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수노
    2026-07-08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7-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406
  • 실업 실태와 전망

    IMF체제 2년째인 올해의 최대 관심사는 실업문제다. 지난해 말을 고비로 우리 경제는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다.바닥을 드러냈던외환보유고는 470억달러에 이르렀고 외국인 투자도 되살아나고 있다.영국의신용평가기관인 피치 IBCA가 19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상향 조정한데 이어 미국의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사와 무디스사도 조만간 같은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소비도 모처럼 기지개를 펴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민간 연구기관들은 고용불안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빅딜에 따른 대기업의 정리해고가 본격화되고 공공부문 개혁과 함께 실업자가 쏟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직근로자 10명 가운데 1명이,비정규직근로자 4명 가운데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지난해 11월의 실업률은 7.2%,실업자수는 156만명이다.지난해 7월 이후 4개월째 감소세를 보이던 실업자수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노동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과올 1월에 각각 10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늘었을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올 연말까지 실업률는 7.2%,실업자수는 150만명선에서 묶을 계획이다.올 1·4분기에는 대학 등 졸업자의 노동시장 진입 및 대기업·공공부문의 구조조정 등 계절적 요인으로 일시적으로 실업자가 200만명을 넘겠지만 공공근로사업 확대 및 재취업훈련 강화 등으로 적극 대처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민·관 연구기관의 전망은 이보다 비관적이다.산업은행은 올 평균실업률을 8.7%로 예측한다.경제성장률이 소폭 상승세로 돌아서지만 고용창출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데다 구조조정으로 실직자는 더욱 늘어난다는설명이다. 고용승계를 둘러 싼 노사 갈등도 ‘태풍의 눈’이다.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대기업 빅딜과 공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감축에 반발,이미 총력투쟁을 선언한 상태다.실업자의 노조가입 및 복수노조 문제 등도 악재로 꼽히고 있다.金名承
  • 『7월 새 출범 전교조』교직사회의 변화

    전교조가 오는 7월부터 합법적인 활동을 시작함에 따라 교직사회 및 일선교육현장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일선 학교에 처음으로 교원노조가 만들어지고 평교사로 결성되는 노조는 자연스레 교장·교감 중심의 기존 학교 운영체제 등 교육 전반에 걸쳐 개혁을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교조도 참교육 실현 및 교육환경 개선을 통해 교육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고 있어 교육계와 사회 일각에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李京喜 전교조 대변인은 “교장 중심의 수직문화가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는 수평문화로 바뀌는 등 교직사회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는 앞으로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임금,호봉 승급,과목편제,연수,장학제도 등을 교섭하게 된다.일선 학교노조도 개별적으로 학교측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 복수노조 허용에 따라 기존 교총조직은 관리자그룹과 평교사 중심의 노조로 갈리고 전교조도 전문단체와 노조로 이원화될 가능성도 있다. 일선 학교에선 전교조에 가입한 노조원 교사와 교총에 속한 비노조원 교사로 양분되고 이들간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게다가 교총과 전교조가서로 유리한 교섭을 위해 세불리기 경쟁을 펼칠 가능성도 크다. 특히 입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한 교과개편 및 학생평가방식 개선,국민소득7% 수준의 교육예산 확보,교사회·학생회·학부모회 등의 법적 기구화 등 전교조가 주장해온 사안들을 놓고 학교측과의 갈등이 더욱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노동3권 가운데 파업 등 단체행동권이 유보돼 10년 전의 ‘전교조파동’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7월 새 출범 전교조』한국노총 움직임

    한국노총은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지자 별도의 교원노조를 세우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구체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노총은 이미 내부 추진위원회를 구성,전국 시·도지부별로 알고 지내는 교사 및 동문,선·후배를 대상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이달 말까지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을 중심으로 준비위 결성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국 규모의 단일노조를 만들지 시·도 단위노조의 연맹체로 꾸릴지 등 조직체계에 대해선 논의중이다.한국노총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별도의교원노조를 설립하는 이유를 납득시키는 것.노총은 전교조와 뜻을 달리하는교사들에게 제3의 선택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 NBA 분쟁타결 새달 점프볼

    │뉴욕APAFP연합│미국 프로농구(NBA) 구단주와 선수노조가 191일 동안 끌어온 분쟁을 끝내고 2월 첫주부터 시즌을 시작한다. 데이비드 스턴 NBA커미셔너와 빌리 헌터 노조 전무는 7일 밤샘 마라톤협상을 벌인 끝에 더이상의 파국을 막자는데 뜻을 같이하고 남은 경기를 개최키로 전격 합의했다. 이번 결정은 잔여시즌 취소 여부를 투표에 부치려던 구단주 총회를 불과 29시간 남기고 이뤄졌으며 선수노조가 합의사항을 찬성179표,반대 5표로 통과시켰다.구단주들은 8일 총회에서 이를 최종 확정짓는다. 이에 따라 2월 첫주부터 시작하는 98∼99시즌은 지난해에 비해 팀당 32게임이 줄어든 50게임의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로 치러진다. 연간 수입액의 60%를 연봉으로 지급하자는 선수들과 50% 밖에 주지 못하겠다고 구단주들이 맞서 비롯된 이번 분쟁에서 양측은 일단 2003년부터 3년간연봉지급률을 55%로 하고 7년후에는 57%로 늘리는데 뜻을 모았다.
  • NBA선수노조 시즌취소 결정

    │뉴욕외신종합연합│ 미프로농구(NBA)가 정규시즌 취소라는 최악의 사태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미프로농구 선수노조 집행부는 5일 새벽 투표를 통해 “구단주들에게 98∼ ’99시즌 취소를 권고하자”는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런 노조 결정사항을 통보받은 데이비드 스턴 NBA커미셔너도 “선수노조가 이번 결정안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8일 회의를 열어 시즌 취소 여부를 투표 에 부칠 것”이라고 밝혔다. 스턴 커미셔너는 “선수들의 이번 결정은 서로간의 의견차를 좁히려는 의도 가 아니다”면서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한발짝도 가까워지지 못했 다”고 개탄했다. 선수노조 패트릭 유잉 노조위원장과 스턴 커미셔너는 이날 TV방송의 토크쇼 에 출연해 국민들을 상대로 각자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한편 스턴 커미셔너는 새로운 선수들로 대체시켜 99∼2000시즌을 진행하는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고 덧붙였다.
  • 친일의 군상:16/金羲善(정직한 역사 되찾기)

