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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화가 송수남씨(이세기의 인물탐구:34)

    ◎화폭에 시정 가득… “시인같은 화가”/수묵현대판화 개척… 「남천산수」는 독보적 경지/유연하면서도 예리한 운필로 화력 30년 빛내/가장 한국적인 소재에 집착… “동서양 넘나드는 화격” 꿈꿔 남천은 시인같은 화가다.그는 그림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그의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먼산 먼강 안개 서린 먼동,잔잔한 금강이며 섬진강 얼어붙은 겨울산하까지도 그의 그림속에는 교교한 시정이 담겨있다.공간에 뜬 몇개의 산이 담묵 농묵으로 꿈결같은 원근을 이루거나 또는 보석처럼 빛나는 수묵채색일 때도 아름다운 여백을 살려 화면전체에 서정시가 흐르는 듯한 향수를 품고 있다. 그가 쓰는 먹은 모든 색의 출발이자 모든 색깔을 포함한 색채다.어둠이 흩뿌리는 혼묵,비내리는 잿빛하늘의 회묵일지라도 단순한 검은색인가 하면 전혀 검은 색깔이 아닌 현묘 심묘의 먹색일색이다.그는 눈부시게 하얀 백지위에서 먹으로 백색을 백답게 살리고 먹색을 가장 먹답게 표현할 줄 아는 화가다. 색깔과 색깔을 배합해서 얻어지는 효과와는 달리 물과 먹의 비율은그 농도를 계산할 수는 없으나 모필이 한지에 닿는 순간의 유연성과 날카롭고 경쾌한 선조,그 번짐이 내는 의외의 조형에 흠뻑 빠져든듯 그는 지난 수년간 수묵을 매재로 하는 긴 실험과 모색의 시기를 거쳐왔다. 그리고 수묵추상 발색산수 동양화판화에서 다시 발묵산수로 이어지는 그의 수묵작업은 이제 포만과 방출의 단계를 통과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남천산수」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충격던진 첫 개인전 그의 이런 실험정신은 그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할 때도 일관되게 지켜지던 그만의 방법이다. 이대입구 신촌 하숙집 골방에 틀어앉아 낙엽이란 낙엽은 모조리 주워다가 수북하게 쌓아놓고는 이를 화면에 이리저리 꼬아 붙이는 나뭇잎 콜라주,켄트지에 유화 한지에 수채화등 그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스스로 모색하고 타진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때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향의 뒷동산」과 「강언덕 버들개지 꽃샘바람에 한바탕 춤추고 나면 온산은 진달래가 물들어」샤갈과 드가를 변주한 듯한 영롱한 색채는 그가 범상치않은 화가로 탄생될 것을 그의 주변에 일찍이 예감시켰다. 화력 30년의 화가로서나 대학교수로서나 그는 이제 중진의 위치다. 그러나 스승의 문하에서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혼자서 자신의 세계를 암중모색으로 성취한 편에 속한다.이에대해 그 자신도 「누구에게 배운 적도 영향을 받은 바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초기 「한국화」전이란 타이틀로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한지와 먹,탑이나 기와지붕등 동양화재료와 한국적 테마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의 동양화에서의 설채와 운필을 벗어나 서양추상화를 보는듯한 충격을 던졌다.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송수남 한국화는 새로운 공간예술을 실천한 예로서 70년대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우뚝 설것임』을 다짐했었다. 70년대후반 실경산수가 한창 붐 일때도 그의 산은 진채표현의 중량감을 과시하여 적묵산수의 특징을 강조했고 담백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수묵과는 달리 강렬한 발색산수에서 중성적 느낌을 안겨주는 다채로운 채색과분방한 화풍을 구사해 보였다. 야트막한 구릉과 하천을 부드러운 선과 극도로 절제된 간결한 구성으로 암시하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거대한 산봉은 휘염의 범람인듯 화면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곳에는 시의 빛과도 같은 섬세한 장식이 둥우리를 틀고 우뚝한 삼각형,묵취와 묵광,산정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빨갛고 동그랗고 자그마한 해만으로 먹구름같은 화면에 눈시린 청량감을 뿌렸다. ○동양화서 추상 시도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산」을 주제로한 판화를 제작,목판·석판·실크스크린·모노타입등 4종류를 찍어 수묵화의 수묵현대판화로서의 새로운 화경을 열었고 88년 「자연과 도시」전도 빼놓을수 없는 탁발한 전시로 손꼽힌다. 굵거나 묽은 선으로써 시작과 끝을 흐려뜨리면서 드로잉적인 필선과 발묵의 번짐으로 독특한 도시의 서정을 구현,울창한 잡목숲과도 같은 어지러운 도시의 여러 풍경을 특징적으로 묘사해 냈다. 도시나 산하외에 그가 즐겨 그리는 미루나무는 먹으로 화면을 가득채운 동양화의 현대추상을 시도한 선시리즈와 고향으로 가는듯한 휴식을 살린 첨단과 향수의 두면을 대비적으로 선보여주고 있다. 붓끝에 힘을 주어 사군자를 치는듯한 한계를 자유하여 그는 이제 모필만이 갖는 유연성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만의 화격을 이루는것이 꿈이다. 남천으로서는 어느구석에도 그 겉모습에선 화가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런 「티」는 그에게는 지난 시절의 치기일지도 모른다.