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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키에 가면 여기는 꼭 가봐라

    터키에 가면 여기는 꼭 가봐라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등 터키에서 꼭 가봐야할 명소 12곳이 선정됐다.  전세계 97개국의 여행정보를 제공하는 캐나다의 온라인 여행정보사이트 플래닛웨어가 터키의 매력적인 관광지 12곳을 선정, 발표했다. 플래닛웨어는 1999년부터 관광명소 POI 지수(Points Of Interest)를 바탕으로 각 국의 매력적인 명소를 선정하고 있으며, 여행 가이드 팁도 제공하고 있다.  이번에 선정된 터키의 매력적인 관광명소는 아야소피아, 에페수스, 카파도키아, 톱카프궁전, 파묵칼레, 수멜라 수도원, 넴룻 산, 아니, 아스펜도스, 지중해 요트 크루징, 페르가몬, 욀루데니즈 등이다.  터키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약 255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터키를 찾았고, 이 가운데 외국인 방문자가 가장 많은 곳은 안탈랴로 약 188만명이 방문해 36%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스탄불(133만명)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서 이스탄불까지는 비행기로 12시간이 소요되며, 터키항공(주 11회), 대한항공(주 5회), 아시아나 항공(주 5회) 등이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수도원에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안젤름 그륀·요헨 차이츠 지음,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독일 뮌스터슈바르자크 수도원의 재정담당 신부와 스포츠 브랜드 푸마의 최고 경영자 요헨 차이츠의 대담집. 안젤름 그륀 신부는 20여개의 사업장에 300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중소기업이기도 한 베네딕도 수도원의 재정을 30년 넘게 책임지고 있는 인물. 요헨 차이츠는 서른 살의 나이에 망해가는 기업 푸마의 회장에 취임한 뒤 거대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시킨 주인공. 두 사람이 성공과 책임, 경제와 복지, 문화와 가치, 돈과 양심에 대한 의견을 솔직하게 주고받았다. 임시 수도자로서 잠시 수도원에 머물렀던 차이츠 회장은 수도원의 조화로운 생활 방식이 경영에 적용되면 사람, 자연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미래의 경영 모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륀 신부는 거대 기업을 찾아가 그들의 회의 방식과 치밀한 목표 설정, 운영 지침 등을 둘러본 뒤 수도원의 부족한 전문적 경영 기법을 보충했다. 296쪽. 1만 5000원.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이기화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한국 지진학 박사 1호’인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진의 비밀을 알기 쉽게 설명한 교양서.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부터 시작해 지진파, 지진 현상, 지진 재해 등 지진학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풀었다. 저자는 1978년 홍성 지진 발생 직전 서울대에 부임해 지진파 분석으로 한반도 지각 구조를 사상 처음 밝혀낸 주인공. 한반도 지각구조 형성의 지질학적 역사를 분석해 주목받았다. 책은 지진학의 역사와 기본 원리, 한반도의 지진 문제 등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이야기 식으로 풀어내고 특강 형식의 코너를 만들어 지진학의 핵심 원리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특히 핵실험을 통해 인공지진을 유발함으로써 지진 예지 기술을 연구한 미국과 소련, 다양한 동물 본능까지 지진 예지에 응용한 중국, 19세기 근대화 초기부터 치밀하게 연구를 축적해 온 일본 등 성공과 좌절을 거듭했던 지진 예지의 다양한 역사가 흥미롭다. 320쪽. 1만 7500원. 함께 읽는 성서(송주성 지음, 우물이 있는 집 펴냄) ‘종교를 그대로 둔 채 부패한 윤리 체계, 국가 및 법률 체제를 바꾸는 것은 미친 짓이다.’ 시인 겸 독립문학자가 ‘현대 인문 지성’으로 꼽히는 인물들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주장을 알기 쉽게 재구성, 서술했다. 철학자 니체·헤겔·하이데거·키르케고르,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프로이트·발터 벤야민,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타 지식인이라는 슬라보이 지제크, 알랭 바디우, 르네 지라르, 카를 슈미트 등이 망라됐다. 이들을 도마에 올려 권력화, 보수화된 기독교 성서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신랄하게 던지고 있다. 신의 정의, 신과 인간의 관계, 신과 타자, 사랑과 용서, 죄와 벌, 구원의 시간과 현재, 욕망과 죄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이해 등 신학적 주요 주제들을 인문학적 차원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게 특징. 특히 성서 속에서 유대교의 패러다임과 예수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길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560쪽. 2만 2000원. 왜 눈떠야 할까(김신일·민영진·이만열 외 지음, 신앙과지성사 펴냄) ‘급변하는 현대 세계의 문화적 충돌과 다양성 속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문화를 창출할 길은 무엇일까.’ 기독교계에서 독창적인 시각과 신선한 글쓰기로 소문난 인물 16명이 세상과 진리에 대해 애정어린 성찰의 길을 제시했다. 환경, 사회, 교육, 여성, 복지, 국제관계, 영성, 성서, 역사, 신학, 인문학, 종교, 삶과 죽음 등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진정어린 충고를 담았다. 공통의 주장은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믿어 제대로 통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진리에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진정한 자유의 길은 배타나 독선, 구별됨이 아닌 관용과 공감, 환대의 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우상과 맹신,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물고 ‘지금 여기’에서 진리에 눈떠야 한다며 바른 믿음 생활의 길을 공통적으로 제시한다. 335쪽. 1만 5000원.
  • 한가위 연휴 읽을 만한 책 4권

    한가위 연휴 읽을 만한 책 4권

    ● 수도원에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안젤름 그륀·요헨 차이츠 지음, 윤선아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독일 뮌스터슈바르자크 수도원의 재정담당 신부와 스포츠 브랜드 푸마의 최고 경영자 요헨 차이츠의 대담집. 안젤름 그륀 신부는 20여개의 사업장에 300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중소기업이기도 한 베네딕도 수도원의 재정을 30년 넘게 책임지고 있는 인물. 요헨 차이츠는 서른 살의 나이에 망해가는 기업 푸마의 회장에 취임한 뒤 거대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시킨 주인공. 두 사람이 성공과 책임, 경제와 복지, 문화와 가치, 돈과 양심에 대한 의견을 솔직하게 주고받았다. 임시 수도자로서 잠시 수도원에 머물렀던 차이츠 회장은 수도원의 조화로운 생활 방식이 경영에 적용되면 사람, 자연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미래의 경영 모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륀 신부는 거대 기업을 찾아가 그들의 회의 방식과 치밀한 목표 설정, 운영 지침 등을 둘러본 뒤 수도원의 부족한 전문적 경영 기법을 보충했다. 296쪽. 1만 5000원.   ●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이기화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한국 지진학 박사 1호’인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진의 비밀을 알기 쉽게 설명한 교양서.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부터 시작해 지진파, 지진 현상, 지진 재해 등 지진학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풀었다. 저자는 1978년 홍성 지진 발생 직전 서울대에 부임해 지진파 분석으로 한반도 지각 구조를 사상 처음 밝혀낸 주인공. 한반도 지각구조 형성의 지질학적 역사를 분석해 주목받았다. 책은 지진학의 역사와 기본 원리, 한반도의 지진 문제 등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이야기 식으로 풀어내고 특강 형식의 코너를 만들어 지진학의 핵심 원리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특히 핵실험을 통해 인공지진을 유발함으로써 지진 예지 기술을 연구한 미국과 소련, 다양한 동물 본능까지 지진 예지에 응용한 중국, 19세기 근대화 초기부터 치밀하게 연구를 축적해 온 일본 등 성공과 좌절을 거듭했던 지진 예지의 다양한 역사가 흥미롭다. 320쪽. 1만 7500원.   ● 함께 읽는 성서(송주성 지음, 우물이 있는 집 펴냄) ‘종교를 그대로 둔 채 부패한 윤리 체계, 국가 및 법률 체제를 바꾸는 것은 미친 짓이다.’ 시인 겸 독립문학자가 ‘현대 인문 지성’으로 꼽히는 인물들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주장을 알기 쉽게 재구성, 서술했다. 철학자 니체·헤겔·하이데거·키르케고르,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프로이트·발터 벤야민,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타 지식인이라는 슬라보이 지제크, 알랭 바디우, 르네 지라르, 카를 슈미트 등이 망라됐다. 이들을 도마에 올려 권력화, 보수화된 기독교 성서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신랄하게 던지고 있다. 신의 정의, 신과 인간의 관계, 신과 타자, 사랑과 용서, 죄와 벌, 구원의 시간과 현재, 욕망과 죄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이해 등 신학적 주요 주제들을 인문학적 차원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게 특징. 특히 성서 속에서 유대교의 패러다임과 예수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길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560쪽. 2만 2000원.   ● 왜 눈떠야 할까(김신일·민영진·이만열 외 지음, 신앙과지성사 펴냄) ‘급변하는 현대 세계의 문화적 충돌과 다양성 속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문화를 창출할 길은 무엇일까.’ 기독교계에서 독창적인 시각과 신선한 글쓰기로 소문난 인물 16명이 세상과 진리에 대해 애정어린 성찰의 길을 제시했다. 환경, 사회, 교육, 여성, 복지, 국제관계, 영성, 성서, 역사, 신학, 인문학, 종교, 삶과 죽음 등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진정어린 충고를 담았다. 공통의 주장은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믿어 제대로 통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진리에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진정한 자유의 길은 배타나 독선, 구별됨이 아닌 관용과 공감, 환대의 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우상과 맹신,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물고 ‘지금 여기’에서 진리에 눈떠야 한다며 바른 믿음 생활의 길을 공통적으로 제시한다. 335쪽. 1만 5000원.
  • 미라가 된 레닌·도굴당한 하이든 ‘시신을 향한 탐욕’

    미라가 된 레닌·도굴당한 하이든 ‘시신을 향한 탐욕’

    무덤의 수난사/베스 러브조이/장호연 옮김/뮤진트리/392쪽/1만 8000원 유명인들의 시신은 예로부터 수난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손가락, 치아, 발가락, 팔, 다리, 두개골, 심장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중세 시대에 성인의 유물은 순례자들의 발길을 끌었고, 19세기에는 골상학의 등장으로 유럽 전역에서 두개골 절도가 기승을 부렸다. 사람들이 시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신을 소유하고 만지고 보고 전시함으로써 유명 인사와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책은 모차르트에서 히틀러까지 역사적 인물들이 죽고 나서야 겪어야 했던 기상천외하고 오싹한 모험을 그들의 삶과 연결해 살펴본다. 하이든의 두개골은 그의 음악적 능력을 골상학으로 분석해 보겠다는 무리에서 도굴당한 후 100년이 넘도록 제 몸을 만나지 못했다. 세기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시신은 본인의 뜻에 따라 화장됐지만 천재의 뇌는 연구를 빌미로 부검의에게 강탈당했고 수십년간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유명 정치인이야말로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살아 있는 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했기 때문이다. 혁명가이자 정치가였던 레닌은 죽은 후 소박하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 곁에 묻히길 원했지만 스탈린은 그의 시신을 영원히 썩지 않는 미라로 만들어 공산당의 선전물로 모스크바 광장에서 전시했다. 무솔리니의 시신은 반파시스트들의 공격을 피해 수도원의 벽장에 11년간이나 숨겨둬야 했고 체 게바라의 유해가 묻힌 장소는 수십년 동안 비밀이었다. 저자는 “유명한 위인들의 삶과 죽음을 살펴보고 그들의 시신이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죽음을 터부나 삶의 대척점이 아닌 삶의 일부분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아인슈타인의 뇌가 강탈당해 떠돌아다닌 이유는?… ‘무덤의 수난사’

    아인슈타인의 뇌가 강탈당해 떠돌아다닌 이유는?… ‘무덤의 수난사’

    ●무덤의 수난사 베스 러브조이/장호연 옮김/뮤진트리/392쪽/1만 8000원. 유명인들의 시신은 예로부터 수난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손가락, 치아, 발가락, 팔, 다리, 두개골, 심장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중세 시대에 성인의 유물은 순례자들의 발길을 끌었고, 19세기에는 골상학의 등장으로 유럽 전역에서 두개골 절도가 기승을 부렸다. 사람들이 시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신을 소유하고 만지고 보고 전시함으로써 유명 인사와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책은 모차르트에서 히틀러까지 역사적 인물들이 죽고 나서야 겪어야 했던 기상천외하고 오싹한 모험을 그들의 삶과 연결해 살펴본다. 하이든의 두개골은 그의 음악적 능력을 골상학으로 분석해 보겠다는 무리에서 도굴당한 후 100년이 넘도록 제 몸을 만나지 못했다. 세기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시신은 본인의 뜻에 따라 화장됐지만 천재의 뇌는 연구를 빌미로 부검의에게 강탈당했고 수십년간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유명 정치인이야말로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살아 있는 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했기 때문이다. 혁명가이자 정치가였던 레닌은 죽은 후 소박하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 곁에 묻히길 원했지만 스탈린은 그의 시신을 영원히 썩지 않는 미라로 만들어 공산당의 선전물로 모스크바 광장에서 전시했다. 무솔리니의 시신은 반파시스트들의 공격을 피해 수도원의 벽장에 11년간이나 숨겨둬야 했고 체 게바라의 유해가 묻힌 장소는 수십년 동안 비밀이었다. 저자는 “유명한 위인들의 삶과 죽음을 살펴보고 그들의 시신이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죽음을 터부나 삶의 대척점이 아닌 삶의 일부분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빙하는 흐른다…발길을 홀린다

