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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원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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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멕시코 도시 메리다·욱스말(세계 문화유산 순례:20)

    ◎자연과 조화된 장엄한 피라미드군…/연못·우물 중간크기 저수시설 「세노테」/찬란한 문명 원동력/언덕·산세 최대이용 피라미드·궁성 건축/마야인 지혜에 감탄/마법사 피라미드 높다란 외벽에 기하학적 무늬 가득 멕시코 남동부 유카탄 반도는 마야문명의 중심지다.그리고 스페인이 식민지문명을 처음 심은 지역이기도 했거니와,초기 한국이민사가 기록한 「에네켕 농장」도 이 반도에 있다.그래서 카리브해로 둘러싸인 유카탄은 신비감과 호기심을 안겨주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40분쯤 걸렸을까.유카탄 반도의 주도인 메리다(Merida)에 닿았다.인구 70만의 중소도시답게 한적하고 여유로웠다.그런데 주민들을 만나고 나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하나같이 머리가 크고 목이 짧아 키가 작달막할수 밖에 없는 주민들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인상은 아주 선량했다.이들이 바로 고대 마야족의 혈통을 간직한 마야유카탄족이었다.마야문명의 순수성과 원시성이 절로 엿보였다. 유카탄에 와서 느낀 궁금증의 하나가 강이 드물다는 사실이었다.마야인들은 과연 인류문명의 생성근원인 물을 어떻게 조달했을까.그러나 의문은 이내 풀렸다.연못과 우물의 중간크기쯤 되는 세노테(Cenote)라는 저수시설이 그 해답이었다.마야인들은 현명하게도 세노테를 이용한 관개기술을 일찍 터득했다.세노테는 바로 풍요로운 마야문명의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유카탄 지역 마야유적지 곳곳에서 세노테가 발견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했다. 메리다 시내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70㎞쯤 차를 달린지 그리 오래지 않아 욱스말(Uxmal)을 알리는 푯말이 나타났다.욱스말은 인근의 마야판·치첸이차와 함께 후기 고전기 마야문명의 중심지다.기원(AD)700년∼1100년 사이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또 간혹 기원전(BC)3∼4세기의 유적도 발굴됐다.욱스말 유적지는 크게 「마법사의 피라미드」와 수도원,공놀이 유기장인 후에고 데 펠로타(Huego de Pelota),엄청나게 크다는 뜻을 가진 「그란 피라미드」,궁성터 등으로 나누었다.욱스말 유적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마법사의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왔다.마법사들끼리 놀음을 해 게임에 진 마법사가 하루만에 지었다는 그럴듯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피라미드 뒷면의 경사가 급한 계단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오른쪽으로 당시 제사장들이 살던 수도원이 보이고,왼쪽으로는 후에고 데 펠로타가 한눈에 들어왔다.그리고 사라진 문명의 위대성을 그 잔영으로나마 보여주는 여러 궁성터와 피라미드들이 죽 늘어섰다. 「마법사의 피라미드」외벽면에는 기하학적 무늬가 가득했다.이와 함께 물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착(Chac)이 휘어진채 삐죽 튀어나왔다.그 벽면을 따라가다 아치형 문을 거쳐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섰다.이 아치형 문은 흔히 알려진 둥근 모양이 아니라 지붕이 뾰족하고 각이 진 것이 특이했다.아치형 문 안쪽에는 누군가 살았을 법한 한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있다.그러나 좁은데다 창문과 화장실이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사람이 산 방으로 보기는 어려웠다.그렇다면 마법사나 신이 거처한 공간으로 덮어두어야 더 신비로울 것이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테오티와칸에서와 마찬가지로 머리장식 크리스테리아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여기서 5m쯤 밑으로 내려가면 마치 입을 크게 벌린듯한 모양의 문이 또 나타났다.신의 입을 닮은 문이라고 했다.그러니까 인간들은 이 문을 거치면서 신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체험했던 것이다. 「마법사의 피라미드」를 내려와 너른 광장에 닿았다.광장 주위에 사제들의 거처 수도원이 자리했다.현재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수도원 옛 건물마다에는 테오티와칸에서도 보았던 풍요를 상징하는 상상속의 뱀 릴리프가 벽면을 빼곡히 메웠다. 후에고 데 펠로타로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후에고 데 펠로타는 마야인들의 생활상을 살필수 있는 또다른 유적이었다.높이 4m 길이 34m의 높다란 벽이 폭 10m쯤 되는 뜰 양쪽으로 늘어섰다.벽면에는 트럭바퀴처럼 생긴 커다란 돌고리가 달려 있다.당시 마야인들은 어깨와 엉덩이로 고무공을 튀겨 이 고리를 통과시키는 놀이를 했다는 것이다.게임의 승자는 신의 은총을 받았다.그러나 손으로 공을 던져도 좀처럼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이 역시 마야문명의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후에고 데 펠로타는 메소 아메리카 문명권에서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모두를 지녔다. 왕족들이 살았다는 궁성터에는 지금 3개의 건축물만이 우뚝했다.그중 2개는 10여m 높이의 돌담위에 서있고,하나는 평지에 버티고 있다.평지의 건물은 아마도 부속건물이었을 것이다.궁성터를 보면서 한가지 궁금증을 지울수 없었다.명칭은 궁성이지만 반드시 왕이 존재했었느냐는 것이다.지금까지 발견된 마야문명 유적 어디에서도 당시에 왕이나 왕족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그렇다면 궁성터에는 누가 살았을까.의문 투성이의 마야유적지는 빠져들수록 불가사의할 뿐이었다. 욱스말 유적은 자연조건이 최대한 활용됐다.그것은 마야인의 지혜이기도 했다.언덕이나 산세(산세)를 그대로 이용,피라미드와 궁성을 지었다.마야인들은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문명을 발달시켰던 것이다.욱스말은 지금으로 말하면 대도시다.근처 10∼100㎞ 이내에 카바(Kabah)·사일(Sayil)·슬라팍(Xlapak)·랍나(Labna)등 위성도시까지 거느리지 않았던가.이들 도시들은 신성한 길 혹은 하얀 길을 의미하는 삭베라는 교통로로연결됐다. 욱스말은 일종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다.그러나 세노테로도 감당하기 힘든 물 부족 현상과 치첸이차라는 새로운 도시의 발달로 쇠퇴해 버렸을 것이다.마야의 구도시 욱스말,아직도 오늘을 살고있는 작달막한 마야유카탄족들에게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인지도 모른다. ▷여행가이드◁ 메리다 시내에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다.웬만한 호텔들이 모두 관광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며,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욱스말 유적지까지는 대략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유적지에 들어가려면 입장료(16페소)와 문화진흥기금(10페소)를 합해 26페소(미화 4달러)를 내야하며,유적지 안에서 다시 14페소(미화 2달러)를 지불해야 한다.카바·사일 등은 대부분 10∼20페소.단 일요일은 무료다.식사는 메리다 시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갖가지 멕시코 요리는 물론 메리다 특유의 음식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수 있다.
  • 건축가 김원(이세기의 인물탐구:113)