문학과 철학에 빠져 세상을 온통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니힐리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이른바 가난이면 가난, 슬픔이면 슬픔, 외로움이면 외로움이었던 회오리가 한바탕 지난후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훨훨 벗고 「평범」과 「무심」을 과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굵은테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 그런거지 세상이란 그런거지」털털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지난 날이 흔적없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수류운공이 떠오른다. ○단체활동 개입 안해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눌하고 치밀하지 못하여 지난 90년 한 신문사가 주는 예술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상을 제정해주신 신문사에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여러차례 연습까지 해놓고는 막상 단상에 올라 다른 신문사 이름을 들먹이며 중언부언하는 바람에 관계자와 좌중을 난처하게 했었다. 또 두주불사로 학생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사심없이 놀다가도 갑자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한국적이란 무엇일까.중국하면 도가 떠오르고 인도하면 명상이 떠오르듯이 「한국」하면 뭐가 먼저 생각나지?』심각하게 추궁하여 주위를 당혹케하기 일쑤다.이런 한국적인데 대한 집착은 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전이후 수십차례의 세계미술전에 참가하면서 생긴 징후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농가 송대석씨의 3남매중 외아들.조부가 쓰던 먹과 벼루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소원은 언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성취하는 일이었다.소원대로 지금은 서교동 그의 집에 마련된 80여평의 드넓은 화실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끝없이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가족은 부인 백명희교수(이대사대학장·54)와 1남2녀.그림을 그리는 자녀는 없다. 화가친구보다는 옛날 신촌하숙방에서 함께 뒹굴던 소설가 이제하 시인 강위석 등과 즐겨 어울리고 80년대 수묵화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 제자들이 있지만 화단에서의 단체활동등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화가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남천을 소탈하고 소박하다고 말한다.대체로 자신의 일에만 충실할뿐 그는 만사에 서툴고 머뭇거리는 형이다. 그러나 가까이 화단일부에서 그의 후배들이 말하는 남천은 뚝심과 정열,실험정신이 투철하여 기왕에 있어온 타성을 묵살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 욕망이 꿈틀대는 야심파다.또는 감정이 격하고 제스처가 명확하며 일을 벌이면 끝장을 내고 한번 눈밖에 난 사람은 끝끝내 돌아보지않는 독선적인 면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의 완성을 설계 어느것이나 화가로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일면일 것이다.사람이 나이들면 환경과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듯이 아마도 남천 역시 그런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지닐 수도 있다.그래선지 그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미술은 음악처럼 세계도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서슴없이 긍정한다.그리고 한때 지나치게 탐닉했던 화려한 색채를 단순하게 저버린것이 아니라 이를 오채의 먹으로 종합한다는 의지다. 그는 결국 시와 철학으로 살찌운 마음속에다 그의 수많은 붓들을 담가두었다가 어느날 하얀 한지위에 먹만의 조형으로 세계화단에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그는 그림의 완성,그의 그림의 끝을 알고있는 이시대 소중한 화가의 한사람임에 틀림없다. □연보 ▲1938년 전북 전주출생 ▲전주중앙국교 서중­공고졸업 ▲1956년 홍대 서양화과 입학 ▲군복무후 1961년 동양화과로 전과 ▲1963년 홍대 졸업 ▲1962년 국전입선후 신광여고­이대부고교사 ▲1967년 제9회 동경국제비엔날레 출품(동경) ▲1969년 송수남 「한국화」전(신문회관화랑) ▲1970년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뉴델리) ▲1972년 한국현대작가7인전(샌프란시스코 아시아재단화랑) ▲1973년 송수남 개인전(신세계화랑) ▲1973년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상파울루)한국 동양화10인전(동경) ▲1974년 양지화랑 초대개인전 ▲1974년 현대 화랑 기획전(현대화랑)현대한국동양화전(나고야) ▲19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개인전 ▲1976년 한국현대 동양화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7년 한국 미술대상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8년 맥향화랑 초대전 ▲1978년 뉴욕 한국화랑 초대개인전 ▲1978년 한국미술20연 동향전(국립현대미술관) ▲1979년 한국미술­오늘의 방법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80년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개관기념 초대전 ▲1981년 백상미술대전 한국현대작가 드로잉전(뉴욕 브루클린미술관) ▲1983년 송수남전(현대화랑) ▲1983년 초대 송수남 개인전(뉴런던 코네티컷대,뉴욕브루클린대 시카고 스코키시립미술관) ▲1984년 송수남 개인전(뉴욕 한국문화원) ▲1985년 송수남 판화전(조선화랑) ▲1986년 한국화,오늘과 내일 전망(워커힐미술관) ▲1986년 한국화 100연전(호암갤러리) ▲1986년 동양화 초대전(강남현대화랑) ▲1986년 송수남 초대전(부산진화랑) ▲1988년 자연과 도시전(동산방화랑) ▲1989년 남천 판화전(청작미술관)해마다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현대미술초대전,한국의자연전,서울미술대전,현대작가초대전 등 단체전 수회출품 동아미술제심사위원,문예진흥원 미술대전심사위원,운영위원 역임〔현재〕서울 미술대전 운영위원,서울시 예술위원,홍대교수(홍대박물관장) 중앙예술대상수상 「수묵화」「동양화」「자연과 도시」「남천사군자(상·하)」
