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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의 호국인물…심일 육군소령

    전쟁기념관은 28일 새해 1월의 호국인물로 6·25전쟁 당시육탄공격으로 용맹을 떨친 고 심일(沈鎰) 육군소령을 선정했다. 함남 단천 출신인 심 소령은 육사 8기로 임관, 6·25전쟁발발 직후 6사단 대전차중대 소대장(중위)으로 근무하던 중특공대를 편성,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남하하던 북한군에육탄공격을 감행해 적의 자주포 3대를 격파했다. 심 소령의 용맹은 북한군 전차와 자주포에 대한 아군의 공포심을 없애 국군 장병들이 모든 전선에서 적의 전차에 육탄공격을 감행하는 계기가 됐다. 심 소령은 이후 충북 음성지역 전투,경북 영천 304고지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51년 1월26일 영월지역전투에서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정찰 활동중 총격을 받아 28세의 나이로 산화했다.정부는 대위이던 심 소령에게 위관급 장교로는 최초로 태극무공훈장과 함께 소령 특진을 추서했다.전쟁기념관은 내달 3일 호국추모실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헌양행사를 갖는다. 강동형기자 yunbin@
  • 北 괴선박 임무 무엇이었나

    ■대두되는 3가지 의문점. 일본 수역을 침범한 괴선박 침몰 사건 사흘째인 24일 괴선박이 중국 배로 위장했으며 교전 중 일본 순시선에 소형 로켓탄을 발사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새로운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목격된 괴선박 선원 15명 중 1명도 구조되지 않은 점,괴선박의 임무 등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새로운 사실] 22일 밤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아마미 오시마(庵美大島) 북서쪽 동중국해 해상에서 교전 중 괴선박은 일본 순시선에 2발의 소형 로켓탄을 발사했다.다행히 2척의 순시선에는 맞지 않았다.사건 직후 괴선박의 자동화기와 순시선의 기관총 응사가 이어지던 순간 났던 ‘이상한 소리’는 소형 로켓탄 발사음인 것으로 드러났다. 괴선박은 중국쪽으로 도주하면서 중국 깃발을 흔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중국 정부가 “괴선박은 중국 배가 아니다”고 재빨리 부인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오해를살 여지가 있어서였다.1999년 3월 일본 영해를 침범한 북한공작선 2척은 위장을 위해 일장기를 달고 있었다. [수수께끼 3가지] 첫째,괴선박의 임무이다.일본 당국은 해저 100m에 침몰된 선박을 인양하지 않아 선박의 국적과 임무를 밝힐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괴선박이북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괴선박이 북한 배라면 ▲마약,무기 등의 밀수 ▲공작원의 일본 침투나 귀환 ▲일본 근해의 군사정보 수집 등 3갈래의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진행 중이나 현재로는 밀수선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일단 괴선박에 부착된 안테나의 숫자가 극히 적은점으로 미뤄 정보 수집을 위한 정찰 가능성은 거의 배제하고 있다.공작원 침투나 복귀 임무를 띤 공작선일 가능성도 부상하고 있으나 배의 속도가 최대 시속 15노트(28㎞)로 지나치게 느리고 교신에 필요한 안테나가 적은 점을 들어 부정적인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둘째,순시선의 기관포 사격으로 100t급의 선박이 4분 만에침몰한 점이다.전문가들은 순시선이 괴선박을 향해 쏜 기관포 186발로는 침몰이 어려우며 더욱이 기관포가 괴선박의 후미가 아닌 조타실을 향했던 점으로 볼 때 괴선박의 자폭 가능성을 꼽고 있다.교전 중 총소리가 아닌 소리가 들렸다는진술에 따라 괴선박이 정체를 드러내는 ‘증거’를 없애기위해 자폭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셋째,침몰 직전 바다로 뛰어든 선원 15명 중 단 1명도 구조되지 못한 점이다.교전이 벌어지고 괴선박이 침몰한 시간은밤 10시13분쯤이었다.침몰 해역에 비가 내리고 3∼4m의 파도가 쳐 수색이 쉽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이에 대해 해상보안청 관계자는 “구조 활동을 펴려고 했으나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상대편의 반격이 우려됐다”고 침몰 직후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北日관계 엎친데 덮친격”. 지난 22일 발생한 일본 순시선에 의한 북한 공작선 추정 괴선박 침몰사건으로 한반도 주변에 긴장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사건 발생이후 거듭 ‘정당방위’임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였다.중국은 이에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우려하는 강도 높은 외교 논평을 내놓는 등 세밑 동북아 정세가 심상찮다. 외교부 당국자는“분명한 것은 가득이나 경색된 북·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북·일간의 대화는 지난해 10월 중단된 이래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특히 최근에는 일본 경찰의 조총련계신용조합 간부의 구속 및 사무실 수색,이어 조선 적십자회의 ‘일본인 행불자 수색 전면중단’ 선언 등 북·일 관계를얼어붙게 만드는 사건들이 잇따랐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해 온 중국 역시 이번 사건을 외교쟁점화시키는 분위기다.특히 중국은 일본이 공해(公海)상이라고는 하나 경제수역(EEZ)에까지 들어와 발포,중국을 자극시켰다고 보고 있다.중국 장치웨(章啓月)외교부 대변인은23일 “일본이 동중국해 해역에서 군사력을 사용한 데 대해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또 “선박의 침몰과 승무원 사망과 부상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면서 북한측을 피해자로 간주하는 발언을 했다. 난감한 것은 우리 정부다.북·미관계와 북·일관계 답보로인한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해온 정부는 이번 사건을 ‘악재’로 보고 있다. 한승수(韓昇洙) 외교부장관은 이날 “아직 사태가 파악되지 않아 우리가 무엇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들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그러나 한 당국자는 “사건 발생 자체부터가 커다란 악재임에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日 ‘안보위협' 강력대응 가닥.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정부가 괴선박 침몰사건 이후 ‘강력’ 쪽으로 대응 기조를 잡아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해상보안청 순시선만으로는 일본 영해나 수역을 침범하는 무장한 괴선박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관련법 정비에 박차를 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미 테러참사 이후 테러특별조치법 제정,유엔 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 개정,자위대법 개정 등을 통해 사상첫 자위대 해외 파병의 길을 튼 일본에 다시 한번 방위 관련법의 제정·개정 바람이 거세게 불 것으로 예상된다.제3국도 아닌 일본 수역을 침범한 괴선박과의 교전을 통해 순시선직원 2명이 부상하고 괴선박이 침몰하는 전대미문의 ‘호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괴선박을)잡지못해 유감”,“평시에 적절한 대응을 생각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사후약방문이더라도 분명한 대응책을 강구해 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24일 고이즈미 총리 주재의 안전보장회의와 각료 간담회에서도 방위청장관 등 관련 각료가 일제히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법적 미비점을 거론,보완에 착수할 뜻을 잇달아 밝혔다. 일본 정부 일각에서는 괴선박의 소형 로켓탄 발사에 순시선이 기관포 만으로 응사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비춰 긴급사태 발생시 무기 사용 기준을 완화해 보다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이번 사태가 영해가 아닌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했다가 중국측 EEZ로 도주하다 침몰해 일어난 만큼 영해밖에서의 무기 사용 범위도 재검토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1998년 8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이듬해 3월의 북한 공작선 영해 침범 때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북한위협론’이 고개를 들 것으로보인다. 98년 당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했을 때 방위청을 중심으로 방위족 의원들은 “100년에 한차례 올까말까 한 기회”라며 방위 관련법 정비에 열을 올린 적이 있다.1977년 방위청이 연구를 시작한 이후 야당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던 유사법제 정비도 이같은 여론을 등에 업고 가속화될 것으로 여겨진다.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은 “해상보안청이나방위청이 확실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면서 내년 초 정기국회 때 유사법제 정비에 의욕을 보였다.
  • 토라보라 동굴전투 어떻게

