이다. 며칠 전이 그랬다. 다소 약해진 빗줄기를 뚫고 북한산 향로봉을 향해 가다가 운무의 바다와 조우했다. 산봉우리 사이로 운무가 펼쳐지며 보일 듯 말 듯 환상적인 ‘선경’(仙境)이다. 문득 꽤 오래전 중국에서 봤던 장가계(張家界)의 비경이 떠올랐다. 산봉우리들은 거대한 죽순처럼 푸른 하늘을 찌르고 맑은 계류는 천고만협의 사이를 누비며 흐른다. 때로는 유유하고 장엄한 자태가 볼만했다. ‘인생부도장가계 백세기능칭노옹’(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 인생에서 장가계를 가 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돼도 늙었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비경을 집 근처 북한산에서 체험하다니, 참 운이 좋은 날이다. oilman@seoul.co.kr
  • 색을 넘어… 단색화는 [비움·원숙미]다

    1970년대 한국 화단에 등장한 무채색 계열의 추상회화 경향을 ‘단색화’로 명명한 건 불과 10년 안팎의 일이다. 한국의 모노크롬, 단색조, 단색회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한국의 단색화’전을 계기로 공식 명칭처럼 사용돼 왔다. 이후 미술시장에 단색화 열풍이 불면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조로 급부상했지만 한편에선 용어의 한계와 과도한 평가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서울 이태원 박여숙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텅 빈 충만’전과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윤형근 1989-1999’는 색(色) 중심의 오해와 편견을 넘어 행위의 반복과 시간의 중첩이 빚어낸 한국적 미학의 결정체로서 단색화에 주목한다. ‘텅 빈 충만’전은 아예 단색화 대신 ‘단색조 회화’란 용어를 앞세웠다. 전시를 기획한 정준모 큐레이터는 “모노크롬을 번역한 단색화는 서구미술의 아류처럼 인식될 수 있는 데다 색에 갇혀 버린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색이 아니라 재료의 물성을 통한 시각적 촉감, 오랜 시간 반복된 수행으로 스스로를 비워 내는 과정의 산물이 단색조 회화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전시는 단색조 회화를 통해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모색하고자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프로그램으로 중국, 독일,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이란, 베트남에서 열렸던 같은 제목의 순회전에 기반했다.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정창섭, 김창열 등 대표 작가와 최병소, 김태호 등 중견 작가를 비롯해 김덕한, 윤상렬, 이진영 등 신진 작가까지 장르와 세대를 망라한 18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5월 10일까지. ‘윤형근 1989-1999’전은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1928~2007)이 60대에 작업한 대작 중심의 회고전이다. 청색과 암갈색을 섞어 만든 먹색에 가까운 물감으로 리넨, 캔버스, 한지에 찍어 내리듯 붓질을 반복해 완성한 그의 작품은 수묵화 같은 번짐과 사각기둥 형상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엔 작가 고유의 작업 본질은 유지하면서도 보다 구조적이고 대담한 형태로 원숙미를 보여 주는 작품 20여점이 나왔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지난 몇 년간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1970~1980년대 초기 작업에 주목하는 전시가 많았다. 1991년 미니멀아트의 대가 도널드 저드와의 만남을 계기로 한층 단단해진 1990년대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윤형근이 생전 자기 그림의 뿌리라고 밝힌 추사 김정희 글씨와 더불어 작가의 작업실에 있던 도널드 저드의 판화가 전시장에 나란히 걸린 이유다. 6월 20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색을 넘어… 단색화는 [비움·원숙미]다

