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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주서 다시 쓰는 국과수 역사, 세계 최고 만들것”

    “원주서 다시 쓰는 국과수 역사, 세계 최고 만들것”

    “58년 역사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강원도 원주에서 다시 새 역사를 쓰게 됐는데, 이미 중국과 중동에 수출하고 있는 법과학 수사기법을 더욱 발전시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습니다.” 서중석(56) 국과수 원장은 드라마 ‘싸인’에서 법의학자를 연기한 박신양의 실제 모델로 유명하다. 국내 법의학계의 1인자로 지금까지 1만 1000건이 넘는 시신 부검에 참여한 서 원장은 12일 “박신양씨는 드라마에서 국과수 원장이 못 되고 죽었고, 나는 원장이 된 점이 다르다”며 웃음 지었다. 의사 출신인 서 원장은 북한 금강산에서 피살된 박왕자씨, 황장엽씨, 최진실씨 등 중요 사건의 부검을 도맡았다. 박씨의 시신을 부검하면서 정조준해 피살당한 것을 확신한 그는 당시 박씨와 금강산 관광을 같이 갔던 관광객들의 카메라를 모두 거둬서 분석했다. 이를 통해 박씨가 사망한 정확한 시점의 날씨와 밝기 등의 상황을 복원해냈다. 황장엽씨에 대해서는 “말년에는 의자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웠을 정도로 육체는 노쇠했지만, 뇌는 아주 건강한 사상가였다”면서 시신에서 육체적 수련의 흔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여배우인 최진실씨의 부검 상황은 노코멘트했다. 서 원장은 “요즘은 살인 사건과 같은 강력사건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로 범인은 주로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 화면 복원을 통해 잡는다”면서 “살인 사건은 감소추세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목을 조르고 흉기로 찌르며 때리는 등 세 가지 이상의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고 밝혔다. 잔인해지는 살인 수법 때문에 어떤 방법을 먼저 썼는지 부검을 통해 규명하는 것이 점점 까다로워졌다고 덧붙였다. 이날 원주에서 문을 연 국과수 본원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연구와 교육을 주로 맡으며,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기존 국과수 본원은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개편해 수도권 지역의 부검과 긴급감정 등을 하게 된다. 특히 내년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전 세계 과학수사 요원들이 모이는 ‘세계 과학수사 학술대전’을 개최하는데, 여기서 우리 법과학의 우수성을 더욱 널리 알릴 예정이다. 예전에는 거짓말탐지기를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개발한 것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국과수에서 자체적으로 안구 움직임과 뇌파까지 감지하는 거짓말탐지기를 개발해 더욱 신뢰성을 높였다. 최근 국과수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은 탤런트 박시후도 깜짝 놀라고 돌아갔다고 서 원장은 귀띔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한국문화 근간 도교의 옛 흔적 찾아서

    한국문화 근간 도교의 옛 흔적 찾아서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는 조선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왕실화다. 왕이 사망했을 때 신하들이 마치 생전의 왕을 모시듯 할 정도였다. 해, 달, 산봉우리, 소나무, 파도를 담은 이 그림은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을 띤다. 다섯 산봉우리의 가운데 자리한 가장 큰 봉우리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해는 오른쪽에, 달은 왼쪽에 위치한다. 폭포는 봉우리 사이에서 시작해 한두 차례 꺾인 뒤 파도가 물결치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물결 양쪽의 소나무는 각각 두 그루씩 마주 보며 적갈색 몸통에 녹색 잎사귀, 군데군데 낀 이끼를 드러낸다. 왕이 하늘의 이치를 본받아 태평성대를 이뤄야 한다는 교훈을 담았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덕수궁 중화전 등 정전(正殿)의 어좌 뒤에 놓인 일월오봉도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물론 1만원권 지폐에도 등장해 대중에겐 친숙한 존재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0일 개막해 내년 3월 2일까지 이어 가는 ‘한국의 도교 문화-행복으로 가는 길’은 한국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옛 도교의 흔적으로 이 일월오봉도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전시에선 높이 194㎝, 길이 219㎝의 현존 최고 일월오봉도(19세기 추정)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20세기에 그려진 일월오봉도와 달리 중국에서 들여온 서양 안료를 쓰지 않고 고유의 천연 안료인 석채를 사용했다. 뒷면에는 신선 세계의 복숭아를 뜻하는 ‘해반도도’(海蟠桃圖)가 그려졌다. 역시 처음으로 공개되는 왕실 해반도도는 곤륜산에 사는 도교 최고 여신인 서왕모의 과수원에서 3000년에 한 번 열린다는 복숭아를 형상화했다. 왕의 불로장생을 축원하는 뜻을 담았는데 해와 달, 학이 등장하지 않는다. 박물관 측은 창경궁영건도감의궤(1834)를 참고해, 함인정(涵仁亭)에 내걸렸던 그림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 첫 도교 관련 대규모 유물전으로 국보 7점, 보물 4점을 비롯해 고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회화와 공예품, 전적류, 고고 발굴품 등 300여건을 망라한다. 안경숙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우리는 도교라고 하면 늘 ‘무엇이 도교냐’는 질문에 봉착한다”면서 “유교나 불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시됐던 도교에 대한 역사적 제자리 찾기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종교라기보다 문화의 형태로 안착한 도교의 다양한 모습은 다른 유물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287호)는 불교 의식에 쓰던 유물이지만 신선들이 산다는 신산(神山)을 표현한 조각들을 담아 도교적 세계관을 나타냈다. 김홍도가 그린 ‘군선도 병풍’(국보 139호)에는 소를 타고 도덕경을 든 노자처럼 도교에서 신선으로 추앙받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1441년(세종 23년) 간행된 ‘초주갑인자본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 금속활자본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무려 42년이나 앞선다. 도교의 3대 경전으로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주역참동계로는 가장 오래됐다. 퇴계 이황(1501~1570)이 중국의 수련서를 요약해 그린 ‘활인심방’(活人心方)에는 일종의 건강 체조라 할 도인법이 담겼다. 점을 칠 때 쓰던 ‘천지반’(天地盤)의 조각도 공개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LG화학 희망 도서관 개관

    LG화학 희망 도서관 개관

    8일 전남 여수시 학동 YMCA 청소년수련관에 문을 연 LG화학의 20번째 ‘희망 가득한 도서관’에서 청소년들이 책을 한 권씩 들고 웃고 있다. 친환경 건축 자재로 꾸민 도서관은 LG화학 임직원들의 모금과 도서 수집을 통해 마련한 서가, 영상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시청각실, 스터디룸 등을 갖췄다. LG화학 제공
  • 안동 -영주 한국문화테마파크 이름까지 똑같네