    빙하는 흐른다…발길을 홀린다

    스위스가 새 여행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스위스 그랜드 투어’다. 스위스 전역을 연결하는 이 루트는 무려 1600여㎞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숨 막히도록 빼어난 자연과 옛사람들이 척박한 땅에 일궈 놓은 삶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그 가운데 비교적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던 스위스 남녘 곳곳을 훑었다.스위스는 철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다. 어지간한 곳까지 마을버스처럼 기차가 들어간다. 여행지가 어느 산골에 있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한데 풍경은 ‘타이밍의 예술’일 때가 많다. 계절적으로도 그렇고 하루 중에도 그렇다. 반드시 아침이나 저녁에 가야 하는 곳이 있다. 하지만 기차로는 원하는 곳에 제 시간에 닿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미리 가 있어야 하는데, 여러 곳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 여행자로서는 불만일 수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른 게 자동차와 오토바이다. 스위스의 매력은 도시보다 바깥에 있다. 푸른 초원, 수정 같은 호수,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험산을 찾아 구불구불 알프스의 고갯길을 달려야 제맛이다. 그랜드 투어의 핵심이 여기 있다. 핸들 잡은 운전자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라는 것이다. 스위스정부관광청이 올해와 내년을 ‘그랜드 투어의 해’로 정한 것도 이런 이유다. 스위스 그랜드 투어의 총길이는 1643㎞다. 길을 새로 낸 건 아니고 여행자의 일정에 맞도록 스위스관광청에서 동선을 최적화했다. 이 길을 달리면 문화가 전혀 다른 4개 언어권을 지난다. 길 주변에는 44개의 명소가 있고 11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있다. 물론 안전 운전은 필수다. 그림 같은 절경을 보느라 ‘전방 주시 태만’해서는 곤란하니 말이다. 부디 운전대 꽉 잡으시라. 이번 여정에선 로잔을 들머리 삼았다. 취리히에서 곧장 남쪽으로 내달아 오른쪽으로 도는 코스를 돌아 보기로 했다. 이 길의 핵심은 태고의 정적이 흐르는 빙하 따라 걷기와 자연에 깃든 선인들의 체온을 느끼며 걷는 포도밭 하이킹이다. 빙하는 우리나라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자연환경이다. 알레치 빙하를 여정의 가장 앞줄에 세우려는 건 그런 까닭이다. 알레치 빙하의 제원을 먼저 살피자. 길이 22㎞로 유럽에서 가장 길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돼 있다. 6만 년 전쯤 생성된 지형이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빙하 아래 가장 깊은 곳은 무려 900m에 달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빙하 트레킹을 즐기다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라도 만나면 어찌 될까. 모골이 송연해진다. 실제로 빙하는 매우 위험한 자연이다. 전망대에서 편하게 감상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알레치 빙하의 무게는 270억t에 달한다고 한다. 이 빙하가 다 녹을 경우 전 세계 인구가 6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의 물이 된다.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변화로 빙하의 양은 지금도 꾸준히 줄고 있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진행된 대기오염은 약 30년 뒤부터 빙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한다. 대기오염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2100년쯤 알레치 빙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빙하를 따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도록 등산로가 조성돼 있다. 빙하 위를 걷는 건 아니고 산정에서 빙하를 따라 내려가는, 이른바 다운 힐을 즐기기 맞춤한 코스다. 길도 험하지 않다. 등산화만 갖춰 신는다면 복장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길은 수월해도 둘러친 풍경은 정말 대단하다. 아름답다거나 빼어나다는 수사보다 장엄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들머리는 베트머알프 마을이다.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고봉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다. 맹장 아래 약졸 없다던가. 마을의 높이도 만만치 않다. 해발 1950m다. 지리산 천왕봉(1915m)보다 높다. 걸어 오르기는 일정상 어렵고, 아래쪽 베텐 기차역에서 케이블카로 올라야 한다. 알레치 빙하를 굽어볼 수 있는 베트머호른 전망대까지 가려면 다시 리프트를 타야 한다. 등산로는 베트머호른 전망대 옆에서 시작된다. 거대한 빙하의 강을 오른쪽에 두고 비탈길을 내려간다. 부분적으로 암릉 구간이 있긴 하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다. 볕은 따스하게 몸을 감싸고, 알프스의 맑은 산소 알갱이는 피부를 간질인다. 눈앞에는 엽서에서나 보던 알프스가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짹짹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천적이 나타났을 때 마멋이 내는 일종의 경계음이다. 마멋은 베트머알프 일대에 서식하는 설치류다. 겨울 동면을 앞두고 부지런히 먹어 둬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사람의 발걸음이 꽤 신경 쓰이는 거다. 베트머알프 마을까지는 3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 그랜드 투어에선 모두 5개의 이름난 패스(고갯길)를 지난다. 그 가운데 험하고 멀기로 수위를 다투는 고갯길이 푸르카 패스다. 안내판에 적힌 사전적인 설명은 ‘글레치 마을과 안데르마트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다. 한데 굳이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찾을 필요는 없다. 푸르카 패스에 가는 것만으로도 운전의 맛과 보는 맛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푸르카 패스는 해발 2429m를 지나는 산악 도로다. 그랜드 투어 일정 중 가장 고도가 높다. 영화 007 시리즈 ‘골드핑거’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형상의 산악 도로를 따라 추격 장면을 찍었다. 발 밑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이런 길이 10㎞ 정도 이어진다. 오르는 내내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차를 세우고 굽어보면 일망무제의 풍경에 또 한번 머리가 아득해진다. 현지 가이드는 푸르카 패스가 기원전부터 있었던 길이라고 했다. 험하고 돌투성이였던 길을 다듬어 1867년 첫 마차가 지나갔고, 1921년엔 차가 처음으로 이 길을 지났다고 한다. 산장 호텔 벨베데르는 쉬어 갈 겸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호텔 주변 도로에 서면 마터호른 등 알프스의 영봉들을 굴비 꿰듯 죄다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푸르카 패스 맞은편은 그림젤 패스(2100m)다. 이 길도 만만찮게 험악하다. 푸르카 패스가 동서를 잇는다면 그림젤 패스는 남북을 연결한다. 길은 여름 시즌에만 운영된다. 우리처럼 ‘제설 작업’ 하며 오르내리는 수준의 길이 아니다. 고개 아래 글레치 마을은 푸르카 패스와 그림젤 패스가 교차하는 작은 산간 마을이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앞으로 론 빙하가 흘렀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와 반비례해 커진 것도 있다. 호수다. 론 빙하가 있던 산자락은 호수가 장악했다. 보기엔 예쁠지 몰라도 호수는 사실 ‘빙하의 눈물’이나 다름없다. 스위스 남부 곳곳을 적시며 흐르는 론 강도 여기서 발원한다. 작은 산간 마을인데도 어김없이 트레일은 조성돼 있다. 정말 ‘하이킹의 천국’답다. 이제 막 강으로서의 일생을 시작하는 우윳빛 론 강을 따라 자박자박 걷는 맛이 각별하다. 한적한 시골 마을 생모리스엔 마을 이름과 같은 수도원이 있다. 1500년 전에 세워진 건물로 추앙받는 선교자들을 위한 장소다. 중세 금세공업자들이 만든 걸작 성물 예술품 등 기독교의 보물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원 정문엔 김대건 신부 등 한국의 순교자 이름도 한글로 적혀 있다. 수도원 중앙의 분수대는 주변 산에서 흘러 오는 맑은 물인 데다 성수로도 알려져 있으니 한 모금 마시고 나오는 것도 좋겠다. 니더발트는 작은 산간 마을이다. 샬레(오두막집) 스타일의 집들이 여태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리츠 계열 호텔의 설립자인 세자르 리츠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글 사진 로잔·시에르(스위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빙하는 흐른다… 발길을 홀린다

    빙하는 흐른다… 발길을 홀린다

    스위스가 새 여행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스위스 그랜드 투어’다. 스위스 전역을 연결하는 이 루트는 무려 1600여㎞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숨 막히도록 빼어난 자연과 옛사람들이 척박한 땅에 일궈 놓은 삶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그 가운데 비교적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던 스위스 남녘 곳곳을 훑었다. 스위스는 철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다. 어지간한 곳까지 마을버스처럼 기차가 들어간다. 여행지가 어느 산골에 있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한데 풍경은 ‘타이밍의 예술’일 때가 많다. 계절적으로도 그렇고 하루 중에도 그렇다. 반드시 아침이나 저녁에 가야 하는 곳이 있다. 하지만 기차로는 원하는 곳에 제 시간에 닿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미리 가 있어야 하는데, 여러 곳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 여행자로서는 불만일 수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른 게 자동차와 오토바이다. 스위스의 매력은 도시보다 바깥에 있다. 푸른 초원, 수정 같은 호수,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험산을 찾아 구불구불 알프스의 고갯길을 달려야 제맛이다. 그랜드 투어의 핵심이 여기 있다. 핸들 잡은 운전자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라는 것이다. 스위스정부관광청이 올해와 내년을 ‘그랜드 투어의 해’로 정한 것도 이런 이유다. 스위스 그랜드 투어의 총길이는 1643㎞다. 길을 새로 낸 건 아니고 여행자의 일정에 맞도록 스위스관광청에서 동선을 최적화했다. 이 길을 달리면 문화가 전혀 다른 4개 언어권을 지난다. 길 주변에는 44개의 명소가 있고 11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있다. 물론 안전 운전은 필수다. 그림 같은 절경을 보느라 ‘전방 주시 태만’해서는 곤란하니 말이다. 부디 운전대 꽉 잡으시라. 이번 여정에선 로잔을 들머리 삼았다. 취리히에서 곧장 남쪽으로 내달아 오른쪽으로 도는 코스를 돌아 보기로 했다. 이 길의 핵심은 태고의 정적이 흐르는 빙하 따라 걷기와 자연에 깃든 선인들의 체온을 느끼며 걷는 포도밭 하이킹이다. 빙하는 우리나라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자연환경이다. 알레치 빙하를 여정의 가장 앞줄에 세우려는 건 그런 까닭이다. 알레치 빙하의 제원을 먼저 살피자. 길이 22㎞로 유럽에서 가장 길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돼 있다. 6만 년 전쯤 생성된 지형이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빙하 아래 가장 깊은 곳은 무려 900m에 달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빙하 트레킹을 즐기다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라도 만나면 어찌 될까. 모골이 송연해진다. 실제로 빙하는 매우 위험한 자연이다. 전망대에서 편하게 감상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알레치 빙하의 무게는 270억t에 달한다고 한다. 이 빙하가 다 녹을 경우 전 세계 인구가 6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의 물이 된다.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변화로 빙하의 양은 지금도 꾸준히 줄고 있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진행된 대기오염은 약 30년 뒤부터 빙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한다. 대기오염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2100년쯤 알레치 빙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빙하를 따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도록 등산로가 조성돼 있다. 빙하 위를 걷는 건 아니고 산정에서 빙하를 따라 내려가는, 이른바 다운 힐을 즐기기 맞춤한 코스다. 길도 험하지 않다. 등산화만 갖춰 신는다면 복장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길은 수월해도 둘러친 풍경은 정말 대단하다. 아름답다거나 빼어나다는 수사보다 장엄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들머리는 베트머알프 마을이다.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고봉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다. 맹장 아래 약졸 없다던가. 마을의 높이도 만만치 않다. 해발 1950m다. 지리산 천왕봉(1915m)보다 높다. 걸어 오르기는 일정상 어렵고, 아래쪽 베텐 기차역에서 케이블카로 올라야 한다. 알레치 빙하를 굽어볼 수 있는 베트머호른 전망대까지 가려면 다시 리프트를 타야 한다. 등산로는 베트머호른 전망대 옆에서 시작된다. 거대한 빙하의 강을 오른쪽에 두고 비탈길을 내려간다. 부분적으로 암릉 구간이 있긴 하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다. 볕은 따스하게 몸을 감싸고, 알프스의 맑은 산소 알갱이는 피부를 간질인다. 눈앞에는 엽서에서나 보던 알프스가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짹짹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천적이 나타났을 때 마멋이 내는 일종의 경계음이다. 마멋은 베트머알프 일대에 서식하는 설치류다. 겨울 동면을 앞두고 부지런히 먹어 둬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사람의 발걸음이 꽤 신경 쓰이는 거다. 베트머알프 마을까지는 3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 그랜드 투어에선 모두 5개의 이름난 패스(고갯길)를 지난다. 그 가운데 험하고 멀기로 수위를 다투는 고갯길이 푸르카 패스다. 안내판에 적힌 사전적인 설명은 ‘글레치 마을과 안데르마트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다. 한데 굳이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찾을 필요는 없다. 푸르카 패스에 가는 것만으로도 운전의 맛과 보는 맛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푸르카 패스는 해발 2429m를 지나는 산악 도로다. 그랜드 투어 일정 중 가장 고도가 높다. 영화 007 시리즈 ‘골드핑거’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형상의 산악 도로를 따라 추격 장면을 찍었다. 발 밑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이런 길이 10㎞ 정도 이어진다. 오르는 내내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차를 세우고 굽어보면 일망무제의 풍경에 또 한번 머리가 아득해진다. 현지 가이드는 푸르카 패스가 기원전부터 있었던 길이라고 했다. 험하고 돌투성이였던 길을 다듬어 1867년 첫 마차가 지나갔고, 1921년엔 차가 처음으로 이 길을 지났다고 한다. 산장 호텔 벨베데르는 쉬어 갈 겸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호텔 주변 도로에 서면 마터호른 등 알프스의 영봉들을 굴비 꿰듯 죄다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푸르카 패스 맞은편은 그림젤 패스(2100m)다. 이 길도 만만찮게 험악하다. 푸르카 패스가 동서를 잇는다면 그림젤 패스는 남북을 연결한다. 길은 여름 시즌에만 운영된다. 우리처럼 ‘제설 작업’ 하며 오르내리는 수준의 길이 아니다. 고개 아래 글레치 마을은 푸르카 패스와 그림젤 패스가 교차하는 작은 산간 마을이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앞으로 론 빙하가 흘렀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와 반비례해 커진 것도 있다. 호수다. 론 빙하가 있던 산자락은 호수가 장악했다. 보기엔 예쁠지 몰라도 호수는 사실 ‘빙하의 눈물’이나 다름없다. 스위스 남부 곳곳을 적시며 흐르는 론 강도 여기서 발원한다. 작은 산간 마을인데도 어김없이 트레일은 조성돼 있다. 정말 ‘하이킹의 천국’답다. 이제 막 강으로서의 일생을 시작하는 우윳빛 론 강을 따라 자박자박 걷는 맛이 각별하다. 한적한 시골 마을 생모리스엔 마을 이름과 같은 수도원이 있다. 1500년 전에 세워진 건물로 추앙받는 선교자들을 위한 장소다. 중세 금세공업자들이 만든 걸작 성물 예술품 등 기독교의 보물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원 정문엔 김대건 신부 등 한국의 순교자 이름도 한글로 적혀 있다. 수도원 중앙의 분수대는 주변 산에서 흘러 오는 맑은 물인 데다 성수로도 알려져 있으니 한 모금 마시고 나오는 것도 좋겠다. 니더발트는 작은 산간 마을이다. 샬레(오두막집) 스타일의 집들이 여태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리츠 계열 호텔의 설립자인 세자르 리츠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글 사진 로잔·시에르(스위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온갖 불운을 타고났던 ‘왕따’, 우주의 이정표를 세우다

