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수도원
    2026-07-06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7-06
    검색기록 지우기
  • 20대
    2026-07-06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7-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53
  • 한국가톨릭에이즈협회 노인조 회장

    한국가톨릭에이즈협회 노인조 회장

    “에이즈 예방과 교육이 강화돼 환자를 위한 쉼터가 사라지는 날이 오길 바랄 뿐입니다.”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일은 다른 환자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한다. 치료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에이즈에 걸렸다는 이유로 사회와 격리돼 정신적인 충격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세계 에이즈의 날’(12월1일)을 맞아 서울 성북구 돈암동 가톨릭 수도원인 예수고난회 원장인 캐나다인 노인조(58) 수사를 만났다. 한국에 온 지 30년이 된 그는 7년째 한국가톨릭에이즈협의회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돕고 있다.2002년 회장직을 맡아 전국 4개 지방에서 운영 중인 ‘에이즈 감염자 쉼터’ 5곳을 다니며 봉사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서울 2곳을 비롯해 인천, 광주, 원주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면서 치료 및 상담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큰 쉼터에는 환자가 17명, 작은 쉼터에는 6명 정도 있습니다. 쉼터 위치는 환자들과 가족 외에는 철저히 외부에 알리지 않습니다.” 노 수사가 에이즈 환자를 위한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2년부터 3년간 로마·런던 등 유럽 수도원에서 일하던 중 이들을 위한 봉사활동 현장을 보면서부터. 때마침 한국 예수고난회 관구장이 로마를 방문, 노 수사에게 한국의 에이즈 환자 봉사를 맡을 의사를 물었고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아프리카나 동남아에 비해 한국은 상황이 훨씬 나았고, 선진국에서 배운 서비스를 제공하면 환자들이 빨리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쉼터를 찾아오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노 수사는 “환자들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모르다가 마비증세가 오거나 암 등 합병증에 의해 드러나면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면서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이나 친구 모두 떠나 고립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에이즈 말기 환자 2명이 결국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노 수사. 그는 “감염 사실을 일찍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한데도 심리적인 불안감 때문에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쉼터를 위해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 봉사자들은 치료·재활 서비스는 물론 이들이 회복된 뒤 사회로 돌아가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상담활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말기 환자들이 모여 있는 쉼터에서는 마지막까지 고통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봉사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 수사는 “지난 6년간 서울 쉼터를 거친 120여명 중 70∼80%가 완쾌돼 일상생활로 돌아갔다.”면서 “특히 여성환자 5명이 조기에 치료를 받아 감염되지 않은 아기를 낳은 것은 하나님의 가장 큰 은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쉼터를 찾는 환자 수가 줄어들지 않고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등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있다며 걱정했다. 그는 “에이즈에 대한 관리가 한 단계 올라가려면 예방을 위한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면서 “특히 한순간의 실수로 젊은이들이 에이즈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적인 관심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행해지는 에이즈 검사가 익명으로 이뤄지지 않아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보건소나 회사 등에서 제공하는 에이즈 검사는 반드시 익명으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에이즈 문제는 익명을 보장함으로써 이들이 음지로 숨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의회는 지금까지 2차례에 걸쳐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익명 검사를 제공하는 등 이들에 대한 봉사를 강화하고 있다. 노 수사는 “에이즈 예방 교육이 강화돼 뒤늦게 쉼터로 오는 환자들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면서 “5∼10년쯤 뒤에는 우리를 찾는 환자들이 없어져 쉼터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02)924-8627. 글 사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20일개봉 ‘케이브’

    루마니아의 깊은 숲, 니콜라이 박사 일행은 13세기 수도원의 폐허 아래 숨겨진 거대한 동굴을 발견한다. 생명 과학자 탐(모리스 체스트넛)과 잭(콜 하우저)을 중심으로 프로 다이버 7명으로 구성된 탐험대는 본격적인 탐사에 나선다. 하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던 탐사는 갑자기 동굴 입구가 막히고 팀의 리더인 잭이 정체 모를 생명체의 공격을 받으면서 위기에 빠진다. 게다가 출구까지 막혀 점입가경의 위기를 맞게 된 탐사팀에게 희생자도 하나둘씩 생겨난다. 20일 개봉하는 영화 ‘케이브’(THE CAVE)는 ‘프레데터’·‘에이리언’류의 괴물 영화,‘버티컬 리미트’·‘아나콘다’류의 탐험 영화를 한데 버무려 놓은 얼개다. 정체 불명의 초현실적 괴물과의 사투를 벌이는 동시에 거대한 자연과도 맞서 싸운다. 하지만 시선이 분산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엔 조금 힘이 부치는 느낌. 괴물 영화치곤 공포가 부족하고 핏방울도 보이지 않는다. 특히 기생충 변이로 생겨난 괴물이 인간을 숙주로 삼는 설정은 ‘에이리언’을 본뜬듯해 신선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영화속에서는 시선을 끄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 차우셰스쿠 정권 당시 비밀 경찰의 숨겨진 과거와 영화속 액션·탐험과의 연결 고리도 좀더 탄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만 ‘매트릭스’와 ‘에이리언’ ‘다크시티’에 참여한 제작진이 빚어낸 시각효과와 CG(컴퓨터그래픽) 등 특수효과는 충분히 즐길만하다.‘고질라’‘언더월드’ 등에서 보여준 패트릭 타토풀로스의 괴물 디자인도 볼만하다.12세 이상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수도원의 탄생-유럽을 만든 은둔자들/크리스토퍼 브룩 지음

    중세 유럽 수도사들의 공동체인 수도원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럽의 한복판에 섰던 수도사와 수도원을 이해하지 않고는 유럽 역사를 말하기 어렵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크리스토퍼 브룩 명예교수가 쓴 ‘수도원의 탄생-유럽을 만든 은둔자들’(이한우 옮김, 청년사 펴냄)은 수도원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수도사와 수도원의 다양성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폐쇄적이고 교조주의적인 통념에 갇힌 수도원을 개방적인 곳으로 새롭게 조명한 것. 수도사들의 일상생활에서부터 각기 다른 수도회의 성서적 배경과 수도생활 방식, 수녀원과 수도사들의 차이, 수도사들의 공예예술과 건축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고찰을 통해 수도원 속으로 빠져든다. 특히 수도생활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함께 수도원 3곳을 답사해 수도생활을 사실적으로 추적한다. 이와 함께 수도생활의 전통을 확립하는 영적 계기를 마련해준 베네딕트, 아우구스티누스, 프란체스코 등 성인들도 만날 수 있다. 이를 통해 중세 전성기 유럽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수도원의 흥망성쇠를 사회·정치·경제·문화적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도사와 수도원의 역사를 중세 유럽사의 중심에 위치시킴으로써 중세 유럽을 바라보는 새롭고 중요한 시각을 발견하게 되는 책.2만 3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실전 논술] 가난의 책임 소재와 국가 역할

    ●다음 글을 읽고, 가난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살펴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해 1600자 내외(±)로 쓸 것.) 장 발장은 라 브리 지방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으며, 소년 시절에는 글도 배우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파브롤에서 나뭇가지 치는 일을 해 왔었다. 어머니의 이름은 잔 마티외였고, 아버지는 블라장이라고 불렸다. 이것은 필시 별명으로 브알라 장을 줄인 것이었을 것이다. 장 발장은 음울한 성격은 아니었으나 늘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인정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특징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장 발장이라는 인간은 어딘지 멍청해 보였고, 눈에 선뜻 띄는 사나이가 아니었다. 그는 아주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산후 몸조리를 잘못해서 죽었고, 아버지는 그와 마찬가지로 나뭇가지 치기가 직업이었는데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장 발장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자식 일곱을 낳고 과부가 된,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누이 하나뿐이었다. 장 발장을 키운 것은 이 누이로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그 동생을 집에 데려다 키워 주었다. 그런데 남편이 죽었다. 일곱 아이 중 제일 큰 아이가 여덟 살이고 제일 작은 아이가 한 살이었다. 장 발장은 그때 스물다섯 살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한 집의 가장이 되어, 이번에는 자기를 길러 준 누이의 가족을 떠맡아야 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무슨 의무처럼 되어 버려서, 장발장으로서는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그 고장에서 ‘애인’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를 쫓아다닐 틈이 없었던 것이다. 저녁이면 그는 녹초가 되어 돌아와 아무 말 없이 수프만 먹었다. 잔 아주머니라고 불리는 누이는 종종 그 옆에 앉아 돼지고기, 또는 양배추 속 같은 그의 음식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그의 접시에서 떠다가 아이들에게 주곤 했다. 그러면 그는 식탁에 바싹 엎드려 머리를 수프 접시에 처박다시피 하고서, 긴 머리카락을 접시 가로 늘어뜨리고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척 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파브롤에는 장 발장의 오두막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길 건너편으로 마리 클로드라고 불리는 소작인 아낙네가 있었다. 늘 허기져 있는 장 발장의 아이들은 가끔 어머니 심부름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는 이 마리 클로드한테 가서 우유를 한 되 얻어다가 생울타리 뒤나 길 모퉁이에서 서로 우유 그릇을 빼앗아 가며 마시곤 했는데, 너무 급히 서두르는 통에 작은 계집 아이들은 흔히 턱밑이나 앞치마 위에 엎지르는 것이었다. 만약에 어머니가 그런 속임수를 알았다면 호되게 야단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장 발장은 퉁명스런 말투로 투덜대면서도 누이 몰래 클로드에게 우유값을 치러 주었으므로 아이들은 벌을 받는 일이 없었다. 그는 나뭇가지를 치는 계절에는 하루에 24수씩 벌었다. 그리고 추수를 거드는 일이라든지 잔손일, 농가의 소몰이, 혹은 인부로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다 했다. 누이 역시 일을 하긴 했지만, 아이들이 일곱이나 있었던 만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갈수록 가난에 쫓기고 몰리는 비참한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혹독한 겨울이 왔다. 장 발장은 일이 없었다. 집에는 빵이 없었다. 그야말로 한 조각의 빵도 없었다. 어린 아이들이 일곱이나 있는데도! 어느 일요일 저녁, 파브롤의 성당 앞 광장에 면한 빵집의 주인 모베르 이자보는 막 잠이 들려다가 가게의 창살 달린 유리 진열장이 쨍그랑 하고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 보니 창살과 유리를 한꺼번에 주먹으로 깨뜨린 구멍으로 팔 하나가 쑥 들어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팔은 빵 하나를 움켜쥐고 나갔다. 이자보는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도둑놈은 쏜살같이 달아났다. 이자보는 그를 쫓아가 붙잡았다. 도둑놈은 이미 빵은 내던져 버렸으나, 그 팔에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도둑은 바로 ‘장 발장’이었다. 이것은 1795년에 일어난 일이다. 장 발장은 ‘밤중에 남의 집에 침입하여 도둑질을 한 혐의’로 재판소에 불려 나갔다. 그는 오래전부터 소총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총을 쏘는 솜씨에 있어서는 어떤 명사수에 못지않았다. 또 가끔 밀렵도 했다. 그것이 그를 불리하게 만들었다. 밀렵자라고 하면 당연히 나쁜 놈 취급을 해 버린 것이다. 밀렵자는 밀수입자와 더불어 비적과 비슷하게 취급된다. 그러나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이러한 자들과 도회지의 끔찍스런 살인자들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밀렵자는 숲 속에 살고 밀수입자는 산 속이나 바닷가에 산다. 도시는 부패한 인간을 만들고, 또한 잔인한 인간을 만들어 낸다. 산과 바다와 숲은 야성인을 만들어 낸다. 산과 바다와 숲은 인간의 거친 면을 키워 주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면을 파괴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장 발장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문(法文)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우리들의 문명 사회에는 끔찍스런 순간이 있다. 형법이 인간의 파멸을 선고하는 때가 바로 그러하다. 사회가 그 옷자락을 거두어 가 버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을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다 내팽개치는 순간은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장 발장은 5년형을 선고받았다. -빅토르 위고,‘레 미제라블´ ●지문의 배경 이해하기 이 작품은 인도주의적인 세계관으로 일관된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서사시적 작품이다. 작가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자가 한 사제(司祭)의 자비심으로 선악에 눈뜨게 되고, 사회에 항거해 가면서 고민하다가 점차 순화되고, 성화(聖化)되어 죽음에 이르러서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찾게 되는 영혼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청년 장 발장은 한 조각의 빵을 훔친 죄로 19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한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에게 하룻밤의 숙식을 제공해 준 신부의 집에서 은촛대를 훔쳤다가 다시 체포되어 끌려가게 되었을 때, 밀리에르 신부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 은촛대는 자기가 장에게 준 것이라고 증언하여 그를 구해 준다. 여기서 장은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뜨게 되어 마들렌이라는 새 이름으로 사업을 하여 재산을 모으고 시장으로까지 출세한다. 그러나 경감 자베르만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그의 뒤를 쫓아다닌다. 때마침 어떤 사나이가 장 발장으로 오인되어 체포되고 벌을 받게 되었을 때, 장은 스스로 나서서 그 사나이를 구해 주고 감옥에 들어간다. 그러나 곧 탈옥하여 예전에 자기가 도와주었던 여공의 딸 코제트가 불행한 생활에 빠져 있는 것을 다시 구출하여 경감의 눈을 피해서 수도원에 숨겨준다. 코제트는 그때 공화주의자인 마리우스와 사랑하게 된다. 장은 1832년 공화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구출하여 코제트와 결혼시킨다. 장 발장의 신분을 알게 된 마리우스는 일시 그를 멀리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그에게로 돌아온다. 장 발장은 코제트 부부가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둔다. 결국 이 작품은 중세 계급 사회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의 한 개인의 수난사를 그리고 있다. ●출제의도 제시문은 주인공 장 발장이 잘 살아 보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노력하지만, 가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은 빵을 훔치다가 체포되는 내용이다. 이런 문제를 통해 가난을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차원의 구조적인 문제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 의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빈곤 문제는 어떤 사회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관심거리가 될 수 있고, 개인의 문제를 떠나서 사회 문제화됨으로써 그 사회 자체의 존립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주된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는 그 원인이 개인에게 있든 사회에 있든 간에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그 대책은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보느냐, 사회적 차원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빈곤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볼 때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회 제도를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모든 국민들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복지 국가를 지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 발장의 행위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국가가 져야 한다는 관점을 지닐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사회 문제가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해 보도록 하고, 그와 관련된 논의 전개 능력을 평가하고자 하는 데 출제 의도가 있다. ●생각하기 이 논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빈곤 문제를 개인적 책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사회 복지 정책의 관점에서 빈곤 문제를 국가가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빈곤 문제를 개인적인 책임으로 본다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부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빈곤 문제는 개인적 차원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관점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장 발장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가 지닌 구조적 모순이라는 측면에서 빈곤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IMF 경제 위기 이후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빈곤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런 현상을 순수하게 개인의 노력에 의해 극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이 논술문의 서론에서는 빈곤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보는 입장과 사회에 있다고 보는 입장이 있음을 정리하고, 전자의 주장에는 문제점이 있다는 정도로 내용을 제시하면 다루려는 논의의 방향도 정리가 된다. 둘째 논점은 현대 사회가 지향하는 복지 국가의 관점에서 국가가 빈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구체적인 활동으로 사회 보장 제도의 실시나 각종 국가 정책을 제시하면 될 것이다. 빈곤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모순점과 관련이 있으므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책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을 본론에서 언급해야 한다. ●어떻게 쓸까 이 문제는 가난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국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그러므로 주제의 방향은 사회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잡을 수 있다. 먼저 서론 부분에서는 문제의 출제 의도를 고려하여 빈곤 문제를 보는 관점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 빈곤 문제를 개인적 측면에서 볼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측면에서 볼 것인지에 대해 언급해 글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본론에 들어가서는 빈곤 문제를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관련된다는 측면에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빈곤 문제가 개인적 노력으로 쉽게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토대로 가난 대물림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그것의 구체적인 예로 제시문에 드러난 장 발장의 예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논의의 심화를 위해서 빈곤의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보는 관점의 문제점을 제시하면 좋다. 실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기회 균등의 보장,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의 보장 등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사회 복지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된다.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사회 복지 정책 등에 대해 언급하면 된다. 결론에서는 논의한 내용을 마무리하여야 하는데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적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좋을 것이다. 이석록 서울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일요영화] 젊은 숀 펜·데미 무어의 코미디