    색을 넘어… 단색화는 [비움·원숙미]다

    새달 10일까지 ‘텅 빈 충만’전 6월 20일까지 ‘윤형근 1989-1999’1970년대 한국 화단에 등장한 무채색 계열의 추상회화 경향을 ‘단색화’로 명명한 건 불과 10년 안팎의 일이다. 한국의 모노크롬, 단색조, 단색회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한국의 단색화’전을 계기로 공식 명칭처럼 사용돼 왔다. 이후 미술시장에 단색화 열풍이 불면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조로 급부상했지만 한편에선 용어의 한계와 과도한 평가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서울 이태원 박여숙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텅 빈 충만’전과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윤형근 1989-1999’는 색(色) 중심의 오해와 편견을 넘어 행위의 반복과 시간의 중첩이 빚어낸 한국적 미학의 결정체로서 단색화에 주목한다. ‘텅 빈 충만’전은 아예 단색화 대신 ‘단색조 회화’란 용어를 앞세웠다. 전시를 기획한 정준모 큐레이터는 “모노크롬을 번역한 단색화는 서구미술의 아류처럼 인식될 수 있는 데다 색에 갇혀 버린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색이 아니라 재료의 물성을 통한 시각적 촉감, 오랜 시간 반복된 수행으로 스스로를 비워 내는 과정의 산물이 단색조 회화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전시는 단색조 회화를 통해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모색하고자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프로그램으로 중국, 독일,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이란, 베트남에서 열렸던 같은 제목의 순회전에 기반했다.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정창섭, 김창열 등 대표 작가와 최병소, 김태호 등 중견 작가를 비롯해 김덕한, 윤상렬, 이진영 등 신진 작가까지 장르와 세대를 망라한 18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5월 10일까지. ‘윤형근 1989-1999’전은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1928~2007)이 60대에 작업한 대작 중심의 회고전이다. 청색과 암갈색을 섞어 만든 먹색에 가까운 물감으로 리넨, 캔버스, 한지에 찍어 내리듯 붓질을 반복해 완성한 그의 작품은 수묵화 같은 번짐과 사각기둥 형상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엔 작가 고유의 작업 본질은 유지하면서도 보다 구조적이고 대담한 형태로 원숙미를 보여 주는 작품 20여점이 나왔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지난 몇 년간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1970~1980년대 초기 작업에 주목하는 전시가 많았다. 1991년 미니멀아트의 대가 도널드 저드와의 만남을 계기로 한층 단단해진 1990년대 작품 세계를 보여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윤형근이 생전 자기 그림의 뿌리라고 밝힌 추사 김정희 글씨와 더불어 작가의 작업실에 있던 도널드 저드의 판화가 전시장에 나란히 걸린 이유다. 6월 20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제주 대표 화가 변시지 전 생애 다룬 첫 화집 발간

