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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절제된 면의 분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절제된 면의 분할

    시커멓게 변색된 손가락 마디마디에 두드러진 굳은살. 인도 어느 구도자의 맨발인 듯, 산골 처녀의 민낯인 듯 화폭 속 긴장감 넘치는 선의 흔적과는 또 다르게 마냥 둔탁해 보인다. 손가락 자체가 작품의 진정성을 대변한다. 자연 풍광을 추상적으로 그려 내는 박영남(65) 국민대 회화과 교수는 캔버스와 팔레트를 구분 짓지 않는다. 붓을 쥐지도 않는다. 그림물감을 짜내 섞기 위한 팔레트 없이 곧바로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부은 뒤 붓 대신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그림을 그려 나간다. 물감은 금세 굳어 버리기 때문에 작업은 빠른 속도로 이어진다. 순간의 직관으로 그리기에 군더더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절제된 면의 분할이 화폭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1981년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팔아 떠난 미국 유학길은 늘 가난에 쪼들린 삶이었죠. 집값이 폭등하기 전이라 근근이 학비를 내고 생활을 이어 갈 정도였어요. 물감과 캔버스를 넉넉하게 살 돈이 없어 아끼고 또 아끼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작업하게 됐죠.”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하던 작가는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5000달러를 가지고 미술용품 가게로 달려가 물감을 잔뜩 쓸어 담았다. 집으로 돌아와 물감을 마음껏 손에 쥐고 문지르던 순간의 쾌감은 이후 30년간 계속된 손가락 작업의 단초가 됐다. 1984년 귀국 이후 심상을 색채의 대비 효과와 빛의 깊이에 담은 서정적 추상회화의 영역을 본격적으로 개척해 갔다. 작가는 자연조명 아래에서 작업하기를 고집한다. 중요한 이미지로 차용해 온 흑과 백의 색채는 인공적인 형광등 불빛보다 자연광 아래에서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물감을 여러 겹으로 덧칠한 색색의 단층은 달빛을 머금은 듯 몽환적 정서를 선사한다. 그는 14번째 개인전을 다음달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이어간다. 이번 전시에선 1990년 시작된 ‘자기 복제’(Self Replica) 연작인 ‘블랙 앤 화이트’를 비롯해 10호 크기의 캔버스에 그린 채색 작업 100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빅 애플’ 등을 선보인다. 작가는 물감이 마르는 속도를 조율하면서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아 간다. “물감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는 과정입니다. 색채를 선으로 나누며 화면을 분할하는 그리드(grid)는 작업의 또 다른 축이죠. 미술계 7년 후배인 오치균 작가 역시 손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추상이 아닌 구상이란 점에서 관람객이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한 면이 있죠.” 작가는 자신의 그림들을 놓고 “내 작품을 복제했다”고 설명했다.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이 진화돼 나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작품들은 일렬로 혹은 직사각형 형태로 재배치됐다. 이번 개인전에선 1995년 오스트리아 수도원 공방에서 체류하며 배운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활용한 작품들도 선보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아프타이베르크 미술관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아프타이베르크 미술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묀헨글라트바흐는 인구 20만명에 불과한 작은 공업 도시다. 독일 북서부의 문화 트라이앵글을 이루는 쾰른, 뒤셀도르프, 에센처럼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묀헨글라트바흐는 루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도시의 하나로 반드시 꼽힌다. 다름 아닌 아프타이베르크 시립미술관 덕분이다. 역량 있는 젊은 화가들을 육성하고 그들의 작품을 수집·전시하기 위해 설립된 미술관은 표현주의부터 다다이즘, 팝아트, 미니멀아트까지 20~21세기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보여 주는 다양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다른 유명 미술관과 비교해 손색이 없을 만큼 수준 높은 소장품도 자랑이지만 이 미술관의 세계적 명성은 중세의 수도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 있는 미술관 건축물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미술과 자연, 건축의 멋진 조화를 보여 주는 미술관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가에 의해 지어진 첫 번째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관 건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뒤셀도르프에서 기차로 25분 거리에 있는 묀헨글라트바흐는 974년 세워진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다. 원래 글라트바흐라는 이름이었다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도시와 구별하기 위해 1960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으니 이름만 보면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닌 도시다. 2차 대전 후 독일 재건 과정에서 공업 중심지로 발달하면서 경제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문화예술적 기반은 인근 도시에 비해 빈약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이 문화 향유의 기회가 많은 쾰른, 뒤셀도르프 등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1970년대 초에는 도시 공동화를 우려할 정도가 됐다. 시 당국은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시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는 방안으로 1904년 세워진 향토 역사관을 확대한 시립미술관 건립을 결정한다. 어떤 미술관을 세울 것인가가 문제였다. 쾰른에는 7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웅장한 고딕식 대성당과 수많은 미술관들이 있다. 뒤셀도르프는 독일 현대미술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명성의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을 비록해 K20, K21 현대 미술관 등 문화 인프라가 풍부하다. 이런 인접 도시를 단번에 따라잡으려면 뭔가 폭발력 있는 콘텐츠가 필요했다. 궁리 끝에 현대 유럽 건축계의 최고봉을 이루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거장 한스 홀라인에게 설계를 의뢰하기로 한다. 후발 주자로 인접 문화도시를 대충 모방해서 뒤쫓기보다 그들도 깜짝 놀랄 만큼 최고로 멋진 미술관을 건립하고, 그에 걸맞게 아방가르드한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 시 당국의 과감한 결정은 과연 적확했다. 1982년 개관한 미술관은 시민들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 준 것은 물론 인근 도시들과 세계 도처의 미술·건축 애호가들을 찾아오게 만들었다. 도시의 문화적 품격은 단번에 뛰어올랐고 잃어 가던 활기도 되찾았다. 이 도시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많은 유럽 도시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 북부도시 빌바오다. 훗날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프랑크 게리는 “아프타이베르크가 없었다면 빌바오 구겐하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아프타이베르크는 독일어로 대(大)수도원을 의미하는 아프타이(Abtei)와 산을 의미하는 베르크(berg)가 합쳐진 것으로 미술관이 들어선 곳의 원래 지명이기도 하다. 이름 그대로 미술관은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수도원 언덕에 있다. 기차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나 있는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가 상업지구를 지나서 아프타이베르크로에 자리 잡고 있다. 주택가 뒤편에 있는 데다 경사지에 지어진 까닭에 도로 쪽에서 보면 외관을 한눈에 파악하기가 어렵다. 몇 층짜리인지,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여러 개의 칼날을 세워 놓은 듯 삐죽삐죽한 톱니 모양의 지붕을 한 회색 건물과 파사드가 반사 유리로 된 높은 건물이 이어진 형태는 공장 같기도 하고, 오피스 빌딩 같기도 하다. 입구는 명성을 듣고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방문객의 기대와 달리 너무나 평범했다. 내부로 들어가서 본 첫 인상도 마찬가지다. 중앙홀은 다른 미술관에 비해 좁아 보였고 어딘지 혼란스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내부 공간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이런 실망감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이 모든 것이 건축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장치였음을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한스 홀라인의 건축은 구심성을 강조하는 내부 공간 배치로 전시공간 체험을 풍부하게 해 주는 게 특징이다. 미술관은 그런 건축가의 콘셉트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원형으로 펼쳐진 중앙홀의 양쪽 끝에 지상층과 반지하층으로 연결되는 흰 대리석 층계가 있다. 미술관이 들어앉은 지형을 살려 높고 낮게 설치된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크기에 다양한 모양을 한 전시실들을 끝없이 만나게 된다. 예측 불허의 공간에서 적절하게 설치된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들을 마주하면서 마치 보물섬의 다양한 동굴을 탐험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부드러운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비교적 큰 그림들이 걸린 2층 전시장이다. 상층부는 자연광을 최대한 들여놓았다. 사선으로 잘린 천장의 빗금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자연광이 눈의 피로감을 줄여 주면서 작품의 진의를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한다. 중앙홀의 벽면에 설치한 커다란 거울 작품을 통해선 나선형 계단과 벽면이 데칼코마니를 한 듯 겹쳐 보인다. 즐거움과 놀라움의 연속이다. 지루할 틈 없이 작품 감상을 하고 나니 어느새 미술관이 문을 닫는 오후 6시다. 미술관 직원은 “정원의 조각박물관은 8시까지이니 안심하라”며 미소를 지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도원에서 울리는 은은한 종소리를 들으며 정원의 조각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도원을 끼고 돌아 부드러운 곡선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내리막 경사지에 들어앉은 정원이 펼쳐진다. 지형을 자연스럽게 살려 만든 정원은 가파른 경사에도 불구하고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리막 중간에 미니멀리즘 조각이 설치된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고 초록색 잔디밭 군데군데에 현대조각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시민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러 맑은 공기를 마시고 햇살을 쪼이며 독서를 하기도 한다. 둥지를 찾아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맑은 저녁 공기 속에서 더욱 청아하다. 홀라인은 이 미술관에 대해 “건축가인 동시에 예술가로서 설계에 임했다. 전시되는 작품들의 예술성을 생각하는 건축가, 예술 작품으로서 건축물을 창조하는 예술가의 입장이었다. 건축과 공간, 그리고 예술작품 간의 끊임없는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했다. 건축을 예술로서 접근했던 홀라인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잠시 앉아 미술관을 올려다보았다. 고색창연한 중세의 수도원과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미술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수도원의 첨탑이 반사 유리의 효과를 내는 아연판의 미술관 건물, 콘크리트의 질박한 재질감이 드러나는 삐죽삐죽한 지붕으로 이어지면서 만들어 내는 스카이라인이 참으로 독특하다. 조각정원에 설치된 마우로 스타키올리의 원형 조각 작품을 통해 보이는 수도원의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 그 자체였다. 현대예술 작품을 통해 중세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직선과 곡선, 과거와 현재, 융합과 충돌, 자연과 인공처럼 상반된 개념들이 동시에 공존하면서 미학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완벽하게 실현된 건축. 홀라인이 추구하는 ‘예술로서의 건축’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가슴에 금속 말뚝 박힌 뱀파이어 추정 무덤 발견