    ◎상해 臨政에 ‘위장취업’/독립운동 진영에 타격/일본육사 졸업… 구한말군대 간부지내/독립운동 ‘길목’서 체포된뒤 변절/3·1운동후 임정가담… 1922년 재차 변절/1980년 국민장 서훈… 96년 재심서 취소 지난 96년 10월 黃昌平 당시 국가보훈처장은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역대 독립유공자 가운데 徐椿 등 5명에 대해서 독립유공자 예우를 배제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이들의 친일행적이 확인됐다는 것. 이에 앞서 재야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역대 독립유공자 가운데 친일경력자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 수 차례 제기돼 왔었다. 그러나 당국이 이를 공식 확인하여 해당자들의 독립유공자 예우를 박탈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 박탈’이란 서훈취소는 물론 연금지급 중단 등 당국의 각종 보훈혜택을 취소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예우 박탈대상자로 발표한 5명 속에는 金羲善(김희선)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그는 상해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을 거쳐 대한독립군 참의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군과전투중 ‘사망했다’는 이유로 건국훈장을 추서받았다. 63년 내각사무처가 독립유공자를 심사,포상할 당시 그는 훈장급이 아닌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보훈처의 공적 재심사를 거쳐 80년 그는 국민장(3등급,현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국민장이라면 柳寬順 열사나 임정요인급이 받은 등급이니 그의 독립운동 공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런 그가 서훈이 취소됐다면 친일경력이 문제됐다는 얘긴데 과연 진상은 무엇인가? 김희선(1875∼1950)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호는 옥봉(玉峯)이다. 일본 육사를 졸업(11기)하고 귀국하여 한말 구한국군 육군참령(현 소령)으로서 시위기병대장,시종무관을 지냈다. 1907년 일제의 군대해산에 격분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그는 1910년 도산 安昌浩가 주도한 청도회담(靑島會談)에 참석하였다가 중국본토로 가는 도중에 일본 관헌에 체포돼 강제로 귀국당하였다. 독립운동으로 나선 첫 길목에서 좌절당한 셈이다. ○사이토총독 3차례 면회 이무렵 일제는 광범위한 회유정책을 전개하고 있었다. ‘한일병합’ 직후 일제는 조선내에서 그들의 식민정책을 효과적으로 펴나가기 위해 직업적 친일분자를 정책적으로 육성하였는데 여기에 그가 걸려들고 말았다. 1913년 2월8일자 조선총독부 ‘관보(官報)’에 따르면 그는 동년 2월4일부로 조선총독부 군수(평안남도 개천군수,고등관 6등)에 임명되었다. 1915년 5월18일자 ‘관보’에는 동년 5월12일부로 평안남도 안주군수에 임명된 것으로 나와 있다. 물론 그는 임명만 된 것이 아니라 실지로 두 곳의 군수직에 취임했었다. 일제는 김희선과 같은 변절자들에게 경력을 참작하여 각기 능력에 걸맞는 대우와 임무를 부여하였다. 그에게는 군수자리와 거액의 하사금이 내려졌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그와 같이 변절한 申泰鉉은 간도(間島)방면에서 농장 경영권을 부여받았다. 그 대가로 독립운동가를 투항하도록 권유하는데 이용됐다. ‘사이토(齋藤實)문서’에 의하면 김희선은 1919년 8월부터 1921년말 사이에 사이토(齋藤實) 총독을 3차례 면회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 수치는 친일파 尹德榮·李夏榮·尹致昊·申錫麟 등이 사이토를 면회한 횟수와 동일하다. 안주 군수 재직중 1919년 3·1만세의거가 터지자 김희선은 총독부 군수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지원하다가 마침내 군수직을 버리고 상하이(上海)로 탈출하였다. 그가 만세운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상하이로 탈출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3·1운동후 상하이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에서 군무부 차장 겸 육군무관학교 교장,군무총장 대리 등을 역임하였다. 또 1922년 1월에는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되기도 했다.(‘독립유공자공훈록’,제5권,국가보훈처 발행) 그러나 그는 어떤 연유에선지 1922년경 두 번째로 다시 친일,변절의 길로 들어서고 만다. “김희선은 아(我)정부에서 중(重)히 등용하여 우우(優遇,우대)하여 왔는데 은의(恩義)를 망각하고 변심하여 드디어 적에게 투귀(投歸,투항)하였다. 그 죄 사면(赦免)하기 어렵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관보격인 ‘임시공보’ 제2호(1922년 2월25일) 내용중 김희선 관련부분만 발췌한 내용이다. 그의 변절사실을 확인할만한 자료는 또 있다. 상해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 기사를 보면 그의 변절은 인간적인 면에서도 파렴치한 배신이었던 모양이다. 기사내용중 일부를 옮겨보자. ○30여년간 독립유공자로 둔갑 “병학(兵學)배운(김희선이 일본육사를 졸업한 사실을 지칭한 것임) 애국자로 이름높은 김희선은 총독부의 군수노릇 내버리고 반정(反正)하매 그 전과(前過)를 용서하고 그 지기(志氣)를 가상히 여겨 동지들이 그를 채용하여 군무차장(軍務次長)시켰더니 목욕시킨 돼지가 감귤맛을 못 잊어서…제 계집년 도망할제 왜놈에게 재항(再降)하고 귀화장(歸化狀,항복문)을 써 바쳤다.…3년(1919년부터 1922년까지 그가 임정에 참여했던 기간을 지칭함),냄새나는 송장놈을 차장(次長)시킨 책임자의 잘못이다.그 놈 욕해 무엇하리. 이런 놈은 죽은 개니 육시처참(戮尸處斬)할까 말까”(‘독립신문’,1922년 5월6일,제124호) 결국 그가 1920년대 초반 잠시 임시정부에 참여한 것은 순수한 독립운동 차원이 아니라 일제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초창기 독립운동 진영에 참여하다가 도중에 변절한 사례는 더러 있다. 그러나 김희선처럼 두 번씩 변절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두번째 변절한 이후의 친일행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혀진 자료는 별로 없다. 그러나 일제가 그를 다각적으로 회유하려고 노력한 사실이나 임시정부에서 그의 변절사실을 이례적으로 관보·기관지에 게재,공개한 것으로 봐 그의 변절은 민족진영에 큰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1930년 ‘한일병합’ 20주년 기념으로 일본 천황이 조선내 친일파들에게 내린 대례기념장(大禮記念章)을 그가 받은 사실로 봐도 그의 친일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이같은 친일행적이 보훈처가 간행한 ‘독립유공자공훈록’에 모두 언급돼 있다는 사실이다. 독립유공자의 행적에 조그마한 의문점만 있어도 서훈을 보류해온 보훈처가 그에 대해서는 특별한 배려를 한 셈이다. 독립유공 공적으로 대통령표창(63년)에 이어 다시 80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받은 그는 96년 보훈처가 서훈을 취소할 때까지 30여년간 독립유공자로 둔갑돼왔었다. 뒤늦었지만 보훈처의 ‘서훈취소’는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셈이다. 해방후 고향에 머물다가 월남한 김희선은 서울시 임시정부추진회 부회장,육군상이군인유가족회장 등을 지내다가 6·25 발발 후인 50년 9월29일 서울 근교 공릉(현 노원구 공릉동) 근처에서 사망했다. ◎사망일자에 얽힌 치졸한 사연/순국선열 유족 연금 지급/해방전 사망땐 손자까지 혜택/손자 金宗彦 연금수혜 노려 김희선 사망날짜 조작 김희선의 사망일자는 과연 언제인가? 김희선의 사망일자는 서류마다 제각각인데 모두 세가지 설이 있다. 63년 당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를 담당했던 내각사무처가 작성한 공적조서에는 ‘1925년 3월 대한독립단 참의부에서 활동중 집안현에서 일본군과 교전중 전사’한 것으로 나와 있다. 80년도에 국민장(현 독립장)으로 훈격이 상향조정될 때 주무부서인 원호처가 작성한 공적조서에도 사망일은 역시 동일하다. 그러나 89년 보훈처가 펴낸 ‘독립유공자공훈록’(제5권)에는 그의 사망일이 광복 직전인 45년 7월6일로 나와있다. 나머지 하나는 그의 후손이 세운 묘비에 적힌 것으로 여기에는 ‘1950년 9월29일 卒’로 나와 있다. 실제 사망일은 그의 묘비에 후손이 새긴 날짜다. 1987년에 출간된 ‘강서군지(江西郡誌)’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김희선의 사망일자가 이처럼 여럿인 이유는 보훈당국의 자료조사 부실에다 그의 손자 金宗彦(70)의 ‘장난질’ 때문이다. 현행 국가유공자예우법에는 해방전에 사망한 순국선열은 손자까지,해방후에 사망한 순국선열은 자식까지만 연금수령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조부 김희선의 훈장에 대한 연금을 타기 위해 김희선의 사망일자를 조작한 셈이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두 번씩이나 친일로 변절한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라고나 할까?
  • 고3교실“이젠 논술이다”/외부강사 초빙·다른과목 수업은 완전중단