    제주 대표 화가 변시지 전 생애 다룬 첫 화집 발간

    제주를 대표하는 변시지 작가 (1926~2013)의 화집인 ‘바람의길, 변시지’가 출간됐다.작가의 전 생애의 작품과 삶을 다룬 첫 화집이다. 작가의 20대 일본시절과 ‘비원파’로 알려진 30대 서울시절, 50대 이후 작고하기까지의 38년에 가까운 제주시절 등 그의 70년 작품세계의 변화와 특징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2000년 이후 후기작품과 작고 직전 미완성작까지 망라했다. 화집은 그가 남긴 작품세계를 그의 생생한 육성만으로 되살렸다.마치 작가가 살아서 그의 목소리로 작품을 시기별로 안내하고 창작의 심연을 이야기하는 듯하다.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작가노트, 채록 등도 수록했다. 이번 화집에 수록된 180여 점 가운데 절반 이상이 대중에게 처음 선보이는 작품.변시지의 시그너처가 된 황토색 화풍을 찾아가는 과정의 시기별 주요 작품 뿐 아니라, 수묵화 작품도 다수 실려 있다. 동서양의 독자적 융합과 동양미의 관찰에 깊이 심취했던 작가의 면면을 잘 보여준다. 2년여의 작업 끝에 이번 화집을 발간한 문화공간 누보 송정희대표는 “미술계의 보편적 흐름을 거스르며 전개되었던 그의 독자적 작품세계와,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그만의 색을 찾기 위한 구도적 자세를 평생 견지했던 예술가의 삶이 제대로 조명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또 “인쇄소에서 하루 15시간이나 서서 한장한장마다 색 조절, 인쇄색감 재조절,원화 느낌을 살리기위해 중간중간 인쇄기 청소 등 원색을 살리기위해 정성을 쏟았고 책 표지는 두꺼운 커버에 제대로 색이 나오지 않아 그림을 따로 인쇄해서 수작업으로 일일히 붙였다”고 덧붙였다. 변시지는 평소 “사람들을 나를 가리켜 제주도를 대표하는 화가라 한다. 제주도의 그 독특한 서정을 표현하려 무던히 애써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으로 내가 꿈꾸고 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제주도’라는 형식을 벗어난 곳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변시지는 제주에서 태어나 6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20대 당시 일본 최고의 중앙화단으로 알려진 광풍회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일본인을 포함한 최연소로 최고상을 받고 24세에 심사위원이 된 유일한 작가였다. 이후 30대 일본에서 배운 서양화의 아카데니즘과 철학을 버리고 한국의 고유한 민족정신을 찾고자 서울대 초청으로 영구 귀국한다.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찾고 말겠다는 그의 집념은 가장 한국적이면서 역사적이라고 여겼던 비원으로 들어가 일명 ‘비원파’라는 별명을 얻으며 극사실주의와 인상주의 화풍을 추구하게 된다. 70년대 후반, 50대에 접어든 변시지는 그만의 독특한 황토색과 먹색 선으로 제주를 표현하며, 폭풍의 화가 변시지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의 나이 여든을 넘어서, 세계 최대 박물관인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그의 작품 두 점이 2007년부터 10년간 상설 전시돼 화제가 됐다.생존 작가의 작품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전시된 첫 한국작가였다. ‘바람의 길, 변시지’ 화집은 제주돌문화공원 내 문화공간 누보, 서귀포 기당미술관, 서울 에스팩토리 변시지 아트라운지 등에서 구매 가능하며, 5월부터는 온라인에서도 판매된다.정가 7만원.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너와 나의 시간이 멈춘 듯, 신록에 물들다