    ◎자연·인간 하나로… 청수한 공간 조성/하나의 작품 맡겨지면 환경을 먼저 생각/KOEX·독립기념관 등 대형 프로젝트 단골 『내가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어도 밥먹으러 가자거나 퇴근시간에 술한잔 하자는 사람도 없었다』 건축가 김원이 대학졸업후 김수근건축연구소에 다니던 안국동시절의 초상화다.아침에는 일찍 나와서 사무실 청소에다 난로에 불을 지피고 선배들이 출근하기 전에 도면을 그려나갈 80자루 이상의 연필들을 깎아서 갈아놔야 했다.참으로 참담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수많은 책들을 읽을수 있었다.「건축철학」에서 「공간심리학」「네덜란드의 종합국토계획」에 이르는 방대한 독서를 할수 있었고 일본책을 읽기위해 혼자서 일어공부를 하기도 했다.이것이 모태가 되어 후에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용어를 구축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일이 주어지면 선배들은 「서울대학에선 이렇게 가르치느냐?」고 힐난했다.1년이 지나서야 구석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있는 그를 발견한 김수근씨가 67몬트리올 박람회 한국관 프로젝트를 맡겼다.이 기간동안 그는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 나갔다.여수수족관 정부종합청사 조선호텔을 설계하거나 여의도종합개발 과학기술연구소설계에 참여하고 70오사카 엑스포 한국관 설계를 담당했다.인내로써 신뢰를 쌓으면서 성공적인 안국동시대를 거쳤다. 대학생활은 허무와 방황의 나날이었다.경기고에 다닐때는 조각가를 꿈꾸면서 천재조각가 권진규의 지도를 받기도 했으나 부친 타계후 혼자서 2남3녀를 키운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대공대 건축공학과에 진학했으나 대학은 「서울대생은 당연히 한국 건축계의 지도자가 돼야한다」는 자부심만을 키워주었고 전문교육이 아닌 「자율교육」을 유도하고 있었다.이 방법이 마음에 들지않아 강의실밖에서 빙빙 돌다가 걸핏하면 산에 오르거나 「술독」에 빠져 비분에 찬 논쟁만을 일삼았다. ○고교시절 조각가 꿈꿔 건축가 김원은 결국 지난 30년동안의 건축실무와 경험에서 「건축은 유행가처럼 히트하는 것이 아니며 건축가는 영웅일수 없다」는 진리를 터득했다.그리고 『사람이 어디에 사는가하는 것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어디에 살고있느냐 하는 것은 바로 나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의 반영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맡겨지면 「환경을 생각하는 건축」을 위한 다방면의 연구에 들어간다. 영화진흥공사의 종합촬영장을 설계할 때는 모스크바 모스필름스튜디오 부다페스트의 마자르필름 이탈리아의 치네치타(시네시티) 등 세계 30여군데의 촬영장을 꼼꼼히 돌았다.국악당을 맡았을때도 황병기 박동진등 국악 관련자와 독주자 합주자 지휘자 무용가들을 고루 만나 인터뷰하는데만 6개월이 걸렸다.가야금연주에서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소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극장조건이 가장 이상적인가.길놀이와 뒷풀이를 위해 객석과 무대간의 유리감을 줄이고 안방같은 극장,혹은 마당같은 무대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 그가 자신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마음껏 구사한 작품은 단연 보석전문점인 명보랑의 빙갤러리를 들수 있다.남산에서 하얏트호텔입구에서있는 이 첨단건물은 도시의 숲속에 파묻힌 한아름의 다이아몬드처럼 낮에는 종일 태양빛에 빛나고 밤에는 별빛아래 영롱하다.국내에선 낯선공법인 멜로 시스템을 적용한 노출된 내장마감과 하얀 알루미늄판으로 외곽을 덮으면서 지붕도 벽도 창문도 구별없이 건물전체가 수정처럼 각진채 「먼 우주를 향해 떠가는 비행체」 또는 「현대추상회화」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그외엔 주한 러시아연방대사관이 큐빅(정육면체)형의 독특한 외곽시도로 시선을 모았고 화순 남평에 짓고있는 광주가톨릭신학대학이 내년 7월로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는 본래 서울 북아현동에서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이당 김은호등 화단의 대가들이 드나들던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외무부 부산출장소에 파견된 부친을 따라 국민학교를 부산에서 다녔고 공부는 물론 음악 미술 글짓기에서 재능을 보여 어릴때는 「신동」소리를 듣기도 했다.지금도 건축뿐 아니라 뛰어난 건축이론과 건축수필로 오늘의 건축에 대한 문제점을 유려한 필치로 전개하여 올 「문학의 해」기념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을 받았다. 건축가들의 대부분이 「대장간에 칼이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주택을 갖지못한 것과는 달리 그는 67년 이미 정릉꼭대기에다 자신의 집을 직접 지은 일이 있고 3년전에는 종로구 동숭동에 자신의 건축설계사무소인 「광장」빌딩을 신축,지금은 10년전에 다시 지은 옥인동 자택에 살고있다.부인 박정애씨와의 사이엔 남매,두주불사의 애연가다. 그는 시인같고 대학의 청년강사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지만 풍수지리의 대가로도 이름이 높다.일본의 유명한 야기충언은 그의 저서 「한국의 풍수사들」에다 김원을 특별하게 따로 다루고 있고 독립기념관과 국립예술종합학교를 이문동 중정자리에 추천한 것도 바로 김원 자신이다. 그의 사고력은 「어느때는 넓은 물과 같고 어느때는 깊은 산속같다」는 말을 듣는다.건축가 공일곤에 의하면 『하나에 파고들면 끝장을 내고야마는 건축계의 몇안되는 완벽주의자의 한사람』이다.그러면서도 하나의 건축을 이룰 때마다 「불사불루」,지나치게 사치하지 않고 그러면서 누추하지 않은 누구나 「애정」을 가질수 있는 부드럽고 청수한 공간을 조성한다. ○풍수지리연구회장 역임 김원은 수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을 딛고 이제 건축계의 기린아로 우뚝 서있다.76년이래 독립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시대를 앞장서는 수많은 작품을 이룩하였고 80년대이후 대규모의 정부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그의 업적은 신문지 한장이 모자랄만큼 「한 일」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건축계의 엘리트로 상징되는 그의 위상은 지금 가장 왕성하고 의욕적으로 자신에게 축적된 모든 것이 용해되어 창작품으로 흘러나오는 시기다.그의 꿈은 자연과 인간이 완전히 일체감을 이루는 「자연속의 건축」을 이루는 일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항상 도전하고 연구하고 고뇌하는 엘리트의 모습을 변치않고 있다. □연보 ▲1943년 서울 출생 ▲65년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 졸업 ▲65∼70년 김수근 건축연구 소근무 ▲73∼78년 이대 및 동대학원 출강 ▲76년 건축연구소 「광장」 개소 ▲79∼89년 한국풍수지리연구회 회장 ▲82년 제1회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해마다 출품),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종합기획위원 ▲84년 예술의 전당 건축설계 자문위원 ▲85년 「세계현대건축가 101인」(일본 가지마 출판사 선정) ▲87∼95년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및 도시계획분과위원장 〈현재〉 한국건축가협회·한국실내디자인학회·한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 명예이사,건축환경연구소「광장」 및 도서출판「광장」대표,대한건축학회 정회원,국제박물관협의회(ICOM)정회원 〈작품〉 67 조선호텔계획,엑스포 70 (일본 오사카)한국관,한국종합전시관(KOEX),박경리기념관,독립기념관,국립국악당,명보낭(빙갤러리),경주 신라민속촌,영화진흥공사 종합촬영소,통일연수원,외무부 외교센터,서울원서동 불교박물관,주한러시아연방국대사관,분당시범단지공동주택외 성당 수도원 신학대 등 200여점 〈저서〉 건축평론집 「우리시대의 거울」,수상집 「한국현대건축의 이해」 「빛과 그리고 그림자」외 논문다수 〈수상〉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79·80·81·82·83·85·86··91·95년)한국인테리어 디자이너협회작품상(84년) 엄덕문건축상(91년) 「문학의 해」기념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96년)
  • 정통연극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내일∼새해 2월2일… 대학로 「동숭홀」서 도스토예프스키 최후의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연극무대에서 관객과 만난다. 14일부터 내년 2월2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선보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러시아 특유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페테르부르크대학 교수에게 학술자문을 받고 러시아 연극관계자에게 무대디자인까지 의뢰했다. 연극을 제작한 극단 신화측은 『최근의 연극계 어려움을 정통극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연극은 카라마조프가의 유산상속에 따른 분쟁으로 아버지와 세아들이 수도원에 모이면서 시작한다.장남 드미트리와 아버지 표도르는 유산문제에다가 그루센카라는 여자를 놓고 갈등하다 결국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마는데…. 김태수 각색,김영수 연출에 윤주상 장민호 김학철 김규철 정경순 추상미 등이 출연한다.929­8026.
  • 불 사학자 뤼시엥 파브르「16세기의 무신앙 문제­라블레의 종교」