    [이광식의 천문학+] 온갖 불운을 타고났던 ‘왕따’, 우주의 이정표를 세우다

    -인류의 위대한 거보 내딛은 천문학자 케플러 20세기 천문학의 영웅 허블이 온갖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17세기 천문학의 영웅 요하네스 케플러는 온갖 불행을 껴안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최고의 천재 천문학자로 꼽히는 케플러이지만, 그의 생애는 가난과 질병, 전쟁, 추방으로 점철된,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이었다. 우선 그의 불행 목록을 잠시 요약해보기로 하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발표된 지 28년 후인 1571년 12월 27일, 독일의 작은 도시 바일에서 태어났다. 칠삭둥이인데다 태어나면서부터 병약했다. 아버지는 “부도덕하고 거칠고 싸움꾼”인 용병이었고, 어머니는 술집 딸로 “성미가 까다롭고 수다스러운” 여자였다.(케플러의 표현) 양친 누구로부터도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한 케플러는 4살 때 천연두를 앓아 그 후유증으로 근시에 복시(複視)까지 겹쳐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았다. 내장기관도 좋지 않았고, 손가락도 온전하지 못해, 가족들이 보기에 장래에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라곤 성직자밖엔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얼마 후 집을 떠나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모든 불운을 한 몸에 타고난 아이가 바로 어린 시절의 케플러였다. 가족들은 어린 케플러를 성직자로 만들기 위해 수도원 학교에 넣었다. 병약하고 내성적인 케플러가 동급생들에게 인기가 있을 리 없었다. 스스로도 “나는 성격도 별로 안 좋고...” 등등의 부정적인 묘사를 하기 일쑤였다. 아이들에게 왕따 당하거나 매 맞는 적도 드물지 않았다. 한마디로 3류 인생으로 온갖 멸시를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재능을 그는 갖고 있었다. 바로 명석한 두뇌였다. 그가 가난한 집안으로부터 거의 학비 지원을 받을 수 없었음에도 대학까지 갔던 것은 오로지 뛰어난 머리 덕분이었다. 항상 장학금을 받아냈던 것이다. 특히 수학에서 그는 발군의 재능을 보였다. 케플러는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지만, 틈틈이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하며 과학적 지식을 쌓아나갔다. 수학의 천재였던 케플러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보다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수학적으로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우면서 완전한 형상과 코스모스의 영광을 엿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의 심경을 케플러는 이렇게 표현했다. “기하학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있었다. 기하학은 신의 뜻과 함께 영원히 공존한다. (...) 기하학은 천지창조의 본보기였다. (...) 기하학은 신 그 자체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 학위 과정에 들어가려 했던 케플러에게 그라츠의 한 개신교 학교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22살의 그는 주저없이 목사의 길을 버리고 신학교를 떠났다. 그라츠에서 케플러에게 맡겨진 임무 중의 하나는 예언과 부합하도록 점성력(占星曆)을 뜯어고치는 일이었다. 당시 이런 일은 관행이었다. 16세기에는 천문학과 점성술은 그 경계가 모호했다. 케플러의 첫 달력이 나왔을 때 그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그는 터키의 침공과 추운 겨울을 예견했는데, 두 가지 예측이 모두 들어맞아 예언자로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살면서 궁할 때마다 점성술로 돌아오곤 했지만, 그 자신은 점성술을 믿지 않았다. 점성술에 대한 그의 한탄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점성술은 어머니인 천문학을 먹여살리는 슬픈 창녀일 뿐이다.” 케플러가 우주를 창조한 신의 마음을 알기 위한 기나긴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하나의 계시 때문이었다. 천문학의 일대 혁신을 가져온 계시의 순간은 어느 화창한 여름날 그가 학생들에게 기하학을 가르칠 때 찾아왔다. 행성들은 왜 코페르니쿠스가 알아낸 간격의 궤도만을 따라 도는가? 그 누구도 던져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케플러의 생각은 태양계 구조의 근본에까지 닿았던 것이다. 케플러는 행성 궤도와 기하학은 깊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기나긴 여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윽고 태양계의 비밀을 푸는 기하학적 열쇠를 손에 쥐었다고 확신했지만, 여전히 다른 의문들이 남아 있었다. ‘왜 바깥쪽 행성은 안쪽 행성보다 느리게 태양 둘레는 도는가?’ 이는 케플러 이전의 어떤 천문학자도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였다. 케플러는 이에 대해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빛과 같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행성들을 조종한다고 결론 내렸다. 케플러는 자신의 이런 이론을 담아 '우주의 신비'(1596)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 여러 곳에 보냈다. 갈릴레오도 그 책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서문만 읽어보고는 내용은 끝내 읽지 않았다. 반면 튀코 브레헤는 케플러의 이론에 감명받았을 뿐 아니라, 케플러의 ‘천재’를 알아보았다. '우주의 신비'는 케플러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시골 학교의 수학 선생에 지나지 않았던 케플러는 이 책으로 인해 유럽 천문학계에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고, 이것을 고리로 하여 황실 수학자이자 우라니엔보리 천문대장인 튀코 브라헤(1546~1601)의 초청을 받아 그와 같이 일하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육안 관측 천문학자로 꼽히는 튀코는 당시 가장 정확하고 풍부한 행성 관측자료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요리할 만한 수학적인 밑천이 부족했다. 이에 반해, 케플러는 시력이 나빠 관측에는 약했지만, 강력한 이론적인 무기, 곧 수학을 갖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둘은 어느 정도 궁합이 맞는 짝이라 할 수 있었다. 케플러의 '화성 전쟁' 케플러가 튀코의 조수로 가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튀코가 가지고 있던 풍부한 관측자료에 있었다. 매의 눈을 가진 튀코는 망원경이 발명되기 35년 전부터 행성의 겉보기 운동을 측정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가 행한 관측의 정밀도는 당대 최고였다. 54살의 튀코와 29살의 케플러의 만남은 그다지 부드럽지 못했다. 한 사람은 당대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관측의 귀재였고, 다른 한 사람은 제일의 이론가였다. 협력은 쉽지 않았다. 튀코의 경계심 때문이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케플러가 우라니엔보리에서 일한 지 18개월 만에 튀코는 병으로 급사했다. 어느 만찬에서 포도주를 과음한 뒤 소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렸고, 그것이 악화되어 며칠 후 숨을 거둔 것이다. 브라헤는 숨을 거두기 직전 "내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하소서!" 하고 외친 튀코는 그토록 아끼던 관측자료를 케플러에게 모두 물려준다고 유언했다. 튀코가 죽은 후 케플러는 그 뒤를 이어 황실 수학자로 임명되었고, 튀코의 자료 분석에 밤낮 없이 매달렸다. 케플러가 가장 시간과 정열을 쏟아부었던 과제는 화성 궤도 계산이었다. 지구와 화성이 실제로 태양 주위를 어떤 식으로 운동하기에 화성이 우리 눈에 공중제비를 돌듯이 역행운동을 하는 것일까? 실제로 화성을 관측하노라면, 이제껏 왼쪽으로만 운행하던 화성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엔 이윽고 다시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운행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화성의 역행운동으로, 고래로부터 수많은 천문학자들로 하여금 머리를 싸매게 한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다. 기원전 6세기의 피타고라스부터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 등 모든 천문학자들이 행성들의 궤도는 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원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기하학적 도형이므로, 완벽한 존재들인 천상의 천체들은 마땅히 원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갈릴레오, 튀코, 코페르니쿠스도 행성 궤도가 원이라는 데에 티끌만한 의심도 없었다. 케플러 역시 화성이 태양 주위를 원궤도에 따라 돈다고 간주하고 브라헤의 관측자료를 분석하고 궤도계산에 매달렸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계산은 8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는 복잡하고 지루한 계산을 무려 70차례나 되풀이했다. 이른바 케플러의 ‘화성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 과정을 지루하다고 느낄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해 이런 각주를 달아두기까지 했다. “이 지루한 과정이 진력나시거든, 이런 계산을 적어도 70번이나 했던 저를 생각하시고 참아주십시오.” 케플러는 타원공식을 사용해 다시 자료분석을 시도했다. 그 공식은 고대 그리스의 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BC 262~190)가 처음 만들어낸 식이었다. 결과는 브라헤의 관측값과 완전 일치했다! 케플러는 탄성과 탄식을 함께 토해냈다. “자연의 진리가 나의 거부로 쫓겨났었지만, 인정을 받고자 겉모습을 바꾸고 슬그머니 뒷문으로 들어왔으니.... 아, 나야말로 정말 멍청이였구나!” 화성이 타원궤도를 돈다는 것은 이렇게 오랜 노역 끝에 얻어진 것이었다. 다른 행성들도 타원궤도를 돌지만, 화성보다는 훨씬 원에 가깝다. 태양은 타원궤도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중심을 조금 벗어난 초점에 자리한다. 행성의 공전속도는 태양이 가까울수록 빨라지고 멀어질수록 느려진다. 이런 운동 때문에 행성이 태양을 향해 계속 떨어지는 중이지만, 결코 태양에 곤두박질하지는 않는다. ​우주의 이정표를 세우다 행성운동을 규정한 타원의 법칙과 동일면적의 법칙은 1609년에 그의 책 '새 천문학'에 발표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 '우주의 조화'에서 그의 제3법칙 조화의 법칙을 발표함으로써 케플러의 3대법칙은 완결되었다. 케플러 법칙을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행성의 궤도는 태양을 하나의 초점에 두는 타원궤도이다.2. 태양과 행성을 잇는 직선은 항상 일정한 넓이를 쓸고 지나간다.3.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사이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케플러는 3대법칙을 완결한 후, 자신이 신이 우주를 설계한 논리를 발견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엄청난 희열감을 느꼈다. 행성운동의 법칙을 최초로 과학적으로 규명한 케플러 법칙은 행성운동의 거리와 시간관계를 밝힘으로써 60년 후 뉴턴의 중력 방정식을 선도한 것이기도 했다. 케플러는 놀랍게도 태양과 행성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하며, 행성운동의 근본 원인이 자기력과 유사한 성격의 것이라고 제안함으로써 중력 또는 만유인력을 예견했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의 발견에 케플러의 신세를 엄청나게 졌다. 백 번을 감사하다는 말을 해도 모자랄 터인데, 그는 단 한 번도 케플러에게 감사의 말을 하지 않았다." 케플러는 연구가 수행되는 중에도 신변엔 고통이 떠나지 않았다. 1611년, 30년 전쟁의 군인들이 옮긴 전염병 탓에 그의 아내와 가장 사랑하던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후견인이던 루돌프 황제가 폐위됨에 따라 케플러는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인류를 위한 우주로의 거보를 내디딘 존재였지만, 케플러의 만년은 흐린 겨울날처럼 스산했다. 30년 전쟁이 유럽을 휩쓰는 가운데 케플러는 모든 후원자를 잃고 가난에 내몰렸다. 그의 만년은 돈을 구하고 후원자를 찾는 피곤한 여정으로 메워졌다. 그러던 중 어느 추운 늦가을, 밀린 급료를 받기 위해 노구를 끌고 먼 길을 나섰다가, 독일 레겐스부르크에서 병을 얻어 며칠 고열에 시달리다 숨을 거두고 말았다. 1630년 11월 15일이었다. 향년 59세. 그날 밤 하늘에서 유성우가 내렸다고 한다. 출생에서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불우하기만 했던 이 거인의 유해는 성벽 밖 공동묘지에 쓸쓸히 묻혔다. 빗돌에는 그가 지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어제는 하늘을 재더니, 오늘 나는 어둠을 재고 있다. 나는 뜻을 하늘로 뻗쳤혔지만, 육신은 땅에 남는구나.” 그러나 그의 무덤도 30년 전쟁 와중에 군대에 의해 훼손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케플러가 평생을 바쳐 고난과 싸우며 이룩해낸 그의 업적은 후세 과학사학자들에 의해 ‘과학혁명의 열쇠’라는 평가와 함께 케플러를 그 혁명의 중심 인물로 올려놓았다. 과학사가 제임스 R. 뵐켈은 케플러의 업적이 갈릴레오의 업적보다 천문학적으로 더욱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케플러는 행성운동 법칙 제3법칙을 연구할 당시, 지구에 적용되는 측정 가능한 물리 법칙들이 다른 천체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을 간파했고, 이로써 인류사 최초로 천체 운동에서 신비주의가 배제되었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상의 비밀을 보다 확실하게 세상에 내보인 케플러는 행성운동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이론인 ‘케플러 법칙’을 정립함으로써 문자 그대로 우주로 향한 인류의 위대한 거보(巨步)를 내딛었다.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케플러의 삶을 이렇게 평했다. "만약 절대적인 엄밀함을 추구하면서 평생 동안 가장 헌신적인 삶을 산 사람에게 주는 상이 있다면,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그 상을 받았을 것이다.” 2009년, 미항공우주국(NASA)은 케플러의 천문학에 대한 기여를 기리기 위해 우주 망원경에 케플러의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케플러 계획이다. 그리고 유엔은 갈릴레오가 최초로 망원경 천체관측을 행하고 케플러가 그의 '새 천문학'을 발간한 지 400주년 되는 2009년을 '세계천문의 해'로 정해 그를 기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후학인 칼 세이건의 다음과 같은 말이 케플러를 위한 최상의 찬사가 될 것이다. “우주 탐사선이 광대한 우주를 가로질러 외계로 달려갈 때, 사람이고 기계고 가릴 것 없이 확고부동한 이정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케플러가 밝혀낸 행성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이다. 그의 평생에 걸친 수고로 그는 발견의 환희를 맛보았고, 우리는 우주의 이정표를 얻었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독일에서 찾은 용의 기운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독일에서 찾은 용의 기운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용의 입에서 무엇이 나오는가’라는 물음을 보주에도 다시 던진다. 조각 작품에서는 보주를 보석으로 나타내므로 구멍이 없다. 하지만 회화 작품에서는 구멍에서 무엇인가 나오는 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보주는 만물생성의 근원이므로 그 광경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 것인가. 괘불(掛佛)부터 살펴보려 한다. 계룡산 신원사에는 길이 11.2m, 폭 6.9m의 큰 불화가 있다. 괘불이라고 부르는 이런 큰 불화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1664년 작품인 노사나불탱으로 괘불로는 꽤 이른 시기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괘불이 제작되기 시작해 중요한 불사(佛事) 때 대웅전 앞에 드높이 달아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떨었다. 괘불에 그려진 거대한 부처님은 조형언어로 설법하고 계신데 중생은 알아듣지도 읽어내지도 못한다. 이 괘불에서는 석가여래가 직접 설법하지 않고 노사나불이란 보신불(報身佛)로 나타나 설법한다. 흔히 여래나 보살이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고 한다①. 동양의 미술사학자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 기독교 미술의 보관도 서양의 미술사학자들은 그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신원사 괘불은 물론 모든 불화의 보관은 보관이 아니다. 자세히 채색 분석하면 보주의 구멍에서 무수한 보주가 줄줄이 이어 생겨나는 극적인 광경을 볼 것이다(②, 부분 확대한 ③). 여래의 얼굴에서 사방으로 제1영기싹 다발이 나오고 다시 제1영기싹이 연이어 돋아나는 것을 보주가 줄줄이 나오는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중간중간 큰 꽃 같은 것이 보인다. 이것도 꽃이 아니라 중앙의 보주가 무한히 확산하는 모습이다. 꽃잎처럼 표현했지만 그 작은 꽃잎 같은 것에 반드시 작은 흰 점을 찍었다. 구멍에서 나오는 작은 보주다. 중앙에는 보주도 있지만 제1영기싹도 있어서 두 가지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큰 꽃 같은 모양도 무량보주다. 그 사방에서 제1영기싹에 이어 보주가 나오기도 하고, 바로 보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연이은 잘디잔 보주들이 멀리서 보면 마치 줄 같다. 실제로 작은 작품에서는 줄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연이은 보주로 읽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부분 확대한 것을 보면 분명히 보인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영락장식(瓔珞裝飾), 즉 구슬 장신구라 부르지만 결코 장신구가 아니다. 여래의 본질을 깨달으면 보관이란 갖가지 영기문, 특히 제1영기싹들과 보주들이 여래의 머리에서 발산하는 장엄한 광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래가 무슨 호화스런 보관을 쓰겠으며, 온몸을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하겠는가. 모두가 온몸에서 발산하는 강력한 영기문이다. 식물 모양 영기문도 많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크고 작은 무량한 보주의 엄청난 확산이다. 온몸 전체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을 이 글에서는 보여 주지 못하니 상상하기 바란다. 어느 교수가 독일 여행을 하다가 필자에게 사진을 보냈다. 독일 뮌헨의 작은 박물관에서 찍었다는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④. 크기가 30×40㎝ 정도인 17세기 작품으로 온통 보주가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광배는 갖가지 형태와 색의 큰 보주를 둘렀는데 보주들에서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광배 윗부분에서는 화려한 보석들로 이루어진 세 군집의 보주가 세 방향으로 발산하고 있다. 마리아의 머리는 가운데 보라색 큰 보주를 중심으로 수많은 흰색 보주로 가득 찼으며, 양쪽 어깨에서도 흰색 보주들이 내려온다. 신원사 여래상의 줄줄이 이어져 내려오는 보주들의 전개와 같지 않은가. 아기 예수도 머리와 온몸이 보주에 파묻힐 지경이다. 마리아상 배후의 식물 모양 영기문은 고구려 벽화 영기문과 같다. 프레임 내부는 흰색 보주로 둘러서 마리아 모자상의 ‘보주화생’을 보여 준다. 넓은 테두리의 네 귀와 각각의 중간에 우리의 무량보주처럼 꽃 같은 무늬가 자리잡고 있는 것도 놀랍다. 꽃으로 보이나 무량보주를 압축해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조형이다. 회를 달리하여 설명해야 하는 중요한 주제다. 나아가 그 무량보주에서 발산하는 덩굴 모양 영기문이 우리의 영기문 전개와 똑같지 않은가. 서양의 기독교미술 역시 동양의 불교미술에서 보이는 영기문의 전개 원리와 똑같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⑤. 그런데 동서양의 학자들은 보주를 화려한 값비싼 보석으로 알고 있으니 이 동서양의 두 작품을 전혀 올바르게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작품에 그치지 않고 모든 불화와 성화가 그러하니 새로운 해석은 세계의 조형을 올바로 밝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해 필자는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BC 99~BC 55)의 철학적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를 흥미 있게 읽었다. 그는 에피쿠로스(BC 341~BC 270)의 철학을 미묘한 점에 이르기까지 시로 재현하려 하였다. 그는 사물은 원자로 이루어졌으며, 더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조각들이 빈 공간을 떠다니는 것이라고 믿은 원자론자였다. 이 서사시는 매우 난해하여 만일 보주를 밝히지 못했다면 정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원동력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린 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란 책은 30대 후반의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가 남부 독일의 구석진 수도원의 서가에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하여 필사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당시로는 가장 위험한 사상인 무신론이 숨어 있는 이 책의 극적인 발견이 기독교 교리에 의해 인간의 사상과 자유가 속박당한 암흑의 중세를 마감하고, 재생의 르네상스 태동의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근대의 탄생’은 원래 제목이 ‘일탈’(Swerve)이었다. 책의 발견과 필사가 시대를 뜻밖의 방향으로 일탈하게 만들어 르네상스가 태어났다는 의미다. 무릇 일탈하지 않으면 위대한 시대는 오지 않는다. 에피쿠로스는 원자를 입자라고 부르며 설명했다. 신원사 괘불의 보주에서 보는 작은 입자의 전개가 요즈음 물리학에서 밝힌 원자의 구성 원리와 매우 흡사하다. 여래와 보살이 보주의 집적이라는 놀라운 진실을 알아낸 필자는 원자의 구조는 물론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목걸이의 무량보주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⑥. 바로 핵의 구조와 같지 않은가. 왕이나 왕비 역시 신적인 존재였으므로 역시 모두가 보주의 집적이었던 것이다. 가야 지방에서 출토된 금제 용 아기와 보주도 마찬가지였다⑦. 세계는 하나였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의 머더 테레사 박청수 원불교 교무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한국의 머더 테레사 박청수 원불교 교무