    ‘선비’ 명칭과 원조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경북 영주시와 안동시가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주도한다는 명분으로 한국문화테마파크 중복 조성에 나서 예산낭비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 영주시는 3일 순흥면 청구리 선비촌에서 한국문화테마파크 기공식을 가졌다. 순흥면과 단산면 일대 96만여㎡에 총 1565억원(국비 787억원, 지방비 478억원, 민간자본 300억원)을 투입, 2018년 개원을 목표로 추진된다. 테마파크는 한옥과 한복, 한식, 한글, 한지, 한음악 등 6대 한(韓) 스타일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끌 한문화센터와 전통 건축을 토대로 한 숙박시설, 전통음식촌, 선비문화 체험을 위한 명상정원, 국궁장, 마상무예장 등으로 구성된다. 안동시도 2016년까지 총 1389억원(국비 757억원, 지방비 380억원, 민자 252억원)을 들여 도산면 동비리 일대 68만㎡에 한국문화테마파크를 조성한다. 내년 상반기 착공 예정. 시는 이곳에 한국문화대광장을 비롯해 한국선비서원, 한국전통정원 등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광장 및 명상 수련 공간을 마련한다. 이처럼 이웃한 자치단체가 대규모 중복 사업을 추진하고 나서자 예산낭비 등의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를 지도·감독해야 할 중앙정부가 부작용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주민들은 “영주와 안동에는 이미 소수서원과 선비촌, 선비문화수련원, 한지체험촌 등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거점 시설이 많다”면서 “한국문화테마파크가 중복 조성될 경우 득보다는 손실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지금이라도 개선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안동·영주시 관계자는 “테마파크 조성 사업은 3대 문화권(유교·불교·가야문화) 사업의 하나”라면서 “지역 간 차별화를 통해 상호 보완적 기능을 갖출 경우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영주시는 1998년 7월 ‘선비의 고장’ 상표 등록을 시작으로 선비정신, 선비숨결, 선비삿갓, 선비촌, 선비뜰 등 10여개의 상표등록을 해놨고 안동시도 선비고을, 안동선비, 선비정신의 본향 안동 등을 상표 등록하며 맞서 왔다. 영주·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세상과 단절” 신상공개 성범죄자 아들의 비극

    성범죄를 저질러 신상공개명령을 받은 40대 가장의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나이는 만 17세,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30분쯤 충남 아산시의 한 신축건물 원룸에서 타다 남은 번개탄 옆에 박모군의 싸늘한 시신이 발견됐다. 박군의 스마트폰 메모장에는 부모와 형, 남동생에게 남기는 5장짜리 유서가 있었다. 박군의 유서는 아버지에게 남기는 글로 시작됐다. “잠깐 무너지셨지만 매일 새벽부터 열심히 일하시는 거 정말 멋있고 존경스럽습니다” 박군의 아버지는 성범죄자다. 40대 중반의 그는 지방의 한 철도역 직원이었다. 2010년 5월 여중생을 추행한 죄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신상정보공개 5년에 처해졌다. ‘만 13세 미만 강제추행죄’를 적용받아 형벌은 더욱 무거웠다. 그리고 2011년 8월 25일, 박씨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아버지의 재판 준비를 돕던 박군에겐 세상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앞서 2010년 12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을 때 박군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아버지 사건이 나기 전까지 박군은 학급에서 반장을 할 정도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법적·도덕적으로 지탄을 받게 된 상황이 박군에겐 너무 컸다. 아버지처럼 철도공무원이 되겠다던 박씨의 첫째 아들은 꿈을 접었고 초등학생인 셋째 아들 역시 “나는 불행하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박군은 유서를 통해 견디기 힘든 세상의 낙인에 대해 호소했다. 박군은 “저희 가정이 완전히 단절되고 가족 모두 힘들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는 걸 여러분들께 알리고 싶어요. 저희 불쌍한 가족 구원해주세요. 엄마 이 글은 꼭 페이스북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줘”라고 외치듯 전했다. ‘성범죄자 신상공개’ 명령은 박씨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놨다. 박씨의 이웃들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박씨의 신상과 사진 등의 정보가 담긴 우편물을 받기 시작했다. 법이 개정·강화되면서 성범죄자가 살고 있는 건물의 번호와 이름, 나이, 사진 등의 정보가 담긴 우편물이 그 건물 소재지 읍면동의 모든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교, 읍면사무소와 동 주민자치센터, 학원, 청소년수련시설 등에 보내진다. 세 아들은 학교와 학원을 갈 때마다 어딘가에 아버지 사진이 박힌 신상공개물이 있을까 불안에 시달렸다. 박씨 가족은 다른 동네의 건물로 주거지를 옮겼지만 건물 주인이 “우리 건물이 성범죄자가 사는 곳으로 등록됐더라. 나가달라”고 요구해 다시 이사를 해야 했다. 박씨는 23년간 다녔던 직장에서 해고돼 전국을 떠돌며 트럭 운전을 하고 있다. 박씨는 “(숨진) 둘째는 얼마 전에 ‘아버지, 날씨가 추우니 꼭 점퍼 입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낼 만큼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이였다”고 전했다. 박군은 지난달 24일 마지막으로 쓴 일기장에 “눈만 뜨면 우울해지고 짜증난다. 나도 모르게 허튼 생각하게 되고 약이 생각나지만 선뜩 행하지는 못하겠어서 그냥 잠들고 만다. 어젠 거의 (자살) 직전까지 갔었던 것 같다. 너무 괴롭다”고 썼다. 박군은 지난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로 마음을 잡은 듯했다. 의사가 돼 가족을 호강시키겠다며 공부에 매진했다. 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만큼 학교 생활도 원만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처는 아물지 않았던 것 같다. 박군의 어머니는 “일기를 보고 아들에게 ‘엄마도 죽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너희들 때문에 꾹 참고 살고 있다. 너도 혼자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 당부했었다. 하지만 그걸로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RO조직원들 휴대전화 끄고 회합”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 음모 사건 10차 공판에서 국가정보원의 불법 사찰 여부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28일 수원지법 형사 12부(부장 김정운)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국정원 수사관 서모씨는 “홍순석 피고인 등이 RO 조직원들과 세포 모임 또는 회합을 할 때마다 휴대전화 전원을 일시 차단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는 RO 보안수칙에 따른 것”이라고 증언했다. 서씨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8차례에 걸쳐 홍 피고인 등에 대한 통신제한조치 허가서(감청영장)를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휴대전화의 위치를 추적하고 그 결과를 집행조서로 작성한 수사관이다. 그는 “일부 피고인의 경우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는데도 굳이 공중전화를 사용하고 국제전화까지 건 사실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서씨는 “피고인들이 지난해 8월 참석한 경기 광주 곤지암청소년 수련원 모임은 이들이 휴대전화를 차단한 점과 현장에 있던 동료 수사관이 찍은 사진 등을 종합해 볼 때 RO 회합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2010년 9월 5일자로 증인이 작성한 집행조서에 홍 피고인 등이 회합을 가진 사실을 수사관이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했는데 이는 이미 그때부터 피고인들을 미행하고 추적하면서 불법 사찰을 했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서씨가 특정한 곤지암 모임은 진보당 경기도당 소속 당원 350여명이 참여한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이었고 재판장에 있는 피고인 변호사 중 1명도 모임에 참석했는데 국정원이 지목하는 2명이 휴대전화를 껐다는 것만으로 참가자들을 모두 RO 조직원으로 단정하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배우 출신 무속인 황인혁-여배우 이승민, 내년 3월 결혼