    가슴에 금속 말뚝 박힌 뱀파이어 추정 무덤 발견

    지난 8일,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맞서기 위해 어둠의 존재와 계약을 맺고 공포의 화신으로 거듭난 드라큘라 백작의 기원을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한 영화 ‘드라큘라 언톨드(국내 개봉 명은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가 개봉된 후,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뱀파이어(흡혈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불가리아에서 가슴에 금속말뚝이 박힌 채 매장당한 중세 뱀파이어 추정 무덤이 발견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장소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남동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페퍼리온 수도원이다. 불가리아 전문 고고학 연구진에 의해 발굴된 유골 2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상태에서 심장부위에 금속 재질 말뚝이 박혀 있었다. 이는 13~14세기 당시 동부유럽 지역에서 행해지던 의식으로 흡혈귀가 다시 무덤에서 부활할 수 없도록 심장을 파괴한다는 의미다. 동부 유럽지역에서 이런 형태의 유골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폴란드 지역 언론매체 ‘카미안스키 인포(kamienskie.info)’에 따르면, 폴란드 북서부 카미안 포모르스키 마을 공동묘지에서 16세기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뱀파이어 유골이 발견됐다. 당시 이 유골은 치아가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 입 안이 벽돌로 채워져 있었고 발 부분에는 못이 박혀있었는데 이는 흡혈행위와 사후부활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매장이 13~17세기 사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정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뱀파이어 시신의 실제 주인들인 당시 지식인, 귀족, 성직자들과 같은 특권층들이 많았는데 치열한 권력 암투에 밀린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해당 시기 유럽은 흑사병 공포가 만연했는데 일부 특권층을 뱀파이어로 몰고 병균의 원인으로 지목해 살해하는 방식으로 민중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다. 종합해보면, 과거 실존했던 뱀파이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흡혈귀가 아닌 역사적 흐름에서 불가피하게 희생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불가리아에서는 지금까지 5구의 뱀파이어 추정 유골이 발견됐으며 해당 유골 2구는 최근 2년 만에 6번째, 7번째로 발굴된 것이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14) 달걀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14) 달걀

    달걀은 고대로부터 생명과 부활을 상징했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인도, 중국 등의 신화에서도 우주를 거대한 알로 묘사하거나 최초의 신이 알에서 태어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 역시 알에서 태어났다고 주몽신화가 이야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부활절에 달걀을 나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류가 달걀을 먹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100년 그리스 시대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11세기쯤 교황청이 육식을 금지한 시기에도 달걀 요리는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금요일에 고기 대신 달걀을 먹는 관습도 생겨났다. 해마다 부활절에 달걀을 주고받는 관습은 17세기쯤 수도원에서 시작됐다. 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 햄과 달걀이 들어간 샌드위치가 아침 식사로 각광받으면서 오늘날의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로 정착됐다. 동양에서 달걀을 먹기 시작한 시기는 서양보다 빠른 편이다. 약 4000년 전에 인도,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에서 닭을 사육하면서 달걀을 먹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카시족과 마리오족은 부활의 의미를 지닌 달걀을 죽은 자와 같이 매장하는 풍속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은 근대에 달걀 요리가 급속히 발달해 오믈렛(오므라이스), 소바(메밀국수), 초밥, 카스도스(과자), 달걀 푸딩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1400년 닭의 전래와 동시에 달걀을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경주 고분군에서는 세계 최초로 썩지 않은 달걀 껍데기가 출토되기도 했다. 달걀 조리법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규곤시의방’(閨?是議方), ‘주방문’(酒方文) 등의 서적에 등장한다. 난탕법(수란), 알찜, 난적법, 팽란, 알쌈 등이 기록돼 있으며 이 밖에도 지단을 만들어 고명으로 쓰거나 전을 부치는 데 이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70년대 후반 축산 기술의 발달로 알을 많이 낳는 닭 품종이 보급되면서 우리 식탁에 흔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달걀은 닭이 낳은 알(계란, 鷄蘭)이라는 뜻으로 ‘닭의 알→닭이알→달걀’ 순으로 변화됐다. 전라도에서는 ‘닥알’, 제주도에서는 ‘독새끼’라는 사투리가 있고 북한에서는 ‘닭알’로 부르기도 한다. 서양의 속신(俗信)에서는 일몰 후에 알을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거나 팔러 나가는 것은 불길하며 알 꿈은 악운의 전조로 생각한다. 영국에서 ‘에그 댄스’는 눈을 가리고 흩어놓은 알을 밟지 않고 춤을 추는 것으로 매우 곤란한 일을 의미한다. 우리 속담에서 달걀은 중요한 사물이나 희망을 뜻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희망이 없거나 딱한 처지를 비꼬기도 하는 말이다. ‘달걀노른자’는 어떤 사물이나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뜻하며 ‘내일 닭보다 오늘 달걀이 낫다’는 이익의 의미도 있다. 반면 ‘조막손이 달걀 떨어뜨린 셈’, ‘곯은 달걀이 꼬끼오 하거든’ 등은 희망이 없거나 어려움을 비꼬는 말이다. 라틴어에 ‘달걀에서 사과까지’는 연회에서 처음에 달걀이 나오고 마지막에 사과가 나온 데서 유래한 말로 ‘풀코스’를 뜻한다. 달걀은 완전식품에 가장 가까운 식품이다. 우리 인체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한 개의 달걀에는 단백질, 지방과 리보플래빈, 니아신, B12 등 11종의 비타민과 광물질이 포함돼 있다. 지방 중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 함량은 약 60% 정도다. 반면 달걀 1개의 칼로리는 72㎉(전란 기준)에 불과하다. 단백질에는 류신, 아르기닌 등의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이를 이용한 스포츠용 보충제도 판매되고 있다. 난백에 함유된 생리 활성 물질로는 오브알부민, 오보트랜스페린, 라이소자임 등이 있으며 이들은 주로 항균 활성, 항고혈압, 면역 조절 등의 효과를 발휘한다. 난황에 함유된 루테인, 제아잔틴, 면역글로불린 등은 생리 활성 작용을 한다. 루테인 및 제아잔틴은 눈의 건강을 유지하고 노화와 관련된 안 질환의 발생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이들 물질은 백내장 발생의 위험도를 감소시키고 노화에 의한 황반변성,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야가 흐릿해지고 일그러지는 현상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역글로불린(Ig)Y는 여러 종류의 항박테리아, 항바이러스, 박테리아 부착 억제 효과가 있다. 강근호 농촌진흥청 축산물이용과 이학박사 ■문의 douzirl@seoul.co.kr
  • 가슴에 금속말뚝 박힌 ‘뱀파이어 유골’ 발견

    가슴에 금속말뚝 박힌 ‘뱀파이어 유골’ 발견

    지난 8일,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맞서기 위해 어둠의 존재와 계약을 맺고 공포의 화신으로 거듭난 드라큘라 백작의 기원을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한 영화 ‘드라큘라 언톨드(국내 개봉 명은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가 개봉된 후,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뱀파이어(흡혈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불가리아에서 가슴에 금속말뚝이 박힌 채 매장당한 중세 뱀파이어 추정 무덤이 발견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장소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남동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페퍼리온 수도원이다. 불가리아 전문 고고학 연구진에 의해 발굴된 유골 2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상태에서 심장부위에 금속 재질 말뚝이 박혀 있었다. 이는 13~14세기 당시 동부유럽 지역에서 행해지던 의식으로 흡혈귀가 다시 무덤에서 부활할 수 없도록 심장을 파괴한다는 의미다. 동부 유럽지역에서 이런 형태의 유골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폴란드 지역 언론매체 ‘카미안스키 인포(kamienskie.info)’에 따르면, 폴란드 북서부 카미안 포모르스키 마을 공동묘지에서 16세기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뱀파이어 유골이 발견됐다. 당시 이 유골은 치아가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 입 안이 벽돌로 채워져 있었고 발 부분에는 못이 박혀있었는데 이는 흡혈행위와 사후부활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매장이 13~17세기 사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정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뱀파이어 시신의 실제 주인들인 당시 지식인, 귀족, 성직자들과 같은 특권층들이 많았는데 치열한 권력 암투에 밀린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해당 시기 유럽은 흑사병 공포가 만연했는데 일부 특권층을 뱀파이어로 몰고 병균의 원인으로 지목해 살해하는 방식으로 민중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다. 종합해보면, 과거 실존했던 뱀파이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흡혈귀가 아닌 역사적 흐름에서 불가피하게 희생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불가리아에서는 지금까지 5구의 뱀파이어 추정 유골이 발견됐으며 해당 유골 2구는 최근 2년 만에 6번째, 7번째로 발굴된 것이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다빈치의 눈으로 본 인간, 온몸에 우주를 담다