    ‘원불교는 몰라도 박청수 교무는 안다.’ 원불교 교직자인 교무들이 우스갯소리로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한평생을 종교와 정치, 국경의 경계 없이 지구촌 그늘진 곳곳을 다니며 막힘없는 봉사로 삶을 불태웠던 ‘한국의 머더 테레사’ 박청수(78) 교무. 1981년 스스로 개척해 국내 최고의 교당으로 우뚝 세운 서울 강남교당을 후배에게 넘기고 2007년 은퇴한 뒤에도 그의 봉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출간된 자서전 ‘박청수-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세상 받든 이야기’(열화당)에서 ‘한국의 머더 테레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쉼 없이 길쌈을 했던 여인이었다.” 원불교 창교 100년을 맞아 그의 아담한 보금자리 겸 박물관인 경기 용인의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을 찾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공교롭게 원불교 창교 100년 되는 해 자서전을 내셨습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자서전 같은 것을 펴낼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박물관을 둘러본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했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제 삶을 꿰뚫어 아는 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원래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소장품 도록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만난 열화당 이기웅 대표가 먼저 제의하셨어요. 제가 쓴 책 6권의 내용을 추린 데다 최근 일과 미처 적어 두지 못한 일들을 원고지 400매 분량으로 써서 보탰어요.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서전 서문 첫머리의 “나는 쉼없이 길쌈을 했던 여인 같다”는 감회가 인상적인데. -55개국을 다니며 사람들을 돕는 일이 간단한 건 아니잖아요. 남에게 도움을 주려면 돈을 모아야 하고 그 절차도 복잡해요. 지금 무비자로 한국인이 입국할 수 있는 나라가 무려 172개국이나 된다고 해요.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외국 들어가는 일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어요. 국교 단절이 됐던 캄보디아에 특별국가방문허가서를 받아 들어갔던 적도 있었어요. 50년간 앉으나 서나 늘 그 일에 매달려 고민하고 산 지난 인생이 밤낮 없이 길쌈하는 여인의 삶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직장에서 퇴근하면 가족들과 식사도 같이하고 이야기도 나누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잖아요. TV 드라마 한 편도 여유 있게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봉사 인생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요? -30대였던가요? 사직교당 교무 시절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책을 8년간 공들여 만든 적이 있었어요. 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큰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 한센병 환자 돕는 일을 시작으로 55개국을 다니며 많은 일을 하며 살았군요. 해외 봉사의 첫 시작은 1970년 12월 코스모스백화점에서 동파키스탄 이재민 돕기 자선바자회에 2만 4000원을 모금해 원불교 서울사무소에 낸 게 처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오랜 세월 쉼없는 봉사를 가능하게 한 힘은 무엇인지요. -‘너른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라’는 어머니의 당부가 컸지요.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결단성도 적지 않은 요인이었고요. 회의를 해 본 적이 없어요. 혼자 생각하고 일단 좋은 일이라 생각하면 해내야 직성이 풀렸으니까요. 좋은 분들의 도움도 컸지요.“나는 이기적으로 살았으니 박 교무에게 돈을 줘야 상쇄가 된다”면서 매년 연말 돈을 보내주신 박완서씨는 정말 잊지 못해요. 저에게 돈을 주면 엉뚱한 데 안 간다면서 도와주시던 박완서씨의 기부금이 봉사의 종잣돈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당부를 되돌아볼 때 후회없는 삶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걷겠어요. →종교계 인사들과의 폭 넓은 교류가 유명합니다.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과의 각별한 인연이 회자되는데. -제가 맨 처음 쓴 책 ‘기다렸던 사람들처럼’(1989년)을 보내 드렸더니 법정 스님이 ‘세상 구경 시켜 줘서 고맙다’는 글을 전해 오셨어요. 법정 스님에게 10년간 편지를 보냈습니다.그렇게 편지를 보내고 나면 근심 걱정이 줄어드는 것 같았어요. 제가 하는 일에 늘 격려해 주셨던 고마운 분이지요. 캄보디아에 갔을 때 배에서 떨어져 고생하던 무렵 홍화씨를 보내 위로하신 일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번 자서전 제목의 글씨체도 법정 스님이 보내주신 편지 속에서 딴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라자로 마을 나환자 돕는 일을 하면서 만나 뵈었어요. 추기경 선종 때 각 종교 대표들이 추도사를 썼는데 원불교에선 제가 썼습니다. 그분들이 모두 떠나신 지금 문득문득 외딴집에 홀로 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출가하신 지 59년이 됐습니다. 출가자로서 늘상 마음에 새긴 정신이라면. -청빈과 실력, 그리고 투명한 실천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원불교 교리에는 종교나 사상이 달라도 대중적으로 공인된 지도자를 공경하라는 ‘공도자 숭배’가 있어요. 온정의 저수지가 마르지 않게 하려면 자력의 인격이 필수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자신을 잘 다스려야 그 영혼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 법이지요. 평생 제 발 뿌리를 눈 부릅뜨고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한 달 용돈은 얼마나 쓰시나요? -원불교에서 공식적으로 받는 돈은 23만 6000원이 전부입니다. 개인적으로 돈 쓸 일이 뭐 있겠습니까. 먹고사는 데 전혀 부족하지 않아요. 차도 없고 비서도 없어요. 직접 밥도 짓고 빨래도 합니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고 합니다. 요즘 세태에 한 말씀 하신다면. -철없는 사람,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 뒤처진 사람 뒷바라지를 하는 게 종교인의 사명 아닐까요. 종교의 높은 가치인 청빈, 맑은 가난을 지켜야 스스로 청정하고 혼탁한 세상도 맑힐 수 있습니다. 설교나 설법 시간에 했던 좋은 말씀을 매양 스스로 실행하고 실천해야 비로소 사람들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좋은 말씀들이 공허할 뿐이겠지요. →종교인 못지않게 정치인들을 향한 세간의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라면. -정치인이라면 모두 큰 뜻을 세우고 그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을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경우에도 그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심만 없어도 나름대로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인은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도덕성이 허약해지지 않도록 어떠한 유혹도 뿌리치고 항상 자기 자신부터 다스려야 하지요. 욕심을 버린다면 제 역할에 더 충실할 것이란 생각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공도자라면 청문회 가서 혼쭐날 일도 없지 않을까요. →2010년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 10인에 오르셨습니다. 평화의 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람을 살육하던 전쟁의 총성이 멎는 것이지요.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평화를 잃는 것입니다. 내면의 자성이 충만한 사람이 행동할 때 고통을 녹이는 평화의 빗방울이 될 수 있습니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막힌 관계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대립 국면을 푸는 데 이해와 아량은 절대적이지요. 지금 남북 관계를 보면 양쪽 모두 다른 쪽이 숙이고 들어오길 바라는 것 같아요. 우리가 북한보다 30배쯤 잘산다고 하지요. 강자가 너그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원불교 100년을 어떻게 보시나요. -신흥 민족종교 가운데 이렇게 교세가 확장된 교단이 없는 것 같아요. 교직자들이 모두 열심히 살았어요. 커다란 흠결 없이 맑은 종교란 평가를 받는 게 가장 흐뭇합니다. 나라의 발전이 원불교의 성장에 큰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어요. 작은 나무가 올곧게 자라 거목이 됐으니 걸맞은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최근 원불교 교세의 정체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데. -원불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비슷한 상황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갖는 위상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고 종교 본연의 역할 축소도 이유일 수 있습니다. 원불교의 경우 이제 더 큰 도약을 위한 잠깐의 정체를 맞은 게 아닐까 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습니까. -다시 태어나도 원불교 교무로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다시 살 것입니다. 이렇게 너른 세상을 살았는데 한 가정의 어머니와 아내로 살 수 있을까요(웃음). 은퇴하고 이곳에 들어올 때 주변 사람들에게 느낌이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했어요. 한평생 너무 많은 돈 걱정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 흔적이 내 얼굴에 남을까 걱정했어요. 지금 산 속에서 하늘도 올려다보고 새 소리도 들으면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박청수 교무는 1937년 전북 남원시 수지면 홈실 마을 태생. 원불교 교도였던 어머니의 바람을 따라 출가, 평생 정녀로 살았던 원불교 스타 교무다. ‘한국의 머더 테레사’, ‘머더 박’이란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집의 울타리에 머물지 말고 너른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하라.’ 아홉살 때부터 자장가처럼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어머니의 말씀이 평생 맑은 종교인, 그리고 희생하는 삶을 살게 한 으뜸의 기준이었다고 한다. 전주여고를 졸업한 해인 1956년 출가해 사직교당·원평교당·우이동 수도원 교당·강남교당에서 교무로 봉직하고 2007년 퇴임했다. 특히 강남교당은 박 교무가 개척해 원불교 최고, 최대의 교당으로 세웠으며 그 시절 추진했던 숱한 지역사회 봉사와 헌신의 일화들이 지금까지 회자된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한센병환자촌 성라자로 마을에 쏟은 열정과 도움의 궤적은 한국 종교계에서 유명하다. 현직에서 31년간, 은퇴 후 9년간 40년간 성라자로 마을을 도왔다. 라자로 마을에 집을 짓고 한센병 환자를 돕기 위해 15년간 엿을 팔기도 했다. 북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캄보디아,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 박 교무의 손길과 봉사의 땀이 배어 있다. 55개국에 무지와 빈곤, 질병 퇴치의 흔적이 스며 있다. 나라 안팎에 9개의 학교를 설립했고 히말라야 라다크, 캄보디아 바탐방에 병원을 세웠다. 미얀마와 캄보디아의 270개 마을에 공동 우물을 파거나 식수 펌프를 묻었다. 2010년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 10인에 올랐다. 이웃 종교 교류와 북한 돕기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국제연등불교, 프랑스 길상사, 성북동 길상사 지장전, 성공회 봉천동 나눔의 집, 기독교 사랑의 쌀 모으기 등에 힘을 보탰고 경기도 안성 하나원 옆에 북한 이탈 청소년들을 위한 한겨레 중·고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7년 26년간 봉직했던 강남 교당을 후배 교무에게 넘기고 은퇴한 뒤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직만 갖고 경기 용인 헌산중학교 경내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에서 기거하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종교와 국가가 틀어막아도 술~술~ 잘 넘어가네요