  • 흑백의 유혈(외언내언)

    흑과 백은 반대되는 개념이다.『흑백을 가리자』는 말이나 『검다 희단 말 없다』고 하는 속담은 그래서 대칭되는 개념의 제시로써 옳고 그름을 갈라보게 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정몽주의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고 말한 뜻도 거기 있었다.반대되는 색상을 대비시켜 자신의 뜻을 보다 명료하게 전달코자 함이 아니었던가. 비록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해도 그것이 조화를 이룰 때는 미가 되고 질서가 된다.한편의 수묵화를 보자.하얀 종이에 검은 먹이 칠해지는 것이지만 그것이 조화를 이룸으로 해서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심는다.흑백이 겨루는 바둑도 그렇다.돌이 바둑판 위에 아무렇게나 뒹굴어 있는 것은 무질서지만 조화롭게 놓여나가면 흥미진진한 오락이 된다.그래서 극과 극은 통한다고도 한다.너무 기쁘면 울음이 되고 너무 슬프면 웃음이 된다는 이치이다. 『아프리카 흑인의 존경과 우정을 바란다면 우선 국내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야 한다.우리가 해외에서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에서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흑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철폐함으로써 「제2의 링컨」이라고 칭송받은 케네디 대통령의 말이다.흑백 인종 사이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자는 외침이다.한편의 아름다운 수묵화같이 한판의 짜임새있는 바둑판같이 흑백간에 화음을 내자는 영혼의 목소리이다.하건만 아직도 미국에서는 백인의 66%가 『흑인과의 결혼은 용납 못한다』(91년 시카고대 여론센터 조사)고 응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이 이러할때 다른 나라의 경우는 더 말할 것이 없다.한동안 잘되어간다 싶기도 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또다시 흑백간의 유혈사태가 일고 있다.과격파 흑인지도자 크리스 하니가 백인한테 살해 당하면서의 일이다.골이 깊은 이나라 흑백분규 멎을 날은 언제가 될것인지.한 발짝씩 물러나 머리 맞대고 지혜를 모으면 조화를 이뤄 나갈수도 있을 것을….
  • 파리시선정 올해의 화가 고병진씨 뽑혀

    ◎한국인으로 처음… 「영토」주체 전시회/흙으로 그린 나무 동양적 생명력 표출/미술평론가 “충격적 작품”평… 일약 「유명화가」 대열에 해마다 파리시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화가 가운데 독창성이 두드러진 화가 4명을 선정하여 전시회를 파리 12구 파르크 플로랄 드 파리에 있는 전시장 「미술 광장」(카레 데자르)에서 열어준다.올해는 한국인 고병진씨(39)가 쟁쟁한 다른 3명의 화가들과 함께 선택되었다.고씨 작품의 전시회는 「영토」라는 이름으로 3월25일부터 5월16일까지 두달동안 열린다(리셉션은 4월1일).전시및 홍보와 작품 운반등 일체 경비는 파리시가 부담한다.이 전시회 혜택을 한국인 화가가 받는 것은 처음이다. 고씨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파리에는 3년전에 왔다.한국에서는 대학졸업후 동문전외에는 전시회를 가지지 못했는데 그의 작품이 당시의 주된 흐름과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그때는 예술이란 사회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이어야 했고 자기 내면을 토해내는 제 그림 같은 것은 평가를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무만 줄곧 그려왔다.흙을 써서 그린 나무들은 크고 선이 굵으며 질화로처럼 투박하다.그림 크기는 하나같이 2m×3m로 대형이다.보통 화랑에서는 전시하기 어렵다.이 넓은 캔버스에 흙을 물에 갠 유화용 분말 안료와 플라스틱접착제에 섞어 바른다.흑갈색 또는 청회색을 띠며 수묵화 같은 인상을 주는 그림 속의 나무들은 예사 나무가 아니다. 『독창적인 것이 으레 그렇듯 괴상한,어느 종에도 속하지 않는 것,고병진의 모티프는 감동적인 신호를 형성시키기 위해 거대한 화폭 안에 갑갑하게 죄어져 있다.혹은 압박이고 혹은 대화인,이 엄청난 발아의 형태들이 옛스런 균형미를 지배하는 대수림의 열주에서 비켜나 있을 때는 인간 언어행위를 흉내내고 있는 듯하다』 고씨의 한 작품에 대한 평론가 베르나르 구아씨 평이다.그는 고씨의 작품세계를 「생명력」이란 말로 집약하기도 한다. 고씨 작품을 「발견」한 것은 또 다른 평론가인 장 리크 샬리모 교수(파리 8대학)였다.지난해 작가의 화실에 와서 작품 수십점을 보고는 『충격받았다』면서 곧 파리시 미술담당관에게 소개했다.그 결과 93년에 전시기회를 누리는 4명의 화가중에 고씨가 들게 되었다. 여기 선택되는 화가들은 모두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전시 경력도 많은 사람들인데 고씨의 경우는 특례에 속한다.그는 파리에 와서도 한번도 전시회를 가지지 않았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무명」의 그는 대뜸 「유명화가」로 솟아올랐다. 파리시는 해마다 이렇게 화가들을 선정하여 전시회를 열어 주는 대신.작품 한 점씩을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다가 5년후 매각한다.해가 지나면 값이 많이 올라가게 마련이다.그 대금은 다시 다른 작가들을 위한 전시 경비등 미술 진흥에 쓴다.