    다빈치의 눈으로 본 인간, 온몸에 우주를 담다

    다빈치,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리다/토비 레스터 지음/오숙은 옮김/뿌리와 이파리/320쪽/1만 5000원 고대 로마의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는 기원전 25년 ‘건축에 관한 열 권의 책’, 즉 ‘건축 10서’를 집필해 아우구스투스에게 헌정한다. 그는 고대의 철학자, 수학자, 신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인체의 설계가 우주에 감춰진 기하학과 일치하며 원과 정사각형이 각각 신(神)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인체란 곧 축소된 우주였으며 만물의 척도였다. 그는 광대한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균형 잡힌 인체를 연구하는 것이라며 이상적인 인체의 비례가 어때야 하는지도 설명했다. 그로부터 1500년이 지난 1490년, 당시 38세이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원과 정사각형 안에 한 건장한 사내가 팔다리를 쭉 뻗고 있는 그 유명한 그림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렸다. 서양사의 묵직한 주제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전하는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토비 레스터는 ‘다빈치,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리다’에서 이 상징적 그림이 탄생하는 과정을 사상의 역사, 미술사 등을 엮어 솜씨 좋게 풀어낸다. 인체가 바로 세계 전체라는 소우주론은 수세기에 걸쳐 유럽의 종교·과학·미술 사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세 유럽에서는 불, 공기, 물, 흙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 네 가지 원소의 특성이 사계절과 인간의 네 가지 신체 기질, 열두달과 연결돼 있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중세의 필사본에서는 그리스도가 소우주의 현신으로 나타난다. 중세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인 독일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는 1140년쯤 눈부신 일련의 환영을 보는데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은 소우주의 현신으로 나타난 인간의 모습과 흡사했다. 12세기 중반 소우주론은 아랍의 해부학 텍스트와 결합한다. 소우주의 이미지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정작 비트루비우스가 쓴 건축 10서 자체를 필사하거나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415년쯤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가 스위스 생갈렌수도원 도서관에서 건축 10서 8세기 필사본을 발견해 피렌체로 필사본을 보내면서 비트루비우스의 소우주론은 실제 건축가와 화가들의 연구 대상이 된다. 책에서 다빈치는 모든 면에서 중세적이며 중세가 낳은 인물로 그려진다. 인체 설계가 우주를 반영한다면 인체 연구를 통해 전체로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해부학, 기계설계, 지리학, 수학, 기하학, 음악,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비례는 모든 것의 열쇠라고 판단했다.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간 다빈치는 자기 예술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궁정에서 건축가로서 일자리를 얻고 싶은 욕망으로 인체와 비례에 대한 연구에 뛰어들었다.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10서를 비롯해 중세 텍스트를 샅샅이 뒤지면서 인체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실질적인 정보들을 습득하고 분석한 끝에 그는 세계를 축소한 해부학적 모델로서 인체라는 관념에 이르는 자기만의 길을 발견한다. 책은 소우주론의 역사와 다빈치가 그림을 완성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오가다 ‘비트루비우스 인간’에서 마무리된다. 저자는 나아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 다빈치 자신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매우 섬세하게 묘사된 얼굴은 동시대인들이 묘사한 다빈치의 외모와 일치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림의 힘 또한 얼굴에서 나온다고 덧붙인다. 중세적 인간에서 비로소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거듭난 다빈치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노란색 아닌 갈색 병아리가 뭐 어때서…상상력 고갈된 국내 미술교육이 위기”

    “노란색 아닌 갈색 병아리가 뭐 어때서…상상력 고갈된 국내 미술교육이 위기”

    “딸이 초등학생 때 울면서 집에 돌아왔어요. 동급생들이 모두 병아리를 그렸는데 자기 그림만 벽에 걸리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유가 궁금해 물었더니, 다들 병아리를 노랗게 그렸는데 자기만 갈색으로 그렸다고 했어요.” 신종식(56) 홍익대 미대 교수는 아쉬운 표정으로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냈다. “(미술에서) 똑같이 그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대화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마음을 통째로 열고 상상의 나래를” 신 교수는 평소 학생들에게 “마음을 통째로 열고 주변의 모든 풍경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쳐 왔다. 홍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로 유학을 간 뒤 그곳 지도교수에게 배운 교훈이다. 당시 그는 프랑스인 동기들보다 8세쯤 많았던 외국인 유학생에 불과했지만, 뛰어난 손감각으로 주목받았다. 지도교수의 관심 덕분에 무럭무럭 성장하던 시절이었다. 미술학교장이 파리 시내 유명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조건으로 ‘발 그리기 공모전’을 연 것도 이때였다. 한 달 동안 엽서 크기인 1호짜리 캔버스 10점에 발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 제출해야 했다. 그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예수와 부처, 공자 등 세계 문명사에 획을 그은 인물 10명을 꼽아 이들의 발을 펜화로 그려 제출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발을 실제처럼 표현해 그리는 식이었다. 주변에선 1등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 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130여명의 학생 가운데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 나왔다. 1등은 굵은 선으로 다양한 장화를 그려낸 학생이 차지했다. 초등학생의 낙서 같은 작품이었다. “미술가, 교수, 갤러리 관계자 등 심사위원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1등 작품을 뽑았다고 하더군요. 이유를 물었더니 130여명의 학생 중 누구도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어려서부터 루브르박물관 등에서 대작을 보며 커온 프랑스 학생들은 기술적인 면보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 데 더 집중했던 거죠.” 신 교수는 “한국 미대 학생들은 요즘 소위 돈 되는 흐름만 따라가려 한다”며 “한때 하이퍼리얼리즘이 유행하자 이를 따라 그리다가 지금은 다시 다른 흐름을 찾아 다니고 있다”고 비판했다. ●“돈 되는 흐름만 따라가려” 비판 어려서부터 건축학도를 꿈꾸던 그는 파리 국립미술학교와 파리 제8대학 대학원 유학시절 주변 요새나 성곽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왔다. 또 시험기간이면 도서관 대신 파리의 수도원에 들어가 공부하며 수도사들과 경험을 나눴다. 신 교수는 다음달 31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청안갤러리에서 개인전 ‘본 보야지!’(Bon Voyage!)를 이어간다. 단순히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지론만큼 자신이 두 눈으로 본 풍경을 캔버스 위에 꿈결같이 아련히 재현한 작품들이다. 별도의 드로잉도 없고, 미리 계산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순례자처럼 지나가고 여행자처럼 두리번거리며 사는 것, 그거야말로 좋은 삶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12) 사과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12) 사과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과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과를 떠올릴 것이다. 성서에서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을 어기고 사과(선악과)를 따 먹으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는 명실상부한 세계인의 대표 과일이다. 인류의 손에 의해 재배가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아시아 코카서스산 북부 지역에서 처음 수확된 사과는 이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동(東)으로는 중국, 서(西)로는 유럽 등으로 전파되며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능금과 내라는 두 종류의 사과가 일찍부터 재배됐다. 6세기경 비단길을 통해 유럽에서 서양 사과인 평과가 도입된 뒤 다채로운 품종으로 발전됐다. 서양에서는 로마 시대에 유럽을 거쳐 영국으로 전파됐다. 주로 수도원을 중심으로 재배됐고, 수도원 조직을 통해 전파됐다. 미국에서는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신대륙에 유럽 품종을 전파하면서 사과 재배가 시작됐고, 미국 독립전쟁 뒤 서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과 재배가 확대됐다. 우리나라는 19세기 말 개화기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유래된 능금이, 이후에는 서양 사과가 주로 재배됐다. 사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의종 때 ‘계림유사’의 ‘임금’이다. 이 임금이 지금 능금의 어원이 돼었다. 조선 숙종은 서울 북악산 뒤 자하문 밖 일대에 사과를 심어 한때 20만 그루나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사과는 개화기 서양 선교사를 통해 도입된 서양 품종이 주종이다. 그 후 일본 아오모리현 등에서 신품종 사과가 속속 도입됐다.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경제적 재배는 1902년 윤병수씨가 원산 부근에서 ‘국광’, ‘홍옥’ 품종을 수확하면서 시작됐다. 1900년 미국 선교사 존슨이 대구 남산동에 심은 사과나무는 현재까지도 대구 계명대 동산의료원에서 생존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개발된 품종인 ‘홍로’ 사과는 일본 품종인 ‘쓰가루’를 제치고 우리나라 제2의 품종으로 등극해 최고의 추석용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국내에서 개발된 ‘감홍’ 사과는 전 세계 다양한 품종들을 제치고 가장 당도가 높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어 경북 문경 사과축제 등에서 애용된다. 최근 개발된 ‘썸머킹’ 사과는 쓰가루를 대체할 품종으로 각광받고 있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사과는 품종 역시 2500여종에 달한다. 빨간색부터 초록, 황색 등 색깔은 물론 대추만 한 것에서 핸드볼 공만 한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사과는 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재배돼 다양하고 독특한 기록과 이야기가 많이 존재한다. 사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팔레스타인 예리코 지역의 ‘사과를 따는 그림’으로 약 기원전 6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과는 일본 아오모리현의 천가사과(天價沙果·하늘만큼 높은 가격의 사과)다. 한 개에 100만원 정도에 판매됐다. 사과를 이용한 가장 큰 요리는 미국 축제에서 만든 지름 3m의 사과 파이다. 무게만 1.2t에 달한다. 흔히 ‘하루 사과 한 개만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 한다. 비타민과 식이섬유, 기능성 물질 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사과의 우르솔산은 염증 완화와 근육강화 효과가 있고 카로티노이드, 안토시아닌, 폴리페놀 등의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여 건강을 지켜준다. 어린이에게는 훌륭한 이유식이며, 자연적인 칫솔로서 충치를 예방한다. 식이섬유 등은 과민성 대장 증상이나 변비, 설사 등에 효과적이다. 또한 여성에게 많은 골다공증의 예방 효과가 있으며,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좋다. 공복에 사과를 먹으면 포만감이 커져서 밥 등 탄수화물 섭취를 덜하게 되는 등 다이어트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사과를 즐겨 먹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졸중 발생률이 52%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권헌중 농촌진흥청 사과시험장 농업연구관 문의 douzirl@seoul.co.kr
  • 음악·극·무용 삼위일체합창음악의 ‘진수’