    ◎고득점자 급증따라 大入 당락 결정적 변수/일부 학원가 특수노려 고액과외도 기승 ‘논술을 잡아라.’ 99학년도 대입수학능력 시험에서 고득점자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일선 고교들이 외부 강사를 초빙하는 등 논술시험 준비에 총력을 쏟고 있다. 고득점자가 많으면 동점자나 점수차가 거의 없는 수험생들이 많아 논술이 당락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선 학교와 학생들은 논술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다수 고교에서는 3학년의 경우 다른 과목의 수업은 완전히 중단하고 논술 수업에 매달리고 있다. 학원가에는 고액 논술과외가 고개를 드는 등 부작용도 빚어지고 있다. 서울 H고는 대학교수를 초빙,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기로 했다. 학교 관계자는 “네 차례에 걸쳐 서강대 한양대 이대 등의 교수를 모셔 60∼70분씩 강의를 맡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S·Y고 등은 ‘논술반’을 편성,국어 교사들이 하루 4시간씩 논술 과목을 집중 교육하고 있다.K고는 학생들을 20명을 단위로 묶은 뒤 국어교사가 1인당 1만원씩을 받고 그룹식 지도를 하고 있다. 교육방송 논술 프로그램을 녹화했다가 방영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는 학교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불충분하다며 학원에 나가거나 개인 교습을 받는 등 이중삼중으로 공부하고 있다. 학부모 禹仁兆씨(50·서울 강남구 대치동)는 “학원비가 부담스럽지만 학교의 지도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어쩔 수 없이 학원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논술 특수’를 노린 입시학원들의 상혼도 덩달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직 교사나 학원 강사들이 1인당 100만원 이상씩 받고 3∼4명 단위로 가르치는 소그룹 논술지도도 성행하고 있다. 일부 학원은 3∼5명의 소규모 논술지도반을 만들어 1인당 100만원을 웃도는 고액 논술과외도 하고 있다. 서울 Y고 3년 曺모양(18)은 “4∼5명씩 그룹을 만들어 논술 과외를 받는데 그룹당 150만∼200만원 정도 든다”면서 “강남에서는 10명 미만의 소그룹 과외를 하며 1인당 100만원 가까이 낸다고들었다”고 말했다.
  • 교원노조의 법제화(사설)

    합법적인 교원노조의 등장이 가시화됐다.교원노조 법제화를 위한 쟁점사항들이 노사정위원회에서 타결됨에 따라 가칭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곧 정기국회에 상정될 전망이다.이 법이 제정되면 내년 7월부터 교원의 노조 결성이 인정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설립 10년만에 제도권에 편입된다. 교원노조의 합법화는 金大中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지난 2월 노사정위에서 기본적인 합의를 이루었던 사항이라 이같은 결과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89년 전교조가 출범한 후 우리 교육계와 사회가 심각한 갈등을 겪었던 점을 돌이켜보면 교원노조 법제화의 실현에 한걸음 다가선 것은 큰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제2건국의 전제조건인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물론 교원노조의 법제화는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듯 당분간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교원노조 특별법이 제정되면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체결권이 인정돼 예산·법령·조례 등에 의해 규정되는 내용과 정치활동을 제외하고 모든 노조활동이 가능해진다.교사들을 단순히 노동자로 보지 않는 사회적 통념이 아직 강한 상황에서 교원노조 활동은 파열음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또 교사의 근로조건 등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은 교원노조가,교원정책에 관한 사항은 전문직 교원단체가 맡는 2원화 방안에 따라 기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전교조가 각각 핵분열·이합집산을 일으켜 여러개의 복수노조와 전문직 교원단체가 난립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집회·결사의 자유에 따른 교원단체의 복수화와 교원노조 허용은 세계적 흐름으로 이에 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복수의 교원단체가 갈등과 대립을 지양하고 화합과 협조로 교육현장의 문제점 해결에 앞장선다면 오히려 교육개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교총과 전교조가 행여라도 서로 힘겨루기에 몰두해 교육계를 분열로 몰아가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어느쪽도 국민적 지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당국 또한 예상되는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해 대책을 마련해야 할것이다.일부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있다 해도 교원노조의 합법화가 노사정 합의속에 이루어지는 만큼 일단 제도의 틀을 만들고 부족한 점은 향후 개선해 가는 대타협의 성숙한 자세로 국회 입법과정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 “전교조 합법화 특별법 제정”/李 교육

    ◎단체교섭·체결권 허용… 정기국회 제출 ‘교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합법화된다. 李海瓚 교육부 장관은 이와 관련,지난 24일 “전교조를 합법화하기로 한 지난 2월 1기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노동법 개정이 아닌 노동관계 특별법을 제정,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노동부 소관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개정해 전교조를 합법화할 것을,노동부는 교육부 소관의 ‘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개정하거나 ‘교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제정해 전교조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맞서 왔다. 교육부와 노동부는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해 교원노조의 단체행동권은 금지하는 대신 임금, 근로조건 등에 대한 단체교섭권과 체결권은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체결권 가운데 예산 및 법률에 관한 사항은 일부 제한된다. 또 전교조와 노동계가 요구하는 체결권을 보장하기로 함에 따라 정책협의권은 박탈하는 대신 이를 교원단체에 부여하기로 했다. 교육부와 노동부는 교섭 구조와 관련,전국 단위의 중앙단체와 시·도 단위의 복수노조는 허용하되 단위 학교에 대해서는 노조가 아닌 시·도 노조의 지부 형태만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같은 안을 27일 노사정위원회 소위 및 본회의 간담회에 상정한 뒤 노동계 대표 등과의 협의를 거쳐 오는 31일 노사정위원회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 민주열사 열전:10/분신 택시기사 朴鍾萬(정직한 역사 되찾기)

