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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곡 옛 왜관성당’ 국가문화유산 된다

    ‘칠곡 옛 왜관성당’ 국가문화유산 된다

    96년 역사를 간직한 경북 칠곡의 예배당 건물이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칠곡 왜관읍에 있는 ‘칠곡 옛 왜관성당’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칠곡 옛 왜관성당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속의 건물이다. 이 성당은 1928년 경북 최초의 천주교 본당인 가실본당 소속 공소에서 주임신부가 상주하는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건립된 예배당 건물로 현재까지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베네딕도 수도원의 역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건물이기도 하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높은 첨탑과 함께 반원 아치 모양의 창호 등이 성당 건축으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경북 지역의 천주교 전파 역사와 현재까지 잘 유지된 건물 원형 등을 고려할 때 역사적·건축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확정한다. 이탈리아 누르시아 출신 성직자인 성 베네딕토(480~547)의 가르침을 따르는 베네딕도 수도회는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다 한국전쟁 기간에 칠곡 일대에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피란 와서 세운 베네딕도 수도원이 오늘날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할 때 이 성당은 빼놓을 수 없는 건물이다.
  • “한센인·중증장애인 628명 장례미사… 그래도 이별은 늘 아프다”[월요인터뷰]

    “한센인·중증장애인 628명 장례미사… 그래도 이별은 늘 아프다”[월요인터뷰]

    44년째 한국살이1980년 외딴섬 같던 ‘성심원’ 정착기도하며 한센인·중증장애인 돌봄일 생길까 외출해도 외박은 안 해한센인 오해와 기억웬만해선 전염 안 되고 치유 가능나처럼 되고 싶다던 한센인 환자정말 꿈을 이루어 환자 돕고 있어앞으로의 바람정부에서 의료인력 지원해 줬으면4년마다 ‘남겠다’ 하며 40년 흘러신이 허락할 때까지 여기 지킬 것“이정이 잘 지냈어?” 쭈뼛쭈뼛 주변을 맴도는 중증장애 청년 남이정(23)씨를 본 ‘푸른 눈’의 노신부는 다정하게 볼을 비벼 댔다. 청년의 얼굴엔 이내 미소가 번졌다. 신부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쁘다’고 되뇌었다. 청년에게 물었다. “신부님이 좋아요?” “네!” “왜?” “귀를 파 줘서요.” 익숙한 듯 기댄 청년의 귀 안을 한참 살핀 노신부는 “이제 (귀지가) 없는데”라며 웃었다. 청년은 다른 복지시설에 있을 땐 마음을 열지 못해 피가 날 때까지 손등을 긁는 ‘자해’ 행동으로 주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여러 번 시설을 옮겨도 나아질 것 같지 않던 청년의 불안정한 행동은 노신부를 만난 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상처 입은 마음이 아문 걸까. 청년의 손등엔 더이상 생채기가 없었다. ‘한센인의 영원한 친구’ 유의배(78) 주임신부는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44년째 한센인과 중증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다.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다룬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걸작으로 유명한 게르니카 출신인 그의 본명은 루이스 마리아 우리베. 존경하는 선교사 이름과 자신의 성 ‘우리베’에서 음을 따 한국 이름을 지었다. 16살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들어가 아란차수신학대를 졸업한 뒤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76년 서른 살 때 선교·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1950년대 중국에서 마오쩌둥에게 내쫓겨 한국으로 온 뒤 성심원을 설립한 한 이탈리아 신부의 권유로 몇 년 뒤 성심원에 자리잡았다. 당시 성심원은 읍내와 연결된 다리 하나 없는 경호강 반대편에 고립된 ‘외딴섬’이었다. 한센인 정착촌으로 시작해 500여명의 대식구가 생활하던 공동체였지만 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인 한센병에 대한 괴담이 여전할 때였다. 한센병의 또 다른 이름인 나병(癩病)은 한자 ‘문둥병 라(癩)’에서 비롯됐다. ‘살이 썩거나 물러서 힘없이 처져 떨어지다’라는 뜻이다. 20일 산청 성심원에서 만난 유 신부는 “나병은 유전 질환이 아니며 치유가 가능한 질병이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성심원에만) 550명이었던 한센인은 이제 60명 정도 남았다. 점점 중증장애인들에게 공간을 내주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지금처럼 한센인과 중증장애인을 돌보며 사는 게 내 숙명”이라고 말했다. 모국에서보다 더 긴 세월을 한국에서 한센인과 그들의 가족, 중증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지난해 국민추천을 통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진짜 사랑하면서 내 가족처럼 받아들였기에 행복하게 살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8년 만에 고향 게르니카에 다녀왔다던데. “3년 일하고 3개월을 쉬어야 하는데 8년 만에 동생들을 보고 왔다. 몇 년 전 연락을 받고도 부모님 임종을 모두 지키지 못했다. 나이가 많다 보니 (가족들이) 한국에 가지 말고 그냥 고향에 남으라고 하더라. 그런데 병원에서 검사해 보니 아픈 데 없이 건강하단다.” -애초에 왜 한국이었나. “어렸을 때 한국이 전쟁으로 아주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 돕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말이 안 돼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를 먼저 갔다. 간호 보조를 하며 주사 놓는 법을 배웠고 볼리비아에 2년 정도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왔다.” -지금은 한국말이 너무 자연스러운데. “한국에 오자마자 1년 동안 서울 명동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이젠 혀 굴리는 게 익숙지 않아 얼마 전 고향에 갔을 때 모국어인 스페인어가 어렵더라.(웃음)” -성심원에서의 하루가 궁금한데.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고 바로 한센인과 중증장애인에게 아침 인사를 간다. 이곳 환자들은 새벽과 밤에 많이 돌아가시기 때문에 ‘밤새 안녕’한지 살펴야 한다. 일이 날까 봐 외출하더라도 1박을 하지 않는다. 갑자기 돌아가시면 장례미사를 해야 한다. 전에는 화장터가 없어서 수의를 직접 입혀 드리고 염도 했다. 또 밤에 전화가 오면 언제라도 달려가서 아픈 이들 결에서 기도를 한다.” -한센인 돌볼 때 가장 힘든 점은. “나병은 웬만해선 옮지 않는다(치료받지 않은 환자에게서 배출된 한센균에 오랫동안 접촉할 경우에 발병하며 격리가 필요한 질환도 아니다). 보통 사람처럼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아프니 빨리 오세요. 죽을 것 같아요’ 해서 갔는데 곧 돌아가시는 경우도 많고 하루 이틀 있다가 가는 경우도 있다. 죽음은 늘 마음이 아프다.” 유 신부는 낡은 서류 뭉치를 꺼냈다. 1964년부터 최근까지 728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산청 성심원 망인록’이었다. 주임신부로 지켜본 죽음만 628명이다. 장례미사만 628번 치렀다는 의미다. 가장 최근은 지난 5월 정현인씨의 죽음이었다. 유 신부가 스페인어로 ‘천사’(안젤로)란 세례명을 붙여 줄 만큼 각별하게 애정을 쏟았지만 성심원에서 만난 지 5년 만에 작별했다. “현인이는 7살 때 옥상에서 떨어져 말도 못하는 중증장애자가 됐다. 목에 꽂은 호스로 숨쉬기도 힘들었지만 무척 밝았다. 영원히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사진으로 액자를 만들었다.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여 주며) 내 신부복을 입고 웃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한센인과 중증장애인은 돌봄 방식도 다를 텐데. “한센인 60명, 중증장애인 54명 등 110여명이 이곳에 있다. 한센인은 대부분 80대 고령이고, 점차 줄고 있다. 그 자리를 중증장애인이 채워 가고 있다. 중증장애인들은 20세가 넘었어도 어린아이 같아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한다. 새벽에 ‘오줌’, ‘쉬쉬’하며 찾아오면 옷을 벗기고 기저귀도 갈아 주곤 한다. 교육을 다 해서 자매들(직원들)도 참 잘한다.” -한센인에 대해 여전히 남아 있는 오해가 있을까. “나병은 치료받고 약 먹으면 된다. 이곳에 오기 전 나병균이 다 죽을 때까지 대구 등에서 치료하고 오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다. 그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보면 된다. 한센인 자녀들이 많이 살았는데 대부분 보통 사람과 똑같고 부모가 돈이 없고 아파도 자기 엄마가 제일 예쁘고 좋다고 한다. 나도 처음엔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집으로 초대해 같이 밥을 먹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독신 환자가 자기가 먹던 수저를 닦아 내게 줘 먹었는데도 말이다. ‘우리 신부님이 같이 먹었다’고 자랑하더라. 이젠 나병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다. 한국은 전쟁 당시 가난하고 약이 없어 나병에 걸렸지만 지금은 돈이 없어 치료를 못하는 나라와 다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 한센인 환자가 ‘신부님처럼 되고 싶다’더니 나중에 진짜 됐다. 아픈 이들을 하늘로 편히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 제일 좋은 일인 것 같다더라. 환자들이 나를 ‘엄마·아빠’라 불러 주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행복하다. 처음에는 외국인 신부라서 무서워하는 것 같았는데 자주 만나니 문제없더라. 어린아이들은 나를 ‘신분아’라고 부른다.”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의사나 의료인력을 지원해 주면 좋겠다. 처음 왔을 땐 (상주) 의사가 있어서 돌아가시면 사망 판정을 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여기서 장례까지 치렀는데 지금은 법에 따라 장례식을 할 수 없고 납골당만 있다.” -44년을 한국에서 보냈는데. “1년에 두세 번 서울 정동 수도원에서 모임이 있는데 요새는 서울에 가면 다른 나라 같다. 이곳에도 인터넷, 스마트폰 다 있으니까 편하긴 하지만 복잡하고 너무 빨라 때론 정신이 없다. 옛날이 더 아름다웠던 것 같다.” -어릴 적 꿈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라고 들었다. 신부가 된 걸 후회한 적 없나. “동네 오케스트라도 하고 합창단도 했다. 중학생 때 배운 오르간 소리를 좋아한다. 이곳 아픈 사람들의 음성이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서 내는 소리, 웃는 소리, 우울한 소리 등 인간의 희로애락이 성심원 공동체 속에서 아름다운 화음으로 이어진다. 신부가 된 것도, 이곳에 온 것도 후회한 적 없다.” -언제까지 남을 생각인가. “4년마다 ‘자리’를 바꾸는데 관구장이 옮기겠냐고 물을 때마다 ‘남겠다’고 했다. 그렇게 10번 하다 보니 40여년이 흘렀다. 여든이 되면 또 묻는 절차가 있다. 건강이 좋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 (떠날) 시간이 올 것이다. 수도자는 숙명, 무소유, 독신 등 3가지 서원을 한다. 모든 일을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려고 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신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분들을 돌보며 살고 싶다. 성령으로 받아들인 삶이다.”
  • 건축가 승효상의 50년… ‘영성의 풍경’으로 빛나다