    ◎16세기 「무신론과 정신구조」 해부/작가 라블레를 통해 본 당시의 「이단사상」/르네상스시대의 종교문제 핵심에 접근 마르크 블로크와 함께 아날학파(정치보다는 사회,개인보다는 집단,연대보다는 구조를 역사인식의 기본골격으로 삼은 20세기 프랑스의 역사학파)를 주도한 프랑스 사학자 뤼시엥 페브르의 대표적 저서 「16세기의 무신앙 문제­라블레의 종교」(문학과지성사)가 충남대 김응종 교수에 의해 국내에서 처음 완역,소개됐다. 「심성사」라는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회경제사연보」의 창간자이자 「프랑스백과사전」의 편집책임자였던 페브르가 최고의 학문적 명성을 누렸던 1942년에 내놓은 이 책은 16세기의 정신적 구조를 이 시대가 낳은 이단아 프랑수아 라블레를 통해 해부한 것이다. 라블레는 몽테뉴와 함께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프랑스 르네상스 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를 남겨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그는 투렌지방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프란체스코회와 베네딕트회 수도사로서 청년기를 수도원에서 보냈으며 종교개혁에 참여,가톨릭교회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한편 당시 이단사상으로 경계 대상이 됐던 고대 그리스어를 독학하기도 했다.1532년에는 해학성 짙은 거인왕 모험이야기 연작 첫권인 「제2의 서 팡타그뤼엘」을 익명으로 발표,스스로 학자라는 굴레를 벗어버렸다.바로 이 책이 반기독주의적인 「패덕하고 추잡한 작품」으로 낙인찍혀 라블레는 그후 무신론자로 비판의 도마에 오르게 됐다. 페브르는 이러한 라블레를 통해 르네상스시대 사람들의 삶의 한복판을 차지했던 종교문제의 핵심에 접근해간다.지은이 자신이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라블레에 관한 세부연구가 아니라 16세기의 의미와 정신에 관한 하나의 시론』이다.16세기의 「심성적 도구들」인 삶,철학,언어,과학,음악,감각,마녀,비학 등 한 시대의 전체상을 검토하고 있는 이 책에서 페브르는 『라블레는 무신론자인가』『라블레는 무신론자일 수 있었나,즉 16세기는 무신론을 체계화시킬 수 있는 도구를 갖추고 있었는가』라는 두가지 의문을 푸는데 초점을 맞춘다. 먼저 『라블레는 무신론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문인,신학자,교론가 등 당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라블레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복음주의적 기독교도」라고 결론짓는다.16세기 사회에서 어떤 사람을 무신론자로 규정하는 것은 「욕설」과 마찬가지로 라블레의 소설을 분석해보면 그는 근대적이기보다는 중세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또 『라블레는 무신론자일 수 있었는가』에 대해 페브르는 16세기가 단순한 「생각들」을 뛰어넘어 하나의 체계를 세울 수 있을만큼 비판적이고 실험적인,바꿔말해 과학적인 방법론을 지닌 시대가 아니라는 견해를 보인다.나아가 이 시대는 「믿기를 원하던 시대」로,16세기의 정신구조상 당시 사람들은 무신론자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우리말 번역을 맡은 김교수는 『이 책은 종래의 엘리트적인 지성사·사상사를 뛰어넘어 한 시대 사람들 전체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그리고 독일식 정신사의 추상성을 뛰어넘어 「과학적」차원의 지성사의새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저서』라고 적극 평가한다.그러나 『페브르는 신앙과 무신앙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신앙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이교주의 또는 무신앙의 계보를 무시했다』는 비판도 잊지 않는다.
  • 스리랑카/찬란한 불교 유적… 섬 전체가 박물관

    ◎가는 곳마다 고대도시·궁전터·사원 등 즐비/「천혜의 낙원」… 관광·성지순례 발길 줄이어 인도대륙 남동쪽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의 여성지도자 찬드리카 반다란나이케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12일 우리나라를 찾아와 14일까지 머물며 양국의 경제협력과 관광교류증진방안 등을 논의한다.찬란한 불교유적을 자랑하는 스리랑카는 특히 불교신자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해 불교성지순례여행 등을 집중겨냥하고 있다.따라서 이번 대통령일행 방한에는 관광 관계자들이 함께 와 한국관광업계·불교단체 등과 다각적인 접촉을 하고 있다.미국·유럽·동남아·중국·대양주 등에 치우친 우리나라 관광분야에서 스리랑카는 아직 미개척의 먼 나라로 남아 있어 더욱 이채롭다.이를 계기로 스리랑카의 불교여행코스등을 살펴본다. 스리랑카는 섬 전체가 박물관이다.면적 6만5천6백㎢로 남한면적보다 작으며 인구도 1천8백여만명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발길 닿는 데마다 찬란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마지막 낙원으로 꼽힐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또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미화 7백달러정도로 낮지만 의식주를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의 축복을 받은 땅이어서 인심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이같은 조건에서 불교와 힌두교,그리고 기독교문화가 어우러져 스리랑카는 거대한 섬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가는 곳마다 고대도시와 궁전터·인공호수·공원·사원·수도원·조각 등이 즐비해 여행자의 탄성을 자아낸다. 기원전 3세기에는 당시 수도 아누라다푸라의 명성이 멀리 지중해까지 알려졌으며 기원 반세기 전에는 상할리족 교역대표단이 로마의 시저 황제에게 신임장을 제정했고 기원 300년 무렵에는 중국과 교역할 정도로 일찌감치 번성한 국가를 형성해 그만큼 문화유산이 많다. 기원전 247년에는 스리랑카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일이 발생했다.바로 인도의 독실한 불교도 아쇼카왕이 아들 마힌다왕자를 이 섬에 보내 불교를 전한 것이다.이때부터 상할라왕은 물론 일반에 이르기까지 불교에 귀의해 오늘날까지 줄곧 불교가 번성해왔다. 이 때문에 스리랑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불교성지가 되어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불교전파와 비슷한 시기에 힌두교도인 드라비다족이 침입을 시작한 뒤 1천5백년동안 수없이 거듭해 힌두교문화도 크게 자리잡았다. 여기에 17세기초부터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배를 받아 기독교문화가 어우러졌다. ○기원전 4세기에 번성 ◇경이로운 고대문명도시 아누라다푸라=콜롬보 북쪽 2백㎞에 있는 최초의 수도로 기원전 4세기경부터 번성했다.당시의 계획도시로서 사냥꾼·청소부·외국인·이교도의 거주지역이 구분됐고 신분제도에 따른 묘지도 다르며 관개수로가 완벽하다. 6백년 수도의 영광을 누리면서 만들어진 돌기둥과 돌탑이 조용한 녹음속에서 한때의 영광을 말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인 「스리 마하」보리수가 있으며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탑 「투파라마 다가바」가 유명하다. ○69개 동굴승원 만들어 ◇최초의 불교전래지 미힌탈레=아누라다푸라 동쪽 13㎞에 있는 바위산유적으로 처음 불교가 전래된 곳이다. 바위산 여기저기에 대탑이나 동굴유적이 많으며 정상까지 1천8백40계단을 올라가면 멀리 아누라다푸라의 대탑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마힌다 스님이 사냥중이던 티사왕을 만나 불교에 귀의케 했고 티사왕은 3천명의 승려를 위해 68개의 동굴승원을 만들었다. ○밀림속의 저수지 1천곳 ◇밀림속의 중세고도 폴론나루워=11세기초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을 받자 새로 만든 수도로서 콜롬보 동남쪽 2백여㎞에 있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공원과 정원이 많으며 근처에 1천곳 이상의 관개용 저수지가 있다. 남쪽 프라크라마 바후궁전은 1층 중앙홀이 2백평이 넘을 정도로 웅장한데 처음에는 7층이었으나 지금은 2층만 남아 있다. 북쪽의 갈 위하라 석가모니 와불상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부처의 열반상이며 길이가 13m나 된다. ○바위속 궁전에 「미인도」 ◇바위요새궁전 시기리여=천민소생의 맏아들 카샤파가 정실소생의 동생이 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 부왕을 살해하고 동생을 추방한 뒤 고뇌를 이기기 위해 만든 바위속 궁전으로 섬 중앙에 있다. 부왕이 여기에 궁전을 만들려 했다는 얘기를듣고 스스로 궁전을 완성했다. 벽화 「시기리여 미인도」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의 문화유산」에 들 정도로 값어치가 평가된다.5백명 이상의 미인도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10개가 남아 있다.
  • 수마가 할퀸 상처 한마음 복구/경기·강원 민관군