    ◎노동운동 탄압 항거 84년 분신/군사정권 反노동자적 행태에 격분/민주노조 파괴공작 목숨 바쳐 제동 84년 11월30일 오전 11시30분. 조인식 여사(46·국민회의 민원부국장)는 문밖에서 나는 자동차 급브레이크 소리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남편 회사차였다.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말았구나”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들어선 순간 조여사는 눈을 감았다. 시커멓게 그을리고 온몸이 부풀어오른 알몸의 사내는 바로 자신의 남편 朴鍾萬이었다. 물을 달라고 소리지르던 그는 부인을 알아보고는 거듭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할일이 남았으니 퇴원시켜달라고 떼를 썼고,옆에 있던 동료들에게는 빨리 회사로 가 일을 수습하라고 재촉했다. “내 한 목숨 희생되더라도 동료기사들의 희생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몸에 불을 붙였던 택시기사 朴鍾萬. 그는 저녁 8시50분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회사 노조어용화 기도 무엇 때문에,누구를 위해서 그는 죽어야 했을까. 노조대의원이었던 朴鍾萬은 소속회사인 민경교통이 노조사무장 이태길씨를부당 해고하자 이에 항의하는 단식농성 끝에 분신자살했다. 당시 이씨는 조합주택 기금 유용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노조위원장을 대신해 노조를 열성적으로 이끌고 있었고 회사는 사소한 이유를 들어 그를 해고했던 것이다. 그외에도 노사간에는 몇가지 요인으로 갈등이 쌓여 있었고,여기에 노조위원장의 비리의혹과 어용화,노조의 분열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회사는 그 이전부터 3차례에 걸쳐 노조간부를 해고하고 정상적인 성과급 지급을 거부하는 등 상습적으로 부당 노동행위를 자행해 왔었다. 또한 고참기사들 중심인 상조회 회원들을 노조에 가입시켜 노조 분열을 조장하고 노조의 어용화를 기도했다고 한다. 朴鍾萬은 노조위원장도 사무장도 아닌 대의원에 불과했지만 그런 부당해고를 통한 노조파괴공작을 방치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해고통지서가 게시판에 붙자 鍾萬이는 격분했어요. 그리고 그것은 비단 자신들만이 아닌 전국의 택시기사들이 당하는 문제라고 보았어요”함께 농성에 참여했던 안을환씨(48·개인운송조합 은평지부 차장)의 회고다. 안씨는 그가 숙직실에서 운행일지 뒷면에 무언가를 적고 있어 무얼 쓰느냐며 다가가자 “알 필요 없다”며 찢어 잠바주머니에 넣었다고 말했다. 그때 쪽지 앞부분에 “내 한목숨 희생되더라도…”란 글귀를 분명히 보았으며 안씨는 쓸데 없는 생각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유서로 보이는 그 쪽지를 찾으려고 잠바를 뒤졌지만 없었다고 했다. 당시 동료들은 朴鍾萬이 유달리 의협심과 동정심이 많았다고 입을 모은다. 동료 일이라면 발벗고 뛰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항상 그를 먼저 찾았고 따라서 동료들로부터 ‘대장’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한다. 동료 부인이 중병이 걸리자 아이를 자신의 부인 조씨에게 맡겼고 적금을 깨 급한 일을 당한 동료를 돕기도 했다. 과로로 2개월간 쉬고 나온 동료가 한푼의 월급도 받지 못하자 자기일은 팽개치고 동료일에만 매달려 당사자가 그만두자고 하기까지 했다. ○갖은 회유·협박 물리쳐 회사는 모든 기사들이 따르는 그를 회유하려고 새 차를 우선 배정하기도 했지만 즉각 거절당했다. 역시 함께 농성에 참여했던 배철호씨(48)는 “朴鍾萬은 진실 하나로 조합에 참여한 순박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무장의 해고가 결정되기전 전무를 찾아가 ‘해고’가 아닌 ‘자진사퇴’만이라도 허락해달라고 빌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당시 택시회사에서 해고되면 회사마다 비치돼 있는 이른바 ‘취업카드’에 기록됐고 ‘불순분자’로 찍혀 택시를 몰 수가 없었다. 그는 해고철회를 요구하며 회사정문 앞에 가마니를 깔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동료기사인 배철호 안을환씨도 곧 합류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던 한 회사 고위간부는 추위때문에 동료들이 갖다준 담요까지 빼앗아 갔고,“너희들도 오래 못갈 것”이라고 협박했다. 분신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함께 농성을 하던 두 동료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노조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석유를 온몸에 뒤집어썼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배씨가 낌새를 채고 그를 부른 순간 朴鍾萬은 시뻘건 불덩어리가 되어 창문을 깨고 튀어나왔다. 당시 한 일간지는 사설에서 이 사건의 배경으로 노사대립을 적절히 수렴할 만한 제도적 장치 미흡과 분규 해결과정에서의 기업과 정부의 진지하지 못한 자세를 꼽았다. 그러나 이것은 핵심을 벗어난 ‘점잖은’ 분석이었다. 실은 독재정권 유지의 자양분인 정경유착에 의한 착취구조와 정권의 노동운동에 대한 적대적 시각이 근본 원인이었던 것이다. 정부는 그 이전부터 노동자의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다. 정보기관이나 행정관청의 노동운동에 대한 눈에 띄지 않는 감시와 통제,신규노조 설립 신고 반려 및 어용노조 결성 유도,임금인상투쟁에의 경찰 개입 및 민주노조 파괴행위 등이 일상화돼 있었다. 朴鍾萬 열사는 민경교통 노조사무장 이태길씨가 아닌 전국 택시회사의 부당해고와 노조탄압,독재정권의 반노동자적 행태에 항의해 분신했던 것이다. □朴鍾萬 열사 연보 ▲1948년 부산출생 ▲68년 서라벌고교 3년 중퇴 ▲82년 (주)민경교통 입사 ▲83년 노조 복지부장 ▲84년 11월30일 분신 ◎가족·동료들 그후/부인 조인식 여사 민주화투쟁 혼신/동료 이태길씨 충격 딛고목회의 길 朴鍾萬 열사의 죽음이후 부인 조인식여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가 죽었을때 31살의 평범한 운전기사 아내였던 조여사는 지금 집권여당 민원부국장으로,국민들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같이 고민하며 해결점을 찾는 일을 하고 있다. 당시 장례식때까지만 해도 기가막히고 경황이 없어 죽음의 의미 같은 것에는 크게 신경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을 일산공원묘지에 묻고 돌아오면서 억울함이 복받쳐 올라왔다고. 그때 노동부는 남편 죽음의 배경을 단순한 노조 내분과 朴鍾萬의 개인적인 결함으로 몰아붙였던 것이다. 조합장과 사무장의 실권 장악 다툼에서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하고 朴鍾萬이 전과 3범이라는 사실을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전과라는 것이 하나는 고등학교때 열차역 앞에 있는 자재를 엿바꿔먹은 행위였고,나머지는 간이매점을 운영할때 옆집 사람과 물품인수과정에서 싸움이 붙었던 것,민경교통에서 동료운전사의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로 회사측과 다툼이 있었던 것이었다. 조여사는 그때부터 남편의 명예회복에 직접 나섰다. 같은 처지에 있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민주화투쟁 및 노동운동 현장에 악착같이 나갔다. 또 박종만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추모사업과 함께 운수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담는 ‘운수노보’를 발행했다. 당시 朴鍾萬과 함께 단식농성을 했던 안을환씨는 그의 죽음이후 노조위원장을 맡아 근무여건 개선에 앞장서다 4년후부터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분신의 직접적 원인제공자가 됐던 사무장 이태길씨는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노동 자체가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그것이 죽음으로 연결됐다는 사실이 그를 평상으로 돌아가게 하지 못했다. 영안실에 朴鍾萬이 내걸었던 요구조건을 내걸다 경찰서 정보과로 붙들려 갔던 그는 1년여 동안 기도원을 돌며 기도에만 열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 신학공부를 시작해 지금은 서울 응암동 응암중심교회에서 목회자로 일하고 있다. ◎당시 택시기사 근무여건/회사마다 ‘취업카드’ 비치 노조활동 방해/사납금 과중으로 사고율 다른 車의 4배 당시만 해도 택시기사는 구조적으로 회사측에 한없이 무력했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종속관계에서,‘돈은 주는 대로 받고 일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전근대적인 의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곳중의 하나가 택시회사였던 것이다. 우선 노조원들은 해고 앞에 무력한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가 회사마다 비치돼 있던 ‘취업카드’에 ‘해고’라는 단어가 기록되면 택시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朴鍾萬씨처럼 해고가 아닌 ‘자진 사직’을 시켜달라고 애원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또 운전사들,특히 고참 운전기사들이 기업주에 쉽게 굴복하는 것은 대부분 기사들의 꿈인 개인택시에 대한 욕심때문이다. 개인택시를 몰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무사고 운전기록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하는데 회사측의 협조나 배려가 꼭 필요한 것이다. 또 회사에 노조가 있으면 회사를 팔아먹기도 힘들고,따라서 값도 깎이기 때문에 업주들은 기를 쓰며 노조설립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노조를 통해 업주에게 대항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기사들은 상당히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해야했다. 다른 차량에 비해 교통법규 위반이나 과속, 난폭운전을 많이 하기 때문에 사고빈도가 매우 높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택시는 다른 차량에 비해 4배 정도 높은 사고율을 보였는데 과중한 사납금이 주요 원인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운전사들은 병도 많아 78.5%가 위장병을 앓고 있으며,시력장애는 40%,신경성 질환 38.5%,성욕감퇴 23.1%라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 육군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5)