    건축가 승효상의 50년… ‘영성의 풍경’으로 빛나다

    건축으로 이 땅에 ‘빈자의 미학’을 실현하고자 했던 건축가는 지난 50년간 자신의 작업이 ‘영성의 풍경’을 일군 것이었음을 알아챘다. 영성의 품에서 건축물은 제 존재를 뽐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으로 깊숙이 함몰한다. 건축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인문 건축가이자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거장 승효상(72)의 새 에세이 ‘솔스케이프’(한밤의빛)가 출간됐다. 영성의 풍경이라는 의미인 솔스케이프는 승효상이 만들어 낸 단어다. 노(老)건축가의 빛나는 문장이 압권이다. 마치 그의 건축을 연상케 하는 책 속 여백이 독자마저도 영성으로 이끄는 듯하다. “수목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주가 되어야 하는 장소이므로 건축은 특별한 형태가 되지 않아야 했다. 그저 집 지을 장소만 잘 선택하면 주변 풍경을 잘 감상하게 하는 시설로서 족한 일이라, 내 건축을 되도록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34쪽) 책은 승효상이 직접 짓고 만난 건축 현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첫머리에 나오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대구 군위에 있는 수목원 ‘사유원’ 이야기다. 대구 지역기업 태창철강을 이끌었던 유재성 전 회장의 의지로 조성된 곳이다. 승효상과 최욱,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건축물을 설계하고 조경가 정영선이 풍경을 다듬었다. 올해 화제를 모았던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도 나온 바 있다. 승효상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라면 그의 첫 저서 ‘빈자의 미학’(느린걸음)과 함께 직전작 ‘묵상’(돌베개)를 기억할 것이다. ‘묵상’은 해외 수도원 순례를 통해 그가 영성을 향한 사유를 예리하게 벼려 내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우리의 땅에도 그런 건축물을 짓고자 마음먹고 말년의 작업을 펼친다. 사유원 외에도 경북 경산 ‘하양무학로교회’, 경북 경주 ‘독락당’, 부산 서구 ‘구덕교회’ 등을 소개하며 건축의 의미를 묻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집인 경남 양산의 ‘만취헌’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영성을 찾는 그의 절정은 경북 칠곡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피정센터를 설계하면서 드러난다. “이 일을 그야말로 나의 운명적 과업으로 받았다. … 수도사의 절박한 삶이 내 전생 아니면 후생의 모습 아닐까 짐작하던 때였다. 그래서 이 건축은 내 건축의 오랜 여정에 중요한 휴지부일 것으로 짐작했다. 모른다. 종지부일지도….”(306쪽)
  • 정한석 경북도의원, 추석명절 맞아 사회복지시설 위문

    정한석 경북도의원, 추석명절 맞아 사회복지시설 위문

    경북도의회 정한석 의원(국민의힘·칠곡)은 추석을 맞아 지난 10일 칠곡군 왜관읍에 소재한 (재)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분도노인마을을 찾아 도의회에서 준비한 위문품을 전달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분도노인마을은 지역사회에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있는 노인들의 노후생활을 돕기 위해 지난 1992년 6월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설립한 시설이다. 이번 위문은 추석명절을 맞이해 시설 관계자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이웃 나눔 문화의 온정을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 의원은 “우리가 모두 주변의 이웃을 항상 살피고, 함께 어우러져 지낼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어르신들을 포함해 지역사회 내 복지 서비스의 혜택이 필요한 이웃들이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도의회 차원에서 세심하게 살펴나가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우뚝! 독립의 기상… 발길에 묻히고 세월에 묻혀도[마음의 쉼자리]