    너와 나의 시간이 멈춘 듯, 신록에 물들다

    최근 ‘춘불회(春佛會) 추내장(秋內藏)’이란 말을 들었다. 봄날의 경치로는 전남 나주 불회사의 신록이 으뜸이고, 가을 풍경은 전북 정읍의 내장사 단풍이 최고라는 거다. 내장산 단풍이야 귀에 익다. 한데 과문한 탓에 불회사는 도무지 생경하다. 신록이 전하는 풍경이 어떻길래 내장산 단풍과 견줄 만하다는 걸까. ‘4대강 사업’으로 빼어난 봄 풍경의 동섬이 사라지고 코로나19 탓에 문 닫은 곳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나주의 봄은 화사했다. 드들강의 소박한 풍경이 여전하고, 영산강이 휘돌며 만든 ‘느러지’며, 하루가 다르게 신록의 이파리들을 내놓는 들녘의 나무들도 정겨웠다. 산자락을 타고 신록이 쏟아져 내리는 불회사야 더 말할 게 없다. 이웃한 화순에도 세량제 등 봄의 명소들이 많다. 함께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최근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고는 하나 안심할 단계는 아닌 만큼 아직은 ‘지면 속 풍경’으로만 즐기시길.산자락의 신록들이 절집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불회사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불회사를 감싸 안은 덕룡산은 활엽수 관목이 많다. 나무들은 가지 끝에 채도가 제각각인 연둣빛 이파리를 매달고 있다. 이 덕에 무리지은 활엽수 관목들을 멀리서 보면 꼭 ‘무도장’의 미러볼이 여럿 뭉쳐 있는 듯하다. 혹은 연둣빛 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듯한, 딱 그런 느낌이다. 여기에 진초록으로 추임새를 넣는 나무들이 있다. 늙은 비자나무와 동백 숲, 그리고 우뚝 솟은 삼나무들이다. 늙었으되 여전히 성성한 나무와 여리되 싱싱한 나무들이 어우러지며 봄날의 풍경을 완성하고 있다. 물론 이를 내장산 단풍에 견주는 것엔 의견이 다를 수 있겠다. 미적 감각은 저마다 다르니 말이다. 한데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인 풍경이란 것엔 다들 동의하지 싶다. 주차장에서 절집으로 드는 길. 어딘가 느낌이 다르다. 소나무가 아닌 삼나무가 도열해 있다. 여느 절집 진입로와 달리 상점도 없다. 불국으로 가는 돌길 위의 연꽃 문양만 조용히 이방인을 맞고 있다. 이런 길은 걸어 줘야 제맛이다. 연꽃을 즈려밟을 때마다 머리가 말개지는 듯하다.진입로에 세워진 벅수(돌장승·중요민속자료 11호)도 인상적이다. 여러 설이 있지만 절집으로 부정한 기운이 드는 것을 막는 수문장 구실을 한다는 것이 정설로 보인다. 벅수는 남녀 한 쌍이다. 남장승은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을, 여장승은 주장군(周將軍)을 각각 가슴에 새겼다. 당(唐)나라건, 주(周)나라건 모두 중국이다. 그럼 절집에도 사대주의가 있었다는 얘기? 그렇지는 않다. 불회사 벅수가 만들어진 건 300여년 전인 1719년이다. 이웃한 운흥사 돌장승(중요민속자료 12호)에 새겨진 조각 연대로 추정한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무서운 역질은 천연두였다. 당시 우리 선조들은 천연두를 중국에서 들어온 잡귀로 여겼다. 중국 잡귀가 우리 말을 알아듣지는 못할 터. 무시무시한 주 장군, 당 장군을 동원한 것은 이런 이유다. 어딘가 300여년 뒤 발생할 코로나19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운흥사 입구에도 한 쌍의 돌장승이 서 있다. 돌장승 뒤엔 ‘강희 58년’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각 연대가 명문으로 새겨진 건 드문 경우다. 불회사와 덕룡산을 나눠 쓰는 운흥사는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가 출가한 절집이다. 초의선사가 차에 심취했던 것도, 이 일대 지명이 다도면(茶道面)인 것도 덕룡산 일대의 야생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운흥사 역시 독특하다. 무엇보다 여느 절집과 달리 가람 배치가 ‘제멋대로’다. 담장은 아예 없고 경내엔 잡초들이 무성하다. 대웅전 밑의 웅덩이-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선 도롱뇽 알이 부화를 앞두고 있다. 