    ●천사 탈주(EBS 오후 1시50분) 성직자로 변장한 탈옥범들의 좌충우돌 코미디극이다. 박중훈 주연의 한국영화 ‘할렐루야’(1997)가 연상되기도 한다.‘크라잉 게임’(1992)으로 성공을 거둔 아일랜드 출신 닐 조단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 초창기 작품으로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했던 1955년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개봉 당시 관록파 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 변신에 실망하는 팬들도 있었고, 평단 반응도 좋지 않았지만 연출가로도 유명한 데이비드 머멧의 탄탄한 시나리오 덕택에 코미디 소품으로서는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특히 이제는 대배우로 성장한 숀 펜과,‘사랑과 영혼’(1990)으로 세계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데미 무어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 다른 흉악범이 탈옥하는 사이 엉겁결에 교도소를 빠져나오게 된 네드(로버트 드 니로)와 짐(숀 펜)은 시골 마을에 숨어든다.이윽고 이들을 쫓는 교도소장과 보안관 일행이 들이닥쳐 마을을 뒤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갖은 고생 끝에 신부로 변장해 수도원에 들어간다. 순진한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진짜 성직자로 오해, 서로 은총을 받으려고 애쓴다. 그런 가운데 네드는 억척스러운 마을 여인 몰리(데미 무어)에게 반하게 되는데….1989년작.120분.
  • [사설] 개신교의 ‘투기 자성’ 참신하다

    최근 개신교를 중심으로 교회가 부동산 투기에 나선 것을 반성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일부 교회는 부동산 차익을 사회에 환원키로 알려진 것은 신선하다. 사회의 비난을 받기 전에 교회측이 반성을 촉구하고 개선안을 제시한 것은 일반인에게도 귀감이 되는 종교인의 자세로 보인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향상교회’는 현재의 예배당 터를 팔아 근처 부지로 이전하면서 얻게 될 차익 40억여원을 가난한 사람이나 지역사회에 기부하기로 신도들이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또 서울 강남의 ‘사랑의 교회’와 ‘서울영동교회’가 부동산 투기가 잘못이란 입장을 각각 기도와 특별설교를 통해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는 목사와 선교사 등 91명으로 구성된 ‘성경적 토지 정의를 위한 모임(성토모)’이 ‘토지 정의를 위한 기독인 선언’을 통해 “많은 중대형 교회들이 예배당과 기도원, 수도원과 교인묘지 건축을 빙자해 부동산 투기를 하면서 교회를 성장시켜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독교인들은 부동산 투기로 번 돈을 십일조와 감사 헌금으로 내고 목회자는 그것을 축복해왔다.”며 반성을 촉구했다. 전국의 부동산값이 오르면서 교회도 보유 부동산에서 엄청난 시세 차익을 얻은 것으로 추산되지만 성토모 주장대로 예배당과 기도원 건립 등의 명목으로 일부 교회가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적이다. 종교단체는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가 면제된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어도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여지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개신교 일각에서 교회나 종교인들이 스스로 부동산 투기를 반성하고 차익을 사회 환원하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다른 종교단체에도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프랑스인들의 지극한 ‘문화유산 사랑’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프랑스인들의 지극한 ‘문화유산 사랑’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인들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은 남다르다.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제대로 관리하기 위한 노력도 대단하다. 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문화유산도 자부심을 더한다. 프랑스 정부는 이같은 국민들의 문화적 열정을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전국에 산재한 문화유산의 정비 및 복원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 위에 문화재 관련 공공·민간 단체들과 교육기관, 전문가 집단, 그리고 기업 메세나가 이를 뒷받침한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열정을 쏟아붓는 것을 보면 ‘문화예술 대국’이란 명성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베르사유 복원은 거대 국가 프로젝트 파리 남서쪽 약 20㎞에 있는 국립박물관 베르사유궁은 프랑스인들이 가장 아끼고 자랑하는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다. 이곳의 역사적 의미도 깊거니와 찬란했던 프랑스의 영광을 대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루이 14세가 1661년부터 건축가 루이 르보, 화가 르 브룅, 정원사 르 노트르 등으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건설하게 한 이 궁전은 1682년 공식적인 프랑스의 왕궁이 됐으며 1789년 대혁명까지 107년간 프랑스의 정치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03년 10월 베르사유 복원계획 ‘그랑 베르사유(le Grand Versailles)’를 수립했다. 오는 2020년까지 장장 17년동안 지속되는 거대 국가 프로젝트다. 베르사유궁 역사박물관 피에르 아리졸리-클레망텔 관장은 “베르사유궁은 프랑스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며,17세기 최고 수준의 예술이 집적된 문화유산”이라며 “그러나 대혁명으로 많은 부분이 훼손됐고,4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수차례의 복원과 개조를 거치면서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랑 베르사유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은 “혁명이전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의 전문가도 복원작업 참여 베르사유 복원 작업은 17세기 예술 전문가와 역사학자, 회화 복원 전문가, 조경전문가, 건축가 등으로 구성된 과학자문위와 역사유물 최고위원회, 베르사유궁 행정자문위 등의 의견을 취합해 진행된다. 영국, 이탈리아, 독일 등에도 베르사유궁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진 궁들이 있기 때문에 외국의 전문가들도 복원작업에 다수 참가하고 있다고 아리졸리-클레망텔 관장은 설명했다. 그랑 베르사유 프로젝트와 별도로 정원 뒤편의 숲에서는 지난 1999년 겨울 태풍으로 쓰러진 떡갈나무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정없이 몰아친 강풍에 수령 수백년의 떡갈나무들이 1000그루 가까이 뿌리째 뽑혀 나가자 정부는 즉각 4000만프랑(615만유로)의 특별 지원기금을 조성,10년간 진행될 정원 복원공사를 시작하도록 했다. 정원사들과 수목학자들은 쓰러진 떡갈나무와 같은 품종을 찾아 나무를 키우고, 쓰러진 자리에 다시 심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일부가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그랑 베르사유’프로젝트는 총 3단계에 걸쳐 진행되며 현재 1단계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 중이다.1억 3500만유로(약 1729억 6300만원)가 투입되는 1단계(2003∼2009년) 사업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부분들의 보존 및 복원작업과 함께 쾌적한 관람환경을 만드는 작업이 중심이 된다. 2단계(2010∼2015년)는 북쪽 날개관과 그랑 트리아농, 프티 트리아농이라 불리는 별궁을 복원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건설 당시 북쪽 날개관 중앙에는 중앙계단이 있어 거대한 궁전의 동선과 안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1837년 역사박물관 구조변경 작업으로 철거됐다. 이 중앙 계단을 재건하고 내부 뜰을 복원하는 작업이 계획돼 있다. 3단계(2015∼2020년)에는 중앙 날개관을 복원하는 작업과 함께 왕실 마구간을 전시실로 개조하게 된다. 르 노트르의 역작인 정원의 중앙부와 북부, 넵튠 분수의 복원과 그랑카냘(대운하)의 정비작업도 포함됐다. ●기업 메세나의 적극적 후원 그랑 베르사유 프로젝트의 구심점은 국가이지만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충당해 주는 기업 메세나들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프랑스 기업인들의 뜨거운 문화사랑이 복원사업의 바탕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주차장 운영 및 건설업체인 뱅시(VINCI)는 프랑스 기업 메세나 사상 가장 큰 액수인 1200만유로를 들여 베르사유궁의 꽃으로 불리는 ‘거울의 방’ 복원작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리석, 도금, 청동, 거울 및 크리스털이 주요 장식재료로 사용돼 호화로움이 극치를 이룬 ‘거울의 방’은 특히 르 브룅이 루이 14세의 생애를 고대화풍으로 그린 천장화가 유명하다. 뱅시 메세나의 올가 지아코모니 학예관은 “복원작업은 벽 유리의 손상된 부분을 교체하고, 나무 바닥을 17세기의 나무 마루로 되돌리고, 장식의 먼지를 털어내며, 르 브룅의 천장화를 복원하는 작업들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BNP파리바은행이 귀족의 방 천장화 복원을 지원했으며 로레알은 루이 15세의 옛 목욕실과 화장실을 복원하는 데 50만유로를 쾌척했다. 일본 기업 닛케이는 루이 16세의 의상 보관실을 복원해 주기로 하는 등 국내외 기업 메세나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문화유적지 4만여곳에 국보만 13만종 르노 돈느듀 드 바브르 문화장관은 지난 6일 ‘문화유산의 날’ 행사 설명회장에서 “우리의 문화유산은 곧 프랑스의 이미지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며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가꾸는 것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임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2004·2005년도 회기에 총 4억 8500만유로를 문화유산의 복원과 정비에 투입했다. 내년도(2005·2006년)에는 이보다 1억유로 정도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돈느듀 드 바브르장관은 밝혔다. 문화부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전국에는 4만 2059곳의 보호대상 문화유적지가 있다. 이 가운데 1만 4232곳이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역사적 유적지로 지정됐고,2만 7827곳이 국가 문화유적지 대장에 등재돼 있다. 또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만 13만종, 국가 문화유적지 대장에 등재된 문화재가 12만 8000종에 이른다. lotus@seoul.co.kr ■ ‘문화유산의 날’ 22돌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인들은 매년 9월 세번째 주말 전국적으로 ‘문화유산의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날 대통령궁인 엘리제궁부터 상원 회의실 등 공공건물을 비롯해 수도원과 수녀원과 같은 종교 건물, 개인 소유 성(城) 등 전국의 유서깊은 건물과 명소들이 무료로 공개되고 프랑스 국민들은 보기 힘든 명소를 맘껏 둘러보게 된다. ‘문화유산의 날’ 행사는 지난 1984년 당시 문화부 장관인 자크 랑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행사 의도처럼 보다 많은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엔 약 1200만명이 문화유산의 날 행사를 계기로 문화유적지와 평소 방문하기 힘든 명소들을 찾았을 정도로 매년 행사 참가자가 늘고 있다. 올해로 22번째인 문화유산의 날은 9월17·18일 이틀.‘우리의 문화유산을 사랑한다(J’aime mon Patrimoine)’라는 슬로건을 내건 올해 행사에는 전국의 역사적 건물 1만 5480곳이 공개된다. 지난해에 1만 4000곳이 공개된 것에 비해 1500곳 정도가 늘어났다는 점에서도 이 행사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각종 문화재와 박물관, 공공 건물이 밀집한 파리 지역에서만 1329곳이 이날 시민들을 맞이한다. 올해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곳은 파리 그랑팔레(Grand Palais).12년 간의 재정비 작업 끝에 문화유산의 날에 맞춰 다시 문을 연다.‘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고 일컫는 19세기 말의 화려한 아르누보 스타일을 대변하는 그랑팔레는 1900년 만국 박람회 때 세워졌다. 그러나 곧바로 구조적인 취약점이 드러나고 1910년 센강 범람 때 피해를 입어 몇차례 보수를 받다가 1993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공사에 들어갔다. 총 1억 136만유로가 투입된 재정비 공사에서는 지하에 2000개에 가까운 콘크리트 기둥을 박아 건물 전체를 지지하도록 했고 대형 유리 돔도 복원했으며 야간 조명시설과 음향시설도 새로 갖췄다. 뤽상부르 공원 북측에 있는 상원 건물은 엘리제궁과 함께 문화유산의 날에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장소 중의 한 곳이다. 워낙 볼거리가 많은데다 평소엔 입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원형의 대회의장,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있는 도서관, 왕관 전시실 외에 경제부문 법안을 심의하는 클레망소 룸 등 18세기에 지어진 뤽상부르 궁의 구석구석이 공개된다. 상원의장 관저도 공개돼 1625년 마리 드 메디치 왕비를 위해 지어진 왕실 교회당과 겨울궁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행사엔 3만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문화유산의 날 행사는 유럽 각국으로 퍼져 ‘유럽 문화유산의 날’로 확대돼 9월 한달 내내 각종 행사와 함께 진행된다. 프랑스인들은 역사적 건물, 미술품, 도서 등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데뿐만 아니라 더 많은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향유하도록 하는 제도와 이벤트를 마련하는 데서도 앞서나가고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lotus@seoul.co.kr
  • ‘다빈치 코드’ 보는 듯한 성서 미스터리물

