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수명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차지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울음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재택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088
  • ◎철수·폐기 어떻게 하나/재래무기에 장착된 탄두부터 철수/폐기방법은 지상폭파·발사 두가지 지상이나 함정에 배치된 전술핵무기의 철거는 재래식무기에 장착한 핵탄두를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전폭격기에 탑재하는 소형핵폭탄이나 핵지뢰·핵배낭등은 모두 수거해서 폐기장소로 보내진다. 핵탄두가 제거된 미사일본체는 지상폭파하거나 배치지점에서 일정목표의 사격장으로 발사폐기하는 두가지 방법을 택한다. 지난 87년 중거리핵전력폐기에 관해 합의했던 미소양국은 보유중인 중거리미사일의 80%는 지상폭파하고 20%는 발사폐기키로 결정했었다. 핵무기폐기를 위해서는 핵탄두와 미사일을 분해폐기할 수 있는 특수시설을 건조해야 한다.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이 시설에 도착하면 미사일에 전자꼬리가 붙여지고 전자꼬리는 미사일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전파를 발사한다.방사능물질탐지기와 특수 카메라가 핵미사일의 분해과정을 촬영한다. 해체작업중 가장 중요한 과정은 핵탄두안의 핵물질과 유도장치의 분해과정이다.핵물질과 유도장치는 핵무기기술의 핵심이다. 이런 특수시설에서 분리과정을 거쳐 핵이 제거된 미사일의 탄두는 파괴공장으로 보내져 분해된다.미사일의 액체연료는 감시하에서 해상에서 발사,연소시키고 고체연료통은 구멍을 뚫어 폐기한다. ◎핵무기의 종류와 성능/사정 5백㎞ 기준,전술·전략핵 구분/잠수함발사 미사일이 가장 위협적 핵무기는 운반수단의 사정거리에 따라 전술핵과 전략핵,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술핵은 사정거리 5백㎞이하의 핵무기로 단거리핵전력(SNF)이라고도 하며 지상발사랜스미사일과 F4팬텀이나 F16 등 전폭격기에 탑재하는 소형핵폭탄 또는 함정에 배치되어 있는 토마호크미사일을 말한다. 전술핵중에는 보병 한사람이 메고 다닐 수 있는 25㎏의 소형 핵배낭도 있으며 적의 기계화사단을 저지시킬 수 있는 원격조정의 핵지뢰까지 포함된다. 또 지상의 1백55㎜·2백3㎜등의 화포에 장착할 수 있는 사정거리 14∼30㎞의 야전용 전술핵도 있으며 어니스트 존·나이키·허큘리스등 재래식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사정거리 2백∼3백㎞의 핵무기도 모두 전술핵에 속한다. 나이키·허큘리스·랜스등 개발된지 이미 30년이나 지난 이들 전술핵은 지난번 걸프전쟁에서도 첨단무기에 밀려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95년 이후에는 수명과 성능이 다해 자연적으로 폐기되어야 할 입장이다. 사정거리 5천5백㎞이상의 전략핵무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B52등 대형 전략폭격기에 탑재되어 있는 핵폭탄등 3가지로 나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열차나 지상컨테이너에 실려 이동할 수 있는 것과 지상에 고정배치되어 있으면서 미소양국이 상대방의 국토에 직접 공격할 수 있다. 항속거리가 긴 전략폭격기는 재래식 원자폭탄과 수소폭탄등 핵폭탄을 탑재한채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태평양과 대서양·인도양등을 횡단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략핵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핵(SLBM)이다. 최근 첩보위성과 통신위성의 발달로 상대방의 지상발사전략핵이나 전략폭격기의 움직임은 감시할 수 있으나 수중에서 은밀하게 이동하는 잠수함(SLBM)은 감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군사전문가들은 우주공간의 개발로 서로 상대방의 영토를 감시하는 현체제에서 지상핵은 두려운 것이 아니며 수중과 지하핵시설이 앞으로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1945년 일본에 첫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지 46년이 지나는 동안 핵무기의 개발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오늘날 전세계가 보유한 파괴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1백30만배에 달해 지구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가공할 만한 분량이다.더욱이 지상·해상·수중·공중투하등 종류에 따라 파괴력이 다양해 1천만인구의 거대도시도 폭탄 1개로 파괴해버릴 수도 있다. 전술핵과 비슷한 의미로 전역핵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전술핵보다는 사정거리가 길고 전략핵보다는 사정거리가 짧은 5백∼5천5백㎞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말한다. 이는 미국이 국지전에 사용키 위해 개발한 것으로 나토에 배치되어 있다. 미소간의 중거리핵전력(INF)은 지난 88년6월 유엔군축총회에서 모두 폐기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미국의 퍼싱Ⅰ·Ⅱ,소련의 SS4·12·20·23등이 모두 폐기됐다.
  • 도입기술/개발 5년 넘은 구식이 74%/업체경쟁으로 중복도 55%

    ◎재무부·산은,821업체 1,565건 내용 분석/기술의존도 심화… 일본의 4배/작년 도입료만 10억8천만불 넘어 국내 제조업체가 외국에서 사오는 기술의 74%가 도입당시 이미 개발된지 5년이상이 지난 노후기술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업체간의 과열경쟁으로 도입기술의 55%가 도입당시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술이 국내에 있는 상태에서 중복도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업체가 장기간의 투자와 노력을 쏟아 신기술을 개발하면 다른 경쟁업체에서 즉각 이와 동일한 외국기술을 들여와 신기술을 자체개발한 기업이 누려야할 기술개발 이익이 경쟁업체의 외국기술 도입대가로 외국에 유출되는 결과를 빚고있는 것이다. 이같은 국내 제조업계의 마구잡이식 기술도입 풍조로 외화낭비는 물론 국내업계의 기술개발 의욕까지 잃게 만들어 기술의 해외종속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무부와 산업은행은 24일 80∼90년 도입된 3천4건의 기술중 조사에 응한 8백21개 기업의 기술도입 1천5백65건의 내용을 분석,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 11년동안 도입한 기술 가운데 74%는 도입당시 개발된지 이미 5년이상 경과된 낡은 기술이었으며 개발후 3년이내인 신기술은 8%에 불과했다.나머지 18%도 개발된지 3∼5년이 지난 것이었다. 기술의 수명은 업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최근들어 기술개발 속도가 매우 빨라짐에 따라 대체로 3∼5년으로 짧아지는 추세다. 업종별로는 기계부문이 전체 기술도입건수 4백17건의 83%가 개발후 5∼20년이 지난 노후기술이었다. 기술도입의 내용이 가장 건실한 것으로 나타난 전자부문의 경우도 개발후 3년이내인 신기술은 18%에 불과한 반면 전체 2백52건의 절반이 넘는 56%는 개발후 5∼20년이 경과한 것이었다. 선진국의 경우 개발된지 5∼10년이 지난 기술을 이용해 만든 제품은 이미 새 기술이 개발돼 실용화되기 때문에 매출액이 급격히 떨어지는 쇠퇴기를 맞게된다. 국내제조업체들의 이같은 노후기술 도입은 국내시장에서는 경쟁력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지만 주요 해외시장에서는 앞선 기술을 이용한 제품에 밀려 수출산업의 경쟁력 향상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있다. 기술도입 당시 그 기술과 같거나 유사한 기술이 국내에 이미 있었던 경우는 55%나 됐으며 전혀 없었던 경우는 41%였다. 중복도입의 이유로는 ▲보다 개량·발전된 기술이라는 응답이 46% ▲국내기술보유기업과의 경쟁관계 때문이 21% ▲국내기술의 신뢰성 부족 때문이라는 응답이 12%였다.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는 대신 기술도입을 택한 이유로는 전체의 35%가 자체개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반면 자체개발이 가능하지만 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며 성공여부도 불투명하고 만약 실패하는 경우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53%를 차지했다. 연구개발투자액 대비 기술도입금액으로 표시되는 해외기술의존도는 지난 88년 19.7%에서 89년에는 22.3%로 대폭 높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89년 우리나라의 해외기술의존도는 미국의 1.6%에 비해 14배나 높고 일본(6.6%)과 독일(6.2%)보다는 4배나 높은 수준이었다. 우리나라는 기술도입이 시작된 62년이래 지난해말까지 기술도입대가로 모두 49억2천5백50만달러를 외국에 지불했으며 지난 88년에는 6억7천6백30만달러,89년 8억8천8백60만달러,90년에는 10억8천7백만달러를 지출해 연평균 25%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 “북방정책 실리 위주로 전환할때”/노 대통령­21C위원 대화록