    종교와 국가가 틀어막아도 술~술~ 잘 넘어가네요

    알코올의 역사/로드 필립스 지음/윤철희 옮김/연암서가/568쪽/2만 3000원 적당히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약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마시면 독이 되는 게 술이다. 지구의 어느 곳에서는 물보다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음료로 자리를 잡은 적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사회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물질로 정부 당국과 종교계로부터 어떤 품목보다 심한 규제를 받아왔다. 뉴질랜드 출신의 역사학자 로드 필립스(캐나다 칼턴대 역사학 교수)는 ‘알코올의 역사’에서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알코올에 깃든 변화무쌍한 문화적 의미들을 좇는다. 책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문화권에서 술을 취급한 방법부터 술이 권력구조, 인종, 민족, 종교, 성별, 계급, 세대 등의 이슈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영향을 미치며 갈등해 왔는지를 짚어간다. 초창기 술의 역사는 약 9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가장 오래된 알코올성 음료에 대한 증거를 중국 북부 허난성 지아후에서 발견된 도자기들에서 찾아냈다. 쌀과 꿀, 과일 등을 조합한 원료로 만든 와인이었다. 가장 이른 와인 양조시설은 아르메니아 남부 리틀코카서스 산맥의 아레니마을에 있는 것(기원전 4000년경)이라는 주장이 있다. 기원전 3000~2500년 이집트에서 와인을 생산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그림들이 남아 있다. 와인의 희소성과 빚는 데 들어가는 높은 비용은 와인에 문화적 가치를 부여했다. 고대문화권과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신들은 다양한 알코올성 음료와 결부됐다. 바커스와 디오니소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신들이다. 와인과 비어는 종교와 지속적으로 관련지어졌다. 기독교는 와인을 상징과 의례에서 중심적인 자리로 격상시킨다. 서기 첫 세기에 성체성사에서 빵과 와인의 실체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고 주장한다. 반면 기독교와 같은 시기 출현한 이슬람은 술을 철저히 거부하고 추종자들에게 알코올성 음료를 마시는 걸 금지했다. 최대 규모의 양조활동은 8세기부터 수도원에서 행해졌다. 중세 유럽에서 소비된 알코올성 음료는 와인과 비어처럼 발효에서 생겨난 것들이었다. 증류에 의해 생산된 스피릿은 16세기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브랜디, 럼, 위스키, 진, 보드카 등 알코올 함량이 높은 술의 등장은 음주 소비와 규제의 패턴에 변화를 가져왔다. 18세기에 스피릿을 중심으로 술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서구의 주요 도시에 안전한 식수가 공급되기 시작한 19세기 초 물을 안전한 선택으로 묘사하고, 술을 해로운 것으로 비난할 수 있게 된다. 종교단체와 제휴한 절주운동과 금주운동이 미국과 캐나다, 영국, 스칸디나비아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술이 절주와 금주운동 옹호자들의 공격을 받는 동안에도 유럽인들은 그들의 알코올성 음료와 술 문화를 더 넓은 세계로 확장시켰다. 술은 대륙 곳곳에서 중요한 교환 수단으로 제국주의 확산과 식민지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탈식민지화 과정에서는 유럽인과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접촉하고 협력하고 갈등하는 영역 중 하나가 됐다. 제1차 세계대전은 술의 역사에서도 분수령이었다. 많은 정부가 전시 비상조치로 유례 없는 규제들을 도입했고 양차 대전 사이에 절주와 금주정책이 서구세계 곳곳으로 확장됐다. 미국은 1920년 전국적인 금주령을 내렸다. 1933년까지 지속된 미국의 금주령은 이슬람이 무슬림의 술 생산과 음주를 금지시킨 이후 전국적인 기반에서 포괄적으로 제정된 정책 중에서 가장 엄중했지만 결과적으로 밀주와 밀수를 양산했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자유방임적인 술 정책을 채택하면서 전국적 금주령에서 벗어날 무렵 다른 국가들은 술 소비를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규제적인 정책을 채택했다. 1960년대 이후 술 소비를 향한 공식적인 입장은 더 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이동했지만 그런 흐름에 역행하는 음주운전과 폭음 같은 특유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통제로 대응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세계의 중요한 일부 지역들에서 술 소비량이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포스트 알코올’ 시대에 진입했다”며 “글로벌한 관점에서 보면 술이 절멸하기 직전은 아니지만 사회적 이슈로 갖는 술의 중요성은 상당히 줄어들 것 같다”고 결론 지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적 근원 이냐시오 순례길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적 근원 이냐시오 순례길

    2013년 취임한 이후 ‘가난한 자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모토로 가톨릭 개혁과 쇄신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제들에게 ‘거리로 나가라’며 청빈과 관용의 실천을 솔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성은 가톨릭 신자라면 다 아는 이냐시오(1491~1556) 성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관으로 열려온 스페인 성지순례의 마지막은 바로 청빈과 정결, 순명을 생명으로 삼는 예수회 창시자인 이냐시오 순례길이었다. 지난 10일 일행이 먼저 찾은 곳은 이냐시오 성인이 나고 자라 인생행로를 바꾼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 로욜라의 생가. 화강암 석축 요새에 2층 벽돌건물을 다시 지어올린 건물이 단출하지만 묘한 기운을 뿜는다. 귀족집안 로욜라가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냐시오는 1521년 프랑스 페르난도 1세가 영토회복을 위해 일으킨 나바라 팜플로냐 전투에서 다리 관통상을 입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명예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기사 정신에 철저했던 이냐시오에게 그 패배와 부상은 나락과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의 생가 방문객 年 10만명 생가 4층은 그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무엇 때문에 사는가’라는 근원적인 의심에 빠졌던 이냐시오가 성인들의 전기를 읽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찾은 ‘회심’(回心)의 소성당. 이른바 ‘예수회의 심장’으로 불리는 이냐시오 영성의 탄생지인 셈이다. 예수회원 55명과 민간 봉사자 60여명이 이 일대에 이냐시오의 정신을 계승해 살고 있으며 연간 방문객이 1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의 환시를 보고 회심한 이냐시오는 ‘톱날산’으로 불리는 해발 723m의 몬세라트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향해 ‘블랙마돈나’(검은 성모상) 앞에 기사의 상징인 칼을 내려놓고 수도자로 거듭났다. 하루 두 차례 열리는 소년합창단의 성가 공연과 유럽지역에 단둘뿐이라는 블랙마돈나를 보려는 신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성지. 수도원을 찾은 일행도 순례객들의 인산인해에 푹 잠겼다. ●만레사 동굴은 수도원서 15㎞ 거리 이냐시오가 회심의 순례를 떠난 16세기 중반 가톨릭 교회는 세속화와 부패에 봉기한 종교개혁으로 큰 위기에 봉착했다. ‘청빈을 어머니처럼 사랑하라’고 외친 이냐시오의 예수회는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가톨릭 입장에서 프로테스탄트 파도를 막는 방파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예수회의 큰 특징은 수도회의 복장과 격식마저 버리고 속세로 뛰어드는 융통성과 적응성으로 압축된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라면 교황의 명령에 언제든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수도원의 한 사제는 ‘우리는 항상 한 발을 들고 산다’고 귀띔한다. 순례의 마지막 대미는 그 예수회의 영성을 낳은 만레사 동굴이었다. 몬세라트수도원에서 15㎞ 떨어진 바위산 동굴.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고해성사를 한 이냐시오는 이곳에서 누더기를 걸친 채 구걸하며 11개월간 묵상과 고행의 나날을 보낸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자살의 유혹까지 받을 만큼 자신과의 극한 싸움으로 일관한 매일 매일의 묵상 기록을 묶은 게 바로 수도자들의 필독서인 ‘영신 수련’이다. 멀리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는, ‘톱날산’이 바라보이는 동굴 경당을 들어서니 무릎을 꿇은 한 여인이 눈에 든다. 일행의 눈길과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요동 없이 기도를 올리는 여인. 그 여인은 지금 이곳에서 이냐시오와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글 사진 로욜라·몬세라트·만레사(스페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야고보 무덤의 전설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야고보 무덤의 전설 ‘산티아고 순례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관으로 스페인 영성 성지 순례에 나선 일행이 세 번째 방문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건 지난 9일 오전 10시쯤. 프란치스코 성인이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도보로 이곳까지 순례해 세웠다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겸 성당을 지나 주교좌성당 길로 접어드니 벌써 순례객, 관광객들로 붐빈다. 다양한 얼굴과 행색의 인파.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해마다 순례객 20만명… 7개 국어로 미사 예수의 12사도 중 첫 순교자인 야고보(스페인어로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한 해 줄잡아 20만명이 걷는다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점이다. 성당 아래 사무실 통로에 카미노를 마친 순례객들이 환한 얼굴로 순례 증명서를 받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성당으로 드니 한 경당(소성당)에서 미사가 진행 중이다. 한 사제가 매일 아침 이곳 크고 작은 경당에서 7개 국어로 미사가 열린다고 귀띔한다. 그 미사들에선 무슨 말씀이 영혼을 적실까.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길게는 800㎞에 이르는 여섯 갈래의 카미노를 마친 순례객들이 맨 처음 찾는 곳은 성당 중앙 제대 뒤쪽 벽 위에 세워진 성 야고보 성인의 흉상이다. 나를 내려놓고 세상을 달래면서 얼마나 길었을지도 모를 고독한 묵상과 독백의 끝이 바로 야고보 성인인 것이다. 줄지어 기다린 끝에 야고보 성인의 흉상 뒷모습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순례객들. 그들은 그저 야고보만을 만나러 이곳에 온 것일까. “야고보 제자는 일관성을 갖고 자신을 희생한 성인입니다. 야고보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지요. 순례자들은 야고보가 걸었던 험한 길을 걸으며 거듭 ‘나는 누구인가’를 되묻게 되지 않을까요.” 주교좌성당의 돈 새군도 페레스 주임신부 말끝에 야고보를 떠올려본다.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인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땅끝’인 이베리아 반도 서북단까지 찾아와 복음을 전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귀환해 순교한 성인. 유해 향방이 묘연하다가 무덤이 발견돼 당시 교회가 야고보 성인 무덤으로 선포해 지은 게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아닌가.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한 이슬람 세력에 맞섰던 그리스도교인들이 야고보를 수호성인으로 삼았던 건 우연이 아닐 듯싶다. 예루살렘까지 이슬람에 점령됐으니 성지순례가 어려워졌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루살렘을 대신할 순례성지의 으뜸이었을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1982년과 1989년 두 차례, 직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2010년 한 차례 방문해 주목받았던 바로 그 성지이다. ●이슬람에 점령된 예루살렘 대신할 성지로 어느새 성당을 가득 메운 순례객들을 뒤로한 채 광장으로 향하자니 악기 연주자며 성악가들의 연주와 노래가 귀를 홀린다. 주위에 둘러선 채 박수와 따라 부르기로 어울리는 순례객과 관광객들. 종교적 이유로, 아니 어쩌면 호기심으로 찾았을지도 모를 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기쁨과 공존의 공간이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순례를 마친 뒤 이곳에서 땅을 내주지 않는 지역 수도원장에게 매일 물고기를 잡아 바치며 지어냈다는 수도원은 콤포스텔라의 처음이자 끝. 수도원 앞에 우뚝 선 프란치스코 동상을 올려다보며 성당에서 만난 한국 순례객이 전해준, 예사롭지 않은 한 마디를 얹어 본다. “삶은 살아내야 할 신비이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닙니다.” 글 사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스페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大데레사 성녀의 땅, 아빌라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大데레사 성녀의 땅, 아빌라