    제작 뤽 베송, 프랑스 영화의 저력을 상징하는 배우 장 르노, 그리고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꽃미남 스타 브누아 마지멜.1일 개봉한 ‘크림슨 리버 2’(Crimson Rivers 2)는 이들의 조합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미스터리 액션이다.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살인사건의 긴장과 스릴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전편에 비해 액션의 규모는 한층 더 커졌다. ‘제5원소’의 역동적 에너지와 ‘택시’에서의 스피드를 두루 아우른, 뤽 베송의 장기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액션물이라 해도 좋겠다. 유서깊은 수도원 벽의 그리스도상에서 피가 흐르는 괴기한 사건이 일어나자 파리에서 급파돼 진상조사에 나선 형사 니먼(장 르노)은 벽 속에서 사체와 함께 의문의 암호를 발견한다. 마약반 신참 형사 레다(브누아 마지멜)는 근무중 만난 예수를 닮은 상처입은 남자를 급히 병원에 입원시키지만, 이후 검은 옷을 입은 수도자의 공격을 받게 된다. 니먼과 레다 형사는 살인사건과 신출귀몰하는 수도자의 공격에 연관성이 있음을 직감한다. ‘요한계시록의 천사들’이라는 부제를 단 영화는 성서의 기호학적 비밀들을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단서로 끌어들인다. 요한계시록, 최후의 만찬,7개의 봉인, 몬타니스트(2세기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파생된 가톨릭의 한 교파) 등 성서를 둘러싼 소재들이 난수표처럼 끼어들어 미스터리 살인사건을 갈수록 미궁에 빠트린다. 관객에게 수준높은 지능게임을 청하며 출발한 영화는 그러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의 명석함을 자랑하진 못한다. 일순간에 허가 찔리는 명쾌한 반전장치를 고대한다면 허술한 결말에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법하다. 성서의 기호학적 단서들이 줄줄이 나열되지만 그들이 무릎을 치게 할 만큼 치밀한 논리로 고리를 끼우는 데는 실패했다. 평범한 할리우드 방식의 미스터리물로 주저앉았으나, 공식을 충실히 따른 액션영화에 만족할 준비가 돼있다면 그래도 본전생각은 나지 않을 듯. 장 르노의 노련미, 브누아 마지멜의 신선함이 어우러진 긴장감 넘치는 짝패 연기가 평균점수는 챙긴다. 줄리엣 비노쉬의 연인으로 소문난 브누아 마지멜은 2001년 ‘피아니스트’로 칸국제영화제 최우수남우상을 받았다. 프랑스의 인기 스릴러 작가 장 크리스토퍼 그랑제가 전편과 마찬가지로 각본을 썼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좌충우돌 모험 獨하네 방학이 끝나 한동안 허탈(?)할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제격일 독일영화가 있다. 1일 개봉한 ‘에밀과 탐정들’은 어린 주인공들의 좌충우돌 활약상을 담아 어린 관객들의 눈높이에 정조준한 어린이 영화. 세계 200여개국에 번역출간돼 큰 인기를 모았던 독일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독일의 작은 시골마을. 간신히 일자리를 얻은 아빠(카이 와이싱어)가 다시 교통사고를 당해 꼼짝없이 병원신세를 지자, 에밀(토비아스 레찰프)은 베를린에 있는 담임선생님의 누이 집에 더부살이하게 된다. 그러나 베를린으로 떠나는 열차 안에서 전재산인 150마르크를 악당 막스(주르젠 보겔)에게 빼앗긴 뒤 새로 사귄 친구들과 힘을 합해 악당을 뒤쫓는다. 뚜렷한 선악구도 속에서 아이들의 용기와 호기심이 동력이 되는, 전형적인 어린이 모험드라마. 에밀의 동선을 따라 독일의 한가로운 전원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도 할리우드산에서는 찾을 수 없는 감상의 묘미이다. 전체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고]

    ●김정훈(변호사)손승태(중소기업은행 감사)씨 빙부상 9일 일본 도쿄, 빈소 삼성서울병원(12일 오후 5시), 발인 15일 (02)3410-6915,3153●전찬홍(농업)찬구(교육인적자원부 정책홍보담당관)찬규(단암전자통신 대표)찬주(충주대 교무과장)씨 부친상 11일 충북 보은 금강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8시 (043)542-9678●이창복(사업)씨 모친상 인배(성남중부경찰서 형사과 형사지원팀장)씨 조모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010-2263●유신영(사업)성영(〃)주영(〃)상영(건일건설 전무)충영(원우프라자 대표)씨 모친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2)3010-2291●장치원(전 인천 박문여고 교사)석훈(전 가르멜수도원 수사신부)씨 부친상 전순천(전 충주 축협 전무)조의현(서울서초구 방배1동장)씨 빙부상 10일 인천 가천의대 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32)472-0873●변순호(에이스인쇄 대표)순천(사업)씨 부친상 김영준(KBS인적자원센터장)씨 빙부상 10일 고양시 관동대 의대 명지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31)810-5472●최준근(한국HP 사장)씨 부친상 11일 경남 거창 서경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30분 (055)940-5244●이종인(TBWA KOREA 대리)씨 부친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410-6917●박전개(서울복음교회 원로목사)씨 별세 11일 서울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2)2072-2016●박창수(서울경제 광고국)씨 모친상 11일 광주 빛고을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9시 (062)226-4441
  • 맘대路 멋대路 프랑스여행