    음악·극·무용 삼위일체합창음악의 ‘진수’

    음악·극·무용이 삼위일체를 이뤄야 하는 합창음악의 정수가 무대를 채운다. 국립합창단이 오는 30일 구천(58) 신임 예술감독의 취임 연주회로 20세기 독일 작곡가 칼 오르프의 대작 칸타타 ‘까르미나 부라나’를 선택했다. ‘까르미나 부라나’는 중세 떠돌이 수도사나 음유시인들이 사랑, 유희, 외설, 도덕 등을 노래한 세속시가집에 뿌리를 둔다. 칼 오르프는 1803년 독일 바이에른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된 ‘보이렌 수도원의 노래’ 속 250곡 가운데 25개 가사를 3부작의 칸타타로 완성했다. 때문에 타락한 수도원장 등 지도층에 대한 조롱, 중세시대 때 억압된 기층민의 욕망 등 풍자적 가사를 통한 당시 사회상도 엿볼 수 있다. 구천 예술감독은 “봄기운 가득한 서곡으로 시작하는 ‘까르미나 부라나’는 합창, 오케스트라가 화려하게 어우러지는 축제의 의미를 지닌 곡”이라며 “기악적인 요소와 성악적인 요소가 대화하듯 소통하는 장면에 귀를 기울이면 곡의 매력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구천 감독의 지휘 아래 소프라노 박현주, 테너 신동원, 바리톤 김동섭이 독창을 맡고 국립합창단, 광주시립합창단, 용인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대작에 목소리를 수혈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이 무대 위에 춤을 뿌리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관현악 연주를 맡는다. 1만~5만원. (02)580-1300.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해외여행 | 이탈리아-미술과 음악을 품은 마르케 Marche