    16세기 유럽 가톨릭교회는 ‘혼돈의 시대’라는 말 그대로 큰 위기를 겪었다. 가톨릭 교회에선 세속적인 타락과 영적 혼란이 만연한 그 시절, 여인의 몸으로 교회의 영적 쇄신을 이끈 걸출한 인물이 회자된다. ‘첫 여성 교회학자’로 통하는 이른바 대(大) 데레사(1515-1582)성녀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관으로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순례에 나선 일행이 톨레도를 거쳐 지난 8일 찾은 곳은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85㎞ 떨어진 아빌라. 데레사 성녀의 개혁정신이 오롯이 담긴 쇄신의 땅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눈에 들어오는 육중한 황톳빛 성벽. 11세기 후반 국왕 알폰소 6세의 사위 우루고위 백작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쌓은 거대한 로마식 성벽이다. 대 데레사가 하느님을 만나는 황홀경에 빠진 모습의 조각상이 놓인 아빌라 대성당을 지나 안으로 드니 데레사의 숨결이 담긴 흔적들이 널려 있다. 어둡고 비열한 현실에서 무지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는 수도자의 역할을 강조해 청빈과 고행의 실천으로 일관했던 대 데레사 성녀. 아빌라 출신인 그는 어릴 적부터 신심이 깊었고 일곱 살에 순교 성인전을 읽고 오빠와 함께 순교자가 되겠다며 아프리카로 가려 가출했던 여인이다. “데레사 성녀 탄신 500주년 되는 해”라는 안내자의 설명과 함께 일행이 먼저 찾은 곳은 성녀가 19살 되던 해 입회해 33년간 몸담았다는 엔카르나시온(강생) 가르멜 수도원. 방황과 병치레로 혼란의 사춘기를 보낸 성녀는 이곳에서 기도 중 예수님이 기둥에 묶인 채 매질 당하는 환상을 본 후 크게 각성했다고 한다. 줄곧 성녀가 치중했던 모토는 바로 ‘하느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였다. 인격적인 신을 감각적으로 느끼기를 염원했던 성녀는 잇따른 신비체험을 겪었다. 수도원 뜰에 깔린 ‘7궁방’이 치열했던 수도의 삶을 보여준다. 끝없는 정진과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공유하자는 성녀의 뜻이 오롯하다. 스페인 전역에 17개의 봉쇄수도원을 세운 데레사 성녀. 영적 개혁의 구심점인 이 수도원들의 시작이 바로 가르멜 초기 규칙대로 수도생활을 하자며 4명의 수녀와 함께 세운 ‘맨발 가르멜회’이다. 엄동설한에도 샌들만 신고 다니는 절제와 고행의 실천. 외부와의 만남을 피한 채 좁은 방에서 금욕과 기도를 이어가면서도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바른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뜻의 발현이 새삼스럽다. 당시 수녀들의 유품이 전시된 2층에 놓인 손때 묻은 첼로, 기타 같은 악기며 천장 버팀목들에 그려진 그림들이 선명하다. 훗날 수도원 원장으로 가르멜 수도원으로 돌아온 데레사는 이 2층 방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한 아이를 만나 “나는 데레사의 예수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예수의 데레사’라는 별칭이 붙게 된 신비체험의 순간이다. 생애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를 고백하고 기도생활을 자세히 기록한 ‘자서전’이며 기도 및 영성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 ‘완덕의 길’, 자신의 영성생활을 종합한 ‘영혼의 성’은 수도자들이 탐독하는 저서들이다. “꼭 필요한 것 중에서도 정말 필요한 것을 선별할 줄 아는 영성이야말로 성녀 데레사가 발견한 기쁨이자 충만이었다.” 엔카르나시온 수도원의 다니엘 데 파블로 마로토 신부가 기자에게 전한 귀띔이다.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 지금 가톨릭 교회는 임종 때 그렇게 말했다는 ’예수의 데레사’ 정신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르고 있을까. 글 사진 아빌라(스페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TV 하이라이트]

    ■혼스(씨네프 밤 10시 10분) 첫사랑이자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했던 메린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자 알리바이가 없던 이그는 가장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지목받게 된다. 그러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지만 사람들의 의심과 경멸 속에 절망만이 남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난 이그는 자신의 머리에 죄의 상징과도 같은 뿔이 돋아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헬릭스 2(AXN 밤 10시) 북극 조사기관 안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실험에 대한 이야기. 일라리아가 바이러스 나르빅 C를 퍼뜨릴 예정임을 알게 된 앨런은 윙어의 상관에게 연락해야 한다고 하지만 윙어는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다. 이 와중에 피터와 앤은 모든 외부인을 죽이고 수도원을 재건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하고 줄리아는 ‘어머니’를 얻기 위해 에이미를 불사신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막 이래쇼:무작정 여행단(투니버스 밤 8시) 경북 영주에서 이어지는 무작정 여행단의 여덟 번째 여행 이야기. 육지에서보다 신나고 역동적인 수중 미션들이 무려 여섯 가지나 준비돼 있다. 물 밖에서도 성공하기 어려운 고난도의 게임들을 수행하느라 허우적대는 멤버들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평소 미션의 여왕으로 불리던 세나는 물속에서도 활약상을 이어 나갈 수 있을까.
  • 해외여행 | 당신에게 그리스③숨은 보석, 낙소스 Naxos

    해외여행 | 당신에게 그리스③숨은 보석, 낙소스 Naxos

    다시 가서 오래 머물고 싶은 곳 낙소스에서 무엇을 느꼈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겠다. “이렇게 좋은 곳을 왜 몰랐을까, 산토리니보다 더 아름다운데, 꼭 다시 와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 이곳은 관광객을 위한 섬이 아니라 주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곳이구나. 아, 너무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산토리니에서 두 시간 거리의 낙소스섬은 우리에게 무명의 섬이나 다름없다. 별다른 정보가 없는 여행지라 기대도 크지 않았다. 그리스관광청 홈페이지를 통해 키클라테스 제도의 섬 중 가장 크고 비옥하다는 것, 대리석이 많이 나는 부자 섬이라는 것, 험준한 산세 위에 오래된 교회와 수도원이 많고 구시가지 마을이 아름답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었다. 낙소스는 신화의 배경이기도 한데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 신화가 그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낙소스섬 옆에 위치한 크레타Creta섬에는 인간의 몸에 수소의 머리를 한 환상동물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는데, 이놈은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괴물로 미노스의 왕은 이 괴물을 미궁으로 몰아넣고 아테네에서 조공으로 바친 소년과 소녀를 먹이로 주곤 했다. 이를 알게 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이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크레타섬에 들어왔고 이때 미노스의 공주인 아리아드네가 왕자에게 반해 왕자를 돕게 된다. 그 덕에 왕자는 괴물을 물리쳤고 아테네로 공주와 함께 돌아가던 중 낙소스섬에 머무르게 되는데, 테세우스 왕자는 아리아드네를 섬에 버려두고 떠난다.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하고 왕자로부터도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는 처절한 슬픔에 휩싸였고 이때 그녀 앞에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나타난다.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에게 반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가 만난 곳이 바로 아폴로 신전 터. 본 섬과 방파제로 연결된 팔라티아Palatia섬(영어로는 island보다 작은 섬을 의미하는 islet으로 표기한다) 위의 아폴로 신전은 기원전 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낙소스에 발을 딛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섬의 상징이다. 올리브와 대리석이 있는 풍경 오전 일찍 일어나 낙소스 항구에서 섬 중앙을 시계방향 반대로 돌았다. 미니밴에 올라타 제일 처음 향한 곳은 ‘싸그리’라는 마을에 위치한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 신전을 향해 깎아지른 절벽을 돌고 산길을 오르던 중, 양떼와 양몰이 개와 목동을 만나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다시 산길을 한참 달리자 누군가의 탄성 소리가 들렸다. 아래로 펼쳐진 푸른 평야 한가운데에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푸르고 너른 대지 위에 하얀 신전이 우뚝 선 풍경은 더없이 우아하고 아름답고 풍요로웠다. 들꽃이 가득 핀 신전 주변으로 해가 비치자 풍요와 농업의 여신인 데메테르가 깨어나 올리브 열매를 따다 줄 것 같은 환상이 절로 일었다. 데메테르 신전을 뒤로하고 유명한 로컬 와이너리가 있다는 할키Chalki 마을로 향했다. 영어 표기를 ‘Chalki’라고 해서 칼키라고 읽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스 본토 발음으로 자세히 들어본 결과 c는 거의 묵음이다. 베네시안 통치 시절 이곳으로 구리 세공인들이 몰려들었고, 이내 섬의 남북을 잇는 중요한 교역로가 되었다. ‘Chalkos’가 그리스어로 구리, 청동이라는 뜻이니 우리말로 바꾸면 청동 마을 혹은 구리 마을 정도 되겠다. 과거 돈이 도는 마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신고전주의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마을 곳곳에 자리잡고 있고 그 아름다운 건물에 카페, 갤러리, 베이커리 등이 들어서 있다. 작고 조용한 마을 중앙에는 마당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듯한 아담한 광장이 있는데 성수기에는 평일에도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에게해 스타일의 아름다운 세라믹 제품들이 궁금하다면 낙소스에서 유명한 피시 & 올리브Fish & Olive, www.fish-olive-creations.com 갤러리를 들러 보는 것도 좋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다시 길을 나서 아피란토스 마을로 향했다. 인근의 필로티 마을과 더불어 예로부터 대리석이 많이 나는 부자마을이라 했다. 들은 그대로 계단, 다리, 난간 등 마을의 시설물 대부분이 대리석이다. 대리석이 어찌나 흔한지 식당에 걸린 그림도 캔버스 대신 대리석에 그려 넣었다.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고 항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얀 마을, 올리브 나무숲, 험준한 산, 작은 포도밭, 대리석이 빼곡히 박혀 있는 석산, 너른 평야, 절벽, 산꼭대기에 외롭게 선 교회 등 이런저런 풍경들이 밀려오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항구에 내리자마자 달려간 곳은 낙소스의 구시가지. 열 십자형으로 갈라지는 구시가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13세기 지어진 코라성과 비잔틴 뮤지엄으로 개관한 크리스피 타워가 위치해 있다. 이를 중심으로 경사면을 따라 사람들의 주거지역인 마을이 자리 잡았고 항구 쪽으로 내려갈수록 카페와 바, 갤러리, 소품숍, 올드 마켓 등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서 있다. 골목 곳곳을 고양이들이 떼 지어 다니는데, 애묘인들에게 여기만큼 재미난 곳이 없을 정도다. 한자 ‘樂’과 영어의 ‘source’를 결합해 노래처럼 부르며 다녔다. 그리고 후렴구에는 ‘다시 와야지’도 더해 불렀다. 미지의 섬이었던 낙소스는 하루 만에 동경의 섬이 되었다. ▶travel info AIRLINE 한국에서 그리스까지 직항은 없다. 터키항공을 이용해 이스탄불을 경유해 아테네까지 들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터키항공은 이스탄불까지 주 11회 운항하고 있으며 운항시간은 11시간 50분이다. 이스탄불에서 그리스 아테네까지는 주 42회 운항하고 있어 이용이 편리하다. 이스탄불에서 아테네까지는 1시간 30분 소요된다. 국제선 환승 승객 중 이스탄불 경유시 대기시간이 6시간 이상일 경우 무료로 이스탄불 시티투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아티카 패스 여행 항공편은 아테네 인in/아웃out, 로마 인/아웃, 혹은 로마 인/아테네 아웃 및 그 반대 방향의 여정을 고려할 수 있다. 터키항공은 아테네를 비롯해 이탈리아 로마 외에 바리Bari, 나폴리, 밀라노, 베니스, 피렌체 노선도 운행하므로 이들 도시에서 귀국 항공편을 바로 이용할 수 있다. 1800-8490 selsales@thy.com 이스탄불 시티투어 서비스www.istanbulinhours.com Tour 그리스 섬 투어의 필수 아티카 패스Attica Pass 유레일이 획기적인 상품을 출시했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수많은 섬 가운데 26개의 섬을 골라 페리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아티카 패스’다. 그리스 국내 페리를 최대 4회 탑승, 국제구간 왕복 2회 등 1개월 안에 총 6회의 페리 탑승이 가능한 패스로 국내 구간은 아티카 그룹의 블루스타페리(www.bluestarferries.com)가, 그리스 파트라스Patras항에서 이탈리아 바리Bari와 앙코나Ancona 항구까지는 수퍼패스트www.superfast.com가 운행한다. 국제 구간을 야간에 이용하면 숙박을 겸하게 되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아티카 패스 구입 후 원하는 섬의 노선과 스케줄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했다면 해당 노선의 페리를 미리 예약해야 한다. 야간에 탑승해 1박을 해야 하는 국제구간의 경우, 성수기를 기준으로 최소한 한 달 전에는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좌석이나 기숙사형 침대, 혹은 독립된 선실 침대를 예약해야 한다. 국내 구간일지라도 장거리인 경우에는 추가 비용을 내고 비즈니스 클래스의 선실 침대를 예약할 수 있다. 비용은 구간마다 다르다. 해당 페리의 웹사이트를 통해서 직접 예약하거나 한국에서 패스를 구입한 여행사에 의뢰하면 된다. 현지에서 페리에 탑승하려면 아티카 패스 외에 탑승권이 필요하다. 국제 구간의 경우 비수기에는 최소한 출발 2~3시간 전에 도착해 페리 사무소에 예약번호와 함께 여권 및 아티카 패스를 제시하면 탑승권을 받을 수 있다. 최대 2,400명을 수용하는 국내선은 출발 항구나 현지 곳곳에 있는 블루스타 사무소에서 탑승권을 미리 받을 수 있다. 이른 아침 출발하는 페리의 경우 그 전날 미리 받아두는 게 안전하다. 아티카 패스의 1등석 성인 요금은 242유로, 2등석은 174유로다. 4세 미만의 어린이는 무료이며 12세 미만의 어린이는 성인의 50%, 만 12~25세의 청소년은 158유로의 아티카 유스Youth 패스를 이용한다. 유레일 패스는 방문국 수에 따라 글로벌(28개국), 셀렉트(4개국), 리저널(2개국), 원컨트리(1개국) 패스 등 4종류가 있다. 유레일 패스의 총판매대리점은 ACP레일acprail.com, 레일유럽raileurope.com, STA트래블statravel.com 외에 인터넷 판매만 가능한 유레일닷컴eurail.com 등이 있다. food 재료 자체를 살리는 ‘특별하지 않은’ 그리스 음식 주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들이 많다.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올리브오일이 나고, 지중해성 기후가 길러낸 맛깔나는 식재료들이 도처에 널렸다는 것이 도리어 그리스 음식이 특별하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노력하지 않아도 맛있는데, 굳이 뭘 더해?” 하는 식이다. 이름만 다르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조리법의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알아보자, 그리스 음식! 수블라키 돼지고지나 닭고기 덩어리를 꼬치에 끼워 숯불에 구워 내는 음식이다. 주로 피타(중동지방에서 주로 먹는 납작한 모양의 빵)나 샐러드 등과 함께 나온다. 양이 어마어마하지만 기름이 쪽 빠지고 숯불 향이 짙게 밴 고기는 맛이 좋아 금세 한 접시 뚝딱이다. 무사카 이탈리아의 라자냐와 비슷한 음식이다. 주로 가지와 치즈, 고기와 감자 등을 층층이 쌓아 올려 소스를 바른 후 오븐에 구워 낸다. 그릭 샐러드 오이, 피망, 올리브, 토마토 등 색색의 야채를 수북이 쌓고 올리브오일을 쓱 두른 후 페타 치즈를 눈처럼 뿌려 낸다. ‘음식의 9할은 재료 맛’이라는 말을 온전히 실감할 수 있다. 재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리스에 가면 오렌지는 꼭 맛보자.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그 수많은 오렌지들은 오렌지가 아니었어!”라고 한탄할 정도로 달고 탱글탱글하고 상큼하다. 그릭 요거트 그릭 샐러드와 더불어 그리스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바로 그릭 요거트다. 케이크를 떠먹는 듯한 식감의 단단하고 탄력 있는 요거트 한입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정도다. 호텔 조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본 메뉴로 지중해에서 맞는 아침을 더없이 상쾌하게 만들어 줄 음식이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꿀을 버무려 먹으면 금상첨화! Drink 취향 따라 즐기는 전통주 술 좋아하는 당신이 그리스에서 꼭 맛봐야 할 술은 세 가지. 첫 번째는 그리스 전통 술인 우조다. 알코올도수 43도에 달하는 증류주로 아니스 열매, 허브, 포도, 민트 등을 조합해 만든다. 향 때문에 호불호가 확연히 갈린다. 누군가는 향으로 마시는 술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엄마 화장품 맛이라고도 한다. 보통 물과 얼음을 함께 내는데 우조에 물을 타면 색은 우윳빛으로, 맛은 감기약처럼 변하는 게 특징이다. 두 번째는 산토리니의 로컬 맥주인 동키 맥주다. 와인으로 유명한 메사 고니아 마을에 동키 맥주 브루어리가 있는데, 제조하는 양이 많지 않아 몇몇 타베르나와 바에서만 맛볼 수 있다. 알코올 도수에 따라 옐로우 동키, 레드 동키, 크레이지 동키라는 센스 있는 이름을 달았다. 세 번째는 와인이다.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아마도 그리스 와인이 인류 최초의 와인이지 않을까? 산토리니 와인은 아씨르티코 품종의 화이트 와인이 대부분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디저트 와인으로 정평 난 달달한 맛의 빈산토 와인이다. restaurant 술과 요리, 음악이 있는 ‘타베르나’ 쉽게 설명하자면, 주점 같은 레스토랑이라고 하겠다. 주로 오후 늦게 문을 여는 집이 많고 새벽까지 영업을 한다. 아테네의 아나피오티카는 가장 인기 있는 타베르나로 손꼽힌다.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그리스 전통 음식과 커피, 술, 디저트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멋진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산토리니는 이아 마을보다 피라 마을에 맛집이 몰려 있다. 마마스 하우스www.mamashouse-santorini.gr는 미코노스에서 산토리니로 이주해 온 주인장이 에게해 퀴진을 선보인다. 무사카와 칼라마리, 연어, 토끼고기 요리 등이 대표 메뉴다. 또한 콘비비움conviviumsantorini.com은 마마스 하우스에 비해 격조 있는 느낌의 파인 다이닝을 선보인다. 멋지게 플레이팅 된 지중해 퀴진을 맛볼 수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문유선 취재협조 유레일 그룹 www.eurailgroup.org,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승려와 140마리 동거 ‘태국 호랑이 사원’ 사건사고 속출