    맘대路 멋대路 프랑스여행

    유행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가이드의 깃발을 쫓아 다니는 패키지 여행은 구시대 유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내맘대로’ 자유롭게 떠나는 선진국형 개별자유여행(FIT)이 새로운 추세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어디를 가보았다는 ‘점찍기식’ 여행에서 벗어나 나만의 여행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젊은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유럽의 관문인 프랑스를 FIT로 직접 다녀왔다. 쪽빛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초록빛 계곡과 드넓은 초원을 따라 파리에서 노르망디, 루아르, 꼬뜨 다쥐르, 프로방스까지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렌터카와 지하철, 버스, 프랑스 철도와 연안 여객선, 조그만 지방 철도에도 올랐다. 여행도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멋진 풍경을 만났다. 에펠탑이나 니스해변 등 여행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명소들보다 프랑스의 푸른 자연속에 숨겨진 비경들이 더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줬다. 그렇다고 패키지 여행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크게 어렵지도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전정신과 철저한 준비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기자가 다녀온 10박 11일간의 프랑스 여행을 소개한다. ■ 도움말 MK유럽, 레일유럽, 프랑스관광청 프랑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여행, 이렇게만 하면 준비가 반이다 준비에 많은 시행착오가 뒤따랐지만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준비에 노력한 만큼 편하고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시간이기도 했다. 출발 한달전.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항공과 숙박, 이동수단 등의 순으로 여행의 골격을 잡았다. 항공편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에어프랑스 홈페이지에서 특가 상품을 찾아냈다.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는 니스행 항공권으로 항공료 79만 9000원에 파리 스톱오버(경유지에서 24시간 이상 체류하는 것) 비용 10만원, 세금 10만 9000원 등 모두 100만 8000원. 정상 가격(130만∼180만원대)보다 많이 쌌다. 일본이나 두바이 등을 경유하는 60만∼80만원대 항공편도 있었지만 편하고 빠른 직항편을 택했다. 숙박은 유럽지역 호텔 예약 전문업체인 MK유럽(02-719-0461)을 통해 일정에 맞는 주요 도시에 호텔을 정했다. 인터넷에 숙박예약 사이트가 많지만 MK유럽은 국내 여행사 등에 호텔을 공급하는 다국적 호텔 체인업체로 훨씬 저렴하다. 숙박은 특급부터 일반 호텔까지 다양하며, 숙박비는 문의해 경비에 맞추면 된다. 교통수단의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 등 단거리 이동은 현지에서 해결하면 되지만 철도나 렌터카 등은 국내에서 예약하는 것이 편하고 저렴하다. 유럽 지역의 철도는 레일유럽 한국사무소가 있는데 개인 예약은 받지 않으며, 서울항공(755-1144)과 걸리버(2170-6500),RTS(722-4033)에서 대행한다. 렌터카는 허츠나 에이비스, 알라모 등의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개별 여행인 만큼 휴대전화 로밍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통신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략 분당 발신은 1000∼2000원, 수신은 400∼500원이다. 여행자 보험은 출국직전 공항에서 가입하면 된다. 비용은 보상액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사망 1억원, 상해치료 2000만원, 질병치료 1000만원, 휴대품 분실 40만원의 경우 10일에 1만 5000∼2만원선이다. 여행 준비물로는 인터넷 등을 통해 자기가 가볼 곳에 대한 여행정보를 미리 찾아 준비하고, 프랑스 여행서적 2권 정도를 지참하면 좋다. 특히 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광지는 불어 안내서밖에 없는 만큼 불어 사전도 지참하면 요긴하다. 이 정도만 준비하면 여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기타 현지 여행 정보는 기사의 <ⓘ>를 참고하면 된다. ◆ DAY1 몽마르트르, 야경에 취하다 ●설렘과 걱정, 파리에서의 첫날밤 ‘잠시후 샤를르 드골공항(CDG) 도착하겠습니다.’현지 시간 오후 6시40분(국내 시간 새벽 1시40분). 파리 도착을 알리는 대한항공 KE 901편 기장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창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파리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그저 파랗기만 하다. 오후 1시55분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는 12시간을 날아왔지만 파리는 한낮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쬔다.‘뭘 해야하나?’ 첫 숙박지를 찾는 것조차도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목적지는 파리시내 북쪽에 위치한 ‘포레스트 힐 라 빌레트’(Forest Hill La Villette). 시내 지도를 펴고 한동한 고민한 끝에 고속전철(RER)과 지하철을 타는 것이 찾기 쉬울 듯싶어 공항 RER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RER 티켓(8.75유로)과 지하철표를 10묶음 단위로 할인 판매하는 ‘카르네’(carnet)를 구입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함께 탈 수 있는 티켓 1장은 1.30유로지만 카르네는 10유로. <ⓘ-1> 처음 타본 RER는 후텁지근했는데 무엇보다 내릴 역에 대한 안내방송이 없어 당혹스러웠다.RER는 20분만에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도착했고, 지하철 2,7호선으로 갈아타고 ‘포르트 드 라 빌레트’(Porte de la Villette)역 에 내렸다. 지하철 역시 안내방송이 없어 역구내의 간판을 보면서 내릴 곳을 가늠해야 했다. 지하철 문도 우리와 달리 수동식으로 내릴때 녹색버튼을 누르거나 손잡이를 손으로 돌려서 열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호텔 프런트에 ‘호텔 바우처’(호텔 예약서)를 보여주고 방을 얻은 뒤 짐을 풀었다. 별 3개인 호텔 숙박료는 조식을 포함,1박에 210유로. <ⓘ-2> ●젊음이 가득한 몽마르트르 언덕 밤 9시.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가기위해 과감히 방을 나섰다. 지하철 7,2호선을 타고 앙베르(Anvers)역에 내려 사크레쾨르 사원이 있는 언덕을 올라갔다. 순백의 성당 잔디에는 늦은 시간에도 많은 인파로 붐볐고, 언덕위의 노천 식당 테라스는 활기가 넘쳤다. 배가 고파왔다. 성당 아래 ‘레테 앙 팡트 두스’(L´ete en Pente Douce)라는 작고 예쁜 식당을 찾았다. 식사는 ‘오늘의 요리’로 치즈와 토마토, 돼지고기 등을 넣은 샐러드 ‘살라드 뒤 뮐레’(11유로)로 양이 무척 많다. 팁은 식탁에 놓고 나오면 된다. <ⓘ-3> 순백색 조명을 밝힌 성당을 올라가자 야경을 감상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남녀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했지만 너무 자주 보여(?) 금방 익숙해 졌다. 이어 성당을 끼고 오른쪽길로 올라가면 몽마르트르 언덕이 나타나는데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10여명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밤 12시 호텔로 돌아와 파리의 첫날밤을 지냈다. 한국 시간으로 치면 아침 7시로 밤을 꼴딱 세운 셈이다. <ⓘ-4> ◆ DAY2 센강은 좌우를 나누지 않는다 ●쪽빛 하늘을 따라 도심을 걷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물빛이 창밖에서 쏟아진다. 그 빛에 놀라 잠을 깬 것은 오전 5시. 시차 탓에 빨리 일어난 것이다. 호텔에서 간단히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은 뒤 본격적인 시내 관광에 나섰다. 오전 8시. 지하철을 타고 파리의 중심인 시테(Cit)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했다.<ⓘ-5> 시테역에 내리자 고딕 건축의 최고 걸작인 대성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닥에는 파리 중심석이 새겨져 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비취는 성당 내부는 장엄함과 엄숙함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이어 걸어서 파리의 중심을 흐르는 센(Seine)강을 건넜다. 강폭은 넓지 않았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파리 3·4대학(소르본대학)을 거쳐 뤽상부르 공원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앙리 4세의 왕비가 세운 공원으로 넓이가 25만㎡에 이른다.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깎아놓은 나무과 넓은 잔디밭. 잔디에 누워 하늘을 봤다. 구름 한점없는 하늘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죽은자들의 세계 카타콩브 찌는 듯한 더위는 시원한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지하묘지 카타콩브(Catacombes·입장료 5유로). 사전 지식이 없이 들어간 지하묘지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주택가 한복판에 만들어진 지하묘지로 800m에 이르는 동굴안에 인골 600만기가 안장돼 있다. 낮 12시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관광객이 거의 없다. 나선형 계단을 땅속으로 내려가자 어두컴컴한 동굴안에서 서늘함이 밀려왔다. 기온은 11∼12도. 밖의 날씨와 비교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다 못해 춥다. 가로 1.5m, 높이 3m의 동굴을 따라 100m쯤 걸어들어가자 유골이 동굴 양 옆으로 빼곡하게 쌓여 있다. 출구까지는 45분이 걸린다. 밖으로 나와 인근에 있는 ‘와자’(Wadja)라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는 식당이다. 매일 바뀌는 오늘의 메뉴는 전채요리와 메인요리, 디저트 세 가지로 구성된다. 전채요리는 꽃양배추 샐러드, 메인요리는 생선과 쇠고기, 디저트는 과일프루츠나 치즈빵 중에 고르면 된다. 발품을 팔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맛있다. 가격도 14유로로 비교적 저렴하다. 몽파르나스 묘지는 철학자 사르트르와 시인 보들레르, 소설가 모파상 등 저명인 100여명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인근 주민들에게는 공원처럼 편안한 곳이다.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집을 찾아 지하철을 타고 7호선 퐁마리(Pont Marie) 역에 갔다. 역에서 나와 퐁마리 다리를 건너 첫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보이는 ‘베르티용’(Berthillon)이라는 집이다. 유사한 아이스크림 집이 많아 헷갈리기 쉽지만 간판에 ‘31번’이라고 쓰인 집이 원조다. 가격은 1컵짜리가 2유로,2컵짜리가 3.5유로다. <ⓘ-6> 휴식도 여행의 일부. 오후 8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7> ⓘnformation center ⓘ-1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RER와 버스, 택시 등 다양하다.15∼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에어프랑스 버스의 경우 편도 11.50유로 정도이며, 택시는 도심까지 40∼50유로(야간 20% 할증)다. 환율은 1유로에 1240원 정도. ⓘ-2 이는 공시 가격으로 국내에서 예약하면 훨씬 저렴하다. 호텔 숙박료는 대도시와 지방,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지방 도시의 별 1∼2개짜리 호텔이 40∼80유로다. 별 3개 이상은 100∼300유로 선이다. ⓘ-3 팁은 음식값이나 택시요금의 10% 정도지만 식당에서는 통상적으로 2∼3유로 정도면 된다. ⓘ-4 항공권은 에어프랑스 티켓을 끊었지만 왕복 대한항공을 이용했다. 인천∼파리행은 오전 10시25분, 오후 1시55분 두차례 있는데 오전은 에어프랑스, 오후는 대한항공이 운항된다. 두 항공사가 코드셰어(좌석공유)를 해 두 곳 중 저렴한 항공사에서 티켓을 끊으면 된다. 돌아오는 항공편은 오후 1시15분,9시50분에 있다. 에어프랑스 티켓으로도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다. ⓘ-5 지하철은 14호선까지 있으며, 운행은 오전 5시30분부터 자정넘어(0시30분)까지 운행한다.1·3·5일권인 파리비지트 패스(www.parisvisite.co.kr) 등 다양한 할인 티켓 제도가 있지만 하루에 티켓이 2∼3장 정도면 충분한 만큼 카르네가 간편하다. ⓘ-6 프랑스 거리는 집 주소만 알면 지도 한장만 들고도 어디든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잘 정비돼 있다. 지도에 표시된 도로 번호를 따라 가면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다. ⓘ-7 프랑스 전원은 220V로 우리나라와 같다. 자기전 카메라와 캠코더 등을 충전하면 된다. ◆ DAY3 전원 드라이브, 느림을 즐기다 ●파리의 명물 에펠탑과 개선문 전날 너무 일찍 잠을 청한 탓에 눈을 떠보니 새벽 2시. 잠이 오지 않아 오후부터 시작될 렌터카 여행을 준비했다. 책을 펴고 오를리(Orly) 공항에서 노르망디 지역의 수도원 몽생미셸로 가는 길을 연구했다. 전날 5유로 주고 구입한 미슐랭(Michelin) 프랑스 전도를 펴고 고민하는 사이 어느 덧 날이 밝았다. 오전 일정은 에펠탑과 개선문. 식상하리만치 유명한 파리의 상징물이지만 빼놓을 수는 없었다. 오전 8시 에펠탑을 향했다. 에펠탑은 6호선 트로카데로(Trocadero)역과 비르아캥(Bir-Hakeim)역에서 내리면 갈 수 있다. 샤이요(Chaillot) 궁전도 구경하면서 내려갈 겸 트로카데로 역에서 내렸다. 멀리 샹드 마르스 공원과 에펠탑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1898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에펠탑은 높이 320m로 3개 층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이어 샤를르 드골 에투알(Charles de Gaulle Etoile)역에서 내려 개선문을 본 뒤 콩코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넓은 도로를 따라 유명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있다. 오를리 공항을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센강을 따라 앵발리데(Invalides) 옆에 있는 에어프랑스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센강 유람선을 타는 바토뮤슈 승선장에는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유람선 관광에 나섰다. 센강과 어우러진 에펠탑의 풍경이 장관이다. 퐁데 앵발리드 다리와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앵발리드 공원을 지나자 정류장이 나타났다. 도보로 30분. 오를리행 버스는 30분마다 1대씩 있는데 1인당 8유로다. 차비는 기사에게 내면 된다. 시내 교통이 막혀 공항까지 40분쯤 걸렸다. ●렌터카를 몰고 시골 풍경속으로 오를리 웨스트 공항 허츠 렌터카 데스크에서 한국에서 예약한 바우처와 함께 국제면허증, 신용카드를 내밀자 손쉽게 수속을 끝냈다. 직원은 프랑스내 호텔 주소를 물은 뒤 “한번도 안 탄 새차를 빌려 주겠다.”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수속을 마친 뒤 터미널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렌터카는 이제 막 출고된 소형 벤츠. 타코미터(운행기록장치)에 36㎞라고 찍힌 갓 출고된 차량이었다.<ⓘ-8> 오후 1시30분. 무작정 공항을 빠져 나왔다. 낯선 곳에서의 운전, 낯선 차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왔다.‘괜히 빌렸다.’는 후회도 들었다. 렌터카 직원이 “공항을 나가 5분쯤 파리 시내쪽으로 가다가 ‘베르사이유’(Bersailles) 방향의 표지판이 보이면 그 길로 진입하라.”고 알려줬지만 긴장한 탓에 진입로를 놓쳤다.10여분쯤 헤매다 결국 차를 세운 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겨우겨우 고속도로에 오를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편도 3차로의 차선중 모든 차가 가장자리의 차선을 이용한다는 것. 추월할때만 1·2차선을 이용했다.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130㎞, 비가 올 때는 110㎞. 차들은 운전경력 15년인 나도 별로 내본적이 없는 170∼190㎞의 속도로 말그대로 쌩쌩 달린다.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지자 주변 경치가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벌판에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그림속의 풍경들이 계속 이어졌다. 긴장이 풀리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샤르트르 지방을 지나 고속 휴게소로 들어갔다.<ⓘ-9> 낯선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달린지 3시간. 국내에서 좋아하는 음악 CD 등을 가져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로 1시간쯤 달리자 오후 5시30분 몽생미셸에 도착했다. 널찍한 갯벌 사이로 난 긴 도로를 달리자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는 웅장한 수도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도원 앞 주차장(주차료 4유로)에 차를 세운 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성 내부 관람은 6시까지로 아쉽게도 입장이 마감됐다. 그렇지만 성안 마을 등은 돌아볼 수 있었다. 성안은 17세기의 마을 모습 그대로다. 고풍스러운 호텔, 식당, 매점, 기념품 가게 등이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살아있는 과거의 마을이다. 레스토랑 호텔인 ‘메르 풀라르’ 맞은편에 있는 유명한 비스킷 가게에 들러 버터와 우유가 듬뿍 들어간 ‘칼레트’ (9유로) 한상자를 샀다. 오후 8시쯤 성을 나와 숙소를 잡기로 했다. 다른 지역의 숙소는 서울에서 미리 예약을 했으나 이 지역은 렌터카 일정이 늦게 결정되는 바람에 숙소를 정하지 못했다. 몽생미셸에서 10분쯤 거리에 있는 성밖 마을에는 호텔들이 많았다. 그러나 차로 1시간을 달려 항구도시 생말로(St.Malo)에 도착했다. ●시골 피자집 아저씨의 미소 밤 9시. 생말로는 젊음의 활기가 넘쳤다. 해변에는 수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제트스키, 보트 등이 거친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숙소는 유스호스텔의 일종인 상트로 바트릭 바탕고 ‘오베르주 쥐네스’(Auberge de jeunesse). 건물이 아담하고 예쁜데다 해변 근처에 있어 인기가 높은 숙소다.2인실을 빌려 짐을 풀었다.(숙박료는 조식 포함 1인당 16.5유로). 방은 깨끗하고 넓었다. 직원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올 초부터 한국 배낭여행객들이 조금씩 찾고 있다.”며 2유로인 침대 커버를 무료로 건네줬다. 짐을 풀고 인근 ‘엘 파티오’(El Patio)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했다. 작은 피자와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자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 달아났다. 특히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피자집 아저씨의 미소는 두고두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음식값은 10유로. ⓘnformation center ⓘ-8 렌터카는 국내 대행업체에 전화로 예약하면 이메일로 바우처를 보내주는데 인쇄해서 가져가면 된다. 비용은 24∼27일(3박 4일) 72시간 빌리는데 89.59유로이며, 세금 등을 포함해 143유로 정도가 든다. 예약시 오토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국제면허증은 각 운전면허시험장에 가면 당일 발급해 준다. 인지대 5000원. ⓘ-9 휴게소는 우리나라 비슷하다. 주유소를 거쳐 들어가면 대형 슈퍼마켓과 화장실, 레스토랑이 있다. 톨게이트도 우리나라 체계와 비슷해 입구에서 표를 뽑은 뒤 나갈 때 돈을 지불한다. ⓘ-10 프랑스의 운전에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은 ‘선진입차 우선’인 교차로. 우리나라와 같은 사거리에는 대부분 로터리가 있는데 왼쪽에 진입한 차가 없으면 들어갈 수 있다. ⓘ-11 고성 투어버스는 투르역 광장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발하는 투어 차량이 있다. 반나절(5∼6시간), 하루코스(9시간) 등이 있는데 20∼40유로다. 입장료와 점심값은 별도다. ◆ DAY4 투르, 동화나라로 가는 길 ●생말로에서 투르까지 안개 낀 ‘그랑베 섬’(Rocheur du Grand Be)과 해안선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해변은 이른 아침부터 조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지는 해변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차를 몰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좁은 도로를 따라 가자 프랑스 최대의 항구답게 수백여척의 요트가 정박해 있고, 영국 등지로 떠나는 대형 여객선도 기적을 울리며 사람들을 불렀다. 