    ◎“조국사랑” 참군인 정신 일깨운다/선사시대 이래 군사자료 8,600점 한눈에 金日成 작전명령서·베트콩 전단까지/부서진 총열·녹슨 수통·구멍뚫린 철모…/장렬히 숨져간 무명용사의 외침 절절이 불암산의 서기(瑞氣)가 어린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호국 간성의 요람인 이곳에 들어선 육군박물관은 일반인들의 군(軍)에 대한 거리감을 친근감으로 바꿔주는 묘한 공간이다. ‘한국의 시인 건축가’ 金重業씨(88년 작고)가 조국통일의 염원을 담아 그 물꼬를 트는 상징으로 열쇠 형상을 택해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흰색 화강암 건물로 잔디와 숲으로 차분히 정돈된 육사 캠퍼스 남쪽 끝에 들어앉아 있다. 정면에 연병장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바로 앞에는 고 姜在求 소령 동상이 달려가는 듯한 자세로 서 있다. 30여년전 월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훈련장에서 부하를 구하고 산화한 그의 모습은 오늘날 이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참군인정신과 함께 참나라사랑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육군박물관은 이 땅에서 ‘저질러진’ 전쟁에 관한 많은 것을 증언한다.지상3층 지하1층 건물중 고대실·현대실 등 두 개의 전시실에는 가깝게는 6·25전쟁에서부터 임진왜란,멀리는 선사시대의 군사 관련 유품과 문화재까지 모두 8,6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의 가치는 유형의 물질에서 옛 사람들의 혼과 정신을 만나는데 있다고 했던가. 전시실을 떠받치고 있는 14개의 원추형 돌기둥이 두 열로 돌아나간 옥외 전시장에서 당시의 총통과 대포들이 전장의 신음을 오늘에 전한다. 건물 중앙으로 맞닿은 기둥 사이에 朴正熙 대통령이 서거 때까지 타던 캐딜락과,맹호부대가 월남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한 ‘안케패스 전승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군인으로 시작해 대통령이 되고,또 독재자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한 한 불운한 정치인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볼 수 있다. 3층에 위치한 현대실에는 광복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각종 무기와 장비 복식 문서 등 4,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현대사의 흐름을 요약한 다양한 색과 제각각 형태의 볼 것들이 눈을 자극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은 6·25전쟁이다. 전쟁에 쓰였던 장비와 전단 복장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붉은빛 일색인 공산군의 그것들은 지금도 섬짓한 느낌을 전한다. 어느 시인은 뜰 안에 핀 장미꽃 빛깔에도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 0097호’에는 金日成이 전쟁중 직접 작전을 명령한 극비사항이 적혀있다. 1951년 8월8일로 찍혀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지령문’도 있다. 특히 6·25전적지인 설악산 소청봉에서 유골과 함께 발굴된 무명용사의 유품 앞에는 관람객들이 유난히 많다. 소총의 총신부분과 녹슬은 수통·구멍뚫린 철모.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전장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다가 외롭게 숨져갔을 그의 외침이 귓전을 때리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6·25전쟁중 물자가 고갈되자 인민군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쓴 병뚜껑으로 만든 모표,허름한 방한화,버선,철모,수통 등이 월남전 당시의 궁색한 베트콩 군수품과 나란히 진열돼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고향의 달밤,임이 그리워 밤마다 웁니다.”“그리운 이여! 딸라도 선물도 싫어요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대의 산 목숨뿐” 등 월남전 당시 우리 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살포됐던 전단도 눈길을 끈다. 2층의 고대실에는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 이전까지의 군사관련 문화재 4,128점이 시대순으로 전시돼 있다. 구석기∼신석기시대의 주먹도끼 등 석제무기와 3∼4세기 신라의 철검·무쇠도끼·무쇠창 등 철제무기들은 인류를 말살할 수 있을 정도의 현대무기에 비하면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한번에 여러 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조선후기 화살 연발장치인 녹로노나 부녀자도 쏠 수 있게 만든 수노(手弩)인 삼시수노기(三矢手弩機)가 복원품이긴 하지만 눈길을 끈다. 화살을 4개까지 장전해 쏘던 조선전기의 사전총통(四箭銃筒),조총,화강암 탄알인 단석(團石),발사기인 대완구(大碗口)와 비격진천뢰쯤에 이르면 본격적인 전쟁 분위기가 풍긴다. 대완구는 국내 유일한 것이며 비격진천뢰도 연세대박물관과 함께 유일한 소장자로 돼있다. ‘부산진 순절도’와 ‘동래부 순절도’는 임진왜란 당시 군민(軍民)들의 처절한 항전모습을 담은 보물들이다. 박물관 건물을 나와 연병장 길을 따라 오른 쪽으로 접어들면 헬리콥터 장갑차 곡사포 전차들이 도열한 야외전시장에 접어들게 된다.50년 6월25일 남침의 선봉에 섰던 북한군 탱크 T­34와 이에 맞섰던 미제 M46탱크,전쟁초기 투입된 적 관측및 업무연락용 항공기 L­19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40여년 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첨예하게 대치했던 주인공들이 지금은 친구가 되어 한자리에 있는 모습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관장 姜性文 중령/“40년 전통 국내 유일 군사종합박물관”/군사문화 발달과정 전시/전쟁유적지 학술 조사도 육군박물관의 현 관장 姜性文 중령(53·18대)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주2회씩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수이기도 하다. 지난 96년 12월 관장직을 맡아 박물관 운영을 책임지랴 강의준비 하랴 하루하루가 바쁘기만 하다. 특히 지난해 2월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관람객이 늘어나는 바람에 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용산의 전쟁기념관이 한국전쟁에 초점을 맞춘 전쟁과 무기중심의 기념관 성격을 갖추고 있다면 육군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군사관련 종합 박물관입니다. 40년이 넘은 전통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육군사관학교 경내를 둘러보는 관광상품이 마련되면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지요” 육군박물관은 56년 육군사관학교 기념관으로 처음 문을 연뒤 10년만인 66년 육군사관학교 군사(軍事)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83년 지금의 자리에 새 건물이 완공돼 2년뒤인 85년 개관했다. 주변의 넓은 공원 분위기와 어울려 딱딱하게 느껴지는 군사문화를 순하게 바꿔낸다. 군사유물을 통해 군의 업적과 전통·발전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형태가 독특하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유형적인 군사관련 소장품들이 무형의 자산을 표현한다고 할까요.외침이 있을 때마다 민군(民軍)이 일치단결해 민족 수호에 나섰던 조상들의 자취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자부심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지요” 비록 군사문화를 다룬 박물관이지만 전통문화 유지역할에 큰 몫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는게 姜관장의 설명이다. 휴전선 일대 군사유적지에 대한 학술조사와 군사유물에 대한 논문지 발간도 활발하다. 지난 94년부터 파주·연천·철원·포천군 지역의 산성·봉수대·한국전 격전지에 대한 지표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작성해 왔고 학술 논문지 ‘학예지’도 통권 5권을 펴냈다. 육군 박물관이 군사(軍史)를 다룬 박물관인 만큼 대학 역사교육의 보조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대학의 역사교육에는 군사 문화재의 발달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빠져 있지요. 이 틈새를 메울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육군박물관입니다. 소장품들이 모두 가치있는 자료들인 만큼 영구보존을 위한 전시장 보완이 시급합니다” ◎육군박물관 가는 길/전철·노선버스 연계/육사후문으로 입장 70만평의 캠퍼스안에 다양한 레포츠 시설과 편의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는 특수목적 대학인 육군사관학교 안에 자리잡은 이색 박물관이다. 육군사관학교가 관리 운영하는 군 관련 시설인만큼 일반인들의 접근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그러나 지난해 봄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고 관광코스도 마련돼 있어 뜻만 세우면 얼마든지 알찬 볼거리들을 만날수가 있다. 전철 1호선이 석계역,7호선이 먹골역까지 닿아 있고 노선버스는 45­2,803,45,745번이 운행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서울여대 앞에서 내린다. 매일 상오 9시 호텔신라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있다. 육사 후문에서 안내를 받아 박물관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으며 정기 관광코스는 상오 10시와 하오 2시 등 매일 두차례. 화요일∼일요일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상오 10시부터 하오 4시까지. 관람료는 어른 2,000원,학생 1,000원.
  • 주한 미 상의/복수노조 허용 철회 요구/98무역·투자보고서 요약