    ◎“「통일 혼란」 막게 점진적 경제 통합 바람직/초·중교 교과목 「평화교육체제」로 바꿔야” 노태우대통령은 6일 상오 청와대에서 대통령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위원장 이 관)로부터 「21세기를 향한 국정운영방향」을 보고받고 위원들과 현안들에 대한 대화를 가졌다.다음은 이날 2시간에 걸친 보고및 대화요지. ▷대화요지◁ ▲노태우대통령=최근의 소련사태에서 얻어지는 교훈은 무엇이고 소련의 앞날을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이상우서강대공공정책대학원장=한마디로 순탄치 않을 것 같습니다.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지만 발생원인은 해소되고 있지 않습니다.인민은 먹어야 하는데도 새체제는 자리가 잡히지 않아 생산을 못하고 있습니다.소련의 쿠데타 실패로 북한은 정치개혁을 추진하면 체제위기가 수반된다는 부담때문에 당분간 오히려 더 경직될 것 같습니다.우리로서는 이제 북방정책의 2단계에 진입해야 하는 시점에서 그 목표를 경제적 실익추구의 방향으로 수정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노대통령=남한과 북한은 경제제도구조가 너무나 달라 남북통일은 자칫 큰 경제적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이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양수길KDI선임연구위원=동서독의 통일경험이 매우 유익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독일통일은 동독에 산업생산반감,전산업 붕괴위기,GNP 연15% 감소,실업 50%선 육박등의 문제점을 안겨주었습니다.또 서독에게는 인플레압력을 가중시키고 국제수지악화와 더불어 통일비용으로 증세가 불가피한 실정입니다.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로서는 점진적·기능적 경제통합이 바람직하고 탄력성 있는 화폐통합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대통령=통일과정의 관리는 정치·외교·국방·사회·문화등 모든 분야에 걸쳐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텐데 교육부문에 있어서는 어떠한 방안들이 필요하겠습니까. ▲이성호연세대학생처장=우선 북한을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고 그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초·중등학교의 교육목표와 내용을 「평화교육」체제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이를 위해 현행 초·중등학교 교과서의 북한관련 내용을 북한현실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포함하는 내용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또 대학생들에게는 각 대학 도서관을 통해 북한관련 자료를 대폭 개방해 북한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또 교사와 학생들의 남북교류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면 합니다. ▲노대통령=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분야에서도 알력이 없는 국가기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이와 관련해 우리가 준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이용수동아일보과학부장=표준에 관한 현안들로는 한글의 로마자표기법,컴퓨터글자판의 배열문제,컴퓨터코드문제,컴퓨터에 사용하는 한글자등의 문제가 있습니다.북한에서는 이미 국제표준화기구에 우리의 KS규격과 다른 정보처 관련규격들을 제출해 놓고 있습니다.이에대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노대통령=정보화시대에 있어 지역 주민생활의 질적 향상과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한 지역 정보화 기반구축방안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박한규연세대교수=먼저 지방발전을 위한 상향식 정책추진과 지역별 통신설비의 조기고도화가 필요합니다.또 전국 우체국의 단위지역 정보센터화를 실현시키고 신도시지역에 정보통신센터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관계부처간 정책조정을 위해 「지역정보화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지역정보화촉진법」의 제정도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노대통령=앞으로 국민들의 복지욕구는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복지정책방향은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김한중연세대교수=2020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유아·소년인구는 절대수가 감소할 것입니다.이에 따라 취업에 대한 욕구는 지속될 것이며 산업재해·직업병·실직등에 대비한 근로자복지 수요가 계속 커질 것입니다.통일이 될 경우 북한지역 주민의 대량실업등에 따른 복지욕구가 일시적으로는 폭발적으로 증가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앞으로는 국내현실과 국제적 흐름을 함께 고려한 한국형 복지 모델개발이 필요하며 사회보장에 대한 수요자체를 감소시키는 광의의 사회복지정책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노대통령=지방자치와 관련해 우리의 문화적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겠습니까. ▲김문환서울대교수=자신이 살고있는 지역사회를 고향으로 여길 수 있게하는 독특한 지방문화의 육성이 요청되며 지역뿐만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대책마련이 필요합니다. ▲노대통령=지자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청시서울대교수=우선 급한 것은 생산적인 지방의회를 만드는 일입니다.지방의원은 생업을 가진 무보수명예직이기 때문에 야간이나 주말을 이용한 의회개회를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공명선거 감시기구의 활성화및 이를 위한 시민운동에 대한 효율적인 지원도 함께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21C위원회 보고내용/비무장 지대 천연자원 공동개발 시급/공업규격 단일화·환경보존 구상 필요 ▷통일과정의 효율적 관리◁ 통일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분단으로 인한 고통을 우선적으로 해소하고 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통일의 원칙은 무력이나 흡수통일보다는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점진적 통일이어야 한다. 통일방안은 통일이후의 국가발전에 기여할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우선 이질성의 해소를 위해서는 교류를 확대해나가야 한다. 교류의 방안에는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한 노력의 전개 ▲남북한 언어통일작업추진 ▲스포츠·학술·문화행사의 정기적 개최와 상호방문의 추진 ▲북한방송·신문·잡지등의 일반국민에 대한 공개 ▲남북교류과정에서 해외교포의 참여기회 확대 ▲상호교류와 협력증진을 위한 교통·통신·사회문화시설의 확충등을 들수 있다. 통일에 대비한 이념과 제도의 정비도 통일과정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필수적이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치이념을 수용하고 통일한국의 정치·경제·사회·행정·교육제도의 구상을 미리 가져야 한다. 또 체제의 상응성을 고려한 점진적인 제도개편과 법률의 정비는 물론 통일에 대한 국민교육확대와 학교교육과정의 계발도 필요하다.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실천방법 구체화와 관련정책의 조정과 함께 통일비용의 산정과 재원조달방안도 강구해야할 것이다. 경제적 통합도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예를 들면 ▲직접교역과 투자협력의 지속적 확대 ▲산업및 에너지·자원관련기술의 상호협력과 공업규격통일 ▲천연자원과 관광자원의 개발·활용협력 ▲국제경쟁력 증대를 위한 남북간의 산업협력과 경제구조조정추진등을 들수 있다. 특히 통일한국을 대비한 국토활용,사회간접자본의 조성과 환경보전체제의 공동구상이라든가 비무장지대의 공동이용과 개발추진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즉 아태지역안보협력체제의 모색과 함께 한미동맹관계의 위상도 발전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 메이저,중국 인권문제 제기/이붕총리

