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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연수원생 사랑·화제 만발

    18일 수료식을 갖는 사법연수원 30기생들이 최다 수료생 수(678명)만큼이나 갖가지 화제를 낳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여자 수료생이 10%를 넘어 ‘동기 커플’이 많다.7쌍이 연수원생활 중 연애,결혼에 골인했고 1쌍은 2월초 결혼한다. 국내 최대 법무법인인 김&장에 들어가는 우승아씨(28·여)는 최연소 연수생으로 4살 연하인 박남준씨(24)와 결혼했고 윤성철(33)·원정숙씨(27)는 같은반,같은조에서 눈이 맞아 결혼,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우경선씨(33)는 녹색연합에,장유식씨(36)는 참여연대,박훈씨(35)는민노총 금속연맹 산하 새날 법률사무소에 들어가 노동자들의 권익과환경권 보호를 위해 일하게 됐다. ‘주체사상의 형성과정’이라는 북한 책을 편집,출판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정지석씨(41)와학력을 속이고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파업을 주도한 혐의(업무방해 등)로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던 정회철씨(39)는 법관을 지원,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모방송사에 근무했던 최고령 연수원생 김성규(46)씨는언론·미디어부문 전문변호사 개업을 준비중이고,치과의사 출신인 정연화(31·여)씨는 의료사건 전문 검사를 지망했다.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처조카이자 헌법재판소 한대현 재판관의 아들인 정수(32),지수(30) 형제는 변호사와 군법무관으로 진로를 결정했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박병권씨(35)는검사를 지원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수사과에서 경위로 근무 중 합격,관심을 모았던임은하씨(30·여)는 법관을 지원했고 간호사 출신인 손명숙씨(33·여)는 여성문제를 주로 다루는 법률사무소에 들어갈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사법연수원생 취업난…법무법인·기업체 수요 격감

    취업난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내년 1월 수료식을 가질 사법연수원 30기들의 취업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사법연수원은 27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대강당 등에서 ‘진로안내주간행사’를 열기로 했지만 “채용하겠다”며 나서는 곳이 예전만못해 고민이다. 30기 680여명 가운데 군입대 예정자 150여명을 제외한 취업 대상자는 530여명.연수원은 이 가운데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사람이 최저 40명에서 최고 90여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매년 100명씩 늘고 있지만 불황으로 연수원생을 채용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9월까지 대형 법무법인에 채용된 연수원생은 12개 법인에 39명이 전부다.추가로 채용하겠다는 법무법인들이 있지만 1∼2명을 더 뽑을 것으로 알려졌다.지난해 40여곳의 법무법인이 채용 요청을 해와몸값이 한껏 올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자문 변호사를 필수로 여기는 몇몇 금융사나 대기업을 제외한 중견기업들의 채용 요청도 찾아 보기 어렵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손으로 부르는 사랑의 노래”

    ‘수화로 노래하는 구청 공무원들’ 서울 광진구 직원 16명이 27일 구청에서 운영하는 수화교실을 수료,청각장애자를 위한 민원도우미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수료식에서 동료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에 대중가요 ‘만남’ ‘사랑을 위하여’ 등을 수화로 불렀다. 광진구가 구청을 방문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원활한 민원해결을 위해직원들을 대상으로 수화교실을 연 것은 지난 5월.사회복지 담당자,민원부서 근무자 등 50명이 시작했으나 16명만이 수료증을 받았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근무가 끝난 뒤 90분씩 5개월 동안 수화를 익혀수화로 구사할 수 있는 단어만도 1,200여개.청각장애인들과 웬만한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어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민원 안내를 맡게 된다. 정영섭(鄭永燮) 구청장은 “앞으로도 수화교실을 계속 운영해 나가겠다”면서 “수화교실 이수 직원들을 장애인복지 관련 부서에 배치하는 한편 인사상 혜택도 주겠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서울시 간부들 “손으로 말해요”

    ‘수화(手話)로 대화하는 시장님,우리 시장님’ 고건(高建) 시장을 비롯,서울시 고위 간부들이 수화를 배우고 있다.고위 간부들이 솔선수범,장애인에 대한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에서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지난 3월7일 10주 과정의 수화교실을 개설했다.한국농아인협회 서울시지부 최덕신 총무(여·35)가 강사를 맡아 시 청사 3층 대회의실에서 매주 화,목요일 오후 6시부터 1시간30분씩 공무원들에게 수화를 가르치고 있다. 수화교실에는 고 시장을 비롯,김학재 행정2부시장,정규태 보건복지국장,이상설 인사과장,문영모 장애인복지과장,강종필 노인복지과장 등 고위 간부,민원봉사실 및 장애인복지과 직원 등 40명이 참가하고 있다. 현재 수강생들은 인사말은 물론 장애인과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의수화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시장은 오는 12일 열리는 수료식에서 수화로 직접 인사말을 할 예정이다.수강생 전원은 ‘사랑으로’라는 노래를 수화로 합창한다. 수강생들이 이처럼 2개월 보름여만에 상당한 수준의 수화능력을 갖추게 된것은 고시장의 열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시장이 지난 3월 해외출장으로 2차례 결석한 것을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하는 열성을 보이자 다른 직원들도 이에 뒤질세라 대부분 개근했다. 이상설 인사과장은 “수화를 배우면서 장애인들에 대해 더 큰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면서 “올 하반기에는 서울시민대학에 초급 및 중급과정의 수화교실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
  • 눈물로 일군 97% 취업률

    “장애가 차별과 편견,냉대의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4일 오전 11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직업전문학교(원장 金鈴子) 강당에서 열린 장애인 훈련생 제9기 수료식에서 훈련생 218명과 교사,학부모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뇌병변 장애 3급으로 수료생을 대표해서 답사를 한 최미혜(崔美惠·여·26)씨는 “새벽같이 일어나 엄격하게 짜인 하루 생활이 힘들었지만 때론 엄격하고 때론 자상하게 이끌어 주신 선생님과 동료들 덕분에 이 축복된 자리에 서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마주 선 김원장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최씨는 워드 2급 자격증과 정보기기운용 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아직 취업을 못했다.그는 “면접 자리만 가면 긴장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서“우리는 기회만 주어지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사람들”이라며 취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수료생 가운데 최고령으로 지체장애 3급인 황호윤(黃鎬允·31)씨는 “91년부터 8년 동안 남들이 모두 퇴근한 뒤 새벽 1∼2시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IMF사태로 98년 11월 권고사직을 당했다”면서 “능력이 같아도 장애인이라는이유만으로 차별받을 때가 가장 서러웠지만,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공부했다”고 감회를 밝혔다. 노동부장관상을 받은 황씨는 1년 동안 학생회장을 맡아 바쁘게 지내면서 CAM(수치제어선반) 기사 2급 자격증을 따 부산의 인테리어 회사인 혁진주식회사에 취업했다. 지체장애 3급인 귀금속 공예과 김종강(37)교사는 “밤 늦게까지 실습장을떠나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면서 “교사와 학생이라는 입장보다는 서로 기대고 도움을 주는 동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가르쳤다”고 말했다. 김원장은 “장애인 고용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지만 학생들이 긍정적인 사고로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 대부분 취직했다”며 밝게 웃었다. 수료생 218명 가운데 97.7%인 213명이 기능사 2급 자격을 취득했으며,212명이 취업해 취업률 97.2%를 기록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보일러 교실’ 再起의 수료식