오전 10시. 간단하게 숙소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루아르(Loire) 고성지역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속도로보다는 시골 국도를 달리고 싶은 마음에 국도를 따라 떠났다. 내리던 빗줄기도 점차 줄어든다.<ⓘ-10> 시골길은 무척 한적했다. 스쳐지나가는 하나하나의 풍경이 그림이다. 그래서 프랑스에 고흐, 고갱, 마티스 등 유명 화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스쳤다. 대형 지도를 따라 가다 보니 수차례 길을 잃었지만 그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그냥 주변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라발, 앙제시내를 거쳐 지나갔다. 기름이 거의 바닥이 가까워 온다. 주유도 하고 잠시 쉴 겸 다시 고속도로에 들렀다. 얼마쯤 달리자 휴게소다. 주유소는 셀프 주유다. 노랑, 파랑, 빨강 라벨의 주유기가 있어 어느 것을 넣어야 하나 잠시 고민. 근처에 있는 “주유원에게 어느 것을 넣어야 하느냐”고 묻자 ‘쉬페르 프르미에르’(Super Premiere)라고 쓰인 노란색 주유기를 가리켰다. 처음으로 직접 해보는 주유. 차의 주유기를 열고 넣자 45ℓ나 들어간다. 기름이 가득차면 저절로 멈춰 주유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기름값은 50유로로 따져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계산은 주유한 후에 중앙에 있는 계산원에게 가서 주유기 번호를 불러주면 된다. 투르로 향하는 길은 영화속에서나 봤음직한 전원 풍경 그대로다. 경치에 취해 차를 대놓고 쉬어가기를 여러번. 사나흘을 머물러도 좋을 듯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의 만남 오후 4시 ‘프랑스의 정원’으로 불리는 루아르 계곡에 접어들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1020㎞의 루아르 강을 따라 르네상스 시대의 왕후, 귀족들의 수많은 성이 흩어져 있다. 프랑스 전역에 약 5000개의 성이 있는데 이중 쉬농소·앙부아즈·랑제·앙제·블루아·쇼몽·슈베르니성 등 80여개가 이 곳에 있다.<ⓘ-11> 첫 목적지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무대가 된 위세(Uss)성. 투르시내에서 28㎞떨어진 곳으로 1485년에 건축됐다. 동화속의 성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첨탑이 주변 경치와 어울려 아름답다. 너무 조용해 정말 공주가 잠만 잘 수밖에 없었을 것처럼 고요하다. 사진은 성 앞에 있는 작은 강 뒤에서 찍는 것이 예쁘다. 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인근에 있는 아제 르 리도(Azay-le-Rideau)성으로 향했다. 성보다는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휴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점심은 인근의 ‘라망드’라는 식당에 들어가 오믈렛(8유로)으로 간단히 때웠다. 이어 빌랑드리(Villandry) 성으로 향했다.16세기 건축물로 르와르 고성중 가장 마지막에 곳.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 쉽지 않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성 관광’ 안내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아름다운 성이다. 각종 야채가 있는 정원, 장식정원, 분수정원 등 정원이 특히 아름답다. 내부와 정원 관광은 8유로. 오후 7시. 투르 시내에 예약한 ‘홀리데이 인 호텔’에 들어갔다. 기차역 앞에 있어 찾기 쉬웠다. 주차장에 들어가려면 먼저 호텔 체크인을 한 뒤 가로막을 통과할 수 있는 비밀 번호를 받아야 하며, 주차료 7유로를 내야 한다. 식사는 역 앞에 있는 ‘로데옹’(L´odeon)이란 식당.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민물고기 요리를 파는 곳으로 가격은 15∼20유로. ◆ DAY5 작은 마을에 들러 고흐를 기리다 ●투르에서의 한적한 휴일 프랑스의 주말은 어떨까. 시민들의 휴일 생활을 엿보려 일요일마다 시청앞에 장이 서는 벼룩시장을 찾았다. 100여개의 노점에는 집에서 쓰던 소품이며, 책, 그림, 찻잔, 액자, 음악판과 CD 등 없는 것이 없다. 쓰던 물건이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예쁜 액자 하나를 사려고 물어보자 30유로. 새것에 비해 결코 싸지 않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몽콩투르(Moncontour) 포도주 동굴 저장 지역이 나왔다. 파리로 향하던 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이 곳의 경치 또한 아름답기 그지 없다.‘포도밭 산책로’라는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보니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포도밭과 대형 저장고가 보였다. 마을 전체가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다. 인근에 있는 ‘뱅 드 부브라이’라는 곳에는 바위산에 동굴을 뚫고 집을 지은 이색적인 마을. 바위산 위에 지은 돌탑과 그 아래 마을, 호텔 등 모두가 돌산과 연결돼 마을이 형성돼 있다. 렌트카로의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시내 북쪽에 있는 조그만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파리 외곽도로의 교통 체증 탓에 5시가 넘어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1890년 7월 고흐가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곳. 비록 이곳에서 고흐가 산 시간은 두달 남짓하지만 이 곳을 무대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고흐가 자취했던 ‘라부(Ravoux)의 숙소’(입장료 5유로) 등 골목 구석구석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고흐의 자취를 더듬어 갈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안내판이 나온다. 그림을 그린 방향을 어림잡아 가늠해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마을과 계단, 오베르 교회, 까마귀 들판 등을 그림의 소재를 돌아본 뒤 산중턱에 있는 고흐의 묘지를 찾았다. 동생과 나란히 묻혀 있는 묘지는 담쟁이 덩굴로 둘러싸여 있지만 다른 묘지들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오후 8시. 오를리 공항 근처 홀리데이 인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DAY6 니스 해변, 푸른 바다에 마음을 적시다 ●렌터카 여행을 마치고 렌터카를 반납한 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남프랑스의 니스(Nice)로 향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공항터미널로 향했다. 렌트카 반납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오전 11시 공항으로 출발했지만 반납은 열쇠를 건네 주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12> 비행기는 오후 3시. 공항 방침상 짐을 보관해 주는 장소나 라커가 따로 없기 때문에 출발 시간까지 무작정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가 1시간30분이나 연착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3∼4시간 걸리는 떼제베(TGV)를 이용하는 것는 건데 아쉬움이 든다. ●가슴을 열어주는 니스해변 오후 6시 ‘리비에라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은 니스에 도착했다. 국제 영화제로 유명한 칸느와 함께 지중해를 바라보는 꼬뜨다쥐르 지방의 중심도시.4번홀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선 버스’(요금 4유로)에 올랐다. 니스 해변을 따라 가는 버스에서 보는 풍광이 눈을 사로잡는다. 공항에서 해변까지는 약 6㎞.20분 정도 걸린다. 리비에라(Nice Riviera) 호텔에 짐을 푼 뒤 곧바로 해변으로 향했다. 그냥 물속으로 뛰어 들고 싶을 정도로 푸르다. 그 속에서 흘러가는 여유로운 시간. 호텔에서 마세나광장에서 해변으로 가면 활모양으로 뻗은 해안을 따라 화려한 호텔들이 즐비하다.<ⓘ-13> 프롬나드데장글레(영국인의 산책로)는 해안을 따라 3.5㎞에 걸쳐 계속되는데 해변은 형형색색의 파라솔과 데크체어로 채워져 있다. 밤 9시가 넘도록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긴다. 볼거리도 많다. 마세나 광장 등지에서는 음악공연과 길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길거리에 동상처럼 서있는 각종 캐릭터 모형은 실제 사람으로 관광객들이 돈을 넣으면 슬쩍 움직인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약간 높은 바위산이 보이는데 이곳이 빠끄 드 샤또라고 불리는 ‘성터공원’이다. 해안선과 옛항구 등 니스의 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전망대 엘리베이터(편도 0.7유로)가 있다. 맛집은 마세나 광장 인근에 있는 지중해 요리 전문점 방돔(Le Vendome)에서는 원조 홍합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9유로. ◆ DAY7 칙칙폭폭, 지중해를 끼고 달리다 ●기차를 타고 지중해를 따라 기차를 타고 지중해의 쪽빛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것만큼 시원한 것이 있을까. 맑게 갠 하늘, 검푸른 지중해의 먼 바다, 수영복 차림으로 바닷가를 거니는 연인들…. 니스에서 칸, 툴롱, 마르세유, 아를, 아비뇽을 거쳐 계속되는 철로변의 풍경은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굳이 어느 도시에 내리지 않아도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광만 보아도 가슴이 시원하다. 이렇게 기차 여행이 시작됐다. 호텔에 큰 짐을 맡긴 뒤 니스빌 역으로 갔다. 한국에서 끊어온 3일짜리 프랑스철도 자유 티켓으로 첫 목적지인 아를(Arles)로 향했다. 시간표는 각 역마다 비치돼 있다. 직접 가는 편도 있지만 대부분 마르세유(Marseille)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 오전 9시 니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가는 길은 영화의 도시 칸 등을 지나가는데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마르세유엔 11시26분, 아를에는 오후 1시51분에 도착했다. 기차는 영화에서 보는 왜건형 칸막이방. 한 방에 6명이 마주보고 앉아서 간다. ●작지만 예쁜도시 아를과 아비뇽 론강(Le Rhone)을 끼고 있는 아를은 작지만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의 유적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아를 역에서 걸어서 라마르틴 광장을 거쳐 내려가면 카발르리몬, 원형투기장, 고대극장, 생트로핌 교회, 반고흐 카페, 반고흐 다리 등 볼거리가 많다.3세기 초엽 만든 생트로핌 교회는 로마네스크 미술의 견본으로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장소다. 반 고흐가 요양을 했다는 아를 요양원에서는 이젤을 펴놓고 예쁜 정원을 그림에 담는 화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반고흐 다리는 시내에서 직접 가는 버스가 없다. 바리올(Barriol)행 1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20분 정도를 걸어야 볼 수 있다. <ⓘ-14> 오후 6시 아를 역으로 돌아와 인근 도시 아비뇽(Avignon)으로 향했다. 기차로 17분.14세기 교황청이 이 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세계 교회의 중심지가 됐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교황청 광장 주변 카페들이 예쁜데 로셰 데 돔 공원에서 바라본 론강의 경치가 압권이다. 공원에서는 ‘생베네제’ 다리가 보이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멜로디인 ‘아비뇽 다리위에서’라는 동요의 무대가 된 곳이다.12세기 지어졌으나 17세기 홍수로 소실돼 지금은 반쪽만 남아있다. <ⓘ-15> ◆ DAY8 섬섬옥수, If I were a bird ●하늘 빛을 담은 프리울섬 마르세유 항구에 있는 어시장은 어촌 마을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갓 잡아 올린 정어리와 도미 등 각종 생선을 판매하는 어부들과 아침 찬거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BC 600년전 그리스인들이 세운 항구도시다. 마르세유에서는 한번쯤 여객선을 타고 인근섬 여행을 떠나도 좋다. 아침 일찍 항구의 ‘벨주부두’에 있는 마르세유 여객선 터미널(www.answeb.net/gacm)을 찾았다. 이 곳에서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가 됐던 ‘이프섬’(Ile D´If)으로 가는 배가 떠난다. 왕복 10유로. 오전 9시부터 1시간 단위로 배가 출발하는데 만선이면 시간에 관계없이 출발한다. 이프섬은 배로 10여분 남짓 걸린다. 여객선의 종착지는 이프섬에서 10분쯤 더 떨어진 ‘프리울 섬’으로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이다.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산은 사막을 연상케 한다. 섬에 내려 순회 코끼리 열차(왕복 3.5유로)에 올랐다. 차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30분쯤 걸리는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황홀하게 만든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해수욕장이 있는데 쪽빛 물빛 그자체다. 가는길에 있는 해수욕장은 2∼3일쯤 푹 쉬다가고 싶게 만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전 11시30분 배를 타고 서둘러 섬을 나왔다. 기차를 놓쳐 바로 직후 있는 테제베를 예약했다. 일반 철도는 그냥 타도 되지만 테제베는 예약이 필요하며, 따로 수수로(1.5유로)를 내야한다. 그래도 프랑스 대표 철도인 테제베를 타본다는 기대감에 표를 끊었다. 그러나 니스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50분. 일반열차가 2시간10분 걸리는 것에 비해 이 구간에서만은 시속 300㎞이상으로 달린다는 테제베가 오히려 일반 고속열차보다 느리다. 자리도 일반열차에 비해 불편하다. ⓘnformation center ⓘ-12 렌터카 반납시 우리나라와 달리 꼼꼼하게 체크하거나 묻는 일이 없다. 기름이 부족하거나 렌트 시간을 초과하면 미리 100유로 정도 임치해 놓은 돈에서 제하고 돌려준다. ⓘ-13 공항 등 프랑스의 공공장소에서는 노인과 장애인, 임산부, 유아 등에 대한 우대가 특별하다. 줄을 서지 않고 우선적인 서비스를 받는다. ⓘ-14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계절이 분명한데 남프랑스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덥지만 건조해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온난하다. ⓘ-15 프랑스 철도 예약을 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여행 계획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철도 패스중 적합한 것을 골라야 한다. 패스를 이용하는 국가 수에 따라 요금이 천차만별이다. 유럽 전지역을 돌아다니려면 유레일 패스가 유리하지만 프랑스 등 특정 국가만을 여행하려면 프랑스 패스를, 프랑스와 인근 국가 3∼5개국을 이용하려면 유레일 셀렉트 패스를, 프랑스와 이탈리아 2국가만 여행하려면 프랑스-이탈리아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저렴하다. 프랑스 철도패스는 1등석 성인이 299달러이며,2명 이상 여행할 경우 세이버 티켓을 끊으면 15%정도 저렴하다. 나머지 패스의 경우 1개국을 추가할 때마다 7만∼10만원정도 요금이 올라간다. 특히 철도패스에는 센강 유람선, 박물관 할인 등 보너스 할인 혜택이 있으므로 꼼꼼하게 살펴보면 좋다. 모든 패스로는 해당국가 테제베와 일반 철도 모두를 탈 수 있는데 테제베를 타려면 반드시 미리 예약을 해야 하며, 예약비로 1.5∼8유로 정도를 내야 한다. 일반 철도는 예약없이 기차역에 나가 오는 기차를 그냥 타면 되는데 3일권의 경우 한달동안 3일을 탑승 횟수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다. ◆ DAY9 포도주·풍경, 프로방스의 유혹 ●프로방스 철도에 몸을 싣고 아침 일찍 ‘살레야 광장’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과일, 야채 판매상과 꽃시장,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서민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니스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중심부에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 전문점 등이 즐비하다. 생필품은 물론 고급 브랜드부터 저가 브랜드까지 다양한 품목을 갖췄다.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없는 프랑스 전통 치즈와 포도주, 과자 등 각종 먹을거리를 맛봐도 좋다. 낮 12시 호텔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코드다쥐르 지방의 웅대한 산악풍경을 볼 수 있는 프로방스 철도(www.trainprovence.com)에 올라보기로 했다. 철도역은 니스역에서 북쪽으로 약 400m,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하루 4차례 정도 기차가 운행한다.<ⓘ-16> 철로가 단선이라 교행이 어려운데다 철로가 오래돼 수리를 자주해 역에 도착하면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기차는 두칸짜리 아담한 기차지만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기차다. 기차역에서 프랑스철도 티켓을 보여주면 50% 할인해 준다. 디뉴까지는 150㎞로 3시간10분이 걸리는데 시간이 없어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앙트르보(Entrevaux)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17세기 요새마을 앙트로보 앙트로보까지는 크고 작은 13개의 기차역을 지나는데 1평 남짓한 간이역도 많다. 기차는 바르강 계곡을 따라 달리는데 깎아지른 듯 세워진 바위산과 계곡, 산허리에 매달린 자그마한 마을 등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차창밖으로 매력적인 마을이 즐비하다. 이날도 철로에 이상이 생겼다. 오래된 철로라서 수리중이라는 차장의 말에 따라 중간에 내려 2∼3개 역을 버스로 갈아타고 갔다. 바위산 단면들은 지층이 지리책에 나온 사진처럼 그대로 보아도 멋있다.2시간 걸려 도착한 앙트르보는 17세기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바위산 정상에 있는 요새도시가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다. 성을 휘감고 올라가는 길이 이채롭다. 그 앞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고성문이다. 강에는 마을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고성을 들어가는 길에 입장료를 따로 받는 사람이 없어 입장료 자판기에 돈을 넣고 3유로짜리 코인 티켓을 끊은 뒤 회전문에 넣으면 들어갈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 그렇지만 건너보이는 마을 전경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쁘다. 정상에는 각종 방과 감시탑, 감옥 등 전형적인 성이다.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DAY10 마지막 시간은 마티스와 함께 ●니스에 아쉬움을 남겨두고 이제 막 적응이 됐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후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오전에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마티스 미술관과 샤갈 미술관을 돌아보기로 했다. 마티스 미술관까지는 17번 버스(1.20유로)를 탔다. 가는 길에 검표원들이 버스를 가로 막고 표검사를 했다.<ⓘ-17> 마티스 미술관(입장료 4유로)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인근 시미에 지구에 있는 로마시대의 투기장과 원형극장, 목욕탕 등 유적들이 더 볼만하다. 이어 걸어서 20분정도 떨어진 샤갈미술관(입장료 4.5 유로)에는 구약성서 이야기를 묘사한 17장의 연작 유화 등 450점이 전시돼 있다. 오후 2시 공항으로 출발, 아쉬웠던 여행이 끝났다.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탔는데 편도 요금은 25유로.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프랑스. 일상에 찌들어 쫓기듯 살아온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nformation center ⓘ-16 기차는 니스에서 알프스 온천마을인 디뉴(Digne)까지 운행한다. 니스에서 오전 06:42,09:00,12:43,17:00에 출발하고, 디뉴에서는 07:00,10:33,13:58,17:25분에 출발한다. ⓘ-17 버스 티켓을 기사에게 구입하면 꼭 버스에 비치된 개찰기(콩포스테·Composter)에 표를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 표에 시간이 찍히고 이후 표가 1시간 정도 유효한데 만일 이를 하지 않고 있다가 검표원에게 걸리면 ‘무임승차’에 해당하는 벌금을 문다. 무임승차하다 걸리면 30배의 벌금을 물게 된다. ⓘ-18 관광지와 호텔 주변은 소매치기 등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크게 위험하지 않다.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찰·구급차(19), 소방서(18), 주 프랑스대사관(01.47.53.01.01), 한국관광공사(01.45.38.71.23), 대한항공(01.42.97.30.80)으로 연락하면 된다.
  • [일요영화]