    ◎19세기 서구의 침략 들어 반박/보안요원이 주민 접촉 저지 【북경 AP 연합】 중국을 방문중인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3일 이붕 중국총리와 회담을 갖고 중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강력하고도 구체적인 형식으로 우려를 표시했다고 영국의 한 관리가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메이저 영국총리와 이붕 중국총리가 이날 상오 35분동안 인권문제에 대해 『솔직하고 구체적인』 논의를 했다고 전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메이저총리는 이 자리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이유로 구금된 인사들과 수명의 반체제인사 및 운동가들의 경우를 거론하면서 인권문제를 제기했으며 이붕총리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이 19세기와 20세기초 중국영토를 침범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이에 반박했다고 이 관리는 전했다.이붕총리와 메이저총리는 회담을 마치고 오는 97년 중국에 귀속될 홍콩에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기로 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북경 로이터 연합】 중국 보안요원들이 존 메이저 영국총리가 3일 자금성 관광 도중 시민들에 다가서서 이야기를 나누려하자 이를저지,중국이 인권문제에 관한 서방측의 태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 관측통들은 메이저총리에게 이날 취해진 접촉 방해조치가 향후 중영관계는 물론 북경측에 대한 서방권 전체의 시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 서방,「인권고리」로 대중 개혁 압력

    ◎“소 다음은 중국”… 미·영 정치인들 나서/반체제 인사들 찾아 민주화 간접 지지/“천안문 관련자 풀라” 강력한 경고 전달 소련공산당 붕괴 이후 다음 차례는 어딘가.이 질문에 서방세계는 물론 중국까지도 「다음 표적은 중국공산당」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중공당기관지 인민일보는 2일 서방의 신제국주의자들이 소공산당 몰락이후 다음 목표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비난한후 중국내 「반동분자들」이 아직도 사회주의체제를 넘어뜨리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준엄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이같은 중국의 주장을 입증이라도 하듯 2일부터 북경을 방문하는 존 메이저영국총리와 3명의 미하원 인권조사단은 중국내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했다.또 중국을 방문중인 스티븐 솔라즈 미하원 외무위 아태소위원장도 투옥중인 반체제 인사들과의 면담을 요청하는등 미하원 인권조사단 활동에 합세할 예정이다.다시 말해 중국의 인권문제를 가지고 중공당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이 시작된 것이다. 홍콩의 신국제공항건설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을 위해 북경에 간 메이저총리는 국내여론의 압력때문인 듯 3일 이붕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이유로 구금된 인사들과 수명의 반체제인사및 운동가들을 거론하며 인권문제를 제기했다. 이에대해 이붕총리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이 19세기와 20세기초 중국영토를 침범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반박했으며 89년 천안문민주화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13년의 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 지난달 감옥내 열악한 환경에 항의,단식투쟁에 들어간 진자명과 왕군도등 중국의 지도적 반체제인사들이 인도적 대우를 받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또 3일 저녁에는 영대사관저에서 과거 친영인사들을 모아 현 중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저총리와는 달리 중국 당국으로부터 형편없는 냉대를 받으며 북경에 도착한 3명의 미하원 인권조사단은 철저하게 중국 인권문제를 파헤치 겠다며 벼르고 있다.이들은 낸시 펠로시(여·민주·캘리포니아주)를 단장으로 벤 존스(민주·조지아주),존 밀러(공화·워싱턴주)등 하원의원으로 중국의 인권문제를 들어 미국의 대중국 최혜국대우를 극구 반대해온 인물들이다. 중국 당국은 이들 3명의 의원이 이끄는 9명의 미하원인권조사단을 당이나 정부기관이 아닌 중국인민외교학회가 접대하도록 함으로써 의도된 무관심과 냉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조사단은 6·4천안문사태와 관련,투옥중인 왕군도·진자명등 2명의 반체제인사를 직접 만나 보길 원하고 있다.이들 2명은 위염·간염·종기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나 치료를 해주지 않는 등 감옥내 처우에 항의,단식을 하고 있다. 조사단은 만약 중국당국이 공식방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감옥으로 직접 찾아갈 생각이라고 밝히고 이들외에도 왕의 부인을 비롯,몇몇 반체제인사들을 만나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신화통신은 이같은 국제적인 분위기를 감안해서인지 1일 처음으로 이들 2명의 단식사실을 보도했다.그러나 소련정변이후 중국당국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게 이같은 인권문제나 자유화 바람을 평화적으로 불어넣어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키는 이른바 「화평연변」이어서 앞으로의 사태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 불법 별장을 지어야 하는가(사설)

