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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젊은 작가 9명 디킨스 소설을 비틀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1812~1870)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친구가 죽었다”던 140여년 전 런던 뒷골목 서민들의 울부짖음만큼 아픔과 고통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가 정신의 본보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성란, 백가흠, 윤성희 등 한국 문단을 이끄는 젊은 피, 아홉 명이 모여 만든 테마 소설집 ‘헬로, 미스터 디킨스’(이음 펴냄)에 이 같은 물음의 답이 숨어 있다. 아홉 편의 단편들은 디킨스의 소설을 교묘하게 비튼 일종의 변주곡들이다. 지난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디킨스를 기념한다면서 지난해 끄트머리에서야 발간됐다. ‘두 도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가들은 하성란, 백가흠, 김중혁, 배명훈, 박솔뫼이다. 윤성희, 김경욱, 최제훈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기상천외하게 재해석했다. 박성원은 ‘올리버 트위스트’를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고아 소년의 이야기로 틀었다. 젊은 작가들은 현대사의 ‘두 도시’로 ‘1980년 5월 광주’를 주저없이 꼽았다. 하성란의 ‘두 여자 이야기’에선 1980년의 광주와 현재의 광주가 교차한다. D시에 새로운 브랜드를 덧입히는 프로젝트를 맡은 세 남녀가 이 도시를 찾아오고, 꼬리를 무는 사건이 벌어진다. 두 남자와 친구도 연인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로 묘사된 주인공 ‘그녀’는 ‘오은영’이란 이름의, 자신과 꼭 닮은 여자가 이 도시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30년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의 친목회에 따라왔다가 D시 바로 옆 산 중턱 유적지에서 길을 잃었다. 사흘간 산속을 헤매다 D시로 내려온 ‘그녀’는, 그 사흘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전해듣고는 오줌을 지리는 나약한 아이로 변했다. 백가흠의 ‘수도원 오르는 길-더 송4’에 등장하는 두 도시는 아테네와 광주다. 광적인 기독교 신자인 이왕주는 기도하던 중 우상들을 무너뜨리라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아테네를 찾아간다. 그는 재정 파탄 위기에 내몰린 그리스의 시위대와 마주한 뒤 1980년 광주를 떠올렸다. 이왕주의 열두 살 여동생은 전남 도청으로 내달리던 국군의 탱크에 깔려 죽었고, 여동생을 찾아 나선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날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룬 최제훈의 ‘유령들’은 속편 격이다. 개과천선한 스크루지가 예전 구두쇠로 되돌아간 사연을 담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Time in Luther 루터도시 순례기

    Time in Luther 루터도시 순례기

    마틴 루터 Martin Luther 독일의 성직자, 교수. 르네상스와 모더니즘의 방아쇠를 당겼다. 학자들은 그를 두고 마지막 중세를 살았던 인물로 평가한다. 당시 그는 절대 권력을 가졌던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스타 종교인이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교회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지 500년이 되는 2017년까지 루터도시 곳곳에서는 그의 정신을 기리는 축제를 만날 수 있다. 신에서 인간으로 관점의 변화를 가져온 루터의 자취를 좇는 루터도시 순례에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루터도시 순례기 Time in Luther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시공간을 찾아갔다. 중세와 근대의 경계를 고스란히 간직한 독일 소도시 여행에서 구도자의 삶을 엿본다. 내가 찾아간 독일은 다시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의 시대였다. 루터가 살았던, 죽었던, 설교했던, 공부했던, 결혼했던, 세례를 받았던 독일의 튀링겐주와 작센안할트주 일대는 아예 루터도시Lutherstadt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2017년이면 루터가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성당에 못 박은 지 500년이 된다. 독일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한창이다. 500년이 흐른 지금도 루터가 부지런히 상기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여정의 끝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루터로의 시간여행은 시작됐다.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 각 나라 언어로 제작된 박물관 안내서가 구비돼 있다 ●아이슬레벤Eisleben 루터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도시 본격적으로 루터의 자취를 좇는 여행은 그가 태어난 아이슬레벤에서 시작됐다. 인구 2만5,000명이 사는 아이슬레벤은 우리나라 폐광촌과 분위기가 흡사했다. 구리 채굴로 번성했던 도시의 과거 영화는 시민 계급의 주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지금은 한적하기만한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매년 찾아오는 50만명의 관광객으로 그리 외롭진 않다. 루터가 태어난,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프로테스탄트의 성지라는 점이 그들의 발길을 이끈다. 걸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도시 곳곳에서 루터를 만날 수 있다. 루터는 티셔츠에 머그컵에 부지런히 등장하는 체 게바라처럼 인기 있는 혁명가 아이콘이다. 루터는 갤러리에 걸린 팝아트에도 등장하고 아이들이 갖고 노는 종이 인형의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루터 시대 먹었던 음식을 재연한 이색적인 레스토랑도 인기다. 도시 광장 한복판에 성서를 들고 있는 루터 동상은 빼놓을 수 없는 관광객의 사진 포인트.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알았던 소수의 전유물이던 성서를 독일어로 최초 번역한 그의 업적을 기렸다. ‘소수자’로 태어난 루터는 대중의 언어인 독일어를 일부러 배우고 익힌 후에야 번역을 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시대 계층간의 단절이 새삼 놀랍다. 그가 번역한 성서는 당시 1,000만권 정도 복사된 최고의 밀리언셀러였다. 지식을 독점하면서 우위를 누렸던 성직자들이 루터를 고운 눈으로 봤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루터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깊어 갔다. 화답이라도 하듯 루터는 현 루터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한다. 그가 마지막 설교를 했던 상트 안드레아스 키르헤 교회도 예전 그대로다. 부축을 받으며 절뚝절뚝 단상에 올랐을 노성직자가 아른거린다. 교회를 나와 세상에서 첫 번째 박물관으로 탄생한 루터의 생가로 향한다. 루터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 복원돼 있다. 방명록에는 심심치 않게 한글이 눈에 띈다. 한국인 성지 순례자가 꼭 들르는 관광지다. 생가 이층에서 창문을 열면 루터가 세례를 받은 상트 페트리 바울리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가톨릭 세계관에서 세상에 태어난 생일은 중요치 않았다. 세례를 받은 후에야 그 삶에 비로소 의미가 있었다. 종교인으로서 시발점이자 종결점이 된 이 도시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이기도 했다. 교회에는 아기 루터의 머리를 적신 성수가 담겼던 세례 그릇이 복원돼 있다. 새겨진 문구는 마태복음 28장 19절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말씀을 실행한 루터는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독일인이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아이슬레벤 루터 생가에서 만난 루터 동상. 이곳은 세계 최초의 박물관으로 지정됐다 2 루터를 종이인형으로 형상화한 그림. 루터는 아이슬레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콘이다 3 루터가 마지막으로 설교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른 신랑, 신부 ●비텐베르크Wittenberg 근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되다 루터의 본류를 좇으려면 비텐베르크가 빠질 수 없다. 이곳은 500여 년 전 지구상에서 가장 사상적으로 치열했던 땅이다. 중세 학문의 중심지였던 비텐베르크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모여들었고 수준 높은 학문이 교류됐다. 루터는 이곳에서 생애 가장 많은 시간, 가장 치열한 한때를 보냈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광장으로 향했다. 시청에 내걸린 거대한 루터 현수막 아래로 진짜 루터가 등장했다. 은발의 노신사가 루터와 같은 수도복을 입고 추종자들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닌다. 독일식 코스튬플레이인가 싶어 절로 웃음이 났는데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비텐베르크 시민들도 이제는 그냥 그를 루터라고 부른다는 말에 뒤집어졌다. 당시 루터는 중세의 아이돌이었다. 동경하고 추종하는 자도 많았으니 내가 루터라고 주장하는 가짜 루터들도 출몰할 법했다. 루터가 1511년부터 거주한 수도원은 지금까지 원형이 보존돼 ‘루터하우스’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그곳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다량의 루터 초상화다. 젊은 루터, 늙은 루터, 박사모를 쓴 루터, 수도복을 입은 루터 등등 화가들은 쉴 새 없이 화폭에 루터를 담았다. 그를 스타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조목조목 따지고 든 95개 조의 반박문을 1517년 성교회Castle Church에 못 박은 일이었다. 루터는 거침없었다. 교회의 처사에 부글부글 끓던 사람들에게는 통쾌한 대자보였던 것이다. 가장 강력한 권력 대한 반박문은 종교개혁에 소중한 첫걸음이 됐다. 루터하우스에서 성교회까지,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은 도보로 20여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중세의 매듭이 묶이고 근대라는 시간이 스멀스멀 탄생한 것이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루터는 근대의 불을 인간에게 안긴 프로메테우스가 됐다. 그리고 그는 설교로 계속 그 불의 온기를 유지해 나갔다. 그가 최초로 또 2,000회 이상 독일어로 미사를 올렸던 성 마리아 교회의 첨탑이 광장 동쪽으로 삐죽이 솟아 있다. 거칠게 생각해 보면 루터는 역사책 안의 인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와는 상관도 인연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엔 교회 대신 백화점으로 향하는 내게도 크리스마스는 가장 신나는 ‘빨간 날’일 뿐이다. 그럼에도 종교를 개혁한 마틴 루터에게 우리는 분명 빚을 지고 있다. 그가 우리의 관심사를 신에서부터 인간으로 되돌린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건 거창하다. 다만 구시대의 모순에 하나둘 반기를 들었던 행동들이 모여 역사가 흘러갔다는 것.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의 용기 덕분에 근대의 수혜를 입었다는 것. 그게 제일 크겠다. 이제 세상은 신의 계시가 아니라 과학적인 합리성에 의해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과학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새 질서를 꿈꾸는 이때 독일인은 부지런히 루터를 소환하고 있었다. 다시 개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루터도시는 희망의 증거를 내준다. 4 비텐베르크 광장.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걸개가 걸려 있다 5 맥주는 빠질 수 없는 독일인의 문화.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했을 정도로 루터 역시 맥주를 즐겼다 6 비텐베르크는 루터로 꽉 찬 도시 같다 ●밤베르크Bamberg 천년의 낙차를 여행하다 루터가 살았던 중세를 오감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밤베르크만한 곳이 없다. 이름도 생경한 이 도시에 들어서려면 다소 긴 관문을 통과한다. 뮌헨 공항에 내려 세 시간여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이 도시에 다다르면 여독보다 더 강렬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이동의 피로감은 뒷전이 된다. 밤베르크는 수로를 따라 발달한 도시다. 볕에 대기가 달궈지기 전 찬 공기와 만난 수면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니 그 운치는 몇 곱절로 늘어난다. 시간이 흐르자 밤베르크에는 볕이 가득하다. 조도가 높았다. 워낙 일조량이 적은지라 아이가 태어나면 항우울성 예방주사부터 맞힌다는 독일에서 운 좋은 시작이었다. 골목골목 독일 특유의 목조건물이 즐비하고 알록달록한 색색의 담장을 넝쿨이 따라간다. 약속이나 한 듯 건물 위에 얹은 빨간 지붕 옆으로 너른 포도밭이 펼쳐져 있어 건물과 자연의 보색대비가 도드라진다. 느릿한 걸음으로도 두 시간 남짓이면 도시를 크게 한 바퀴 휘감을 수 있다.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해 간 덕분에 옛 모습을 간직한 도시는 1993년 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인리히 2세 황제가 신성로마제국 중심지로 가꾼 밤베르크는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지어진 도시. 때문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수고쯤은 감내해야 한다. 황홀한 낙차를 즐기며 걸음걸음을 옮기다 보면 밤베르크가 살아있는 고도古都라는 데 공감이 간다. 레그니츠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업을 잇던 어부들의 집 주변으로 상가가 조성돼 있다. 지금도 그곳에는 카페가 들어서 있고 아기자기한 기념품점이 늘어섰다. 꽤나 낡아 보이는 집들도 아직 짱짱한 현역이다. 밤베르크 사람들은 고작 몇백년 된 건물이라고 받아친다. 우리 같았으면 당장 ‘진입금지’를 뜻하는 펜스부터 둘렀을 법한데 10세기에 조성된 이 도시는 현대적인 기능까지 돋보인다. 겹겹이 쌓인 지층처럼 천년의 시간 위에 현재의 삶이 덧입혀진 모습이 아름답다. 과거를 기억하는 건 비단 도시만이 아니다. 사람도 그렇다. 선조의 문화를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이들이 밤베르크 여행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가장 유명한 곳은 슈렝케를라Schlenkerla로 불리는 양조장. 밤베르크에 있는 8개의 맥주 양조장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다. 얼큰하게 취해서 비틀비틀 걷는 모양이라는 뜻의 의태어가 가게 이름이 됐다. 지금도 아버지의 아버지가 마시던 맥주를 마시려는 애주가들로 슈렝케를라 앞은 북적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맥주 맛은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훈증을 거친 몰트로 맥주를 빚기 때문에 ‘훈제맥주’로 불리는 맥주는 구운 치즈와 같은 향을 가졌다. 짙은 훈제맥주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건 밤베르크 여행의 색다른 묘미다. 6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현 주인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다. 훈제맥주는 ‘적어도 세 잔은 마셔야 진가를 알 수 있다’며 완벽한 궁합을 이루는 안주를 공수한다. 맥주는 인류가 천년을 이어온 고급문화의 정수라며 문명이 있는 곳에 술이 있다고 한다. 옛 맛을 기억한 손님이 다시 찾아와 줄 때 가장 행복한 것은 물론이다. 그의 말처럼 이곳의 맥주는 마시자마자 기억을 환기시키는 ‘리퀴드 타임머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했다. 덕분인지 밤베르크 성인의 맥주 섭취량은 독일 내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성인 한 명이 연중 288L의 맥주를 마신다고 하니까. 중세부터 지금까지 밤베르크 사람들은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다”라고 외쳤던 루터의 ‘명언’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밤베르크의 맥주로 미각을 깨웠다면 이제 영혼을 깨울 차례다. 밤베르크의 역사는 건축물로 상징된다. 구시가지 중심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는 노란빛 구시청사가 위태롭게 자리했다. 반면 도시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 황제의 대성당Imperial Cathedral과 성미카엘교회St.Michael’s Church는 위풍당당하다. 이 건축물들의 대비가 정치와 종교의 투쟁을 겪어 온 유럽의 역사를 드러낸다고 하면 오산일까. 지금도 밤베르크 시민의 90%는 가톨릭을 믿고 있을 만큼 구교의 위세는 예부터 대단했다. 언제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시선이 맞닿는 곳에 대성당과 교회를 지었고 교회 내부 또한 화려하게 꾸몄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천국임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금은보화로 교회를 치장하는 것이었다. 밤베르크 교회는 더 나아가 그 당시 가장 희귀했던 식물 578가지를 천장에 수놓았다. 중세 유럽에 처음 전파된 토마토도 보인다. 값지고 아름다운 모든 것은 교회에 있었다. 종교는 교회만큼 아름다운 사후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장했다. 하지만 교회의 절대적인 권력에 슬슬 금이 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시청사 부지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주교는 한뼘의 땅도 허락하지 않았던 탓에 시민들은 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 한복판에 인공섬을 만들었다. 주교의 소유권이 강을 경계로 끝난다는 데 착안한 묘수였다. 조금씩 눈뜨기 시작한 시민의식이 한데 모아져 보란 듯이 인공섬 위에 시청을 세웠던 것이다. 그제야 강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의 구시청사를 아끼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싸워서 얻어낸 성지와도 같았다. 그래서 지금껏 밤베르크의 랜드마크는 교회와 성당이 아니라 낡은 시청사다. 절대적이었던 명령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라…. 중세와 근대의 경계에 있는 도시 어디에서든 루터의 흔적이 보였다. 껑충 시간을 뛰어넘은 여행자에게 밤베르크는 루터 여행을 매듭짓기에 완벽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모던 아트와 결합된 황제의 대성당 2 실제로 운행되는 증기기차. 밤베르크와 쌍둥이 도시인 퀘들린부르크에서 탑승할 수 있다 3 7개의 언덕 위에 지어진 밤베르크. 천천히 골목골목을 걷기 좋다 4 슈렝케클라에서 훈제 맥주와 맛보는 전통음식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독일관광청 www.germany.travel/kr 02-773-6430 ▶travie info 밤베르크 비어 투어 맥주가 없는 밤베르크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비어 투어는 가이드와 함께 도시 내 양조장을 돌며 밤베르크의 맥주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 2013년 12월까지 운영된다. 밤베르크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발한다. 비용 1인당 20유로 문의 0951-2976-200 홈페이지 www.bamberg.info ●Travel to Lutherstadt 루터 도시 기행 루터를 더 깊숙이 체험할 수 있는 루터의 도시들 아이제나흐Eisenach 루터가 학생 시절 머물렀던 아이제나흐에는 1483년부터 1501년까지 루터가 살았던 집이 남아 있다. 루터의 집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중 하나. 멋진 담장이 인상적이다. 학창시절을 보여 주는 전시품을 통해 루터의 과거를 엿볼 수 있을 뿐더러 현대적인 전시관에는 멀티미디어 기술로 종교개혁을 재현해 놨다. 에어푸르트Erfurt 독일의 중부지방에 위치한 에어푸르트는 오늘날 튀링겐주의 주도다. 중세 도심 가운데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시가가 인상적. 구불구불한 골목과 광장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마리아 성당과 세베루스 교회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돋보인다. 중세시대 종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글로리사’도 볼 수 있다. 매년 11월10일 수천명의 에어푸르트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대성당 광장에서 마틴 루터의 생일을 축하한다. 슈말칼덴Schmalkalden 섬세하게 복구된 중세 목조 건물들과 뾰족한 계단 모양 지붕이 있는 석조 건물들, 후기 고딕 양식의 성게오르그교회, 르네상스 시대의 빌헬름스부르크성이 도시의 역사를 전해 준다. 슈말칼덴의 군주였던 필립 폰 헤센은 최초의 개신교 선제후 중의 한 사람으로, 카를 5세에 맞서던 인물. 16세기 독일 및 유럽 역사에서 쟁점이 됐던 도시다. 토어가우Torgau 마틴 루터는 “토어가우의 건축물들은 그 아름다움에서 모든 고대 건축물들을 능가한다”고 평했다. 토어가우에는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옛 건물들이 500여 곳 정도 남아 있는데, 이 수많은 문화유산 건축물들은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술을 보여 주고 있다.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의 무덤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루터 도시로 Rail & Fly 밤베르크에서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은 뮌헨공항, 아이슬레벤과 비텐베르크에서는 베를린공항이다. 루프트한자가 뮌헨과 프랑크푸르트에 각각 주 6일, 주 7일 운항하고 있다. 베를린까지는 루프트한자 국내선을 이용할 수 있다. 루프트한자 국제선과 독일철도를 연계해 사용할 수 있는 Rail & Fly 티켓 서비스도 편리하다. 독일 내 모든 기차역에서 독일 국제 공항까지 이동하는 티켓이 편도 25유로, 왕복 50유로부터 제공된다. 루프트한자 한국어 사이트에서 예약할 수 있다. www.lufthansa.com 1 밤베르크에 있는 어부들의 집. 중세 목조 건축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2 성당에 현대적인 조각을 함께 설치한 독일인들의 부러운 감각 3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중세 독일 기행. 골목길마다 작은 탄성이 이어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신의 소녀들’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신의 소녀들’