    해외여행 | 이탈리아-미술과 음악을 품은 마르케 Marche

    이탈리아 마르케 지역을 다녀왔다. 이름은 생소했고, 미리 구해 놓은 정보도 거의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약 30년을 살았다는 한국인 가이드는 “마르케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진짜 휴양지”라며 목청을 높였다. 그 진짜 휴양지에는 풍경 이외에 예술과 음식도 풍성하게 깃들어 있었다. 넉넉한 휴양지 마르케 기행문을 작성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경한 지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낯선 곳이 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과 정보 부족으로 인한 불안감이 공존한다. 이번에도 설렘과 조바심이 끊임없이 교차했는데, 불안정한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은 마르케의 수굿한 풍경과 아슴아슴한 예술이었다. 마르케주는 이탈리아 중북부 동해안에 위치해 있다. 한반도에 비유하면 강원도쯤 되겠다. 강원도가 그렇듯이 마르케도 바다와 산을 함께 거느리고 있다. 자연이 넉넉하게 인심을 썼다. 구릉도 있고 동굴도 있다. 우리가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가듯 이탈리아 사람들도 마르케에서 바캉스를 즐긴다. 마르케에 아예 ‘세컨드 하우스’를 두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육박했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에 들어가면 금방 열기가 수그러들었다. 마르케 여행 첫날,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감청의 아드리아Adria해가 넘실거렸다. 수영복 차림의 커플 한 쌍이 소형 보트를 몰고 쏜살같이 지나갔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마주한 아드리아해였다. 첫 경험은 크로아티아에서였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가 있는 발칸반도는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탈리아에 가까운 아드리아해와 크로아티아에 가까운 아드리아해. 바다의 근본적인 성분이야 달라질 것이 없겠지만 어쩐지 느낌이 달랐다.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가 수더분하다면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 해는 아롱다롱했던 것 같다. 사랑이 넘쳤던 미남 화가 마르케에서 중요한 도시로 우르비노Urbino가 꼽힌다. 무엇보다 그림 애호가들에게는 성모화의 대가 라파엘로Raffaello의 고향이란 점이 돋보인다. 라파엘로가 활동하던 16세기 초는 르네상스의 전성기로 불세출의 화가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던 시기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해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 등이 자신들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시대의 공기를 호흡했던 라파엘로가 이들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우선 성격이 사뭇 달랐다. 어딘가 신비롭고 고독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재 예술가’의 면모를 지녔다면 라파엘로는 성품이 사근사근해서 어딜 가나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활약했던 분야도 상이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미술을 넘어 조각과 건축 등에도 재능의 촉수를 뻗쳤다면 라파엘로는 회화에만 집중했다. 라파엘로는 1483년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첫 번째 미술 선생님은 궁정화가인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등진 이후에는 페루지아에서 그림 수업을 계속했고, 17살인 1500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의뢰받기 시작했다. 우르비노는 라파엘로의 고향이기는 하지만 그를 유명하게 해준 성모자상과 초상화들은 1504년부터 거주한 피렌체와 1508년에 입성한 로마에서 그린 것들이다. 14세기에 지어진 라파엘로 생가Casa di Raffaello에 들어섰다.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가구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그가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방에는 성모와 아기 예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작은 안뜰과 우물의 존재는 라파엘로의 가정이 당시 꽤나 부유했음을 일러 주었다. 집 안 한쪽에 놓인 라파엘로의 흉상은 그가 상당한 미남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얼굴값’을 단단히 했던 모양이다.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는데, 미술가들의 삶을 기록한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에 따르면 연애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열병을 초래했다고 한다. 안코나 마르케의 주도다. 안코나항은 아드리아해와 접한 이탈리아의 항구들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그리스나 크로아티아 등으로 떠나는 페리를 이용할 수 있다. 산 치이라코San Ciriaco 대성당이 대표적인 볼거리다. 몬테펠트로가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 이유 우르비노는 1998년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우르비노는 르네상스 시대에 활짝 꽃을 피운 도시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각지의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이 우르비노로 모여들었고 이들이 물을 뿌려 가꾼 풍만한 문화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특히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Federico da Montefeltro가 통치하던 시절(1444년부터 1482년까지)이 우르비노의 최전성기였다. 몬테펠트로는 원래 용병이었다. 남들의 전쟁에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나가 대신 싸우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그는 뛰어난 군사 전략가인 동시에 계몽적인 지도자였다. 1444년 공작이 되고 난 후 이름난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를 마련하고자 했는데, 그의 바람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우르비노의 중심이자 지금도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군림하고 있는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이다. 비례와 균형의 미학으로 지어진 두칼레 궁전은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르비노 태생의 라파엘로, ‘회화의 군주’ 티치아노, 몬테펠트로 부부의 초상화를 그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원근법에 심취했던 파올로 우첼로 등의 ‘르네상스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우르비노를 대표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부부 초상’과 두칼레궁에 소장된 페드로 베루게테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아들 귀도발도’를 보면 몬테펠트로의 얼굴이 ‘호감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무스름한 피부, 매부리코, 툭 튀어 나온 턱, 거슴츠레한 눈매는 고약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두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몬테펠트로의 왼쪽 얼굴만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1455년 창 시합에서 오른쪽 눈을 잃은 후 정면 대신 늘 왼쪽 측면을 그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초상화는 사실주의적 묘사가 인상적이다. 또 아들과 함께한 그림에서는 갑옷을 입은 채 책 읽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몬테펠트로가 문무를 겸비한 지도자임을 나타내고 있다. 루벤스를 보려면 페르모로! 페르모Fermo 에도 아퀼라Aquila라는 이름의 극장이 있다. 마르케주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이다. 1792년 문을 열었으며 1,000석 규모를 자랑한다. 플로어 앞쪽에 앉은 사람들의 관람 편의를 위해 공연 무대를 경사지게 만들었다. 1590년에 완성된 건물 프리오리Priori에는 루벤스를 비롯한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과 1722년에 제작된 거대한 지구본이 눈길을 끄는 시립도서관이 있다. 아퀼라 극장 Via Giuseppe Mazzini, 4, 63023 Fermo, Italy +39-0734-284345 프리오리 미술관 Piazza del Popolo, 63023 Fermo, Italy +39-0734-217140 페사로가 낳은 아들 로시니 우르비노에서 차로 4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인구 9만의 도시 페사로Pesaro를 찾았다. 우르비노의 인물이 라파엘로라면 페사로의 얼굴은 로시니Rossini다. <세비야의 이발사>, <빌헬름 텔>로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 말이다. 로시니는 1792년 페사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소프라노였고 아버지는 호른 연주자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6살에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고 14살에 오페라를 만들었다. 그가 첼로와 피아노, 작곡을 체계적으로 배운 곳은 볼로냐 음악학교였는데 지루한 수업을 견디지 못해 학교를 그만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밀라노시에서 그의 동상을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돈을 내게 주면 매일 서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농담을 즐겼다. 그의 익살맞은 성격은 오페라에도 잘 드러난다. 내용은 극적이고 선율은 유쾌하다. 페사로에는 로시니 극장이 있다. 181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극장이다. 로시니는 이미 20대에 작곡가뿐만 아니라 극장장과 지휘자로도 맹활약했는데, 로시니 극장에서도 당연히 지휘를 했다. 예전 극장은 음악 감상 이외에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한다거나 카드놀이를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다고 한다. 9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로시니 극장은 5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계층에 따라 앉는 자리도 달랐다. 2층 중앙석은 최고 권력자를 위한 자리였고 일반인은 4층부터 앉을 수 있었다. 페사로에서는 매년 8월이면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린다. 올해도 8월10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되는데, 무대에는 당연히 로시니의 작품을 올린다. 지난해 120만여 명이 관람했을 정도로 축제는 항상 성황을 이룬다. 참고로 티켓 가격은 20~180유로다. 어쨌든 마르케주에만 로시니 극장 같은 곳이 72개가 있다고 하니 이탈리아 사람들의 음악 사랑을 짐작할 만하다. 작업복을 입은 회장 마르케에서 음악과 관련된 도시로 마체라타Macerata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의 상징이 바로 스페리스테리오 야외극장Arena Sferisterio이다. 유럽의 중요한 야외극장 중 하나인데, 스페리스테리오의 공연 역사는 19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작의 후원으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상연됐던 것이다. 스케일이 엄청났다. 무려 1,000명이 넘는 배우가 투입됐고 낙타나 말 같은 동물들도 출연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17회 공연으로 7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마체라타 오페라’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를 상연했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관객의 호응을 얻는 데 실패했다. 결국 1927년까지 스페리스테리오에서는 공연이 열리지 않았다. 부활의 계기는 1967년에 찾아왔다. 마르케 출신의 카를로 페루치라는 인물이 ‘마르케 오페라 순회 공연단’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전국 순회공연에 나섰는데, 마체라타의 차례가 되자 스페리스테리오를 공연장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마체라타측으로부터 새로운 무대와 조명 등의 지원을 받은 페루치는 <오셀로>와 <나비부인> 등을 공연하며 야외극장을 부활시켰다. 1992년부터는 한여름에 스페리스테리오에서 서너 개의 오페라가 공연되는 ‘마체라타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리기 시작했다. 스페리스테리오는 스포츠 경기장이었다. 주로 15세기부터 유행한 핸드볼 형식의 공놀이 경기와 투우가 벌어졌다. 스페리스테리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는 극장의 특이한 형태와 더불어 음향을 완벽하게 전달하는 구조에 있다. 아무런 음향 장치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소리가 잘 전달된다. 직접 만나 본 아트 디렉터도 “소리가 극장 모든 곳에 동시에 도달하고 원래 소리의 두 배가 되어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이 스페리스테리오의 무대에 앞 다퉈 올랐다. 이탈리아는 패션의 나라이자 명품의 본고장이다. 전 세계 명품 시장의 절반을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장악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10억 달러 이상 자산가 가운데 무려 53%가 명품 산업 종사자라는 통계도 있다. 협회를 만들어 명품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마르케에서는 신발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곳에 프라다Prada, 토즈Tod’s, 체사레 파치오티Cesare Paciotti의 신발 생산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마체라타에 있는 명품 구두 브랜드 로리블루Loriblu 본사를 방문해 제조 공정을 살펴보았다. 패션 문외한이지만 각 라인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태도와 표정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 건물 안에 들어 있는 매장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우연히 로리블루 회장 부자父子를 마주쳤다. 놀랍게도 그들은 작업복을 입은 채 구두와 씨름 중이었다. 옷에 잔뜩 묻은 검댕이, 구두를 향한 그들의 열정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처음 만난 우리 일행을 스스럼없이 대했다. 권위가 권위주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오래 가는 화이트 와인 페사로에 로시니 극장이 있다면 예시Yesi에는 페르골레시 극장이 있다. 맞다.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및 오르간 연주자인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가 예시 태생이다. 1710년에 태어난 페르골레시는 27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너무 짧은 삶을 살아서였을까. 그는 사후에 훨씬 더 큰 명성을 얻었다. 페르골레시의 작품 중 <마님이 된 하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음악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쉽게 말하자면 프랑스의 궁정 오페라가 우월하냐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이탈리아어로 쓰인 가벼운 내용의 희극)가 우월하냐는 논쟁이었다. 2년에 걸친 싸움은 결국 이탈리아측의 패배로 끝이 났지만 역설적이게도 프랑스 희가극인 오페라 ‘코미크’의 탄생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1790년 처음 문을 열었다가 1883년 재개관한 페르골레시 극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다음, 와인 테이스팅을 위해 발레아니 광장에 있는 에노테카Enoteca로 자리를 옮겼다. 에노테카는 마르케와인협회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포도 품종의 개발과 와인 생산업자들의 보호 및 육성, 와인 유통 활성화 등에 힘을 보태고 있다. 화이트 와인 2가지, 스푸만테 1가지, 레드 와인 1가지를 시음했는데 역시 베르디키오Verdicchio 품종에 가장 큰 관심이 쏠렸다. 베르디키오는 마르케에서 재배되는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 상큼한 신맛이 일품이다. 화이트 와인뿐만 아니라 스파클링 와인인 스푸만테 양조에도 쓰인다. 양조장에 따라서는 베르디키오를 늦게 수확하기도 하는데, 이는 산도를 낮추고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베르디키오의 특별한 점 중 하나는 탁월한 숙성력이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보다 저장 기간이 짧은 편인데 베르디키오를 이용한 화이트 와인은 빈티지가 좋을 경우 10~15년 정도도 거뜬하다. ‘어린’ 베르디키오 와인에서는 신맛과 살짝 매운 맛이 감돌고 ‘묵힌’ 베르디키오 와인에서는 농익은 사과향이 난다. 마르케에 머물며 접한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이 아스콜라나 올리브Olive Ascolana튀김이다. 아스콜라나는 아스콜리나 지역에서 재배한 올리브로 크기가 커서 씨를 빼고 속을 채워 튀기기에 적합하다.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바삭한 튀김옷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잘게 다진 고기의 식감이 서로 잘 어울렸다. 아드리아 해에 면한 항구도시 세니갈리아Senigallia에서는 미슐랭 스타 셰프인 마우로 울리아시Mauro Uliassi를 만날 수 있었다. 17살이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생계유지를 위해 셰프의 길을 선택한 그는 “사실 처음에는 요리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여자 친구 생일을 맞아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을 해준 적이 있어요. 음식을 맛본 사람들이 진심으로 감동한 나머지 저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더라고요. 그때 요리의 강력한 힘을 알게 됐죠. 지금의 제 아내가 이렇게 얘기해 주었어요. 당신의 손에는 영혼이 있다고.” 그가 준비한 저녁 정찬 메뉴는 단순하면서도 모던함을 추구한다는 그의 요리 철학을 닮은 듯 보였다. 특히 셰프 스스로 ‘육지와 바다의 만남’이라 칭한 생선 위에 올린 프로슈토와 오징어를 넓적하게 썰어 먹물 소스를 끼얹은 요리가 사람들로부터 감탄을 이끌어냈다. 코스 요리와 그에 어울리는 와인 그리고 후식까지 음미하다 보니 시계가 어느새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이탈리아관광청 www.enit.it, 마르케 주정부, 알리탈리아항공 ▶travel info Airline 알리탈리아항공의 직항편을 이용해 로마까지 간 다음, 안코나행 국내선으로 갈아탄다. 로마-안코나 구간의 비행시간은 약 1시간 10분. Hotel 산 피에트로San Pietro에 위치한 호텔 몬테코네로까지는 안코나공항에서 차로 25분 정도 걸린다. 해발 550m에 자리하고 있어 아드리아해와 언덕이 만들어내는 멋진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호텔은 원래 12세기 수도원으로 이용됐던 건물이다. 지금도 고풍스런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총 50개 객실 보유. via Monteconero 26, 60020 Sirolo (AN), Italy www.hotelmonteconero.it +39-071-9330592 Restaurant 라 토레La Torre 주방에 들어가 셰프가 파스타 만드는 과정을 구경했다. 밀가루에 달걀을 넣은 반죽이 병아리색을 띈다. 탈리아텔레. 우리네 칼국수처럼 면이 길고 납작한 탈리아텔레 파스타는 셰프가 열심히 치대서인지 면이 유난히 쫄깃쫄깃하다. 함께 넣은 조개, 새우 등의 해산물이 파스타의 풍미를 한껏 올려 준다. via la Torre 1, 60026 Numana (AN), Italy www.latorrenumana.it +39-071-933047 우르비노 리조트 레스토랑 우르비노 리조트의 레스토랑에서는 갓 구운 빵과 돼지 뒷다리를 염장한 다음 바람에 말린 프로슈토를 추천한다. 어깨살과 삼겹살도 있는데 부드럽고 짭짤해서 자꾸만 손이 간다. 도톰한 파스타와 부드러운 송아지 스테이크 그리고 카카오 셔벗까지 함께하면 완벽한 점심 정찬. Via San Giacomo in Foglia, 7, 61029 Urbino (PU), Italy www.tenutasantigiacomoefilippo.it/en/urbino-resort +39-0722-580305 Activity 프라사시Frasassi 동굴 | 1971년에 발견된 프라사시 동굴은 종유석과 석순, 석주가 연출하는 지하 세계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동굴의 규모는 상당하지만 관람객에게는 약 1.5km 구간만 개방된다. 1시간 15분 정도 소요. 총 7개의 홀로 구성돼 있는데, 6·7번 홀은 사전 신청자에 한해 입장이 허락된다. 길이 험하기 때문에 안전 장비를 갖춰야 한다. 동굴 내부의 기온은 연중 14℃로 일정하다. Largo Leone XII, n 1 - 60040 Genga (AN), Italy www.frasassi.com +39-0732-90090 피아스트라 수도원Abbazia Fiastra | 예시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피아스트라 수도원은 여전히 엄격한 계율을 신봉하는 시토 수도회 소속이다. 이탈리아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수도원 중 하나로 꼽힌다. 수도원 주변은 자연보호 구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Abbadia di Fiastra , 62029 Tolentino (MC), Italy www.abbadiafiastra.net +39-0733-818638 아스콜리 피체노Ascoli Piceno | 로마보다 오래된 도시 아스콜리 피체노에는 도시의 중심을 잡아주는 두 개의 광장, 포폴로Popolo와 아링고Arringo가 있다. 아링고 광장에는 도시의 수호성인 에미디오에게 바쳐진 산 에미디오San Emidio 성당이 있고 바로 옆에 위치한 시청 내부에는 시립미술관이 있다. 미니 열차를 이용하면 도시의 명소들을 손쉽게 돌아볼 수 있다. 가격은 6€ 다. 로레토Loreto | 가톨릭 신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띠는 도시가 로레토다. 성가聖家, 즉 성모마리아가 태어난 나사렛 집의 일부(지상 부분의 담벼락으로 추정)가 로레토 성당Basilica di Loreto 안에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사렛에 남아 있는 성가의 지하 부분과 로레토 성가의 담벼락이 같은 벽돌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성당과 성가 내부는 기도를 올리는 순례자들과 일반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 800년 만에 다시 문여는 세계 최초 종합대학