    ◎자동차 수입관세 2.5%로 낮춰야/기업 회계기준 국제수준 개정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18일 ‘98년 한미 무역·투자 이슈’보고서를 통해 “복수노조의 허용을 철회하고 퇴직금 제도의 개편을 포함한 노동관행을 전면 개혁할 것” 등 16개분야의 제도개혁과 시장개방을 촉구했다.주요 분야별 내용을 간추린다. ◆자동차=수입관세율을 8%에서 2.5%로 낮춰야 한다.등록세와 특소세도 너무 높게 부과되고 있다.자동차 관련 할부금융을 외국인들에게 더 개방하고 한국 자동차산업에 대해 각종 표준과 검증을 국제화할 것을 권고한다. ◆금융분야=지점별 자본금 범위에서 일정 한도로 제한되는 대출 보증 외국환업무 등의 영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5대그룹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월·분기별 재출비율 제한과 외국은에 대한 불공정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 ◆회계제도=한국기업을 인수하려 해도 믿을 만한 자료가 없는 점을 감안,기업회계기준을 국제수준으로 전면 개정할 독립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 ◆국방분야=지난 40년간 미국제 무기를 구매해온 한국은 최근 미국이 기술이전에 소극적이고 이미 넘긴 기술에 대한 소유권에 집착,한국무기의 제3국 수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다. ◆노동정책=복잡한 급여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해고된 직원을 노조원으로 봐서는 안되며 파업중인 근로자를 대신해 임시직을 고용하거나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농업·식품분야=2001년으로 예정된 한국 쇠고기 시장의 전면개방에 앞서 수입허용량을 확대해야 한다.레몬이나 포도 등 일부 품목은 매년 1%씩 10년간 10%의 관세를 인하해야 한다. ◆정보통신=한국은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자무역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기존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 김 당선자­ILO 관계자 환담

    ◎DJ­교원노조 국민적 합의 획득 필수/ILO­교원에 최소한의 권한 보장해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9일 상오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에서 국제노동기구(ILO) 관계자들의 예방을 받고 환담했다.면담에는 카리 타피욜라 사무차장과 미슈라 인도 노동부차관과 울프 에드스트롬 스웨덴 노총국제부장,브라이언 녹스 호주 상공회의소부회장 등 ILO 관계자 7명이 참석했다.박지원 당선자대변인이 전한 대화내용을 정리한다. ▲타피욜라 사무차장=복수노조와 결사의 자유,교원노조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한국의 노사정 합의가 어떻게 진행될 지도 관심이다. ▲김당선자=복수노조는 지난 64년 본인이 처음 국회에 제안해 34년만인 지난해 통과됐다.교원노조는 ILO 원칙에 따라 99년 7월부터 실시하기로 이번 노사정 협의에서 합의됐다.그러나 국민,특히 학부모들의 반대가 크다.어떤 경우에도 교원노조는 국민적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따라서 교원노조는 국민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해야 하고,야당의 반대도 설득해서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해야 한다.이를 위해 급진적 인상을 빨리 씻도록 해야 한다. ▲타피욜라 사무차장=ILO규정에는 결사의 자유가 있다.교원노조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라.세계 각국에는 급진적인 노조도 있으나 종국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노조가 많다. ▲김당선자=한국에는 군·사·부 일체라는 말이 있다.스승이 노동자라는 표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국민적 분위기다.교원노조를 합법화하면 급진적인 면이 없어지고 더욱 완화된 교원노조가 될 것으로 생각해 인정했다.앞으로 전교조가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미슈라 차관=교원도 노동자인 것을 알아야 한다.모든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 ▲김당선자=21세기는 지식산업시대이므로 지식노동자의 위치가 강화돼야 한다.노동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
  • 공무원 노조 허용 검토/복수노조 인정­3자개입금지 폐지/인수위

    ◎정리해고제 도입 맞춰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측은 노사정위원회의 정리해고제 도입에 맞춰 국내 노동환경을 국제수준으로 개선해 나간다는 차원에서 공무원노조를 허용하고 복수노조제도를 인정하는 한편,노동쟁의의 제3자 개입금지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대통령직인수위의 이해찬 정책분과 간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공무원노조 허용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항”이라면서 “공무원노조 허용은 사실상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김당선자측은 그러나 공무원노조를 허용하더라도 정치참여를 금지할 방침이며,이를 위해 대통령선거 공약을 통해 밝힌대로 노동3권 가운데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만 허용하고 단체행동권은 허용치 않을 방침이다. 김당선자측은 또 정리해고제가 실시될 경우 노동자의 권리 강화도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OECD 노동위원회에 약속한 복수노조 허용과 제3자개입금지의 폐지를 위해 관련법 개정을 검토해나가기로 했다. 김당선자측은 그러나 교원노조에 대해서는사회인식은 물론 여야간,국민회의와 자민련간에도 인식의 차가 크기 때문에 도입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앞서 노동부는 지난 3일 인수위에 대한 업무보고를 통해 “국민회의의 대선 공약에 따라 공무원의 단결권을 인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향적인 검토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현행법은 공무원 노조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철도 및 체신,국립의료원의 현업부서에 대해서만 단결권을 부여하고 있다.
  •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 규방 문화/허동화 지음(화제의 책)

    ◎우리 규방문화의 독특한 미의식 탐구 과학기술문명의 뒷전에 밀려 빛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 규방문화의 독특한 미의식을 각종 공예를 중심으로 탐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고대 자수작품이 출토된 예가 없다. 그러나‘삼국지’의 부여전을 보면 한민족이 흰 옷을 즐겨 입었으며 회,수,금,계 등으로 지은 옷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회는 무늬 없는 비단,수는 갖가지 빛깔로 수놓은 비단,금은 일정한 무늬를 넣어 짠 비단,계는 동물 털로 짠 모직물을 일컫는다. 부여시대에 이미 비단에 수를 놓았음을 일러주는 대목이다. 자수는 이처럼 우리 민족의 삶을 오롯이 대변해온 전통문화의 정수다. 전통 자수 중에서도 특히 우리 민족의 은근한 멋과 정취를 전해주는 것이 병풍 자수다. 병풍은 이미 통일신라 시대에 사용했던 기록이 있을 만큼 그 연원이 깊다. 길흉사에 두루 쓰였던 병풍은 행사 내용에 따라 다른 그림의 것이 사용됐다. 혼례식에는 산수·화조·모란·연꽃 등이 그려진 병풍을,회갑잔치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병풍을 사용했다. 이 책에서는 화조도,경직도,사계분경도,구운몽도,백동자도,종정도,문방기명도,효제도,길상도,어락도,백수백복도,곽분양향락도 등 각종 병풍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된다. 깊은 신앙심과 치성으로 빚어낸 불교 자수에 관한 글도 관심을 끈다. 번·가사·부처방석 등의 불교 자수는 다른 자수 작품들과는 달리 시주한사람과 간지가 표시돼 있어 시대고증에 큰 도움을 준다. 지은이는 지난 60년대부터 30여년동안 수주머니·수노리개·침장·자수병풍·다듬잇돌·보자기 등 규방용품들을 수집,사전자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 규방문화지킴이다. 현암사 1만5천원.
  • “대한 수출보증 적극 나설것”/하몬 미 수출입은 총재 회견