  • 화가 장우성씨(이세기의 인물탐구:8)

    ◎시·서·화 도양화삼절의 노인가/인위·조작없는 「무위사상」바탕,독창적 화풍/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 은은하게 표출/정많은 성품.부정엔 단호… 「친일논란」때 미술계풍토 비판도 대나무처럼 곧고 차가운 죽색청한과 물빛처럼 영롱하고 푸르른 수광징벽의 한벽원.이는 월전 장우성화백의 개인미술관 이름이다. 경복궁뒤 사간동 화랑가에서 삼청공원으로 이르는 초입에 위치한 한벽원은 서울 한복판(종로구 팔판동 35)이건만 인적없는 산간에 묻힌 선비의 서숙인양 적요속에 묵향이 감도는 분위기다. 눈부시게 흰 화강암건물과 「한벽원」이란 이름만으로도 주인의 기상과 풍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대나무·백매와 계수나무 사이사이로 진귀한 옛 석물·석등이 배치되고 뜰한가운데는 일중 김충현의 「한벽원용」,내부벽면은 12지신·광개토대왕 비문·석굴암 관음상에서 탁본해온 석고부조로 장식되어 미술관다운 품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바로 이곳이 월전의 모든 예술생애가 집약되고 또 앞으로 우리 한국전통미술의 올바른 맥을 보존·육성해나갈 본산이기도 하다. 아다시피 화단의 거봉인 월전은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서·화의 삼절로 동양화 전영역에서 유창탁발의 화업을 이뤄낸 노대가다. 그의 작품은 공자가 그림을 두고 말한 「회사후소」,즉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마음을 깨끗하게 가다듬는다는 후소정신과 인위와 조작이 없는 무위사싱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월전의 이런 선비기질은 그의 그림에서 보듯 한점의 허세나 과장이 없이 잔잔한 운율이 유운문처럼 번지고 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가 은은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가 즐겨 그리는 학과 백로,화훼와 산수는 모든 기교가 배제된 간결 산뜻한 선묘와 담백한 설채,특히 그만의 묵의 묘취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기막힌 환희를 안겨준다. ○담백한 선조 일품 월광을 배경으로한 백매가지에는 방금 물오른 새싹을 틔울듯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고 흰 눈속을 헤쳐서 꺼낸듯한 꽃의 화관은 보석처럼 눈부신 진주빛을 발한다. 마치 신운이 움직이는듯한 절제의 필치로써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장인기질보다는 원로의 정신미를 정밀하게 누리고 펼치는 시기라 할수있다. 1912년 임자생.80의 나이에도 그에게는 「노인」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바르고 건강한 모습에 단정하고 깎듯한 움직임,사물을 꿰뚫는듯한 예지의 눈길은 『글씨나 그림등 예술은 가장 천진한것이 극치』라는 완당의 말대로 그 청정의 눈빛을 지니고 있다.그에게선 어떤 흐트러짐이나 허술한 곳도,만모의 기색도 찾아볼수 없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선 다감하고 정이 깊고 상대방을 포용한다.단지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추호의 용서나 양해가 없다.늘 옳은자의 편을 들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한다. 주말에는 골프,커피와 담배,두주불사의 애주가로 몇년전까지만해도 양주 한병을 비운 술실력이나 요즘은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순한 청주나 곡주를 즐긴다. 집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그러나 작업실이 있는 한벽원까지 아침 9시반에 출근해서 하오2시부터 작업대 앞에 선채로 3시간에서 4시간씩 작업에 몰두한다. 내년 가을 호암아트홀이 기획한 그의 화력 60년을 총정리하는 신작준비 때문이다.이는88년 일본 세이브미술관 초대 「한국·국화의 거장 장우성전」이후 5년만의 대작전시회여서 그는 모든 정열을 이곳에 쏟고있다. 그의 화적을 새삼 더듬을 필요는 없겠지만 월전은 18세되던 해인 30년 스승인 이당의 낙청헌에 입문,초기에서 10여년은 사실적 시각에 바탕을 둔 감각적 형태의 극세극채색의 치밀한 묘사에 밀착해왔다.그러다가 해방후 서울대미대에 재직하면서 스승의 회화권에서 벗어나 전통동양화인 수묵화에 정진하여 추상이 곁들여진 힘차고 분방한 용필로 활달한 화면을 추구해나갔다. ○18세때 이당에 사사 그는 경기도 여주의 전통적 유교가문에서 2남5녀중 다섯째,부친(장수영씨)의 나이 30세에 얻은 만득자여서 부모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월전」은 어릴때부터 유난히 달을 좋아한 아들을 위해 부친이 손수 지어내린 아호다. 