    ◎굴착기 등 동원 비지땀/가구 정리·벼포기 세우기 한창/폭우뒤 햇빛 쨍쨍… 하늘보며 원망도/식품·의류 등 전국서 온정 밀물 지난 26일부터 경기·강원도 북부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이 지역 주민들은 28일 상오 비가 그치자마자 수해 복구작업에 전력을 기울였다.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아파할 틈도 없이 온 주민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나와 축대를 다시 쌓는 등 상처를 치유하느라 비지땀을 흘렸다.복구작업에 나선 주민들은 하늘이 무너진듯 쏟아지던 폭우가 그친 뒤 드러낸 맑은 하늘을 보며 한숨을 짓기도 했으나 점차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군은 이번 폭우로 50여명이 숨져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었지만 굴착기 41대와 덤프트럭 19대·페이로더 3대 등을 동원,복구작업을 도왔다. 복구작업이 시작되면서 수해지역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이 쇄도했다.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연천군 구호물품 접수창구에는 27일에 이어 이 날도 서울과 인근 시·군으로부터 수재의연금품이 속속 답지했다. 농협중앙회(회장 원철희)는 이들지역의 이재민을 위로하기 위해 3천명분의 도시락과 김치 40상자를 제공하고 임직원들로 구성된 수해 복구지원 7개팀 5백여명을 긴급 투입했다. 특히 상수도원이 모두 끊겨 식수가 부족하자 연천군 관내의 생수업체들은 생수를 공급하기로 결의했고 의정부 소방서도 식수 공급용 소방차 20대를 수해지역에 투입했다. 연천군은 또 농협으로부터 쌀 7천20㎏을 지원받아 수재민들에게 무상공급하기로 했다. 연천읍 인근 초등학교 등에 수용되어있던 이재민들은 이날 하오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집으로 돌아가 가재도구 등을 건져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쓸만한 가재도구는 거의 모두 떠내려가고 안방과 부엌 등에는 흙앙금만 남아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서울 동대문 119구조대 소속 대원 18명은 홍수소식이 전해진 지난 27일부터 연천군의 침수지역 곳곳을 누비며 주민 14명을 안전지역으로 긴급 대피시켰고 동두천시 UDT전우회 인명구조대원 11명도 연천군 군남면 진상리에 폭우로 고립돼 있던 주민 53명을 구조했다. 문산천의 범람으로 이 일대 농경지가거의 대부분 물바다로 변했던 문산지역에서도 이날 하오부터 물이 빠지자,농민들은 들녘에 나가 벼를 한 포기라도 더 세우기 위해 힘을 다했다. 파주시는 이날 하오 문산읍과 파평면 일대의 물빼기 작업에 필요하다며 신형 양수기 1백50대를 지원해줄 것을 도에 긴급요청했다. 3일동안 5백27㎜의 폭우가 쏟아진 철원지역은 갈말읍을 제외한 전지역의 상수도 공급이 끊긴 가운데 춘천과 원주·홍천에서 지원나온 급수차 9대가 마을을 돌며 식수를 공급했으며 대우·삼성·LG·현대 등 가전업체들도 자사제품의 무상수리 서비스에 나섰다.〈연천·문산=이지운·강충식 기자〉
  • 한국에 손짓하는 인더스문명 유적

    ◎파키스탄 문화재당국 발굴작업 참여 희망/학계 “우리학문 세계화위해 시도 해볼만” 인더스문명의 신비와 고대문화의 실체를 제대로 벗기지 못한 파키스탄은 한국과의 학술협력을 희망하고 있다.선사시대를 일찍 마감한 가운데 기원전 3000년께 인더스강유역에서 인류문명의 불을 지핀 땅 파키스탄은 고대 문화유적의 보고.파키스탄의 학계와 문화재관계당국은 문화유적 탐사를 위해 파키스탄을 방문한 한국학자들에게 고고학발굴 직접 참여 등을 골자로 한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제시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먼저 만난 파키스탄 원로 고고학자 아마드 하산 다니박사는 한국학계가 유적발굴을 원하면 기꺼히 주선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밝혔다.파키탄역사고고학회 회장이자 베나지르 부토총리의 고고학 고문이기도 한 그는 문화유적은 아류의 공동자산으로 발굴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파키스탄 국내 유적의 개방을 강조했다.유네스코(UNESCO)실크로드위원장 자격으로 한국학자들과 함께 실크로트 공동탐사에 나선 적도 있다. 한국이 발굴에 참여할만한 유적은 파키스탄 전역에 널리 분포돼 있다.도시 유적을 포함한 인더스강유역의 문명유적,간다라 불교유적,실크로드 유적 등 손을 대지 않은 유적들이 얼마든지 있다.인더스강유역에서 지금까지 확인한 도시유적은 약 4배여군데로,이 가운데 파키스탄 동남부 신드지방의 모헨근다로와 하라파유적 정도가 발굴되었을 뿐이다.그리고 서북부 펀잡지방 탁실과 간다라유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실스크유적은 그냥 방치된 상태다. 일본은 이미 1950년대에 파키스탄에서 독자적으로 유적을 발굴,상당한 학술적 성과를 거두었다.또 유네스코와 파키스탄 문화재관리국이 주관하는 모헨조다로와 간다라유적 발굴복원사업에도 투자하고 있다.모헨조다로 한 단위유적에만도 50만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최근에는 독일에서도 이들 유적발굴을 지원하는 등 세계가 차츰 파키스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키스탄 문화체육부 산하의 문화재관리국은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벗어나 제1의 도시 카라치에 자리잡았다.박물관 관장업무를 비롯 문화유적 발굴 및 보존업무를 맡고있는 문화재관리국은 페샤와르와 라호르 같은 중요유적 분포지에 분소를 두었다.문화재관리국과 이들 지역분소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유적을 관리하면서 국제협력관계 업무도 전담하고 있다.유적발굴 및 보존에 따른 전문인력은 77명을 보유했지만,엄청난 유적에 비해 모자란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화재관리국 고고부 니아즈 랏술부장은 한국이 유적발굴 프로젝트 하나를 담당한다면 독자적 발굴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그것은 파키스탄 문화재관리국의 방향제시나 간섭이 없는 발굴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리고 동종동류의 유물이 2점 이상 출토되었을때는 1점을 한국에 영구임대하는 방법도 검토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이러한 협력은 지난 95년 5월 체결한 한·파키스탄문화교류협정에 근거를 들어 실현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파키스탄은 한국이 문화유적 보존과학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호소했다.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모헨조다로 도시유적발굴현장에서 만난 문화재관리국 엔지니어 모하날 오찬씨는 한국의 문화재보존과학팀의 모헨조다로 파견을 제의하고 나섰다.자연발생의 염분침식으로 유적이 훼손되는 현상을 막기위해 이같은 제의를 하게되었다는 그는 모헨조다로가 세계문화유산임을 누누히 이야기했다. 파키스탄이 그 많은 유적을 발굴,보존하기에는 힘에 겨운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문화국수주의에서 벗어나 인더스문명유적과 간다라 불교미술유적을 보편적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은 분명히 엿보였다.오늘의 파키스탄 현실을 다시 말하면 유적발굴경비 조달에 따른 재정의 한계성과 유적발굴 개방정책이 기묘하게 맞물려있는 것이다.그래서 한국이 진출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로 판단되었다. 이번 파키스탄 문화유적탐사에 참가한 한양대 배기동 교수(고고학)는 『우리 학계도 이제 시야를 세계로 넓힐 시기가 되었다』고 전제하면서 『세계문명의 발상지에서 고고학발굴은 국책차원이나 학술재단 투자형식을 빌려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특히 발굴성과를 집대성한 영문보고서 등을 통해 인류문명사와 고대문화사를 새로운 각도로 복원한다면,그 자체가 우리 학문의 세게화 내지 국제화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파키스탄 문화유적탐사는 이슬라마바드를 기점으로 탁실라(간다라 유적지)→시르캅(고대도시유적)→자울리만(고대불교대학유적)→폐샤와르(실크로드시대의 도시)→닥테바히(고대불교 수도원)→라호르(무글제국의 수도)→모헨조다로→카라치로 이어졌다.배기동 교수 이외에 고려대 권영필 교수(불교미술사),한양대 이희수 교수(인류학),가천박물관 학예연구실 윤열수 실장(불교미술)등의 학자와 서울신문 취재진이 동행했다.〈카라치(파키스탄)=황규호 특파원〉
  • “북한에 병원건립 추진”/김수환 추기경 밝혀