    “토라보라 동굴을 이잡듯 뒤진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미군의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됐다.탈레반이 칸다하르에서 투항한 7일 직후 미 특수부대가 토라보라 지역으로 급파된 것으로 알려졌다.반(反)탈레반군 2,000여명이 5∼10개의 동굴요새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산악지대를 수색하고 있으나 빈 라덴의 소재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때문에 동굴 침투에 앞서 파상적인 공습이 8일까지도 계속됐다. 공격에는 동굴당 150명 안팎의 중대병력이 배치될 것으로분석됐다.동굴 외곽에서 경비를 맡은 알 카에다 및 탈레반전사들을 제거,동굴을 봉쇄하는 게 첫번째 임무다.동굴 주변에는 박격포와 중장비로 무장한 병력과 저격수를 배치해 동굴로 접근하는 알 카에다 잔당을 처리한다.이어 산탄총과 수류탄발사기,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한 9명의 침투조가 동굴로들어간다. 파나마와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레인저부대의 전투교관 알렉산더 소모다 상사는 “빠르고 강력한 공격으로 적군을 순식간에 제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동굴내에는 빛이 없기때문에 야시경 등첨단장비가 도움이 안되며 동굴이 무너질수 있어 섬광 수류탄이나 폭발물도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동굴 곳곳에 장애물이 설치됐을 가능성이 높아 미군측 사상자 발생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피해를 최소화하려면 4명정도의 소규모 팀이 동굴 내부를 하나씩 점령해 나가는 전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소련군에 맞서 무장투쟁에 나섰던 무자헤딘 장교 출신들은 동굴로 진격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동굴을 봉쇄,적군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옛 소련군은 무자헤딘 전사를 소탕하기 위해 화학무기를 썼으나 큰 효과는보지 못했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 마자르 이 샤리프 용병 폭동/ 미·북부동맹 “”포로들 무차별 사살””