    배우 출신 무속인 황인혁-여배우 이승민, 내년 3월 결혼

    배우 출신 무속인 황인혁(42)이 배우 이승민(33)과 내년 3월 결혼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간스포츠는 27일 “양가 상견례를 진작에 끝내고 내년 3월 중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날짜를 고르고 있다”는 황인혁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인용하여 이같이 보도했다. 황인혁은 2000년대 초반까지 CF모델 겸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드라마 ‘쿨’,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등에 출연했었다. 그러나 2003년 무병을 심하게 앓고 난 뒤 신내림을 받았다. 5년간 본격적으로 무속인 수련을 받아 현재 퇴마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이승민은 2003년 SBS 톱탤런트로 데뷔했다. 영화 ‘두사부일체’, ‘영어완전정복’, ‘내사랑 토람이’, ‘흡혈형사 나도열’ 등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SBS 드라마 ‘두 여자의 방’을 통해 안방극장에 얼굴을 알렸다. 황인혁과 이승민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가 2010년 초반부터 연애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식은 내년이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는 이미 2011년 3월 태어난 딸이 있다. 내년 3월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뤄뒀던 결혼식을 꼭 치르겠다는 게 두 사람의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배우 출신 무속인 황인혁, 이승민과 결혼… “이미 세살배기 딸 아빠”

    배우 출신 무속인 황인혁, 이승민과 결혼… “이미 세살배기 딸 아빠”

    배우 출신 무속인 황인혁(42)이 내년 3월 배우 이승민(33)과 결혼식을 올린다. 27일 일간스포츠는 황인혁과 이승민이 내년 3월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치른다고 보도했다. 황인혁은 “양가 상견례는 진작 끝냈다”면서 “내년 3월 중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날짜를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황인혁과 이승민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다가 지난 2010년 초반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정식 결혼식은 내년에 치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2011년 3월 태어난 딸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개인적인 사정으로 결혼식을 미뤘던 것이다. 황인혁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CF 모델 및 연기자로 활동했다. 드라마 ‘쿨’,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등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고 100여편의 CF에 출연했다. 그러나 2002년 KBS 드라마 ‘스피드박’ 출연 이후 돌연 활동을 중단했고, 2003년 초 심한 무병을 앓다가 신내림을 받은 뒤 주역을 공부하는 등 5년여 동안 수련을 쌓고 퇴마 무속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10년 tvN ‘엑소시스트’에 출연해 빙의 환자를 치료하는 퇴마 시술을 보여줘 화제를 모았다. 황인혁의 배우자 이승민은 2003년 SBS 톱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영화 ‘두사부일체’, ‘영어완전정복’, ‘내사랑 토람이’, ‘흡혈형사 나도열’ 등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SBS 아침드라마 ‘두 여자의 방’에 출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0대 승려, ‘정신질환’ 20대女 치료한다며 몸을…

    50대 승려, ‘정신질환’ 20대女 치료한다며 몸을…

    정신질환 치료를 해주겠다며 여성 신도를 때려 숨지게 한 50대 승려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이 승려는 다른 신도를 성폭행하기도 했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는(최월영 부장판사)는 25일 상해치사 및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구 모 사찰 승려 이모(57)씨에 대해 징역 6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통상적인 치료요법을 벗어난 행위로 피해자들에 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고 급기야 사망에 이르게 한 만큼 그 죄질에 상응하는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 4월 정신분열증을 앓던 신도 정모(20·여)씨를 상대로 이른바 ‘안착기도’를 하는 과정에서 목탁재와, 종망치 등으로 정씨를 수십차례 때려 외상성 쇼크로 숨지게 했다. 이씨는 같은달 심신수련을 목적으로 사찰을 찾은 윤모(36·여)씨에게 “몸에 든 귀신을 내쫓아주겠다”고 속여 두차례 성폭행한 혐의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석기측 “국정원, RO제보자 진술서 사전 작성” 제보자 “오탈자 확인 수준… 녹취파일 편집 없어”

    22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 음모 혐의 7차 공판에서는 제보자 이모(46)씨를 둘러싸고 검찰과 변호인단이 치열하게 다퉜다. 이씨는 국가정보원에 제출한 녹음 파일 등은 자신이 직접 녹취한 것으로 편집 등은 없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녹취 파일 원본이 상당수 없어져 사본과 똑같다고 말하기 어려운 데다 이씨에 대한 조서를 국정원이 미리 써 줬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날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 김정운) 심리로 열린 7차 공판에서 이씨는 “2010년 5월 국정원에 RO의 존재를 처음 신고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 국정원 수사관 문모씨에게 증거 확보를 위한 녹음기 제공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녹음기 조작에 익숙지 않아 녹취를 못 하다 2011년 1월부터 지난 9월까지 5대의 녹음기로 47개의 파일을 만들어 국정원에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엔 지난 3월 경기 광주시 곤지암의 한 수련원에서 열린 RO 모임, 지난해 3월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타워에서 열린 이 의원 국회 진출 지지 대회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도 있었다. 검찰은 이씨에 대한 추가 신문을 통해 이씨가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녹음했다는 점을 집중 부각했다. 반대신문에 나선 변호인단은 이씨의 진술 조서 작성이 지난 7월 20일 수원의 모 호텔에서 오후 6시 40분부터 오후 10시 5분까지 불과 3시간 25분 만에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국정원 수사관이 사전에 조서를 작성해 온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긴 조서를 다 작성하고 읽어 보고 확인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씨는 조서가 사전에 작성됐다는 점을 시인하면서도 “내용을 숙지하고 있었다”거나 “오탈자를 확인하는 수준으로 읽어 나갔다”고 주장했다. 또 “국정원 수사관이 먼저 촬영을 제안했다”고도 진술했다. 국정원은 그동안 이씨에게 녹취나 촬영을 미리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여기다 변호인단은 아파트 빚, 아내의 퇴직, 장인의 암 투병, 당구장 인수 비용 등 이씨의 경제적 문제를 캐고 들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씨를 상대로 무리하게 짜맞추기한 수사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한편 재판부는 논란을 빚고 있는 녹취 파일의 진정성 여부에 대해서는 “추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 등을 검토한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연평도 포격 도발 3년] 긴장 속 평화… 연평도를 가다