    ◎나진·선봉… 천주교인 상대 모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13일 『북한의 나진·선봉지구에 수백만달러규모의 병원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곧 교인들을 상대로 건립기금모금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병원건립이 구체적으로 추진되면 천주교관계자들이 북한을 방문하는등 천주교의 북한진출에 물꼬가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천주교는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대구대교구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김상진신부를 북한에 파견,이 문제를 북한당국과 협의한 바 있다.
  • 어떻게 살것인가/김동익새문안교회목사(일요일 아침에)

    「첫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를 끼울 구멍이 없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이 있다.그만큼 첫시작이 중요하다.우리는 지금 1996년이라는 새로운 한해의 첫발을 내디디고 있다.누구나 새해를 맞이하면 마음을 새롭게 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새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새해 첫순간부터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시작해야 하겠다. 첫째,목표가 분명해야 한다.인생살이에 목표가 없다면 망망대해를 나침판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다.목표 없는 사람은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죽은 고기와 다를 바 없다.목표가 있어야 삶에 의욕도,열심도 있다. 지금부터 14년전,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석유재벌 훼릭스 채패렛부부가 권총자살을 해서 미국사회에 충격을 준 적이 있었다.그들이 남긴 유서의 끝부분에 「따라갈 것이 없다.더 이상 꿈이 없다」고 적고 있었다.그들은 돈을 버는 것이 꿈이었는데 막상 돈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벌고 보니 인생살이에 싫증나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자살했다고 하는 것이다.사람이 추구할 목표가 없으면 그만큼 허무해지게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회고해볼 때 뚜렷이 기억에 남는 해가 있는 반면 그해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해도 있다.1996년이 후세에 뚜렷이 기억에 남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한해가 되기 위해서는 한해의 목표를 두고,그 목표를 향해 사는 해가 되어야 한다. 둘째,성공에 대한 가치관이 분명해야 한다.무엇이 성공이냐고 물으면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다.미국의 사상가 에리히 프롬은 그의 「소유냐 삶이냐」라는 책에서 성공의식을 두가지 측면에서 설명했다.하나는 소유의 욕구가 충족될 때,즉 재산이나 높은 직위나 명예등 좋은 것을 많이 소유할 때다.다른 하나는 소유는 못해도 기여나 창조의 욕구가 충족될 때 성공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지금부터 5백년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어도 땅 한평 차지하지 못했다.오늘날 아메리카에 세계최대의 나라가 세워졌다.또한 세계적인 재벌이 있는 부자땅이 되어 있다.그러나 콜럼버스는 말년에 빈털터리가 되어 수도원에 들어가 걸식하면서 10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그렇다고 해서 콜럼버스를 실패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그는 새 역사의 장을 펼친 자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고 역사에 높이 평가되고 있다.그렇지만 구속된 우리의 전직 두 대통령은 나라의 최고권력자로 성공했고,수천억원씩 모은 재력가로서 성공했다.그들을 평가하는 오늘의 시각은 냉정하다.한때의 성공이 결코 인생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독일의 시사잡지 슈테른은 올해의 대사기꾼 10명을 선정,보도했는데 1위가 나이제리아대통령 아바차이고,2∼3위가 불행하게도 우리의 전직 두 대통령이었다.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처럼 인생의 참성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기여에 있다.올 한햇동안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느냐 또는 얼마나 높이 올라가느냐 보다는 얼마나 기여하고 사느냐에 가치와 보람을 두고 살아야 하겠다.그러할 때 역사에 남는 성공자가 될 수 있다. 셋째,실패를 두렵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역사에 기여한 사람을 보면 실패를 두렵게 여기거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난 사람이었다.실패했을 때 남을 원망하거나 분노를 품지 말아야 한다.그렇다고 낙심하거나 체념하지 말아야 한다.한때의 실패가 인생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한때 실패했다고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다만 무엇인가 새로 배웠다고 생각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가져야 한다.한때 실패했다고 경쟁에서 뒤떨어졌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인생은 중간결산보다 마지막 결산이 중요하다.누구든지 목표를 분명히 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실패를 두렵게 여기지 말고 열심을 품고 살면 인생승리자가 될 수 있다. 1996년이 우리 모두에게 가치있는 한해가 되어야 하겠다.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잘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바르게 사느냐」를 생각하면서 사는 용기를 가져야 하겠고 이런 용기가 변치 않을 때 올 한해가 매우 흐믓해지리라 본다.
  • X­마스트리/황석현 논설위원(외언내언)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크리스마스 트리,귀에 들리는 것으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가장 보편적이다.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있지만 그 상징성이 많이 줄어들었다.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굴뚝속으로 선물을 가져오리라고는 믿지 않게 돼 버렸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럴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트리는 8세기때 독일의 보니파티우스라는 수도사가 어린 전나무에 갖가지 장식품을 매달아 수도원 정문앞에 세워 놓은 것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보편화된 것은 17세기 부터.「즐거운 노래」라는 뜻을 지닌 캐럴은 1521년 「멧돼지 머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공인되어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문학작품에 첫선을 보인 것은 1816년 독일작가 호프만의 소설 「호두까기와 쥐임금」.호프만은 이 소설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이렇게 묘사했다.「커다란 전나무에는 금색과 은색의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나뭇가지마다에는 화려한 색깔의 캔디,그리고그밖의 예쁜 과자들이 새싹이나 꽃송이처럼 달려있었고 촛불이 빛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집집마다 트리를 세우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어 버리자 산림훼손을 걱정한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한때 법으로 금지했으나 크리스마스 트리를 「천국의 나무」로 생각했던 신자들의 반발때문에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1930년대에는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어쨌든 크리스마스 트리는 사랑과 평화,그리고 화해를 상징하고 있다. 12월 들어 전국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고 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6일 서부전선 애기봉에는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거대한 트리가 불을 밝혔다.오색등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를 보며 아름다운 선율의 캐럴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그러나 이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헤아려야 한다.한밤중 어두움을 밝히고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참뜻을 되새기면서 경건하고 조용한 연말연시가 되기를 두손모아 기원한다.
  • 청계고가도 일부 구간 새달 1일까지 통제

    서울시는 26일 상오 6시부터 다음달 1일 하오 4시까지 1주일간 남산1호터널 입구에서 명동성당에 이르는 청계고가도로 4백m 구간 2개 차선을 보수공사로 인해 전면 통제키로 했다. 이에 따라 광교 부근에서 남산 1호터널로 진입하려면 명동성당 수도원앞 진입램프를 이용해야 하며,남산1호터널에서 마장동 방향으로 운행하려면 영락병원앞 진입램프로 우회해야 한다.
  • 1·4후퇴뒤 혼란정국(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4)