    우뚝! 독립의 기상… 발길에 묻히고 세월에 묻혀도[마음의 쉼자리]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소중한 걸 곁에 두고 잘 인식하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봉황각이 딱 그렇다. 현재 천도교의 의창수도원으로 쓰이는 곳. 천도교의 성지를 넘어 우리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장소인데도 뜻밖에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45년 11월 당시 언론 보도 등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 환국한 백범 김구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의암 손병희 묘소를 찾아 귀국 보고를 한다. 백범이 첫 번째 공식 일정으로 올릴 만큼 의암과 그의 활동 영역을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의암의 묘는 봉황각, 천도교 중앙종리원(옛 중앙총부) 건물 등 자신이 세우거나 관여했던 문화유산에 둘러싸여 있다. 의암의 묘와 중앙종리원 건물은 국가등록유산, 봉황각은 서울시 유형문화유산이다. 봉황각은 의암이 항일독립운동을 이끌 천도교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1912년에 세운 교육·수련시설이다. 당시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의암은 약 2만 8000평의 땅에 봉황각 등 13채의 건물을 짓고 독립투사를 길러냈다. 3·1운동을 이끈 33명의 지도자 가운데 15명이 봉황각에서 수학했고, 봉황각 출신 독립투사 483명이 나라 곳곳에서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러니까 봉황각이 3·1 만세운동의 산실 구실을 했던 셈이다. 나머지 건물은 3·1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철거됐다. 봉황각은 110년 넘은 건물치고는 상당히 말끔한 편이다. 봉황각은 명성황후의 침전이었던 건청궁 내 곤녕합의 구조와 흡사하다. 외형은 민가지만 격식은 궁궐 건축양식을 따랐다. 봉황각을 위에서 보면 ‘을’(乙) 자 모양이다. 작은 몸채의 하단 오른쪽 모서리를 큰 몸채의 상단 왼쪽 모서리와 겹쳐 지었다. 그러니까 크고 작은 집 2채가 위아래로 겹치며 ‘을’(乙) 자를 이루는 형태다. 이는 천도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궁을(弓乙)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궁을’은 우주 만물의 순환 작용과 활동을 형상화한 것으로 천도교 상징으로 쓰인다. 봉황각이란 이름은 교조 최제우가 자주 썼던 ‘봉황’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것이다. 현판은 당대의 명필 위창 오세창이 썼다. 봉황각 옆엔 ‘ㄱ’자 형태의 기와집이 있다. 봉황각과 동시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현재는 담으로 나뉘어 있다. 의암이 이 살림채에서 실제 7년 정도 기거하며 독립투사들을 길러 냈다고 한다. 봉황각 아래 적벽돌 건물도 외형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내력을 갖고 있다. 이 건물이 처음 지어진 건 1922년이다. 현재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자리가 원래 터다. 1918년에 현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같이 기공식을 했으나 3·1운동으로 공사가 중단됐다가 1922년에야 비로소 낙성식을 했다. 애초 천도교 중앙총부라 불리다 중앙종리원으로 변경됐다. 국가유산청에는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이란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1969년 수운회관이 들어설 무렵 철거될 뻔했으나 독립운동 유적 등의 이유로 천도교에서 보전을 주장해 현재 자리로 고스란히 이축됐다. 이 건물에서 의암의 사위였던 소파 방정환이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했고, ‘어린이’라는 새말을 만들었고,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건물 안에 당시 간행됐던 어린이 잡지 등이 전시돼 있다. 의암의 묘는 봉황각에서 50m쯤 떨어진 산자락에 있다. 5분 남짓 걸어 올라야 한다. 이 일대에 의암 외에도 이준, 여운형 등의 묘 5기가 산재해 있다. 모두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 봉황각이 깃들여 있는 곳은 북한산국립공원 초입이다. 서울 시민의 여름 놀이터인 우이동 계곡도 이쯤에서 시작된다. 나들이 삼아 찾을 때 함께 둘러보길 권한다.
  • 18세기 성요한 병원을 통해 본 ‘병원’과 ‘환대’의 의미 [으른들의 미술사]

    18세기 성요한 병원을 통해 본 ‘병원’과 ‘환대’의 의미 [으른들의 미술사]

    ‘손님을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을 의미하는 ‘환대’와 ‘병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환대’(hospitality)와 ‘병원’(hospital)은 같은 어근에서 유래한 말이다. 즉 환대는 환자를 맞이하는 병원에서 보이는 덕목을 말한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덕목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벨기에 브뤼헤에 있는 성 요한 병원(St. John’s Hospital)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병원들은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순례객에 대한 자선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병원 내에는 18세기 병동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이 병동 그림에는 환자를 상대하는 의사, 외과의사, 수녀, 하인들이 있으며, 그들이 환자를 맞이하는 환대의 기술을 보여준다. 하는 일이 다른 의사와 외과의붉은색 재킷에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의사다. 의사들은 환자의 맥박을 재거나 눈 상태, 소변 검사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진단한다. 특히 소변 검사는 눈으로 색깔을 확인하고 냄새를 맡는 원초적 방식의 검사방식이다. 18세기 성 요한 병원은 의사 두 명을 고용했으며 의사들은 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성 요한 병원에는 의사 외에 실제 의료 행위를 하는 외과의도 있다. 의사와 달리, 외과의는 교육받은 전문의는 아니고 실습형 의료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외과의는 칼로 신체를 절단하거나 사혈, 담석 제거, 장 세척 등 피 보는 일을 도맡아 한다. 오늘날 간호사와 영양사에 해당하는 수녀들간호사들은 인근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수녀들이다. 수녀들은 의사를 도와 환자들을 보살핀다. 수녀들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환자복으로 갈아입힌다. 환자가 입고 온 옷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이 옷들은 환자가 퇴원하면 다시 입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 이 옷들은 병원 소유가 된다. 당시 허름한 옷가지도 귀한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녀들은 환자 회복에 가장 중요한 영양식을 준비해 환자들의 회복을 돕는다. 영양식을 만들기 위한 식재료들은 병원에 딸린 정원과 농장에서 조달하고 있다. 하인은 식재료 운반, 청소나 빨래, 침상 정리 등 병원 허드렛일을 돕는다. 18세기 환자를 운반하던 구급차얀 밥티스트 비어블록(Jan Baptist Beerblock·1739~1806)이 그린 성 요한 병동의 오른편 아래에는 독특한 가마 형태의 물건이 보인다. 이것은 오늘날 앰블런스에 해당하는 들 것이다. 이 가마형 들 것은 두 명이 운반하는 형태이며 두 명의 운반수들은 교구가 고용한다. 18세기 병동 모습을 보여주는 비어블록의 그림은 오늘날 병원이 가져야 하는 모든 형태의 덕목이 들어 있다. 의사는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해야 하며, 외과의는 더러운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간호사들은 환자의 환부뿐 아니라 마음 속까지 헤아려야 하며, 그밖의 의료인들은 청소, 빨래, 환자의 이송 등에서 환자 중심의 사고를 한다. 무엇보다 병원 내 모든 종사자들이 아픈 사람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이고, 아픔에 공감하며,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일은 약보다 더 좋은 처방전이다.
  • [포토] 1911년 촬영된 ‘청계리의 아이들’

    [포토] 1911년 촬영된 ‘청계리의 아이들’

    손주들과 함께 외출에 나선 여성은 얼굴만 남겨둔 채 머리 위로 긴 옷을 덮어썼다. 그가 입은 건 초록색 바탕에 흰 끝동을 단 장옷. 여성 홀로 찍은 사진 뒷면에는 ‘서울 근교 할머니, 베버 1911’이라고 적혀 있다. 지금으로부터 113년 전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 촬영한 컬러 사진이다. 우리 옷의 다채로움과 자연스러운 멋이 돋보이는 이 사진은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성당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에도 담겼다. 20세기 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기록한 다양한 사진이 공개된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기록 보관소(아카이브)가 소장한 한국 사진 2천77점을 조사한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펴냈다고 12일 밝혔다. 독일 바이에른주에 있는 오틸리엔 수도원은 1909년부터 한국에 수도자를 파견했다. 특히 독일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의 총 원장을 지낸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총 아빠스는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한 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책을 펴내기도 했다. 아빠스는 베네딕도회 대수도원의 수장을 뜻하는 직함이다. 오틸리엔 수도원은 2005년 경북 칠곡 왜관수도원에 ‘겸재 정선 화첩’을 영구 대여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갑옷, 식물 표본 등을 한국에 돌려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보고서는 베버 총 아빠스와 성 베네딕도회 소속 선교사들이 촬영한 유리건판, 랜턴 슬라이드, 셀룰로이드 필름 등을 조사해 1천874점의 사진을 도록 형태로 정리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사람 모습부터 선교사들이 운영한 학교, 명동성당, 북한산 등 당시 한국과 한국인의 생활을 볼 수 있는 모습까지 다양하다. 가장 많은 사진이 촬영된 곳은 서울(275점)이다. 1911년 2월 서울 백동수도원에 도착한 베버 총 아빠스는 천주교 관련 기관은 물론 경복궁, 동묘, 독립문, 북한산 등 한국의 문화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한다. 특히, 북한산의 경우 오토크롬과 유리건판으로 총 34점의 사진을 남겼다. 함경남도 (264점), 황해도(238점), 경기도(220점) 사진도 많은데, 1925년 방문 당시 사진과 무성영화를 촬영한 원산, 영흥 지역 모습도 다양하게 남아있다. 1911년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에는 외국인 선교사를 둘러싼 인파가 눈에 띈다. 그림이나 사진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환등기의 밝은 불빛에 놀란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다. 베네딕도회가 세운 실업 학교인 숭공학교(崇工學校) 목공부를 촬영한 사진에는 팔짱을 낀 채 진지한 모습으로 ‘단체 사진’에 임한 학생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여러 사진 가운데 베버 총 아빠스가 남긴 ‘컬러 사진’ 44점은 가치가 크다. 오토크롬은 유리판을 지지체로 사용하는 기술로, 컬러 필름이 출시된 1932년 이전까지 주로 활용됐다. 흑백 사진과 달리 천연색을 볼 수 있는 시각 자료인 셈이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베버 총 아빠스가 기록한 내용은 일제강점기 초 한국 사회와 생활상을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역사 기록물”이라고 설명했다. 베네딕도회 소속 선교사들이 남긴 사진은 종교사 연구 자료로서도 가치가 크다. 1915년 촬영한 명동성당, 초가집 형태의 성당,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등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선교사들이 서울 개운사, 안성 석남사 등 여러 사찰을 촬영한 사진 또한 흥미롭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근대사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쓰일 전망이다.
  • “죽음 공부는 삶을 더 뜻있게 살 수 있는 길… 죽음도 계획해야”[박상숙의 호모픽투스]