    [연평도 포격 도발 3년] 긴장 속 평화… 연평도를 가다

    21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 공동작업장. 주민 오정숙(72·여)씨는 조금 전 꽃게잡이 어선에서 끌어올린 그물에서 꽃게를 골라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작업 인원은 20여명이지만 아낙네가 대부분이다. 오씨는 “그래도 연평도에선 굴을 캐거나 꽃게를 따는 것이 제일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3년 전인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느닷없는 포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연평도는 이렇게 일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른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김장을 하는 등 월동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포격 당시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육지로 황급히 떠났던 혼란상은 주민생활 어디에서도 찾기보기 힘들었다. 주민들은 마을에 복귀한 뒤 예상보다 빨리 일상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성과 노약자들 가운데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 연평도 등 서해5도에서 남북한 해군이 충돌하는 일은 자주 일었지만, 주민들에 대한 북한군의 직접적인 공격은 휴전협정 이후 처음이라 주민들이 입은 내상이 쉽게 가시지 않는 듯하다. 유창미(51·여)씨는 “섬에 주둔하는 군이 사격연습을 하면 3년 전의 악몽이 떠올라 놀랄 때가 많다”면서 “포 소리가 들릴 때마다 군부대 연습이려니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밖에 나가 보곤 한다”고 말했다. 김민영(55·여)씨는 “천둥·번개가 치는 날에는 잠을 설친다”며 “괜찮아진 것 같아도 소리에 민감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희찬(9)군은 “유치원에서 간식을 먹고 있을 때 근처에 포탄이 떨어져 울었다”면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포 소리는 싫다”며 웃었다. 연평보건지소 의사 김지석(31)씨는 “일부 주민들이 불안장애로 육지 병원 또는 보건지소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이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더욱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도 주민들의 잠재된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최모(62)씨는 “대를 이어 세습할수록 집권자가 더 못해지는 것 같다”면서 “김정은의 언행을 보면 뭔가 일을 저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지난 3월에는 군부대 훈련 도중 방송설비 작동 실수로 ‘실제 상황’이라며 대피령이 내려져 일부 주민들이 부두로 나가는 등 혼란이 일기도 했다. 그날의 참상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곳이 있다. 지난해 11월 마을 한편에 지어진 안보교육장으로, 안보교육관(734㎡)과 피폭가옥 3채로 구성됐다. 이들 가옥은 포탄을 맞아 처참하게 부서진 모습 그대로 보존되었다. 지붕은 날아갔는지 앙상한 철골 뼈대를 드러내고 있고 불에 그을려 형체만 남은 가스통, 세탁기, 자전거 등은 달리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옹진군은 내년부터 2018년까지 평화안보 둘레길, 안보수련원, 평화기원 등대를 추가로 조성할 방침이다. 이정숙(58·여)씨는 “처음에는 안보교육장을 찾는 이들이 적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이 늘고 있다”며 “섬에 활기가 돌아 주민들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연평도 주민수는 피폭 전보다 늘어났다. 현재 2202명으로 피폭 당시 1756명보다 400여명 증가했다. 면사무소 측은 군부대 증강으로 군인 가족들이 대거 전입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육지로 떠났던 주민 전원이 섬으로 복귀했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주민대책위 간부를 지낸 주민은 “섬으로 돌아가기 싫어 당국에 정주처를 요구했지만 생각해 보니 연평도만 한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포격으로 파손된 집과 상가 32채는 당국의 지원으로 신축됐고 188채의 노후주택은 리모델링되었다. 정진석(80) 할아버지는 “수십년 동안 삶의 터전이었던 섬을 떠날 수는 없었다”면서 “시간이 약인지 새집에 들어온 뒤 예전 생활을 되찾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연평도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길섶에서] 열차 여행/정기홍 논설위원

    대학 시절의 추억담이다. 돈이 궁했던 터라 고향을 갈 땐 으레 돈이 덜 드는 경로를 택했다. 완행열차의 출발과 종착역인 용산역은 그런 연유로 나의 고향길 얘기를 듬뿍 담고 있다. 완행열차인 비둘기호는 지정좌석이 없어 자리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였다. 열차 시간은 아마 오후 9시대였던 것 같다. 그 시간부터 무전여행과도 같은 밤샘 여행길이 시작된다. 다음 날 오전에야 고향집에 도착하니 12시간은 족히 걸리는 셈이다. 객차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달걀과 빵 등을 나눠 먹으며 시대의 고민을 함께 논하기도 했다. 몇 년 전 고향 가는 길목에서 무궁화호를 이용한 적이 있다. 비둘기호는 이미 없어졌다. 무궁화호가 ‘추억의 완행’을 대신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그리 흔치 않다. 객차 안에선 옛 정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의자는 왜 그렇게 깨끗한지…. 간이역에는 잘 서지도 않았다. 단풍철이면 경춘선이 유독 인기다. 경춘선 하면 엠티(MT)라는 이름의 수련모임이 열리던 곳. 그러나 지금 그 풍경은 아스라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제빵인생 50년 권상범 제과명장