좋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고, 나쁘게 보면 전혀 관리가 안 된 것이다. 그간 여러 절집을 다녔어도 운흥사처럼 자유분방한 곳은 여태 보지 못했다. 불회사 일대의 신록이 다채로운 색감의 파스텔화라면 드들강의 신록은 수묵화에 가까워 보인다. 그림의 소재는 단색의 나무와 강물이 고작이지만, 그 단순함 때문에 아랫입술로만 부는 하모니카처럼 어딘가 애잔하면서도 말간 느낌을 준다. 드들강의 공식 명칭은 지석강이다. ‘4대강 삽질’에 사라진 동섬의 몫까지 더해 나주 사람들의 쉼터 노릇을 하는 곳이다. 현지인들은 드들강이라 즐겨 부른다. 경기 여주를 지나는 한강을 여강, 충남 부여 앞을 흐르는 금강을 백마강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드들강 건너 전남산림자원연구소의 메타세쿼이아 숲길, 그 한 발짝 옆에 있는 전통마을 도래마을, 풍류 넘치는 벽류정, 바위 하나에 일곱 석불을 새긴 철천리 칠불석상 등도 사정상 길게 설명하지 못할 뿐, 봄 풍경이 빼어난 곳들이다. 나주 시내에선 완사천을 찾아야 한다. 목마른 남정네에게 버들잎 동동 띄운 물을 건넨 지혜로운 처자의 전설이 담긴 곳이다. 버들잎 고사는 지역별로 몇몇 버전이 전해지는데, ‘나주 버전’의 주인공은 고려 태조 왕건과 나주 호족 오다린의 딸이다. 둘은 현 나주시청 앞 완사천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바로 그날 함께 밤을 보낸 뒤 고려 2대왕 혜종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 금성(나주)은 후백제의 도시였지만 왕건의 편에 선 덕에 이후 1000여년간 전라도의 핵심 도시로 번성할 수 있었다. 전라도의 ‘라’ 자가 나주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만 봐도 ‘라떼’ 시절 나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영산강 끝자락, 무안과 인접한 곳에 느러지 전망대가 있다. ‘느러지’는 물살이 느려진다는 뜻이다. 강물이 이 일대에서 ‘U’ 자 모양으로 휘어지며 물돌이동을 만들었는데, 그게 ‘느러지’다.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이 조롱박 모양이라면 영산강변의 느러지는 한반도를 닮았다. 느러지를 지난 영산강은 무안에서 ‘꿈여울’ 몽탄(夢灘)으로 이름을 바꾼 뒤 바다로 흘러간다. 글 사진 나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나주의 먹거리로 첫손 꼽히는 것은 영산포 홍어회다. 특히 초봄에 보리 싹과 홍어 내장을 넣고 끓인 ‘보리애국’의 칼칼한 맛은 놓칠 수 없는 제철 별미다. ‘홍어의 거리’ 어느 집에서나 맛볼 수 있다. 나주목사 내아 앞에는 곰탕집들이 즐비하다. 나주곰탕은 국물이 말갛다. 소뼈로 육수를 내는 일반적인 곰탕과 달리 양지나 사태 등 살코기로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나주곰탕 거리에 ‘하얀집’, ‘남평’, ‘노안’ 등 맛집이 몰려 있다. ‘왕곡가든’은 생고기비빔밥이 맛있는 집이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식사 때면 번호표를 들고 대기해야 할 만큼 사람들이 몰린다. 화순에선 지리산 아래 ‘우리들목장’, ‘너와나목장’ 등이 흑염소 요리로 알려졌다. -숙소를 겸하는 나주 목사내아, 신록의 메타세쿼이아 숲이 아름다운 전남산림자원연구소, 동복호의 화순적벽 등은 코로나19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가기 전에 미리 해제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겠다. -화순 별산풍력발전단지는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다. 주소창에 ‘화순군 동면 청궁리 438’을 쳐야 한다. 도로 옆으로 ‘화순풍력발전소’ 이정표가 있다. 표지판에서 3㎞ 정도 올라야 한다. 도로는 대부분 비포장이다. 험하지는 않지만 승용차는 조심해서 운행해야 한다.