    승려와 140마리 동거 ‘태국 호랑이 사원’ 사건사고 속출

    태국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호랑이 사원’에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호랑이 사원이라 불리는 이곳은 방콕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승려들과 140여 마리의 호랑이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승려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맹수와 거리낌 없이 친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 관광지로 등극했다. 하지만 사나운 동물과의 ‘동거 생활’이 끊임없는 잡음으로 얼룩지고 있다. AFP 등 해외 언론의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23일 이 사원의 수도원장(64)은 사원에서 키우던 호랑이 중 한 마리의 공격을 받아 팔과 치아가 부러진 것도 모자라 얼굴을 물려 큰 부상을 입었다. 당시 이 수도원장을 치료한 의사는 “호랑이가 ‘고의적으로’ 공격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내놓았지만, 호랑이들이 수도원의 주장처럼 안전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수도원이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현지의 다수 동물보호단체는 사원 내에서 맹수를 풀어놓는 것은 절대 안전하지 못하며, 현지법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수도원장을 공격한 호랑이는 몸무게 300㎏에 달하는 거구로, 이 사원에서 무려 7년간 사육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원 측은 공격을 막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원이 호랑이를 통제하기 위해 마취제를 투여하고 학대를 서슴지 않는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2월에는 이 사원이 호랑이를 불법으로 사고판 정황이 포착돼 조사가 이뤄진 바 있으며, 호랑이 사원 입장료(한화 약 3만 6000원)와 산책 비용 등을 거둬들여 호랑이를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태국 야생동식물보호부(DNP)는 AFP와 한 인터뷰에서 “이 사원이 호랑이 같은 맹수를 소유하고 대중에게 노출시키는 것과 관련한 새로운 법안을 추진할 예정”이라면서 “지난 4월부터는 호랑이를 껴안고 사진을 찍거나 관광객들에게 요금을 받는 행위를 전면 금지시켰다”고 밝혔다. 한편 이 호랑이 사원 측은 '미물'에 불과한 호랑이들도 이곳에서는 승려와 마찬가지로 살육을 끊고 도를 닦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건·사고로 얼룩진 태국 ‘호랑이 사원’

    사건·사고로 얼룩진 태국 ‘호랑이 사원’

    태국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호랑이 사원’에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호랑이 사원이라 불리는 이곳은 방콕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승려들과 140여 마리의 호랑이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승려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맹수와 거리낌 없이 친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 관광지로 등극했다. 하지만 사나운 동물과의 ‘동거 생활’이 끊임없는 잡음으로 얼룩지고 있다. AFP 등 해외 언론의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23일 이 사원의 수도원장(64)은 사원에서 키우던 호랑이 중 한 마리의 공격을 받아 팔과 치아가 부러진 것도 모자라 얼굴을 물려 큰 부상을 입었다. 당시 이 수도원장을 치료한 의사는 “호랑이가 ‘고의적으로’ 공격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내놓았지만, 호랑이들이 수도원의 주장처럼 안전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수도원이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현지의 다수 동물보호단체는 사원 내에서 맹수를 풀어놓는 것은 절대 안전하지 못하며, 현지법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수도원장을 공격한 호랑이는 몸무게 300㎏에 달하는 거구로, 이 사원에서 무려 7년간 사육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원 측은 공격을 막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원이 호랑이를 통제하기 위해 마취제를 투여하고 학대를 서슴지 않는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2월에는 이 사원이 호랑이를 불법으로 사고판 정황이 포착돼 조사가 이뤄진 바 있으며, 호랑이 사원 입장료(한화 약 3만 6000원)와 산책 비용 등을 거둬들여 호랑이를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태국 야생동식물보호부(DNP)는 AFP와 한 인터뷰에서 “이 사원이 호랑이 같은 맹수를 소유하고 대중에게 노출시키는 것과 관련한 새로운 법안을 추진할 예정”이라면서 “지난 4월부터는 호랑이를 껴안고 사진을 찍거나 관광객들에게 요금을 받는 행위를 전면 금지시켰다”고 밝혔다. 한편 이 호랑이 사원 측은 '미물'에 불과한 호랑이들도 이곳에서는 승려와 마찬가지로 살육을 끊고 도를 닦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해외여행 | 산시 山西 고대 중국 불교문화의 중심을 보다