    [카불 외신종합] 북부 마자르 이 샤리프에서 서쪽으로 15㎞ 떨어진 칼라이 장히 요새에서 폭동이 시작된 것은 25일오전 11시(현지시간). 19세기에 축조돼 진흙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요새에는 전날 쿤두즈시에서 북부동맹군에 투항한 체첸과 파키스탄,아랍국가 출신의 지원병들이 수용돼있었다. [발생 원인·배경] 폭동은 옷속에 무기들을 숨긴 채 투항한 한 포로가 경비병들의 몸수색이 시작되자 수류탄을 폭파시켰고 다른 포로들이 가세해 경비병들로부터 칼리슈니코프 소총들을 탈취하고 무기고를 급습해 경비병들에 대한공격에 나서면서 촉발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 과정에서 수류탄 폭파범,포로 2명 등과 함께 북부동맹군 간부 1명이 숨졌으며 포로들은 문을 부수고 탈주를 시도하면서자살공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이와 달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폭동은 취재 온 서방기자를 보고 흥분한 포로들이 기자들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고 26일 보도했다.요새 밖에서 현장을 목격한 알렉스 페리 기자는 당시 요새 안에 있던 영국의 로이터통신 기자 2명을 보고 외국 지원병들이 흥분해 이들을 덮치면서 교전이 발생했으며 이것이 폭동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그는요새 안에 미 특수부대원 2명도 있었으며 한 명은 외국 포로들에 의해 무장해제 당한 뒤 사살됐으며 다른 한 명도매우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었다고 전했다. 폭동을 일으킨 배경으로 북부동맹의 무자비한 대량학살이나 약식처형을 두려워한 포로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분석이 제기됐다.그러나 미국이 지원병들이 아프간을 벗어나해외의 다른 전선에 뛰어들 것을 우려해 이들의 석방을 막았기 때문에 북부동맹이 폭동을 구실로 이들을 사살해 버렸을 것이라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진압과정] 폭동이 시작되자 경비병 100여명은 요새의 성벽 위에 올라가 무차별 총을 난사했으며 양측의 총격전은적어도 4시간이상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미군 특수부대원으로 추정되는 미군 병사들이 공습지원을 요청했고 이 요새의 수비를 담당하고 있던 북부동맹 사령관 압둘 라시드도스툼 장군 휘하의 지원 병력 500명과 탱크 등이 증파돼폭동진압에 나섰다. 공군 복장의 미군과사복 차림의 영국 특공대가 현장에도착해 북부동맹군과 함께 폭동을 일으킨 죄수들과 교전을벌였으며 공습을 유도하기도 했다.미군과 북부동맹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300∼400명 정도의 탈레반군 포로가 사망한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독일 ARD텔레비전 방송도 미군 특수부대원 1명이 요새 안에 갇혀있는 장면을 촬영해 내보냈으며 이 보도에서 자기이름을 데이비드라고 밝힌 미군 병사는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1명이 숨졌을 것”이라고덧붙였다. 폭동 진압 과정에서 탈레반 지원병들이 무자비하게 사살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부동맹에 대한 국제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이번 참극은 윤리적인 측면뿐아니라 전쟁 포로에 관한 국제법상으로도 비난을 면치못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더구나 북부동맹은 지난 9일 마자르 이 샤리프를 점령한 이후 탈레반 병사 600명을 대량학살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 10월 호국인물 육탄3용사

    전쟁기념관(관장 朴益淳)은 27일 6·25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인 ‘육탄 3용사’를 10월 호국의 인물로 선정했다. 육탄 3용사는 강승우(30년 11월 남제주 출생)소위,오규봉(28년 10월 천안 출생)일병,안영권(24년 11월 김제 출생) 일병이다. 이들은 52년 10월12일 중부전선의 전략 요충지인 백마고지에서 중공군과의 전투 도중 특공대를 자원,박격포탄,수류탄을 휴대하고 육탄 돌격해 적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장렬히 전사했다.이를 계기로 12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대공방전에서 국군은 백마고지를 완전 탈환하게 됐다. 이들 3용사는 백마 3군신(軍神)으로 불리고 있으며,이들의 희생정신을기리어 정부는 을지무공훈장 수여와 함께 강 소위는 중위로,오,안 일병은 하사로 추서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장영실과 김정호, 그리고 우금치의 그날