    “죽음 공부는 삶을 더 뜻있게 살 수 있는 길… 죽음도 계획해야”[박상숙의 호모픽투스]

    한국 사람 100명 중 80명이 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발달된 의료 기술은 노화와 죽음을 치료와 극복이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어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를 병실에 잡아 둔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수액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생을 마치는 게 흔한 일이 됐다. 죽음의 풍경이 차가울수록 무엇이 존엄한 죽음인지에 대한 고민은 깊어진다. ‘죽음학 전도사’로 통하는 정현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내 삶을 내 뜻대로 정리하기 위해선 죽음에 대한 공부와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죽음에 대한 인식 차이노화·죽음을 극복 가능하다고 여겨한국 10명 중 8명꼴 병원서 삶 마감퀴블러로스 “죽음 이후의 삶은 실재인간, 육체 벗고 다른 차원으로 이동”외국의 죽음 교육·연구영국·독일 등 초교부터 죽음 가르쳐日 시한부 삶·장례식 구상 교육하니집단 따돌림·폭력·자살 등 대폭 감소의사·과학자도 근사체험 연구 활발죽음 준비 친숙한 문화로한국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죽음 어찌 대할지 진지한 교육 필요세대 사이 소통 없어 연명 치료 횡행부모 먼저 나서 ‘임종 대화’ 시작해야2007년부터 ‘죽음학 강사’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 명예교수가 건넨 명함에는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벽이 아닌 열린 문으로서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일 뿐이다’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죽음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재수 없다’며 기피하고 금기시하는 문화를 바꿔 일상에서도 친숙하게 만들어 가는 게 그의 목표다. 어느덧 17년간 진행한 죽음학 강연은 755회를 기록했다. 그간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 가면서 안락사에 대한 논의를 비롯해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정 명예교수는 죽음에 대한 척박한 인식은 나아진 게 없다고 말했다. “처음 강연에 나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죽음’을 대놓고 제목으로 올리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기업 임원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의 제목을 ‘죽음은 소멸인가, 옮겨감인가’로 했었는데 변경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지성인을 위한 아름다운 마무리’로 바꿨죠. 죽음, 임종 이런 단어에 부정적인 반응은 여전합니다.” 그는 이런 사회 분위기가 내세관이 없는 유교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전통 장례식만 봐도 부모를 여읜 자식은 죄인처럼 처신하죠. 망자의 영혼을 부르는 고복(皐復)을 하고, 저승사자 밥상에 간장 종지를 놓는 풍습(저승사자가 간장을 물인 줄 알고 먹었다가 목이 말라 망자를 데리고 돌아오게 비는 행위)이 현세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 주는 거죠.” 사람 살리는 직업을 가졌던 그가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20년 전 나이 오십을 앞두고서다. 가족과 지인의 죽음을 겪으며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갑자기 엄습했다고 한다. 불면증까지 앓을 정도로 괴로웠던 그는 ‘구원’처럼 책 한 권을 만났다. “아내의 권유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사후생’을 읽고 죽음이 꽉 막힌 벽이 아니라 열린 문이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뜻하는 것임을 깨달은 후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인 퀴블러로스는 죽음과 임종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우리에겐 ‘분노의 5단계’ 이론으로 친숙하다. 분노의 5단계란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고 이를 인지하기까지 부정, 분노, 타협, 우울감, 수용 등의 심리 상태를 차례차례 겪는다는 것이다. ‘사후생’은 퀴블러로스가 자신이 돌본 환자들의 근사체험(육체이탈 체험)을 바탕으로 죽음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책의 요지는 ‘인간은 죽는 게 아니라 육체를 벗고 또 다른 차원의 존재로 변화 내지 이동하는 것으로, 죽음 이후의 삶은 실재하기에 사람들은 지금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앞둔 어린 백혈병 환자들에게 뒤집으면 나비가 되는 고치 벌레 인형을 보여 줬어요. 죽음이 다른 존재로 변하는 이동이란 걸 알리며 위로한 거죠.” 정 명예교수의 명함에 담긴 문구와 고치를 벗고 날아가는 나비 그림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사후의 삶에 관한 연구나 논의가 비과학적이라며 국내에서는 푸대접하지만 근사체험 관련 논문이 200년 역사의 과학잡지 ‘랜싯’에 실리는 등 외국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의사, 과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하다고 한다. 정 명예교수는 죽음을 수용하는 태도가 그 사회의 성숙도를 알려 주는 척도라고 했다. 외국에 나가 보면 공동묘지가 주택가에 자리해 있는 것처럼 그는 “죽음을 일상으로 끌고 나오는 게 필요하다. 자식들이 말을 먼저 꺼내기 어려우니 부모가 나서서 어떻게 임종할 것인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권했다. 세대 간에 서로 소통이 없어서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횡행한다고도 지적했다. “현재 사전연명의료계획서 시행은 임종기에나 기능합니다. 말기암 환자가 호흡 불안정 등으로 응급실을 찾게 되면 가망이 없는 상황인데도 기도삽관 등 방어진료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병원에 들어온 이상 자발적 퇴원은 불가하고 결국 임종을 병원에서 맞게 되는 거죠.” 1997년 일어난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가족들의 동의하에 호흡기를 떼고 퇴원한 환자가 사망하자 의료진은 살인방조죄로 처벌됐다. 지난 6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명의료중단 등에 대한 결정 시행 대상을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서 말기 환자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지난달 작고한 김민기 학전 대표는 위암 4기였는데 임종 3~4개월 전부터 항암치료 등의 연명요법을 중단하고 가족이나 지인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보냈다고 한다. 유명 인사들의 위엄 있는 마무리는 사회의 귀감이 된다. 정 명예교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이는 건축가 정기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를 설계한 그는 5년간 대장암 투병 끝에 2011년 별세했다. “그분의 마지막 소원이 아차산의 봄 내음을 맡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세상을 뜨기 며칠 전 병상에 누운 채로 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다녀와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너무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정 명예교수는 죽음도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미리 계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6년 전 찾아온 방광암에 삶을 다시 돌아봤다는 그는 2018년 앞당겨 퇴직한 뒤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10년 전부터 계획한 장례식 준비 상황을 매년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가족과 종종 ‘데스 카페’(Death Cafe)도 연다. 데스 카페는 영국에서 시작됐는데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커피나 빵을 앞에 놓고 수다 떨 듯 죽음에 관해 얘기하는 모임이라고 한다. ‘내 죽음과의 대화’라는 다큐 영화 촬영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인터뷰 전날에도 3시간이나 부인, 두 딸, 사위들과 모처럼 머리를 맞댔다. “장례와 관련해 내 뜻대로 진행되도록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들에게 거듭 얘기해야 합니다. 암이 죽음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시간을 주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장점도 있긴 합니다.(웃음)” 그가 짜 놓은 장례식은 화사하다. 태워도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는 옥양목 수의를 마련해 놨고, 초록빛이 도는 예쁜 유골함은 친한 도예가에게 선물 받았다. 장례식에서 틀 음악도 700곡이나 추려 놓았다. 부의금은 생화 한 다발로 갈음하며, 평소 즐기던 와인을 조문객들에게 대접하는 등 잔치 분위기로 만들 작정이다. 제주도 집에서 가족장을 먼처 치른 뒤 서울에서 따로 추도식을 갖도록 가족들에게 당부도 했다. 철저한 ‘자기 주도 장례식’이다. 그가 운영하는 네이버의 죽음학 카페는 현재 회원 수가 5000명에 육박한다. 매일 5~6개의 글을 꾸준히 올리며 회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강연과 카페 활동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며 자신이 얻는 게 더 많다고 한다. 방광암 투병 생활은 비슷한 처지에 대한 공감 능력을 더욱 깊게 만들어 누군가를 살리는 역할도 한다. “한번은 자살을 결심한 한 30대 여성이 제 글을 보고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국어 교사였던 아내의 도움을 받아 꼬박 7시간을 들여 답장을 써서 보냈는데 결국 마음을 바꿨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하기도 했었죠.”죽음을 공부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현재의 삶을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청소년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독일, 영국 등 초등학교 때부터 죽음을 교육하는 나라들도 있다.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반려동물의 죽음부터 시한부의 삶, 자살 등 여러 형태의 죽음을 가르치고, 직접 장례식도 구상해 보게 하는 등 10여차례 교육을 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같으면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칠 만한 일이죠. 그런데 죽음 교육 이후 교내에 만연했던 집단 따돌림, 폭력, 자살 등이 대폭 줄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죽음을 진지하게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한 때입니다.” 국내에서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제주도의회는 전 도민을 대상으로 한 죽음교육진흥조례를 통과시켰다. 다만 교육 현장으로까지 확대하자는 제안은 반대가 심해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정 명예교수는 “우리는 일평생 죽음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다가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거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죽음을 일찍 준비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리스 아토스산 성바오로 수도원 벽에 이런 격언이 쓰여 있다고 한다. ‘당신이 죽기 전에 죽는다면, 당신은 죽어도 죽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가 우리의 삶을 삼켜 버리지 못하도록 미리미리 죽음을 의식하고 학습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 정현채 명예교수는 1980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로 재직했다.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한국죽음학회 이사 등을 지냈다. 저서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가 있다. 박상숙 논설위원
  • 남자들 목숨 걸고 구경 간다는 ‘학살 현장’… 우크라 관광업 뜻밖에 활기