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천도복숭아의 축원, ‘안녕’을 드립니다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천도복숭아의 축원, ‘안녕’을 드립니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다리 좀 뻗고 누울까 하면 찾아드는 전란과 기근, 역병을 견뎌야 했던 우리 선조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던 아침 인사가 새삼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세계가 쑥대밭이 됐으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역병의 공습을!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은 인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균도, 바이러스도 진화에, 변종을 거듭해 끈질긴 생명을 이어 가는 모양새다. 불확실성으로 암울하게 가라앉은 마음에 실낱같은 불로장생의 축원을 하는 그림이 있다. 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일월반도도’(日月蟠桃圖)는 요즘의 울적함을 달래 줄 불로장생의 축원이 가득한 화려한 그림이다. 인류는 순수한 감상용 그림을 그리기 훨씬 전부터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 주술적인 기원이나 희망을 담았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성행한 민화는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문양이나 글자를 많이 그렸는데 대표적인 것이 잘 알려진 십장생도(十長生圖)이다. 장수를 비는 십장생에는 해·구름·산·물·바위·학·사슴·거북·소나무·불로초가 꼽히지만 조선 후기와 말기에는 대나무나 천도(天桃)복숭아가 추가된 그림도 많다. 해와 달, 산과 강, 천신을 믿는 신앙에 무속신앙, 중국의 도가적 상징이 결합된 것이 십장생도인데 ‘일월반도도’는 새롭게 천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조선의 십장생도는 화려한 색을 써서 불로장생을 희구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나타냈다. 뜨거운 열망을 마치 색으로 웅변하는 듯 강한 인상을 준다. 흑백의 수묵화나 담채화 중심의 산수화에서는 보기 힘든 특징이다. 그런데 그림의 채색 재료는 상당히 비쌌던 탓에 ‘민화’로 분류되는 십장생도를 민중의 그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왕실, 고위 관료, 부잣집에서나 가질 수 있는 그림이라 조선 후기 200년 이상 세도가에서 각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월반도도’는 유행의 끝자락에 그려진 같은 계통의 그림이다.4폭짜리 병풍 두 첩이 한 세트인 8폭의 ‘일월반도도’는 해와 달, 복숭아를 그린 단순한 구도에 선명한 색감이 두드러진다. 전형적인 십장생도와 소재는 다르지만 분명 장수와 안녕을 기원하는 그림이다. 명도 높은 청색과 녹색으로 그린 산과 바위, 넘실대는 물결은 궁궐 정전의 옥좌 뒤에 두는 ‘일월오봉도’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의 명운이 다해 가던 시기 궁정 화원들의 협동작품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의 주인공인 반도(蟠桃), 즉 천도는 중국 신화에서 여선 서왕모(西王母)의 정원에서 자란다는 복숭아이다. 쪼글쪼글 영겁의 주름이 진 나무 등걸과 탱글탱글한 생명의 복숭아가 절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신선은 없어도 삼천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이 복숭아를 먹고 동방삭이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설화가 선연히 떠오른다. 화면의 깊이감도, 채색의 변화도 없는 정적인 공간은 시간이 멈춘, 장생의 염원을 은유한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생명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어쩌면 지금은 국경과 인종과 빈부로 반목했던 인류가 바이러스의 위협을 대하며 모처럼 서로 안부를 묻고, 안녕을 전하는 귀한 시간일지 모르겠다. 선인들의 지혜와 궁정화원의 마음을 함께 담아 온 누리에 축원을 보낸다. 그저 소박한, 그러나 절실한 안녕의 축원을.
  • 먹 번진 듯 詩 읊조린 듯… 자연의 끝자락 한 컷