    경제가 어렵고,재정이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정부는내년도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15.8%나 늘렸다.과학기술 R&D 5조원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과거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연구효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나는 우리 조상들이 과학과 기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가를유심히 들여다 봤다. 그 가운데 동래현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세종때 측우기와자격루 등 수많은 발명을 한 장영실의 얘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그는 그토록 많은 연구 결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임금의 가마가 부서졌다는 이유로 곤장 80대를 맞고 쫓겨 났다고 한다.불경죄라는 죄명으로…. 고산자 김정호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그는 30여년간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기 위해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오르고삼천리 방방곡곡을 세 번이나 돌았다. 그가 평생을 바쳐 만든 대동여지도를 나라에 바치자 나라에서는 그 정밀함에 찬사를 보내기는커녕 혹시 나라의 기밀이 누설될 수 있다는 죄목을 붙여 옥에 가두었다고 한다.고문을 하고 목각판은 태워 버렸으며 고산자는 옥사했다는 기록이 있다.역사적으로 엇갈리는 기술들도 있어 나로서는 당시 관리들의 행동이 사실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지난 100년 동안 나라의 운명을 바꾼 최대 사건으로동학농민전쟁과 1894년의 ‘우금치의 그 날’을 들고 싶다. 우금치는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 가는 길목인 견준산 기슭이다. 그날 농민군들은 공주성을 향해 진군했다.3만여명의 농민군은 200여명에 불과한 일본군의 근대적 무기와 화력 앞에서 무참하게 살해됐다. 총 하나 제대로 만들 수 없었던 그날의 우리 조상들이 척양척왜(斥洋斥倭),제폭구민(除暴救民)의 깃발을 높이들고우금치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그때 일본군제 5사단은 당시로서는 최신식인 야전포와 기관총,수류탄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 농민군들은 겨우 죽창과 조총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농민군들은 40여차례 무모한 진격을 계속한 끝에 무참하게 사살됐다.그날은 우리 민족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루려는 뜻이 좌절된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100년이 지난 지금 우금치의 좌절을 딛고 금강 위로 아리랑 위성이 하루에 세 번씩 우리 한반도의 상공을 돌고 있다.반도체,이동통신,조선,자동차,철강,원자력분야에서 강국이 됐고 정보화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세계의 선두주자가 됐다. 나는 이제야 우리나라가 비로소 올바른 방향을 세우고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원들과 과학자들은 국민이 어렵사리 마련해 준 예산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해 우리 민족의 번영과 삶의질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김영환 과학기술부장관
  • 스위스 州의사당 괴한 총기난사

    [추크(스위스) AFP 연합] 경찰관으로 위장한 무장괴한이27일 오전(현지시간) 스위스 중부의 추크 칸톤(州) 의사당에 난입,총기를 난사해 지방정부 관리 3명 등 15명이 숨지고 최소한 12명이 부상했다고 현지언론이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경찰관 복장의 한 남자가 오전 10시30분께 의사당내 회의장에 들어가 수분간에 걸쳐 총기를 무차별 난사했으며 수류탄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무장괴한은 취리히 출신의 스위스인으로 파악됐으며 사건현장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 범인은 주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했으나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범행동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 英 연감 평가 탈레반 군사력

    [런던 DPA 연합] 런던에서 발행되는 제인스 군사안보 연감은 18일 탈레반의 무장병력을 약 4만 5,000명으로 추산했다.그리고 650대의 탱크와 장갑차,전투기 등 군용기 76대 및각종 대포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다음은 제인스 연감이평가한 탈레반의 주요 전력. ■육군:4만5,000명.표중 보병화기는 소련제 칼리슈니코프. 중기관포,로켓 발사기,무반동총,수류탄 발사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대공 무기도 일부 보유하고 있다. 650여 대의 주전 탱크 및 각종 전투용 장갑차를 보유. 이중 약 250대는 아프간 북부 반군세력과의 전투에서 노획한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7월 북부동맹이 양갈래로 진격해 올 때 탈레반이한쪽 갈래의 진격을 기갑부대만으로 격퇴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탈레반이 이동 야포나 여타 화력의 지원없이 기갑부대만 이용해 승리한 것은 군사 전문가들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포병:수백문의 야포와 중박격포를 보유하고 있으며 트럭탑재 다연발 로켓발사대와 수백문의 야포로 구성된 우수한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 ■공군: 수호이-22전투기 10대와 미그전투기 5대를 포함한76대의 공군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Mi-8/17 ‘힙’ 수송용헬리콥터 6대와 Mi-35 ‘힌드’ 공격용 헬리콥터 5대도 보유하고 있다.
  • 미국 주요테러 일지