    경제계인사들의 불법 호화별장 적발사건은 몹시 씁쓰레하고 불쾌한 뉴스이다.호화별장의 소유자들이 재계인사이거나 사회지도층 인사라는데 더욱 놀랍고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그들은 누구 보다도 나라경제를 걱정하고 노사간의 갈등해소에 진력해야 하며 계층간의 위화감을 해소하는데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법을 어겨가면서 호화별장을 지었다.그들은 그린벨트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농지를 불법으로 전용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사람들이다.더 개탄스러운 것은 한개정도 재벌그룹 경영진이 이 사건에 관련된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내 정상 모그룹 경영진 수명을 비롯하여 재벌 2세회장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고 또다른 재벌급 인사가 호화별장 사건으로 입건되었다.이른바 그들은 재벌이거나 최고 경영자이다. 그들은 산업평화의 정착을 위해서 솔선하여 근검·절약하고 근로자들로 하여금 그 정신을 본받도록 해야 할 지도적 위치에 있다.지난 89년 극심했던 노사분규이후 사용자와근로자간의 화합을 위해서 호화별장보다는 근로자주택을 한채라도 더 지어야 할 책무를 갖고 있다. 또 그들은 호화별장이 없이도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만큼 널찍한 주택을 갖고 있을게 분명하다.그것으로도 모자라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인 한강상류에 호화주택을 지어야만 되는가.꼭 휴식을 취할 한적한 공간이 필요하다면 법을 지켜가면서 휴식처를 마련하면 되지 않는가.호화별장을 지어 위화감을 부추기고 한강을 오염시켜 시민들의 분노를 사는 일을 해야만 하겠는지 묻고 싶다. 다행히 정부가 「새질서·새생활실천」을 위한 올하반기 중점과제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호화·사치·낭비생활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고는 있다.정부의 이번 조사는 시의에 부합되고 대다수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는 일이다.정부는 이런 단속을 일과성으로 끝내지 말고 지속적으로 펴나가야 한다. 아울러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사회적 신분을 고려치 말고 엄정하고 형평성있게 법을 집행하기 바란다.누구는 구속되고 누구는 불구속 입건되는 공평치 못한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법이 미비되어 있어 엄한 처벌이 어렵다면 관계법을 고쳐서 공평한 처벌을 받게끔 해야할 것이다. 문제된 호화별장 소유자들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이고 세무조사를 실시해 각종 세금을 탈루했는지의 여부도 조사하기를 촉구한다.이번 조사가 부유층 인사들에게 하나의 경종이 되어 다시는 이런 불법적인 호화별장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소련 형제 배우자”/북경서 한때 시위/즉각 진압

    【도쿄 연합】 지난 27일 북경 천안문광장에서 소련 공산당의 해체를 지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려던 학생풍의 젊은 청년 수명이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다고 일 마이니치신문이 29일 북경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마이니치는 이들 청년이 이날 하오 천안문광장 한복판에서 갑자기 「소련의 형제를 배우자」는 문자를 쓴 플래카드를 펼치고 행진을 시작했으며 이 광장에 배치돼 있던 경찰들이 이들을 즉각 제압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천안문사태 이후 천안문광장에서 반체제시위가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 공산당·KGB문서/옐친,압수명령

    【모스크바 로이터 AP 연합】 보리스 옐친 소련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24일 러시아공화국내의 공산당및 KGB비밀문서가 파손되는 것을 막기위해 이들 문서를 압수토록 명령하는 훈령을 발표했다.
  • “비상사태 서명”거부하자 고르비연금/소 정변 「3일드라마」의 전말

    ◎KGB 30명 들이닥쳐 대통령내외 별장억류/크렘린측 전화불통되자 이상 감지/옐친,“대안은 군중동원”대책 주효 워싱턴 포스트지는 21일자에서 사흘동안의 소련쿠데타 실패의 전말을 3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보도했다.「소련에서 두려움이 사라졌을때」라는 제목으로 데이비드 렘니크기자가 쓴 이 글을 통해 쿠데타의 발생·전개·실패과정을 요약,소개한다. 쿠데타가 개시된 19일 하오 늦게 기관총으로 무장한 30여명의 KGB요원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그의 부인 라이사여사를 흑해연안 크리미아반도의 포로스별장에 억류하고 있었다.그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전화통화도 불가능했다.군인들은 이중으로 별장을 포위하고 있었으며 바다쪽에는 15척의 경비정이 포진하고 있었다. ▷쿠데타의 징후◁ 쿠데타의 원인은 고르바초프의 잦은 정책변화와 책략등 지나친 자신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면서 그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강경파들이 궁정반란을 도모했었다고 전직 KGB간부 올레그 칼루긴이 말했다. 첫시도는 1988년 전직 정치국원이었던 이고르 리가초프에 의한 것으로 그는 언론에 신스탈린주의 강령을 발표하므로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의 종식을 꾀했다. 또 옐친은 이번의 쿠데타가 금년들어서만 세번째 시도라고 주장했다.첫번째는 지난 1월 KGB와 군부의 리투아니아 민선정부 전복음모였고 두번째는 같은 무렵 두드러진 강경파의 하나인 빅토르 알크스니스대령이 고르바초프가 「의지」를 잃었다며 군부는 소련지도부의 지원과 관계없이 더이상의 진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것을 들 수 있다. 세번째는 6개월후 고르바초프가 옐친과의 협력관계에 돌입했을때 그의 반대자들은 「헌법상 쿠데타」를 시도,고르바초프와 협의없이 발렌틴 파블로프총리가 연방최고회의로 가서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장관,푸고 내무장관등 강경그룹에 별도의 권한부여를 요청,입법화를 추진했다. ▷쿠데타의 발생◁ 20일 고르바초프가 체결하려 했던 신연방조약은 ▲연방의 붕괴 ▲절대권한의 몰락 ▲개인적 지위의 손실등을 구실로 크렘린의 보수파들에게는 큰불만을 야기시켰다. 쿠데타 이틀전인 17일 하오4시 이후부터 기오르기 샤크나자로프등 고르바초프의 보좌관들은 갑자기 대통령과의 전화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크리미아와 모스크바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러시아 의회와 CIA의 보고에 따르면 야조프국방장관을 포함한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지도부 수명이 일요일인 18일 크리미아의 별장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신연방조약체결 무효화를 위한 소련전역에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포고령에 사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즉시 대통령을 연금상태로 두고 쿠데타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쿠데타의 전개◁ 무력시위는 19일 새벽 모스크바와 발트해공화국들의 주요도시에 탱크와 장갑차들이 진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북부러시아의 볼로그다 같은 소도시는 지방KGB가 라디오방송국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날 새벽 옐친과 그 보좌관들은 고르바초프가 권력에서 제거됐다는 사실을 즉각 간파했으며 쿠데타세력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대중을 동원한 시위밖에 없다고 생각,옐친이 강경책을 썼다.그는 연방의회청사내에 월 룸(전투지휘소)을 차려놓았으며 그곳에는 청년정치인,급진파 학자,언론인,심지어는 군장교와 KGB요원들까지도 모여 저항세력의 싱크탱크를 구성했고 옐친은 밖으로 나가 군중들을 이끌었다. 정치적조치로는 이날 아침 외무부에서 야나예프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쿠데타사실을 밝히고 포고령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거취를 밝혔다. ▷쿠데타의 실패◁ 쿠데타가 실패한것은 지난 6년동안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국민들에게 심어진 신사고와 제도적 개혁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한 강경파 지도자들도 각자의 생각이나 목표가 달랐다.실패한 원인은 첫째로 옐친이나 리투아니아지도자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같은 지도자들을 검거하지 않았고 단지 대중적인 지지에만 크게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둘째는 외국특파원이나 국내신문·방송등 언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셋째는 러시아공화국의 KGB책임자인 블라디미르 포데리아킨이 옐친의 편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넷째 강경파지도자나 군인들에게 스탈린시대와는 달리 대량학살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민중에게 두려움이 소멸돼 있다는 사실이었다.옐친이 두려움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마구 진주해오는 군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광부들은 파업을,어린아이들까지도 탱크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5