    먹 번진 듯 詩 읊조린 듯… 자연의 끝자락 한 컷

    먹이 번진 듯 흐릿한 외곽, 꿈인 듯 아스라한 자태. 분명 이 땅에 존재하는 풍광을 찍은 사진인데도 마치 상상 속 그림을 대하는 느낌이다. 흑백으로 인화된 사진들은 수묵화라고 해도 깜빡 믿을 정도다. 디지털 프린트의 선명함과 매끈함 대신 입체적인 질감이 도드라지다 보니 손을 뻗어 만져 보고 싶은 충동마저 인다. 한지에 사진을 인화하는 아날로그 프린트 작업으로 잘 알려진 재미 사진작가 이정진(59)의 개인전 ‘보이스’(VOICE)가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순회 회고전 ‘에코-바람으로부터’를 연 지 2년 만이다. 미국 중남부 사막과 캐나다의 광활한 대자연에서 촬영한 신작 ‘보이스’ 시리즈와 2016년 작업한 ‘오프닝’ 시리즈 가운데 25점이 나왔다.●경이로운 풍광보다 나의 존재감 느낄 수 있는 장소에 끌려 이번 전시에선 감광유제를 바른 한지에 인화하는 기존 아날로그 작업과 더불어 최근 변화를 시도한 디지털 작업을 동시에 선보인다. 한지에 인화한 뒤 이를 스캔해 디지털로 다시 출력하는 방식이다. ‘오프닝’은 아날로그 프린트, ‘보이스’는 디지털 프린트인데 질감 차이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는 “한지에 작업하는 작가로 불렸지만 필요에 따라 선택한 것일 뿐 그 방식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아날로그 작업을 충분히 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이정진의 작품은 고요하면서도, 격정적이다.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그 풍경 안의 공기와 바람, 햇빛이 몸으로 느껴지는 기이한 경험을 한다. 그의 사진 작업을 두고 ‘명상적’이라고 평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리라. 신작 제목 ‘보이스’는 “자연에 투영된 작가 내면의 목소리이자 자연이 작가에게 던져 주는 메아리”를 뜻한다. 대자연을 피사체로 삼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광에는 애초 관심이 없었다. 작가는 “자연과 대면했을 때 나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에 끌렸다”면서 “그러다 보니 자연의 끝자락 같은 사막에서 주로 촬영하게 됐다”고 말했다.●일부 통해 전체 통찰하게 하는 ‘열림’ 의미 담아 세로 프레임 ‘오프닝’ 시리즈는 일반적인 파노라마 풍경 사진과 달리 세로형 화면 구성이 특징이다. “자연의 일부분을 통해 전체를 통찰하게 하는 ‘열림’의 의미에서 위아래로 긴 프레임을 선택했다”고 한다. “내 작업을 문학에 비유하자면 시에 가깝다”는 작가는 찰나의 직감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답사를 아무리 많이 다녀도 대상이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 들기 전에는 결코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대신 찍어야겠다는 직감이 들면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하게 촬영을 끝낸다. “한 번에 열 컷 이상 찍지 않는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니 현장에서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별로 궁금하지 않다. 자연과 내가 교감을 이룬 상태에서 촬영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고, 결과물이 어떨지는 그다음의 일이다.”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3월 5일까지 전시 홍익대에서 공예를 전공한 이정진은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사진기자를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1990년대 초기 현대 사진 거장인 로버트 프랭크의 제자이자 조수로 활동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호주 국립미술관, 프랑스 파리 국립현대미술기금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3월 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국립공원 해맞이·해넘이 명소는 ‘여기’

    국립공원 해맞이·해넘이 명소는 ‘여기’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29일 국립공원 해맞이·해넘이 명소 10곳을 선정, 추천했다.해맞이 명소는 지리산 천왕봉·바래봉, 설악산 대청봉, 북한산 백운대, 태백산 함백산 등이다. 해넘이는 태안해안 꽃지해변, 한려해상 달아공원·초양도, 변산반도 채석강·적벽강, 다도해 정도리 구계등 5곳이다.지리산 천왕봉(사진)은 지리 10경 중 제 1경으로, 첩첩이 능선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의 장엄미와 웅장함이 압도적이다. 천왕봉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2시간 내외로 오를 수 있는 지리산 바래봉 눈꽃 해맞이도 아름답다. 설악산 대청봉은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와 수묵화같은 산줄기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올해 일출시간은 천왕봉과 태백산 함백산이 7시 38분으로 가장 빠르다. 해넘이는 붉은 노을 낭만 가득한 감성을 채울 수 있는 서해안이 올랐다. 명승 할미·할아비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꽃지해변 일몰(사진)은 서해안 3대 낙조다. 변산반도의 채석강·적벽강은 석양이 비칠 때 붉은색으로 물들어 황홀한 일몰을 경험할 수 있다. 일몰은 오후 5시 25분다. 공단은 공원 입구에서 해맞이 탐방객을 위해 핫팩 등을 제공하고 가야산·설악산탐방원에서는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희망캠프도 운영한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사진 위)지리산 천왕봉 일출, 아래)태안 꽃지해변 일몰. 국립공원공단 제공
  • [그 책속 이미지] 카메라로 수묵화를 그리다