    ▲98년 8.7=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 에스 살람의미 대사관 트럭 폭탄 테러.224명 사망. ▲96년 6.25= 사우디아라비아 다란 인근 호바르 타워 미군주택단지 차량 폭발.19명 사망,500여명 부상. ▲95년 11.3=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주둔 미군본부 차량폭탄테러.5명 사망. ▲95년 9.13=러시아의 모스크바 주재 미 대사관 건물 벽로켓 추진 수류탄 테러. ▲95년 4.19=오클라호마 연방청사 건물 폭탄 테러.168명사망,500여명 부상. ▲93년 2=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6명 사망,1,000여명 부상. ▲86년 9.5=팬암 항공사 점보제트기 파키스탄 카라치 공항서 피랍.20명 사망. ▲86년 4.2=이탈리아 로마서 그리스 아테네행 미 TWA기 폭발.4명 사망. ▲85년 6.14=이슬람 시아파 무장괴한 TWA 여객기 레바논베이루트에 납치.1명 사망,미국인 39명 17일간 인질. ▲84년 9.20=레바논 동베이루트 주재 미 대사관 부속 건물차량폭탄.16명 사망. ▲83년 12.12= 쿠웨이트시티 주재 미대사관 앞 차량폭탄폭발,5명 사망 86명 부상. ▲83년 10.23=레바논 베이루트 주둔 미 해병대 병영 자살폭탄 테러.241명 사망. ▲75년 12.23=미 중앙정보국(CIA)그리스 아테네 주재 지부장 주택 밖 총격,지부장 사망.
  • 8월의 호국인물 김용식일병

    전쟁기념관은 30일 국군 창설 이래 병사로는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상한 전쟁영웅 김용식(金龍植) 육군 일등병을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1931년 2월8일 경기도 옹진군에서 출생한 김 일병은 6·25전쟁 발발 직전인 50년 5월 자원 입대,수도사단 17연대 3대대 9중대에 배치된지 1개월만에 최전선에 투입됐다.이어 8월 낙동강 전선의 비학산 전투에 참가,돌격작전의 선봉에서서 수류탄과 대검으로 군관 1명을 포함,15명의 적을 사살,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김일병은 같은해 9월 19일 경북 안강 전투에서 척후병으로 정찰중 북한군의 만행을 보고 격분,홀로 적 6명을 사살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황해도 옹진군 강령초등학교와 옹진중학교 재학 시절 줄곧 반장을 맡으며,리더십과 의협심이 뛰어났던 그는 전장에서도 앞장 서는 등 불퇴전의 용기를 보여줬다. 정부는 살신보국 정신을 기리어 1계급 특진과 함께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으나,유족이 없어 전달하지 못한채 보관해오다 이번에 호국인물로 헌양했다. 노주석기자 joo@
  • 언론사 세무조사…여야공방 안팎

    언론사 세무조와 관련,한나라당의 공세는 ‘대북문제’에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이에 민주당은 ‘색깔론 공세중단’을 촉구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더욱 거세게 의혹을제기하고 있다. ■증폭되는 색깔론= 한나라당이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응하는입장은 10일 한나라당 보수의원들의 모임인 ‘나라를 걱정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발표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질의서는 현 시국을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개혁 세몰이’‘지식인 재갈물리기’‘언론탄압(세무조사)’‘황장엽 방미불허’‘국민혈세금강산 관광 투입’‘통일헌법 공론화’‘야당파괴’ ‘김정일 답방’‘통일방안에 대한 국민투표’‘개헌’‘정권연장’순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예상가능한 온갖 의혹을 제기했다.북한 관련 문제는 모두 포함돼 있는 게 특징이다.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의원이 제기한 ‘김정일 답방 사전 정지설’이 ‘황장엽 방미 문제’로 옮겨 붙은 뒤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있다. ■공세 배경= ‘김정일 답방 사전 정지설’이 처음 제기됐을때만 해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에 대한 흠집 내기가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했다.또 공세를 위한 소재 고갈로이해되는 측면도 있었다.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정책위의장이 최근 여야간 정쟁을해결할 4개항의 해법을 제시한 데 이어 ‘수류탄론’을 꺼낸 데서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김의장은사석에서 민주당의원들이 “실탄이 다 떨어졌다면서요”라고 묻자 “이제 수류탄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볍게 응수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색깔론’을 ‘지역구도’에 의한 ‘국론 분열’,‘보·혁 대결’로 몰아 세무조사의 정당성을 훼손하는한편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언론 세무조사로 촉발된 색깔론 공방이 대선전략과 얽혀가는 제 2라운드로 접어들고있는 느낌이다. 강동형기자 yunbin@
  • 소형총기 수출 미국 1위·한국 8위

    [워싱턴 연합] 권총을 비롯,소총과 기관총 및 수류탄 투척기 등 소형 총기 최대 교역국은 미국으로 1998년 기준으로12억달러를 수출했으며 한국은 약 4,300만달러(97년 기준)상당의 소형 총기를 판매,세계 8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 총기 교역중 분쟁지역을 포함,무기 수입국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격용 소형 기관총은 러시아제 ‘칼라쉬고프AK-47’ 경기관총으로 AK-47 기관총은 현재 불가리아 등 몇몇 나라에서 제조,생산되고 있다. 유엔 산하 소형 총기 조사자료 및 총기수출국 관련 공식보고 등에 따르면 소형 총기 세계 4대 수출국은 미국에 이어독일(99년 기준 3억8,400만달러 수출),러시아(99년 기준 1억달러 수출) 브라질(99년 기준 1억달러 수출) 순이며 이어 오스트리아,체코,영국,한국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이밖에 세계 소형 총기 제조국가 95개국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폴란드,스웨덴,벨기에,파키스탄,이탈리아,중국,캐나다,프랑스 등이 소형 총기 중위권 수출국가에 속해 있다. 소형 총기는 최소 95개 국가에서 600개 이상의 무기제조회사들에 의해 합법적으로 제조되고 있으며 지난해만도 최소한 40억달러 규모의 소형 총기가 거래됐다.
  • 인천공항 보안 ‘구멍’…총알휴대 승객 무사통과