    17일 오후 성동구 뚝섬운동장 보조건물에서는 뜻깊은 수료식이 열렸다. 성동구가 실직자들의 재기를 돕기 위해 개설한 보일러교실이 2기생들을 배출한 날이다.이날 수료생은 모두 20명. “실직이라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짧은 기간이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고 땀을 흘린 여러분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아무쪼록 이번에 배운 기술을갖고 사회로 복귀,새로운 인생을 개척하시기 바랍니다.” 고재득(高在得) 구청장의 격려사에 이어 수료증을 전달받은 수료생들의 얼굴은 정신적 고통속에 보낸 지난날들에 대한 회상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난해 2월 성동구가 관내 실직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문을연 보일러교실은 그동안 큰 호응속에 많은 수료생을 배출했다. 지금까지 이 교실을 통해 재취업 및 창업에 성공한 ‘과거의 실직자’는 모두 38명.이들은 각자 1개 이상의 보일러 관련 자격증을 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 강사 이영수씨는 “수강생 가운데는 과거 자신의 직업에 대한 미련때문인지 보일러수리 교육을 받는 것을 창피스럽게생각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수강생들은 특히 독거노인,장애인,소년소녀가장 등의 집을 방문,무료로 보일러를 고쳐주는 등 교육기간동안 자원봉사팀을 운영하기도 했다. 문창동기자 moon@
  • 사법연수원 29기 수료식

    지난 20일 사법연수원 29기생들이 2년간의 연수원 생활을 마감하는 수료식을 가졌다.29기생들은 다른 어느 기수보다 풍성한 화제를 뿌렸다. 연수원을 방문하면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것이 게시판에 붙어있는 청첩장들.물론 다른 ‘외부인사’와 결혼한 연수원생이 대부분이지만,동기 커플도많다. 2년동안 함께 공부하며 사랑을 싹띄운 이들은 8쌍.이미 결혼한 이들도 있고,결혼을 약속해 놓은 사람들도 있다.“지난해에 비해 2배나 된다.연수원 사상 가장 많은 수치일 것”이라고 연수원 관계자는 귀띔한다. 여영학(呂永鶴·36)씨나 김성진(金成眞·30)씨는 ‘양지’로 통하는 법조타운을 뿌리치고 시민단체,노동계로 뛰어들어 올초 신문의 한면을 장식한 사람들.여씨는 환경운동연합 공익환경법률센터 부소장직을 맡게 된다.민주노총산하 금속산업노조연맹 자문변호사가 된 김씨도 29기 수료식의 주인공이었다. 외부로는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연수원내에서 화제가 된 여성 수료생도 있었다.검사를 지원해 여검사 파워시대의 주역이 되겠다는 이 수료생은 남편(36)이 검찰과 때론 갈등을 빚기도 하는 시민단체의 간부다. 경실련의 사무처장인 남편과 검사 아내가 어떤 생활을 꾸려나갈지 주위의관심어린 시선을 모으고 있다.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시국사건 전력을 가진 연수원생도 10여명. 대부분이 판·검사직을 지원해놓은 상태다.대법원측에서 학생운동 등의 ‘전과’가 있는 연수원생들에 대해 법관 임용을 꺼리는 경우가 있어 지난 21일면접을 치른 이들의 진로가 어떻게 결정될지 주목된다. 법무법인 다산으로 간 여운철(呂運哲·35)씨는 “2년동안 동고동락하며 화제도 많이 낳고 사랑도 많이했던 동기들이 이제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면서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중심이 되길 바란다”며 헤어지는 아쉬움과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를 표현했다. 연수원 이성보(李晟補·43) 교수는 “법조인들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마주치게 된다”면서 “언제 만나든지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법조인으로 커가길 바란다”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 수료식을 마친 수료생 590명은 판사(105명),검사(85명),법무관(141명),변호사(170여명) 등 국가기관과 대기업,시민단체 등으로 진출한다. 최여경기자 kid@
  • [구청장 25시] 노현송 강서구청장

    노현송(盧顯松) 강서구청장의 공복(公僕)철학은 ‘눈높이 행정’이다.구청장을 비롯한 구청의 전 공무원이 주민의 마음을 읽고 그에 걸맞는 새 행정패러다임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주위에서 보는 노구청장은 말보다 생각이 우선하고,벌보다는 상이 많은 스타일이다.업무도 시시콜콜 간섭하기보다는 자율을 지향한다.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결코 ‘쉬운’ 인물로 생각하지못한다.정연한 자기논리와 행정에 대한 식견을 갖춘 때문이다.학자에서 목민관(牧民官)으로 변신한 노구청장은 이같은 자신의 철학과 원칙,목표를 실제행정을 통해 구현하기 위해 빈틈없는 하루하루를 엮어나가고 있다. 16일 오전 허준기념관 건립을 위한 관련단체 대표와의 조찬모임과 모범운전자 자원봉사대 표창식을 치른 노구청장은 오전 결재를 위해 서둘러 집무실을 찾았다.30여분간의 결재를 겸해 숨을 고른 뒤 곧바로 구민회관으로 향했다. 스스로 ‘무척 잘한 일’이라고 여기는 여성교양대학의 제5기 수료식을 갖기 위해서다. 이날 33개 반 630명이 4개월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결실의 수료증을 받았다. “배움이 배움에 그치면 의미가 없습니다.이곳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능력을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해 써주십시오” 그의 축하와 당부의 말에 강당을 가득 메운 학사모 차림의 주부학생들은 열렬한 박수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수료식을 마친뒤 인근 식당에서 교양대학 강사들과 점심을 든 노구청장은‘자원봉사자 만남의 날’ 행사를 갖기 위해 강당으로 되돌아왔다. 1,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한 이 자리에서 그는 특별한 감회를 토로했다.관내 가양·등촌·방화지역 임대아파트에 사는 3만여명의 ‘어려운 이웃’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쏟아온 탓인지 “어려운 이웃과 함께한 사회복지사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적셨다. 이어 발길을 옮긴 곳은 화곡동의 문화센터 건립현장.10억원 이상을 투입한문화센터는 화곡동지역 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가 직접 아이디어를 낸 작품.지하1층에 지상5층,연면적 619평 규모인 문화센터에는 청소년 전용시설과 각종 문화·체육시설 등이 들어선다.오는 28일 개관이예정돼 있는 문화센터 현장에 도착한 그는 구석구석 공사실태를 살피고 안팎의설비도 직접 확인했다.개관 준비사항을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빽빽한 외부일정을 마친 그는 서둘러 구청으로 돌아와 밀린 결재를처리한뒤 발산1동 주민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기 해거름 속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경기소방학교 119체험캠프