    800년 만에 다시 문여는 세계 최초 종합대학

    세계 최초, 최대의 종합대학이자 수도원이 800년 만에 다시 학생들을 맞이할 예정이라고 중국 차이나데일리가 2일 보도했다. 인도의 나란다(Naland) 대학은 기원전 5~7세기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종합대학이자 불교대학으로, 미국의 하버드 대학,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보다 훨씬 앞선 1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7세기 인도의 팔라왕조 당시에는 학생수가 1만 명, 교수가 2000명에 달하는 초유의 규모를 자랑했으며, 특히 중국 당나라 시대의 고승이었던 슈엔장(현장,玄裝)이 이곳 사원에서 불교 연구에 힘쓴 곳이어서 중국인에게도 매우 각별하다. 나란다 대학은 철학과 불교 뿐 만 아니라 문학과 수학에도 뛰어난 수준을 자랑해 당대 최고의 대학이자 승려들의 수도원으로 자리매김했다. 1193년 이슬람교도들이 침략해 수도원 곳곳을 파괴했고 6개월 동안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 이후 이곳은 수 백 년 동안 전설로만 존재하는 신비로운 대학으로 기록돼 왔다. 2006년 불교 문화권인 중국과 인도, 싱가포르, 일본, 태국 등지에서 이 학교를 다시 열고자 하는 움직임을 시작했고, 특히 중국은 800년 만에 다시 문을 여는 이 수도원을 위해 100만 달러를 내놓았다. 나란다 대학은 820년 만에 다시 문을 열기로 결정했고, 소식을 들은 40개국의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응시’했다. 이중 15명이 최종 선발 돼 첫 수업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 측은 2020년까지 학생과 과목수를 점차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800년 만에 개학하는 ‘전설의 대학교’ 어디?

    800년 만에 개학하는 ‘전설의 대학교’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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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많아도 못하는 것...재벌2세, 고교 졸업장 못딴 사연

    돈 많아도 못하는 것...재벌2세, 고교 졸업장 못딴 사연

    헬기를 이용해 등교할 정도로 막대한 부(富)를 자랑하며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하는 재벌2세일지라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 없다. 그것은 바로 정당한 노력으로 힘든 교육과정을 통과하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졸업장’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부정행위로 졸업시험장에서 쫓겨나 고교중퇴자가 될 예정인 루마니아 재벌 2세 빅터 미쿨라(18)의 사연을 5일(현지시간) 소개했다. 다른 이들이 졸린 눈을 비비고 새벽 일찍 일어나 등교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버스를 기다릴 때, 유유히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다 헬기를 타고 쏜살같이 등교하는 고교생이 있다. 바로 유러피언 드링크를 비롯해 각종 미디어, 부동산 등을 소유한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루마니아 재벌 이안 미쿨라의 아들 빅터 미쿨라다. 급할 때는 헬기를 이용하지만, 평소 2억짜리 명품 스포츠카 페라리를 몰고 등교할 정도로 거침없이 살며 원하는 바는 뭐든지 돈으로 해결해온 빅터 미쿨라에게 최근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 고등학교 졸업시험이 이뤄지던 당일, 루마니아 서북부 오라데아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페라리를 몰고 의기양양하게 등교한 빅터 미쿨라는 그를 찾아온 취재진에게 “시험 준비를 잘했다. 자신감이 넘친다”는 말을 남기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이후 1시간이 지났을 때, 갑자기 시험장에서 미쿨라가 걸어 나왔다. 굳게 다문 입술과 분노·수치심으로 일그러진 것 같은 눈빛을 보이던 미쿨라는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단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대기하고 있던 벤츠 리무진으로 들어가 버렸다. 의기양양하게 등교하던 1시간 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내막은 곧 밝혀졌다. 이후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시험결과표에 미쿨라는 응시자격을 박탈당한 것으로 나왔는데 이유는 ‘부정행위’였다.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본래 미쿨라는 한번 시험에 떨어진 적이 있어 이번이 그에게 남은 마지막 고교졸업기회였다. 이에 대한 압박이 심했던 것일까? 미쿨라는 부정행위라는 잘못된 방법으로 졸업에 무임승차하려다 이를 영영 놓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미쿨라의 학교 친구 중 한명은 “해당 상황은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으로 알려 준다”고 말했다. 또한 “그렇지만 학교를 졸업 못한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끝난다고 볼 수는 없다. 미쿨라는 아버지를 통해 얼마든지 좋은 직업과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빅터 미쿨라는 평소 기행을 일삼아 루마니아 언론의 주요 표적이 되어왔다. 여자친구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즐기다 과속으로 3개월간 면허정지처분을 받는가 하면, 올해 초에는 “졸업시험 압박이 너무 심해 수도원에서 명상을 하려 한다”며 개인 헬기를 몰고 수도원을 방문해 명상중인 수도사들을 시끄럽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헬기로 등교 ‘재벌2세’, 고교서 쫓겨난 사연