    [김문이 만난사람] 제빵인생 50년 권상범 제과명장

    빵은 오래전부터 서양 사람들의 식탁에 단골로 등장한 대표적인 메뉴다. 큰 덩어리의 빵을 손으로 찢은 뒤 버터와 잼을 발라 먹는 장면은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쌀을 주식으로 소비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들어 빵 중심의 식문화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빵집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고 케이크로 파티를 하며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빵은 어느새 일상에서 친근한 존재가 됐다. 배고플 때 빵집 앞을 지나노라면 다양한 모양의 예쁜 빵과 막 구워낸 빵의 향기에 입 안에서 침이 절로 넘어간다. 밀가루와 발효를 통해 환상의 하모니를 빚는 대한민국 제과명장 권상범(68)씨.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50년간 빵을 만들어 와 제빵 업계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다. 단돈 2000원이라는 월급으로 제빵 인생을 시작해 지금은 연간 20억여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그가 서울 홍대 앞에서 30년 가까이 운영했던 ‘리치몬드제과점’은 여전히 ‘추억의 빵집’으로 남아 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요즘 번듯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을 터.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리치몬드제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입구 벽에는 그의 부인이 직접 그린 ‘제빵명장’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최근에는 어떤 일로 바쁜지 물었더니 “끊임없이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보다, 다른 나라보다 뒤떨어지면 결코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빵에 관해 배울 것이 있다면 어느 나라든 가서 견학하고 연구하고, 필요하면 우리의 기술도 전수해 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제빵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빵 분야에서는 경제 선진국 주요 7개국(G7)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외국에서 우리 기술을 배우러 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온 연수생들에게 한 수 가르쳤다며 웃었다. “우리나라 제빵 수준은 1990대 이후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그만큼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적 수준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제과와 빵을 선호합니다. 따라서 기술도 그 입맛에 맞게 더욱 발전하게 되지요.” 제빵 업계의 미래는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유사한 형태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프랜차이즈에서 생산된 빵이 아니라 직접 손맛으로 만든 수제 빵이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최근 들어 기존의 빵집이 프랜차이즈에 밀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우리 제빵인들이 노력하지 않아 어느 정도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앞으로 빵의 소비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할 때 연구 개발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도 제빵 분야를 ‘3D’ 업종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한국 대학생이 빵을 주식으로 하는 유럽을 제치고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제빵 기술의 선진화를 위해 20년 전부터 제빵기술학원 학생들에게 제빵 교육을 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어떻게 하면 명장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제빵 업계에 20년 이상 종사해야 하며 발명특허 관련 논문, 신제품 개발, 대회 입상 경력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돼 결정된다”면서 “누구나 명장에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각고의 노력과 정성, 꾸준한 연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제빵 인생은 올해로 50년째다.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강원 영월군으로 이사했다. 당시 부친은 텅스텐 광산으로 유명했던 영월 상동광업소 내 국립의료원 원무과에서 일했다. 1949년 어느 날 북한에서 내려온 군인들이 병원에 들이닥쳐 부상자 치료를 요구했다. 병원 직원들은 상황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사람들부터 살리고 보자며 부상자를 치료해 줬다. 며칠 뒤 누군가가 ‘병원에 빨갱이가 있다’고 당국에 신고하는 바람에 부친을 포함한 23명이 몰살되고 말았다. “25살의 젊은 어머니, 어머니 배 속에 있던 막내 여동생, 어린 첫째 여동생과 저를 남겨두고 아버지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해 가며 우리 식구들을 키웠지요. 저는 종가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며 봉화초등학교를 다녔고, 졸업한 뒤에는 집안일을 돕느라 상급학교 진학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산에 가서 땔감을 해 오고 상점에서 점원 일 등을 하다가 16살 때 외갓집이 있는 경북 의성으로 갔다. 당시 외가는 다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방학 때마다 외가의 다과점에서 일을 거들다 보니 빵 만들기에 이미 재미를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그 길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1년쯤 외갓집에서 일을 하다 17살 때 좀 더 큰 곳에서 일을 배우고 싶어 대구 광월당에서 1년 정도 기술을 익혔다. 그런 다음 단돈 2000원을 들고 서울로 왔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종로 5가에 있는 성림제과에 먹여 주고 재워 주는 조건으로 우선 취직을 했다. 조그마한 제과점이라 공장장과 둘이서 일을 했고 잠은 주로 작업대에서 잤다. 하지만 온갖 고생으로 신경성 위장병을 앓아 몸무게가 20㎏가량 줄어들자 무작정 제과점을 나왔고 추운 겨울날 노숙자와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그래도 열심히 직장을 찾아다녔다. 보름쯤 뒤 당시 조흥은행 본점 앞에 있던 풍년제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같아요. 돈 한푼 없었고 갈 데도 없었고…. 직장을 찾아 종로에서 영등포까지 걸어다녔습니다. 배는 고픈데 날씨는 춥지요, 아마 그때 기차 탈 돈만 있었으면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내려갔을 겁니다. 그때 뼈저리게 다짐한 것이 ‘옮길 직장을 잡아 놓지 않고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풍년제과에서 받은 첫 월급은 2000원이었다. 그러나 일이 끝나도 쉬지 않고 혼자 남아 열심히 청소를 하는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본 지배인이 한달 만에 월급을 3000원으로 올려 줬다. 처음에는 빵 반죽을 주로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음 단계의 기술을 전수해 줄 법도 한데 그럴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자 눈치껏 어깨너머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는 ‘나중에 돈을 벌면 꼭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무렵 반죽 온도 계산법을 스스로 익혔다. 아울러 당시 대표적인 제과 기술자로 평가받았던 김충복 선생에게 케이크 데코레이션 기술을 배웠다. 이와 함께 혼자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시즌 때 사진사에게 돈을 주고 제과점을 돌며 케이크 사진을 찍어 오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나름대로의 실력을 쌓아 나갔다. 1972년 10월 김충복 선생의 소개로 풍년제과 수련 생활 7년 만에 삼선동에 있는 나폴레옹제과점 공장장으로 옮기게 된다. 당시 나폴레옹제과점은 생긴 지 2년밖에 안 된 상태였지만 직원 5명과 함께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일한 덕택에 비교적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1973년 제과학교를 수료하고 전국 빵·양과자 품평대회에 나가 6개 부문에서 1등을 휩쓸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1975년 나폴레옹제과점 사장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당시 도쿄제과학교에는 300여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외국인은 제가 유일했어요. 낮에는 양과자, 밤에는 화과자(和菓子) 만드는 걸 배웠습니다. 현지 제과점에서 실습하는 동안 유럽 제품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인 1979년 9월 그는 아현동 마포경찰서 옆에 ‘나폴레옹제과점’이라는 상호로 가게를 내 독립하게 된다. 이때 내세운 철학이 ‘오늘 만든 빵은 오늘 팔아야 한다’였다. 팔리지 않고 남은 빵은 마포경찰서 전경들에게 간식용으로 돌렸다. 그만큼 자신감과 정성으로 ‘권상범식 빵’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1992년 상호를 ‘리치몬드제과’로 바꿔 성산동에 본점을 세웠고 이듬해 제과기술학원을 설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권상범식 빵’은 우리 밀과 유기농 계란 등을 사용해 건강식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제빵도 유행을 타기 때문에 고객의 취향을 앞서 파악하고 연구하는 노력은 필수다. 지금도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빵 굽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빵의 앞날을 고민한다. 슬하에 2남 1녀를 뒀으며 두 아들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제빵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권상범 대한민국 제과명장은… 1945년 경북 봉화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8세 때부터 빵 굽는 일을 했다. 서울 삼선동 나폴레옹제과점 공장장(1972~1979)을 지낸 뒤 1979년 리치몬드제과 마포점 창업을 시작으로 자신만의 ‘빵 인생’ 길을 걸었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지만 일본 도쿄제과학교 졸업(1975년) 스위스 리치몬드 국립제과학교 수료(1993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외식산업 최고경영과정 수료(1997년) 등의 이력을 쌓았다. 주요 수상으로는 노동부 장관 표창장(2001년), 대한민국 제과명장(2002년), 대통령 표창장(2002년), 서울시장 표창장(2005년), 재정경제부 장관 표창장(2006년), 국민훈장 목련장(2006년) 등이다. 이 밖에 프랑스 리옹 세계 페이스트리컵 대회 한국대표 심사위원 3회(1997, 1999, 2001년), 사단법인 대한제과협회 중앙회 회장(2000년), 제3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제과·제빵 한국대표선수 정지도위원 및 심사위원(2001년), 대한민국 최초 프랑스 요리·제과협회 해외자문위원(2003년), 제40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제과제빵 심사위원(2005년) 등으로 활동했다.
  • 국정원 “RO녹취록 일부 오류 인정… 유출은 없었다”