    “불이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배웠어요.친구들에게도 꼭 가르쳐 줄래요.”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경기도지방소방학교에서는 지난 19일부터 ‘긴급구조119 체험캠프’가 열렸다. 2박3일 동안 119구조대원의 훈련과정을 몸으로 체험하고 21일 수료식을 가진 어린이들은 “힘들었지만,어느 캠프보다 유익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열리는 ‘…체험캠프’는 소방안전을 몸으로 체험토록 해 생활속의 안전의식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것.서울과 경기·광주소방학교에서 다음달 24일까지 4,220명의 초중고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열린다. 경기소방학교가 주관한 이번 캠프에는 경기도내 소년소녀가장 180명이참가했다. 프로그램은 크게 화재예방·진압교실과 구조·구급체험으로 나뉘어졌다.예방·진압교실에서는 가스레인지 등 생활주변의 화재발생위험기구류의 안전사용 요령과 화재가 났을 때 응급조치요령,소화기 사용법 등을 배웠다. 어린이들이 가장 힘들면서도 재미있어 하는 것은 구조·구급교실.극한 상황에서 탈출을 가능하도록 강인한 체력을 기르는 유격훈련에서는 상당수가 땀범벅이 되어 눈물을 뿌렸다.또 고정사다리를 타고 고소공포가 가장 심하다는6층까지 올라간 뒤 2층에서 에어매트로 뛰어내리는 고층건물 탈출훈련과 주훈련탑 4층에서 보조훈련탑으로 세줄로프를 이용해 건넌 뒤 로프로 하강하는도하 및 하강훈련을 마치고는 성취감에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장기자랑을 겸한 캠프파이어와 풍물놀이 등을 통해 새 친구와 사귀는 시간도 가졌다. 광명초등학교 6년 김미혜(14)양은 “TV에서 119대원들을 보면 멋있어 보이기만 했는데 힘들게 훈련을 받아보니 소방대원이 그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앞으로 화재를 막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권용성(權容成)경기소방학교 교수담당은 “119캠프는 인명의 소중함을 이론보다는 실제로 체험하게 하는 좋은 기회”라면서 “화재나 교통사고가 났을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교육기회가 좀더 넓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법정관리인 양성과정 개설 붐

    부도기업이 급증하면서 이를 떠맡을 법정관리인 양성교육이 경제단체 및 기관사이에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단체들이 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부도기업의 증가말고도 부도기업 처리가 시장논리에 맡겨지는 추세에 따라 위기관리 등 경영노하우를 갖춘 법정관리인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부도기업 회생을 정부의 공적 자금투입에 의존했던 관치금융시대에는 채권은행단의 일방적 추천으로 경영을 모르는 금융기관 관계자가 법정관리인에선임돼 자금관리 등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게 고작이었다.대법원이나 서울지법은 이같은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최근 예규나 법정 관리인 선정기준을 마련,법정관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후보자 추천기관에 경제단체를 포함시켰다. 전경련 국제경영원은 이달초 ‘기업회생 전문경영인 양성과정’을 개설했다.기업체 및 금융기관 전·현직 간부 35명이 교육받고 있다.판사,교수,변호사,컨설팅회사 사장,회계사 등을 강사로 초빙,기업회생을 위한 경영기법을 비롯,인수합병 회사정리 채권단과의협상 노사관계 등 실무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다.오는 9월 2기 수강생을 모집하는 등 반기별로 한차례씩 모집할 방침이다. 97년 가장 먼저 이 사업에 뛰어들어 25일 4기 수료식을 갖는 경총은 지금까지 모두 200여명을 배출했다.이 가운데 30여명이 ㈜건영,경기화학,아남전자등 부도기업에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돼 활동중이다. 경총 관계자는 “이 과정을 들으려는 신청자들이 몰려 평균 5대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라면서 “㈜낫소 등 몇몇 법정관리 기업에서 매출이 호전되는 등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생산성본부도 지난해 11월부터 7주코스의 ‘법정관리인 및 파산관재인양성과정’을 만들어 1기생 55명을 배출했고 현재 2기생 54명을 교육중이다.
  • [제2공화국과 張勉](2)-국토건설사업(下)