    헬기로 등교 ‘재벌2세’, 고교서 쫓겨난 사연

    헬기를 이용해 등교할 정도로 막대한 부(富)를 자랑하며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하는 재벌2세일지라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 없다. 그것은 바로 정당한 노력으로 힘든 교육과정을 통과하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졸업장’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부정행위로 졸업시험장에서 쫓겨나 고교중퇴자가 될 예정인 루마니아 재벌 2세 빅터 미쿨라(18)의 사연을 5일(현지시간) 소개했다. 다른 이들이 졸린 눈을 비비고 새벽 일찍 일어나 등교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버스를 기다릴 때, 유유히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다 헬기를 타고 쏜살같이 등교하는 고교생이 있다. 바로 유러피언 드링크를 비롯해 각종 미디어, 부동산 등을 소유한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루마니아 재벌 이안 미쿨라의 아들 빅터 미쿨라다. 급할 때는 헬기를 이용하지만, 평소 2억짜리 명품 스포츠카 페라리를 몰고 등교할 정도로 거침없이 살며 원하는 바는 뭐든지 돈으로 해결해온 빅터 미쿨라에게 최근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 고등학교 졸업시험이 이뤄지던 당일, 루마니아 서북부 오라데아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페라리를 몰고 의기양양하게 등교한 빅터 미쿨라는 그를 찾아온 취재진에게 “시험 준비를 잘했다. 자신감이 넘친다”는 말을 남기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이후 1시간이 지났을 때, 갑자기 시험장에서 미쿨라가 걸어 나왔다. 굳게 다문 입술과 분노·수치심으로 일그러진 것 같은 눈빛을 보이던 미쿨라는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단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대기하고 있던 벤츠 리무진으로 들어가 버렸다. 의기양양하게 등교하던 1시간 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내막은 곧 밝혀졌다. 이후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시험결과표에 미쿨라는 응시자격을 박탈당한 것으로 나왔는데 이유는 ‘부정행위’였다.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본래 미쿨라는 한번 시험에 떨어진 적이 있어 이번이 그에게 남은 마지막 고교졸업기회였다. 이에 대한 압박이 심했던 것일까? 미쿨라는 부정행위라는 잘못된 방법으로 졸업에 무임승차하려다 이를 영영 놓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미쿨라의 학교 친구 중 한명은 “해당 상황은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으로 알려 준다”고 말했다. 또한 “그렇지만 학교를 졸업 못한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끝난다고 볼 수는 없다. 미쿨라는 아버지를 통해 얼마든지 좋은 직업과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빅터 미쿨라는 평소 기행을 일삼아 루마니아 언론의 주요 표적이 되어왔다. 여자친구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즐기다 과속으로 3개월간 면허정지처분을 받는가 하면, 올해 초에는 “졸업시험 압박이 너무 심해 수도원에서 명상을 하려 한다”며 개인 헬기를 몰고 수도원을 방문해 명상중인 수도사들을 시끄럽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800년 만에 개학하는 ‘전설의 학교’ 어디?

    800년 만에 개학하는 ‘전설의 학교’ 어디?

    세계 최초, 최대의 종합대학이자 수도원이 800년 만에 다시 학생들을 맞이할 예정이라고 중국 차이나데일리가 2일 보도했다. 인도의 나란다(Naland) 대학은 기원전 5~7세기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종합대학이자 불교대학으로, 미국의 하버드 대학,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보다 훨씬 앞선 1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7세기 인도의 팔라왕조 당시에는 학생수가 1만 명, 교수가 2000명에 달하는 초유의 규모를 자랑했으며, 특히 중국 당나라 시대의 고승이었던 슈엔장(현장,玄裝)이 이곳 사원에서 불교 연구에 힘쓴 곳이어서 중국인에게도 매우 각별하다. 나란다 대학은 철학과 불교 뿐 만 아니라 문학과 수학에도 뛰어난 수준을 자랑해 당대 최고의 대학이자 승려들의 수도원으로 자리매김했다. 1193년 이슬람교도들이 침략해 수도원 곳곳을 파괴했고 6개월 동안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 이후 이곳은 수 백 년 동안 전설로만 존재하는 신비로운 대학으로 기록돼 왔다. 2006년 불교 문화권인 중국과 인도, 싱가포르, 일본, 태국 등지에서 이 학교를 다시 열고자 하는 움직임을 시작했고, 특히 중국은 800년 만에 다시 문을 여는 이 수도원을 위해 100만 달러를 내놓았다. 나란다 대학은 820년 만에 다시 문을 열기로 결정했고, 소식을 들은 40개국의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응시’했다. 이중 15명이 최종 선발 돼 첫 수업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 측은 2020년까지 학생과 과목수를 점차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랑으로 개와 함께 하고픈 당신께

    사랑으로 개와 함께 하고픈 당신께

    뉴스킷 수도원의 강아지들/뉴스킷 수도사들 지음 김윤정 옮김/바다출판사/360쪽/1만 3800원 개와 소통하며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저자들은 미국 뉴욕주 북쪽의 조용한 전원에 자리 잡은 프란치스코회 소속 수도원의 수도사들이다. 지난 40년간 자급자족의 방편으로 저먼 셰퍼드 종을 키우고 분양해 왔으며, 개의 종류에 상관없이 적용할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책은 저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앉아! 일어서!”식의 단순 명령어를 가르치는 초보 수준의 반려견 교육을 넘어선 ‘이해와 교감을 중시’하는 양육법에 대해 알려준다. 책에 따르면 개도 사람처럼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어릴 때 사회에서 고립되어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아이가 커서도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개들 또한 적기에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람들이나 다른 개들과 함께 지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음은 강아지를 입양할 때 참고할 만한, 이 책이 제시하는 핵심 지침들이다. 생후 6주 이전의 강아지를 입양해선 안 된다. 형제 강아지 및 어미개와의 상호작용과 관계형성이 이뤄지는 등 개들 간의 사회적 행동양식이 구축될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강아지를 입양하느냐의 문제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애견숍보다는 사육사나 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책은 제안한다. 좋은 사육사라면 강아지를 어떻게 양육했고, 중요한 시기에 어떻게 사회성을 길렀는지 충분히 설명해 주고, 부모견을 소개해 줘 입양자가 강아지의 잠재적 성향을 가늠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하는 것은 버려진 강아지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주는 것으로 인도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제언도 덧붙인다. 수도사들이 강아지를 키우며 보여주는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를 통해 개 양육법의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세월호, 고통·상처 모두 꺼내 놓아야 치유될 수 있고 희망으로 발전 가능”

    “세월호, 고통·상처 모두 꺼내 놓아야 치유될 수 있고 희망으로 발전 가능”

    “사람들은 행복을 단번에 움켜쥐려 하지만 행복은 절대 그렇게 찾을 수 없어요. 모든 감각을 집중해 순간순간 치열하게 살고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사제들을 치유하는 가톨릭 영성가로 유명한 독일 성 베네딕트회 안젤름 그륀(69) 신부. 지난 2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신부는 “행복해지려면 소유하려 들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칸 사상연구소 주최로 열린 영성학술발표회 강연차 한국에 온 그륀 신부는 독일 뮌스터슈바르자크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 주로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사제들에게 영적 상담과 지도를 하는 독특한 사제. 영적 심리학 기법을 써서 사제들을 정신적으로 편안하게 이끄는 일을 하고 있다. “성소(聖召·하느님의 부르심)의 위기를 맞은 신부가 많아요. 위기에 빠진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제점을 찾을 수 있어요. 창조적인 일을 하게 하거나 그룹 심리치료, 스포츠 활동을 통해 해결해 나가기도 하지요.” 영성 심리학은 고통과 상처를 하느님 앞에 모두 꺼내 놓고 치유와 변화로 이끄는 치료 기법이라는 그륀 신부. 지금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세월호 참사도 그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들여다볼 때 치유될 수 있고 희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슬픔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는 의미에 공동체가 함께 느끼는 고통을 통해 연대 의식을 가진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요. 국민들은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 권리가 있는 만큼 정부에 대해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도록 압박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부는 그러면서 “국민들은 정부가 고통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점에 대해 분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학박사이면서 경영학을 공부한 신부는 평신도와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각국을 다니며 영성 강좌를 하고 저술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국내에 번역돼 출간된 책도 80권이 넘는다. 상처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고통과 상처의 치유는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에 달린 것”이라고 말한다. “개개인이 가진 모습에 따라 하느님의 모습도 달라져요. 자신이 병적인 상(像)을 갖고 있으면 하느님도 그런 모습이 됩니다. 자신의 가장 밑바닥 모습과 맞닥뜨릴 준비가 돼 있어야 비로소 치유가 가능한 것이지요.” 5년 전 왔을 때와 비교해 보면 한국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정부에 항의하는 미사와 집회가 눈에 띄어요. 젊은이들이 스펙 쌓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물질과 돈을 향해 내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신부는 영적인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져 달라고 주문했다. “고통을 당한 순간엔 당연히 행복할 수 없죠. 하지만 회피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여 그 고통 위에서 희망을 갖도록 노력하면서 이겨 나가야 합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돈 독’에 빠진 소림사… “대기업이라 불러다오”

    ‘돈 독’에 빠진 소림사… “대기업이라 불러다오”