    해외여행 | 산시 山西 고대 중국 불교문화의 중심을 보다

    산시성山西省은 유서 깊은 고대 불교문화의 고장이며 송나라 이전의 목조건축물들을 전국의 70% 이상이나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덕분에 중국의 문화유산을 어느 정도 꿰뚫고 있다는 당신에게도 그곳은 꽤나 볼거리가 많은 땅이다. 석탄도시, 관광도시로 태어나다 산시성山西省은 베이징에서 버스로 6시간, 최근 개통된 고속열차高铁를 이용하면 3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중국 최대 지하자원인 석탄의 가공이 많은 곳이어서 그런지 숨을 들이쉴 때마다 미세한 석탄 냄새가 느껴졌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고대 불교문화를 보기 위해 산시성을 찾았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성도인 타이위엔太原으로 향하는 전세기가 늘어난 덕분에 다양한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2013년에는 산시성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따통大同의 도로도 말끔하게 정비했다. 그래서인지 대도시 못지않게 넓고 깨끗한 관광도시의 모습을 갖췄다. 타이위엔은 ‘아주 큰 평원’이라는 뜻으로 2,500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황허黄河의 가장 큰 지류인 펀허汾河가 이 도시의 중부를 지난다. 강의 이름을 딴 술 ‘펀주汾酒’는 중국 8대 명주로 꼽히는데 당나라 시인인 두보杜甫가 <청명淸明>이라는 시에서 펀주가 생산되는 행화촌을 이야기하면서 유명세를 얻게 됐다. 타이위엔에는 수많은 문화유산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진사晉祠’는 중국의 고대 역사와 건축기술 그리고 정원예술이 한곳에 모여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현존하는 진나라의 사당 중 가장 오래된 사당이기도 하다. 타이위엔 사람들은 ‘타이위엔에 처음 온 사람이 진사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베이징에서 자금성을 들르지 않고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종종 말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진사는 춘추시대 진나라를 세운 탕수위唐叔虞의 어머니이자 조우왕周武王의 아내인 이장邑姜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진사의 중심에는 북송시대에 지어진 성모전聖母殿이 있다. 성모전은 진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8개의 기둥에 8마리의 용이 조각돼 있는데 이 기둥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반룡 나무기둥이다. 기둥에 새겨진 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발가락이 네 개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온전한 용은 황제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기둥 안쪽에는 총 43개의 시녀상을 새겨 놓았는데 각각의 시녀상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당시 이장을 보필하던 시녀들의 얼굴 표정부터 옷맵시까지 생생히 살아 있다. 중국 조각사史에서 유일하게 궁중의 인물들을 반영한 조각상이라고. 성모전을 지나면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는 난로천難老泉이 있다. 불로천不老泉이라고도 불리는 이 샘물은 과거에는 물이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는데 현재는 인공적으로 샘물을 유지하고 있다. 진사 안에는 수천년을 거뜬히 넘긴 측백나무들도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나무는 ‘와룡백臥龍柏’. 3,000년이나 된 측백나무로 나무 기둥이 남쪽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진사 95위안(성수기), 75위안(비수기) 8:00~18:00(4~10월), 8:30~17:00(11~3월) www.chinajinci.com +86 351 6020014 미스테리를 품은 목탑 산시성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건축물로는 타이위엔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해 북쪽으로 3시간 30분을 달려가야 볼 수 있는 숴저우朔州의 응현목탑應縣木塔이 있다. 정식 명칭이 ‘불궁사 석가탑’인 응현목탑은 불궁사 내부에 있는 목탑으로 일반적으로 사원은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그 외의 부속 건물들을 갖추지만 불궁사는 불탑인 응현목탑이 중심에 자리해 독특하다. 응현목탑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목탑으로 숴저우 잉현應縣에서 태어난 두 황후가 세웠다. 11세기 초 숴저우 잉현의 곽씨가 북송의 인종 황후가 되었고, 같은 시기에 잉현의 소씨가 요나라 흥종의 황후가 되었다. 한 지역에서 두 국가의 황후가 나온다는 것은 드문 일인데다 유난히 고향생각이 각별했던 두 황후는 같은 마음을 담아 목탑을 만들게 됐다고. 응현목탑은 작은 쇠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나무로만 이어 만들었다. 두공과 기둥, 들보를 서로 끼우고 물린 이 건축물은 95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견고하다. 목탑의 높이는 67.31m, 정팔각형의 직경은 30.27m. 총 7,430여 톤의 목재가 탑 제작에 사용됐고 외부에서 보기에는 5층으로 지어졌지만 층과 층 사이에 숨어 있는 층이 있어 모두 9층이다. 동행한 가이드는 응현목탑의 3대 불가사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첫 번째는 지진에도 끄떡없는 견고함이다. 1305년 숴저우에 큰 지진이 발생해 5,800여 채의 건물이 무너지고 1,400여 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응현목탑은 전혀 피해가 없었다고. 7일 내내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불궁사의 다른 건물들은 다 무너졌지만 탑만은 멀쩡했다. 두 번째는 수많은 낙뢰를 이겨냈다는 것. 응현목탑은 긴 시간을 지내면서 무수히 많은 낙뢰를 맞았지만 목재 조형물임에도 불꽃 한 번 보이지 않았다니 이 역시 불가사의다. 마지막 불가사의는 벌레가 없다는 것이다. 응현목탑의 주 재료는 소나무인데 소나무의 특성상 더운 여름이 되면 벌레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탑은 예외다. 여름이 시작되면 찾아왔다가 가을이 끝나면 떠나는 제비가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 역시 신비롭긴 마찬가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응현목탑 60위안 7:00~18:00 www.yxmt.net.cn 낭떠러지에 만들어진 252개의 석굴 따통大同은 산시성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관광자원도 가장 풍부하다. 과거 북위 왕조의 도읍과 요·금 왕조의 두 번째 수도로 군사 전략의 요충지이기도 했고, 고대 한족과 북방 소수민족이 빈번하게 다녀갔던 곳도 따통이다. 중국 성급 관광지부터 국가급 관광지까지 중요 문화재 보호대상을 60여 곳이나 보유하고 있으며 유네스코에 등재된 관광지만 세 곳이나 된다. 운강석굴云岡石窟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5A급 관광지다. 석굴이란 절벽, 암벽 등에 굴을 파고 지은 절을 말하는데 산시성의 운강석굴은 깐수성의 돈황막석굴敦煌石窟, 허난의 용문석굴龍門石窟과 함께 중국의 3대 석굴로 알려져 있다. 육조시대에 건축된 불교 유적으로 낮은 낭떠러지를 파서 만들었다. 동서로 1km 정도에 무려 252개의 석굴과 5만1,000여 개의 크고 작은 불상이 있는데 그중 석굴은 21개의 대굴과 20개의 중굴 그리고 무수히 많은 소굴로 이뤄졌다. 그 많은 석굴 중 관광객이 볼 수 있는 곳은 한정돼 있다. 제5굴, 6굴은 석굴의 내부로 들어가서 자세히 볼 수 있는 반면 7굴, 8굴은 오랜 동안 비와 바람의 풍화로 파손이 심하고, 제9굴부터 13굴까지는 지난해 시작된 보수작업으로 한동안 볼 수 없게 됐다. 운강석굴을 대표하는 불상은 제20굴의 운강노천대불雲岡露天大佛이다. 13.8m의 불상은 굴 앞 벽이 붕괴되면서 그 모습이 완전히 밖으로 드러났다. 노천대불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석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를 알 수 있다. 불교경전부터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까지 내부에 구석구석 새겼기 때문이다. 내부에는 전체적으로 여기저기 동그란 구멍이 보이는데 구멍에 짧은 나무를 끼운 뒤 나무의 높이만큼 색이 있는 흙으로 메웠다. 석굴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색을 칠한 것이다. 간혹 불상의 상체와 하체의 비례가 사뭇 다른 부처를 볼 수 있는데 더 먼저 만들어진 석굴의 불상일수록 그 차이가 크다. 석굴을 파기 시작하던 당시, 기술적인 문제가 따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불상을 조각하려면 상체와 하체를 나눠 진행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상체와 하체의 비례를 맞추기 쉽지 않았다고. 운강석굴 150위안 8:30~18:00(11월~4월14일), 8:10~18:30(4월15일~10월31일) www.yungang.org +86 0352 3026817 절벽 위에 매달려 있는 절 따통시에는 또 하나의 유명한 건축물이 있다. 지난 2010년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 그리스의 메테오라 수도원 등과 함께 <타임>지가 뽑은 ‘세계 10대 불가사의 건축물’에 선정된 현공사悬空寺다. 따통시 헝산恒山에서 약 65km 떨어진 곳에 지어진 현공사는 ‘공중에 걸려 있는 절’로 절벽에 위태롭게 세워져 있다. 멀리서 현공사를 바라보면 절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보이는데 정작 이 기둥은 절을 지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현공사가 걸려 있는 절벽에 기다란 목재가 들어갈 만큼의 깊은 홈을 파낸 뒤 목재를 끼워 넣고 절벽 밖으로 나온 남은 목재 위에 목판과 기둥, 벽과 지붕을 세워 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난간과 기둥은 그것을 돕는 보조역할만을 하고 있다고. 그러니 실제로 현공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절벽 사이에 끼워져 있는 나무 목재인 셈이다. 그 위에 총 면적 152㎡의, 크고 작은 가옥 40채로 이루어진 절이 세워졌다. 현공사를 절벽에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알아 둬야 할 것이 있다. 현공사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불교, 도교, 유교가 한곳에 모여 있는 절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40개의 가옥 중 맨 꼭대기 층인 삼교전에서는 석가모니와 공자, 노자의 조각상이 한곳에 모셔져 있는 기묘한 모습을 볼 수 있다. 1,400년 전 북위시대 후기에 세워진 현공사는 지면으로부터 90m 높이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지면에 흙과 모래가 쌓였고 현재 지면과의 차이는 58m에 불과하다. 또 당시 현공사의 이름은 현공각玄空阁으로 현玄은 중국 전통 종교인 도교를, 공空은 불교를 뜻하는 의미였지만 후에 현玄이 현悬으로 바뀌었다고. 중국어 발음상 두 글자의 발음은 같지만 바뀐 현悬에는 ‘걸려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공중에 걸려 있는 절’임을 강조하기 위해 바꿔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 현공사 130위안(11~2월 125위안) 8:00~18:00(6~10월), 8:30~17:30(5~11월) ▶travel info Sanxi AIRLINE 인천-타이위엔 노선에는 정기편이 없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인천-타이위엔 전세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모두투어, 하나투어 등에서 전세기를 이용한 상품을 판매한다. 인천-베이징 노선의 항공을 이용한 후 고속철도, 버스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HOTEL 산시성은 기후가 건조해 대부분의 호텔에 가습기가 비치돼 있다. 특히 타이위엔에 위치한 리화호텔丽华大酒店은 샴푸, 보디워시, 치약 등도 종류별로 준비해 놓았으며 웰컴워터에 웰컴과일, 메이드의 환영 손 편지까지 기분 좋은 여행을 돕는다. Famous 라오천추老陈醋 수수, 과일, 옥수수, 고구마 등 다양한 재료를 최소 1년 이상 숙성시켜 만든 검은 식초로 산시성의 대표 특산물이다. 기본적으로 3~5년은 숙성시켜야 제대로 된 맛이 나온다고. 집집마다 담그는 방법도 재료도 다르지만 새콤달콤한 맛은 비슷하다. 타이위엔에서 어느 음식점을 가도 추醋가 가장 먼저 나올 정도. 기름진 음식에 추를 넣으면 느끼한 맛을 잡아 주는 훌륭한 조미료가 될 뿐만 아니라 소화, 살균 작용을 돕고 미용에도 좋다. 혹시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면 최소 두 번 이상 밀봉하길 추천한다. 새 제품이라도 뚜껑이 약해 병 밖으로 새어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크기는 160㎖ 소량부터 2,350㎖ 대용량까지 다양하며 가격 역시 사용한 재료와 숙성도에 따라 8위안(한화 약 1,400원)부터 3,000위안(한화 약 52만5,000원)까지 천차만별이다. 펀주汾酒 타이위엔에 흐르는 펀허汾河에서 이름을 따온 펀주는 중국 8대 명주 중 하나이자 타이위엔의 대표 술이다. 기본적으로 40~60도로 알코올 도수가 높고 중국 백주의 특징인 향기로운 맛이 난다. 숙취가 없는 것이 특징. 10년산부터 숙성도에 따라 다양한 크기와 가격대가 있다. 다오시아오미엔刀削面·도삭면 국수가 주식인 산시성에서 가장 유명한 면. 일반적인 면을 뽑는 것처럼 길게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칼로 밀가루 반죽을 ‘깎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깎아낸 면은 달걀과 토마토를 넣은 소스에 볶아내 달달하면서도 독특한 맛이 난다. 여기에 산시성의 특산인 추를 곁들이면 제대로 된 다오시아오미엔이 된다. Train 고속철도高速动车 최근 큰 성장을 보이는 중국의 고속철도. 최고 시속 350km의 빠른 속도는 물론 비행기 못지않은 안락함도 갖췄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G-고속철도고속철도G-高速动车를 이용하면 베이징시北京西역에서 타이위엔난太原南역까지 2시간 4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1~3등석에 비즈니스석까지 있으며 1등석 기준 288위안(한화 약 5만1,000원). 글·사진 양이슬 기자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www.visitchina.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아벨라르·엘로이즈 지음, 정봉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중세 수도사와 수녀가 주고받은 사랑의 편지. 파리의 이름 난 철학자 아벨라르는 성당 참사회원 퓔베르의 조카딸 엘로이즈의 가정교사였다. 둘은 22세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졌고 아들을 낳은 후 비밀리에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퓔베르는 이들의 결혼을 폭로하고, 이에 항의하는 엘로이즈를 괴롭혔다. 아벨라르는 퓔베르의 학대로부터 피신시키기 위해 엘로이즈를 수도원으로 보냈고 퓔베르는 이를 가문의 모욕으로 여겨 아벨라르를 거세했다. 이 일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각각 수도사와 수녀가 된다. 아벨라르가 이런 내력의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고 엘로이즈가 이를 우연히 읽은 뒤 아벨라르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이들 사이에 편지가 오간다. 책은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받은 ‘사랑의 편지’ 전체와 ‘교도의 편지’ 일부를 담고 있다. 문학성 짙은 두 사람의 편지는 숱한 예술작품에 영향을 주었으며 두 사람이 합장된 묘지에는 참배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72쪽. 1만 2000원. 복잡한 세계 숨겨진 패턴(닐 존슨 지음, 한국복잡계학회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복잡성 이론은 다양한 분야에서 생기는 예측불허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이론으로 점차 주목받고 있다. 교통체증을 비롯해 주식시장 붕괴며 테러는 물론 암세포의 공격까지 망라한다. 복잡성 이론에 관심이 늘면서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들고 있지만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여전히 ‘완숙한 이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책은 다양한 복잡성 연구로 이름 난 물리학자가 복잡성 이론을 쉽게 정리한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일반인들에겐 쉽지 않은 분야이지만 저자의 오랜 연구 덕분에 명쾌하게 풀어진다. 경제학, 생물학, 의학, 정치학 등에서 싹트는 복잡성 이론의 활용 가능성을 일반인도 이해하도록 설명한 게 특징이다. 저자는 복잡성 이론에 대해 “학계에 남은 가장 도전적이고 열린 과제를 품은 ‘거대과학’이자 매일 마주치는 생활이나 국제 안보까지 주요한 현실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334쪽. 1만 8000원. 위기의 장군들(김종대 지음, 메디치 펴냄) 한국군의 장교·장군단은 국방과 한반도 평화,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중차대한 안보 세력이다. 하지만 요즘 군에는 성추행이며 집단폭력과 그로 인한 자살, 근무지 이탈이 횡행한다. 그런 일탈을 방지하고 해결해야 할 장교·장군단은 변명·보신에 급급하다. 책은 한국 장교, 특히 장군들의 비리·음모를 낱낱이 파헤쳤다. 무엇보다 YS 정권부터 현 정권까지 장군들과 권력층의 끈끈한 결탁을 볼 수 있다. 현대사의 중요한 시점에 장군들이 어떤 행태를 보이고 권력과 야합했는지를 수많은 전·현직 장교 인터뷰로 폭로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최고위 군 인사, 패권을 놓고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는 영호남 출신 장군들, 핵심 기밀을 언론에 넘기는 장군들, 사건·사고 때마다 장병 안위는 뒷전인 채 진실을 은폐하는 장군들…. 저자는 장교·장군단이 정치 논리에 초연하면서도 명예를 목숨같이 지키는 집단윤리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326쪽. 1만 6500원. 로산진 평전(신한균·박영봉 지음, 아우라 펴냄) 기타오지 로산진(1883~1959)은 요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일본 요리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만화 ‘맛의 달인’ 주인공 유잔의 실제 모델이다. 책은 그 로산진의 삶과 예술세계를 재미있게 다뤘다. 로산진은 남의 집 양자로 들어가 독학으로 한자를 익혀 요리의 길을 개척한 뒤 일본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재료가 가진 본래 맛을 살리라’는 요리 철학으로 유명하다. 자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과도한 손질이나 조미료 사용을 자제할 것을 강조했다. 책에는 요리뿐 아니라 도자기, 서예, 전각, 칠기, 디자인에도 일가를 이룬 독특한 예술가로서의 발자취가 생생하다. 미국과 프랑스의 세계적인 요리를 혹평하는가 하면 ‘인간국보’(무형문화재 기술보유자)의 지정을 거부하는 등 형식과 권위에 거부감을 드러내 ‘20세기 최고의 망나니’로 불렸던 면모가 흥미롭다. 304쪽.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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