    ◎한국 IMF 지원조건 준수노력 계속해야 내한중인 미 수출입은행 제임스 하몬 총재는 12일 미공보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정부관리와 재계 지도자들과의 회합결과가 매우 고무적”이라며 “한국 기업에 대해 최대한의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한국에 수출하는 미국 기업들에 대한 지급보증 한도가 머지않아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 수출입은행 이사회에 이들 기업에 대한 지급보증 한도를 늘리도록 제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다음은 일문일답. ­수출입은행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민간은행이 꺼려하는 대한국 수출보증을 적극적으로 해주는 것이다.12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72건의 계약을 성사시켰다.대부분 10만∼1백만달러 규모의 단기금융이다.수출입은행의 역할은 한국처럼 신용도의 추락으로 민간은행이 발을 빼 생긴 공백을 대신 메워주는 것이다. ­방한하기 전과 후 한국 위기상황에 대한 평가는. ▲미 금융기관들이 한국을 여전히 불안하게 보는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방한 중 만난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의 위기대처 모습은 금융계의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어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하는 조건들이 한국에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데. ▲어려운 질문이다.세부적인 것까지는 모르지만 고금리정책과 통화긴축 요구 등은 한국 경제회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그러나 프로그램을 준수하려는 노력은 해야한다.IMF가 자금지원을 하지 않으려는 조짐만 보여도 가까이서 한국을 지켜보는 전 세계인이 바로 등을 돌려버릴 것이다.
  • 부산·경남/2이 표심 양분 “바람 어디로”(권역별 판세점검:4)

    ◎이회창­경남 이인제 후보­부산서 강세/“될사람 밀어야지” 은연중 DJ 경계/조직력·쟁점·투표율따라 막판 표쏠림 주목 “경제가 엉망인 마당에 무슨 선거 얘기요.아무 관심도 없다 아이요.그래도 찍기는 찍어야 될끼고,싫은 후보부터 빼다보니 이회창씨가 남네요” 경남 진주 상평공단에서 벽지도매업을 하는 한기민씨(38)는 한참 뜸을 들이다 속내를 밝혔다. “이인제씨를 찍기로 마음 묵었심더.다른 후보들보다 젊고 활기찬 것 같데요” 지난 2일 김해공항에서 탄 택시기사 서종식씨(35·부산)는 승객들의 반응까지 소개한다.“아주머니들은 이회창 후보 얘기를 많이 합디더.남자들은 좀 달라예.괜찮아 보이는(기득권층) 승객들은 이회창 후보를 선호하지예.젊은 사람들은 이인제,나이든 분들은 이회창쪽을 더 얘기합디더.김대중 후보를 얘기하는 사람도 가끔 있는데 늘지도 줄지도 않심더” 이렇듯 부산 경남의 표심은 한나라당의 이회창,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양분하고 있다.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여전히 지역정서의 벽에 막혀 있는 분위기다.“50년만에 바꿔보자”고 외쳐대지만 역부족이다.한나라당 박관용 의원은 “DJ(김대중 후보)는 항상 12.5%”라고 말했다. 굳이 판세를 따지자면 부산권은 이인제 후보,경남권은 이회창 후보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한나라당측은 부산지역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역전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대선 1주일전을 고비로 압승기류를 탈 것으로 자신한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한나라당측의 조직보강 작업이 활기를 띄고 있다.한나라당 김무성 의원(부산 남구을) 보좌관인 김현덕씨는 “이인제 후보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거품으로 빠지고 이회창 후보에 대한 동정론도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는 여론은 여전히 매섭다.부산역 광장에서 만난 전태수씨(80)는 “이인제 후보는 처음부터 경선이 잘못된 것 때문에 탈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부산역 앞을 지나던 50대 스님은 “TV토론을 보니 이회창 후보는 화장을 곱게 했고,김대중 후보는 화장을 짙게 했더구만요.이인제 후보가 제일 자연스럽데요”라고 이인제후보 지지의사를 내비쳤다.이런 기류도 중부경남의 마산 창원,서부경남의 진주 합천 등으로 가면 이회창 후보쪽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진주 중앙시장에서 완구업을 하는 정돈석씨(38)는 “될 사람을 밀어줘야 되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분위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깊다.창원의 박경훈씨(32)는 “누가되든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TV토론을 보니 서로 헐뜯기만 합디다”라고 말했다.한나라당측이 걱정하듯 투표율이 저조할 수도 있는 분위기를 반영한다. 두 이후보 진영에서는 여느때처럼 결국 바람이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 바람을 놓고는 해석이 엇갈린다.이회창 후보측은 사표 방지 심리로 막판에는 이회창 후보에게 표가 몰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인제 후보쪽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워낙 깊기 때문에 이같은 ‘케케묵은’분석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를 걸고 있다.하지만 “이러다가는 김대중 후보가 될지 모른다”는 쪽으로 지역정서가 바람을 탈 가능성을 김대중 후보측 만큼 걱정하고 있다. ◎쟁점­낙동강 수질개선/‘식수노이로제’풀 공약 봇물/이회창­오염원 총량규제·광역상수도 건설/김대중­오폐수 무방류시스템 구축 등 제시/이인제­수상관광·레지시설 개발 연계추진 부산 시민들은 ‘식수’얘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커진다.낙동강 수원에 의존하는 경남지역 주민들도 마찬가지다.3∼4급수로 전락한 낙동강물을 더이상 믿을수 없다고 불만들이다. 이 지역에서는 대구지역의 위천공단 얘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다.대선을 앞두고 어느 정당도 공단조성에 찬성하는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만일 그랬다가는 거센 반발에 부딛쳐 표를 포기해야 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세 대선후보가 제시하고 있는 낙동강 수질개선 공약은 이를 반영한다.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2001년까지 하루 20만톤 규모의 공업용수 시설구축 ▲낙동강 3급수 이하 지역의 수질개선특별대책지역 지정 및 오염원 총량규제 ▲1백만톤 생산규모의 부산 광역상수도 조기건설 ▲고도정수 처리시설 조기완공 등의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국민신당은 낙동강 수질 개선은물론 낙동강 수계를 활용한 수상관광,레저코스 개발까지 지역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국민신당 부산시지부장인 김운환 의원은 이인제 후보의 지원유세를 통해 “위천공단 조성에 대해서는 의원직을 걸고 반대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낙동강 수질개선과 위천공단 조성문제를 적극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부산경남과 대구경북,‘두마리토끼’를 *고 있다.▲최첨단 오폐수 무방류시스템 구축 ▲남강 상류지역 상수원 개발사업 조기시행 등의 수질 개선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위천공단 조성문제에 대해서는 집권후 6개월안에 지방자치단체,사회단체,전문가,지역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해결하겠다고만 밝히고 있다.
  • 기업단위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노개위 5개 개혁안 보고 내용

    ◎법정 근로시간 단축… 휴일·휴가제 개선/여성고용 확대… 기혼여성 재취업 촉진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7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5개 개혁안 내용을 간추린다. ◇기업단위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방안=▲공익안은 △사업장내 조직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노조가 있으면 그 노조가 소수 노조까지 포괄하는 교섭권을 갖는다.△조직근로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노조가 없으면 노조간 자율조정을 통해 교섭창구가 단일화돼야 사용자의 교섭의무가 발생한다.△창구 단일화에 실패하면 조합원 선거로 과반수 지지를 받는 노조가 대표교섭권을 갖는다.▲노동계안은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경영계안은 종업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는 노조만이 교섭당사자로 인정한다. ◇여성 고용확대와 보육서비스 확충방안=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의 취업 촉진을 위해 취업지원창구 및 대학내 취업정보센터를 설치한다.공기업 평가항목에 여성채용비율을 반영한다.기혼여성의 재취업 촉진을 위해 각종 지원제도를 마련한다. ◇산재보험 적용 확대방안=금융보험업은 98년 7월1일부터 우선 적용하고 4인 이하 사업장은 영세사업주의 부담능력을 고려하여 재해율이 높은 업종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되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시기를 고려하여 2001년 1월1일부터 시행한다.4인 이하 사업장 적용 확대에 따른 보험재정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 산재보험기금에서 출연되는 재해예방기금을 일반회계에서 지원한다. ◇산재보험 운영체계 개선 기본방향=현행 산재보험 운영체제의 기본틀을 유지하되 보험료 부과 및 보험급여 지급체제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제고한다. ◇근로시간 단축 및 휴일·휴가제도 개선방안=정부내에 노·사·정·공익대표로 구성되는 전담기구를 설치하여 제도의 개선을 추진하되 휴일·휴가제도와 연계하여 법정 근로시간 단축문제를 검토한다.
  • 날개 단 DJ 조촐한 텃밭 방문