    알리나와 보이치타는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사이다. 독일에서 일하다 루마니아로 돌아온 알리나는 보이치타에게 동행을 요구한다. 잠시 독일로 떠나 친구를 다독여 주려던 보이치타는 뜻밖의 계획을 내놓는 알리나가 불편하다. 힘겹게 살아온 알리나는 보이치타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수녀의 길마저 포기하기를 원한다. 수도원에서 지내며 이미 신과 약속을 맺은 보이치타는 불안정한 친구의 모습 앞에서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보이치타가 품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한 알리나는 이상증세를 보인다. 알리나는 병원의 권고로 언덕 너머 수도원에 더 머물게 되지만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자 엄격한 신부는 악령을 쫓는 의식을 치르기로 한다. ‘신의 소녀들’은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영화계를 놀라게 했던 크리스티안 문주의 신작이다. 루마니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데, 종교와 젊은 여성의 밀접한 관계를 다룬 서구영화의 오랜 전통 아래 놓인 작품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서구사회에서 종교는 거부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을 상징하며, 젊은 여성은 강압적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를 대표한다. 멀리 ‘잔 다르크의 수난’에서 가까이 ‘막달레나 시스터스’에 이르는 영화들은 그런 관계를 영화 언어로 표현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신의 소녀들’이 종교 자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판단하면 곤란하다. 문주가 문제시하는 것은 순진한 표정의 무지를 무기로 해 인간을 폭압하는 시스템이다. 문주는 전편에 이어 길게 찍기와 들고 찍기를 즐겨 사용한다. 그의 영화는 대상 가까이에서 움직임을 소상하게 기록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150분의 상영 시간 동안 영화가 긴밀하게 기록하는 대상은 두 주인공이 아니다. 두 주인공의 관계에 집중하는 만큼의 시선을 바깥 인물에게 기울인다. 예를 들어, 여러 수난을 통과하는 사이에 알리나가 겪는 심경 변화는 수도원 여성들의 야단법석으로 표현된다. 사경을 헤매는 알리나의 모습 대신 병명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꺼리는 늙은 의사를 오랫동안 응시한다. 알리나가 시체로 누워 있을 때에도 불평을 길게 늘어놓는 여의사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심지어 알리나가 영화 내내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그녀의 표정은 카메라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신의 소녀들’은 고통받는 인물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인 체제에 관한 영화다. 극중 카메라가 그러하듯 고통을 주는 시스템은 고통받는 자의 표정과 심경에 무관심하다. 시스템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고통을 호소하는 인간을 잠자코 머물게 하느냐.’에 있다. 시스템은 마음에 다가서지 못하고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그런 사회는 한 인간을 죽음에 다다르게 한다. 희망을 포기당하면 곧 죽는 것이다. 사회로 막 발을 떼려는 세대를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문주는 결말에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밝힌다. 차에 앉아 “사회가 엉망이다.”라고 시큰둥하게 내뱉는 경찰 앞으로 어린아이들이 줄을 지어 길을 건넌다. 아이들이 지나가자마자 경찰차의 창은 난데없는 흙탕물로 더럽혀진다. 그것은 곧 어린 세대의 야유이자 무언의 항변이다. 문주는 다음 세대를 억누르고 욕하기에 바쁜 기성세대가 수치심을 느끼기를 바란다. 더불어 방치된 청춘에 대한 속죄의 마음을 두 번의 자장가로 고백한다. 6일 개봉. 영화평론가
  • [4일 TV 하이라이트]

    ●즐거운 책 읽기(KBS1 밤 12시)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수상작가 이승우가 1년간 세계의 문학에 연재했던 작품 ‘지상의 노래’를 찾았다. 천산 수도원 72개의 지하 방에서 발견된 엄청난 분량의 벽서. 화려한 장식과 신비로운 그림들로 이루어진 천산 벽서를 둘러싼 개인들의 굴절된 욕망과 왜곡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채롭게 소개한다. ●오감만족 세상은 맛있다(KBS2 밤 8시 20분) 동남아시아의 젖줄 메콩강. 베트남 남부지역은 이 메콩강과 맞닿아 비옥한 토지가 선사하는 과일과 채소가 넘쳐난다. 더불어 메콩강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민물고기로 풍부한 어종은 기본이다. 이곳에서 개성만점 어업이 펼쳐지는데…. 펄떡이는 메콩강의 생명력과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만나 본다. ●아침드라마 사랑했나봐(MBC 오전 7시 50분) 회사를 나가라는 현도의 말에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윤진. 아버지와 윤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도는 답답하기만 하다. 한편 명자는 심해지는 건망증 때문에 혼란스럽고, 재헌은 그런 명자가 불안해 어린 장미에게 명자를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오후 5시 35분) 하온이는 유모차를 타고 다닐 나이에 앰뷸런스를 타고 다니는 자발호흡을 할 수 없는 아이다. 병원을 한 번 가려면 왕복 50만원의 응급차를 타야만 한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기관 절개술까지 받아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입모양이 전부지만 엄마는 하온이의 표정, 손짓만으로 하온이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다. ●희망풍경(EBS 밤 12시 5분) 시각장애를 가진 여자 아이가 경험하는 일상을 재미있고 감동 있게 그리는 만화 ‘안녕, 딱공?’. 항상 씩씩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는 ‘딱공’에게 많은 독자들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딱공의 주인공은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정성훈 작가의 딸 정지은양이다. 아빠는 왜 딸을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리게 되었을까. ●가족(OBS 밤 11시 5분) 대전의 우거진 산속에서 산약초의 달인, 털보 아빠 김시한씨와 효소 요리 솜씨를 뽐내는 엄마 박선희씨, 그리고 자연의 정기를 받아 쉴 새 없이 왁자지껄한 보문산 4남매가 살고 있다. 산으로 들로 뛰어 놀다 보니 저녁이면 양 볼이 빨개져서 집에 돌아온다는 산골 아이들과 산 생활에 푹 빠져 사는 여섯 가족의 건강한 힐링 라이프를 함께한다.
  • 어둠은, 빛을 기다린다