    총탄을 지닌 항공기 승객이 인천공항을 통해 버젓이 출국한 사실이 드러나 보안검색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국제공항 경찰대는 3일 5.56㎜ 총알 1발을 가방에 넣은 채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출국하다가 X선 검색에서 적발된 경기도 의정부시 K대 2년생 이모씨(23)를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경찰은 이같은 정보를 싱가포르 경찰로부터 입수한 뒤 이날 오전 귀국한 이씨를 붙잡았다. 이씨는 지난달 24일 인천공항을 통해 졸업여행을 떠나면서대학 친구가 준 총알을 지갑에 넣은 뒤 여행가방에 담아 검색대를 통과했지만 적발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공항은 수하물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 X선 탐지기의감도를 수류탄·권총 등 비교적 큰 물체만 잡아낼 수 있는수준으로 낮춰놓은 상태여서 총알과 같은 작은 물건은 감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한수기자onekor@
  • ‘발칸 도살자’마침내 심판대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전 대통령(60)이 27시간에걸친 경찰과의 대치 끝에 1일 새벽(이하 현지시간) 세르비아 경찰에 투항, 체포됐다고 세르비아 정부 대변인이 1일발표했다. 세르비아 경찰은 31일 새벽 밀로셰비치의 자택을 급습,그의 무장경호원들과 거의 하루동안 대치한 끝에 체포에 성공했다.밀로셰비치는 투항 직전 세르비아 정부 관계자와심야협상을 벌였으며 ‘항복’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현재 중앙교도소로 압송돼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밀로셰비치의 체포작전은 미국 의회가 5,000만달러의 대유고 경제지원 중단을 위협하면서 네덜란드 헤이그 유엔전범재판소(ICTY)와의 협력을 촉구한 마감시한(31일)을 넘긴지 하루만에 실행됐다. ■30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마스크를 착용한 수십명의 세르비아 경찰 특수팀이 밀로셰비치의 자택 주변에 배치되면서 체포작전이 시작됐다.당시 현지의 일부 언론은 밀로셰비치가 이미 체포됐다고 보도했다.밀로셰비치가 집앞에 나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전하기도하는 등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특수팀은 31일 새벽 3시쯤 체포반대를 주장하는 시위대와 총격전을 벌이며 밀로셰비치의 자택으로 진입했다.사복차림의 특수대원 10여명이 뒷문을 통해 섬광수류탄을 발사하며 진입했고,50여명의 밀로셰비치 경호원들은 총을 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특수팀은 중기관총·수류탄·로켓발사기로 무장한 밀로셰비치 경호원들의 저항에 부딪혀 체포에 실패했다.유혈사태를 우려해 특수팀을 일단 철수시킨 당국은 밀로셰비치의무장경호원들과 20시간 이상 대치하면서 31일 오후 밀로셰비치에게 이날 오후 8시까지 자수하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밀로셰비치는 이에 대해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밀로셰비치는 권총을 휘두르면서 아내와 딸 등 가족과 함께 자살하겠다고 으름장도 놓았다.그러나 대치상태가 길어지면서 밀로셰비치 지지자와 반대파간 충돌이 빚어지자 밀로셰비치는 정부 관계자와 심야협상을 벌였다. ■3∼4시간에 걸친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세르비아경찰은 1일 새벽 5시쯤 체포조를 다시 밀로셰비치의 자택으로 진입시켰다.밀로셰비치가 체포되기 직전 집안에서 5발의 총성이 울렸다.그 직후 밀로셰비치를 태운 차 1대를포함해 지프와 리무진 5대가 급히 자택을 빠져 나왔다.체포 당시 울린 총성은 밀로셰비치의 딸 마리아(32)가 아버지의 체포에 반발,공중에 권총을 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육철수기자 ycs@
  • 브라질 죄수 무장폭동