    남자들 목숨 걸고 구경 간다는 ‘학살 현장’… 우크라 관광업 뜻밖에 활기

    대표적 학살지 부차 관광 성업1주일 전쟁투어 500만원 호가“비극의 상업화” 지적도 공존외국인 관광객 대다수는 남성 우크라이나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고 있으며 러시아의 ‘전쟁 범죄’ 현장을 둘러보는 투어는 큰 사업이 되고 있다고 영국 더타임스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2년 6개월 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자취를 감췄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대표적인 학살 현장인 키이우 외곽도시 부차를 둘러보는 투어를 운영하는 업체만 12개에 이른다. 이 지역에 사는 타티야나 블라디미로브나는 가이드와 함께 온 관광객들에게 자신의 생존 경험을 들려준다. 그는 처음엔 관광객들의 질문이 당황스러웠지만, 전쟁이 2년 반이나 지속되고 있는 지금은 이런 광경도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부차를 비롯해 이르핀, 호스토멜 등 러시아의 학살 현장을 6시간 동안 둘러보는 여행상품 가격은 1인당 130파운드(약 23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1주일짜리 ‘전쟁 투어’ 상품은 3000파운드(약 523만원)를 호가한다. 도시 투어 가이드를 하던 스베트 모이세우는 전쟁 전엔 키이우의 동굴 수도원과 화려한 지하철역 등으로 관광객들을 안내했지만, 지금은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살해한 장소들로 데려간다. 그의 고객 대다수는 혼자 여행 온 남성이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미국에서 왔고 나머지는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에서 왔다고 모이세우는 전했다. 그는 지난 1월 미사일 공격으로 일부가 파괴된 키이우의 아파트를 보여주면서 “이들은 전쟁 중인 나라가 어떤지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여행상품이 우크라이나 비극을 상업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65세 주민 볼로디미리브나는 더타임스에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러시아인들이 우리에게 한 일은 알게 되는 것은 좋다”면서도 “부차를 재건하는 데 쓰여야 할 돈을 일부 사람들이 벌고 있는 것이라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모이세우는 “수입 절반은 군대에 기부하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아우슈비츠와 비견되는, 전 세계가 알아야 할 범죄”라고 강조했다. 직접적인 전쟁 피해를 입은 지역을 넘어 전선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도시에도 관광객들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시의회 관광책임자 흐리스티나 레베디는 “방문객 수가 지난해보다 37% 증가했다”며 “관광안내소의 전문가들이 이제는 지역 명소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도시의 안전에 대한 안내를 하는 것에도 적응됐다”고 전했다. 노르웨이에서 온 46세 로게르 우르스타드는 아내가 출장을 간 일주일간 우크라이나 여행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물가가 저렴하고 관광객이 적다는 사실에 끌렸다는 그는 남부 해안도시 오데사의 해변에서 이틀을 보낸 뒤 키이우로 와 학살 현장을 둘러봤다. 우르스타드는 “전쟁 중인 나라에는 매일매일의 슬픔이 있다”며 “TV 뉴스를 통해서는 그런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고 말했다.
  • 그대와 함께 비엔나 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 [한ZOOM]

    그대와 함께 비엔나 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 [한ZOOM]

    커피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북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 칼디(Kaldi)라는 이름의 목동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염소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염소 한 마리가 붉은색 열매를 먹고 나서 힘차게 날뛰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목동은 염소가 먹은 붉은색 열매를 수도원으로 가져갔는데, 그 열매가 바로 커피열매였다.’ 6세기경 에티오피아 커피는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 반도 남쪽 예멘으로 전해졌다. 이때까지도 커피는 음료가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커피열매를 한약처럼 달여먹었다. 달인 커피열매는 각성효과가 탁월했기 때문에 사막의 한낮 더위를 피해 야간에 이동하는 유목민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음식에서 음료가 된 커피 1517년 오스만제국이 예멘을 점령하면서 커피는 달여먹는 음식에서 음료로 바뀌었고, 오스만제국의 확장과 함께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유럽에도 베네치아를 통해 커피가 전해졌는데,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커피가 퍼져 나가자 기독교도들이 교황 클레멘스8세(Clemens VIII·1536~1605)에게 커피를 금지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커피 맛을 본 교황은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하며 커피를 공인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맛있는 음료를 이교도들만 마시게 할 수 없다.”비엔나 커피의 시작 1683년 오스만제국의 제2차 오스트리아 침공이 시작되었다. 실패로 끝났던 1532년 제1차 침공의 설욕을 씻기 위해 오스만제국 재상 카라 무스타파 파샤(Kara Mustafa Pasa·1634~1683)가 20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스트리아 빈(Vienna)으로 향했다. 당시 빈에는 약 1200명의 수비대만 있었기 때문에 오스만제국은 20만명의 군사로 충분히 빈을 점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스타파는 이대로 빈을 침공한다면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빈을 현재 모습 그대로 가지기 위해 성 안에 고립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 판단은 무스타파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1세의 요청을 받은 유럽 동맹군이 도착했고, 오스만제국 부대는 전투에 패배하면서 수많은 무기와 물건들을 남겨두고 철수했다. 이때 오스만제국 부대가 놓고 간 물건들 중에는 상당한 양의 커피원두가 있었는데, 이것이 비엔나 커피의 시작이었다.아인슈페너 한잔 하실까요 오스만제국이 남기고 간 커피원두 덕분에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커피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전해진 것은 커피가루를 함께 마시는 오스만제국식 커피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커피가루를 걸러내고 크림과 꿀을 넣어 마시는 비엔나 커피가 인기를 얻었다. 비엔나 커피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아인슈페너’(Einspänner), ‘멜랑지’(Melange), ‘프란치스카너’(Franziskaner)가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아인슈페너가 가장 유명해서 아인슈페너를 비엔나 커피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한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라는 뜻을 가진 아인슈페너는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크림을 얹어 만드는데, 마차를 끌던 마부들이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마시던 커피였다고 한다. 멜랑지는 우유와 섞은 커피 위에 우유거품을 올린 커피이며, 프란치스카너는 멜랑지 위에 휘핑크림을 올린 커피로 아인슈페너와 멜랑지의 특징을 합친 커피이다.시간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군들이 쓴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 마셨다. 이 모습을 본 이탈리아 군인들이 이 커피를 ‘미국인처럼’이라는 뜻을 담아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메리카노는 전 세계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가 되었다. 커피 이야기를 하고 나니 코끝에 커피향이 감도는 것 같다. 오늘은 아메리카노보다 달콤한 비엔나 커피 한잔 어떨까.
  • [서울광장] 종교유산의 미래와 국가유산청의 역할