    ◎역풍 우려 현수막·군중집회 등 자제/“건강 관련 음해 계속될땐 반격할 것”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광주에서 조촐하게 ‘DJP 신고식’을 가졌다.단일화 타결후 처음으로 30일 자신의 텃밭 광주를 찾은 DJ는 요란한 행사없이 조용하게 방문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31일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도 예정없이 기습적(?)으로 방문했다.‘축소지향’의 행보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과거 광주 시내 곳곳에 걸렸던 환영 현수막을 찾아볼수 없었고 군중이 모일만한 이벤트도 만들지 않았다.텃밭에서의 대규모 행사로 인한 반DJP의 역풍을 우려한 탓이다. 대신 DJ는 이날 현지 지역인사와의 간담회와 광주 KBS토론회를 통해 밀도있는 ‘안방 신고식’을 했다.무엇보다 DJP 단일화의 불가피성에 초점을 맞췄다.“단일화는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산업화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합치는 중도통합”이라고 의미부여를 한 후 “우리가 집권하면 전라도 지역당이라는 비방도 사라지고 사상음해도 하지 못할 것”이라며 자민련의 효용가치를 최대한 부각시켰다. 80년 혹독한 광주민주화운동을 체험한 현지정서를 감안,자민련과의 동질성과 중단없는 개혁의지도 과시했다.DJ는 “자민련과 개혁정책에 뜻을 같이하고 있어 집권해도 개혁의 후퇴는 없을 것”이라고 현지의 우려를 씻은후 기초의원 정당공천 및 복수노조 허용,한국은행 독립,통합의료보험안 등 자민련과의 정책공조를 실례로 들었다. 그러나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를 역 지역바람의 차단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그는 “다른 지역에서 악용할수 있는 행동을 삼가해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나는 전라도 대통령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집권후 차별이 있을수 없으나 특혜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 부문별 개혁평가·추진과제 요약

    ◎여성채용 목표제 도입·사시 개선·벤처기업 육성/전출입 간소화·고속도로 버스전용 차로제 실시/행정규제 기본법 제정·국민연금 적용대상 확대/금융기관 업무영역 확대·단순의약품 슈퍼판매 1일 김영삼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개혁점검 확대회의’는 문민정부들어 계속돼온 개혁작업을 평가하고 문제점을 진단,앞으로의 추진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자리였다. 세계화추진위원회 등 문민정부의 개혁관련 10개 위원회 위원장과 관계국무위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각 위원회가 보고한 부문별 개혁평가와 앞으로의 추진방향을 요약한다. ◇세계화추진위원회=여성개발기본법을 제정하고,여성채용목표제를 도입하는 한편 사법시험제도를 개선하는 등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개혁했다.또 벤처기업 육성과 초등학교 영어교육실시 등 개방화와 무한경쟁시대를 헤쳐나갈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고 환경개선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등 세계화시대에 부응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였다. 연말까지 세계화시대의 사회통합방안과 국민경제운용의 제도적 개선,사회교육방안,여가문화의 개선방안 등 국가운용의 기본틀이 될 수 있는 추가과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행정쇄신위원회=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전·출입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생활민원을 줄였다.무사고 운전자에 적성검사를 면제하는 ‘녹색운전면허증’을 발급하고,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제를 도입했다.시·청각장애인의 TV수신료를 면제토록 하고,건축행정제도를 개선했다. ◇규제개혁추진회의=행정규제의 원칙을 명문화하고 민간중심의 규제개혁 상설전담기구를 설치하는 등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 위해 ‘행정규제기본법’을 제정했다.준농림지역 ‘산업촉진지구’제도를 도입하고,산업단지안에 물류시설업체의 입주를 허용했다.전기공사업을 등록제로 전환하고,기업의 유상증자요건을 완화했으며,건축심의제도를 폐지하는 등 각종 규제개혁을 단행했다. 앞으로 1만2천개에 달하는 기존 규제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실시,상위법령에 근거가 없는 고시·훈령·예규 등에 의한 규제를 폐지하고,법령에 근거가 있는 규제도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국민복지추진위원회(복지부)=국민연금의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의료보험 급여기간과 급여범위를 확대하는 등 의료보험과 사회보험을 내실화시켰다.또 고령화시대에 대비하여 노인복지수준을 높이고 장애인들의 복지기반도 강화했다.그러나 노인복지를 위한 노인전문병원의 개원이 늦어지는 등 미흡한 면도 있다. ◇국민복지추진위원회(문화체육부)=전국의 생활권별로 다양한 문화·체육·청소년시설을 확충하고 관광지를 개발했다.이로 인해 문화복지에 대한 국민적 의식을 높이고 중앙과 대도시에 편중되어온 문화참여기회를 전국민에게 확산시켰다. 그러나 문화예산의 1% 확보 등 재정적·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앞으로 문화복지투자재원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기 위해 국고와 지방비·각종 기금·민자 등 다양한 투자재원을 발굴할 계획이다. ◇교육개혁위원회=98년 교육재정을 GNP 5% 수준으로 확보하게 되는 등 교육여건의 획기적인 개선 기반을 마련했다.120개 과제의 교육개혁방안을 추진함으로써 교육체제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올수 있는 제도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앞으로 99년 이후에도 교육재정을 GNP 5% 수준 이상으로 확보,교육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과대규모 학교와 학급당 학생수를 축소하며,이수교과목 수와 학습량을 줄여 과외수요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교육개혁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유도하고 교육개혁백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21세기에 대비한 새로운 노사관계의 법과 제도의 틀을 마련함으로써 근로자의 노동권을 신장시키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했다. 앞으로 새로운 노동관계법 시행에 따른 후속적인 제도개혁을 추진하겠다.즉 복수노조체제 아래 합리적인 교섭방안과 공공부문 노사관계 합리화 방안을 강구하고,근로자의 ‘삶의 질’향상을 위해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부분 적용하고,임금과 퇴직금의 지급 보장방안을 마련하겠다. ◇금융개혁위원회=금융개혁 방안 가운데 금융기관의 업무영역확대,금리와 수수료 자유화,벤처금융 활성화,금융규제 완화 등 법률개정 없이 시행할 수있는 과제는 즉시 시행했거나 관련규정을 정비하고 있다.또 ‘금융감독 기구 설치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 은행법 등 47개 금융관계법률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농어촌개발위원회=농어촌 투융자가 92년 2조 8천억원 규모에서 96년에는 7조4천여억원으로 늘어났다.주요 농정제도의 개혁과 주곡생산기반을 강화했다. 본격적인 농산물 시장개방에 대비하고,99년 이후 농촌발전계획을 수립하고 ‘농업·농촌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새로운 농정여건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농정조직과 추진체계를 정비할 계획이다. ◇의료개혁위원회=응급환자 신고·이송체계를 일원화하고,장기이식관계제도를 정비했다.한·의약 품질관리제도를 개선했고,보건의료인력 양성제도를 개선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97년 12월말까지 의료수가제도 개편안을 확정하고,2000년부터 새로운 수가체계를 도입할 예정이다.또 의·약분업를 추진하고,양·한방의료 상호교류와 협진체제를 구축하겠다.단순의약품은 약국이 아닌 곳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며,의약품 표준소매가제도를개선하는 한편 보건·의약 행정조직 효율화 등을 주요개혁과제로 설정,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 ◇정보화추진위원회=문민정부 출범 이후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계획과 정보화촉진 기본계획,정보통신산업발전 종합대책 등을 수립하여 2000년대에 대비한 정보화 기반을 마련했다. 2010년까지 초고속정보화통신망을 구축하되 급속한 기술변화와 수요여건을 감안해 실천계획을 5년 단위로 연동화함으로써 계획의 실효성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또 통신시장 개방에 대응해 공정한 경쟁체제를 확립하고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을 통해 국내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
위로