    내란음모 사건 피의자들의 발언 내용 등을 담은 녹취록 일부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국가정보원 직원의 증언이 나왔다. 15일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 김정운) 심리로 열린 사건 3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국정원 직원 문모씨는 변호인 심문에서 “변호인단이 이의제기한 부분을 다시 들어본 결과 RO(혁명조직) 모임 발언 중 ‘선전수행’을 ‘성전수행’으로, ‘절두산 성지’를 ‘결전 성지’로,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를 ‘전쟁을 준비하자’로, ‘전쟁반대투쟁을 호소하고’를 ‘전쟁에 관한 주제를 호소하고’ 등으로 잘못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 녹취록 일부를 재작성했다”고 말했다. 문씨는 RO 내 제보자가 참석자 발언을 녹음한 파일을 녹취록으로 만드는 작업을 가장 많이 한 국정원 수사관이다. 문씨는 “애초 녹취록 7건을 작성했으나 오류 확인에 따라 4건을 새로 작성해 다시 제출했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녹취 경험이 전무한 수사관으로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조작한 정황이 있다. 실제 오류가 발생한 만큼 녹취록의 객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씨는 지난 5월 경기 광주 곤지암청소년수련원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마리스타교육수사회에서 RO 회합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강연과 분임토론 녹취록을 단 2∼3일 만에 문서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씨는 곤지암 대화록 112곳을 고쳐 법원에 제출했다. 변호인단 질문에 문씨는 “녹취록을 이번에 처음 작성해 봤다”고 답했다. 이어 “곤지암 녹취록은 당일 오후나 다음 날 오전 상사로부터 파일을 받아 12일 완성했다. 마리스타 녹취록은 13일 새벽 4시쯤 상사의 지시를 받아 16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문씨는 “녹취록 음질이 나쁘고 시간도 촉박해 발생한 오류일 뿐이며 절두산 성지의 의미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변호인단은 또 한 언론에 유출된 녹취록이 문씨가 작성한 녹취록과 일치한다며 유출 여부를 추궁했다. 재판장도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전달받지 않고는 게재할 수 없다. 국정원 누군가 준 게 아니냐”고 물었다. 문씨는 “녹취록을 유출한 적도, 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며 “국정원 내부에서도 나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 내사나 감찰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팔각의 철창서 유혈 맞짱…종합격투기에 열광하는 심리는

    [주말 인사이드] 팔각의 철창서 유혈 맞짱…종합격투기에 열광하는 심리는

    괴물 같은 사내들이 팔각의 철창 안에서 싸운다. 주먹이 날고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쏟아진다. 몇 차례 격렬한 충돌 끝에 한 사내가 넘어진다. 그 위로 다른 사내가 올라탄다. 주먹이 쓰러진 사내의 온 몸을 강타한다. 쓰러진 사내가 정신을 잃자 심판이 급히 경기를 멈춘다. 승자는 철창 위에 뛰어올라 포효한다. 경기장을 울리는 관중들의 환호, 정신없이 번쩍이는 수백 대의 카메라 플래시, 고액의 대전료까지 영광은 모두 승자의 몫이다. 패자는 홀로 누워 있다. 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 종합격투기는 마치 정글같다. 종합격투기란 각 종목에 걸쳐 다양한 무술을 수련한 고수들이 ‘최소한의’ 규칙 아래 실력을 겨루는 경기다. 종합격투기의 역사는 제법 길다. 고대 그리스에는 복싱과 레슬링이 결합된 ‘판크라티온’이 있었다. 판크라티온은 물어뜯기, 손가락으로 눈 찌르기를 제외한 모든 공격을 허용했다. 한 사람이 항복할 때까지 경기는 계속됐다. 현대 종합격투기는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규칙을 만들었다. 박치기, 성기·후두부 가격 등을 엄격히 금지한다. 5분 3라운드 1분 휴식, 혹은 5분 5라운드 1분 휴식 등 라운드 제도도 도입했다. 정해진 라운드 안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판정으로 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격투기는 여전히 누군가에겐 너무 과격하고 때로는 잔인한 스포츠다. 그런데 이런 거친 종합격투기가 요즘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8월 4일 미국 최대이자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인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에서 활약 중인 ‘코리안 좀비’ 정찬성(26)이 ‘폭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주제 알도(27·브라질)와 페더급 타이틀 매치를 벌였다. UFC 한국 방영권을 갖고 있는 슈퍼액션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HSBC아레나에서 끝난 이 경기를 중계했다. 그런데 당시 시청률은 평균 2.1%, 최고 4.9%(닐슨미디어리서치, 케이블 가입가구 기준)에 달했다. 102만명 이상이 이날 UFC 경기를 1분 이상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경기에서 정찬성은 탈골된 어깨를 끼워 맞추다가 알도에게 일격을 허용, 분패했다. 국내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 로드FC도 인기몰이 중이다. 2010년 10월 23일 서울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열린 첫 경기 관객은 80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10월 12일 경북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13회 경기 관객은 5000명을 넘어섰다. 3년 만에 관객 수가 6배 넘게 는 것이다. 로드FC 관계자는 “내년 10회 이상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1만명 이상 관람할 수 있는 경기도 열 것”이라며 국내 종합격투기 시장의 성장을 낙관했다. 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종합격투기에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수컷의 본능이죠.” 한국인 최초 UFC 9승의 기록을 세운 김동현(32)은 종합격투기의 매력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김동현은 “많은 무도가 있지만 종합격투기야말로 진짜예요. 거의 실전에 가깝습니다”라며 “종합격투기는 강함에 대한 남자들의 동경을 충족시켜 줘요. 남자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슈퍼액션에서 UFC 경기를 중계하는 김대환(35) 해설위원은 ‘순수함’이 대중의 마음을 끈다고 보고 있다. 김 해설위원은 “종합격투기 링 안에서는 자기 자신 외에는 기댈 곳이 없어요. 선수 자신의 실력 외에 잔기술은 통하지 않습니다. 순수하죠”라며 종합격투기의 매력을 풀어놨다. 김 해설위원은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건 도장도 운영하고 있다. ‘폭력의 심리학’의 저자인 김상균(52·백석대학교 법정경찰학부) 교수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종합격투기 인기의 비결로 지목했다. 김 교수는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복싱 정도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충분했어요. 요즘엔 달라요.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학업과 취업에 치입니다. 스트레스 지수가 훨씬 높죠. 더 격렬하고 폭력적인 것, 이를테면 종합격투기 같은 걸 봐야 스트레스가 풀려요”라고 분석했다. 10년째 종합격투기 마니아를 자칭하는 홍운기(32)씨는 “제일 센 무술이 뭘까 하는 호기심에서 종합격투기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태권도 고수랑 쿵푸 고수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궁금증이요. 왜 어릴 때는 친구들끼리 많이 싸우잖아요. ‘이소룡이 세다’ ‘아니다, 성룡이 더 세다’ 하면서요”라면서 “그러고 보면 남자들은 참 철이 안 드는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종합격투기를 좋아하는 건 대부분 남성이지만 여성 팬도 적지 않다. 직장인 김모(33·여)씨는 “너무 지쳐서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선수들이 한계를 깨고 그 너머의 무언가를 보여줄 때 정말 멋져요. 그 맛에 종합격투기를 봐요. 격투기 선수들 섹시해요”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렇다면 부작용은 없을까. 김 교수는 “종합격투기를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자기 정화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해요. 그러나 폭력적인 경기를 자주 보게 되면 폭력에 대해 둔감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더 폭력적인 것을 찾게 돼요.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성이 더 강해질 수 있는 거예요”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반론도 있다. 김동현은 “종합격투기가 폭력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그런데 폭력적인 게 비단 종합격투기뿐입니까. 영화는, 소설은 어떻습니까. 종합격투기만 비난할 게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항변했다. 김 해설위원 역시 “종합격투기는 지독한 수련을 거친 프로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엄연한 스포츠입니다. 축구나 농구와 다를 바 없어요. 색안경을 벗고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당부했다. 다시 처음의 팔각 철창 안으로 들어가 보자. 승자의 환희와 패자의 절망이 철창의 전부는 아니다. 승리를 만끽한 승자가 철창에서 내려와 겨우 정신을 차린 패자를 향해 걸어간다. 승자는 패자의 귀에 위로의 말을 건넨다.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한다. 둘은 포옹한다. 서로 격려한다. 어쩌면 그것은 온 힘을 다해 싸운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종합격투기를 즐기든, 혹은 외면하든 결국 선택은 개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미처 알기도 전에 편견부터 가질 필요는 없다. 종합격투기의 세계가 마치 정글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의 삶은 진짜 정글이다. 철창 안에서 죽을 것처럼 싸운다고 해도 실제로 죽지는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팔각의 철창보다 훨씬 살벌하다. 매일의 삶에 비하면 종합격투기는 그저 하나의 오락일 뿐이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이석기·RO’ 녹취록 작성자는 ‘초짜’ 국정원 직원