    ◎「도끼만행」은 월남전뒤 “미 의지 시험용”/운명의 날 8·18… 4분만에 미군 2명 살해/참모회의중 일보… 스틸웰장군에 “귀환 급전”/북측 병사 30여명,「가지치기 현장」 포위… “의도적 도전” 내가 다시 한국에 근무하게 된것은 1976년 봄 소장으로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참모장을 맡게 되면서였다.이 직책은 주한미군 참모장과 미8군 부사령관등을 겸하며 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수석대표도 맡았다.나는 대장이 된 스틸웰사령관과 다시 만나게 된것이 기뻤다. 7월1일 아내 메리와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용산 유엔군사령부까지 가는 동안 놀랍게 발전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러나 이도시의 불과 25마일 북방에 싸늘한 긴장이 감도는 DMZ(비무장지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한국은 평화롭다고만 할수 없었다. ○군 배치 공격형으로 그당시 판문점에는 긴장이 높아가고 있었다.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후 김일성은 군대의 현대화 및 증강에 박차를 가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부대배치를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시켜 놓고 있었다.이 사실의 발견은 당시 정보활동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베트남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CIA나 DIA(미국방정보처)의 사진분석가들이 인도차이나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북한관련 정찰사진이나 위성사진들이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채 그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남북한이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 70년도의 평가를 아직도 그대로 채택하고 있었다.미국은 그같은 정보판단하에 닉슨독트린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갑자기 7사단을 철수시켰으며 북한은 72년부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74년 민간 정보분석가들에 의해 북한이 엄청난 양의 철강과 콘크리트를 생산,불명확한 군사목적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해부터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도에 관한 조사가 국가안전국 특수조사팀의 일원인 베트남참전 보병장교 출신 민간인 존 암스트롱에 의해 행해졌다. 14개월간의 연구끝에 그는 북한의 군사력이 70년의 평가보다 80%이상 증강됐고 대부분이 DMZ 부근에 전진배치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같은 북한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엔군사령부는 76년말 김일성이 남침배치를 완료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이는 복잡한 국내문제와 외채압박등 경제난으로 전쟁도발은 어려울 것이라는 CIA보고와는 정반대 견해였다. 남침용 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로 그후 연달아 발견된 땅굴들은 북한의 침략의도를 보다 명백히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특히 내가 부임하기 수개월전부터 북한군은 한국군 순찰대에 사격을 가해오고 부비트랩을 설치하는등 DMZ에서의 도발을 한층 강화시켜오고 있었다.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에서도 북한경비병들의 도발 횟수가 늘고 있었다.우리정보기관들은 이를 지난 50년전쟁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침략을 위한 구실로 삼으려는 것으로 평가했다. ○“새 침략구실 노린듯” 북한군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잔악한 도발이 부임후 두달이 채못돼 8월18일 아침 판문점에서 발생했다.JSA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까이에 높이12m 가량의 무성한 포플러가 있었는데 유엔군측 경비초소의 시야를 가려 가지를 칠 필요가 있었다.이날 북측에 사전통보를 하고 10명의 경비병과 도끼 사다리 톱등 작업도구를 든 5명의 작업단이 2.5t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들어갔다.아더 보니파스대위와 마크 바레트중위가 그들을 인솔했으며 한국군 김문환대위는 통역장교로 동행했다.적에 의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20명의 신속대응군이 JSA 바로 안쪽 제2경비초소 옆에 배치돼 있었다. 상오 10시30분 작업단은 두개의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놓고 작업을 시작했다.5분정도 지난후 북측트럭 한대가 오더니 장교2명과 사병9병이 내렸다. 인솔자 박철중위는 JSA에 오래 근무했으며 성질이 고약하기로 이름나 있었다.박철이 자꾸 작업을 간섭하더니 20분쯤 후에는 보니파스에게 작업중지를 요청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작업은 계속됐다.이어 북측 경비병 10명이 트럭을 타고 추가로 왔으며 근처 경비초소에서 6명이 더와 모두 30여명의 북측병사들이 작업장일대를 포위한 형상이 되자 박은 가지 하나라도 더자르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해 왔다. 보니파스가 작업계속의사를다시 명확히 하는 순간 박이 『죽여!』라고 외치며 보니파스를 세게 걷어차 수로로 쓰러뜨렸다.이것을 신호로 북측병사들은 주머니에서 쇠파이프와 곤봉등을 꺼냈으며 작업중이던 도끼도 빼앗아 주로 장교와 하사관을 공격했다.보니파스는 수로바닥에 쓰러진채 발길질과 쇠파이프를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그때 한 북측병사가 도끼로 그의 머리를 내려 찍자 그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다.바레트중위는 공격을 피해 트럭쪽으로 뛰었으나 뒤따라온 6명의 북한병사들에 의해 역시 도끼와 쇠파이프등으로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졌다.신속대응군이 도착했을때는 북한군은 이미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으로 달아난 후였다.정확히 4분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속 대응 군 힘못써 키티호크기지의 당직장교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은 것은 참모회의 중이었다.나는 우선 사령부 지하벙커에 있는 「월 룸」(전쟁지휘소)으로 갔다.그러나 사령관 스틸웰대장은 일본자위대의 초청으로 교토를 방문중이었고 부사령관 존 번 공군중장은 월례 연습비행을 위해 서해쪽으로 출격중이었다.리처드 스나이더주한미대사도 업무협의차 워싱턴에 가있었다.또 한미1군단사령관 존 쿠시맨중장은 의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유엔군사령부의 최고 선임자였다. 몇분후 보다 상세한 보고가 올라왔다.보니파스대위와 바레트중위가 살해당했고 수명의 경비병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이것은 분명 우리가 예측하고 있던 공산당의 의도적 도발이 틀림없었다.나는 즉시 주한미공군사령관 돈 피트만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스틸웰장군 귀환을 위한 비행기 급파와 연습비행중인 번중장에게도 급거귀환 연락을 하도록 지시했다.그다음 의정부의 쿠시맨중장에게 판문점의 상황을 보고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위한 데프콘 등급을 의논했다. 데프콘은 가장 약한 상태인 5등급에서 1등급까지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통때도 데프콘4 상태였다.그러나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명백한 군사적 움직임이 수반돼야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적인 대응을 예상해야했다.마침 스틸웰장군과 통화가 되어 그문제를 상의했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이번 사태에 대한우리의 대응은 보다 확고해야했다.분명히 북한측이 우리를 테스트하려 할것이기 때문이었다.또 그해는 선거의 해로 조지아주지사 지미 카터가 베트남전의 실패로 궁지에 몰린 제리 포드대통령에게 강력히 도전하고 있었다. 북한은 포드가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에서 도박을 걸어온 것이었다.앞으로 48시간내에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도발에 대해 전쟁을 개시하느냐,그대로 주저앉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좋소』 마침내 사령관의 대답이 떨어졌다.『당신이 펜타곤과 한국군측 그리고 우방국에 상세히 상황을 설명하시오. 정전위원회를 내일 열도록 요청하고 모든 부대는 데프콘3에 대비,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부대원이 영내대기토록 하시오』 즉시 참모회의를 소집,우리의 대응계획인 OPLAN 작성에 바쁠때 서울의 미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마침 이날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비동맹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측대표 김정일이 이날 아침의 사건을 미군장교들의 인솔하에 저질러진 북한군에 대한 이유없는 공격이라고 설명하고 비동맹회의가 미국의 행위를 비난하는 동시에 유엔사령부의 해체와 한국으로부터 미군의 철수를 주장,쿠바의 열렬한 지지로 이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이었다. 이날밤 김포공항에 도착한 스틸웰사령관에게 나는 세가지 대응책을 보고했다.
  • 크로아공 격렬 전투/휴전이후 첫 사망자