    ◎거창학살­국민방위군 사건 잇달아 발생/이 대통령,국회와 마찰… 대통령 직선 추진 한국전쟁은 1951년 새해가 밝으면서 개전 2년째를 맞았다.미 공군은 설날에도 전폭기 편대들을 전선과 북한지역 깊숙이 발진시켰다.그리고 8백12회의 출격을 설날에 기록했다.전선은 남쪽으로 크게 밀려나 38도선 부근에 와 있었다.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은 전선이 압록강 한·만국경에 고착될 것으로 기대한 한국민의 희망을 깡그리 앗아갔던 것이다. 정부는 1월3일 임시수도를 부산으로 결정하고 다음날 서울을 비웠다.전해 9·28수복으로 환도했던 정부의 공식 서울 철수를 역사는 1·4후퇴로 기록하고 있다.서울시민 30만명이 피란길에 오른 가운데 5일에는 중공군 선발대가 한강을 건너 영등포까지 진출했다.주문진,홍천,양평,수원을 잇는 제2방어선도 곧 무너졌다.유엔군은 7일 오산을 포기해 버렸다. ○양민희생자 6백명 그 2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경남 거창에서 양민학살 사건이 일어났다.공비토벌에 나섰던 육군 제11사단 9연대 제3대대가 2월11·12일에 거창군 신원면에서 저지른 이 사건의 희생자는 6백명이나 되었다.이유는 공비와 내통했다는 것이었는 데 일일전과 보고는 주민 희생자수를 1백87명으로 기록했다.국회가 이를 문제시하고 4월7일 현지조사에 나섰다가 공비로 가장한 군의 공격을 받고 철수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주동자들은 구속되어 군법회의에서 실형을 받았다.그러나 모두 1년안에 풀려났다. 이 사건을 축소 은폐한 국방부 장관 신성모는 5월7일 해임되었다.그의 해임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거창 사건말고 새로 불거져나온 국민방위군 사건이 더 크게 작용했다.이 사건은 51년1월 국민방위군 집단후송과 수용과정에서 고개를 들었다.국민방위군 설치법에 따라 제2국민병에 해당하는 17∼40살의 장정들을 방위군에 편입시켜 경북지역 각 교육대에 수용했다.이를 계기로 방위군 고위 간부들이 막대한 돈과 물자를 빼돌렸다.그 부정규모는 당시 화폐 24억원,양곡 5만2천섬에 달했다. 국회는 4월30일 방위군 해산을 결의했다.이에따라 5월12일 방위군이 공식 해산되었으나 장정들의 귀향조치는 3월중순부터 이루어졌다.사건이 확대되고 희생자가 날로 늘어나자 정부는 진상조사에 나서 김윤근 사령관을 구속했다.다른 간부 5명과 함께 군법회의에 회부된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사형이 선고된 5명의 방위군 간부들에 대해서는 8월13일 대구 근교에서 총살이 집행되었다.숱한 청장년을 헐벗게 하고 굶긴 건국이래 최대의 비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방위군 간부 5명 총살 1951년의 이 두 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 임기 내내 따라붙은 불명예였을 뿐 아니라 정적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특히 거창사건 주동자 가운데 김종원의 경우 뒷날 경찰총수인 치안국장으로 기용했다는 사실은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도덕성을 문제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이 사건들은 이기붕을 권력의 주변으로 끌어들인 결과를 가져왔다.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신성모 후임의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던 것이다.이를 단초로 이승만 대통령을 핵으로 한 권력의 인맥이 새롭게 발전할 것이라는 장래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기붕 기용에 앞서 거창사건의 책임을 물어 조병옥 내무장관,김준연 법무장관의 권고사직을 4월24일과 25일에 전격 수리했다.대통령은 조병옥을 오랫동안 못마땅하게 여겼다.당시 대통령의 업무일지에는 1951년1월 서울에서 내려온 이후 조병옥은 내무부가 있는 대구보다는 부산에 더 많이 머물러 있다고 기록했다.그 이유는 정치적 책략을 동원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그리고 대통령을 찾아오는 일이 없고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게 고작이라는 불만도 곁들였다. 조병옥은 사퇴서를 보내놓고 곧바로 이승만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그래서 4월24일자 대통령 업무일지는 「조병옥은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굳혔고 대통령에 반대해서 싸울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주한 미국대사 무치오는 조병옥의 사표수리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했다.이를놓고 이승만 대통령 쪽에서는 미국이 다음 대통령 선거를 좌지우지 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무치오가 새로운 내무장관을 장면과 같은 온건한 인물로 꼽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장면에게는 이미 국무총리직이 수임되어 있었다.장면은 사실상 주미대사로 워싱턴에 더 머물기를 희망했다.그럼에도 이승만은 새해들어 그의 소환을 결심하고 1월5일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시영 부통령이 5월9일 「시위」에 앉아 소찬을 먹는 격에 지나지 못했기 때문에 물러난다」는 서한을 신익희 국회의장 앞으로 전달했다.이와 더불어 부통령직 사임서를 피란국회에 보냈다.사임서가 국회에서 반려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본인의 고사로 3일후 국회 본회의가 이를 수리했다.국회는 두 차례의 보궐선거끝에 5월16일 김성수를 부통령으로 뽑았다.그 역시 잔여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1952년 정치파동의 와중에 전격 사임해 버렸다. ○개헌 결심…자유당 창당 한반도를 아비규환의 전쟁으로 몰아붙인 그 6월이 또 다가왔다.4월11일 전격해임된 맥아더장군에 이어 리지웨이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은 6월19일 철원,김화,평강으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그러나 중공군은 금성지구 한국군 2군단 전면에서 춘계공세 이래 최대의 공격을 개시했다.공산군은 4월22일 제1차 춘계공세 이후 6월17일까지 21만5천9백명의 병력손실을 입었다.그럼에도 유엔군사령부는 아직 대공세 능력을 상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승만은 계속 국회와 부딪쳤다.일반적 여론은 국회가 대통령을 간선으로 선출할 경우 그가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그래서 헌법개정을 결심했다.8월15일 그의 신당구상은 11월19일 자유당 창당으로 실현되었다.자유당 창당 이전인 10월17일 국무회의는 대통령 직선과 양원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의결하고 11월20일 이를 국회에 제출했다. ◎미 「알렉시스 존슨 파일」/미,한국전중 “기독교도 구출” 논의/전쟁 확산→한반도 포기상황 전제/북한측 박해 밝혀져 인권차원 거론 미국은 한국전쟁이 확산되어 한반도를 포기할 경우 한국민 가운데 기독교인들을 구출하는 문제를 토의한 것으로 밝혀졌다.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입수한 「알렉시스 존슨(Alexis Johnson)파일」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이같은 기독교인 구출문제에 대한 논의는 1951년 11월2일에 작성한 미 국무성 회의비망록에 들어있다.회의에는 미 국무성 극동국의 러스크,동북 아시아과의 맥 크러킨이 참석했다.이는 미국 장로교인 트류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당시 미국은 다른 종교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이 문제가 자연스럽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특히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 공산권 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이 큰 박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유엔군 북진에서 드러나 더욱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전 북한의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철저하게 말살되었다.가톨릭의 경우 함경남도 덕원 면속구의 피해는 컸다.1945년 민족해방 이후 1949년 5월9일 이후 수도원은 몰수 당했다.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많은 신부와 수사,수녀들이 고난속에서 순교했음이 밝혀졌다.개신교에서도 많은 순교자를 냈다는 사실이 서방에 전해짐으로써 기독교인들의 구출은 인권 차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민 기독교인 구출은 한국에 살고있는 미국 민간인 철수작전과 더불어 제기되었다.한국전쟁 발발 당시인 1950년 서울은 물론 대전이 예상이외에 빨리 북한군에 점령되어 미국의 민간인들이 포로로 취급받은 데 따른 대비책으로 미 민간인 철수는 심도있게 논의됐다.그러니까 이 비망록을 작성할 당시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가 불투명했다는 추론이 나올 수 있다. 알렉시스 존슨은 1930년대 후반 한국에도 살았던 외교관으로 이승만이 미국에 망명해 있던 시절 그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이다.한때 미 국무성 극동아시아과에서 영향력을 가진 관리로 활약했다.
  • 외국관광객 집단추방/티베트,시위진압목적

    【북경 AFP 연합】 티베트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일객칙시에서 승려들의 시위위협을 선제진압하기 위해 진입한 경찰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을 집단 추방했다고 런던에 있는 티베트연구단체인 「티베트정보네트워크(TIN)」가 18일 밝혔다. TIN측은 지난주 티베트지방정부의 고위관료가 불교의 주요 축제행사문제로 마찰을 빚고있는 라마승들과의 회담을 위해 현지를 방문한 이후 타쉴훈포수도원의 승려들사이에 반체제움직임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들은 중국정부의 판첸라마선정에 대한 개입에 대항해 시위를 벌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2일 상오에는 축제행사를 관람하기 위해 수도원의 방문이 허용됐던 30여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관리들에 의해 강제로 추방됐으며 폭동진압장비를 착용한 경찰 70∼90명이 무장트럭을 타고 수도원에 도착해 외국관광객들을 호텔로 강제소환한뒤 시내중심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TIN측이 밝혔다.
  • 귀리 부활(외언내언)