    [일요영화]

    ●드라큘라(EBS 오후 1시40분) 인간 심리를 위축시키는 공포의 대명사로 한국에 ‘처녀귀신’이 있다면, 중국에는 ‘강시’, 서양에는 ‘드라큘라’가 있다. 브람 스토커의 소설로 드라큘라 백작은 흡혈귀의 대표 주자가 됐다. 지금까지 드라큘라를 다룬 숱한 영화가 쏟아졌지만, 이 작품이 원조격이다. 스토커의 소설을 브로드웨이 무대로 옮겼을 당시 주연을 했던 벨라 루고시가 영화에서도 같은 역을 맡았다. 기름을 바른 올백 스타일에 검은 망토를 두른 루고시의 모습은 드라큘라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지금까지 각인되고 있다. 이 영화 때문에 평생 흡혈귀 등 괴물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루고시는 56년 사망할 당시 드라큘라 망토와 함께 묻혔다. 감독을 맡은 토드 브라우닝도 할리우드 초창기 공포 스릴러 감독으로 명성을 날렸다. 수도원 양도 문제로 동유럽 카르파티아 산중에 살고 있다는 드라큘라 백작(벨라 루고시)을 찾아가는 렌필드(드와이트 프라이). 인근 마을 사람들은 드라큘라가 흡혈귀라며 만류하지만, 렌필드는 결국 그를 찾아가고, 런던으로 향하는 드라큘라의 노예가 되고만다.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시워드 박사(헬베르트 번스톤)의 이웃이 된 드라큘라는 시워드의 딸인 미나(헬렌 챈드러)를 노리게 되고, 딸의 건강 악화를 수상히 여긴 시워드 박사는 반 헬싱 교수(에드워드 반 슬론)에게 도움을 청한다.1931년작.75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웨어 더 머니 이즈(KBS1 오후 11시30분) ‘허슬러’(1961),‘내일을 향해 쏴라’(1969),‘스팅’(1973)의 폴 뉴먼이 여든 살이라고 하면 “벌써 그렇게 됐나.”하고 놀라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황혼녘에 깃든 대배우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감상할 만하다. 이제는 조연 등으로 간간이 스크린에 얼굴을 비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은행강도역을 멋들어지게 소화해내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영화 말미에 경찰에 포위된 뉴먼-‘내일을 향해 쏴라’와 비슷한 상황이다-이 투항하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말을 읊조린다.“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군.” ‘맨 인 블랙’(1997)의 여주인공 린다 피오렌티노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1997)의 더모트 멀로니가 함께 했다. 화려한 은행털이 경력을 자랑하는 헨리(폴 뉴먼). 지금은 감옥에서 늙어가는 처지다. 그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양로원 시설로 옮겨진다. 간호를 맡게 된 캐럴(린다 피오렌티노)은 헨리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지루한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캐럴과 그녀의 남편 웨인(더모트 멀로니)은 헨리를 설득,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우는데….2000년작.85분.
  • [씨줄날줄] 대통령의 휴가/이목희 논설위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주 크로포드목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기간은 무려 33일. 우리로서는 상상 못할 일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해마다 이집트,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쾌적한 휴식을 즐긴다. 작년에는 바베이도스에 위치한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호화별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모리셔스, 마요르카섬 등 유명휴양지를 찾곤 한다. 국가지도자가 휴가를 가도 국정이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야 선진국이다. 우리도 대통령이 한달간 청와대를 비운다고 국정이 파탄날 일은 없다고 본다. 민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의 휴식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을 뿐이다. 노태우 정권 이전에는 대통령이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있었다. 안가(安家)에서 비밀스러운 술잔치가 가능했다. 눈치 안 보고 골프를 쳐도 됐다. 청와대를 수도원(修道院)처럼 만든 이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안가를 부수고, 공직자 골프금지령을 내렸다. 당시 김광일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수도자적 생활이 오히려 합리적 판단을 저해한다는 점을 느꼈다. 별장을 빌려 여흥자리를 시도했으나 YS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뒤를 이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모범생의 전형이다. 휴가지에서도 두문불출, 독서와 정국구상에 전념했다.YS·DJ시절, 언론에 빠지지 않았던 제목이 ‘청남대 휴가구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젊음에도 불구, 전임자가 만든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휴가보내기’를 해봤다. 창덕궁산책, 인형극 관람 등이다. 올해는 강원도에서 사흘을 보낸 뒤 지난 2일 밤 청와대로 돌아왔다. 공식휴가는 주말까지다. 청와대 관저에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참모들을 불러 국정을 논의하거나 밤늦게까지 인터넷 서핑을 하는 수밖에 없다. 본인에게 휴식이 아니며, 비서실과 내각이 마음편히 휴가를 보내기 어렵다. 국민정서가 따라주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정치스캔들이 연발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마음껏 쉬어라.”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형 대통령 휴식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테니스, 수영 등 운동이나 도박성 없는 게임이 좋을 듯싶다. 관저 앞에 텃밭을 가꾸면서 땀을 흘리는 방안도 괜찮아 보인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현대미술의 향수] (5.끝) 빛과 색채의 화가 르누아르

    [현대미술의 향수] (5.끝) 빛과 색채의 화가 르누아르

    르누아르(1841∼1919)는 인간의 영원한 아름다움에 매달렸다. 밝은 태양을 사랑한 그의 화폭에 어두운 구석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굳이 해설이 없어도 된다. 아름다움을 느끼면 될 뿐, 미술사적 의미나 구구한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시공을 초월해 르누아르가 사랑받는 이유다. 그의 작품은 몰아치는 속도와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그늘이자 ‘오아시스’다. “나에게 그림은 적어도 사랑스러운 가치가 있어야 하고 즐거울 수 있어야 된다. 특히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에는 즐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고 그런 즐거운 것들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르누아르는 평생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다. 어찌 세상이 아름다울 수만 있을까?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예쁜 여자 아이와 통통하게 살찐 풍만한 여인의 나체, 꽃과 나무 같은 아름다움의 상징이 말을 건넨다.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전시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크렘스. 푸른 도나우 강이 시골 마을을 끼고 흐르고, 흐드러지게 널려 있는 포도밭에는 포도주 향기가 넘쳐나는 고장이다. 저 멀리 언덕바지에 고성과 수도원이 자리잡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이곳은 백포도주 맛이 좋다. 농가의 주민들은 앞마당에 식탁을 몇개 차려놓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자신이 빚은 포도주에 햄, 소시지 같은 요리로 지나가는 이들을 유혹한다. 농부의 땀이 배어든 오스트리아 가정식 요리다. 르누아르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오스트리아의 이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 자리한 쿤스할레 미술관에서 자신의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척 기뻐할 것이다. ‘르누아르와 인상파 화가의 여성’(4월2일∼7월31일)을 테마로 한 이 특별전에는 그의 작품 40점을 포함,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파 화가 19명의 작품 120점이 전시되고 있다. 인구 2만∼3만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주말에는 2000∼3000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타이푼 벨진(49) 미술관장은 “빈으로 출장 온 세계 각국의 비즈니스맨들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르누아르를 만나기 위해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르누아르의 사랑스럽고 따뜻한 작품 성격 때문인지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띈다. ●아름다운 것이 좋아 미술관 1층에는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과 당대의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비교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풍경화에선 한가롭게 노닐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 좋고, 여자 인물화에선 젖가슴이나 등을 손으로 만져 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 좋다.” 르누아르의 이같은 생각을 담은 작품들은 2층 전시실에 펼쳐져 있다.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그림은 ‘책 읽는 가브리엘’(1906년).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책을 읽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 도무지 나쁜 짓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성경책을 넘기고 있는 것 같다. 르누아르가 가장 이상적인 여성으로 생각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던 유모 가브리엘. 그가 즐겨 그린 둥글둥글한 품새의 얼굴과 엉덩이를 가진 여인에서는 깊은 영혼의 향기가 풍기고 있다. ‘아기를 안은 알게리아인’(1882년)은 ‘빛’이라는 특성을 잘 활용한 전형적인 인상파 색채의 작품이다. 아기를 안은 여인의 옷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옷도 아니다.”고 비웃었다. 심지어 “그림도 아니다.”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였다. 타이푼 벨진 미술관장은 “르누아르는 흰 옷에 파란색을 칠해 명암을 표현했는데 이는 당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화법이었다.”며 “그늘진 곳을 검은색이나 회색으로 표현했던 당시 화풍에선 엄청난 ‘혁명’이었다.”고 말했다. 르누아르는 여성의 벗은 몸이나 목욕하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에게 여성의 나체는 아름다움이 샘솟는 원천이었다. ●르누아르에게 여성은? 르누아르의 여성은 당대 다른 화가들과 사뭇 다르다. 많은 화가들이 여인을 그렸지만, 그처럼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향기를 가진 여인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거리에 나앉은 채 젖을 물리고 있는 어두운 표정의 여인을 그린 페르난드 펠레츠의 ‘집없는 사람들’(1883년), 깨진 그릇과 빵조각이 흩어진 문가에 기대 앉은 한 노파가 등장하는 에드가 드가의 ‘로마의 구걸하는 여인’(1857년) 등을 보면 도무지 같은 시대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이번 전시장에는 르누아르와 드가의 작품 세계가 나란히 전시, 확연히 비교되도록 했다.‘나는 춤추는 사람을 그리는 화가’라고 얘기한 것처럼, 드가는 발레리나를 많이 그렸다. 그의 발레리나는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다. 힘든 동작을 취하기 위해 힘들게 ‘노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펠레츠의 발레리나도 힘들고 무표정한 표정이다. 미술관 연구원으로 전시장 가이드를 맡은 미하일 폴츨(27)씨는 “르누아르는 기분을 좋게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자세로 작업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10년은 손에 붕대 감고 작업 실제로 그가 그린 여자들은 모두 아름답고, 그가 그린 아이들은 모두 착한 아이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울한 그림을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유일한 화가가 르누아르가 아닐까? 그러나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그림에서 가난과 고민스러운 날들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는 생애 마지막에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붓을 직접 들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마비된 손가락 사이에 붓을 고정시켜줘야만 했다. 그가 변함없이 아름다운 인간의 몸을 그리려고 한 것은 어찌보면 자신의 몸이 불편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르누아르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말년 작품에서는 그의 육체적 고통이 절절하게 배어나온다.‘사람이 있는 카뉴슈메르의 풍경’(1916년)에는 손을 제대로 들 수 없어 높은 위치의 붓질을 하기 힘들어했고, 그 붓질마저 현저하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는 끝내 놓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헬가 킨스키(75)씨는 르누아르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르누아르의 그림은 밝고 따뜻해서 좋아요. 말년에 휠체어를 탈 정도로 건강이 나빴지만 삶의 즐거움을 표현했잖아요?” ■ 크렘스 쿤스할레 미술관 타이푼 벨진 관장 “일본을 두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일본인들이 경쟁사회에서 힘든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것을 봤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가 르누아르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점차 살기가 각박해질수록 우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평화와 안식을 얻고자 한다.” 타이푼 벨진(49) 크렘스 쿤스할레 미술관장은 르누아르가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화역사학 박사로 독일인인 그는 1년6개월 전부터 이곳 미술관의 최고책임자로 일하고 있다.2년의 준비 끝에 40여군데에서 그림을 빌리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이 전시회는 “이 작은 미술관에서 10년에 한번 할까 말까한 전시회”라고 자랑했다. 인상파 성격의 그림은. -르누아르는 ‘아기를 안은 알게리아인’에서 여자의 흰 옷에 파란색을 칠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아무리 흰 옷이라도 밝은 날 햇볕을 쬐게 되면 파랗게 보이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파란색으로 그늘을 그려 명암을 표시했다. 르누아르와 드가를 비교하면. -둘 다 목욕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렸다. 드가는 여자를 목적물로 그렸다. 여자의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는데 마치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반면 르누아르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이 특징이다. 여자 모델은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의식 속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성을 아름답게만 본 것은 르누아르의 한계가 아닌지. -예술에는 어떤 이념이 없다. 그는 여성을 존중, 드가처럼 창녀를 그리지 않고 유모 등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성을 그렸고, 여자를 무시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르누아르가 갖는 차별성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그림을 그렸다. 작품은 화가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를 갖는데, 피카소의 경우는 점점 더 각져 갔다. 여성의 모습도 딱딱하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둥글게 표현하고 있다. 최광숙기자 문화부 차장 bori@seoul.co.kr 협찬 Sharp Travel
  • [신연숙칼럼] 황우석 담론 활발해져야