    【베오그라드 로이터 연합】 유고대통령에 의해 휴전이 발표된지 만 하룻만인 8일 크로아티아 공화국 방위군이 박격포공격을 받아 1명이 사망하고 수명이 부상했다고 크로아티아 경찰이 밝혔다. 경찰은 유고연방대통령이 휴전을 선포한 지 정확히 24시간 지난 8일 밤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남쪽 그레자니 마을에 박격포탄이 날아들어 방위군 병사들이 죽거나 부상했다고 말했다. 자그레브 라디오방송은 공화국방위군은 이같은 공격에 대해 보복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베오그라드 AFP 연합】 민족분규를 빚고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크로아티아공화국 사태는 휴전이 발표된지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계속된 가운데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공화국 지도자들간에 격렬한 비난전이 벌어졌다. 크로아티아 출신인 스티페 메시치 연방대통령은 8일 TV로 방영된 기자회견에서 정보부족으로 전투 규모에 대한 정확한 상황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총격과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 고르비,새 당강령 제시의 함축

    ◎“70년만의 탈레닌”… 소 공산당 “대 변신”/사회민주주의로 살아남기 시도/체제내 개혁 한계… 불가피한 선택/보수파 거센 반발… “고르비퇴진” 재론될듯 소련공산당이 70여년 동안 고수해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치를 내리고 사회민주주의체제로의 변신을 위한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이는 공산당 주도로 「체제내에서의」개혁을 목표로 시작한 고르바초프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마침내 그 한계를 절감,현체제로서 더이상의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3일 소련「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를 통해 보도된 새 당강령안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에 입각한 국제공산주의를 버리고 당의 공식이념을 「인도적 민주사회주의」로 할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새 강령은 이와함께 당내민주화 조치로 과거의 중앙집중제 원칙을 포기하고 하부당조직의 역할을 강화,하위당직에 대해 권한과 기회를 대폭 부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공산당의 전반적인 권한축소조치의 일환으로 각급 소비에트의 행정,의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당세포조직의 권한행사도 제도적으로 정지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88년 제19차당협의회서 채택한 각급당세포의 제1서기가 행정소비에트와 의회의 책임자를 겸직토록한 조항은 조만간 효력이 정지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이 공산당의 간판을 사실상 내리겠다는 이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현실적으로 당을 살리는 길이 이 방법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할수있다. 어차피 당은 쪼개질 운명에 처해있다. 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과 정치국원을 지낸 야코블레프를 주축으로 한 개혁세력들이 공산당을 버리고 「민주개혁운동」이란 이름으로 신당창당을 서두르고 있고 이미 1천7백여만명으로 줄어든 공산당원중 다시 그 30%가 신당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공산당내 옐친 지지세력인 「민주강령」파 역시 당이 중도좌파를 표방하는 의회주의당으로 전환되지 않을 경우 당을 떠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크렘린과 9개공화국대표들이 모여 합의한 정치일정에 따르면 내년중 연방구성을 다시해 헌법을 새로 만들고 그에 따라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실시하기로 돼있다.고르바초프서기장은 지금의 당세로 선거에 임할 경우 공산당이 설자리는 없다는 계산을 했음이 분명하다.더구나 옐친은 러시아공화국대통령 자격으로 지난 20일 러시아공내 모든 공공기관 및 산업체내 당세포조직의 활동을 전면중지시키는 포고령을 내렸다.6월의 러시아공화국대통령선거에서는 옐친이 공산당을 탈당한 신분으로 출마해 압승을 거둔 반면 공산당은 공식후보조차 내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었다. 모스크바·레닌그라드를 비롯한 주요도시에서는 시장선거에서 비공산당 후보들이 공산당후보들을 물리치고 모조리 승리,이들이 시정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볼셰비키혁명으로 등장한 소련공산당의 수명은 이제 다했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수없게 된 것이다. 공산당의 위상변화 시도는 사실상 1990년초부터 꾸준히 시도돼왔다.그해 3월 인민대표회의(의회)에서 소련방헌법 제6조에 명시된 공산당의 권력독점조항이 폐지돼 혁명전위당으로서 공산당이 누려온 지위에 종말을 고했다.그해 10월에는 「대중 정당단체 조직법」이 채택돼 91년 1월1일을 기해 발효됨으로써 법적으로 다당제로의 길을 열어놓았다.당원5천명만 확보하면 전국단위 정당을 만들수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민족문제,경제난 등에 밀려 명실상부한 제2정당의 창당움직임은 거의 없었고 각급단위에서 공산당이 여전히 과거의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해왔다.의회에서는 레닌주의를 고수하려는 보수파들이 회의가 열릴 때마다 고르바초프 사임등을 요구하며 당분열을 부추겼다.지난4월 당중앙총회에서 보수파들이 시도한 고르비축출기도도 한 예이다. 따라서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예정된 당중앙총회에서도 고르바초프가 내놓을 당강령초안을 놓고 보수파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고르비사임요구 또한 재론될 것이 분명하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당중앙위총회에서 새 당강령을 제출하고 오는 8월쯤 임시당대회를 개최,당강령을 확정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연방잔류를 희망하는 9개 공화국과 신연방조약을 체결할 시기도 이번 중앙위 총회에서 결정 지을 예정으로 있다. 당서기장의 진퇴를 결정할수 있는 기구인 8월의 당대회에서 고르비가 전격적으로 당서기장직 사퇴를 결정할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당·정·입법의 권한을 철저히 분리하고 공산당은 순수한 정당기능만 수행토록 한다는 전제하에서이다. 물론 상당한 진통이 따르겠지만 이번 당중앙위는 소련 공산당이 과거의 「영광」을 사실상 마감하는 자리가 될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금년 상반기중 소련공산당 탈당자 수가 35만명이라는 통계가 있다.변화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동구공산당들처럼 몰락의 길로 가든가­선택의 여지는 별로 있어보이지 않는다.
  • 원전부품 비축 의무화/고장 잦은 제어기판등 점검때 미리 교체