    [서울광장] 종교유산의 미래와 국가유산청의 역할

    누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절 구경”이라고 답하던 때가 있었다. 최근에는 가톨릭 성지를 포함한 기독교 유산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역사가 깊은 불교 유산은 대부분 보존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반면 전래의 연륜이 짧은 종교유산은 오히려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다른 종교엔 문화유산 정책의 손길이 뒤늦게 미치거나 아직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둘러본 가톨릭 성지의 공통점은 그다지 필연성을 찾기 어려운 건축물을 새로 지어 애초의 소박한 성스러움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천 배티성지는 조선의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이 사목 활동을 했던 마을이다. 성지에 다가가면 최근 지었다는 엄청난 규모의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대성당’과 ‘최양업 신부 박물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형을 깎아 만든 마당과 주차장도 넓기만 하다. 배티는 신유박해 당시 신자들이 숨어든 오지였다. 대성당과 박물관을 지나 초기 성당과 신학교를 겸했다는 삼간초가의 소박한 흔적에서 비로소 성지다운 분위기가 살아났다. 순교자 묘역으로 오르는 길 중간의 조촐한 성지수도원과 ‘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 성당’을 보면 그래도 초기에는 진정성과 조화에도 신경을 썼던 듯싶다. 당진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이다. 김대건 신부 집안이 4대에 걸쳐 신앙을 이어 갔다는 의미도 있다. 솔뫼성지에도 이런저런 부속시설들이 세워졌지만 핵심은 아무래도 생가(生家)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생가는 복원 작업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솔뫼성지는 2014년 국가문화유산인 사적으로 지정됐다. 적어도 중대한 훼손은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 만큼 이제 ‘중요한 역사 인물의 탄생지’로 솔뫼성지의 진정성을 살리기 위한 추가 발굴조사 등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김제 금산교회는 보존이 비교적 잘되고 있는 듯하다. 1905년 처음 지은 것을 190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남녀석이 분리된 기역자(ㄱ) 공간은 전통 사회의 관습을 반영한다. 무엇보다 금산교회가 있는 모악산은 다양한 종교가 다투어 자리잡고 있는 호남의 성산(聖山)이다. 백제 고찰 금산사와 증산교 본부도 모악산을 터전으로 한다. 금산교회의 존재는 개신교가 모악산으로 진출해 다른 종교와 경쟁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 개별 문화유산뿐 아니라 모악산에 흩어진 전체 종교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통합적인 보존 및 발전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문화유산 정책의 역할이어야 한다. 금산교회를 언급하니 자연스럽게 진산성지성당이 생각난다. 진산사건의 주역으로 복자(福者) 반열에 오른 윤지충과 권상연을 기리는 성당이다. 당시 교리에 따라 부모의 제사를 거부하고 위패를 불태운 사건이다. 이 성당에도 지금은 쓰지 않지만 남성용과 여성용 출입문이 따로 있었다. 진산성당은 1927년 처음 지었을 때와 다름없는 한식 목구조에 슬레이트 지붕의 소박한 모습이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진산사건으로 참수된 윤지충과 권상연의 무덤이 최근 전북 완주 바우배기에서 발견된 것은 종교유산 보존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 주고 있다. 천주교단도 진정성이 넘치면서 종교적 상징성도 살린 성지를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바우배기를 하루라도 빨리 사적으로 지정해 국가와 가톨릭이 보존 방안에 머리를 맞댔으면 좋겠다. 국가유산청이 출범하면서 종교유산협력관 직제가 신설됐다. 문화유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불교계와의 소통에 우선적 역할이 맡겨진 듯싶다. 하지만 다른 종교유산도 너무나도 당연히 국가유산청이 포용해야 한다. 한남동의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도 2026년이면 50주년을 맞는다. 2년 뒤면 등록문화유산 요건을 충족하는 이슬람성원이 국가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지도 차근차근 검토해야 한다. 종교유산협력관은 국가유산청이 장차 장관급 부처로 격상됐을 때 자연스럽게 ‘종교유산정책국’으로 확대되어야 할 직제라고 본다. 종교유산협력관이 지금부터 범종교적 역할을 수행하려면 이름도 ‘종교유산정책관’으로 바꾸는 것이 미래지향적이 아닐까 싶다. 서동철 논설위원
  • “예상 낙찰가 53억원” 1500년전 이집트 성경 사본 경매 나온다

    “예상 낙찰가 53억원” 1500년전 이집트 성경 사본 경매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이집트 성경 사본이 경매에 나온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3~4세기경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기독교 전례서인 크로스비-쇼엔 코덱스(Crosby-Schøyen Codex)가 11일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 온다. 예상 경매가는 200만~300만파운드(약 25억1000만원~52억7000만원)이다. 이집트 북부 수도원의 한 필경사가 40년에 걸쳐 파피루스에 콥트어로 작성한 크로스비-쇼엔 코덱스는 104쪽 또는 52장 분량의 초기 기독교 문헌이다. 베드로서와 요나서 일부가 실린 이 문헌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약 1500년간 묻혀 있다가 발견됐다. 크리스티의 서적과 필사본 전문가인 유지니오 도나도니는 크로스비-쇼엔 코덱스가 “기독교 연구에 혁명을 일으킨 20세기의 세 가지 발견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지중해 주변에서 기독교가 처음 전파되던 당시의 자료인 데다, 유대교 전통에 여전히 경도돼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이와 구분되는 ‘기독교인’으로 규정하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크로스비-쇼엔 코덱스는 1981년까지 미시시피대학이 소장했으나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고 1988년부터는 노르웨이 서적, 필사본 수집가인 마르틴 쇼엔이 가지고 있었다. 쇼엔은 이번 경매에 크로스비-쇼엔 코덱스 외에도 13세기 히브리어 원고가 포함된 61점의 소장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는 성경과 관련된 400여 점을 포함해 2만여 점의 사본을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사본 보관소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다.
  • 전병극 문체부 1차관 “韓-伊 수교 140주년…양국 교류 협력 깊어지길”

    전병극 문체부 1차관 “韓-伊 수교 140주년…양국 교류 협력 깊어지길”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이탈리아에서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계기 특별전시’ 개막식에 참석했다. 전 차관은 축사를 통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그동안 세계적인 한국 작가를 배출해 한국미술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확산해 왔다”라며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을 계기로 양국의 교류 협력이 더욱 깊어지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개막식에는 1997년 한국관에 참여해 특별상을 받은 강익중 작가를 비롯한 역대 한국관 참여 작가들과 예술감독들, 이성호 주이탈리아대사, 강형식 주밀라노총영사,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등이 참석했다. 1995년부터 운영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한 특별전이 이날부터 9월 8일까지 베니스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열린다. 전시 주제는 예술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연결을 상징하는 ‘모든 섬은 산이다’(Every Island is a Mountain)로, 역대 한국관 참여 작가 36명(팀)의 예술 작업이 모두 담겼다. 한편,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구정아 작가가 향을 매개로 선보이는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 전시가 열린다.
  • 19년 전 이건희 회장처럼… 삼성, 밀라노서 ‘디자인 철학’ 선언했다