    張勉정부의 국토건설사업은 국토개발이라는 고유목적 외에도 공공사업을 통한 고용증대,산업활성화,국가 인재충원제도 확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제도적 파급효과를 거두었다. 국토건설사업본부(이하 본부)는 중앙청 서남쪽의 목조 2층 건물에 자리잡았다.민(民)과 관(官)이 함께 참여한 이질적인 집단이지만 당대 엘리트를 모은 데다 대우도 좋아 본부는 활기차게 돌아갔다.본부 간사이던 朴敬洙씨(69·작가)는 “월간 ‘사상계’에서 받은 봉급이 일반직장인보다 훨씬 많았는데본부는 그 두배 정도를 주었다”고 회고했다. 본부가 처음 한 일은 국토개발사업을 현장에서 지휘·감독할 일꾼을 뽑는 것이었다.국무원사무처(총무처 격)는 ‘병역을 마친 30세 미만의 대학졸업자’를 대상으로 국토건설추진요원(이하 건설요원)을 공개 모집했다.석달 동안건설현장에서 근무하고 나면 국가공무원 4∼5급이나 지방공무원 3∼4급으로임용한다는 조건이었다.말하자면 공무원을 공채로 뽑은 것인데 이는 해방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모집공고가 나자 대졸자 ‘1만수천명’(당시 鄭憲柱국무원사무처장 증언)이지원했다.그 무렵 전국에 대학이 63군데,대학생 정원이 9만7,819명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였다.합격자는 사무직 1,614명,기술직 452명 등 모두 2,066명이었다.여성도 21명 포함됐다. 건설요원들은 61년 1월9일부터 교육을 받았다.교육장에는 종교인 咸錫憲과朴鍾鴻 서울대 교수 등 당대의 지성들이 나와 그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다.이들은 2월27일 중앙청광장에서 수료식을 가진 데 이어 각 군(郡)에 15∼17명씩 배치돼 3월1일부터 현장근무에 들어갔다. 국토건설사업은 전국 각지에서 커다란 성과를 불러왔다.건설현장에는 배고픈 국민들이 새벽 5시쯤부터 몰려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섰다.하루 일을 끝내면 이들은 품삯으로 돈과,쌀·보리·비누·광목 같은 물건을 섞어 받고 만족한 표정으로 귀가했다.품삯에 현물(現物)이 포함된 까닭은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이 사업의 주요 재원이기 때문이다. 장면정부는 잉여농산물을 품삯으로 지급하면서도 다른 산업에 미치는 효과를 계산했다.쌀·보리는 정미소에서 찧었고 면화는 방직공장에 보내 광목으로가공했다.유지(乳脂)는 비누로 만들었다.따라서 건설현장에 나온 국민은 구하기 힘든 생필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정미소나 방직공장·비누공장 등은 가동률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그만큼 장면정부의 경제정책은 정교했다고평가해줄 만하다. 국토건설사업은 차근차근 실적을 쌓아나갔다.일부 지역에서 잡음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3월30일 농림부는 25일까지의실적을 공개했다.2만6,089정보에 조림(造林)을 해 계획의 50%를 달성했으며,산·바닷가의 흙·모래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막고자 나무를 심거나 돌을 쌓는 사방(砂防)사업도 목표의 51%인 2만8,958정보를 끝마쳤다. 국토건설사업은 이같은 업적말고도 공무원 공채의 초석이 됐다는 점에서 큰의미를 갖는다.당시는 공개 채용 없이 기관장이 발탁해 쓰면 시일이 지남에따라 자동 승진하는 구조였다. 정헌주옹(84)은 “건설요원 선발 이후 공무원사회에 공채제도가 자리잡았다“면서 그 뒤 일반기업체에도 퍼져 나갔다고 회고했다.또 “공채가 공고되자 61년 들어 대학가에서 시위횟수가 크게 주는 등 사회안정에도 큰몫을 했다”고 강조했다. 첫 공무원 공채는 학계에서도 높이 평가받는다.이는 당시 재무부 예산국장이었고 그 뒤 숭전대총장·부총리를 역임한 李漢彬의 논저 ‘사회변동과 행정’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전부총리는 건설요원 채용이 “관료제에 새로운 사회세력,특히 젊은이들을 흡수하는 기본적인 통로로서 활용됐으며 이 젊은이들은 점진적으로 승진해 관료제 전반에 걸쳐 눈에 띄는 활력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공무원 공채 1기’는 5·16쿠데타 후에도 지위를 보장받았으며 우리 사회 정·관계,경제계를 주도하는 인물로 성장했다.鄭寅用전부총리,金泰鎬국회의원(내무장관 역임),崔同燮전건설부장관,金昌甲전교통부차관,朴進球울주군수들이 ‘1기 출신’이다. 그러나 장면정부의 국토건설사업은 5·16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기는 바람에끝을 맺지 못했다.사업을 이어받은 쿠데타세력은 61년 말 “연인원 2,500만명을 고용해 계획의 94%를 완수했다”고 공식발표했다.장면정부의 공을 가로챈 것이다. 그 과정은 安京模전교통장관(82)의 증언에서 분명해진다.안옹은 본부 기술부 차장으로 일하다 5·16세력에게 불려가 국토건설사업 계획을 브리핑했다.이후 같은 업무를 계속하다 64년 교통부장관,67년 수자원개발공사사장으로 발탁돼 소양강댐 충주댐 안동댐 대청댐 등을 직접 건설했다. 60년대 국토개발의 주역인 안옹은 “장면정부도 국토건설사업을 완수할 수있었다”고 단언하고 그 근거로▒정부 의지가 굳건했고▒미국이 적극 지원했으며▒사업에 참여한 관료들이 능력을 갖추었음을 들었다.그는 쿠데타세력이 국토개발에 성공한 것도 장면정부의 사업계획을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張勉총리의 생애▒1899년 8월28일=인천세관에 근무하는 張箕彬과 黃누시아 사이에 장남으로출생.본관 玉山,호는 雲石▒1906년=인천성당 소속 박문학교 입학▒14년=수원농림학교 입학▒16년 5월20일=金商集의 딸 金玉允과 결혼▒17년=수원농림 졸,서울 중앙기독청년학관 영어학과 입학▒20년=청년학관 수석 졸업,도미▒21년=뉴욕 맨해튼가톨릭대 입학▒25년=맨해튼대 졸업(교육학),한국천주교청년회 대표로 로마에서 열린 ‘한국 79위 시복식’에 참석 후 8월 귀국▒29년=천주교 평양교구에서 교회 일에 전념▒31년=동성상업학교 교사 시작▒36년=동성 교장으로 취임(광복 때까지 근무)▒46년=민주의원·입법의원으로 피선▒48년=서울 종로 을구에서 제헌의원 당선,9월 파리에서 열린 제3차 UN총회에 한국수석대표로 참석,12월 맨해튼대에서 명예법학박사 받음▒49년=초대 주미대사 부임▒50년=6·25 발발하자 유엔군 파병에 큰몫▒51년=2월에 제2대 국무총리 취임,11월 제6차 UN총회 한국수석대표▒52년=총리 사임▒55년=申翼熙 趙炳玉 등과 함께 민주당 창당,최고위원 피선▒56년=민주당 후보로 부통령 당선.9월에 피격,경상▒59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피선,▒60년 3월15일=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낙선▒4월22일=李承晩 규탄하며 제4대 부통령직 사임▒7월29일=서울 용산 갑구에서 국회의원 당선▒8월19일=국무총리 인준▒8월23일=1차 조각 마치고 내각 출범▒61년 3월1일=국토건설사업 기공▒5월16일=쿠데타로 정권 빼앗김▒이후=신앙생활 몰두하다 66년 6월4일 서거,국민장으로 포천 가톨릭묘지에 안장됨■張勉은 누구인가 한국 현대사에서 張勉이 갖는 위치는 독특하다.그는 4월혁명의 결과로 태어난 제2공화국의 총리였다.尹潽善대통령이 있었지만 내각책임제였기에 제2공화국을 장면정부라고 부른다. 장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훌륭한 인격자요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그러나 “무능하고 나약했다”는 평도 따른다.이는 5·16세력이 조작해 전파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장면은 어떤 사람인가.장면은 부모 양쪽 다 가톨릭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세례명 요안인 그는 인천성당 소속인 박문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기 시작해 이후 해방 전까지 신앙인·교육자로서 충실한 삶을 산다[연표 참조].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의 면모는 5·16이 나자 피신처로 선택한 곳이 수녀원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그만큼 그의 신앙심은 남다른 측면이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장면은 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였고 온건하고 합리적인 길을 택했다.따라서 그가 이끈 민주당 신파 출신 중에는 기나긴 朴正熙시대에도뜻을 굽히지 않고 민주화투쟁에 앞장선 이들이 유난히 많다.金大中대통령을비롯해 金相敦 鄭一亨 鄭憲柱 金判述 金應柱 吳洪錫 등이 그들이다. 해방 후 장면은 미 군정하의 민주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한다.건국 직후 열린UN총회에 한국수석대표로 참석,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라는 법통(法統)을 인정받은 것과 초대 주미대사를 지내면서 6·25때 UN군 파병에 큰몫을 한 것은 그를 전국적인 지도자로 부상케 했다.그 결과 제2대 총리로 취임하지만 이제는 정치적으로 너무 성장한 그를 李承晩이 견제하는 바람에 1년여 만에 총리직을 사퇴한다. 그후 야당지도자로 변신해 55년 창당한 민주당의 최고위 지도자 중 한사람이 됐고 56년에는 부통령에 당선됐다.부통령 시절인 1956년 9월28일 장면은 명동 시공관에서 암살범의 저격에 왼손을 맞았다.그런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주위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애썼다.민주당 최고위원인朴順天은 훗날 회고록에서 “그때 지켜본 장박사의 모습은 태연자약했고 너무도 의연했다”면서 거인다운 풍모를 소개했다. 4·19혁명 후 제2공화국을 맡은 장면은 8개월23일 만에 쿠데타를 만나 정권을 빼앗긴다.교과서에 나오는,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던 그의 꿈은 좌절되고 그는 “국민 앞에 저지른 잘못을 속죄의 심정으로 사과할 뿐”(회고록 표현)이라며 신앙생활에 몰두하다 66년 6월4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서거한다.李容遠
  • [제2공화국 張勉](1) 국토건설사업(上)