    앞으로 원자력발전소의 기계중 고장이 자주나는 부품은 수명이 다 되기전에 미리 바꾸게 된다. 또 고장이 자주 나는 부품은 미리 바꾸거나 고장 즉시 곧바로 갈아 끼울 수 있도록 부품 비축이 의무화된다. 정부는 10일 최근의 전기부족사태가 대규모 설비용량을 가진 원전의 불시고장으로 빚어짐에 따라 이같이 원전의 고장수리및 점검에 「예방개념」을 도입키로 했다. 예방개념이란 그동안 발전소 운영경비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원전의 발전설비 부품 교체를 고장이 나고서야 고치던 관행을 바꿔 고장가능성이 높은 기계는 정기보수 때나 사전점검때 미리 교체하는 것을 말한다. 동력자원부가 마련한 「원자력 발전소 고장내용과 대책」에 따르면 올들어 10일 현재 원전 고장횟수는 총 15건으로 지난해 한햇동안 일어난 18건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많은 고장이 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따라 동자부와 한전은 원전의 고장을 막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원전전문가들로 특별점검반을 구성,특별점검을 실시한 뒤 구체적인 고장방지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 EC의 유고사태 중재노력 불구/크로아티아도 내전 위기에

    【베오그라드·류블랴나 AFP 로이터 연합】 슬로베니아공화국이 국경초소에 대한 통제권을 연방당국에 이양할 것을 요구한 메시치 연방간부회의의장의 최후통첩을 무시한 가운데 네덜란드·룩셈부르크·포르투갈등 EC(유럽공동체) 3개국 외무장관들이 7일 유고지도자들과 만나 유고위기 해결방안에 대한 회의에 들어갔다. 유고관영 탄유그통신은 이번 회담에서는 지난달 25일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공화국의 독립선포후 이에 따른 법적조치를 3개월동안 유예키로 한 것을 포함,지난달말 EC대표단의 유고방문때 내려진 결정사항들을 추가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또 슬로베니아에서의 휴전감시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같은 중재노력에도 불구,7일 상오 크로아티아 북동쪽 텐야시에서는 크로아티아군과 세르비아군 사이에 교전이 발생,최소한 3명이 죽고 수명이 부상하는 등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고 크로아티아 라디오 방송이 보도했다.
  • 성숙한 소비자가 되어(사설)

    유통시장의 빗장까지 완전히 풀리게 되었다.구멍가게들이 하는 장사까지도 외국의 체인점들이 들어와 24시간 장사로,저인망으로 치어를 거둬가듯 거둬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가전제품이 제일 타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에 벌써부터 긴장이 대단하다.「밥통 밀수」의 부끄러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특히 가전제품의 외제상품을 좋아한다.날씬하고 뒤끝이 쏙 빠지고 수명이 길고 편리하고….『외제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신앙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는 국산품의 품질이 향상한 것에 대한 관심을 처음부터 가져보지 않은 부류의 사람도 적지않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사람은 국산품에 여러번 실망하여 외제병을 좀처럼 못버린다. 생각해보면 밀수품도 아니고 적법하게 수입한 물건이라면 보다 좋은 물건을 보다 합리적으로 사서 쓰는 것은 매우 온당한 일이다.그것이 시장경제사회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시장을 개방한 것은 경우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수출을 잘 해야 유지될수 있는것이 우리 경제인데 수출하는 대상의 나라에 시장을 열라고 하기 위해서는 우리 시장도 열수 밖에 없어서 시장을 연 것이다.수출되는 것 보다 수입해다 쓰는 것이 더 많은 정황이 벌어진다면 우리경제의 배는 물이 샌다. 물이 새는 배는 침몰할 수 밖에 없다.우리 물건이 진정 품질이 우수해서 수출경쟁력에서 압도적 승산이 있다면 배는 쉽게 새지 않겠지만,꼭 그렇다고 할만한 자신은 없다. 게다가 「같은 값이면」외제가 좋다는 생각을 미신처럼 믿고 있는 것이 우리 국민이다.산업발전이 상당히 이뤄지기까지 외제병은 우리국민의 상당수에게 침투되어 있었기 때문에 외제에 손색이 없는 제품이 생산된 뒤에도 좀처럼 병이 낫기가 힘들었고,외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망국적인 허영병이 아직 다 낫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런 계층의 해묵은 증세가 되살아나 분수 없이 확산된다면 어떤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정말 교양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소비생활에도 어떤 철학적 기준을 세울 때가 되었다.우리가 만든 물건이 너무 허술해서 남의 앞에 내놓기가 부끄럽던 시절을 생각하면 우리 물건들이 오늘 만큼이라도 손색없게 된 일이 여간 고맙고 대견하지가 않다.이런 국산품을 우리가 아껴주지 않으면 세계시장에서도 천덕꾸러기가 될수 밖에 없다. 우리가 국산품을 귀히 여긴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해당되는 것과 똑같이 생산자에게도 해당된다.정성을 다해 분신처럼 만들어놓는 생산품이라면 외제를 이길수 있다. 외제라면 오금을 못쓰는 자기비하의 열등의식이 남아 있는한 우리가 선진한 나라를 극복하기는 어렵다.현명한 소비자 의식이 국운을 좌우하는 시대에 우리는 마침내 이르고 말았다.국산품이 그저 쓸만한 정도가 아니라 세계에서 손색없는 것이 되게까지 가기 위해서는 자중자애의 차원에서 성숙한 소비생활을 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체 소비자인 국민 스스로가 할 일이다.그렇게 성숙한 소비자라야 자손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도 훌륭한 조상이 될 자격을 갖추게 된다.
  • 「저소득층 암」 무료검진/약·식품 피해보상제 94년 도입