    어둠은, 빛을 기다린다

    이탈리아 사진작가 마리오 자코멜리(1925~2000)의 회고전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24일 개막해 내년 2월 24일까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더 블랙 이즈 웨이팅 포 더 화이트’(The Black Is Waiting For The White)다. 자코멜리는 이탈리아 북부 작은 마을 세니갈리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13살 때부터 인쇄소에서 식자공으로 일해야만 했다. 그래서 당연히 사진작가로서 어떤 교육을 받거나 기존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도 없다. 다만 나중에 자신의 작품 제목을 시인의 시구에서 따올 정도로 시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인쇄소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흑과 백의 조합과 타이포그래피에 많은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사진작업 역시 28살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진기를 받아서 시작한 것일 뿐이다. 나중에 사진작업을 크게 인정받아 뉴욕현대미술관이 그의 작품 가운데 스카노(Scanno) 시리즈를 모두 사들여 보관할 정도로 주목받는 사진작가가 되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인쇄소를 운영하면서 고향 마을에 살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송수정 큐레이터는 “절대적으로 혼자 연구하고 혼자 찍은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두고 기존의 사진사 흐름에다 연결시켜 설명한다는 것이 어렵다.”면서 “그래서 아주 독특한 작업을 내놨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명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뒤늦게 소개된 작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제 작품을 보면 전시 제목이 왜 그렇게 붙었는지 이해된다. 오직 검은색과 흰색뿐이다. 중간 톤의 회색 빛은 거의 없다. 찍는 대상도 그렇다. 스카노 시리즈는 흰 대리석 건물이 즐비한 가운데 검은색 전통 의상만을 고집하는 스카노 마을을 찍은 사진들이다. 작가로 이름을 날리면서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가 늘고 그 덕분에 작품활동을 허가받은 수도원에서 찍은 자신도 하얀 눈밭과 검은 사제복이 대비를 이룬다. 후반기에 작업했던 풍경 시리즈나 노바디(Nobody) 시리즈 역시 매한가지다. 인위적으로 하기도 했다. 현상 과정에 개입해 흑백의 조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배경을 지우거나 인물을 재배치하기도 했다. 생전 작가의 전시와 출판을 도왔던 알렉산드라 마우로 이탈리아 포르마 미술관장은 전시 제목을 숨지기 얼마 전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들었던 작가의 말에서 따왔다고 했다. 마우로 관장은 “아버지가 일찍 죽었던 경험 때문에 작품은 굉장히 종교적이고 무거운 분위기인데 실제 만난 작가는 굉장히 밝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남자였다.”면서 “작품 얘기를 하다가 ‘흑이 백을 만나 사진이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그게 아마 작가의 모든 것을 드러내 주는 말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작품들이 어둡다고 하지만, 묘한 희열이 느껴지는 이유다. 전시작은 모두 220여점. 입장료 6000원. (02)418-1315.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Biutiful Spain 비우티풀 스페인 <비우티풀Biutiful>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뷰티풀Beautiful을 스페인식으로 받아 적은 것이다. 다른 유럽과는 달리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발달해 온 스페인 사람들의 직관성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역사를 관통하며 무엇이든 스페인식으로 소화해 버리는 그들의 당당함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800년 이슬람이 남긴 것 Sevilla 세비야 Cordoba코르도바 Granada그라나다 유럽에서 몇년을 살 수 있다면 그 선택은 당연히 스페인이다. 언젠가 긴 여행의 중반에서 스페인에 눌러 앉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을 정도다. 당시 스페인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한달 반 정도였지만 마드리드 이남의 도시들은 가보지도 못했었다. 어느 도시를 가도 그대로 머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회가 왔을 때, 선택은 당연히 스페인의 남쪽이었다. 세비야Sevilla, 코르도바Cordoba, 그라나다Granada. 이슬람 세력이 지배했던 800년 동안 가장 번성했던 도시들, 스페인 친구들도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했던 그 도시들이었다. 눈을 부시게 하는 것이 태양인지 파란 하늘인지 알 수 없었다. 세비야의 강에 뜬 유람선도 오후의 난반사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도시의 유람선이야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풍경이지만 세비야는 내륙으로 무려 87km나 들어와 있는 과달키비르강江의 상류 도시다. 그래도 배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강이 깊고 넓었기 때문에 도시는 중요한 무역항으로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강변 산책을 하다 보면 어디서나 눈에 띄는 황금탑Torre del Oro도 13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이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시작한 기점도 이곳이었고, 콜럼부스가 머물면서 항해를 준비했던 곳도 세비야였다. 그렇게 중요한 도시를 이슬람에게서 되찾은 스페인은 그 세를 과시하고 싶었다. 1248년 모든 부와 권력을 집중해서 지은 세비야 대성당은 지금도 세계에서 3번째로 크고, 고딕양식의 성당으로는 가장 크다. 성당에 안치된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의 무덤은 그 어떤 왕의 무덤보다 화려하다. 에스파냐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의 네 모서리를 메고 있는 모습이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평생 아버지의 업적을 정리하고 연구했다는 아들 페르난도 콜럼부스의 무덤도 성당 안에 있다. 고딕양식,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을 헤아려가며 성당을 둘러보느라 지친 사람들은 오렌지 나무가 도열한 정원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 모스크의 연못이 있던 곳이었다. 아직 여력이 남은 사람들은 마지막 힘을 다해 이슬람 사원의 탑을 개축한 히랄다 종탑Torre de la Giralda에 올라갔다. 땀 흘려 쟁취한 98m 높이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전경은 그만큼 달콤했다. 세비야 대성당에 비하면 코르도바의 대성당Cordoba Mezquita은 모스크의 원형에 더 가깝다.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은 이슬람 제국은 6세기에 지어진 성 빈센트 바실리카를 허물고 그 자리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모스크 ‘메스키다’를 세웠다. 4,000여 개의 기둥이 시야를 가리고 천장도 낮지만 사실은 세비야 대성당보다 면적이 넓다. 한번에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성당으로 용도가 바뀐 이후에도 큰 훼손 없이 사용되다가 카를로스 5세에 이르러 200개의 기둥을 뽑아내고 돔을 설치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정교한 아랍 문양에 푹 빠져 있다가 뒤로 돌아서면 화려한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이 펼쳐진다.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거점은 그라나다였다. 알바이신의 언덕 위에 거대한 아랍인 주거지역이 먼저 형성되었고 1238년에 왕과 귀족들의 거주지로 아람브라Alhambra궁전이 만들어졌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기도 한 아람브라궁전은 아랍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되는데 이름만 듣고 우아한 하나의 건물을 기대했다가는 낭패를 맛보게 된다. 평균 관람 시간만 무려 3시간이 걸릴 정도로 넓은 요새이자 수천명의 귀족들이 살았던 주거지였다. 아람브라는 사실 건축학적인 가치보다는 치수의 지혜, 높은 지대까지 물을 끌어 사용했던 아랍인들의 발달된 관개 기술이 돋보이는 장소다. 지금도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궁전 곳곳의 분수와 샘, 연못은 이슬람세력이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람브라를 찾는 관광객이 워낙 많다 보니 나스리드 궁전Nasrid Palaces은 재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일행을 따라 종종걸음을 치다 보니 군주의 별장이자 정원인 헤네랄리페Generalife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칠 때로 지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꽃향기가 전달되는 높이까지 계산해서 디자인했다는 그 정원에서 아름다운 알바이신을 바라보고 있자니, 언젠가 스페인에 살게 된다면 바로 저 마을을 선택하게 될 것만 같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아람브라 궁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관개기술의 발달이다. 고지대에 세워진 요새임에도 항상 물이 풍부했다 2 <아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고 있던 코르도바의 거리 음악가 3 투우와 플라멩고로 유명한 세비야의 투우장 돈키호테로 살어리랏다 Toledo톨레도 Consuegra 꼰수에그라 성서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은? 답은 우기기 나름이다. <이솝우화>, <그림 형제 동화집>이 단골로 언급되고 <안네의 일기>나 <영웅문>도 유력한 후보인데다가 지인 중 한 명은 쥘 베른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페인에 오니 그 ‘정답’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1547~1616년가 지은 <돈키호테Don Quijote>로 모아지고 있었다(원제는 <재기 발랄한 향사鄕士 라만차의 돈키호테>다). 그러면 또 하나의 질문. <성서>와 <돈키호테>의 공통점은? 끝까지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돈키호테>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캐릭터 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탐독하던 ‘키호테’라는 사람이 급기야 자신을 기사라고 착각하며 볼품없는 말 로시난데, 시종 산초 판자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그의 착각 속에서 벌어지는 일.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슈렉>처럼 반전의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유쾌한 풍자소설이다. 하지만 이 스토리는 사실 52장의 전편 중에서 초반에 불과하고 속편까지 출판됐다. 저자 세르반테스의 삶은 키호테의 ‘착각일지라도 행복했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레판토 해전에 참가해 부상을 입은 그는 귀국길에 해적에게 잡혀 5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는 우여곡절 끝에 마드리드 근처의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1605년 소설 <돈키호테>를 발표했다. 작품이 전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인세 계약을 하지 않아 돈을 벌지 못했다. 후에 그는 74장 분량의 돈키호테 속편을 발표했으나 이듬해인 1616년에 기구한 생을 마쳤다. 그가 죽은 4월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인데 우연히도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같은 날 사망했다. 소설 <돈키호테>의 주 무대는 지금의 ‘카스티야라만차’ 지역이다. 도시를 이동하다 보니 우연히도 ‘루타 데 돈키호테’, 즉 ‘돈키호테의 길’이라는 테마여행코스를 지나가게 되었다. 푸른 기와를 이고 있는 하얀 회벽집들이 인상적인 작은 마을 푸에르토 라피세Puetro Lapice에는 돈키호테가 주인과 실랑이를 벌였던 여관 ‘벤타 델 키호테Venta del Quijote’가 있다. 벽에는 ‘돈키호테가 이곳에서 묵고 나서 투구와 갑옷 차림으로 만족스럽게 걸어 나왔다’라는 구절이 붙어 있었다. 돈키호테는 이곳에서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동물의 내장을 넣은 달걀부침’를 시켜 먹었다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라만차 와인을 즐긴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바닥을 깊게 판 넓은 저장고와 대형 와인통을 발견할 수 있다. 더 이상 묵어 가는 손님은 없지만 돈키호테에 대한 팬심으로 기념품을 구입하는 손님들로 마을 전체의 생업은 세르반테스에게 단단히 빚을 지고 있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착각해서 싸움을 벌였던 그 풍차들은 콘수에그라Consuegra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낡은 풍차일 뿐이지만 주변의 광활한 평원과 어우러져 스페인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풍경이다. 실제로 돈키호테 소설의 배경이 된 풍차는 다른 곳에 있다고 했지만 풍차의 모양은 거기서 거기인 반면, 풍경은 콘수에그라가 최고인지라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훼손된 상태로 오래 방치된 듯한 이슬람의 콘수에그라 성은 한창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 더 멋진 그림을 기대해도 좋다. 돈키호테가 로시난데를 타고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던 그 ‘카스티야라만차’주의 주도는 톨레도다. 우리로 말하면 경주쯤 될까, 8~15세기까지 스페인의 수도였던 도시다. 현대식 건물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는 아랍 군주의 거주지였던 알카사르를 정점으로 고깔 모양으로 층층이 퍼져 있고, 타호 강Rio Tajo이 그 주변을 휘감아 돌면서 천연의 요새를 만들고 있었다. 도시로 들어가기 전 멈춰선 전망 포인트에서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풍경에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고딕성당이라고 불리는 톨레도 대성당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페인을 점령한 이슬람 세력은 종교를 강요하거나 문화를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톨레도는 ‘스페인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 유적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고 성당은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귀중한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스 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주로 활동했던 엘 그레코의 작품은 물론 고야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으며 화려한 제단 장식이나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성체현시대는 이미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새로운 스페인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갱신되는 흥분이 모험에 나선 돈키호테의 마음이었을까. 끝없는 메세타이베리아 반도 중앙부의 대고원를 원 없이 달리고 싶은 충동이 더 깊어지기 전에 라만차를 떠나야 했다.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도시 톨레도 ▶travie info 벤타 델 키호테 세르반테스가 이용했던 여관으로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가 됐다. 소품과 인테리어 등으로 당시 분위기를 재현했고, 직접 만드는 와인과 돈키호테 관련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 2층은 객실이었지만 지금은 투숙객을 받지 않는다. 주소 EI Molino, 4 Puetro Lapice(Autovia de Andalucia) 문의 926-57-6110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1시(바), 오후 1시∼오후 5시, 오후 8시∼밤 12시(레스토랑) 찾아가기 마드리드 남부 버스 정류장 Estacion de Autobus Sur 역(지하철 Mendez Alvaro 역)에서 Jaen 방면으로 가는 버스 이용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Puetro Lapice에서 하차. 버스 시간 문의 91-530-4800 1, 5 돈키호테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관 ‘벤다 델 키호테’의 오래된 나무 대문과 와인저장고가 있는 바bar 2 푸에르토 라피세 마을에서는 다양한 돈키호테 기념품을 구입 할 수 있다 3 톨레도 대성당의 성모상 4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소 모양의 대형 간판들을 종종 스쳐 지나간다 6 돈키호테가 괴물로 착각하고 결투를 벌였던 꼰수에그라의 풍차들 고야의 빛과 그림자 Madrid마드리드 Zaragoza 사라고사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허락된 시간은 단 한 시간. 마치 단거리 경주에 나서듯 신발끈을 동여매고 속사포로 설명을 난사하는 가이드 수피아씨를 따라다녀야 했다. 그곳의 수많은 보물 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그림은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년의 <개The dog>였다. 고야의 다른 그림과는 다른 화풍으로 의혹을 사기도 했던 이 그림에는 모래 언덕 위로 목만 빼꼼이 내놓은 휑한 눈의 개 한 마리가 등장한다. 마치 노년의 고야 그 자신처럼 말이다. 최후의 고전주의 작가이자 최초의 현대작가로 불리우는 그의 예술적 전이는 프랑스 군인들이 스페인 민군을 총살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 <1808년 5월3일The Third of May 1808>에서 시작된다. 초상화를 잘 그려서 왕실 화가로 이름을 날린 고야는 이 작품을 계기로 민중 화가로 추앙받게 된다. 하지만 노년에 고야의 삶은 암울했다. 마흔 중반에 청각을 상실했으며 노후에 마드리드 근처의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고야가 자신의 집에 그린 벽화들은 마치 귀신을 본 듯 공포에 질린 표정의 검은 군상들로 채워져 있었다. ‘블랙 페인팅’이라고 불리는 그림들이다. 그중에서도 <자기 아들을 먹어 치우고 있는 새턴Saturn devouring his Child>은 끔찍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후기 작품 중 가장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고야의 고향이 바로 사라고사다. 사라고사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시내에 들어가자마자 돌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태풍이라도 왔나 싶을 만큼 퍼붓던 비는 10분 후 거짓말처럼 개이더니 하늘이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고야의 삶처럼 빛과 어둠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그런 날씨였다. 사라고사에 있는 고야의 생가, 사라고사 뮤지엄, 이베르카 카몬 아즈나르 뮤지엄Ibercaja Camon Aznar Museum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거대한 바로크 스타일의 필라르 대성당Basilica del Pilar에 있는 레지나 마티럼Regina Martyrum돔의 천장화 역시 고야의 작품이다. 이 성당에는 기도를 이루어 준다는 옥으로 된 성모상이 있는데, 그 앞에서 깊은 슬픔에 잠긴 한 노부부를 만났다. 그 처연한 표정은 사연 모르는 이방인들까지 숙연하게 만들 만큼 날카로운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 감정이 지금 내 방에 걸려 있는 고야의 <개>를 볼 때마다 오버랩되곤 한다. 사라고사의 랜드마크이자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가톨릭 순례지 중 하나인 필라르 대성당. 고야가 그린 천장화를 볼 수 있다 가우디에게 영감을 준 산 Montserrat 몬세라트 Barcelona 바르셀로나 누군가 볼 때마다 시루떡이 연상된다고 했던 몬세라트Tot Montserrat는 톱니바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바위산이다. 4,000만년 전에 융기된 해발 1,200m 산의 모습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바위투성이 산의 정상부에 베네딕트수도원이 만들어진 이유는 이곳이 유서깊은 기도장소였기 때문이다. 1,000년 전부터 시작된 순례의 행렬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검은 성모상 ‘라 모레네타’가 발견되면서 더욱 길어져서 지금까지도 끊어질 줄 모른다. 두어 시간 거리인 바르셀로나에 살았던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 Cornet, 1852~1926년도 틈만 나면 모세라트를 찾아왔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몬세라트에 와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는 아예 바르셀로나의 중심에 몬세라트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바로 바르셀로나의 명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족대성당 Basilica de la Sagrada Familia다. 스페인 교회 건축 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폴라 델 빌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에 의해 시작되었다가 1년 반 후에 안토니 가우디의 손에 넘겨진다. 그후 43년 동안 가우디는 역사에 길이 남을 독창적인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 일생을 쏟아 부었다.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당 내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마치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로 뻗어 올라간 듯한 모습의 기하학적인 기둥들이다. 직선이 아니라 자연물의 형상, 그 곡선만을 사용한 가우디 원칙들이 반영된 결과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 구엘 공원Pavellons Guell 등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에 남아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에서 그 고집스러운 독창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기업체의 도움 없이 오로지 신자들의 헌금으로만 세우기 원했기에 재정 문제는 언제나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는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고로 죽고 말았지만 성당은 아직도 그의 청사진에 따라 무려 130년 동안 여전히 ‘공사 중’이다. 전체 공정 중 절반 정도가 완성되었을 뿐이라지만 몇년 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하면 내부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어 지난 2010년 7월에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모시고 축성식을 가졌다. 15년내에 완공하는 것이 바르셀로나 시의 계획이다. 1 가우디는 직선을 배제하고 자연물의 형상과 곡선만을 사용했다.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구엘 공원 2 몬세라트 산에서 내려온 기운이 한데 모여 정점을 이룬다는 성당 안뜰 3 가우디는 몬세라트의 기괴한 모습에서 착안해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디자인했다 취재협조 에미레이트항공 www.emirates.com 페가수스 코리아 02-733-3441 ▶travie info 1 아람브라 안에 있는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 2 스페인식 애저 바비큐 요리 ‘코치닐요’ 몬세라트Tot Montserrat 몬세라트로 올라가는 꼬불꼬불 산악도로의 전면 도로는 10km, 후면도로는 13km다. 주말에는 주차장이 만원이 경우가 많으므로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 수도원에는 뮤지엄, 레스토랑과 기념품점 그리고 호텔까지 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에스꼴라니아라는 소년합창단Cor de I’Escolania으로도 유명한데 미사 시간을 맞춰서 가면 합창을 들을 수 있다. 문의 (0034)93-877-77-77 www.montserratvisita.com Travel to Spain 항공편 에미레이트항공을 이용하면 두바이를 경유해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이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지로 여행할 수 있다. 인천-두바이 구간을 운행하는 에어버스 A380 기종은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최첨단, 초대형 기종. 인천-두바이 구간은 9시간 30분, 두바이-마드리드 구간은 8시간, 두바이-바르셀로나 구간은 7시간 가량 걸린다. 문의 02-2022-8400 www.emirates.com 두바이 시티투어 두바이에서 스톱오버를 신청해서 두바이 시티 투어(42달러), 사막 투어(99달러) 등을 경험하는 것도 색다른 여행이 된다. 에미레이트항공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정보와 스톱오버 안내책자를 다운받을 수 있다. 투어 문의 아라비안 어드벤처 +971-4-303 4888 aadops@emirates.com 스페인 일주상품 에미레이트항공을 이용하는 ‘스페인·포르투갈+바르셀로나 일주 10일’ 여행패키지 상품이 10월부터 10개 여행사 연합으로 시판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출발하는 이 상품은 11월 말까지 239만원의 특가로 한진관광, 투어2000, 레드캡투어, 투어몰, 자유투어, 노랑풍선, 참좋은여행, 하나투어, 온라인투어, 롯데관광에서 예약할 수 있다. 야디네스 알베르토Jardines alberto 그라나다의 유서 깊은 카르멘(정원과 채소밭이 있는 별장식 하우스)을 개조한 레스토랑으로 야외 테이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기 좋은 곳이다. 커피 한잔과 함께 피오노노Pionono라는 그라나다의 전통 디저트도 별미다. 아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운 정원 헤네랄리페 입구 쪽에 위치해 있다. 3가지 코스에 와인이 곁들여 나오는 세트메뉴는 30~45유로. 주소 Paseo de la Sabika nº 1, 18009 Granada 문의 (0034) 958-221-661 www.jardinesalberto.es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Parador de Granada 그라나다의 아람브라 궁전 안에 있는 성프란치스코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로 스페인 국영 호텔 중 최고로 알려져 있다. 그라나다 수복 후 세워진 수도원 건물의 고풍스러운 멋과 특별한 위치 때문에 여행자들이 꿈꾸는 숙소지만 객실이 40여 개밖에 되지 않아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아람브라와 그라나다의 야경을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주소 Real de la Alhambra, s/n, 18009 Granada, Spain 문의 (0034) 958-22-1440 www.parador.es 팔라시오스Palacios 5kg 정도의 크기으로 자란 새끼 돼지로 만드는 애저 바비큐 요리 코치닐요Cochinillo를 먹을 수 있는 곳.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다. 팔라시오스는 레스토랑뿐 아니라 호스텔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싱글 요금은 30~45유로, 더블룸은 50~80유로 사이다. 주정강화와인인 셰리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고 남은 계란 노른자를 이용한 디저트인 플란Flan도 맛볼 수 있다. 주소 C/Navarro Ledesma, 4 45001 Toledo 문의 (0034) 925-28-0083 www.hostalpalacios.net 안달루 라 토레 데 오로Andalu la Torre de Oro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 있는 투우 테마의 바Bar. 가게 안에는 스타 투우사들의 사진과 희생된 소의 머리 박제 그리고 스페인 생햄인 하몬이 같이 걸려 있어서 묘한 느낌을 준다. 주소 Er 26 de la Plaza Mayor Calle del Arcode Triunfo, 28012 Madrid 영업시간 오전 10시∼새벽 2시 문의 (0034) 913-66-5016 La Torre del Oro 타블라오 엘 팔라시오 안달루스Tablao El Palacio Andaluz 세비야 최고의 플라멩고 디너쇼를 감상할 수 있는 곳. 공연은 하루 두 차례, 매일 저녁 7시와 7시30분에 시작되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며 와인이 곁들여진 코스 정찬이나 타파스를 선택할 수 있다. 오페라 카르멘의 일부 장면도 플라멩고로 선보인다. 문의 (0034) 954-534-720 www.elpalacioandaluz.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인사]