할아버지에게 「동몽선습」「소학」「명심보감」과 「사서삼경」을 배우고 붓글씨를 공부하면서 그림을 시작,그림공부를 위해 상경할 무렵에는 평소 위당 정인보선생과 교분이 두터웠던 부친의 배려로 위당댁에 드나들면서 조선역사를 익혔다. 이당문하에서 운보 김기창,현초 이유태와 나란히 수학한지 2년만인 32년 제11회 선전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갈매기를 그린 「해병소견」으로 화단에 등단,41년에 「푸른 전복」으로 총독상,그리고 연이어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두차례 수상하고 44년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때 그린 「푸른 전복」은 열정적으로 부채춤을 추고난후 호흡을 가다듬는 무녀의 휴식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우리미술사를 말할때마다 거론되어지는 대표작중의 하나다. 범접하기 힘든 깨끗한 눈매며 전립의 영모,패영의 구슬은 이슬이 방울진듯,푸르른 구군복과 치마단까지 흘러내린 붉은 끈의 선과 색의 대비,공간을 여백으로 설정한 것등은 훗날 월전 문인화와도 일맥 상통한다. 싸늘한 겨울 날씨와 화면을 가득 채운 만월,한천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를 문인화의 무기교와 자연스럽게 절제된 묵선으로 관조한 조형어법은 「종교와도 같은 높은 이념이 함축」되어있다는 평이 뒤따르고 있다. 한치의 흔들림없이 지금도 여전히 화단의 정상을 지키는 월전으로서도 80성상을 돌아보면 흑색반점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44년 최고상을 받았을때 총독부의 요청으로 수상자를 대표하여 「답사」한것을 스승과 의논없이 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이당의 미움을 받아 소원했던 일,서울대 미대교수시절 「교수자리」를 탐내는 후배의 이간으로 미대 창설동지이며 당시 학장이던 장발씨와의 긴 오해등,어지러운 세속에 휘말려야했던 곤혹과 환멸이 잊을수 없는 얼룩으로 남아있다.물론 시간이 흘러 밝은 대낮처럼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곤 하지만 꼿꼿하게 앞만보고 살아온 그에겐 자존심에 먹칠당한 슬픈 추억의 장면장면들이다. 문인사대부의 학문과 역량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그의 그림속에 실린 아름다운 시구외에도 그는 「화맥인맥」등 신문에 자주 글을 발표한 미문으로도 유명하다. ○문장력도 뛰어나 그 한예로 83년봄 한 미술계간지가 다룬 「한국미술의 일제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이란 특집기사로 인한 「친일 화가파동」때 그는 대단한 문장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해 4월21일자 모 두 일간지 광고를 통해 발표한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는 이 성명서는 잡지에 게재한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일제36년과 해방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가는 친일파이며 모든 미술작품은 일본의 식민지 잔재인양 매도하고 미술교육도 잘못되어 후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했다는 기사내용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설」임을 전제,「작고작가와 현역 미술인 대부분을 부관참시식으로 난도질」하면서 과거 민족수난의 불행했던 역사는 외면한채 「민족예술창조라는 허구에찬 궤변」으로 사회여론을 오도,「이 방약무인한 오만을 나무라기전에 그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왔으며 소위미술평론가의 자격은 어디에서 취득했고 누가 인정했던가 묻고싶다」는 실랄한 항변과 규탄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글을 기초한 사람이 바로 월전으로 이 사건은 화단의 경종이 되어 서로 자숙하고 침착하게 자기 성찰하는 기회로 마무리 되었다. 월전은 이처럼 깐깐하다.굳이그가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화단의 누」라는 차원에서 가차없이 솔선하고 나섰다.그의 작업실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정갈하고 청결하여 난초의 홍자색은 싱그럽고 고고하기만 하다.호불호를 선명하게 가려 「한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사불란하게 실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미술관도 88년 구상·계획하여 그가 몸담았던 서울대 미대와 홍대미대의 제자·화우들을 주축으로 즉시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89년 미술관 착공,91년 3월개관 2주일전 부설 동양미술연구소 제1회 수강생 20명을 배출했다. 