    브라질 상파울루주의 한 교도소에서 18일 죄수들이 무장폭동을 일으켜 교도대원과 방문객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중이라고 관리들이 밝혔다.당국은 인질이 최소한 250명이라고 밝혔지만 현지 언론들은 최대 8,00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폭동은 상파울루주 전역의 다른 교소도 22곳으로까지 확산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진압됐다.이 과정에서 죄수8명과 교도대원 2명 등 최소한 10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언론과 당국이 밝혔다. 이날 폭동은 수감인원 1만여명으로 라틴 아메리카 최대규모인 상 파울루 북쪽의 카란디루 교도소에서 아침 면회시간에시작됐다. 당시 교도소 내에는 1,700여명의 어린이들을 포함해 7,900여명의 방문객들과 72명의 교도대원들이 있었으며 폭동 주동자들은 권총 여러 정과 수류탄 한발로 무장하고 교도소를 한구역씩 점거해나갔다고 경찰 당국이 밝혔다. 마르코 비니초 페트렐루지 상파울루주 치안장관은 죄수들이지도자격인 마약범죄자 10명을 다른 교도소로 이감시킨데 반발,폭동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현지TV는 지붕과 교도소 마당을 통해 느리게 전진하고 있는 경찰들의 모습과 운동장에 뿌려진 핏자국 등이 담긴 헬기촬영화면을 방영했다.이 화면에서는 총성도 들렸다. 카란디루 교도소에서 92년에도 폭동이 일어나 111명의 죄수가 숨진 바 있다. 상파울루 AP AFP 연합
  • 1월의 호국인물 김종식 해병대령

    ‘1월의 호국인물’로 김종식(金種植) 해병대령이 선정돼 오는 5일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헌양행사를 갖는다. 1926년 1월 중국 하얼빈에서 출생한 김 대령은 하얼빈 대도관 상업학교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했으며,중국에 머물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1948년 3월 해사 후보생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입대,같은 해 9월 해군소위로 임관했다.이듬해 2월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선발되어 49년 4월15일 해병대가 창설될 때까지 선발대 요원으로 활약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낙동강지역 진동리지구 전투에 참전,수류탄전을 전개하는 과감한 공격으로 적 정찰대대를 기습 타격해 마산으로통하는 요충지인 진동리를 확보하는 등 전공을 세워 전 대원이 일계급 특진했다. 1952년 3월 서울의 관문인 장단지구를 지키는 해병대 전투단 1대대장으로서 대원들을 삭발시켜 중공군과 결전을 벌였으며,전선으로 출동하기 전 묘지에 ‘고 해군소령 김종식 지묘’라고 쓴 팻말을 꽂아놓고 출전하는 일화를 남겼다. 전쟁기간 해병대가 수행한 모든 전투에 참전하여 귀신 잡는 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는데 기여한 그는 휴전 이후 해병대 1연대장,헌병감을 역임했으며,1991년 4월 30일 세상을 떠났다.정부는 금성을지훈장과 금성충무훈장을 각각 수여했다. 한편 전쟁기념관은 2001년 호국인물로 김 대령과 함께 2월 권영도(權永道)경찰 순경,3월 김금성(金錦成) 공군준장,4월 임충식(任忠植)육군대장,5월 백재덕(白載德) 육군 이등상사,6월 장세풍(蔣世豊) 육군소령,7월 김용배(金龍培) 육군 준장,8월 변규영(卞圭瑛) 육군 일병,9월 김용식(金龍植) 육군 일병,10월 백마3용사 강승우 외 2명,11월신철수(辛鐵洙)공군 소령,12월 김동하(金東河) 해병중장을 각각 선정했다. 노주석기자 joo@
  • 무대에 올라온 동성애

    극단 연우무대와 실험극장이 비슷한 시기에 파격적 소재의 작품을 나란히 올려 화제다.둘다 신진 작가의 대담한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들로,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지만 동성애를 핵심 소재로 택한 점이눈길을 끈다. 연우무대가 18일부터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이(爾)’는 조선왕실 직속 광대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연산군의 동성애를 언급한다. ‘이’는 조선조때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극은 허구이지만주인공 공길은 연산군의 총애를 받던 광대로 실존 인물이다.그는 폭군 연산군에게 웃음과 몸을 바쳐 종4품의 벼슬을 하사받는 등 광대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접을 받는다.하지만 그 댓가로 장녹수의 연적으로서 목숨과 신분을 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불합리한 사회현상을 해학적으로 꼬집는 ‘소학지희’라는 궁중 코미디가 극중극 형식으로 삽입돼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연출을 겸한작가 김태웅의 두번째 작품으로 문예진흥원 연극창작공연활성화 지원금을 받았다.28일까지.(02)764-876015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막오르는 실험극장의 ‘애벌레’는 아버지의 동성애를 둘러싼 가족의 갈등을 악몽처럼 그려낸다.어느날 아버지가 수류탄으로 자살한다.남은 가족들은 저마다 아버지의 자살원인을 추리한다.서로에게 진실하지 못했던 가족들이 독백하듯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는 과정을 통해 아버지의 진실이 드러난다.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양팔과 양다리가 잘린 비참한 몰골로나타나자 가족들은 경악하는데…. 지난해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삼성문학상 희곡부문 당선작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작가 김태훈은 당시 만 스물에 불과해 삼성문학상 28년 역사상 최연소 당선기록을 남겼다.성준현 연출.송홍진 이양숙 출연.12월10일까지.(02)764-5262이순녀기자
  • 10월의 호국인물 김영환 공군준장