    [신연숙칼럼] 황우석 담론 활발해져야

    황우석교수의 연구결과 발표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즉각적인 비판 성명을 냈을 때 한 모임에서 어느 대학교수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세계에서 지금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용감무쌍한 국가는 남북한뿐이라고. 북한은 핵무기 카드로 부시에 대들고, 남한은 배아복제 줄기세포연구로 부시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는 그의 얘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의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는 앞서가는 성과도 눈부시지만 압도적인 지지분위기도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또 다른 한 교수는 황교수의 연구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입장이 궁금해 몇개 단체의 사이트를 찾아봤지만 아무런 논평도 없었다며 시민단체나 언론이 어떻게 이렇게 침묵을 지키거나 일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실망스럽다는 의견을 말했다. 이에 배아복제 연구의 여러 측면에 대해 몇마디 얘기가 오갔지만 곧 선도적 성과에 대한 찬양발언이 분위기를 압도하면서 토론은 더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황교수의 연구성과가 눈부시고 국익에 엄청난 기여를 할 것이란 기대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토록 토론 자체가 억압받는 듯한 사회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황교수의 연구는 외신의 표현대로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생명공학의 혁명이다. 그런만큼 의학이나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 못지않게 인간의 의식과 문화, 세계관 자체까지를 바꿀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단순히 병든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휴머니즘의 실현, 기술선점이 가져다 줄 엄청난 경제적 이익만으로 모두가 꿈에만 부풀어 있을 일은 아니란 뜻이다. 과학기술의 역사상 개발자가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사례는 너무도 많다. 예를 들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구텐베르크는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신의 말씀을 모든 가정의 식탁에 놓이게 함으로써 모든 신도를 신학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쇄술은 당시 이단자로 여겨졌던 루터의 손에 들어가 개신교 신앙을 퍼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세 수도원에서 신을 위한 규칙적인 신앙생활의 도구로 발명됐던 시계가 후에 기업주들의 노동자 통제수단이 돼 돈의 축적에 헌신했다는 사례도 예측치 못했던 기술발명의 결과로 자주 인용된다. 인쇄술이나 시계는 단순히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의 가치관까지 바꾸었다. 배아복제기술도 황교수의 의도대로 인류복지에 기여를 할지, 아니면 어떤 뜻하지 않은 사회적 결과로 연결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이 기술의 발전으로 모두의 꿈처럼 과연 우리나라가 부자가 되고, 모든 난치병환자가 세포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인지도 차분히 따져봐야 될 일이다. 자유로운 상상과 분석, 담론의 분위기가 조성될 때라야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고, 이런 토론이 축적돼야 연구의 정당성 확립은 물론 지원·통제 방향의 설정, 사회적 대비가 적절히 이뤄질 것이다. 천주교 주교회의와 정진석 대주교의 생명윤리 담론은 뒤늦었지만 매우 중요한 시각을 제시해 줬다. 부시 미국 대통령처럼 즉각적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인간배아복제 줄기세포’라는 신기술에 대한 판단 때문이 아니었나 짐작해 본다. 사실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폐기된 인공수정란을 얼마나 갖다 쓸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기독교의 생명개념은 ‘수정란’에서 시작되므로 인공수정란 파괴는 곧 생명파괴임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수정의 과정이 없는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준비된 기준이 없었을 듯하다. 어쨌든 한국 천주교는 배아복제에 대한 반대와 함께 복제배아도 생명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담론의 한 단초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담론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치밀한 예측과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구상시인 1주기 추모집 ‘홀로와 더불어’ 출간

    ‘늘 홀로인 것 같았습니다./홀로 식탁에서 감사 기도를 올리고/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을 찾아가시며/스스로의 존재를 응시하듯/물빛 투명함을, 때로는/한강을 고즈넉이 바라보셨습니다.(중략)살아남은 자들 망연해하는 사이/어느 크고 부드러운 손이/당신의 맨주먹을 잡아끌어 주십니다./홀로 가셨지만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신중신 ‘홀로 가셨지만 혼자가 아닙니다’중) 지난해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문단의 거목 구상(1919∼2004) 시인을 기리는 추모문집 ‘홀로와 더불어’(나무와 숲)가 출간됐다. 평생을 한치 흐트러짐없는 올곧음과 청빈한 구도자적 자세로 스스로에겐 박하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던 시인. 추모문집에는 문인, 학자, 정치인 등 사회 각계 인사들과 제자, 유족들이 기억하는 고인에 관한 진솔한 글 102편이 실려 있다. 원산에서 살았던 1930∼40년대부터 1950년대 피란지 대구와 시적 고향인 왜관 시절,1960년대 이후 서울 시절과 1970년대 하와이 대학 초빙교수 시절, 이후 작고하기까지 그의 삶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은 시인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우리 현대사의 한자락을 펼쳐보인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1974년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문인들을 당국이 ‘문인 간첩단’이란 사건에 연루시켜 재판정에 세웠을 때 시인이 증인으로 출두해 무죄를 증언한 일을 글로 남겼다. 천재화가 이중섭의 후견인 역할을 한 일,‘걸레스님’ 중광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돌팔매질 당할 때 옆에서 힘이 됐던 사연, 박삼중 스님과 사형수 돕기에 나섰던 일, 작고하기 직전 장애인 문학지 ‘솟대문학’에 2억원을 기증한 일 등 참다운 자유인이자 성자와 같은 삶을 살았던 시인의 삶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그런가 하면 생전에 동생처럼 대하던 후배 시인이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지내는 모습을 안타까워해 ‘문인 과부클럽’을 만들려고 했다는 일화는 고인의 또 다른 일면을 엿보게 한다. 구상기념사업회는 20일 오후 6시30분 서울YWCA회관 대강당에서 ‘홀로와 더불어’ 출간기념회와 함께 한국인물전기학회 주최 ‘구상의 생애와 사상’ 발표회를 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교황 베네딕토 16세 시대] 이름 ‘베네딕토’ 축복 의미… 화해중재자 상징

    [교황 베네딕토 16세 시대] 이름 ‘베네딕토’ 축복 의미… 화해중재자 상징

    전임 요한 바오로 2세의 그림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베네딕토 16세는 과연 어떤 뜻에서 즉위명을 택했을까. 베네딕토는 ‘축복’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됐다.‘축복된’ ‘좋게 말한’이란 뜻도 있다. 바티칸 전문가들은 새 교황이 가톨릭 교회를 이끌어갈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한 가장 마지막 교황, 이탈리아 출신 베네딕토 15세(1914∼22년)의 공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베네딕토 15세는 성공하진 못했지만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막후에서 중재한 것으로 유명하다. 독가스 사용에 반대하고 무고한 희생자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으며 7개의 평화안을 직접 성안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던 점을 새 교황이 좇고자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동방정교와 이슬람을 포용한 베네딕토 15세를 승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 1981년 신앙교리성을 맡은 이래 ‘요한 바오로 3세’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교리 해석에서 보수적이었던 이미지를 씻고 평화의 중재자라는 상징성을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베네딕토 수도회를 창시한 성 베네딕토(480∼547)와 무소유를 실천한 18세기의 순례자 성인 베네딕토 요셉 라브르도 라칭거가 즉위명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요셉 라브르의 축일은 마침 교황의 생일과 같은 4월16일이다. 성베네딕토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로마 교회에 회의를 느껴 지하동굴에서 3년간 지내다 수도원을 건립했다.21세기 가파른 도덕적 위기에 몰린 가톨릭 교리의 정통성을 수호한다는 이미지를 고려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베네딕토 15세의 재임 기간이 7년밖에 안돼 78세라는 고령에 전임자가 남긴 과제를 수습하고 다음 세대에 다리를 놓아주어야 하는 과도기 교황의 운명을 스스로 예감한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 베네딕토 16세 연보 ▲1927년 4월16일 독일 바이에른주 마르크트 암 인에서 경찰관의 아들로 출생 ▲1941년 히틀러 유겐트(소년단) 가입 ▲1944년 입대, 방공포 부대 복무 ▲1946∼1951년 프라이징·뮌헨대학에서 공부 ▲1951년 사제 서품 받음 ▲1953년 신학 박사 학위 받음 ▲1957년 프라이징대학 교수 부임 ▲1969년 레겐스부르크대학 교수 부임 ▲1977년 뮌헨 대주교로 발탁.3개월 뒤 추기경에 봉임. ▲1981년 교황청 신앙교리성 수장으로 임명 ▲1988년 추기경단 부단장 ▲2002년 추기경단 단장 ▲2005년 4월19일(현지시간)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자기랑 나랑 길위에서 진수성찬