까다로운 성품과는 달리 각계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은 수화 김환기,영운 김용진,의재 허백련,소전 손재형과 친형제같은 우의를 다졌고 대한교육보험의 신용호회장과 황수영 유경채 이대원 김원용 특히 일중과의 우정은 난향과도 같다. 가족은 부인 유리정여사(73)와 1남3녀.장녀인 정란씨가 동양미술사를 전공했다.그의 만년의 예술은 「붓가는대로 그린다」는 명경지수의 염과 자연에 돌아가 자유하는 마음으로 우주를 넘나드는 광대무변의 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이제 월전화는 그의 생을 황홀하게 장식하기 위한 무르익은 화경에 접어들어 그 마지막 붓끝까지도 불후의 명작을 그리게 될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아산 현충사·정읍 충렬사 봉안 이충무공 영정,세종대왕 기념관 벽화 「집현전학사도」 낙성대봉안 강한찬장군·김경신장군·윤봉길의사·정포은선생·문익참선생·김종직선생·조식선생·정기용박사·유관순열사등 영정 제작.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1천호)」,고려대벽화 「군려도」크리스트상화(63빌딩)제작. □연보 ▲1912년6월 경기도 이주출생 ▲30년 이당 김은호 「낙청헌」입문 ▲32’ 제11회 선전 「해병소견」입선이후 계속 출품 ▲33’ 육교 한어학원 졸업 ▲41∼44’ 「푸른 전복」등 연4회 특선·추천작가 ▲46∼61’ 서울대 미대 교수 ▲49’ 로마 국제미전 「성모와 순교복자」3부작 출품(바티칸시 수장) ▲50’ 제1회 개인전(동화백화점 미술관) ▲63’ 도미,미국무성 화랑 개인전 ▲64’ 워싱턴 스퀘어 화랑주최 국제미술제 한국대표초대출품 ▲65’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 설립 ▲71’ 홍대 미대 교수 ▲75’ 유럽7개국 미술계시찰 ▲80’ 현대화랑서 도불 기념전 ▲〃 프랑스 정부초대 파리세루뉘시 미술관 개인전 「홍매」「석」등 프랑스문화성소장 ▲81’ 월전화집(지식산업사간) ▲82’ 독일 쾰른 시립미술관 초대 개인전 ▲85’ 국립 현대미술관 원로작가 초대전 ▲88’ 도쿄 아트포럼에서 「한국 국화의 거장 장우성전」개최 ▲〃 동산방화랑서 개인전 ▲92’ 오늘의 작가 11인전(진화랑)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역임 현 예술원회원 서울특별시 문화상·예술원상·5·16민주상 수상.
  • 조선시대회화전/고서화감상전/고미술명품전 “풍성”

    ◎조선/정선·이등 등의 진품90점 공개/고서/퇴계·율곡서간문·민화등 다채/당대의 화풍·변천사 본격 조명기회 하한기 화랑가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준높은 고미술명품전이 인사동의 두 화랑에서 마련된다. 대림화랑이 15∼25일에 펼치는 「조선시대회화전」과 학고재가 매년 여름에 꾸미는 특별기획 「고서화감상전」(23일∼8월31일)이 그것들로 고서화에 관한 한 오랜 경륜과 식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두 화랑대표가 자신있게 내놓는 전시회다. 이들 전시회는 양도소득세법 시행을 앞두고 고미술품들이 개인 수장고에 묻혀 그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마련된 명품전이어서 고미술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같다. 대림화랑의 「조선시대회화전」은 화랑대표 임명석씨가 10년전부터 추진해 오다가 비로소 결실을 맺은 대규모 기획전이다. 조선시대 명서화가들의 미공개작품을 조선왕조 초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망라하는 것으로 90점이 공개된다. 이중 왕실출신의 화가 이징의 「수묵화조도」,은호 이함의 「쌍응도」,동국진경산수의 대가로 평가되는 정선의 「해주허정도」,조희용의 「백매도」,장승업의 「영모절지도」,김규진의 「장생오우도」등 대부분이 미공개 진품들이다. 미술사가 안휘준교수(서울대 고고미술사학)와 허영환교수(성신여대 동양미술사)의 고증을 거친 이 기획전은 당대의 화풍과 변천사를 학문적 토대위에서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하다. 대림화랑은 또 이 전시회와 함께 태조원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시대 화가들의 교유기,작품일지등을 다룬 70쪽분량의 연표와 전시작품의 해설과 원색도판을 실은 2백10쪽의 대형화집 2천부를 발간했다. 학고재의 고서화 감상전은 「여름미술관­품위있는 글씨,소담한 옛그림」이란 제목으로 마련되는데 방학을 맞은 학생들을 특별히 겨냥해서 꾸며진다. 어른은 물론 학생들도 관심있게 고미술을 접하게 하자는 취지아래 학고재대표 우찬규씨는 교훈적인 글씨와 재미있는 내용의 민화들을 주로 장만했다. 출품작은 여섯부류로 구성되어 조선중기에서 구한말,근대에 이르는 화가들의 그림과 조선후기 서예인들의 서예작품과 조선시대 명현 대신 문인들의 간찰,조선후기의 민화,무낙관그림,청나라의 서화등이 망라된다. 1백36점의 출품작중에는 퇴계와 율곡의 서간문에서부터 김옥균 박영효등의 작품,근대6대가인 청전,의재등의 작품,중국화가 장대천등의 작품들이 고루 있다. 옛정취 물씬 풍기는 품위어린 글씨와 소담한 그림속에서 모처럼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귀중한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화랑가 활력소/중진화가들 전시회 풍성