    북구에서는 아직도 귀리(연맥)식품을 애용한다.영국이나 독일 스웨덴등 대학도시 기숙사나 교수들 사택에서 다양한 귀리식품을 접하게 된다. 오트밀(Oatmeal) 포리지(Porridge) 귀리빵·쿠키등 갖가지 귀리식품이 몇천년 맥을 이어 내려오는 전통은 놀랍기도 하다.특히 영국에서의 귀리 애용은 대단하다.아침에는 귀리죽,점심엔 귀리빵이 일상식이고 어린이 이유식서부터 알코올 원료에까지 식용범위가 참으로 넓다. 대학가의 귀리 애용은 13∼15세기 설립된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대학과 글래스고대학 초기 대학생들 생활기록에서부터 시작된다.처음 종교집단인 수도원의 체제로 운영됐던 이들 대학 기숙교육에서는 학생들이 학기초 한자루의 귀리를 메고오는 것으로 학기가 시작됐다.자루곡식이 다 떨어지면 한 학기가 끝난 것이고 학생들은 집에 가서 여름곡식을 거두고 다시 곡물자루를 메고 학교로 왔다고 한다. 귀리는 청동기 시대쯤에 이미 유럽 일부지역에 전해졌다고 한다.원산지는 중앙아시아 또는 아르메니아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중국에서는 7∼9세기께 재배되었고 한반도의 경우 고려시대 원나라 군대의 말먹이로 가져온 것이 시초라고 한다.북부 산간지대 화전에서 재배되었으나 요즘 볼 수 없게 되었다. 귀리는 서구사람들에게 건강곡물로 인정돼 있다.영양학계 분석으로는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 비­글루칸(B­glucane)등이높고 특히필수 아미노산과 불포화지방산비가 높아고급영양을 조성 하는곡물로평가돼있다. 우리농촌에 귀리가 부활된다는 소식이다.제주도에서만 일부 말먹이용으로 명맥을 잇던 귀리를 경남 진양군 대곡면의 젊은 학사독농가가 식용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지난해 10월 파종했는데 원매자가 사방에서 찾아들어 앞으로 확대 재배할 계획이라 한다. 무비료 무농약 곡물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는 것이다.애로는 종자부족이며 수원 농진청이 종자증산에 나섰다.
  • 신을 빙자하는 사람들(송정숙 칼럼)

    유태교·개신교·천주교 성직자가 한자리서 헌금중 하나님 몫과 사람 몫을 구별하는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첫번째 성직자는 돈을 공중에 던져 겉면이면 하나님 몫으로,엎어지면 사람 몫으로 친다고 말했다.다음 목회자는 둥글게 원을 그려놓고 원의 중심선에서 돈을 던져 왼쪽으로 떨어지면 하나님 것이고,오른쪽으로 떨어지는 건 사람 것으로 한다고 했다.그러자 두사람 말을 듣고만 있던 세번째 성직자는 웃으며 말했다.『나는 돈을 하늘에 던져 보고 하늘에 남는건 하나님 몫으로 땅에 떨어지는 건 사람 몫으로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실화」도 있다.토지 투기로 돈을 번 ㅂ씨는 절세를 위해 재산을 분산시켰다.물론 실명제 실시 이전의 일이다.그는 빌딩중의 하나를 그가 경영하던 학원 여직원 명의로 해두었다.착실하고 선량한 미혼 여성이어서 믿을 수 있었다.그런데 그 여직원이 오래잖아 젊은 목사와 결혼을 했다.ㅂ씨는 여직원에게 남편도 생겼고 자신들은 외국으로 이민을 갈 계획이어서 재산을 정리하기로 했다.당연히 명의만 빈 여직원의 빌딩도 팔겠다고 통고했다. 그런데 예기치못한 일이 벌어졌다.여직원 부부가 빌딩 내놓기를 거부한 것이다.그 착하던 여직원의 변심도 문제지만 양심의 상징인 목사가 이처럼 남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것에 ㅂ씨는 어이가 없었다.따지고 얼르며 실랑이가 계속되었다.그런 어느 날 목사는 「최후의 제안」을 해왔다.『오늘 밤 기도를 통해 빌딩을 돌려줄지 말지 하나님께 물어보겠다.그리고 하나님 뜻에 따르겠다』는 것이었다.이미 진이 빠진 ㅂ씨네는 다른 방법도 없었고 무엇보다 떠날 날이 임박했으므로 그들의 「하나님」께 맡길 수 밖에 없었다.그후 잠적해버렸던 젊은 부부는 ㅂ씨네가 떠나는 공항으로 전화를 해왔다. 『하나님이 응답하시기를 빌딩은 우리가 가지라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요즘의 어지러운 선거정국에는 「신의 계시를 들먹이는 사람들도 있고 『하늘의 뜻』을 들먹이는 사람도 있어 이런 우스개와 「실화」가 생각났다. 15세기말 로마교황 알렉산더 6세와 피렌체의 수도승 사보나로라사이에 있었던 신앙갈등도 「신의 뜻」을 빙자한 수사와 「신의 대이인」교황 사이의 치열한 반목이었다. 도미니코파 수도승 사보나로라는 스스로『타락한 로마교황』을 멸하기 위해 신의 선택을 받았음을 확신한 성직자였다.금욕적이고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수도자임을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던 그는 교황을 탄핵하기 위해 준엄한 설교로 그 「신의 뜻」을 역설했고 또 신의 이름으로 「예언」도 했다. 「로마」는 사보나로라가 그렇게 「신」을 칭하며 「예언자」를 자처하고 피렌체 시민들을 선동하는 것에 분노했고 「로마」가 그럴수록 사보나로라는 피렌체의 산마르코 광장을 열로 절절 끓이며 시민들을 사로잡았다. 마침내 그는 외세인 샤르르왕의 프랑스군을 끌어들여 피렌체를 다스리던 메디치가를 내쫓고 피렌체정청을 장악한뒤에 그곳에 신의 나라를 세운다는 오랜 목적을 실천해갔다.이 성스런 수도자를 피렌체시민은 열렬히 사랑했고 『로마로부터의 핍박』에서 그와 더불어 죽을 각오를 하였다. 『신이시여 만약에 제가 옳지 않거든 지금 당장 불의 심판을 내리소서!』열광하는 군중 앞에서 그렇게 소리치는 사보나로라에게 군중들은 그 「불의 심판」에 자기들도 함께할 것을 맹세하며 생업도 팽개쳤다.그러나 신은 「불의 심판」을 안내렸고 군중들은 그「뜻」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자 일은 다른 방향에서 일어났다.사보나로라가 누리는 시민으로부터의 신앙의 영광에 질시를 느낀 프란체스코파 수도승들이 사보나로라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다.『신께서 기적으로 증명해주시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불의 시험」을 통해 실증하자.사보나로라가 활활타는 불속을 「옷자락도 그슬리지않고」무사히 통과한다면 우리도 그를 예언자로 인정하고 따르겠다』 이 프란체스카노의 당돌한 도전을 사보나로라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압력을 가한 것은 그토록 열광하며 그를 따르는 피렌체시민들이다.그 성화에 밀려 「불의 시험장」은 만들어지지만 사보나로라가 속한 도미니카노들의 이런저런 핑계로 그가 「불속을 걷는 일」은 끝내 실행되지 않는다. 그러자 시민들의 열광은 그대로 분노가 되어 『사기꾼! 거짓말쟁이! 가짜!』를 외치며 사보나로라에게로 향한다.그를 광장 복판에끌어내기 위해 폭도로 변한 군중을 피해 사보나로라는 수도원에 피신했다가 마침내는 피렌체정청이 그를 수갑채워 끌어가게 된다.그래도 성에 안찬 군중과 더불어 종교재판으로 그를 화형에 처하는 「로마의 뜻」은 쉽게 이뤄진다. 인류사상 가장 노련한 정치가였을 교황 알렉산더 6세는 「불의 심판」도 「불의 시험」도 『신을 시험하는 일』이므로 해서는 안된다는 말만을 하는 것으로 그의 권위를 반석위에 굳건히 할 뿐이다. 정치판에 부쩍 빈번해진 「신의 이름 들먹이기」가 신의 노여움을 부르는 것이나 아닐지 생각해 보게된다.
  • 종교인 8명 방북 승인/통일원/나진·선봉에 병원·교회 건립 협의