    ■교육과학기술부 △한국경진학교장 우이구 ■소방방재청 △한국소방산업기술원장 문성준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학처 학생과장 고기석△현충사관리소장 장경복 ■산림청 ◇고위공무원 승진△해외자원협력관 최준석◇과장급 전보△산림휴양문화과장 박산우△춘천국유림관리소장 박도환△산림항공과장 방봉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승진△선임연구위원 김성욱 정문경△연구위원 박종섭 박진오 주진철 오성택 김한기 최영희 남기형 진경호 ■충북대 △교무처장 김익균 ■대구대 △취업학생처장 이정호△산학연구〃(산학협력단장 겸임) 전하준△기획〃 박순진△국제〃 이채욱△학생행복지원단장 홍경구△기획부처장 안현효 ■건국대병원 △행정처장 이광섭 ■세계일보 △논설위원 원재연△경제부 선임기자 류순열△온라인뉴스부장 류영현 ■이데일리 ◇부장△정경 송길호△국장석 김윤경 ■이투데이 ◇편집국△종합편집부장 홍석동 ■아시아투데이 ◇편집국△경제부장(건설부동산부장 겸임·부국장) 윤경용 ■CBS ◇상무△마케팅본부장 박용수 ■원불교 ◇교구장△서울 황도국△부산 정숙현△전북 김성효△중앙 안인석△경기인천 김인경△경남 강명진△대전충남 최정풍△대구경북 김도심△충북 조원오△영광 김정심△제주 정성만△중국 김성희△평양 김대선◇중앙총부 간부△수위단회사무처장 김도승△정책연구소장 백광문△기획실장 이상균△교화부원장(교화훈련부장 겸임) 김홍선△감찰원 사무처장 서대진<부장>△총무 황성학△교육 오정도△문화사회 정인성△공익복지 이순원△국제 최심경◇기관장△중앙중도훈련원장 성도종△원불교수도원장 김혜봉△영산선학대학교 총장 김주원△미주총부법인 이사장 이오은
  • 수도원 72개 지하방에 묻힌 ‘욕망·죄책’

    수도원 72개 지하방에 묻힌 ‘욕망·죄책’