    ◎변시지씨,두곳서 제주풍화 발표/김기혁씨도 불화 120점 선보여/황요엽·정하경씨,은둔 깨고 대작 출품 평소 작품발표가 듬하던 중진화가들의 대규모 개인전이 잇따라 열려 극심한 불황에 빠져있는 화랑가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해들어 화랑가는 4개월여동안 외국미술위주의 전시들로 장식됐거나 젊은 작가들의 3∼4인 그룹전이 유행한반면 굵직한 화랑들은 불황에 몸을 사려 무게있는 초대전이나 기획전개최를 뒤로 미뤄온 터여서 이들 중진작가초대전은 「점잖은 그림」을 즐기는 올드 팬들에게 모처럼 감상구미가 당기는 전시회가 되고 있다. 오랜 공백끝에 전시회를 갖는 작가들은 우성 변시지(66),우산 황용엽(61),남윤 김기혁(55),정하경씨(50) 등 4명. 제주에 작업의 터전을 굳히고 있는 변시지씨는 25일부터 5월16일까지 예맥화랑 인사동전시실과 소격동전시실 두곳에서 작품을 발표한다. 인사동에 본점을 둔 예맥화랑이 화랑운영에도 프렌차이즈방식을 도입,첫 지점으로 문을 연 소격동전시실 개관기념으로 이 화랑의 전속작가 변씨의 작품을 내놓은 것.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내며 미술수업을 한후 지난 57년 귀국하여 한국 고유미의 표출에 심혈을 기울여온 변씨는 자연주의에 바탕한 실경화작업을 추구하는 작가.젊은 시절,김인승 손응성 장리석씨 등과 「비원파」로 활약한 인물로 75년이후 그의 화폭에는 큰 변화가 일어 수묵조의 흑색의 필선과 특유의 감필 및 생략기법으로 독창적 화풍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황토빛위에 압축된 필선으로 제주의 풍경들을 화려하게 때로는 적막감짙게 담아낸 서정성 높은 제주풍화 50점이 발표되고 있다. 제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작가인 황용엽씨는 5월12일부터 25일까지 국제화랑에서 초대전을 펼친다. 2년만에 개인전을 갖는 황씨는 미발표 근작 40여점을 선보이는데 소품부터 대작(1백50호)까지 골고루 출품한다. 그룹전 등에 별로 참가하지않은 황씨는 창작욕넘친 노년의 결실을 이번 개인전을 통해 과시할 예정.그는 30년이상 일관되게 「인간」을 모티브로 한 작품제작에 임해왔으며 화단의 유행적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성실한 구상적 화면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그는 이번 근작들에서 과거 화면에 등장하던 절망적 한계상황을 되도록 배제하고 밝고 맑은 느낌의 삶을 관조하는 작가정신을 표출해보인다. 특히 향수에 젖은채 자연의 풍경과 동화된 인간들의 모습이 작가특유의 선묘로 그려지고 있다. 서울갤러리에서 28일부터 5월3일까지 전시를 갖는 김기혁씨는 「한국불교설화화전」이란 주제를 내세우고 있다. 본래 영문학자로서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내학문풍토에 대한 개인적 거리감을 버리지 못해 학자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김씨는 「그림」에 제2의 인생을 걸고 있다. 15년전부터 동양화에 전념하며 특히 불교설화의 형상화에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그는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중심부에 있는 대전시장 글랑팔레에서 열린 프랑스전국조형미술협회창립1백주년 기념전에 특별초대국인 한국의 대표로 초대돼 불교설화화 52점을 출품,호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출품작 52점과 그외 대표작 61점및 대작 4점등 1백20여점이라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 회화외적인 모든것을 외면한채 외곬로 치닫는 근성이 유별난 김씨는 고승 고찰에 얽힌 얘기들을 현세로 끌어와 화현시키고 있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동산방화랑 초대전을 23일 개막,5월2일까지 계속하는 정하경씨(한성대교수)는 지난 84년이후 8년만에 개인발표의 자리를 꾸미고 있다. 80년대초부터 실경산수화에 전념하며 독특한 수묵화기법을 추구해온 정씨의 화폭은 섬세하면서도 수려한 필치가 돋보인다. 급변해가는 여러 회화형식에 초연,오직 산수화에 집착하고 있는 그는 청담한 한국의 자연을 재현해내고 있는 몇안되는 작가중의 한명이어서 이번 초대전은 한국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수 있는 전시로 기대되고 있다.