    ◎신부4·목사4명 이달 중순에 정부는 북한핵문제의 유엔안보리 회부등 남북간 극단적인 긴장관계가 조성되지 않는한 남북간 각종 민간 교류를 단계적으로 활성화해 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와 관련,3일 천주교 김상진 신부,기독교 홍정길 목사 등 종교계 인사 8명의 북한방문 신청을 승인했다. 통일원 김경웅 대변인은 『제네바 핵합의의 불이행으로 인해 국제적 대북제재와 남북관계가 극단적인 긴장상태에 빠지지 않는 한 경제·사회·문화교류는 단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영변 원자로에 핵연료를 재장전하는 등 핵동결을 해제해 국제적 제재를 자초하지 않는한 대우·쌍용 등 일부 대기업의 협력사업과 김수환 추기경 등 종교인들의 연내 방북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3일 방북신청 승인을 받은 사람은 천주교의 김신부(성베네딕도 수도원)를 비롯,김영환(대구카톨릭대의학부 총장),김석좌(예수의 작은마을 원장),안경렬 신부(반포천주교회)와 기독교의 홍 목사 외에 이동원(지구촌교회),옥한흠(사랑의 교회),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등 8명이다. 천주교 김 신부 등은 북한의 나진­선봉지역에 2백병상 규모의 병원건립 등 의료선교문제를 북측관계자들과 협의할 계획이며,기독교인사들은 같은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방안과 소래교회등 기독교유적지 복원문제를 각각 협의한다. 이들은 모두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 김정우 위원장 명의의 초청장을 받았으며,오는 15일부터 내달 20일 사이 제3국을 경유해 1주일간 북한을 방문케 된다고 통일원측이 밝혔다.
  • 중,티베트 수도원 3곳 습격/독립시위대 1백6명 체포

    【북경 AP 연합】 중국경찰이 서장자치구 납살시인근에 있는 티베트수도원 3군데를 습격,티베트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시위를 벌인 수녀와 수도승 1백6명이상을 체포했다고 티베트를 연구하는 런던주재 「티베트정보네트워크」가 27일 보도했다. 「티베트정보네트워크」는 지난 2월과 3월중 16번의 시위가 벌어져 수녀 56명과 수도승 50명이 체포되거나 수도원에서 추방당했고 티베트의 독립을 요구하는 배지를 달고 있던 한 수도승이 체포된 사건이후 무장경찰이 납살시에서 25㎞ 떨어진 날란다수도원을 습격해 티베트국기 2개를 압수했다고 전했다.
  • 국립발레·합창단 「까르미나 브라나」 합동무대

    ◎발레·합창·관현악 어우러진 작품 국립발레단(단장 김혜식)과 국립합창단(단장 오세종)이 오는 19일부터 26일까지 1주일 동안 합창발레 「까르미나 브라나」를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합동공연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국내 무대에 올려지는 「까르미나 브라나」는 발레와 합창이 관현악과 어울어지는 작품.64년 미국 켄터키 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된 이래 르네상스풍의 사랑스런 여성 이미지와 힘차고 역동적인 남성의 이미지가 잘 조화되어 있다는 평을 받고있다. 캐나다 그랑 발레단의 예술감독인 페르난드 놀트가 안무했고 올해는 김혜식 단장과 오세종 단장이 공동예술감독을 맡았다. 주역무용수로는 국립발레단이 내세우는 주목받는 무용수 이재신과 강준하를 비롯해 한성희·신무섭·김용걸·나형만·문영철 등이 출연하고 합창 솔리스트로는 김관동 연세대교수·김선일 서원대 교수,그리고 차세대 기대주인 김수진·박연희·권흥준 등이 나온다. 25개 장면 가운데 2분여 동안 바베큐 막대기에 매달려 「구워진 백조」의 비애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남성 무용수의 독무,지난해 이 작품에 출연해 호평을 받은 소프라노 김수진의 독창 등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까르미나…」는 「보이렌 수도원의 노래」라는 뜻의 라틴어로 중세시대의 사회상,사랑,유희,자연 등을 11∼13세기 음유시인 특유의 운명론의 입장에서 익살스럽게 풍자한 시가집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 토지매입 도움대가/이치호씨에 차 제공/「두성」김 회장

    【대구=한찬규 기자】 거액의 부도를 낸 혐의로 구속된 (주)두성주택 김병두 회장이 이치호 대구 수성을 민자당 지구당위원장에게 고급승용차를 제공한 사실이 3일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두성주택 관계자는 이위원장이 김 회장에게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카톨릭수도원 부지 5백40평을 매입하는데 도움을 준 대가로 김 회장이 지난해 1월25일 뉴그랜저 V6 승용차를 두성주택 법인명의로 사들여 이 위원장에게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 승용차는 구입시 민자당 수성을지구당 사무국장 오세찬씨가 보증을 썼으며 지금까지 이 위원장의 개인승용차로 사용되고 있다. 구속된 김 회장은 이 위원장의 후원회 회원이며 이 위원장 동생 이모씨(45)가 지난 92년말부터 6개월간 두성주택 전무로 근무하기도 했다.
  • 세계 유명실내악단 내한공연 러시

    ◎보자르 트리오/비발디 체임버 오케스트라/바르토크 현악4중주단/보자르/40년간 연주회·레코딩 활동 8천회/비발디/여성들로만 구성… 레퍼토리 다양/바르토크/세계 실내악콩쿠르 휩쓸며 명성얻어 새봄을 앞두고 세계 정상의 앙상블을 자랑하는 유명 실내악단들의 내한공연이 잇따라 열려 실내악 애호가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이달 중 서울서 연주회를 갖는 실내악단은 미국의 보자르 트리오(14일 예술의 전당 음악당),러시아의 비발디 체임버 오케스트라(16일 양재동 횃불선교센터 희락성전),헝가리의 바르토크 현악4중주단(17일 예술의 전당 음악당) 등. 「아름다운 예술」이란 뜻을 지닌 보자르 트리오는 세계 음악계에 실내악의 장르를 구축시킨 연주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55년 탱글우드 음악축제를 통해 데뷔한 후 세계 무대에서 8천회가 넘는 연주회와 레코딩 활동을 펼치고 있다. 창립멤버인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92년부터 보자르 트리오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이다 카바피안,첼리스트 피터 윌리로 구성된 보자르 트리오는 단원 각자의 뛰어난 기량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엮어내는 음색과 폭넓은 레퍼토리로 음악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 문화축전 이후 두번째로 갖는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국내 음악팬들의 귀에 익은 모차르트 피아노 3중주 다장조 K.548,멘델스존 피아노 3중주 1번 라단조 작품 49,베토벤 피아노 3중주 내림 나장조 「대공」을 들려준다. 젊은 여성들로만 구성된 비발디 체임버오케스트라는 3백여년전 안토니오 비발디가 자신이 경영하는 수도원서 공부하는 젊은 여성들로 체임버앙상블을 구성,활동했던 것을 본받아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제작자인 스베틀라나 베즈로드나야가 88년 창단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창설 이후 프랑스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 다양한 레코딩 취입과 연주경력을 쌓았다.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터치와 곡 해석력으로 비발디 뿐 아니라 바흐 모차르트 스칼라티 로시니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글라주노프 등의 작품을 망라하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다루고 있다. 10일 예술의 전당에서 첫 연주회를 가진데 이어 16일에는 로시니 노나타 1번,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비발디 바이올린협주곡,그리그 「홀베르그 모음곡」 등을 들려준다. 바르토크 현악 4중주단은 실내악의 강국 헝가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연주단.지난 57년 리스트 음악원 출신 학생들로 창단돼 하이든 국제실내악 콩쿠르,부다페스트 국제실내악 콩쿠르,벨기에 국제 현악 4중주 콩쿠르 등을 휩쓸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제 1바이올린 페테르 콤로시,제 2바이올린 게자 하르기타이,비올라 게자 니메트,첼로 메저 라슬로.이번 내한 공연에선 베토벤 현악 4중주 F장조 작품 18의 1,브람스 피아노 5중주 F단조 작품34 (피아노 박승민),드보르자크 현악 4중주 12번 「아메리카」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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