    서해안 인근 천산 정상에 감춰진 ‘천산수도원’. 폐암으로 투병하다 죽은 형 강영호의 유품을 챙기던 강상호는 형의 유고 속에서 이 신비의 수도원을 처음 접한다. 이곳은 흙과 돌과 나무로만 지어진 절벽 위 천혜의 요새다. 72개의 지하 방에선 아름다운 벽서들이 발견된다. 성서를 정성껏 필사한 벽서 안에 숨은 역사적 진실에 대해선 그 누구도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실 속 구원 문제에 집착해 온 작가 이승우(53·조선대 교수). 그의 신작 장편 ‘지상의 노래’(민음사 펴냄)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서사구조를 품고 있다. 5명의 주인공이 엮어 가는 다섯 이야기는 복잡한 형이상학적 다층 구조를 이뤄 흥미를 배가시킨다. 소설은 궁극적으로 현대사의 굴절된 단면에 숨은 사람들의 얘기를 담았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 가고 이 과정에서 ‘인과’(因果)라는 삶의 굴레를 확인한다. 죽은 자가 ‘유업’(遺業)을 남기고 살아있는 자가 이를 마무리하는 과정이 소설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원리로 작용한다. 그러나 작가는 “서울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과 뉴욕을 덮친 태풍 사이의 관련만큼 비정형적이고 무의식적이다. 나비가 날갯짓하지 않아도 태풍은 일어날 것”(40쪽)이라며 인과에 대한 질문을 던져 놓는다. 형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수도원을 답사하고 벽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대기업 해외 주재원 강상호의 이야기, 그 책을 읽고 천산수도원의 벽서에 관한 글을 쓴 대학 교회사 강사 차동연의 이야기, 차동연이 쓴 글을 읽고 그에게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 퇴역 군인 ‘장’의 이야기, 장의 이야기에 나오는 군사정권의 핵심 한정효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박 대위에게 겁탈당한 사촌 누나 연희를 사랑했던 ‘후’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중심은 물론 천산수도원. 이곳은 강영호의 군 복무지이자 퇴역 군인 ‘장’이 군사정권 수뇌인 장군의 명을 받고 한정효를 가둬 둔 장소다. 또 다른 장군은 권력을 잡은 뒤 문제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수도원을 덮쳐 좁다란 지하 방에 수도사들을 몰아넣고 산 채로 매장했다. 자신이 사라지면 모두 평화로울 것이라 믿고 이곳을 떠났던 한정효는 죽은 ‘형제들’의 시신을 매장하며 방마다 그림을 그리듯 벽서한다. 한정효를 돌보며 그의 일을 마무리하고 숨을 거둔 ‘후’까지. 등장인물들이 모두 죄의식에 사로잡힌 것도 이 때문이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천산수도원의 거대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독자들이 받는 감흥은 남다르다. 14세기 중세 유럽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쓴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을 떠올릴 만하다. 형이상학과 신학이 잘 버무려진 소재가 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이는 작가가 문학계에선 드물게 신학을 전공한 뒤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 온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수도원 지하의 72개 방을 초대 교회 신자들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에, 이곳에서 발견된 엄청난 분량의 벽서는 중세 벽서인 ‘켈스의 책’에 비유한다. 이 가운데 초월자에 대한 믿음과 미적 추구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랑과 죄가 얽히며 작용하는 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10년간 이야기의 모티브를 머릿속에 꼭꼭 숨겨 놓았으면서도 제목만큼은 미리 정해 뒀다고 했다. 그런데 왜 천상의 노래가 아닌 지상의 노래일까. 작가는 “천상수도원이 공간적 배경이지만 이곳이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은 결코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천상수도원이 이상향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부족함과 불안정함, 부당함을 역설적으로 얘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구원, 욕망, 권력이 매개체였다.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교회사 강사인 차동연이 수도원 72개 방에 묻힌 ‘형제들’의 비극을 신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설명하지 못했을 때 ‘후’의 입을 빌려 소설로 풀어 나간 것처럼 작가도 무언가 얘기하려 했다. ‘5·16’과 19년 뒤에 일어난 ‘5·18’의 아픔이 그것이다. 책 속에 등장한 2개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작가는 “굳이 안 써도 다 아는 ‘장군’의 이름들과 같은 것”이라며 “역사적 사건을 구체화하지 않고도 이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말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밤 10시 55분) 런던올림픽 열기가 한창인 지금, 또 다른 올림픽을 위해 긴장 속에 훈련하는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다. 이들에게 장애는 걸림돌이 아니라, 새 삶을 시작하게 한 출발점이었다. 더 치열하게, 더 간절하게 삶에 꿈을 채우는 사람들. 가슴에 태극기를 새기며, 런던을 향해 달리는 장애인올림픽 국가대표와 72시간을 함께한다. ●한국재발견(KBS1 토요일 오전 11시) 강원도 정선으로 가는 기차의 종착역인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조양강이 되는 합류지점이다. 이 강은 한민족의 젖줄인 한강의 대표 원류 중 하나이자, 강원도의 목재를 실어 나르는 뗏목의 출발지점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한과 애환을 담은 구슬픈 정선 아리랑 가락이 흐르는 골 깊은 고장, 정선으로 떠나본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귀남(유준상)과 윤희(김남주)는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한다. 재용(이희준)의 고백에 가까이 오지 말아 달라고 했던 이숙(조윤희)은 그동안 재용의 행동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해 준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한편, 윤희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자 귀남은 무언가를 준비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0분) 첫 번째 이야기,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자에게 날아온 한 통의 편지는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의 한 수도원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성수가 있다. 그런데 이 생명수가 나오는 곳은 다름 아닌 관이었는데…. ●런닝맨(SBS 일요일 오후 6시 20분) 싱그러운 제주도 바닷가에서 아름다운 배우 한지민과 함께한다. 그녀와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프로포즈가 시작된다. 특명 ‘진짜 사랑을 찾아라.’ 오직 그 여자만을 위한 그 남자의 비밀작전. 가혹한 러브미션의 시작과 동시에 한지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와 둘 사이를 방해하는 가짜 사랑들의 교묘한 심리전이 펼쳐진다.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경선 50대 정책토크(OBS 일요일 오후 1시 55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 참여자 임태희, 박근혜, 김태호, 김문수, 안상수 후보와 50대 선거인단 100명이 한자리에 모여 은퇴대책, 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개그맨 김샘이 진행을 맡으며 웃음치료사 김순옥,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윤석명, 그리고 이중모씨가 패널로 출연한다. ●동물일기(EBS 일요일 오전 10시 10분) 상도네 가족은 다섯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이들은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동물들에게 자유롭게 뛰어놀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캠핑을 시작한 애견캠퍼다. 프로그램에서는 안방보다 텐트가 더 편하다는 상도네 아홉 가족이 보여주는 애견 캠핑의 1박 2일을 함께한다.
  • “전구 발명가는 에디슨이 아니다”

    킹 캠프 질레트는 왕관 모양의 병뚜껑을 판매하러 다녔다. 그러면서 일회용 제품에 관해 오랫동안 궁리했다. 1895년 어느 날 수염을 깎으려고 면도기를 집어 들었다. 당시 면도기는 두툼한 강철 날을 사용했던 터라 날을 계속 세우려면 가죽 숫돌로 자주 갈아줘야 했다. 이 때문에 귀찮은 데다 날이 금세 낡아 깎으나 마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그 순간 질레트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아주 값싸게 만들어서 부담 없이 쓰고 버릴 수 있는, 종이처럼 얇은 면도날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결국 8년 후 1회용 면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로 하늘을 비행한 사람은 라이트 형제로 알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라이트 형제가 등장하기 900년 전인 1010년 어느 날 영국 맘즈베리에서 에일머라는 이름의 수도사가 직접 만든 날개를 양쪽에 달고는 맘즈베리 대수도원에 있는 탑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는 불시착할 때까지 무려 200m에 달하는 거리를 날았다. 이 같은 사실은 ‘영국 왕의 역사’라는 책에 실려 있으며 에일머의 비행은 당시 가장 훌륭한 역사적 위업으로 평가받았다. 토머스 에디슨이 남긴 수많은 발명품 가운데 가장 전설적인 물건을 꼽으라면 백열구다. 그러나 사실 에디슨은 백열구를 발명한 적이 없다. 에디슨이 등장하기 전 이미 20명 이상의 발명가들이 백열전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1844년 신시내티 출신의 19세 천재 소년 존 웰링턴 스타가 진공관에 들어 있는 탄소 필라멘트로 빛을 내는 백열전구를 발명했다. 그러나 22세가 되기 전 폐렴으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그의 백열전구도 잊혔다. 신간 ‘과학편집광의 비밀서재’(릭 베이어 지음, 오공훈 옮김, RHK 펴냄)는 이러한 내용들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최고의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내가 모르는 과학적 진실이란 있을 수 없다’며 열렬히 과학 역사를 탐구해 왔다. 따라서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여태까지 접하지 못했던 과학사의 은밀한 순간들을 그림과 도표, 설계도 등과 함께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과학 편집광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에디슨이 전구를,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들이 전구와 전화기의 최초 발명자가 아님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내용과 함께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한다. 누구는 이름을 알렸고 누구는 무명으로 남았지만 열정적으로 세상에 없던 것을 찾아 헤맸던 사람들의 사연이 눈길을 끈다. 1만 3500원.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맥주이야기④] 맥주연구소 소장이 들려주는 ‘상상력의 맥주’

    [맥주이야기④] 맥주연구소 소장이 들려주는 ‘상상력의 맥주’

    요즘 맛있다는 레스토랑을 찾아 좋아하는 요리의 사진을 찍어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소비자들이 많다. 그런 레스토랑 마다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요리사에 따라 다른 맛의 다양한 요리가 탄생하는데, 이는 요리사 각자의 레시피(recipe)가 다르기 때문이다. 레시피는 요리사들의 오랜 경험과 많은 시행착오에 의해 만들어 진다. 맥주도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많은 브루마스터(Brewmaster)들의 노력과 새로운 시도에 의해 개발된 양조 레시피에 따라 수 천 가지 종류가 전세계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국내에 수입되는 맥주도 10년 전만해도 20 여종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200 종 이상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그럼 이렇게 다양한 맥주가 가능하게 된 원천은 무엇일까? 맥주마다 맛이 다른 이유! 맥주는 어떤 종류의 맥아를 사용했는지, 어떤 품종의 호프를 사용했는지, 어떤 효모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고, 원료의 비율도 맛의 차이를 가져온다. 같은 맥아라고 해도 건조방식의 차이로 인해 맥주의 색도와 맛이 매우 다르게 된다. 또한 효모, 호프 및 양조 방법에 따라 맥주의 알코올 도수, 맥주의 색, 쓴맛의 정도, 향미의 특성이 달라진다. 먼저 맥주의 색깔을 결정하는 맥아의 색도는 맥아의 건조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낮은 온도에서 건조하면 색깔이 옅어지고, 높은 온도에서 건조하면 진해진다. 보통 옅은 색의 맥주를 담색맥주라 부르고, 진한 색의 맥주를 농색맥주라 부른다. 발효조건에 있어서 상온에서 발효시키고 숙성기간이 짧은 상면발효 맥주는 향이 풍부하고 쓴맛이 강하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인기있는 에일 맥주로, 호프의 향이 강하고 맛이 쓴 것이 특징이다. 스타우트는 검게 구운 맥아를 사용하며 알코올 도수도 4~11%로 다양하고 맛도 진하다. 포터(porter)는 스타우트와 유사하며 노동자들이 즐겨 마셨고 맥주 배달부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독일과 벨기에에서 양조되기 시작한 밀 맥주는 발아시킨 밀을 50%이상 사용하여 거품이 풍부하고, 흰색에 가까운 색을 내면서 부드럽고 산미가 높은 맛을 가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맥주는 하면발효에 의한 라거맥주인데, 대부분 상면발효맥주에 비해 마시기 편하고 목넘김이 부드러운 편이다. 대표적인 라거는 낮은 온도에서 일정기간 숙성하는 맥주로, 이러한 숙성과정을 라거링(lagering)이라고 한다. 그 중 몇가지 특색 있는 예를 들면, 독일 북부 지역에서 유래한 복 맥주(Bock Beer)가 있는데 알코올 도수가 6.5% 이상이고 짙은 색을 띠고 향이 강한 편이다. 체코 필젠 지역에 살던 보헤미아인들에 의해 유래된 필스너(Pilsner)는 홉을 많이 넣어 쓴맛이 강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 세계적으로 즐겨 마시는 맥주로 자리잡았고, 그 유명세를 보고 독일의 양조가들이 이 맥주를 모방하여 생산하면서 ‘필스’라도 불렀다. 그리고 독일 남부 지역에서 즐겨 마시는 헬레스 맥주(Helles bier)는 독일어로 연한(pale) 혹은 가벼운(light)의 의미로 필스너에 비해 홉의 향미가 약한 반면 맥아의 풍미가 매력적이다. 특이하고 색다른 맥주 맥주는 계절과 상관없이 마실 수 있고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 누구나 부담없이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이런 이유로 맥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술로 자리를 잡았다. 제조 방법 또한, 일부 소수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비슷하고 품질의 평준화가 이루어져 있어 지구촌 어느 곳을 가더라도 낯설지 않는 입맛의 맥주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가끔은 상표나 병모양부터가 특이하고 색다른 맥주를 보게 되어, 맛이 어떤지 궁금해 마셔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벨기에 지역에서는 람빅(Lambic) 맥주가 유명한데 흥미로운 향이 특징적이다. 보통 람비맥주는 맥아와 함께 체리나 라즈베리를 넣고 야생효모를 원액에 노출시켜 발효한 다음, 오크나무 통에서 짧게는 1년에서 3년까지 숙성시킨다. 이러한 방식은 대량생산과 일정한 주질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현재는 야생효모의 배양이 가능해져 대량생산도 가능하다. 그래도 전통을 지키려는 양조장은 여전히 과거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벨기에의 트라피스트(Trappist) 맥주는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산되는데 색상이 진하고 쓴맛이 강하다. 알코올이 8~12.5%까지 높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신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맥주에 새로운 공법을 도입하여 맥주를 제조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스맥주나 장기 숙성맥주가 있다. 일반적으로 물은 0도에서 얼지만 맥주는 알코올이 있어 일반적으로 영하 1.5~2도 이하에서 얼게 된다. 따라서, 숙성된 맥주를 냉각하여 얼리면 맥주 성분 중 물이 먼저 얼면서 단백질과 폴리페놀이 함께 침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맥주의 알코올은 올라가고 맛은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맥주를 얼리지는 않지만 저온에서 장기간 숙성한 장기 숙성 맥주도 이러한 맥락의 효과를 활용하는 것이다. 최근 외국의 일부지역에서는 소형 맥주사나 중형급의 크래프트(Craft) 맥주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맥주 타입의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맥주사의 브루마스터들은 일반 대형 맥주사들이 하기 힘든 개성 있고 독특한 맥주로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데 딸기, 라즈베리, 체리, 호박, 배, 당근등의 과채류를 넣기도 하고 후추, 코리앤더, 정향 등의 항료 뿐 아니라 꿀과 초코렛, 커피 등을 사용하여 다양한 맥주 타입을 제조하여 레스토랑과 소매 유통을 병행하여 판매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주세법에서도 과실을 총 원료의 20% 내에서 사용할 수 있고 식물약재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크래프트 맥주가 향후 한국에서도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충분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세상에 꼭 하나뿐인 맥주 내 입맛에 꼭 맞는 나만의 맥주를 직접 만들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일이다. 물론, 가양주 철이 되면 포도, 매실과 같은 과일에 소주와 설탕을 넣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과일주에 비해, 가정에서 맥주를 제조하려면 좀더 많은 노력과 과정이 필요하다. 맥아, 호프, 효모를 구입해야 하고 그 이외에 히터가 있어서 온도 조절이 가능한 담금통, 그리고 효모를 넣고 발효할 수 있는 발효통, 이외에도 수많은 도구들이 필요하다. 다행히최근에는 홈브루(home-brew)용 맥주 원액 캔과 도구가 판매되고 있으니, 이러한 홈브루키트를 활용해 나만의 맥주에 도전해 볼 만 하다. 좀 더 맛있고 특별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과정에서 훌륭한 요리 레시피가 새롭게 탄생한다. 더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것도 이러한 창의적인 과정을 거치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에 유일한, 나만의 레시피로 만든 맥주! 맥주회사의 브루마스터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분들이 만들어 가는 상상력의 맥주를 기대해 본다. 사진제공 = 하이트진로
  • 다빈치의 ‘모나리자’ 실제모델 유해 공개