    19년 전 이건희 회장처럼… 삼성, 밀라노서 ‘디자인 철학’ 선언했다

    “반투명한 큐브 속에서 우주를 유영하듯 움직이는 빛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본질적 가치를 상징합니다.”(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직원) 16~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4’에 참가한 삼성전자는 기업마다 독특한 콘셉트를 선보이는 장외 전시 ‘푸오리살로네’에서 삼성의 디자인 철학을 담은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다. 밀라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립과학기술박물관 부지에 위치한 레카발레리체에서 진행된 전시회는 디스플레이, 센서, 빛을 활용한 전시로 ‘본질’, ‘혁신’, ‘조화’, ‘무한한 가능성’, ‘또 다른 미래’ 등 5개 관을 차례로 체험할 수 있게 했다.노태문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장(사장)은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전시관을 취재진에게 사전 공개하고 “사용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기술 혁신과 동반됐을 때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면서 “사람과 기술의 조화를 강조한 이번 전시처럼 사람 중심의 디자인 철학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밀라노는 삼성이 디자인 중요성을 강조하고 글로벌 디자인 체제를 확립한 ‘2005 밀라노 디자인 선언’이 있었던 곳이다. 2005년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은 주요 사장단과 함께 이곳에서 전략회의를 열고 4대 디자인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후 19년 만에 삼성은 밀라노에서 사람과 기술의 공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디자인도 진화시켜 나가겠다”고 공언한 것이다.삼성이 2030년까지 추구할 디자인 지향점(본질·혁신·조화)을 소개하는 장소로 레카발레리체를 택한 것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곳에서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공존의 미래’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여파로 심하게 훼손돼 과거 수도원이었던 모습을 잃어버렸다가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재탄생했다. 이탈리아 소재 브랜드 ‘무티나’, ‘알피’의 장인과 협업해 각각 세라믹과 목재를 비스포크 제품(냉장고, 에어드레서)의 패널에 적용한 것도 예술적 가치와 현대적 기술을 조화시키려는 취지다. 홍유진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UX팀장(부사장)은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하는 특징은 AI로 대표되는 기술 변혁이 모든 걸 바꾸고 있다는 것”이라며 “본질·혁신·조화는 사내 1500여명의 디자이너들이 수많은 (디자인) 결정을 할 때 커다란 지침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와 기아도 밀라노 시내에서 진행된 장외 전시를 통해 디자인 철학을 강조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와 협업해 주방과 거실의 경계를 과감히 없앤 ‘언더카운터 모듈형 냉장고’(서랍형 빌트인 냉장고) 등을 전시한 LG전자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쇼룸의 특징은 LG 브랜드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재욱 LG전자 키친솔루션해외영업팀장은 “(과거) LG가 근접할 수 없었던 유럽의 상위 1%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 19년 만에 밀라노서 디자인 진화 외친 삼성…사람과 기술 ‘공존’을 묻다

    19년 만에 밀라노서 디자인 진화 외친 삼성…사람과 기술 ‘공존’을 묻다

    “반투명한 큐브 속에서 우주를 유영하듯 움직이는 빛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본질적 가치를 상징합니다.”(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직원) 16~2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위크 2024’에 참가한 삼성전자는 개막을 하루 앞둔 15일 국내외 미디어에 전시관을 사전 공개하고 삼성의 디자인 철학과 함께 2030년까지 추구할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밀라노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과학기술박물관 부지에 위치한 ‘레카발레리제’에서 진행되는 전시회는 디스플레이, 센서, 빛을 활용한 전시로 ‘본질’, ‘혁신’, ‘조화’, ‘무한한 가능성’, ‘또 다른 미래’ 등 5개 관을 차례로 체험할 수 있게 했다.홍유진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UX팀장(부사장)은 취재진과 만나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하는 특징에 대해 디자인팀장들이 모여 논의를 이어간 결과 ‘본질·혁신·조화’ 세 가지로 압축됐다”면서 “회사 내 1500여명의 디자이너 결과물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수많은 디자인 결정을 할 때도 커다란 지침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첫 번째로 꼽은 본질은 제품 본연의 기능과 쓰임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수식과 군더더기를 덜어내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게 아니라 고객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주는 도전을 의미한다고 했다. 조화는 제품과 제품, 제품과 고객의 삶이 조화를 이루고, 나아가 사회와 환경 등 다양한 가치관을 아우를 수 있는 디자인을 뜻한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삼성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라는 게 홍 팀장 설명이다.전시관을 찾은 노태문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장도 “사용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기술 혁신과 동반됐을 때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밀라노는 삼성이 디자인 중요성을 강조하고 글로벌 디자인 체제를 확립한 ‘2005 밀라노 디자인 선언’이 있었던 곳이다. 2005년 4월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은 주요 사장단과 함께 이 곳에서 전략회의를 열고 4대 디자인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후 19년 만에 삼성은 밀라노에서 사람과 기술의 공존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디자인도 진화시켜 나가겠다”고 공언한 것이다.삼성이 ‘2030 디자인’ 지향점을 밝힐 장소로 레카발레리제를 택한 것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곳에서 ‘공존의 미래’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 곳은 2차 세계대전 여파로 심하게 훼손돼 과거 수도원이었던 모습을 잃어버렸다가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재탄생했다. 이탈리아 소재 브랜드 ‘무티나’, ‘알피’의 장인과 협업해 각각 세라믹과 목재를 비스포크 제품(냉장고, 에어드레서)의 패널에 적용한 것도 예술적 가치와 현대적 기술을 조화시키려는 취지다. 노 사장은 “사람과 기술의 조화를 강조한 이번 전시처럼 사람 중심의 디자인 철학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 알프스의 숨은 진주, 슬로베니아 블레드섬 [한ZOOM]

    알프스의 숨은 진주, 슬로베니아 블레드섬 [한ZOOM]

    발칸반도 북쪽에 위치한 슬로베니아(Slovenia)는 알프스산맥 동쪽 끝에 위치해 있어 스위스와 더불어 산맥이 주는 유럽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슬로베니아를 ‘발칸반도의 스위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슬로베니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이지만 호수 속에 있는 섬을 하나 가지고 있다. 이 작은 섬이 바로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블레드섬’(Bled Island)이다.블레드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슬로베니아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 블레드에는 알프스산맥의 만년설이 흘러내려와 만든 블레드 호수가 있다. 그리고 이 호수의 한가운데에는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본 것과 같은 모습의 작은 섬 ‘블레드섬’이 있다. 일단 블레드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플라트나’(Pletna)라는 이름의 배를 타야 한다. 배는 약 15명 정도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작은 크기이다. 자연보호를 위해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뱃사공이 직접 노를 저어 배를 몬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등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큰 편이다. 몬테네그로는 네덜란드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키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큰 키에 매일 노를 저어 생활근육까지 가지고 있는 뱃사공이 배를 몰기 시작하자 승객들의 관심은 목적지인 블레드섬보다 뱃사공의 외모에 쏠리기 시작했다. 슬로베니아가 미남이 많은 나라로 유명하기까지 하니 잘생기고 큰 키에 근육을 가진 뱃사공의 외모에 대한 승객들의 관심은 블레드섬에 닿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들도 이 곳 블레드호수와 블레드섬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곳이 사람들로 인해 훼손되는 것이 두려웠던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여왕은 블레드섬을 오가는 배의 수를 제한해 사람들을 통제했다. 그리고 배의 수를 제한하는 대신 뱃사공 자격을 아무나 가지지 못하게 하고 자격을 상속할 수 있도록 해서 뱃사공들의 불만을 잠재웠다. 18세기부터 이어진 뱃사공 자격 상속제도 덕분에 오늘날 뱃사공들은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는 고소득자라고 한다. 잘생긴 외모에 고소득자라는 이야기까지 퍼지자 승객들의 감탄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동양에서 온 사람들이 왜 감탄사를 연발하는지 알 길이 없는 잘생긴 고소득자 뱃사공은 덤덤한 표정으로 블레드섬을 향해 계속 노를 저었다.블레드 섬을 둘러싼 전설들 블레드 섬에 내려 처음 만나는 것은 99개 계단이다. 블레드섬은 결혼식 장소로도 많이 이용되는데, 신랑이 신부를 안고 99개 계단을 모두 오르면 평생 행복하게 산다는 전설이 있다. 99개 계단을 모두 오르면 ‘성모승천성당’이라는 이름의 성당이 나온다. 원래 이 성당은 고대 슬라브 전설에 등장하는 생명의 여신 ‘지바’(Ziva)를 모시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8세기 무렵 슬로베니아 사람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면서 이 곳을 성당으로 바꾸었다고 한다.이 성당 50m 높이 위에는 1534년 이탈리아 파도바(Padua)에서 ‘프란치스쿠스 파타비누스(Franziskus Patavinus)’가 만든 ‘소원의 종’이 달려있다. 이 종소리를 들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종소리를 듣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다. 강도에게 남편을 잃은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전 재산을 들여 블레드섬에 설치할 종을 만들었다. 그런데 종을 블레드섬으로 옮기던 날 폭풍이 불어 종을 싣고 가던 배가 호수 바닥에 가라앉고 말았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로마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가 되었다.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교황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 블레드섬에 보냈다.알프스의 진주 블레드호수를 끼고 있는 절벽 위에는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 블레드성(Bled Castle)이 있다. 이 성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알프스 만년설이 녹아 만든 맑은 블레드호수와 맑은 호수 물에 비친 그림자마저 아름다운 블레드섬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순간 이 곳에 오기 전에 읽은 슬로베니아 가이드북 내용이 떠올랐다. 그 책은 블레드섬을 ‘알프스의 진주’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곳에 올라 내려다 본 블레드섬은 가이드북의 표현대로 알프스 만년설 위에 놓여있는 진주알 같아 보였다. 역시 사람이 보는 눈은 크게 다르지 읺다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블레드성 계단을 내려왔다.
  •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에서 발견된 ‘중세 천문학 텍스트’ [이광식의 천문학+]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에서 발견된 ‘중세 천문학 텍스트’ [이광식의 천문학+]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중세 천문학의 일단을 보여주는 텍스트가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원 도서관에서 발견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 우연히 발견된 한장 짜리 텍스트는 르네상스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티코 브라헤,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의 영향을 받기 이전인 중세 천문학에 대한 통찰력을 볼 수 있다. 이 텍스트는 1490년 이전에 베네딕토회 수도사인 볼프강 데 스티리아가 편집한 천문학 강의 노트에서 발췌한 것이다. ​ 텍스트 상단 부분은 지구 중심의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월식(사진 왼쪽)과 일식의 원리를 설명하는 기하학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 왼쪽 아래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모델에 따른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태양계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 관점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이 있다. 동심원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그 바깥으로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이 차례로 늘어서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 율리우스력으로 부활절 일요일 날짜를 계산하는 도표가 실려 있다. ​ 삽화가 들어 있는 이 텍스트는 오스트리아의 역사적인 멜크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멜크 수도원은 오스트리아 니더외스터라이히주 멜크 마을 위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이다. 1089년 오스트리아 변경백인 레오폴트 2세가 자신의 성 중 하나를 람바흐 수도원의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에게 주면서 설립됐다. 다뉴브 강이 내려다보이는 암석 언덕 위에 있으며, 바하우 계곡에 인접해 있다.
  • ‘징역 468년형’ 선고받은 태국 승려, 죄목은 111억원 횡령 [여기는 동남아]