    ◎보건부문 7차 5개년계획 정부는 오는 96년까지 전국민의 평균 수명을 74세로 늘리고 영아사망은 1천명당 10명,병상당 인구는 연간 3백44명,의사 1인당 인구는 7백19명으로 각각 낮추는등 국민건강 및 의료수준을 크게 향상시키기로 했다. 89년의 국민 평균수명은 70·8세,영아사망은 1천명당 12명,병상당 인구는 연간 5백16명,의사당 인구는 9백37명이었다. 정부는 이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7차5개년계획 기간동안 ▲질병예방관리 및 보건교육 강화 ▲의료보장제도 정착 ▲의료이용의 적정화 및 형평화 ▲적정수준의 국민의료비 유지 ▲식품·음용수·생활용품의 안전수준 향상 ▲의약산업 진흥과 의약품 안전대책 강화등에 모두 6조6천9백74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일 보사부가 확정·발표한 제7차 5개년 보건의료부문의 주요사업 계획에 따르면 질병예방관리 및 보건교육 강화를 위해 국립암센터와 성인병전문치료병원을 설립,성인병치료기능을 확충하고 저소득층 34만명에게 자궁암·유방암·간암을 무료로 검진해주며 당뇨병 고혈압 비만증 환자를 위한 건강관리 교실을 운영한다. 또한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도 한방보건의료를 실시하며 의료보호대상자에 대한무료건강검진 사업을 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96년까지 ▲병상 4만5천개 확충 ▲인구 2백인 이상의 1백80개 도서지역에 보건진료원,인구 2백인 미만 도서지역에 마을건강원 각각 설치 ▲저소득층 1만명이상 밀집 도시지역에 보건지소 설립 ▲공무원·교직원 의료보험 건강진단대상 배우자까지 확대 ▲직장 및 지역의료보험의 건강진단사업 단계적 도입 등의 정책을 펴기로 했다. 또 94년부터 약화 피해에 대한 심사·보상제도를 도입하고,식품과 생활용품의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도 법적인 피해구제 제도를 마련하며,외식산업 관련 법규를 정비하여 품질을 규격화·표준화하기로 했다.
  • 주소만으로 찾을 수 있는 「길」(사설)

    건설부에서는 전국의 도로표지판을 알기 쉽게 바꾸고,서울시는 도로변 건물간판이나 관공서현판에 지번표시를 의무화해갈 방침이라고 한다. 바쁘고 복잡한 현대생활에서 도로표지나 지번이 시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중요하다. 서울만한 규모의 세계의 도시 중에서 서울처럼 집 찾기가 어려운 도시는 없다. 택시를 타면 기사에게 가려는 지점 주소를 대주고 가자고 하는 풍속이 몸에 배어 있는 나라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복잡하고 불가해한 것이 한국도시의 지번체계이고 그 중에서도 서울이다. 워낙 오래된 구도이고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식민지정책,전화로 인한 파괴와 재건따위의 격변을 거치느라고 도시개발이 체계있게 진행된 적이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약점이기는 하다. 그래서 한 동네가 무작정 이어지면서 같은 지번의 집이 수도 없이 얽혀 있어서 미궁속 같은 경우도 많다. 이런 부조리함은 하루아침에 개선되기가 어렵다. 소유주가 각각인 주민들이 살고 있는 기왕에 형성된 행정체계를 유지해 가고 있으므로 일시에 변혁을 할 방법이없는 것이다. 그런 조건 아래서 생각해낸 것이 도로변 건물이나 간판에 그 지점의 지번을 표시한다는 발상인 것 같다. 이 정도의 아이디어는 진작에 실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이 정도라도 제대로 나타난다면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도로표지판의 경우에도 기존의 것은 혼선을 빚기가 쉬웠다. 이를테면 공항서 시내로를 들어설 경우 「시청」방면을 가리키는 표지나 표지판이 도로위에 또는 이정표로 그려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한참 가다보면 「시청」은 빠지고 다른 방향만 표시되어 나온다. 「시청」을 모르는 사람이면 시청이 이미 지나갔다는 뜻인지 앞으로 계속 가야 한다는 뜻인지 알기가 어렵다. 새 표지판은 이런 부적한 점을 보완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같은 개정작업에는 엄청난 예산이 소요된다. 수명이 다해 바꿔달아야 할 표시판부터 바꿔 나간다는 계획이지만 개체작업에 따르는 의혹 같은 것이 따를 수도 있다. 또한 이처럼 한 번씩 바꿀 때마다 막대한 예산이 축나고 엄청난 낭비도 따를 수 있는 일이므로치밀하고도 효율적인 검토 끝에 개정작업을 펴야 한다. 기왕의 「표식행정」을 통해 시민이 느껴온 불평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모든 불편이 우리의 도시가 지닌 근본적인 조건 때문에 개선 불가능한 것도 많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조건 속에서도 개선될 여지는 많이 있었다. 시민생활에 대한 배려와 연구가 정성스럽기만 하다면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높이,글자의 크기 빛깔 등에 따라서도 부분적인 개선이 가능하고,현장답사가 조금만 있었어도 달라질 수 있는 표지 내용도 많이 있다. 특히 한자투 용어의 난해함 따위로 뜻이 전달되기 어려운 경우도 허다하다. 가로수의 잎이 없을 때에는 잘 보이던 신호등이,잎이 우거지면 잘 안보이는 경우도 있다. 도시행정은 이런 것까지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지번표시의 경우에도 성의있게 알아보기 좋으면서도 도시미관을 해치지 않게 하는 아이디어가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지하철역이나 공원근처에 세워둔,지역을 그린 약도 위에도 표적이 되는 지점의 지번이 들어가도록 한다든지 적당한 위치에 지번표지판을 세우는 방법도 곁들일 만하다. 하려고만 들면 시민의 불편을 들어줄 방법은 사방에 널려 있다. 그런 노력이 도시의 국제적 위상을 격상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 도로표지판 알기 쉽게 개정/어제부터/진행방향 지명 2곳 표기

    ◎내년 본격 교체 고속도로·국도 외에 시가지 도로에도 노선번호가 부여되고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는 일련번호 표시제가 도입된다. 또 진행방향의 지명표지에는 두 개의 지명이 표기되고 이용자가 적은 도로표지판에는 영문표기가 축소 또는 생략된다. 건설부는 10일 운전자가 도로안내 표지판을 보고 쉽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도로표지규칙」을 개정,이날부터 시행키로 했다. 개정된 도로표지판은 신설·확장도로부터 우선적으로 설치되고 전국 4만1천여 개의 기존 도로표지판은 겉면 반사지의 수명(5∼7년)이 다하는 내년부터 본격 교체된다. 진행방향의 지명표지도 종전 1곳에서 2곳으로 늘려 상단은 원거리,하단에는 근거리지명을 각각 표시키로 했다.
  • 파형강관용 소재/포철,국산화 성공

    포항제철이 날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파형강관의 소재국산화에 성공했다. 파형강관이란 두꺼운 아연도금강판을 소재로 직경 30∼1백80㎝까지 가공한 대구경 강관으로서 고속도로 배수관,관개수로 및 지하구조물 등에 주로 사용된다. 8일 포철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탄스금속공업과 공동으로 소재개발에 착수,파형강관의 소재인 열간용융 아연도금 강판의 개발에 성공해 지난달부터 광양제출소 4냉연공장의 설비를 활용해 연간 20만t씩 공급하고 있다. 포철이 공급중인 열간용융 아연도금강판은 열연강판을 섭씨 5백도로 가열해 도금한 제품으로 이를 소재로 한 파형강관은 종래의 배수관에 비해 약 40∼50년 수명이 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