    다빈치의 ‘모나리자’ 실제모델 유해 공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세기의 명작인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로 추정되는 유해가 세상에 공개됐다. 이탈리아 연구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의 성 우르술라 수도원 지하실에서 ‘모나리자’ 실제 모델로 추정되는 여성 리자 게라르디니(Lisa Gheradini)의 유해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모나리자의 실제 주인공인 리자 게라르디니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인 조콘다의 부인이며, 남편이 사망한 뒤 수녀로 살다 1542년 7월 15일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발굴 조사를 이끈 이탈리아 문화유산복원위원회의 실바노 빈세티 교수는 지난해부터 성 우루술라 수녀원 묘지를 조사한 결과 여성의 두개골이 묻힌 ‘비밀의 지하실’을 찾아냈다. 이 두개골은 수녀원의 오래된 계단 아래 약 1.5m 지점에 다른 유해의 늑골 또는 척추 뼛조각과 함께 묻혀있었다. 조사팀은 자금난으로 한동안 발굴을 중단했지만, 얼마 전 재개한 발굴조사에서 사람의 유골(뼈대)을 찾았으며, 이 유골은 곧 지난 해 발견한 두개골과 DNA 대조 테스트를 거칠 예정이다. 또 이 유골을 리자 게라르디니의 두 자녀 DNA와도 대조하고, 유해를 바탕으로 생전 얼굴을 복원해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끈 ‘수수께끼 미소’의 비밀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골이 발견된 지하실은 수녀원이 1625년 기록한 문서에 언급돼 있으며, 벽난로와 계단 등을 통과해야 닿을 수 있는 오래된 밀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바노 빈세티 교수는 “우리가 발견한 유해가 한 사람의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면서도 “성 우루술라 수녀원에서 발견한 유골 중 분명 모나리자 주인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사진=멀티비츠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베네딕도 벗들 캠프’ 새달 10일 개최

    ‘베네딕도 벗들 캠프’ 새달 10일 개최

    천주교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원장 이형우 아빠스)이 ‘수도생활 체험학교’ 운영 10주년을 맞아 특별 행사를 마련한다. 오는 26∼29일 만 32세 미만 미혼 남녀 대상의 ‘제34차 수도생활 체험학교’를 여는 데 이어 8월 10∼12일 역대 참가자 및 가족을 초청해 ‘베네딕도의 벗들 캠프’ 행사를 갖는다. 왜관수도원 ‘수도생활 체험학교’는 국내 가톨릭교회 수도회 중 처음으로 2002년 마련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수도원 체험행사. 침묵과 기도, 엄격한 규율과 봉쇄쯤으로 인식됐던 수도자의 삶을 일반인이 직접 경험하는 색다른 기회를 처음 제공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기본적인 생활과 왜관수도원 소개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특징. 학교에 참가하는 이들은 수도자들과 함께 매일 다섯 번씩 성당에서 기도와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아침·저녁 명상 시간 말고도 오전·저녁에 수도생활과 관련된 특별 강의도 듣는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 그대로 작업장에서 노동체험을 하고, 조별 공동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거룩한 독서)에도 참여한다. 매년 여름과 겨울 한 차례씩 열린 이 체험학교는 천주교에서 특히 젊은 신앙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행사로 평가받는다. 지난 10년간 체험학교를 다녀간 참가자만도 2600여명에 달한다고 왜관수도회 측은 집계했다. 수도생활 체험학교는 고등학생 이상 만 32세 이하의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하며 매회 선착순 50명에 한해 신청받는다. 체험학교에 참가했던 일반인을 중심으로 매월 한 차례 1박 2일간 열어온 ‘베네딕도의 벗들 기도모임’은 영적 체험을 일상에서 이어가는 연결행사. 다음 달 ‘베네딕도의 벗들 캠프’는 지난 10년간의 학교와 기도모임을 돌아보고 기념하는 자리. 왜관수도원 박진형(비오) 수사 신부는 “젊은 신앙인들의 성소 회복과 영적 체험 차원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며 “이번 행사는 종전과 조금 다르게 화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캠프 형식의 기념행사로 진행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9) 정읍·고창·부안 동학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9) 정읍·고창·부안 동학로