    1961년 2월27일 오후 2시.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앞 광장은 꽃샘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열기로 가득찼다.국토건설에 앞장설 이 땅의 젊은이 2,000여명이 교육을 마치고 수료식을 갖는 자리였다.녹회색 모자와 작업복 차림의 건장한 청년들이 도열한 주위를 가족·친지 그리고 ‘형들이 가는 길 우리도 따르리’라고 쓴 플래카드를 든 남녀 중고생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단상에 앉은 尹潽善대통령 張勉총리 등 3부요인도 기대와 흥분에 찬 모습들이었다.尹대통령이 “국토건설사업은 모든 산업건설의 기간이 되는 것인 만큼 여러분이 이 사업의 중심인물이 되리라고 크게 기대한다”고 치하한 데이어 張총리도 “이 사업에 여러분이 가진 젊은 의기와 예지를 송두리째 투입한다면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굳게 믿는다”고 격려했다. 수료식을 마친 국토건설사업 요원들은 삽 한자루씩을 멘 채 서울시가를 행진했다.咸錫憲·張俊河 등 당대의 지성인들과 장면내각의 金永善재무장관 鄭憲柱국무원사무처장 등 각료들이 대열을 이끌었고 국회의원도 여러명 가담했다.장면정부에 사사건건 트집을 일삼던 민주당과 신민당의 소장파 의원들이합세한 것은 이변이었다. 이날의 시가행진은 장면정부가 내건 ‘경제제일주의’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또 그 대열에 지식인들과 여야 정치인들이 한마음으로 참여함으로써국토건설사업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쌀 한가마에 1만4,000∼1만7,000환(현시세 17만4,400원) 하던 시절에 장면정부는 61년 한해에만 400억환을 투입하고 연인원 4,500만명을 동원하는 대규모 국토개발 사업을 벌이겠다고 공표했다.‘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군사혁명을 스스로 불러들였다’고 알려진 제2공화국의 장면정부,그 나약하고정쟁만 일삼았다는 정부가 정말 이처럼 원대한 포부를 가졌을까.계획을 세웠더라도 실제로 집행할 능력은 있었을까. 그러나 국토건설사업은 민주당이 추진한 경제정책 가운데 한 부분일 뿐이었다.1960년 4월혁명의 결과로 그해 8월 출범한 장면정부는 국정의 중점을 경제발전에 두었다.장면은 60년 8월27일 총리 취임후 민의원(民議院)에 나가취임인사 겸 시정연설을 하면서 “당면한 민족적 과제인 경제적 건설을 수행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마지 않는다”고 말했다.그가 훗날 회고록에서 밝혔듯이 “경제 안정을 기한 후에야 정국안정을 바랄 수 있고 참된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장면정부는 경제발전 방안으로 두 가지 큰 틀을 구상했다.하나는 장기목표인 ‘경제개발5개년계획’이고 다른 하나가 국내경기를 단시일에 활성화하는 국토건설사업이었다. 국토건설사업이 국민 앞에 실체를 드러낸 때는 60년 11월28일이었다.정부는 이날 ‘국토건설사업’이라 이름붙인 대규모 공공사업계획을 발표하고 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그 규모는 단군이래 첫 국토종합개발답게 가히 ‘혁명적’이었다.소양강댐·춘천댐·남강댐 건설을 비롯해 발전소 및 도로 건설,농지개간,수자원개발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다목적인 계획이었다.장면정부는 60년 12월 경제4부장관회의를 열어 61년분 제1차 추가경정예산에 사업비 280억환을 계상하기로 결정했고 이어 61년 1월에는 국토개발특별회계법을 제정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6·25가 휴전으로 끝맺은 지 10년이 채 안돼 전쟁의 상흔이 국토 곳곳에 남았고,이승만정권 말기의 폭정(暴政)탓에 국력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에서장면정부는 무슨 힘이 있어 이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을까. 그 무렵 국가재정은 절반 가까이를 미국 원조에 의존했다.장면정부는 국토개발을 꼭 이루어야 한다는 굳은 의지와 함께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았기에 자신있게 청사진을 마련할 수 있었다.미국 정부가 국토건설사업을장면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꼽고 이를 적극 지원하였음은,대한매일이 이번에처음 공개하는 일련의 미 국무부 문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장면정부는 출범후 곧바로 국토건설사업 준비에 들어갔다.먼저 국토건설사업본부를 설치하기로 하고 책임자를 물색했다.장면정부가 지목한 적임자는‘사상계’ 사장인 장준하였다.올곧은 지식인의 표상이자 반독재 민주투쟁의 상징인 그가 한때 국토개발에 앞장선 사실을 지금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4월혁명후 장준하는 사상계의 편집위원과 필진을 주축으로 학계·언론계·문화계·경제계의 주요인사 30여명을 모아 ‘국제연구소’를 운영했다.‘국제연구’를 내걸었지만 새 시대에 걸맞은 국정운영을 연구하는 데 주력했다. 이렇다 할 정책연구기관이 없던 시절이라 국제연구소는 정책의 산실로 떠올랐고,연구위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분야가 국토개발이었다.정책 수립에 골몰하던 장면정부가 장준하와 그를 뒷받침하는 국제연구소 멤버들에게‘구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사상계에서 일하다 장준하를 따라 국토건설사업에 참여한 朴敬洙씨(69·작가)는 “장면정부가 출범 직후인 60년 8월말 장준하선생에게 국토건설사업을 맡아줄 것을 제의했다”고 기억했다.장준하는 거듭 사양하다가 결국 ‘국토개발은 시대적 의무’라는 명분에 져 수락하게 된다. 국토건설사업본부는 총리 직속이었지만 실제로는 관민이 함께 운영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성격의 독립기구였다.본부장은 장면총리가 겸임했고 장준하는 수석부장으로서 본부장 대리 구실을하는 기획부장을 맡았다.또 사상계편집위원인 申應均과 李萬甲이 관리부장·조사연구부장으로,일제때 한강철교를 설계한 崔景烈이 기술부장으로 들어왔다.박경수씨는 간사로 임명됐다. 장준하를 비롯한 사상계 팀이 사업본부 지휘부를 형성함으로써 장면정부는국토개발에 필요한 두뇌와 함께 지식인층의 지지를 얻었고 그 기반 위에서자신있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국무부문서에 나타난 ‘국토건설’ 펑가 ‘제2공화국과 張勉’연재에 정치학 박사 전상숙 씨(이화여대 강사)가 동참합니다.田박사는 지난 97년 8월부터 1년동안 미국에 머무르면서 1960∼63년에작성된 미 국무부 한국관련 문서 1만여점을 조사·연구했습니다.그 축적을토대로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새 사료를 통해 당시 미국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어떻게 평가했는지,이에 따른 대한(對韓)정책은 무엇이었는지를깊이 있게 분석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장면정부가 물려받은 경제상태는 매우 불안한 것이었다.빈약한 자원에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산업시설의 대량파괴,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국방비,그리고 부패하고 허약한 관료집단이 주원인이었다.장면정부는 뉴딜정책과 같은공공사업을 통해 이같은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곧 1960년 11월발표된 ‘국토건설사업’이다. 장면정부는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줄 것을 미국에 요청했고,미국도경제원조가 장면정권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나섰다.이같은 사실은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이 소장한 미 국무부문서(RG59)중 여러건에서 확인된다. 매카나기 주한미대사가 61년 3월11일 미 국무부에 보고한 전문(A)에는 국토건설사업에 대한 미국측 평가가 명확하게 표현돼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장면정부하의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식량부족과춘궁기(보릿고개)·대졸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토건설사업이 큰 도움이될 것이라고 평가했다.아울러 경제발전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머지않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시위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믿었다.이 때문에 미국은 장면정부의 시책 가운데 국토건설사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이보다 열흘 앞선 보고서(B)에서는 매카나기와 한국 金永善재무장관의 대담내용이 자세히 들어 있다.김장관은 국토건설사업이 시작됐음을 알린 뒤 미국이 이미 제공한 지원금 2,000만달러를 유용하게 사용할 것임을 약속했다.이어 경제개발을 위해서도 한·일간의 전면적인 외교관계 수립은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미국측도 양국의 국교정상화가 민감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빨리 이루어지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이는 한·일관계 정상화를 이뤄 일본이한국에 경제원조를 하도록 함으로써 동북아 안보이익을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보여준 것이다. 국토건설사업에 대한 미국측 지원이 변함 없음은 매카나기의 후임인 마셜그린 대리대사가 4월18일 장면총리와 대화한 내용을 담은 전문(C)에도 그대로 나타난다.그린은 국토건설사업에 1,500만달러를 추가 원조하기로 결정했음을 통보하면서 지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도 명시하고 있다. 이같은 한·미간의 국토개발 노력은 그러나 5·16으로 중단돼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됐다.
  • 기고-‘법조개혁’ 국민이 나설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다.그런데 여기에 덧붙여서 ‘법은멀고 돈만 판친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이번 대전 법조비리사건을 반성하는 뜻에서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원생들에게 ‘법률상인’이 되지 말라고 했지만,문제는 ‘법비(法匪:법을 악용하는 도적)’가 되니까 문제이다.변호사가 아무리 사회정의와 인권의 수호를 내세워도 넓은 의미의 장사인 것은 틀림없다.장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얼마나 공정한 장사를 하는가가 문제다. 이번 대전 법조비리사건은 의정부사건이 있은지 얼마 안돼 터져서 충격도크다.그렇지만 알만한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1993년 김영삼정권 당시 사법개혁을 한다고 요란스러웠다.그 당시도 ‘전관예우’가 문제되고,문턱높고 패쇄적인 사법부의 권위주의와 관료주의 및 법조인맥의 연고-파벌주의가 문제로 떠올랐다. 사법제도와 관련되어 일어나는 모순과 부조리는 그 특수 패쇄사회 속의 오랜 폐습에 서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밖에선 알기도 어렵고,또 알아도 당장어쩌지 못해왔다.더욱이 그 제도나,그 운영주체인 전문직종의 법조인은 일제하로부터 특수한 분위기 속에서 육성되어 왔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건국을 맞아 세상이 바뀌어도 일제하에 생긴 일부 전통과 관례를 철벽으로 고수하는데 성공해온 특정 전문직종의 엘리트 계층이다.그래서 사법제도에는 일제 잔재도 많이 있다.그중에서 관료주의,연고주의와 선후배의 서열에 따른 의리관계 및 특권직종으로서 폐쇄주의의 독특한 세계를 이루어 왔다. 한편 법조인이 독재에 항거하고 사회에 소금역할을 해온 사회 기여와 인권수호의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그런데 독재정권의 법기술자로 전락한 일부 법조가 실세화되면서 법조 분위기는 일각으로부터 급속도로 변질된 것도 사실이다.정의고 사명이고,별볼일 없다는 분위기를 부채질한 것은 독재하 법기술자들의 출세이고 그들에게 주어진 황금방석의 보장이었다.최고법원의 법관을 역임한 자가 대기업을 위해 상고이유서를 한장 써주고 얼마의 수임료를 받았다는 말이 나돌아도 그럴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수긍하는 딱한 세상이 된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 법을 믿지 못한 지는 오래다.그러나 이번 사건에서처럼 서민이 법을 전면적으로 불신하고,법치란 제도에 대해 허무해한 적도 없을 것이다.서민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무법자인 ‘마피아’의 그늘에라도 들어가야 살아 남는다.그러한 서민을 비웃을 수만 없다.그러한 무법사태의 종결을 위해 우리는 자구적 차원에서 일대 결단을 내려야 한다.문제 당사자인 법원,검찰 및 변호사회 등 3주체는 각기 자기 나름으로 공정엄정하게 처리하라.시간을 더 이상 끌다간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다.다음에국회는 국정조사권을 응당 발동,진상 규명과 대안 제시를 해야 한다.그런데지금 국회가 돌아가는 꼴을 봐선 당장에 기대할 수 없다.그러니 정당은 국회와 사정이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나름대로 정책을 제안하는 등 애를 써라.결국 시민 사회단체가 나서서 진상을 따지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나서는 것이다.시민단체를 통하든,개개인으로서든 법을 지키는 온갖 방책을 강구하도록 공개요구,감시,비판,규탄,대안 제시 등을 해야 한다.결국 피해자는 누구인가? 우리 국민이다.그리고누구의 사법제도인가? 국민의 것인데 이토록 국민을 배반하는 지경에 이른것을 그대로 둘 수 없다.이번 기회에 사법과정에 얽힌 부패 먹이사슬의 연결고리인 연고주의에 서식하는 정실과 뇌물구조를 부숴버리는 것을 비롯해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1993년 개혁 드라이브의 헛바퀴 돌리기가 되풀이된다면 우리 장래는 암담하다.서민이 지금 얼마나 분개하고 죄절해 가슴을 치고 피를 토하고 있는지 아는가?
  • 고민되는 취업