    ‘이석기·RO’ 녹취록 작성자는 ‘초짜’ 국정원 직원

    통합진보당 내부 ‘RO’ 조직의 내란음모 사건의 가장 중요한 자료인 5월 모임 녹취록을 작성한 국가정보원 직원은 녹취록을 작성해 본 경험이 없는 ‘초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직원은 지난 5월 10일 경기도 광주 곤지암수련원에서 열린 RO회합과 5월 1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마리스타교육수사회 강당에 모인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석기 진보당 의원의 강연과 분임토론 녹취록을 단 2∼3일 만에 문서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직원이 작성한 녹취록은 일부 단어가 녹취파일과 달라 국정원의 ‘왜곡’ 의혹이 일고 있는 문제의 문서다. 이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3차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녹취록 초안을 작성한 국정원 수사관 문모씨에게 “녹취록을 작성한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문씨는 “이번 사건으로 녹취록을 처음 작성해봤다”고 답했다. 문씨는 “5월 10일 곤지암 모임 녹취록은 당일 오후나 다음날 오전께 상사 문모씨로부터 녹취파일을 받아 12일 완성했다”며 “5월 12일 마리스타 강연 녹취록은 13일 새벽 4시께 문씨로부터 지시받아 16일 최종 완성했다”고 말했다. 사건의 핵심 증거물인 ‘녹취록’이 녹취록을 처음 작성한 직원 손에서 단 사흘 안에 만들어졌다는 증언이 나오자 변호인단은 녹취록 단어 ‘오류’에 대해 추궁했다. 변호인단은 “녹취록에서는 ‘선전 수행’이 ‘성전(聖戰) 수행’으로 ‘절두산 성지(천주교 병인박해 순교터)’가 ‘결전(決戰) 성지’로 ‘혁명적 진출’이 ‘혁명 진출’로 ‘구체적 준비’가 ‘전쟁 준비’로 바뀌어져 있다”면서 “일부러 내용을 왜곡해 (내란음모한 것처럼)꾸민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문씨는 “녹취록 작성은 내가 가장 많이 했다”면서 “녹취파일 음질이 안 좋았고 시간도 촉박해 오류가 발생한 것이지 다른 이상(왜곡)은 없다.절두산 성지는 의미를 몰랐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직원들과 함께 듣고 의견이 다른 부분은 반복적으로 들었다. 30차례까지 반복해 들은 경우도 있었다”며 “녹취록 작성 후 결재를 받지는 않지만 완성되면 동료 수사관들과 공유해 검토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무원 전문성 강화교육’ 20기 공보아카데미 개막

    ‘공무원 전문성 강화교육’ 20기 공보아카데미 개막

    13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에서 개막한 제20기 공보아카데미에 참가한 강원도와 충남북 공보담당 공무원 33명이 이철휘(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서울신문 사장과 이목희(두 번째) 이사 등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공보아카데미는 지방자치단체 공보담당 공무원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SH공사 협찬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2박3일간 본사와 경기 양평 한국방송광고공사 수련원에서 공보 업무에 관한 이론과 실무, 실습교육을 받는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서태후는 몰라도 환관들은 알았다