    자기랑 나랑 길위에서 진수성찬

    ‘길거리표 음식’도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전통있는 음식들이 서울의 거리를 주름잡고 있다. 떡볶이, 어묵, 순대 등 토종 군것질 거리외 가마보코, 케밥, 와플, 타르트, 박탄야키 등 전세계 행인들의 사랑을 받는 음식들이 서울의 도심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적은 창업비용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20∼30대 젊은 사장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맛과 재미가 넘치는 새로운 메뉴들이 생겨나고 있다. 외국에서 들어와 젊은이들의 입맛을 잡고 있는 2005년 4월, 서울 거리 최고의 맛 10선을 소개한다. 서울시내 ‘길거리 맛’은 종각역에서 종로3가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노점타운과 명동, 신촌과 강남권으로 크게 나뉜다. 종로에선 여전히 떡볶이와 순대, 튀김 등 전통메뉴가 인기지만 신촌에선 매일매일 신기한 메뉴가 쏟아져 나온다. 강남권에는 테이크 아웃점이 많다. 요즘 길거리 음식은 일본풍이 강세다. 정서적으로 미묘한 부분은 있지만, 입맛만은 가장 비슷한 까닭이다. 을지로 지하철역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플가게가 있다. 송연상(37) 사장은 회전율이 높아 언제나 바삭바삭한 맛을 제공하는 와플을 친숙한 길거리표 음식으로 정착시켰다. 하루 1000명이 이 와플을 먹는다. 한국인의 입맛을 중독시킨 떡볶이처럼 길거리 음식의 스테디셀러의 비결은 무엇일까. 송 사장은 “거리에서 팔더라도 위생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일단 맛있고, 들고다니며 먹기 편하고, 손님들이 기다리지 않도록 빨리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거리의 음식은 반짝 유행하는가하면 어느 새 사라진다.‘유행은 살아 있는 생물’이므로 빨리 변하기 때문. 특히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일수록 더욱 더 주기가 빠르고, 특이한 음식일수록 반짝 유행에 그치고 만다. 홍대입구에서 일본식 어묵튀김 ‘가마보코’를 만드는 어유당의 강정욱(34) 사장은 백화점 지하에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원래 애니메이션 회사에 근무했다는데 깔끔한 가게 외양과 유니폼이 눈길을 끈다. “국내 최초로 마키를 길거리에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대앞 오신마키의 신현주(29)씨는 거리의 입맛을 바꿔놨다. 소공동에는 전통 포장마차가 유명하다. 메뉴는 토스트, 오뎅, 떡볶이 등 평범한 것들. 하지만 인근 직장 여성들의 입맛에 맞춰 게·황태·새우를 넣은 오뎅국물, 녹차붕어빵, 메추리알 떡볶이 등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강준(45)씨는 아저씨 특유의 넉살로 손님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소공동 인근 오피스 레이디 가운데 강씨를 모르면 신입사원이란다. 노점상의 한계는 있지만, 거리의 맛집은 도심의 쉼터다. 굳은 얼굴과 빠른 걸음으로 무심하게 지나다니는 도시인들에게 잠깐 발길을 멈추고 출출함과 피곤함을 달랠 수 있게 하는 곳, 거리의 맛집은 ‘서울의 오아시스’다. ●압구정동 앤드루 에그타르트 위치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하나은행 골목 100m 메뉴 에그타르트 1000원, 고구마·단호박·단팥 타르트 1500원. 에그타르트는 원래 포르투갈에서 낫타라 불리며 옛날 수도원에서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할 때 만들던 빵. 겹겹이 바삭바삭한 페스트리에 계란 생크림을 얹었다. 유명 패스트 푸드점보다 크기는 훨씬 크고 한결 고소하다. 보통 타르트는 비스킷 반죽을 쓰는데 비해 결이 풍부한 파이 반죽을 써 바삭바삭하다.3년전부터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마카오의 제빵사 앤드루가 아시아 지역에 낸 프랜차이즈점이다. 한국에는 압구정외 동부이촌, 현대백화점 목동점, 신세계 강남점도 있다. ●명동 에드워드 와플 위치 2호선 을지로입구 지하철역 롯데백화점 입구 옆 메뉴 와플과 바닐라·초콜릿·딸기·블루페어·키위·베리믹스 6가지 크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1000원. 와플은 벨기에 음식으로 알려졌으나 한평 남짓 공간에서 하루에 1000개 이상 팔릴만큼 이곳이 유행의 진원지다. 저녁에는 일본 여성 등 외국인 관광객까지 줄을 선다. 폭발적 인기에 자극받아 석달 전 바로 앞에 다른 와플가게가 생겼지만 매출엔 전혀 지장없다고. 밀가루 믹스를 특급재료를 써서 와플이 식어도 빳빳하게 서있을 정도로 바삭바삭한 것이 인기비결이다. 아저씨네 포장마차 위치 웨스틴조선호텔과 롯데 영플라자 사이 양복점 앞 메뉴 토스트 1500원, 오뎅 500원, 메추리알 떡볶이 2000원. 메뉴는 평범하지만 소공동 인근 여직원들을 사로잡은 포장마차로 여느 노점에선 쓰지 않는 고급재료를 쓴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오뎅국물은 게와 황태 외에도 참치내장, 보리새우, 청양고추, 정종 등 16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식빵 6개 두께의 토스트는 설탕없이 버섯, 딸기잼, 치즈, 생오이, 햄, 생야채 등을 넣는다.2월까지만 파는 녹차붕어빵은 일본과 미국의 교포들이 주문할 정도다. 호두, 땅콩, 잣, 마, 찹쌀가루 등이 들어간다. 박탄야키 위치 명동 아바타 옆 영플라자 길건너 맞은편 로즈버드 옆 메뉴 박탄야키 3000원. 5년전부터 일본에서 유행한 길거리 음식으로 지난해 10월 시작했다. 다코야키 5배 크기의 원형 풀빵 안에 메추리알, 비엔나 소시지, 조개, 오징어, 양배추, 버섯 등 10가지 속재료를 넣었다. 껍질은 바삭하고 안은 말랑말랑하다. 문어가 들어간 다코야키, 해물을 넣은 몬자야키, 우리나라 부침개와 비슷한 오코노미야키의 장점만을 모았다는 것이 점원의 설명. 지름 8㎝크기로 야구공만 해 하나만 먹어도 배부르다. 박탄은 폭탄이란 뜻으로 20분안에 다 못 먹으면 터진다는 설명도 재치있다. 32파르페 위치 명동 명동의류 앞 메뉴 바닐라·초코·딸기·녹차 아이스크림 1000원, 요구르트·체리 아이스크림 1500원. 소프트 아이스크림 길이가 32㎝ 이하면 공짜다. 보통 아이스크림 두배 크기로 겹겹이 쌓인 긴 아이스크림콘이 행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32는 ‘행복한 만남’을 뜻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길이를 32㎝로 결정했단다. 빨간 옷을 입고 일하는 7명 남자직원들의 너스레도 명동 거리를 걷는 즐거움을 더한다. 가게 안에는 핫도그, 커피 등을 팔며 아이스크림을 들고 안에 들어가서 먹을 수도 있다.2년전 문을 연 32파르페가 인기를 끌자 주변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우후죽순 생겼지만 결국 다 문을 닫고 원조가 평정했다. ●강남역 파샤 케밥 위치 강남역 씨티극장 골목 입구 메뉴 치킨케밥 3000원, 쇠고기케밥 3500원, 터키 아이스크림 2500∼1만1900원. 프랑스,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요리라 자부하는 터키 케밥을 길거리에서 맛볼 수 있는 곳. 길 건너편에 있는 터키 레스토랑 파샤에서 일년전 낸 테이크 아웃점이다. 닭고기를 기둥에 켜켜이 꽂아 수직 그릴에 천천히 익힌 도네르 케밥이 일단 시선을 사로잡는다. 케밥을 주문하면 터키에서 온 요리사가 기둥에 꽂힌 닭고기를 잘라 철판에 다시 구워 빵에 싸준다. 쫀득쫀득한 터키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어도 좋다. ●이대·홍대 생과일 사탕 위치 이대역 1번출구로 나와 정문쪽으로 가다 베스킨라빈스에서 꺾어내려가 30m 메뉴 딸기·포도사탕 1000원, 사과 1500원. 일본에서 유행하던 생과일 사탕이 부산을 거쳐 서울에 상륙했다. 딸기와 포도를 꼬챙이에 꽂아 액체사탕을 입힌 것으로 과일은 익지 않아 상큼한 맛이 그대로 유지된다. 딱딱한 사탕껍데기 안에서 톡 터지는 과일의 맛과 향이 일품이다. 사탕 재료는 일본에서 수입한다.2년전부터 이화여대 시장골목에서 특히 중·고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과일을 사용하고 있다. 오신마키 위치 2호선 이화여대역 1번 출구 앞 메뉴 오뎅 500원, 미니우동 1000원, 단순·오순이·버섯·김치·새우·계란마키 1000원, 날치알마키 1500원. 일식집에서 5년간 일한 신현주씨와 오세현(26)씨와 함께 창업했다. 신씨는 일본 길거리에서 잘 팔리는 마키가 우리나라엔 없는 것에 착안했다. 주문하면 즉석에서 마키를 말아주는데 밥은 7가지 양념을 넣는다. 오후 3시∼새벽 1시까지 영업한다. 지하철 막차를 타고 찾아오는 단골들을 위한 배려다. 마키 2개와 우동이 2000원. 녹차는 무한리필된다. 오신마키는 두 창업자의 성을 딴 것이지만 ‘오, 신나게 마키를 먹자!’란 뜻도 있다. 어유당 위치 홍익대 정문앞 길건너편 메뉴 깻잎·야채·소시지·김·맛살 가마보코 1000원. 가마보코는 일본에서 1000여년 전부터 잔칫상에 올랐던 전통음식. 갈아 으깬 생선살을 얇은 대나무막대기 주위에 발라 굽는다. 그 모양이 부들 이삭과 비슷해 부들 창이란 뜻의 가마보코란 이름이 붙게 됐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어유당은 부드러운 어묵맛살을 즉석에서 튀겨내 항상 따뜻한 꼬치어묵을 준다. 케첩·칠리·데리야키·겨자·고추장 등 5개 소스를 골라 발라먹을 수 있다. 곳곳에 가마보코를 만드는 맛집은 많지만 어유당의 가마보코는 양도 푸짐하고, 속살이 부들부들해 소스를 바르지 않은 맛을 좋아하는 ‘마니아’들도 많다. 하루 200∼400개가 팔린다. 미스터 빅슈 위치 홍익대 정문앞 어유당 옆 메뉴 슈크림빵 800원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진 슈크림빵이 백화점 지하에서 길거리로 나오면서 값도 싸졌다.2002년 고구마 맛탕에서 슈크림빵으로 메뉴를 바꾼 뒤 홍대앞에서 근처의 와플, 가마보코 가게들과 삼각점을 형성하며 3대 군것질거리로 자리잡았다. 주먹보다 큰 빵에 호스로 슈크림을 듬뿍 넣어 주는데 먹을때 크림이 흐르지않도록 조심해야할 정도로 인심이 좋다. 거리로 나온 슈크림빵의 원조를 자부하는만큼 맛고 인심도 최고다. 글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교황 서거] 교황 어록 “전쟁은 인류의 패배”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 또한 행복하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상태가 악화되기 전 자신을 알현한 폴란드 신부와 수녀들에게 남긴 작별 메모의 내용이다. 서민적이고 겸손하면서도 용기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았던 교황의 면면은 그의 발언을 통해 나타나곤 했다. ●“전쟁은 항상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인류의 패배다.” 2003년 1월13일 이라크 개전 직전에 외교관들에게 이같이 말하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다. 이후 바티칸과 미국은 불편한 관계가 됐다. ●“두려워 마라. 그리스도에게로 문들을 활짝 열어라.” 1978년 10월16일 교황선출 뒤 첫 대중연설서.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과거에 서로를 비난하며 전쟁 지경까지 갔었다. 이같은 습관을 고치라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1985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종교간 대화를 강조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1986년 인도 방문 중. ●“여러분은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이다.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은 우리의 형이다.” 1986년 로마 시나고그를 방문한 자리에서 유대교도들에게 한 말. ●“나는 83세의 젊은이” 2003년 5월 마드리드에서 젊은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황은 “젊은 교황을 원한다고요. 사실 나도 젊은 교황이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농담을 던졌다. ●“오늘날까지 유대인 대학살 사건은 반유대주의가 인류에 큰 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1994년 출간한 저서 ‘희망의 문지방을 넘어’에서 ●“교황은 바티칸 안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초원의 유목민들로부터 수도원 수사, 수녀들까지 만나고 싶다. 또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싶다.” 취임 초기 기자들에게. ●“모든 종교가 지구촌에 정의, 평화, 용서 그리고 생명을 가져 올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미국의 9·11테러 이후 2002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회의 연설.
  • [클릭 이슈] 꽃동네 오웅진 신부 1심선고 두달 앞두고

    [클릭 이슈] 꽃동네 오웅진 신부 1심선고 두달 앞두고

    충북 음성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59) 신부는 유죄일까, 무죄일까.2003년 8월 1일 업무상 횡령과 사기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년반이 넘도록 공방을 펼치고 있는 1심재판 선고가 두달 앞으로 다가와 있다.“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며 꽃동네를 일으켜 세운 그가 ‘신의 심판’이 아닌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 신부는 이 재판에서 ‘빈자(貧者)의 아버지’로서 명예를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초심을 잃은 성직자란 낙인만 더 찍힐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재판기록만 1만 8000쪽 오 신부는 1996년 9월부터 2002년 2월까지 동생 등 친인척에게 농지구입비와 생활비 등으로 꽃동네 자금 8억 8000만원을 지원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98년 1월부터 2003년 5월까지 근무하지 않은 수사와 수녀를 일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국고보조금 13억 4000만원을 빼돌리고 청주성모병원 영안실부지 등 꽃동네와 관련이 없는 사회사업에 12억 4000만원을 쓰는 등 모두 34억 6000만원의 꽃동네 돈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공판은 지금까지 22차례 열렸다. 재판기록이 1만 8000쪽에 이르고 증인도 100명을 넘어섰다. 공판마다 5∼6명의 증인이 나오지만 공방이 치열해 밤 늦게까지 진행될 때도 많다. 오 신부는 공판에 매번 나오고 있다. 손성현 청주지검 충주지청장은 “꽃동네에서 증거가 확실한 것조차 인정하지 않아 재판진행이 늦다.”고 말했다. ●검찰 “친인척이 땅을 사 농사를 짓고 있다” 꽃동네측은 “관리는 꽃동네에서 했다.”며 “법인이 땅을 살 수 없어 오 신부 친인척 명의로 구입했을 뿐 실제 소유자는 꽃동네”라고 말한다. 검찰은 “다른 땅은 수사·수녀 명의로 구입했지만 친인척 명의의 토지 6필지는 그들이 직접 샀고 가등기도 안 돼 있다.”고 반박했다. 꽃동네는 “친인척에게 보낸 돈은 토지매입금으로 모두 들어갔다.”고 밝혔으나 검찰은 “땅구입비와 송금액에 7000만원의 차이가 나고 이 돈은 영수증 처리도 안 돼 있다.”며 “오 신부 형의 며느리 통장으로 입금된 것도 생활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근무일지를 조사하고 관련자들의 진술을 들어보니 자격이 없고 일도 하지 않은 현도사회복지대 재학생 등을 근무자로 등록하고 국가보조금을 받아온 사실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른바 유령 근무자가 8명에서 많게는 20명까지 있었다고 한다. 꽃동네가 99년 3월 개교한 이 학교는 오 신부의 고향 충북 청원군 현도면에 있다. ●꽃동네 “영안실 부지 구입자금 주지 않았다” 꽃동네는 “재학생은 충북도에서 ‘문제될 게 없다.’고 해서 등록했다.”면서 “2001년부터는 재학생도 꽃동네와 학교를 오가면서 일을 했고,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면 시정을 요구할 문제이지 처벌할 사안은 아니다.”고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충북도는 꽃동네의 이같은 주장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주교 청주교구에 청주 성모병원 영안실 부지 구입비를 대줬다는 검찰 수사발표에 대해서도 오 신부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천지인’ 소속 이상수 변호사는 “그런 사실이 없다. 돈이 넘어간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측은 “계좌추적이 다 돼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공판이 없는 날, 오 신부는 사건 이후 줄곧 꽃동네 수도원에서 머물며 수사·수녀와 함께 기도하며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마태오 수사는 “대외활동은 일절 하지 않고 꽃동네 운영에도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 신부는 꽃동네에서 기도 중 꽃동네는 오 신부가 회장에서 물러난 직후인 2003년 3월 신순근 신부가 새 회장으로 취임, 운영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해 2월 설립 25년 만에 처음으로 수입과 지출내역을 공개했었다. 당시 발표한 2003년도 운영결산보고에서 꽃동네는 회원회비 100억 828만원, 후원금 3496만원, 이자수입 6억 427만원 등 모두 108억 1225만원의 수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아직 미공개 상태다. 박 수사는 “오 신부 사건과 지속돼온 경기침체로 회원이 많이 탈퇴해 회비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수용자 복지와 무관한 시설보수 등은 미루고 있다고 한다. 꽃동네는 음성 2100명을 비롯, 경기 가평과 서울에 부랑인, 정신지체자 등 4000여명이 수용된 국내 최대 복지시설이다. 이들을 돌보고 행정업무를 하는 수도자 등 종사자만 800여명에 이른다. 꽃동네는 “특정인 혼자 운영하는 시설이 아니다.”고 밝히고 있으나 꽃동네의 상징인 오 신부에 대한 재판결과가 이곳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변호사는 “잘못된 수사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오 신부에 대해 불구속 기소하면서 ‘공적과 지병을 참작했다.’고 밝혔었다. 손 지청장은 “유죄를 입증하는 데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잠적 지율스님 극단적 생각은 안해”

    천성산 고속철 공사에 항의하며 지난 21일 잠적한 지율스님은 현재 모처에서 안전하게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율스님의 동생 조경자(37)씨는 23일 기자와 통화에서 “지인 몇분이 안전한 곳에 모시고 있다.”면서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잠적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89일째 단식중인 지율스님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단칸방에 머물다 지난 21일 오후 환경영향 공동조사 등 단식 해제 조건을 정부가 거부하자 마포구 M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 이날 저녁 다시 모처로 이동했다. 지율스님은 경찰과 신변을 염려한 지인의 방문이 잇따르자 수도원측에 폐가 될 것을 염려했다고 조씨는 전했다. 조씨는 지율스님의 건강에 대해 “거동은 거의 어렵고 어지럼증을 호소하면서 말씀을 겨우 이어나가고 있다.”면서 “하지만 단식을 풀 생각은 전혀 없고, 더 이상 여지가 없는 만큼 끝까지 간다는 생각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극단적 선택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지율스님은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 추적이 가능한 통신장비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있어 경찰도 행적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씨는 “최근 스님은 ‘이제 원망을 거두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면서 “그렇게 크게 양보한 최소한의 조건마저 정부가 거부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