    중국 쿵푸(쿵푸)문화의 본거지이자 중국 ‘문화 경제’를 이끄는 큰 축으로 평가받는 소림사가 자본주의에 물들었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소림사 방장 승려인 스융신(49)은 소림사 승려 중 최초로 경영학 석사(MBA)출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 바 있다. 중국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소림사는 거대 자본이 움직이고 명확한 직책이 있는 여럿 CEO까지 둔 대기업이라는 평가에 대해 소림사 측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1500년의 역사를 가진 소림사는 2000년대 들어 다양한 무술 공연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서점까지 ‘점령’하며 문화를 판매하는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중국의 페이스북이라 불리는 ‘시나 웨이보’를 개설, 은막에 가려져 있던 역사에서 탈피해 소통을 시작했고, 현재 팔로워는 15만 명에 이른다. 지난 3월에는 스융신 대표가 구글과 애플 등 거대 IT기업의 본고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소림사의 새로운 행보를 시도하기도 했다. 외국인, 특히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무술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소림사의 상업화에 큰 몫을 한다. 지난 10년간 소림사 내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됐으며 소림사 내에는 외국인 전용 부서가 따로 존재해 ‘관리’를 쉬지 않는다.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무려 800명의 외국인이 소림사에서 기거하며 훈련을 받았다. 소림사가 학교 재단까지 설립해 ‘쿵푸 팔이’에 나선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 소림사 인근에 있는 타고우 무술학교에는 중국의 10대 소년 3만 2000여명이 수련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외국인들을 위한 강좌도 개설해 매년 200명이 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이들의 한 해 수업료는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소림사 승려들도 싫지 않은 눈치다. 1981년, 16살의 나이로 소림사에 들어와 현재 승무원장을 맡고 있는 한 승려는 “당시 이곳(소림사)는 황폐 그 자체였다. 먹을 것조차 충분하지 않았다”면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소림사 절의 건축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관광객을 받고 수도원장이 되어 일반인을 상대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소림사에서 승려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스옌보(25) 역시 “소림사가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소림사는 세계와 함께 발전하고 세계와 함께 존재한다. 우리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관광객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융신 소림사 대표는 최근 한국의 태권도와 태국의 킥복싱, 중국의 쿵푸 등 다양한 무술의 일대일 대련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세계무림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소림사 내에서 다양한 무술 관련 행사가 개최돼 왔지만 이벤트 색채가 짙은 무술대회 개최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정부 역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문화 정책’의 가장 큰 축으로 ‘공자’와 더불어 ‘쿵푸’를 꼽고 있는 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상황이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참된 도를 수련하고 가난하고 억울한 인민들을 도와야 할 소림사와 승려가 돈벌이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 소림사는 지난 달 소림 무술을 소재로 한 모바일 게임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는 등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 사진=중국 차이나데일리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페루 관광지 구석구석, 하나투어와 함께하면 더 즐겁다

    페루 관광지 구석구석, 하나투어와 함께하면 더 즐겁다

    이렇게까지 페루여행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적은 드물었다. 최근 tvN ‘꽃보다 청춘-페루’편이 방송되면서 페루라는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에게 페루는 마추픽추의 나라, 태양의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었지만 꽃보다 청춘을 통해 아름다운 관광지가 알려지면서 발 빠른 여행가들은 이미 페루 여행 후기를 속속 작성하고 있다. 이에 맞춰 여러 여행사들도 페루 여행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하나투어의 페루 지역 관련 상품은 여행객들을 위해 여러 유명한 지역이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인기 패키지 상품을 구비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페루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마추픽추, 잉카문명 등이 대부분이지만 이외에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관광지들이 많다. 특히 방송 2회분에 방영된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 이카에 위치한 와카치나 사막의 버기카와 샌드보드 체험은 젊은 층들에게 모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주인의 메시지 같은 나스카의 미스터리한 지상그림과 안데스 산맥의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산악 염전 살리네라스, 미스터리 서클과 같은 거대한 농경지 모라이는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트이게 한다. 세상의 중심지였던 황금의 도시 쿠스코, 말이 필요 없는 마추픽추까지 페루의 보석 같은 도시들은 각각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트립어드바이저(Trip Advisor)가 뽑은 페루의 10대 여행지도 각광을 받고 있다. 1위를 차지한 마추픽추와 함께 쿠스코에 위치한 잉카 시대의 신전 겸 요새인 삭사이와만과 쵸퀘키라오가 그 뒤를 이었다. 또한 아레키파에 위치한 성 캐서린 수도원과 ‘살아있는 잉카 마을’이라 불리는 오얀따이땀보가 나란히 4,5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 피삭의 고대 관개 시스템 및 관측소 등이 그 뒤를 이어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신비롭고 호기심이 가득한 페루를 여행하려면 무엇보다도 정보가 중요하다. 페루까지의 비행시간은 환승시간을 제외하고 20시간 정도로, 과거 40시간 이상 걸리던 것에 비해 소요시간이 많이 단축됐다. 보통 페루는 미국을 경유해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는 미국 관광비자나 ESTA를 신청해야 한다. 페루는 무비자로 90일까지 여행이 가능하며 인접국인 볼리비아는 국내나 페루에서 비자 발급 후 입국할 수 있다. 시차는 -14시간 정도이며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고 스페인어만 사용한다. 물가는 국내에 비해 저렴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페루화폐 1sol은 한화로 약 400원정도로, 생수 한 병이 2.58sol이다. 환전은 원화를 sol로 환전하는 것보다 달러로 환전 후 페루 환전소에서 sol로 환전하는 것이 유리하다. 국내에 페루화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 방법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여행 시 지역의 기온 차를 염두에 둬야 한다. 페루는 사계절의 옷이 모두 있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지역마다 기온의 차이가 크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의 경우 낮에는 더운 반면 밤에는 쌀쌀한 편이다. 고산지대인 쿠스코의 경우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다양하게 준비하는 편이 좋다. 페루 여행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마추픽추와 쿠스코에서의 고산증이다. 마추픽추는 해발 2400m 높이, 쿠스코는 표고 3,457m에 달한다. 서울이 45m, 우리나라 최고 높이인 한라산이 1950m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산증도 무리가 아니다. 고산증은 낮은 지대에서 고지대로 이동했을 때 산소결핍과 두통, 구토감, 피로감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갑작스럽게 고지대로 이동하는 것을 자제하고 술과 담배는 멀리해야 한다. 고산증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코카차나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보다 편안하게 페루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페루여행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나투어의 경우 4성 이상 특급호텔 숙박, 전 일정 한국인 가이드가 동행하는 패키지 상품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나투어에서는 페루 여행을 준비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페루의 신비로운 자연 경관을 보다 알차게 관람할 수 있도록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마련하고 있다. 하나투어 페루 여행 상품을 이용하면 신비로운 여행지를 구석구석 여행 할 수 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페루의 관광 명소가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면서 “이러한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하나투어에서는 다양한 맞춤형 패키지를 준비함으로써 보다 만족스러운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남미 페루지역 관련하여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bit.ly/1tBimri)와 하나투어(1577-1233)에 문의하면 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여덟번 차 세워 신자 악수·아기에 입맞춤… 축복의 스킨십

    여덟번 차 세워 신자 악수·아기에 입맞춤… 축복의 스킨십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한국에서 처음 일반 대중과 함께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5만여명의 가톨릭 신자가 모인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성대하게 진행됐다. 교황이 직접 집전한 이날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새벽 4시부터 경기장에 모여드는 등 대전월드컵경기장은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종교적 열기로 달아올랐다. 버스에서 내린 신자들은 기대에 찬 모습으로 게이트를 통해 경기장 안으로 속속 들어갔다. 경기장 곳곳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당신과 함께합니다’, ‘교황님 사랑합니다’, ‘모두가 이웃입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전북 고창에서 왔다는 한 신자는 “세월호 참사와 군부대 사고로 어수선한 가운데 교황님이 오셔서 분위기가 전환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초등학생은 “친할아버지처럼 친근한 교황님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밤잠을 설쳤다”면서 “교황 할아버지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형과 누나들의 아픔을 달래줬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오전 10시 10분쯤 경기장 인근에 도착한 교황은 무개차로 갈아탄 뒤 경기장 밖에서 새벽부터 기다리던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경기장 밖에서 7분간 카퍼레이드를 한 교황은 여섯 번이나 차를 세우며 신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교황의 오픈카는 현대차 흰색 싼타페를 개조한 것이다. 오픈카 싼타페는 지붕을 걷어내고 뒷좌석을 높인 뒤 주위를 유리창으로 둘러싸 교황의 모습을 보기 쉽도록 개조했다. 천주교 신자인 가수 인순이와 소프라노 조수미의 식전공연을 감상하며 경기장 안에서 기쁨과 설렘으로 교황을 기다리던 신자들은 오전 10시 20분쯤 교황이 행사장에 나타나자 ‘와~’ 하는 감탄사와 함께 ‘비바 파파’(교황 만세)를 외치며 환영했다. 사회자의 제안에 따라 신자들은 파도타기를 하기도 했다. 수많은 신자들은 교황의 얼굴과 ‘당신과 함께 예수님을 따른다’는 글이 새겨진 흰 손수건을 흔들었다. 교황의 모습을 찍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든 신자들도 많았다. 교황은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면서 아기의 이마에 입맞춤하며 아이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보여 줬다. 인사를 마치고 차에서 내린 교황은 미사 직전에 10여분간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가족들을 비공개로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세월호 유족들은 이번 미사에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위로해 달라는 뜻을 전했고 교황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황은 미사 말미에 진행된 삼종기도를 통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면서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달라”고 기도했다. 대전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용어 클릭] ■성모승천대축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집전한 성모승천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가 지상에서의 생활을 마친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불려 올라갔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모마리아 대축일, 예수 부활 대축일, 예수성탄대축일과 함께 가톨릭 교회의 4대 의무 축일이다. 성모승천은 성서에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초대교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라 받아들여졌다. ■삼종기도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태를 알린 사건(성모영보)을 기념해 바치는 가톨릭 교회의 기도다. ‘삼종’은 종을 세 번 친다는 뜻으로, 성당과 수도원 등에서 오전 6시와 낮 12시, 오후 6시에 종을 칠 때마다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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