    서태후는 몰라도 환관들은 알았다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신슈밍 외 지음/주수련 옮김/글항아리/476쪽/1만 9000원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기 마련. 자식마저 희생시키고 권좌를 지킨, 그래서 ‘권력욕의 화신’으로 알려진 청말 서태후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다. 서태후와 융유황후, 단강태비를 잇따라 모셨던 태감(환관의 우두머리급 관리)들의 입을 통해 들어 본 서태후는 지혜롭고 선 굵은 여성이다. 외아들인 동치제와 조카인 광서제가 아침 문안을 여쭐 때도,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했다. 또 키가 작아 20㎝ 높이의 신발을 즐겨 신었다. 하지만 후덕한 동태후와 달리 불같은 성정을 다스리지 못해 아랫사람을 쉼없이 뭇매질했다. 어느 나이 든 태감에게는 대소변을 강제로 먹여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존망의 기로에 선 청나라의 운명은 그를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었다.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은 청 황실이 빚어낸 숨겨진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16명의 구술자 중 한 명인 신슈밍(信修明)은 10년간 유학을 공부하다 노모와 나이 어린 동생들, 처자를 부양하기 위해 23세 때 스스로 거세했다. 태감으로선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다. 점을 잘쳐 ‘신선’으로 불렸던 그는 “서태후에 대해 특별히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없다”면서 20여년간 보고 들은 이야기를 풀어 간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나 서태후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혈기왕성하게 자기계발에 힘썼다. 날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뿐만 아니라 상하이에 머물던 외국인을 불러들여 어학을 공부했다. 저자는 “태후의 불행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람을 가려서 들이지 않아 거짓되고 터무니없는 소문들이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전하는 동치제와 황후의 죽음은 서태후 탓이 아니다. “체구가 건장한 동치제는 총명했으나 밤에 홀로 궁문을 넘어 기방에 들락날락하는 버릇이 있었다. 서태후까지 나서 권면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후 동치제가 ‘화류병’에 걸렸는데 어의가 이를 감히 말하지 못하고 천연두라고 고해 일찍 사망했다.” 동치제의 아이를 밴 황후가 스스로 곡기를 끊어 자살한 것에 대해선 “세상의 어느 어미가 제 아들의 후사를 끊는단 말인가”라며 ‘서태후 배후설’을 일축했다. 태감들이 말하는 청말 궁궐의 이면은 또 있다. 지나친 관리·감독 탓에 굶주린 어린 황제가 태감들의 방에 숨어들어 찐빵을 훔쳐 먹는다든지, 신해혁명으로 선통제가 폐위당한 뒤 융유황후가 용포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리는 모습이 그렇다.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던 청말 1000여명의 환관들은 사실 천한 노비와 다름없었다. 황실의 살림을 떠맡았지만 나이가 들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는 대부분 궁 밖으로 쫓겨나 풍찬노숙 끝에 이슬을 맞으며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16명의 태감들이 구술한 회고록은 자금성 출판사가 책으로 엮으면서 귀중한 사료로 변신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비싼 미국 명문대, 돈값은 하는 거니

    비싼 미국 명문대, 돈값은 하는 거니

    비싼 대학/대학앤드류 해커·클로디아 드라이퍼스 지음/김은하·박수련 옮김/지식의 날개/340쪽/1만 7000원 25만 달러(약 2억 6500만원). 이름이 좀 알려진 미국의 사립대학에 4년간 다니기 위해 드는 평균 비용이다. 2010~2011년 기준으로 두 학기의 등록금에 각종 회비를 더하면 4만 900달러이고, 여기에 기숙사비와 책값으로 9500달러가 더 든다. 이는 대학생 자녀를 둔 일반 가정의 연간 세후 수입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옷값이나 간식비, 연휴 때 집으로 가기 위한 비행기표 등 기타 비용도 연간 1만여 달러가 든다. 그런데도 미국 대학의 등록금은 계속 오른다. 왜 그럴까? 미국 퀸스대 정치학과 명예교수인 앤드류 해커와 뉴욕 타임스 기자이며 컬럼비아대 국제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인 클로디아 드라이퍼스가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거의 모든 미국의 대학에서 가장 큰 지출은 교수의 인건비, 특히 32만명에 이르는 종신 교수(평생 강단에 설 수 있는 교수)들의 월급이다. 40대 초반의 정교수가 연간 고작 300시간 강의를 하면서 평균 11만 달러(약 1억 1700만원)의 연봉을 받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같은 연령대의 월급쟁이 변호사의 평균연봉은 9만 1000달러, 화학엔지니어는 7만 8000달러, 금융 애널리스트는 7만 4000달러이다. 행정부서의 팽창도 만만치 않다. 부서를 신설해 직원을 뽑고나면 조직내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1976년 이래로 학생수 대비 행정직원 비율이 2배 늘면서 인건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식축구나 야구 등 대학스포츠팀 운영에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미국 대학들을 통틀어 미식축구팀 하나만 따져봐도 연간 36억 달러(약 3조 8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등록금이 워낙 비싸니 미국 대학생들의 부채는 엄청나다. 2010년 말 대학생 대출은 9000억 달러(약 955조원)에 근접했다. 미국 가계 전체의 신용카드 채무를 초월한 수치다. 대학생의 3분의 2는 빚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대출을 받은 학생의 경우 이자, 추심료, 상환지연에 따른 위약금, 원금 등을 합쳐 갚아야 할 돈을 계산해보면 보통 10만 달러(약 1억 600만원)가 넘는다. 두 저자는 대학 교육에 대한 개혁은 대학의 최우선 순위를 연구가 아니라 ‘교육’에 두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연구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면 교수들이 강의실 밖으로 떠돌 뿐 아니라 학생을 상대로 한 강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역사학과의 경우 2010~2011학년도 교수 42명 중 20명(48%)이 연구를 하겠다며 휴가를 내자 시간 강사와 초빙 강사가 빈 수업시간을 메웠다. 다른 엘리트 대학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저자들은 신규 행정직과 대학 운동부는 강의와 학습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주장하는 한편 학문의 자유를 오히려 파괴하고 있는 종신교수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 교육이나 미국 유학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간디의 물레, 경매서 1억 8700만원에 낙찰

    간디의 물레, 경매서 1억 8700만원에 낙찰

    인도 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가 옥중에서 사용한 물레가 경매에서 11만 유로(약 1억 8700만원)에 팔렸다. 5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영국 소재 경매업체 멀록스가 진행한 경매에서 낙찰된 이 물레는 간디가 1930년대 초 인도 푸네의 예르와다 감옥에서 투옥 중일 때 자신의 옷을 직접 만들기 위해 실을 자을 때 사용하던 것이다. 물레질을 하면서 명상 수련을 했던 간디는 1935년 미국 자유감리교 선교단의 플로이드 A 푸퍼 목사에게 이 물레를 선물로 준 것으로 알려졌다. 멀록스는 물레가 영국 슈롭셔 지역에서 전화로 응찰한 익명의 입찰자에게 돌아갔다고 밝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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