    지난 12일 486명의 사법연수원생 수료식을 마친 연수원 盧榮保 기획총괄교수(45·부장판사)는 요즈음 착잡하기만 하다.연수원생을 떠나보낸 아쉬움보다는 1년 뒤 닥칠 600명의 29기 연수원생들 취업 걱정이 앞서는 탓이다. 28기들은 당초 100여명 가량이 취직을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법원·검찰 153명,변호사 178명,군입대 132명 등 수치로는 13명만 빼고 취업이 됐다. 그러나 속내는 그렇지 못하다.이제 막 연수원을 마친 새내기 변호사 65명이 단독개업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예년에 10명이 채 안됐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수치다. 기대를 걸었던 비송무 분야 진출도 외교통상부 정보통신부 감사원 헌법재판소 등 7∼8명에 불과했다. 盧교수는 “정부가 사법개혁을 내세워 법조인만 대량으로 양산했을 뿐 이들을 활용할 대책은 수수방관했기 때문”이라면서 불만을 털어놨다. 정부는 지난 95년 초부터 사법시험 제도를 포함,법조인력 확대방안을 적극추진했다.늘어나는 법률수요를 충족시키고 법률서비스 수준을 국제수준으로높이겠다는 취지였다.특히 법조인을 행정부에 흡수시키는 등 이들의 ‘직무영역’을 넓혀 새로운 법률문화를 창달하겠다고 선언,시민단체의 큰 호응을얻었다. 그러나 연수원생들의 기대는 대부분 물거품이 됐다.수료생 朴모씨(36)는 “전공인 경영학을 살려 금융감독위원회나 증권거래소에서 소신있게 일하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문호가 개방되어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단독개업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李모씨(35)도 통상법 전공을 살려 정부부처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결국 변호사 개업으로 진로를 바꿨다. 이처럼 단독개업을 결심한 수료생 대부분은 정부부처 취업도 막혀있는데다법무법인이나 개인변호사 사무실 취업도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개업을선택했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연수원 시절 두달 가량의 변호사 시보 생활이 전부인 이들이 변호사 업무에 대해 경험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盧교수는 “사법개혁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매년 최소 50명 이상의 연수생들을 행정부에서 제도적으로 흡수해야 한다”면서 “법조인 숫자를 늘리기에 앞서 이들 인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65명에 이르는 단독개업 변호사들은 경험부족으로 인해 법조브로커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또다른 법조비리를 막는 차원에서라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 ‘법률商人’되지 않도록