    갑오년(1894년) 음력 1월 고부(지금의 전북 정읍시) 봉기로 발발해 같은 해 12월 전봉준 등 주요 지도부가 체포되면서 막을 내린 미완의 혁명. 그 정신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1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곡조에는 누구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민초들에게 두고두고 양각으로 아로새겨진 이 기억은 그러나 권세가들에게도 특별했긴 매한가지다. 무수한 세도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고 머리를 조아렸던 혁명이다. 그 정신을 오롯이 기리고 있는 전북 정읍·고창·부안의 동학로를 찾았다.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끝자락에 있는 황토현 전적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화강암으로 된 비석 위에는 ‘제폭구민 보국안민’ 즉, ‘폭정을 없애고 나라를 보존하여 인민을 안정하게 한다’라고 쓰여 있다. 동학농민군은 갑오년 음력 4월 7일 이곳에서 정규 정부군인 전라 감영군과의 전투에서 최초·최대 승리한 것을 이렇게 기념했다. ●과거 권력자들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 1963년 10월 3일 제막식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참석했다. 여기서 박 의장은 “동학혁명은 부패·당파싸움·사대주의에 물든 탐관오리들에게 항거한 최초의 대규모 서민혁명으로 그 정신은 길이 계승돼야 한다.”면서 “5·16혁명도 이념면에서는 동학혁명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윤식(69) 고창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은 “5·16군사쿠데타를 동학농민혁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꼼수였다.”고 비판했다. 또 같은 목적으로 전두환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황토현 기념관·전봉준 장군의 동상 등을 세우도록 했다. 하지만 1980년 5월 당시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읍농고에서 열린 13회 동학문화제에 참석한 이후 이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 기념사업회장을 구속하고, 정읍군수·경찰서장을 직위해제했다. 박대길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선양팀장은 “군부정권이 행한 ‘정화사업’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적비 뒷산인 두승산에 오르면 동쪽으로 배들평야, 서쪽으로는 부안군 백산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동학로 끝에서 황토현로, 말목장터로를 따라오면 배들평야 끝으로 만석보터가 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정읍천과 동진강이 만나는 곳에 새로 만석보를 만들어 군민들에게 물세를 물렸고, 이에 전봉준 등이 주동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고자 사발통문을 쓰고 농민들과 함께 관아를 습격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었다. ●“농민도 성실히 일하면 잘사는 사회” “정읍이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라면, 고창은 동학농민군의 조직·사상이 잉태된 곳”이라고 고창군 관계자들은 말한다. 고부농민봉기를 일으킨 전봉준이, 갑오년 음력 3월 20일 고창지역에 있던 손화중과 손을 잡고 무장현에서 봉기를 했다. 이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이 충청도는 물론 경상·강원·황해도 등 전국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손화중은 당시 최시형과 함께 양대 동학접주 중 하나였다. 이런 점에 주목한 고창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길은 전봉준로, 녹두로와 함께 동학농민군로, 손화중로 등으로 그 의미를 담고 있다. ‘인민은 나라의 근본이요, 그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진다. 보국안민의 방책은 생각지 않고 바깥으로는 고향집만 꾸미고 오직 제 혼자 온전할 방법에만 힘쓰면서 녹봉과 벼슬자리만 도둑질하니 어찌 다스려지리오’ 동학농민군로가 끝나는 지점인 전남 영광과 접한 무장현 봉기 장소에 있는 기념비에는 당시 만들어진 이 포고문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 정부관료들에게 훈계해도 될 법한 글귀다. 농민이기도 한 진 소장은 “무장포고문은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은 서푼어치라도 매년 오르지만, 쌀값만은 십수년째 16만원 내외로 같은 값이다. 정부는 전 국민을 먹여 살리는 국가기간산업인 농업을 경시하고 있다.”면서 “농민도 성실히 일하면 국민평균소득 정도는 벌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118년전 동학농민군이 이루고자 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한 사회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민란 아닌 혁명인 이유는 ‘인권중시사상’ 과거 고부군에 속했고 지금은 부안군에 속한 백산(白山). 이곳에서 열린 백산대회는 동학농민혁명사에서 가장 신나는 장면 중 하나다. 해발고도 47m에 불과한 낮은 산인 백산은 사방이 평야지대에 홀로 솟아 시야 확보가 쉽고, 호남 서부지역 교통의 요지였다. 정읍 배들평야 쪽에서 이곳 백산까지가 동학로라 이름 붙여졌다.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 갑오년 음력 3월 25~26일 1만명 가까운 농민군이 모였다. 전봉준 장군을 총대장으로 조직이 재편됐고 호남·호서 일대에 격문이 나붙었다. 백산에서 농민군 군율인 4대 명의·12조 기율도 제정된다. 왜 동학농민혁명이 ‘민란’이 아닌 ‘혁명’이었는지, 이 군율에 나타난다. 4대 명의에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물건을 함부로 없애지 않는다.’는 내용이, 12조 기율에는 ▲항복한 사람은 따뜻하게 대한다 ▲곤궁한 사람은 구제한다 ▲굶주린 사람은 먹여준다 ▲도주하는 사람은 쫓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진휼한다 ▲병든 사람은 약을 준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때 집결한 농민군은 한 달 뒤 조선왕조의 본향이자 전라도 수도인 전주성 점령까지 승승장구했다. 이런 백산에서의 기억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부안이야말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직접 계승한 곳”이라는 자부심으로 남았다. 정재철 백산고 국사교사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부안에 저항정신·애향심으로 남아 있다.”면서 “그 힘으로 2003~2005년 2년 2개월여 전 군민의 방폐장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이라고 말했다. 세 지역 중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가장 활발한 곳도 역시 부안이다. 상서면 호암수도원에는 천도교 교구가 설치돼 있고, 주기적으로 집회가 열린다. 민관이 함께 통치하는 집강소를 세우는 등 새 시대를 열어가던 동학농민혁명군은 갑오년 음력 11월 충청도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 크게 패하면서 급격히 쇠퇴한다. 한 달 뒤 전봉준은 옛 친구의 밀고로 전라도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되고, 이듬해 을미년 음력 3월 교수형을 당한다. 이런 안타까운 결말에 민초들은 이런 노래를 남겼다. ‘가보(甲午·1894년)세. 가보세. 을미(乙未·1895년)적 을미적 병신(丙申·1896년)되면 못 가보리’ 혁명이 성공했다면 달랐을까. ‘동학로’라 이름붙여진 서로 다른 길들은 한결같이 가난한 농촌길이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좋아 이 지역 쌀 생산은 전국 최고지만, 농민들의 소득은 여전히 밑바닥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10회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동 약수로를 소개합니다.
  • MACAU CUISINE-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MACAU CUISINE-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마카오에 3일간 머물렀다. 짧은 일정이었다. 초점은 음식에 맞춰졌다. 중국 광둥요리, 매캐니즈 푸드, 일본 음식, 국수와 에그 타르트 등 미식 기행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다른 출장에서 열흘간 먹은 음식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성했다. 안 그래도 나온 배가 한결 더 빵빵해져서 돌아왔다. 다이어트에 관한 한 마카오는 ‘적성국’이다. 에디터 김기남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마카오정부관광청 02-778-4402 kr.macautourism.gov.mo 1 도시형 통합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인 시티 오브 드림즈의 더 테이스팅 룸. 유럽의 정찬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2 알티라 호텔의 일식당 텐마사. 일본의 유명 텐푸라 레스토랑인 텐마사의 해외 지점이다 3 아마 사원 가까이에 위치한 오 포르토 인테리어. 매캐니즈 푸드 전문 식당이다 4 마카오 타워에 자리한 광둥요리 레스토랑 루아 아줄. 5 바닐라 민트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시럽을 얹어 먹는 더 테이스팅 룸의 디저트 6 포르투갈 특산물과 디저트 등을 선보이는 루시타누스.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 연주도 들을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서로 다른 문화의 합작품 15세기와 16세기는 대항해시대였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유럽의 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선도했다. 바스코 다 가마와 마젤란은 모두 포르투갈 사람이다. 배를 보낸 나라의 입장에서 그들은 탐험가였고, 배가 도착한 나라의 관점에서 그들은 침략자였다. 포르투갈은 중국의 남쪽 끝 마카오에도 발을 디뎠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두 세력이 말문을 트게 됐다. 1557년 포르투갈은 마카오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당시 명나라의 군대를 도와준 대가였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주했고, 자연스레 포르투갈의 음식과 음식 문화도 따라왔다. 문제는 식재료였다. 두 나라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고 운송 여건은 열악했다. 식료품은 마카오에 입성하기도 전 썩어버렸다. 마카오에 거주하는 포르투갈 사람들은 ‘현지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리법은 포르투갈의 것을 고수하되 재료는 마카오에서 나는 것을 이용했다. 여기에 포르투갈이 교역하던 다양한 기항지의 음식 재료와 양념 등이 보태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카오 사람들도 점차 포르투갈 음식을 즐기게 됐고, 자연스레 중국의 요리법도 스며들었다. 이것이 바로 포르투갈과 마카오가 함께 절차탁마해서 만들어낸, 오직 마카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캐니즈Macanese 푸드다. 삼각형 모양의 만두 매캐니즈 사모사는 주로 애피타이저로 먹는다. 고기, 양파, 고수를 잘게 다져 속을 채운 뒤 노르스름하게 튀긴다. 아프리칸 치킨, 덕 라이스, 커리 크랩 등은 메인 요리로 사랑받는 품목들이다. 닭고기에 10여 종의 향신료를 첨가한 다음, 오븐에 구워내는 아프리칸 치킨은 매콤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일단 먹고 나면 마치 아프리카에 있는 것처럼 몸이 더워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매운 것은 아니다. 덕 라이스는 말 그대로 오리고기를 넣어 지은 밥 위에 포르투갈 소시지를 얹은 요리다. 올리브유와 향신료가 곁들여진다. 커리 크랩은 마늘, 양파, 고추 등과 함께 볶은 게에 화이트 와인, 피시 스톡, 코코넛 밀크, 레몬즙 등을 넣어 익힌다. 게살을 발라 먹은 후 남은 소스에 밥을 비비면 금상첨화다. 디저트 메뉴 중에는 세라두라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부드러운 바닐라 크림과 고소한 쿠키 가루를 번갈아 쌓아 만드는데, 살짝 얼려 먹으면 더욱 좋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갓 구운 에그 타르트를 들고 카페로 이동 중인 로드 스토우스 직원의 모습 2, 5 로드 스토우스의 카페 간판과 이곳의 명물 에그 타르트 3 더 테이스팅 룸의 치즈 플레이트 4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자란 원두를 사용한다는 카페 싱잉 빈 커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중독은 시작된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에는 애프터눈 티를 내놓는 곳이 많다. 홍콩 ‘옆 동네’인 마카오도 마찬가지다. 분위기는 세련되고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하다. MGM 그랜드 마카오의 파티세리MGM Patisserie, 요새를 호텔로 개조한 산티아고 호텔 라운지의 라 팔로마La Paloma 등이 애프터눈 티 명소로 꼽힌다. 카페에서 즐기는 티타임도 사랑스럽다. 마카오 타워 4층의 싱잉 빈 커피Singing Bean Coffee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자란 특별한 원두를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커피 맛도 준수하지만 아이스크림의 인기도 상당하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 외곽에서 가장 빛나는 곳은 테주 강변의 벨렘 지구다. 앞서 말한 바스코 다 가마가 잠들어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수중 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벨렘 탑, 1960년 엔리케 항해 왕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53m 높이의 발견기념비 등을 두루 만날 수 있다. 벨렘 지구에 가면 꼭 맛보게 되는 음식이 에그 타르트다. 재정 자립을 위해 수도원에서 만들어 팔던 것을 상업화한 경우다. 너무 달다는 느낌도 들지만 커피와 함께 먹으면 감칠맛이 난다. 마카오 콜로안 섬의 로드 스토우스 베이커리Lord Stow’s Bakery는 마카오 에그 타르트의 간판스타다. 원조와 최고, 두 가지 모두 로드 스토우스의 몫이다. 이 집 에그 타르트를 맛보겠다는 일념으로 마카오를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폭신한 커스터드가 혀를 감싸는 순간, 중독이 시작된다. 1 다양한 차를 시음해볼 수 있는 마카오 차 이야기 2 국숫집 룩 케이. 반죽을 치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3 루시타누스의 파두 기타리스트 4 루아 아줄의 딤섬 요리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차를 마시고 파두를 감상하다 마카오에서는 모든 중국 음식을 접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중국 요리의 ‘4대 천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베이징·산둥·쓰촨·광둥 지역의 요리를 빠짐없이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둥요리가 가장 발달했다. 광둥요리는 압축해서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깊고 넓은 맛의 세계다. 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재료로 상을 차린다. 산해진미라는 표현이 조금도 과하지 않다. 딤섬은 광둥요리에 있어 상징적인 존재다. 쫀득한 찹쌀 피가 새우를 감싸고 있는 하가우, 육즙이 함초롬하게 고여 있는 샤오롱바우, 노란 만두피 안에 곱게 간 돼지고기와 게살을 넣은 슈마이, 부추와 새우로 속을 꽉 채운 고우초이가우 등은 우리에게도 꽤 친숙하다. 마카오에서 딤섬 잘하는 집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랜드 리스보아 2층에 자리한 중식당 더 에이트The Eight도 뒷줄에 서지 않는다. 맛도 맛이지만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비단잉어 벽면 등으로 멋을 부린 인테리어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마카오 타워에 입점해 있는 루아 아줄Lua Azul도 평판이 좋은 광둥요리 레스토랑이다. 중국인들의 차茶 사랑은 유별나다. 생활의 일부분이다. 식사할 때도 차를 빼먹지 않는다. 중국 음식 특유의 기름기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입 안이 깔끔하게 정리되기 때문에 음식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있다. 녹차의 일종으로 은은한 향이 일품인 용정차, 차의 생잎을 발효 도중 볶아 만드는 우롱차, 숙취 제거와 소화 촉진에 좋은 보이차, 맛이 달짝지근한 철관음차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마카오 여행 문화 체험 센터CATC 2층에는 마카오 차 이야기Macau Tea Story가 들어서 있다. 중국의 차 문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시음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같은 건물 아래층에는 포르투갈 스타일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루시타누스Lusitanus가 자리한다. 와인을 비롯한 특산품도 구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타리스트가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를 연주해주는 점이 이채롭다. 애조 띤 선율이 우리네 정서에도 비교적 잘 맞는다. 숙명이란 뜻을 지닌 파두의 태생과 유입 과정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뱃사람이나 죄수들이 입에 자주 올리던 노래, 다른 민요에서 파생된 노래, 브라질이나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래라는 등 여러 갈래의 주장이 옥신각신하고 있지만 명쾌한 결론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1,800년대 초 브라질에서 유행했던 도시풍의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 그리고 아프리카의 콩고와 앙골라에서 기원한 춤과 노래인 ‘룬두’가 파두의 발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은 무게감을 지닌다. ▶미식가를 위한 Travel to Macau 교통 에어 마카오가 인천~마카오 구간의 직항 편을 매일 운영한다. 비행시간 약 3시간 30분. 시차 한국보다 1시간 늦다. 레스토랑 매캐니즈 레스토랑으로는 아마 사원 부근의 리토랄Litoral, 오 포르토 인테리어O Porto Interior, 아 로차A Lorcha 등이 유명하다. 포르투갈 요리 타이파 빌리지의 안토니오 레스토랑은 정통 포르투갈 요리를 선보인다. 스타 셰프 안토니오 씨는 우리나라 드라마 <궁>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리스보아 호텔의 레스토랑 귄초 아 갈레라Guincho a Galera도 포르투갈 음식을 내놓는다. 중국 요리 윈 리조트의 골든 플라워Golden Flower는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한 개를 받은 중식당이다. 청나라 전통 요리를 제공한다. 샌즈 코타이 센트럴의 다이너스티 8 Dynasty 8은 청·한·수·당·송 등 중국 8개 왕조의 특징적인 음식을 모티브로 한 레스토랑이다. 그랜드 리스보아의 누들 & 콘지 코너Noodle & Congee Corner는 상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양한 종류의 국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주방장의 밀가루 반죽 퍼포먼스도 구경할 수 있다. 룩 케이Luk Kei는 서민적인 분위기의 국수 가게. 일본 요리 알티라 호텔의 텐마사는 다다미방을 마련해 놓은 일식 레스토랑이다. 와인 알티라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오로라Aurora는 마카오 최대 규모의 와인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기타 시티 오브 드림즈의 더 테이스팅 룸The Tasting Room에서는 유럽식 정찬 요리를 만끽할 수 있다. 만다린 오리엔탈의 비다 리카Vida Rica는 광둥요리에서부터 서양 요리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알며… 머물며… 느끼며 이웃종교와 화합 꿈꿔요

    종교인들이 한국 종교의 대표적 성지와 수도원 등을 돌며 이웃종교를 체험하는 독특한 행사가 열린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를 비롯한 7대 종교로 구성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지난 5월부터 진행 중인 ‘2012 이웃종교 화합주간’행사의 하나인 ‘이웃종교 스테이’. 일반인을 포함한 신자들이 6∼8일 천주교 면형의집을 시작으로 9월 2일까지 2박3일 일정의 이웃종교 체험을 이어간다. ‘2012 이웃종교 화합주간’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종교화합주간’의 하나. 국내 7대 종교가 종교 간 화합과 평화를 다지자는 뜻을 모아 지난 5월 5일 개막식(서울 광화문광장)을 시작으로 체험마당(이웃종교 스테이), 소통마당(전국 종교인 화합대회), 화합마당 등 4개 섹션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이웃종교 스테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 행사로 참가자들이 각 종교의 핵심 성지를 찾아가는 흔치 않은 자리다. 개막일인 지난 5월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중구·종로구 일대에서 열린 ‘이웃종교 스탬프 투어’는 그 사전행사. 종교인들이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서울 지역 종교시설 7곳을 방문해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고 도장을 받는 체험을 마쳤다. ‘이웃종교 스테이’의 첫 체험처인 천주교 면형의집(제주도 서귀포시 서흥동)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골을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참가자들은 제주도의 천주교 주요 성지를 방문해 아침 미사며 성직자 대화 등에도 참여한다. 13∼15일 대전 수운교 본부에선 민족종교 스테이 행사가 있을 예정. 이 수운교 본부에 들어있는 수운교 상징 건물인 도솔천을 비롯해 봉령각, 용호당, 법회당 등은 모두 지정 문화재들이다. 이어서 20∼22일 경주 용담성지에서는 천도교 스테이가, 27∼29일 영주 한국선비문화수련원에서는 유교 스테이가 각각 진행된다. 개신교가 다음 달 17∼19일 수도권 근대문화 순례프로그램을 갖는데 이어 원불교는 다음 달 24∼26일 영광 영산성지에서, 불교는 다음달 31일∼9월 2일 구례 화엄사에서 각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스테이 행사에는 앞서 진행했던 행사를 통해 신청받은 28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변진흥 KCRP 사무총장은 “종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 해소에 기여할 부분이 많다.”며 특히 이번 ‘이웃종교 스테이’는 시민 참여행사의 형태로 종교의 역할을 고민하고 되새기는 자리여서 더욱 뜻깊다.”고 밝혔다. 한편 KCRP는 하반기 경기, 부산, 광주 등 전국 6개 지역에서 ‘지역 종교인 화합행사’를 열며 10월 13일 과천 관문체육공원에서 전국의 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화합대회를 열 계획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맥주이야기①] 맥주연구소 소장이 들려주는 맥주의 역사와 다양성