  • 한국화 중흥 앞당긴다/이달 3곳서 대규모 기획전(미술)

    ◎문인화…/홍석창씨등 정예작가 245명 참여/근·현대…/월전에서 황창배씨까지 58명 초청/「어제로부터…」는 수묵화가 228명 발표무대 한국화의 전성기가 과연 다시 도래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70년대 후반이후 서양화에 밀려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한국화가 90년대에 들어 많은 작가들의 의욕적인 실험작업등과 함께 서서히 재기붐을 예고하더니 올해들어 중흥을 향한 한국화 작가들의 행보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3월들어 굵직한 한국화 전시회 10여건이 줄을 잇고 있으며,그 가운데도 작가규모나 구성명단이 전에 없이 대규모적인 기획전들이 이달 하순 동시에 세곳에서 열리게돼 주목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문인화 정신과 현대회화」(18 ∼ 27일),한원갤러리에서 기획한 「근·현대한국화의 한국적흐름」(12일∼4월18일),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개최되는 「어제로부터 오늘 그리고 내일전」(20 ∼ 25일)이 그것. 이 전시회들은 서양화에 밀려 지난 10여년간 소외돼온 한국화 작가들이 새봄들어 비로소 때를 만난듯 소리높여 「한국화의중흥」을 다짐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화랑가에 유례없는 불황을 초래한 비정상적인 그림값 상승의 주역인 서양화가 주춤해진데 따른 상대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문인화 정신과 현대회화」는 홍익대 동양화과 교수이며 홍익대 박물관장인 홍석창씨가 주도한 전시회로 전국을 통틀어 한국화의 문인화 정신을 지켜오고 있는 정예작가 2백45명이 대규모로 참여하고 있다. 각 지역별로 지역을 대표하는 중진 화가 8명의 추진위원과 2명의 실무위원이 모여 출품작가를 선정했는데,한국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한국화단에 주체적인 한국회화의 정신을 되살리는데 뜻을 모으고 있다. 참여 작가는 홍석창씨를 비롯,조평휘 김원 이용휘 양창보 변상봉 선학균 정하경 조돈구 곽석손씨 등이다. 지난해초 개관한 한원갤러리가 장기 기획으로 마련하고 있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한국성 모색」시리즈중 마지막 기획인 「근·현대한국화의 한국적 흐름」은 194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화를 이끌어온 58명의 작가가 초대되고 있다. 근·현대성과 한국성의 자각이 조화를 이루는데 기여한 작가들의 대표작이 망라됐다. 1941년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작인 월전 장우성화백의 「푸른 전복」,심산 노수현의 원숙미를 보여주는 산수화 「추경」,대담한 조형성의 목불 장운상의 「두여인」등 연작에서부터 현대를 대표하는 황창배 김병종 이숙자 이종상 오용길씨 등의 근작까지 한국화의 진수를 맛볼 수있는 전시회다. 한편 「어제로부터 오늘,그리고 내일전」은 홍익대 동양화가 교수인 중진한국화가 송수남씨가 12년째 이끌어온 수묵운동의 대규모 발표무대. 전국 각대학 출신들인 20∼50대 작가 2백28명이 참여한다. 이같은 대규모 기획전들 이외에도 3월중 열리는 한국화전은 「창림회전」(서울갤러리)「소연회전」(〃)「자연·형상­92전」(무역센터 현대미술관)「92신춘한국화 9인초대전」(갤러리도올)「92창묵회전」(경인미술관)「하태진초대전」(조선화랑)등이 있다. 90년이후 채색작업등 새바람을 타고 심기일전하고 있는 한국화분야는 그림값면에서도 서양화에 비해 합리적인 수준을 고수하고 있어 올해의 극심한 불황속에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맞을 수 있으리란 기대까지 품고 있다.
  • 조선통신사 한시 발견/수행화가 김유성의 수묵화도 함께

    ◎재일사학자 신기수씨,사카이시서 【도쿄 연합】 일본 에도(강호)시대에 조선통신사가 시가(자하)현 히코네(언근)성에서 접대를 받을 때 남긴 한시등 당시 양국간의 우호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최근 재일한국인 사학가 신기수씨(60·오사카부사카이시)에 의해 발견됐다고 일교도(공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자료들은 ▲가로 50㎝,세로 46㎝ 크기의 종이에 쓰인 한시와▲통신사 수행화가 김유성의 수묵화등이다. 한시는 1636년 일본을 방문했던 통신사절이 여행도중 히코네에서 숙박할때 히코네성에서 환대를 받은 정사(통신사대표)가 따뜻한 대접을 기뻐하며 연회석상에서 번의 간부에게 지어준 것이다. 또 수묵화는 1764년 도쿠가와 이에시게(덕천가중)의 장군 취임때 일본을 방문했던 통신사절의 수행화가 김유성(호는 서암)이 노인과 어린이를 주제로 그린 것으로 가로 37㎝,세로 1백12㎝ 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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