    전쟁기념관(관장 홍은표)은 1일 ‘10월의 호국 인물’로 공군 창설의 산파역이자 빨간마후라의 주인공인 김영환(金英煥) 예비역 공군준장(1921년 1월∼1954년 3월)을 선정했다. 서울에서 출생한 김 준장은 경기공립중학교를 졸업했으며 광복 뒤군사영어학교에 입교,46년 1월15일 참위(현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뒤 국방경비대에서 중대장과 통위부 정보국장 대리로 일하다가공군 창설 7인 간부의 한 명으로 미 군정 당국과 협의해 공군을 창설했다. 6·25가 터지자 T-6 훈련기로 적 전차와 차량을 폭탄과 수류탄으로공격,큰 공을 세웠으며,한국 공군 최초로 10명의 동료와 함께 F-51전투기를 미 극동 공군으로부터 인수하기도 했다. 특히 51년 10월11일 미 제5공군의 단위부대에서 한국 공군 최초로독립 편대를 이끌고 단독출격을 개시했다. 53년 2월에는 제10전투비행단장을 맡아 후방지역 차단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한국 전투조종사들의 영예의 상징인 빨간마후라를 최초로 착용,한국공군의 상징으로 제도화했다. 54년 3월5일 F-51 전투기를 몰고 사천기지에서 강릉기지로 향하던 중 악천후 때문에 34세의 일기로 순직했다. 노주석기자
  • 시드니 소식/ 시드니올림픽 D-21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호주주재 이스라엘 영사관이 자체 경비를대폭 강화하고 있다. 영사관은 담장을 강철과 콘크리트로 다시 쌓고 특수부대인 모사드를 주둔시키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임원과 선수 등 총 49명을 출전시키는 이스라엘은 선수단에 대해서도 경비를 강화시킬 방침이다. 지난 72년 뮌헨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극렬주의자들의 테러에 의해이스라엘 선수 11명이 희생당했다. ■올림픽기간동안 VIP들을 태우고 다닐 특수차량 10대가 24일 시드니에 도착했다. 독일 BMW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이 특수 차량은 대당 가격이 57만5,000달러에 달하며 총탄이나 수류탄,독가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타이어가 모두 파손된 상태에서도 시속 80㎞로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흑진주’ 비너스 윌리엄스(20)와 세레나 윌리엄스(18) 자매가 시드니올림픽에서 한 팀으로 여자테니스 복식에 나서게 됐다. 복식 조는 감독의 재량으로 복식랭킹 1위 리사 레이몬드 대신 세레나를 출전시키기로 결정해 ‘윌리엄스 자매팀’이 구성되게 됐다. 윌리엄스자매는 지난해 US오픈과 올 윔블던대회 복식에서 정상에 올라시드니올림픽에서도 우승후보 0순위로 꼽히고 있다. ■호주의 원주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원주민기’를 사용하게 됐다. 호주올림픽위원회(AOC)는 24일 정치적,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표식은 올림픽에 사용할 수 없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정책에도불구하고 원주민과의 화합을 위해 ‘원주민기’ 사용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 올림픽대표 중 원주민인 캐시 프리먼은 육상 여자 400m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고 있다.
  • 카슈미르 폭탄테러 12명 사망

    [스리나가르 AP 연합]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의 반군단체가 휴전파기를 선언한 가운데 인도 잠무 카슈미르주(州)의 주도인 스리나가르에서 2건의 폭탄테러가 잇따라 발생,최소한 12명이 숨지고 기자 7명 등 모두 10여명이 부상했다고 목격자들이 10일 전했다. 인도 당국에 따르면 사망자 중에는 경찰관 7명이 포함돼 있다.목격자들에따르면 게릴라들이 현지시간으로 정오 직후에 경찰서에 수류탄 공격을 감행한 지 15분 뒤 자동차에 장착된 폭탄이 폭발했다. 목격자들은 경찰서 근처에 있는 인도 국립은행 앞에서 폭탄테러가 잇따라발생했다면서 특히 수류탄 공격이 발생하자 이를 취재하기 위해 달려온 외신기자들도 부상했다고 말했다.외신기자들은 첫번째 폭탄테러로 파괴된 자동차를 촬영하다 부상했다고 목격자들은 덧붙였다. 한편 인근 잠무 경찰은 이날 사제 시한폭탄을 소지하고 있던 힌두 무장반군 1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이 반군은 독립기념일인 15일 오전 10시로 폭발시간이 맞춰진 시한폭탄 등 2개의 사제 시한폭탄을 갖고 있었다고경찰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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