    ‘법조인은 영리를 추구하는 여타 직역(職域)과 달리,사회정의 실현과 인권의 보호라는 고도의 공익적 사명을 띠고 있다.국가가 법조인 양성과정에 상당한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것은,바로 법조인이 공익에 봉사해야 할책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李宗基변호사 수임비리사건으로 법조계가 온통 벌집 쑤신듯 뒤숭숭한 가운데 12일 열린 제28기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尹관대법원장이 한 말이다.尹대법원장은 또한 “법조인이 이같은 공익적 사명감을 저버리고 단순한 법률기술자나 법률상인으로 전락한다면 법조에 대한 국민의 존경심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咸正鎬 대한변협 회장도 “법조인에 대해 권위주의·엘리트의식·기득권세력이라는 비판과,법률전문가는 사라지고 법률상인만늘어간다는 사회적 비판은 선배들이 물려준 부정적인 유산”이라고 전제하고,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성의 소리를 높였다. 두 법조 원로의 당부와 자성은 오늘날 우리 법조계가 안고 있는 비리의 핵심을 정확히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굳이 그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법조비리의 생태와 원인은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바다.법조삼륜(法曹三輪)이라는 판사·검사·변호사들의 ‘한솥밥 식구’의식이 빚어내는 직역이기주의,뿌리 깊은 전관예우 관행,그리고 무엇보다 공익적 사명을 등진 ‘법률상인화’ 등이 그것이다.그같은 고질적 병폐를 바로잡기 위한 방안으로 전관예우금지의 법제화,법조인 양성제도의 개혁과 사법연수과정에서의 윤리교육의 강화 등이 거론되고 있다.옳은 처방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양성제도의 개혁이나 윤리교육의 강화만으로는 법조인의 법률상인화를 막을 수 없다. 법조비리를 척결·소멸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처방은 법률서비스에서 ‘초과이윤’이 발생하는 구조를 청산하는 일이다.과당 수임료가 빚어내는 비리의 온상을 봉쇄하는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법조비리의 연결고리가 되는변호사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그렇게 해서 변호사들이 의뢰인을 찾아다니도록 해야 한다.법률서비스에도 시장논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다.알선료를주고 사건을 수임하는 행위를 엄단하는 장치가 전제가돼야함은 물론이다.변호사 수를 대폭 늘리자면 법조계의 강력한 반발을 극복해야 한다. 96년 사법개혁의 일환으로,세계화시대와 법률서비스 수요증가에 대비해서사시정원을 연차적으로 증원하는 방침이 어렵사리 결정됐다.해마다 시행되던 이 제도마저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구실로 중단됐다.그러나 사시정원은대폭 늘려야 한다.법조계의 ‘자정결의’만으로는 법조비리가 근절되지 않기때문이다.
  • 사법연수원 28기 486명 수료식