    ‘징역 468년형’ 선고받은 태국 승려, 죄목은 111억원 횡령 [여기는 동남아]

    태국 사찰의 전직 수도원장이 3억밧(한화 약 111억1500만원)에 달하는 횡령 사건에 연루돼 징역 468년을 선고받았다. 21일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나콘랏차시마주 빡총군에 위치한 왓 파 담마키리 불교 사원의 전직 수도원장인 프라 아잔 콤은 지난 19일 태국 중앙형사재판소로부터 부정부패 혐의로 468년형을 선고받았다. 콤의 여동생, 운전사, 전직 승려 등의 공범 8명도 해당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콤은 불교 사찰로 들어온 돈을 본인의 은행 계좌에 보관한 뒤 여동생에게 인출하게 하는 수법으로 횡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동생은 총 76회 콤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빼돌렸다. 태국 경찰은 콤의 자택에 보관 중이던 인출 금액의 일부인 5140만밧(약 19억원)을 압류했다고 밝혔다. 콤은 공범들에게 사찰로 들어온 기부 물품들을 외부에 숨기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총 2억 9950만밧(약 111억원) 상당의 현금과 자산을 발견했다. 법원은 콤이 78개의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 1개 위법 행위당 징역 6년을 적용해 총 468년형을 선고했다. 콤의 횡령 사건에 연루된 콤의 여동생은 징역 308년, 전직 승려 1명은 징역 312년이 선고됐다. 다만 태국 형법은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하지 않는 한, 최대 10년 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범죄를 여러 번 저지른 사람은 최대 50년 동안만 복역하게 된다.
  • 장병권 이노비즈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장 취임

    장병권 이노비즈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장 취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 소재 이노비즈협회(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는 14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이노비즈 최고경영자과정 정기총회 및 제8대∙ 9대 총동문회 회장 이취임식을 가졌다고 15일 밝혔다. 제 8대 김세규 회장(현대ICT(주) 대표)의 뒤를 이어 취임하는 장병권 회장은 2009년 (주)엔티모아를 설립, 모바일 통신 모듈과 모뎀 및 수도원격 검침기, 전기차 PLC 일체형 단말기 등을 개발·생산·제조·판매하는 업력 16년차의 전문 IOT솔루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장 회장은 “동문회가 원우들의 비즈니스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동문 기업간 친목을 바탕으로 융합과 교류를 지원 강화하고자 한다” 면서 “800여 동문 기업들이 서로간의 협업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노비즈협회는 2008년 1기를 시작으로 17년 간 이노비즈 최고경영자과정을 운영해오고 있으며, 총 800여명의 동문 기업들이 함께 하면서 사업 협력 및 신규 비즈니스 발굴 등 다양한 연결고리를 마련하고 있다. 오는 26일부터 매주 화요일 총 15주 간 22기 과정이 운영될 예정이다.
  • 4월 베네치아에 ‘K미술 지형도’ 펼쳐진다

    4월 베네치아에 ‘K미술 지형도’ 펼쳐진다

    오는 4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동시대 ‘K미술의 지형도’가 펼쳐진다. 4월 17일 개막하는 제60회 베네치아비엔날레 국제 미술전에서 한국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아르코미술관과 주요 재단, 민간 갤러리, 예술가 단체 등 7개 기관이 우리 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알릴 전시를 앞다퉈 연다. 아르코미술관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한국관 개관 전시와는 별도로 1995년 첫 한국관 참여 작가부터 2022년 참여 작가까지 38명의 당시 전시작, 전시작을 바탕으로 한 신작 등 80여점을 망라한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로 지난 30년간 ‘K미술의 최전선’을 조망하게 한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은 “전시명은 ‘예술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연결’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국관 건립의 산파 역할을 한 고 백남준의 예술 철학에 상상력을 더해 고립된 개인과 분열된 사회를 연결하는 예술의 힘을 보여 주려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4월 18일부터 9월 8일까지 12세기 중세 건축물인 베네치아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열린다. 올해 한국관 단독 작가로 선정된 주인공은 구정아 작가다. 전 세계 미술계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는 그는 개인전 ‘구정아-오도라마 시티’를 통해 향기, 기억 등을 활용한 한반도의 무형적 지도를 전 세계 관객과 함께 그릴 계획이다. 최근 리만머핀과 국제갤러리 전속 작가가 되며 주목받은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은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는 전 세계 미술가 332명(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광주비엔날레재단, 유영국미술문화재단,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 한솔문화재단의 4개 병행 전시도 현지에서 본전시 기간 열린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광주비엔날레 30주년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우리가 되는 곳’을 열어 광주 정신을 되새기며 지속 가능한 인류 공동체 미래를 그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광주 공동체를 기리는 1회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백남준의 ‘고인돌’을 선보이며 그간 지향해 온 가치를 알린다. 한강 작가가 현지 대학생들에게 광주, 인권, 민주에 대해 강연하는 연계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은 우리 추상 미술의 선구자인 유영국 특별전으로 최근 미술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그의 첫 유럽 개인전을 선보인다. 세계적 건축가들이 협업한 것으로 유명한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 건물에 그가 한국의 자연에 몰두하며 작품 활동의 절정기를 이룬 1960~1970년대 작품을 대거 소개한다. 김인혜 큐레이터는 “한국의 단색화 세대 이전에 서양 회화의 언어를 쓰면서 한국의 숭엄한 자연을 표현하고 강렬한 원색을 과감히 배치한 작가가 있었다는 걸 서구 관람객에게 다시금 제시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은 동양의 철학과 서양의 기법이 어우러진 독창적 작품 세계를 일군 이성자의 대표작 20여점을 모아 소개한다. 한솔문화재단은 우리 전통 풍습인 달집태우기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깊이 성찰한 이배 작가의 ‘달집태우기’ 전시로 세계인에게 여백의 미학을 알린다. 고 신성희 작가의 회화 연작을 내세운 갤러리현대와 다국적 작가 공동체 나인드래곤헤즈의 프로젝트도 ‘K미술 전시’에 다양성과 역동성을 더한다. ‘미술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네치아비엔날레는 1895년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 축제로 미술전과 건축전이 격년마다 번갈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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