    [그 책속 이미지] 카메라로 수묵화를 그리다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주기중 지음/아특사/330쪽/2만원 하늘 끝자락에서 드리운 구름이 기어코 앞산마저 뒤덮었다. 산자락을 도는 차는 구름으로 들어가기 직전이다. 신선이 산다는 몽유도원 입구에 선 아이의 마음이 이랬을까. 강원도 미시령 풍경이 수묵화를 고이 옮겨 놓은 것 같다. 신간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은 일간지 사진부장 출신 저자가 중국과 조선시대 전통적인 산수화 이론으로 풀어낸 촬영 안내서다. 카메라 조리개와 셔터 속도, 전체적인 구도 잡는 법과 촬영 시간대 선택 등 기술적인 부분에 관한 강습이 피가 되고 살이 될 법하다. 그러나 정작 책의 백미는 풍경사진의 지향점을 작가의 정신세계를 담는 산수화의 경지에 빗대어 설명한 부분이다. 저자는 좋은 풍경사진의 관건이 자연에 담긴 정신과 작가의 자연관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대자연 앞에 선 사진가의 자세, 생각과 감정을 사진에 이입시키는 방법을 배워 보자. 너무 어렵다면 저자가 직접 촬영한 백두대간, 섬진강, 춘천 등의 풍경사진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청년 예술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서초 ‘청년 갤러리카페 지원사업’

    청년 예술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서초 ‘청년 갤러리카페 지원사업’

    서울 서초구가 청년 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해 지역 내 카페에 전시공간을 마련하는 ‘청년 갤러리카페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청년 예술작가에게는 활동 기회를, 주민에게는 일상 속 문화체험 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서초구는 지난 10월 총 22명에게 작품 58점을 지원·접수받았고, 작가 이름이나 경력 사항 등을 비공개로 심사해 공정성을 확보했다. 그중 선정된 청년작가 10인의 25개 작품을 카페 10곳에 전시했다. 유화, 수묵화, 드로잉, 펜화 등 청년작가마다 개성을 살린 다양한 작품이 오는 10일까지 전시되며 구매할 수도 있다. 선정된 작가에게는 격려금 30만원을 주고, 작품 판매 수익금도 전액 지급한다. 카페에 방문하면 그림뿐만 아니라 전시작품이 새겨져 있는 컵홀더도 만나 볼 수 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전국 최초 음악문화지구로 지정된 지역 내 문화예술지역을 앞으로 더욱 키워 나갈 청년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더욱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정동극장서 되살아난 조선 첫 스피드 스케이터…판소리 뮤지컬 ‘경성스케이터’

    정동극장서 되살아난 조선 첫 스피드 스케이터…판소리 뮤지컬 ‘경성스케이터’

    1933년 겨울. 꽁꽁 언 압록강변에서 ‘전일본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청년, 김정연. 3년 뒤 김정연은 이성덕, 장우식과 함께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열린 제4회 동계올림픽에 나간다.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첫 올림픽 대회 출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달렸다.조선 첫 스피드 스케이터들의 이야기가 2019년 서울 정동극장에서 되살아난다. 29일부터 12월 22일까지 정동극장 무대에 오르는 창작 판소리 뮤지컬 ‘경성스케이터’는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청년들의 국제대회 도전기를 담았다. 김성연 등 실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지만, 인물 설정과 스토리 등은 모두 창작을 통해 탄생했다. 극 중 포수 ‘김달진’은 자신이 잘못 쓴 총으로 딸이 청각장애를 갖게 된다. 무능한 아버지는 딸 ‘순임’ 에게 보청기를 사주기 위해 특별상금이 걸린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에 도전한다. 달진은 식민 시대 나라 잃은 국민을 향한 차별과 멸시, 거대 권력의 탄압에 맞서며 딸을 위한 레이스를 펼친다. ‘경성스케이터’는 정동극장이 전통예술 소재 발굴과 작품 개발을 위해 선보이는 ‘창작ing’ 시리즈의 올해 마지막 작품으로, 판소리 뮤지컬을 표방한다. 1930년대 한국대중음악 태동기를 고스란히 반영한 작품의 음악은 옛 축음기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대중음악적 요소를 판소리 곳곳에 녹여냈다. 또 한국 전통의 판소리와 서양 뮤지컬의 결합처럼 국악기와 서양악기, 판소리와 재즈, 수묵화와 3D 애니메이션이 뒤섞이며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작품을 연출한 이기쁨 연출은 “달진과 순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 달진처럼 마음속에 솟아나는 두려움을 바라보고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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