    사법연수원(원장 賈在桓)은 12일 尹^^ 대법원장,朴相千 법무부장관,金泰政검찰총장,咸正鎬 대한변협회장,安龍得 법원행정처장 등 법조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수원 대강당에서 제28기 연수생 486명의 수료식을 가졌다. 대법원장상은 金동철씨,법무부장관상은 高홍석씨가 수상했으며 변협회장상은 車영민·車태영씨가 각각 받았다.수료생 가운데 가운데 법관 및 검사에는 각각 77명과 76명이 임용될 예정이며 군·공익 법무관 임관 예정자는 132명이다.
  • ■尹대법원장 사법연수원 수료식 치사 요지

    尹관 대법원장은 12일 제28기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최근 법조계에 대한 불신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어떠한 직역으로 진출하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는 ‘전문가로서의 법조인’으로 거듭 태어나 달라”고 당부했다.尹대법원장의 치사내용을 간추린다. 민주사회에서 법조인의 위상은 국민의 신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법조인이 단순한 법률기술자 내지 법률상인으로 전락해버린다면 법조에 대한 국민의존경심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법조인은 영리를 추구하는 여타의 직역과 달리,사회정의의 실현과 인권의보호라는 고도의 공익적 사명을 띠고 있다.국가가 법조 양성과정에 상당한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바로 법조인이 공익에 봉사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즈음 우리 사회가 법조인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과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우리 법조는 겸허한 자세로 자신을 성찰하면서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국민의 불만요인은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법률가로서의경륜을 쌓아가면서,초심을 잃지 않고 깨끗한 처신과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다.그리고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억울하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외환위기가 촉발한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는 데도 법조인의 관심과 노력이 어느 분야 못지 않게 필요하다.또 미래의 환경과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종전의 관행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말고,전향적 자세로 새로운 법조문화와 제도를 구축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일반대 출신 3명/전투기 조종사로

    일반 대학 출신이 공군의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게 됐다. 공군의 조종 장학생으로 첫 전투조종사가 된 주인공들은 柳濟卿 중위(25·경희대 우주과 졸),宋在元 중위(26·충북대 법학과 졸),裵鍾珉 중위(24·청주대 전자공학과 졸) 등 3명으로 14일 공군제1전투비행단에서 고등훈련수료식을 갖고 전투조종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들은 대학 2학년 때인 93년 공군이 도입한 ‘조종 장학생’ 1기로 선발됐었다. 柳炫旭 중위(26·계명대 무역학과 졸)·朴元圭 중위(27·영남대 경영학과 졸) 등 동기생 2명은 헬기 조종사와 수송기 조종사로 각각 배속됐다.
  • 대법원장상 김현보씨/27기 사법연수생 수료식

    사법연수원(원장 가재환)은 12일 사법연수 대강당에서 윤관 대법원장과 김종구 법무장관 김태정 검찰총장 함정호 대한변협 회장 등 내외빈 6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7기 사법연수생 수료식을 가졌다. 대법원장상을 받은 김현보씨(30)를 비롯,315명(여성 26명)이 수료한 가운데 이중 50명(여성 6명)이 판사를 지원,35명(여성 3명)이 검사를 지원했다. 나머지는 ▲군법무관 75명 ▲공익법무관 18명 ▲헌법재판소 5명 ▲법률구조공단 17명 ▲행정부 2명 등이다.
  • 박물관 대학/이융조 충북대 박물관장(굄돌)

    우리 대학도‘박물관대학’이라는 사회교육 과정을 개설해 이제 3기가 거의 끝나간다.1기 때는 어떤 사람이 올까 하는 의구심이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했지만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박물관대학 강사들이 알찬 강의를 진행해 지역 저명인사와 유지들이 많이 수강하였다. 우리 대학 전 총장,전 도의회 의장,전 부지사,도·시의원들을 비롯하여 우리 학교 교수들도 여러분 강의를 들었다.시어머니와 며느리,부부,동창생들 이같이 와서 들은뒤 갖는 식사 또는 차마시는 시간은 즐겁기만 하다. 게다가 될 수 있는한 강좌와 강사를 매년 새롭게 구성한 결과 1기부터 이번까지 3년을 잇따라 수강하는 사람들도 10명이 넘는다.2시간 반 강의를 들으려고 7∼8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오는 열성적인 수강생도 있다. 올해는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해 이에 동참하는 뜻으로 1학기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2학기에는 중원지방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로 16주씩 강의를 했고 답사도 다녀왔다.과정이 끝나가는 것이 애석해서인지 ‘학생’들은 수료를 기념하는 답사를 하자고 해오는 15일에는 익산 미륵사지와 고창의 고인돌·선운사를 다녀오기로 계획을 짜놓았다. 이들은 앞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파수꾼이 되고 홍보자가 될 것이기에 우리는 수료식에 동문들까지 초청해 새 동문을 맞이하는 상견례도 가질 예정이다.이같은 박물관대학 과정을 여러 대학교 박물관에서 개설해 우리 전통문화와 민족에의 자긍심을 높이는 올바른 교육을 한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미국·일본에서 처럼 자원봉사자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고 안내하는 그날이 멀지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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