    [맥주이야기①] 맥주연구소 소장이 들려주는 맥주의 역사와 다양성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맥주 한잔’을 찾게 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고 편하게 찾는 맥주의 기원, 발전사, 종류 등 그 속 이야기를 풀어본다. 맥주의 기원 맥주는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맥주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기원전 4,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맥주의 기원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만든 수메르인들이 빵을 잘게 부순 다음에 맥아를 넣고 물을 부어 발효시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메르 지역에서 이집트로 옮겨오면서 이집트 묘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맥주를 담그는 일상적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이렇게 맥주는 인간 문명의 시작과 함께 탄생한다. 이러한 맥주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에 의해 서유럽으로 전파됐다. 맥주 제조업 역시 중세시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수도원에서 맥주 양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도시가 발전하고 길드 제도가 정착되는 근세로 접어들면서 맥주 만드는 주도권은 수도원에서 시민 계급으로 넘어가게 되고, 문명 전파 경로를 따라 산업적으로 융성하고 퍼져갔다. 지금도 유럽의 지방 곳곳에 가면 수도원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맥주 양조장을 볼 수 있는 이유이다. 중세에는 지금의 홉을 사용하는 맥주와는 달리 독일어로는 그루트 Grut라 불리는 약초, 약재의 열매와 뿌리 등을 첨가하여 향과 맛이 강한 맥주를 만들었는데, 이후 더욱 자극적인 맛과 향을 위해 몸에 좋지 않은 원료까지 넣게 되자 건강에 대한 우려로 점차 순수한 홉(만)을 사용하는 맥주를 선호하게 되었다. 결국 1516년 독일은 남부 바이에른 공화국의 빌헬름 4세(Wilhelm Ⅳ)가 맥주 순수령을 공포하여 맥주에는 맥아, 홉, 효모, 물 이외에는 다른 원료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여 독일이 세계적 맥주 기술로 통용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는 독일 내부에서도 맥주 순수령이 여러가지 원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맥주 맛을 추구하는 발전 노력을 저해한다는 불평도 있을 뿐만 아니라 벡스 등 독일 상위 맥주사들이 외국 자본에 넘어갔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맥주의 다양성 – 원료와 맛 오랜 역사를 가진 맥주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그 맛의 다양성이다. 맥주가 유럽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보리 이외에 각 나라마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독특한 곡물을 부원료로 사용하면서 맥주 기술이 발전되었다. 유럽의 경우 보리와 더불어 밀 재배도 많아 밀을 넣은 밀맥주가 개발되었고, 북아메리카의 경우 옥수수 재배 면적이 넓고 양이 많아 옥수수를 사용하거나 옥수수 전분, 시럽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덥고 건조한 아프리카에서는 수수를, 동남아 에서는 쌀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듯 맥주는 보리만 사용하는 방법에서 탈피하여 자국에서 재배되는 곡물을 원료로 사용하게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맥주가 개발되고 발전해왔다. 맥주의 종류를 구분하는 방식은 맥주를 제조할 때 사용하는 효모를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대표적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에서 짧은 기간 동안 발효하는 상면효모발효 맥주는 에일(Ale), 밀맥주, 스타우트등이 대표적이다. 낮은 온도에서 상대적으로 긴 시간동안 발효하는 하면효모 발효 맥주는 필스너, 라거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라거 맥주의 비중이 높지만,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외국의 소형 맥주사를 중심으로 에일과 밀맥주의 비중이 늘고 있다.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라거 맥주 사이에도 그 맛에 차이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당연히 존재한다. 크게는 대륙별로 맥주의 맛에 차이가 있다. 이유는 그 나라의 식문화와 깊은 상관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유럽은 알코올이 높고 쓴맛이 강한 필스너 제품이 많고, 미국을 포함한 북미는 알코올이 낮고 쓴맛이 적은 라이트 맥주로 구분할 수 있다. 아시아는 그 중간 정도라 할 수 있는데 아시아에서도 한국ㆍ중국ㆍ일본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맛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중국은 미국 쪽과 가깝고, 일본은 유럽과 가깝고 우리나라는 그 중간의 맛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 맥주의 역사와 주세법 우리나라에 처음 맥주가 유입된 것은 언제일까? 1880년대 개항과 함께 맥주가 소개되었고, 1933년 대일본맥주가 영등포에 조선맥주 공장을 설립하면서 최초로 국내에서 맥주가 생산되었다. 해방 후 미군정에서 관리하다가 1951년 민간에게 넘겨오면서 조선맥주는 현재의 하이트맥주 역사로 이어진다. 초기에 맥주는 상류층에서만 마실 수 있는 고급 술이었지만, 해방을 거쳐 60~70년대 경제 개발 이후 맥주의 소비는 급격히 증가했으며, 2011년에 맥주는 500ml 기준으로 34억7천만 병이 팔려 대표적인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하이트진로㈜는 전 세계적으로 25위의 생산규모를 갖춘 맥주 회사로 발돋음 했고, 하이트 단일 브랜드로는 세계 37위 상위 랭킹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맥주는 원료 사용 등이 주세법에 규정되어 있다. 1949년에 제정된 법률은 현재 부원료로 맥아, 홉, 쌀, 보리, 옥수수, 수수, 감자, 전분, 당분, 캐러멜과 첨가물로는 당분, 산분, 조미료, 향료, 색소, 식물약재를 사용할 수 있게 규정해 놓았다. 과거 알코올 4%로 규정된 조항도 몇 차례 개정을 통해 현재와 같은 알코올 25% 미만으로 완화되어 다양한 알코올 도수의 맥주도 가능해졌다. 여기서 주세법 때문에 우리나라 맥주가 받고 있는 오해를 풀고 넘어가고자 한다. 1999년 12월 주세법 개정을 통해 맥주는 맥아 함량 66.7% 이상 사용 규정에서 10% 이상으로 완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맥아 함량이 낮아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본의 발포주나 제3맥주가 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초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비자들이 한국 맥주는 맥아 10% 밖에 사용하지 않는 맥주란 오해가 생긴 것 같다. 이로 인해 국산 맥주는 맥아 함량이 낮아 물 같은 맥주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맥아 함량 10%이상 사용은 주세법상 정해진 기준일 뿐, 실제 하이트진로㈜에서 국내 시판하는 모든 제품은 맥아를 70%이상 사용하고 있으며, 이 중에 맥스는 100% 맥아로 만든 “All Malt” 맥주이기도 하다. 작년 우리나라의 해외 여행객이 1,28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만큼 해외에 나갈 기회가많아지고 여러가지 맥주를 마셔볼 기회도 늘었다는 의미이다. 세계의 맥주 브랜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 맛의 느낌 또한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요즘 국내에 많은 종류의 수입맥주가 판매되고 있고 이를 찾는 소비자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산 맥주들도 이미 세계적인 외국 맥주 품평회에서 수상을 하고 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우리의 제품이 수출되고 있기 때문에 외국 맥주와 견줄 수 있는 기술은 충분히 도달했다고 생각된다. 이제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부흥하여 보다 더 다양한 국산 맥주 제품들이 외국 맥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경쟁하는 날이 곧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사진제공 = 하이트진로
  • 1만년 전 ‘미스터리 돌 건축물’ 시리아서 발견

    1만년 전 ‘미스터리 돌 건축물’ 시리아서 발견

    시리아에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오래된 1만년 전 건축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 소속의 고고학자인 로버트 메이슨 박사는 지난 2009년 시리아를 방문했다가 기이한 형태의 돌 건축물을 발견했다. 이 돌 건축물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50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인근에는 19세기까지 사람들이 왕래하고 벽화 등이 보존돼 있는 마르무사 수도원이 있다. 주거의 흔적은 전혀 없지만 인근에서 거대한 선돌을 둥글게 줄지어 만든 환상열석(Stone circle)과 석기 등이 함께 발견됐으며, 연구팀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다는 특징 때문에 ‘죽음의 풍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메이슨 박사는 정확한 건축 시기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주변 돌의 형태와 유일한 건축물인 수도원의 형태를 보아 신석기 시대 또는 초기 청동기 시대인 6000~1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는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4500년 전 보다 수 천년 더 이른 시기다. 또 인근에 있는 수도원의 지하에는 선사시대의 거대한 돌무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메이슨 박사는 “돌들은 매우 심플하게 배열돼 있으며, 처음 발견 당시 어떤 생명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이 미지의 돌 건축물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여전히 내전이 활발해 조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 곳은 ‘시리아의 스톤헨지’나 다름없다.”면서 “1만년 전 만들어진 돌 건축물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사진=미스터리 돌 건축물 인근의 마르무사 수도원 전경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獨 바로크 음악 본고장서 공연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 獨 바로크 음악 본고장서 공연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이 23~24일 이틀간 독일 바로크 음악의 중심 도시인 드레스덴과 바이마르에서 공연한다. 이번 공연은 드레스덴필하모닉소년소녀합창단과 협연으로 진행한다. 23일에는 독일 드레스덴의 세동방박사교회에서, 24일에는 바이마르의 수도원 교회에서 공연을 갖는다. 바이마르는 작가 괴테와 철학가 니체가 머물렀고, 작곡가 리스트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합창단은 이번 공연에서 ‘달아달아’와 ‘쾌지나 칭칭 나네’를 비롯해 ‘양산도’, ‘군밤타령’ 등 우리 민요에 기초한 창작동요를 선보인다. 또 이영조 전 예술영재교육원장이 작곡한 ‘아리랑 고개 위의 들장미’를 독일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불러 양국 어린이의 아름다운 조화를 연출할 예정이다.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이 2010년 독일 드레스덴 현지에서 처음 공연한 데 이어 지난해는 드레스덴필하모닉소년소녀합창단이 서울 공연을 가지는 등 양측은 활발한 예술 교류를 하고 있다. 23일 공연에서는 드레스덴필하모닉소년소녀합창단 상임 지휘자인 유르겐 베커의 은퇴 무대도 함께 열린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가슴에 쇠말뚝 박힌 ‘뱀파이어’ 해골 발견

    가슴에 쇠말뚝 박힌 ‘뱀파이어’ 해골 발견

    뱀파이어(흡혈귀)는 정말 존재했던 것일까. 최근 고고학자들이 가슴에 쇠말뚝이 박힌 해골을 발견했다고 6일 영국 데일리메일 등이 보도했다. 이 신문에 의하면 고고학자들은 지난 3일 불가리아 흑해연안 도시 소조폴에 있는 한 수도원 근처에서 가슴에 쇠말뚝이 박힌 채 약 800년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골 두 구를 발굴해 냈다. 이에 대해 역사가이자 불가리아 국립역사박물관장인 보이다르 디미트로프는 “말뚝에 박힌 이 두 해골은 과거 불가리아 일부 마을에서 흔히 행해진 풍습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과거 일부 사람은 죽은 자가 안장되기 전 쇠나 나무 말뚝을 심장에 박지 않으면 뱀파이어로 되살아난다고 믿어 피해를 막기위해 이 같은 행동을 했던 것이라고 이 역사가는 설명했다. 또한 디미트로프 관장은 지난 수년간 불가리아 일대에서는 뱀파이어가 되는 것을 막기위해 말뚝에 박힌 시체가 100여 구나 발굴됐다고 말했다. 그는 “난 이런 일반적인 발견이 왜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는지 확실한 이유를 모르겠다.”면서도 “아마 ‘뱀파이어’라는 단어가 가진 신비함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디미트로프 관장은 과거 뱀파이어는 종종 귀족이나 성직자 출신으로 “재밌는 점은 말뚝이 박힌 시체에는 여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녀를 두려워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달 이탈리아의 연구팀은 베니스 인근 라제레토 누오보 섬에서 입에 벽돌이 박힌 채 죽은 여성의 유골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이 섬은 지난 1576년 전염병이 돌아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사망한 뒤 격리됐던 장소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피렌체대학 인류학자 마테오 보리니는 “이 발견은 일부 중세인들이 뱀파이어를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 확산의 배후라고 생각했다는 미신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멀티비츠(게티이미지·위), 데일리메일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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